Rubera(루베라) -1- 지금 난 기분이 상당히 더럽다..... 조용한 커피숍 안에서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남자는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내 아버지였던 사람.... 몇 달만에 한 번씩 보는 얼굴이지만... 내겐 아무런 감흥도 없다. 물론 이 남자도 그렇겠지만.... 천천히 커피 잔을 기울이는 사내는 꽤나 단정한 얼굴에 대기업 엘리트같은 느낌...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침묵을 깨고 천천히 입을 연다. "그 동안 잘 지냈나?" "네...." 한참동안 말이 없다. 형식적인 질문과 대답.... 이런 자리가 정말 지긋지긋하다. "전에 내가 말했던 건...." "거절합니다" "그래...." 꽤나 자존심 높은 이 인간은 자신의 아들이었던 녀석이 허름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게 맘에 안 드는 눈치인지 지난번에 자신의 집으로 들어오란 말을 꺼냈다. 물론 그곳엔 이 남자의 부인과 아이들이 있음에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침묵에 짜증이 치밀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행동이 맘에 안 드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올려다본다. "그럼...." 가방을 들고 출구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다시 그대로 앉는다. 문을 열고 나오자 눈앞에 보이는 남자의 고급 승용차... "빌어먹을!! 이게 무슨 돈지랄이야?!!" 자동차 타이어를 거세게 발로 차버리고 돌아섰다. "귀찮게 하지 말란 말이다...." 어머니는 내가 16살 때 돌아가셨다. '그 일'이 있은 지 일 년 후에..... 그리고 저 남자는 '그 일'이 생기자마자 어머니와 이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저 남자가 찾아와 내게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단박에 거절해 버렸다. 물론 내가 돈이라면 눈이 뒤집히고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돈이라지만 이 남자의 돈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받지 않을 거다. 쓸데없는 오기나 자존심 따위가 아니다.... 저 남자에게 도움 받을 정도로 난 약하지 않으니까....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허름한 집으로 들어서 가방을 내팽개쳐 버리고 어두운 방안에 혼자 누웠다. 내 나이 벌써 열 여덟....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신문, 우유배달에 공사판 노가다, 편의점 알바 등등.... 나이가 어려 할 수 있는 일은 꽤나 한정되어 있었지만 중학교 이후 쑥쑥 자란 키 덕분에 내 나이 또래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훨씬 폭넓게 일을 해 지금까지 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이제 나이도 열 여덟 살이나 됐으니 아르바이트도 맘껏 할 수 있을 테고..... 앞으로도 혼자 잘 해나갈 수 있겠지..... 고등학교 학비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으로 계속 다니면 되는 거고.... 일단은 생활비하고 나중에 대학등록금 정도는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벌어둘 셈이다. 대학은.... 우리나라 최고 대학이 목표.... 내 꿈은 물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 거다. 지금으로선....의사나....변호사정도.... 그러고 보니 내일은 학교에서 소풍을 간다고 했다. '빌어먹을.....고등학교 2학년이나 되선 무슨....애새끼도 아니고....기름 값이 아깝군....' 속으로 궁시렁대며 눈을 감아버렸다...... . . . . 숨이....거칠어진다.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울릴 정도로 조용하기만 한데.... 귓가에선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고 파고든다. 몸은 이미 굳어버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다. 아직 5월이라 선선할 텐 데도 몸에서는 끊임없이 식은땀이 베어 나온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싶지만 목구멍을 막아버린 것처럼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다. '또...냐.....' 등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섬뜩한 느낌이 몸을 타고 오르고 귓가에 차가운.... 너무 차가워서 데일 것 같은 목소리가 파고든다. 『이건....루베라....다......』 억눌린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이미 몸은 땀에 젖어 축축하고 미친 듯이 심장이 뛰어댄다. "뭐야....도대체....!!" '그 일'이 있은 후부터 계속해서 날 따라 다니는 악몽.... 깨어보면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 뭔가 고통스러운..... 알고싶지 않은 기억....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하지만 떠올려야 할 것만 같은....... 15살 때 난 1년 반 동안 행방불명이 됐었다. 그리고 돌아왔을 땐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기절해서 바닥에 쓰러져있던 날 발견한 경찰에 의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긴 했지만.... 당시 떠들썩했던 언론 보도에 의하면 내가 발견될 당시 엄청 괴상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던 듯 하다. 어머니는 기분 나쁘다며 경찰에 떠넘기고 온 모양이지만 난 발견된 이후 5일 내내 자고있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은 돈을 노리지 않은 납치정도로 일을 처리해 버렸고 1년이 넘도록 시끄러웠던 그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었다. 그리고 난 그날 이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다. 납치정도로 사건이 처리되었지만 뒤에선 변태 성욕자에 의한 감금이란 소문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발견됐을 당시 몸상태와 화려한 옷만 보고 사람들은 예쁘장한 아이를 납치해 화려한 인형처럼 꾸며놓고 성적으로 가지고 놀았을 거라 멋대로 생각을 굴려댔다. 어쩌면 그게 사실일 지도 모른다. 당사자인 내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니 눈으로만 보이는 것이 사실일 지도....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젠장, 늦었다!!" -2-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조그만 사무실로 들어가 신문을 배급받아 집집마다 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일을 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엔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꽤나 맘에 드는 일 중 하나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뛰어다니면 하루종일 말끔한 정신으로 기분을 가라앉힐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좋았다. 신문을 다 돌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스쳐 가는 공원엔 허름한 노인이 거적을 깔아놓고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이 공원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점을 보는 사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스쳐 지나려는 찰라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노인이 입을 열었다. "넌, 이 세상과 접점이 없구나...." '응?' 돌아보니 노인이 내 얼굴을 유심히 훑어보고 있다. '뭐야....?'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이 세상하고는 연이 없어....곧 죽을 거다. 이번엔 다신 돌아올 수 없어....." "에?" "곧 이 세상에서 사라질 거다...." '이 영감탱이가 미쳤나....아침부터 재수 없게....' "전 돈같은 거 없으니 쓸데없는 소리 마세요! 그리고 저보단 할아버지가 더 일찍 돌아가실 거 같은데요?" "하하...그럴지도...." "귀하게 타고났는데....고생 좀 하겠구만...쯧..." 확실히 노망이 든 게 틀림없다. 곧 죽는다면서 귀하게 타고나면 뭐하는가.... 지금의 내 꼴로는 귀하기는커녕 입안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그 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와 대충 좁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교복을 챙겨 입었다. 처음 교복을 샀을 땐 꽤 큰 사이즈로 샀는데 벌써 내 키는 180.... 길이가 딱 맞는 바지를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거울을 보니 태어날 때부터 색이 짙어 푸른빛을 띌 정도로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이 목덜미까지 자라있다. 돈이 아까워서 아직까지 자르진 않았지만 곧 잘라야 할 듯.... 숱이 많아 얼굴 주위로 확 퍼지는 머리카락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시선을 내리니 거울 반대편에는 반짝이는 까만 눈과 곧은 코, 선이 예쁜 입술, 잡티 하나 없어 여자들도 부러워하는 하얀 피부가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자꾸 흩트러지려는 표정을 바로잡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무표정을 만들어 보였다. 내 표정은 꽤나 풍부하지만 그게 드러나는 것은 이렇게 혼자 있을 때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떤 시선으로 보고있는지 알기에 학교에서나 집밖에 나갈 때면 이렇게 표정 없는 가면을 꼭 눌러쓴다. 이것이 내게 남은 마지막 방어수단일 지도..... 대충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학교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소풍.....이었나....' 교문을 들어서니 벌써부터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남녀공학으로 꽤 괜찮은 학교지만..... 문제는 학교에 있는 게 아니라 그 학교를 다니는 녀석들이 꽤나 시끄럽다는데 있다. "어머, 재가 그 하류라는 애 맞아?" "맞다니까!! 우리오빠가 같은 중학교 다녔는데 확실해!!" "생긴 건 진짜 잘났다!!" "그러니까 변태한테 납치까지 당하지!" "잘생기긴 했는데 성격이 끝내준대!! 아무도 접근 못한다고 하던데? 그리고 옛날에 그런 일도 있었는데....누가 옆에 있고 싶겠어?!!" '이것들아, 다 들린단 말이다!!' 인상을 벅벅 쓰고 노려보자 기겁을 하고 달아난다. 처음 이 학교에 들어왔을 땐 이지매다 집단구타다 꽤나 불려 다녔었지만 한 달도 안돼 내 더러운 성격과 주먹에 다 떨어져 나가 지금은 아무도 내게 접근하지 않는다. 결국 완전한 아웃사이더.... 같은 반 녀석들이 하나둘씩 모여 학교에서 대절한 버스에 올라타자 한 두 대씩 출발하기 시작했다. 항상 그렇지만 내 옆자리는 언제나 빈자리... 그게 차라리 맘 편하지만... 목적지는 빌어먹게도 요 몇 일간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다 뭐다 시끄러웠던 지역이었는데 학교측에서는 고심한 끝에 행선지를 끝내 바꾸지 않은 모양이다. 뭐....요즘엔 꽤 조용하니... 이것저것 게임을 한답시고 소란스런 버스 안에서 나만이 유리되어 멈춰있는 것만 같다. 어쩐지..... 나만이 이 곳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자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떠들썩하다. 버스에서 내리자 도회지에서는 볼 수 없는 탁 트인 공간..... 얼마 전 폭우 탓인지 계곡에는 물이 불어 거세게 흘러가고 있었고 웅장한 산과 맑은 공기가 기분을 들뜨게 했다. 출발이 약간 늦어져 지금은 거의 점심때가 다 되어있었다. 교사의 지시에 따라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먹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녀석들과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오랜만에 와보는 산도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 어렸을 적엔 동네에 있던 뒷산에도 꽤나 자주 가곤 했는데..... 이것저것 잡다한 생각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몇 초 사이에 산을 울리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 보니 교사고 학생이고 할 것 없이 한 곳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급하게 달려가 보니 폭우로 지면이 깍여 낭떠러지처럼 되어버린 곳에 반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녀석이 겨우 매달려 있었다. 분명 주위에 사람들이 혹시라도 떨어질까 쇠로 된 펜스까지 쳐 두었는데.... '멍청하긴...!!' 아래는 물이 흐르고 있지만 수량도 많고 유속도 빨라 떨어지면 중상...재수 없으면 사망이다. 겁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하는 녀석을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교사들은 발을 구르고 녀석의 친구였던 것들은 멀거니 바라보기만 한다. 녀석의 손이 점점 미끄러지기 시작하고 비명이 울리자 나도 모르게 펜스를 넘어 한 손으로 움켜쥐고 손을 뻗었다. '젠장, 내가 왜.....!!!' 다급했던지 녀석이 얼굴도 보지 않고 내 손을 부여잡고 매달려 왔다. 녀석의 무게가 내게 다 실리자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프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숨을 가다듬은 후 머리 털 나고 처음으로 있는 힘껏 팔에 힘을 줬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나마 녀석의 체격이 작다는 것 정도... 아슬아슬 걸쳐있는 다리와 펜스를 붙들고 있는 팔에 힘을 실어 녀석을 겨우 끌어올리고 펜스를 붙들게 했다. 그 때까지도 주위에선 도움을 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욕설을 내뱉으며 펜스를 넘으려는 순간 땀에 젖어버린 손이 미끄러지고 몸이 아래로 추락해 갔다. 귓가에선 다시 비명이 울리기 시작하고 파랗기만 했던 하늘이 어쩐지 기이하게 일그러져 보인다. '젠장 꽤 아프겠군....돈도 안 되는 짓을.....여기서 살아나면 치료비 왕창 받아 낼 테다....!!' 눈을 꼭 감아버렸다. -3- "으윽...." 눈을 떠보니 전혀 낯선 장소..... "도대체....여긴 어디야...." 눈을 떠보니 주위엔 커다란 강이 흐르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이한 나무들이 가득하다. "어떻게....된 거지.....? 분명 그때....." 높은 곳에서 떨어져 물살이 쌘 계곡으로 떨어졌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기 시작한다. "분명 이렇게 생긴 산은 아니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다 천천히 숲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동안 숲 속을 헤맨 결과 내린 결론은 여긴....... 절대 우리 나라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지구가 아니다. 증거로 우선 난 백과사전에서도 저렇게 큰 버섯은 본 적이 없다. 자루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짧고 갓은 굉장히 커서 거의 바닥에 갓이 푹 퍼진 모습이 버섯이라고 판단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뭐....뭐야? 이 왕버섯은.....먹을 수 있는 건가....?" 식용으로 쓰면 한 달은 먹을 수 있을 거 같은 버섯에 가까이 다가가 발로 툭툭 건드려 보자 갈색가루가 조금씩 날린다. 여기저기 둘러봐도 이상한 것 투성이다. 발 밑에 기어다니는 버러지들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뿐이다. '헉, 저건 뭔데 저렇게 큰 거야....?!!' 내 쪽으로 스물스물 기어오는 것을 보니 엄청나게 큰 지네.... 온 몸에 소름이 끼쳐 뒷걸음질치는데 빌어먹을 지네는 내가 먹이라도 되는 듯 수 백 개는 돼 보이는 다리들을 열심히 움직여 내 쪽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사실 저 지네가 크긴 엄청 커도 내가 발로 마구 밟아버리면 능히 터쳐 죽일 수 있는 크기였지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돈이고 제일 싫어하는 게 추위 다음으로 다리 많은 곤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은 버둥거리며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저리 꺼지지 못해?!! 에비!! 저리가!!" 이제는 발로 흙까지 뿌려가며 몰아대는데도 도통 방향을 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최후의 방법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짱돌을 집어들어 던지려던 찰라 은빛이 눈앞에서 번쩍하더니 순식간에 까만 지네가 사라져버렸다. 놀라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니 은빛 깃털을 지닌 커다란 새가 거대한 지네를 단번에 채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뭐....뭐야....? 저건....." 한참을 바라보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짱돌을 한 손에 움켜쥔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손에 꼭 쥔 돌맹이를 저 멀리 던져버리고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젠장....!!' 하필이면 주저앉은 곳이 그 넓적한 버섯 위...... 교복바지에 갈색 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이런 젠장, 이게 뭐야?!!!!" 홧김에 버섯을 노려보며 발로 거세게 뻥 차버리자..... "우엑!! 콜록콜록....켁!!" 갈색 가루가 한 포대는 쏟아져 나와 온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겨우 그 자리를 빠져 나와 보니 온 몸이 갈색이 돼있었다. "젠장!! 저 버섯 도대체 뭐야?!! 제길!!!!" 잔뜩 투덜거리며 온몸에 들러붙은 갈색 가루를 털어 내고 있는데..... '어라?' 몸이 이상하게 굳어오기 시작하고 슬금슬금 잠이 오기 시작한다. '윽, 설마....독...버섯....?' 눈앞에서 희미해져 가는 버섯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며 속으로 줄창 욕을 해대다 그 자리에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 어쩐지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손발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안가 깨달은 것은 손과 발이 구속되어 있고 땅바닥이 시야에서 흔들리는 것을 보니 누군가의 어깨에 걸쳐져 있다는 것..... 내 덩치도 만만치 않음에도 깃털같이 가벼운 듯 내 몸을 들쳐 매고 걷는 걸 보니 상당한 거구.... 그리고 주위엔 삐쩍 마른 사내 하나와 그에 대조해 엄청 뚱뚱해 보이는 사내 하나, 마지막으로 중키의 사내....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는지 불안한 표정으로 이곳 저곳을 살피며 발걸음 소리도 죽이고 속삭이기 시작한다. "킥, 오늘은 꽤 운이 좋은데...? 레테의 강에 들르길 잘했어....그런 곳에 이런 녀석이 쓰러져 있을 줄이야...." '레테.....의 강......?' "머리카락 색은 염색한 건가? 까만 색은 금기된 색일 텐데.... 왜 일부러 까만 색으로 염색을 한 거야? 설마 미친놈을 끌고 온 건 아니겠지?" "글쎄....다른 지방에서 온 게 아닐까? 옷도 상당히 이상하고....." "멍청한 놈!! 내가 지금까지 서른 다섯 해를 살면서 사람이 까만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는 건 보지도 듣지도 못했어.... 어떻게 사람 머리카락이 이렇게 시커멀 수 있다는 거야? 짙은 갈색이나 회색은 있지만 까만 색은 없다고...분명 염색이겠지...." "큭, 까만색으로 머릴 염색하는 건 금기잖아? 황제가 친히 내린 칙명이라구....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목이 잘려!! 팔아 넘기기 전에 다른 색으로 염색해 버리자!!" "이 정도면 꽤 많이 받을 수 있겠지?" "키가 좀 큰 거 아냐?" "큭, 그래도 오늘 빼돌리려던 녀석보다 훨씬 나은데?" "그나저나 위험한 거 아냐? 빨리 도착하려고 황제의 숲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 미치광이 황제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바로 사형이라고!! 황제의 숲에 들어갔다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할 수 없잖아...이 꼬마녀석을 그 귀족한테 팔아 넘기면 평생 먹고 살 돈이 들어오니까...." "이 녀석도 운이 없군....그 호색한한테 팔리다니...킥킥!!" "늦기 전에 서두르자!!" 주위는 까맣기만 한 어둠..... 콧속으로 차가운 공기가 파고들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거대한 나무들이 스쳐지나 간다. 정신이 점차 맑아지자 머리가 다시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상황을 종합해 보면......이 자식들이 그 레테의 강인가 뭔가에서 버섯 독을 맞고 쓰러져있던 날 주워서 지금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내 몸둥아릴 팔아먹겠단 소리......? 이런 빌어먹을.....!!!' 상황판단을 마치자마자 사내의 어깨 위에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이 씹, 내려놔!!! 이 자식들!!"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난리를 치자 옆에서 뛰던 세 명이 놀란 듯 멈춰서고 날 들쳐 매고 있는 녀석도 우뚝 멈춰 날 내려놓더니 재빨리 솥뚜껑같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닥쳐!! 죽고싶지 않으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소란을 떠는 거야?!!" 도끼눈을 뜨고 날 죽일 듯 노려보자 더욱 악에 받쳐 입을 막고 있는 손을 꽉 물어버렸다. "악!!" 손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미친 듯이 난리를 피워댔다!! "이 개자식들!! 이거 당장 풀지 못해?!! 다 죽여버릴 줄 알아!!!" 얼굴이 더욱 험악해지더니 입에 재갈을 물리기 시작한다. 묶여있는 발을 들어올려 앞에 보이는 녀석의 다리를 힘껏 걷어차자 신음을 흘리며 떨어져 나간다. "윽, 젠장!! 왜 이렇게 힘이 쌔?" "꼬마야, 여기서 반항하면 죽여버린다!!!" '꼬마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나보다 작은 주제에 이 뚱땡이가 어디서...!!' 손과 발이 묶이고 입까지 막힌 채 한참동안 버둥대며 녀석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자 말라깽이 녀석이 기분 나쁜 미소를 흘리며 내게 다가오다 멈칫한다. "가만....!! 이...녀석......굉장해!! 눈도 검은 색이잖아?!!" "뭐? 그럴 리가?!!" '이 자식들....그러고 보니 눈이랑 머리색이 다 특이하잖아? 옷도 이상해.....' 주위를 둘러싼 녀석들을 그제야 자세히 살펴보니 갈색, 회색, 적갈색 머리카락에 눈동자 색도 제 각각이다. 그런 주제에 날 기이한 동물이라도 보는 듯 기분 나쁜 시선을 던져와 한층 열이 올라 몸부림을 쳐대자 갑자기 눈빛을 바꾸고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큭, 이 정도면 꽤 비싼 가격이 아니라 황제한테도 팔 수 있겠어...." "기운이 넘치는데? 이대론 데려가기 힘들겠어....때리면 물건에 흠집이 생길 테고...어때?" 음흉한 미소를 걸고 나머지 녀석들을 바라보자 알겠다는 듯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다. "하지만....여길 빨리 벗어나지 않으면...." "이제 곧이잖아? 이런 밤중엔 숲을 지키는 병사들도 없을 테고...이렇게 날뛰는 녀석을 끌고 가는 게 더 큰일이야!" "큭, 사내새끼니 표시도 안 날 테고 팔아치우기 전에 먼저 길을 내 놓는 것도 좋겠지....?"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폼이 상당히 위험해 보인다. '뭐...뭐야?!!' 땅바닥에 바로 쓰러뜨리더니 손이 묶여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 몸 위로 올라타 거칠게 교복을 잡아뜯기 시작한다. '이....이 개새끼, 내 교복 값 물어내!!!!' 단추가 확 떨어져 나가고 하얀 피부가 드러나자 징그러운 손으로 몸을 쓸어댄다. '이 변태새끼, 돈 내고 만지란 말이다!!!!' 이를 부득부득 갈며 몸을 비틀어 빠져나가려 하지만 네 명이 달려들어 누르는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 새끼들 도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 "상처는 내지 말고 아래 맛만 봐!!" '뭐?' 옆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머리 속을 울려댄다. 몸 위에 올라탄 놈의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교복바지에 손을 뻗자 그제야 몸이 흠칫 굳어버렸다. -4- 이 자식들, 사내새낄 상대로 욕정을 풀 생각이다. 그 동안 좁은 골방에서 혼자 아르바이트와 공부에만 매달려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영화는커녕 TV도 본 적이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성적인 부분에선 완전 백치였다고 해도 좋을 만큼 여자의 벗은 몸도 본 적 없고 자위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실종됐을 당시엔 아무리 변태성욕자에게 당했다고 해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고 남자들끼리 하는 건 물론 여자랑 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구역질나는 놈들이 내 몸을 가지고 뭘 하려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젠장, 정말.....소문대로 변태에게 당했다는 게 완전히 사실화 돼 버리겠군.....그것도 공짜로....' 내 허벅지를 깔고 앉아 버클을 풀지 못하는지 이리저리 잡아당기는 녀석의 사타구니에서 뭔가 딱딱한 게 허벅지를 찔러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이 빳빳하게 서서 옷을 사이에 두고 선명하게 느껴지자 구역질이 날 것 같다. 속이 울렁거리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도 없다. 주위에서 내 몸을 붙들고 있는 놈들이 여기저기 만지고 쓸어대는 느낌에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어 보지만 온몸이 구속당한 상태에선 미미한 반항조차 되지 않는다. 버클을 망가뜨린 후에야 바지를 밑으로 끌어내리고 징그럽게 허벅지를 쓸어댄다. 벗은 몸에 찬바람이 파고들자 추위를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는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기 시작한다. 내 몸에 올라탄 녀석이 마지막 남은 속옷마저 벗겨버리고 정신없이 자신의 하의를 끌어내리기 시작하자 눈을 감아버렸다. 순간.... 끔찍한 비명이 귓속을 파고들어 눈을 번쩍 뜨니 내 몸을 붙들고 있던 녀석들은 몸체만 남은 채 깨끗하게 머리가 잘려져 피를 뿜어내고 있었고 내 몸에 올라탄 녀석이 공포에 떨며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이미 시체가 되어 내 몸을 붙들고 있는 녀석들의 몸체를 미친 듯 발로 걷어차 떨쳐버리고 몸을 겨우 일으키자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뜨거운 피가 내 얼굴 위에 뿌려졌다. 태어나 처음 보는 끔찍한 광경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크게 뜬 채 앞을 바라보자 날카로운 검에 묻은 피를 떨궈내며 새카만 흑마에 앉아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을 바라본 순간 숨을 멈춰버렸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내 눈에 박혀 들어온다. 최상품 루비의 색이라는 피죤블러드.... 그에 못지 않게 붉은 피를 뒤집어 쓴 것처럼 헝클어진 붉디붉은 머리카락이 공포를 몰고 왔다. 눈이 마주친 그 몇 초 사이에 그의 눈에서 죽음을 봤다. 죽음의 신 하데스가 저승에서 올라온 것 같은 모습에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놀란 듯 잠깐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핏빛 눈동자가 약간이지만 옅어지기 시작한다. 물건이라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 거 같은 섬세하고 하얀 손을 뻗어오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후들거리는 몸을 겨우 가눠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그대로 검을 내 심장에 꽂아 넣을 것만 같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악몽이외의 공포에 휩싸여 시간이 멈춰버린 듯 그렇게 굳어있었다. 벌거벗은 몸에 차가운 한기가 파고들기 시작한다. 완전히 알몸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놀란 듯 차가운 눈동자가 내 몸을 훑어 가는 걸 공포에 질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내가 천천히 사나워 보이는 흑마에서 내려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 찰나의 시간이 억겁과도 같다. 이미 주위는 피바다를 방불케 할 정도의 참극..... 지독한 피비린내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을 파고든다. 묶인 채 뒤로 물러나자 아직 식지도 않은 질퍽한 피가 몸에 닿아오고 등뒤로 묶인 손에 차가운 시체가 닿자 놀라 뒤를 돌아본 순간 다가온 사내가 내 몸을 재빨리 뒤집고 짓눌러버렸다. 방금 전과 별다를 것 없는 상황에 허탈함보다는 기가 막혀 온다. 결국엔 이 곳에서 당할 팔자인가 보다. 포기해 버리고 저항조차 하지 않자 날 뒤집고 내 허리에 올라탄 사내가 차가운 손가락으로 왼쪽 등뼈가 있는 부분을 더듬듯 만져온다. 마치 뭔가를 찾고 있는 듯.... 그리고 드디어 찾아냈는지 그림 그리듯 한 부분을 문질러대 숨을 멈춰버렸다. 녀석이 만지고 있는 곳엔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문신이...... 행방불명되었을 때 새겨져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림과 같은 정교한 붉은 각인이 새겨져 있는 곳이었다.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을 떨며 벗어나려 하자 갑자기 등뒤에서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큭, 드디어.....찾았군...."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패닉상태에 빠져 정신없는 와중에 몸이 다시 확 뒤집히더니 사내의 붉은 눈동자가 내 눈에 박혀들어 오고..... 재갈이 풀리자마자...... 목소리도 없이 제멋대로 입술이 움직여 어떤 단어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티.....폰....?' 눈앞이 흐려지고 의식이 희미해져 간다. '내가.....지금....무슨 소릴.....' 갑자기 위에서 무게가 사라지고 몸이 들리자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5- 아침인 듯 밝은 햇살이 눈꺼풀 위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눈을 번쩍 뜨자 본 적 없는 장소.... 주위를 둘러보고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한 방안엔 듣도 보도 못한 보석들과 질 좋은 양탄자 금 세공품, 나무로 만든 고상한 가구들이 잔뜩 널려있었다..... '헉, 저게 도대체 얼마짜리야....?' 방안은 사치의 결정체라도 되듯 고급 보석과 가구, 커튼, 양탄자.... 한 개만 가져다 팔아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거 같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만 해도 나 같은 덩치가 8명은 굴러도 남을 것 같이 넓었고 침대를 장식하고 있는 고급 목재엔 본 적도 없는 보석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기저기 둘러보다 은은한 향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금색 빛을 내는 호박을 태워 향을 내고 있었다. '돈이 썩어나나 보군....아깝게 보석을 태우고 지랄야.....' 천천히 일어나니 몸 이곳저곳이 쑤셔댄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어제.....' 한참을 생각하다 퍼뜩 그 붉기만 한 사내가 뇌리를 스치자 몸을 벌떡 일으켜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며 문을 찾기 시작했다. 어서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든다. 한시도 지체해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이..... 심장이 두근대며 불안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침대 위에서 내려서니 잠옷처럼 보이는 하얀색의 화려한 옷이 입혀져 있다. 어제 밤만 해도 피에 절어있던 몸은 깨끗이 닦여져 은은한 향기까지 나는 듯 하고..... 팔목과 손목엔 어제 그 빌어먹을 자식들이 얼마나 쌔게 묶어댔나 파랗게 멍이 들어 있다. 그것을 제외하곤 몸에 큰 상처가 없는 듯해서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고 넓기만 한 방안을 한참 걸은 후에야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젠장!!!' 그런데 문 바깥쪽엔 누군가 지키고 서 있는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놀라서 재빨리 몸을 돌려 창 쪽으로 가보니 2층..... 그렇게 낮진 않지만 벽을 타고 내려가면 내려가지 못할 높이도 아니다.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둘러보니 엄청나게 거대한 건물이었다. 창문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시야에 건물 전체의 모습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방대했다. 입을 벌리고 둘러보다 정신을 차리고 돌로 만들어진 건물의 거친 벽면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벽에 착 달라붙어 한참동안 심호흡을 하다 천천히 아내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쉽지 않는 벽타기에 팔이 떨려오고 벽면을 필사적으로 잡고있는 손가락에선 이미 피가 베어 나온다. 조금만 미끄러져도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발한발 내딛는데 거친 벽면에 발이 쓸려 피가 나는지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입술을 꽉 깨물고 겨우 지면과 3미터 가량 떨어진 곳까지 내려왔을 때 순간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 벽에서 미끄러져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윽, 젠장......더럽게 아프네....." 한참동안 그렇게 누워있다. 몸을 비틀거리며 겨우 일어섰다. 몸을 살펴보니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있고 추운 새벽 공기에도 긴장에 흐른 땀이 온 몸을 적시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새벽이라서 그런지 꽤 고요하다. 가끔씩 멀리서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순찰이라도 도는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걸 보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앞쪽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정원이 있고 그 주위엔 숲이 둘러싸고 있다. 숲 쪽으로 들어가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 같다. 몸을 숙이고 절뚝거리며 숲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여기가 어디인지 조차....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알 수가 없다..... 이 곳에서 지금까지 본 인간들은 나와는 확연히 달랐다. 듣도보도 못한 머리색과 눈동자..... 그리고 지금 여기만 해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무들과 꽃.... 그러고 보니 도시에 살면서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던 탁탁한 공기조차 느껴지지 않고 하늘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해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 공해라는 단어가 있을 거 같지도 않은.....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내가 다른 세상에 떨어진 건지.... 아니면 지금까지 살던 삭막한 세상이 모두 꿈이었는지.... '설마 여기가 원래 내가 있던 곳인가? 내 머리가 돌아버린 건가.....? 아니, 그럴 리가...!! 내가 살고 있던 세상엔 지금까지 내가 일해서 번 돈이 고스란히 은행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데!! 그 돈을 두고 내가 미칠 리는 없고.....' 아무리 그 때 물살에 휩쓸렸다고 해도 바다를 타고 외국까지 왔을 리는 만무하다. '뭐....그럼 비행기 값도 없이 해외여행을 한 거니 봉잡은 거지만....이런 끔찍한 여행은 사양이라구....' 태평한 생각을 해대며 겨우 도착한 숲에 발을 들여놓으려던 순간 퍼뜩 스치는 생각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젠장, 그 방에 있던 보석 하나만 가져왔어도 평생 먹고 살 수 있었는데.....!!' 너무 다급한 나머지 돈버러지인 나조차도 그걸 생각지 못하고 방을 그냥 나와버린 게 실수였다. "빌어먹을...!!" 눈앞에 어른거리는 돈 다발을 겨우 머리 속에서 털어 버리고 빠르게 숲 속을 걷기 시작했다. "쳇, 그러고 보니 그 영감탱이 말이 맞긴 맞았나보군....죽진 않은 거 같지만..... 설마...... 여기가 천국? 아니면...... 지옥.....인가?!!" -6- 숲을 걸으며 어디로 갈 지 한참 생각하다 날 팔아먹으려 했던 녀석들이 말하던 레테의 강에 다시 돌아가기로 맘을 굳혔다. 이렇게 되면 처음 발견됐던 장소로 가는 게 정석이겠지..... 내가 다른 세계로 떨어져 버린 거라면 돌아갈 방법이 그곳에 있을 지도 모른다. 어차피 이쪽 세계든 그쪽 세계든 사라져버린 날 걱정해줄 인간은 어디에도 없을 테지만.... 우선은 저쪽 세계엔 사랑하는 내 돈이 있으니까..... 레테의 강이란 게 어느 곳에 있는진 지금으로선 알 수 없지만 이 숲을 벗어나 마을이라던가 사람이 나오면 알 수 있겠지...... 그렇게 한참을 걷고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말발굽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분명 뒤에는 내가 도망쳐 나온 거대한 건물이 있는 곳...... 불길한 느낌에 숨이 목에 차오를 때까지 달렸다. 어제부터 한끼도 먹지 않아서인지 허기가 지는 걸 겨우 억누르고 정신없이 달리자 근처에 늪이라도 있는지 질척한 진흙이 발에 밟히기 시작한다. 맨발로 흙탕물 위를 뛰어가자 하얀 옷을 갈색 흙탕물이 적시기 시작하고 순간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는 통에 얼굴이고 머리카락이고 할 것 없이 미끌거리는 흙탕물로 범벅이 돼 버렸다. 점점 가까워지는 말굽소리에 얼른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다 말이 들어설 수 없는 수풀로 몸을 날렸다. 그런데..... '제길!!!!!!!' 경사진 곳이었는지 몸이 구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계속 구르다 몸이 멈춘 순간 그대로 의식을 놓아버렸다. . . . 한 낮인지 따가운 햇살이 눈꺼풀을 뚫고 새어 들어온다. 눈을 뜨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완 천양지차..... 따가운 햇살과는 달리 차가운 공기가 몸 속을 파고들어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까지 누워있었던 곳은 한 눈에 봐도 축축하고 차가운 감옥..... "여긴 또 뭐야....." 감옥 안을 둘러보니 시체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고 조그마한 창으로 따가운 햇살이 흘러들어 온다.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겨우 차린 후 몸을 훑어보니.... "젠장!!" 온 몸이 말이 아니다. 머리카락과 얼굴은 진흙이 말라붙어 원래 피부색과 머리카락 색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고 몸 여기저기가 타박상으로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여기저기 살펴보는데 감옥 문이 열리고 간수인 듯 보이는 병사 둘이 들어선다. 왠지 기분 나쁜 얼굴들..... "깼나? 꼬마...자, 이거나 먹어둬, 킥!" '뭐야? 이 뚱땡인....?' 미간을 찌푸리며 내미는 그릇을 보니 거친 빵과 고기 몇 조각.... '갑자기 왠 공짜 밥....?' 의아한 시선으로 그 녀석들을 바라보니 묻지도 않은 말을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꼬마야, 미치려면 곱게 미쳐야지...도대체 왜 황제의 숲에서 그 꼴을 하고 쓰러져 있었던 거냐?!!" '내가 아냐? 아, 그러고 보니 그 때 쫓아온 것들이 이것들인가?!! 이 빌어먹을 자식들!!!' "큭, 이제 너도 사형이니까 마지막 만찬이나 즐기라고!! 그거 다 먹으면 교수형이다" '뭐? 사형......이라니....?' "우리한테 발견된 걸 감사해. 황제에게 잡혔으면 하룻밤 노리개로 쓰이고 바로 사지가 찢겨 죽었을 테니...큭큭..." '대체.......무슨 소리야....' "우리 맘대로 죽여도 될까?" "어차피 죽을 거....귀찮게 황제폐하께 보고할 게 뭐 있어? 그냥 빨리 죽여버리고 시체만 처리하면 아무도 모를 거야.... 지금까지 황제의 숲에서 발견된 녀석들 중 살아남은 녀석은 없으니까...." 녀석들이 지껄이는 섬뜩한 대화에 생전 처음으로 공짜 음식이 담긴 접시를 걷어 차버리고 뛰쳐나가려 하자 바로 목에 창을 들이대고 손목에 쇠고랑을 채운다. "이 자식!! 죽기 전에 먹을 거라도 먹이려고 친절하게 여기까지 와줬더니!!" "친절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이거 풀어!! 이 멍청한 것들아!!!!" "큭, 아무래도 무서워서 미친 것 같군....뭐, 먹을 게 싫다면 바로 사형이다. 끌고 가자!" "미치긴 누가 미쳤단 거야!!! 이 빌어먹을 자식들!! 이거 놓지 못해?!!"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자 입에 재갈을 물리고 까만 천으로 눈을 가린다. 버둥거려보지만 결국은 두 녀석에게 끌려가 밖으로 나온 듯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한참을 끌려간 곳에서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거친 밧줄이 목에 걸려버렸다. 별로 사는 것에 그리 애착은 없었지만 미치광이의 칼에 찔려서 죽는 것도 싫고 이렇게 목이 졸려 더럽게 죽는 것도 싫다. 그리고 얌전히 은행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죽는 건 더더욱 싫다..... 목에 걸린 밧줄을 뿌리치려고 머리를 휘저어보지만 어림도 없는 몸부림일 뿐..... "시작해"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녀석들 중 한 명의 발걸음이 서서히 가까워진다.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처럼..... '젠장, 이런 곳에서...내가 왜?!!' 억울한 마음에 소리라도 바락바락 지르고 싶지만 입까지 막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렇게 목이 졸리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가벼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흐응~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야?" "헉, 시온님!! 어떻게 이런 곳에!!" "뭐, 너희들이 꽤 재밌는 일을 벌이는 것 같아서 말야...." "그....그게....." "말해!" "예....그게...저....이 녀석이 오늘 아침 황제의 숲에 쓰러져 있길래 끌고 와서 사형을....." "황제폐하껜 당연히 보고를 드린 거겠지?" "헉....그...그게....아직...." "너희들...그 녀석 끌고 따라와!" "예..." 굉장히 당황한 목소리로 얼른 내 목에서 밧줄을 풀어 끌어내리더니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 발걸음이 멈춘 것은..... 보이지 않으니 나도 모르지.....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디론가 들어간 것 같긴 한데..... 어느 누구도 한 마디 꺼내지 않고 더운 날씨에도 살을 에이는 듯한 한기가 몸 속을 파고든다.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뭔가 덜컹거리며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지독히도 차갑고 낮은 목소리가 격하게 귓속을 파고든다. "왜....저 녀석이 여기 있는 거냐?!! 당장 내 방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을 불러들여!!" "예, 폐하!!" '폐....하....?' 당황한 듯 누군가 문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참기 힘든 침묵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어떻게 된 거냐...." "화....황제의 숲에서 쓰러져 있던 걸 발견해 지하감옥에 가두었다가...." "그래서......" 얼음같은 목소리에 어떠한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사형 당하기 직전에 제가 발견해 데리고 왔습니다. 폐하..." 아까 그 가벼운 목소리가 침묵이 견디기 힘든지 대신 대답을 한다. 갑자기 뭔가 내리쳐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소름 끼칠 정도로 섬뜩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끌고 가...." "처분은?" "혀와 손발을 잘라버리고 소금을 뿌려 지하감옥에 쳐 넣어라!" "예..." 끔찍한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고가고..... 아까 날 목매달려던 병사와 사형집행관인 듯 한 녀석들의 비명이 울리더니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도 모른 채 입과 눈이 가려져 멀거니 서있는데 곧이어 육중한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그럭거리며 쇠가 부딪치는 소리로 보아 아까 불러들였던 병사들인 듯....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지금까지 잔혹한 명령을 내리던 인물이 씹어 뱉듯 말하자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무....무슨 말씀이신지....." "방안에서 쥐새끼 한 마리도 내보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바....방안에선 아무도....." "닥쳐라!!" 날카로운 목소리가 넓은 공간에 울리고 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끌고 가서 죽지 않을 만큼 채찍질하고 지하감옥에 쳐 넣어 사흘간 굶겨라!!" "예...." 주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얼마 안가 다시 방안에는 싸늘한 정적이 내려앉는다. "이 아인 어떻게 할까요? 역시 황제의 숲에 들어갔으니 처형을....." "내 침소에 데려가 깨끗이 씻겨 상처를 치료하고 함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지켜라....." "예?.......예!"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다시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방밖으로 끌려나가 한참을 걸은 후에야 재갈과 눈을 가린 천이 풀렸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여러 번 깜박이자 보이는 곳은 거대한 방 안.... 자세히 살펴보니 아침에 탈출했던 곳..... '젠장!! 결국 새벽부터 혼자 생쑈를 다 하고 돌아다녔군....다시 돌아왔잖아?!!! 그럼.....아까 그 폐하라는 섬뜩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 피칠갑을 한 놈이었단 말야? 이런 빌어먹을! 씹!!!' 속으로 줄창 욕을 해대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손을 뻗어 내 턱을 살짝 쥐고 들어올린다. "얼굴은 꽤 괜찮은데.....안 됐군...." 그 가벼운 목소리의 녀석인 듯.... 자세히 보니 이 녀석도 어제 밤에 본 녀석과 같은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색 눈동자지만 어제 본 녀석의 눈동자가 순수한 루비빛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이 녀석은 색이 약간 옅은 가넷과도 같다. '이 새끼가 어따 갑자기 낯짝을 들이대?' 내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본다. "너......눈동자가 검은 색이야? 머리카락은 도대체....?" '그러는 니놈의 머리카락하구 눈동자 색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흙으로 범벅이 되어버린 내 머리카락을 찌푸린 눈으로 살펴보더니 내 머리로 손을 뻗어온다. 얼굴을 멋대로 훑어보고 돌려대는 녀석이 맘에 안 들어 아까 죽을 뻔할 때 살려준 것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손을 탁 쳐냈다. "뭘 봐? 볼려면 돈 내고 봐!! 내 눈동자가 까맣든 하얗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쥐뿔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그러는 넌 왜 그렇게 머리털이 뻘게? 거기 털도 빨가면 볼만하겠다....!!" 눈을 치켜 뜨고 말을 뱉어내자 놀라서 날 바라본다. "너....내가 대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아 씨, 몰라!! 누가 알고싶대? 빨랑 꺼지기나 해!! 별 게 다 들러붙고 지랄야!!" 고개를 휙 돌려버리자 킥킥대기 시작한다. "킥, 죽이긴 아까워....씻겨라!" "예...." 그제야 뒤를 바라보니 같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뒤에 시립해 있다가 재빨리 내게 다가온다. 가벼운 목소리의 녀석이 방을 나가자마자 날 방 한켠으로 끌고 들어가 문을 열더니 욕실인 듯 보이는 곳으로 밀어 넣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방 못지 않게 화려한 대리석으로 만든 욕실이 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온천이라도 나오는지 섬세한 조각상을 뚫고 더운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몇 십 명이 들어가도 남을 정도로 넓은, 옥으로 깎아 만든 탕 속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고개를 올려 위를 바라보니 뜨거운 물에 자욱해진 김이 여러 개로 난 창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고 여기저기 환하게 촛불이 켜져 있어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있다. 엄청 화려한 욕실을 놀란 눈으로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뭐....뭐야?!! 이것들이 어따 손을 대고 난리야?" 내게 들러붙어 옷을 벗기려 하는 여자들을 재빨리 가로막고 도끼눈을 뜨자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선다. "저흰 명령대로....." "닥쳐!! 부끄러운 줄도 모르냐?!!" 여자들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계속해서 노려보자 울상을 짓기 시작한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저희들 목이 달아납니다" 울먹이며 말하는 꼴이 거짓말같진 않다. '아까 그 냉혈한 같은 인간인가......그러고 보니 가벼운 목소리가 폐하라고 불렀던 거.....' 여자들의 흐느낌에 생각을 멈추고 정신을 차리자 난감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안절부절 못 하는 여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빌어먹을...!!" 내 몸을 살펴보니 말이 아니게 지저분하다. 저 여자들이 부탁하지 않아도 씻지 않으면 간질거리는 것 같아 미칠 것 같다. '하아....할 수 없지...' "나가있어. 나 혼자 씻을 테니까..." "하...하지만..." "아 씹, 내가 홀딱 벗고 목욕하는 게 그렇게 보고싶어?!! 관음증이야?!!" 인상을 찌푸리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린다. "빨리 나가기나 해!!" 버럭 소릴 지르자 흠칫 놀라 한 두 명씩 문을 열고 나가기 시작한다. -8- 여자들이 다 나가자마자 흙탕물에 절어버린 하얀 옷을 다 벗어 재끼고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탕에 몸을 담갔다. "씹, 그나저나 내 교복.....!! 그것들....그게 얼마짜린데 다 찢어놓고 뒈지고 지랄이야?!!" 한참 투덜거리다 눈을 감자 향료를 집어넣었는지 달콤한 향기가 몸 속으로 베어들 것처럼 진하게 후각을 자극한다. 온 몸에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 머리를 기대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문 밖에서 여자들이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가 도망이라도 갈까봐 문 밖에 바짝 붙어서있는 모양이다. "어쩜...저렇게 잘 생겼는데.....황제폐하께서 그렇게 잔혹하게 죽이시려는 걸까?" "하아....뭐, 황제의 숲에 들어갔다 살아남은 사람은 없으니...사지가 찢겨죽다니 너무 잔인해..." "그런데 어제 밤 늦게 황제폐하께서 저 사람을 안고 들어왔을 땐 그러실 것 같진 않던데? 황제의 숲에서 발견된 다른 사람들은 모두 황제폐하께서 침소에 들여 뭔가 하시고 바로 처형해 버리셨잖아? 뭐, 소문으론 황제폐하께서 한 번 안으시고 모두 처형하는 거라고 하지만 침실에서 재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구!!" "설마 저 사람도 오늘 밤 안고 처형시켜 버리는 걸까?" "모르는 소리하지마!! 돈 많은 귀족들이 그런 취미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폐하께선 황제의 숲에 들어간 사람들을 침소에 들여 안는 게 아니래" "그럼....왜?" "정확한 건 나도 몰라....하지만 안기 위해서 들이는 건 아니란 게 확실해" "참, 그나저나 어제 저녁 저 사람 몸 씻길 때 봤니? 까만 머리카락....? 물로 깨끗이 씻어냈는데도 까만색이었어!! 염색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방금 눈동자 색도 까만색이었잖아?!! 저렇게 생긴 사람은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올 수 있는 거지? 황제폐하께서 옥좌에 오르시자마자 까만색으로 염색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했을 땐 그런 색으로 염색하는 사람이 있나하고 생각했는데 너무 예쁘다!! 그러고보니 저 사람 황제의 숲에 들어간 것뿐만 아니라 까만 머리카락에 대한 벌도 받는 거 아닐까?" "불쌍해....하지만 염색한 게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아, 그런데 저 사람 등에 새겨진 각인 봤니?!! 붉은 색으로.....설마....." "설마....폐하께선 황제가 되신 후론 전쟁만 하셨는걸....그럴 기회가 없었잖아?" "그래도 폐하의 가슴에 새겨진 문자하고 비슷했던 거 같았는데.....잘못 본 건가.... 이번엔 다시 자세히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황제폐하의 가슴에 새겨진 건 루베라가 아니잖아!! 그건 대대로 황제가 될 분에게만 태어나자마자 새겨놓는 루펜타라구...." "하아....어제 밤 씻길 때 피부도 진짜 부드러웠는데....황제폐하보다 더 부드러웠어....." '이런 미친...!! 이것들아....다 들린다. 저것들이 어제 날 씻긴 거야? 그리고 사지가 찢겨죽어....? 내가? 나보고 일부러 들으란 소리야 뭐야? 그럼 저 수다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그 포악한 황제가 황제의 숲인가 나발인가에 들어간 녀석들을 잡아들인 후 뭔가를 하고 찢어 죽인단 소리?' "저 사람 저렇게 예쁜데 그렇게 죽다니....사지가 찢겨나가면...." '헉, 다시 들어도 섬뜩하군....씹, 차라리 목매다는 게 더 낳았잖아?!! 젠장....어쩌지?' 한참을 패닉상태에 빠져있다 결국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태평하게 더러워진 몸부터 닦아내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얇은 천과, 비누대신 사용하는지 좋은 향이 나는 가루가 놓여져 있다. 천에 가루를 묻혀 온 몸에 말라붙은 진흙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얼굴과 머리에 묻은 흙탕물을 깨끗이 씻어내고 탕에서 나오자..... 갈아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대리석으로 깎아 만든 선반 위에 깨끗하고 부드러운 천이 여러 개 놓여있어 대충 몸을 가리고 머리카락을 말렸다. 머리를 말리고 은으로 만든 거울을 보며 미치광이 왕이 금기 시 한다는 까만 머리카락을 흰색 천으로 꼼꼼하게 둘러쌌다. 그 숲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찢어 죽인다는데 또 다른 꼬투리를 잡혀 더 끔찍하게 죽긴 싫으니까.... 머리카락과 눈썹을 한 올도 드러나지 않게 철저하게 천으로 가린 후 거울을 보며 튀어나온 머리카락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빌어먹을!!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빨리 여기서 도망쳐야.....' 투덜대며 밖으로 나가자 여자들이 여전히 문 밖에 앉아 두런거리고 있다. "제길, 왜 옷은 없는 거야?" "저, 상처부터 치료를....." "됐어, 옷이나 내놔...." "하지만....!!" 눈을 치켜 뜨자 할 수 없다는 듯 작은 병을 건넨다. "뭐야?" "약입니다. 상처에 바르세요...." "알았어. 옷!!" 할 수 없이 작은 병을 받아들자 한 여자가 앞으로 나서더니 진주 빛의 매끄러운 천을 내민다. 받아든 옷을 펴보니 옷 여기저기가 진주로 장식되어 있고 눈처럼 흰 레이스까지 달린 엄청 화려해 보이는 옷.... '젠장, 이런걸 어떻게 입으라는 거야? 이 옷 하나 입고 탈출해서 진주라도 뜯어 팔면 몇 년은 먹고살겠군.... 그런데 설마 이 세계는 보석이 돌처럼 굴러다니나? 그럼, 가치가 없는 거 아냐.....?' 시녀인 듯 한 여자들의 옷을 살펴보니 고급 옷감인 듯 보이지만 보석장식은 없다. 여자들의 옷에서 눈을 돌려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다시 찌푸린 채 바라봤다. 옷은 상당히 가볍고 목과 팔만 끼워 넣으면 되는 단순한 모양으로 입기도 편해 보이지만.... 여자들이 입는 원피스 잠옷같기도 하고 사형수들이 입는 옷같기도 해 기분이 더러워지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옷을 몸에 꿰어 넣자 어느새 해가 저물었는지 여자들이 서둘러 물러나기 시작한다. -9- 육중한 문이 닫히고 주위를 둘러보니 넓은 방안엔 달랑 혼자..... 배가 고파 배속에서 요동을 치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은으로 된 접시에 싱싱한 과일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져 있다. 사과처럼 보이는 과일을 손에 쥐고 한입 베어 물자 달콤한 즙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과일을 우적우적 씹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제길, 이 곳에 잡혀서 쓸데없는 고생만 실컷 했잖아..!! 이거 진짜 피해보상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여기저기 널려있는 보석들과 금으로 만든 세공품들을 건드려보며 돌아다니다 발길이 멈춘 곳은 금으로 된 장식물 앞..... 팔뚝만한 크기에 사자같기도 하고 호랑이 같기도 한 동물상으로 눈 대신 초록색 에메랄드가 한 쌍 박여있다. '헉....이거 진짜 금이야? 순금인가...?'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끓어오르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동물상의 머리부분에 이빨을 박았다. 예상외로 이빨이 푹 들어가자 놀라서 동물상에서 떨어지니 머리부분에 큼지막하게 이빨자국이 남아있다. '으악!!! 이게 뭐야?!?! 어떡하지?!! 그 황제란 놈이 발견하면 또 찢어 죽이라고 하는 거 아냐?!!!' 혼자 허둥지둥 주위를 왔다갔다하고 있는데 커다란 문이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열리기 시작한다. '헉, 어떡해!!!!' 주위를 재빨리 둘러보자 눈에 보이는 작은 천 조각...... 금실로 정교하게 수가 놓여져 있는 천 조각을 집어들어 동물상의 머리를 재빨리 가리자마자 들어서는 인물은..... '저.....저 놈은.....' 어제......밤의 공포가 되살아나 듯 몸이 딱 굳어버렸다. '역시 저 놈이었나....' 화려한 문 앞에 서서 피를 뿌린 듯 새빨간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한 사내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섬세한 얼굴과 피부에 비해 온 몸은 단련된 듯 약간 마른 몸에 근육이 적당히 잡혀있고 나보다 한 6, 7센티는 큰 거 같다. 어제 밤에 봤을 때는 밤이라 붉은 눈과 머리카락만 볼 수 있었지만 지금 밝게 불이 켜진 곳에서 바라보니 신화 속에서 막 튀어나온 전쟁의 신과 같은 모습.... '스물 셋? 아니....스물 둘?' 그 정도로 꽤 젊어 보였고 윤기 나는 붉은 머리카락이 목덜미 근처까지 퍼져있었다. 그리고 눈동자는 상당히 위험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처음 봤을 때처럼 피죤블러드의 최상급 루비도 최하품으로 보이게 할 정도로 매혹적인 빛깔.... 수 백 명을 잔혹하게 베어 죽이고도 꿈쩍도 할 것 같지 않은 소름끼치는 무표정에도 처음으로 보는 매혹적인 눈동자 색과 상당히 잘생긴 얼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천천히 무거운 걸음으로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붉은 눈을 맞추고 서서히 팔을 들어올린다. 마치 가까이 오라는 듯한 행동에 금으로 된 동물상을 몸으로 가리던걸 그만두고 나도 모르게 천천히 다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 사내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가까이서 여기저기 생채기와 멍이 잔뜩 든 몸을 훑어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날 바라본다. "머리에 감은 건 뭐지...?" 지독히도 건조한 말투..... 분명 아까 눈을 가리고 있을 때 잔혹한 말을 쏟아내던 그 황제라는 녀석이 맞는가 보다. "하...하하....머리카락이 아직 마르지 않아서......." 말을 끝내자마자 단단하게 굳어있던 무표정이 순식간에 놀람으로 바뀌고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날 바라본다. "너.....말을....할 수 있는 건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내가 벙어리라도 된단 말야? 하긴 이 자식 앞에선 지금까지 말할 기회가 없었지만.....보통 그럼 벙어리로 생각하나?' "내가 벙어린 줄 알아?" 인상을 쓰고 바라보자 뭐가 맘에 안 드는지 살짝 얼굴을 굳힌다. '쳇, 뭐가 꼬운거냐? 내가 밤말해서 그런가.....? 어차피 죽일 거면서 까탈스럽긴....' 그냥 죽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속으로 궁시렁대자 다시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침엔 왜 도망치려 한 거지? 왜 아직까지 살아있었으면서 날 찾아오지 않은 거냐....?" "응....?"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하며 내 대답을 기다리듯 날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본다. '무슨...소릴 하는 거야?' "왜 대답이 없지?" "무슨 소리야?"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앞에 있는 녀석을 바라보자 탐색하듯 핏빛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뭐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진위를 판단하려는 듯 날 바라보는 사내에게 한껏 기분 나쁜 표정을 드러내 보이자 표정이 더욱 싸늘하게 굳어온다. "감히....날....잊었다는 거냐...." 이를 갈 듯 뱉어내더니 눈동자 속에 분노의 불꽃이 일기 시작한다. 심장이 갑자기 거칠게 뛰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대답해...." 손을 뻗어 아프게 어깨를 쥐어온다.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자꾸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에 쫓기 듯 날카롭게 소릴 질러댔다.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난 너 같은 미친놈 모른 단 말야!! 이거 놔!!" 비명을 지르듯 내뱉은 말에 붉은 눈이 잔혹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큭,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 발뺌할 셈인가...." 손을 뻗어 머리를 둘러싼 천을 벗겨내자 까만 머리카락이 확 퍼져 하얀 목 위로 쏟아져 내린다. "몸이 너무 많이 자라서 설마 했는데......말까지 할 줄 알다니....." "무슨 개소리야?!! 난 너같은 놈 모른다고 했잖아?!!!" "그럼 대체 이건 뭐란 말이냐....?!!" 갑자기 침대 위에 내 몸을 밀어 넣고 몸을 뒤집더니 꼼짝 못하게 올라타 몸을 내리누른다. "뭐....뭐야?!! 이게 무슨 짓이야!! 이 새끼, 비키지 못해?!!" 어제 밤과 같은 상황에 놀라 마구 몸을 버둥거리자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단검을 빼내 화려한 진주 빛 천을 목덜미에서부터 찢기 시작했다. "뭐....뭐 하는 짓이야?!!" 날카롭게 지르는 소리를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천을 두 조각으로 잘라내 확 벗겨버리자 침대 위에 진주장식이 떨어져 흩어진다. 사내의 밑에 깔려 버둥거리다 결국은 하얀 허벅지와 매끈한 엉덩이, 적당히 근육이 잡힌 등이 드러나고..... 귓가에 얼음같이 차가운 사내의 목소리가 파고든다. "이게 무슨 뜻인지 잊은 건 아니겠지?" 차가운 손으로 왼쪽 등 뒤 편에 새겨진 붉은 낙인을 쓸기 시작하자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무...무슨 개소리야?!! 비키기나 해!!" "내 것이라는 표시다...." "뭐......?" 순간 시간이 정지해 버리듯 몸이 딱 굳어버렸다. "이건....루베라다...." -10- "이건....루베라다...." 격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어디서 들어본 적이.....' 눈을 크게 뜬 채 이유도 없이 저항도 않고 그렇게 굳어있었다. 갑자기 사내가 내 위에서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려오고 침대 아래로 화려한 옷이 떨어지자마자 내 몸이 다시 가볍게 돌려져 사내의 심홍색 눈과 마주쳤다. "이래도 날 모른다고 할 테냐...." 녀석의 탄탄한 가슴엔 분명.... 내 등에 새겨진 각인과 꼭 같은 문신이 까만 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설마......날 납치했다던 변태새끼가..........'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지금껏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온 이유가 바로 눈앞에 있다. "이....이 변태새끼!! 저리 꺼져!! 너 같은 건 기억도 안나!! 다 잊어버렸다구!! 도대체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미친 듯이 소릴 질러대며 내 몸을 내리누르고 있는 놈을 떨쳐내기 위해 한동안 굳어있던 몸을 움직여 버둥대기 시작하자 거칠게 내 목을 움켜쥐고 핏빛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처음 봤을 때 입모양으로 내 이름을 부른 건 뭐냐....?!!" '내가.....그 때......뭐라고.........?' 분명 이 사내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움직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확실히 뭔가..... 생각할 여유따윈 없다. 눈앞에 보이는 미친 녀석부터 어떻게 하지 않으면..... "몰라!! 내가 무슨 소릴 했다는 거야?!!" 버둥거리며 날카롭게 말을 뱉어내다 순간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사람 죽이는 것을 개미새끼 눌러 죽이듯 하는 녀석이 몸을 내리누르고 지옥 불을 넣어 놓은 듯 불꽃이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로 바라보자 심장이 얼어붙어 버릴 것만 같았다. 목을 움켜쥔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날......진짜로 잊었다는 거냐...." 죽일 듯 노려보는 붉은 눈동자에 어제 밤 눈 앞에서 처참하게 베어져 나뒹굴던 시체들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대답을 재촉하듯 침묵을 이어가는 녀석을 보고 겨우 제멋대로 떨려오는 입술을 열었다. "너....너같은 걸 내가 알 리가 없잖아...." 눈을 마주쳐 오는 녀석의 핏빛 눈동자가 더욱 진해지더니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큭, 기억을....잃어? 날.....잊어버려?" 잔인한 눈동자가 날 노려본다. "그럼, 기억나게 해주지......" 말을 마치자마자 내 뒤통수에 손을 집어넣어 까만 머리카락을 움켜쥐더니 거칠게 입술을 맞대온다. 무슨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른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는 틈을 놓치지 않고 혀를 밀어 넣은 후에 뒤통수를 끌어당겨 입술을 더욱 밀착시키고 할퀴듯 키스를 하기 시작한다. 입술을 핥고 쌔게 깨물자 고통에 신음이 새어나온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보지만 머리카락을 휘어잡은 손이 한치도 움직이는 걸 허락지 않고 다시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오는 혀를 물어뜯으려 하자 거칠게 목을 꺾어 입을 벌려온다. 목구멍으로 타액이 흘러 들어오고 숨도 못 쉰 채 얼굴이 붉어져 버둥거리다 그제야 양손이 자유로운 것을 깨닫고 사내의 가슴을 거칠게 밀쳐냈다. 겨우 뜨거운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격하게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다. "하아 하아, 이.....이 변태새끼, 도대체 무슨 짓이야?!!!" 까만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자 잔뜩 비웃음이 걸린 매혹적인 입술을 비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갑자기 빼는 거냐.....나와 이렇게 여기서 수십 번이나 구른 주제에 이제 와서 깨끗한 척 하는 건가?" '뭐.....?!!' 잔뜩 굳은 얼굴로 얼어있자 붉은 눈동자에 잔혹한 빛이 스친다. "큭, 정말 깨끗이 잊어버린 모양이군.....그래도 몸은....기억하겠지....?" 갑자기 내 것에 손을 뻗어 거칠게 움켜쥐자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놀라 소릴 꽥 질러 버렸다. "무슨 짓이야?!! 흑...."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손이 닿아본 적 없던 페니스를 거친 손으로 감아오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보자 처음으로 얼음같이 차가운 표정에 순간적으로 놀란 기색이 스치더니 곧이어 더욱 싸늘하게 식어간다. "설마.....큭, 정말 완전히 지워버렸군.....남아 있는 건.....루베라 뿐인가......" 어쩐지 심장을 쥐어 짜 듯 허탈한 웃음소리를 흘리더니 다시 날을 세우고 말을 잇는다. "복수냐.....그 때의......."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니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그 장단에 맞춰줄 수밖에....."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드는 순간 내 것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뭐....뭐야....' 갑자기 몸이 이상하다. 귀두 끝을 엄지손가락으로 비벼대고 손아귀에 넣어 꾹꾹 누르자 갑자기 커지기 시작하는 페니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왜.....왜 이러는 거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몸의 변화에 놀라 눈치채지 못한 사이 이미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고 고통인지 아니면 다른 감각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이 온 몸을 헤집어댄다. "하악....앗....무슨...." "큭, 신음소릴 낼 줄 아니 전보다 훨씬 낫군..... 전엔......벙어리여서 이렇게 만져주면 헐떡이는 소리만 냈는데 말야....." '이 새끼, 도대체.....' "흑.....무슨....짓.......아앗....." 입안에선 머릿속에 떠도는 말 대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야릇한 신음이 새어나와 당혹감을 금치 못한 채 겨우 손을 뻗어 내 것을 녀석의 손아귀에서 빼내려고 손을 대자마자 내 손을 붙들어 온다. "전혀 모르는 눈친데? 한번 직접 느껴봐...." 정신없이 헐떡이며 신음을 내지르는 틈에 움켜쥔 손을 이끌어 내 페니스를 휘어 감게 한 후 풀지 못하도록 내 손을 감싸쥔다. "아앗.......하아...뭐....뭐야....흑....." 내 손에 쥐어진 내 페니스가 크기도 커지고 단단해 진 것에 놀란 것도 잠시..... 손에 느껴지는 부드럽고 뜨거운 피부와 거친 맥박에 몸에서 열이 오르기 시작하고 호흡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다. 민감해진 피부와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병이라도 걸린 게 아닌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할 무렵, 내 손을 쥔 채 녀석의 손이 천천히 아래위로 움직여간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미칠 것 같은 느낌이 온 몸을 타고 흐르고 100m 달리기라도 하는 사람 마냥 숨이 가쁘다. "으응.....아....그...만......핫...." 정신없이 들어본 적도 없던 신음을 흘리다 참지 못하고 내 것에서 손을 떼려고 힘을 주자 더욱 쌔게 휘어감고 빠르게 움직여 간다. 목이 꺽이고 허리가 제멋대로 휘기 시작한다. "아....으응.....아앗......." 거칠게 내쉬는 숨을 가르고 얼굴이 확 달아오를 정도로 야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렇게 녀석에게 깔려 미친 듯이 몸부림치다 어느 순간 눈앞이 하얘지면서 몸이 굳어왔다. 몸밖으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헐떡거리며 겨우 시선을 내리자 내 손과 녀석의 손에 하얀 액체가 묻어있다. "하아....도대체...무슨 짓을 한.....거야...." 어쩐 일인지 몸이 늘어져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이 개새끼, 당장....하아....내 몸에서 떨어져....!!!" 낯선 사내 밑에 깔려 이상한 짓을 벌였다는 수치심에 날을 세워 쏘아붙이자 비웃 듯 내 몸을 훑어보곤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아직 멀었어...니가 여기서 내게 뭘 해줬는지 똑똑히 알아야지....." 녀석의 차가운 시선에 왠지 모를 불안이 엄습해 온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겨우 일으켜 녀석의 밑에서 빠져나가려 힘을 줘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더욱 맘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찌푸리더니 사정 후 힘이 빠져버린 내 몸을 다시 뒤집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다시 눌러버린다. 숨을 헐떡이며 녀석의 밑에서 빠져나라려 바르작거리고 있는 동안 녀석은 침대 곁에 있던 선반 위에서 조그만 유리병을 손에 쥐고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지독할 정도로 강한 향기가 머릿속을 마비시킬 듯 콧속으로 파고든다. 뭘 하는지 뒤에서 조용하던 사내가 갑자기 내 허리를 들어올려 다리를 벌리더니 애널 주위에 진한 향기가 나는 액체를 흘려 넣기 시작하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어느 정도 애널을 질척하게 적시더니 손가락인 듯 길다란 걸로 애널 주위를 문지르기 시작한다. 지독할 정도의 향기를 뿌리는 액체는 오일인 듯 애널 위로 손가락이 미끌거리며 움직인다. 한참동안 그렇게 문지르더니 애널 안으로 길다란 뭔가가 쑥 들어와 내벽을 더듬기 시작하는 느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미친 듯이 시트를 움켜쥔 채 사내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자 귓가로 차가운 목소리가 스며들어온다. "가만있어....이대로 해버리기 전에..."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야...' 무슨 소린 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사내의 알 수 없는 행위에 경고따윈 모두 무시해 버리고 몸을 움직여 벗어나려던 찰라 내벽을 자극하던 뭔가가 빠져나가고 대신 뜨거운 것이 애널 끝에 맞닿았다. 놀라서 달아나려는 내 허리를 한 손으로 휘어감아 들어올리고 목을 침대 위로 내리 누르더니 거칠게 뭔가가 내부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명도 내지르지 못할 정도의 통증이 머릿속을 뚫고 들어온다. 좁은 애널을 거대한 것이 벌리며 들어오는 느낌에 미친 듯이 머릴 흔들어대지만 목을 내리누른 손은 풀릴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하체에서 느껴지는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비해 미끌거리는 애널 안은 아까 흘려 넣은 액체때문인지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뜨거운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통에 팔과 다리를 덜덜 떨어대며 숨만 깔딱이고 쉬고있길 한참.... 내부에 뜨거운 것이 다 들어왔는지 움직임이 없다. 그리고 엉덩이에 맞닿은 사내의 탄탄한 몸과 귓가에 느껴지는 뜨거운 호흡에 몸을 굳혀버렸다. '서...설마....' 내부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뜨거운 것에서 강하게 맥박 뛰는 느낌이 온 몸으로 전달된다. 너무 놀라서 아픈 것도 모두 잊고 몸을 약간 움직이자 등뒤에서 사내의 낮은 신음소리가 울려온다. '설마.....' 눈을 꼭 감아버렸다. 내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아까 자극에 커져버린 내 것처럼 녀석의 것이 커져 내 안에 들어차 있는 거다. 애널을 통해 내부로 들어온 녀석의 것이 뱃속을 헤집는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고 토기가 치민다. 수치심에 이를 갈아 부치자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몸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흑......." 목을 내리누르던 손을 떼더니 허리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거칠게 피스톤질을 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통증이 척추를 타고 오르자 입안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큭, 이게 니가 하던 일이다...." 등뒤에서 거칠게 파고들던 녀석이 귓가에 차갑게 속삭이는 소리에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물고 비명을 삼켜버렸다. 개처럼 뒤집혀서 같은 사내의 물건을 받아들인 채 강제로 범해진다는 사실에 죽고싶단 생각을 한 것도 잠시..... 깊숙한 곳까지 구석구석 범해버리려는 듯 거칠게 쑤셔 박는 행위에 머릿속에 떠다니던 생각과 감정이 한순간에 다 날아가 버렸다. 고통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다...... 뒤에서 밀어붙이는 사내에게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할수록 더욱 잔인하게 파고든다는 사실을 겨우 깨닫고 벗어나려는 시도를 모두 멈춰 버렸다. 고통에 자꾸만 무너져 내리는 몸을 단단한 팔로 휘감아 들어올리고 거칠게 찔러 올리자 팔 다리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오고 시트를 찢어지도록 움켜쥔 손아귀와 매끈한 등에선 땀이 베어 나온다. '아악.....악.....흑......' 결국 온 몸을 휘저어대는 미칠 것 같은 고통에 피가 나도록 깨물었던 입술에서 다시 비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목구멍에서 피가 넘어올 정도로 처절한 비명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제발......그만......흐윽..." 머릿속에선 생각지도 않던 애원의 말이 튀어나오자 다시 잔뜩 잠긴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하아.....내 이름을 불러....." '무슨....소릴 하는 거야......이름따윈 모른단 말야.....!!' 가차없이 밀고 들어오는 사내의 행위에 기절이라도 하고싶지만 엄청난 고통은 그것마저 허락지 않고 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마저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죽을 것 같은 고통에 뇌가 미쳐버렸는지 하얗게 시야가 흐려지며 지금까지 겨우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간헐적인 비명을 지르며 몸이 흔들리다 갑자기 입술을 비집고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소릴 지껄이기 시작했다. "흑......아악....그만......해.......티....폰...." 갑자기 뒤에서 거칠게 파고들던 움직임을 뚝 멈추고 내 몸을 다시 뒤집더니 핏빛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이미 동공이 풀려버린 까만 눈동자에선 끊임없이 눈물이 새어나오고 온 몸이 경련 하듯 제멋대로 떨려온다. 감정 없는 붉은 눈동자가 날 바라보며 확인이라도 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해...." 잠시라도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제멋대로 입술을 열어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한다. "티폰....흑.......티폰....티....폰......" 매달리듯 말을 하자 피처럼 붉기만 했던 눈동자가 옅어지면서 약간이지만 차가운 기운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빛을 띄기 시작했다. "계속.........말해......" 고통에 떨어대는 몸을 따뜻한 몸으로 꼭 끌어안더니 흘러내리는 눈물을 혀로 핥아 닦아내고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비명만을 내지르던 입안에서 순간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흑.....으응......아..." 이상하게 내 몸을 속속들이 다 알고있는 것처럼 아까와는 다른 곳을 찔러 올리고 몸 여기저기를 따뜻한 입술로 자극하자 통증이 아닌.... 아까 쾌감에 미친 듯이 신음을 흘려댔을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자극이 머릿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기 시작한다. "이름....불러....." 명령처럼 파고드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신음을 흘리며 아까 내질렀던 이름을 불렀다. "하악......앗....티...폰.......흑......" 천천히 내 것이 다시 아까와 같이 꿈틀대며 부풀기 시작하자 차가운 손으로 휘어감고 피스톤질을 해댄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낀 후에 찾아온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없이 위에 보이는 단단한 몸에 매달렸다. 반항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알 수 없는 이름을 부르며 신음소릴 내지르자 더욱 거칠게 움직이지만 방금 전과 같은 고통 대신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강한 쾌감이 밀려와 목을 뒤로 휘고 헐떡이는 신음을 내뱉다 사내의 손안에 또 다시 하얀 액체를 쏟고 아직도 위에서 거칠게 움직이며 내부를 휘젓는 녀석의 등을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꼭 부둥켜안았다. 몸이 밀릴 정도로 거칠게 공격하던 녀석이 어느 순간 내 안에 깊숙이 몸을 밀어붙이자 몸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몸 위로 겹쳐지는 사내의 몸을 느끼며 서서히 의식이 멀어져갔다. 눈이 떠지지 않는다. 몸에 열이 오르고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다.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파고든다. 차갑고.... 날카로운..... "도대체 왜 이런 거냐.....!!" 다그치는 듯한 목소리에 나이든 누군가가 겁먹은 듯 재빨리 대답을 해온다. "충격을 받은 듯 합니다....그리고 피로가 누적돼서....." 잠시잠깐 침묵이 이어진다. "그래서....?" "약을 드시고 좀 쉬시면...." "사흘 내로 되돌려라!!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서 평생 썩게될 테니....." "예....."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늘한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춘다. "약은 그곳에 두고 모두 물러나" 말을 마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조심조심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조용해진다. 한참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바로 곁에서 인기척이 느껴지고 차가운 손이 뜨거운 이마에 닿아왔다. 겨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려 바라보니 희미한 시야 속으로 붉은 빛이 어른거린다. "아직도 날.....용서하지 않은 거냐......" 차가운 손과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손길이 얼굴을 쓸고 지나가다 입가에 지독히도 쓴 액체가 흘러들어 온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한 빈속에 쓴 약물이 들어오자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입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약물을 다 밀어내 버리자 힘없이 늘어진 내 몸을 약간 일으키더니 약물이 흘러내리는 입술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로 막아버렸다.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온 혀를 타고 약물이 목구멍 안으로 흘러들어 혀에 닿지 않고 타액과 함께 넘어와 꿀꺽 삼켜버리자 입안에 가득한 쓴맛을 씻어주기라도 할 듯 몇 번이나 혀를 감아 쓸고 입안 구석구석을 핥다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헐떡이며 숨을 내쉬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얼굴을 뒤로한 채 다시 까만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다시 눈을 뜬 건 한밤중..... 새카만 어둠이 눈에 익숙해지자 주위를 둘러봤다. '여기가...어디지....?' 눈을 뜨면 당연히 보여야할 허름한 천장이 보이지 않아 당황하던 찰라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몸이 굳어버렸다. 그제야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하고...... 내 몸을 감고있는 팔을 거칠게 밀쳐내고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벌거벗겨진 채 여기저기 붉은 자국이 새겨져 있는 몸과 뻐근한 허리에 미쳐버릴 듯한 수치심이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날 밤, 이 미치광이 황제가 주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 게다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부드러워진 사내의 몸 아래 깔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쾌락에 몸부림쳐댔다. 짐승처럼........ 그리고 분명 이 황제라는 인간이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하던 일이라고 했다. 최악이다....... 변태한테 납치 당해 당한 것보다 훨씬 더.... '도대체 3년 전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부정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지금까지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몇 번씩이나 되새겨 왔는데..... 결국 기다리고 있었던 건 이렇게 넘을 수조차 없는 암담한 벽...... 지금까지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게 허탈하고..... .........우습기만 하다. '몸이라도.....판 건가.....' 도대체...... 몇 명한테 이렇게 안겨 신음소릴 내지른 거냐.....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 동안 내가 팔지 않았던 건 딱 두 가지.... 몸과 자존심.... 그 두 가지를 모두 옆에 누워있는 이 사내가 철저히 망가뜨려 버렸다. 힘이 없어 떨려오는 다리로 겨우 일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눈동자가 멈춘 곳엔 장식인 듯 화려한 장검과 단검들이 걸려있는 벽...... 천천히 다가가 가장 눈에 띄게 화려한 장식장 안에 들어있는, 한 손에 잡기 편한 짧은 곡도를 손에 쥐었다. 은으로 만든 듯 어둠 속에서도 몽롱한 빛을 뿌려대는 손잡이엔 사내의 눈과 같은 붉은 루비가 박혀있고 날카롭게 휘어진 검신은 단칼에 살과 뼈를 잘라버릴 정도로 날이 잘 서있다. 단검을 쥐고 서서히 침대로 다가갔다. 고른 숨을 쉬며 누워있는 붉은 사내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해 몸 위에 올라타 칼날을 목에 바싹 갖다댔다. 이렇게...... 정면에서 칼을 대고 눌러버리면 목이 날아가 버릴 테지..... 한 손으로는 단검의 손잡이를 쥐고 다른 손은 칼등에 올린 채 녀석을 노려봤다. 순간...... 잠을 자고있었던 게 아닌 듯 천천히 상대의 눈꺼풀이 열리기 시작하면서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빛나기 시작한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지 명백한데도 움직임이 없다. 손에 힘을 주자 단단한 목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집요하게 따라붙는 심홍색 눈을 마주보는 게 왠지 고통스럽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싸늘한 빛을 내뿜고있는 루비 빛 눈동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내가 싫다..... '뭐냐.......... 왜....내가...... 이런 표정을 짓고있는 거야....' 사내의 붉은 눈에는 내 얼굴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 머릿속에선 끈임 없이 죽여버리라고 명령을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끝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오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 가슴이 저려 온다. 한참 동안 그렇게 붉은 눈을 바라보다 힘겹게 시선을 돌려버리고 목에 들어박히지 못하는 칼날을 원망스런 눈으로 노려봤다. '할 수.....없어? 왜...?!! 그냥 손에 약간 힘을 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만 하면.....눈앞에서 눈동자만큼 진한 피를 뿌리며 죽어갈 텐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손에는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눈을 들자마자 마주쳐오는 붉은 눈동자에 이유도 없이 왈칵 눈물을 쏟아버렸다. 힘이 빠진 손에선 작은 곡도가 떨어져 내리고 단단한 가슴 위엔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큭, 황제폐하를 미천한 창부가 암살하려 했으니 무슨 벌을 받아야 하지? 사지를 찢어 죽일 건가.... 킥, 목을 베어 성문에 걸어두는 게 어때? 전시효과가 상당할 텐데." "닥쳐...." 으르렁거리는 낮은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드는 것도 무시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서 도대체 몇 명이랑 몸을 굴린 거야? 나에 대해서 꽤나 잘 알고있는 모양인데 한 번 말해봐...."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니가 그랬잖아....내가 여기서 하는 일이 그 짓이었다고.... 큭, 열 명이든 스무 명이든 상관없는 건가.....하는 짓은 똑같으니....." 타오를 듯한 붉은 빛 눈동자가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 "붉은 색 루베라가 새겨진 사람을 만질 수 있는 건 황제뿐이다." "하, 그럼 내가 몸을 판 상대는 너 뿐이란 소리야? 하긴 고귀하신 황제께서 다른 녀석들 손에서 이리저리 구른 지저분한 몸을 안을 리가 없지.... 뭐, 내가 보기엔 지금도 충분히 지저분하긴 하지만...." 붉은 눈에서 분노가 일기 시작하자 밤하늘처럼 까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마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죽여........" 찰나에 붉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황제를 죽이려했으니 당연하잖아? 그런 것쯤은 나도 알아.....어차피 이대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 봐야..... 큭,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에게 반박조차 할 수 없겠군.....같은 사내한테 몸까지 팔았다니....상상 이상이었어. 여기서 죽든 거기서 죽든, 걱정하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울어줄 사람도...... .......없으니까....." 힘없이 침대 위에 떨어져 나간 곡도를 다시 집어들어 밑에 깔려있는 녀석에게 내밀었다. "하아....몸까지 섞은 사이에 너무 잔인하게 죽이지 말고 한 번에 죽여줘....잘하잖아? 그런 거....." "이 단검......기억나지 않는 건가....." '단검.....?' 어쩐지 이 단검, 집어들었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눈앞의 붉은 사내를 닮아있다. "말했잖아.....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아.....그리고.... 이런 기억이라면.......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칼을 내밀고 한참을 있어도 받아 쥘 생각을 하지 않는다. "뭐야, 직접 죽일 가치도 없다는 거냐? 킥, 그럼.....할 수 없지...." 칼날을 들어올려 목에 박아 넣으려던 순간 손목을 거세게 쥐어온다. "이거 놔...." "말했을 텐데....루베라가 새겨진 몸은 황제만이 만질 수 있다고.... 죽일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그래서 기회를 줬잖아?!! 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나 같은 창부한테...?!!" "누가 창부라는 거냐...." 씹어뱉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붉은 눈을 치켜 뜬 채 날 노려본다. "뭐야? 지난밤에 증명까지 해주고 발뺌하는 거야? 덕분에 잘 알았어....내가 3년 전 여기서 뭘 하고 있었는지.... 킥, 밤에 내 몸으로 재미 좀 봤으니 화대는 주는 거지? 전에는.....얼마나 받은....거야?" 결국엔 말을 내뱉고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떨구자 힘이 빠져버린 손에서 칼을 빼들어 침대 밖으로 던져버리곤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준다. "원하는 만큼......" '왜.... 그런 눈으로 날 바라보는 거야.... 왜....... 갑자기 부드럽게 대해주는 거지.....?' "큭, 꽤 비싼데......" "니가 있을 곳은 여기 뿐이다" '어차피 내가 있을 곳은 아무 데도 없어.....' "루베라를 받은 이상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없어.....죽어서도....." '지금도....그런 거 같군.....' 어쩐지 이런 그의 반응에 안심이 되어온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사내에게 칼을 들이댔는지조차 혼란스럽다. 날 강제로 범했기 때문에....? 내가 3년 전 그런 짓을 해왔다고 알려줬기 때문에...? 아니면...... 이런 그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선가......? 나 자신조차 알 수가 없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사내는 거부할 수 없었다.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과 눈동자가 내 모든 걸 사로잡았다. 내 지워져 버린 과거를 이 녀석은 알고 있다. 난 하나도 기억할 수 없는데..... ......이 사내는 내 영혼을 움켜쥐고 있다..... 녀석의 심홍색 눈동자를 마주보면........ 미친 듯이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넌....도대체....뭐야...." "기억해 내.... 아니, 차라리.....아무 것도 기억하지 마라..... 모두 잊어버려......" 알 수 없는 소릴 하며 몸을 끌어당겨 품에 안아온다. 몇 년만에 느껴 보는 타인의 품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아늑해서 계속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하, 내가....이렇게 약한 놈이었나.....' 눈을 감자 볼을 따라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어쩐지 그리운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어온다. 눈을 뜨니 아침..... 어제 밤 그렇게 사내의 품에서 잠이 든 후 몇 년만에 악몽을 꾸지 않은 것 같다. 아니, 그러고 보니..... 이 곳에 와서 이 사내를 본 순간부터 악몽을 잊고있었다. 어쩐지 있어야 할 곳에 돌아온 듯한...... 약간은 불안하지만..... 어제 밤과 같이 내 몸을 감고 있는 것은 사내의 단단한 팔..... 옆을 돌아보니 언제부터인지 심홍색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내게 안겨라.... 원하는 건 뭐든 줄 테니...... 넌 창부 따위가 아니야. 전에도.....내 것이었어..... 내 루베라..... 이곳에 남아.... 스스로 내 곁에 남겠다고 한다면 강제로 범하지 않겠다..... 그래도 벗어나려 한다면 가둬둘 수밖에....." 루비같이 붉디붉은 눈을 올려다보았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가운 루비조각 같은 눈동자..... .......하지만 거짓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제외하고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곁에.......있어달라고 했던 사람은.... 어차피 이제 돌아갈 곳도 없다. 그리고 이 녀석의 말은 거부할 수조차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사내가 내게 창부라고 하면 창부였을 테고 루베라라고 하면 루베라였겠지....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든다. 내 몸을 그렇게 범해버리고 이 곳에 창부로 남아있으라 했어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영혼까지 잡혀있는 거다. 이 사내에게..... 아주 오래 전부터.... 몸에 찍혀있는 낙인처럼.... 붉은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천천히 기억을 되돌려보면 언젠가 알게 될 거다. 이 녀석이 누군지..... 내겐 차라리 기억하지 말라고 했지만.... 녀석을 본 순간부터 날 짓눌러대는....공포를 뒤집어 쓴 이 감정이 뭔지 우선 알아야겠다. 붉은 눈으로 내 눈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서서히 고개를 숙여와 눈을 살짝 감자 입을 맞춘다. 이러한 행동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익숙해 거부할 수조차 없다. 지난번처럼 거친 키스가 아닌 진짜 연인에게 하듯 부드럽게 입맞추더니 뜨거운 혀를 입안에 미끄러뜨린다. 감았던 눈을 살짝 뜨자 붉고 긴 속눈썹과 붓으로 그려놓은 듯 미려한 붉은 눈썹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동안 혀를 감아 빨아들이더니 하얀 이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 자극을 해온다. 생소한 자극에 목구멍을 타고 작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오자 타액으로 붉어진 입술을 핥아낸다. 오랫동안 맞닿아 있던 입술을 떼고 고요한 눈으로 날 바라보다 다시 내 몸을 끌어당겨 품안에 꼭 안더니 차갑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시종장을 불러라!!!" "예, 폐하..." 문 반대편에서 바로 대답이 들리고 얼마 안 있어 문 앞에서 약간 나이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폐하...." "들어와!!" 조용히 육중한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다가오는지 등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라...." 갑자기 내 몸을 덮고있던 시트를 허리까지 끌어내리는 바람에 깜짝 놀라 품으로 파고드니 단단한 팔로 허리를 꼭 휘감는다. 뒤에서 놀란 듯 크게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차가운 목소리가 방안을 울리자 바로 주위가 잠잠해 졌다. "루베라다...." 시트를 다시 끌어올려 어깨를 감싸더니 지독히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뭘 의미하는 지 알겠지? 오늘부터 이 아이의 몸을 만지면 손을 잘라내고 눈을 마주보면 눈을 파내겠다. 알려라...!!" "예....예!!" '뭐?!!' 서둘러 물러가는 발걸음소릴 들으며 놀란 눈으로 올려다보니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무슨 소리야...그게?" "말했잖아....루베라는 이런 뜻이다....." '그럴 수가.....팔을 자르고 눈을 파내....?!! 이제까지 있었던 일로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다.... 가뜩이나 안 좋은 인간관계가.....' "내가 정무를 보는 낮 동안엔 성안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 자유다. 호위기사를 하나 붙여주지.... 하지만 해가 지면 꼭 이 방으로 돌아와....성밖에는 내 허락 없인 절대 나가지 마라....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 때문에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하니까.... 그건 지난번에 당해봐서 알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테의 강이 흐르는 황제의 숲으론 절대 발도 들여놓지마.... 그때처럼 사라져버리면 용서하지 않겠다" '역시 그 강에 뭔가 있는 건가.....' 대답을 재촉하는 눈빛에 고개를 끄덕이자 까만 머리카락을 몇 번 쓸더니 침대 위에서 일어난다. "내 이름도 잊어버렸으니 다시 말해주지......하르바르트 티포니안 크리올라다...." "하르바르트 티포니안 크리올라다...." "너무 길잖아!!"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보자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본다. "하르바르트...티포니...안...크리올라......? 그냥 티폰이라고 부르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에 놀라 고개를 퍼뜩 들자 감정을 알 수 없는 붉은 눈동자가 마주본다. "티.....폰......?" "좋을 대로....." "난....." "하류....알고있어....전엔 말을 못해서 입모양으로 겨우 알아낸 거다" '말을....못했다고? 내가....? 왜.....' 생각에 빠져있을 때 어느 틈엔가 흰색과 청색이 정갈하게 배합된 옷을 입고있는 하녀들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시트를 끌어올리고 바라보자 시녀 네 명이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티폰에게 옷을 입히고 있다. "뭐....뭐야? 어떻게 보지도 않고 옷을 입히는 거냐........ 게다가 저 녀석은 여자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몰라?!!" 지극히 자연스런 행동에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목에 상처가....." 그제야 어제 밤 곡도로 상처를 낸 걸 기억해내고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바라보니 목에는 작은 생채기가 생겨 피가 굳어있었다. "의사를...." "필요없어! 소란 피우지 마라..." 차가운 목소리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고 다시 하녀들이 분주하게 손을 놀리자 엄청나게 복잡해 보이는 옷이 모두 입혀졌다. 질 좋은 하얀 천에 금실로 수놓아진 옷을 입자 밤새 옷을 벗고있을 때 보였던 거친 모습이 가려지고 얼음처럼 차갑고 위엄 있는 모습이 드러난다.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하녀들이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을 건네 온다. "기침하시겠습니까?" '왜 사내놈 침대 위에 같은 사내가 누워있는데 놀라지도 않는 거야?' "응? 응...!" 찡그린 얼굴로 여자를 바라보다 의아함을 털어 버리고 당황해서 얼른 대답하자 준비하고 있었던 듯 눈처럼 흰 빛깔의 옷을 내게로 가져오는데...... '설마.......' .....가 사실이었는지 침대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내가 나오길 기다리기라도 하듯 한치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나도.....저렇게 입으라고?" 마지막으로 보기에도 어마어마하게 비싸 보이는 보석으로 장식을 하고있는 녀석을 가리키자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더욱 깊숙이 숙인다. "시.....싫어.....저리가!!" 얼른 시트로 몸을 둘둘 말고 뒷걸음질치자 지난번 욕실에서 쫓겨났을 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황제의 눈치만 살핀다. "나가라...." 세안까지 다 마친 녀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여전하군...." '응.....?' 할 수 없다는 듯 침대 옆으로 다가와 손을 내민다. "이리와...." "왜...?" 인상을 찌푸리며 바라보자 대답이 없다. 끝까지 대답을 해 줄 것 같지 않은 분위기에 결국 이유는 듣지도 못한 채 비척비척 다가가자 침대 위에서 내 몸을 가볍게 끌어내려 바로 세우더니 말을 잇는다. "그건 치워...." "응?" 눈빛을 따라가 보니 몸을 말고 있는 시트..... '왜....?' 의문의 눈빛을 던지자 하얀 옷을 집어든다. '입혀.....주겠단 거야....?' 얼굴이 확 붉어져 옷을 뺏어들려고 손을 뻗으려다 녀석의 말에 멈칫했다. "혼자는 못 입을 텐데......" 정신을 차리고 옷을 보자 티폰이 입고있는 옷 못지 않게 복잡할 뿐 아니라 실크로 만든 듯 매끈한 끈들은 도통 어디에 쓰는지 알 도리조차 없다. 한참동안 옷과 녀석을 번갈아 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고 시트를 꼭 쥔 손에서 힘을 빼버렸다. 어차피 몸이라면 이미 다 보였을 뿐만 아니라 할 짓 안 할 짓 다 한 사인데...... 같은 남자끼리 뭐가 더 볼 게 있겠는가...... 시트가 몸에서 미끄러져 내리자 생각과는 달리 창피함에 붉어진 몸이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참동안 발가락을 꿈지럭거리며 바닥만 보고있는데 움직임이 없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어올려 바라보자 갑자기 뒤통수에 손을 집어넣어 끌어당기고 입술을 맞대온다. 놀라 눈을 크게 뜬 사이 입술을 비집고 뜨거운 혀가 들어와 부드럽게 치열을 훑더니 내 혀를 찾아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입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녀석의 뜨거운 혀가 아찔한 열기를 몰고 오기 시작했다. 타액이 목구멍으로 넘어오고 호흡곤란으로 눈앞이 빙글빙글 돌면서 다리에서 힘이 빠지자 단단한 팔로 허리를 휘감고 몸을 밀착시켜 지탱해 준다. 그렇게 까만 머리카락 속에 손을 집어넣어 머리를 단단히 고정시키곤 끝도 없을 것 같은 키스를 계속하다가 코로 겨우 숨을 쉬고있던 호흡이 거칠어질 무렵 천천히 입술을 떼어낸다. 입으로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는 틈에 하얀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을 몇 번 찍어누르더니 다시 하얀 옷을 들어 내 몸에 입혀주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차가운 무표정이지만 처음 받아보는 이런 애정표현이 싫지만은 않아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르겠다. 같은 사내한테 키스 받고 반응을 해대는 몸이 당황스럽기만하다. 정에 굶주린 아이처럼 어제 밤 이 녀석 앞에서 그렇게 무너지고 난 후 파도에 부서져 내리는 모래성처럼...... 이 품안에선..... 나 자신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리고 만다. 한참동안 다른 곳에 가있던 정신을 퍼뜩 차리고 보니 거의 마무리가 다 되었는지 섬세한 손가락으로 하얀 비단끈을 옷에 절묘하게 둘러 매듭을 단단히 묶고 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부드러운 신까지 신겨주자 옷 입는 것이 끝이 났다. 보기에도 엄청 화려하기만 한 옷을 찌푸린 채 바라보다 팔을 들어올리니 끈이 잔뜩 매달려 매듭이 지어져 있고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매가 길뿐만 아니라 소매 안 쪽엔 화려한 레이스가 장식되어 있다. '뭐야.....이건 또 왜 이렇게 길어?' 불만스럽게 소매를 바라보고 있는데 하얗기만 한 옷이 맘에 들지 않는지 선반 위에 놓여있는 여러 보석들 중 가는 금줄에 붉은 루비조각이 잔뜩 매달려 짤랑거리는 장신구를 매듭마다 걸어놓는다. "난 처리할 일이 있으니 식사는 혼자 방안에서 천천히 하고 잠시 후에 호위기사를 보내줄 테니 그 자가 올 때까지 얌전히 이곳에서 기다려...." "호위기사?" "혼자선 절대 돌아다니지 마라...." "응...." 대답을 하자마자 밤하늘처럼 까만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다 이마에 짧게 키스를 한 후 뒤돌아서 방을 나가버렸다. '하아....' 넓기만 한 방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고급 가구들과 보석들...... 돈이라면 아무리 눈이 뒤집힌다지만 이렇게 발에 채이도록 있으면 관심조차 가지 않는다. 이 곳에서 탈출이라도 한다면 달라지겠지만.... 그 목표도 지금은 흐지부지..... 무료함에 침대 위에 털썩 누워 가만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밖엔 시커먼 구름이 몰려와 비를 뿌려대고 있다..... 갑자기 문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조금만 있으면 되잖아!!" "시온님...!!" "얼굴만 보고 나올게! 응? 에이, 우리사이에 뭘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 "하지만 폐하께서...." "내가 잘 말씀 올린다니까...."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오다 평소완 다르게 문이 요란스럽게 열려 놀라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앉자 붉은 눈동자 한 쌍이 놀란 듯 날 바라본다. 녀석은 분명 지난 번 이 방에서 본 가벼운 목소리의 붉은 머리 녀석..... 자세히 보니 나보다 2, 3Cm는 큰 키에 상당히 잘생겼지만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해 철이 덜든 악동같은 인상이었다. 녀석이 한참동안 5m정도 떨어진 곳에서 날 훑어보더니 가까이 다가와 요란스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우와, 역시 니가 폐하의 루베라를 받은 녀석이었어? 눈동자가 마노같아...!! 어라? 너......머리카락까지 까맣잖아? 어떻게..........?!!" '뭐야? 이 자식은 갑자기......?' "상상.......이상이야......!!" 진수(珍獸)라도 보듯 소란스럽게 날 이리저리 살펴보며 떠들어대는 녀석이 맘에 안 들어 눈썹을 치켜올리자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기다리듯 기대에 찬 눈동자로 숨을 죽이고 날 바라본다. "닥치고 꺼져!! 시끄러운 자식....내가 인형인 줄 알아?" 성깔을 부리자 한참동안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바라보더니 덥썩 내 몸을 끌어안는다. "뭐야? 이 미친놈!!! 어따 손대고 지랄야?!! 빨리 놓고 꺼지지 못해?!!!" "역시 귀여워!!!" 애새끼가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듯 얼굴까지 부비대며 하는 말에 기가 막혀 한동안 굳어 있다가 날 끌어안고 있는 녀석의 가슴을 밀쳐내며 말을 꺼냈다. "이 새끼, 도대체 뭐야?!!" 티폰이 분명 자기 이외엔 날 만질 수 없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이 자식은 뭐지? 이 정도로 만져대면 팔이 아니라 목을 잘라야 하는 거 아냐?' "응? 나 몰라? 하르바르트 폐하가 내 형님이야...." '뭐?!!' 확실히 외모는 닮아있다. 그런데....... 이 극과 극을 달리는 성격 차는 도대체.....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자 여전히 즐거운 듯 날 훑어본다. "내 이름은 시온이야.....넌?" "니가 알게 뭐야?" "내 이름 가리켜줬잖아!!!" 불만스럽게 날 바라본다. "누가 알고싶데?" 눈을 치켜 뜨고 꽥 소릴 지르자 툴툴대기 시작한다. "쳇, 째째하긴...." "뭐야?!!!"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재빨리 눈을 피하고는 궁시렁 궁시렁..... "뭐야? 이름도 안 가리켜주고....모처럼 먼저 내가 이름까지 말했는데....." 끊임없이 궁시렁대는 소리에 질려버려 벌컥 소릴 질러버렸다. "하류!! 됐냐?!!! 사내자식이 쫑알쫑알 더럽게 시끄럽네!!! 씹!!" "하류? 이상한 이름이네.....몇 살이야?" "열 여덟" 포기해 버리고 순순히 대답하자 신이 나서 떠들어댄다. "정말? 나보다 한 살 많잖아?" '뭐? 이 자식이 나보다 어리다고?!!!' 다시 녀석을 바라보자 확실히..... 외양은 몰라도 정신연령은 한참 떨어져 보인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럼, 티폰은 몇 살이야?" "응?"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본다. "왜?!!" "티폰.....이라니....?!!!" "황제말야!!!" 크게 뜬눈을 더욱 크게 뜨고 다시 입을 연다. "너.....하르바르트 폐하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어?" "하르...뭐? 씹, 부르기도 어렵네!! 티폰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했는데?" "정말? 꽤나 사랑 받나 보네....? 하긴....하나밖에 없는 루베라니까......" 아쉬운 눈으로 날 바라보며 어쩐지 풀이 죽은 목소리.... "뭐?" "아냐....폐하는 나보다 3살 위야...." "스무 살.....?" "응....." "그 나이에 황제라구....?" '아니, 그것보다 그 외양에 스무 살?!!!! 나랑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잖아?!!!' "2년 전에 선왕이신 아버지께서 암살 당하신 후 바로 즉위했으니까....." "암살.....?"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묻자 가라앉은 눈으로 말을 잇는다. "응....난 이웃나라에 있다가 올해 돌아와서 그때 일은 잘 모르지만....." "아....."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 잔인하고 흉폭한 형님이 루베라를 새긴 상대가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니까!! 2년간 전쟁만 해서 이런 쪽은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도대체 언제 새긴 거야? 어제 밤?" '잔인하고 흉폭? 그게 형님한테 할 소리냐?!! 뭐, 사실이긴 하지만.....쯧....포악이 빠졌군.....' "몰라!!! 그리고 나한테 손대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헉, 형님께는 제발 말하지마!! 설마 형님이 아우 죽이는 꼴이 보고싶은 건 아니겠지?" "상대가 너라면 보고싶은데?" "뭐?!!!! 으악!! 제발! 폐하께서 아시면 지하감옥에 일주일쯤 박아둘지도 몰라!! 그러다 날 가둬둔 걸 잊어버리기라도 하심 난 죽는단 말야!! 해달라는 건 다 해줄게!! 응?" '흐응~교육방법이 꽤 괜찮은데? 그렇게 티폰이 겁이 난단 말이지....? 그런데 이 자식, 그딴 소릴 해가며 왜 웃고있는 거야...?!!' 의안한 눈으로 녀석을 훑어보다가 시선이 한군데 딱 멈췄다. "그럼, 그거 줘!" 녀석의 옷에 붙어있는 푸른색 사파이어를 얼른 가리키자 잠시 바라보더니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뭐야? 이딴 건 어따 쓸려구? 정말 이거면 되는 거야?" '이 녀석....상당히 멍청하군.....이딴 거? 이게 팔면 얼마짜린데.... 역시 이곳에서 맘대로 집어 가는 것보다 정당한 대가(?)로 손에 넣는 게 더 보람차지....' 녀석이 사파이어를 홀랑 떼어내 손에 쥐어준다. "그런 거 말고 차라리 찐하게 키스를 해달라고 하는 게 더 좋지 않아?" '미친놈.....뭐라는 거야?' 손바닥 반을 차지하는 사파이어를 헤실 거리며 바라보자 앞에 있던 녀석이 빤히 날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연다. "이런 거 좋아해?" "당연하지!! 돈 싫은 사람이 어딨어?" 녀석이 갑자기 품을 뒤적이더니 커다란 루비 하나를 꺼내 보인다. 한눈에 봐도 상당히 질 좋은 루비인지 피를 머금은 듯 새빨갛다. 마치 그 녀석의 눈동자처럼........ 한참동안 루비를 바라보고 있자 녀석이 킥킥거리며 입을 연다. "이거 줄 테니까 나한테 찐하게 키스 한 번만 해줘!!" "뭐?!!" 인상을 구기고 녀석을 올려다보자 상당히 진지한 표정..... '이 새끼가 도대체 무슨 속셈이야?'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붉디붉은 루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녀석을 닮은 붉은 색 루비에서...... 루비와 빙글빙글 웃고있는 녀석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따악!!! "악!! 뭐야? 감히 왕족을 때려?!!!" 녀석이 붉은 눈을 부릅뜨고 바락바락 대든다. '어쭈, 해보시겠다?' "니가 왕족이든 왕족발이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니가 내 입술에 전세 놨어? 보석 주면 대주게? 이 자식 미친 거 아냐?!!" "이익...!!" 미친놈을 보듯 바라보자 꽤나 분한 듯 부들부들 떠는 꼴이 상당히 볼만하다. "그리고...껴안는 거 한 번으로 지하감옥 일주일이면 키스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응? 헉!!! 깜박했다!! 형님이라면 혀까지 자를........" '멍청한 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녀석을 바라보자 움찔하며 쳐다본다. "내놔!!" "뭐.....뭘?!!" "루비....!!" “왜?!!" "이른다!!" "이 교활한...!!" "이 씹, 두 번 말하기 귀찮으니까 빨랑 내놔!!!!" "쳇, 수전노...." "뭐?!!!!" 눈을 치켜 뜨자 얼른 붉은 색 루비를 손에 쥐어주고 쨍알쨍알 시끄럽다. "닥쳐!!" 녀석에게 강탈한(?) 붉은 루비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다 버럭 소릴 지르자 움찔하며 입을 다문다. 불만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루비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는 녀석에게 퍼뜩 말을 던졌다. "아, 그런데 도대체 그 루베라란 게 뭐야?" 녀석이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본다. "그걸 모르고 있었단 말야?!!!" "몰라....." "너......도대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보는 녀석을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자 말을 잇는다. "너......폐하의 가슴에 새겨진 까만 색 각인.....봤어?" "응...." "그건 루펜타라고 하는데 대대로 황제의 몸에만 새겨 넣어..... 같은 적자에 왕자인 나에겐 루펜타가 없지.... 그리고 붉은 색 루베라는 황제가 직접 새겨 넣는 거야.... 새기는 방법도 황제만이 알고있어..... 그러니까 황제의 루펜타와는 달리 루베라는 여러 명한테 새겨질 수 있단 소리지..... 뭐, 지금으로선 현 황제의 루베라는 너 하나 뿐이지만...... 황제 중엔 5, 6명 씩 거느린 사람도 있다나봐.... 그리고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루베라에는 주술이 걸려있다고 하더군....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술?" "그래....구속의 주술....루베라는 루펜타에 구속돼 있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언젠간 반드시 만나.....루펜타가 루베라를 불러들이지....." '그래서.....이 곳에 온 건가........설마.....' "또 루베라는 새겨진 위치에 따라서 그 주술의 위력이 달라진다나봐....." "위치.......라니?" "심장에 가까울수록 위력이 강해져......." "심장?" '뭐.....뭐야.....그러고 보니 내 몸에 새겨진 건 심장 바로 뒤쪽.......' "그리고....." "응?" 어쩐지 녀석이 히죽거리며 웃는다. "왜 루베라의 몸은 황제밖에 못 만지는 지 알아?" '알 리가 있나.....' "뭐, 황제의 소유라 그렇기도 하지만....루펜타와 루베라는 연결돼 있어. 결국 루베라의 몸을 만지면 루펜타가 새겨진 황제도 그대로 느끼게 되는 거지....... 특히나 형님은 타인이 자신의 몸에 손대는 걸 엄청 싫어하니까 그 정도가 심하다구.... 목욕이나 옷 입을 때 몸 시중은 겨우 견디고 있는 모양이지만..... 킥, 아마 그 구속의 주술이 사실이라면 아까 내가 널 껴안은 것도 느꼈을걸? 루베라가 10명쯤 되면 곤란할 거야...루베라를 많이 새긴 황제는 거의 심장과 많이 떨어진 발바닥에 새겼다던데..... 그 주술이 진짠지 가짠지는 루펜타가 새겨진 황제만 알고 있으니.... 내가 아무리 물어봐도 폐하가 대답을 해 주셔야 말이지.....뭐, 그냥 그런 소문이겠지...." '그럴.....까.....?' "그리고 루베라의 의미는......글쎄....전대 황제 중엔 황비 단 한 사람에게 새겼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침실 노예....애인.....후궁....약혼녀.....새긴 사람에 따라 달랐어..... 뭐, 그래도 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사람들이었지만.... 넌 형님이 루베라 새길 때 뭔가 말해주지 않았어? 무슨 의민지?" '의미? 이걸......새길 때? 모르.....겠어...... 언제 새긴 건지도.... 기억에....없어.....' "루베라를 받은 사람들은 황제 못지 않은 대접을 받지만...... 황제에게 버림받은 루베라는 비참하지.... 황제가 직접 인두로 루베라를 지워버리고 운이 좋으면 황궁 어딘가에서 살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엔 신하들에게 하사하거나 황궁 밖으로 쫓겨나는 게 태반이야... 그것도 말이 하사지 거의 침실노예로 쓰여.....뭐, 황제의 눈에 들 정도로 특별하니까 즐기기에도 최상품이라 생각하지...." "뭐?!!" "킥, 걱정 마....아쉽지만 너라면 폐하도 평생 질리지 않으실 거 같으니까....... 하아, 게다가 저래뵈도 외곬수라구....그리고...."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본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겨도 내가 하사 받으면 돼....난 왕족이니까 다른 신하들보다 우선 순위거든....." '빌어먹을 자식, 꼭 빨리 버림받으라고 등 떠미는 것 같군....' 계속해서 이어지는 녀석의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는 사이 다시 커다란 문이 열리며 여러 명의 시녀들이 음식들을 가져다 나르기 시작하고....... 옆에서 시끄럽게 쨍알대는 녀석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음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시녀들이 커다란 테이블에 본 적도 없는 음식들을 잔뜩 올려놓고 사라지자 테이블 의자에 앉아 음식에 손을 뻗었다. 노릇노릇 구워진 빵과 알 수 없는 무언가의 고기를 양손에 쥐고 먹어대는데 거추장스런 옷의 긴소매가 자꾸 흘러내려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젠장, 이건 왜 이렇게 긴 거야?!!" 투덜대자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던 시온이란 녀석이 다가와 소매에 복잡하게 여기저기 매듭 지어있는 비단 끈을 풀러 이리저리 손을 대 걷어올리자 제법 움직임이 편해졌다. "루베라의 옷은 원래 소매가 길어. 불편해도 좀 참아..." 그제야 시온 녀석의 소매를 보니 손등을 반정도 가리는 위치.... 그에 비해 내가 입은 옷은 손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 "왜?" "다른 사람이 만지지 못하게 하고, 손으로 함부로 다른 거 만지지 않게 하려고...." '하, 웃기는군....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옷까지 이렇게 입힌단 말야? 이 정도면 완전 결벽증 수준 아냐? 그 따위 법을 도대체 누가 만든 거야? 내가 무슨 병원균이라도 돼?!!!! 젠장!!!' 궁시렁거리며 음식을 다시 먹기 시작하는데 녀석이 옆에 바짝 붙어서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씹, 뭐야? 밥 먹는 거 처음 봐? 왜 주접스럽게 자꾸 쳐다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노려보자 녀석이 키득거리며 말을 던진다. "킥, 역시 재밌는 녀석....너 폐하한테도 그러는 거냐? 폐하가 가만 넘기지 않으실 텐데....? 다른 녀석이었으면 벌써 사형이야!!" 아마, 이~런 눈으로 '사지를 찢어버려!!' 이랬을걸?!!" 녀석이 눈을 손가락으로 한껏 치켜올리며 흉내를 낸다. '사형? 뭐 그깟 걸로 사형이야? 그러고 보니......그 녀석 앞에선 성질 많이 죽이는군.... 하긴...그렇게 무시무시한 인간을 상대로 어떤 미친놈이 개기겠어....얌전히 있는 게 편하게 사는 법이지.... 하아....그러고 보니 어렸을 땐 내 성격도 이렇지 않았는데....꽤 순했었는데 말야.....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손가락질 받으며 악착같이 살다보니 이렇게 된 거라구....' 고개를 주억거려가며 생각을 굴리다 녀석에게 다시 말을 던졌다. "아니, 만만한 놈들한테만 그러는 건데?" "그럼 내가 만만해 보인단 말야?!!!!" 시온 녀석이 답지 않게 소릴 버럭 지른다. "그걸 지금 알았냐? 보기보다 상당히 똑똑하네.....놀랬어!!" 입안에서 살살 녹는 생선구이를 씹어가며 대답하자 시온 녀석이 단박에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큭, 이 자식 꽤 다혈질이네...? 놀리는 재미가 있겠어....' 이를 뿌득뿌득 갈고있는 녀석을 보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웃기는 놈....단순하긴....이 녀석, 정말 그 놈 동생 맞아? 정말 해괴하군..... 이 녀석만 있으면 이 성에서 사는 것도 별로 지루하지 않겠는데? 실컷 골려줘야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를 갈아붙이던 시온이 다시 날 보며 입을 놀린다. "너 진짜 루베라 맞아?" "왜? 의심스러워? 벗어볼까?!!" "뭐?!!!!!!!" 얼굴을 확 붉히고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뭘 그렇게 놀라? 같은 사내놈끼리....왜? 내 몸엔 뭐 하나 더 달렸을 거 같냐?" "큭, 크하하하 정말.......너라면 폐하의 얼굴에서 표정이란 것도 볼 수 있겠다!!" '표정? 그 녀석이 그런 것도 있냐? 얼음장같은 얼굴하곤...... 내가 지금까지 본 표정이 잔인한 표정, 화난 표정, 개미 오줌만큼 놀란 표정에.... 그러고 보니....... 약간 부드러운 표정도.....본 것 같긴 하네......' "2년만에 나라 세 개를 괴멸시키고 대륙을 통일해 버려 역대 황제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칭송 받는 형님이신데.... 킥킥, 능력 뿐 아니라 루베라 고르는 눈썰미도 보통이 아니었어.....역대 루베라 중에 니가 제일 특이할 거야!" "뭐? 욕이야, 칭찬이야?" "글쎄, 제멋 대로에 위아래도 몰라보고, 폭력적이고, 교활하고, 게다가 뻔뻔하기까지?!! 아, 수전노를 빠뜨렸군....." '쯧, 대단한 발견이다.....' "킥킥, 외모는 최상품인데 성격이 개차반이야.....!!" "흐응~내가 좋아하는 단어들은 다 붙여주네....폭력, 교활, 뻔뻔에 수전노....게다가 개차반까지? 이거 고마워서 어쩐다....? 그 폭력 개차반한테 한번 터져 볼래? 이 바보 촐랑이 자식!!!" 손에 들고있던 닭다리같은 고기를 던져버리고 벌떡 일어서는 순간 다시 문이 열리더니 부드러운 인상의 사내가 성큼 걸어들어 왔다. 나보다 약간 큰 키에 귀족적인 매끄러운 얼굴, 잿빛 머리카락에 잿빛 눈동자...... 주먹을 움켜쥐고 벌떡 일어나 있는 날 놀란 듯 잠시 바라보더니 눈이 마주치기 전에 재빨리 눈을 내리깔고 깊이 고개를 숙여온다. "누구.....?" 갑작스런 사내의 등장에 놀라 빤히 신기한 빛깔의 머리카락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말을 흘려내자 사내가 입을 연다. "황제폐하의 명으로 오늘부터 루베라의 호위를 맡게 된 케레스라 합니다" "응? 케레스? 지난번 황궁 검술시합에서 우승한 사람?!!" "뭐?" 시온의 말에 놀라 되묻자 다시 대답을 해온다. "황성에서 황제폐하 다음으로 검술실력이 좋은 기사야.... 올해 황궁으로 들어왔다고 들었는데....황제페하의 호위역 아니었나?" 다시 사내를 살펴보니 상당히 틀이 잘 잡힌 균형 있는 몸매지만 엄청난 근육질도 아니고 힘도 쌔보이지 않는다. 티폰처럼 엄청난 위압감이 있어서 상대를 한 순간에 제압할 스타일도 아니고 어두워 보이는 머리와 눈동자 색과는 다르게 상당히 부드러워 보이는 인상..... 게다가 나이도 꽤 젊은지 23, 24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티폰이란 녀석이 그 무시무시한 얼굴로 20살이라 했으니 이 녀석도 더 젊을지도..... "큭, 정말 중요하긴 중요한가 보네....? 호위기사로 저런 인물을 붙여주다니...." 시온이 씁쓸한 얼굴로 케레스를 바라본다. '뭐야....그렇게 대단한 녀석이야....? 그런데 왜 나한테 그렇게 까지 해주는 거야.....단순한 잠자리 상대라면......' 황제라면 잠자리 상대쯤 얼마든지 있을 거다. 그런데 왜 굳이 날 붙들고 놔주지 않는 거지...... 그 녀석의 행동도 의문 투성이지만 내 행동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원래대로라면 녀석을 죽여버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서 빠져나갔어야 했는데..... 붉은 눈동자에 홀려버린 듯 간단히 몸을 내어주겠다고 했다. 이곳에 남아있겠다고..... 물론 지금에 와서 이런 몸으로 현실세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성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건가..... 그것도 몸까지 그 녀석에게 바쳐가며..... 녀석의 밑에 깔려 강제로 범해졌을 땐 죽고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는데..... 그런데....... 녀석의 품은 너무나 따뜻했다. 그리고...... 너무도 익숙하다.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가둬두지도 않고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주겠다고 했다. '도대체 왜.......' 왜 이런 내게 집착을 보이는 걸까.......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날........ 왜 필요하다 하는 거지......? 녀석이 말한 대로라면 난...... 3년 전 이곳에 와서 녀석과 함께 지낸 것 같다. 그렇게...... 지난밤에 녀석이 말했던 것처럼..... 녀석과 몸까지 섞어가며...... 묘하게 녀석의 이질적인 외모에도 녀석과 함께 있는 것에, 한 침대에서 자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이유가 그것일까...... 어차피 성적인 면에서 완전히 백지였던 내게 그날 밤...녀석과의 관계는 충분히 충격적이었지만...... 상대가 남자였다는 것보다 관계를 가졌다는 것 자체가 더욱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난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데....... (순전히 녀석의 말에 따른 거지만) 이곳에 있는 동안 그런 식으로 수도 없이 녀석에게 안겼다니...... '하, 역시 변태 성욕자가 맞긴 한가보군......도대체 언제 손댄 거야? 15살? 16살? 그런 애새낄 상대로 잘도 그럴 맘이 들었군.....그러고 보니 그 자식도 그땐 17, 18살? 젠장, 완전 범죄잖아?!!' 지난밤처럼 날 강제로 범한 건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몸을 내줬단 소리.....? 내가......... 왜.......? 그리고 어떻게 다시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온 거지? 왜 여기에서 있었던 기억이 다 사라져 버린 거야.....? 생각을 이어갈수록 의문만 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친 생각은........ '그 녀석.....예전에 날 안을 땐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잔인한 눈빛을 했을까........아니면 그 때처럼 약간이지만 부드러운 눈빛이었나..... 루베라란 걸 새길 땐 내게 뭐라고 했지? 날 안으면서........... .......뭐라고 속삭였을까.......' 갑자기 이어진 생각에 화들짝 놀라 머리를 거세게 휘저었다. '젠장,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 안에 있는,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일년 반 동안의 기억을 가진 누군가가...... 3년 전의 누군가가....... 녀석에게 끌리고 있는 것뿐이다. 지금의 나완 아무 상관도 없는데............. 심장은 내 의지완 상관없이 녀석의 앞에선 제멋대로 뛰어대고 녀석의 곁에선 평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녀석의 붉은 눈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녀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도 없게......... 그 녀석의 곁에 남아있고 싶다고...... 어딘지 깊숙한 곳에서 말해온다. '설마....그때.......내가.....그 녀석을.......... 그럴.......리가........그 녀석한테 구속되어 있는 것뿐이다....몸도....마음도..... 녀석이 내 몸에 새겨놓은 루베라때문이다....... 그래서 녀석을 거부할 수 없는 것 뿐이야.....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어......' 가라앉은 눈으로 골똘히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온 녀석이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말을 건네왔다. "뭐야? 너도 그런 표정 지을 줄 아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 "남의 사....." 생각을 털어 버리고 고개를 드니 어느새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은 다 치워져 있고 호위기사라는 케레스란 인물은 단정히 내 곁에 서있다. 칼같이 날카로워 옆에만 있어도 긴장이 되고 가슴이 두근대는 티폰과는 달리 부드럽고 차분해서 편안한 느낌이 드는 녀석을 그렇게 한참동안 바라봤다. '그럼, 이 녀석이랑 매일 함께 붙어 있어야 하는 건가.....' "어쨌든 잘 부탁해!!" 케레스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씨익 웃자 고개를 숙인 채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예...." "너, 뭐야? 그 태도는?!!! 나하곤 완전 다르잖아?!!!!!!!" "너 아직도 여기 있었냐? 언제 갈 거야? 꽥꽥대지 말고 니 볼일이나 봐!! 원래 왕족이란 게 그렇게 한가한 거냐?" "우....웃기지마! 나도 바쁘다구!! 갈 거야!" "흐응~그래? 그럼 잘 가!!" 관심 없다는 듯 손을 휘휘 젖자 역시나 같은 핏줄인지 색이 옅은 붉은 눈이 갑자기 짙어지기 시작한다. '뭐야? 이 자식......삐졌냐?' 흥미로운 시선으로 녀석의 짙어져 가는 눈을 아무 생각도 없이 바라보고 있는데 순식간에 다가와 입술을 포개왔다. 눈을 크게 뜬 채 숨을 멈춰버리자 따뜻한 혀가 입술 속으로 파고든다. 입안으로 녀석의 혀가 들어오려던 찰라 녀석과 내 목 사이로 뭔가가 번쩍 하더니 시온 녀석이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니 날카로운 검이 시온 녀석의 목을 겨누고 있다. '뭐.....뭐야....?!! 언제....?!!' "무슨 짓이냐....감히...!!" 검을 목에 겨누고 있음에도 당황은 커녕 더욱 가라앉은 눈으로 케레스를 노려보는 녀석을 보고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저.....저 자식....' "황제폐하께서 루베라께 손대는 자들은 모두 죽여버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뭐......?' 온화했던 케레스의 눈빛이 날카롭게 시온을 노려보자 점점 주위가 싸늘하게 얼어붙어 간다. '이......이 자식들, 왜 갑자기 분위기가 다 변하는 거야....?!!' 그렇게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시온 녀석의 머리 위에 거세게 꿀밤을 날려버렸다. 따악!! "윽, 너 또 날 때려?!!!!!" 녀석이 머리를 움켜쥐고 날 노려본다. "이 새끼, 내놔!!" 녀석에게 손을 내밀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본다. "뭐....뭘?!!!!" "이 자식, 순 날도둑놈 아냐?!! 방금 내 입술에 침 발라놓고 딴 소리냐?!! 다시 물리라고 할 수도 없고....챙길 건 챙겨야지? 다음에도 이 지랄하면 이빨 다 부러뜨려 놓는지 알아!!" 케레스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시온 녀석이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뭐해?!!! 빨랑 내놓라니까!!!!!" 버럭 소릴 지르자 흠칫 놀라서 바로 대답을 해온다. "없는데......" "뭐?!!! 이 자식이!!" 녀석의 멱살을 쥐고 문이 있는 곳까지 끌고가 문을 벌컥 열자 시종인 듯한 사내 두 명이 눈을 크게 뜨고 나와 시온을 바라보다 재빨리 바닥에 넙쭉 엎드린다. 녀석을 문밖으로 밀어내고 버럭 소릴 질렀다. “내일 이자까지 쳐서 2배로 가져오지 않음 죽을 줄 알아!!!" 그때까지 멍하니 사태파악을 못하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씨익 웃더니 말을 잇는다. "알았어. 내일 다시 올게..." "빈손으로 오면 죽는다" "킥, 응..." '귀찮은 녀석....' 문밖으로 쫓겨나 큰 소리로 웃고있는 녀석을 뒤로하고 육중한 문을 다시 닫다버린 후 아직까지 검을 빼들고 굳어있는 녀석을 바라보다 침대 위에 벌렁 누워버렸다. "루베라...." "하류...." "예?" "내 이름.....하류라구!! 그 루베란지 뭔지가 아니라!!!" 잠시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다시 무겁게 입을 연다. "하류님, 왜 막으신 겁니까...." 짜증스럽게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녀석을 바라보자 흠칫 눈을 피한다. "왜 자꾸 눈을 피하는 거야? 티폰이 눈알 빼버린다고 해서? 그게 무서워? 융통성 좀 가지라구!! 그 바보 촐랑이놈한테 무턱대고 검부터 들이대면 어쩌겠단 거야? 애새끼처럼 상대 안 해주니까 발끈해서 그런 것뿐인데..... 일일이 그렇게 검부터 들이대고 죽여대면 발에 밟히는 게 다 시체겠군....!! 그리고 내 이름에 님자 붙이지마!! 기분 나빠!! 소름끼친단 말야! 그리고 나보다 나이도 많은 거 같은데 왜 높임말을 쓰는 거야? 그 바보 촐랑이 자식도 나보다 어리면서 밤말 해대는데!! 말 놔!!" "하지만 폐하께서....." "그러니까 티폰이 안 볼 때만 그렇게 하면 되잖아?!! 도대체 나이가 몇인데 그렇게 고지식해?" 녀석을 빤히 바라보자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해온다. "스무살입니다" "이 씹, 너 이제부터 눈 맞추고 밤말로 하지 않으려면 나한테 말 걸지마!!" '젠장, 이 곳에 있는 녀석들은 왜 이렇게 발육이 좋은 거야?' 다시 넓기만 한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워 시트를 끌어당기고 눈을 감아버렸다. '쳇, 시온 녀석은 놀리는 재미라도 있는데 저 녀석은 고지식에 고집불통인가 보군.....' 고요한 가운데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밖은 시커먼 구름 때문에 어둡기만 하다. 어차피 나가봐야 갈 곳도 없지만 비가 이렇게 쏟아지면 꼼짝없이 이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밖에 없다. 아까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시온 녀석의 수다를 듣는 동안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다. '하아....하는 일없이 놀고먹는 것도 힘들군.....큭, 내가 살던 곳은 뒤집어 졌겠지..... 계곡물에 쓸려가서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을 테니.....'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결국 잠이 들어 버렸다. . . .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니 침대 위에 앉아있는 누군가의 단단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오늘 이 곳에 들어온 자가 누구냐!" '티폰....?' "시온님이 드셨습니다" 맞은 편에 있는 녀석은 티폰의 등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케레스인 듯..... "그 녀석이 루베라에게 손을 댄 거냐....." 감정이 실리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 이 자식이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 곳엔 시온하고 케레스 밖에 없었는데...? 정말 그 주술이란 게 사실이었단 말야? 그럼 시온 녀석이 키스한 것까지 느꼈단 소리....? 큭, 기분 더러웠겠군.........이 빌어먹을 자식, 내일 두고보자!! 두 배 가지곤 모자라.....!!' 케레스가 대답 없이 조용한 틈을 타 눈앞에 보이는 티폰의 옷자락을 쥐었다. "티폰....?" 케레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던 티폰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본다. 매혹적인 붉은 눈으로 잠시 내 눈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물러가라....." "예" 케레스가 기척 없이 조용히 방에서 나가자 어색한 침묵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결국 그렇게 한참동안 누워서 녀석을 바라보다 슬그머니 옷자락을 놓고 벌떡 침대 위에서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욕실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하아.....도대체 날 보고 어쩌란 소리야......' 욕실에 쭈그려 앉아 한숨만 쉬어대다 이왕 들어온 김에 몸이나 씻고 일찌감치 잠이나 자야겠단 생각에 옷을 벗기 시작했다. "젠장, 무슨 옷이 이렇게 복잡해?!!!" 아침에 티폰이 걸어놓은 루비 장식을 모두 떼어내고 복잡하기만 한 옷을 겨우 다 벗어버린 후 따뜻한 탕 속에 몸을 담갔다. 비가 와서 그런지 약간 서늘해진 공기에 몸이 떨리자 뜨거운 물 속에 어깨까지 푹 담그고 욕실 위쪽에 난 창을 통해 밤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비가 그쳤는지 구름이 걷혀 수도 없이 많은 별들이 눈에 쏟아져 들어온다. 시리도록 하얗기만 한 보름달은 어쩐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달보다 훨씬 커 보인다. 전에 봐왔던 보름달이 50원 짜리 동전만 하다면 이곳의 달은 500원 짜리 만 하다. 달을 보면서 동전을 떠올리는 자신이 우스워 피식 웃다가 눈을 돌리니 까만 색 비단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밤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의 밤하늘은 유난히 아름답다....... 까만 하늘도..... 반짝이는 별들도.... 시리도록 차가운 빛을 뿜어내는 커다란 달도..... 그렇게 한참을 넋을 잃은 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욕실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성큼 걸어들어 왔다. '헉, 저 자식이 왜......이 씹, 매너 없는 자식!! 내가 있는지 뻔히 알면서!!' 수증기 사이로 녀석의 붉은 머리칼이 보이자마자 얼른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자식, 여자들이 씻겨주는 거 아니었어?!!' 바닥에 옷자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온몸이 확 붉어져 슬금슬금 구석으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젠장, 내가 왜 저 녀석을 의식하는 거야?' 균형 잡힌 녀석의 탄탄한 몸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화들짝 놀라 고개를 푹 숙이고 수증기가 올라오는 물만 바라봤다. 녀석이 물 속으로 들어오는지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긴장한 채 한동안 앉아있다 벌떡 일어나 탕 밖으로 나와버렸다. 몸을 씻지도 못한 채 녀석에게서 등을 돌리고 욕실을 나가려 발을 내딛는 순간 발목을 감아오는 손길에 그 자리에서 딱 굳어버렸다. '뭐....뭐야......'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석상처럼 굳어있는데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앉아...." '왜??!!!!!!!' 속으로 절규해 보지만 이 녀석한테 물어봤자 분명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명 한참동안 썰렁한 침묵을 유지한 채 벌거벗고 이렇게 서있어야 할게 틀림없다. '젠장, 이 자식은 왜 이렇게 말을 짧게 하는 거야? 게다가 하는 말마다 명령조에 이유는 절대 말 안 하지!!' 골이 잔뜩 난 얼굴로 궁시렁대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자 녀석이 다가오더니 하얀 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분홍빛 가루를 묻혀 거품을 낸 후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응? 뭐야, 갑자기....' 장미향 같기도 한 꽃내음이 콧속으로 확 파고든다. 진하게 베어 나오는 향기에 정신이 멍해져 가만히 앉아있자 등과 팔을 다 닦고 앞쪽으로 와 가슴과 복부를 문지른 후 아래로 손을 미끄러뜨리자 정신을 확 차리고 녀석의 손목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내가 할거야....!!" 녀석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재빨리 손에서 천을 낚아채 몸을 닦아내고 물로 헹군 후 타월로 쓰이는 하얀 천 한 장을 겨우 챙겨들고 후다닥 욕실을 나와버렸다. 물방울을 다 털어 내고 까만 머리카락을 대충 말리자마자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얼굴을 구겼다. '젠장, 옷이 없잖아....!!!' 입고있던 옷은 욕실에 있으니 다시 들어갈 수도 없고 손에 들려있는 건 달랑 물기가 묻어있는 타월 한 장....... 넓은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봐도 옷은 모두 여자들이 어디선가 들고 오니 방안에 있을 리도 없다. 할 수 없이 벌거벗은 채로 침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열리더니 티폰의 욕실 시중을 들러 왔는지 시녀들이 욕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젠장, 이 꼴로 침대 안에서 옷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시트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한참동안 그렇게 누워있었다. 비가 와서 눅눅해야 할 텐 데도 뭘로 만들었는지 침대 안은 뽀송뽀송하고 따뜻해서 기분이 좋다. 슬금슬금 잠이 오려던 찰라 다시 여자들이 나가는지 옷깃 스치는 소리가 들려오고 침대 곁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얼른 침대 끝으로 달아났다. 엄청나게 넓은 침대 덕분에 녀석과 부딪칠 염려가 없다는 것에 안도하며 본격적으로 잠을 자려고 자리를 잡는데 뒤에서 다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녁 식사는......" 그러고 보니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냥 잘래....." 점심때 엄청 먹어대 배가 고프지 않아 일찌감치 저녁은 생각도 안 했기 때문에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하고 가만히 고개를 휘젓자 녀석이 침대 안으로 들어오는지 침대가 잠시 출렁거린다. 분명히 혼자 자는 게 익숙할 텐 데도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묘하게 안심이 된다. 부드러운 시트를 끌어안고 잠에 빠져드는 순간 뒤에서 갑자기 강한 팔이 허리를 휘감아 몸을 끌어당겼다. 눈 깜짝할 새 반항도 하지 못하고 녀석의 품속으로 끌려 들어가 몸이 녀석 쪽으로 돌려졌다. 감고있던 눈을 번쩍 뜨니 녀석의 단단한 가슴이 눈에 들어오고....... 긴장한 채 몸이 굳어 그렇게 녀석의 품에 안겨있었다. 이 곳에 남는 대신....... 녀석의 곁에 있는 대신..... 녀석에게 안기겠다고 이미 약속해 버렸다. 게다가 지금은 둘 다 알몸인 채 끌어안고 있으니......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오던 잠도 확 달아나 버리고 녀석의 품안에서 벗어나려고 바르작거려 봐도 더욱 팔에 힘을 줘 잡아당긴다. 결국 그렇게 붙들려 꼼짝도 못한 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길 한참....... 다른 움직임이 없자 슬슬 긴장이 풀리면서 다시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 . .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 것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주위가 캄캄해진 한밤중.... 변덕스런 날씨가 다시 비를 뿌리기 시작했는지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인다. 몸을 흠칫 떨었다. 이런 날씨는 질색이다. 비가 내려 차가워진 밤공기가 콧속으로 파고든다. 다시 천둥소리가 들리고 번개가 치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이렇게 폭우, 천둥, 번개....3박자가 척척 맞는 날씨가 되면 몸이 먼저 반응해 공포에 떨어댔다. 지금까지 장마철에 이런 날씨만 되면 차가운 골방에 혼자 누워 이불 속에 들어가 귀를 틀어막고 식은땀을 흘려대며 밤을 꼬박 지샜다. "헉!" 순간 넓기만 한 방안이 환해질 정도로 번개가 번쩍이고 대지를 갈라놓을 듯 커다란 천둥이 치자 몸이 격하게 떨리고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녀석의 품에서 몸을 말고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눈을 꼭 감아보지만 미칠 것 같은 공포와 떨림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언제 깼는지 티폰이 공포에 떨어대고 있는 내 몸을 흔들어대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눈앞이 새카매지면서 앞이 보이지 않고 무시무시한 천둥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만이 온 몸을 잠식해 들어갔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대고 싶지만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것은 거친 숨소리 뿐..... 심장이 터질 듯 빠르게 뛰고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떨려온다. 순간 따뜻한 느낌이 입술을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에 정신없이 그것에 매달렸다. 공포에 떨어대던 몸이 가라앉고 호흡이 잠잠해지자 새카만 어둠 속에 잠식돼 있던 의식을 끌어내듯 한참동안 입안에 머물러 있던 따뜻한 것이 서서히 떨어져나갔다. 천천히 눈을 뜨자 바로 앞에 녀석의 붉은 눈이 박혀들어 온다. "티....폰.....?" 다시 요란하게 천둥이 쳐 몸을 흠칫 떨자마자 뜨거운 입술이 목덜미를 따라 점점 아래로 미끄러진다. 다시 거칠어진 호흡에 들썩이는 가슴 위로 부드러운 입술이 닿고 까끌한 혀가 돌기를 쓸자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엇을 하려는 지 명백한 행위임에도 거부할 수가 없다. 지금 녀석을 밀쳐버리면 끔찍한 공포가 날 삼켜버릴 것만 같아서 몸 위로 퍼지는 따뜻한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녀석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지난번과는 달리 지독히도 부드럽고 느린 애무에 머릿속이 몽롱해지기 시작한 순간 다시 커다란 땅울림이 들려와 흠칫 몸을 굳히자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집중해...." "흐윽...."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격한 느낌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시선을 내리자 어느새 커져버린 내 것을 입안에 삼키는 녀석이 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 경악을 금치 못한 채 녀석을 떼어내려고 머리카락을 휘어잡자 페니스 뿌리를 손으로 자극하며 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성이 한방에 날아가 버릴 정도로 강한 쾌감에 숨이 멈추고 손끝이 떨려온다. "하앗......으응.....그..만......흑...." 녀석을 밀어내려고 뻗은 손이 허무하게 침대 위로 떨어져 시트를 움켜쥔다. "아.....아앗........" 입술로 압박해 빨아올리고 부드러운 혀로 귀두끝을 자극하자 신음소리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다. 열락에 들뜬 신음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귓가에 부딪치고...... 절정에 박차를 가하듯 빠르게 움직이자 참지 못하고 녀석의 뜨거운 입안에 쾌락의 결과물을 내보내 버렸다. 정신없이 헐떡이며 숨을 고르는 사이 애널 속으로 미끌거리는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파고들자 퍼뜩 몸을 굳혔다.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허벅지 안쪽을 가만가만 쓸어대면서 손가락을 하나씩 늘리더니 어느 지점을 익숙하게 꾹꾹 눌러대자 다시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대며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다. 민감해진 몸이 붉게 달아올라 열이 오르기 시작하자 손가락을 빼내고 하얀 다리를 벌리더니 애널에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은 녀석의 귀두 끝이 닿아온다. 순간 지난번에 느꼈던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 멍해졌던 머리에 정신이 확 돌아왔다. 지금까지 사라져버렸던 빗소리와 천둥소리가 다시 귓속을 파고들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어대는 손을 겨우 들어올려 눈앞에 보이는 녀석의 단단한 가슴을 정신없이 밀쳐냈다. "싫어!!! 하지마......." 미친 듯이 버둥거리는 동안 번개가 주위를 환히 밝히고..... 순간 공포에 떨어대는 날 보며 붉은 눈동자에 고통이 스쳐 지나가는 게 언뜻 눈에 들어왔다 사라진다. '왜..........?' 이어서 고막을 찢어버릴 듯 파고드는 천둥소리에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한 채 미친 듯이 귀를 틀어막자 어느 샌가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순간 귀를 막아버린 내 손을 녀석의 따뜻한 손이 감싸오더니 뜨거운 입술이 맞닿아온다. 따뜻한 혀가 부드럽게 입안으로 파고들어 내 혀를 쓸고 각도를 바꿔가며 입안을 자극하자 격하게 뛰어대던 심장박동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고..... 부드러운 키스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녀석이 내 허리 쥐고 다리를 벌려 조심조심 안으로 파고든다. 내벽을 채워 가는 뜨겁고 단단한 페니스의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약간 들어올리자 뿌리 끝까지 내부에 밀어 넣고 내 몸을 꼭 끌어안는다. 녀석이 이마를 붙이고 감고있던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올리자 피처럼 붉은 심홍색 눈동자가 심장에 박혀들었다. 맞닿은 가슴을 통해 두 개의 심장 소리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화음과 귓가를 울리는 뜨거운 숨결이외에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또한 루비처럼 빛을 뿌리는 매혹적인 눈동자 뿐...... 거칠어진 호흡이 잦아들고 떨리던 몸이 잠잠해지자 허리 아래로 손을 넣어 늘씬한 허리를 휘어감고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상체를 일으키며 움직이는 녀석의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가늘게 떨리던 입술을 비집고 자극적인 신음이 흘러나오자 달래주듯 부드럽게 움직이던 녀석이 천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아......아앗.......으응......." 머릿속을 모두 비워버릴 듯이 온 몸을 쾌락으로 채워가기 시작하고.... 힘없이 떨구어진 팔을 들어올려 녀석의 등뒤로 팔을 둘렀다. "하악....아......흑......티폰.......으응....." 헐떡이며 무의식적으로 이름을 부르자마자 더욱 강하게 파고든다. 녀석이 밀어붙일 때마다 이성이 죽어가고 본능만이 내부에서 날뛰어댄다. 거친 듯 하면서도 부드러운 움직임에 온 신경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다. 그렇게 한참동안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의 쾌락에 몸부림치다 내 허리를 들어올리고 깊숙이 파고든 녀석이 내부에 뜨거운 기운을 퍼뜨리자마자 몸이 늘어져버렸다. 그렇게 격하게 움직여대서인지 끊어질 듯 거칠어진 호흡이 잦아들자 피로가 몰려와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희미한 시야를 뚫고 아직도 내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날 끌어안고 있는 녀석의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겨우 들어올려 피처럼 붉디붉은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다 기절하듯 잠이 들어 버렸다. 눈을 번쩍 떴다. 찬 새벽공기가 얼굴에 닿아오지만 내 몸을 끌어안고 있는 따뜻한 몸 덕분에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어제 밤....... 아무리 공포에 정신이 나가있었다곤 하지만 녀석의 밑에서 그 난리를 쳐댄 것이 떠오르자 온몸이 붉어지고 머리가 텅 비어버려 한동안 그렇게 굳어있었다. 창피함에 녀석의 얼굴을 볼 용기도 나지 않는다. '어떤 표정으로 봐야하는 거야.......젠장!!!' 녀석의 품속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한참동안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어제 밤, 방법이야 맘에 들지 않지만 그 끔찍한 공포에서 끄집어내 준 것은 이 녀석.... 그렇게 정신없이 안아대는 바람에 주위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이 모든 힘을 소진해 버리고 죽은 듯 잠이 들었다. 덕분에 평소라면 공포에 떨었을 무디고 무딘 시간을 빨리 흘려 보낼 수 있었지만...... 녀석에게 그렇게 매달려버리다니...... '빌어먹을 날씨 때문에.....!! 무슨 날씨가 그렇게 변덕스러워? 젠장!!! 완전 애새끼처럼 이 자식한테 들러붙어선......씹....' 열심히 궁시렁대며 녀석의 탄탄한 가슴을 멀뚱멀뚱 바라보며 깨어있는데 순간 등을 부드럽게 쓸어대는 느낌에 놀라 눈을 들어 바라보니 차분히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다. '헉, 뭐.....뭐야?!! 언제 깬 거지....? 젠장, 내가 한 말 다 들은 거 아냐?!!' 놀라서 재빨리 눈을 내려버렸다. 너무 놀라서 그런지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한다. 귀까지 빨개져 고개도 들지 못하고 그렇게 숨죽이고 있자 조용히 등을 쓸다가 내 몸을 바짝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켜왔다. 귓가에 녀석의 가슴에 닿자 강하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려온다. '딱딱한 사내놈이 뭐가 좋다고 끌어안고 자는 거야? 그리고 왜 아무 것도 묻지 않는 거지.....?' 분명 어제 같은 발작을 해댔으면 궁금해서 물어봐야 하는 게 정상인데 아무 것도 묻지 않는다. '설마......전에 여기 있었을 때도 이런 건가......가만.....그러고 보니 내가 언제부터 이랬지....?!!' 이곳에 있을수록 의문만이 늘어간다. 기억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음에도.....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 결국 내 몸에 맞닿은 따뜻한 피부의 감촉과 주인을 닮은 강한 심장소릴 들으며 조용히 잠이 들어버렸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강한 햇살이 창을 뚫고 방안을 환히 비추고 있었고 밤새도록 내 몸을 끌어안고 있었던 티폰은 정무를 보러 갔는지 옆자리에 없었다. 이리저리 뻗은 까만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고개를 돌려보니....... '헉, 케레스? 왜 벌써부터 여기 있는 거야.....!!' 놀라서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니.... 시트가 흘러내리면서 드러난 몸엔 밤새 티폰에게 안겼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뭐.....뭐야....이게.....?!!' 눈을 크게 뜬 채 입까지 벌리고 멍하니 벗은 몸을 바라보다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케레스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여전히 침대 쪽에서 등을 돌리고 있긴 하지만....... 내가 깨어난 걸 눈치 챈 듯 하다. "케....케레스, 뒤돌아보면 죽어....!!" 한차례 경고를 하고 슬금슬금 침대 밖으로 나와 후다닥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씹, 빌어먹을 자식!! 깨워주고 가야할 것 아냐?!!!" 한참을 궁시렁대며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욕실에 있는 천으로 몸의 물기를 털어 낸 후 슬그머니 욕실 문을 열고 방안을 살펴보니 여전히 케레스는 석상처럼 침대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대충 들고있던 천으로 몸을 가리고 다시 침대 안으로 기어 들어가 시트를 몸에 감았다. '뭐야......?!! 그러고 보니 옷도 없잖아?!!' 시트를 몸에 둘둘 말고 케레스를 바라보니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 '저 자식, 인간 맞아? 어떻게 움직이지도 않냐.....입엔 풀을 발랐나 왜 저렇게 말이 없어?!!' 이것저것 잡다한 생각들을 끄집어내다 어제 한 말을 퍼뜩 떠올렸다. '씹, 설마 내가 어제 눈 마주치고 반말로 하지 않으려면 말도 걸지 말라고 해서 저런가.....' "케레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역시나 눈도 마주치지 않고 내 쪽으로 돌아서 고개를 숙인다. '저......고집불통....' "하아......졌다. 이제 반말하라고 안 할 테니까 대답 좀 해!!! 그리고 눈 정도는 봐줘야 예의 아냐?" 결국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본다. '와.....잿빛 눈동자도 꽤 예쁘네......' 그렇게 한참동안 서로 눈동자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티폰....은?" "잠시...." 케레스가 말하려던 찰라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티폰이 들어서고...... 케레스가 다시 황제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인다. '뭐야, 아직 간 게 아니었어?' 케레스를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티폰을 바라보자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잠깐동안 침묵이 흐르고..... 내게서 눈을 돌려 케레스를 서늘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침대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점점 가까워지는 녀석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는데 침대 위에 앉아 시트만 둘둘 말고있는 내 몸을 끌어당겨 가볍게 일으켜 세운다. '뭐야? 이 자식은 꼭 애새끼 다루듯이.....!!' 180이나 되는 내 몸을 아이 다루듯 번쩍번쩍 들어올려 하고싶은 대로 하는 녀석이 맘에 들지 않아 눈썹을 휘며 불만스런 눈으로 올려다보자 가볍게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대온다. 그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입술을 열어주자 거침없이 혀가 파고든다. 잠자코 키스를 받다가 이런 내 행동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놀라버렸다. 아무리 한 침대에서 자고 몸까지 내줬다곤 하지만 같이 지낸 지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 이런 반응이라니..... 믿을 수가 없다. 이 녀석이 내게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면 난 당연하다는 듯 그걸 받아들인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루베라 때문이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리려해도 이상하다..... 이런 건......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어느새 농도가 짙어져 가는 키스에 숨이 막히기 시작한다. 녀석을 밀어내지도 못하고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타액을 삼키다 갑자기 스친 생각에 몸이 딱 굳어버렸다. 이 방안엔 나와 녀석 이외에.....케레스가 있었다.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는 내 허리를 휘감아 밀착시키고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조용히 문이 열리더니 들어서는 건 옷인 듯 보이는 푸른색 천을 양손에 받치고 고개를 숙인 채 들어오는 시녀들......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티폰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케레스와 시녀들을 바라봤다. 시녀들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듯 테이블 위에 옷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천천히 물러났지만 잠시 후 다시 문 앞이 시끄럽더니 어제와 같이 다짜고짜 시온이 튀어 들어왔다. "헉...!!" 시온 녀석이 이 쪽을 보고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얼어붙어 있는 사이 티폰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입으로 내 입술을 막고 손을 시트 속으로 미끄러뜨려 양손으로 허리를 감아온다. 케레스야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시온은 그 자리에 딱 굳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리 손으로 밀어내도 떨어지지 않고 소릴 지르려 해도 입술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헉!' "하앗.......그만....아...." 갑자기 입술을 떼고 허릴 감고있던 손을 미끄러뜨려 엉덩이를 쓸더니 바로 민감한 허벅지 안쪽을 자극하는 바람에 신음이 튀어나와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자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뜨려 몸을 포개온다. 이미 시트는 침대 위에 깔려 알몸이 모두 드러났지만 몸을 겹쳐온 티폰의 새하얀 망토에 가려 다행히 뒤에 있는 녀석들에겐 보이지 않았다. "이 씹, 이게 무슨 짓이야?!!!! 아.......흑..........이 자식....!!" 녀석을 노려보며 잔뜩 잠긴 목소리로 소릴 치자마자 차가운 손으로 내 것을 움켜쥐더니 바로 목덜미에 입술을 찍어누른다. "아앗.....하....아...." 녀석이 노골적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지조 없는 몸이 흥분하기 시작하고 신음소리가 민망하게 새어나간다. 목덜미에 화인을 새기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 붉은 눈을 마주치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 "이 아이가 루베라란 걸 잊지 마라........" 뒤에 있는 녀석들에게...... 내게...... 마치 경고를 하 듯........ "물러가....." 말을 마치자마자 케레스가 고개를 깊숙이 숙인 후 뒤돌아서 방밖으로 나가고.... 이어서 시온이 화들짝 놀라 뒤따라 나가더니 문이 닫혀버렸다. "이.....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내가 장난감인줄 알아?!! 저리 비켜!!!!" 수치심으로 붉어진 얼굴로 녀석을 노려보며 가슴을 밀쳐내자 땡깡부리는 아이를 다루듯 가볍게 제압해 버리곤 다시 손을 움직인다. "하악.........아.......앗......." 이미 녀석의 자극에 반쯤 일어선 내 것을 쥐고 주물럭대는 통에 힘도 쓰지 못하고 녀석 밑에서 헐떡이며 바르작거리다 결국 녀석의 손에 사정을 하고 몸을 늘어뜨려 버렸다. 화도 내지 못한 채 나른한 눈으로 녀석을 노려보다 눈을 감아버리자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 온다. "넌 내 루베라다..... 잊지마..... 그 날과 같은 일이 다시 생기면....... 그땐..... 미쳐서 널 죽여버릴 지도 모르니까........ 눈감아 주는 건.....한번뿐이다..... 다음 번엔.....나도 어쩔 수 없어...." '그 날.......이라니.......' 심장은 아프도록 두근거리지만 머릿속은 희뿌연 안개가 낀 듯 가물가물 하기만 하다. 끝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지 부드럽고 새하얀 천으로 내 몸을 닦고 자신의 손을 닦더니 늘어져 있던 내 몸을 일으켜 시녀들이 두고 간 푸른 옷을 입혀주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녀석의 말에 복잡하게 엉켜 머릿속을 배회하던 생각들을 모두 털어 버리고 멍한 눈을 떠 녀석이 옷을 입히는 걸 자세히 바라봤다. 언제나 녀석의 손을 빌어 옷을 입을 순 없다고 생각해 그런 거지만....... 이 녀석......... 내게 이러는 것이 상당히 익숙하다. '설마 전에도 자기 손으로 이렇게 옷을 입힌 거야.....?!!' 녀석이 날 대할 땐....... 너무 조심스럽다. 정교한 도자기가 깨질세라..... 아니, 그것 보단...... 아이를 다루듯...... 밤에 포근하게 안아주는 것도..... 욕실에서 몸을 닦아주는 것도..... 이렇게 옷을 입혀주는 것도...... 구속의 주술 때문이라곤 하지만 타인이 내게 손대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마치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의지하도록..... 그렇게 만들어 버릴 것처럼..... 옷을 다 입히고 날 바라보는 녀석을 까만 눈으로 한동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오늘.....나가도 돼?" "황궁 내라면.....케레스를 데리고 가....그리고....궁내에서 마주치는 귀족들에겐 말을 걸지 마라..... 네게 손대는 자가 있으면 케레스가 다 처리하겠지만......이걸 가지고 있어....." 티폰이 내 앞에 내민 건 지난 번 녀석의 목을 겨눴던 붉은 루비가 박힌 곡도...... "원래부터 네 것이다....." '뭐?' 녀석의 말에 놀라 가만히 녀석의 눈을 닮은 붉은 루비를 바라보다 단검을 손에 쥐었다. "이번엔 다른 곳에 쓰지 말고..... 나 이외에 네게 손대는 자가 있으면 심장에 박아 넣어...." '응? 다른.....곳.....이라니....?' 의문 가득한 눈으로 올려다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가만히 얼굴을 쓸어보다 입술에 살짝 키스하고 뒤돌아서 방을 나가버린다. 잠시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는데 밖에서 기다렸는지 케레스가 무표정으로 들어오고 시온이 얼굴이 빨개진 채 날 바라본다. "뭐야....일부러 그렇게까지 할 필욘 없잖아!!" 시온이 뭔가 궁시렁대며 다가오더니 테이블 위에 털썩 앉는다. "그렇게 좋아? 넋이 빠져있게?" '씹, 뭐라는 거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녀석을 노려보자 얼른 시선을 돌리고 딴청을 피워댄다. '배짱도 없는 주제에 뭘 믿고 자꾸 개기고 지랄야?!!' "이 씹, 빨리 내놔! 3배로 내놔!!! 내가 니놈 때문에 어제....!!" 어제 이 자식 얘기가 나오는 걸 멈추려고 티폰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려고 욕실로 도망쳐 몸까지 씻겨진 걸 떠올리자 이가 부득부득 갈린다. "응? 어제 뭐?" "닥쳐!! 어제 얘긴 꺼내지도 마!!!" "자기가 먼저 꺼내놓곤......@#$$%#@" "뭐야?!!!" "아....아냐, 근데 왜 갑자기 또 3배야?" "이 바보 자식, 니가 어제 말한 그 구속의 주술인가 뭔가가 사실이었던 거 같아....." "헉, 그럼 폐하가.......다 알고 있었단 말야?!!" "그래, 멍청아! 어젠 내 덕에 얼렁뚱땅 넘어갔으니까 빨랑 3배!!" "얼렁뚱땅 넘어간 게 오늘 이 꼴이야?!!!" "이 씹,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닥치고 내놓기나 해!!!" 갑자기 소릴 꽥 지르자 흠칫 놀라더니 얼른 품을 뒤적여 단검을 하나 꺼내놓는다. "뭐야?!!!" "그게 그냥 보석보다 더 비쌀걸!!" "응?" 자세히 살펴보니 티폰이 준 단검과 비슷한 곡도지만 손잡이 모양도 약간 다르고 검신에 엄지손톱 만한 푸른 사파이어가 열을 지어 박혀있다. 티폰이 준 루비가 박힌 단검은 딱 봐도 살상용인데 비해 이 단검은 날카롭긴 하지만 장식용 같은..... 티폰에게 받아 품에 넣어뒀던 곡도를 꺼내 비교해 보자 길이도 거의 비슷하고 색도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완벽한 대조를 보인다. 두 자루 다 말이 단검이지 거의 30Cm정도 되는 날이 휜 곡도였다. '비슷....하잖아?' "너.....그 단검...!!" "응? 왜?" "폐하께서 주신 거야?" "응...." "그거....왕실 보물 중 하나야...." "뭐?" '그런데.....왜 이게 예전부터 내 거라는 거지.....' "그럼, 이 단검은 뭐야?" 시온이 준 단검을 살펴보며 말하자 녀석이 씨익 웃더니 말을 잇는다.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동맹국 황궁에서 친구녀석이랑 슬쩍했지....그것도 그 나라 보검이야" "뭐?!!" 무심코 던지는 말에 깜짝 놀라 녀석을 바라보니 빙글거리기만 할 뿐 말은 않는다. '이 자식, 설마 장물을 나한테 넘기는 거냐.......' "그러고 보니 그 두 자루......꼭 한 쌍 같네....사실 내가 준 검은 똑같은 걸로 하나 더 있어! 다른 하나는 그 나라에 있는 내 친구놈이 가지고 있지..." "난 이런 칼 같은 거 필요 없어!! 쓸 줄도 모른단 말야..... 뭐야? 폼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어디에 팔아먹을 수도 없고.... 아, 케레스!! 혹시 단검 쓸 줄 알아?" 퍼뜩 스치는 생각에 케레스를 바라보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잘됐네!! 이럴 때 놀지 말고 나도 한 번 배워볼까? 나 좀 가르쳐 줘!!" "뭐? 너 검술이라도 배우려고?!!" "응...." "상처라도 입으시면...." "괜찮아!! 가르쳐줄 거지? 킥, 대신 보답으로 너한텐 융통성이란 걸 가르쳐 줄게!!" 곤란한 표정의 케레스를 바라보자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온다. "좋아!! 그럼, 배우는 건 오후에 하고 오전엔 황궁탐험이다! 가자, 케레스!! 아, 참!! 밥은 먹고 가야지!!" 대충 앞으로의 하루 일과를 정해놓고 만족스런 미소를 띄자 시온 녀석이 맞은 편에서 뻥찐 얼굴로 바라보며 입을 연다. "융통성이 아니라 교활을 잘못 말한 거 아냐? 글구 뭐....? 무슨 탐험? 얘냐....." "닥쳐......" -티폰- 그날........ 그 아이가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난 날...... 호위병들을 모두 물린 채 황궁을 둘러싸고 있는 숲으로 말을 타고 들어와 사냥을 하다 습격을 받았다. 상대는 넷...... 철저히 훈련받은 자객이었다. 분명 내 배다른 형제인 슈안과 후궁들이 보낸 거겠지..... 우유부단한 현 황제의 뒤를 잇기 위해.... 몸이 잘려 바닥을 뒹굴고 있는 시체들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다 마지막으로 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녀석의 목에 날카로운 검을 박아 넣자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피가 확 뿜어져 나온다. 이걸로 다섯 번째.... 황제가 쇠약해져 갈수록 박차를 가하듯 암살을 시도하는 횟수가 늘어만 간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없애버리려는 속셈이겠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모두 죽여버릴 테니...... 그렇게 포위망이 좁혀들기 시작하자 아직 철없는 친동생은 몸이 약하다는 핑계를 들어 황제께 간언해 의료기술이 발달해 있는 동맹국에 보내버렸다. 이제 남은 건 쇠약해진 황제가 쓰러지길 기다리는 것 뿐....... 아무 감정도 실리지 않은 싸늘한 눈으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돼 굴러다니는 시신들을 잠시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카메나이라 불리는 작은 호수에 도착해 말을 적당한 곳에 매어둔 후 피에 젖은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몸을 씻어냈다. 주위에 어둠이 깔리고 커다란 달이 차가운 빛을 뿌리며 작은 호수를 은은하게 비추기 시작하자 호수 위에 달빛이 반사돼 마치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름다운 주변 정취에 취해 가만히 물 속에 서서 하얀 달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수풀 속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재빨리 벗어놓은 옷 위에 올려놓은 검을 쥐고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또 자객.....인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한 곳만을 바라본 지 한참....... 수풀을 헤치며 작은아이가 튀어나왔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놀란 듯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밤하늘같이 새까만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굳어 있다가 호수가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연인들이 함께 몸을 씻으면 평생 행복할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카메나이 호수........ 가끔씩 그 전설을 믿는 녀석들이 황궁이 있는 이 숲의 호수까지 숨어 들어오긴 하지만..... 이런 아이가 왜 혼자....... 숨쉬는 것마저 잊고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넋을 잃고 바라보다 아이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선으로 움직임을 쫓았다. 기이하게 온 몸에 갈색 가루를 뒤집어 쓴 채 콜록거리며 호숫물에 손을 뻗으려던 찰라 앞으로 쓰러져 버리는 아이를 보고 평소완 다르게 앞 뒤 생각지도 않고 얼른 검을 내려놓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고른 숨을 내쉬고 있는 녀석을 뒤집어 보자 자고있는 듯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다. '잘못....본 건가....까만 눈동자가....있을 리가...' 아이의 몸에 들러붙은 가루를 손에 약간 묻혀 냄새를 맡아보니..... 이 숲에서만 볼 수 있는 마비와 수면효과가 있는 훙구라는 버섯의 가루..... 숲을 헤매고 다녔는지 단정한 이마엔 땀이 베어있고 옷 여기저기에 나뭇잎과 흙이 묻어있다. 황궁 안에 있는 숲에 이런 아이가 돌아다닌 이유따윈 꾹꾹 눌러두고 평소와는 다른 심작박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한참동안 바라만 보다 손을 뻗어 지저분해진 아이의 옷을 천천히 벗겨 내렸다. 이상하게도 한번도 본적 없던 옷을 겨우 벗겨내고 물 속으로 끌어당겨 버섯가루를 뒤집어 쓴 아이의 얼굴과 머리카락을 씻어내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한참동안 손을 멈춘 채 물 속에서 갈색가루를 떨어내고 확 퍼져있는 까만 머리카락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손을 뻗어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보고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내자 까만 눈썹 아래 단정하게 퍼져있는 까만 속눈썹이 눈에 들어온다.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선이 예쁜 분홍빛 입술이 도드라져 보인다. 얼굴을 가만히 쓸어보다가 투명한 물방울이 맺혀있는 입술에 충동적으로 입술을 포갰다. 부드러워서 녹아버릴 것만 같은 입술을 가만히 핥다가 조심스럽게 입술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따뜻한 혀를 휘감았다. 한참동안 그렇게 목이 마른 듯 아이의 입술을 탐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입술을 떼자 오랫동안 호숫물에 담가져있던 몸이 식어 무의식중에도 추운지 오돌오돌 떨며 내게 달라붙는다. 아이를 안고 물 밖으로 나와 대충 물기를 털어 내고 옷을 입은 후 아이가 입고있던 이상한 옷은 버려 둔 채 망토로 하얀 몸을 싸서 품에 안아 말에 올랐다. 궁에 도착하자마자 품에 안긴 녀석의 까만 머리카락과 하얀 얼굴을 망토로 완전히 가려버리고 바로 방으로 향했다. 망토에 쌓인 녀석을 의아한 시선으로 흘끔거리며 여기저기 피가 튄 내 옷을 보곤 호들갑을 떨어대는 시녀와 호위들을 다 물려버린 후 조심스럽게 아이를 침대 위에 눕히고 그렇게 가만히 바라만 봤다. 나보다 세 네 살은 어려 보이는 외모에 키는 내 어깨에 닿는다. 달빛 아래서 본 것보다 훨씬 짙은 까만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푸른빛을 띌 정도로 새카만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자 드러나는 아름다운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이상하다........ 평소와는 다른 심장박동도..... 이 녀석에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시선도........ 자꾸 만지고 싶어 녀석에게 뻗어 가는 이 손도..... 분명 평소의 나였으면 수상한 녀석 따위 바로 잡아서 지하감옥에 쳐 넣은 후 고문으로 한밤중에 그런 곳에서 헤매고 다닌 이유부터 캐내었을 텐데...... 방금 만났을 뿐인 이 녀석한텐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만 하고 있다. 만약 이 아이가 적이 보낸 자객이었으면 바로 목이 달아났을 정도로 무방비한 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가만히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보다가 옷을 벗고 아이의 옆에 누워 꼭 끌어안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체온에 기분이 좋아진다. 어쩐지 아이의 현실감 떨어지는 외모에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꼭 끌어안아 품에 넣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는지 품에서 버둥거리는 녀석을 쌔게 끌어안자 잠잠해 지더니 품속에서 날 올려다본다. 역시 어제 밤에 본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윤이 나는 까만 눈동자에 붉기만 한 내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한참동안 아이를 바라보다 이것저것 물어본 결과 알아낸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왜 밤중에 숲 속을 헤매고 있었는지 조차..... 기억하고 있는 건 자신의 이름 뿐... 이전의 기억은 몽땅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하류라는 아이의 이름만 겨우 알아냈는데 그 이름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정확한 녀석의 이름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이는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에 잠시 놀란 듯 했지만 기억을 모두 잊어서인지 불편해하진 않았다. 나중에 의사에게 보이니 태어날 때부터 벙어리였던 게 아니라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나을 수도 있고 아니면 평생을 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지만 그리 신경 쓰진 않았다. 사실 내게는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니까..... 그런 건...... 내 귓가에 대고 사랑한다고 속삭일 정도만 되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아일 손에 넣고싶었다. 푸른빛을 띌 정도로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밤하늘을 담고 있는 눈동자를 지닌 이 아일..... 오히려 녀석의 기억이 완전 백지란 것이 내겐 행운이라 생각했다. 갈곳도 의지할 곳도 없었던 녀석은 작은 동물이 태어나자마자 본 것을 자신의 어미라고 생각하듯 기억을 잃고 처음 본 내게 모든 걸 의지해 왔으니까...... 하지만.... 그땐 행운이라 생각했던 것이 후에 악운으로 흐르게 될진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이를 황궁으로 데려온 이후...... 일년이 흘렀다...... 하류가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방에 드나드는 시종들의 입을 철저히 단속하고 녀석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도 내 침소와 황궁 안에 있는 작은 정원으로 한정지었지만..... 궁 안의 수많은 눈과 입을 모두 막아낼 수는 없었다. 1년이 한계였던 듯 하류에 대한 소문이 황궁 안에서 일파만파로 번지기 시작하자 평소엔 내 침소에 얼굴도 디밀지 않았던 슈안이 뻔뻔스럽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내가 없었으면 다음 대 황제가 되었을 지도 모를 녀석..... 날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날 찾아올 때마다 하류의 모습을 보는 녀석의 눈빛은 점차 욕정과 탐욕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내 뒤에 숨어서 신기한 듯 슈안을 바라보는 하류의 눈빛은 호기심....... 1년 동안 황궁의 시종들만 상대해 온 하류로선 황제의 후궁인 어머니를 닮아 옅은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한 슈안이 신기해 보였을 지도 몰랐지만 그 위험성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뱀같은 녀석은 내게 수많은 자객을 보내오면서도 꼬리 한번 잡히지 않은 교활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고 암암리에 녀석을 지지하는 귀족들이 있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하류를 바라보는 녀석의 탐욕스런 눈동자를 파내 버리고 녀석을 향한 하류의 까만 눈동자를 가려버리고 싶었다. 호기심이 다른 감정으로 바뀔게 무서워........ 하류를 이곳에 데리고 온 이후 밤마다 품안에서 떼어놓지 않고 꼭 끌어안은 채 잠을 잤다. 내게 모든 것을 의지하던 녀석은 아무 의심도 없이 이렇게 내 품안에서 잠들어 있지만 언젠가...... 의문이 생겨버린다면....... 이 품을 벗어나려 할 게 자명하다. 아이를 데려온 후 얼마 되지 않아 황제와 친분이 있던 권세 있는 귀족가와의 약혼도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렸다. 황궁 내에선 이 아이가 내 잠자리 상대라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이 아일 상대로 욕정을 푼 적은 지난 일 년간 한 번도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갖고 싶긴 하지만 지금까진 키스와 밤에 안고 자는 정도..... 두 살 차이라지만 아직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고 순진한 녀석을 강제로 손에 넣고 싶진 않았다. 그렇기에.....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조바심이 드는 건지도 모른다. 날 믿고 따르지만 그 이상의 감정이...... 내가 녀석에게 바라는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까맣기만 한 눈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저 날 어미 새 같은......보호자로만 보고있을 지도 모른다. 내게 모든 걸 기대오는 녀석을 보면 한편으론 안심이 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연인이 아니라 부모를 보는 눈으로 바라볼까 불안했다. 그렇게 불안이 누적되어가고 슈안의 행동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간 침소 바깥엔 시종들이 안절부절못하고..... 날 보더니 공포에 몸을 떨어대는 게 수상해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간 방안엔 슈안이 하류의 몸을 구속한 채 키스를 해대고 있었다. 순간 몸 속의 피가 모두 얼어붙어 가는 것만 같았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녀석의 밑에 깔려 키스를 받고있는 하류를 보고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 거칠게 슈안을 하류에게서 떼어내고 가지고 있던 단도를 어깨에 박아버리자 방안에 고통에 찬 비명이 울린다. 슈안을 방밖으로 끌어내 바닥에 던져버린 후 침소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과 시종들의 목을 그 자리에서 베어버렸다. 슈안이란 녀석도 왕족인 자신에게 그렇게 간단히 칼을 들이댄 데 놀랐는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날 바라본다. 피에 젖은 검을 들고 미친 듯이 뒷걸음질치는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가 검을 들어올리는 순간 내 옷자락을 누군가 다급하게 잡아온다. 분노로 짙어진 붉은 눈동자에 들어온 건 겁에 질려 흔들리는 까만 눈동자.....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녀석의 앞에서 이렇게 잔혹하게 날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목이 달아나 버린 시체로 눈을 돌리려던 녀석의 눈을 가려버리고 겁에 질린 슈안 녀석을 돌아보며 싸늘하게 씹어뱉었다. "또다시 내 것에 손대면 죽이겠다......." 주춤주춤 물러서는 녀석을 죽일 듯 노려보다가 하류를 데리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차피 살려두는 것도 잠시다. 얼마안가 잔혹하게 죽여줄 테니........ 그때까진 마음껏 날뛰어봐..... 눈을 돌려 하류를 바라봤다. 이대로 두면 또 누군가가 녀석에게 손을 댈지도 모른다. 원래대로라면 황제가 된 후에 정식으로 루베라를 새기려 했지만...... 생각에 잠긴 날 가만히 바라보는 녀석에게 고개를 숙이자 스륵 눈을 감는다. 분홍빛 선이 예쁜 입술을 살짝 빨다가 혀를 넣어 부드러운 녀석의 혀를 휘감았다. 점점 깊어지는 키스에 호흡이 가빠져오는 게 느껴진다. 1년 동안 약간 키가 커 소년티를 내고 있는 녀석의 몸을 가볍게 들어올려 침대 위에 눕혀 옷을 벗겨 내리자 커다랗게 뜬눈으로 날 바라본다. 평소 키스만으로 끝내던 내가 다른 행동을 하기 시작하자 당황한 듯 잠깐 버둥대다가 잠잠해 졌다.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옷을 벗겨내자 드러나는 하얀 몸에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르자 내가 뭘 하려는 지도 모르고 몸을 붉힌 채 재빨리 시트로 몸을 가린다. 녀석의 앞에서 화려하기만 한 옷을 벗어 내리자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붉어진 얼굴로 내 벗은 몸을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에 열이 오르기 시작해 바로 녀석의 몸을 가린 시트를 밀어내고 하얀 몸 위에 내 몸을 겹쳤다. 내 밑에서 바르작 거리는 몸에 입술을 미끄러뜨리자 퍼뜩 놀라 움찔거리더니 자극으로 붉어진 입술을 비집고 불규칙한 호흡이 흘러나온다. 비단같이 하얀 피부가 너무 부드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몸 여기저기에 붉은 자국을 새겨 넣고 반쯤 일어선 녀석의 중심을 입안에 삼키자 놀라 버둥거리는 몸을 한동안 붙들고 가만히 손으로 허벅지를 쓸어주자 반항을 멈췄다. 녀석이 날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까지 그렇게 만들어 왔으니까..... 뭐든지 내게 매달리도록....... 천천히 혀와 입술을 움직이자 흐느끼는 듯한 소리 없는 신음이 귓가를 스친다. 부드럽게 입술로 조이고 혀로 귀두 끝을 자극하자 처음이라 그런지 바로 사정을 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몸을 늘어뜨리는 녀석에게 가볍게 키스한 후 짙은 향기가 나는 오일을 애널 안에 흘려 넣었다. 놀라서 뒤로 물러나는 녀석을 꼭 붙들고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를 해가며 달랜 후 좁은 애널 안으로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내벽을 넓히면서 느낄 수 있는 지점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더듬어 미끌 거리는 오일을 발라주고 한번씩 마찰해 주자 어느 지점에서 하얀 몸이 반응을 하며 흠칫 몸을 떨어온다. 손가락을 하나씩 늘려가며 계속해서 그 부분만 마찰해 주자 소리 없이 하얀 목이 휘고 호흡이 점점 거칠어져 간다. 녀석의 따뜻한 몸 속으로 당장이라도 파고들고 싶은 욕구를 겨우 억누르고 다시 녀석의 위로 올라와 가늘게 떨고 있는 몸을 꼭 끌어안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내 것이 되라..... 너에게 내 루베라를 새겨주겠다. 허락한다면..... 평생 내 루베라를 받은 사람은 너 뿐일 거다....." 초조하게 하류의 대답을 기다렸다. 쾌락에 젖은 까만 눈동자로 날 잠시 바라보더니 허락을 하듯 눈을 감는다. 붉어진 녀석의 몸을 꼭 끌어안고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를 하다 서서히 뜨거운 내부로 파고들었다. 절대 들어갈 수 없을 것처럼 작아 보이던 애널을 벌리고 거대한 귀두끝이 파고들자 까만 눈이 크게 뜨여지고 하얀 가슴이 거칠게 들썩이기 시작한다. 한번도 다른 것을 받아들여 본 적이 없던 내부가 갑작스런 침입에 놀라 채 반도 들어가지 못한 페니스를 조여대기 시작하자 이성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짐승처럼 범해버리고 싶은 욕구를 겨우 누르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뿌리 끝까지 밀어 넣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쉴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떨어대는 녀석의 따뜻한 몸 안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정신없이 내 등뒤로 하얀 팔을 휘감아 온다. 아까 녀석이 느끼던 부분만 정확히 밀어붙여 마찰을 하자 신음을 흘릴 듯 입을 벌려오지만 나오는 건 숨죽인 거친 호흡 뿐...... 순간 뜨겁게 조여대는 내부에 지금껏 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놔 버렸다. 서서히 파고들던 움직임이 점점 빨라지고 강하게 밀어붙일 때마다 재촉하듯 내 몸을 꼭 껴안는 녀석에게 그 동안 참아왔던 욕정을 모두 쏟아 부어 버렸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아 격한 행위에 힘이 소진되어버린 몸을 붙들고 몇 번이나 절정에 올랐다. 그렇게 정신없이 녀석의 몸을 탐하다 퍼뜩 이성이 돌아왔을 땐 녀석은 이미 지쳐 기절한 상태였고 누구도 손대지 않은 하얗고 순결했던 몸은 이제 확실히 내 것이라는 증거를 보여주듯 붉은 화인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힘겹게 녀석의 몸 속에서 빠져 나와 녀석을 끌어안고 욕실로 들어가 깨끗하게 씻긴 후 침대 위에 눕혀주자 지친 듯 미동도 없이 규칙적인 숨만 내쉬며 잠들어있다.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다 떨어져 있는 옷안을 뒤져 금으로 세공 된 상자 속에서 피처럼 새빨간 침 하나를 꺼내들었다. 가늘기만 한 침 주위엔 주술인 듯 알 수 없는 문자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황제만이 가지고 있는 이 물건은 루베라를 새길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얼마 전 황제에게 물려받아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만 가지고 있었다. 루베라를 새기기 위해 바로 누워있는 하류에게 다가가자 불편한 듯 몸을 뒤집는다. 엎드려있는 녀석의 하얀 등을 잠시 바라보다 심장이 뛰고있을 왼편 견갑골에 붉은 각인을 새기기 시작했다. 따끔거리는지 몸을 움찔대는 녀석의 등에 달래듯 키스를 하며 루베라를 다 완성시킨 후 붉은 침으로 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 녀석의 등에 새겨진 루베라 위에 떨어뜨렸다. 하얀 등에 새겨 넣은 루베라를 따라 방울방울 맺혀있던 녀석의 붉은 피와 내 핏방울이 섞이자마자 순식간에 루베라 속으로 파고들더니 완벽하게 붉은 각인이 새겨진다. 하얀 등에 새겨진 루베라 위에 입술을 묻고 조용조용 키스를 하다가 잠이 들어버린 하류의 몸을 돌려 품에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 . . 그렇게 하류에게 루베라를 새긴 후 슈안은 내 침소에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단검을 박아 넣은 것도 충격이었겠지만, 이 아이에게 손대면 변명의 여지도 없이 내가 황제가 되기도 전에 죽게될 거란 걸 알기 때문이겠지..... 아직은 어느 누구에게도 이 아이에게 루베라를 새겼단 걸 공표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황제가 된 후 정식으로 치루어질 일..... 황제가 아니라 황태자가 새긴 루베라라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황제가 된다면...... 어느 누구도 감히 황제의 루베라를 넘보지 못할 거다..... 내 곁에 누워 까만 눈으로 가만히 날 바라보고 있는 하류의 머리카락을 쓸다가 침대 위에서 일어나 옷자락에서 은색 빛을 뿌리는 곡도를 빼들었다. 붉은 루비가 박혀있는 이 단검은 대대로 황가에 내려오는 보물 중 하나..... 단검을 하류의 손에 꼭 쥐어주고 입을 열었다. "나 이외의 다른 자가 네게 손대면 심장에 박아 넣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단도에 박힌 루비를 빤히 바라본다. 황제의 병환이 악화되어 갈수록 슈안의 세력들은 점점 초조해 하고 있었다. 이대로 황제가 죽어버리면....... 자신들도 슈안과 같이 처참하게 죽어갈 테니까...... 만일을 위해서다..... . . . 그렇게 칼날 위에 서있는 듯 하루하루를 긴장으로 보내고 있었지만...... 밤에 하류를 안을 때면 형편없이 풀어져버리는 내 자신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정신없이 하류를 안고 무방비하게 잠이 들어버린 밤....... 기분 나쁜 자극에 퍼뜩 눈을 뜨자 옆에 하류가 없다..... 섬뜩한 느낌이 몸을 타고 올랐다. 분명 내 몸에서 느껴지는 자극이 아니다. 누군가 녀석을 만지고 있는 거다.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둘....? 셋....인가....?' 소리 없이 베개 밑에 손을 넣어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상대가 침대로 다가와 검을 높이 들어올린 순간 몸을 일으켜 검을 깊숙이 복부에 박아버리고 차례로 날카로운 단도를 들이대는 녀석들을 베어 넘겼다. 이미 바닥과 침대는 쏟아진 내장과 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서둘러 문 밖으로 나가보니 병사들이 죽어있다. 자꾸만 강해지는 몸의 자극에 터져 오르는 분노를 겨우 누르고 황궁 안을 미친 듯이 헤매다 발길이 멈춘 곳은 황제의 침소...... 약간 열린 문의 틈새로 보이는 방안의 광경에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버렸다. 황제가 누워있던 침대 위는 이미 온통 붉은 피에 젖어있었고 바닥에는........ ...........나체 둘이 엉겨붙어 있었다. "큭, 황제는 니가 해결했으니 황태자만 없애면 내가 다음 황제다. 황태자는 이미 죽었을 테니...... 너도 이제 내 것이다. 내가 황제가 되면 네게 루베라를 새겨주지...." 내 품안에만 가두어 두었던 하얀 나체가 이제는 슈안의 밑에 깔려 쾌락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거부따윈 하지도 않고 녀석의 몸에 필사적으로 엉겨붙어.... 피가 얼어붙어 간다......... 슈안이 정욕에 눈이 멀어 내가 다가온 지도 모르고 녀석의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뒤에서 심장을 찌르고 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붉은 피를 뿜어내며 바닥을 구르는 머리를 보고 넋이 나간 듯 움직임이 없다. 슈안의 몸체에 깔려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녀석을 거칠게 들어올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뭐냐......애인이 죽어서 슬픈 건가....황제는......네가 죽인 거냐.....?!!" 분노를 억누르고 말없이 눈물만 흘려대는 녀석에게 대충 피가 튄 옷을 꿰어 입히자 그제야 황궁 병사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폐.....폐하!!!!" "오늘부터 내가 황제다. 반역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차갑게 뱉어내자 정신을 차리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 중 한 무리에게 하류를 밀쳐냈다. "지하감옥에 가둬...." 하류의 처리는 뒤로 미뤄두고 우선은 반역자들부터 잡아들여 철저히 도륙해 버렸다. 후궁들과 슈안을 따르던 귀족들까지 모두 죽여버리자 황궁 안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끝난 건 다음날 해가 질 무렵.... 검은 구름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지하감옥으로 향하던 도중 황급히 내게 다가오는 병사와 맞부딪쳤다. "폐.....폐하...!!!" "뭐냐!!" "감옥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죽고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황제의 숲으로 도망치는 걸 봤다는 보고가...." '역시 한패거리가 있었던 건가.....' "추격하지 마라....나 혼자 가겠다...." 만류하는 병사들을 모두 뿌리치고 황제의 숲으로 미친 듯이 말을 달렸다. 비 때문에 질척해진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따라 녀석을 발견한 건 주위에 새까만 어둠이 깔린 한 밤 중...... 녀석을 처음 만난 날처럼 시리도록 차갑고 밝은 보름달이 하늘에 걸려있지만.... 주위엔 까만 구름이 몰려 빛이 가리기 시작한다. 생각과는 달리 혼자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도망치려는 녀석의 몸을 깔아버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을 뱉어냈다. "니가.......황제를 죽인 거냐.....그 녀석을 위해.....?"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길 바라는 내 마음과는 달리 녀석은 공포에 질린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말해!!!!" 멱살을 쥐고 흔들어보지만 결국 까만 눈을 돌려버린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폭우가 얼굴을 때리고 땅을 울리는 천둥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날카로운 검을 들어올려 녀석의 심장에 겨눴다. 가라앉은 까만 눈으로 날 잠시 바라보더니 살려달라고 매달리지도 않고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죄를 인정하듯 눈을 감아버린다. 심장이 파열된 듯 아파 오고 손끝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온다. 결국 검을 박아 넣은 곳은 녀석의 심장이 아니라 질척해진 땅 속........ 쉽게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녀석에게 분노가 치민다. 옷을 거칠게 찢어버리자 놀란 듯 다시 눈을 흡뜨는 녀석을 무시한 채 비에 젖은 옷을 다 찢어 벗기자 떨어져 내리는 건 은빛을 뿌리는 곡도....... 피가..... ......묻어있었다. 슈안과 이 녀석의 몸엔 상처 하나 없었는데....... 결국 황제의 피....... 황제의 시신엔 목이 졸리고 심장에 칼이 박힌 상처가 남아있었다. 자신의 몸에 손을 대면 심장에 박아 넣으라고 했던 단검...... 녀석의 몸에 손을 댔다면 황제라도 용서치 않았을 테지만......... 병환으로 쇠약해져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 몸으로 하류의 몸에 손을 대는 건 불가능하다..... 역시....... 이것이.......진실인가..... 완벽한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녀석의 입으로 말하지 않는 이상 믿고싶지 않았다. 녀석은 말을 하지 못하니........ .......진실이 밝혀질 일도 없겠지...... 하지만.......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들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하는 거지..... 슈안을 위해 황제를 죽이고....... 날 죽이려던 슈안에게 몸을 내주려 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잔당들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빠져 나와 내게서 도망쳤다. 내 곁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왜........ 설마 슈안을 바라보던 눈빛이 호기심이 아니라........ 다른 감정.........이었나........... 하얀 나체에 빗방울이 쏟아져 내리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미친 듯이 내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친다. "이제 내 품에 있을 필요도 없다는 거냐....." 녀석의 공포에 질린 얼굴과 행동에 순간 분노가 이성을 가려버렸다. 슈안의 밑에 깔려 쾌락에 몸부림치던 녀석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가자 녀석에겐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잔혹한 본성이 눈을 뜬다. 몸부림치는 녀석을 뒤집어버리고 일체의 애무도 없이 녀석의 몸을 벌리고 들어갔다. 내 침입을 온 몸으로 거부하듯 조여대는 내부를 뚫고 거칠게 파고들자 하얀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내 밑에 깔려 떨어댄다. 등에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루베라를 차가운 손으로 몇 번 쓸어보다 추위와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의 하얀 나신을 붙들고 미친 듯이 범해버렸다. 거칠게 밀어붙일 때마다 바닥을 기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댄다. 흙바닥에 몸이 쓸려 움찔거리고 바닥을 긁어댄 손엔 붉은 피가 흘러내려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빡빡한 내부를 거칠게 밀어 올리고 깊숙이 파고들자 기어이 내벽에 상처가 났는지 하얀 허벅지에 빗물과 함께 붉은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경련하는 몸을 붙들고 피 때문에 좀더 움직이기 쉬워진 내부에서 그렇게 녀석에 대한 분노와 욕정을 쏟아 부었다. 뜨거운 녀석의 안에 사정을 하고 한참 전에 늘어져버린 하얀 몸을 그제야 풀어줬다. 겨우 이성을 붙들고 녀석의 몸밖으로 빠져 나와 녀석을 안아 올리자 처참한 모습이 눈에 박혀든다. 하얗게 윤이 나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질려있고 까만 속눈썹은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로 젖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추위에 파랗게 질린 입술은 얼마나 깨물어 댔는지 다 터져 피가 흐르고 망가진 인형처럼 늘어진 몸을 들어올리자마자 허벅지에선 하얀 정액과 함께 핏물이 흘러내렸다. 기절한 채 공포와 추위에 몸을 떨어대는 하류의 몸을 끌어안고 차갑게 식어버린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어쩐지..... 눈가에 흘러내리는 빗줄기가 뜨겁다. 왜 이렇게 심장이 찌르듯 아파 오는지 모르겠다. 몸엔 상처하나 없는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그렇게 한참동안 녀석의 몸을 부서뜨릴 듯 끌어 안고있다 품안에서 죽을 것 같이 떨어대는 하류를 보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비를 피해 근처에 있는 작은 동굴로 들어가 동굴 속에 있던 젖지 않은 나뭇가지로 겨우 불을 피우고 녀석의 몸을 말렸다. 차갑게 식어버린 몸을 품에 안고 활활 타고있는 모닥불 앞에서 눈을 감았다. . . . 서늘한 느낌에 다시 눈을 떴을 땐 품안에 또 녀석이 없었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자 사라진 건 녀석과 녀석의 옷..... 그리고 단검..... 불안한 느낌에 동굴을 뛰쳐나와 주위를 살펴봤다. 조금 누그러들긴 했지만 비가 내리는 숲을 미친 듯이 헤맸다. 어차피 그런 몸으로 멀리 가는 건 무리..... 퍼뜩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보니 질퍽한 흙탕물엔 희미한 맨발자국과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핏자국...... 그리고 달려간 곳엔 녀석이 있었다. 벼랑이라 하기엔 높이가 낮지만 밑엔 엄청난 폭우로 유량이 많아진 레테의 강이 거칠게 흘러가고 있다. 녀석은 멍하니 쏟아지는 빗방울을 보는 듯 하늘을 올려보다 인기척에 퍼뜩 놀라 시선을 돌려온다. 그리고..... 마주친 까만 눈동자 속에 들어찬 것은 투명한 눈물과...... 원망....... 나에 대한..... 한 번도 본 적 없던 불신....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다. "이리와....." 손을 내밀자 미동도 없다. 눈동자는 빛을 잃은 듯 까맣기만 하고.... 가까이 다가가자 한 발짝 물러서며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든다. '무슨....짓을....!!' "이리........내..." 자꾸만 떨려오는 손을 내밀고 흔들리는 시야를 겨우 바로잡아 녀석을 바라보자 한참동안 단검에 박힌 붉은 빛 루비를 응시하다 단검을 내 쪽으로 던져온다. 발 밑에 떨어진 단검에 안도한 것도 잠시.... 밤하늘처럼 까맣기만 한 눈동자를 내게 맞추고 소리 없이 그대로 뒷걸음질쳐 강으로 추락해 가는 녀석을 보고 심장이 멈춰버렸다. 정신없이 뛰어가 내려본 곳엔, 떨어져 내리는 녀석도...... 강물에 휩쓸려 가는 녀석의 모습도...... 아무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완벽히 사라진 것처럼...... 처음 내 앞에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흔적조차 없이........ 그렇게....... 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거의 1년 동안 녀석을 찾아 근처에 병사들을 풀었지만 발견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루펜타를 통해 루베라가 반응한 적이 한번도 없었기에 마음 한 구석에선 죽었을 지도 모른다고 속삭여 왔지만, 절대...... ........믿고싶지 않았다. 녀석을 잊기 위해 황제가 되자마자 전쟁을 일으켜 친동생을 맡겨둔 동맹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을 모두 초토화시켜 대륙을 통일해 버렸지만..... 결국 잊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꿈같은 이야기지만....... 하류가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녀석을 처음 발견한 황제의 숲을 폐쇄시켜 버렸고 혹시라도 들어온 녀석이 있을 땐 잡아들여 루베라가 새겨져있는지 확인한 후 모두 처형시켜버렸다. 녀석을 찾기 쉽게...... 검은 색으로 머리카락을 염색하는 것 또한 금지해 버렸다. 그렇게.... 끔찍했던 폭우가 내린 그 날로부터 거의 2년이 지나 루펜타에 이끌려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난 녀석은...... 많이...... .....변해있었다..... 몸도..... 마음도..... 이제 내 것이 아니라는 듯...... 모든 걸 잊고 다시 내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변해버린 녀석의 모습을 보고도.... 여전히 아프도록 뛰어대는 내 심장이 있었다...... ********************************************************************************* 식사를 다 마치고 계획대로 녀석들과 함께 이곳으로 온 이후 처음으로 방문 밖으로 나갔다. 육중한 문이 열리고 시종들이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절을 하는 걸 놀란 듯 바라보다 눈을 돌리니 끝도 없을 것같이 길고 화려한 복도가 드러난다. 여기저기 여러 개의 커다란 문이 보이고...... 몇 걸음 내딛을 때마다 보이는 화려한 장식물들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옆에서 시온이 말을 던져온다. "그런데 황궁 탐험이라니......어디 갈려구?" "응? 글쎄.....궁내에서 볼 거라곤 금붙이랑 보석밖에 없는 거 같으니까 밖으로 나가자!!" "밖으로?? 그럼, 정원으로 가자!! 아마 넓어서 다 보려면 며칠은 걸릴 거야" 그러고 보니 이곳을 탈출하려고 흘끔 본 정원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대했다. 못 보던 식물들과 꽃들도 많았고...... "응, 우선은 정원부터....." 황제의 방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은 상당히 복잡해 시온과 케레스가 없으면 길을 잃을 정도.... 아무리 2층이라고는 하지만 황제의 방은 궁내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고 한참을 걸은 후에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역시 탈출하려고 했을 때 창 밖으로 벽을 타길 잘했군.....' 속으로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니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방대한 성이 눈에 들어온다. 시야에도 다 들어차지 않는 성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젠장, 이 넓은 공간을 다 어따 쓰는 거야? 저게 다 방이란 말야?!!!" "응....거의....그 외에도 연회장, 만찬회장, 황제의 정무실, 시종들의 숙소, 검술 수련장, 황실주방, 거의 용도별로 다 있어....." '쳇, 대청소라도 하려면 몇 년은 걸리겠군....' 혀를 끌끌차며 뒤돌아 서자 역시나 방대한 정원.... '하.....이 정원은 도대체 정원사가 몇이나 매달려서 관리하는 거야?!! 순 돈지랄 뿐이군....' 잠시 훑어보다가 우선 눈에 띄게 붉은 꽃이 피어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미보다 약간 작지만 예쁜 꽃봉오리가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니 짙은 향기에 정신이 멍해질 지경..... 그러고 보니 티폰이 욕실에서 내 몸을 닦아줄 때 쓴 가루의 향기와 같다. "향기가 엄청나네....." "응...그 꽃은 피로회복 효과가 있어서 거의 욕실에서 향료로 쓰여" '역시......' 잠시 꽃봉오리를 만져보다 고개를 드니 각양각색의 꽃들로 가득한 화원과 본 적도 없는 수목들로 가득하다. "도대체 이 정원은 얼마나 넓은 거야?" "글쎄....황궁 밖으로 걸어서 나가려면 이틀은 걸릴걸?" "이틀?!!" "뭐, 귀족들이 황궁에 드나들 땐 마차를 타고 지름길로 오니까 얼마 안 걸리지만......." "지름길이라니?"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이 하나 있어....그리고 그것보다 빨리 황궁 밖으로 나가려면 황제의 숲을 지나면 되고...." "귀족? 황궁 내에도 많이 드나드는 거야?" "당연하지....대신들도 있고 파티도 자주 열리니..... 뭐, 폐하께선 파티가 열릴 때 잠깐 얼굴만 비추고 참석은 잘 하지 않으시니까..... 킥, 내놓라하는 귀족가 처녀들이 가슴앓이를 한다더군...." '흐응~잔인하긴 해도 역시 그 정도 얼굴에 황제까지 되면 여자들이 여럿 목매달 만도 하겠군.....' "근데 티폰은 결혼 안 해? 원래 왕은 결혼 일찍 하는 거 아닌가?" "너......폐하께서 황비를 맞으셔도 좋다는 거야....?" '그런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난...... 단지 3년 전 녀석이 내게 있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녀석의 대소사에 관여할 만큼 내가 소중한 존재일 리도 없고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여할 만큼 내게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황제의 위치에 있다면 결혼은 당연한 거고 후계를 이어야 한다는 것 또한 너무도 당연할 터...... "결혼하는 게........당연한 거 아냐?" 가슴속에서 자꾸 기어 나오려는 감정을 무시해 버리고 말을 꺼내자 잠시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뭐야....설마....그 대단하신 형님께서 짝사랑이라도 하고 계시다는 거야?" '무슨.....소리야? 그 녀석이?!!! 누굴???!! 날? 하....단단히 잘못 짚었겠지....' "너.....폐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야?" '갑자기 그딴 건 왜....' 녀석을 바라보니 꽤나 심각한 표정..... "나도 몰라....." "뭐?!! 폐하께서 루베라까지 새겨주셨는데......모른다니.....?!!" '루베라는 개뿔.......내가 알지도 못하는 이런 낙인쯤이야....무슨 생각으로 새긴 줄도 모르는 것을.....' 당황한 눈으로 날 보는 녀석을 뒤로한 채 생각에 잠겼다. 내가 녀석에게 끌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뭔지는 잘 모른다. 그것도 내 감정이 아닌 것 같아 좀 당황스러울 때도 있고...... 녀석에게 몸을 주긴했지만....... 단순히 이유를 알 수 없이 녀석을 거부할 수 없는 것뿐이다.... 그리고....... 녀석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게는 티폰과 사랑이란 단어에서 거부감마저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 그 녀석이 누군갈 사랑하다니....... '믿을 수 없어....' 시온 녀석도 내가 녀석에게 꽤나 사랑받는다곤 했지만..... 그 녀석에게 사랑은 터무니없는 소리고 무슨 이윤진 몰라도 엄청난 집착이겠지.... 그 이유가 알고싶은 것뿐이다. '진실이..... 알고싶은 것 뿐이야..... 다른 감정따윈 없어....' 다시 고개를 드니 왠지 흥미로운 표정으로 녀석이 장난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연다. "그래? 아무 감정도 없단 말이지.....?" '뭐야...이 자식은 또.....갑자기 왜 이래?' 즐거운 듯 빙글빙글 웃는 녀석을 의아하게 바라보자 다시 입을 열어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아, 그렇지!! 폐하가 황태자였을 때 약혼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2년 전인가 3년 전에 폐하께서 일방적으로 파혼해 버리셨다더군....." '약혼...녀...?' "왜?" "글쎄....그 때 일은 잘 몰라.....난 동맹국에 가 있었고....그러고 보니 당시 일을 잘 아는 사람도 거의 없어.... 전대 황제의 암살이 있은 후 폐하가 반역자들을 소탕할 때 시종들이건 귀족들이건 상관없이 궁 안에 있던 대부분을 죽여버려서 아는 사람도 별로 없거든.... 당시 병사들에겐 철저히 함구령이 내려져 잘못 입밖에 내면 사형이었으니....." "그렇게......사람들을 많이 죽였단 말야........?!! 그럼 폭동같은 건...." "초기엔 좀 삐그덕거렸지만 전쟁이 끝난 2년 후 귀족들에겐 공포와 두려움을....국민에겐 경외와 신뢰를 얻었지..... 덕분에 귀족들의 눈치 볼 것 없이 왕권은 절대적이고 지금 크리올라 제국 안에서 황제는 신적인 존재나 마찬가지야..... 3대에 걸쳐서 실현시키지 못한 일을 2년만에 이루어 냈으니..... 황제의 잔혹한 행동에도 의의를 제기하는 귀족도, 폭동을 일으키는 국민도 없는 건 순전히 폐하가 나라를 이끌어 가는 능력 덕분이야....." '역시.....괴물 같은 놈.....' "그럼 결국 파혼한 이유를 아는 사람은 당사자들 뿐이야? 여자가 별로 안 예뻤나?" "큭, 그럴 리가....이 크리올라 제국에서 제일 권세 있는 귀족가 따님에 미모도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그래....?" "킥킥, 걱정 마! 아무리 예뻐도 너 보단 못해! 까만 머리카락에 까만 눈동자는 진귀를 넘어서 아예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우니까...." "누가 걱정을 한다는 거야?!!! 그리고 내가 무슨 희귀동물인 줄 알아?" 화가 나서 벌컥 소릴 지르자 재빨리 입을 다문다. '내 머리카락하고 눈동자 색이 까만 색이 아니었으면 녀석도 이상한 관심 따위 가지지 않았을까.....' 갑자기 가슴이 쓰리고 기분이 나빠진다. 이곳에 대해.... 녀석에 대해.....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답답하다. 가끔씩 이지만.... 낯익은 것들을 볼 때면 뭔가 떠오를 것 같기도 한데....... 가령...... 티폰이 준 단검.....붉은 루비......녀석의 붉은 눈동자.... 그리고 가장 머릿속을 자극하는 것은 황제의 숲......레테의 강...... 그곳에 가보면 뭔가 떠오를 지도....... 지난번 탈출을 했을 때 들어간 황제의 숲은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가만히 바라보니 어쩐지..... 들어가선 안될 것 같은..... 금단의 영역........ 티폰이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만 기억을 되찾기 위해선 역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녀석은 차라리 기억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렇게 언제까지고 녀석의 품에서 의문을 감춘 채 호위호식하며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녀석의 곁에 있고 싶다고 하는 건..... 녀석의 품에서 안도를 느끼는 건...... 3년 전의 나니깐..... 지금의 내가 아니니까...... 기억을 되찾고 내가 이곳에 있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면..... 떠날 거다..... 이 곳을....... 녀석의 품을..... 이런 황당한 낙인 하나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고 싶은 맘은 전혀 없으니까...... 물론 원래 있었던 세계엔 돌아가지 않을 거다. 어떻게 돌아가야 할 지도 모르겠고...... 레테의 강과 연관이 있는 것 같지만 확실치도 않고..... 그곳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도 이제 질려버렸다. 이곳에서도 여기저기 시선이 느껴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 이유가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 때문이니 그곳에서 보다 참을 만 하다. 어쨌든 이곳에서 살기 위해선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겠지.... 의사나 변호사는 물 건너 간 일이니..... 내 몸 하나쯤은 내가 지킬 수 있게 힘을 기르고 앞으로의 계획은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천천히 생각해 볼 거다. 황제의 숲은 역시 기회가 있을 때 혼자 들어가 봐야겠지..... 뭔가 기억의 파편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녀석의 곁에선 이상하게 풀어져버리는 마음을 다잡고 예전의 나로 돌아갈 거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나로..... 아직...... 자신은 없지만..... "근데 시온!! 이곳에서 가장 돈 많이 버는 직업이 뭐야?" "................" 오전 내내 케레스와 시온을 데리고 넓은 정원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다 다시 황제의 침소로 돌아와 식사를 한 후 예정대로 케레스에게 단검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으로 단검을 손에 쥐고 녀석을 보자 잠시 바라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기 시작한다. "단검은 사용법만 알면 장검보다 유리한 무기입니다. 빠르고 가볍기 때문에 상대를 제압하기도 쉽고 어느 정도 실력이 늘어 검을 던져 박아 넣는다거나 단검 두 개를 쓸 수 있게 되면 공수전환도 빨라 웬만한 무기보다 훨씬 위력적입니다. "흐응....일석이조란 말이지? 킥, 무전취식보단 못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야" 단검을 보고 빙글빙글 웃자 그때까지 가지 않고 테이블에 앉아 불만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시온 녀석이 벌떡 일어서 소릴 지른다. "뭐야? 저 녀석은 왜 눈을 마주치는 건데?!!" 지난번 케레스가 검을 겨눈 것에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내가 케레스를 바라보고 말만 걸어도 뭐라 궁시렁대던 녀석이 결국 불만을 터트려 버렸다. "눈알을 확 뽑아버....."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야?!!" "그럼, 하루종일 같이 있어야 하는 상대가 눈을 흘끔흘끔 피하면 기분이 좋을 거 같아?!! 그러는 넌 왜 내 눈을 마주보는 건데? 티폰이 말한 건 자기 이외의 사람이었다구! 그럼, 너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난 왕족이고 저 녀석은 일개 호위기사일 뿐이잖아!!!" "나한텐 그게 그거야....황제든...왕족이든...호위기사든...어차피 똑같은 사람 아냐?" '뭐, 티폰 녀석은 인간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만......' 케레스가 잠시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시온 녀석이 할말을 잊은 듯 멍한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더니 입을 열었다. "너......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냐.......황제든 뭐든 상관 없다구?" "왜? 황제든 황제 할애비든 나한텐 그게 그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그딴 왕족이니 호위기사니 나불대도 별 효과 없다구...." '어차피 내가 살던 곳에선 그런 것 따위 없었으니까......부자하고 가난뱅이는 있었지만.....' 사실 티폰에게 개기지 못하는 것도 그 녀석이 황제라서가 아니라 쬐끔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 아주 쪼끔......... 사람을 검으로 동강내고 머리를 잘라내는 끔찍하고 엽기적인 행위를 무표정으로 해대는 녀석을 보고도 개길 수 있는 미친놈이 어디 있겠는가..... "차라리 저 놈이 아니라 폐하께 배우면 되는 거잖아?!! 저 자식이 아무리 검술 실력이 좋다고 해도 폐하에겐 상대도 안 된단 말야!!" "너라면 티폰한테 배우고 싶겠냐?" "아니....!!" 묻자마자 바로 단호하게 대답하는 녀석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여튼 너도 장님 되고 싶지 않음 티폰한테 꼬발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케레스가 걸리면 너도 걸릴 테니까...." "쳇, 역시 교활한 개차반.....악!!" "봤지? 케레스....이게 융통성이야....!!" 녀석의 머리통을 거세게 한방 쥐어박은 후 케레스를 돌아보자 뒤에서 시온 녀석이 뭐라 바락바락 소릴 질러댄다. 검을 손에 쥔 채 녀석을 죽일 듯 노려보자 다시 잠잠해지고..... "너 자꾸 그렇게 방해할려면 나가!! 너땜에 쓸데없이 시간만 자꾸 가잖아!!" "알았어!! 지금 갈려구 했단 말야!!" 계속 여기 있어봐야 내가 상대도 해주지 않고 지루한 수업만 들어야 하는 걸 알았는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풀죽은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뭐야? 저 자식....갑자기....' "야....!!" 녀석의 모습에 약간...아주 쪼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녀석을 불러 세우자 냉큼 돌아서더니 씨익 웃고 다시 나불대기 시작한다. "킥, 왜? 내일 다시 오라구? 알았어!! 내일 보자!! 개차반!!" '저런 미친놈!!' 울컥해서 들고 있던 단검을 녀석에게 던져버리자 사색이 되어 얼른 피하더니 문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문을 열고 뒤돌아본다. "야, 케레스!! 루베라한테 절대 단검 던지는 법은 가르치지 마라!!" "뭐? 저 자식이 정말!!" 나머지 단검까지 들어올려 던지려 하자 화들짝 놀라 문을 쾅 닫아버리고 미친 듯이 웃어 재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 빌어먹을 자식, 내일 오기만 해봐!!!" 소릴 꽥꽥 질러대다가 씩씩거리며 떨어진 단검을 주운 후 다시 무표정한 케레스를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미안, 저 미친놈 때문에 시간만 날렸네.....다시 수업 시작하자, 선생님! 우선 단검 던지는 법부터 가르쳐 줘!! 저 바보 촐랑이 자식, 언젠가 뜨거운 맛을....!!" 눈을 반짝이며 회심의 미소를 띄우다 케레스를 올려보자 무표정이 약간 무너진 얼굴.... "뭐야? 지금 비웃는 거야?!!" 눈을 부릅뜨고 녀석을 바라보자 순식간에 표정을 정리하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 부탁과는 상관없이 역시나 고지식한 녀석은 단검을 쥐는 법에서부터 기초만을 가르쳐줬고 조금 실력이 늘면 단검 두 자루 쓰는 법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지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오후 내내 그렇게 케레스에게 단검 쓰는 법을 배우고 해가 지기 전에 땀에 젖은 몸을 닦기 위해 욕실로 들어섰다. 지난번처럼 욕실에서 홀딱 벗은 차림으로 녀석과 마주치기 싫어 후다닥 몸을 씻고 욕실 문 밖으로 손을 내밀자 미리 케레스에게 부탁해 하녀들이 가져온 옷을 쥐어준다. 다행히도 낮에 입는 옷보다 훨씬 입기 편해 혼자 어설프게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자 방안은 텅 비어있었다. '뭐야, 벌써 간 거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다시 눈이 멈춘 곳은 지난번 이를 박아 넣었던 황금상.... 다행히 그 날 이후 이 방에 들어온 시종은 한정돼 있었고 청소를 할 때도 장식물엔 좀처럼 손대지 않아 들키진 않았지만...... 언젠가 장식물도 닦으려 들 테니....... 뒤에서 인기척이 있는 것도 모르고 심각하게 황금상을 바라보고 있는데 황금상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져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헉, 어....언제 들어온 거야?!!!!' 티폰이 미간을 찌푸린 채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리고 황금상을 바라보고 있다. '젠장!!!!' 이미 가리기엔 늦었다고 판단하고 모든 걸 포기해 버렸다. 녀석이 황금상에서 눈을 돌려 날 바라보자 접시를 깬 꼬마가 부모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듯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서있다 입을 열었다. "저....저기, 그게 말야.....하....하하....진짠지 궁금해서...."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어쩐지 이빨자국이 박혀있는 황금상보다 내 행동이 더 이상한 듯 바라보는 녀석을 보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뭐.....뭐야....별로 안 비싼 건가...? 괜히 쫄았잖아?!! 그래도 이거 녹이면 금괴 20장은 넘게 나올 거 같은데.....' 되려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올려다보자 고개를 숙여와 깜짝 놀라 눈을 감아버렸다. '뭐....뭐야....이 반응은....!! 바보냐?!!!!' 황당함에 다시 눈을 번쩍 뜨고 녀석을 바라보자 대충 입어 어깨가 드러난 옷의 매듭을 매어주고 있다. '이 바보 멍청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속으로만 머리를 쥐어뜯으며 얼굴이 확 붉어져 열심히 자기비하를 해대고 있는데 갑자기 목덜미에 따뜻하고 물컹한 느낌이 스치더니 천천히 얼굴 쪽으로 올라와 아랫입술을 빨아들여 이로 잘근잘근 깨물어댄다. "으응..........." 벌린 입술을 비집고 작게 신음이 새어나오자 뒷덜미를 움켜쥐고 입술을 포개 깊숙이 키스를 해온다. 숨쉬는 것도 잊고 그렇게 녀석의 키스를 받아들이다 숨이 막혀 겨우 고개를 돌리고 입술을 피하자 바로 목덜미로 내려와 입술을 찍어누르고 빨아올리면서 따끔하게 깨물어 붉은 자국을 새겨나간다. "아.....!! 아프잖아...." '이 새끼, 누구 죽일 일 있어?!!!!' 숨을 헐떡이며 녀석의 입술을 피해 몸을 이리저리 비틀자 귓가에 조용조용 속삭여 온다. "낮에.....뭘 했지?" '응? 뭐야.....보고도 해야하는 거야?' 얼굴을 붙인 채 귓가에 입술을 대고 있는 녀석의 붉은 머리카락을 불만스럽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냥.....밥 먹고 케레스랑 시온이랑 정원에서 돌아다니다 벌레도 잡고.... 다시 방에 들어와서 밥 먹고 땀나서 몸 씻고 옷 갈아입고 지금은 미술품 감상중이고......" 케레스에게 단검 쓰는 법을 배운다고 하면 그만 두라고 할까봐 최대한 단순하게 말을 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녀석이 다시 귓가를 간질이며 약간 굳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땀이 왜...." '땀 나는 데도 이유가 있나?' "더워서....씹, 이놈의 옷은 왜 이렇게 답답한 거야? 실용성은 하나도 없고....이런 옷 만드는 놈이 대체 누구야? 젠장, 내가 장식품인 줄 알아? 인형처럼 쓸데도 없이 화려한 옷이나 입히고.....변태새끼처럼....." 얼굴을 들어 날 바라보는 붉은 눈을 향해 불만스런 시선을 던지며 끊임없이 주절대다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어 버렸다. '헉, 젠장....이 자식한테 개기면 안 되는데....' 변함없이 무표정한 녀석의 얼굴을 살피다 얼른 화제를 바꿔본답시고 다시 말을 꺼냈다. "나 배고파...." "큭, 정말.....많이 변했군....." '응?' 녀석을 바라보자 잠시 얼굴을 쓸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들여라..." "예, 폐하...." 밖에서 기다린 듯 시종들이 음식을 커다란 테이블 위로 나르기 시작한다. 평소보다 가짓수가 많은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모두 올려질 때까지 얌전히 보고만 있다가 시종들이 모두 물러나자 음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은으로 만들어진 스푼으로 향이 좋은 스프를 퍼먹고 본 적도 없는 신기한 음식들을 이것저것 먹다보니 배가 부르기 시작해 조용히 스푼을 손에 든 채 맞은 편에 앉아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갑자기.......... 낮에 시온과 했던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친다. '결혼이라........책에서 보면 왕들은 일찍 결혼해서 자식들도 왕창왕창 낳던데...... 이 자식은 스무 살이면 결혼할 나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난 결혼 같은 건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군.....복터진 새끼..... 예쁜 약혼녀까지 있었다면서 뭐가 싫어서 파혼이야? 가만.....내가 결혼 포기한 건 따지고 보면 이 자식 때문이잖아?!! 씹, 나쁜 새끼.....이 새끼가 2, 3년 전에 내 몸 가지고 그 지랄을 했으니 사람들이 나까지 변태로 보지.... 그 때 상태가 어땠길래......' 처음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눈을 떴을 땐 며칠동안 잠만 자고 병원신세를 졌단 건 알고있지만....... 어머니와 의사에게 다른 이야기는 하나도 들을 수 없었다. '꽤 심각했던 건가.......말도 안 해주고......도대체 무슨 일이.....' 가라앉은 눈으로 생각에 잠기자 녀석이 고개를 들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가뜩이나 녀석에 대한 나쁜 생각을 떠올리던 차에 성질을 참지 못하고 녀석에게 툭 내뱉었다. "너 결혼 안 해?" 붉은 눈동자가 의문의 빛을 띄고 날 바라본다. "원래 왕 같은 건 일찍 결혼해서 자식 빨랑빨랑 낳는거 아니냐구! 개구리 알처럼 바글바글!" 자세히 설명하자 갑자기 싸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뭐야? 이 자식.....개구리 알이 싫어?' 뭔가 마음속에서 걸리긴 하지만....... 이건 어차피 내 감정이 아닐 테니까....... 간단히 무시해 버리고 퍼뜩 스치는 생각에 다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가만.....그러고 보니 아이는 여자랑 낳는 거 아냐? 그리고....그게....그러니까....밤에 이 자식이 내 몸 붙들고 하는 것도 여자랑 하는 거 아닌가....?' 갑자기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럼......여자한테도 그렇게 하면 애를 낳는 건가....? 그런데 이 자식은 왜 애도 못 낳는 사내새낄 붙들고 그 짓을 해대는 거야?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학교에서 가뭄에 콩 나듯 한 성교육 시간에 아르바이트 때문에 피곤해 잠만 퍼대 잔 것이 후회스럽다. 그때 분명 정자가 어떻고 난자가 어떻고 해댄 거 같았는데..... '뭐지.....?? 여자 이름이었나.....굉장히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씹, 제대로 들어둘걸 그랬나....설마 그것도 많이 하면 남자도 애를 낳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고개를 들어 서늘한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흘끔 보고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설마......그런 소린 들어본 적 없어.....내가 생각해도 황당하군......" 아무래도 조각조각 머릿속에서 떠다니는 내 성 지식 가지곤 이해할 수가 없다. '나도 그렇지.....!! 아무리 이 자식 밑에 깔리면 반항도 못한다지만...... 이렇게 대책 없이 이 녀석하고 그런 걸 해도 되는 거야?' 어딘가에서 부부가 함께 자는 건 사랑하는 사람이랑 아이를 낳기 위해서라고 했던 것도 같은데..... '그 잔다는 의미가 이거였나....' 정말 그렇다면 이 녀석과 내가 함께 그....잔다는 것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우선 이 자식이든 나든 사랑이란 건 터무니없는 소리다. 이 녀석은 내게 단순히 집착을 보이는 것뿐이고 나는...... 그래, 나는 이 녀석을 거부할 수 없는 것뿐이다. 과거의 나 자신과 이 루베라라는 각인 때문에...... 더욱이 이 녀석과 난 부부도 아닐뿐더러 애를 낳는다는 건 웃기지도 않는 얘기...... 같이 자야할 이유 따윈 전혀 없는데 도대체 왜..... 녀석의 곁에 있기 위해 안기겠다는 약속은 했지만 그런 조건을 내건 녀석도 이해할 수가 없다. 나와 그런 걸 해서 뭘 얻어내려고 하는지..... '의문 투성이군.....그냥 기분이 좋으면 아무하고나 할 수 있는 건가?' 이 자식하고 할 땐..... 심장이........ 멈춰버릴 만큼 두근거렸다. '이 자식도 그런 건가....... 그런 것 때문에 하는 건가? 단순히.......몸으로 즐기기 위해서?' 하지만...... 폭우가 쏟아지던 날, 녀석이 달래주듯 위로하듯 해 준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확실히 쾌감은 느껴지지만..... 이 자식은 단순히 쾌락을 위해서 한다기보다.... 뭔가........ 다른 게 있는 것만 같다. ‘지나친....... .....생각인가...... 답답하군....이 자식한테 성교육을 시켜달랄 수도 없고..... 한 번......물어보기라도 할까.....' 차가운 얼굴에 약간 주춤하긴 했지만 호기심을 누를 길이 없어 아직도 서늘하게 날 바라보고 있는 녀석을 올려다보며 말을 던졌다. "왜 나랑 그런걸 하는 거야?" "왜 나랑 그런걸 하는 거야?" "무슨 소리냐...." '씹, 그걸 내가 말로 다 까발려야돼?' 잠시 녀석을 바라보며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손짓 발짓까지 해가며 빙빙 돌려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그게..... 침대에서 너랑 하는 거 말야.... 그거 원래 여자랑 하는 거 아냐? 키스하는 것도 그렇구.....아무리 그래도 내가 애를 낳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결혼해 버리면 나랑 그런 거 하지 않아도....." 말을 할수록 점점 일그러지는 녀석의 표정에 가슴이 뜨끔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뭐....뭐야......뭔가 잘못 말했나....?'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안는다고 생각하는 거냐...." '그....그럼, 역시 즐기기 위해선가....그럼 루베라를 찍는 것도 황제의 것이라는 것도 그런 뜻이야? 그럼, 창부하고 다른 게 뭐지? 돈을 안 받는 것하고 스스로 하겠다고 허락한 것? 이 자식이 결혼하면 난 더 이상 필요 없는 거겠지.....? 시온 녀석이 티폰이 황비가 생겨도 괜찮냐고 물어본 게 이런 뜻이었나.....' 어쩐지 기분이 가라앉아 간다. "저기.....너 내가 기억이 돌아오기 전에 결혼할 거면 내 등에 새긴 건 지워 줘....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몰라도 지금의 나하곤 상관도 없는 거고.... 지우는 것도 너만 지울 수 있는 거지? 그리고 아무리 이런 거 찍어둬도 이건 내 몸이니까 다른 사람한텐 하사하지마! 그냥 성밖으로 나가서 혼자 벌어먹고 사는 게 훨씬......" 녀석의 붉은 눈동자에 흠칫 놀라 말을 멈춰버렸다.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눈에 살기를 담고 노려보자 심장이 얼어붙어 바닥 아래로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누가.......루베라를 지우고 하사한다는 거냐......." 화를 참는 듯 주먹이 하얗게 될 정도로 그러쥐고 맞은 편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굳어 있는 내게 피처럼 붉은 눈을 맞추고 소름끼칠 만큼 낮은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다" 말을 마치고 그렇게 싸늘하게 노려보더니 거칠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한참동안 그렇게 얼어붙어 있다 정신을 차렸을 땐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은 모두 깨끗이 치워져 있었고 방안엔 달랑 혼자....... "뭐....뭐야? 저 자식!! 왜 화내고 지랄야? 그리고 자기가 뭔데 날 죽이고 살리고야?!! 빌어먹을!! 이 몸뚱이가 내꺼지 지꺼야? 애초에 왜 이따위 걸 새겨서.....도대체.....왜....." 한참동안 삐죽거리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 문 쪽으로 다가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런, 씹!!' 역시나 문 밖에는 병사들과 시종들이 서있다 내가 문을 빼꼼히 열고 내다보자 얼른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밖으로 한 발짝 내딛자 엎드려있던 녀석들이 화들짝 놀라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폐하께서 밤엔 루베라가......" 더 듣지도 않고 다시 문을 쾅 닫아버렸다. '젠장!! 뭐야?!! 나가지도 못하게!! 그리고 내 이름이 루베라야? 루베라?!!!! 벤댕이 속알딱지 같은 놈.....도대체 뭐가 꼬여서 그 지랄이야?!!' 궁시렁거리며 다시 창문 쪽으로 발길을 돌려 밖을 내다보니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밤하늘이 눈에 들어오고.... '잠깐.....바람만 쐬고 들어와도 되겠지? 어차피 그 자식, 그렇게 나가버렸으니....다시 올 거 같지도 않고..... 문 밖에 있는 녀석들도 내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겠다는데 막진 못할 거고..... 여기로 나가서 문으로 들어오면.....' 왠지 모르게 착잡한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다 창을 열고 또다시 지난번과 같이 창 밖으로 발을 내딛어 벽에 매달렸다. 다행히 시녀들이 밤에 내주는 옷은 소매가 길지 않아 겨우 튀어나온 돌 조각을 손으로 움켜쥐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한번 시도해 본 경험을 살려 조심조심 아래로 내려가는데 역시나 무리였던지 손과 발에 생채기가 하나 둘씩 늘어가고 힘이 빠져 팔이 떨려온다. '윽, 제길....위에서 보면 꽤 쉬워 보이는데 매달리면 이 지랄이야....!!' 힘겹게 벽을 내려오다가 지상과 2m정도 높이에서 그냥 땅으로 뛰어내렸다. '하아....일단 성공이다.....' 땅바닥에 엎드려 겨우 숨을 고르다 주위를 조심조심 둘러보고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만.....이 기회에 숲에 한번 들어가 볼까.....' 어두운 숲 쪽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조용히 휘젓곤 다시 정원으로 향했다. '너무 늦었어...그 자식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죽이려고 들 텐데........ 아까 나갈 때도 엄청 화난 거 같았으니까 재수 없으면 정말 사지를 찢어 죽일 지도..... 숲은 역시 나중에 가는 게 좋겠다....' 정원으로 들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결국 커다란 나무에 털썩 주저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수도 없이 많은 별들과 차가운 빛을 뿌리는 초생달이 너무 예뻐 눈을 뗄 수가 없다. '내가 살던 곳엔....이런 거 없었는데......아니, 보이지 않았던 건가....' 마음이 가라앉아 작게 한숨을 내쉬다 성 쪽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눈을 돌리니...... 평소와는 달리 성 1층 중앙이 대낮같이 환하게 밝혀져 있고 작은 음악소리도 흘러나오는 것 같다. '뭐지?' 궁금함에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히 바라보니 성 앞엔 화려한 마차들이 즐비해 있고...... 작지만 사람인 듯한 그림자들이 멀리서 어른거린다. '뭐야? 시온 녀석이 말한 파티란 건가.......' 멀게만 보이는 광경을 그렇게 멍하니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헉, 누....누가 오는 건가...?'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지만 보이는 건 커다랗게 쭉쭉 뻗어있는 나무 뿐..... 할 수 없이 나무 뒤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아앗, 그만 둬요!! 설마 이런 곳에서..." "킥, 뭘 빼고 그래? 여기까지 따라온 주제에...." "하지만 오늘 페하께서 파티에 참석하신다고...." "어차피 잠깐 드셨다 다시 가실텐데 뭐......우리하곤 상관없어...." 땅 위에 뭔가 풀썩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끈적한 여자의 교성이 들리기 시작하고.... '헉, 저....저....저것들, 여...여기서......뭘 하는 거야?!!!' 갑작스런 생라이브에 당황해 귀를 확 막아버리려 팔을 들어올린 순간 빌어먹게도 화려한 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릴 내는 바람에 뒤에서 들리던 교성이 딱 멈추고 이어서 누군가 후다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빌어먹을 암캐같으니!! 그냥 가버리면.....!!" 도망친 건 여자였는지 뒤이어 술에 취한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다시 사내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누구냐...!!" '젠장, 어쩌지....? 그냥 이대로 있을까....아님 한방 때려서 기절시켜버려?' 갈팡질팡하며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뒤에서 사내가 다가오는지 발자국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오지마!!!!' '빌어먹을 새끼, 술 쳐 먹었으면 집에서 발 닦고 잠이나 퍼대 잘 것이지 여기서 무슨 지랄이야?!!' 결국 하는 수 없이 나무 뒤에서 나오자 눈앞에 옅은 금발에 초록색 눈동자를 한 사내가 희미하게 눈에 들어온다. 나이는 20대 후반 정도로 키는 나와 비슷하고 약간 마른 체형에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젠장, 오랜만에 밤에 나왔는데 재수 옴 붙었군....." 술에 취한 듯 숨을 내쉴 때마다 역한 술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해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다 재빨리 뒤돌아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기다려!! 아가씨!" '뭐? 여기에 여자도 있었나?' 사내의 갑작스런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여기저기 둘러보지만 치맛자락도 보이지 않고..... 다시 뒤돌아서 사내를 바라보니 잔뜩 풀린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설마......저 미친놈이.......' 잠시 인상을 구기고 녀석을 바라보다 다시 뒤돌아 섰다. '설마.....'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뒤에서 사내가 급하게 뛰어오더니 내 손목을 강하게 움켜쥔다. "이봐, 아가씨!! 모처럼 만에 즐겨보려고 했는데 방해를 했으니 대신 상대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뭐?라?고....?!!' "이 개새끼, 방금 뭐라고 했어...." 잔뜩 낮아진 목소리로 녀석을 노려보자 잠시 멍하니 바라보더니 기분 나쁜 미소를 입에 걸친다. "뭐야....남자였나?" "병신이냐? 눈깔은 장식인가 보지? 큭, 장식치곤 가치가 없어보이는군...." '티폰 녀석 눈동자는 루비 같기라도 하지......멍청한 새끼!! 사내새낀지 계집인지도 구분도 못할 동태눈깔은 왜 달고 다녀?' 주위가 엄청 어두워 사람의 형태만 흐릿하게 보일 정도지만 180이나 되는 키를 여자로 보는 녀석이 기가 막혀 잔뜩 욕을 퍼부어 주자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어쭈, 니놈도 성깔 좀 있다 이거냐?' 가소롭다는 듯 바라봐 주니 분노에 얼굴이 새빨개진다. "감히 내가 누구라고 그딴 소릴 지껄여 대는 거냐....!!" '뭐야? 이 새끼.....?!! 지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돼?' 그제야 녀석을 자세히 살펴보니 꽤나 고급인 듯한 옷을 걸치고 있다. 아마도 파티에 참석한 귀족인 듯..... "이 밤중에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하찮은 귀족 나부랭이의 침실노예라도 되는 모양인데...... 교육을 잘못 시킨 것 같군...." 녀석이 손아귀에 힘을 줘 손목이 아프기 시작한다. "놀구있네!! 누가 누구 노예라는 거야?!! 미친놈!! 이빨 다 날려버리기 전에 이거 놔....!!" '더러운 새끼, 눈깔만 썩은 줄 알았더니 뇌까지 썩었군....술 좀 깨게 진짜 몇 대 두들겨 줄까?' 잔뜩 벼르고 있는데 갑자기 손목을 확 끌어당기더니 술 냄새가 풍기는 입술을 내 얼굴로 들이민다. 재빨리 입술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리자 그대로 입술을 미끄러뜨려 목에 찍어누르더니 이빨을 강하게 박아 넣었다. "윽..." 약한 피부가 따끔거리고 피가 흐르는지 목을 따라 뭔가 어깨로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갑작스런 행위에 당황해 굳어있다 녀석이 혀로 따끔거리는 목을 핥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리고 녀석의 복부에 강하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손등으로 목을 슥 문질러보자 붉은 피가 묻어 나온다. 주먹 한 방에 떨어져 나가는 녀석의 가슴을 다시 발로 힘껏 걷어차 버리자 고통에 숨을 들이키더니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다. "개새끼, 바람쐬러 나왔다가 기분만 잡쳤네....씹!!" 거친 숨을 내쉬다 뒤돌아 서서 성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뒷덜미를 강하게 내리찍는 충격에 그대로 무릎이 꺾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고통에 숨도 쉬지 못하고 그렇게 앉아있는데 뒤에 까만 그림자가 지더니 녀석이 다가와 내 몸을 바닥으로 밀쳐 엎드리게 하곤 그대로 올라타 내리 눌렀다. "역시 교육을 잘못 시켰어....주인대신 내가 교육시켜 주지...... 도중에 죽어버리면 노예 값은 주인에게 물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구......." '젠장.....실수다......이 비겁한 새끼.....!!' 두 방이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술에 취해 고통이 반감됐는지 금방 일어서 버린 녀석에게 간단히 제압 당해 버린 게 뿌득뿌득 이가 갈리지만 뭘로 목을 내리 친 건지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숨도 쉬지 못하고 가만히 엎드려 있자 녀석이 원피스같은 잠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허벅지를 쓸어대기 시작한다. "윽...." 술에 취해 힘 조절도 안 되는지 약한 허벅지 안쪽을 강하게 움켜쥐는 손아귀에 겨우 트인 숨을 타고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흘러나가자 뒤에서 만족한 듯 나머지 손도 미끄러뜨린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건 녀석의 것인 듯한 작은 말채찍.....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아까 뒷덜미를 친 건 손잡이 부분이었나 보다.....하고 태평하게 생각하고 있던 찰라 위에 올라탄 녀석이 갑자기 티폰이 아까 매어준 어깨 매듭을 거칠게 뜯어내고 하얀 어깨에 이를 박아 넣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징그러울 정도로 거친 손이 허벅지를 쓸어대며 점점 올라오기 시작하고 엉덩이 부근에 사내의 흥분한 페니스가 부벼지는게 느껴지자 순간 몸이 얼어붙고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큭, 역시 침실 노예라 확실히 다르군.....이런 상황에도 흥분하는 건가...." 상대의 얼굴도 보이지 않는 뒤쪽에서 말이 끝나자마자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소릴 질러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반응에 사내도 놀랐는지 흠칫 몸을 굳히더니 재빨리 채찍을 손에 집어들고 내리치려던 순간 땅바닥에 뭔가 툭하고 떨어지더니 섬뜩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소릴 질러대는 와중에 눈앞으로 따뜻한 액체가 확 뿜어져 내 얼굴과 바닥에 흩어진다. 눈 안엔 붉은 액체가 튀어 들어와 시야를 붉게 물들이고........ 몸을 흔드는 느낌에 겨우 정신을 차리니 잿빛 눈동자가 쏘아져 들어왔다. "케...레스.....?" 그제야 시야가 밝아지더니 한 쪽 손이 잘린 채 피를 뿌리며 바닥을 구르는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끔찍한 비명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귓가를 파고드는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에 다시 눈을 뜨니 근처가 횃불로 환히 밝혀져 있고 몇몇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횃불로 시야가 밝아지자 드러나는 까만 머리카락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숙였지만 붉은 눈동자를 가진 사내만이 격한 감정을 실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일이냐고 물었다....." 섬뜩한 분노를 싫은 목소리에 케레스도 정신을 차렸는지 내 어깨를 쥐고있던 손을 재빨리 놓고 고개를 숙인 채 감정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자가 루베라에게 손을......." 그제야 처참하게 손이 잘려 바닥을 구르던 사내에게 붉은 눈동자를 맞추더니 케레스의 검을 받아들고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폐....폐하, 전 루베라인 줄 모르고......." "닥쳐라...." 그제야 내 머리카락을 보고 놀라 붉기만 한 사내에게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겨우 말을 꺼내놓지만 돌아오는 건 섬뜩한 목소리와 눈빛 뿐..... 순간 녀석이 하려는 짓을 깨닫고 눈을 감아버리자 처참한 비명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몸이 떨리기 시작하자 옆에서 따뜻한 손이 잠시 등을 스쳐지나가더니 금새 떨어져 나간다. 한참동안 그렇게 바닥에서 웅크린 채 몸을 떨고있는데 갑자기 몸이 번쩍 들리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강하게 안아 올리는 손길에 무의식적으로 품속에 파고들자 피 비린내가 확 풍겨온다.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뜨니 녀석의 품 안..... 혼란스런 정신으로 티폰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눈을 돌리자 보이는 건 잿빛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케레스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귀족과 병사들...... 그리고....... 귀족들 틈에서 한 중년 사내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4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 커피색 눈동자가 부드러운 인상을 만들어 내지만...... 어쩐지 날카로운 눈빛....... 내가 눈을 마주치자 급히 눈길을 돌렸지만...... 순간 알 수 없는 느낌에 티폰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뭐....지....?' 다시 눈길을 돌리자 바닥엔 작은 웅덩이를 만들 정도로 피가 고여있고..... 시체인 듯 보이는 고깃덩어리로 시선을 돌리려 하자 티폰이 내 머리를 가슴 쪽으로 밀착시켰다. 그렇게 떨림이 멈추지 않는 몸으로 녀석의 품에 안겨 도착한 곳은 다시 황제의 침소...... 녀석의 품에 안겨 있는 날 보더니 문 앞에 있던 병사들과 시종들이 파랗게 질려 바닥에 머리를 박고 벌벌 떨기 시작했다. "죽여라....." 티폰의 뒤를 따르던 병사들이 달려들자 놀라 녀석의 옷깃을 잡아 당겼다. "내가......멋대로 창 밖으로 빠져 나온 거야....." 아까 비명을 질러대 약간 쉰 목소리로 말을 하자 그제야 날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더니 손과 발에 난 생채기를 보곤 미간을 찌푸린다. "죽여...." "죽이지마.....제발.....티폰......" 남에게 해본 적도 없는 애원을 입밖에 내고 차갑기만 한 눈동자를 피해 고개를 숙이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위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러가라...." "예....!!" 죽음을 각오했던 병사들과 시종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러나자 녀석이 침실로 들어서 날 내려놓지도 않고 욕실로 향한다. 별 수 없이 녀석에게 안겨 욕실에 들어서자 대리석 바닥 위에 날 내려놓았다. 그제야 밝은 곳에서 이곳저곳 살펴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하얗던 옷은 흙으로 범벅이 되어 피가 튀어 있었고 얼굴은 물론 살이 드러난 곳에도 마찬가지로 붉은 피가 묻어있었다. 그리고 올려다본 티폰도 얼굴이고 옷이고 할 것 없이 피를 뒤집어 쓴 채 가라앉은 붉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입술이 천천히 열리자 죄를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런 곳에서 혼자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리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자 고개를 숙인 채 침묵을 유지하다 겨우 말을 꺼냈다. "답답해서......바람 좀 쐬려고...." "내가 밤엔 꼭 이곳에 있으라고 말했을 텐데....!!" 어깨를 강하게 쥐어오자 작게 신음이 흘러나왔다. 녀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손을 떼자 이빨자국이 새겨져 파랗게 멍이 든 상처가 드러난다. 한참동안 살의가 담긴 표정으로 멍자국을 바라보더니 퍼뜩 자신의 목에 손을 대다 다시 내 목을 쓸어본다. 아까 물린 목은 날 덮친 녀석의 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흘러나온 피가 굳어져 따끔거리고 있었고 채찍 손잡이에 맞은 뒷덜미는 까맣게 멍이 들어 만지기만 해도 신음이 새어나왔다. 아픔에 인상을 찌푸리자 옷을 확 끌어올려 간단히 벗겨내더니 여기저기 살펴보기 시작한다. 홀딱 벗겨진 채 대낮같이 환한 욕실에서 구석구석 살펴대는 녀석의 눈길에 당황해 온 몸이 붉어져 버렸다. 녀석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바르작거리자 다시 확 잡아당기더니 다리를 벌려온다. 놀라서 녀석을 바라보자 시선이 머물러 있는 곳은 허벅지 안 쪽...... 아까 정원에서 녀석이 얼마나 쌔게 주물러 댔는지 허벅지 안 쪽에도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다. 멍들어 버린 허벅지를 차가운 손으로 쓸자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다시......." 녀석에게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까만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자 얼굴에 묻어있는 피보다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내 허락 없이 밤에 나가면 가만두지 않겠다...." 겨우 분노를 누르고 내뱉는 말에 나도 모르는 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녀석이 내 몸을 놔주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얼른 일어나 핏물을 대충 씻어내고 탕 안으로 들어가 몸을 감춰버렸다. 지난번과 다름없이 녀석이 옷을 다 벗더니 몸을 헹구고 탕 안으로 들어오는 통에 또다시 시선은 수증기가 올라오는 물로 향하고..... 어느 정도 근육의 피로가 풀리자 물 밖으로 나와 지난번과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집요한 시선을 등진 채 몸을 깨끗이 씻은 후 타월 한 장만 달랑 들고 욕실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차피 옷은 피에 절어 엉망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고 침대 안으로 기어 들어가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어쩐 일인지 혼자 몸을 씻고 나온 녀석이 침대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긴장한 채 누워있었지만 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품으로 끌어당겨 안아주지도 않고 미동도 없이 옆에 누워있는 녀석이 자꾸 신경 쓰인다. '엄청....화났나.....' 식사 할 때도 왠지 모르게 불같이 화를 내며 나가버렸는데 맘대로 밖에 나가 그런 일까지 저질렀으니.... '불에 기름을 부어버렸군.....' 화가 나서 차가운 눈빛으로 날 보던 녀석의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우습게도.... 요 며칠간 밤마다 계속 붙어있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지 않자 잠이 오지 않는다. 자꾸 추위가 몸 속을 파고드는 거 같아 녀석이 있는 쪽을 바라보자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단단한 등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동안 내게 등돌리고 누워있는 녀석을 바라보다 다시 심장이 울렁대는 느낌에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뒤돌아 누웠다. '뭐야....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황당한 내 반응에 기가 막혀 온다. 녀석이 내게 관심을 끊어버려도 별로 상관없는 일일 텐데..... 가슴이 욱씬거린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자꾸 피부에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말고 시트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자 따뜻한 물기에 속눈썹이 젖어있었다. '왜.......?!!' 화들짝 놀라서 얼른 손등으로 물기를 훔치자 갑자기 뒤에서 강한 팔이 허리를 휘감아 몸을 끌어당긴다. 등에 맞닿은 녀석의 따뜻한 피부가....... 온기가..... 기분 좋다..... '그래..... 추운 것 뿐이야..... 너무..... 추워서....' 녀석 쪽으로 몸을 돌리자 강하게 끌어안아 몸을 밀착시켜 온다. 귓가에 따뜻한 숨결이 부딪치자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으응...." 잠결에 입술을 간질이는 느낌에 고개를 돌리자 단단한 뭔가가 허리 아래로 들어와 꼭 죄더니 목덜미에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닿고 이어 까끌한 것이 핥아낸다. 상처를 건드렸는지 따끔한 느낌에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리자 보이는 건 붉은 머리카락.... 천천히 잠에 취해있던 몸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허벅지에 뜨거워진 녀석의 것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단단한 페니스가 허벅지에 부벼지자 퍼뜩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분명 어제 밤에 날 덮쳤던 녀석이 하려던 짓은 지금 티폰이 하려는 것과 다를 게 없음에도 뭔가..... 달랐다..... 그땐 몸에 와 닿는 손길이 기분 나쁘고 소름끼쳐서 토기가 올라올 것 같았지만 지금 이 녀석의 손길은 기분 나쁘긴 커녕 오히려 부드러워 기분이 좋다. 어제 밤 녀석처럼 거칠고 욕정만을 채우려는 행위는 간단히 뿌리칠 자신이 있지만 이 녀석의 부드럽고 강한 움직임은 어쩐지 뿌리칠 수가 없다. 확실히 뭔가 다르다. '이 녀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제 밤 그 녀석이 강제로 하려했지 때문....?' 얼굴도 보이지 않는 녀석의 존재감이 뒤에서 느껴지자마자 이성을 잃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끔찍한 공포..... '왜......?' 가슴돌기를 물어오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자 내가 깬 걸 눈치 챘는지 고개를 들어 붉은 눈동자로 날 마주본다. 그런 녀석이 강제로 하지 않았다고 해서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까.... 다른 녀석이 내게 이런 짓을 하면...... 역시.... ......싫다..... '그럼, 이 녀석이기 때문인가..... 왜 이 녀석만 특별한 거지.....? 이것도 루베라 때문인가...... 왜 내게 이런 걸 하는 건데.....' 결국은 아직도 해결 못한 문제로 머릿속이 포화상태가 되어 나도 모르는 사이 녀석에게 의문의 눈길을 던지자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는 걸 눈치채곤 미간을 찌푸린 채 내 것을 감아쥔다. "흑...." 자극에 작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가고 내 것이 녀석의 손아귀에서 부풀어오르자 애널 안에 짙은 향기가 퍼지는 오일을 흘려 넣고 바로 몸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잠에 취해 나른해진 몸 안으로 갑자기 녀석의 것이 미끄러져 들어오자 긴장으로 힘이 들어가 녀석을 조여댔다. 위에서 울려오는 녀석의 낮은 신음소리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평소완 다르게 조급하게 행동하는 녀석이 낯설다. 그제야 주위를 보니 대낮같이 밝은 게 아침인 듯 했고 칼같이 규칙적인 녀석에 맞춰 평소처럼 시종들이 들어올 시간이었다. 녀석이 싸늘하게 물러나라고 하면 아무 것도 보지 못 한 듯 물러나겠지만 사내새끼랑 홀딱 벗고 아침부터 침대 위를 뒹굴고 있으면 역시 황제 체면이...... '그것 때문인가......' 그런 것에 그다지 신경 쓸 인간이 아니기에 좀 신빙성은 없지만 뭐가 급해서 아침부터 이렇게 달려드는지 알 길이 없으니..... 이 얼음장같은 사내가 아침부터 참을 수 없어서 이러는 건 설마 아닐 테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며 멍하니 있던 사이 녀석의 것이 깊숙이 파고들더니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으응....아.....아앗" 자꾸 딴 생각을 해대는 내게 화가 났는지 손으로 내 것을 자극하며 강하게 밀어붙이자 머릿속이 확 비워져버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는 것과는 다르게 대낮같이 밝은 곳에서 녀석이 홀딱 벗고 날 바라보면서 내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오자 순간 당황해 온 몸을 확 붉혔다. 신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려버리자 손을 뻗어 긴 손가락으로 턱을 쥐고 돌려 다시 눈동자를 맞춰온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두근거리고 온 몸이 떨려올 정도의 쾌감에 결국 녀석의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리자 따뜻한 입술을 맞대 온다. 입안에서 신음 소리가 맴돌고 허리가 들리자 한 쪽 팔을 허리 아래로 넣어 약간 들어올린 채 강하게 밀어붙이길 계속한다. 아침부터 과도한 쾌감에 견디지 못하고 녀석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숨이 끊어질 듯 헐떡이다 녀석의 손에 하얀 액체를 내보내 버리고 몸을 늘어뜨려 버렸다. 내 몸이 늘어지자마자 자유로워진 나머지 손으로 다시 내 허리를 받쳐 올리고 계속해서 깊숙이 파고든다. "아.....흑.....으응......" 녀석이 밀고 들어올 때마다 놀란 듯 몸이 흠칫거리고 하얀 목이 뒤로 꺾인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자극에 참지 못하고 녀석의 목을 꼭 끌어안자 움직임이 딱 멈추고 깊숙한 곳에서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한참동안 내 안에서 나가지도 않는 녀석을 꼭 끌어안은 채 그렇게 숨을 고르며 누워있다 시종들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몸을 꿈틀대자 아직도 내 안에 있던 녀석의 것을 자극했는지 자극적인 신음을 흘리며 내 몸을 강하게 안아온다. 녀석의 밑에 깔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동안 기어이 문밖에서 시종들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물러나라...." "예...예!" 평소와는 다르게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아니라 잔뜩 잠긴 목소리가 들려오자 당황한 듯 대답하더니 곧 조용해진다. '역시 남의 눈은 신경도 쓰지 않는 놈이군......그런데 왜 아침부터 이러는 거야?' 힘이 빠져버린 몸과 내 위에 있는 녀석의 붉은 머리칼을 불만스럽게 바라보길 한참..... 녀석이 몸을 일으켜 내 안에서 빠져 나오자 작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찝찝한 느낌에 몸을 뒤척여 일어나려 하자 날 끌어안고 있던 녀석이 내 몸을 안아들고 욕실로 향했다. "내려놔!! 내가 할거야!" 욕실에 들어서서도 내 몸을 놓지 않는 녀석에게 재빨리 말을 하고 버둥거리자 할 수 없다는 듯 날 바닥에 내려놓았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허벅지를 타고 내리는 하얀 액체를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고 앉아있자 거품이 묻은 매끄러운 천으로 내 몸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뭐야? 내가 애새낀 줄 알아? 왜 자꾸 혼자 하게 내버려두지 않는 거야?' 몸에 힘이 빠져버려 반항도 하지 못하고 녀석을 바라보자 잘 단련된 근육이 눈이 들어온다. 엄청난 근육질도 아니고 적당히 마른 몸에 잘 짜여진 근육이 남자가 봐도 시선을 빼앗길 정도..... '이 자식, 2년 동안 전쟁터에서 굴렀다면서 상처하나 없어?' 몸을 구석구석 살펴보지만 상처라곤 내가 지난번 목에 냈던 실기스같은 상처를 제외하곤 매끈하기만 하다. '황제라서 직접 싸우진 않았나....? 하지만....시온이 케레스보다 티폰이 검을 더 잘 쓴다고 했는데.....' 몸매는 상당히 틀이 잘 잡혀있지만 내 몸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내가 녀석보다 더 마르긴 했지만 이 녀석 키도 거의 188 안팎인 것 같은데.....' "아....!!" 생각을 이어나가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짧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보니 이 자식, 그 때......' 녀석을 맨 처음 봤을 때 정신이 없어 잊고 있었지만 흑마에서 휘둘렀던 검은 녀석의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커다란 대검이었다. 말을 한 번에 베어 넘길 수 있다는 참마도처럼..... 도저히 사람이 휘두르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육중해 보였는데 한 손으로 가볍게 휘둘러 간단히 사람의 몸체를 양분해 버렸다. 케레스의 검이 가볍고 날카로운데 비해 녀석의 대검은 육중해도 전혀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았다. 어두워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그런 검을 휘두를 정도라면...... '이 새끼, 코끼리도 벨 수 있는 거 아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녀석을 보니 혼자 소리 지르고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날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몸은 이미 깨끗이 닦여져 있었고 녀석도 다 씻었는지 내게 다가온다. '뭐....뭐야?!! 또 들어 올리려구?!!' 미간을 찌푸리고 벌떡 일어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가눈 채 몸에 물기를 털어 내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침대 위에 앉자마자 문이 열려 놀라 시트를 몸에 감자 시녀들이 하나 둘 씩 들어와 어떻게 알았는지 욕실에서 나온 티폰에게 달라붙어 옷을 걸쳐주기 시작했다. 여자들에게 나체를 보이고도 눈도 꿈쩍하지 않는 녀석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동안 화려한 옷으로 녀석의 단단한 몸을 모두 감싼 후 여자들이 물러나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침대 위에 놓여진 옷을 집어들어 꿰어 입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티폰이 입혀주던걸 보고 대충 입긴 했지만 어깨와 소매까지 늘어져 있는 매듭은 도저히 혼자 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씹, 이 따위 건 왜 달려있는 거야?" 혼자 궁시렁거리자 뒤돌아 있던 녀석이 내 쪽으로 돌아서 옷을 대강 입고있던 날 보고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가와 매듭을 매주기 시작했다. 녀석의 손에 스치는 까만 머리카락이 거슬려 뒷덜미에 손을 대보자 목을 거의 반정도 가릴 만큼 머리카락이 길어져 있다. 앞머리와 옆머리는 신경 쓰일 정도로 길진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자르려고 했는데.....' 티폰의 머리카락도 길지 않은 걸 보니 자르는 곳이 있는 모양... "머리카락, 어떻게 자르는 거야?" 녀석을 바라보자 잠시 까만 머리카락을 바라보더니 손을 뻗어 만져본다. 손가락 사이로 스륵 빠져나가는 머리카락을 한참동안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숙여 입술을 대고 가만가만 말해온다. "그냥 둬...." "뭐?!!" 머리카락이 목덜미까지 길어 치렁대는 건 질색이다. 지금까지 돈이 아까워도 목덜미를 덮을 정도로 길어본 적은 없었는데...... 녀석에게 싫다고 말하려다 붉은 눈동자를 보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만약 녀석이 내게 집착하는 이유가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때문이라면..... 녀석의 곁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으면 미련 없이 떠나기로 했지만.... 처음으로 손에 쥐어진 따스함을 그렇게 간단히 포기해 버릴 수 있는 걸까..... 아무 말도 없이 침대에 앉아있는 내 턱을 들어올려 가만히 눈동자를 마주쳐 온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응? 아니....아무 것도..." "까만 눈동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어......" "뭐?" 녀석을 다시 바라보자 알 수 없는 표정..... '내 쪽에선 무지개 같은 눈 색깔이 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구......' 그 동안 까만 눈동자만 봐와서 인지 붉은 눈동자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다른 색도 마찬가지지만 티폰의 루비 빛 눈동자는 더욱...... 녀석도 그런 걸까...... 가만히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개 키스한 후 뒤돌아 서는 녀석의 등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티폰이 나가자마자 역시나 케레스가 방안으로 들어와 조용히 곁에 선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다 인기척에 정신을 차리고 케레스를 돌아보자 평상시와 다름없는 차분한 잿빛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케레스...." 이름을 부르자 바로 눈동자를 맞춰와 슬쩍 미소가 새어나왔다. "어젠....고마웠어...." "밤에....." "응?" 평소 예, 아니오 로만 대답하던 녀석이 뜻밖의 말을 꺼내자 놀라 바라봤다. "혼자 돌아다니지 마십시오.....낮엔 제가 지켜드리지만 밤엔 황제 폐하께서......" "응...." 어제 티폰한테 혼난 게 생각나 얼른 대답하자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그런 케레스를 잠시 바라보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 녀석한테 한 번 물어볼까......' 어제부터 계속 머릿속을 떠도는 의문을 떠올리곤 케레스를 바라보자..... 표정 없는 무뚝뚝한 얼굴...... '여.....역시.......안 되겠지.....' 티폰이 왜 하필 사내에다 아이도 못 낳는 나와 몸을 섞는지 물어보려다 입을 다물어 버렸다. '분명 무뚝뚝한 표정으로 모릅니다 하고 말해버리겠지....역시 시온 녀석한테 물어볼까....? 그 자식은 어쩐지 그 쪽으로 잘 아는 것 같던데.....티폰이랑 형제니까 어쩌면 알지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시온 녀석이 순간 문을 요란하게 열어 재끼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저 자식,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황제의 침실을 저렇게 뻔뻔스럽게 드나들어도 되는 거야?' 침대 위에 앉아있는 날 보더니 성큼성큼 다가와 소릴 꽥 지른다. "하류, 너 괜찮아?" "뭐가?" "어제 밤에....." "괜찮아! 그것보다....!!" 가볍게 넘겨버리고 눈을 반짝이며 녀석을 바라보자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다. "왜......왜 그래? 갑자기.....나 오늘은 보석 없어......!!" "이 새끼, 누가 돈 뜯어내려고 이러는 줄 알아? 물어볼 게 있단 말야.....!!" "응? 뭐....뭔데?" "그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머리를 굴리다 대뜸 녀석에게 물었다. "너 여자랑 자봤어?" "뭐?!!" 녀석이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본다. "씹, 대답이나 해!!" "당연하지!!" '미친놈, 나보다 어린 자식이....!! 당연...?!!' "왜 잔 건데?" 녀석이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잇는다. "즐기려고...." '역시.....' "그럼 남자랑은?" "자봤어...." "왜? 그것도 즐기려고?" "응...." '이 새끼, 순 바람둥이 아냐?' 쉽게쉽게 대답하는 녀석을 짐승 보듯 바라보다 다시 질문을 던졌다. "즐길 수만 있으면 누구랑 해도 상관없어?" "아니...." "그럼?" "맘에 들어야지!!" '맘에.....들어....?' "그럼 맘에 들기만 하면 즐기기 위해 누구하고든 할 수 있는 거야?" 녀석에게 물어볼수록 오히려 머릿속이 뒤죽박죽 헝크러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물어볼 상대를 잘못 골랐나....이 자식은 티폰하고 다른 족속같은데.....' "묻고 싶은 게 그거야?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시온을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럼 티폰이 나랑 자는 이유도 즐기려는 거야?"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녀석이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날 바라보고..... 옆에선 케레스가 목에 먼지라도 들어갔는지 갑자기 켁켁댄다. "뭐......?!! 그...그게 무슨 소리야? 너 그 이유를 진짜 모르는 거야?" "왜? 애도 못 낳는데 사내놈한테 그러는 건 즐기기 위해서 아냐? 너도 그랬잖아! 즐기기 위해서 한다고!" "이 바보야!! 상대가 다르잖아!! 즐기기 위한 상대와 진짜 하고싶어서 하는 상대가!!" "뭐?" "너 여자랑 자봤어?" "아니...." "남자랑은?" '이 새끼, 왜 내가 하던 질문을 하고 지랄야?' 잠시 불만스럽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티폰.....이랑...." "그게....처음이야...?" "아마도...." "하....형님답군....어떻게 이런 녀석을 구한 거야? 자기 이외엔 아무도 손대지 않은 건가...? 나이가 열 여덟인데 여자도 모르고 왜 안는지도 모른단 말야? 보기보다 진짜 순진하네!! 그 형님을 휘어잡았다기에 요부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외모만 그런 건가....? 킥, 진짜 맘에 드는데?" "씹, 빨리 알면 대답이나 해!!!" 알 수 없는 소릴 지껄이며 신기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열 받아 버럭 소릴 지르자 빙글거리며 날 바라본다. "왜 갑자기 그게 궁금해? 형님이 안아주는 게 싫어? 킥, 너무 거칠게 다뤄? 싫으면 내가 부드럽게 해줄까....?" '이 자식,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귓가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다 케레스가 검에 손을 올리자 작게 욕설을 하곤 떨어져 나간다. "어때? 내가 폐하께 니가 싫다고 했으니 하사해 달라고 해볼까?"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미친놈아!!" "뭐?" '멍청한 놈, 그 자식이 하사해 주느니 차라리 날 죽여버린다고 했단 말이다!!'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미간을 찌푸리며 녀석을 노려보자 기분 나쁜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안 ? 가 ? 르 ? 쳐 ? 줘!!" "뭐?!!" "혼자 알아내! 아님 폐하께 직접 듣던가! 킥, 그건 좀 힘들겠군..... 내가 직접 말하면 배가 아파서 말야! 이번만큼은 나도 폐하를 도와주고 싶지 않거든.... 형님도 꽤나 불쌍하네....자기한테 아무 감정도 없는 상대를 붙들고 키스하고 안아도 그 이유조차 모르니...." '내가 그 녀석한테 아무 감정도.....없어? 그런 건가......어제만 해도 그렇게 말했지만.... 녀석에게 자꾸 매달리는 내 자신은 도대체.....이해할 수가 없다.....' "이 자식이 기껏 물어보니까 안 가르쳐 줘?!! 너 사실 모르는 거 아냐?!! 이런 촐랑이 자식한테 물은 내가 바보지!!! 씹, 시간만 낭비했잖아? 그럼, 케레스는 알아?" "너....대답하지마!! 악!!!" 시온이 케레스를 노려보며 하는 말에 주먹으로 머리를 세게 쥐어박고 살벌하게 노려보자 궁시렁거리며 입을 다문다. "빨리 알면 말해 줘!!" 결국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할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폐하께선 아무에게나 루베라를 새겨주실 분이 아닙니다. 즐기기 위한 상대를 침소에서 재우시는 일도 없으시고..... 아마.........소중하기 때문일 겁니다" '뭐? 소중....하다니? 내가? 왜? 머리카락하고 눈동자가 이런 색이라서? 소중하면 그렇게 다 안는 거야?' 갑자기 시온이 얼굴을 들이밀고 내 표정을 살펴본다. "킥, 케레스 제법인데!! 돌려 말하니까 전혀 못 알아듣는군....!!" "무슨......소리야?" 미간을 찌푸리고 케레스와 시온을 바라보자 케레스는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시온은 키득거리며 말을 던진다. "니 숙제야....니가 풀어!! 되도록 천천히.....큭, 너무 느리면 폐하께서 화 내실걸....? 뭐, 내 쪽에선 그냥 이 상태가 좋지만....." 결국 의문만 늘어난 채 물어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 녀석들에게 포기하고 식사를 끝낸 후 다시 정원으로 나갔다. "어제 도대체 왜 정원에 나가서 그런 망나니 자식한테 붙들린 거야?" "그냥 답답해서 바람쐬러 나갔다가......" "문밖은 지키고 있었을 텐데....?" "창문으로 나갔어...." "뭐? 2층이었는데?" "응...." "킥, 정말 황당한 녀석....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이제 창문밖에도 병사를 세워두게 생겼군.... 상처는 없는 거야? 어제 듣기론 엄청 났었다며? 폐하께서 진노하셔서......" 그러고 보니..... 나 때문에 몇 명이나 녀석에게 죽임을 당했다. 내가 밖에 나가지만 않았어도..... 내 몸만 확실히 지켰어도.....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데..... 나 때문에...... 갑자기 내 몸을 끌어당겨 안는 느낌에 번쩍 정신을 차리자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시온....?' "너.....가끔씩 그런 표정 짓는 거 알아? 옆에서 보면 조마조마 하다구....갑자기 사라질 것 같아..... 그 녀석이 죽은 건 니 잘못이 아냐.... 여기 있는 녀석이라면 황제의 루베라에게 손대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모두 알고 있어..... 니가....죄책감 따위 느낄 필요 없어...." 꼭 끌어안은 채 조용조용 귓가에 속삭이다 입술에 뭔가 따뜻한 것이 스치자마자 케레스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곳에 있는 자라면 황제의 루베라에게 손대는 순간 어떻게 되는지 잘 아실 텐데 뭘 하시는 겁니까...." "쳇, 어쩐 일로 조용해서 인간미가 손톱만큼은 남아있나 했더니.....위로란 것도 모르냐?" "위로도 거기까지입니다" "알았으니까 이 검 좀 치우지 그래? 하류한테 융통성이란 걸 배우긴 하는 거야?" 시온이 아쉬운 듯 떨어져 나가자 정원 저 편에서 한 사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밤에 본 커피색 눈동자의 사내..... 어제와 다름없이 날카롭게 날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깊숙이 고개를 숙여온다. '누구.....?' 갑자기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하는 심장에 당황해 재빨리 뒤돌아 섰다. "어? 하류야, 어디가? 벌써 들어가는 거야?!!" 시온 녀석이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지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버렸다. '왜 이러지? 갑자기...? 분명 모르는 사람인데.....' 처음 티폰을 봤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려 자꾸 피해버리고 만다. 티폰처럼 가까이 가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 "뭐야? 갑자기......오늘은 호수에라도 가보려고 했더니....." 시온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자 녀석이 투덜거리는 게 눈에 들어온다. "혹시 어디 불편하신 게....." "뭐? 너 어디 아파? 궁의를 불러라!!" "예...." 시온 녀석이 촐랑대다 기어코 소리를 지르자 문 밖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온다. "야....야!! 나 안 아파!!" "무슨 소리야? 아까부터 멍한 게 이상했어! 어쩐지 성깔도 안 부린다더니..... 어제 있었던 일 때문에 놀란 거 아냐? 자, 빨리 누워!!" 녀석이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침대에 밀어 넣더니 시트까지 끌어올려 덮어주고 이마를 쓸어 올린다. "왜 아프면서 아직까지 말 안 한 거야?" "이 씹, 누가 아프단 거야?!!!" 소릴 버럭 지르고 일어나려 버둥거리자 케레스까지 다가와 버둥거리는 몸을 내리누른다.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이.....이 자식까지!!! 누굴 환자로 만들고 지랄야?!!!!' 화가 나서 얼굴까지 벌개져 두 녀석에게 소릴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거 놔!! 누가 아프단 거야?!! 이 새끼들이 누굴 호구로 아나!!!" "너 설마......." "그래, 씹!! 안 아프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약 먹기 싫어서 이러는 거야? 어린애처럼 왜 이래? 아프면 가만히 누워있어야지!! 킥, 약 잘 먹으면 내가 내일 보석 잔뜩 가져다 줄 테니까 날뛰지 좀 말고 편히 누워!!!" "뭐? 약? 안 아프다는데 자꾸 이 지랄이야?!!! 이 새끼, 너 죽었어!!!" "헉, 발작이다!! 꽉 잡아!!! 궁의는 뭐 하는 거야?!!" "이 씹, 이거 놓지 못해!!!!!" 양쪽에서 내리 누르는 녀석들을 밀쳐내려고 버둥거리는 동안 문이 열리고 지난번에 봤던 궁의인 듯 한 늙은이가 들어와 놀란 듯 버둥거리는 날 바라보다 얼른 고개를 숙여온다. 늙은이가 날 이리저리 살펴보는 동안 화가 머리끝까지 나 헐떡이며 녀석들을 노려보는데 드디어 진료가 끝났는지 늙은이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온다. '이 새끼들, 이 손 놓기만 하면 다 죽었어!! 빨랑 멀쩡하다고 말해!!!' 궁의라는 늙은이에게 재촉하듯 무시무시한 시선을 보내자 잔뜩 쫄아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역시 어제 놀라셨는지 신경이 날카로워지셨습니다. 이렇게 흥분 상태로 계신 것 보다 억지로라도 안정을 취하시도록 하는 게......" "뭐?!!!!!! 이.....이 돌파리같으니!!!" 죽일 듯이 노려보자 주춤 뒤로 물러선다. "빠....빨리 약이나 줘!!! 더 날뛰잖아!!!" 버둥거리며 시트까지 발로 걷어차자 늙은이가 흠칫거리며 가까이 다가와 얼굴 위로 뭔가를 확 뿌렸다. "켁....콜록콜록.....이....이게 무슨 짓....?!!!" 갑자기 정신이 몽롱하고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서...설마......' 눈이 감기기 시작하자 몸을 누르고 있던 손이 떨어져 나가고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한숨 자면 괜찮을 거야......" 머리카락을 쓸어대는 손길에 입술을 벌려 겨우 말을 꺼냈다. "이.....새끼.........깨어나면......죽여 버........" 말도 끝맺지 못하고 까만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이 자식.....안 아프단 말야....!!!!" 중얼거리며 버둥대다 눈을 번쩍 뜨니 희미한 시야 속으로 붉은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다. "이 개새끼, 죽었어!!!! 안 아프다고 했는데...!!!" 벌떡 일어나 앉아 멱살을 움켜쥐는데..... '헉.......' "티폰.....?" 화들짝 놀라 쥐고있던 멱살을 풀고 속으로 시온과 케레스에게 줄창 욕을 해대며 슬그머니 다시 시트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응?' 뭔가 허전한 느낌에 시트를 들춰보니 홀딱 벗겨져 있고..... 얼굴을 확 붉힌 채 시트를 끌어올리고 녀석을 올려다보니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누.....누가 벗긴 거야.....시온이랑 케레스는 아닐 테고....설마 여자들인가? 아니면 이 녀석?' 아무래도 몸이 끈적거리는 게 자면서 땀을 흘려 벗겨놓은 듯 하다. 차가운 손이 이마를 쓸자 기분이 좋아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해가 지고 있는지 어두워지고 있었다. '씹, 그 자식들 때문에 하루종일 잠만 잤잖아!!!!' 속으로 뿌득뿌득 이를 갈고 있는데 가만히 이마를 짚어보던 녀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몸은....?" "안 아파...." "낮에....." "응?" 녀석이 갑자기 손으로 턱을 쥐어 얼굴을 들어올리더니 심홍색 눈동자로 꿰뚫듯 바라보며 엄지손가락으로 아랫입술을 쓸어본다. "네게......손댄 자가 누구냐...." '귀신같군.....어, 가만!! 이 새끼, 한 번 죽어봐라.....' "시온 녀석이....막 껴안구 입술에 뭔가 스쳤던 거 같은데......" 기대에 찬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자 역시나 얼음장같이 차갑게 표정을 굳힌다. '서....설마.....친동생을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진 않겠지.....?' 녀석의 표정을 보자 어쩐지 불안해 다시 입을 열었다. "위로해 준답시고 그런 거니까.....그냥 감옥에 이틀쯤 가둬버리면......다시는 안 그럴 것 같은데?" '너무 가벼운가.....한 일주일쯤 가두라고 할걸 그랬나......' "씹, 그나저나 오늘은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잖아? 그 자식들 때문에 하루종일 잠만 퍼대 자고....!!" 혼자 궁시렁대다 창 밖을 보니 이미 주위에 새카만 어둠이 깔려있었다. "응? 저게.....뭐야?" 새카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 덩어리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자 눈을 비비고 다시 창 밖을 봤다. '뭐지? 꼭.....불꽃놀이 같아......?' "티폰, 저게 뭐야?" 창 밖을 가리키며 말을 건네자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사흘동안 수도에서 축제다...." "축제?!! 그런 것도 있는 거야?!! 그럼 저거 불꽃놀이가 맞아?" 신기한 듯 처다 보며 재잘거리다 퍼뜩 티폰을 올려다보며 말을 꺼냈다. "구경하러 가자!! 응? 나 저거 보고싶어! 너도 매일 일만 하니까...." 말을 하다 뚝 멈춰버렸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응석을 부려본 적이..... .....없다...... 어머니에게조차 그날 이후 미움 받을까 두려워 응석은 커녕 부탁도 해 본적이 없었는데..... 결국 모든 걸 내 힘으로 해 왔는데 왜 이제 와서...... 녀석의 옷깃을 쥐고있던 손을 슬그머니 놓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잠자코 날 바라보던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서 방 바깥으로 나가버린다. '역시....무리였나.....황제나 되는 사람이 함부로 돌아다니는 건......그렇다고 나가버릴 건 없잖아?!!' 투덜거리며 침대 위로 다시 털썩 누워 시트를 뒤집어쓰고 눈을 감았다. '도대체 저 녀석한테 뭘 기대하는 거야.....' "하아....." 한숨을 쉬고 한참동안 몸을 뒤척이며 침대 위에 누워있는데 뒤에서 조용히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누구....?' 시트를 내리고 어두운 방안을 바라보자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누구야?!!!" 시커먼 그림자에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뒷걸음질치자 내 팔을 잡아 끌어당긴다. 버둥거리면서 끌려가다 눈에 박혀드는 붉은 눈동자에 저항을 멈춰버렸다. "티폰?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랐잖아! 그리고 그 차림이......" 평소와는 달리 단순한 복장에 붉은 천으로 대충 붉은 머리카락을 싸매고 검은색 망토를 하고 있는 녀석을 놀라 바라보자 시트 속에서 내 몸을 끄집어내 옷을 입혀주기 시작했다. "뭐....뭐 하는 거야?" 평소 걸치던 화려한 옷이 아닌, 좀 더 간단하고 편한 옷을 모두 입혀주더니 모자까지 달린 까만 망토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씌웠다. "가자..." "응?"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창 밖을 가리킨다. "정말......?"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바라보자 손목을 잡아끌어 문으로 향한다. 문을 열기도 전에 시종들과 병사들이 코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절을 하고.... 그들을 지나쳐 성밖으로 나와 아직 가보지 않은 건물로 향하기 시작했다. '여기가.....어디야?' 녀석의 손에 이끌려 건물로 다가가자 시종이 새카만 흑마를 마구간인 듯한 건물에서 데리고 나왔다. 티폰의 말인 듯한 흑마는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것처럼 성질 사나운 녀석인지 시종의 손에 끌려나오는 게 기분 나쁜 듯 연신 고삐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티폰의 앞에 끌려 나와서야 잠잠해진 말에 안장을 얹는 동안 녀석을 자세히 살펴봤다. 그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는지 까만 털에 윤기가 흐르고 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엄청 혈통 좋은 말처럼 보였다. 생각보다 커다란 말을 올려보자 거만한 눈으로 날 내려본다. '뭐....뭐야.....말새끼 주제에 사람을 저 딴 눈으로 쳐다봐?!! 꼬래 황제만 태우는 말이라 이거냐?' 다른 곳에 시선이 가있는 시종과 티폰을 흘끔 보고 흑마를 쓰다듬는 듯 손을 뻗어 갈기를 쭉 잡아당겨 버렸다. 어쩐지 티폰을 닮은 듯한 거만한 말을 괴롭히고 있는데 순간 말머리가 내 쪽으로 다가와 얼른 뒤로 물러서자 딱 소리가 날 만큼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뭐.....뭐야?!! 이 말 새끼가 내 머리 씹어먹으려고 했어?!!!!' 놀라 크게 뜬눈으로 말을 노려보자 가소롭다는 듯 날 바라본다. 그렇게 대치 상태로 서있는 동안 티폰이 가볍게 말 위에 올라타더니 내 몸을 끌어당겨 자신의 앞에 태우자 역시나 그 싸가지바가지 말이 맘에 안 든다는 듯 크게 한 번 울더니 몸을 흔들어댄다. "으악, 이 빌어먹을 말새끼.......!!!" 말 등에 앉자 생각보다 훨씬 높아 말이 움직이자마자 갈기를 움켜쥐고 답싹 매달려버렸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떨어질걸 생각하니 까마득하다. '이 새끼, 내가 그냥 떨어질 거 같아?!! 떨어지기 전에 털 다 뽑아버릴 줄 알아!!' 말이 날뛸수록 더욱 갈기를 쥔 손에 힘을 줘 매달렸다. 갑자기 날 일으키려는 듯 티폰의 손이 허리 아래로 들어오자 기겁을 하며 소릴 고래고래 질러댔다. "싫어! 만지지마! 떨어진단 말야!!!! 도대체 왜 앞에 태운 거야?!! 이 말새끼, 나 떨어뜨리기만 해봐!! 털에 불 싸질러 버릴 줄 알아!!!" 악을 바락바락 써대는 날 기어코 말 등에서 떼어내더니 자신 쪽으로 돌려 앉혀, 앞 뒤 생각도 않고 녀석의 단단한 허리에 두 팔을 단단히 감았다. 녀석이 잠시 날 내려보더니 말고삐를 잡아 당겨 날뛰는 말을 진정시키고 숨돌릴 틈도 없이 바로 출발해 버린다. 빠르게 달려나가자 몸이 더욱 흔들려 별 수 없이 미동도 없는 녀석의 몸에 필사적으로 매달렸고, 주위 사물들이 빠르게 스치듯 뒤로 지나가자 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렇게 40분쯤 달리자 속도가 차츰 줄기 시작하고...... 말이 멈춘 곳은 숲의 한 켠..... 말이 멈추자마자 진이 다 빠져버려 녀석의 품안에서 늘어져 버렸다. 따뜻한 품이 기분 좋다...... 눈을 감고 강한 심장 소리를 들으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몸을 쌔게 끌어안더니 의아함에 고개를 들어 녀석을 올려보자마자 입술에 따뜻한 것이 맞닿아 온다. 나른한 기분에 입술을 살짝 벌리자 입술을 핥던 혀가 입안으로 들어와 휘젓기 시작한다. 입안 구석구석을 자극하더니 내 혀를 빨아들여 이로 살짝 깨물자 작게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각도를 바꿔가며 잡아먹을 듯 하는 키스에 숨이 막혀 녀석의 옷자락을 꼭 쥐자 내 혀를 놓아주고 아쉬운 듯 입술에 몇 번 더 가볍게 키스를 하더니 떨어져 나갔다. "힘들면......그냥 돌아갈까?" 녀석의 품안에서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는 동안 귓가에 조용조용 속삭이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 다시 이 고약한 말을 타고 돌아갈 걸 생각하니 까마득하기만 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머리를 맹렬히 흔들자 할 수 없다는 듯 날 먼저 땅 위에 내려주었다. 몸이 휘청거리고 바닥이 빙글빙글 돌아 땅 위에 주저앉자 빌어먹을 말새끼가 내게 시선을 던진다. 방금 전 키스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있던 두건이 벗겨져 까만 머리카락이 드러나자 빤히 날 보다 어쩐 일인지 아까완 사뭇 다른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뭐....뭐야?' 녀석의 시선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으니 잡히는 건 까만 색 머리카락....... 까만 색 흑마...... '저게 미쳤나....동족의식이라도 느끼는 건가? 내가 말새끼로 보여?!!!' 기가 막혀 땅 위에 주저앉은 채 눈앞의 짐승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티폰이 말에서 내려 인적 드문 숲 안 쪽 나무 밑에 말을 매어두고 내게 다시 다가와 날 일으켜 세웠다. "이건 절대 벗지마....." 벗겨진 두건을 다시 덮어씌우고 내 손목을 잡아끌어 환하게 불이 밝혀진 도시로 향했다. 그리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입이 떡 벌어져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끝도 없는 가장행렬과 음악소리, 즐거운 듯 떠들며 웃는 사람들....... 화려한 차림의 귀족들과 소박한 서민들...... 길은 잘 닦여 있었고, 집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정리가 잘 되어있다. 귀족들의 집은 도시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지 멀리서 화려한 불빛을 밝히고 있는 거대한 건물 몇몇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저곳에서 축제 음식인 듯한 것을 팔고 있는 사람들과 길을 따라 즐비한 가게들을 정신없이 바라봤다. 생각보다 엄청난 규모의 도시에 놀라 발걸음을 옮길 생각도 못하고 한 자리에 서서 이곳저곳 바라보자 티폰이 손을 잡아끌었다. 시장에 엄마 손을 붙들고 나온 아이처럼 티폰에게 이끌려 걸어가면서도 이상한 차림을 한 사람들과 본 적도 없는 물건들을 파는 가게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머리 위로 불꽃이 가벼운 휘파람 소리를 내며 터져 색색의 빛을 흩뿌린다. 발길을 멈추고 넋이 나간 듯 올려다보자 티폰이 다가와 흘러내리는 두건을 끌어올려 준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만약 나와 떨어지게 되면 말이 있는 곳으로 와라.....장소는 기억하고 있겠지?" "응...."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근데 어디 가는 거야?" "중앙광장....." "중앙....광장...?" 그러고 보니 주위 사람들도 모두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뭐지? 거기서 뭔가 하는 건가...?' 한참동안 걸어 도착한 곳은 엄청나게 방대한 공간..... 주위엔 환하게 횃불이 밝혀져 있고 이곳 저곳엔 축제에 어울리는 이벤트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상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랠 부르는 사람, 힘자랑과 먹기 대회.... 축제라면 빠지지 않는 놀이들과 내가 알 수 없는 놀이들로 가득했다. 티폰의 손을 잡아끌고 여기저기 구경하길 한 참..... 갑자기 광장 중앙에 있는 높은 단상위로 누군가 올라서더니 커다랗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자정입니다! 아이들은 확실히 집으로 돌려 보내셨습니까?" 주위에 개미떼같이 몰려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중앙으로 모여들더니 즐거운 듯 크게 함성을 질러댄다. '뭐야? 뭔가 하는 거야?' "그럼 예정대로 올해는 특별히 연인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시간은 이 향이 다 탈 때까지.... " 단상 위에 올라선 사람이 길다란 향을 내밀자 사람들이 환호하기 시작하고..... "자, 시작합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광장을 환히 밝히고 있던 횃불을 모조리 끄기 시작했다. '뭐지?' 불꽃놀이라도 시작하려나 하고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속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주위에서 미약한 신음소리와 입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헉, 뭐....뭐 하는 거야....?!!' 당황해서 주춤 물러서는 순간 티폰이 내 손목을 끌어당겨 품에 가두고 귓가에 나직이 속삭여 왔다. "움직이지마..." 주위에서 들려오는 민망한 소리에 꼼짝도 못한 채 굳어 얌전히 녀석의 품속에 그렇게 갇혀있었다. '씹, 언제 끝나는 거야?!!!' 단상 위에 있는 녀석이 들고있던 향이 빨리 타길 바라며 속으로 투덜대고 있는데 갑자기 두건이 흘러내리더니 귀 뒤쪽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맞닿아 흠칫 몸을 떨었다. 귓가에 따뜻한 호흡이 부딪치자 얼굴이 확 붉어지고 귓불을 이로 자극하자 신음이 새어나갔다. 목을 타고 내려오는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에 몸이 가늘게 떨리자 약한 피부를 살짝 이로 물어 빨아들인다. 녀석이 뒤에서 내 목덜미에 머리를 묻고 키스를 하다 꼼짝도 못하게 내 몸을 구속하고 있던 손을 풀어 망토 속으로 집어넣더니 옷안에 파고들어 여기저기 더듬어대기 시작했다. "아....하지...마..." 신음을 겨우 삼키고 잠긴 목소리로 말을 해 보지만 오히려 자극에 힘이 빠져 녀석에게 매달리다시피 기대고 있던 내 몸을 돌려세워 입술을 맞대온다 . 신음이 흘러나오는 입술을 막아버리고 더욱 노골적으로 몸을 더듬어 대자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녀석의 뜨거운 입김이 느껴지고 허리를 쓸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자 화들짝 놀라 녀석을 밀쳐내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심장이 정신없이 뛰어대고 온 몸에 열이 올라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당황해 뒤로 물러서다 누군가와 부딪치자마자 날 끌어당겨 품에 넣는다. '티폰......?' 위를 올려다보지만 칠흑같이 어두워 한치 앞도 볼 수 없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 질 때까지 가만히 녀석의 품속에 안겨있는데 순간 불꽃이 터지면서 주위가 환하게 밝혀지고...... '누....누구야? 이 자식은?!!!' 날 안고 있던 녀석은 티폰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헝클어진 은발에 바이올렛 눈동자를 지닌 녀석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놀라서 굳어버린 내게 손을 뻗어 까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더니 한참동안 시선을 떼지 않는다. 불꽃이 사그라들고 다시 새카만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녀석이 이게 왠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오는 게 언뜻 스쳐 재빨리 주먹을 그러쥐고 턱을 날려버렸다. 둔탁한 타격음에 이어 작게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내 몸을 구속하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재빨리 녀석에게 벗어나 사람들을 밀치며 광장 밖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하아...하아....뭐.....뭐야? 여긴?!!!!" 아직도 어둠 속에 잠겨있는 광장을 바라보니 다시 밝아질 기미는 보이지도 않고 그 속에서 티폰을 찾는 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씹, 축제에서 이런 것도 하는 거야?!!!!" 경악을 금치 못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얼른 두건을 덮어쓰고 조금씩 빛이 새어나오는 길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광장을 벗어나자 흐릿한 등불을 켜놓은 거리가 눈에 들어오고....... 이리저리 둘러보자 다행히 티폰과 함께 지나왔던 거리...... "하아....구경은 실컷 했으니 우선 말새끼한테 돌아가 볼까......"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어둠 속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도둑이야!!!" "어머, 내 반지!!" "내 목걸이가....!!" 웅성거리며 소란이 일자 순식간에 광장 안 쪽은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했다. "뭐....뭐야? 도둑?!!! 씹, 더 시끄러워지기 전에 벗어나야겠군....." 소란을 뒤로하고 서둘러 거리를 가로질러 가는데 길가에 일렬로 음료수인 듯 보이는 잔이 쭉 늘어서 있다. "뭐야? 공짠가?" 인심 좋아 보이는 아저씨가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 잔씩 나눠주는 것을 보고 갑자기 목이 말라 다가가자 내게 잔을 내민다. 덥썩 받아들고 다시 길을 걸어가며 조금씩 홀짝이자 달짝지근한 게 어쩐지 맛이 묘하다. "이거 뭘로 만든 거지.....?" 붉은 색 액체는 마실수록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수도를 거의 벗어나 숲에 이르자 음료수가 가득 들어있던 잔은 텅 비어버렸고 어쩐 일인지 헤실헤실 웃음이 나오고 시야가 휘청인다. "킥킥, 어라? 기분이 왜케 좋지?" 빈 잔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비틀비틀 말이 매여있던 곳에 겨우 도착하자 흥분한 듯 날뛰는 새카만 말 옆에 커다란 하얀 물체와 누군가가 서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헤헤...티포온~나 왔어..." 비틀거리다 기어이 바닥에 쓰러져 버리자 뒤돌아서 내게 다가오는지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엎어진 김에 잠을 자려고 눈을 감자마자 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두건이 벗겨져 나가는 게 느껴졌다. "킥, 뭐야......너였어?!!! 아깐 엄청 아팠다구......역시 축제에 오길 잘 했군.... 혼자 온 건가....? 이 건방진 말이 니꺼냐?" 뭐라 중얼대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기분이 붕 떠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눈을 감은 채 비실비실 웃어대자 단단한 팔로 허리를 휘감아 고정시키곤 까만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 "뭐야~이 자식....너 내 머리카락하고 눈이 그렇게 신기해?!! 그것 땜에 나랑 자는 거지?!! 이 나쁜 자식~!!" 잔뜩 꼬인 혀로 내 자신도 모르는 말을 쏟아내자 머리카락을 쓸던 손이 멈칫 하더니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눈동자는 무슨 색인데....?" "무슨 헛소리야~ 이 바보 빨갱이 자식아~! 저리 비켜~!!" 녀석의 가슴을 밀어내며 눈을 번쩍 뜨자 시야가 빙글빙글 돌아 아무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까만.....색?!! 말도 안돼...." -43- 다시 휘청이는 몸을 붙들어 안아오는 녀석이 귀찮아 가슴을 밀쳐내며 바르작거리자 뭔가 녀석의 품에서 흘러내려 내 손에 떨어진다. 손안에 쥐어진 동그란 물체를 코앞까지 들이밀고 흐린 눈으로 바라보니 흔들리는 시야 속으로 새하얀 진주가 눈에 들어왔다. "응? 이거 뭐야? 진주? 엄청 크잖아.....이거 나 줘!" 진주를 손안에 넣고 꼬옥 움켜쥐자 내 턱을 들어올리더니 누군가 얼굴을 맞대온다. "이런 거 잔뜩 줄 테니까 나랑 가자.......그리고...... 킥, 아까 하던 거 마저 해야지...?" "응...?" 말을 마치자마자 따뜻하고 말캉한 게 입술을 덮어온다. 습관대로 입술을 열어주자마자 평소와는 다르게 저돌적으로 혀가 파고들어 내 혀를 감아 올렸다. 목구멍으로 타액이 넘어오고 입안을 온통 헤집어 놓는 자극에 작은 신음소리가 새어나가자 한참동안 내 입안에 머물다 아쉬운 듯 입술이 떨어져 나간다. 숨을 쉬지 못해 헐떡이자 시원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뭐야.....쉽게 입술 벌려주길래 익숙한 줄 알았더니 숨쉬는 법도 몰라?" "티폰.........?" "그게 누군지 몰라도 오늘이 지나면 다 잊어버려......" '무슨....소리...?' 녀석의 품에서 잠 속으로 빠져들려다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보이는 건 붉은 색이 아닌 은빛 머리카락.... '응? 이게.....뭐야?' 졸린 눈을 비비고 겨우 손을 들어올려 눈앞에 보이는 헝크러진 은빛 머리칼을 한 움큼 쥐자 고개를 돌려온다. "왜? 맘에 들어?" '이.....이 새낀, 아까.....!!' 붉은 눈동자가 아닌 바이올렛 눈동자 한 쌍이 눈에 들어오자 몽롱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난감한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보자 날 보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너, 누구야? 이 씹, 저리 비켜!!"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자 허리를 휘감은 팔에 더욱 힘을 준다. "아 씹, 아프잖아!! 이 새끼 죽고싶어?!!! 이거 놔!!" "가만있어! 안 잡아먹으니까!!" 얌전히 있다가 갑자기 버둥대자 녀석이 당황했는지 양손으로 내 몸을 더욱 옭아맨다. "놔!! 이 자식! 어딜 만지고 지랄야?!!!" 녀석에게 붙들려 소릴 고래고래 질러대자 티폰의 말이 흥분한 듯 날뛰어 대고.... 순간 눈 깜박할 새 뭔가가 스쳐지나가 뒤에 있던 단단한 나무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버둥거리길 멈추고 앞을 바라보자 차갑게 얼어붙어 있는 붉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오고.... '티폰....?!!' "떨어져...." 살기를 잔뜩 담은 붉은 눈동자로 노려보자 주위 공기가 서늘하게 얼어붙기 시작한다. 뒤에 있던 녀석도 순간 움찔 하더니 서서히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간단하게 떨어져 나가는 녀석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제야 티폰을 자세히 바라보니 손에 단검을 쥐고 있다. 뒤를 슬쩍 보자 역시나 아까 빠른 속도로 스쳐간 것인 듯 나무에 깊숙이 단검이 박혀있었고 날 붙들고 있던 녀석의 팔에선 단검이 스쳤는지 붉은 피가 베어 나오고 있었다. "이리와...." 티폰이 굳은 목소리로 날 바라보며 손을 내밀자 휘청이며 녀석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던 아까와는 달리 지금은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쓰리기 시작한다. 이리저리 시야가 흔들려 쓰러질 듯 휘청이는 몸으로 겨우 티폰의 근처까지 걸어가자 비틀거리는 날 보고 뭔가 잘못된 걸 눈치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날 확 잡아당겨 품속에 넣고 바로 단검을 날려버렸다. 단검이 날아올 줄 예상했는지 목을 향해 정확히 날아오는 단검을 겨우 피하고 녀석이 소리치기 시작했다. "쳇, 너무 한 거 아냐? 돌려줬는데 죽이려고 하다니!! 니가 티폰이란 놈이냐? 그 녀석....니껀가 보지?" 티폰이 살기를 담고 녀석을 서늘하게 노려보다 천천히 등뒤에서 검을 빼들기 시작하자 녀석이 언제부턴가 티폰의 말 옆에 서있는 백마에 가볍게 올라타 내게 눈을 맞추며 말을 했다. "니 손에 있는 건 뭐.....훔친 거니까 그냥 가져! 대신 다음에 보면 약속은 꼭 지키지!!" 알 수 없는 소릴 다 지껄이자마자 말을 달리기 시작한다. 녀석이 멀어지는 것을 보고 티폰이 쫓아가서 죽이려는 듯 자신의 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중심을 잃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어쩐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토기가 올라와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을 해대자 사라져 가는 녀석을 잠시 노려보더니 추격하는 걸 포기해 버리고 뒤돌아서 내 얼굴을 들어올린다. "도대체 뭘 먹은 거냐....?" 차가운 목소리에 겨우 시선을 들어 녀석을 바라보자 엄청 화난 표정..... '젠장......' 울렁거리는 속이 진정되자 입을 열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마을에서 나눠주길래......빨간색 음료수였는데....." "술을.....마신 거냐....." "응?" 놀라 바라보자 차가운 손으로 이마를 짚어온다. '알콜 냄새같은 건......나지 않았는데....?' "그 녀석은 누구지......" 날카로운 눈빛에 흠칫 놀라 눈을 돌리자 턱을 움켜쥐고 얼굴을 맞대더니 핏빛으로 짙어진 눈을 마주쳐 온다. "대답해...." "나도..........몰라......" "모르는 녀석한테 안겨서 그렇게 순순히 키스를 받고 신음을 흘렸단 거냐......?!!!" 차가운 눈으로 날 노려보며 손에 힘을 주기 시작하자 울컥 화가 치밀어 녀석의 손을 쳐내버렸다. "뭐야? 내가 그 딴 새낄 어떻게 알아?!! 성밖으론 나와본 적도 없는데!!! 씹, 애초에 니가 광장에서 그딴 짓만 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 없었잖아!! 지금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거야?!!" 술기운을 빌어 소리를 버럭 질러대며 녀석을 노려보자 이제는 살기까지 띄고 내게 다가오는 게 아무래도 날 강제로 범한 날 본 눈빛과 비슷해 흠칫 몸을 굳히고 이를 갈 듯이 내뱉었다. "다시 한 번 그 딴 식으로 내 몸에 손대면 황제든 나발이든 죽여버릴 줄 알아....." 녀석과 마찬가지로 살기를 담아 노려보자 붉은 눈동자가 섬뜩할 정도로 짙어지더니 화를 참는 듯 주먹을 꼭 움켜쥔다. 한참동안 그렇게 싸늘한 침묵이 계속되다 녀석이 먼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왜...... 반항도 하지 않고 녀석의 키스를 끝까지 받은 거지......? 그 녀석이..... .....좋은 건가....." 순간 녀석의 말에 기가 막혀 잠시 할말을 잊었다. "뭐?" 붉은 눈동자가 분노를 담고 날 노려본다. '뭐.....뭐야...이 자식, 갑자기.....' "말해......." "무슨 개소리야?!! 오늘 처음 본 자식이라니까!!!" "그럼, 이유가 뭐냐...." '하....이유? 이 멍청한 새끼....그걸 내 입으로 말하라고?!!' 꿰뚫어 볼 듯 바라보는 녀석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씹, 그 새끼가....." 대답을 재촉하는 집요한 시선에 쫓기 듯이 말을 내뱉어 버렸다. "병신같이 술에 취해서 그 새끼가 넌 줄 알았다!! 이제 됐어?!! 못 믿겠으면 죽이든 살리든 니 맘대로 해!!!!" 버럭 소릴 지른 후 자꾸만 쑤셔대는 머리를 부여잡고 녀석을 밀쳐버렸다. '이 자식,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속이 쓰리고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몇 시간 사이 극과 극을 달리는 기분에 적응이 되지 않아 머릿속이 뒤죽박죽 혼란스럽기만 하다. 갑자기 눈앞에 내밀어진 손에 고개를 들자 녀석이 약간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던진다. "돌아가자...." '돌아...가? 어디로....? 내가..... 돌아갈 곳이...... .....있었던가....?' 녀석의 손을 혼란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망설이자 갑자기 내 몸을 끌어당겨 품에 안더니 귓가에 조용조용 속삭여 온다. "가자......" 따뜻한 품속에 안겨 결국 거부의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44- 티폰의 도움을 받아 내게 진짜로 동족의식이라도 느꼈는지 올 때와는 사뭇 다르게 얌전해진 말 등위에 올라타자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티폰과 마주보지 않고 티폰의 앞에 바로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뒤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자 자꾸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졸면서 고개를 끄덕이자 티폰이 뒤에서 한 쪽 팔을 허리에 둘러 떨어지지 않게 고정시켜 준다. 졸린 눈으로 위를 올려보자 차갑고 무표정한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자식....모처럼 나 때문에 여기까지 나와줬는데......그 허여멀건한 새끼 때문에..... 가만.... 그러고 보니 그 자식....!!' 그 때까지 꼭 쥐고있던 주먹을 펴보니 상당히 큰 진주알이 눈에 들어온다. '이거 분명 훔쳤다고........그럼, 그 자식이 아까 그 도둑이었나?!!! 빌어먹을 좀도둑 새끼!!!'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며 욕을 해대는 사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붉은 눈동자가 날 내려다보고 있다. '티폰......' 녀석을 가만히 올려보다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기.....오늘 고마워. 재밌었어...." '그 좀도둑 새끼만 아니었어도 끝까지 재밌었을 텐데.....' "그리고.....미안....아깐...." 갑자기 내 몸을 끌어당겨 녀석에게 기대게 한 후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온다. "나 이외에 다른 자에겐 눈도 돌리지마...... 호기심도..... 보이지 마라...... 네 시선 안에 들어오는 자들은 모두 죽여버릴 테니..... 명심해.... 미쳐서 널 내 손으로 죽이지 않게....." 녀석의 섬뜩한 말에도 어쩐지 가슴이...... 심장이 아파 온다..... '왜 이렇게 내게 집착을 하는 거야..... 설마.....지금의 내가 아니라..... 3년 전의 날 보고있는 거야......? 3년 전의 기억을 가진 내 안의 누군가에게.....?' "난......니가 알던 3년 전 꼬마가 아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왔다. "알고있어....." "그런데 왜......?" "그런 건 상관없어.... 결국 3년 전의 그 녀석도 지금의 너도 내 것이니까.... 내가 루베라를 새긴....." '하지만 지금의 난 니가 3년 전 루베라를 새긴 그 녀석이 아냐..... 내가.....기억을 되찾으면 3년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녀석이 이렇게 집착을 보이는 나로......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녀석과 함께 있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눈을 감자 조용조용 새어나오는 녀석의 숨결이 목덜미에서 느껴지고 등에는 따뜻한 온기가 스며든다. . . . 다시 눈을 뜬 건 다음 날 새벽..... 숙취 때문인지 머리가 아파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그렇게 잠이 든 후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은 평소와 다름없이 녀석의 침대 위에서 언제 갈아 입혔는지 가벼운 차림으로 녀석에게 안겨 누워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보니 어쩐 일인지 깊이 잠이 든 녀석의 수려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붉기만 한 속눈썹과 미려하게 뻗은 눈썹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 입술에서 시선이 멈췄다. 확실히 선이 예쁘고 매혹적인 입술이지만......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자식.....태어나서 한 번이라도 웃어본 적이 있을까....?' 이 입술로..... 다른 사람에겐 잔혹한 말을 쏟아내지만...... 내겐 키스만을 해온다..... '웃으면......예쁠 텐데.....' 잃어버린 기억 속엔 녀석이 웃는 모습도 들어있을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녀석의 입술을 가만히 만져봤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손끝에 느껴진다. 한참동안 그렇게 녀석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다 터무니없는 내 행동에 놀라 손을 거두려는 순간 강한 손이 내 손을 꼭 움켜쥐었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자 언제부터인지 녀석이 깨어나 졸린 듯 약간 색이 옅은 심홍색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미...미안....깼어?" 녀석에게 손이 붙들려 안절부절못하자 쥐고있던 손을 끌어당겨 내 몸을 품에 안더니 미동도 없이 조용하다. 목덜미에 와 닿는 따뜻한 숨결에 간지러워 뒤척이자 자다 깨서 그런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을 해온다. "가만.....있어..........." '뭐? 이 새끼, 불편하단 말야!!!' 잘 자던 사람을 깨워놓은 건 싸그리 잊어버리고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녀석을 올려다보자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입술을 미끄러뜨리기 시작한다. '또 왜 이렇게 되는 거야!!!' 속으로 절규하며 녀석의 품을 벗어나려고 바르작거리자 어깨에 달린 매듭을 풀어버려 한 쪽 어깨가 환히 들어 날 정도로 옷이 스륵 흘러내렸다. 어깨에 키스를 해대더니 밑으로 서서히 내려와 루베라가 새겨진 곳에서 입술을 맞댄 채 한참동안 움직임이 없다. '자....자는 건가....?!!' 그렇게 몇 분 동안 긴장한 채 녀석의 품안에 갇혀있었다. 입술이 닿은 어깨가 불에 데인 듯 뜨겁다. 갑자기 붉게 새겨진 루베라에서 서서히 입술을 떼더니 마치 확인을 하듯 쓸어보는 손길에 가늘게 몸을 떨자 갑자기 불쑥 다른 손이 잠옷 속으로 들어와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노골적인 녀석의 행동에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고..... 화들짝 놀라 녀석을 밀어내고 침대 끝으로 달아났다. 시트를 목까지 끌어올리고 녀석을 바라보자 자다 깬 녀석답지 않게 불만이 가득 담긴 붉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뭐....뭐야, 이 자식?!! 설마 진짜로 할려고 했단 말야?!!' 난감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손을 뻗어 날 끌어당기려 한다. 녀석에게 놀라 재빨리 뒤로 물러나 보지만 등에 맞닿는 건 차가운 벽........ 어느 샌가 녀석이 손목을 움켜쥐고 날 끌어당기자 힘도 한 번 써보지 못한 채 녀석에게 끌려가 버렸다. 바로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맞대오는 순간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아침엔 하지마....!!" 잠시 침묵이 흐르고...... 슬쩍 티폰을 올려다보자 미간을 찌푸린 채 붉은 눈동자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던진다. "왜지....?" "응?" '왜....? 왜라니?!!! 젠장, 그야 당연히..... 응? 뭐지?!! 그게....아, 사람들이 다 알잖아!! 그리고....다 보여서 싫단 말야.....!!' 얼굴을 확 붉히자 대답을 재촉하듯 녀석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고...... "싫어......" 한참동안 머릴 굴리다가 급한 맘에 대뜸 앞 뒤 잘라내고 말을 던졌다. "왜......" 자신을 거부한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짙어지는 붉은 눈동자를 보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 새낀, 내가 무슨 말만 하면 화내고 지랄야!! 씹, 어쩌지? 다른 사람 시선 따위야 신경도 안 쓸 테고......다 보여서 싫다고는 말 못 하겠고...... 빌어먹을!! 내가 왜 이런 변명 따윌 해야돼?!!' 위를 올려보자 여전히 화가 난 듯한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이유도 듣지 않으려는 듯 옷을 벗기려는 녀석을 보고 놀라 소리를 꽥 질러버렸다. "아프단 말야!!!" '젠장, 어디가...?!!!'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변명에 집요한 녀석이 다시 물어오지 않을까 불안에 떨고있는데 녀석이 의외로 손을 멈칫하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통한........건가....?' 녀석을 바라보니 심각한 표정....... 마침 어제 의사까지 들락거렸으니 잘 하면 대충 넘길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 '지....지가 언제 나처럼 밑에 깔려봤겠어? 아침에만 아프다면 앞뒤가 좀 안 맞지만 내가 아프다면 아픈 거지..... 의심이라도 하면 한 번 해보라고 말해볼까....?' 머리를 열심히 굴려대며 어디가 아픈지 물어오면 머리도 아프고 온몸이 다 쑤신다고 말하려고 준비까지 하고있는데 순순히 녀석이 내게서 떨어져 나가더니 내 몸을 꼭 끌어안기만 한 채 가만히 누워있다. '응? 포기 한 거야?' 진짜로 포기한 건지 조용히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자려는 녀석을 보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대로 나도 녀석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나 옷을 입고 식사를 끝냈다.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내 입술을 붙들고 늘어지던 녀석이 밖으로 나가고...... 어쩐 일인지 케레스가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나도 시온 녀석이 오지 않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케레스에게 말을 던졌다. "시온은?" "폐하께서 지하감옥에 가두셨다고 들었습니다" "뭐?!!!!!" 그제야 어제 일이 생각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서.....설마.....어딘가 자른 건 아니겠지?" 불안한 눈으로 케레스를 바라보자 모르겠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젓는다. '어...어쩌지?' 안절부절못하다 케레스를 돌아보며 초조하게 말을 이었다. "한 번 가보자!!" "하지만 그곳은....." "잠깐만 들어갔다 나오면 되잖아!! 응? 빨리!!" 대답도 듣지 않고 뒤돌아서 문밖으로 나서자 할 수 없다는 듯 뒤따라오기 시작한다. "어디야? 지하감옥이?!!" 한번 갇혀보긴 했지만 들어갈 땐 기절해 있었고 나올 땐 눈까지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감옥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 성 지하에 있는 거야?" "감옥은 성 바깥에 있습니다. 지상층은 귀족이나 고위 관리, 죄가 가벼운 자들을 가두고 지하층은 사형수나 신분이 낮은 자, 죄가 무거운 자들을 가둡니다" '그....그럼, 그 녀석은 뭐야?!!!! 서....설마 사형수는 아니겠지?!!!' 한참을 걸어 성을 빠져 나와 성 뒷편으로 가자 음습하고 거대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을 보고 잠시 멈칫하다 케레스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감옥을 지키는 병사들이 케레스를 보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길을 비켜주더니 날 보곤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인다. 한참동안 걸어 내려간 지하감옥은 처음 끌려들어왔을 때처럼 축축하고 기분 나쁜 한기가 피부 속을 파고들고 시체 썩는 냄새처럼 고약한 악취가 코를 찔러왔다. 아무리 무거운 죄를 지었다지만 지하감옥 속에서 끔찍한 몰골로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자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도....얼마 전만 해도 저 속에 갇혀 사형 당할 뻔했는데........' 이곳은 어쩐지....... 낯이 익다....... '지난번에 갇혀 본 적이 있어서 그런가.....' 추위 때문인지 몸이 떨려오고 어쩐지 덜컥 이곳에 혼자 남겨질 것만 같아 무의식적으로 케레스의 옷자락을 움켜쥐자 잠시 멈칫 하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걸음이 멈춘 곳은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깨끗한 옷을 입은 사람이 뒤돌아 앉아있는 감옥 앞...... 어두워서 내부가 잘 보이진 않지만 작게 나있는 창문으로 희미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감옥 안을 들여다보자...... "헉!!! 너....너....시...시온!!! 파....팔이!!" 녀석의 양 소매가 비어있는 것을 보고 놀라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응? 하류야?!!" 녀석이 깜짝 놀란 듯 크게 뜬눈으로 뒤돌아보더니 원망스런 눈초리로 날 바라봤다. "너!! 페하께......응? 너 왜 그래?" 감옥 철창에 바싹 붙어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이 이상해 다시 팔을 올려다보자..... "악!!! 왜 때려?!!!" "이....이 새끼, 깜짝 놀랐잖아!!!!!"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갈겨버리자 아픈 듯 미간을 찌푸리고 멀쩡한 손으로 머리를 비벼댄다. "이 새끼, 왜 옷을 그 따위로 입고 지랄야?!!!" 두 겹으로 옷을 껴입은 녀석이 상의는 그냥 팔도 꿰어 넣지 않은 채 걸치고만 있었다. "뭐....뭐야? 폐하께 홀랑 이르고 걱정이라도 해주는 거야?" 녀석이 '나 삐졌소...' 하는 얼굴을 싹 지우고 빙글빙글 웃어대기 시작하자 울컥해 벌컥 소릴 질러버렸다. "닥쳐!! 걱정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아프지도 않은 사람 붙들고 억지로 자게 한 게 누군데 이 지랄이야?!!" 녀석이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본다. "너....내가 만진 게 기분 나빠 폐하께 이른 게 아니었어?" "뭐? 무슨 헛소리야?" "킥, 난 또.......그나저나 어제 너 아팠잖아!!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누가?!!!!!! 이 새끼,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잔뜩 열 받은 표정으로 시온을 노려보자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본다. "무슨 소리야? 어제 분명 아팠으면서!!" "이 새끼가 아직도!!!" 주먹을 움켜쥐자 후다닥 감옥 안으로 물러난다. "너 이리 안 와?!!!"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흠칫 하더니 갑자기 표정을 바꾸고 의기양양하게 쫑알대기 시작했다. "헹, 때려봐! 때려봐!! 킥, 감옥 안에 있는 것도 괜찮네!! 아아~편하다! 나 때리고 싶음 니가 여기로 들어오던가 날 꺼내주던가....." "이익....." 이제는 정말 편하다는 듯 바닥에 드러누워 너스레를 떠는 녀석을 보며 주먹을 떨고 있다 뒤돌아서 버렸다. "가자, 케레스! 괜히 왔네! 거기가 그렇게 편하면 티폰한테 평?생 꺼내주지 말라고 말해줄게! 잘 살아라!!" "으악!! 안돼!!! 악!!" 녀석이 철창 쪽으로 재빨리 다가서자마자 다시 머리를 쥐어박아 버렸다. "촐랑이 자식, 머리 나쁘면 평생 고생이라니까......내가 그 따위 도발에 넘어갈 것 같아?!!" "방금 넘어 갔......." 주먹을 꼭 쥐고 살기를 가득 담아 녀석을 노려보자 바로 고개를 숙이고 조용해진다. '쳇....소심한 자식.......'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들어 케레스를 노려보더니 다시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본다. "뭐....뭐야? 갑자기 또....." "야!! 나 혼자 억지로 너한테 약 먹인 것도 아닌데 왜 나만 여기에 가둬?!! 저 자식도 같이 했잖아!!" "응?" '그러고 보니......' 케레스를 바라보자 여전히 무표정에 가라앉은 잿빛 눈동자로 날 마주본다. ".................."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이 흐르자 한숨을 푹 쉬고 시온 녀석을 다시 바라봤다.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고...." "꺼내 줘!!!!" "뭐? 내가 어떻게? 나한테 보석 신청 따윈 하지마!!" "수전노....." "이 씹!!" "악!! 그만 좀 때려!! 또 폐하께 말씀드리면 되잖아!!!" "하지만.....그 녀석 저녁때나 돼야 돌아오는데?" "정무실에 가봐!! 너라면 만나 주실 거야!! 빨리!! 나 춥단 말야! 꺼내주면 다이아몬드든 사파이어든 달라는 거 하나 줄게!! 응?" '정무....실....?' 엄살을 피워대며 날 바라보는 녀석이 좀 안돼 보인다. 아까 팔이 잘린 줄 알고 엄청 찔렸던 것도 그렇고....... "알았어...해 볼께.....잠깐 기다려!!" "응!!" "약속은 꼭 지켜!!" "알았어!" 빙글거리는 녀석을 뒤로하고 음침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케레스, 정무실이 어디야?" 앞서나가는 케레스에게 묻자 무겁게 입을 열어 대답을 해온다. "황궁 1층 동쪽 끝에 있는 방입니다" '1층? 티폰이 매일 나가서 하루종일 있는 곳이 거긴가.....?' 케레스를 따라 도착한 곳은 황제의 침실 못지 않게 육중하고 화려한 문 앞....... "잠시 기다리십시오...." 케레스가 말을 하곤 정무실인 듯한 방안으로 먼저 들어서자 문이 다시 닫혀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안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시종들이 육중한 문을 열자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엄청나게 넓은 방안은 화려한 침실과는 달리 왠지 딱딱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눈이 멈춘 곳은 고급 원목으로 만든 듯 매끄럽고 은은한 갈 빛을 내는 거대한 책상 맞은 편........ 붉기만 한 사내가 화려하지만 편안해 보이는 의자에 기대앉아 내게 시선을 보내온다....... 침실이 아닌 곳에서 본 녀석은 평소보다 더욱 차가워 보여 말도 잊은 채 가만히 서있자 날 가만히 훑어보던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한다. "뭘 한 거냐....." "응?" 갑작스런 말에 녀석을 바라보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온다. "왜.....?" 엄청나게 위압감을 풍겨대는 녀석에게 약간 쫄아 시선도 떼지 못한 채 눈앞까지 다가온 녀석을 올려보자 내 팔을 끌어당겨 굳은 표정으로 날 살펴본다. '응?' 그제야 몸을 살펴보니 시온에게 갔을 때 놀라 넘어져 아침에만 해도 깨끗했던 옷 여기저기에 얼룩이 져있었다. 뒤에서 바라보던 케레스도 아차 했는지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하고...... "도대체 왜 이런 꼴이 된 거지.....?" 녀석이 케레스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을 뱉어내자 내가 먼저 얼른 입을 열었다. "시온이.....지하감옥에 있다고 해서 보러갔다가 넘어진 거야....." "누가.....루베라를 지하감옥까지 데려가라고 허락했지.....?" 내겐 시선도 주지 않고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케레스를 추궁해 대는 티폰의 눈을 돌리기 위해 녀석의 옷깃을 붙잡자 그제야 내게로 시선을 돌려온다. '씹, 이런 변명이나 해대려고 온 게 아닌데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야? 이 새낀 옷에 흙 좀 묻었다고...내가 흙장난하다 들어온 애새끼야?!!!' 속에서 끓어오르는 짜증을 겨우 누르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가자고 했어...." 붉은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마주보자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서늘하게 말을 뱉어냈다. "다시 한번 루베라를 그 곳으로 데려가면 네 목을 베겠다....." '뭐?!!' 어쩐지..... 케레스보단 내게 보내는 경고 같은....... "예, 폐하...." 한치의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가 케레스에게서 흘러나오자 잠시 녀석을 서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 "물러가라....." 케레스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가자 심홍색 눈동자가 나만을 바라본다. "루베라의......." '응?'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옷을 가져와라...." "예, 페하....." 약간 나이가 든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티폰의 등뒤에서 들려오자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로 눈을 돌렸다. '어....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야?' 아까부터 미동도 없이 그곳에 서있었는지 약간 나이가 든 시종 한 명이 고개를 급히 숙이고 정무실 밖으로 사라진다. "옷은.....왜?" "이런 꼴로 돌아다닐 셈이냐....?" "하지만......" '여기서 뭘 어쩌라구?!!' 난감한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방으로 다시 돌아가서......" "용건이 있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닌가....?" 녀석의 말에 퍼뜩 시온이 생각나 말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저기......시온 말인데....그냥 꺼내주면 안돼?" "그 녀석은....일주일간 지하감옥에서 근신이다. 루베라를 만진 것 치곤 너무 가벼운 처벌이야...." "그래도....." '이 자식, 이틀이면 된다고 했는데!!! 일주일이라고 말했으면 한달 가두려고 했던 거 아냐?'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반응에 녀석을 설득할 게 암담하기만 하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집요하게 날 바라보는 녀석의 루비 빛 눈동자를 긴장된 시선으로 맞받아 치다 결국 눈을 돌려버렸다. "내가........." 드디어 무겁게 녀석의 입이 열리기 시작하고...... 녀석이 내 턱을 움켜쥔 채 붉은 눈동자로 다시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네 부탁을 들어주면 넌 내게 뭘 줄 거지?" '뭐?' 갑작스런 말에 눈을 크게 뜨자 녀석이 뭔가 바라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뭘.....바래? 너도 알다시피....내가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석 약간과 단검 두 자루가 있긴 하지만 그런 건 이 녀석에게 쓰레기나 마찬가지인 물건....... 어차피 이곳에 떨어졌을 때 몸뚱아리만 달랑 떨어졌으니....... "그걸로.....충분해...." '뭐? 하지만........' 내 마음이라도 읽은 건지 차가운 손으로 얼굴을 잠시 쓸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해 온다. "그건.......니가 이미 가졌잖아...."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피하며 말을 하자 잠시 날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연다. "내 앞에서........약속을 해라...." "무슨.....?" 심홍색 눈동자로 잠시 날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절대......내 곁에서 떠나지 않겠다고....." '그 약속은 지난번에도.........' "내가 죽거나.......네가 죽을 때까지....." '무슨.......소리야......' 재촉하듯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도대체...... 뭘 불안해하고 있는 거야..... 떠날 수 있을 리가 없잖아.....네 곁에서.....' 내가 터무니없이 이 이상한 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등에 새겨진 소유의 각인이 사라지기 전 까진....... 내 기억이 돌아와 내게 있어 이 녀석의 의미가 뭔지 알기 전 까진...... 녀석을 떠날 수가 없다. 어차피 이건 약속 따위가 아니다. 다짐도 아니다..... 정해진 일일뿐...... 하지만...... 기억이 돌아온 후에도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결국 지키지 못할 약속일 지도 모른다. 이유가 없으면 떠나겠다고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생각해 대지만 정작은 기억을 되찾아 녀석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찾고있는 지도 모른다. 얼음같이 차갑지만 내게는 따뜻한 이 사내의 품안에 있을 핑계거리를........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어차피..... 이 이상하기만 한 세상에서 내가 안식을 느끼는 건 이 녀석의 품 속 뿐이다.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쉽게 이 녀석의 곁을 떠날 순 없겠지.... 자기 손으로 날 죽이지 않는 한 쉽게 놔주지도 않을 테니...... 이 녀석이 날 내치거나 내가 필사로 도망치거나, 내가 죽거나 녀석이 죽지 않는 한........ 녀석의 곁을 떠날 수 없다..... 만약 내 기억이 돌아와 녀석과 함께 있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면....... '야밤도주라도 해야하는 건가......' 평소엔 볼 수 없었던 초조감이 루비 빛 눈동자에 나타나기 시작하자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녀석의 눈빛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나도 모르게 입을 열어버렸다. "약속....할께......" 내 대답에 나조차 놀라 크게 뜬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어느 샌가 내게 다가와 평소완 다르게 약간 건조해진 입술을 포개온다. '긴장..... .....했던 건가.....? 설마...... 그럴 리가.....' 녀석을 올려다보자 열기를 품은 심홍색 눈동자를 살짝 내리뜨고 내 아랫입술을 붉은 혀로 핥으며 시선을 부딪쳐온다.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키고..... 뒤통수에 손을 뻗어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머리카락 속을 파고들자마자 아찔한 기분에 눈을 감아버렸다. 까맣기만 한 눈동자가 사라지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입술을 자극해 대던 녀석이 깊숙이 혀를 넣어 온다. 입안에 꿀을 발라둔 것도 아닌데 샅샅이 맛을 보려는 듯 훑어대는 녀석의 집요함에 숨이 막힌다. 손을 들어올려 녀석의 팔을 꼬옥 쥐고 신음을 흘리자 입술을 잠깐 떼더니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다시 깊은 키스를 해온다. 정신없이 해대는 키스에 머리 속에 뒤죽박죽 엉클어져 겨우 녀석에게 매달려 미약한 신음만 흘리고 있는데 순간 육중한 문 바깥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폐하...." "들어와...." '뭐?!!' 이로 입술을 살짝살짝 깨물면서 입술에 묻어 있던 타액을 핥던 녀석이 바로 대답을 하자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문이 열리고 시녀들이 고개를 숙인 채 안으로 들어와 옷을 두고 사라질 때까지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해대는 녀석은 까맣게 잊은 채 몸을 굳히고 시녀들의 뒤꽁무니만 바라봤다. "어딜 보는 거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리자 녀석이 화난 듯 날 바라본다. '이 뻔뻔한 자식!!!' 차마 말로는 못하고 불만 가득한 눈초리로 녀석을 바라보자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더니 내 뒤에 있던 낮은 테이블 위로 내 몸을 밀어붙였다. "뭐...야? 나 이제 갈 거야...." 의아하게 녀석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키려하자 바로 위에서 날 내리누른다. "뭐........하는 거야?!!" 동그랗게 뜬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붉은 눈동자 사이로 보이는 건 명백한 욕정.... '서...설마....왜 갑자기....?!!' 놀라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내 어깨를 양손으로 쥐고 하얀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을 맞대온다. "흑...." 버둥거리자 반항을 막아버리려는 듯 바로 내 것을 쥐어온다. 차가운 손이 옷 속으로 파고들어 몸을 더듬어대자 숨이 가빠지고..... 한동안 옷 위로 내 것을 쥐고 자극을 해오던 손이 떨어져 나가더니 급하게 옷을 벗겨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복잡하기만 해 손도 못 대던 옷이 녀석의 손이 스칠 때마다 흘러내리자 기가 막혀 멍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딱딱한 테이블 위에 눕혀진 채 옷이 홀랑 벗겨져 황당한 눈으로 녀석을 올려다보자 감상하듯 하얀 몸을 훑어보더니 아직 멍이 가시지 않은 허벅지에 시선을 꽂는다. '씹,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변태같은 자식!! 내가 아침엔 하지 말라고 했는........' 재빨리 창 밖을 바라보니 뜨거운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하얗기만 한 몸을 환히 다 비추고 있었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 태양 빛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다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내가 준 단도는 어떻게 했지?" 파랗게 멍이 든 허벅지 안쪽을 가만히 쓸다 낮은 목소리로 말을 던져왔다. 맨 피부에 닿아오는 녀석의 차가운 손에 오싹한 열기가 몸 안으로 스며든다. "방에....." "가지고 다녀....또 이런 일 생기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허벅지로 고개를 숙여 멍자국 위에 가만히 입술을 대더니 갑자기 이를 박아온다. "흑...." 아픔에 신음소리가 흘러나오자 강하게 빨아들이고 입술을 떼어낸다. 인상을 찌푸리고 녀석을 바라보다 허벅지로 시선을 돌리자 파랗게 멍이 든 자국 위에 새롭게 붉은 멍자국이 새겨져 있다. "씹, 아프잖아!!" 화가 나서 버럭 소릴 지르자 뉘집 개가 짓나 하는 무표정으로 날 보더니 다시 입술을 맞대온다. 뜨거운 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자마자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뭐...뭐야? 이런 곳에서...!! 황제라는 녀석이!!!" 이미 내 말은 듣지도 않는지 손으로 내 고개를 돌리고 다시 입술을 맞대왔다. 평소처럼 입을 벌려주지 않고 입술을 앙 다물자 녀석이 한동안 이로 입술을 자극하다 손을 뻗어 다시 내 것을 움켜쥐는 바람에 놀라서 입을 벌려버렸다. 매끄럽게 입안으로 파고든 녀석의 혀가 내 혀를 휘감아 오지만 녀석의 손이 주는 자극에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었다. 내 것을 움켜쥐고 귀두 끝을 엄지손가락으로 비벼대자 녀석의 차가운 손아귀에서 점점 부풀어 가는 게 생생하게 느껴져 눈을 꼭 감아버렸다. 온 몸이 데일 듯이 뜨겁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댄다. 녀석이 입술을 떼자마자 멈추고 있던 숨이 터져 나가고 하얗고 섬세한 손으로 부드럽게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야한 신음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내 신음소리에 맞추듯 손을 움직이면서 몸 구석구석에 입술을 미끄러뜨려 키스를 해온다. 피스톤질을 하던 손이 점점 속도를 높이며 강하게 움직이자 온 몸의 세포가 다 타들어 갈 것 같은 쾌감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간다. "으응.....아.....앗....티폰......"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쾌감에 애원하듯 녀석의 이름을 부르고 잡을 곳 없이 그러쥐고 있던 손으로 녀석의 몸을 붙들자 욕정으로 심홍색 눈동자가 짙어지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강하게 피스톤질을 해대자 결국 녀석에게 매달려 사정을 해버리고 말았다. 힘이 빠져 녀석에게 떨어져 나가 헐떡이며 눈을 뜨자 조용조용 내게 말을 건네 온다. "내가.....왜 너만 안는지 아직 모르는 거냐......" '왜....나만 안는지....? .......쾌락을 위해? ........내 눈동자랑 머리카락이.... .....신기하니까? 아니면....... 내게 루베라를 새겨서? 왜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뭔가 자꾸 생각이 겉도는 것만 같다. 녀석이..... 이런 말을 해 올 때면 왜지 모르게 거부감이 든다. 알아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알고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무엇이 튀어나올지 몰라 깊이 생각하는 게...... .....두렵다....... 고개를 가만히 휘젓자 잠시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귓가에 속삭여왔다. "그런데 왜 내게 안기는 거냐....." '왜.....녀석을 거부하지 않는 거지.....' 현재의 내가 녀석을 받아들이는 건지..... 과거의 내가 녀석을 원하는 건지...... 알 수가.......없다....... "나도.....몰라....." "빨리 알아내.......네 몸만 탐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럼.....뭘.....더 원하는 거야.....' "내가.....원하는 대답을 들려줘....." '원하는.....대답....?'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올려다보자 가볍게 입술에 키스하더니 내 몸을 뒤집는다. "흑......" 갑자기 녀석의 손가락이 애널 안으로 파고들자 몸을 가늘게 떨었다. 놀라서 돌아보자 내 몸에서 빠져 나온 하얀 액체를 손가락에 묻혀 내부를 적시고 있었다. "으응......" 안에서 움직이던 녀석의 손가락이 갑자기 어느 한 부분을 눌러오자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힘이 다 빠져버린 몸이 다시 흥분하기 시작하자 녀석이 손가락을 빼내고 옷을 벗는지 뒤에서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뜨거운 몸이 내 몸 위로 겹쳐지고 다리를 벌려 귀두 끝을 애널에 맞대오자 흠칫 몸을 굳혔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어대고 눈앞이 새카매지더니 손끝이 마구 떨리기 시작한다. 새카만 어둠 사이로 피처럼 끈적한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 뒤에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비명을 질러댔다. 내부로 파고들던 녀석이 내 반응에 흠칫 놀라 날 다시 뒤집더니 차가운 손으로 어깨를 흔들어 댄다. 붉은 빛이 언뜻 시야로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녀석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심홍색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표정을 감추려는 듯 내 몸을 끌어안았다. 녀석의 체온이 느껴지자 눈동자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뭐지.....? 방금 건......?!!!' 왠지..... 두렵다...... 이 따뜻한 품이 허상 같아서..... 떨리는 손으로 녀석을 끌어안는 순간 육중한 문이 벌컥 열리며 평소의 무표정이 깨져버린 얼굴로 케레스가 들어섰다.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비명소릴 듣고 뛰어들어 왔는지 잿빛 눈동자가 내 눈을 바라보고 있다. "죽고싶은 거냐....." "폐하...." "물러가라...." 꽤나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하더니 조용히 물러선다. 한참동안 그렇게 내 몸을 끌어안고 있다 서서히 떨어져 나가자 따뜻한 기운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버리고...... 그렇게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언뜻 스친 녀석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녀석을 붙잡았다. 놀란 듯 붉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한다. "허락....하는 거냐......" '허락.....이라니....? 왜 그런 식으로 물어보는 거야...... 왜 그런 표정으로 날 보는 거야....' 혼란스런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내 몸을 꼭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여온다. "허락한다고.....말해....." 명령조임에도 애원하듯이 들려와 이유 없이 가슴이 쓰려왔다. 잠시 심홍색 눈동자를 바라보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따뜻한 몸이 내 몸을 덮어온다. 녀석의 체온이 불안을 없애주고 부드러운 입술이 공포를 지워준다. 다시 안정을 찾아가자 녀석이 조심스럽게 내부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내 몸을 더듬어대는 차가운 손과는 달리 데일 것처럼 뜨거운 녀석의 것이 내부로 밀고 들어오자 온 몸이 열기로 가득 차는 것만 같다.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얀 가슴을 들썩이며 헐떡이자 녀석이 내 허리를 짚고 페니스를 뿌리 끝까지 밀어 넣었다. "흑....." 내부에서 강하게 맥박이 뛰어대는 느낌과 뜨거운 열기에 몸을 꿈틀거리자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응....아앗.......아....." 조금 전에 느꼈던 공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척추를 타고 오르는 쾌감에 허리를 들어올리자 바로 녀석의 손이 허리를 감아쥔다. 온 몸을 치고 오르는 열기에 끊어질 듯 신음을 흘리다 참지 못하고 허리를 약간 움직이자 녀석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부드럽던 움직임이 격렬해지자 몸이 부서져 나갈 것만 같다. "으응.........앗" 평소 냉정하고 차갑기만 한 녀석이 지금은 낯설기만 하다. 이성을 날려버린 게 녀석만은 아닌지 나도 모르는 새 녀석에게 맞춰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자 낮은 신음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그렇게 미친 듯이 서로를 탐하다 녀석이 내 허리를 쥐고 깊숙이 파고들어 따뜻한 기운을 뿌리자마자 그대로 테이블 위에 늘어져버렸다. 힘없이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려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찾자 입술에 몇 번 가볍게 키스하더니 내 안에서 빠져나간다. 밝은 곳에서 녀석에게 안긴 자국이 확실하게 남은 알몸으로 누워있는 게 민망해 얼른 옆에 떨어져있는 옷을 잡아끌어 가리고 몸을 겨우 일으키자 녀석이 진주 빛 나는 매끄러운 천으로 내 몸을 대충 닦아주고 날 안아 올렸다. 서있을 힘도 없어 반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안겨있는데 녀석이 향한 곳은 정무실에 딸린 여러 개의 문 중 하나..... 성큼 들어서자 침실에 있는 욕실의 반정도 되는 욕실이 눈에 들어왔다. 침실에 있는 욕실이 워낙 커서 그렇지 이곳도 꽤나 넓지만 더운물 대신 약간 차가울 것 같은 물이 욕조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화려하지만 어쩐지 차분한 느낌을 주는 욕실을 피곤한 눈으로 훑어보고 있는데 바닥에 날 내려놓고 향이 나는 천으로 내 몸을 구석구석 닦더니 자신의 몸도 닦기 시작한다. 옆에서 쭈그려 앉아 녀석을 말없이 지켜보다 어쩐지 손놀림이 서툰 녀석을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이 자식 내 몸 닦아줄 땐 안 그러더니 자기 몸은 왜 저렇게 서툴게 닦아? 매일 여자들이 욕실 시중인가 뭔가 들어줘서 그런가?' 등 쪽엔 손도 안대는 녀석을 보고 있다 손에서 천을 낚아채 탄탄한 등을 닦기 시작하자 잠시 흠칫 하더니 얌전히 등을 맡긴다. 녀석이 한 것처럼 꼼꼼히 등을 닦아주고 차가운 물을 뿌려 거품을 모두 씻어낸 후 나가려하자 재빨리 날 안아 올리더니 차가운 탕 속으로 밀어 넣었다.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에 화들짝 놀라 탕 밖으로 나오려하자 녀석이 어느 샌가 탕 안으로 들어와 내 허리를 감아쥐고 등에 입술을 미끄러뜨린다. "이 씹, 춥잖아!! 이거 놔!!" 추위에 패닉 상태에 빠져 소릴 버럭 지르자 귓불을 깨물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왔다. "조금만 참아.....몸에 좋은 물이니까..." '몸에....좋아?' 버둥거리던 몸을 멈추고 푸른빛을 띌 정도로 시린 물을 내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항상 녀석에게 나는 시원한 향이 콧속을 파고들고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다. '씹, 몸에 좋거나 말거나 추워 죽겠으니까 팔이나 풀어!!!' 내 허리를 양팔로 꼭 휘감은 채 목덜미에 키스를 해대는 녀석에게 한동안 반항하다 꿈쩍도 하지 않는 걸 보곤 속으로만 궁시렁대며 추위에 오돌오돌 떨다가 몸이 돌려지자마자 녀석의 몸에 들러붙었다. 그렇게 평소엔 따뜻했던 녀석의 몸에 필사적으로 엉겨붙어 떨어대길 한참....... 이빨이 딱딱 부딪치고 물에 베어있던 향이 머릿속으로 파고들 듯 진해지자 녀석이 다시 내 몸을 안고 탕 밖으로 나왔다. 추위에 지독히도 약한 몸이 부들부들 떨어대자 욕실 한 켠에 있던 선반에서 커다란 타월같은 뽀송한 천을 내오더니 내 몸의 물기를 털어 내고 욕실 밖으로 나와 몸을 비벼준다. 어느 정도 떨림이 멈추자 시녀들이 놓고 간 남빛 옷을 내게 입혀주고 자신도 주름조차 없는 옷을 단정히 입은 후 바닥에 앉아 녀석을 바라보던 날 일으켜 세워 따뜻한 창가로 데려가더니 머리카락을 말려주기 시작했다. 녀석의 손길에 까만 머리카락이 물에 젖어 더욱 진한 빛을 내며 목덜미로 떨어져 내렸다. 강하게 내리쬐는 따뜻한 빛에 졸음이 쏟아질 것만 같다. 눈을 스륵 감자마자 퍼뜩 지하감옥에 갇혀있을 시온이 생각나 고개를 들어올려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시온....은? 언제 풀어줄 거야?" "저녁 때....." 조용조용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와 체향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따뜻한 체온이 기분 좋다. 머리카락이 다 말랐는데도 놓아주지 않고 날 끌어안고 있던 티폰이 한참만에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왔다. "침실로 돌아가서 좀 쉬어...." "응......" 머리카락에 가만히 입술을 대고있던 녀석이 입술을 떼자 겨우 몸을 일으켜 문 밖으로 나섰다. -49- "케레스?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어?" 문 밖을 나서자마자 시야에 들어오는 잿빛 눈동자를 보고 방금 전 있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을 확 붉힌 채 당황하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날 잠시 바라보더니 바로 고개를 숙여온다. "방으로.....돌아가자...." 겨우 말을 하고 발걸음을 떼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건 커피색 눈동자를 지닌 중년 사내.... 황제를 알현하러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 단정히 머리를 숙인 채 서있는 사내를 한참동안 바라보다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길기만 한 복도를 서둘러 걸어가다 뒤에서 들려오는 케레스의 조용조용한 발자국 소리에 그 자리에 멈춰 녀석을 휙 돌아보고 말을 던졌다. "방금.....그 사람 누군지....알아?"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자 가슴이 두근거린다. '왜.....이러지...? 갑자기...' "로키안이라는 미르헨가의 귀족입니다. 선황과 친분이 있었고 당시 가장 권세 있던 귀족으로 하르바르트 폐하가 황제의 위에 오르실 때까지 한 편에 서주셨던 자라 들었습니다" "한 편에.......서다니?" "폐하껜 왕권을 노리던 배다른 형제가 있었습니다" '시온이 말했던 반역이란.....건가.....? 그런데 왜 그 자만 보면........설마....날 아는 녀석인가....' 티폰은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 과거에 대해선...... 아무 것도..... 만약...... 그 자가 내 기억의 일부라도 차지하고 있다면...... 뭔가 알고있는 걸까...... 나에 대해...... 내 과거에 대해..... "하류님......."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다 고개를 번쩍 들어보니 케레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몸이라도 안 좋으신 건......" "뭐?!! 또 그 소리야?!! 멀쩡해!! 내가 무슨 생각만 하면 아프냐고 난리야?!! 내가 무뇌안 줄 알아?!!!" 화를 버럭 내자 가만히 날 보며 미소짓더니 앞서나간다. "씹, 뭐야?!! 무시하는 거야?!! 이 자식!!" 녀석을 따라붙으며 쨍알대도 돌아오는 건 침묵과 무표정..... '젠장, 돌탱이 같은 놈.....' 잠시 발을 멈춰서 정무실 쪽을 가만히 바라보자 커피색 눈동자를 지닌 사내는 안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보면........' 다시 발걸음을 돌려 케레스의 뒤를 따라 황제의 침소로 돌아왔다. 약간 피곤하긴 했지만 향이 나는 찬물에 몸을 씻어서인지 몸이 가볍고 머리 속도 맑아 예정대로 점심을 먹은 후 단검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운동신경도 꽤 좋은 편이었고 소질도 있었는지 습득이 빨라 케레스가 놀란 눈으로 바라볼 정도였으니..... 거의 해가 질 무렵엔 단검도 꽤나 손에 익어 케레스가 검을 빼들고 조금씩 상대해 주었다. 한참동안 여유 있게 상대하는 케레스에게 단검을 휘두르다 지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자 케레스가 가늘고 날카로운 검을 검집에 넣더니 조용조용 말해왔다. "소질이 있군요.....며칠 후엔 단검을 하나 늘려도 될 것 같습니다. 장검을 배우셔도 될 텐데 왜 굳이 단검을....." "하아....아깝잖아....모처럼 받았는데...." 뚜렷이 대조되는 두 개의 곡도를 바라보다 케레스의 잿빛 눈동자를 바라봤다. "이거.....끝나면 장검도 가르쳐 줘....." 씨익 웃으며 말하자 부드러운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여 온다. "근데........티폰은?" 창 밖을 바라보니 벌써 해가 져 군데군데 불을 밝히고 있었다. 평소 해가 지자마자 방안으로 들어서던 녀석이 보이지 않아 의아한 표정으로 케레스에게 묻자 그제야 뭔가 생각났는지 바로 말해온다. "폐하께선 오늘 파티에 참석하신다고....." "뭐? 또 파티란 게 열린 거야?" '그 녀석.....파티엔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하.....그럼, 케레스는 돌아가서 쉬어....나도 피곤해서 일찍 잠이나 잘 테니까...." "하지만 폐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도망 안가....." 녀석이 반박도 하기 전에 욕실로 들어와 버렸다. '너무 성실해도 피곤하다구.....케레스.....' 옷을 다 벗어버리고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근육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눈을 감자 퍼뜩 아까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분명 티폰이었는데........ 머리도 그걸 알고 있었는데..... 정원에서처럼 녀석이 뒤에서 날 안으려고 하자마자 미쳐버린 것처럼 비명을 질러댔다. '이곳에 떨어져 녀석에게 처음 안겼을 때....... 뒤에서 범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정신병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거 아냐?!!!' 심각하게 생각을 해도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다 결국 복잡하게 엉켜있는 생각들을 털어 버리고 주위를 돌아봤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화려하기만 한 물건들 뿐....... "언제까지.....이렇게 보호만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거야?!! 젠장.....이런 생활....맞지 않아...." 며칠동안 잘먹고 잘살아서 그런지 몸에 약간 살이 붙었고 피부는 비단결처럼 매끄럽다. 윤이 나는 까만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간질이고 몸에선 욕실에서 쓰는 향이 베어버려 달콤한 향기까지 나고있었다. "씹.....계집애같군....." 하얗기만 한 피부를 찌푸린 채 바라보다 탕 밖으로 나와 몸을 씻고 물기를 대충 털어 낸 후 욕실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육중한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티폰인가....?'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들어서는 건 청색과 흰색이 배합된 옷을 단정히 입고있는 시녀들..... 놀라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케레스가 말해둬 내가 입을 옷을 가져왔는지 손엔 새하얗고 가벼운 천이 들려있다. 여자들도 꽤나 놀랐는지 홀랑 벗은 채 굳어있는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이....이!!! 뭘 보고 지랄야?!!!! 씹, 빨랑 나가!!!!" 온 몸이 확 붉어져 뒤돌아 서서 소릴 바락바락 질러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인다. 여기저기서 비명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가 작게 튀어나오고.... 대낮같이 환한 방에서...... 그것도 여자들 앞에서 홀랑 벗은 알몸을 보여줬다는 수치심에 열이 확 올랐다. "이 빌어먹을!! 빨랑 나가!!! 다 엎어버리기 전에!!" 꽥꽥 소릴 질러대며 침대 위에 있는 시트를 끌어당겨 몸을 감고 뒤를 돌아보자 화들짝 놀라 옷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서둘러 사라진다. "킥, 귀여워....저런 반응...." "쉿, 조용해! 들리잖아!" 뿌득하고 이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기겁을 하고 달아나듯 물러난다. -50- "젠장!!! 뭐야? 저 여자들!! 완전 철판이잖아?!!! 창피한 줄 몰라?!! 설마 여자들이 다 저런 건 아니겠지....?!!" 한참동안 궁시렁대다 평소엔 시녀들이 꺼주던 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다 끄기 시작했다. 호박을 태우는 향만 은은하게 방안에 들어차고.... 여자들이 가져온 옷도 입지 않고 그대로 침대로 기어 들어가 눈을 감아 보지만 피곤한 몸과는 달리 머릿속은 지나치게 맑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습관대로 녀석이 눕는 쪽을 바라보지만 녀석은 보이지 않고..... "씹, 중병이군......" 중얼거리다 시트를 몸에 돌돌 말고 벌떡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밤 공기가 파고들고 까맣기만 한 밤하늘엔 지난번과 같이 500원 짜리 만한 보름달이 떠 있었다. 창틀에 턱을 괴고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건물 안 쪽에서 희미하게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고개를 쭉 빼고 아래를 내려다보자 중앙 홀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온다. "파티라......재밌는 건가....." 한참동안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근처에 까만 그림자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뭐지?'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다 그림자가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까만 어둠 속에서도 선연한 빛을 내는 붉은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 그 녀석........ 그 옆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젊은 여자.... 그것도 굉장한 미인.... 밤에 언뜻 보면 검은 색으로도 보이는 짙은 밤색 머리칼에 옅은 갈색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머리 색깔에 맞춘 듯한 밤색 드레스는 엄청나게 화려했지만 여자의 미모에 초라해 보이기만 한다. 한동안 넋을 잃고 여자를 바라봤다. 티폰을 바라보며 살짝 웃는 모습이 예쁘기만 하다. 하얗고 섬세한 피부에 잘록한 허리, 빛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 열 여덟? 아홉? 나이는 나랑 비슷해 보였다. 남자라면 누구나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예쁘다. "진짜......잘 어울리는군......" 여자에게 눈을 떼지 않고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원래부터 한 쌍인 듯 아름다운 두 사람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퍼뜩 시선을 돌렸다. "여자....가슴이....저렇게 컸나.....?" 드레스가 꽤 많이 패여 거의 가슴이 반정도 드러난 데다 위에서 바라봤으니..... 하얗고 탐스런 가슴을 멍하니 바라보다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려버렸다. "한심해......." 다시...... 붉어진 얼굴로 티폰 쪽을 바라보다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놀랐다. 언제부터인지 녀석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꽤나 거리가 있는데도 붉기만 한 눈동자로 집요하게 내 얼굴을 훑더니 뭐가 맘에 안 드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발걸음을 돌려 성 안 쪽으로 사라져간다. 당황한 듯 여자가 티폰을 뒤따라 뛰어들어가고..... "뭐....뭐야?" 녀석이 사라진 곳을 황망히 바라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창문을 닫고 다시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 . . 겨우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깨어난 건 몸 위에 바윗돌 같은 게 짓누르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괴로워하며 몸을 뒤척이다 눈을 번쩍 뜨자 누군가 내 몸 위에서 날 끌어안은 채 귓가에 고른 숨을 내쉬고 있다. 잠시 굳어있다 고개를 돌리니 윤기 나는 붉은 머리칼이 눈에 들어오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콧속으로 확 풍겨들어 온다. "뭐야....." 인상을 찌푸리며 어디선가 맡아 본 적 있는 냄새에 기억을 더듬어 가자 마을에서 마셨던 음료가 머릿속에 떠오르고...... "이....이 새끼, 술 쳐 먹은 거야?!!" 어떻게 벗은 건지 침대 주위엔 몇 겹이나 되는 녀석의 옷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꾸만 녀석의 몸이 의식되기 시작하자 위에서 날 끌어안고 있던 녀석을 확 밀쳐 버렸다. 내 몸에서 떨어져나가자마자 눈꺼풀을 들어올려 몽롱하게 잠긴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평소엔 상상도 못할 녀석의 모습에 기가 막혀왔다. 얼마나 마셔댔는지 숨을 내쉴 때마다 새어나오는 단내에 나까지 술에 취해버릴 것만 같다. 잠시잠깐 자신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날 기이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잔뜩 잠긴 목소리가 붉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하...류?" "씹, 엄청난 발견이다....술 쳐 먹었으면 얌전히 잠이나 퍼대 잘 것이지 왜 자는 사람 위에 올라타고 지랄야?" 붉은 눈동자가 풀어져 평소와는 달리 날카로운 기운이 사라지자 만만해 보이기 시작한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쨍알거리며 녀석을 피해 저만치 달아나자 바로 팔을 끌어당겨 다시 제자리로 되돌리더니 버둥거리는 몸을 내리누르고 내 위로 올라타 뜨거운 입술을 부딪쳐 온다. 녀석의 혀가 입안으로 들어와 휘젓자 단내가 확 퍼져 정신이 몽롱해 진다. 술 때문인지 평소보다 뜨거운 녀석의 몸에서 벗어나려고 바르작대자 바로 손을 뻗어 내 것을 움켜쥔다.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신음을 삼키다 고개를 휘저어 녀석의 입술을 피해버렸다. "흐윽...아.....뭐....하는 거야........" 목 위로 데일 것같이 뜨거운 입술이 맞닿더니 낮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눈 돌리지마......." "무슨....흑........헛소리...야........?!!" 지독할 정도로 느리게 내 몸 위로 입술을 미끄러뜨리고 키스를 해대더니 내 가슴 위에 머리를 가만히 대고 미동도 없다. 녀석의 손아귀에 쥐어진 내 것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고...... 미동도 없는 녀석이 이상해 위에 올라탄 녀석의 몸을 밀쳐내자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고른 숨을 내쉰다. "이....이 새끼, 도대체 뭘 한 거야...?!!!!" 황당함에 이만 부득부득 갈고 있다가 아래가 뻐근한 느낌에 눈을 돌리자 여전히 내 것을 움켜쥔 녀석의 손이 눈에 들어온다. '이 빌어먹을 새끼!!!!'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거칠게 녀석의 손을 쳐내버렸다. 녀석의 손이 닿아 계속 커져 가는 페니스를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라보다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이 자식, 술 주정이 왜 이 지랄야? 나보다 더 심하잖아?!! 빌어먹을......그런 주제에 지난번에......' 혼자 꿍얼거리며 줄창 욕을 해대고 있는데 자꾸 녀석이 뒤척여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이고 민감해진 피부가 시트에 닿기만 해도 흠칫흠칫 몸을 떨어댄다. 단단하게 일어서 줄어들지도 않는 물건에 짜증이 솟구쳐 벌떡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천장에 여러 개로 뚫린 창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황망하게 줄어들지도 않는 내 것을 노려봤다. "씹, 이거 왜 이러는 거야?!!! 그 새끼가 만져대는 바람에...!!"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평소처럼 하얀 액체가 나와야만 줄어들 것 같아 한참동안 망설이다 천천히 손을 뻗어 단단하게 일어선 내 것을 감아쥐고 또다시 한참동안 얼굴만 붉힌 채 그렇게 앉아있었다. 거친 맥박이 손아귀에 느껴지고....... 결심을 굳힌 듯 눈을 꼭 감은 채 손을 움직이자 신음소리가 새어나간다. 신음을 막으려 입술을 깨물고 다시 손을 움직이려던 찰라 밖에서 뭔가 깨부수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칠게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놀라 눈을 번쩍 뜨자 분노로 짙어진 붉은 눈동자가 욕실을 훑어보더니 내게 눈을 맞춰온다. 알몸으로 검까지 들고 밤에 설쳐대는 녀석이 기가 막혀 뭘 하고있었는지도 새카맣게 잊은 채 멍하니 입까지 벌리고 녀석을 바라봤다. 갑작스런 소란에 병사들까지 모두 몰려왔는지 침실 안이 떠들썩하고...... 홀랑 벗고 있는 날 보더니 아까 침대 위에서 잔뜩 풀어져있던 녀석은 어디 갔는지 온데간데 없고, 평소대로 서늘한 표정의 녀석이 병사들을 모두 물리고 다시 내게 시선을 던져온다. 차가운 눈으로 욕실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혼자 앉아있는 날 보고 분노를 사그러뜨린 채 의아한 눈으로 입술을 천천히 열어 말을 꺼낸다. "혼자서.....뭘 하는 거냐......"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얼굴이 확 달아올라 원망이 가득한 눈동자로 녀석을 노려봤다. "뭐? 뭘 하냐고?!! 이 새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분노가 솟구쳐 꽥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 씹, 자는 사람 깨워서 주물럭대고 곯아떨어진 게 누군데 모르는 척 지랄야?!!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억울한 마음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쨍알대자 그제야 뭔가 생각난 듯 검을 내려놓고 내게 다가와 앉아 내 것을 쥐고 있던 손을 그대로 감싸왔다. "이 새끼, 비...흐윽......비켜......" 녀석의 가슴을 밀쳐내려고 버둥거려 보지만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더니 피스톤질을 시작해 별 수 없이 녀석에게 등을 기댄 채 신음을 흘렸다. 이미 한계까지 부푼 페니스가 녀석의 손이 주는 자극을 견디지 못하고 금새 하얀 액체를 내보내자 겨우 줄어들기 시작한다. 쾌감에 머릿속이 비어버려 아무 생각도 못한 채 얌전히 헐떡이며 앉아있자 녀석이 손을 씻은 후 하얗고 부드러운 천을 물에 적셔 내 몸을 닦아낸다. 피곤한 눈으로 녀석이 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는데 갑자기 날 번쩍 안아들더니 욕실 밖으로 나와 다시 침대 위에 올려놓곤 꼭 끌어안는다. 한밤중에 녀석 때문에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러 버린대 심술이 나 녀석의 품을 빠져나가려고 바스락거리며 뒤척이자 아이를 달래듯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는 느낌에 결국 녀석의 품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 . . 황당하게 다음 날 아침 내게 여자에게 절대 눈길 주지 말라는 말을 해온 녀석을 기가 막혀 바라보다 평소보다 무시무시하게 싸늘한 녀석의 눈길을 받곤 잔뜩 쫄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시온이 지껄여 대는 수다를 통해 이 세계에 대해 꽤 많은 것을 배워 나가고 케레스에겐 단검 사용법을 배운지 거의 한 달..... 양손으로 단검을 쥐고 공격과 방어를 익숙하게 전환 할 수 있게 되자 드디어 녀석이 내게 단검 던지는 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첫 판에 목표물로 쓰인 작고 둥근 나무판자에 단검이 들이박히자 시온이 놀라 입을 쩌억 벌렸다. 정 중앙에 박히진 않았지만 처음 치곤 굉장히 잘 한 거라 케레스가 칭찬을 하고 시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한달 동안 단검 던지는 법만 가르쳤냐고 투덜댔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지나고 단검이 점점 작은 표적 중앙으로 날아가 박히기 시작하자 내가 열 받아 단검만 집어들어도 시온 녀석이 기겁을 하고 달아났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즐거워 기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흐릿해 질 무렵....... 내 목표를 일깨워 주듯 다시 커피 색 눈동자를 지닌 그 사내와 조우했다..... 한달 동안 보이지 않던 그 사내와.... 그것도 공교롭게 단 둘이서....... 시온은 늦잠이라도 자는 지 보이지 않아 먼저 케레스와 밖으로 나와 정원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날 이후 항상 지니고 다녔던 단검들을 방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아 버렸다. 되돌아가려 하자 케레스가 대신 가지고 오겠다며 혼자 방으로 되돌아 간 상태.....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하는 마음을 겨우 누르고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다 티폰이 귀족에게 말을 걸지 말라 했던 것도 어기고 입을 열었다. "당신.....내가 누군지....알고 있어? 3년 전의 날.....알고 있는 거야?" 내 추측이 맞았는지 잠시 몸을 움칠 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을 시작한다. "왜 그런 걸 저에게 물으시는 겁니까....." "나도....몰라...." "기억을 잃으셨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요...." "그래...." "떠나십시오....." "뭐?" 갑작스런 말에 몸을 굳힌 채 사내를 바라봤다. "당신을 위해 드리는 말입니다" "무슨....."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지만..... 2년 전 선대 황제를 암살한 건.....당신입니다" 숨을 멈춰버렸다. "폐하께선 아니라고 부정하고 계시지만 언젠가......진실을 받아들이시게 되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할 겁니다. 그 전에......몸을 피하십시오...." '그게.......무슨 소리야.....' 이유도 모르게 덜덜 떨리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져 내렸다. -52- 듣고 싶지 않다..... 더 이상..... 하지만 저 말이 내가 찾던 진실이라면..... "3년 전, 황태자께서 이유 없이 제 딸과 파혼을 하신 게 이상해 이유를 물으러 찾아갔다 당신을 뵌 적이 있습니다. 까만 머리카락에 까만 눈동자를 한 루베라를......" '파혼......? 나 때문에.....티폰이 파혼한 거야....? 도대체 왜?!!' "전.....폐하께서 사랑하셨던 루베라를 직접 죽이고 괴로워하시는 걸.....보고싶지 않을 뿐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도망치세요...." 말을 마치고 뒤돌아서는 사내를 망연자실해서 바라봤다. '사랑....? 누가....누굴.....?!! 그 녀석이 날 사랑했다고? 3년 전의 날? 그래서 그렇게 안아주고 보살펴 준거야? 그렇게 집착을 한 이유가......그거였어?'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만약....... 저 사내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난 사람을 죽인 거다. 그것도 녀석의 아버지를....... '그런데......... 날 사랑했다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날?' 손으로 바닥을 움켜쥐었다. '이게 정말 사실이라면.....이런 진실 따위 티폰의 말처럼 모르는 편이 더 나았을까....? 아무 것도 모른 채 녀석의 품에서 그렇게......' 마른 흙바닥 위로 투명한 눈물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뒤에서 급하게 뛰어오는 케레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얼른 눈물을 훔치고 바닥에서 일어섰다. "하류....님.....왜...?" "미안....몸이......좀 안 좋아...... 오늘은 그냥 들어가자...." 잔뜩 잠긴 목소리로 말을 하자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지만 눈동자를 피해버린 채 다시 티폰의 침소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있자 케레스가 심각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손바닥에 묻은 흙을 젖은 천으로 조심스럽게 닦아내며 굳은 목소리로 말을 던져온다. "궁의를 부르겠습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불안한 듯 날 바라보는 케레스에게 눈을 맞춘 채 겨우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게.....있어....." 다음 말을 기다리듯 잿빛 눈동자를 마주쳐 오자 천천히 말을 꺼냈다. "저번에 말한 거...... 티폰이 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거...... 혹시..... 사랑한단 소리야?" 잠시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여 온다. 심장이..... 찌를 듯 아파 온다. '왜.....하필 이럴 때.....알게 된 거야....'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을 가리려 고개를 숙이고 다시 물었다. "그럼, 2년 전 황제가 암살 당했을 때......... 범인은....... 어떻게 됐어.....?" 갑작스런 물음에 잿빛 눈동자에 의아함이 생기기 시작하는 걸 무시하고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반역의 주도자였던 폐하의 배다른 형제 슈안은 페하께 죽임을 당하고....... 전대 황제를 암살한 범인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습니다......." '슈....안...?' 뭔가 머릴 쿡쿡 찔러대는 느낌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목덜미에 닿아오는 까만 머리칼이 귀찮기만 하다. 케레스가 다가오려던 순간....시온이 평소와 다름없이 문을 벌컥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 하류.....아직도 여기 있었어? 정원엔...... 너.....왜 그래?!!"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시온의 붉은 눈을 피해버렸다. '이 녀석의 아버지를 내가....죽였어....?' "궁의를......불러 줘...." 차라리 아무 것도 생각지 않고 잠이라도 자고싶다. "궁의를 불러라!!" 날카로운 목소리에 문 밖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한다. 떨면서 침대 안으로 파고들자마자 허겁지겁 늙은이가 뛰어들어오더니 날 보곤 심각한 표정의 시온에게 뭐라 말을 해대지만 아무 것도 들려오지 않는다. 결국...... 내가 원하던 대로 돌팔이 늙은이가 가루를 뿌리자마자 까맣게 잠이 들어 버렸다. . . . 눈을 뜬 건 한밤 중....... 차가운 손으로 내 이마를 쓸어주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티폰......'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보면.....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만 같다. 겨우 감정을 숨긴 채 녀석을 바라보자 말을 건네 온다. "왜....갑자기....." "하, 더위 좀 먹었던 거 같아......요즘 계속 더웠잖아.....이 빌어먹을 옷으로 겹겹이 쌓아 놓으니까......." 그러고 보니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티폰......." 붉은 눈동자 속엔 항상 내 모습만이 비춘다. "잠깐.....바람 좀 쐬러 갔다오자......나 더워......." '확인해....볼 게.....있어....' "황제의 숲으로....." '혼자 들어가 볼 수 없다면 이 녀석과 함께라도 들어가 보는 수밖에......' "안돼...."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어오는 창 밖을 잠시 바라보더니 단호하게 말을 잘라버린다. "가자! 한 달 동안 정원은 질리도록 봤어!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이 가자는 데도 안 되는 이유가 뭐야?" 사실.....정원은 한달 동안 다 보지도 못했다. 성 내 지리는 어느 정도 익혀뒀지만..... 딱딱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의 목에 팔을 둘러 뺨을 맞대고 귓가에 조용조용 속삭였다. "가자.....가보고 싶어....." 가만히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다 땀에 젖은 내 몸을 만져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는...거야?" 고개를 끄덕이고 뒤돌아 서는 녀석의 뒤를 떨리는 발걸음으로 겨우 따라가 마굿간에 도착하자 시종이 화들짝 놀라 머리를 땅에 박더니 티폰의 한 마디에 후다닥 뛰어들어가 흑마를 끌고 나왔다. 그 동안 몇 번 찾아가 당근으로 회유한 보람이 있는지 날 보더니 꼬리까지 흔들어 대며 흥분하는 말을 티폰이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말에 올라 날 끌어당겨 앞에 태운 후 숲으로 출발했다. 녀석이 천천히 말을 몰아준 덕분에 이곳저곳 살펴볼 수 있었지만 어둠 속에 잠겨버린 숲은 어쩐지.... 기억을 불러일으키기 보단 공포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여기저기 훑어보며 도착한 곳은 눈이 크게 뜨일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 시리도록 하얀 보름달이 호수 표면에 반사돼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이고 있었다. 티폰이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던 날 말에서 내려주고 말고삐를 근처에 매어 놓은 후 내 손목을 당겨 호수로 다가갔다. -53- 갑자기 내 옷을 벗겨 내리는 녀석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실오라기 하나 없이 모두 벗겨버리고 자신도 단정하게 입은 옷을 모두 벗어 내린다. 달빛 아래 드러난 녀석의 아름다운 몸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가만히 날 바라보다 내 손목을 끌어 물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끈적하게 몸에 달라붙던 더위가 한 순간 씻겨내려 가고 머리 속까지 맑아지는 차가운 물에 허리까지 몸을 담근 채 예쁘게 은빛으로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봤다. "카메나이 호수다....." "응?" 녀석을 올려보자 심홍색 눈이 내게 들어와 박힌다. "연인들이 함께 몸을 씻으면 평생 행복할 수 있다는 전설이 있다더군....." '평생....행복...해?' "그거....거짓말이야...." 심홍색 눈동자가 의아한 듯 날 바라본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 버려 몸을 흠칫 굳히고 서둘러 변명 같은 말을 꺼냈다. "하...하하...설마......티폰도 그거 믿는 거 아니지?" "글쎄....." '이대로 기억을 되돌리지 않은 채 이 녀석 곁에 있으면 평생.......행복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만약.... 그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사람까지 죽이고...... 그것도 이 녀석의 혈육을 죽이고...... 뻔뻔히 녀석의 곁에 남아...... 행복해 질 수 있는 걸까......?' 시야가 축축한 물기로 흐려지기 시작하자 몸을 완전히 물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정말......날 사랑하는 거야.....?' 한참만에 내 몸을 끌어올리는 손길에 이끌려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얼굴과 머리카락은 이미 흠뻑 젖어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약간 화가 난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씨익 한 번 웃어줬다. 손을 뻗어 녀석의 뺨을 쓸자 흠칫 몸을 굳히더니 단단한 손으로 내 손을 감싸온다. "저기.....티폰....." 녀석의 가슴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자 허리에 팔을 감아 몸을 밀착시켜온다. "니가....왜 날 안는지..... .....알았어........" '늦게 알아채서...... 미안.........' 바로..... 녀석의 따뜻한 입술이 내 입술을 덮어온다. 녀석의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안자 흠칫 놀라 내 입술을 깨물더니 바로 입안으로 파고들어 내 혀를 감아온다. 평소....받기만 하던 키스가 아닌...... 혀를 서툴게 움직여 녀석을 자극하자 목이 마른 사람처럼 내 입술에 매달린다. 숨 쉴 겨를도 주지 않고 각도를 바꿔가며 정신없이 해대는 키스에 몸이 휘청거리자 내 허리를 쥔 채 물 밖으로 나와 녀석의 망토가 깔려있는 바닥위로 내 몸을 쓰러뜨려 왔다.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스치고 목을 물어뜯을 듯 거칠게 애무를 해대는 통에 신음이 흘러나온다. 하얀 몸에 붉은 소유의 각인을 새기며 내려오다 가슴 돌기에 혀가 닿자 흠칫 몸을 굳혔다. "아....으응...." 입술로 빨아들이고 이로 물어 혀를 굴리자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대고 숨이 가빠진다. 참을 수 없어 녀석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밀어 넣자 더욱 진하게 자극을 해대다 밑으로 점점 내려오기 시작한다. "흑.....아앗......아....." 민감해진 피부를 이로 물고 입술로 빨아들이자 자극적인 신음이 밤하늘에 울려 흩어지고 갑자기 내 것을 뜨거운 입안으로 삼키자 미칠 것 같은 쾌감에 녀석의 붉은 머리카락을 떨리는 손가락으로 감아쥐었다. "아......으응.....티폰......" 애원하듯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 한 번 강하게 빨아들이더니 이빨을 세워 귀두 끝을 자극해 온다. "아...앗......." 입술을 깨물고 신음을 삼켜보지만 강하게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불규칙한 호흡에 뇌로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인지 아무 것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 같은 자극에 허리를 비틀어 녀석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더욱 강하게 입술로 조이고 빠르게 피스톤질 해대자 정신없이 신음소리만 흘려냈다. 녀석이 이빨로 페니스를 자극해 대자 참지 못하고 허리를 휘며 사정을 하려던 순간 입을 떼더니 귀두 끝을 막아온다. 정신없이 숨을 몰아쉬며 잔뜩 풀려버린 까만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자 떨어져 있던 옷깃을 뒤져 엄지손톱 만한 보라색 구슬을 빼낸다. 옷안에 넣어 향료로 쓰는, 오일을 굳혀 둥글게 만든 구슬을 애널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자 체온에 녹아 바로 진한 향기를 뿌려댄다. 오일을 밀어 넣으며 미끌미끌한 내부를 마찰해대는 손가락의 자극에 허리가 휘고.... 녀석의 손아귀에 있는 페니스가 사정이 막혀 아파 오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내 것을 쥔 녀석의 손을 움켜쥐었다. 이성이 반쯤 날아가 버린 붉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정신없이 입술을 부딪쳐온다. 녀석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신음소리가 흘러나와 입안에서 삼켜지고..... 숨이 막혀 얼굴을 돌려 녀석의 입술을 피하자마자 다리를 벌리고 녀석의 귀두 끝이 애널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 뜨거운 열기와 고통에 고개를 휘젓자 내 것을 쥐고 있던 손을 풀어주고 허리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약간 들어올린 후 뿌리 끝까지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내부를 가득 채운 열기에 온 몸이 타들어 갈 것만 같다. 헐떡이며 겨우 숨을 고르다 위에 보이는 녀석의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자 바로 몸을 움직여 왔다. 처음부터 강하게 쳐 올리는 녀석에게 밀리다 녀석의 목을 휘감고 허리를 조금씩 움직여가자 자극적인 녀석의 신음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한참동안 그렇게 몸이 부서져 나갈 것 같은 쾌락 속에 빠져 서로를 탐하다 녀석이 내 몸을 강하게 끌어안고 내 안에 뜨거운 열기를 모두 쏟아내자 몸이 늘어져 기절하듯 녀석의 품안에서 잠에 빠져버렸다. . . . 차가운 한기에 눈을 번쩍 뜨니 여전히 아름답게 빛을 흩뿌리는 호숫가...... 규칙적인 호흡 소리에 옆을 보니 티폰이 죽은 듯 잠들어 있다. 가만히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보다 녀석의 팔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지금이..... 기회일 지도 모른다.... 이대로 녀석의 품에 남아있을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확인해 볼 것인지...... 그런 지독한 진실 따위....... 끝없이 거부하고 싶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녀석의 곁에 있을 수 있는 이유를 찾기는커녕, 그 사내의 말처럼 녀석의 손에 잔혹하게 죽임을 당할 지도.....모른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죄 값이라면........ 이 녀석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지만.....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다 떨리는 입술로 녀석의 입술에 살짝 키스하고 떨어져 나갔다. '미안..... 난..... 난 아직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 이렇게도 녀석의 곁에 남아있고 싶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알 수 없는 경고를 보내온다. 쫓기 듯 겨우 녀석에게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자 새카만 어둠과 정적 뿐....... 조그만 소리에도 번쩍번쩍 눈을 뜨는 녀석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조용히 몸을 일으켜 옷을 입었다. 발소리를 죽여 호수를 벗어나려는데 티폰의 흑마가 날 보고 데려가 달라는 듯 머리를 흔들어 댄다. "쉿...." 녀석의 갈기를 쓸며 진정시키고 혼자 까만 어둠 속으로 한발한발 내딛기 시작했다. 바람에 나뭇잎 부딪치는 스산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고 한치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한참동안 걸었다. 보이는 건 커다란 나무와 바위 뿐..... 이름을 알 수 없는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어둠 속에 잠긴 숲을 그렇게 헤매고 다녀도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역시......무리였나....' 어쩐지 불어오는 바람이 심상치 않아 주위를 둘러보다 결국 앞으로 더 나아가길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까맣기만 한 숲 속은 도통 길을 분간할 수가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티폰이 있던 호수에서 일직선으로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호수는 나오지 않고..... 얼굴로 차가운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불안으로 심장이 뛰어대기 시작한다. "젠장, 날을.....잘못 잡았나....." 심각해져 가는 날씨에 뛰듯이 산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 쏟아져 내리는 폭우에 정신없이 달리다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흙탕물 위를 굴렀다. "으윽...." 여기 저기 바닥에 있는 돌에 긁혀 생채기가 생겨 피가 흐르고..... 몸을 겨우 일으키자 품에서 붉은 곡도가 떨어져 나갔다. 정신없이 쏟아 붓는 폭우를 맞으며 멍하니 붉기만 한 루비를 바라보다 주위가 환해질 정도로 번개가 번쩍이고 고막을 찢어놓을 듯 강한 천둥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미친 듯이 귀를 막고 비명을 질러댔다. 심장이 파열돼 버릴 것처럼 거칠게 뛰어댄다. 미친 듯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자 보이는 건 작은 동굴.... 공포에 몸을 떨며 미친 듯이 떨어대는 손을 겨우 들어올려 붉은 곡도를 움켜쥐고 정신없이 내달렸다. 돌부리에 몇 번이나 걸려 넘어져 온 몸이 엉망이 되어 버렸지만 아픔 따윈 느껴지지도 않는다. 날 뒤따라올 것만 같은 공포에 쫓겨 정신없이 내몰린 곳은 높이가 낮은 절벽 끝....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자 붉은 눈동자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초조하게 날 바라본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 서있는 녀석은 정신없이 숲을 헤매고 다녔는지 나랑 별반 다를 바 없는 몰골..... 녀석이 한 걸음 다가서자 나도 모르게 뒤로 주춤 물러섰다. 심장이.... 차갑게 식어간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원망에 손에 쥐어진 단도의 붉은 루비를 노려보다 입술을 질끈 깨물자 입안으로 피가 새어들어 오는지 찝찔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머릿속을 미친 듯 휘저어대는 분노가 온 몸을 삼켜버릴 것만 같다. 떨리는 손으로 쥐고 있던 단검을 불길한 물건이라도 되듯 녀석의 앞에 툭 던져버리고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피에 젖은 붉은 입술을 열어 말을 던졌다. "니가...... 싫어.....티폰......." 잔뜩 잠겨버린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했는데도 녀석은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얼굴을 일그러뜨린다. 빗물을 타고 뜨거운 물줄기가 눈가에서 흘러내리자 절벽 끝으로 뒷걸음질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몸이 추락해 가는 순간 단단한 손이 내 팔을 움켜쥔다. 부서뜨릴 듯 팔을 쥐어오는 녀석의 힘에 정신을 차리고 작게 비명을 지르며 올려보자 희미한 시야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티폰....?" 분노로 핏방울이 떨어질 듯 짙어진 눈동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아니...... 내가 아닌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칠게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 의식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한다. 팔이 당겨져 녀석에게 끌려 올라가 바닥에 몸이 닿자마자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 . 꿈을..... 꾸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손을 펴자 이미 질척한 피로 범벅이 되어 있고..... 눈을 들어올리자 화려하기만 한 침상에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사람이 목이 졸린 채 괴로운 표정으로 심장에 단검이 박혀있다. '내가......죽였어.....?' 미친 듯 떨어대는 손을 들어올려 붉은 루비가 박힌 단검을 빼내자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온 몸을 적셔온다. 뒤에서 다가오는 그림자에 화들짝 놀라 단검을 품에 넣고 돌아서자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누...구?' 내 얼굴을 쓸어대는 손에 의아한 눈을 들어 녀석을 바라보자 시야가 흔들리더니 잡아먹을 듯 급하게 입술을 덮어 빨아들인다. '내가.....아는 사람이야.....?' 바닥에 내 몸을 눕히고 옷을 벗겨 내린 후 여기저기 더듬어대자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뭐라고 녀석이 중얼대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티...폰...?' 내 목덜미에 입술을 부벼대는 녀석에게 시선을 돌리자 보이는 건 반짝이는 금발..... '그게......누구.....지?' 눈에 보이는 금발을 손에 쥐자 새빨간 피가 묻어 붉디 붉은 색으로 변해간다. 사내의 손길에 달아오른 몸이 제멋대로 반응을 해 손을 뻗어 단단한 몸을 감아 끌어당기자 애널 끝으로 뭔가 뜨거운 것이 맞닿아 왔다. 열기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다. 몸이..... 너무 뜨거워 재촉하듯 소리 없이 신음을 흘리자 순간 누군가 위에서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 분노한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그대로 내 위에 있던 사내의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버렸다. 사내의 목이 옆으로 떨어져 바닥에 구르고 잘려진 몸체에서 따뜻한 붉은 피가 얼굴로 확 뿌려졌다. 멍한 눈으로 옆을 바라보자 보이는 건 온통 피에 젖어 붉어진 머리카락... 누군가 내 몸을 끌어올리자마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니가.......황제를 죽인 거야.....그 녀석을 위해....." '내가........' 고개를 숙이자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목이 떨어져나간 금발의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슈안.....?' "니가....황제를 죽였어......" '내가.......죽였어....?' 날 들어올린 사내를 바라보자 분노에 미쳐버린 붉은 눈동자와 피보다 짙은 붉은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버둥거리며 눈을 번쩍 떴다. '뭐....뭐..야....꿈.....?' 꿈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기억의 파편...... 볼을 타고 내리는 축축한 물기에 손으로 얼굴을 더듬자 흘러내리는 건 따뜻한 눈물..... "하....역시....내가 그런 건가? 그게.....진실이었어....? 내가......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정적이 가득한 방안에 조용히 흐느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도대체....왜 이곳에 오게 된 거야.....차라리.....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그 세계에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가는 게 더 나았을 것을....." 내가...... 슈안이란 녀석을 위해....전대 황제를 암살한 거다. 녀석의..... 티폰의 마음을 거부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3년 전 난 그 녀석을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슈안이란 녀석을 위해 그런 짓까지 저질렀다면..... 어쩌면..... 내가 그 슈안이란 녀석을....... 그리고 티폰이 날 사랑했다면..... 모든 것이 다 들어맞는다. 내게 과거를 말해주지 않은 이유도..... 아직 내게 집착을 하고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믿고싶지 않은 거다. 지금의 나처럼....... 그럼..... 녀석의 품에 안도를 느끼고 녀석의 곁에 남아있고 싶어한 건..... 지금의 나......자신....이었나.....? 어처구니없는 진실에 기가 막혀 온다. 티폰을 배신할 정도로 사랑했을 지도 모를 녀석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다시 돌아와 녀석에게 안겼다. 지금까진 몰랐다 하더라도 모든 걸 알아버린 이상 녀석의 곁에 있을 순 없다. 죽고싶을 정도로 현실이 버겁지만........ 난...... 강하니까..... 혼자서도 잘 해나갈 수 있으니까....... 단편적인 것만 기억해 낸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이상 끔찍한 일이 기억나 버리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모두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 육체도...... 영혼도...... 모두...... 떨리는 몸으로 천천히 침대 위에서 일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티폰의 침실........ '어떻게.....?!!' 그날 밤...... 분명히 호수로 돌아가려고 캄캄한 숲 속을 헤맨 것 까진 기억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스치듯 기억나는 건 벼랑에서 겨우 녀석에게 끌어올려진 것 뿐....... 창 밖을 보니 거의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무렵.... 얼마나 이렇게 누워있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방안을 둘러보니 케레스도 티폰도 어쩐 일인지 보이지 않고.....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지난번 이 곳으로 나간 이후 티폰이 아래쪽에 경비를 세워두었지만 교대 시간이라도 된 모양인지 병사는 보이지 않았다. '하....어쩐 일로 하느님이 한가한가 날 도와주시는군.....' 평소라면 곧 티폰이 들이닥칠 시간이다. 급한 마음에 잠옷 차림으로 벽을 타기 시작했다. 케레스에게 꾸준히 수련을 해 체력이 붙었는지 예전보다 많이 수월하게 땅을 밟았다. 주위를 조심조심 살펴보다 서둘러 성 뒤편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이곳을 벗어나려면 걸어선 어림도 없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려 겨우 마구간에 도착해 마구간지기 몰래 들어오는 것 까진 성공했는데....... 도통 말을 타고 달릴 자신이 없다. 티폰이랑 몇 번 타보긴 했지만 순전히 녀석과 함께 탄 것뿐이고.....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흑마가 날 보고 울어대는 것을 잠시 바라보다 싹 무시해 버렸다. "말 새끼 넌, 그 자식 옆에서 내 대신 호위호식 하면서 잘 살아라....."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옆에 있던 갈색 말의 고삐를 풀어 마굿간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버렸다. '큭, 그럼 그렇지....내 인생이란 건 항상 이렇게 더럽게 꼬여있으니......빌어먹을!!!' 원망스럽게 하늘을 노려보다 한숨을 푹 내쉬고 붉은 눈동자를 마주봤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다 알면서 뭘 물어.....내가 저녁밥도 안 먹고 말 산책이라도 시킬 놈으로 보이냐?' "도망가는.....중인데?" 직접 내 입으로 그런 소릴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지 붉은 눈동자에 눈에 띄게 분노가 어린다. "죽고.....싶은 거냐....." 당장이라도 목을 쳐버릴 듯 섬뜩한 목소리에 오금이 저려오지만 녀석의 눈을 기억 속에 새겨 넣을 듯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네 곁에 남아있어도 죽게 돼 있어..... 난..... 가장 확률 높게 살 방법을 택한 것 뿐이야....." 더 이상..... 이 녀석의 곁에 있으면 죄책감으로 미쳐버릴 것만 같다. '도대체.....왜...... .....이 녀석을 사랑하지 않은 거야.....' 기억을 잊었을 땐 녀석을 그렇게도 원했는데....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끌렸는데......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하자 심장을 뚫고 아프게 싹트는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원망....... 꼭........ 과거에 죽어버린 원귀가 내 몸에 들러붙어 있는 듯...... 이 격한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다. "그게...... ........무슨 소리냐....." 낮은 목소리로 감정을 숨긴 채 말을 던져온다. '큭, 사람을 죽이고도 죄 값도 받지 않은 채 도망친 벌이군..... 2년 전에도 이런 식으로 도망 친 건가....' 이번엔......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다. 이젠 별로 그러고 싶은 맘도 없고..... '역시 죄 값을 치뤄야 한다면...... .........니 손이 좋겠지.....' 녀석의 손에 죽는다면....... 단칼에 죽여줬으면 하지만....... 역시 잔인하게 죽이겠지..... "기억이.........돌아왔어...." 눈에 띄게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닥쳐........." '왜....... 너도 알고 있으면서.....그렇게 진실을 거부하는 거야.....' "전대 황제를 죽였어......이 손으로..........." 녀석이 끌고 왔던 병사들이 술렁이기 시작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자마자 얼음처럼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그럼........그 때 내 눈으로 본 게 모두 사실인가......" "그럴........거야......" 잠시 주위에 침묵이 감돌고...... 녀석이 입을 열자마자 주위가 싸늘히 얼어붙기 시작한다. "내 곁을 떠날 땐 둘 중 하나가 죽었을 때라고 말했을 텐데......." '쓸데없는 집착 따윈....... .....버려......' "큭, 그럼 고귀하신 황제폐하께서 죽을 린 없고.......살인범이 사형만 당하면 되겠군....." "또 그렇게 쉽게.....!!" 겨우 참고있던 분노가 터져 나왔는지 노성을 지르며 검을 빼들었다. '그래.....죽여.....니 손으로....' 눈을 감아버리자 어깨 위로 싸늘한 검날이 느껴지고 곧이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목이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한참이 지나도 목에 닿아온 칼날이 박혀 들어오지 않자 눈꺼풀을 들어올려 새카맣게 가라앉은 눈으로 녀석을 올려봤다. 목에선 피가 흐르는지 기분 나쁜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하고...... 검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치고 있는 심홍색 눈동자로 격하게 날 바라보다 잔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하감옥에 가둬라.........." "예!!" 녀석의 뒤에 정렬해 있던 병사들이 내게 다가와 양쪽에서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자 소름끼치도록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아무도 손대지 마라....죽이는 것도....살리는 것도....내 손으로 직접 한다" '바보 같은 놈......' 눈물이 제어할 수도 없이 흘러내려 바로 고개를 숙여버렸다. "예!" 병사들이 당황한 듯 얼른 내 몸에서 손을 떼자 천천히 병사들에 둘러싸여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감옥이라면 한 번 가본 적이 있기 때문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거침없이 걸어갔다. 어차피 이런 건...... 당연한 결과였으니까..... 발버둥쳐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운명이란 게 있다면....... 이런 거겠지........ 차가운 지하감옥에 들어서자마자 역겨운 냄새와 차가운 한기가 피부 속을 파고든다. 몸이 떨리기 시작하자 구석에 쭈그려 앉아 몸을 말고 눈을 감았다. . . . 밤새도록 기억도 나지 않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다 눈을 뜬 건 다음날 아침..... 간수들이 투덜거리며 식사를 내놓는다. "왜 다른 녀석들이랑 메뉴가 다른 거야? 귀찮게 시리....." "황제의 루베라였으니까 그렇지....." 벌써 과거로 바뀌어버린 명칭에 피식 쓴웃음을 지어버렸다. "식사는 어찌됐든 음료는 꼭 먹이란 건 무슨 소리야?" "글쎄....황제 폐하께서 직접 죽이기 전에 죽어버리면 곤란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윗분들이 명하면 우린 잠자코 따를 수밖에...."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군....까만 머리카락에 까만 눈동자라니....." 기분 나쁜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녀석들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 '왜 이런 곳에 있는 녀석들은 다 저따위인 거야?' "너, 들었지? 음료수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꼬박꼬박 마셔....그렇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먹여줄 테니...."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구역질 나는 시선을 던져오는 녀석들이 보기 싫어 결국은 음식에 손을 뻗어 컵에 담긴 액체만 맛도 보지 않고 꿀꺽 넘겨버렸다. 더 이상 음식에 손대지 않고 벽에 몸을 기댄 채 고개를 숙이자 보기 싫은 녀석들이 사라져 갔다. . . . 감옥에 갇힌 지 벌써 사흘...... 움직이지도 않고 지하감옥에 앉아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서 그런지 점점 몸에 이상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정신이 몽롱하고 이제는 될 되로 되라는 마음만이 가득하다. 추위에 떨어대서인지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끔 눈앞에 끔찍한 환영마저 보이기 시작했다. 날 직접 죽이겠다는 티폰 녀석은 지금까지 코빼기도 내밀지 않고..... 저녁 식사랍시고 하루에 두 번 주는 식사를 들고 멍청한 간수 녀석들이 감옥 안으로 들어선다. 평소처럼 음료만 집어들어 꿀꺽 삼키자 옆에서 집요하게 바라보던 녀석이 결국 더러운 바닥위로 내 몸을 쓰러뜨리고 올라탔다. '하....드디어 시작이냐...? 잘하면 겸사겸사 그 자식도 볼 수 있겠군......' 멍하게 풀린 눈으로 녀석을 올려보자 급하게 옷을 들춰 떨리는 몸을 더듬어대기 시작한다. "야, 폐하께서 아시면!!" "멍청아, 사흘이나 지났는데 얼굴도 비추지 않았어.... 완전 잊어버리셨거나 얼굴도 보지 않고 곧 처형할 거야!! '큭, 그런 건가.....' "그냥 죽이기엔 아깝잖아? 어차피 들춰보지 않는 한 표시도 나지 않을 테고..... 하지 않으려면 넌 구경이나 하고있어...." 급하게 녀석이 옷을 끌어올리자 녀석 밑에 깔려 금새 알몸이 되어 버렸다. 서툴게 주물러대는 손길에 몸에 확 열이 오르고 녀석의 손에 쥐어진 페니스가 아플 정도로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응....?' 평소와는 다른 몸이 이상하지만 뭐.....아무래도 상관없다. "뭐야? 이 녀석....해주길 바랬던 거 아냐? 반항도 하지 않잖아?" '큭, 이런 게.....욕구불만이란 건가? 하긴.....밤마다 그 녀석이 만져댔으니.....' 내 것을 쥐고 있던 녀석이 개처럼 혀로 핥아대자 자극적인 신음이 새어나온다. 한참동안 옆에서 지켜만 보고있던 다른 녀석이 갑자기 내 머리 위쪽으로 올라와 급하게 바지춤을 풀러내더니 내 턱을 쥐고 흉물스럽게 부풀어오른 페니스를 들이밀려는 순간 바깥쪽에서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는 거냐....." 두 녀석이 그 자리에서 굳은 채 공포에 떨어댄다. 홀딱 벗고 알몸으로 더러운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하얀 몸에 잠시 충격으로 흔들리는 시선을 던지더니 곧이어 싸늘하게 굳은 눈으로 간수 녀석들을 바라본다. "저 녀석이.....!!" 갑자기 녀석 중 한 명이 손을 뻗어 날 가리키자 티폰의 눈썹이 의문을 띈 채 살짝 치켜 올라가고.....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서슴없이 말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저 녀석이 감옥에서 빼내주기만 하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고 유혹을.....반항도 하지 않고....!!" '큭, 상당히 기발한데 말야.....틀렸어....죽을 거야......' 모든 게 귀찮기만 하다. 손도 까딱하기 싫다. '그래.....될 대로 되 버려......' 눈을 감아버리자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저 두 녀석은 옆에 있는 감방에 가두고 모두 나가라....." 병사들이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모두 물러나자 따끔따끔 내게 시선이 느껴진다. "사실이냐....." '씹, 몰라.....' 눈도 뜨지 않고 미동도 없이 그냥 누워있었다. 피곤하다..... 만사가 귀찮아..... 한참동안 그렇게 침묵이 흐르고..... 귀찮지만 옛정이 있던 놈이라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려 녀석을 바라본 순간...... 다행히 녀석이 날 죽일 거라고 확신했다. 확실히 미쳐버렸는지 홀딱 벗은 내 몸을 난도질이라도 할 듯 노려본다.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거겠지....... '성질 급한 새끼.......죽이고 싶으면 죽여. 질질 끌지 말고......' "하급 창부만도 못하군.....더러운 곳에서 몸을 굴려도...누가 몸을 만져대도 신음을 흘려대는 걸 보니...." '그냥..... 죽여버려...... 그딴 소린 지껄이지 말고......' 무디어진 심장도 녀석의 목소리엔 반응을 하는지 쿡쿡 쑤시기 시작한다. "네가 원하는 게 그런 거라면....." 분노를 가득 실은 녀석의 목소리에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창부같이 몸을 굴리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지....." '뭐.....?' 말이 끝나자마자 힘없이 늘어진 내 몸을 뒤집어버린다. 몸이...... 제멋대로 떨리기만 하는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벗어날 수도 없다. 녀석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챈 순간 숨이 막힐 듯한 공포가 온몸을 지배한다. 뒤에서 옷자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강한 팔이 허리를 휘감아 들어올렸다.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만 크게 뜨고 있다 겨우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거리자 아프도록 허리를 죄어 벗어나지 못하게 가두고 하얀 허벅지를 거칠게 벌려온다. 녀석의 것이 허벅지 안쪽에 닿아오자 숨을 멈춰버렸다. 시야가...... 까맣게 변해간다. 정신없이 떨어대는 몸을 붙들고 거칠게 페니스가 부풀어오를 때까지 애널에 마찰하더니 평소엔 지겹도록 해대던 애무 한 번도 없이 그대로 쑤셔 박았다. 뜨겁고 거대한 것이 잔뜩 굳어버린 입구를 억지로 벌리며 들어오자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을 들쑤셔댄다. 부들부들 떨며 겨우 버티고 있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가 그대로 차가운 감옥바닥에 상체를 무너뜨렸다. 녀석을 거부하듯 채 반도 들어오지 못한 페니스를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자 내 허리를 쥐고 강하게 자신의 몸을 밀어붙여 뿌리 끝까지 파고들어 온다. 내장을 찢어놓을 듯 뱃속을 휘젓는 느낌에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미 녀석을 억지로 받아들인 내부엔 상처가 났는지 섬뜩한 통증과 함께 하얀 허벅지를 타고 붉은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포에 몸을 떨어대며 곧 죽을 것만 같이 끔찍한 비명을 내질러도 놓아주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쳐버린다는 게 어떤 건지 지금 이 순간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닥쳐...." 한참동안 미친 듯 버둥거리며 비명을 내지르다 귓가에 파고드는 잔인한 목소리에 뒤에 있는 녀석이 티폰이란 걸 기억해내고 정신없이 떨어대는 몸을 겨우 추스려 반항을 멈췄다. 까만 눈동자가 미쳐버린 듯 빛을 잃고 정신없이 흔들린다. 분노를 가득 실은 움직임에 입술을 거칠게 깨물고 비명과 눈물을 삼켰다. "흐윽....." 차가운 손이 간수녀석들 때문에 부풀어오른 내 것을 쥐어오자 고통에 돌바닥을 움켜쥐었다. 쾌감은커녕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프게 움켜쥐고 거칠게 손을 움직이자 겨우 참고있던 눈물이 기어이 볼을 타고 쏟아져 내린다. 입안으로 핏물이 넘어와 목구멍을 적시고..... 내 몸이....... 마음이........ 심장이 죽어 가는 게 느껴진다..... 녀석이 아니라 내가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 자기 일이 아닌 듯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정신과, 상황과는 관계없이 자꾸 흥분해 대는 몸을 보니..... 힘없이 거칠게 흔들리는 몸이 차가운 돌바닥에 쓸려 약한 피부에 생채기가 하나 둘 씩 늘어간다. 얼굴은 이미 식은땀과 눈물로 범벅이 돼있었고 고통을 참기 위해 씹어댄 입술은 헤어질 대로 헤어져 붉은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다. 녀석이 밀고 들어올 때마다 주먹을 움켜쥐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흐른다. 죽을 것만 같은 고통에 다행히도 의식이 흐릿해져 갈 때쯤 녀석의 목소리가 심장을 가르고 귓속으로 파고든다. "뭐냐....다시 벙어리로 돌아가기로 한 건가? 아까처럼 신음 소릴 내봐.....창부처럼......" '그게......원하는 거야....?' 목구멍에서 피가 넘어올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삼키고 신음소릴 흘려내자 더욱 화가 난 듯 난폭하게 밀고 들어온다. 내 다리 사이로 자신의 허벅지를 밀어 넣어 힘없이 떨리는 하얀 다리를 더 넓게 벌리더니 온몸을 다 범해버리려는 듯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온다. 거칠게 내부를 찢어대며 밀고 들어오는 녀석의 페니스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흐를 정도로 차가운 돌바닥을 긁어대다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 . 간헐적으로 몸이 경련을 일으키듯 떨려올 뿐..... 몸에..... 아무런 감각도 없다. 섬뜩한 비명소리에 힘겹게 동공이 열려버린 검은 눈동자를 드러냈다.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바로 옆 방...... 간수들이 갇힌 곳이었다. '킥, 내가.....죽을 거라 했잖아......' 심장을 쥐어짜듯 처절한 비명이 들리길 한참..... 감옥 문을 거칠게 열더니 누군가 걸어나온다. 풀린 눈으로 눈동자만 돌려 바라보니 티폰이 차가운 얼굴로 피칠갑을 한 채 내게 싸늘한 시선을 던지더니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을 들고 뒤돌아 섰다. 곧 병사들이 들이닥치더니 옆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헛구역질하는 소리에서 밖으로 그냥 튀어나와 버리는 녀석까지....... 사내새끼 주제에 계집애처럼 소릴 질러대는 소음이 들려오자 피식 웃어버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 . . 곧 죽어버릴 수 있다는 내 예상을 녀석은 멋지게 비틀어 버리고 심심할 때마다 찾아와 내 몸을 범했다. 몇번이나 해가 지고 떴는 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그 녀석이 날 안을 땐 욕정이외의 감정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젠 더러운 몸뚱이에서도 시체 썩는 냄새가 나 박고싶은 맘도 들지 않을 텐데....... 황제씩이나 되는 주제에 지하감옥에서 죽어 가는 더러운 반 시체의 몸을 붙들고 철저히 자신의 욕정만 채운 채 사라져 버렸다. 이미 눈물이 말라버린 것도 오래....... 심장이 부서져 버린 것도 오래....... 녀석도..... 나도.....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 혹시 이건 내가 만들어낸 공상의 산물이 아닐까.....? 이 지하 감옥도..... 녀석도..... 이 세계도...... 전부....... 사실은 그 때 계곡 물 속에 빠져 머릴 부딪쳤다든지..... 어딘가 크게 잘못돼 식물인간이 돼서 꿈을 꾸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모든 게 꿈일 지도..... 눈을 떠보면 예전처럼 다정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이는........ 그런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이런 내 공상을 철저히 깨부수는 건 붉기만 한 사내..... 행복한 공상따윈 허락 치 않고........ 이게 현실이라는 듯 철저히 내 몸을 유린하고 기절한 채 다시 눈을 뜨면 내게 남겨진 건 아무 것도 없다..... 며칠동안 거의 감옥 안에선 의무적으로 마셔대는 음료를 제외하곤 아무 것도 먹지 않아 푸르게 윤이 나던 까만 머리카락은 푸석해 지고 한 달 동안 찐 살이 다 빠져버렸다. 애널에선 간헐적으로 더러운 피와 정액이 흘러내리고 망가진 인형처럼 다룬 몸은 여기저기 생채기와 멍 자국이 져있었다. 이제는..... 녀석이 내 몸을 범해도 아무런 느낌도 없다. 고통도.... 치욕도..... 심장이 파열될 듯한 아픔도...... 더러운 몸에 남아있는 건 이제 아무 것도...... .....없다...... 새로 온 간수 녀석들은 내 몸을 건드린 녀석들이 어떻게 됐는지 잘 알고 있는 듯 식사할 때를 제외하곤 절대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피와 정액에 찌들어버린 더러운 몸이 만지기 싫었는지도 모르지만 전보다 인정이 있는 녀석들이라고 판단했다. 하루종일 홀랑 벗고 끊어질 듯 가는 숨만 내쉬며 멍하니 누워만 있는 내가 민망했던지 허름한 모포라도 구해서 덮어줬으니..... 녀석이 또......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로 날 찾아오면 내겐 전혀 필요 없는 물건일 테지만....... 다음에 찾아올 땐....... 부디 날 죽여주길....... 개처럼 뒤집혀서 범해지는 건 누구도 아닌 내 모습인데...... 미쳐버렸는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잔뜩 흐린 눈으로 멍하니 더러운 감옥 바닥을 바라보며 녀석이 파고들 때마다 몸이 밀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느끼고 있었다.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내게 화가 났는지 녀석이 목덜미에 이를 박아와 흠칫 몸을 떨었다. 목덜미를 따라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고..... '뭐야.....또 신음이라도 흘려주길 바래....?'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억지 신음을 흘려내자 이제는 녀석의 손길에도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내 것을 피멍이 들 정도로 거칠게 쥐어온다. "흑...." 반사적으로 탁한 목소리로 짧게 신음을 흘리자 왠일인지 며칠만에 녀석이 내게 말을 던져온다. 지친 듯....... 떨리는 듯한........ 자조적인 녀석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든다. "큭, 사랑 따윈........ 이렇게....... .....쓰레기 같은 거야....." 통증에 무디어진 몸이...... 심장이...... 다시 고통에 미친 듯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힘없이 바닥에 쳐 박고 있던 볼을 타고 초점 없는 까만 눈동자에서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타고 흘렀다. '이런 게....... 이 따위 게...... 니가..... 내게 주려던...... 사랑이야? 이런 게..... 내가 녀석의 곁에 머물고 싶어했던 죄에 대한..... 댓가인가......' "큭......." 갑자기..... 억지로 신음을 흘리던 붉은 입술이 묘하게 일그러지며 웃음이 흘러나온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몸이 밀리면서도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흘리자 뒤에서 미친 듯 움직이던 녀석의 몸이 흠칫 굳더니 연결된 채로 거칠게 내 몸을 뒤집는다. 통증도..... .....이젠 느껴지지 않는다. 안개가 낀 듯 시야가 흐려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빌어먹게도 붉은 녀석의 눈동자..... 충격으로...... 흔들리는 녀석의 눈동자가 재밌다. 미치도록 재밌어 죽을 것만 같다. 오랜만에 웃어 재끼니 가슴을 짓누르던 것이 뻥 뚫리듯 통쾌한 기분마저 든다. "큭....큭...하하하하...." 한참을 굳어있던 녀석이 아프도록 내 어깨를 움켜쥐고 흔들어온다.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계속해서 킥킥대자 녀석이 손을 들어올려 강하게 내 뺨을 몇 대 올려 부쳤다. 입안이 터질 정도로 강한 힘에 정신이 확 들었다. 손이 덜덜 떨려온다. 내가..... .....이렇게..... ......미쳐 가는 내가....... ......두렵다. 눈앞에 보이는 녀석에게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무섭고 무서워서..... 파랗게 질려 떨어대는 입술을 겨우 열어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녀석에게 말을 던졌다. "어차피...... .....내가 사랑하던 건 니가..... .....아니었으니까...... 사랑 따윈 어찌되든........ 상관없어......" 내가.....사랑했던 건..... 이 녀석이 아닐 거다.... 분명....... 그러니..... 쓸데없는 집착은 남겨두지 못하게..... 잠시 흔들리던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싸늘히 식어가자 마음이..... .......평온해지기 시작한다. 녀석이 내 몸 안에서 빠져나가자마자 더러운 몸을 새우처럼 말고 눈을 감아버렸다. 감옥 문이 거칠게 닫히고 두려움만을 느끼게 하는 녀석의 발걸음소리가 사라지자 다행히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 . . 눈을 뜨자 느껴지는 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축축한 한기..... 이젠 숨쉬는 것조차 괴롭다.... 시궁창 같은 감옥 안에서 그렇게 장난감처럼 망가진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끊어질 듯 가는 숨만 내쉬고 있길 한참.... 철그럭거리며 감옥문이 열리더니 간수가 성큼 걸어들어 온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역겨운 음식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반복되는 일과..... 거부하듯 눈을 감으면 독한 음료를 억지로 입안에 흘려 넣는다. '큭, 뭐야.....이렇게 먹고 힘내서 그 짓이라도 계속 하라는 거냐....' 별 수 없이 바싹 말라버린 목구멍을 적시며 음료가 넘어가자 음식물들을 가지고 다시 밖으로 나가버린다. 약해진 몸 때문인지 자꾸 몸이 늘어지고 머릿속이 멍해진다. 감옥에 들어오고 나선 계속 이 모양이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더 이상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티폰 녀석이 더러운 내 몸을 붙들고 한 바탕 일을 치르고 나간 후라 벌레처럼 몸을 꿈틀댈 때마다 허벅지를 타고 붉은 피와 정액이 흘러내렸다. 뱃속을 휘저어대는 구역감에 바닥에 엎드려 방금 마신 음료를 모두 게워내자 새카만 핏덩어리와 함께 묽은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어쩐 일인지 약간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며칠만에 이렇게 맑은 머리로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된 건지도........ 녀석에게 유린당하면서도 미친 듯 피식거리며 웃어댔는데 왜 이제야 빌어먹을 눈물이 새어나오는 지......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변태새끼.....방금 했으면서 또 박으러 온 거냐.....'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리자 경악으로 굳어버린 잿빛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너였어?' 머리를 바닥에 박고 겨우 입을 열어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을 던졌다. "케레스..... 이게....... 사랑이야? 이런 게..... 사랑이야? 말해봐.... 난 그런 거 안 해봐서 잼병이니까..... 니가...... 말해 줘...... 그때처럼......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죽을 수 있게...." 말없이 철창 틈으로 손을 뻗어 푸석해진 내 머리카락을 만지려던 녀석을 보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가.....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마..... 이게..... 마지막이야....." "조금만........ 조금만 버텨주십시오...... 어떻게든........" 눈을 감아버리자 조용조용한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간다. 한참 후에 다시 급하게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에 눈을 떴다. 보이는 건 붉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뭐야....? 내일 죽는 건가? 이 새끼들이 왜 번갈아 가면서 오고 지랄야? 시간이 남아도나?' "하류.......?!!" 충격으로 흔들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을 보고 피식 웃어버렸다. '자꾸 그런 눈으로 보면 민망하잖아......이래봬도 니 아버질 죽인 흉악범인데.......' 떨리는 손을 뻗어오더니 내 몸에 닿기도 전에 바닥으로 떨어져내려 돌바닥을 긁어댄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폐하께서...... 황제가 지하감옥을 폐쇄시켜 버렸어....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그래서......" '그런 건......이제 상관없어.....' 한참동안 녀석이 그렇게 고개를 떨구고 있다가 머리를 번쩍 들어올리고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잘 들어, 오늘밤에 케레스를 들여보내 줄 테니까 같이 도망쳐....동맹국으로...... 기억하지? 내 친구를 찾아가.....동맹국 뮤즈니안의 황태자야.... 그 녀석이라면 루베라를 지우는 법을 알고 있을 거야..... 지우고.......숨어서 살아가.....폐하의 눈을 피해서.....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마........ 사람들이 니가 선대 폐하를 암살했다고 했지만.....상관없어.... 어차피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한 아버지였고......이미 죽어버린 사람보다 니가 더......" 녀석이 말을 끊더니 품을 뒤적여 내게 줬던 푸른 곡도를 건네 왔다. "이걸 보여주면 내가 보냈다는 걸 믿어 줄 거야..... 지니고 있다가 케레스랑 도망칠 때 꼭 가지고 가......" 손에 쥐어진 푸른 색 사파이어가 박힌 곡도를 가만히 바라보다 칼집에서 검신을 빼내자 어두운 감옥 안에서도 은색 빛을 뿌려댄다. 이제...... 녀석이 죽여주길 기다릴 힘도 없다....... '큭, 오늘은 운도 좋군.........' "하류......?" 녀석이 놀랄 틈도 주지 않고 이를 악물고 오른 손으로 단도를 감아쥔 채 왼쪽 어깨에 거칠게 박아 넣었다. 루베라를 정확히 찔러버렸는지 심장이 따끔거리기 시작하고...... 칼날을 빼내자마자 창백한 어깨를 타고 붉은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오랫동안 맑은 정신으로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몸도..... 감옥 밖에서 소란스럽게 간수를 불러대는 시온 녀석을 무시해 버리고 힘겹게 몸을 뒤집어 단도를 심장에 박아 넣으려던 찰라 누군가 강한 손으로 손목을 비틀어 칼날을 떨어뜨려 버렸다.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내게 시선도 주지 않고 시온을 노려보더니 차갑게 말을 뱉어낸다. "누가.....이 녀석에게 단도를 쥐어준 거냐....." 분노를 담은 채 시온이 티폰을 향해 입을 열려는 순간 말을 가로채 겨우 속삭이듯 말을 했다. "내가....... .....내가 달라고 유혹했어......" "하류....!!" 저렇게 화난 시온 녀석의 얼굴을 얼마 만에 보는 지 모르겠다. "킥, 더러운 몸도 이럴 땐 쓸모가 있네......"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날 노려보던 녀석이 더러운 바닥을 타고 흐르는 붉은 핏자국을 보고 떨리는 손으로 내 몸을 확 뒤집었다. 루베라를 양분한 칼자국을 보곤 신음을 흘릴 정도로 어깨를 꽉 움켜쥐더니 건조한 목소리로 잔인하게 말을 꺼내 놓는다. "내일........... .......처형한다......" '큭, 이제야......질린 거냐.......' 정신병자처럼 숨을 죽인 채 웃어대자 병사들에게 명령해 반항을 해대는 시온을 끌어내곤 차가운 눈으로 날 잠시 바라보다 감옥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새카만 어둠 속에 혼자 남겨지자 숨죽인 흐느낌이 지하감옥 안을 조용히 울려온다. -59- 티폰① 서늘한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밤 공기가 차갑기 때문이 아니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날처럼...... 불안이 온몸을 잠식해 들어가고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한기가 감돈다. 옷을 대충 걸치고 바로 어둠 속에 잠겨버린 숲으로 뛰어들어갔다. 주위를 미친 듯이 둘러보며 녀석을 찾아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차가운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심장이 타들어 가듯 마음이 조급해진다. 무의식적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2년 전....... 그 곳....... 끔찍한 악몽이 되살아 날 것만 같아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미 폭우로 바뀌어버린 빗속을 뚫고 도착한 곳에서 하류의 흔적을 발견하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리고 절벽 위엔..... 2년 전 그대로 녀석이 서 있었다. 인기척에 돌아본 녀석의 까만 눈동자에 담긴 건 공포.......... 숲을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여기저기 몸에 난 생채기와 흙탕물을 뒤집어 쓴 모습에 이를 꽉 물었다. 초조한 마음을 겨우 누르고 한 걸음 다가가자 내게서 달아나려는 듯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녀석의 눈동자에서 공포가 사라지고 2년 전 이 절벽 위에서 날 바라보듯 분노와 원망의 빛을 띄기 시작하자 영혼이...... 나락으로 추락해 가는 걸 느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2년 전과 같이..... 기막힌 우연처럼..... 발 밑에 붉은 단검이 떨어져 내리고...... 녀석의 입술이 벌어지며 내뱉는 소리에 이성이...... 날아가 버렸다. 겨우...... 겨우 녀석이 스스로 깨달았다고 호숫가에서 말해왔을 때..... 난생 처음 맛봤던 행복이란 걸 단숨에 무너뜨려 버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뛰어가 추락해 가는 녀석의 몸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다시 보낼 순 없다..... '절대..... 빠져나갈 수 없어....' 기절한 채 늘어진 하류를 안고 정신없이 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곳에서 한시도 지체하고 싶지 않다. 호수에 도착해 추위에 떨고있는 하류의 몸을 망토로 감싸 안고 성으로 말을 달려 성안에 도착하자마자 침실로 향했다.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종들을 모두 물리고 욕실로 들어가 물에 젖어버린 하류의 옷을 모두 벗겨낸 후 떨고있는 녀석의 몸을 따뜻한 물 속에 담갔다. '설마........모두......기억해 버린 건가......' 그곳에......... 다시 들어간 것이 실수였다. 떨림이 잦아지고 파랗게 떨고 있던 입술이 제 빛깔을 찾아가자 손을 들어올려 하얀 얼굴을 쓸었다. 성격도........ 몸도...... 이렇게나 변해버렸는데...... 녀석과 나의 시간은 2년 전...... 그 절벽 위에서 멈춰서 있다. 하류의 기억이 돌아올까 두려웠다. 날...... 원망할까봐...... 증오할까봐........ 그리고...... 2년 전의 진실이 밝혀질까봐...... 두렵다......... . . . 하루 종일 잠만 자는 녀석을 불안한 눈으로 계속 지켜보다 결국 다음날 아침 정무실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황제이기 때문에 정무를 봐야한다는 핑계를 대고있었지만, 결국..... 눈을 뜨면 내게 원망스런 시선을 던질 녀석의 눈동자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말해올 녀석의 입술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문 앞을 지키는 시종들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명을 내리고 해가 진 후 다시 들어선 침실 안엔 하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찾은 녀석은 내게서....... 도망치려 했다고 말했다. 분노로 이성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내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기억이..... 돌아왔다고.... 서서히 녀석의 입술이 열리기 시작한다. 해서는 안 될 말을...... "내가............" '말.....하지마.......' "닥쳐....." "전대 황제를 죽였어......이 손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만약....... 변명이라도 한다면...... 황제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댔다고....... 슈안이 시킨 짓이었다고 거짓말이라도 한다면....... 여기 있는 자들을 모두 죽여서라도 입막음을....... 고개를 숙인 채 주저앉아있는 하류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감정을 숨긴 채 싸늘하게 말을 던졌다. "그럼........그 때 내 눈으로 본 게 모두 사실인가......" '슈안을 위해.........황제를 죽이고 그 녀석의 품에 안겨있던 네 모습이........' "그럴........거야......" '정말 이대로...... 죽을 셈이냐......' "내 곁을 떠날 땐 둘 중 하나가 죽었을 때라고 말했을 텐데......." "큭, 그럼 고귀하신 황제폐하께서 죽을 린 없고.......살인범이 사형만 당하면 되겠군....." 쉽게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날 바라보지 않는 까만 눈동자가........ 죽이고 싶도록 증오스러웠다.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쉽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녀석이...... "또 그렇게 쉽게.....!!" 겨우 참고있던 분노가 터져 떨리는 손으로 검을 빼들었다. -60- 티폰② 내게 눈동자를 보여주지 않고 눈을 감아버린 녀석을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확실히...... 죽을 생각인 거다..... 잔인하게....... 내 손으로...... 삶에...... 내게...... 먼지만큼의 집착도 없는 거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죽고싶은 거냐.....내 손으로.....?' 떨리는 손으로 겨우 검을 놓치지 않고....... .....녀석을 죽이려고 했다. 죽이려고 했는데........ 수도 없이 입을 맞췄던 하얀 목을....... 그냥 베어 버리면 끝나버리는 간단한 일인데......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목을 베어온 검은 눈앞에 보이는 가는 목 하나 베지 못하고 멈춰버렸다. 날이 스쳐 약한 피부에서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한참동안 침묵이 흐르자 녀석이 가라앉은 까만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분노가....... 심장을 좀 먹어 간다. '내 손에 죽길 바란다면.......... 포기해....... 절대...... 놔줄 수 없다.....' "지하감옥에 가둬라.........." 돌아보지도 않는 녀석의 뒷모습을 그렇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 . . "폐하....당신의 루베라입니다....." 원망이 가득 담긴 붉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하류를 차가운 감옥 안에 가둔 사흘동안 끊임없이 찾아와 반복해도 돌려줄 수 있는 건 침묵 뿐...... 하류가 선대 황제를 암살했다는 소문이 이미 황궁 전체에 퍼져 알고있을 텐 데도..... 시온은...... 녀석은 과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 거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매여있는 나와는 달리...... 시온에게서 눈을 돌려 미동도 없이 정무실 한 켠에 서있는 케레스에게 시선을 던졌다. 호위할 상대가 없어져 원래 자리로 돌아온 녀석은 평소와 같은 무표정...... 하지만 잿빛 눈동자는 차갑게 식어있다. 녀석을..... 루베라의..... 하류의 호위로 붙여준 것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얼굴과 감정이 결여되어 있는 듯한 차가운 눈동자 때문이었는데...... '잘못...... 선택했군......' "모두 물러나라....." "폐하....!!" "물러나...." 낮게 말하자 잠시 불만스럽게 바라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사라진다. 사흘 간..... 녀석을 보지 않았다. 내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분노를 누르고 녀석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사흘동안..... 추운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녀석이...... 외로움을 잘 타는 녀석이..... 차갑고 축축한 지하감옥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만약 내게....... 살려달라고 매달리면..... 살려달라고 한 마디만 한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그렇게 해줄 수 있는데.....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지옥과도 같다. 더러운 감옥 안에서 알몸으로 간수 녀석들에게 희롱 당하며 신음을 흘려대는 녀석을 보고 심장이 부서져 내렸다. 하류에게 유혹을 받았다는 간수의 말에 거짓이 섞여있다는 것을 머리는 알고있지만, 녀석들의 손길에 쾌락을 쫓는 녀석이..... 내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는 듯한 녀석이....... 내게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리는 녀석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다 부셔버리고 싶을 정도로...... 녀석에 대한 감정 따윈...... 나 혼자만이 느끼는 일방적인 감정 따윈..... 한 순간에 쓰레기같이 느껴져서...... 거칠게 녀석의 몸을 뒤집고 고통만을 느끼도록 끔찍하게 범해버렸다. 2년 전의 악몽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나 때문에..... 뒤에서 범해지는 걸 죽을 만큼 두려워한다는 걸 알면서도...... 미친 듯 버둥대며 비명을 지르는 녀석의 몸 안에 잔인하게 파고들자 잠시 후엔 이상할 정도로 잠잠해 진다. 하얀 허벅지를 타고 붉은 피가 흘려내려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녀석이 미쳐버린 날 더욱 부추겼다. 내가 상처받은 만큼 녀석도 상처받도록 심장을 난도질하듯 잔혹한 소릴 쏟아 부었다. 창부처럼 신음을 흘리라는 내 말에 두 말 없이 신음을 흘리는 녀석에게 미쳐 고통에 기절해 몸이 늘어질 때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이런 감정 따윈...... 녀석에게도..... 내게도...... 필요 없는 쓰레기일 뿐이다. 이렇게...... 계속 망가뜨려 가면........ 언젠간........ 끔찍하게 뛰어대는 심장도 굳어버릴 날이 오겠지....... 녀석도 나도...... 이 끔찍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날이...... 하지만...... 아직은....... 내게...... 이 녀석이 필요하다. 이렇게 내 영혼에서...... 내 눈에서..... 눈물이란 게 흐르게 하는 이 녀석이..... 떨리는 손으로 참혹하게 망가져 버린 녀석의 하얀 몸에 손을 뻗었다 만져보지도 못한 채 다시 거두어 버렸다. 녀석에게 삶의 미련이 없다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혹한 고통을 주겠다. 내게 집착이 없다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도록 만들어 주겠다. 절대...... .....잊을 수 없도록...... 내 영혼까지 가져가 버린 녀석을...... 이렇게 쉽게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가....... 아직은 내게........ ......없기 때문에...... . . . 그렇게 녀석을 범한 후 지하감옥을 폐쇄시켜버렸다. 그리고..... 내 감정을 죽여가기 시작했다. 지하감옥을 찾아갈 때마다 녀석은 죽어버린 까만 눈으로 날 바라본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눈동자로..... 그리고....... 녀석의 몸을 범할 때면 절대 날 바라보지 않고 거부하듯 눈을 감아버린다. 눈에 보이는 건 시체같이 창백하고 거친 피부......빛을 잃어버린 까만 머리카락......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지 볼품없이 말라버린 몸..... 더러운 바닥 위에서 피와 정액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몸뚱아리에도 반응을 해대는 내 자신이 우스워진다. 정작 날 이렇게 우습게 만들어버리는 녀석은 저렇게 무표정한 얼굴로 내 눈동자를 비켜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늘게 몸을 떨어대며 숨만 겨우 쉬고있는 녀석의 몸을 붙들고 그렇게...... 잔혹하게....... 분노와 정욕만을 쏟아 부었다. 녀석이...... 미쳐 가는 걸 알면서도..... 나와 같은 광기가 까맣기만 한 눈동자에 짙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녀석이..... 죽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미쳐버린 내 자신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시온이 지하감옥에서 난동을 부려 안으로 들어갔다는 보고에 다시 녀석이 죽어 가는 감옥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눈에 들어온 것은 시리도록 푸른 단검을 심장에 박아 넣으려는 녀석의 모습...... 심장이..... .....비틀리는 것만 같다. 가는 손목을 움켜쥐자 힘없이 단검을 떨어뜨리고....... 시온을 유혹해 단검을 손에 넣었다는 녀석의 말에...... 이젠......... 지쳐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심장이 따끔거리는 느낌에 정신이 확 들었다. '이건...... 설마.........' 믿고싶지 않았다. 바닥에 고이는 피를 보고 녀석의 몸을 거칠게 뒤집자 루베라에....... 깊숙이 칼자국이 새겨져 있었다. 구속의 족쇄를....... 끊어버렸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내 것이길....... 거부했다........ 이렇게나 망가뜨려 버렸는데도 절대 내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이렇게 참혹한 몰골을 하고도 내게서 벗어나려고만 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으로도...... 내 심장을..... .....아프도록 뛰게 한다. '큭.....네가......... .......이겼다.........' "내일..... .....처형한다......" 지독히도 날 괴롭혀대는 감정을 무시해 버리고 싸늘하게 내뱉은 후 돌아섰다. -61- 악몽을 꿀게 두려워 눈을 감지 않았다. 어차피 내일이면 녀석의 손에 죽을 수 있다. 죽기 전에.......... 이 세계의 아름다웠던 밤하늘이 보고싶지만 내가 갇힌 어둡고 축축한 감방 안엔 한줄기 빛조차 흘러들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던 건..... 녀석의 루비 빛 눈동자....... 보기만 해도 슬퍼져서 녀석에게 범해질 때면 절대 붉은 눈동자는 바라보지 않았다. 이렇게 죽기 전에 자꾸만 떠올릴 것만 같아서..... 눈물이 쏟아져 버릴 것만 같아서...... 눈을..... .....감아버렸다. 과거의 난..... 녀석을 증오했던 것 같다. 이렇게 격한 감정은 증오밖에 없다. 그 외의 감정은 알지 못하니까..... '킥, 미워할 자격도 없었던 주제에 왜.......살인자인 주제에.....' 바닥에 쭈그려 누워 킥킥거리다 다시 멍하니 벽을 바라봤다. "하아....결국 통장에 있는 돈은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는군......이럴 줄 알았으면.......펑펑 써버릴 걸 그랬나..... 아, 그리고 시온한테 받은 루비하고 사파이어랑 좀도둑한테 받은 진주도 티폰 녀석 침실에 놔두고 왔는데..... 내가 죽으면........다 버려버리는 거 아냐? 그것도 돈인데...... 그 새낀 아까운 줄 모를 테니까...." 그러고 보니..... 녀석은 내가 느끼는 죄책감 따윈....... 눈꼽만큼도 알지 못할 거다. 개미를 눌러 죽이 듯 사람을 죽여도 황제가 하는 일에 토를 달 인간은 이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녀석이 하는 일은 모두 정당하니까..........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몰아내려고 여러 가지 잡생각을 모두 동원하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철그럭거리는 소리와 작게 숨죽인 신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발자국 소릴 아무 생각도 없이 듣고 있는데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니 감옥 문을 열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선다. 눈을 겨우 돌려 바라보니 여기저기 피가 튄 잿빛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오고..... '케레....스?' 내게 다가와 손에 들려있던 모포로 내 몸을 싸더니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몸을 가뿐히 안아든다. '무슨.....짓이야?!!!' 거부의 몸짓으로 미약하게 몸을 바르작거리자 변함없는 무표정에 따뜻한 잿빛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싫어.....난 안가......" 겨우 메마른 입술을 열어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을 하자 아무 것도 듣지 않았다는 듯 내 몸을 꼭 안더니 밖으로 향했다. '이....이 멍청한 새끼, 융통성 없는 자식!! 이런 짓 하면 너도 죽는단 말야!!' 힘도 들어가지 않는 떨리는 손을 쥐어 녀석의 가슴을 치고 밀어보지만 놓아주기는커녕 더욱 세게 그러안고 빠르게 감옥 안을 벗어난다. 언뜻 스쳐 가는 감옥 곳곳엔 병사들이 목에 칼이 박혀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죽어있었다. 반항을....... .......멈춰버렸다. 이미........ 늦었다. 이곳에서 멈추면 이 녀석도 티폰에게 죽게될 거다. 나 때문에........ 이렇게 사람까지 죽이고...... '이.......이 바보 같은 자식......!! 왜 나 같은 거 때문에.......' 옷깃을 쥐고 품속에 얼굴을 묻자 발걸음이 더욱 빨라진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찬 공기가 폐 속을 파고들어 마른기침을 해댔다. 몸이 덜덜 떨려오기 시작한다.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드는 것만 같다. 케레스가 내 몸을 꼭 안더니 뭔가 찾는 듯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황제의 숲 쪽으로 기척도 내지 않고 다가가기 시작했다. 얼마 안가 도착한 숲 입구엔 작은 마차와 시온이 서 있었다. 케레스를 보고 시온이 서둘러 다가와 내 몸을 꼭 끌어안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미안.......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야.... 시간이.....없으니까...... 마지막이니까....... 넌 바보니까..... 특별히 말해줄게..... 좋아해....하류야...... 꼭 죽지 말고 행복하게....... 킥, 나 없이도 그럴 수 있지? 넌....... 강하니까..... 분명......" '바보는........ 너야......' 까만 머리카락을 잠시 쓸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준다. "이제......다신 울지마......." 이마에 따뜻한 입술로 키스해 주더니 고개를 들어 케레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끝까지 지키지 못하면.......... ......너도 죽어........" 케레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시온이 뒤돌아 섰다. "다시는 이 나라 땅을 밟지마....... 황제의 숲을 통과해서 이틀동안 쉬지 않고 말을 달리면 국경이 나올 거야...... 국경을 넘으면....뮤즈니안 성을 찾아가.....필요한 물건은 마차 안에 넣어뒀으니까 빨리 서둘러....." 재촉하는 목소리에 케레스가 내 몸을 마차 안에 있는 푹신한 쿠션 위에 눕히고 바로 출발했다. 움직이지도 않는 몸 때문에 그렇게 시온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한 채 어두운 숲길을 내달렸다. . . . 눈을 떴을 땐 새카만 어둠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혼란스런 눈으로 여기저기 바라보는데 케레스가 마차 안으로 들어선다. '어제.....도망쳤었지....' 어둠이 깔린 걸 보니 만 하루가 지난 듯 하다. 마차는 멈춰있었고...... 녀석이 내 몸을 싸고있던 모포를 조심스레 벗겨내더니 축축한 천으로 지저분해진 얼굴을 닦아주고 말라붙은 피와 강제로 행한 정사의 흔적을 지워냈다. 무기력한 눈으로 녀석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지저분해진 모포를 버리고 몸 여기저기에 난 생채기와 상처에 이상한 향이 나는 연고를 바르더니 몸을 조심스럽게 뒤집는다. 한동안 움직임이 없다. 루베라 위에 새겨진 칼자국에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이 닿아 연고를 듬뿍 바르고 하얗고 깨끗한 천으로 동여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리를 벌려오는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진정시키려는 듯 따뜻한 손으로 등을 쓸어주더니 애널에 연고를 바르고 둥근 물체를 손가락으로 밀어 넣어 내부에서 녹자마자 상처가 난 내벽에 바르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 지독한 고통이 느껴진다. 약이 닿자마자 칼로 베는 듯 쓰라려 입술을 깨물고 불규칙하게 숨을 몰아쉬자 한참만에 손가락을 빼내고 새로 꺼낸 모포로 몸을 꽁꽁 싸맨 후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다시 들어섰다. 힘없는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머리맡에 앉아 내 머리를 약간 들더니 입안으로 단내가 나는 과일즙을 흘려 넣기 시작했다. 바싹 메말라 갈라질 것 같은 입술과 목구멍을 적시며 과즙이 흘러들자 뱃속이 요동을 친다. 토기가 밀려와 고개를 겨우 돌리자 잠시 기다리더니 안정이 되자 과즙을 모두 흘려 넣고 내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준다. "내일이면.....국경을 넘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복수를 원한다면 검이 되어 드리고...... 조용한 삶을 원한다면 끝까지 지켜드리겠습니다....무엇을 선택하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포기 따윈......" "왜......." 누구의 목소린 지도 모를 거친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다.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넌 황제의 신하잖아....." "그 날.....황제께서 절 당신에게 내린 순간부터 당신의 것입니다" "난 이제 황제의 루베라 따위가 아냐....." "알고....있습니다. 루베라가 아니라 하류라고......전에 말씀하셨으니......" "그런 뜻이...!!" "그게 제 융통성입니다........" 가라앉은 눈으로 녀석을 바라봤다. '그런 건.....융통성이 아냐.......헛가르쳤군.....' 융통성도 없고 고집쟁이다. 가기 싫다고 해도 소용없다. 이미 발을 들여놓은 거다. 꼬이기만 한 내 인생에...... 앞으로 계속 나아가지 않으면....... 이 녀석도 티폰에게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겠지...... 어차피 이런 몸으로 오래 살 것 같진 않다. 그래도...... 내가 죽는 건 이미 정해진 일이고 각오도 돼있지만 이 녀석이 죽는 꼴은 보고싶지 않다. 갈 수 있는 데까지 따라가 주는 수밖에...... 몸이.... 버틸 수 있는데 까지..... "더.....쉬십시오.....다시 시작할 수 있게....." '다시.....시작하기엔..... .....너무 늦었어......' 따뜻한 손으로 눈을 가려온다. 눈을 스륵 감자 잠시 후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는지 마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62- 지독한 악몽...... 양손은 이미 검붉은 피로 범벅이 돼 있었고 차갑기만 한 심홍색 눈동자가 날 죽일 듯 노려본다. 공포에 뒤로 주춤 물러나자 뭔가에 걸려 바닥을 굴렸다. 발 밑에 싸늘하게 식어있는 건 시체......... 목이 졸리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심장에 붉기만 한 단도가 박혀있었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떨리는 몸으로 뒷걸음질치자 티폰이 시체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굴러 떨어지는 건 금빛 머리칼을 가진 사내의 머리..... 누군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표정에 끔찍한 비명을 내지르고 눈을 번쩍 뜨니 거칠게 흔들리는 마차 안으로 기울어 가는 태양의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 오고 있었다. 잠해 취해있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거칠게 뛰어대고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고통이 온몸을 들쑤셔댄다. 호흡이 끊어질 듯 가늘고 따뜻한 햇살에도 몸이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식은땀을 흘리며 죽을 듯 떨어대면서 몸을 새우처럼 말았다. 아무래도 차가운 지하감옥 안에 있을 때부터 이상을 일으키던 몸이 드디어 미쳐버렸나 보다. 한참동안 그렇게 고통에 몸부림쳐 대는데 시야가 새카맣게 가려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놀라 힘없이 눈을 다시 깜박이자 흐릿하게 시야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온몸을 칼로 난도질하는 것처럼 아프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도 없다. 어쩐지 거칠게 흔들리던 마차가 멈추고 케레스가 황급히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추격이 붙은 것 같습........하류님?!!!" 녀석이 내 어깨를 흔들며 필사적으로 날 부르지만 눈을 뜰 힘도 없다. "제발.....조금만......." 미친 듯 떨어대는 내 몸을 밖으로 끄집어내더니 말과 마차가 연결된 곳을 끊어버리고 내 몸을 말 위에 올려놓은 후 자신도 말에 올라탔다. 말이 거칠게 내달리며 몸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토기가 치밀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목구멍을 타고 비릿한 핏덩어리가 울컥 넘어와 턱을 붉게 적시며 흘러 내렸다.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은 멈출 생각도 하지 않고 가슴이 아프도록 내달린다. 말 등위를 적시는 검붉은 피를 봤는지 케레스가 놀라 말을 멈춰버렸다. 지나온 길에선 진짜로 추격이 붙었는지 땅이 울릴 정도로 말달리는 소리가 들리고 희뿌연 먼지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케레스가 멈춰선 곳은 국경인 듯 보이는 꽤나 거대한 다리의 중간쯤...... "이 다리만 건너면......." 다리 저 편을 흔들리는 잿빛 눈동자로 잠시 바라보더니 내게 눈을 돌린다. 한참을 떨리는 손으로 입가에서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피를 닦아낸다. 몸이 차갑게 굳기 시작하고 경련이 일자 케레스가 포기해 버린 듯 말 위에서 내려 내 몸을 안아 바닥에 눕혀주었다. 힘겹게 동공이 열려버린 까만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새카만 어둠 뿐...... 떨리는 손을 들어올리자 따뜻한 손이 쥐어온다. "도망쳐....케레스....."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말을 뱉어보지만 돌아오는 건 침묵....... 땅을 울려대던 커다란 진동이 지척에서 멈춘다. 지독히도 괴롭혀대던 고통이 사라져가고 미친 듯 떨리던 몸이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점점 잦아드는 심장박동과 숨소리에 얼굴 위로 따뜻한 물방울이 한 두 방울 씩 떨어져 내리는 게 느껴지고 귓가에 떨리는 목소리가 스쳤다. "끝까지.........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티...폰........' 겨우 흐릿한 시야가 돌아온 까만 눈동자에 보이는 붉은 빛을 끝으로 끝도 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멈춰버린 심장을 가만히 짚어보다가 가볍기만 한 몸을 안아 올렸다. 이를 꽉 깨물고 분노로 흐려진 잿빛 눈동자로 흑마에 올라탄 붉은 사내를 노려보았다. 한기가 들 정도로 차갑기만 한 붉은 눈동자로 마주 노려보더니 시선을 하류에게 돌린다. 예쁜 눈썹과 부챗살처럼 퍼진 까만 속눈썹이 밤하늘처럼 아름다웠던 눈동자를 가리고 있었다. 단정하게 뻗은 콧날과 창백하기만 한 피부에 까만 머리카락이 시선을 끈다. 입가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평안해 보이는 얼굴..... 잠을......... ........자는 듯..... 한동안 한 곳에만 머물러있던 붉은 눈동자를 들어올려 살기 짙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루베라를......... 내려놔라....." "......." 말없이 늘어져버린 하류의 몸을 더욱 쌔게 끌어안자 분노로 짙어진 붉은 눈동자가 잔인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저 녀석은 죽이고......... 루베라는........ 내 앞으로 끌고 와라...."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말에서 내린 병사들이 조금씩 거리를 좁혀온다. "이제......."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가 케레스에게서 새어나오자 붉은 눈동자를 마주쳐 온다. "황제의.....당신의 루베라는.....없습니다" "무슨.....헛소리냐....." 당장이라도 죽여버릴 듯 섬뜩하게 내뱉더니 퍼뜩 눈을 돌려 격한 감정을 담은....... 떨리는 심홍색 눈동자를 케레스의 품에 안긴 하류에게 박았다. "당신의 루베라였던 분은....... 죽었습니다........ 심장이........" "그럴.....리가........" 붉은 눈동자가 초점을 잡지 못한 채 정신없이 떨려오고 미친 듯 빛을 잃어간다. "이제......만족하셨습니까......폐하..... 원하시던 걸 이루셨군요....... 결국...... 당신 때문에...... 또..... 소중한 것을........." 한동안 넋이 나간 듯 하류를 바라보던 붉은 사내가 광기로 짙어진 핏빛 눈동자를 들어올리더니 천천히 말에서 내려섰다. 미쳐버린 눈으로 떨리는 손을 뻗어 등에서 시릴 정도로 찬 기운을 뿌리는 대검을 천천히 뽑아들더니 앞으로 서서히 다가서기 시작한다. "그 따위 거짓말에 내가......." 광기에 뒤덮여 핏방울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눈으로 살기를 뿌리며 다가서는 황제의 모습을 보고 병사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 "내놔.....내 것이다....." 차갑게 식은 잿빛 눈동자가 마주본다. "당신의 것은 이제 어디에도 없습니다. 죽어서도...... 이분은 당신 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테니...... 털끝 하나도 돌려드릴 수 없습니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듯 하류에게서 시선을 떨어뜨릴 줄 모르는 붉은 눈동자를 잠시 노려보다 망설임 없이 다리 밑으로 뛰어내렸다. 꽤 높은 높이에서 한참을 추락하더니 유속이 빠른 물에 빠져 쓸려 가는 두 인영을 보고 티폰이 미친 듯이 소릴 질렀다. "하류를......루베라를 찾아라!!! 찾아서 내 앞에 데려오지 않으면 모두 사지를 찢어버리겠다!!!" 분노한 황제의 섬뜩한 말에 바로 일사분란하게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붉은 눈동자로 다리 아래를 바라보는 티폰의 꼭 쥔 주먹엔 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두목....저거....다리 위에 있는 거 크리올라 제국 군 아냐?" "위에서 무슨 일이지? 떠들썩한데......" 숨어서 다리 위를 유심히 지켜보던 두 아이가 뒤를 돌아보자 헝클어진 은발의 사내가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위를 관망하다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지트로 돌아가자.....아무래도 저 녀석들 다리 아래로 내려올 모양이야....." "알았어, 두목!!" "응? 근데 저거......뭐지?" "뭐가?!!!" "저기 말야!! 저거....혹시 사람 아냐?" 아이가 가리킨 곳엔 강한 물살에 쓰러진 나무통에 걸려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저 녀석들이 찾고있는 게 저건가....." "그냥 두고 돌아가자! 두목...." "잠깐.....건져와 봐....." "무슨 소리야?!!!" "빨리!!!" "쳇, 알았어...." 두 아이가 투덜거리며 시체처럼 창백하기만 한 인영에게 다가가 물 속에서 끌어내자마자 낮게 비명을 질렀다. "헉, 시체.....잖아!!! 죽었어.....심장이 뛰지 않아!!" "그것보다.....뭐야....이 머리카락 색은.....까만 색이잖아?!! 사람 맞아??!!!" "뭐?!!!" 은발의 사내가 그 소릴 듣자마자 튀어나와 흠뻑 젖은 모포에 싸여 잠이 들어 버린 듯 누워있는 인영을 놀라 크게 뜬 눈으로 바라본다. "설.....마...........왜.......이 지경이 된 거야?" 잠시 다리 위를 바라보다 두 아이에게 다급하게 말을 던졌다. "진짜 죽은 거 확실해?" "의심스러우면 두목이 확인해 봐!!" 은발의 사내가 다가가 앉아 잠시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보더니 젖어버린 모포를 벗겨내고 자신의 하얀 망토로 창백한 몸을 감싸 안았다. "데리고 간다" "뭐? 미쳤어, 두목? 시체는 어따 쓸려구?!!!" "설마 시체 수집이라도 하는 거야?!! 머리카락 색이 엄청나긴 하지만...... 저 녀석들이 찾는 게 진짜 이 녀석이면 어쩌려구?!!!" "닥치고 따라오기나 해!! 저 녀석들이라면 상관없잖아..... 숲으로 들어가면 우릴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그건 그렇지만......" "빨리....서둘러야 돼!! 손도 쓸 수 없게 되기 전에......" 뛰듯이 앞장서는 은발의 사내를 불만스럽게 바라보던 두 아이도 그 뒤를 따라 거대한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63 "두목!! 정말 미쳤어? 왜 시체를 두목 침대에 눕히는 거야?!!!" "평소에도 기행만 저지르더니 정말 미쳤나보군...." "이것들이!! 닥치지 못해?!! 내가 살릴 거야!!" 은발의 사내가 도끼눈을 치켜 뜨고 버럭 소릴 지르자 침실 안까지 따라온 두 아이가 화들짝 놀라더니 눈을 크게 뜬다. "서......설마!!!!" "그걸 쓴단 건 아니겠지?!!" "가져와....." "이 미친 두목아, 그게 어떤 건데 이런 알지도 못하는 녀석한테 쓴다는 거야?!!!" "입다물고 빨리 가져오기나 해!! 정말 오늘 죽고싶어?!! 그거 황궁에서 목숨걸고 훔쳐온 것도 난데 왜 이 지랄들이야?!!!" "쳇, 자기가 훔치면 다 자기꺼라니까....." "뭐?!!!!!!" "아...아냐......가!! 가져온다구...." 서둘러 변명을 해대며 밖으로 튀어나가는 두 아이를 노려보다 침대 위로 고개를 돌렸다. "도대체.....왜..........이렇게 된 거야......." 외상은 자잘한 생채기와 멍자국 뿐이지만........ 어깨에 감긴 붕대를 풀고 몸을 뒤집어보니 보이는 건 등에 새겨진 각인과 깊은 칼자국........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알고 있다. 루베라...... 크리올라 제국 황제가 직접 새긴다는 소유의 각인....... 그런데...... 그 위엔 날카로운 검으로 찌른 듯 루베라를 양분해 버리는 칼자국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눈을 찌푸리게 한 건 강제로 범한 흔적...... '누가......황제의 루베라를 이렇게 엉망으로.......' 가만히 루베라를 만져보다 차가운 몸을 다시 뒤집고 물기를 닦아주기 시작했다. 까만 머리칼에서 물기를 다 털어 내고 바이올렛 눈동자로 침대에 잠자 듯 누워있는 하류를 가만히 바라보다 방 한 켠에 있는 목재로 된 선반으로 다가가 위에 올려져 있던 작은 병들을 모두 쓸어 침대로 되돌아 왔다. 여기저기 차갑게 식은 몸을 살펴보다 눈이 멈춘 곳은 점점 검게 변해 가는 손 끝..... '설마........' 심각한 표정으로 시트를 걷어내 발을 보자 발가락 끝도 새카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누가......이런 짓을.......'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재빨리 하류의 알몸을 다시 시트로 가리고 두 아이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온 금빛 상자를 받아들었다. "그거......뮤즈니안 왕국 보물이라구!! 정말 쓸 작정이야? 두목?!!!! 팔면 엄청난 돈이 들어올 텐데...." "맞아!! 그 미치광이 천재 의사도 딱 하나밖에 못 만들었다고 했는데....그걸 써버리면....." "닥치고 너흰 나가있어......내가 부를 때까지 들어오지마...." "쳇, 알았어......정말 못 말린다니까....젠장....!!" 투덜대며 두 아이가 방밖으로 나가자마자 상자를 열어 희미하게 금빛이 나는 손톱 만한 알약을 꺼내들었다. "살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야.....다행히 심장이 멈춘 지 얼마 안돼 성공할 확률이 높겠군.... 여하튼 다른 독기도 제거하려면.........우선은 살려놔야겠지...." 가만히 까만 머리카락을 쓸어봤다. "너.....살아나면....나한테 빚진 거다....." 하류의 입을 벌리고 금빛 알약을 손가락으로 목구멍 깊숙이 밀어 넣자 녹기 시작하는지 쓴 내가 확 풍겨온다. 목뒤로 쿠션을 받쳐 상체를 약간 일으킨 후 은으로 만든 가는 침을 들어올려 손가락과 발가락 끝을 모두 찌르자 새카만 액체가 흘러나오면서 은으로 만든 침이 검게 변해갔다. "지독하군......도대체 얼마나 먹인 거야?!!" 손가락 발가락 하나 하나를 손으로 꾹꾹 눌러 검은 액체를 모두 빼내버리고 시릴 듯 푸른 액체에 담가져 있는 실같이 가는 바늘을 다시 손가락 끝과 발가락 끝에 박아 넣었다. . 목구멍으로 밀어 넣은 약이 모두 몸 속으로 스며들었는지 차갑던 몸이 데일 듯 뜨거워지기 시작하고 창백해진 가슴을 짚자 미약하게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큭, 그 자식, 미친 끼는 있어도 천재가 맞긴 맞나보군......" 코에 손을 대보자 호흡이 없다. 힘없이 늘어진 새하얀 몸을 일으켜 앉혀 등을 거세게 몇 번 두드리자 입 밖으로 검붉은 핏덩어리를 쏟아내더니 끊어질 듯 미약한 숨을 내쉬며 침대 위로 무너져 내린다. 피가 묻어 엉망이 되어버린 시트를 걷어내고 따뜻한 물에 적신 천으로 창백하고 마른 몸을 깨끗이 닦은 후 몸 여기저기 난 상처에 약을 꼼꼼히 발랐다. 몸을 뒤집고 등뒤에 난 칼자국을 쓸어보니 아직도 피가 베어 나오고..... 가만히 루베라를 만져보자 몸을 들썩이더니 까만 속눈썹을 비집고 투명한 물방울이 흘러내린다.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다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주고 다시 등 쪽에 시선을 던졌다. "상처가.......남겠군....." 투명한 실이 끼워져 있는 가는 바늘을 꺼내들어 벌어진 상처를 봉합하기 시작했다. 바늘을 찔러 넣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몸을 달래듯 쓸어주면서 봉합을 다 마친 후 약을 듬뿍 바르고 하얀 천으로 꼼꼼하게 싸맨 후 하얀 다리를 벌려 애널을 살펴봤다. 억지로 범한 흔적이 역력한 상처를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다 손가락에 약을 묻혀 애널 위에 바르고 내부로 밀어 넣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고통스러운지 신음을 흘린다. 잠시 고통이 가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여기저기 더듬어 약을 바르고 상처를 집어보니 생각보다 상처는 깊지 않았고 누군가 치료를 했는지 악화되지도 않았다. '누가......'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약을 다 바르고 치료를 끝낸 후 새로 꺼낸 시트로 뜨거워진 몸을 감싸주었다. 까만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보다 방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아쉬운 듯 창백한 얼굴을 몇 번 더 쓸어보고 밖으로 나섰다. "두목! 어떻게 됐어?" 말은 그렇게 해도 꽤나 걱정이 됐던지 방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녀석이 물어온다. "당연히 성공이지!! 내가 하는 일에 실수 따위가 있을 것 같아?!!!" 씨익 웃으며 말하자 코방귀를 뀌어대며 말을 던진다. "쳇, 잘난 척은...." "뭐?!!!!!" "아...아냐.....그...근데 눈은 언제 뜰 것 같아?" "글쎄.....오늘 당장 뜰 수도 있고......며칠 후에나 뜰 수도 있고....상태로 봐선 좀 걸릴 것 같아....." "두목, 무슨 생각으로 저 앨 데려와서 살린 거야? 이제 어쩔 건데?" "내꺼야......" "뭐?!!!!!" "내가 주워서 살렸으니까 이제부터 내꺼라고...." 멍한 눈으로 뭐가 그렇게 좋은지 빙글거리는 은발의 사내를 바라보다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하, 또 그 버릇이 나왔군......훔치면 다 지꺼고 맘에 들어 주우면 절대 손에서 안 놓지.... 쯧...저 녀석도 잘못 걸렸군....." "닥치고 생화수 잎이나 따와!!!" "뭐? 갑자기 그 독한 걸 왜?" "저 녀석......사인이 나이브란 마약을 과다복용해서 쇼크사 한 거야....." "나이브....? 그게 뭐야?" "대륙 북동쪽에 있는 작은 섬에서만 피는 꽃에서 추출한 마약인데....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마약치곤 중독성도 약하고....살아 있을 땐 겉으로 보면 절대 표시가 안 나서 거의 암살용으로만 사용해..... 죽어야 시체의 손끝과 발끝에 독이 모여 새카맣게 변하거든..... 부작용도 상당해서 아무나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건데...." "부작용.....이라니?" "초기엔 환상, 환청, 흥분에 기억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고, 중기엔 의욕상실, 무기력증, 근육이완, 말기엔 심장마비까지......" "뭐?!! 어떻게 저렇게 어린 녀석이......" "글쎄......녀석이 깨어나면 아무 것도 말하지마....쫓기고 있는 것 같던데 당분간 지켜보고....." "알았어....." "그런데 두목은 어떻게 그 약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거야?!!!" "큭, 미치광이 의사 녀석이랑 좀 아는 사이거든..... 하여튼 독기 빼내려면 생화수 잎이 필요하니까 빨리 따와...." "응!! 그나저나....저 녀석 자고있다고 이상한 짓이나 하지마!!!" "맞아!! 손 빠른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바람둥이!!"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고 싶지 않음 빨랑 갔다와!!!" 소릴 버럭 지르자 흠칫 하더니 후다닥 뛰어가는 녀석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방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풀썩 앉아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하류를 내려다 봤다. "바람둥이라.....손대지 않을 자신은 없는데......킥, 우선은......살 좀 더 찌워야겠군......" 가만히 얼굴을 쓰다듬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고개를 돌린다. "큭, 왜....? 내가 싫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다 입술을 가만히 포겠다. 약 기운에 뜨거워진 몸 때문에 입안이 데일 듯 뜨겁다. 혀를 넣어 피 맛이 감도는 입안을 몇 번 쓸어보다 입술을 살짝 뗐다. "나중에 찾아내서 훔쳐오려고 했는데.....운이 좋군..... 그나저나......축제 때 본 그 살벌한 자식은 어떻게 된 거지...? 자기 꺼 건드렸다고 나까지 죽일려고 하더니.....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뭘 한 거야? 큭, 이 정도면 그 자식도 자격.....상실이군..... 설마 황제의 루베라와 사랑의 도피라도 한 건 아니겠지.....뭐....이젠 상관없어.....지금부터 내꺼니까....." 입술에 살짝 미소가 어리더니 까만 속눈썹에 살짝 키스하고 뜨거워진 몸을 꼭 끌어 앉는다.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64 몸이..... 지옥불에 태워지듯 뜨겁다. 뜨겁고 뜨거워서 몸 안에 흐르는 피가 모두 증발해 버릴 것만 같다. 눈을 뜨고싶어도 보이는 건 새카만 어둠 뿐....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인형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껍데기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지옥에...... ......떨어져 버린 줄만 알았다. 가끔씩 귓가에 조용히 들려오는 평안한 목소리와 따뜻한 체온이 아니었다면...... 진짜...... 그렇게 생각해 버렸을 거다..... . . . 굳어버린 듯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렸다. 몸이 천근같이 무겁고.... .....아프다..... 겨우 숨만 쉬며 눈동자를 돌리자 주위는 새카만 어둠과 정적으로 가득 차 있고..... 한참만에 누군가 내 몸을 꼭 끌어안고 있는 느낌에 뻑뻑한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희미하게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누....구....? 티폰....?' 따뜻한 피부의 감촉에 품으로 파고들자 바스락거리더니 내 몸을 꼭 끌어안는다. 머리 위로 규칙적인 호흡소리가 들려오고 심장박동에 다시 조용히 눈을 감다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럴....리가.....그때 분명......' 끔찍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몸을 떨며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니 티폰의 침실도........축축한 지하감옥도 아니다. '어떻게 된 거지? 그 때 분명 케레스랑.......' 혼란스런 머릴 부여잡고 힘겹게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옆자릴 바라보니 내 몸을 끌어안고 있던 녀석이 깼는지 몸을 일으킨다. 졸린 듯한 눈을 뜨자 어둠 속에서도 부드러운 빛을 뿌리는 바이올렛 눈동자가 드러나고...... "너.....이제야 깬 거야?" 기쁜 듯 내 몸을 끌어안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누....누구야? 이 자식은....?!!!!' 당황하며 녀석의 벗은 상체를 밀어내자 바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대온다. 도저히 상황판단이 되지 않는다. 뇌가 생각하길 포기한 틈을 타 녀석이 아랫입술을 빨고 슬쩍 슬쩍 핥으며 간질이다 목을 뒤로 꺾어 손으로 뒤통수를 받친 뒤 따뜻한 혀를 깊숙이 넣어왔다. 입안 구석구석을 더듬어 자극하고 내 혀를 찾아 휘감아오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한참동안 각도를 바꾸며 목마른 듯 부딪쳐오는 입술에 누구 것인지도 모를 타액이 메마른 목구멍 속으로 넘어오고 숨이 막혀 녀석의 팔을 꼭 쥐어도 놓아줄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탐해간다. 바짝 마른 입술을 적셔주듯 부드러운 입술로 부벼대는 녀석의 자극에 작은 신음이 흘러나오자 정신을 확 차렸다. 다시 뇌가 제 기능을 시작하자 입안을 휘저어대는 뜨거운 혀를 꽉 깨물어버렸다. "윽....." 작게 신음소릴 내며 떨어져 나가는 녀석의 복부를 없는 힘을 짜내 겨우 발로 냅따 걷어차 버리자 그대로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이 변태새끼, 도대체 누구야?!!! 이 씹, 재수 없이 어따 주둥일 부벼?!!!!" 거칠게 팔로 타액이 묻은 입술을 비벼 닦고 날카롭게 소릴 지르자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서더니 촛불에 불을 밝히기 시작한다. "킥, 여전하네? 키스 못하는 것하구 폭력적인 거......" 빛에 조금씩 드러나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굳어버리자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너.....넌.....그 때 그 좀도둑 새끼......." 자다 일어나 제멋대로 뻗어있는 은발과 바이올렛 눈동자를 보고 버럭 소릴 지르자 미간을 찌푸린 채 날 바라본다. "뭐야? 좀 도둑이라니.......기억해 준 건 고마운데 생명의 은인한테 할 소리냐?" "뭐? 왠 개소리야? 무슨 은인?" 눈썹을 치켜올린 채 녀석을 바라보자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말을 늘어놓는다. "죽어서 물가에 쓰러져 있길래 데려와서 뮤즈니안 황궁에서 훔친 보물까지 써가며 내·가 살렸단 말야!!!" '죽다니.....? 내가?' 자랑스럽게 자신을 가리키며 해대는 말에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러고 보니....그 다리 위에서..... 그때 내가 죽었던 건가.....?" 몸이..... 제멋대로 떨려온다. 그 순간의 고통이 머리 속에 새겨진 듯 선명해 미쳐버릴 것만 같다. 죽기 전에 고통이란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해서..... 심장을 칼로 쑤셔대는 것처럼 아파서...... ....다시 떠올리면 제 정신으로 있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 때...... 머리 속을 스쳐 가는 영상은 모두 잔혹한 녀석의 모습뿐이어서..... 지옥에..... .....떨어져 버린 줄로만 알았다. 그래도...... 끔찍하기만 한........ 티폰이 있는..... 이 세계보단 나았을 것을..... 차라리 그대로..... 죽어버렸으면......좋았을 것을..... "그러니깐 이제 넌 내 거야!!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녀석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누가........" 즐거운 듯 떠들어대는 녀석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던지자 말을 멈추고 내게 시선을 보내온다. "누가....살려달라고 했어?!!! 이 병신 같은 자식이 쓸데없는 짓만 해대고...... 도대체......무슨 짓을 한 거야.....?!!!" 볼을 타고 뜨거운 물방울이 흘러내리자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65 볼을 타고 뜨거운 물방울이 흘러내리자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겨우......벗어날 수 있었는데..... 지옥 같은 이 세계로부터..... 끔찍하게 영혼을 죄어오는 죄책감으로부터...... 잔혹하기만 한..... ......그 녀석으로부터.....' "너.....왜......"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작게 흐느끼자 녀석이 당황한 듯 내 몸을 끌어안아 온다. "뭐야?!! 이 새끼.....이거 놓지 못해!! 놔!! 죽여버릴 거야!!!" 녀석의 가슴을 밀치며 벗어나려고 발버둥쳐 보지만 힘이 다 빠져버린 몸으론 미약한 반항일 뿐...... 녀석의 따뜻한 체온에 다시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티폰의 따뜻했던 체온이...... 미치도록 아름다웠던 붉은 눈동자가...... 머릿속에 박혀버린 듯 지워지지 않는다. 눈을 뜨면 이렇게 보이는 건 은발과 바이올렛 눈동자뿐인데...... 멍청한 내 심장은 그 녀석의 붉은 머리칼과 핏빛 눈동자만을 찾아댄다. 이렇게 살아있어도..... 녀석이 내게 주는 것이라곤 끔찍한 고통과 차가운 눈빛..... 잔혹한 말들뿐일 텐 데도..... 지하감옥 안에선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던 심장이 지금에 와서야 칼로 베어내 듯 아파 온다. '왜....그런 녀석을 생각하는 거야...... 왜....그 녀석한테 기대려고 하는 거야.... 난 그 녀석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데..... 그냥 단순히 녀석에게 과거의 죄 값을 치르려던 것뿐인데...... 빌어먹을 루베라 때문에 구속되어 있었던 것뿐인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생각도 못한 채 반항도 잊고 조용히 녀석의 품에 안겨 흐느끼자 귓가에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들어 온다. "전에.....무슨 일이 있었는진 잘 모르겠지만......괴로운 일이었다면 다 잊어..... 넌 이미 한 번 죽었으니까....전에 있었던 일도 모두 끝난 거야....." '그렇게.....간단할 리 없잖아....' "이전의 넌.........죽은 거야....그러니까...... .....이렇게 괴로워하지 않아도 돼....." '그럼....내가 저지른 죄도......나와 티폰의 관계도...... 이제..... 모두....... 끝났단 말야.....?' 심장이 욱씬거리기 시작한다. '정말 이대로......모두 잊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면...... 언젠가 녀석을 지워버릴 수도 있는 건가..... 녀석을 미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그렇게......' 지하감옥 안에서 녀석이 자신의 손으로 날 죽여주길 바랐다..... 하지만 잔혹하기만 한 녀석은 육체도....정신도....마음까지도 모두 자신의 손으로 철저히 망가뜨려 버렸다.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다시는..... 혼자서 일어설 수도 없게...... 그냥...... 다른 녀석을 죽일 때처럼 처참하게 죽여줬어도 원망 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내게..... 더 지독한 짓을.......잔혹한 짓을 했다. 창부처럼 날...... .....범했다..... 철저히 절망만을 느끼도록..... 녀석이 날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건 역시 착각이었다. 그렇게 잔혹하기만 한 녀석이...... 사랑 따윌 할 리가 없다. 케레스도....... 처음엔 그렇게 말했지만.....감옥 안에서 끔직한 내 몰골을 보곤 입을 다물어 버렸으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 사랑이란 말과 티폰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던 내 자신이 옳았던 거다. 과거의 내 자신이..... .....옳았던 거다...... 3년 전...... 내가 사랑했던 건 역시 그 녀석이 아니었던 거다. 케레스에게 티폰이 날 사랑한다고 확인했을 땐..... 기쁨보다 절망이 더 컸다. 이렇게 끔찍한 결말이 되리란 걸 3년 전의 내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이 계속해서 볼을 타고 흘렀다. 반항이랍시고 한 약간의 움직임에도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거칠어진다. 갑자기 심장이..... 송곳으로 찌르듯 아프기 시작하자 신음을 흘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입술이 타듯이 바짝바짝 마르고 죽을 것 같은 통증이 온 몸을 들쑤셔 댄다. 숨만 가쁘게 쉬다 녀석의 품에서 몸이 힘없이 늘어지기 시작하자 날 끌어안고 있던 녀석이 갑자기 급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요란한 소릴 내며 뭔가를 찾아들고 다시 내게 다가온다. 힘없이 동공이 열려버린 까만 눈으로 바라보자 재빨리 내 몸을 일으켜 입안에 알 수 없는 액체를 흘려 넣는다. 혀에 닿자마자 혀가 얼얼할 정도로 쓴맛에 겨우 고개를 돌려버리자 턱을 타고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녀석이 조급하게 내 얼굴을 잡아 돌리더니 재촉하듯 말을 꺼냈다. "마셔! 죽고싶지 않으면...!!" '죽고싶어..... 살고싶지...........않아..... 날.....내버려둬....제발.....' 눈을 감아버렸다. 심장에 칼이 박힌 것처럼 아프다. 몸이 차가워지고 의식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자 뭔가 따뜻한 게 입술을 덮어오더니 목구멍 안으로 흐린 정신에 맛도 느껴지지 않는 액체가 넘어온다. 한참동안 입안에 머물던 것이 떨어져나가자 거칠던 호흡이 잦아지고 심장이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좀더 자.....아직은 아플 테니까...."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조용히 스치고 따듯한 체온이 내 몸을 감싸오자 그대로 죽은 듯 잠에 빠져들었다.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66 얼마나 오랫동안 잠이 든 건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주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만 어둠이 깔려있다. '살아.....있어....?' 몸이 지난번보다 가볍고 통증도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잠에 취한 머리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하자 여전히 날 끌어안고 있는 은발 녀석의 어깨너머로 바닥에 흩어진 녀석의 옷자락 가운데 단검이 눈에 들어왔다. '왜....아직도...... 살아있는 거야.... 살아있을 이유 따윈.......이제...... ......없는데......' 가슴이..... 뻥 뚫려버린 것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꿈만 같다. 혹시...... 내 세계에서 그 때 죽어버려서...... 지옥에 떨어진 게 아닐까...... 이 곳은 어쩌면........ 지옥일 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 오지만 않았어도.... 녀석을 만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거다. 그래도 내 세계에선...... 가난해도 누군가 곁에 없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는데..... 이곳에선 길조차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그냥......내 세계에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외롭게 살아갔어도..... 따뜻한 품 따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갔어도.... 지금보단 행복했을 거다. 이렇게까지 약해지진 않았을 거다.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렇게 계속 살아가야 할 정도로 세상에 미련도 집착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게 가치 있는 목숨도..... ......아닌데..... 결국 이 하찮은 목숨 때문에...... 순간 나 때문에 생사조차 알 수 없게된 케레스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케레스......설마 그때......티폰한테 죽은 건.......' 따뜻한 손과 부드러운 잿빛 눈동자가...... 안타까운 듯 날 바라보던 무표정한 얼굴이 시야를 스치고 지나간다. '설마.....' 아니..... 아닐 거다.... 분명 그때 무사히 도망쳤을 거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엔 믿지 않아.....절대..... '그 녀석들.......' 시온은.....내게 티폰을 피해 루베라를 지우고 행복하게 살라고 했다. 그리고....케레스는 다시 시작하자고...... 지금 이라면....... 녀석들의 말대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티폰없이....... 다시 이 세계에서......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 한참동안 단검을 바라보며 망설이다 겨우 눈을 돌렸다. 난...... 지금의 난 내게 새로 주어진 삶을 거부할 자격조차 없다. 이 녀석의 말대로 한 번 죽어서 모든 게 끝난 거라면...... 이전에 하류라는 인간이 죽어버린 거라면..... 황제의..... 티폰의 루베라였던 녀석이 죄 값을 치르고 죽은 거라면..... 시온의 말대로 티폰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케레스의 말대로 모든 걸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만이.... 녀석들에게 진 무거운 빚을 갚을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어차피........ 예전에 다짐했다시피...... 티폰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으면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 강하게......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오기로 했으니까......... 비록......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그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봐도 눈물을 쏟지 않을 정도로...... 내가 좋아했던 녀석들을 봐도 기대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겨우 마음을 잡고 몸을 뒤척이자 여전히 내 몸을 팔다리로 옭아맨 채 자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오고..... 멍한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다 숨쉬기도 불편할 정도로 바짝 붙어있는 녀석을 떼어내려고 바르작거리자 피곤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뭐라 중얼대며 내 몸을 더 바싹 끌어안는다. '이 징그런 새끼가 왜 자꾸 들러붙고 지랄야....!!!' 인상을 벅벅 쓴 채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단단한 녀석의 가슴을 밀어내기 시작하자 내 허리를 두르고있던 손이 불쑥 아래로 내려가 엉덩이를 지분거리기 시작한다. 녀석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몸이 뻣뻣이 굳어있는데 귓가를 간질이며 잠도 깨지 않은 목소리로 속삭여온다. "하아....보채지마...." '보채? 뭘? 무슨 소리야?!! 이 새끼, 비키기나 해!!!!' 다시 잠을 자는지 내 목덜미에 고른 숨을 내쉬는 녀석을 기가 막혀 잠시 바라보다 빌어먹게도 아직 내 엉덩이에 올리고 있는 녀석의 손을 떼어내려고 움켜쥐는 순간 가느다란 한숨소리가 들리더니 목에 따뜻한 입술이 맞닿아 온다. '이 새끼가....!!!' 힘없는 몸으로 버둥거려도 놓아줄 생각을 않고 목덜미에 입술을 미끄러뜨리더니 귓불을 이로 자극하며 속삭여온다. "해달라면서 왜 앙탈이야......." '누가 뭘 해달라고 했단 거야?!!! 이거 미친 거 아냐? 앙탈? 그게 도대체 뭐야?!!' 잠꼬대라도 하는지 눈도 뜨지 않은 녀석이 잔뜩 잠긴 목소리로 하는 말에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녀석의 품에 갇혀버린 몸이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는 남의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주물러대더니 내 몸 위에 간단히 올라타 가슴을 이리저리 더듬어오는 게 뭔가 찾는 것 같은데....... '설마....... .......내가 여잔 줄 알아.....?!!!' 황당함에 녀석이 하는 양을 지켜보자 한참동안 아무 것도 없는 판판한 가슴을 지분대더니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응.....?" "이 개새끼, 저리 비켜......."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녀석의 밑에 깔려 버둥거리다 꽥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잔뜩 흐린 바이올렛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67 "뭐야....너였어? 큭, 어쩐지......하아, 기분 좋다" 변태처럼 남의 엉덩이를 맘대로 주물럭대며 얼굴을 부벼오는 미친놈에게 기가 막혀 한참을 굳어있다 겨우 이를 갈며 말을 뱉어냈다. "비켜....." "정말 살 좀 찌워야겠네.....그땐 예뻤는데......" 능청스런 표정으로 내 말은 들은 척도 않는다. "이 개새끼.....!!!!" 주먹을 떨며 서늘하게 노려보자 내 위에선 내려올 생각도 않고 엉덩이는 실컷 주물러댔는지 다시 까만 머리카락에 손을 댄다. "훌쩍거리는 것보다 훨씬 낫네.......성깔부리는 게....." "누가....훌·쩍·대?!!!!!" 반항할 기운도 없어 머리카락을 지분대는 녀석을 죽일 듯 노려보기만 하자 킥킥대며 할 수 없다는 듯 내 위에서 내려와 옆에 눕더니 다시 내 몸을 끌어안아 온다. "비켜!! 이 좀도둑새끼!! 이거 놔!!!" '이 자식, 몸만 제대로 움직여봐!! 죽여버릴 줄 알아...!!' 힘도 쓰지 못하고 소리만 바락바락 질러대자 장난 가득한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왜? 어디 가려구? 화장실? 급해? 어디 보자...." 갑자기 손을 미끄러뜨려 내 것을 쥐어오려 하자 화들짝 놀라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서 냅따 녀석을 걷어차 버렸다. 요란하게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 놈을 분이 풀리지 않은 눈으로 노려봤다. 아무래도 미친놈이 틀림없다. 상종 못할 변태새끼라고 판단을 내린 후 시트를 몸에 대충 둘둘 감고 겨우 침대 위에서 일어서는 순간 시야가 핑 돌았다. 휘청이다 기어이 바닥을 구르려는데 침대 아래 엎어져 있던 녀석이 재빨리 몸을 일으켜 내 몸을 안아온다. "흐응~어디 가려구?!! 아직 움직이면 안돼!!" "씹, 놔!! 이 변태새끼야!!!" "미안!! 응? 장난 좀 친 거 가지구 왜 그래?!! 그런 꼴로 어딜 가려고?!!!" 날 기어코 열불터쳐 죽이려는지 사과하는 척 하면서 목덜미에 얼굴을 부벼대고 슬금슬금 허벅지와 엉덩이를 쓸어댄다. "내가 어딜 가든 니놈이 무슨 상관이야?!!! 손 안 떼면 잘라버릴 줄 알아!!!!" 눈을 부릅뜨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자 녀석이 불만스러운 듯 날 바라본다. "말했잖아....내가 주워 살렸으니 이제 내꺼라고......" "미친.....놀구있네.....내가 멍청한 자식이 떨어뜨린 100원 짜리 동전이냐? 주우면 지꺼게?!!" "100원 짜리? 그게 뭐야....?!! 암튼 아무 데도 못 가!! 도대체 이 밤중에 어딜 간다는 거야?!!" '어딜....가?' 잊고있었다...... 버둥거리던 걸 뚝 멈추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뮤즈니안 성에......." "응?" "뮤즈니안 성에 가야돼...." 루베라......... 녀석이 새긴 루베라를...... 시온이 이 빌어먹을 루베라를 지우려면 뮤즈니안 성에 가랬다.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다시 시작하려면....녀석이 새겨놓은 소유의 각인부터 지워야 한다. 녀석에게 다시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녀석에게 구속되지 않도록..... "거긴 갑자기 왜?!!" 능글맞은 손을 멈추고 놀라 크게 뜬 눈으로 녀석이 날 바라보자 잔뜩 골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내 몸 다 봤지.....?!!" 벌거벗겨진 채로 이 녀석 품에 안겨있었으니 아니라면 거짓말일 테지.... 같은 사내새끼니까 볼 것도 없었을 테지만....... "킥, 그래...구석구석...샅샅이.....그러니까 포기하고 내꺼......." "그럼, 등에 새겨진 것도 봤어?" 장난스런 표정을 지우고 날 바라본다. "응......" '역시.....' "그거.....지우고 싶어....." 한참동안 의아한 시선으로 날 바라보더니 천천히 입술을 열어 말을 시작했다. "루베라.....황제가 직접 지운 거 아니었어?" '지우...다니.....? 아직.....지우지 않았는데.....?' 까만 눈으로 놀라 녀석을 바라보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성까지 가지 않아도 지울 수 있는 방법이라면 나도.....알고 있어....." "뭐?!!! 그게.........뭐야?" "알려주면 여기서 얌전히 있을 거야?" "웃기지마...." "그래? 그럼 안 가리켜줘!!" "이 자식이...!!!!"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자 가소롭다는 듯 피식거리며 웃더니 내 몸을 번쩍 들어올려 침대 위에 다시 내려놓곤 다시 잠이라도 자려는 듯 날 끌어안고 눈을 감는다. "말해......" 앙칼지게 소리치자 꼭지가 돌 정도로 여유 있게 맞받아 친다. "대답은?" 이를 뿌득 갈았다. "맘대로 해!!!" 소릴 버럭 지르자 녀석이 눈을 뜨고 빙글거리며 날 바라본다. '빌어먹을!! 그딴 약속 지킬 거 같아?!!!' 안면을 갈겨버리고 싶은 걸 겨우 참고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천천히 말을 꺼낸다. "첫 번째는 황제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지우는 거고...... 두 번째는.... .....알고있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루베라 자신이 직접 지우는 거야......두 번째 방법은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잊혀졌지만...... 누가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자기 손으로 지우......." 녀석이 갑자기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너.....설마.....그 상처......니 손으로 낸 거야?!!" 커다란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지만...... 이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이미 지워진 건가.....' 착잡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내 세계에서 날 끌어낼 정도로 강한 구속력을 지닌....... 녀석과 나의 결속이 그렇게 간단히 끊어져 버렸다.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감옥 안에서 루베라에 깊게 새겨진 칼자국을 보고 격분한 티폰의 얼굴이 떠올라 피식 쓴웃음을 흘려냈다. '잘된.......일이야...... 이제.....그 잔혹한 황제와 엮일 일은......없겠군.....'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가만히 날 바라보던 녀석이 다시 입을 연다. "너....그럼 몸에 난 상처는 도대체......." '강제로.....당한 거 말인가......이 녀석이 직접 치료했나......'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의 눈을 피해버리자 다시 내 턱을 쥐고 눈을 마주쳐온다. "그럼.....이제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몰라....이제부터....어떻게 해야하지....?' "크리올라의 황제에게......돌아가지 않을 거야?" "난....... 황제의 루베라가 아니야......" "그럼.....?" "이제 다신...... .....돌아가지 않아....." "갈 곳은....?" '있을 리가.....없잖아..... 어차피..... 이 세계에서..... 내가 있을 곳은...... .....없어....' 그 녀석의 품도 역시......내가 있을 곳은 아니었다. 고개를 가만히 휘젓자 녀석이 갑자기 꼭 끌어안으며 기쁜 목소리로 재잘대기 시작한다. "그럼, 여기서 나랑 있어!! 응? 좋은 녀석들도 많고 지내기도 편하고.... 조용히 살고 싶으면 방해하는 사람도 없고......응? 어때?" 갑작스런 말에 그제야 고개를 들어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자 반짝이는 짧은 은발과 바이올렛 눈동자가 눈에 들어온다. 나이는 스물? 스물 하나? 정도.....티폰이 스무 살이라는데 이 녀석도 어쩌면 더 젊을 수도..... 하는 짓을 보면 영락없는 애새낀데...... 지금처럼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면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다. 은발 못지 않게 하얀 피부와 곧은 코....단정한 입술.... 키는 티폰과 비슷하거나....약간 작다. 촐싹거리는 녀석은 어쩐지 시온을 닮았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티폰과는 정반대의...... 어쩐지........무거운 기분을 날려주고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가라앉은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다 말을 던졌다. "너.....좀도둑 아냐? 나보고 도둑 하라고?!!!" "왜? 도둑이 어때서? 재수 좋으면 돈도 왕창 벌고 우린 나쁜 도둑 아냐!!" "지랄....도둑도 나쁜 도둑 좋은 도둑 따로 있냐?" 기가 막혀서 빙글거리는 녀석을 바라보자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보며 입을 연다. "당연하지!! 우린 아무 일도 안하고 놀고먹는 돈 많은 귀족이나 왕족들만 털고 대부분의 차익은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준단 말야....." '차익? 미친놈.....지가 로빈훗이야?' "같이 동업하자! 응? 다른 놈들은 다 파트너 있는데 나만 없단 말야....!!" '도둑한테 그런 것도 필요한 건가....?' 의심스런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빙글거리며 다시 말을 잇는다. "어때? 응? 훔친 건 반반씩 나누고....." "난 도둑질 같은 거 해본 적 없는데....?" "괜찮아!! 내가 알려줄게!! 응? 하자!!"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다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갈 곳도 없고....... 돈도 많이 번다는데....... 처음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 범죄란 게 어쩐지 걸리지만...... 케레스가 알면 어쩐지 혼날 것 같지만...... 성질 고약한 귀족 놈들만 털면...... 좋아서 내 몸을 꼭 끌어안고 난리를 쳐대는 녀석을 떼어내기 귀찮아 가만히 있다 퍼뜩 말을 던졌다. "그런데......이 머리카락이랑 눈동자는......." '어딜 가나 시선을 끌 텐데........' "도둑이란 거 사람 눈에 띄면 안 되는 거 아냐?' 이런 꼴로는 도저히 무리다. "난 좋은데....." 녀석도 그제야 눈치 챈 모양인지 아깝다는 듯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번갈아 본다. "염색약 있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눈을 빛내고 날 바라본다. "아니, 그것보다 더 좋은 거 있어!!!" "응?" 녀석이 벌떡 일어서 선반을 뒤적이더니 조그만 상자를 내게 디민다. "뭐야?" "킥, 미친 의사한테서 슬쩍 했지.......그 녀석....엄청난 걸 만들어 놓기만 하고 쓰진 않더라구.... 사람들은 이런 약이 있는 줄도 모를 걸?!!" '미친....의사....? 무슨 소리야?' 상자를 열어보니 조그만 알약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색소를 바꿔 준데.....효과도 두 달 정도 지속되고 부작용도 없고 머리카락은 물론 눈동자에서부터 털이란 털 색은 모두 바꿔주니까 염색약보다 훨씬 좋아!! 넌 까만 색이니까 더 이상 짙어지진 않겠구......옅어지면 잿빛이나 갈색 계통으로 변할 거 같은데......?" '하, 별개 다 있네.....죽은 사람도 살리고......색소도 바꿔? 저 쪽 세계로 가져가면 떼돈 벌겠군......' 가만히 상자 안에 들어있는 알약을 바라보다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빛을 뿌리는 녀석의 은발에 시선을 던졌다. '화려....하군........그러고 보니 티폰 녀석 머리카락하고 눈 색도 꽤 특이했나봐...... 지금까지 황성에서도 그렇게 순수한 붉은 색은 티폰 뿐이었으니까.......' 잠시 녀석의 은발을 바라보다 내 머리카락을 가만히 만져봤다. 손에 쥐어지는 건 빛을 잃어버린 까만 머리카락...... '이젠......... 다 끝난 일이야...... 새로..... .....시작해야 하니까........' 마음을 정하고 알약을 집어들어 그대로 삼켜버렸다. "하아....아까워.....까만 색 예뻤는데....." "언제 바뀌는 거야?" 까만 머리카락에 손을 뻗어 지분거리는 녀석의 손을 탁 쳐내고 말을 잇자 삐죽거리며 대답을 해온다. "2~3시간 후에......" "너...앞으로 살려줬으니까 내꺼 어쩌구 하면서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기만 해봐!!" "뭐? 하지만 내가 살려준 건......" "아, 씹!! 누가 살려달라고 했어?!!! 젠장할! 니 새끼 땜에 또 벌어먹고 살아야 되잖아!!! 또 그딴 소리하면 파트너고 나발이고 경찰에 다 꼬발라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눈을 부릅뜨고 말을 뱉어내자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경찰? 그게....뭐야?"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68 굳어있는 녀석을 한참동안 노려보다 벌거벗은 몸을 시트로 가리고 침대 위로 풀썩 드러눕자 녀석이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말을 꺼낸다. "그러는 게 어딨어?!!!!" "씹, 여깄지 어딨어? 졸리니까 닥치고 나가....." "뭐?!! 여기 내 방이란 말야!!" "그래서 어쩌라구?!!!"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자 녀석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왠지 능글맞게 빙글거리기 시작한다. '뭐야? 이 새끼, 갑자기.....미쳤나?' "알았어!! 다신 그런 얘기 안 꺼낼 테니까 대신 나랑 밤엔 같이 자!!!" "뭐?!!!"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올려다보자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하는 내 얼굴을 보고 재빨리 말을 덧붙인다. "화내지 말고 끝까지 들어!!! 침대만 같이 쓰자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녀석의 말에 얼굴을 확 붉히자 킥킥거리기 시작한다. '역시......사내새끼가 그런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겠지? 역시 티폰 녀석이 변태 성욕자였나....? 이 녀석은.....설마....아니겠지? 좀 변태끼가 있어 보이지만.....아까 그런 것도 여잔 줄 알고 그런 거 같으니.....' 미심쩍은 눈으로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왜 내가 너랑 같이 자야돼?!!!" "방이 없다구!!! 나가보면 알겠지만 애초에 키리안 숲에 아지트를 지을 때 인원수에 딱 맞게 거처를 지어서 니가 머물 곳이 없어..... 설마 방 주인한테 나가란 소린 아니겠지?!!!" '벌써 나가라고 했는데.....'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을 바라보다 할 수없이 입을 열었다. "씹, 알아서 해......" 어쩐지 음모 가득한 얼굴이 수상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고 눈을 감자 녀석이 냉큼 시트 속으로 기어들어 온다. 잠이 들 무렵..... 뒤에 있던 녀석이 강한 팔로 내 허리를 감고 끌어당겨 따뜻한 몸을 밀착시키자 화들짝 놀라 허리에 감겨있는 녀석의 팔을 움켜쥐었다. "이 새끼, 자꾸 왜 이 지랄야?!!" 버둥거리다 녀석 쪽으로 돌아누워 주먹을 날리려던 찰라 재빨리 말을 해온다. "너......갑자기 왜 그래?" 되려 과장되게 이상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소릴 꽥 질렀다. "이 새끼, 왜 그러냐고?!!! 이거 당장 풀지 못해?!!! 니놈 정말 변태 아냐?" "변태? 그게 뭐야? 아까부터......" "너같은 놈이 변태지 뭐긴 뭐야?!!!" "무슨 소리야? 암튼 여긴 숲이라 밤엔 춥단 말야!! 추워서 좀 붙어서 자자는데 왜 이렇게 민감해? 나도 여자가 더 좋단 말야!! 너 오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랑 여기서 붙어 잤는데..... 너 땜에 이제 그러지도 못하니까 그냥 참아주면 안돼? 너도 춥잖아!!! 사내새끼가 째째하긴....." "뭐? 이 새끼, 정말 죽고싶어?!!! 그럼, 지난밤에 나한테 입술 부비고 혀 집어넣은 건 뭐야? 여자가 더 좋다면서 왜 날 붙들고 그 지랄이야?!!!" 그제야 의심스러웠던 걸 쏟아내며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꼬옥 쥐자 팔에 더욱 힘을 줘 몸을 바짝 밀착시키더니 내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조용조용 말해온다. "내 습관이야.....잠버릇....." "이 새끼, 웃기지마!! 그럼 그 때....축제땐....?!!!" "하아....술버릇이야.......내 술버릇......" '뭐? 이 새끼가 그때 술에 취했었나.....?' 아무리 머릴 굴려봐도 술에 잔뜩 취해있었기 때문에 눈앞에 이 녀석이 취해있었는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냥 자자....너 졸리다며.....뭘 새삼스럽게 이래? 그 동안 너 자고있을 때도 계속 이러고 잤단 말야...... 이미 볼 것도 다 봤고 구석구석 몸도 내가 직접 치료했어.....여기도....." 녀석이 엉덩이를 쓸어대자 얼굴을 확 붉히며 손을 탁 쳐냈다. "그 동안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닷새 동안 잠만 자고 사흘 전에 일어나서 다시 잤으니까...일주일 좀 넘었나.... 그 땐 떨면서 나한테 잘만 엉겨붙더니 갑자기 왜 이래?" 그러고 보니..... 처음 눈을 떴을 때 이 녀석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 씹, 재수 없는 자식.....' 녀석의 말대로 숲이라 그런지 티폰의 침실보다 훨씬 추워 몸을 오돌오돌 떨기 시작하자 녀석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거봐, 춥지? 그러니까 그냥 가만히 잠이나 자....." '이 새끼가 누구 놀리나?!!!' 녀석의 뻔뻔함에 기가 막혀 내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있는 녀석의 은발을 눈이 찢어져라 노려보지만 규칙적인 호흡소리만 들려온다. 어쩐지...... 녀석의 페이스에 계속 말려드는 것만 같다. '젠장.....뻔뻔한 새끼......' 눕자마자 자는지 조용한 녀석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바라보다 포기해 버리고 시선을 천장으로 돌렸다. 사실...... 이렇게...... 까맣기만 한 어둠이 무섭다. 다시 끔찍한 지하감옥으로 돌아온 것만 같아서..... 어두운 곳에 혼자 누워있으면 티폰의 붉은 눈동자가 지독한 악몽이 되어 따라붙을 것만 같아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 이젠 따뜻한 체온이 옆에 없으면 잠이 들 자신도 없다..... 그 자식이...... 날 그렇게 길들여 버렸으니까..... 씁쓸한 눈으로 내 몸을 붙들고 잠을 자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 . . "두목!! 두목!! 또 늦잠이야?!!!" 소릴 지르며 벌컥 문이 열리자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오렌지 빛 머리카락에 옅은 하늘 빛 눈동자 두 쌍..... '똑같이.....생겼어?' 눈앞에 보이는 쌍둥이에게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녀석들도 놀란 듯 날 바라본다. 키는 내 어깨정도에 나이는 두 살쯤 어려 보인다. 어딜 쑤시고 다녔는지 햇빛에 그을린 건강한 갈색 피부에 귀여운 얼굴...... "너.......깨어난 거야? 그런데 머리카락이......." '응? 머리......카락...? 까만 게 신기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들이 입을 열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길어진 앞 머리칼을 움켜쥐고 바라보는데 당연히 보여야할 까만 머리는 보이지 않고 눈처럼 흰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뭐....뭐야?!!!!" 한참동안 그렇게 굳어있다 퍼뜩 어제 밤에 먹은 약이 떠올랐다. "정말.......이잖아?!! 그런데 색이 왜 이따위야?!!!!" 소릴 버럭 지르자 내 몸을 휘감고 있던 녀석이 몸을 뒤척이며 그제야 눈을 뜨고 날 바라본다. "응? 벌써 일어났어? 완전 흰색이네......그 색깔도 꽤 잘 어울려......예뻐......" '이 새끼, 지금 그게 문제야?!! 뒤에서 보면 영락없이 할밴 줄 알겠구만!!!' "두목, 설마 그 약 준거야?!!!" "응....." 아깝다는 듯 내 머리카락을 바라보는 쌍둥이들을 뒤로한 채 일어나지도 않고 그 때까지 내 몸을 꼭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대던 녀석이 갑자기 퍼뜩 생각난 듯 시트를 들추고 내 아래 춤을 훑어보자 발로 냅따 걷어차 침대에서 떨어뜨려 버렸다. "이 자식, 어딜 쳐다보고 지랄야? 죽고싶어?!!!" 도끼눈을 뜨고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을 노려보자 너무하다는 듯 날 바라본다. "뭐야? 약효가 확실한지 좀 보려던 것뿐인데.....킥, 정말 다 하얘졌네....그래도 까만 색이 더 귀여웠는데...." "이 새끼, 죽인다!!!!!" 정말 살인이라도 낼 듯한 눈으로 노려보자 화들짝 놀라 시선을 피하고 바닥에 떨어진 김에 옷이라도 입으려는지 궁시렁대며 여기저기 흩어진 옷을 꿰어 입기 시작한다. "두....두목...맞아?!!" "누...누구야! 당신....!!" 쌍둥이가 눈을 크게 뜨고 은발머리 녀석을 바라보자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두 녀석을 노려본다. "닥치고 있어....." "킥, 임자 만났군....." ****교활하지만 꽤 귀여운 두목.....아직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다는..... 하류를 잘도 속여 넘기지만 하류의 더런 성깔은 못당하는 군요.....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69 몸을 대충 시트로 싸고 킥킥거리며 서있는 두 쌍둥이 녀석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야, 거기 있는 것 좀 가져와....." 벽에 걸려있는 거울 같은 걸 손으로 가리키자 멍한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냉큼 내가 가리킨 물건을 들고 내 앞으로 다가온다. 거울 저편에 보이는 건..... 자다 일어나서 삐쭉삐쭉 일어선 흰 색 머리카락이 목덜미까지 늘어져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소년..... 색기를 뿌릴 정도로 푸른빛 나던 까만 머리카락이 가려지자 제법 소년다운 얼굴이 드러난다. 눈썹과 속눈썹까지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 하얗고.... 눈동자는 까만 빛이 바래 케레스의 눈동자보다 옅은 회색 빛을 띄고 있다. 전보다 훨씬 옅어져 여자보다 하얗게 변해버린 피부를 미간을 찌푸린 채 가만히 만져보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손으로 한 움큼 움켜쥐었다. 녀석이..... 티폰이......그렇게도 집착했던 머리카락이...... 완전 다른 색으로 변해버렸다. 밤하늘같이 까맣기만 했던 눈동자도..... 자꾸만 가라앉아 가는 기분을 바꾸기 위해 거울 저편에 있는 녀석에게 씨익 웃으며 말을 던졌다. "전보다....훨씬 낫군......까만색은 이제...... .....지긋지긋했는데......" 고개를 들어 멍하니 날 바라보던 녀석들 중 바이올렛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고 손을 까딱까딱해서 코앞까지 불러들였다. 가까이 다가오자 녀석이 허리춤에 차고있는 단검을 빼들어 뒷덜미를 덮고있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고 그대로 베어내 버렸다. 뒷덜미를 간지럽히던 머리카락이 짧아지자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다. 하얀 머리카락이 눈송이처럼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걸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앞에 있는 녀석에게 물었다. "너....이름이 뭐야?" "응?" 그제야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바이올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이름!! 파트넌가 뭔가 하려면 이름이라도 알아야지!!" "뭐? 두목, 파트너라니!!!! 두목은 파트너 따윈 필요 없다고.....!!" "유이....." 은발 녀석이 말을 끊고 대답하자 놀란 듯 그때까지 거울을 들고있던 쌍둥이 녀석들이 유이란 녀석을 바라보다 내게 고개를 돌려 말을 던진다. "니 이름은 뭐야?" "난......" 망설였다. 분명 그날 하류란 녀석은 죽었는데....... 유이가 날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키르다....." '응?' 놀란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자 빙글거리며 입을 연다. "오늘부터 우리 도적단에서 내 파트너로 일할 거야...." "키르....? 난 아리한이고.....이 녀석은 내 쌍둥이 동생 카일이야...." 누가 누군 지 모를 정도로 똑같은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자 둘 다 귀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못 알아보겠으면 맘대로 불러.....바보1, 바보2 라던지....." "뭐? 너무해! 두목....!!" "쳇, 자기는 여자나 후리고 다니는 바람둥이 팔푼이 주제에......" "뭐?!!!!" "아...아냐....!!" 유이란 녀석이 투덜거리는 두 녀석을 잠시 노려보다 다시 내게 말을 건네 온다. "그나저나....너 무기는 다룰 줄 알아?" "응....." "어떤....?" 손에 쥐고있던 유이의 단검을 가만히 내려보다 손에 힘을 주고 앞쪽으로 날렸다. 날카롭게 일직선으로 날아가 단검이 박힌 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벽...... 벽 앞쪽에 있던 화병 속엔 붉은 꽃 한 송이가 장식되어 있었지만...... 단검 끝이 닿자마자 힘없이 줄기가 끊어져 붉은 꽃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힘이 없어 단검이 목재로 된 벽에 박혀 들어가지 않고 바닥에 떨어져 버렸지만 목표물은 정확히 맞췄으니..... '어쨌든......성공....인가.....' 잠시 침묵이 흐르고..... 쌍둥이들이 먼저 정신을 차린 듯 정신없이 떠들어대기 시작한다. "우와~!! 굉장한데?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정말!! 팔푼이 두목 파트너론 너무 아까워!!! 차라리 우리 팀에 붙어라!!" "뭐? 이 새끼들이 정말!!! 내 손에 잡히면 죽을 줄 알아!!!!" "힉!!" 유이 녀석이 벌떡 일어나자 후다닥 뛰어나가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쌍둥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법..... 아리한이란 녀석에 비해 카일이란 녀석은 유이한테 엄청 개긴다. '심술딱지 같은 놈......' 혀를 끌끌 차며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려놓다 홀랑 벗은 알몸이란 걸 깨닫고 가만히 몸을 내려다 봤다. 일주일 동안 잠만 잤다더니 여기저기 멍이 든 자국은 희미해져 있었고 생채기가 난 곳도 무슨 약을 발라댄 건지 상처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로 잘 아물고 있었다. 약간 마른 등을 가만히 만져보니 따끔거리는 느낌과 함께 칼자국이 남은 루베라 위엔 부드러운 천이 만져지고........ 움직이는 데도 별로 불편한 게 없는 듯 하다. 여기저기 상처를 바라보다 눈을 돌리니 유이란 녀석이 빤히 날 바라보고 있다. "뭘 봐? 사내새끼 몸 처음 봐? 그럴 시간 있으면 옷이나 내놔!!!" '여자 좋아한다는 새끼가 왜 자꾸 이 지랄야?' 아까 쌍둥이들이 유이 녀석에게 여자나 후리는 바람둥이라고 한 시점부터 녀석에 대한 경계를 풀어버렸다. '여자나 후리는 바람둥이란 건 역시 남자에겐 관심 없다는 거겠지.....?' 어제 밤뿐만 아니라 일주일 내내 녀석과 한 침대에서 잔 모양인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고..... 껴안고 자는 것쯤이야 녀석 말대로 추우니까 어쩔 수 없다 치면 지나치게 민감히 반응할 필욘 없다. 남자를 상대로 성욕을 느끼는 변태는 그리 흔치 않을 테니...... '그런데 이 자식, 왜 나한테 살려줬으니 자기 꺼라는 둥 헛소릴 해댄 거야? 파트너가 그렇게 필요했나? 하긴 이런 팔푼이 자식이랑 누가 도둑질하고 싶겠어! 잡히지나않으면 다행이지.....'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70 -티폰- "어떻게.....된 거냐....... 왜..... 빈손이지......?" "폐하.....시신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검을..... ......손에 쥐었다. 이걸로.... 세 번째..... "빈손으로 돌아오면 죽이겠다고 말했다....." 무릎꿇은 사내의 얼굴이 새파랗게 공포로 질려간다.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무표정으로 검을 들어올려 그대로 목을 쳐내 버렸다. 고통조차 느낄 틈도 없이 베어져 나간 머리가 붉은 피를 뿜어대며 바닥을 구른다. 손과 얼굴에 온통 피가 튀어 악귀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들자 눈에 들어오는 건 공포에 몸을 떨며 명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귀족과 병사들..... 머리가 떨어져 나가서도 경련을 일으키는 몸뚱이를 바라보며 주위가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하게 가라앉아 간다. "다시......병사들을 보내라..... 크리올라의 국경에...... 이번에도 시신을 찾지 못하면...... ......모조리 다...... ......죽여버리겠다....." 공포로 굳어버린 시선들을 뒤로하고 차갑게 돌아서 침실로 향했다. 시종들에 의해 무겁게 열리는 침실 안으로 들어서도...... 보이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녀석을.... 감옥에 가둔 이후 한번도 들어와 보지 않은 침실 안엔 썰렁한 기운만이 가득하다. 벌써 일주일 째...... 녀석이.... 내 루베라가.....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가운 물 속에 가라앉아 있을 거란 생각만으로도...... 미쳐버릴 것만 같다. 눈앞에 보이는 술병을 들고 정신없이 목구멍 안으로 들이부었다. "큭...... 결국...... 내 손에 죽어버렸군...... 이젠..... 만족 한 거냐..... 죽을 때까지.......날..... ....원망했겠지.....?!! 죽어서도.....날..... ....잊지 못했겠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서......" 멈출 듯 울려대는 심장소리가 듣기 싫어 미친 듯 웃음을 흘리며 손안에 쥐어진 술을 들이키자 문 저편에서 두려움 섞인 목소리가 흘러들어 온다. "폐하......" 대답도 하지 않고 한참 동안 술만 퍼부어 대자 참기 힘들었는지 문이 열리고 들어서는 건...... 시온...... "당분간...... ....얼굴 보이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고개를 들어 빛을 잃어버린 섬뜩한 눈동자로 노려보자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본다. "큭, 폐하의 하나밖에 없는 루베라가 폐하의 손에 처형당하기 전에 빼내 죽게 했으니...... 당연히 벌을 받으러 왔습니다......" "닥쳐....." "죽이고 나니......이제 시원해?!! 역시...... 사랑했던 게 아니었나....? 그렇게 끔찍한 몰골로......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왜 루베라 따윌...... 듣고있는 거야?!! 죽었다구!! 그 녀석이......하류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어....... 그 잘난 크리올라의 황제폐하 덕분에!!!" "누가..... 죽었단 거냐......" "벌써...... ....잊은 거야? 죽였잖아........!! 그 손으로......!!" "내가...... .....죽여......?!!" 미친 듯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아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바라보니 붉은 피가 묻어있다. "그럴....리가..... 내......루베라가...... ....죽어....?" 거짓말....... 거짓말이다..... 분명...... 내 곁에...... 미친 듯 주위를 둘러봐도 시야에 들어오는 건 텅 비어버린 침실...... "어디 있는 거냐....." "무슨 소리야?!!!" "해가 지면..... 분명 이 곳으로 돌아오라고..... 설마..... 또 숲에 들어간 건......" 손에 들고있던 술병을 거칠게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병이 깨지며 파편이 튀어 손에서 붉은 피가 베어 나온다. "병사들을......" "무슨 소리야?!! 정신차려!!! 죽었다고 했잖아!!!" 거칠게 어깨를 뒤흔드는 느낌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니 눈에 들어오는 건 약간 색이 옅은 붉은 눈동자..... "무슨......" "미치기엔....... ......너무 이르다고 생각지 않아?" "내가...... ...미쳐.....?" 녀석을..... 다신..... 볼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아직..... ....멀었어....." 차갑게 돌아선 시온의 말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천천히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녀석을 진짜 사랑했다면..... 녀석 없이 살아갈 걱정이나......하라구....... 실컷 괴로워하면서....... 간단히 미쳐버리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테니..... 그게....... 녀석을 그렇게 잔혹하게 범하고 죽여버린....... 죗값이니까......." '그 녀석 없이...... .......살라고?' 떨리는 눈동자로 피투성이 손을 들어올려 한참동안 바라만 봤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손만 뻗으면...... 따뜻한 그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는데..... 이젠....... '큭......' 허망하게 쓴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다 다 타버린 잿더미에서 마지막 불꽃이 올라오듯 피처럼 붉은 눈동자에서 광기로 사라졌던 빛이 되돌아온다. '안됐지만....... 난 그렇게 참을성이 많지 않아.... 저승에 있다면........ .....그곳까지..... .....따라가 주지..... 저승의 신이 움켜쥐고 있어도 빼앗아오고 말겠다..... ....반드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모든 게..... 끝나면............ 꼭........' .. -71- 내 벗은 몸을 멍하니 바라보던 녀석에게 옷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샌가 내게 다가와 눈앞으로 뭔갈 불쑥 내미는 녀석의 손에서 까만 옷을 받아들어 펴보니 꽤 깔끔하고 질도 좋을 뿐 아니라 황궁에서 입었던 화려한 옷에 비해 엄청 편해 보인다. 입는 법도 꽤 간편해 대충 바지와 셔츠를 꿰어 입자 유이란 녀석이 다가와 옷매무새를 정리해 준다. "칠칠맞게 옷도 잘 못 입어?" '니놈한테 그런 얘긴 듣기 싫어.....' 소매도 없는 셔츠에 옆구리 쪽에 늘어진 가죽끈을 운동화 끈 매 듯 다 매어준 후 미간을 찌푸리고 내 몸을 바라본다. "너...살 좀 쪄야겠다. 여자 허리만 못하잖아?!!!" '지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현기증이 인다. 다시 풀썩 침대 위로 주저앉으려던 찰라 옆에 있던 녀석이 바로 허리를 감아 일으켜 세우고 약간 드러난 맨 허리를 은근슬쩍 쓸며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며칠동안 굶어서 그래....킥, 죽도 간간이 먹였는데.....뱃가죽이 등가죽에 붙었군...." '죽...? 잠만 잤는데 죽을 어떻게 먹여?' 어쩐지 능글맞은 목소리에 기분이 나빠 온다. "이 씹, 저리 꺼져!!!" 가뜩이나 허기가 지는데 녀석이 말을 마치자마자 골반에 걸쳐진 바지 위로 드러난 아랫배를 쓸어대 성질을 버럭 내며 녀석의 손을 탁 쳐내 버렸다. 겨우 혼자 중심을 잡고 문을 열자 보이는 광경에 그대로 멈춰서 눈만 크게 뜬 채 그렇게 가만히 서있었다. 어쩐지.....집이 좀 작다고 생각했는데 나무 위에 지어져 있었을 줄이야.... 이 세계에 들어와 황제의 숲에서 엄청 큰 나무는 많이 봐왔지만 이 숲의 나무는 그곳보다 훨씬 더 거대했다. 발코니같이 만들어놓은 작은 공간으로 발을 내딛어 주변을 바라보자 주위는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있고 간간이 커다란 나무 사이사이에 조그만 집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키리안 숲이야....." 어느 샌가 뒤로 다가온 녀석이 신기한 듯 주변 광경을 바라보는 내게 말을 던진다. "뮤즈니안 왕국 뿐 아니라 이 대륙에서도 가장 방대한 숲...... 이곳 지리를 모른 채 발을 들이면 몇 날 며칠을 헤매다 죽게 된다고 해서 보통 사람들은 절대 들어오지 않지....." 녀석이 가까이 다가와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가만히 대고 속삭여 왔다. "너도 이곳 지리를 익힐 때 까진 혼자 돌아다니지 마...." 목덜미를 간질이는 녀석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뭐 하는 거야.....떨어져....!!" "습관이라고 말했잖아........그리고 파트너니까....."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친해져야지...." 말이 끝나자마자 팔꿈치로 복부를 찍어버렸다. "윽....." 갑작스런 공격에 작게 신음소릴 내며 뒤로 물러나 여전히 빙글거리며 날 바라보는 녀석을 짜증 가득한 눈으로 노려봤다. "이 씹, 그딴 식으로 친해진다는 게 말이 돼?!!!" "뭐야? 못 믿는 거야? 증거라도 보여줘?!!!" "증거? 놀구있네....무슨 증거?!!!" 바이올렛 눈동자를 크게 드러낸 채 눈을 부릅뜨고 덤비는 녀석을 기가 막히다는 듯 바라보자 갑자기 눈을 빛내며 날 바라본다. "그럼 나랑 내기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니가 한 명 찍으면 내가 너한테 한 거랑 똑같이 해볼 테니까 반응이 어떤 지나 잘 봐둬!!! 만약 내 말대로 그냥 받아주면 너도 앞으로 내가 좀 들러붙는다고 때리지 않기!!!" "이 새끼....내가 애냐? 너랑 그딴 내기나 하게?" "그럼......" 녀석이 가만히 눈을 굴리며 생각하다 퍼뜩 말을 던져왔다. "내가 지면 훔친 거 반이 아니라 70퍼센트, 너 줄게! 어때?" '70퍼센트?' 녀석의 뜻밖의 제안에 흘낏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쩐지 자꾸 녀석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만 같아 찜찜하긴 하지만..... 돈이 걸린다면...... 뭐, 여자라면 몰라도 어떤 사내자식이 이런 걸 좋아할까..... 게다가 녀석이 상대를 찍는 것도 아니고 내가 찍는 거니..... "좋아!!"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녀석이 씨익 웃으며 내 손목을 잡아끌고 튼튼한 나무 줄기로 엮어 만든 사다리로 다가간다. "아래 몇 명 있으니까 내려가자...." 녀석이 먼저 나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하자 뒤따라 조심조심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한참만에 지면을 밟았다. "자, 골라!!" 녀석이 하는 말에 주위를 둘러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식사준비를 하는 아줌마서부터 즐거운 듯 깔깔거리며 물을 긷는 처녀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졸고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제 또래 아이들과 놀고있는 꼬마 녀석들..... 다시 고개를 돌리자 내 또래 소년들과 사내들이 잔뜩 모여 검으로 대련 같은 걸 하고있다. "저 녀석!!!" 유심히 그곳을 바라보다 나보다 2, 3살 가량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녀석을 손으로 가리켰다. 키는 나보다 약간 작고 푸른 머리칼에 남빛 눈동자를 가진 녀석이었다. 굳이 녀석을 꼽은 이유는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외모 때문.... '킥, 분명 몇 대 얻어터지고 오겠지' "빨리 갔다와!!!" 가만히 서있는 녀석을 바라보며 재촉하자 생각과는 달리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본다. "너 약속은 꼭 지키기다!!" "알았어!! 70% 맞지?" "아니...내가 좀 만져도 때리지 않기.....!!" '놀구있네...지고 나서 울지나 마!!' 속마음을 감추고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날 바라보더니 내가 가리킨 방향의 정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72- "야, 어디가!! 저 쪽이라니까!!" 소릴 지르자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한다. "잠깐 목 좀 축이고!!" '킥, 막상 하려니까 긴장 되냐?!!!' 녀석을 계속 바라보자 음식을 준비하고있는 몸집 커다란 아줌마한테 슬금슬금 다가가 쟁반에 받쳐져있던 음료를 홀딱 훔쳐 마시고 뒤돌아 선다. 뚱땡이 아줌마가 놀라 크게 뜬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고 뭐라 말을 하지만..... 내가 서있는 곳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 '뭐....훔쳐 마셨다고 화라도 내는 건가....저 자식....역시 뼛속까지 도둑놈이군.....음료수까지 저따구로 훔쳐 먹냐.....' 다시 내게 다가온 녀석을 의문 가득한 눈으로 올려보자 장난스럽게 눈을 빛내며 내게 말을 던진다. "킥, 눈 크게 뜨고 잘 봐둬!!" 어쩐지....녀석이 마신 음료수의 향인지 짙은 냄새가 코를 찔러온다. 인상을 찌푸리고 녀석을 바라보자 씩씩하게 푸른빛이 도는 머리칼을 지닌 녀석에게 다가가 덥썩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미끄러뜨리기 시작한다. 유이에게 갑자기 안긴 녀석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자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래!! 한방 날려버려!!!' 푸른빛 머리카락을 지닌 녀석이 뒤로 돌아서자마자 이겼다고 확신했는데..... 순간 녀석이 유이를 보더니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자꾸만 늘어붙는 녀석에게 할 수 없다는 듯 안겨 아이 다루듯 등까지 토닥거려주는 광경을 기가 막혀 바라만 보자 유이 녀석이 자기 등을 토닥여주는 녀석을 꼭 끌어안더니 내게 눈을 맞추고 씨익 웃는다. '뭐....뭐야? 저 새끼......' 유이가 떨어져 나가자 안심한 표정을 짓는 푸른빛 머리칼을 지닌 녀석과 의기양양하게 내게 돌아오는 녀석을 혼란스런 눈으로 번갈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때? 내 말이 맞지? 저기 있는 녀석들 다 내 친구야!! 이렇게 해서 친해진 거라구!!" '뭐? 설마.....'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혼란스런 표정으로 녀석을 올려다보자 내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다 째지는 표정을 짓는다. "킥, 왜 이렇게 순진해? 너 황성에서만 살았어?" "뭐...뭐야? 이 새끼, 역시 농담이었......" "당연히 아니지!!! 그러니까 너도 약속 지켜!!!" "그럼...나도 저 녀석들하고 친해지려면 너처럼 해야돼?" 찝찝한 표정으로 녀석에게 되묻자 갑자기 버럭 소릴 지른다. "무...무슨 헛소리야?!!! 니 파트넌 나고 이런 식으로 친해지는 건 내 습관이니까 나한텐 해도 되지만 다른 녀석들한텐 평소 하던 대로 해도 돼!!!"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소릴 지르고 지랄야?' 인상을 찌푸리고 귀를 막자 냉큼 내 손목을 쥐고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디 가는 거야?!!!!" "밥 먹으러....너 배고프지? 누워있을 때도 물이랑 죽만 먹었으니..... 밥 먹고 숲이나 좀 돌아보고 오자....이곳 지리도 익혀둘겸...." 그러고 보니 아사 직전이다. "이 손이나 좀 놓고 걸어!!!" 손목을 비틀며 녀석에게 벗어나려 해도 도통 손을 놓지 않더니 커다란 나무를 베어 만든 듯 한 거대한 테이블로 다가간다. 근처엔 아까 봤던 뚱땡이 아줌마와 몇몇 여자들이 음식을 나르고 있었는데 유이를 보더니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쥔다. "이 빌어먹을 두목 녀석아!! 아침부터 술이나 쳐마........" "헉, 아!!!! 마리, 이 녀석 내 파트너야!! 오늘부터 나랑 같이 지내! 키르, 마리야!! 우리 식사담당...." '식사....담당? 그런 것도 있어? 상당히 터프한 아줌마군......그나저나 두목.....이라니? 이 팔푼이 자식이?!!! 그러고 보니 그 쌍둥이 녀석들도 이 자식한테 두목이라고......' 의심스런 눈으로 유이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날 끌어당겨 마리라는 아줌마 앞에 척 대령하고 내 뒤로 후다닥 숨는다. "뭐? 그렇게 싫다더니 파트너....?!! 방안에 감춰놓고 그렇게 애지중지한 게 이 아이야? 좋은 약이란 약은 다 싸들고 들어가 박혀선 일주일동안 나오지도 않더니....." '무슨 소리야?' 관찰하듯 날 훑어보는 여자를 미간을 찌푸린 채 내려보자 갑자기 내 몸을 여기저기 만져대기 시작한다. '헉...!! 이....이 아줌마가?!!!' "이 씹, 뭐 하는 거야?!!!" 티폰의 침실 시중을 들던 시녀들과 똑같은 부류로 판단하고 버럭 소릴 지르며 뒤로 주춤 물러선 후 사나운 눈으로 노려보자 팔려나온 돼지 값을 매기듯 흥미진진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꽤 괜찮은데? 성깔도 있고....." "그치? 예쁘지? 이제 내꺼라니깐!!" "뭐? 설마 두목, 이 녀석...." "응...." "또 바람기가 도진 거야?!!" "이번엔 아닌 거 같은데?" '뭐야, 이것들 도대체 무슨 말이야?' 잔뜩 경계를 늦추지 않고 두 인간을 번갈아 바라보자 녀석이 빙글거리며 내게 다가와 허리를 끌어안으려고 해 발을 냅따 밟아버렸다. "윽, 너....나랑 약속했잖아!!!!" "응? 참....그랬지!! 미안....내가 건망증이 심해서...." 하얀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전혀 몰랐다는 듯 시치미를 떼자 녀석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다 다시 덥썩 내 몸을 끌어안는다. '이....이 새끼가!!!' 고래힘줄보다 질긴 녀석의 근성을 보고 다시 때리지도 못한 채 이만 부득부득 갈아대는데 옆에서 보고있던 아줌마가 다행히 녀석을 떼어내고 날 끌어당긴다. "왜 그래? 마리!!!!" "싫다잖아!! 두목이 언제부터 싫다는 사람 붙들고 그렇게 매달렸어?" 유이가 내게서 시선도 떼지 않고 말을 내뱉자 마리란 아줌마가 빙글거리며 답한다. "그리고 이 녀석 살 좀 더 쪄야겠어.....이렇게 말라서 일이나 제대로 하겠어?" 날 거대한 나무로 만든 식탁 주변에 둘러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히더니 바싹 얼굴을 들이민다. "너 몇 살이야?" "열 여덟....." "흐응....그럼 두목이랑 동갑이네....." '뭐? 저 자식이랑?!!!' 미간을 찌푸린 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마리를 노려보던 유이를 바라보자 다시 내게 말을 던진다. "배고프지? 잠깐 기다려!! 맛있는 거 잔뜩 내 올 테니까....남기면 죽는다!!" 사람 좋은 인상..... 외모는 전혀 다르지만 어머니와 닮은 듯한....... 즐거워 보이는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자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게 말을 던진다. "왜?!! 내가 그렇게 예뻐?" "응....."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자 옆에서 유이의 비명이 울리고....... 마리가 킥킥대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진짜 귀엽네.....두목 어쩌지? 내가 라이벌 같은데?" "웃기지마!!!!" 비명소리가 숲을 울린다.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73 "먹어.....!!" 잠시 후 내 앞에 놓여진 음식을 가만히 보고만 앉아있자 유이가 맞은 편에서 턱을 괴고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재촉을 해온다. "이걸......다 먹으라구?!!" "응....먹고 있으면 다른 녀석들도 와서 먹을 거야....마리한테 꽤나 잘 보였나 보네...." "근데 여기 있는 녀석들이 다야?" "아니....다른 녀석들은 뭐....한 탕 하러 갔겠지....." "도둑만 있는 게 아니잖아! 마리랑 저 여자들이랑 꼬마들이랑 할배들은 뭐야?" "전쟁 때 이 숲으로 도망쳐 들어온 사람도 있고...귀족한테 억울하게 쫓겨 온 사람....다 제 각각이야...." "그럼 넌?" "응? 난 그냥....심심해서...." "미친놈...." 어쩐지 말하고 싶지 않은 듯 해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돌려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다시 말을 해온다. "여기 있는 녀석들 모두 훔친 건 20%씩 내놔야 해....10%는 이 곳에 있는 사람들 먹여 살리고 나머지 10%는 밖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고....우린 동업이니까 합쳐서 20%씩 내면 돼...." '그럼 실제론 40%씩 나누는 건가?' "언제부터 할 건데?" "킥, 성질 급한데? 안됐지만 넌 멀었어....기술 좀 배우고....무기는 쓸 줄 아니까... 아, 내가 장검 쓰는 법도 가르쳐 줄께....!!" "싫어...." "왜?!!!" "장검은........ 예약돼 있거든.....다른 거 가르쳐 줘..." 잠시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으로 날 바라보다 아무 말 없이 음식만 먹고있자 포기한 듯 다시 말을 잇는다. "알았어. 그럼......뭘로 하지?" "저건 어때?" 머리를 들고 사내들이 몰려 활쏘기 연습을 하던 곳을 가리켰다. "활?" "응...." "왜?" "킥, 로빈훗이면 역시 활이지!!" "로빈훗? 그게 뭐야?" "그런 거 있어.....!!" 대충 얼버무리자 주위에 흩어져 있던 녀석들이 하나 둘 테이블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어? 두목 그 녀석이 두목 파트너라는 신참이야?" "이름이 뭐야?" "키르...." 유이 녀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신 대답을 해준다. "와...!! 사내녀석이 예쁘게도 생겼네!! 꽤 귀여워...." '뭐? 누가 예쁘단 거야? 눈이 썩었냐?'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가는 녀석들을 의심스런 표정으로 잔뜩 찌푸린 채 바라보자 갑자기 유이 녀석이 버럭 소릴 지른다. "만지지마!!" "쳇, 두목은 어쩐 일로 늦잠도 안자고 눈뜨자마자 여자 후리러도 안 갔네? 며칠동안 방안에만 박혀있더니 갑자기 미쳤나? 전부터 좀 이상하긴 했지만.....해가 서쪽에서 뜬 거 아냐?" "닥쳐!!" '저 녀석....여자를 그렇게 밝히나? 그래서 잠꼬대도 그 따위였어?!!' "그나저나 저 녀석 지낼 곳이 없는데? 새로 지어야......" "키르, 너 밥 다 먹었어?" 멍하니 떠들썩하게 식사를 하고있는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벌떡 일어나 소릴 빽 지른다. "키르!!!!!!" '응? 나?' 새로운 이름에 적응 못하고 녀석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자 내 쪽으로 성큼 다가와 손목을 확 끌어당기는 바람에 필사적으로 눈앞에 있는 고기를 냉큼 손에 집어들고 녀석에게 질질 끌려갔다. "밥 먹었으니까 숲에 가자!!" '이 씹, 아직 다 안 먹었어!!!!!' "두목!! 그 녀석 놓고 가!!! 아직 다 못 봤단 말야!!!" "닥쳐!! 밥이나 쳐 먹어!! 쳇, 징그런 자식들....." 뭐라 궁시렁거리더니 기어코 날 끌고 숲으로 들어간다. . . . 도대체 밥을 제대로 먹어본 게 얼만지 모르겠다. 손에 겨우 챙겨온 커다란 고기 덩어리를 계속해서 뜯어먹으며 숲 여기저기를 살펴보자 녀석이 길을 걷다 우뚝 멈춰서 품을 뒤적이더니 작은 물통을 내민다. "이거 마셔....." "응? 뭐야....이건?" 마침 목이 말라 물통을 집어들고 뚜껑을 열자 독한 쓴내가 콧속으로 확 파고든다. "윽, 이거 뭐야?!! 냄새가 이상하잖아!! 썩은 거 아냐?" 인상을 구기며 녀석을 바라보자 갑자기 심각한 표정....... "먹어둬......약이니까..." "약?" 그러고 보니 처음 눈을 떴을 때 녀석이 입안에 흘려 넣었던 엄청 독한 액체인 것 같은..... "이게 무슨 약인데? 이제 안 아파!!" "독기 빼내는....아냐....!! 빨랑 마셔!! 한달 동안 꼬박꼬박 마셔! 누워있는 동안에도 계속 먹었던 거니까...." "싫어....!!" 코를 막으며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물병을 녀석에게 도로 내밀자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이내 킥킥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뭐야? 애들처럼....약 먹기가 싫어? 큭, 전처럼 먹여줄까?" "뭐?"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을 올려보자 냉큼 물통을 받아들더니 자기 입에 다 털어 넣고 눈 깜빡할 새 입술을 덮어왔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혀가 파고들어 목구멍 안으로 쓴 물이 확 넘어오자 입이 막혀 뱉어내지도 못하고 모두 삼켜버렸다. 일을 끝내고도 입안을 구석구석 휘젓고 집요하게 내 혀에 달라붙는 녀석의 혀를 꽉 물어버리려 이빨을 부딪치자마자 지난번에 한 번 당해봐서 그런지 알고 있었던 듯 재빨리 혀를 빼내고 내 치열을 훑어간다. 녀석의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바르작거리자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몸을 흠칫 떨었다. 내 반응에 킥킥거리며 입술에 흐른 타액과 약물을 모두 핥아내더니 녀석이 겨우 떨어져 나갔다. 숨이 막혀 얼굴까지 빨개진 채 헐떡이는데 녀석이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 귓가에 속삭여온다. "큭, 키스할 땐 코로 숨을 쉬어야지.....아직도 그걸 몰라? 귀엽긴 한데 키스하다 죽으면 곤란해....." -74-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분노로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 녀석의 턱을 향해 주먹을 날리자 주춤 뒤로 물러나 피한다. '이 새끼가....!!!' "그렇게 억울하면 다음부턴 제대로 약 먹으면 되잖아?!!" "약? 약 먹이려고 그딴 짓을 해?!!!!" "왜? 편하잖아? 쓰다고 뱉어낼 필요도 없고...." 녀석이 나불대는 걸 죽일 듯 노려보다 순간 손이 허전해 바닥을 쳐다보니..... 고기가 떨어져 있었다. 칠면조 다리처럼 커다란 새 종류의 다리를 훈제한 고기가.... 지금은 배도 안 찼고 엄청 맛있었는데........ 돈줘도 바꾸기 싫을 정도로...... 반도 먹지 못한 음식을......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자 녀석이 실컷 쫑알대다 날 보고 놀란 듯 말을 던진다. "야...야!! 뭐, 그런 거 가지고 울고 그래?" 녀석이 상당히 당황한 목소리로 말을 하며 내게 다가온다. 다가온 녀석이 내 어깨에 손을 뻗자마자 있는 힘껏 복부에 주먹을 박아버렸다. "누가 운다고 지랄야?!!!!" 체력은 딸리지만 아직 실력은 죽지 않은 모양인지 녀석이 작게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자 대뜸 주먹을 들어올렸다. 녀석이 복부를 움켜쥐고 얼굴을 찌푸린 채 다급하게 말해온다. "야....키르!! 너 갑자기 왜 이래?!! 약 좀 먹여준 거 가지고.....!!" "약? 이 재수 없는 자식!! 약을 그따위로 먹여?!! 주둥이 부벼대는게 취미냐?!!" "응!!" 바로 대답을 해오는 녀석을 보고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쑤셔왔다. "너, 진짜 죽고싶어?" "미...미안...." 멱살을 쥐고 흔들자 1초도 안돼 사과를 해오는 녀석에게 기가 막혀 한참을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날 보며 능글맞게 웃던 녀석이 다시 말을 꺼내온다. "이제 됐지?" "웃기지마!!! 저건 어쩔 거야?!!!" 땅바닥에 뒹구는 고기를 가리키며 화가 잔뜩 나 버럭 소릴 지르자 멍한 눈으로 이빨자국이 나있는 고기조각을 바라본다. "뭐?" 녀석이 이해를 못한 듯 되묻자 녀석의 머리 위로 강하게 꿀밤을 먹였다. "악, 왜 이렇게 힘이 쌔?!! 죽었다 살아난 녀석 맞아?!!! 자...잠깐!! 주먹 좀 내려놔! 응? 그렇게 배고팠어? 좀만 참아! 아지트에 돌아가면 저거 먹고싶은 만큼 만들어 달라고 마리한테 말해 줄게!! 응? 화 풀어....!!" "이 빌어먹을 새끼, 또 이딴 짓 하기만 해봐!! 반 죽여놓을 테니까....!!" 팔로 입술을 마구 비벼 닦고 숲길을 걸어가자 녀석이 벌떡 일어나 후다닥 따라온다. "혼자가면 어떡해?!!! 길 잃어버린단 말야!!" 아무 말도 없이 묵묵히 걸어가자 바싹 붙어 이것저것 말을 붙이기 시작한다. "숲에서 길 찾는 거 꽤 어려우니까 잘 봐둬...잃어버리면 큰일 나...." "근데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이 숲길을 계속 따라가면 아지트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테라에 도착해. 뮤즈니안에선 손꼽히는 상업도시야...돈이 많이 모이는 곳이지. 우리 도적단이 제일 많이 드나드는 곳이야..... 뮤즈니안은 의술이 가장 유명하지만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귀족들로도 유명해.... 크리올라와는 달리 왕권이 튼튼하지 못해서 귀족들의 힘이 왕권과 비등하거든....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있는 귀족들이 꽤 많다고..... 그래서 이 나라엔 이런 도적단도 꽤 많아.....우리 말고도....." 왠지 가라앉은 목소리에 녀석을 올려보자 씨익 웃으며 내 머리카락을 흩뜨린다. "뭐...우린 그런 귀족들 뒷통수를 치고 재물을 잔뜩 빼내면서 사는 거지.... 실력만 있으면 재물 같은 건 차고 넘치도록 손에 넣을 수 있어......귀족들 약도 올릴 수 있고...." "그럼, 여기에선 도둑이 돈 제일 많이 버는 직업이야?" "킥, 그럴지도.....크리올라에선 몰라도 뮤즈니안에선 실력만 있다면 아마 그럴 거야..... 실력도 너무 좋으면 목에 현상금이 걸리지만....." "현상금? 그런 것도 있는 거야?!!" "응...." "그럼....너도 걸렸어? 너, 도적단 두목이라며?!!!" "킥, 당연히 걸렸지!! 실력이 좋아서 아직 얼굴까진 들키지 않았어도 키리안 도적단 두목으로 금화 500개...." "금화 500개?" '그게 얼마야? 금화니까 엄청 비싼 건가?' "오늘은 테라까진 가지 않고 우리 아지트하고 테라 중간 정도에 있는 호수까지 갔다 돌아올 거야.... 테라엔......좀 더 이후에 가자. 이 숲의 지리도 다 익히고 너도 이 생활이 적응되면......" "응......"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을 하자마자 갑자기 머리 위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올려보니 엄청나게 큰 까만 뱀이 나무 위에서 은빛 나는 새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숲을 울릴 만큼 커다란 소리로 경고음을 내는 새는 매와 닮아있지만 한 번도 본적 없는 은빛 깃털에 매보다 크기도 좀더 커 보였다. "타니안이라는 새야....키리안 숲에선 거의 볼 수 없고, 크리올라 황성 내에 있는 숲에만 서식하는 샌데......특이하군....." '뭐?' 퍼뜩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겪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분명....저런 새를 본 적이 있었다. 빌어먹을 왕지네를 단번에 채간....... 은빛 새와 비슷하다. "저...저거 위험한 거 아냐? 도와주지 않으면....." 은빛 새를 손으로 가리키는 순간 섬뜩한 소리가 숲에 울려 퍼진다. 놀라 바라보니 어느 샌가 까만 왕뱀이 은빛 새를 덥썩 물어 삼키고 있었다.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황임에도 뱀의 입 속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발버둥치자 나뭇잎과 가지가 요란하게 밑으로 떨어져 내리고 뒤이어 뭔가 작고 하얀 솜뭉치 같은 게 추락해 온다. "뭐야?!!"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하얀 물체를 받아내자 두 손 가득 들어찬 것은 눈도 뜨지 못하고 불안에 몸을 떨며 삑삑 대는 하얀 새끼 새였다. '새끼가.....?' 재빨리 나무 위를 올려봤지만 이미 까만 뱀과 은빛 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핏자국만 선연하게 남아있다. "죽었....어?" "새끼 타니안이야......어쩌지....? 그냥 두면 죽을 텐데....." 손안에서 삑삑거리며 떨고있는 새를 내려다 봤다. 손에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새끼 새는..... 눈도 뜨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어미를 찾고 있는 작은 새는........ 어쩐지..... .......내 자신과 닮아있다. 하얀 솜털에 싸여 제법 어미가 공들여 키운 건지 포동포동 예쁘게 살이 쪄있는 새를 바라보다 유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키울 거야....." "뭐? 하지만......" "그냥 두면.......죽을 게 뻔하잖아....." 녀석이 가만히 날 바라보다 할 수 없다는 듯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며 말을 잇는다. "알아서 해.....타니안은 꽤 까다로우니까 키우기 힘들어....성장이 빨라서 한 달이면 성조가 될 테지만......" "먹이는?" "이 정도 크기면 작은 곤충쯤은 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숲에 길 익히러 올 때마다 벌레 잡아가자!!" "응....." 불안하게 떨고있는 새끼 새를 손으로 감싸주자 한동안 삑삑거리다 잠시 후 조용해진다. "피곤....했나봐...." 조는 건지 작게 숨만 쉬며 움직임이 없는 새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유이와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걷자 드디어 거대한 나무들 사이로 햇빛에 반짝이는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저기가 오늘의 목적지야!! 우리 아지트랑 테라의 중간지점이지....거의 이정표 역할이야...."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나무에 털썩 주저앉자 유이 녀석도 내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예쁘게 반짝이는 호수를 보자 기분이 가라앉아 간다. 녀석과....마지막으로 갔던 곳..... '카메나이......호수라고 했던가........' 멍한 눈으로 호수를 바라보자 옆에 앉아있던 녀석이 날 끌어당겨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귓가에 속삭여온다. "이제....그런 표정 지을 틈도 없을 거야.....한달 동안 도둑들이 사용하는 기술 다 배우고 일 시작할 거니까.....자신 있지?" "응...." '난 하류가 아니야..... 그 때.... 죽어버린 거다...... 그 자식이 집착했던 것들도 모두 사라져 버렸어..... 이젠.... 다른 사람이야....'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 듯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날 꼭 끌어안는다. "정신 똑바로 차려......꽤 힘들 테니까....." -75- 정말..... 녀석의 말대로 한달 동안 힘들게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워갔다. 소매치기처럼 귀족들이 장식하는 보석이나 목걸이, 반지, 팔지를 빼내는 법이나 자물쇠 여는 법, 변장에 벽 타는 법, 활쏘는 법, 말타는 법 등등..... 게다가 유이는 귀족들 파티에 나가면 벌이도 엄청 좋다는 말과 함께 춤추는 법에, 기본적인 예절까지 가르쳤다. 쌍둥이 말에 따르면 녀석은 거의 가면 파티에 나가 여자들에게 빼돌리는 보석의 양이 귀족가를 터는 것보다 더 많았다는 말까지 덧붙였으니..... 녀석이 얼마나 여자를 좋아하는 지 알만 했다. 덕분에 별다른 경계심 없이 한 집에서 이상한 동거를 시작했지만 한없이 만만해 보이는 녀석도 날 가르칠 때면 엄청 엄했다. 자신의 파트너는 자신이 키운다며 모든 걸 철저히 자신의 손으로만 가르쳤다. 부드럽게 아테네식으로 가르친 케레스와는 달리, 유이 녀석은 엄청난 스파르타식이었다. 평소엔 팔푼이 같던 녀석의 모습이 의심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한달 동안 녀석과 함께 지내면서 놀란 것은 단순한 좀도둑인 줄 알고 있던 녀석이 다방면에서 굉장히 뛰어나고 박학다식했다는 정도..... 한 달이 거의 다 되어 대부분의 기술을 습득했을 무렵엔 유이 녀석의 품에서 몰래 금화나 조그만 보석 빼내는 것을 직접 시도했는데 녀석이 알아채면 바로 손목이 비틀렸다. 잘 때를 제외하곤 언제라도 시도해 보라곤 했지만 녀석은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았다. 내 옆에 철썩 들러붙어 퍼질러 잘 땐 엄청 허술한 주제에...... 그리고...... 한달 하고 열흘이 지났을 무렵 밥을 먹고있는 틈을 타 녀석이 품에 숨겨놓은 금화를 겨우 몰래 빼내는데 성공했다. 녀석에게서 훔쳐낸 금화는 물론 내가 접수해 버렸고.... 지금은....... 이곳 생활에도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 . . "흐윽......" 까만 어둠 속에서도 녀석의 붉은 눈동자는 집요하게 날 따라붙는다. 피처럼 끈적하게 달라붙는 빗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려고 고막을 찢어놓을 것처럼 커다란 천둥이 치자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비명을 미친 듯이 질러댔다. 주위를 환히 밝히는 번개에 살기를 띄고 당장이라도 내 목을 비틀어버릴 듯한 잔혹한 표정이 드러나자 끊어질 듯 숨을 겨우 내쉬며 몸을 비틀어 보지만 강한 힘에 억눌려 한치도 벗어날 수가 없다. 녀석의 잔혹한 눈동자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으려던 순간 질척한 피가 끈임 없이 흘러내리는 대검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밤하늘 달빛보다 더 시린 빛을 뿌리는 검으로 시선을 돌리자 망설임 없이 그대로 내 심장에 박아 넣었다. 더 부서질 것도.... 망가질 것도 없는 심장에.... . . .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번쩍 떴다. 공포에...... 두려움에 몸이 떨리고 온몸엔 식은땀이 흐른다. 떨리는 손을 겨우 들어올려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고 왼쪽 가슴을 집어보자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두운 방안에서 혼자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밤은..... 유이 녀석도 옆에 없다. 매번 이런 식이다. 밤에..... 누군가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으면..... 녀석의..... 지독한 악몽이 날 따라붙는다. 결국.....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거다. 루베라를 지워버리고도......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몸을 겨우 일으켜 옷을 대충 꿰어 입고 밖으로 나섰다. 이렇게 악몽을 꿀게 두려워 거의 새벽에 깜빡 잠이 들었는데도 밖은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카만 어둠에 잠겨있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사다리를 타고 지면을 밟았다. 어차피..... 이렇게 지독한 악몽에 시달릴 거면 잠 따위 자고싶지도 않다. 까만 숲 속으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차가운 은빛이 눈앞을 스쳐지나 간다. '피이?' 허리춤에 늘 가지고 다니던 가죽 장갑을 끼고 허공에 작게 소리쳤다. "이리와..." 팔을 내밀자 어둠 속에서 빛을 뿌리며 은빛 새가 튀어나와 내 팔 위에 내려앉는다. 한달 전, 이 숲에서 주워 내가 피이란 이름을 붙여준 새끼 새는 벌써 이렇게나 자라있었다. 처음엔 먹이도 먹지 않으려 하고 기운도 없어 속을 태웠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하얗던 솜털이 떨어져 나가고 은빛 깃털로 갈아입기 시작하더니 4주 째엔 이렇게 숲으로 돌아가 혼자 살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날 닮아있던 작은 새의 눈동자는 티폰과 같은 붉은 색..... 어미새의 눈을 잘 보지 못해 모르고 있었지만 유이의 말에 따르면 타니안은 원래 은빛 깃털에 붉은 눈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성조의 모습은 갖췄지만 아직 다 자라지 않아 크기가 약간 작은 은빛 새를 손가락으로 가만히 쓰다듬자 부리를 비벼온다. 집밖에만 나서면 이렇게 날 따라와 내 주위를 맴도는 녀석은 아무래도 한달 동안 키워준 날 어미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미가 죽은 것을 잊고........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이 자신의 어미와 비슷해 보였던지.... 어떤 때는 사냥한 왕지네까지 내게 잡아다 줘 기겁을 한 적도 있었다. 피이를 다시 날려주고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녀석이 따라오는지 날개 짓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예전에 있던 티폰의 황궁과는 모든 것이 다르다. 한번 움직일 때마다 제약을 받을 필요도 없고 모두 내 눈을 보며 이야기한다. 복잡하기만 한 옷을 입을 필요도 없고 내 몸에 손을 댄다고 죽거나 손이 잘리지도 않는다. 무엇을 하든 자유다. 지금의 난 누구에게도 구속되어 있지 않다. '이런 게 행복.....인가....... 시온이 말하던......행복이란 게 이런 건가.....? 이렇게 자유로운데...... 날 구속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왜 이렇게 죽을 만큼 가슴이..... ......아픈 거야...... 죽었을 때....... 심장이 멈춰버려서 그런 건가........ 그래서.... 병이라도 생긴 건가..... 그럼, 언제까지..... 이렇게 아픈 거지.....? 다시....... 심장이 멈춰버릴 때까지......?' 목적지도 없이 그렇게 한참을 걷다 발이 멈춘 곳은 운 좋게도 유이와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호수..... 호수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자 피이가 지켜주기라도 할 듯 나무 위에 앉아 날 바라본다. 새카맣게 펼쳐진 밤하늘을 올려보았다. 거의 반달이 되어 가는 새하얀 달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멍하니 바라봤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은 어디에서 보나 똑같다. 이곳에서든........ 티폰이 있던 황성에서든...... 하지만....... 녀석도 나도 같은 밤하늘 아래 있는데도 절대 마주볼 수..... .....없다....... Rubera(루베라) #76 자꾸 녀석만을 떠올리는 내 자신이 싫어 머리를 거세게 흔들고 생각을 털어 내 버렸다. 누군가 옆에 없으면 이렇게 불안에 떠는 모습 따윈....... 나답지 않다..... 예전엔...... 혼자서도 잘만 지내 왔는데...... 그새 티폰에게 길들어 버리고, 유이 녀석이 곁에 있는 게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느껴져서다. 그러고 보니 유이는 어제 내 곁에 없었다. 아마도 오늘, 날이 밝아서야 돌아올 거다. 녀석은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 아지트를 나가 다음 날에나 돌아왔다. 어제가 바로 그 날...... 자신의 말론 나 때문에 여자를 꼬셔서 안으러 간다고 뻔뻔스럽게 말해왔지만, 내가 오기 전에도 그런 모양.....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나도 녀석에게 일부러 캐묻지 않았고..... 아지트에 있는 녀석들도 그저 늙으신 부모님이 있나보다.... 아니면 숨겨놓은 자식이라도 있나보다......정도로 추측하고 있을 뿐..... 한달 동안.... 녀석은 질리지도 않고 밤마다 내 몸을 꼭 끌어안고 잠을 잤다. 크리올라보다 추운데다 숲 속이고 녀석의 이불은 유난히 얇아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처음엔 발로 차고 밀고 별 짓을 다해봐도 절대 떨어지지 않아 결국 포기해 버렸다. 잠이 많은 녀석인지 녀석은 거의 침대에 눕자마자 잠을 퍼대 잤고 아침에도 내가 발로 차 침대에서 떨어뜨려야 겨우 내 몸을 놔주고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다. 한 달이 약간 지나긴 했지만 내일은 드디어 녀석이 처음으로 일을 나가자고 제안한 날........ 봐둔 곳이 있다고 했는데....... 실수 따윈....용납할 수 없다. 녀석은 괜찮다고 했지만.....난...... 다른 사람의 짐이 되고싶지 않다. 그걸 위해서....한 달이 넘도록 피나는 노력을 해왔으니까..... 우습게도 이제 도둑질이라면 문제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조상 중에 도둑이 있는 건지 내가 천재인 건지....이 세계가 내 체질인 건지.... 아니면 내 인생을 꽈배기처럼 꼬아놓은 하느님이란 작자가 천직을 도둑으로 내린 건지...... 이젠 유이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품속에서 금화를 빼낼 수 있고 옷에 장식된 보석이나 몸에 걸치고 있는 장식물 따는 일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불행히 변장 솜씨는 꽝이지만 황성 벽을 타고 내렸던 실력 때문인지 스파이더맨 정돈 아니더라도 웬만한 담이나 벽쯤은 쉽게 넘을 수 있다. 이젠 실전만 남았는데...... 다행히도 난...... 실전에 더 강하다. 남이 피땀 흘려 번 돈은 절대 손대고 싶지 않지만 티폰처럼 보석 몇 개 사라진다고 해서 관심도, 눈도 꿈쩍 하지 않는다면 뭐....별 상관없겠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눈을 스륵 감았다. 귓가엔 작은 풀벌레 소리와 조용히 물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부드러운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딪쳐 사락거리는 소릴 내자 조용히 잠이 들었다. . . . 잠결에....... 따뜻한 손이 가만히 얼굴을 감싸쥔다. 얼굴에 와 닿는 숨결이 피부를 간질여 고개를 돌리려 해도 놓아주지 않는다. "으응......" 작게 소릴 내자마자 뜨겁게 입술을 덮어 온다. 장난하듯 살짝살짝 치열을 훑고 입안으로 들어와 나른하게 자극하는 움직임이 너무 부드러워 혀를 약간 움직이자 잠결에도 등에 딱딱히 닿았던 나무에서 몸이 들려 푹신한 곳에 눕혀진다. 약간의 풀 냄새와 풀벌레 소리가 잠깐동안 스치고....... 잠을 자는 와중에도 입가에 와 닿는 따뜻하고 물컹한 물체가 집요하게 들러붙어 미간을 찌푸린 채 무의식적으로 아이처럼 입술로 빨자 낮은 신음이 울리더니 뒤이어 작은 한숨이 귓가를 간질인다. 옷 속으로 들어와 허리와 가슴을 오르내리며 나른하게 쓸어대는 감촉에 수면 위에 떠있는 듯 한 의식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순간..... 피이가 높은 소리로 삐익거리는 소리가 잠깐 스친 듯 해 몸을 움찔 떨자 입안에 침입해 들어온 부드러운 물체가 빠져나가 입술을 핥고 빨다 한참만에 아쉬운 듯 떨어져나갔다. "하아....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해....깨잖아..." 낮게 울려오는 소리가 귓가에 스치지만 잠에 취해 의미를 알 수 없다. 한동안 요란하게 날개짓하던 소리가 잠잠해지고 수면을 방해하던 것이 사라지자 다시 까마득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퍼뜩 눈을 뜨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은빛 머리카락.... '유이....?' 고개를 들자 녀석의 등에 업혀있었다. "뭐야? 너 언제.....?!!" "응? 키르...깼어? 그런데서 혼자 자고있으면 어떡해?!!!!" "혼자....자?" '아까....잠결에 뭔가...... 꿈이라도.......꾼 건가....?' "내려 줘.....내가 걸어갈 거야....." "킥, 그냥 업혀있어....좀 더 자던가...." "싫어!! 빨리 내려!!" 버둥거리며 은빛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목을 조르자 켁켁 거리며 할 수 없다는 듯 내려놓는다. "그 동안 꽤 살 좀 찐 거 같은데? 조금만 더 찌우면 맛있겠어.....킥킥..." "지랄....마귀할멈이냐?" 장난스럽게 입맛까지 다시며 날 바라보는 녀석의 말에 가볍게 받아넘기자 어깨에 자연스럽게 팔을 두른다. "키르...왜 그런데서 자고있었던 거야? 응? 나 기다렸어? 보고싶었어? 난 너 보고싶어서 새벽에 후딱 돌아왔는데...." 볼까지 부벼대며 들러붙는 녀석을 밀어내고 콧방귀를 뀌며 말을 이었다. "니 놈이 언제 올 줄 알고 기다려? 옆에서 코고는 소리하고 잠꼬대가 안 들려서 초저녁부터 실컷 신나게 퍼대 자다 새벽에 잠 안 와서 산책 나온 거야....." 이 녀석의 말은 반 이상 흘려들어야 한다. 진지한 얼굴을 할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농담인 것 같으니..... 그걸 깨닫기 전엔 열내고 난리를 쳐댔는데 지금은 그것도 많이 익숙해져서 이렇게 장난으로 맞받아 칠 정도까지 됐다. 녀석의 말장난에 말려 들어가면 나만 피곤하다.... 어느 정도 스킨쉽도 내가 싫어할 정도로 만져대는 것도 아니고, 약속도 한 거니 받아주는 편이다. 나도 상당한 애정결핍인지 녀석이 피부를 부딪쳐와도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니니...... 가끔씩 귀찮게 하면 스트레스 해소 겸 몇 대 두들겨 주지만 꽤 괜찮은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즐거운 듯 걸어가는 녀석을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그래서? 오늘은 테라로 갈 거야?" "응....." "언제?" "해가 지면.....테라에서 꽤 거부로 소문난 귀족가에서 파티가 있어....가면파티가 아니라 좀 곤란하지만..... 난 원래부터 얼굴은 가리고 다녔고......넌 현장에서 발각만 되지 않으면 괜찮으니까 얼굴은 숨길 필요 없겠다. 가리지 않는 편이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괜찮겠어?" "응....." "킥, 그냥 하면 심심하니까 우리 내기할까?" '하아....또 시작이냐....' 의심스런 눈으로 바라보자 내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키득댄다. "큭, 귀여운 표정.....너무 의심하지마!! 오늘 제일 돈 많이 번 사람이 뭐든 원하는 거 하나 들어주기!! 어때?" "원하는 거?" "응....아무거나...."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녀석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너 그럼 오늘 훔친 거 다 내놓으라고 해도 아무 말 없기다!!" "두말하면 잔소리....." -77- 해가 지기 시작하자 평소에 입던 편한 옷은 모두 벗어버리고 어디서 가져온 건지 티폰의 황궁에서 귀족들이나 입던 화려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크리올라 황궁에서 본 귀족들의 옷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든 황제가 입는 옷이나 루베라의 옷보단 훨씬 입는 법이 간단했기 때문에 대충 꿰어 입고 돌아서자 유이가 마무리를 해준다. "이거...너무 튀는 거 아냐?" 머리색과 맞춘 듯 새하얀 바탕에 금색실로 문양을 넣은 옷을 보고 불만스럽게 유이를 바라보자 내 모습을 여기저기 살펴보고 머리카락을 정리해 준 뒤 살짝 끌어안는다. "우와~ 진짜 잘 어울리네!! 걱정 마!!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벌이가 쉽지!!" "근데 넌 왜 그런 차림이야?!!!" 유이를 밀어내고 녀석이 입은 옷을 훑어봤다. 꽤 좋은 옷 같기는 한데 움직이는 것도 훨씬 편해 보이고 전체적으로 짙은 잿빛이다. 밤에도 꽤나 눈에 띄는 은발을 감추려는 듯 모자까지 쓰는 녀석을 올려보자 빙글거리며 말을 잇는다. "난 사람들 많은 곳은 포기하고 없는 곳을 털 거야....." "뭐? 무슨 소리야?" "킥, 오늘 중요한 내기 걸린 거 잊었어? 아직은 못 가르쳐 줘! 아무튼 어떻게 털든 젤 비싼 거만 털면 돼!!" '뭐야? 이 자식.....' 도둑질하러 가면서 굉장히 즐거워 보이는 녀석을 잠시 바라보자 내 손목을 끌어당겨 밖으로 나선다. "와~키르! 드디어 첫 일이네? 진짜 잘 어울린다!! 왕자님같아!! 근데 왠 귀족복장이야?" 근처에 있던 아리한과 카일이 똑같은 얼굴을 들이밀고 날 훑어본다. "오늘 파티장 털로 가는 거래...." "뭐? 처음부터?" "응...." "두목, 설마 키르까지 데려가서 파티장에서 쓸데없는 짓 하는 거 아니지?!!!" "저기, 키르...두목이 여자랑 키스를 한다던가 침대 위를 구르다 들켜버리면 도와줄 생각 따윈 절대 하지 말고 도망쳐!! 알았지?" 카일이 귓속말로 소근대자 유이가 재빨리 내 팔을 끌어당겨 뒤에서 살짝 끌어안고 살벌하게 말을 꺼냈다. "이 반쪼가리들이 죽고싶어?!!! 누가 그런 짓을 한다 그래?!!" "쳇, 시치미 떼긴...." "뭐야?!!!" 녀석이 눈을 부릅뜨자 언제나와 같이 배짱 없는 쌍둥이 녀석들은 흠칫해선 근처에 있던 마리 아줌마를 보고 후다닥 달아나 뒤에 숨는다. "키르, 잘 다녀와!!" '그렇게 겁나면 왜 게기는 건지.....' 눈만 내밀고 조그맣게 속삭이며 날 바라보는 녀석들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마리가 이쪽을 보고 소릴 지른다. "두목, 키르 잘 챙겨와!! 잡히게 하면 죽을 줄 알아!!!" "킥, 알았어....잡혀가면 감옥이라도 부수고 모셔올께!!" 장난스럽게 대꾸하곤 내 손을 잡아끈다. "인기 꽤 좋은데? 가자! 좀 늦었어...." 유이가 먼저 하얀 백마에 올라타자 옆에 같이 매어둔 갈색 말에 올라타 테라를 향해 출발했다. . . . 한참동안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숲이 끝나고 방대한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 말에서 내려 인적이 드문 곳에 고삐를 매어두고 유이를 따라 마을로 내려가자 보기에도 꽤나 화려해 보이는 마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뭐야? 이건....?" "귀족이 걸어 들어갈 순 없잖아? 이 정도 구색은 갖춰야지.....초대장도 구했고!!" "초대....장? 그런 것도 필요해?" "당연하지!!" "그건 어디서 구한 건데?" "훔쳤어....." '그래....너 잘났다.....' 역시나 도둑놈다운 말투에 기가 막혀 녀석을 바라보자 빙글거리며 내 팔을 끌고 마차 안으로 들어선다. "배운 것 잊지 말고 너무 무리하지마! 어두운 정원엔 될 수 있으면 나가지 말고 무기는 가져왔지?" "응! 근데 정원은 왜?" "술 취한 녀석하고, 순진한 니가 보면 충격 먹을 짓 하는 썩은 귀족들이 많거든....." '순진.....? 웃기고 있네....!! 근데 그게 뭐야?' 가만히 머릴 굴려보다가 황성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감을 잡았다. "여자랑 뒹구는 거?" "뭐?!!!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녀석이 갑자기 소릴 버럭 지른다. '이 새끼....뭘 쳐 먹었는데 이렇게 목소리가 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녀석을 노려보자 대답을 재촉하듯 바이올렛 눈동자를 맞추고 말을 던져온다. "그래서.....? 어떻게 니가 그걸 아는 건데? 설마....너도....." "뭐? 무슨 미친 소리야?!!!!!" 황당한 소리에 얼굴을 붉히고 소릴 꽥 지르자 웃기지도 않게 녀석이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을 짓는다. "그럼?" "봤어...." "어디서?" "황성....." '잡혀서 내가 대타가 될 뻔했지.....' 자꾸만 캐묻는 녀석에게 적당히 둘러대는 동안 그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마차가 멈춰서고....... 뭔가 더 할말이 있는 듯한 녀석을 남겨두고 마차에서 내려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뒤따라 나온 유이가 초대장을 내밀며 가만히 날 바라본다. "무리하지마....알았지? 저 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린 모르는 사람이야...어차피 안에선 보기도 힘들 테지만..... 초대장 내고 넌 홀 안으로 들어가...난 다른 곳으로 갈 테니까....시간은 자정까지.....잊지마..." "알았어! 가자!!" "그리고....." "응?" "내기 잊지마.......!!" -78- 초대장을 내고 거대한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유이와 떨어졌다. 유이는 정말 사람들이 없는 곳을 노릴 작정인지 정원을 가로질러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난 눈부시게 화려한 빛이 쏟아지는 저택의 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파티란 건..... 티폰의 황성에서도 자주 있는 모양이었지만 이렇게 눈으로 본 것은 처음..... 거부의 저택이라더니 규모도 엄청나 생각보다 훨씬 많이 모여든 귀족들을 무리 없이 수용할 수 있는 방대한 홀을 가지고 있었다. 넘쳐날 정도의 음식과 음악, 화려한 사람들..... 유이에게 말로만 듣던 것보다 화려한 광경에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 즐거운 듯 주위를 스쳐 가는 사람들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귀족이나 높은 사람들은 역시나 과시하길 좋아하는 족속들인지 반지, 목걸이, 팔지, 브로치에서 허리장식과 머리장식, 드레스에 달린 갖가지 보석들이 즐비했다. '씹, 이거 다 훔치면 이만한 저택 하나 짓겠군.....' 혀를 끌끌차며 천천히 사람들을 가려내기 시작했다. '장식이 적은 사람은 패스.....착하게 생긴 사람도 패스.....루비도 패스......' 대충 추리자 남는 건 눈에 띄는 몇 명...... 목걸이고 반지고 숫자에 상관없이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사람과, 한 눈에 봐도 더러운 성격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는 사람, 남의 음식을 뺏어먹었는지 살이 왕창 쪄서 보기에도 둔해 보이는 사람, 부잣집 늙은이, 사치가 몸에 베어버린 귀족가 아가씨........ 추리고 추려 대상을 최소한으로 좁혔다. 시간을 많이 끌수록 발각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우선 대상을 물색하고 한 명씩 접근을 시도했다. 다행히 주변엔 사람도 많으니...... 우선 저 뚱땡이 아저씨부터...... 살짝 스쳐지나가면서 육중한 몸에 하나 없어져도 눈치도 못 챌 만큼 과도하게 장식한 보석들 중 가장 큰 녹색 에메랄드를 떼어내 품속에 감췄다. '킥, 살집 때문에 감각도 둔해졌나보군......' 보석 하나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여자들에게 다가가 떠들어대는 사내를 보고 속으로 살짝 웃으며 차례차례 목표물로 다가가 흑진주, 사파이어, 아쿠아마린, 호박, 토파즈, 에메랄드.... 크기가 큰 보석이란 보석은 모두 쓸어 넣었다. 손을 직접 대지 않으면 안돼는 목걸이나 반지보단 브로치나 팔지, 옷에 붙은 장식을 중심으로 모아가자 마지막으로 남은 건 제일 눈독들이고 있던 다이아 반지..... 손가락에 끼고있는 만큼 빼내기도 쉽지 않고 사라지면 눈치도 쉽게 챌 터...... 훔칠지 말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시선이 자꾸 느껴지기 시작한다. '예쁜 아가씨들 시선은 환영인데 말야......시커먼 사내새끼들은 뭘 보고 있는 거야?!!' 미간을 찌푸리고 옅은 잿빛 눈동자를 들어올리자 노골적으로 바라보는 몇몇 시선을 제외하곤 후다닥 시선을 피해버린다. '젠장, 이러다 첫날부터 들키는 거 아냐? 씹, 저것만 훔치면 내기는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자꾸만 다이아 반지로 향하는 눈길을 겨우 돌려 말이라도 걸려는지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반대편에서 작은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빌어먹을.....벌써 눈치챘나.....?' 소란의 중심에서 사파이어를 빼냈던 늙은이를 발견하자마자 발길을 정원과 연결돼 있는 발코니로 돌렸다. 예상대로 소란이 점점 확대되어가고 발코니에 나오자마자 홀과 외부를 잇는 육중한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하자 돌아보지도 않고 발코니에서 뛰어내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정원으로 발을 들였다. '결국은 또 들어와 버렸군.......'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쩌지.....? 담을 넘어야 하나.....' 몸을 바짝 숙이고 주위를 둘러보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저 멀리서 희미하게 은발이 눈가를 스친다. 엎드려있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유이?" '저 자식도 여기로 숨어들어 왔나?' 살금살금 다가가 눈으로 확인한 광경에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버렸다. 확실히 엎드려 있는 녀석의 머리카락은 은발이었지만 유이의 머리색보다 훨씬 탁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따위 사소한 게 아니었다. 사내 혼자 뿐인 줄 알았는데 녀석의 밑엔 하얀 나신을 그대로 드러낸 여자가 깔려있었고, 그것보다 더 경악한 건 그 둘이 한창 행위 중이었다는 것...... 처음 본 여자의 나체에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사내의 손에 쥐어져 터질 듯 부푼 하얀 가슴과 부러질 것처럼 가는 허리.... 그리고 사내가 피스톤질을 해대는 연결부위는 확실히 사내끼리 몸을 섞는 것과는 다르다. 처음 보는 남녀의 충격적인 정사를 보면서도 마음은 자꾸 가라앉기만 한다. '저게......정상적인 거겠지......' 역시...... 정상적인 관계 속에서만 사랑이란 것도 나오고 그 결실로 아이라는 것도 태어나는 거다.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는...... 구속과 집착만을 불러일으키는 거다. 사랑이란 건...... 만들어 낼 수 없는 거다. 나와....... 티폰처럼....... 숨죽인 신음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절정에 오른 사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무가치하게 내지른다. 티폰은..... 한번도 내게 저런 말을 해 준 적이 없었다. 날 안을 때조차도 저 사내처럼 쾌락에 내지르는 거짓된 사랑고백도 하지 않았다. "뭘 훔쳐보는 거야? 이 꼬마가!!!" 갑자기 뒤에서 내리누르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품에서 단도를 꺼내려하자 재빨리 손을 막고 내 몸을 돌려 눕힌다. "나야...." "유이?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너야말로 여기서 뭘 보고 있는 거야?!! 여긴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 "숨을 곳이 여기밖에 없으니까 그렇지!!! 빨리 내려와!! 무겁잖아!" 최대한 숨을 죽여 소근대자 내 허리에 올라 탄 녀석이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날 내려보더니 재빨리 몸을 숙여 내 몸을 덮쳐 누른다. "쉿, 조용해!! 사람 온다!!" 인기척이라곤 옆에서 들려오는 신음뿐인데 어처구니없는 능청을 떨어대는 녀석을 밀쳐내려 하자 귓가에 입술을 대고 조용조용 속삭여 온다. "많이 훔쳤어?" "빨리 비키기나 해!!!" "하아....저 사람들 보니까 덮치고 싶은데 어쩌지....?" "이 새끼, 쓸데없는 농담하지 말고 빨리 비켜!!!" "농담 아냐...." 갑자기 입술을 덮어오는 녀석에게 놀라 눈을 크게 뜨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진지하게 눈을 감고 있는 녀석의 하얀 얼굴.... 살짝 감고있는 은빛 속눈썹이....... .......예쁘다. 넋이 나가 녀석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밀어내려던 찰라 일을 다 끝마쳤는지 옆에서 나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크리올라의 하르바르트 황제가......... ............미쳤다더군....." Rubera(루베라) #79 '뭐....?!!!' "어머,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런 소문은 없었는데....." "그게.....미쳤다기보단.....전보다 더 잔혹해 졌다는 소문이야....미쳤다고 할만큼..... 귀족들도 두려워서 황제의 눈치만 살피고.... 조그만 실수에도 가차없이 목을 베어버린다더군.....어쩌면.....또 전쟁을 일으킬 지도 몰라...." "그런.....이제 이 대륙에 남아있는 나라는 크리올라와 뮤즈니안 뿐인데.....게다가 동맹국이잖아요?" "동맹쯤이야 크리올라 제국 황제가 깨뜨리면 무용지물이야..... 아무리 뮤즈니안이 대륙에서 두 번째로 가는 나라였다지만....... 거의 2년만에 3개 나라를 괴멸시켜 흡수해버린 괴물 황제가 있는 크리올라엔 못 당한다구......" "갑자기 왜....." "글쎄......" "소문대로......그렇게 잔혹한가요? 확실히 붉은 눈동자와 머리칼은 섬뜩하긴 하지만 정말 멋졌는데...." "여자들이란.....크리올라 황가의 핏줄만 아니었다면 전쟁을 일으켜 죽인 사람들의 피를 마시고 그렇게 붉은 머리칼과 눈동자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잔혹한 황제야....... 크리올라 내에선 신이라 칭할 정도로 대륙의 정점에 서있지만 전쟁당시 다른 나라엔 피를 부르는 악마라고 알려져 있었어... 게다가 듣지 못한 거야? 대죄를 지어 황제가 직접 죽이려 했던 루베라가 탈옥해서 비참하게 황제의 눈앞에서 죽었다는 소문......죽기 전에도 지하감옥에서 끔찍하게 고문을 해댔다더군..... 듣기엔 침실상대였던 모양인데......손톱만큼의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나봐.....살까지 섞은 상대를....." '침실.......상대....?' "그런......아무리 죄를 지었다지만 자신의 손으로 루베라를 새겨준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사랑 때문에 새긴 루베라가 아니었나봐요.....?" '그래....사랑 따윈..... 하지 않았어.......... 나도.... 그 녀석도....' "크리올라 제국 황제에게 사랑이라니.......말도 안돼.....모두 인간이 느끼는 감정 따윈 없는 황제라고 말한다구.... 그래도 좋다고 귀족들은 자신의 딸을 황제에게 바쳐서라도 왕권을 나눠 받으려 발버둥치고 있어...... 뭐라 해도 이 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황제니까...... 최근엔 죽어버린 루베라라도 대신 하려는지 황비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나봐....." '황...비.......?' 심장이...... 다시...... ........아프게 뛰어온다. '왜.....내가.....? 상관없는 일이었을 텐데.......' "후보도 엄청난가보던데......가장 유력한 건 역시 미르헨가야....." "황태자 시절 황제의 약혼녀였던 미르니안이란 아가씨 말이죠?" "그래......황제가 직접 선택했다 하더군....." 귀를..... 막아버렸다. 더 이상 듣고싶지 않다. 그 녀석의 얘기 따윈..... 눈물이..... 볼을 따라 흐른다. 꼴사나운 모습....... 단순히 화가 나는 것뿐이다. 난 이렇게도 녀석에게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날 그렇게나 망가뜨려 버리고 간단히 잊은 채 결혼 같은 걸 해 버리는 녀석이...... .......증오스러운 거다. "키르......" 정신을 차리고 올려보자 녀석이 바이올렛 눈동자로 날 내려보다 하얀 손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니가 누군지......잊지마....." "내가.......누구.......?" 난...... 이제 하류가.... ......아니다...... 황제의 루베라도...... 이것도 내 감정이 아닌데...... 왜 나와 관계없는 일에 화내고 슬퍼하는 건지....... 차라리..... 전처럼 녀석을 싸그리 잊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류의 기억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되는 건....... 너무...... 괴로워서..... "그만...가자.....키르...." 내 위에서 몸을 일으켜 손을 내미는 유이를 바라봤다. 그 손이..... 티폰의 손과 겹쳐 보여 혼자 힘으로 자릴 털고 일어섰다. 이 세계에서..... 하류라는 녀석은 갈 곳이 없다. 아무 곳도..... 잔인한 황제가 있는 곳밖에...... 녀석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다..... 다시 녀석의 손에 비참하게 죽으러...... 난..... 내가 있을 곳은..... 키리안 숲에 있는 아지트다...... 정신을 차리고 서늘한 느낌에 내려보자 앞섶이 다 풀려 하얀 피부가 드러나 있다. "이 빌어먹을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 정신이 팔려있는 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목덜미가 따끔거리고 하얀 피부엔 붉은 자국이 여기저기 새겨져 있었다. "킥, 중요한 순간에 한눈 팔고 있으니까 그렇지!!!" "이 새끼, 이게....무슨 짓이야?!!! 키스까지 하고....너 여자가 더 좋다며?!!" "쉿, 조용히 좀 해!!! 우선 나가고 보자!!" 앞서가는 녀석을 죽일 듯 노려보며 담을 넘어 유이가 대기시켜놓은 마차에 올라탔다. "이 새끼, 너 아까 그게 무슨 짓이야? 여자한테만 그러는 거 아니었어?!!" 마차 안에 들어서자마자 멱살을 쥐고 소리치자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빙글거리기 시작한다. "뭘 그런 거 가지고 그래?!!! 친구끼리...." "니 놈은 친구끼리 그딴 짓 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왜 안 되는데?" "뭐? 이게 미쳤나....!!" 눈을 부릅뜨고 노려봐도 꿈쩍도 하지 않고 내게 다가와 귓가에 속삭여 온다. "아주 친하면 서로 손으로도 해 줄 수 있는데....." "무슨 헛소리야?" 미간을 찌푸리고 녀석을 바라보자 김빠진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날 바라본다. "하아.....너무 순진한 것도 미치게 만드는군....제발 좀 알아들어.....!!" 녀석이 갑자기 날 쓰러뜨리고 이미 헤쳐진 상의 때문에 드러난 상체에 부드럽게 키스를 하면서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아랫배를 지분거리다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오자 그제야 녀석이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화들짝 놀라 녀석의 팔을 움켜쥐었다.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낮은 목소리로 씹어뱉듯 말하자 귓가에 따뜻한 입김이 맞닿고 아랫배 위에서 멈춰버린 손이 데일 듯 뜨겁다 "말했잖아....친구라도 욕정 정도는 풀어줄 수 있다고.....기분 좋게 해줄께...." '기분.......좋아.......?' "너도......"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입술로 지분대던 녀석이 싸늘한 목소리에 멈칫하고 몸을 굳힌다. "즐기려고 내 몸에 이런 짓 하는 거냐....." Rubera(루베라) #80 "너도...... ..........즐기려고 내 몸에 이런 짓 하는 거냐....." 말이...... .......없다....... "이딴 건......여자한테나 가서 해......" 차갑게 내뱉자 한참동안 움직임이 없더니 가만히 옷안에서 손을 빼내고 내 몸을 꼭 안아온다. "미안........" "비켜....." 듣지 못한 듯 더욱 쌔게 끌어안자 숨이 막혀온다. "즐기려고 이러는 거....... .....아냐......" 의아함에 고개를 돌려 바라봐도 은빛 머리카락만 보일 뿐 녀석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사실........" 심각한 목소리에 녀석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내 위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킥킥대기 시작한다. "이것 좀 나눌려구!!!!" "이.....이 좀도둑 새끼, 그건 도대체 언제.....?!!!!" 품속에 넣어뒀던 보석 중 몇 개가 녀석의 손에 고스란히 올려져 있었다. '날 속였어.....?!!!!' "나 하나밖에 못 훔쳤단 말야!! 응? 나 좀 나눠주라" "이 새끼, 지랄마!!!!" 어처구니없는 녀석의 행동에 화를 버럭 내며 아직도 내 몸을 내리누르고 있는 녀석을 발로 확 걷어차 버리자 푹신한 시트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으윽, 허리 삐었나봐......."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일어날 생각도 않는다. "아야야.....키르, 너........너무 한 거 아냐? 나 밤일 못하면 니가 책임 질 거야?!!!! 아니지.....책임져주라!! 응?" "놀구있네.....내가 왜 니깟 놈을 책임쳐?!! 한다는 생각이 도둑질 못할까봐 겁나냐?" "아니....그 쪽이 아닌데....." "그 쪽?!!"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자 녀석이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어댄다. "하아.....너랑 말을 말아야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있는 녀석을 가만히 찌푸린 채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엄살 그만 부리고 훔친 거나 내놔봐!! 씹, 내가 이기면 훔친 거 다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겨우 하나밖에 못 훔쳐?!!!" "그래도 좋은 거란 말야....." 투덜거리면서 녀석이 품속에서 꺼내놓은걸 보고 한동안 말을 잊었다. 분명 다이아몬든데 푸른빛을 띄는 블루 다이아몬드...... 크기도 아이 주먹만하고 투명도도 최상급이다. "이걸.....도대체......" "큭, 이게 그 귀족가의 가보야.....집안 깊숙이 숨겨져 있던 금고를 털었지....." 확실히..... 내가 훔친 게 양은 월등히 많지만 가치로 보면 녀석을 이길 수 없다. 마지막에 노렸던 다이아반지를 빼내왔으면 몰라도...... '젠장, 이 자식.....이런 걸 훔치고도 내 걸 달라고 해?!!!' 빙글거리며 바라보는 녀석의 낯짝을 쏘아보자 결국 듣고싶지 않은 말을 꺼낸다. "내기는 내가 이겼으니까 약속 지킬 거지?" '빌어먹을 자식.....' "말해....." '이 새끼, 내 꺼 달라고 하기만 해봐!! 반쯤 죽여놓을 줄 알아!!!' "나랑 갈 데가 있어...." "응?" 어쩐지 예상과는 다른 말에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어딘데?" "가보면 알아.....꼭 들어주기다!!" "씹, 알았어......!!" 결국 내일 꼭 가야한다고 우기는 녀석의 말에 별 수 없이 숲으로 돌아가지 않고 테라에 있는 여관에 방을 잡았다. 몸을 씻고 침대 안으로 기어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도 욕실에서 몸을 씻고 나와 내 옆에 눕더니 언제나처럼 내 몸을 끌어안는다. 녀석이 돈이 없다고 바득바득 우겨 결국은 1인실로 잡았지만.......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올라 녀석을 밀쳐버리려던 순간 목덜미에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눕자마자 자는 건 여전했지만 꽤나 피곤한 표정에 들어올렸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버렸다. 한참동안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다 눈을 감자 느껴지는 건...... 티폰과는 다른 체향과...... 티폰과는 다른 심장박동....... '그 녀석.......정말 결혼....하는 건가........ 그럼....새로운 황비한테도......... 루베라를 새겨 주겠지......? 나와는........ 다른 의미로.......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유도 알 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깨를 가늘게 떨며 숨죽인 채 흐느끼자 유이가 갑자기 뒤척이다가 내 몸을 꼭 끌어안는다. 놀라 녀석을 올려보자 잠이 깨지 않았는지 눈을 감고 고른 숨만 내쉰다. "뭐야......잠이나 자는 주제에......" 위로하듯 안아주는 녀석의 품속에서 투덜대며 멈추지도 않는 눈물만 흘린 채 눈을 감았다. . . . 눈을 뜬지 한참이 지나도 내 몸을 부둥켜안고 잠만 퍼대자는 녀석을 견디지 못하고 냅따 발로 걷어차 버리자 어김없이 침대 아래로 요란하게 굴러 떨어져서야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뜬다. "하아.....키르....좀만 더 자자.....응?" 아직도 잠이 덜 깼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하는 말에 버럭 소릴 질러버렸다. "지금이 몇 신지나 알아?!!! 이 자식, 아침이 한참 지났잖아!!! 오늘 갈데 있다고 난리 친 게 누군데!! 씹, 내기고 뭐고 그냥 숲으로 돌아갈 거야!!!" 벌떡 일어서자 화들짝 놀라 내 다리를 붙들고 늘어진다. "헉, 알았어!! 가자!! 지금 가면 되잖아!!" "도대체 어딜 간다는 거야?" "가보면 알아....!!" 결국 할 수 없이 녀석의 손에 이끌려 숲에 매어둔 말을 타고 어딘가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지트로 가는 길과는 완전 반대방향...... "뭐야? 키리안 숲에 들어가는 거야?" "응....." 같은 숲이라도 이 키리안 숲은 너무나도 방대해 어느 곳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곳이 나온다. 숲에서 오래 살았던 도둑들도 숲 중심부까진 들어가 보지도 못했을 정도니..... 녀석을 쫓아 말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따가운 아침햇살을 가리며 위에서 잠깐 그림자가 졌다 사라진다. "피이?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야?" 올려다본 곳엔 은빛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 여유롭게 따라오고 있는 피이가 보인다. "저 녀석.....어제 밤부터 말을 매어둔 곳에 있었던 모양인데....?" "쓸데없는 짓을......돌아가!!!!" 하늘을 올려보며 소릴 질러도 머리 위를 맴돌 뿐 돌아갈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소용없어.....그냥 가자!!" 할 수 없이 재촉하는 유이를 따라 피이까지 달고 숲의 북쪽으로 말을 달렸다. 한참동안 그렇게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숲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저택...... 숲 속에 지어진 집치고는 꽤나 크고 깔끔하다. "여기가....어디야?" "뮤즈니안 왕국 최고의 의사가 숨어사는 곳....." Rubera(루베라) #81 "의....사?" "응....룬이라는 녀석인데....." "룬.....? 갑자기 의사는 왜?" "우선 들어와....의사라기보단 거의 연금술사에 가깝지만......뭐, 약간 맛이 갔으니까 이상한 짓 하더라도 이해해...." "맛이.....가?"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유이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뒤따라 들어간 곳엔 약품인 듯한 냄새가 코를 확 찌른다. 그리고..... 음침하고 어두운 복도를 걸어 몇 개나 되는 문을 지나쳐 도착한 곳은 저택의 가장 구석에 있는 방...... 음습한 집안 분위기가 기분 나빠 유이의 등뒤에 바짝 붙어 방안으로 들어서자 인기척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있는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약간 큰 키에 허리까지 늘어진 남빛 머리카락을 아무렇게나 동여매고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사내를 보더니 갑자기 유이 녀석이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대곤 슬금슬금 뒤돌아선 녀석에게 다가가 소릴 버럭 질렀다. "왁!!!" 와장창....... "헉.....!!" "크하하하하하하......." '수준 낮은 놈......' 애새끼 같은 장난에 기가 막혀 바라보자 남빛 눈동자를 일그러뜨리고 녀석이 돌아선다. "이 도둑 새끼!!! 여긴 또 왜 왔어!! 죽고싶어?!!! 한달 동안 매달린 실험을......!!!" 흘끗 바라보니 나무로 된 책상엔 여러 가지 약품들이 방금 유이 녀석의 장난 때문인지 엉망으로 깨진 채 흐트러져 있고...... 진짜로 죽이려는 듯 유이 녀석의 목을 양손으로 강하게 움켜쥐자 배꼽을 쥐고 웃고있던 녀석이 갑작스런 공격에 피하지도 못하고 괴로운 듯 켁켁대며 버둥거리다 내게 다급한 눈빛을 보내온다. '뭐야.......도와달라고....?' "................." '그냥 죽어....' 영화관람을 하듯 바라보기만 하자 얼굴까지 새빨개져 켁켁댄다. "그럼, 금화 30개....."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진짜 죽을 것 같은지 바로 머리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고개를 끄덕여댄다. '뭐야.....더 부를 걸 그랬나.....?' "컥......키르....!!" '씹, 좀만 기다려...........' "............" 한참을 고민하다 녀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갈 때 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알았어.....빗나가도 책임 안 진다!!"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날리자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두 녀석의 얼굴 사이를 지나쳐 벽에 박힌다. 잠시 후....... 유이 녀석은 벽에 들이박힌 단검을 보고 잔뜩 얼어 굳어버렸고 남빛 머리칼의 녀석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그제야 날 발견한 듯 가늘게 뜬눈으로 내 쪽을 바라본다. 빛도 보지 못했는지 백짓장같이 하얀 피부에 날카로운 콧날, 남자다운 입술선...... 나이는....... .......스물 다섯 안팎........? "물러서....." 귀찮다는 듯 말을 던지자 의외로 쉽게 손을 풀고 켁켁거리며 숨을 토하는 유이에게 말을 던진다. "니꺼냐?" "아직....." "어쩐 일로? 손만 빠른 녀석이....?" "닥쳐!! 그나저나 이 자식 감히 날 죽이려고....!!!" "지금은 일개 도둑이잖아......억울하면 그 짓 그만 두던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여대는 녀석들을 찌푸린 표정으로 바라보자 유이 녀석이 휙 돌아서면서 쨍알대기 시작한다. "키르, 너 나까지 죽일 셈이야?!!! 어떻게 단검을 그렇게....!!" "살려줬잖아!! 닥치고 금화나 내놔....." "너.....!! 내 목숨보다 금화가 더 중요하단 거야?!!!" "당연한 걸 뭘 묻고 지랄야?!!" 관심 없다는 듯 인상을 쓰며 퉅툴대자 눈에 띄게 분노해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확 표정을 바꾸고 빙글거린다. '저 자식, 또 무슨 지랄을 할려구......' 거의 두 달 가까이 같이 지내서 그런지 이제 표정만 봐도 속셈이 뻔히 드러나 보인다. "너 자꾸 그럼 밤에 잘 때 확 덮쳐버린다!!" "놀구있네.....눕자마자 자는 새끼가......그딴 짓 하면 밤에 잘 때 확 잘라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헹, 이 새끼야......이제 안 속는다' 단박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녀석을 비웃음을 띈 채 바라보자 옆에서 킥킥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큭, 아직까지 손대지 못한 이유가 그거냐?!! 잘릴까봐?!! 풉.....크하하하!! 천하의 바람둥이 자식이 제대로 걸렸군..." "닥쳐!! 그것 때문이 아니란 말야!!!" "하하.....또 뭔가 있는 거냐?!!!! 저 녀석 진짜 웃기잖아!! 나한테 주면 안돼? 내 실험체 좀 되주라!!" '뭐? 미친놈이 무슨 헛소리야?' "이 미친 자식!! 이 녀석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댔다간 여기에 확 불질러버릴 테니까 알아서해!!!" 갑자기 유이 녀석이 눈을 부릅뜨고 악을 바락바락 써대는 게 기가 막혀 바라보자 룬이라는 자식이 여유 있게 바라보며 눈을 반짝인다. "흐응~ 그렇게 좋으면서 손도 못 댔단 말이지....?" 어쩐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유이 녀석을 번갈아 바라보는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갑자기 어지러운 서랍을 여기저기 뒤지더니 조그만 병에 들어있는 푸른 빛 나는 액체를 꺼내든다. "이거 만든 진 한참 됐는데 실험대상이 없어서 못써봤거든....? 킥, 한번 써볼까....?" "이....이 미친 새끼, 그...그건?!!!!" 갑자기 눈에 띄게 당황한 유이 녀석이 말까지 더듬어대며 룬에게 손가락질을 하자 녀석이 기분 나쁜 미소를 입에 걸친다. "큭, 이 도둑 새끼, 내 약 또 훔쳐간 거냐? 그럼 효과도 알고 있겠네....?" "이...이 자식!! 그거 쓰면 죽여버릴 줄 알아!!!" "죽이는 거 좋아하시네!! 오히려 고맙다고 절을 해도 모자랄걸? 효과는 확실할 테니....천천히 즐겨봐....." "닥쳐!!" 유이 녀석이 룬에게 달려들려는 순간 녀석이 내 쪽으로 병을 확 집어 던졌다. 바닥에 파삭 하고 깨져버리는 병을 멍하니 바라보자 유이 녀석이 기겁을 하고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더니 내 허리를 끌어당기는 통에 헉 하고 숨을 들이키는 순간 콧속으로 강한 향이 파고든다. "키르!! 숨쉬지 마!!!" "응? 왜?"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올려보자 입과 코를 막은 채 난감한 눈으로 날 내려본다. "이런, 젠장....!!" "그럼, 난 잠이나 잘 테니까 효과 확인하면 깨우러와.....한참 걸리겠군....여섯 번 정도면 될 거야....." 문을 열고 나가려는 녀석을 보고 유이가 죽일 듯 노려보며 창을 모두 열더니 소릴 꽥 질러댔다. "이 새끼, 해독제 어딨어?!!! 너 죽고싶어?!! 이 미친놈이!!!" "뭐야.....너는 안 들이마신 거냐....해독제는 방안에 있으니까 알아서 해! 그것보다 그 녀석부터 해결해 줘야 하는 거 아냐? 꽤 많이 들이마셨나 본데....킥, 나중에 감사하라구....." 문을 닫고 사라져버리는 녀석을 쫓아가려는 유이 녀석을 보고 다급하게 팔목을 붙들었다. 몸이...... ......이상하다. 데일 듯 뜨겁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닥으로 가라앉자 유이 녀석이 놀라 크게 뜬 눈으로 날 바라본다. "너....." "하아......이거....뭐...야?" 귓가에 울려오는 숨소리가 이상하게 야하다. 떨려오는 몸에 겨우 손을 들어올려 내 어깨를 끌어안는 순간 민감해진 피부에 놀라 흠칫 손을 떼어냈다. 얇게 입은 옷의 촉감조차도 느낄 수 있다. 움직이지도 못한 채 가쁜 숨을 내쉬며 겨우 고개를 들어 흐린 눈으로 유이를 바라보니 크게 뜬 눈으로 멍하니 날 바라보다 재빨리 머리를 흔들고 수십 개나 되는 서랍을 요란스럽게 뒤지기 시작한다. "젠장, 어디에 둔 거야?!!!!" "하아.....유이....흑......" 손에 걸리는 건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지며 깨부수던 녀석이 다급한 내 목소리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본다. 겨우 떨리는 손으로 책상을 짚고 일어서자 황급히 녀석이 내게 다가온다. 온몸을 휘저어대는 열기에 정신이 확 나가버렸다. 유이 녀석이 다가오더니 불안하게 겨우 서있는 날 보고 얼른 손을 뻗어 허리를 감아 내 몸을 지탱해 온다. "조금만 참아....그 미친놈이 최음제를 써서.....꽤 독한 거니까...." "아....하아.......유이.....어떻게 좀......해줘......" 뜨거운 호흡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가자 흔들리는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82- 녀석과 맞닿은 몸에서 지독한 쾌감이 온몸을 타고 오른다. "으응....아....."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고 헐떡이며 손에 잡히는 옷깃을 꼭 움켜쥔 채 몸을 밀착시키고 신음을 흘리자 흔들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던 녀석이 바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덮어왔다. 입술이 닿은 것만으로도 머리를 확 비우는 쾌감이 온몸을 휘감아 미친 듯이 매달렸다. 기교도 없이 맞닿은 입술을 정신없이 빨아들이고 감아오는 혀를 이로 살짝 깨물고 핥자 녀석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내 몸을 지탱하고 있던 녀석에게 매달리자 내 허리를 쥔 채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린다. 뒤로 넘어가면서 선반에 있던 약병이 바닥 위로 모두 떨어져 내리고........ 유이 녀석의 위에 올라타 정신없이 입술을 탐했다. 내 아래 깔려 누운 채 녀석이 내 옷 속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매끄러운 피부를 쓸며 자극하자 재촉하듯 미치도록 자극적인 신음을 흘렸다. 이성은 이미 열기에 다 타들어 가고 몸엔 날뛰는 본능만이 남아 더 큰 쾌감을 쫓아 움직일 뿐...... 녀석이 허리를 쓸다 등뒤로 팔을 둘러 꼬옥 끌어안아 몸을 밀착시키자마자 입술을 떼고 눈앞에 보이는 녀석의 옷을 거칠게 벗기기 시작했다. 조급하게 손을 놀리자 단추가 다 뜯어져 나간다. 부드럽게 하얀 피부를 쓸며 자극하던 녀석이 가슴위로 올라와 돌기를 지분대기 시작하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겨우 말을 듣지 않는 손으로 녀석의 상의를 벗겨내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남자가 봐도 잘 짜여진 근육과 상처 하나 없는 매끈한 피부...... 같은 나이임에도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나와는 다른...... 확실한 사내의 몸...... 하지만..... 이성마저 날려버린 내게는 여자같이 하얀 피부와 달콤한 체향만이 머릿속을 자극해 온다. 생각도 할 것 없이 고개를 숙여 하얀 피부에 입술을 미끄러뜨리자 갑자기 녀석이 흠칫 하더니 바지 속으로 파고들던 내 손을 다급히 움켜쥔다. "너...설마...." 내 밑에 깔린 채 한계까지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보다 몸을 일으키려는 녀석을 힘으로 내리 눌렀다. 이미 이성이 날아가 버린 흐린 눈동자로 겨우 초점을 맞추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하아....닥치고 깔려....." "뭐?!!!!"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소릴 질러대는 녀석을 무시하고 다시 목덜미에 입술을 묻자 녀석이 미친 듯 버둥거린다. "빌어먹을!! 이 미친새끼, 걸리면 죽여버릴 줄 알아!!!! 윽, 키르 좀 비켜!! 하는 방법도 모르잖아!!" 갑자기 녀석이 내 몸을 확 끌어당겨 몸을 굴리더니 내 위로 올라탔다. "하아...조금만 참아....킥, 상대가 너인 건 좋지만 이런 얼굴로 내 위에 올라타시겠다? 백년은 일러.....!!" 손으로 가만히 얼굴을 지분대더니 더운 입김이 새어나오는 입술을 긴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본다. 온몸이 저릿한 감각에 내 몸을 누르고 올라탄 녀석의 밑에서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을 쳐댔다. "이 새끼, 이거 놔!!! 흐윽......" "큭, 역시 이런 건 제 정신일 때 하자....." 녀석의 밑에 깔려 꼼짝도 못하고 헐떡이며 거친 숨만 내쉬자 내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더니 바로 바닥에 떨어진 약병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한다. "으응....하아.....비.......켜......." 미칠 듯한 쾌감이 고통으로 변해가자 몸이 온통 붉어져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녀석의 밑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자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내리누르고 다른 손으론 분주하게 약병들을 헤집어 놓는다. "꼼지락거리면 참기 힘드니까 가만히 좀 있어!! 젠장, 약을 마신 건 이 녀석인데....응? 찾았다!!" 녀석이 노란색 액체가 들어있는 작은 병을 손에 쥐고 뚜껑을 열어 내 코에 들이밀자마자 시원한 향이 콧속으로 파고든다. 정신이 확 들자마자 그대로 몸이 늘어져 버렸다. "흑, 뭐...뭐야....."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온몸의 근육이 뻐근하다. 한참동안 머리를 부여잡고 있다가 흐린 정신을 겨우 수습하고 크게 뜬 눈으로 유이 녀석을 올려보자 땀에 젖은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준다. "하아.....이제 정신 차린 거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녀석이 내 위로 털썩 쓰러져 온다. 아직도 민감한 피부와 거친 호흡에 정신을 못 차리고 그렇게 누워있다 위에 있는 녀석 때문에 미쳐버린 몸이 다시 반응을 보이려하자 녀석을 밀치려 버둥댔다. "비켜!!!!" "킥, 뭐야....방금 전하곤 반응이 완전 틀리잖아!!" "방금.....전...?" 멍한 얼굴로 중얼거리다 손등으로 입술을 쓱 문지르자 타액이 묻어 잔뜩 부풀어있고 머리카락은 바닥에 누워 정신없이 발버둥친 덕에 요란하게 헝클어져있었다.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며 점점 일그러져 가는 내 표정을 보고 킥킥대는 유이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의 꼴도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상의는 단추가 다 뜯어져나가 하얀 피부가 다 드러나 있었고 목덜미엔 붉은 자국까지 새겨져 있다. '도......도대체....뭘......한 거야?!!!!' "하아......후회된다......." "이 새끼!! 빨리 비켜....!!! 흐윽......" 녀석을 밀어내려 품안에서 바르작대고 있는 틈에 녀석이 귓불을 이로 물어 혀로 쓸자 생각지도 못한 신음이 흘러나간다. "큭, 아직 인가 보네? 덥치진 않았으니까 상이라도 줘야지.....? 아님, 나 덥치려고 했으니 벌을 받던가....." "하아....이 새끼......또 장난...치면.......죽..인..다......" "흐응...? 어쩔까?" 떨리는 손으로 단검을 움켜쥐자 녀석이 바로 손목을 낚아채 옭아매고 장난하듯 타액이 묻어있는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면서 핥고 빨아댄다. "큭....장난? 하는 김에 진하게 한번 해줄까?" 손이 스치기만 해도 민감한 피부가 반응을 해댄다. "너......여자 안아봤어?" "무슨.....개소리야.....!! 꺼지기나...해!! 흑....이 새끼 손 못 치워?" "내가 가르쳐 줄께.....뭐, 진짜 써먹으면 안되니까 기본만......" "필요.....없어!!!" 빌어먹을 자식이 내 위에서 몸을 내리누르고 장난인 듯 민감해진 피부를 부드럽게 쓸어대며 만지작대는 통에 입술을 비집고 듣기에도 민망한 신음소리가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꾸 튀어나온다. "킥, 신음소리도 예뻐, 아가씨......" 약이라도 올리려는 듯 쪽 소리나게 입술에 키스를 하더니 웃음이 가득 담긴 바이올렛 눈동자로 녀석의 밑에 깔려 헐떡이며 몸을 비트는 날 바라본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 먼저 이렇게 눕히고.....옷은....다 벗겨야 좋은데....뭐, 기초편이니까 그냥 이대로 하자...." '이 새끼가 또 무슨 장난이야?!!!!!'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요리강좌라도 하는 양 떠들어대는 녀석의 손이 움직임을 멈춘 동안 사납게 노려보자 바이올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장난스런 얼굴과는 달리........ 진지하고...... 깊이 있는 눈빛........ 반항을 멈춘 채 시선도 돌리지 못하고 녀석에게 사로잡혀 있자 천천히 입술을 열어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사랑해......" '뭐?!!' 놀랄 틈도 없이 고개를 숙여 따뜻한 입술을 포개온다.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온 뜨거운 혀의 움직임에 예민해진 몸이 흠칫흠칫 떨리고 붉어진 입술을 비집고 작게 신음이 새어나가자 손으로 얼굴을 쥐고 각도를 바꿔 더욱 깊숙이 들어온다. 자극 받은 몸이 멋대로 반응을 해온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고 살짝살짝 깨물어대는 입술을 타고 조금씩 쾌감이 밀려들어오자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어느 샌가 녀석의 손이 밑으로 내려와 허벅지를 부드럽게 쓸다 엉덩이를 움켜쥐고 만지작대자 놀라 녀석의 아랫입술을 깨물어버렸다. 작은 신음이 귓가에 스치고....... 오히려 더 흥분시켜 버렸는지 더욱 농도 짙게 입술을 탐해 가는 녀석 때문에 다시 약기운이 돌아 이성이 날아가려던 찰라 기적적으로 고개를 돌려 녀석의 입술을 피할 수 있었다. 헐떡이며 충격으로 커진 잿빛 눈동자를 녀석에게 맞추자 열기가 가시지 않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내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뭐야? 그렇게까지 놀란 눈으로 쳐다보면 더 이상 진도가 안나가잖아...." 무슨 소릴 떠들어대는 건지 머릿속에 접수가 되지 않는다. "표정이 왜 그래? 못 알아듣겠어? 사랑한다고 말하고 키스는 필수야.... 큭, 어때? 이렇게 하면 80%는 홀랑 넘어오는데....? 중급편도 가르쳐줄까? 여자는 가슴이 민감하니까 부드럽게......" 슬금슬금 내 가슴 쪽으로 손을 미끄러뜨리는 녀석에게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있는 힘껏 주먹을 날려버렸다. "윽.........!!" 해독제의 향을 맡고 사정을 한 것처럼 늘어져 있던 몸에 다시 힘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안개가 낀 듯 몽롱했던 정신이 서서히 맑아져 간다. "이 미친 자식!! 내가 여잔 줄 알아?!!!" 옆구리를 정통으로 맞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녀석을 벌떡 일어나 발로 마구 밟아버렸다. "내가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 이 재수 없는 자식!! 현상금 받아버리고 넘겨버리는 줄 알아!!" "헉, 키.....키르....!! 내 잘못 아니란 말야!!" "뭐?!!! 이게 진짜 미쳤나....! 니 잘못이 아니면 내 잘못이야?!!!" 황당함에 바닥을 구르는 유이 녀석의 멱살을 쥐고 흔들자 정신을 못 차리고 켁켁댄다. "컥, 키르!! 그 미친 의사놈이 먼저 그런 거잖아!! 나도 최음제 향 조금 맡았단 말야!! 너도 나 깔려구 했잖아!! 응? 그럼 비긴 거지! 잘못했어!! 금화 20개 더 줄게!! 화풀이는 그 자식한테 해!!" '금화?' "............" '그러고 보니 그 자식이 이상한 약을 뿌려서.......' "빌.어.먹.을!!! 그 개자식!!! 그 새끼 어딨어?!!!" 이를 갈며 살벌하게 눈을 치켜 뜨고 버럭 소릴 지르자 문밖을 가리킨다. "그 변태새끼, 오늘 죽었어!!!" 집안이 들썩일 정도의 노성이 숲에 퍼져나간다. -83- 분노에 눈이 뒤집혀 방문을 발로 박차고 뛰어나가 거칠게 복도에 늘어선 문을 하나씩 열어 미친 의사놈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둡고 길기만 한 복도의 중간쯤에 있는 문을 벌컥 열어 젖히자 침대 위에서 태평하게 발뻗고 자는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와 한참을 기가 막혀 바라보다 침대로 다가섰다. "이 새끼가 정말....!!!" 평온한 낯짝으로 세상모르고 잠을 퍼대자고 있는 녀석을 이를 부득부득 갈며 노려보다 허리에 차고있던 단검 한 자루를 빼내자 뒤에서 갑자기 놀라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헉, 키...키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죽일려고? 나, 그 자식한테 볼일 있단 말야!! 죽일려면 그거 끝나고 죽여!! 응?" "지랄마!!" 콧방귀를 뀌고 전쟁이 일어나도 깨지 않을 것 같은 녀석의 남빛 머리칼을 덥썩 움켜쥔 후 단검으로 바로 베어버렸다 . 윤이 나는 탐스런 남빛 머리칼이 침대 위로 스륵 떨어져 내리고..... "미.친.놈....!! 사내새끼가 머리나 치렁치렁 기르구...진짜 산발한 미친놈 같군..... 한 오년은 기른 머리 같은데.....어디 한번 니놈도 당해봐라!!!" 날이 잘 서있는 단검으로 시골 여중생처럼 단발로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베어내고 똑순이처럼 앞머리까지 똑 잘라내자 영락없는 여장변태..... "풉, 뭐야?!! 머리카락이었어? 키르, 그거 좀 심한 거 아냐? 킥킥....괴상하잖아!!" 까무러치도록 웃어대는 유이 녀석을 무시해 버리고 머리칼이 댕강 잘린 줄도 모른 채 잠만 퍼자는 녀석의 멱살을 쥐고 뺨을 몇 대 올려붙이자 부시시 눈을 뜬다. 한참동안 상황판단이 안된 듯 남빛 눈동자로 나와 유이 녀석을 번갈아 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툭 던진다. "뭐야, 벌써 끝났어? 생각보다 빠르네.....저 도둑 새끼가 끝까지 붙들고 밤 꼴딱 샐 줄 알았더니......약효는?" 부글부글 끓는 화를 참지 못하고 하얀 베개에 단검을 박아 넣자 베개가 퍽 터지며 갈색 깃털이 날린다. "이 자식, 진짜 죽고싶어?!!" 이를 으득 갈며 말을 뱉어내고 죽일 듯 노려보자 태평하게 말을 받는다. "왜? 저 도둑놈이 잘 못했나 보지? 킥, 가짜한텐 잘만 해대더니 막상 진짜한테 하려니 긴장돼서 실수라도 했나?" "닥쳐!!!" 바닥을 구르며 웃고있던 유이 녀석이 갑자기 얼굴까지 빨개진 채 벌떡 일어서 소릴 꽥 질러댄다. '이것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유이 녀석을 노려보는데 갑자기 누워있던 의사 녀석이 내 팔을 확 끌어당겨 침대 위에 패대기치더니 그대로 내 몸을 타고 눌렀다. "큭,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해독제를 써도 약효는 몇 시간 남아있어....." 말을 마치자마자 내 상의를 확 끌어올려 하얀 피부가 드러나자마자 손을 미끄러뜨려 더듬어대기 시작했다. "흐응~ 피부도 좋고.....근육도 적당하고.....뼈 모양도 상당히 예쁘네...." "흑...." 차가운 손으로 갈비뼈를 쓸어대자 무의식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내장도 이렇게 예쁜가.....?" 복부를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자 흠칫 몸을 굳혔다. "큭, 정말 예뻐.......표본으로 만들어 버릴까......?" 순간 요란한 소릴 내며 내 위에 있던 녀석이 바닥을 구르고...... "이 미친놈!! 오늘 죽으려고 날 잡았어?!!! 어딜 올라타?!!!" 맞은 편을 보니 유이 녀석이 바닥에 굴러 떨어진 녀석을 몇 번 밟아대더니 내게 다가온다. 놀라 굳어버린 눈으로 유이 녀석을 올려보자 날 일으켜 덥썩 끌어안고 버럭 소릴 질러댄다. "이 새끼!! 어쩔 거야?!!! 애 놀랬잖아! 왜 평소보다 발광이 심해?!! 약 쳐먹은 거 아냐?!!" "내가 뭘?!! 니 놈이 신기한 걸 가져왔으니 그렇지!!" "이익, 저 자식이!!!!" 분노에 부들부들 떨던 유이 녀석이 갑자기 녀석을 노려보다 퍼뜩 생각난 듯 킥킥대며 말을 던진다. "너.....킥, 그 머리 진짜 잘 어울린다?!! 키르 작품이야!! 풉...푸하하하하!! 창피해서 밖에도 못 나가겠군...!!" 그제야 침대 위에 잔뜩 떨어져 내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 손으로 머릴 만져보더니 휙 돌아서 거울을 바라본다. "오, 꽤 괜찮은데! 귀찮아서 자르려고 했는데.....꼬마녀석, 진짜 솜씨도 좋네!! 내일 마을에 나가서 자랑이라도 해야겠군...." 한참만에 돌아서 여유롭게 말을 던지는 미친놈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열을 내고있는 유이 녀석을 확 밀쳐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이런 미친놈이랑 더 이상 같이 있으면 멀쩡한 나까지 돌아버리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기자 유이 녀석이 급하게 내 손목을 잡아온다. "뭐야?!! 이거 놔!! 너 아지트에 돌아가면 죽었어!!" 화를 벌컥 내며 내 손목을 잡고있는 녀석의 손을 뿌리치고 아직도 거울을 흡족한 듯 바라보고 있는 의사 자식의 옆구리를 있는 힘껏 걷어차 버리자 벌렁 바닥 위로 넘어지더니 누가 미친놈 아니랄까봐 킥킥대며 웃음을 터트린다. "도대체 이런 정신병동 같은 곳엔 왜 온 거야?!!" 하도 어이가 없어 돌아가는 건 뒤로 미루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유이 녀석을 돌아보자 바닥을 구르며 킥킥대는 의사놈을 잠시 노려보다 내게 손짓을 해온다. "키르.....잠깐 이리 와봐...." 방 한 켠에 있는 작은 침대로 다가가 날 부르는 녀석을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봤다. "왜?" "내기했잖아......한 가지 원하는 거 들어주기로....."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이리 오면 알려줄께....내가 원하는 거....." 잠시 의심스런 시선을 보내다 궁금함에 결국 발걸음을 옮겨 녀석에게 다가가자 침대 위를 툭툭 치며 앉으라고 재촉해 온다. "옷 벗고 엎드려봐...." "뭐?!!!" 기가 막혀 멍한 표정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내 손목을 끌어당겨 침대 위에 눕히고 등뒤에 있는 매듭을 재빨리 풀어 하얀 등을 드러내자마자 옆에서 경악에 찬 비명이 울려온다. "헉, 너 결국은 일 쳤군!!! 이젠 크리올라 황제의 루베라까지 훔친 거냐?!!! 손도 못 댄 이유가 그거야? 게....게다가......현 황제의 하나밖에 없는 루베라라고 들었는데.....헉, 심장 바로 뒤에 새겼잖아!!! 손끝만 스쳐도 죽을 거야!!! 젠장!! 아까 일은 잊어버려!! 난...아무 것도 못 봤으니까 당장 나가!!!" 미친 의사놈이 갑자기 정신을 차렸는지 심각해진다. "너....누가 연구비 대주는지 잊은 거 아냐? 그리고 이거 안 보여?" 유이 녀석이 갑자기 루베라 위에 새겨진 상처를 쓸자 흠칫 몸을 떨었다. "이 녀석은 이제......황제의 루베라가 아냐....." 녀석의 말에 심장이 따끔거려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래서......? 왜 날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말을 꺼내놓는다. "저 녀석....의사라고 말했지? 룬이라는 녀석인데......문신도 정교하게 잘 새기거든....." "뭐?" 놀라 고개를 번쩍 들자 녀석의 바이올렛 눈동자가 쏘아져 들어온다. "나랑 첫 일 성공한 기념으로 이거 새기자.....우리 둘이...여기에....." 루베라가 새겨져 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녀석이 내민 검은 천엔 정교하게 새겨진 문장이 박혀있다. 맹금류의 모습 같기도 한 문장은 흰색으로 되어있지만 각도에 따라 반짝여 은색으로까지 보였다. "야!! 그건......" 룬이라는 녀석이 어쩐 일인지 놀라 소리지르자 유이가 무시해버리고 내 눈동자만 바라본 채 다시 말을 잇는다. "어때?" '루베라.......위에......?!!!' Rubera(루베라) #84 "루베라는 기본적으로 완전히 지울 수 없어!! 상처를 내서 구속의 주술은 풀 수 있지만....." "알아......대신 덧씌울 수는 있잖아.....너라면 완벽하게....." "내가 왜 그런 걸 해줘야 하는데? 저 녀석은 그렇다 치고 니 놈 몸에 손대면......" "자꾸 토달면 연구비 끊어버리고 여기 있는 거 다 쓸어간다?!!!" "이 자식, 내가 만들어 놓은 거 다 훔쳐 가는 도둑놈이 누군데 이제 와서!!!!" "키르....!!" 재촉하듯 녀석이 날 바라본다. '티폰이......새겨놓은 걸 없애.......?'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루베라를 만져보았다. 느껴지는 건 희미하게 남은 상처자국....... '이젠.......루베라도....내 손으로 지워버렸는데...... 왜.....아직도 녀석에게 얽매여 있는 거지.....? 왜 그 녀석만 생각하고.... 왜 그 녀석 때문에 울고.... 왜 그 녀석 때문에 괴로워하는 거야.....?!!' 난 이제.....황제의..... 티폰의 소유가 아니다..... 이런 망가진 각인 따위에 연연할 필요 없어........ 녀석도 이제 황비를 맞아 결혼하게 되면..... 나 같은 건....... 금새 잊어버릴 테니까..... 내게 보이던 집착도..... 분노조차도..... 난 이곳에서 유이와 귀족들을 털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돈을 벌고..... 녀석은 자신의 나라에서 황제로서 해야할 일을 하면 되는 거다. 엎드린 채 침대 위에 얼굴을 파묻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유이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고마워......" 녀석이 귓가에 속삭이더니 하얀 머리카락을 잠시 쓸다 몸을 일으켰다. "룬....루베라가 보이지 않게 덧씌우고 상처도 확실히 가려....아까 한 짓은 눈감아 줄 테니까...." "젠장, 실컷 두들기고 눈감아줘?!!" "더 맞을래?" ".............쳇, 나중에 두 말 하면 진짜 독살해 버릴 줄 알아!! 약품은 뭘로 해?"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트리니아......." "뭐? 그건....." "그걸로 해...우선...." "속을 알 수가 없군...." "실수했답시고 이상한 모양 새기면 죽일 줄 알아!!" "쳇, 도둑놈이 눈치만 빨라선....." "너....방금 진짜 그럴려고 했지?!!!!" "알면서 왜 물어?" "이....이 미친놈!!!" 흥분해 날뛰는 유이를 무시해 버리고 룬이라는 녀석이 툴툴거리면서 여러 가지 약품과 도구를 모은 후 내게 다가와 벗은 등위에 유이가 가져온 문장을 그대로 새겨 넣기 시작했다. 등이..... 심장이 따끔거린다. 침대 위에 얼굴을 파묻자 유이 녀석이 따뜻한 손으로 부드럽게 등을 쓸어준다. 눈물을 겨우 삼키고 거의 2시간이나 걸려 문신이 완성되자 유이가 잠깐 만져보더니 거울을 보여줬다. 정말...... 루베라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붉은 색 각인이 완전히 가려져 반짝이는 은빛 짐승의 모습만 눈에 들어온다. 상처까지 미리 계산해 두고 본을 뜬 건지 직접 만져보지 않으면 상처가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정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듯..... 예전 하류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까맣던 머리카락도..... 까만 눈동자도.... 녀석이..... 티폰이 새겨준 루베라도..... 유이가 몸을 일으켜 옷을 입혀줄 때까지 멍하니 있다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정신을 차렸다. "룬...그거 또 있지?" "뭐?" "색소 바꾸는 약...." "너....지난번에 그거 훔쳐간 게 또 니놈이었냐?!!!" 남색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눈에 보이는 대로 약병을 유이 녀석에게 날려대는 게..... '미친놈.........' "젠장!!! 만들어놓기만 하고 쓰지도 않으면서 좀 가져다 썼기로서니....!!!" "닥쳐!!!!" "너랑 놀 시간 없으니까 빨리 여분으로 몇 개 내놔!!!" "좀도둑 새끼, 그 약은 갑자기 왜?!!" 씩씩대며 유이을 노려보던 룬이란 녀석이 퍼뜩 날 바라본다. "설마......이 녀석한테 먹인 거냐?!!!" 녀석들의 발광에도 가라앉은 눈으로 허탈하게 바라만 보자 룬이 날 향해 말을 던진다. "원래 무슨 색이었는데? 그러고 보니.....소문엔......크리올라 황제의 루베라가 까만 눈동자에 까만 머리카락이었다고.....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큭, 그게 사실이었으면 진짜 해부라도 해보고 싶었는데 말야......." 무시무시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을 보고 반사적으로 입을 열어 말을 얼른 내뱉었다. "갈색이었는데....." "쳇, 역시 헛소문이었나......" "너....아까부터 도대체 키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빨리 약이나 내놔!!" 유이 녀석이 날뛰어대자 결국 할 수 없다는 듯 약더미를 뒤져 하얀 알약 몇 개를 꺼내 내게 건넨다. 손에 쥐어진 알약을 잠시 바라보다 품속에 집어넣자 유이가 다가와 말을 꺼냈다. "이제 나도 새겨야 하는데.....먼저 아지트로 돌아갈래?" 몸도 피곤하고.....기분도 가라앉아 고개를 끄덕이자 손으로 얼굴을 잠시 쓸다 말을 이었다. "그럼 먼저 돌아가....나도 이거하고 바로 갈께...." "응....." 바로 뒤돌아 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약 냄새가 풀풀 나는 집을 빠져 나왔다. 그때까지도 기다리고 있었는지 피이가 나무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자 은색 깃털이 땅 위로 떨어져 내린다. 피이의 붉은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오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바로 말 위에 올라 길을 되돌아갔다. 자꾸만 이러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예전에 끝난 일일텐데...... 되돌릴 수도...... 되돌리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미친 듯이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호숫가...... 말도 지쳤는지 속도가 줄자 호숫가에서 말을 멈춰 물을 먹이고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을 씻어냈다. 눈에선 새하얀 속눈썹을 적시며 투명한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고..... 흔들리는 호숫물 저 편으로 보이는 건 한심하기만 한 내 모습...... 몇 번이나 다짐하고 마음속에 새겨 넣어도 결국 이 꼴이다..... "멍청한 자식!! 뭘 하는 거야? 도대체....!!" 주먹으로 호숫물 위에 비치는 내 모습을 내리치자 수면이 기이하게 일그러져 슬픈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그런 녀석 따윈.....빨리 잊어버려....' 생각을 털어내듯 머릴 휘저어대다 의식적으로....... 끔찍하기만 한 감옥 안에서 날 바라보던 녀석의 잔혹한 눈동자를 떠올리자 마음이..... 가라앉아 간다...... 어차피..... 녀석의 따뜻한 품 따윈....... ......잊은 지 오래다. 녀석 때문에 사람의 체온에 길들어져버렸지만...... 이젠 녀석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이러는 건...... 그래.....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쓸데없는..... 쓰레기 같은 미련...... 심장에 앙금같이 남아 날 괴롭혀대는 거다. 그것도......... 언젠가 털어 내 버리면...... 티폰이란 녀석도 깨끗이 지워져버리겠지.....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얼음조각처럼 식어버린 잿빛 눈동자로 수면 위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다 말에 올라 바로 아지트로 향했다. #85 -티폰- 루베라가........ 내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녀석이 죽어버린 지 세 달이 다 되어간다. 2년 전처럼 녀석을 기다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부정하려해도 싸늘하게 식어버린 녀석의 시체를 이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까...... 두 눈을........ ............파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확실하게........ 케레스의 품에 안겨있던 녀석의 마지막 모습은...... .............평안해 보였다..... 내 곁에서 짓던 고통스런 표정과는 다르게...... 그 동안 병사들을 풀어 국경 근처를 모두 뒤져봤지만 케레스의 말대로 죽어서도 내 곁에 있긴 싫었는지 시체조차 찾지 못했고 결국 발견된 건 녀석을 싸고있던 모포 한 장 뿐..... 그렇게.... 죽음으로써..... 내게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덧씌워 놓은 속박을 모두 풀고 달아나 버렸다. 영원히...... 어쩌면 처음...... 그렇게 내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이 세상 것이라곤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까만 머리카락과 밤하늘 같은 눈동자를 지니고 내 앞에 나타났을 때부터..... 모든 게 틀어지기 시작한 걸지도 모른다.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탐한 벌을 받고있는 지도..... 이제..... 내게 남아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녀석이 죽으면서 대상을 잃어버린 내 감정도 모두 죽어버렸다. 가장 소중했던 것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후회 따윌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국...... 녀석을 죽음의 끝까지 몰아붙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 숨만 쉬는 감정 없는 인형이 되어버려 잔혹한 황제의 역할을 연기해 가야하는 내 자신만이 남은 거다. 주먹을 꼭 움켜쥐자 눈앞에 보이는 건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귀족들...... 그 동안 하루도 성에서 비명과 피비린내가 끊이질 않아 몸을 사리던 녀석들이 어쩐 일인지 공포에 떨면서 정무실을 찾았다. 참기 힘든 침묵이 계속되자 결국 귀족 중 한 명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온다. 결국 뻔한 얘기 뿐...... 내 루베라가 죽자마자....... 황비 간택을 하라 청하는 귀족들을 싸늘히 노려봤다. 어차피...... 녀석이 죽었을 때....... 모두가 끝난 일....... 황비........? 그것도...... 좋겠지...... 빨리......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게 그것이라면.......... 결국 여러 귀족가들 중 지목된 건 미르헨가....... 하류가 내게 오기 전 선대 황제가 정한 약혼녀였다. 결국 파혼을 했었지만...... 특별히 그것 때문에 다시 선택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짙은 밤색 머리카락이.......... 그 녀석을...... 하류를 닮아있다는 걸 언뜻 기억해 냈기 때문이었다. . . . 얼마 후 황비로 선택된 미르헨가의 약혼녀가 날 찾았다. 어차피 황비가 되기 전 황제에게 올리는 간단한 인사치레...... 파티에서 몇 번 본적 있던 여자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 때...... 창 밖으로 이 여자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하류의 모습이 떠올라 살짝 미간을 찌푸리자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는 내게 깊숙이 머릴 숙여온다. 언뜻 보면 검은 색으로 보이는 밤색 머리카락에만 시선을 고정시켰다. 한참동안 침묵이 흐르고...... 천천히 입술을 열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름이.....뭐지?" 표정이.....살짝 굳는다. "미르니안....입니다. 폐하....." "황비가 되어도........ 너에게 절대......... 루베라를 새기지 안겠다......" 내 루베라는......한 명뿐이다..... 그 아이와....... 예전에........2년 전에....... 약속을 했다....... 여자의 몸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선대 황제 중..... 형식적일 뿐이라도...... 황비에게 루베라를 새기지 않은 황제는...... ......없다..... "내가 널 선택한 건..... 네 머리카락이 내 루베라를 닮았기 때문이야.... 그 이외엔..... 내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넌 그저.... 크리올라의 다음 황제만 낳아주면 돼......" 싸늘하게 내뱉자 놀라 흔들리는 갈색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 따윈 없다. 그 녀석이 죽어버리면서 모든 게 끝난 거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아니라..... 황제로서의 역할만 충실히 하면..... 모든 게 끝나는 거다..... 다음 대 황제만 있으면...... 시온에게 맡겨도 되는 일이지만..... 나라라는 무거운 짐을 녀석에게 지워주긴 싫다. 녀석의 자유분방함을 알기에...... 얼마간은 그 녀석이 맡아야겠지만...... 이 여자가 나와 같은 인형을 낳으면 뒤는........ "폐하....." 떨리는 붉은 입술이 말을 잇지 못한다. "그래도 황비가 되겠다면 그 자릴 네게 주겠다" 옅은 갈색 눈동자가 분노와 수치로 물들어간다. '큭, 내게....... 사랑이라도 바랬다는 거냐.......' "되겠느냐......" 비웃음을 입에 걸고 차갑게 되묻자 고개를 끄덕여온다. '멍청하진 않군.......' "약혼식은 사흘 후에.......결혼식은...... ......한달 후에 올린다. 물러가...." -86- "도둑이야!!!" "하얀 여우다!!" "씹, 누가 하얀 여우란 거야?!!!!" 달아나다 뒤돌아서 벌컥 소릴 지르자 유이가 재빨리 끌어당긴다. "잡히고 싶어?!! 우리 둘한테 걸린 금화가 1000개라구....킥, 너 남 좋은 일은 안 하잖아?!! 우리 팀 이름도 지어줬겠다.....뭐가 불만이야?!!" 킥킥대는 유이 녀석을 노려보며 소릴 버럭 질렀다. "이 새끼, 넌 하얀 여우가 좋단 말야?!! 계집도 아닌데....하얀 늑대도 아니고 하얀 사자도 아니고 여우? 도적단이 아니라 창부단같잖아!!!" 잔뜩 투덜대며 미리 매어뒀던 말 위에 올라 달리기 시작하자 뒤에서 요란하게 들려오던 소음이 멀어지기 시작한다. "하하...우리도 꽤 유명해 졌는데? 팀 짠지도 얼마 안됐는데!!" '유명해진 것도 당연하지.....근 한달 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귀족가를 털어 가보급 물건만 훔쳐냈으니.......' "씹, 그래서 더 힘들어 졌잖아!!" "다음엔 뭘 훔칠까? 키르!!" '이젠 훔칠만한 귀족가도 없는 거 아냐? 다음엔 뮤즈니안 황성이라도 털어 볼까.....?' "뮤즈니안 황성이라도 털어 볼까? 키르, 니가 좋아하는 보석,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텐데....!!" '미친놈 진짜 할 셈이냐.....?!! 그리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건 보석이 아니라 돈이야! 돈! 특히 금화!'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던 천을 확 풀어 버리자 옅은 잿빛 눈동자에 단정한 이목구비가 드러난다. "황성은 무리야......쫓는 놈들도 많잖아! 애초에 둘 다 머리색이 너무 눈에 튀었어!!" "큭, 그럴지도......그나저나 너....뭘 훔쳤는데 저 난리들이야?" "킥, 이거....." 씨익 웃으며 품에 넣어뒀던 보석을 꺼내 보이자 유이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너....그거.....어떻게 빼낸 거야?" 손에 쥐어진 핑크 빛 다이아반지를 들고 빙글거리자 멍하게 바라보던 녀석이 갑자기 벌컥 화를 낸다. "왜?" "그거...그 귀족가 아가씨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반지잖아!!! 너....혹시......또.....!!" "킥, 입술에 키스하는 척 하고 슬쩍 했지.....뭐......키스는 손등에 하는 걸로 끝냈지만......아까웠어....." "뭐?!!! 이 자식.....!!" "왜? 니가 하는 거 보고 배운 건데....?!!" "그딴 건 배우지마!!!" "이거 꽤 비싸지?" 반짝이는 눈으로 잔뜩 찌푸린 녀석을 돌아보자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갑자기 그건 왜?" "여자한테 줄려구...." "뭐?!!! 누구야!!!" "킥...하하하.....니가 왜 열을 내?" 이제는 완전 폭발할 것 같은 녀석의 표정이 우스워 신나게 웃어 재끼자 갑자기 말을 빠르게 달려 내 옆에 붙어 선다. "누구야?!!" "글쎄....프로포즈나 해볼까....." "악!!! 너 거기서!!!!" 아지트에 도착해 말에서 내리자마자 마리가 내게 다가온다. "키르....벌써 돌아왔어?" "응...." "일은?" "당연히 성공이지!! 자, 오늘 생일선물...." 분홍빛 나는 다이아반지를 내밀자마자 뒤에서 유이가 도착했는지 말에서 뛰어내려 내게 다가온다. "뭐야? 뚱땡이 아줌마한테 주는 거였어?" '이 자식......죽으려고 용을 쓰는군......' 공동식탁으로 쓰이는 커다란 테이블로 다가가자마자 뒤에서 비명소리가 울린다. 벌써 음식이 가득한 테이블 주위엔 몇몇 녀석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키르!!" 고개를 돌리자 오렌지 빛 머리카락에 하늘빛 나는 눈동자를 지닌 똑같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응?" "꽤 재밌나봐?" "응...." 빙글거리며 음식에 손을 대자 머리 위를 배회하던 피이가 테이블 위에 내려선다. 고기조각을 떼어주자 받아먹는 녀석의 머리를 가만히 손가락으로 쓸다 다시 따뜻한 빵을 집어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두목도 꽤나 즐거워 보이네....." 마리에게 한창 헤드락을 당하며 비명을 질러대는 유이를 잠시 바라보다 카일이 중얼대자 테이블 주위에 앉아있던 녀석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그런가.....?' 잠시 유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리한이 생각난 듯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한 녀석에게 말을 꺼낸다. "너희들 오늘 크리올라로 나가지 않았어?" "응....완전 축제 분위기던데.....? 황제가 한달 후에 황비를 맞는데.... 게다가 사흘 후엔 수도에서 약혼식을 올려 황제와 황비 되실 분이 잠깐 얼굴을 내비친다나봐.... 황성에서 수도까지 마차로..... 보통 사람들이 황제와 황비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때뿐이니까 나흘 후엔 아마 엄청날 거야.... " "굉장히 서두네? 약혼식하고 바로 결혼이잖아?" 들고있던 음식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키르? 왜 그래?" "나 다 먹었어.....피곤해서....먼저 들어갈게....." 왁자지껄 떠드는 녀석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진 유이의 집안으로 들어섰다. 울창한 숲은 해가 일찍 기울어 벌써 주위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몸이..... 피곤하다. '상관....... 없는 일이야...... 나랑은......' 머리가 무거워 잠시 벽에 기대 있다가 옷을 벗고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감자 삐그덕 거리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침대가 출렁이고 따뜻한 피부가 내 몸을 감아온다. "치사하게 먼저 자면 어떡해?!! 안 추워?" 등뒤에서 내 허리를 휘감고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대는 녀석이 신경 쓰였지만 녀석과 다툴 기력도 없어 조용히 자는 척 입을 다물었다. "키르.....진짜 자?" '이 새끼, 진짜로 자지, 가짜로 자냐?!!!' 평소엔 눕자마자 자는 녀석이 오늘따라 보채는 게 짜증나 버럭 소릴 지르려다 겨우 입을 다물고 화를 삭혔다. 한참동안 기척이 없자 슬금슬금 잠이 오기 시작한다. 현실과 꿈속을 왔다갔다하는 사이 녀석이 갑자기 팔에 힘을 줘 내 몸을 꼭 끌어안더니 귓가에 조용조용한 목소리가 스쳐간다. "하아....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그냥 확 가져버릴까......." '뭐야....이 자식, 찍어놓은 보석이라도 있는 거야.....?' "으응....이 새끼.....저리 비켜.........." 부드럽고 따듯한 게 등을 자꾸 간질이는 느낌에 비몽사몽간에도 녀석에게 투정을 부리며 밀쳐냈다. "태평한 녀석......" 따뜻하게 몸을 꼬옥 끌어안고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주자 뒤척임을 멈추고 까마득히 잠에 빠져버렸다. -87- 귓가를 울리는 빗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눈을 깜빡이자 주위는 새카만 어둠에 싸여있고....... 고개를 돌리자 창 밖으로 거센 빗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소나기인 듯 퍼부어 대는 빗방울을 한참동안 넋이 나간 듯 바라보다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숨결에 가만히 고개를 올려 바라보니 깨끗하고 단정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얼굴이 맞닿은 녀석의 가슴에선 평안한 심장고동이 울려오고..... 다시 눈을 감으려던 순간 번개가 푸른빛을 내며 번뜩여 흠칫 몸이 굳어버렸다. 끔찍하다..... 이런 날씨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하감옥에 있었을 땐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폐쇄된 공간이었기 때문에 미치지 않을 수 있었지만...... 시도 때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폭우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가 살던 세계에선 여름 한때 장마철을 제외하곤 거의 안심할 수 있는 날씨였는데..... 이곳의 날씨는 너무 변덕이 심하다. 그나마 이 숲엔 비는 자주와도 이렇게 심하게 내리지 않아 마음놓고 있었는데..... 천둥소리가 낮게 울리자마자 시트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귀를 막은 채 유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으응.....키르........왜 그래.....?" 제어할 수 없이 떨어대는 몸 때문에 유이 녀석이 잠에서 깼는지 잠시 뒤척이다 잠에 취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들려온다.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커다란 천둥소리에 흠칫 몸을 떨자 녀석이 그제야 심각한 날씨를 눈치 챘는지 한동안 조용하더니 시트를 슬쩍 들춰 날 바라본다. "뭐야? 키르......천둥이 무서워? 킥, 어린애 같긴...." 녀석의 가슴에 머리를 박고 떨고있는 날 잠시 바라보더니 머리카락이라도 쓰다듬으려는지 손을 댄 순간 숨을 멈춰버렸다. 녀석이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챘는지 시트를 확 거두더니 녀석의 몸에 들러붙은 날 떼어내 몸을 거세게 흔들어 대지만 이미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푸른빛이 번뜩이며 다시 한 번 눈앞이 환해지자 이미 풀려버린 동공 안으로 붉은 빛이 새어들어 온다. 멈춰버렸던 숨을 거칠게 내쉬고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눈앞에 보이는 건 잔혹한 붉은 눈동자와 핏방울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머리카락..... "이제 내 품에 있을 필요도 없다는 거냐....." 섬뜩한 목소리에 미친 듯 비명을 내지르고 있지만 소리가 되어 나가지 않는다. 끔찍한 공포에 도망치려 발버둥치자 내 몸을 뒤집어 거칠게 밀고 들어오더니 잠시 차가운 손으로 루베라를 쓸다 흉폭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숨도 쉬지 못할 고통에 경련이 이는 손으로 흙바닥을 움켜쥐자 붉은 피가 베어 나온다. 몸이...... 심장이 망가져 간다. 배려 없이 거칠게 밀고 들어와 하얀 허벅지엔 붉은 핏물이 흘러내리지만 내게 모든 분노를 쏟아내려는 듯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죽어버리고 싶었다. 녀석의 거친 움직임에 흙바닥에 몸이 쓸려 바늘로 쿡쿡 찌르듯 온 몸이 아파 온다. 영혼까지 범해버리려는 듯 사정없이 밀고 들어올 때마다 분노와 원망이 쌓여간다. 고통을 참기 위해 씹어댄 입술이 다 헤어져 비릿한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한치의 용서도 없는 잔인한 사내의 행위에 절망을 느꼈다. 겨우 참고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는 걸 느끼자마자 까맣게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눈을 뜨자 온 몸을 칼로 후벼대는 것처럼 아프다. 정신이 나가버린 듯 멍하니 누워있다 겨우 눈동자를 돌리니 보이는 것은 이제 익숙해져버린 붉은 사내..... 사내와 여러 번 몸을 섞었음에도 이렇게 내 몸이 더러워 보인 적은 없었다. 몸을 일으키자 강제로 범해졌음이 역력한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과 허벅지를 타고 내리는 하얀 액체에 구토가 밀려왔다. 이런 행위는......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허락했다. 하지만..... 이 꼴을 보니 그런 것만도 아닌가 보다. 사랑이란 게 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착각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 게 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직은 어리니까...... 아무 것도....... 몰랐던 거다. 오히려....... 내게 이상하게 집착을 보였던....... 황금색 머리칼의 그 녀석이........ 사랑이란 걸 했을 지도....... 눈앞에 보이는 이 붉은 녀석은........ 날 아프게만 하는 이 녀석은......... 눈동자 색만큼이나 잔혹하고 섬뜩해서....... 사랑 따윈 처음부터 하지 않았을 지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이 녀석이 밉다. 눈앞에 떨어져 있는 붉은 단도를 잠시 바라보다 집어들어 검신을 빼내자 얼음칼처럼 시린 빛을 뿌린다.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녀석을 바라봤다. 심장에 꽂아 넣으면....... 내가 아픈 만큼 아파할까....... 떨리는 손으로 겨우 단검을 쥐고 있다 울컥 눈물을 쏟았다. 이렇게 증오하는데...... 이렇게 원망하는데...... 창백해져 피가 흐르는 손으로 티폰의 뺨을 잠깐 쓸다가 몸을 일으켜 옷을 대충 꿰어 입고 빗물이 쏟아져 내리는 숲을 절뚝거리며 정신없이 걸었다. 움직일 때마다 허벅지를 타고 붉은 핏물이 흘러내리고 온몸이 삐그덕댄다. 질척이는 흙탕물이 지옥으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내 발을 휘감아 온다. 어차피 갈 곳도 없다. 아무 것도 기억에 없다. 백짓장처럼 텅 빈 머릿속에 그려진 건 붉기만 한 사내뿐이니...... 다시는 티폰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다. 녀석을 계속 보고 있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끔찍한 애증에....... 겨우 도착한 곳은 폭우에 유량이 불어 거칠게 물이 흐르는 계곡 '이런 곳에서 떨어지면....... 시체도 찾기 힘들겠지....' 모든 것을 씻어 내릴 듯 멈출 줄 모르고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을 한참동안 올려봤다. 볼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눈물까지 씻어버리는 차가운 비를...... 갑작스런 인기척에 돌아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건 붉은 머리칼과 흔들리는 루비 빛 눈동자..... 내가 벙어리였다는 게 다행스럽다. 실수로라도..... 저 사내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으니..... 전에는 그렇게도 말하고 싶었지만..... 이젠....... ......아니다......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감정이 앙금같이 남아있지만...... 이젠...... 모두 끝내버릴 테니....... "이리와....." 어쩐지 애원하듯 들려오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녀석이 다가오자 공포에 뒤로 주춤 물러섰다. 시간이 정지해 버린 듯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 품에서 녀석의 붉은 단도를 꺼내들었다. 내게는 이제..... .....필요 없는 물건..... 내 몸에 손댄 자의 심장에 박아 넣으라고 했지만...... 정작 박아 넣고 싶은 심장엔 절대 들어박히지 않을 테니....... "이리.....내"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티폰의 눈과 닮아 좋아했던 붉은 색 루비를 잠시 바라보다 미련 없이 녀석에게 던져버렸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자꾸만 아프게 심장을 찔러온다.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 붉디붉은 눈동자를 피해 뒷걸음질쳐 망설임 없이 벼랑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의식이..... 희미해져 간다. 만약...... 운이 없어 죽어서도 녀석을 다시 만난다면..... 증오는 지운 채........ 사랑 따윈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신..... 이렇게 아프지 않도록...... Rubera(루베라) #88 뺨을 강하게 올려붙이는 느낌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흐려진 눈으로 올려보니 유이가 잔뜩 헝크러진 모습으로 날 내려본다. "유...이?" "너......왜 이래.....?" 떨리는 팔로 내 몸을 끌어안더니 숨이 막힐 정도로 죄어온다. "갑자기.......또 죽어버리는 줄 알고......" '죽....어? 방금....그건 뭐....였지....?' 뒤죽박죽 헝클어진 퍼즐조각처럼 빈 공간을 메워 가는 기억들이....... 슬프고 끔찍하기만 한 기억들이..... 다시 되돌아오는 게..... 미치도록 두렵다. '왜 또 그때의 기억이.......' 아무래도 오랜만에 녀석의 이름을 들어버려서 그런 것 같다. '결국.....내 정신병 같은 행동의 원인이.....모두.....그 녀석이었어....?!!' 녀석을 향한 알 수 없는 분노와 원망...... 그리고......뒤죽박죽 엉켜버린 감정...... 사랑인지 증오인지 알 수가 없다. 2년 전의 내 감정을...... 녀석에게서 거부감과 따뜻함을 함께 느낀 건.....결국....... 혼란스런 내 마음 때문이었다. 이상한 건....... 분명 황제를 죽인 기억이 있는데....... 죽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그럴 자격도 없었을 텐데...... 왜 녀석에게 그렇게 분노와 원망을 느낀 건지...... 녀석에겐 당연한 반응이었을 지도 모르는데.... 내 죄에 대해선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내 자신..... '설마.....속 편하게 또 황제를 살해한 그 부분만 지워져서 멍청하게 실컷 티폰만 원망하다 자살이라도 한 건가......진짜.....한심하군......' 잠시 고개를 흔들다 얼굴을 간질이는 은발에 정신을 차렸다. '그나저나 이 자식을 어쩐다.......' 내 발작에 꽤나 놀란 듯 내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유이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 볼이 화끈거려 미간을 찌푸렸다. '씹, 도대체 얼마나 때린 거야?' 따끔거리는 느낌에 혀로 입술을 핥아보니 입술이 터졌는지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진다. '이 새끼, 나 죽는다고 놀랐다는 자식이 날 아예 죽이려고 했군.....' "야, 입술 다 터졌잖........." 갑자기 고개를 들어올려 입술을 포개더니 혀를 미끄러뜨리는 녀석에게 놀라 눈을 크게 뜨자 한술 더 떠 목뒤로 손을 집어넣어 고개를 젖히더니 깊숙이 파고든다. 녀석이 전해오는 열기에 반항조차 하지 못한 채 넋이 빠져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타액을 삼키고만 있자 한참동안 농도 짙게 키스하던 녀석이 떨어져 나가 입술에 뭍은 피를 핥더니 입술을 빨아들이고 얼굴 곳곳에 가볍게 키스를 퍼부어 댄다. 열기에 젖은 바이올렛 눈동자로 내 시선을 사로잡을 듯 집요하게 바라보며 부드러운 입술로 목이 마른 듯 입술을 부딪쳐오는 녀석에게 한참동안 붙들려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당황한 눈으로 헐떡이며 녀석을 밀어냈다. "너.....너 이 새끼, 이게....뭐....무슨 짓이야....?!!" 다시 내게 키스하려는 듯 고개를 숙여오는 녀석을 겨우 막고 말까지 더듬어가며 작게 소릴 지르자 이러저리 피하는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다가 진지한 바이올렛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지난번에 말한 거...... 즐기기 위해서 하는 거냐고 물은 거.... 아니라고 하면 받아 줄 거야?" "그....그게 무슨 소리야?!!!" "얽매이는 게 싫어서 여자도 한 번씩만 안았는데 옭아매고 싶은 게 생겨버렸어.... 지위도 명예도 다 필요 없어서 도둑이 됐는데...... 정작 가지고 싶은 건 훔칠 수 없어...... 엄청 가지고 싶은데 훔칠 수가 없어......손도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 버릴까봐..... 너.....내가 무슨 말하는 지 모르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크게 한숨을 쉬어댄다. "그러니까......이럴 수밖에 없는 거야....." 귓가에 속삭이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맛을 보듯 목덜미에 혀를 미끄러뜨려 화들짝 놀라 버둥대자 다리도 움직이지 못하게 내 허벅지에 올라 타 몸을 내리누르고 조용히 말해온다. "가만있어.....나보다 니가 더 느끼게 해 줄게...... 그럼....내가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거 믿어주겠지.....넌 바보라서 말로 하면 못 알아듣는 거 같으니까....." "너 이 새끼, 죽여버......흑...." 말을 끝내기도 전에 가슴돌기를 물고 혀로 자극하자 의지와는 상관없이 잠잠했던 몸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낮게 신음이 울리자 위에 올라탄 녀석이 지독히도 끈적한 애무를 해대기 시작한다. 약간 거친 듯 하면서도 뜨겁고 격렬했던 티폰과는 다르게 너무 부드럽게 몸을 자극해대는 녀석의 움직임에 정신마저 흐물흐물 녹아버리는 것만 같다. 바람둥이라는 말에 걸맞게 정말 엄청나게 여자만 상대해 왔는지 쉽게 깨지는 도자기를 만지듯 뜨거운 입술로 공을 들여 여기저기 자극하더니 헐떡이며 녀석을 거부하는 내 몸을 살짝 들어올려 엉덩이 밑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살 쪘네.....?" 한참동안 아랫배에 키스를 해대며 엉덩이를 주물럭대더니 하는 말에 얼굴에 확 열이 올랐다. "이 자식....만지지...마....흑......아....빌어...먹을....." "하아.....한 가지만 해...." 녀석에게 욕을 해대며 신음을 흘리자 킥킥대며 말하는 녀석의 입술에서 더운 입김이 피부를 자극해온다. "하앗.......비...켜......." "큭, 너무 민감해.....여자보다 감도가 더 좋은 거 아냐?" "이 새끼.........아.........떨어...져.......흐윽....," 손끝이...... 입술이 닿기만 해도 흠칫거리며 비틀리는 몸이 원망스럽다. 녀석이 주는 자극에 제대로 된 반항도 못해보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해 겨우 손을 들어올려 녀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밀쳐내려는 순간 몸을 흠칫 굳혔다. "으응.....아....하지..마....." 엉덩이를 만지작대던 녀석이 엄지손가락으로 꼬리뼈를 쌔게 눌러대자 몸이 흠칫흠칫 떨리고 척추를 따라 야릇한 감각이 타고 오른다. 티폰에게 이미 몇 번이나 안겼던 몸이 성감대를 자극해대자 제멋대로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다리를 벌려오는 것도 모르고 몸을 비틀며 신음을 흘려내자 뜨거운 입술을 허벅지 안쪽에 대고 강하게 빨아들여 붉은 자국을 새겨간다. 손도 대지 않은 페니스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녀석이 갑자기 내 것을 쥐고 입술을 맞대왔다. "하아......으응......" 자극적인 신음을 흘리며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려 하자 내 것을 덥썩 입안에 삼켜버린다. 심장이 거칠게 뛰어대고 끊임없이 거부해대는 머리와는 달리 몸은 이미 쾌락을 쫓아 정신없이 반응을 해댄다. 허벅지를 쓸던 손이 내 것을 감싸 쥐고 까끌한 혀가 민감한 피부에 닿자 녀석의 머리를 밀어내던 손이 힘없이 떨어져 시트를 그러쥐었다. 자극적인 신음소리와 헐떡이는 숨소리가 귓가에 부딪친다. 내 것이 녀석의 손안에서 한계까지 부풀자 천천히 입으로 피스톤질을 시작한다. 시트를 그러쥔 손이 떨려오고 신음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자 속도를 올린다. 하얀 가슴이 들썩이고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휘자 두 손으로 내 것을 꼭 쥐고 입술로 귀두를 조여대 참지 못하고 녀석의 입안에 그대로 사정을 해 버리고 늘어져 버렸다. 녀석이 떨어져 나가자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결국...... 사랑이란 건 믿을 게 못되는 거다. 유이 녀석을 좋아는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는데...... 이렇게 몸이 반응을 해대는 걸 보면...... Rubera(루베라) #89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 녀석 때문에....? 내가 죄책감이라도 느껴야 한다는 건가....?' 어차피..... 이건 내 몸이다. 이 몸으로 누구와 뭘 하든...... 이제는 내 자유....... 그 녀석도...... 마지막엔 창부 대하듯 날 범했으니까....... 아무에게나 몸을 굴려도....... 죄책감 같은 건 느낄 필요가 없는 거다. 한 사람과 해야한다는 법도 없고...... 내가 결혼한 유부남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티폰 녀석에게 했듯이 누구든 맘에 들면....... ......다리를 벌려 줄 수도 있는 거다. 지금은........ 단지....... 친구라는 녀석과 침대 위를 뒹굴고 싶은 맘이...... ......없는 것뿐이다..... 분명...... 그런 거다...... 나른한 표정으로 눈을 뜨자 몸 여기저기에 키스를 해가며 간지럽게 붉은 자국을 새겨나가던 유이 녀석이 가만히 입술을 맞대온다. 반항하지 않자 한동안 입안에 머물더니 입술을 떼고 내 몸을 꼭 끌어안았다. 자신의 말처럼 자신의 즐거움 보단 내가 느끼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는지 더 이상 내게 손을 대지 않는다. "그래서......? 왜 이러는 건데....." 약간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한참동안 침묵을 유지하다 귓가에 조용조용 속삭여온다. "좋아해....키르.... 안고 싶어..... 내가..... .....가지면 안돼?" 평소와는 달리 내게 더 들러붙는 녀석을 보고 짐작은 했다. 이런 말이 나올 거란 걸..... 티폰의 감정은 그렇게 거부해 왔으면서 이 녀석의 감정은 쉽게도 알아채 버렸다. 직설적인 행동과 유치원생 같은 단순함에........ 두 손 다 들어버렸다. '날...가지면 안되냐고....?' 허락을 구하는 것 같지만 분명히 떼쓰는 거다. 고양이처럼 내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대는 녀석을 미간을 찌푸린 채 내려보자 떨어지기 싫다는 듯 내 허리를 꼭 끌어안고 몸을 밀착시켜온다. 아니라고 땡깡은 부렸지만....... 이 녀석은 날 살렸다. 내게 새로 이름도 줬고...... 내가 있을 곳도 마련해 줬다. 내가....... 살아갈 수 있게 해줬다. 하류가 티폰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면....... 키르는...... 어쩌면....... 이 녀석의 손에 쥐어져 있는 지도........ 소중하지만 사랑은 아니다. 분명...... 사랑 따윈.... 애초에 믿지도 않았으니...... "나.....내일 크리올라에 갈 거야....." 녀석이 흠칫 몸을 굳힌다. "왜......" 답지 않게 화가 났는지 낮은 목소리..... "그 자식....약혼식이라잖아....? 축하도 해주고......귀족들도 많을 테니.....돈도 벌고...." '그리고.....정리해야될 게 있어......' "그것.....뿐이야?" "아니......" 녀석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바이올렛 눈동자로 날 바라보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랑.......내기 하나 하자......" "무슨.....?" "내일.....크리올라로 출발하면 황제의 약혼식 날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한달 후엔 결혼이라니까 그때까지 크리올라에 머물자...... 그리고....... 한달 동안 황제가 날 알아보지 못하면....... 내가.......그 녀석의 루베라가 아니라.......키르라는 확신이 들면........ .....니가 하고싶은 대로 해....." 어차피...... 이기려고 하는 내기가 아니다. 특별히 약혼식을 제외하곤 황궁 밖에서 녀석을 볼 수 있는 기횐 없을 테니...... 내기라기보단.......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내 마음을 깨끗이 정리하고...... 키르로 살아가기 위한 핑계......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하는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내가.........지면?" "그냥..........지금까지처럼......." "친구로.....?" "그래.........." 말이 없다..... '뭘....망설이는 거야?' 사실 유이와의 내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녀석은 언제나 자신이 확실히 이길 수 있는 내기만을 하니까....... 처음엔 모르고 이 녀석과 내기를 했다 줄창 지기만 했다. "뭘 그렇게 망설여? 절대 못 알아 볼 거야....머리색도 눈동자 색도.....다르고, 피부색도 옅어졌고.....녀석이 새긴.....루베라도 없어....... 하류가 아니라.......키르란 것도 알고있어....." "하류.....? 그게.....진짜 니 이름이야?" 사실..... 서류상의 내 이름은 서하류....... 아버지 때문에 성을 버렸고...... 티폰 때문에 이름을...... .........버렸다...... "이젠....아니야...." 잠시 날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여온다. "좋아......내가 이기면....." "니 맘대로 해......" 목덜미에 키스를 해대는 녀석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지금은....아냐...." "알아.....하지만.......한 달 후엔 확실히.....내꺼야......." "여자가 더 좋은 거 아니었어?" "너는.....예외야......지금까지 본 여자들보다 니가 훨씬 더 예뻐.......너만 있으면 돼......" "지랄........" "킥, 그나저나 이건 어쩌지?" "뭐가......" 잠이 오려고 해 나른한 목소리로 되묻자 내 몸을 끌어당겨 바싹 밀착시킨다. 갑자기 허벅지 안쪽에 맞닿은 뜨거운 물체에 몸을 흠칫 굳히고 눈을 번쩍 떴다. "이....이 새끼......뭐...뭐야?!!!!" "니껀 해결했는데....내껀 못했어...." 얼굴이 확 달아올라 녀석을 밀쳐버렸다. "저....저리 비켜!! 떨어져!!!" "하아....한달 동안 어떻게 기다리지? 어차피 할 거 지금 하면 안될까? 안 아프게 잘 해줄게! 응? 아까도 기분 좋았지?!!"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이 미친놈!! 빨리 나가서 그거나 해결해!" "지금 이 시간에 여자를 어떻게 찾으라고.....그리고 내 마누라 놔두고 다른 여자 안으라고?!!" "이게 미쳤나!! 누가 니놈 마누라야?!!! 죽고싶어?!!! 그리고 여자 없으면 니......니놈 손으로 해결하면 되잖아?!!!"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버벅대자 심술딱지 같은 자식이 더 들러붙어 귓가에 속삭여온다. "나, 내 손으로 해본 적 한 번도 없어서 안될 거 같은데.....손 좀 빌려주면 안돼?" "뭐?!!" 놀라 소릴 꽥 지르자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왜? 닳는 것도 아닌데....?" "이 자식, 그런 문제가....." "친구끼리도 해주는 거라니까....." "거...거짓말하지마!!!" "쳇, 쪼잔하기는.....손 하나 가지고....난 아까...." "다.....닥쳐!!!" ".......입으로까지 해줬는데....." 기어코 말을 꺼내며 쨍알대는 녀석을 보니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한다. "누가 해달라고 했어?!!! 이 자식이 정말 오늘 죽고싶은가....!! 혼자 해결해!!!" 결국 참지 못하고 발로 냅따 걷어차자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윽....너무해.....!! 두고봐....한달 후엔 잠도 못 자게 해줄 테니....." "이 새끼, 죽·인·다!!!" 바닥에 주저앉아 투덜대는 녀석에게 쏘아붙이고 벌떡 일어나 옷가지를 헤쳐 단검을 손에 들었다. "헉, 키....키르....!! 자...잠깐!! 금방 해결하고 올 테니까....먼저 자면 안돼!!!" 바보같은 소릴 지껄이고 후다닥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는 녀석을 기가 막힌 듯 바라보다 이만 부득부득 갈고 다시 침대 위에 털썩 누워 잠이 들었다. Rubera(루베라) #90 다음날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크리올라로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옷을 입고 유이와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데 아리한과 카일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두목, 키르.....정말 갈 거야?" "왜 한 달씩이나......" "딱 한 달만 있다 돌아올 거야....." 유이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쌍둥이들이 풀이 죽어 바라본다. "키르.....꼭 돌아와...." 가만히 녀석들을 바라보다 씨익 웃어줬다. "걱정마! 돈이고 보석이고 잔뜩 훔쳐서 돌아오면 파티라도 벌이자.....!!" "응......" "킥, 아무리 탐나도 크리올라 황제의 물건은 노리지마....손이 잘리니까....." "알아......." 씁쓸하게 대답하고 자릴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섰다. 지면위로 내려서자 마리가 다가온다. "벌써 가게? 아침식사도 하지 않고......" "빨리 가지 않으면 늦어....." 잠시 날 바라보다 하얀 머리카락을 쓸더니 손에 들려져 있던 걸 내게 내민다. "도시락이야.....가다가 두목이랑 먹어...." "응....." 내게서 눈을 떼고 유이를 바라보며 험하게 말을 던진다. "두목, 한 눈 팔면 죽어!!!" "킥, 당연하지! 걱정 마....." 내 손목을 잡아끄는 유이를 따라 말을 매어둔 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다른 녀석들이 어깨를 툭툭 치며 한달 후에 보자고 빙글거리며 말을 붙여온다. 두 달 넘게 지내온 아지트를 잠시 바라보다 말에 올라타 크리올라를 향해 출발했다. 말을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푸득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역시나 피이가 따라붙는다. "저 녀석, 또 따라오는데 어쩌지.....?" 미간을 찌푸린 채 유이를 바라보자 키득이며 날 바라본다. "그냥 둬.....혹시 알아? 황제의 숲에서 짝이라도 찾을지......이 숲엔.....타니안이 별로 없으니...." "그럴까......" 잠시 피이를 올려보다 다시 숲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한참만에 숲을 벗어나 도착한 곳은 크리올라와 뮤즈니안의 국경........ 엄청나게 큰 다리를 바라보니 어쩐지....... 기분이 가라앉아 간다. '케레스.......잘 지내고 있겠지......시온은.....설마 티폰에게 벌이라도 받은 건.....' 키리안 숲에 살면서 잊으려고 애썼던 것들이 다시 머릿속을 휘저어댄다. '이번에 얼굴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가자....키르....." "응....." . . . 꼬박 사흘을 달려 겨우 늦지 않고 크리올라의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케레스랑 황성을 빠져 나올 땐 황제의 숲을 가로질러 와서 그런지 그때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려 약혼식에 늦을 지도 모른다고 조바심을 냈는데....... 다행히 도착한 거리엔 황제와 예비 황비가 지날 길을 병사들이 정비하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지난번 축제보다 한껏 들뜬 분위기에 빠져있었다. "늦진 않은 거 같네......황성에서 나와 이 길을 따라 수도를 가로지르고 다시 황성으로 돌아가 약혼식을 올릴 거야....." "응......" "어쩔래? 황성 근처로 가서 볼까?" "아니....그냥 여기서...... 잠깐...... 얼굴만 봐도 충분해......." "시작하기 전에 한달 동안 머물 곳 잡아놓고 말도 놓고 오자...." "응....." 말머리를 돌려 적당히 머물 곳을 정하고 말을 매어둔 후 다시 거리로 나섰다. 지난번 티폰이랑 본 거리와 광장은 수도의 극히 일부분이었는지 도시의 방대함은 새삼 봐도 놀라운 것이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며 다시 도착한 곳은 병사들이 한 명씩 열을 지어 길가를 메우기 시작한 거리..... "벌써 행렬이 근처까지 도달했나봐....." 유이의 손에 이끌려 인파를 뚫고 길 가까이까지 접근했다.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환호성이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행렬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심장이.....두근대기 시작한다. 수많은 병사들이 열을 지어 앞서가고...... 뒤엔...... 녀석이...... 까만 색 흑마에 올라타 여전히 변함없는 차가운 시선을 무료한 듯 인파에 던지고 있었다. 붉은 머리칼과 이제는 내 모습이 담기지 않는 붉은 눈동자에 시선을 빼앗겨 넋이 나간 듯 바라보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두려움에 주춤 뒤로 물러섰다. '저 녀석이......무서워? 설마......' 녀석에게 눈도 떼지 못하고 떨리는 몸으로 물러서자 유이 녀석이 어깨에 팔을 둘러온다. "역시.....저 녀석이 황제였던 거야?" "응......" 퍼뜩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온 건...... ......녀석의 손가락에 끼워진 붉은 루비 반지..... '저.......루비.......... ..............내 거야.....?!!'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맞췄다. 분명..... 반지로 변하긴 했지만 루비는...... 시온에게서 받은 것..... 컷팅이 특이해서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다. 붉은 눈동자 같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불만스럽게 루비를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시온이....... ........보이지 않는다. 귀족들의 행렬을 살펴봐도..... 당연히 끼어있어야 할 왕족인 주제에..... 걱정과 실망을 감추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는 동안 녀석이...... 내가 서있는 곳으로...... 티폰의 말이 점점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티폰의 말을 뒤따르는 화려한 마차..... 안에는...... 녀석의 신부가 될 여자가 타고 있겠지..... 마차 안으로 시선을 던지다 놀라 크게 눈을 떴다. 분명...... 본적이 있는 여자..... 그날.... 파티가 있던 밤.... 티폰과 함께 있었던 가슴 큰 밤색 머리칼의 미인..... 윤이 나는 머릿결이.... 까만색으로까지 보인다. 도대체 저 머리칼을 보고.....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저 자식.......저 여자 좀 봤다고 그 지랄을 해대더니.....황비가 될 여자라서 그랬던 건가..... 변태같이 역시 까만 색에 집착하고 있었군.....그러고 보니 말 새끼도 까만 색이었잖아.....' 오랜만에 길다란 면상이나 볼까하고 말에게 시선을 던지는 순간..... 붉은 눈동자와 잠깐 눈이 스친 듯한...... 놀라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시선이..... .......이쪽을 향해있다. '설마.......'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던 유이가 날 끌어당겨 귓가에 입술을 대어온다. "이쪽 보고있는 것 같지 않아?" "설마....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까만 머리카락도...... 까만 눈동자도 아닌데..... 녀석이 날 바라볼 리 없다. 본다 해도..... 잔혹한 눈빛 따윈 보고싶지도 않아...... 뒤에서 자꾸 늘어붙어 주위 시선도 개의치 않고 하얀 머리칼에 키스를 해대는 녀석을 밀어내고 붉은 눈동자엔 시선도 던지지 않은 채 바로 뒤돌아 섰다. "그만.....가자....." 유이도 잠시 자리에 머물다 재빨리 내 뒤를 따른다. 겨우 구름같이 몰려든 인파를 뚫고 복잡한 거리를 벗어나자 뒤에서 떠들썩한 소란이 일기 시작한다. "뭐지....?" 유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자 무심히 앞으로 걸어나가며 말을 던졌다. "구경꾼이 행렬에 난입이라도 했나보지....황비 될 여자도 엄청난 미인이던데....." "그런가......" 걸음을 빨리 해 다시 근처에 미리 잡아둔 여관으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유이 녀석이 다가와 옆에 앉더니 새하얀 머리카락을 지분댄다. "많이....자랐네?" "응?" '그러고 보니......' 부스스한 머리카락이 귓가를 살짝 덥고 뒷덜미를 가릴 정도로 자라있다. 말없이 허리춤에 찬 단검 중 하나를 빼들어 뒷덜미까지 자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고 베어내려던 찰라 유이가 재빨리 손을 붙잡아온다. "또 자르려구?" "응...." "왜? 아깝잖아....." "여자도 아니고......아깝긴......귀찮아....." 다시 손에 힘을 주자 단검을 뺏어든다. "그냥 둬....." "뭐?!!" 눈썹을 치켜 뜨고 녀석을 바라보자 단검을 던져버리고 내 몸을 꼭 끌어안더니 무게를 실어와 그대로 녀석에게 깔려 침대 위로 눕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 새끼, 왜 자꾸 올라타고 지랄야?!! 비켜!!" 녀석을 밀어내려고 버둥거려도 위에서 누르는 힘을 당할 수가 없다. "하아....기분 좋아.....그냥 이대로 있자...." "이 변태새끼, 무슨 헛소리야?!! 무겁단 말야!! 비켜!!" 소릴 버럭 지르자 그대로 반 바퀴 굴러 자세를 역전시키더니 빠져나가지 못하게 팔로 꽉 죄어온다. "이제 됐지?" "이 자식이 정말.....!!!" 마구 몸부림쳐 겨우 녀석의 가슴을 짚고 몸을 일으키자 녀석의 복부 위에 앉아버린 꼴...... "킥, 이것도 괜찮은데....!!" "이....이 저질새끼!! 방 하나 더 잡아! 니놈이랑 같이 안자!! 씹, 돈 아까워서 하나만 잡았더니 벌써부터 이 지랄야?!!!" "뭐?!!! 안돼!!!" 갑자기 소릴 꽥 지르는 녀석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바라보자 다급하게 입을 연다. "이제 너 없으면 잠 안 온단 말야!!!" "놀구있네!! 눕기만 하면 퍼대 자는 주제에.....!!" "너 있을 때만 그랬잖아!! 그리고 수도 안에 사람들 잔뜩 몰려서 방도 없단 말야!!" 사실이다. 이 방도 몇 개 안 남은 것 중 하나였으니..... 한숨을 쉬며 녀석의 위에서 내려오려고 하자 손목을 붙들어온다. "뭐야? 또?!!" "킥, 우리 내일부터 어디 털까?" 역시나 도둑놈답게 자신의 본분은 잊지 않는다. 잠시 가라앉은 눈으로 바이올렛 눈동자를 내려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성...." "뭐?!!!" 녀석이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키다 내 무게에 다시 침대 위로 털썩 누워버린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침대 위에 은색 실처럼 제멋대로 퍼진 머리카락과 화가 난 듯 잔뜩 찌푸린 바이올렛 눈동자에 잠시 시선을 뒀다. 아이처럼 숲 속을 헤집고 다니는 녀석 치곤 피부도 하얗고 귀족적인 얼굴...... 이렇게 진지한 얼굴을 하면 어떤 여자라도 넘어올 만큼 잘난 얼굴인데.....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녀석의 얼굴에 손을 대자 깜짝 놀라 날 바라보더니 바람둥이답게 바로 내 손을 끌어당겨 손가락에 입술을 맞댄다. "그래서.....갖고 싶은 게 뭔데?" "황제가 끼고있던........... ............루비반지...." -91- "뭐?!!!" 녀석이 바로 얼굴을 들어올리고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황성 안에 있는 물건도 아니고 황제가 끼고 있는 반지?!!! 포기해! 불가능하다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접근할 수도 없고 여자도 아니니 파티에 가서 춤을 추다가 빼낼 수도 없어!! 어쩌려고 그래? 잡히면 바로 사형이야.....!! 그리고 너....루비는 싫어했잖아!!" "그거.....내 거야..... 되찾아 오는 것 뿐이야..... 그 자식이........ 내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게 싫어..... 하류라는 녀석이 그곳에 존재했다는 증거 따윈 다 없애버릴 거야..... 운이 좋으면 사파이어랑......진주도 찾을 수 있겠지....." "너무 위험하잖아!! 꼭.....되찾아야겠어?" "소중한.....친구 녀석한테 받은 거야.....그리고 황성 내라면 잘 알고 있으니까....... 밤에 몰래 잠입해 황제가 자고있을 때 침실로 들어가 훙구가루를 뿌리면 절대 잡히지 않아....." "무모한 짓......하지마......" "걱정 마.....지금까지 잡힌 적 한 번도 없었잖아?" "귀족가와 황성은 다르다구...!!" "할 수.....있어....." 녀석이 팔을 잡아당겨 내 몸을 끌어안는다. "젠장, 잡히지도 말고 들키지도....마.....그리고 허락해 주는 대신 머리카락도 자르지마...."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쓸어보는 녀석을 바라보자 씁쓸한 표정으로 내게 시선을 던진다. "그래서....? 언제 할 건데?" "오늘 밤......약혼식 치르고 약간이라도 풀려있을 테니.......빠를수록 좋잖아? 그리고 넌 황성 안으로 들어오지마....." "왜?!!!" "너무 위험해.....근처에서 말이나 대기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어.....둘 보단 혼자 갔다오는 게 더 안전하고 빠르니까" "키르!!!"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는 녀석에게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나 잡히면 꺼내줘야지!!" "웃기지마!!! 너 잡히면 죽을 줄 알아!! 내기고 뭐고 다 취소해버리고 강제로라도 아지트로 끌고 갈 테니까 알아서 해!!!" "킥, 알았어!!" 녀석의 위에서 몸을 일으켜 침대 아래로 내려섰다. "준비하자.....훙구가루는 있지?" "응....그리고....이것도 가지고가...." "뭐야? 이게....."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이 내민 작은 가죽으로 만든 주머니를 바라보자 손을 끌어 쥐어준다. "가지고가.....룬한테 훔친 건데 공기 중에 뿌리면 단박에 기절하니까..... 독한 술처럼 기억을 혼란시키기도 하고...... 큭, 지금까지 내가 얼굴 들키지 않은 게 실력 덕도 있지만 이 약도 한 몫 했거든..... 혹시라도 위험하면 써....조금밖에 없으니까 쓸 일 없도록 조심하고...... 뿌릴 때 숨쉬지 말고 조심해...." '미친 의사 놈.....별걸 다 만드는군......' "그럼, 지금 어두워지고 있으니까 출발하자.... 황제의 숲 근처에 말을 대놓고 완전히 어두워지면 황성 안으로 들어가면 돼....." 어둠을 타기 위해 새카만 옷을 입고 밤에도 눈에 잘 띄는 하얀 머리카락을 까만 천으로 둘러맨 후 대충 짐을 챙기고 말에 올라 황제의 숲으로 향했다. 1시간 정도 말을 달려 도착한 곳은 황성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숲의 가장자리......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피이가 맴돈다. "저 녀석, 아직도 안 돌아 간 건가.....?" 가죽장갑을 끼고 작게 부르자 은빛 날개를 퍼덕이다 팔에 내려앉는다. "이 녀석....나 엄마 아니란 말야....." 녀석의 부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까딱인다. "숲에서 애인이라도 찾아봐....." 손으로 잠깐 은빛 깃털을 쓸다 숲 쪽으로 날려주자 한참을 맴돌더니 숲 안쪽으로 사라져 간다. 주위는 이미 까만 어둠에 묻히기 시작하고...... 불이 환히 밝혀진 황성을 잠시 바라보다 수풀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연회라도 열렸나보네.....자정 될 때까지 기다리자...." 수풀위로 몸을 눕히자 유이가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지금이라도......그만 두면 안돼?" 불안한 듯 녀석이 날 바라본다. "안돼....." 단호하게 말을 잘라버리고 시선을 올리자 까만 비단 같은 밤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동안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스륵 감았다. "자는....거야?" "응......어차피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좀 자두자....." "예뻐....." "그래....." 이 세계에서...... 밤하늘은 내게 두 번째로 아름다운 것...... 첫 번째는...... 이제 볼 수 없다. 아니..... 보고싶지 않다..... "너 말야....." 의문을 품기도 전에 입술에 따뜻한 것이 맞닿아 온다. 온몸을 녹일 것처럼 부드러운 키스에 몸이 나른해 지고...... 거부하려 들어 올렸던 손을 멈칫한 채 약혼식 축하연이 한창 열리고 있을 황성에 흘끔 시선을 던지다 아프게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짜증이나 유이 녀석의 얼굴을 감싸 끌어당겼다. 의외라는 듯 은빛 속눈썹이 열리더니 부드러운 바이올렛 눈동자가 날 바라보고...... 바로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파고들어 부드럽게 자극을 하더니 내 혀를 휘감아 온다. 목구멍으로 타액이 넘어와 작게 신음을 흘리자 내 혀를 놓아주고 타액이 묻은 입술을 핥고 빨아댄다. 숨이 막혀 얼굴이 빨개진 채 헐떡이자 녀석이 장난스럽게 킥킥거리더니 내 몸을 꼭 끌어안고 눈을 감는다. 입술이..... 뜨겁다..... 키스로 약간 부푼 입술을 가만히 손끝으로 만져보다 조용히 쓴웃음을 지었다. 몇 달 전만 해도 내 몸에 손끝만 스쳐도 귀신같이 알아채던 티폰 녀석이..... 이렇게 지척에서 다른 녀석과 키스를 해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자 어쩐지 묘한 기분....... 속이....... ......쓰리다....... '그 자식도 이제 약혼까지 했으니.....나 같은 사내새끼 붙들고 변태 짓은 하지 않겠지..... 너 닮은 자식은 절대 낳지 말고 마누라 닮은 자식새끼만 왕창 낳아서 잘먹고 잘살아라!!' 쓴웃음을 흘리며 다시 까맣기만 한 밤하늘에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약혼녀까지 생겼으니 어쩌면 침실엔 그 녀석 혼자 있는 게 아닐 지도 모른다. 나랑 있었을 때도 밤 낮 가리지 않고 해댔으니..... 하물며 약혼녀라면..... 그 녀석과 둘 만 지냈던 곳에 타인이...... 나만을 바라봤던 붉은 눈동자가.... 섬세하고 강한 손이..... 따뜻한 입술이..... 이젠..... 내 것이 아니다. '큭, 잘하면 황제가 속도위반 하는 것도 볼 수 있겠군......' 킥킥대며 유이의 품속으로 파고들자 볼을 타고 따뜻한 물방울이 흘러 바닥에 떨어져 내린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귓가에 자는 줄 알았던 유이 녀석의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들자 고개를 들지 않고 중얼거렸다. "잘하면 말로만 듣던 엄청난 포르노 영화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을 거 같아서....." "응?" "아냐.....자자...." Rubera(루베라) #92 숲 속에서 그렇게 유이 녀석과 태평하게 잠을 자다 눈을 뜬 건 다행히도 자정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잠에서 헤어날 줄 모르는 유이 녀석을 두들겨 깨워 필요한 걸 모두 품에 넣은 후 자꾸만 가지 말라고 들러붙는 유이 녀석을 겨우 떼어내 황성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황제의 숲을 통해 황성의 지척까지 접근한 후 주위를 살펴보자 연회는 거의 마무리되었는지 대낮같이 밝혀진 중앙홀에선 간간이 음악소리가 울려오고 귀족들의 마차도 얼마 남지 않았다. 황제의 침실이 있는 2층을 확인해 보니 불이 꺼져있다. 그리고...... 창 아래를 지키던 병사들도 그 날 이후 물려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녀석은..... 내가 없을 땐 주위에 보초를 많이 세우지 않는다. '하긴.....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이라면......' 벽을 타는 건 간단하다. 그 동안 해온 게 그 짓이니.... 잠시 방대한 성을 바라보다 티폰의 침실과는 다른 쪽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시온이..... 낮에 행렬에 녀석이 보이지 않은 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눈으로 잠깐 확인이라도....... 녀석의 침소는 다행히 1층...... 슬금슬금 주위를 살피며 다가가 1층 발코니 위로 올라서 시온 녀석의 침실에 달린 창을 하나씩 건드려 보지만 열린 창이 하나도 없다. 할 수 없이 품에서 납작한 도구를 꺼내 창 틈으로 밀어 넣고 걸쇠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3중으로 걸린 걸쇠를 겨우 소리가 나지 않게 풀고 문을 슬쩍 열어 안으로 발을 내딛자 침실 안쪽은 까만 어둠 속에 잠겨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잠시 눈이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 가만히 서있다 몇 번 와본 적 있는 녀석의 넓은 침실 안을 거침없이 가로질러 침대로 다가갔다. 다행히 누군가가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침대 맡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다 자고있는 녀석에게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역시..... 녀석이다..... '시온.......' 눈물이......떨어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아이처럼 새근대며 잠을 자고 있는 녀석을 계속해서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붉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주자 약간 마른 듯한 녀석의 얼굴이 드러난다. 볼을 살짝 쓸다가 몸을 일으켰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런 모습이라도 두 눈으로 확인했으니..... 돌아서려는 순간 뒤척인 녀석의 품에서 푸른 사파이어 목걸이가 모습을 드러내자 움직임을 딱 멈췄다. '이 자식들......형제가 나란히 똑같은 짓만 하고 앉았군......' 녀석이 내게 준 사파이어....... 분명 옷에 장식하는 보석이었는데 고스란히 목걸이가 되어 있었다. '나 죽었다고 준 것도 도로 뺐냐?'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풀고 품에 넣었다. "이 따위 거 가지고 있으면..... 쓸데없는 생각만 할 테니...... 내가 가져갈게....... 그땐..... 고마웠어....시온...... 니 말대로 이젠 행복하니까....... 걱정하지마....." 이마에다 살짝 키스를 하고 뒤돌아서 다시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이제.......하나만 해결하면......' 티폰의 침실을 잠시 바라보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주위를 돌고있는 병사들이 멀리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벽을 타기 시작했다. 내려가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올라가 본 적은 처음이다. 두 달 동안 헛일만 한 게 아니었는지 꽤 간단하게 벽을 타고 올라가 2층 발코니에 내려섰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아래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희미한 빛이 새어나온다. '아직....자지 않는 건가....' 침실 내부를 들여다보다 다행히 평소와 같이 열려있는 창을 약간 열자마자 육중한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침실 안으로 들어서 화들짝 놀라 숨을 죽이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 들어선 사람은 분명..... 녀석의..... ......약혼녀...... '역시.....' 주먹을 꼬옥 그러쥐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인하게 될 줄은....... 여자가 바라보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니 어두운 침대 한 켠에 녀석이...... .......차가운 눈을 빛내며 앉아있었다. 여자가 침대로 다가가자 녀석이 무겁게 입을 연다. "벗어라...." '뭐?' 갑작스런 말에 그 자리에서 시선도 돌리지 못한 채 굳어있는데 녀석의 앞에 서있던 아름다운 여자는 잠시 움찔하더니 망설임 없이 옷을 벗어 내리기 시작한다. 화려한 드레스가 떨어져 내리고..... 희미한 달빛에 둥근 어깨와 하얀 피부......아름다운 굴곡이 드러난다. 확실히 사내와는 다른...... .....아름다운 몸.... 황제에게 걸 맞는....... 여자가 얌전히 침대 위에 눕자 자신도 화려하기만 한 옷을 하나씩 벗어 아름다운 나체를 드러내더니 그대로 여자의 몸 위에 겹친다. 짜증나도록 뛰어대던 심장이...... 얼음 조각이 박힌 듯 싸늘하게 식어간다. 충격으로 꼼짝도 못하고 눈만 크게 뜬 채 그렇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꽤나 급했던지 녀석이 여자의 짙은 밤색 머리칼에 얼굴을 묻더니 일체의 애무도 없이..... 키스도 한 번 하지 않고..... 여자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더 이상...... ......보고싶지 않은데....... 이런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굳어버린 몸이.......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눈동자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얗고 매끈한 몸이 흔들리면서 붉은 입술에서 고통스런 신음이 흘러나와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나 같은 건....... 빨리 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입술을 꽉 깨물고 눈을 감아버렸다. 점점 녀석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고통에 내지르던 신음이 쾌감에 젖어가자 귀를 틀어막아 버렸다. 떨리는 손으로 아플 정도로 귀를 틀어막아도 들려오는 신음소리에 소리 없이 잿빛 눈동자에서 투명한 물방울을 떨궈냈다. 떨리는 입술을 악물고 다시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쾌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몸에 엉겨붙은 여자의 내부에 녀석이 사정을 하고 바로 떨어져 나가는 모습..... 손가락 마디가 아파 올 정도로 꼭 쥔 주먹을 펴고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냥...... 단순히 분한 것뿐이다..... 녀석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어차피....... 이 정도였던 것을...... 그저 창부처럼 녀석이 욕정을 풀고 싶을 때 멍청하게 반항도 하지 않아 꽤나 편리한 잠자리 상대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거다....... "물러가라....." 침실 안에서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폐하....." '뭐야, 갑자기.....' "물러가....." 애원하듯 녀석의 약혼녀가 안겨오지만 차갑게 뿌리치고 낮은 목소리로 내뱉자 잠시 몸을 굳히더니 바로 드레스를 다시 입고 조용히 침실에서 물러난다. '뭐야....설마....저 잔인한 새끼, 약혼녀도 욕정을 풀기 위한 도구로 쓸 셈인가.....?!!' 놀람보다는..... ......분노가 앞선다. '빌어먹을 자식.....변태같은 새끼!! 창부도 쫓아내지 않았으면서 자기 약혼녀는 쫓아내? 여자보다 사내새끼가 더 좋은가보지? 젠장할 새끼........ 저 여자도...... .......불쌍하게 됐군......' 난..... 녀석에게서 벗어났지만....... 저 여잔..... 평생을 녀석에게 얽매여 있어야 할 테니...... 사랑 같은 건 하지 않는 잔혹한 녀석과...... 속으로 실컷 욕을 퍼부어 대고 가라앉은 눈으로 침실 안을 바라보자 녀석이 갑자기 침대 위에서 킥킥거리며 한참을 웃어대더니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가 버린다. '저 자식.....왜 저러는 거야?!!!' 곧 시녀들이 욕실 안으로 들어서고....... 얼마 후에 나온 녀석에게 가벼운 옷을 입히고 모두 물러나자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있다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려있던 병을 집어들어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꽤나 큰 병에 가득 찬 호박색 액체를 숨도 쉬지 않고 마셔가며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허무한 웃음을 흘려댄다. Rubera(루베라) #93 -티폰- 육중한 문이 열리고...... 오늘...... 내 약혼녀가 되어버린 여자가 침실 안으로 조용히 들어선다. 어차피...... 결혼식까지 기다릴 정도로.....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벗어라....." 한치의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싸늘하게 내뱉자 잠시 움찔하더니 거침없이 옷자락이 떨어져 내린다. 달빛에 비추어진 하얀 나신은 확실히 아름답지만...... 내겐......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싸늘한 시선에 여자가 눈을 감고 침대에 눕자마자 몸을 겹쳤다. 부드러운 피부가 몸에 맞닿아 오지만 흥분조차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어둠에 거의 까만 색으로 보이는 여자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었다. 이 여자를 선택한 것도..... .....이것 때문이었으니까...... 애무조차 하지 않고 여자의 내부로 파고들었다. 어차피...... 녀석과는 달리..... 마음을 전하기 위해....... 쾌락을 주기 위해 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어찌되든 상관없다. 기계적인 움직임에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던 여자가 어느 순간 쾌락에 젖어 내 몸을 휘감아오자 미간을 찌푸린 채 눈을 감아버렸다. 상상을 하면....... 이런 일쯤이야....... 간단하다.... 내 밑에서 쾌락에 젖어 신음을 흘리고 있는 건....... 내 몸을 휘감아 오는 건..... 그 아이라고..... 그렇게.......상상해 버리면 간단한 일인데...... 녀석과는 달리..... 이 여자의 내부에선 전혀..... ......따뜻함을 느낄 수가 없다. 절정에 달한 여자의 내부에 사정을 해버리고 바로 빠져 나와 버렸다. 이곳에서...... 그 아이를 안았던 곳에서 다른 자와 몸을 섞었단 생각이 퍼뜩 머리 속을 스치자마자 기분이 한없이 가라앉아 간다. 역시........ 이곳으로 불러들이는 게 아니었는데...... "물러가라....." "폐하......." 차갑게 뱉어내자 애원하듯 내게 매달려 온다. "물러가....." 살기를 띄고 노려보자 눈치 빠른 귀족가의 영애답게 바로 몸을 추스리고 침실 밖으로 사라져 간다. 사랑 때문도 아니고.....욕정을 풀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순히.... 씨를 뿌리기 위한 행위에 혐오감만 느껴진다. "큭......" 허무한 웃음이 새어나간다. 내 루베라는....... .....사랑하기 때문에 안았는데...... 녀석은..... 결국..... 내가 욕정을 풀기 위해 안았다고 생각한 채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결국......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되어버릴 줄 알았다면....... 그 아일 안고...... 사랑한다고 몇 번이든 속삭였을 것을...... 이제 그 말을....... ....다시는 꺼낼 수 없게 돼버렸다. 살아있는 한 다시는 볼 수 없을 테니....... 그러고 보니 오늘........ 녀석과 닮은 아이를 봤다. 묘하게...... 눈길을 끄는......... 분명 밤하늘처럼 까만 눈동자에 푸른빛이 날 정도로 칠흑 같은 머리칼이 아닌데...... 눈처럼 하얀 머리칼과 옅은 잿빛 눈동자에 시선이 끌려........ 옆에서 그 아이에게 밀착해 강한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나는 머리칼에 키스를 하고 있는 녀석이 이상할 정도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시야에서 그 아이가 사라져가자 나도 모르게 진열에서 벗어나 그 아일 쫓고 있었다. '큭, 닮기라도 했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거냐..........' 한참동안 허무하게 웃음을 흘리다 몸을 씻고 나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커다란 술병에 담긴 술을 병 채로 들이켰다. 목구멍에 화끈한 열기가 퍼져가고 정신이 몽롱해져 온다. "큭큭......." 이럴 줄 알았으면 제 정신으로 여잘 안는 게 아니었는데....... 술을 마시고 안았으면 기억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멍청한 짓을 했군......' 잊을 수만 있다면.......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녀석처럼....... 날 기억하지 못하고.......3년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던 하류처럼...... 눈을 뜨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았으면..........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꿈속에서라도 그 아일 볼 수 있었으면........... 그러면.............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Rubera(루베라) #94 그렇게 한참이 지나......... 침실 안을 밝히던 희미한 불이 꺼지고 주위가 쥐 죽은 듯 조용해지자 도망칠 때를 대비해 창 안쪽에 로프를 단단히 매어둔 후 유난히 민감한 녀석을 깨우지 않기 위해 숨도 쉬지 않고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살았을 때는 모르고 있었는데....... 침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하게 호박 태우는 향과 함께 녀석의 체향이 느껴진다. 그리고....... 희미하게 코끝을 자극하는 정사의 냄새....... '빌어......먹을.....!!' 잠시 숨을 죽이고 주먹을 꼭 쥔 채 가만히 서있다 천천히 침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팽팽한 긴장감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근육이 저려온다. 침대로 다가갈수록 콧속을 찌르는 진한 향기에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 독한 알콜 냄새...... .............술 냄새다. 아지트에 있는 녀석들이 마셔대는 술을 마셔본 적이 있다. 전에 축제 때 마신 술은 과일향이 나고 잘 취하긴 하지만 독하지 않고 취기가 빨리 사라지는 반면, 알콜 향이 나는 술은 엄청 독한 술......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멋모르고 마셨다가 필름이 끊긴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이상하게 유이 녀석이 내게 술을 먹이려고 끈질기게 시도를 해왔지만 결국 열흘만에 겨우 발길질로 나가 떨어졌는데...... '그럼, 아까 술을......마신 거였나.....그렇게 큰 병에 있는 독한 술을 물 마시듯 마셔대? 미친놈......' 약간 마음을 놓고 침대로 다가서자 녀석의.....붉은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속눈썹에 루비 빛 눈동자가 가려져 있긴 하지만 지독히도 매혹적인 얼굴...... 이전엔 나만을 바라보던 심홍색 눈동자가 이제는...... 이 침대 위에서........ 다른 사람을........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다 긴장으로 땀이 베어 꼭 쥐고 있던 주먹을 쥐었다 폈다하며 긴장을 풀었다. 이 정도로 만취상태니 훙구가루는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이 녀석은 안심할 수 없다. 손을 품속에 넣어 유이에게서 받은 훙구가루를 조심스럽게 녀석에게 뿌렸다. 빌어먹을 가루엔 수면에 마비효과까지 있으니 어쩌다 깨어나도 제대로 움직이려면 한참은 걸릴 거다. 잠시 약 기운이 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침대 위로 슬그머니 올라서 녀석을 가까이 정면으로 바라본 순간 공포에 몸이...... .......굳어버렸다. 아직도...... 몸은...... 이 녀석이 준 끔찍한 고통을 기억하고 있는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바보.......같은...... ........다....... 지난 일이야.....' 자꾸 흐트러지는 호흡과 떨려오는 몸을 겨우 진정시키고 녀석의 왼손을 살짝 들어올리자 붉디붉은 루비 반지가 눈에 들어온다. 최상급 루비는....... 티폰의 눈동자처럼 까맣기만 한 어둠 속에서도 붉은 빛을 뿌려댄다. 무서울 만큼 아름다운 빛깔....... '젠장.....비싼 값에 팔아버릴 테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숨을 멈춘 채 섬세한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내기 시작했다. 숨을 죽인 채 길기도 한 손가락에서 녀석이 뒤척일 때마다 흠칫거려가며 겨우 반지를 빼내자마자 가늘게 숨이 터져 나왔다. 이제 이곳을 나가기만 하면...... 루비 반지를 품안에 집어넣고 가만히 잠들어있는 티폰을 내려봤다. '날 보면......또 죽이려 들 테지.....' 유이 녀석과 한달 간 크리올라에 머물기로 했지만 역시 이 녀석을 볼 일은 이제 없을 거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 지독히도 잘난 얼굴을 들여다보다 시선이 멈춘 건 선이 예쁜 입술...... '이 자식이 웃는 건.......평생 못 보겠군......' 무슨...... ......생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끌리듯 녀석에게 다가가 가만히 입술을 포겠다. 눈을 살짝 감고 부드러운 입술을 슬쩍 빨자 어지러울 정도로 독한 알콜 냄새가 입안에 확 번진다. 가만히 혀를 내어 맛을 보듯 녀석의 따뜻한 입술을 핥다가 멍청한 내 행동에 화들짝 놀라 입술을 떼어낸 순간 심홍색 눈동자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몸이...... .....굳어버렸다. '도대체.....무슨 짓을.... ....한 거야.......' 술과 잠에 취해 드러난 루비 빛 눈동자는 평소완 다르게 약간 흐리다. 공포와 충격에 뻣뻣이 굳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 녀석이 베개 속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날카로운 빛을 뿌리는 장검을 꺼내들어 내게 휘둘러왔다. Rubera(루베라) #95 -티폰- 술에 무디어진 감각이 수 차례의 경험에 의해 반응해 온다. 분명....... 곁에 누군가 있다. 녀석이 죽은 후 혼자만 남아있어야 할 이곳에..... 눈을 번쩍 뜨자 보이는 건 내 앞에서 굳어있는 까만 그림자...... 반사적으로 베개 속에 손을 집어넣어 검을 휘둘렀지만 술과 잠에 취한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상대의 단검에 간단히 막혀버린다. 왠지..... 술기운이라곤 보기 힘들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려 머릴 흔들어봐도 까만 어둠과 흔들리는 시야 때문에 형체만을 겨우 알아볼 정도...... 달아나려는지 주춤 물러서는 녀석에게 검을 휘두르자 또다시 단검으로 막아온다. 힘으로 내리 누르자 녀석의 무릎이 꿇리고 힘이 빠져버렸는지 단검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이대로 라면 목을 베어버리는 것은 간단한 일...... 그렇게 생각한 순간 판단력이 빠른 녀석이었는지 목으로 박혀들려는 검날을 흘려 팔 하나만 내준 채 빠져나간다. 베인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지 혈향이 콧속으로 파고들고........ 어쩐지...... 눈을 뜨고부터 뛰어대는 심장을 무시한 채 재차 공격을 가하자 겨우 막아내고 뭔가의 가루를 얼굴에 확 뿌려오는데....... '.......독?' 재빨리 얼굴을 돌리고 숨을 멈춰버렸지만 약간 들이마셨는지 순간 머릿속이 확 비더니 몸이 휘청였다. 무슨 생각인지 침입자가 뿌린 건 독이 아니다. 적어도...... 황제를 살해하려고 이 침실 안에 들어왔으면 들이쉬자마자 죽어버리는 강한 독을 쓸 텐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뒤로 물러서 희미한 달빛에 비치는 얼굴을 가린 채 서있는 녀석을 겨우 노려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누구냐......" "보면 몰라? 도둑이다!!" '도....둑.....?' 들려오는 건 탁한 목소리..... 이상하게 내 얼굴을 마주보지 않는다. 잔뜩 술에 취해 헝클어져버린 머리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도둑이란 말에 언뜻 스치자 어쩐지 허전한....... '설마......!!' 손을 내려보니....... 녀석의......... ........하류가 가지고 있었던 루비가........ .....없다........ 루비 따윈 내게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돌 조각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그 아이가 좋아했던 것.......... 말만 꺼내면 산더미같이 눈앞에 쌓아줄 수도 있는데...... 그때...... 시온에게 받았다며 예쁘게 웃던 모습이 시야에 스쳤다. '죽여.....버리겠다.....' 분노를 가득 실어 노려보자 흠칫하더니 창 쪽으로 뛰기 시작해 말을 듣지 않는 몸을 겨우 움직여 상처 때문인지 휘청하더니 바닥을 구르는 녀석의 몸을 덮쳐 눌러 검을 겨눴다. 죽이는 건 나중...... 품을 뒤져 보석부터 찾아내려 하자 미친 듯이 발버둥치며 벗어나려는 녀석이 귀찮아 목을 베어버리려던 순간........... ...........작은 흐느낌이 귓가에 스쳤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하감옥 안에서 아직도 녀석이 처참한 모습으로 흐느끼는 것만 같아 한 밤 중에도 몇 번이나 미친 듯 지하감옥 안을 헤집어댔다. 환청처럼........ 나를 원망하며........ 날 부르는 듯 해서.......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꿈이.........아냐?'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가....... 흐느끼는 소리가...... .....낯설지 않다...... 2년 전에도....... 지금도........ 미치도록 찾아 헤맨.......... 검이 허무하게 떨어져 내리고...... "설마........" 시야가 흐리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내 밑에 눌려 흐느끼던 녀석의 얼굴을 감쌌다. "살아......있어......?!!" 감정 없이 메마른 눈동자에서 뜨거운 물기가 새어나온다. 꿈일지도......... 아니면....... 미쳐버린 걸지도........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내 밑에서 가늘게 떨고있는 따뜻한 몸을 일으켜 숨이 막히도록 끌어안았다. "꿈이 아니라고........ .....말해....... 미치지 않았다고....." 꿈이라도 좋다...... 미쳐버린 거라면 그대로........ 한 마디라도 해준다면...... 꿈이 아니라고........미친 게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데...... 돌아오는 것은 침묵 뿐...... 품안에서 벗어나려는 녀석을 가만히 쓸어주자 움직임을 멈춘다. 벗어나지 못하도록...... 달아나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익숙하지만...... 그리운 향기가 전해져 온다. 가늘게 떨리는 입술에 조심스럽게 키스하고 반응 없는 내부로 침입해 부드러운 혀를 쓸었다. 두려운 듯 떨고있는 반응 외엔.......... 인형처럼 움직임이 없다...... 지하감옥에서 내게 범해질 때의 녀석처럼...... 인형이 아닌...... 사람이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 따뜻한 체온 뿐...... 내 손에...... 또다시 깨져버릴 게 두려워 조심스럽게....... 길지만 짧기만 한 키스를 해주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죽기 전에..... 해주지 못한 말을........ 지금은.........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방금 전까지 키스해 줬던 입술이 천천히 열리며 속삭이는 말에 차라리..... 귀를 잘라내고...... 심장을...... 도려내 버리고 싶었다. 꿈속이라 할지라도 이 아인...... .....날 원망하고 있는 것을..... 차라리....... .....모든 걸 잊어버렸으면........ 눈앞에 뿌려지는 가루를 들이마시자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꿈이라고...... 다시는 보지 말자는 녀석의 말에 여기서 놓쳐버리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아 따뜻한 몸을 강하게 품안에 넣고 흐려지는 정신을 붙들기 위해 검날을 움켜쥐었다. 섬뜩한 통증이 느껴지지만 흐려지기 시작한 정신은 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역시...... 붙잡을 수 없는 환상과 같은 것이었는지 내 품안에서....... .....빠져나가 버렸다. 눈앞에서 멀어져 가는데....... 붙잡을 수도 없는 사지 따윈....... .......잘라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손을 뻗으면....... 품안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요란하게 병사들이 들이닥치고........ 녀석이 뒤돌아 뛰자마자 겨우 목소리를 짜내 소릴 지른 후 정신을 잃고 바닥 위로 무너져 내렸다. -96- 반사적으로 허리춤에서 단검 두 자루를 빼들어 겨우 목줄기에 들이박히려는 검을 바로 코앞에서 막아냈다. 다행히 지난번 잠깐 본 적 있는 녀석의 육중한 대검도 아니고 몸에 마비가 풀리지 않았는지 움직임도 둔하다. 약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도망치지 않으면....... 녀석에게..... 죽임을 당할 거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는지 초점이 잡히지 않는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추려고 애쓰는 녀석을 보고 재빨리 뒤로 물러서자 다시 검을 휘둘러 온다. 단검으로 받아내자 손목이 아프게 울린다. 엄청난 힘에 손이 떨리고 무릎이 꿇리기 시작한다. 힘을 당할 수가 없다.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단검을 기울여 녀석의 검을 흘려냈다. 장검이 비켜 떨어지면서 왼쪽 팔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자 가늘게 신음을 흘렸다. 까만 옷을 적시며 붉은 피가 쉴새없이 흘러내린다. '괴물같은 새끼.......' 다시 내게 휘둘러오는 검을 죽을힘을 다해 단검으로 쳐내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에 손을 넣어 유이 녀석이 준 가루를 뿌리자마자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려버린다. 조금밖에 들이마시지 않았는지 잠시 휘청하던 녀석이 다시 몸을 바로 일으켜 세운다. "빌어먹을.....!!"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단검을 허리춤에 다시 꽂아 넣고 재빨리 창가로 물러서자 창을 통해 희미하게 달빛이 새어 들어와 하얀 피부에 쏟아져 내린다. 반사적으로 옷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리자 붉은 눈동자가 시린 빛을 내며 날 노려본다. "누구냐....." 변함없이 차가운 목소리...... 흘끗 창가를 보니 다행히 미리 매어두었던 로프가 그대로 늘어져있다. 오금이 저리도록 서늘한 눈동자에 잠시 굳어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녀석에게 시간을 벌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면 몰라? 도둑이다...." 얼굴을 가리려 입을 막아서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간다. 건방진 말투와 황제의 침소까지 침입한 인물이 도둑이라는 게 꽤나 의외일 텐 데도 술과 약기운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는지 붉은 눈동자엔 살기만이 가득하다. 녀석이 머릴 몇 번 흔들더니 내게 붉은 눈동자를 맞춰오자 재빨리 눈을 내리 깔았다. 새하얀 속눈썹이 시야를 가려온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는..... .....마주보고 싶지 않다....... 검에 베인 팔이 끔찍하게 아파 오고...... 하얀 고급 양탄자 위로 붉은 핏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자 다시 흘끔 눈을 돌려 창이 열린 걸 확인했다. 재빨리 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녀석이 몸을 흠칫 굳히더니 손을 내려본다. '젠장.....들켰나.....' 섬뜩한 분노가 붉은 눈동자에 들어차기 시작한다. "내놔......." '빌어먹을 자식...... 그딴 보석 셀 수도 없이 많으면서.....쪼잔하긴....' 당장이라도 갈아 죽일 듯 노려보는 녀석의 눈빛을 흘려내고 창 쪽으로 뛰자마자 녀석도 창이 열린 걸 그제야 깨달았는지 급히 내게 다가오기 시작하고....... 빌어먹게도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뛰는 순간 시야가 흐려지면서 몸이 바닥을 구르자 온몸을 옭아매며 무거운 것이 위에서 짓누른다. 고통에 생각도 잇지 못하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위를 올려보자 녀석이 내 몸에 올라타 흐린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날카로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빌어먹을.....마비도 통하지 않는 거냐......' 짓눌린 팔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기절할 것만 같다. 비명을 삼키기 위해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을 꼭 감아버렸다. 고통에 가빠진 호흡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내가 훔친 루비반지를 찾는지 갑자기 녀석이 품속에 손을 넣어오자 섬뜩한 감각이 온 몸을 타고 오른다. 눈을 크게 뜨고 넋이 나가있다 피부에 녀석의 손이 닿자마자 공포에 몸을 떨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녀석이 내게 줬던 끔찍한 고통이 머릿속을 온통 헤집어놓는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정신없이 발버둥치자 귀찮은지 녀석이 검을 다시 들어올려 목을 베어버리려는 듯 겨눠오는 것을 보고 다시 질끈 눈을 감아버리자 따뜻한 액체가 눈꼬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가늘게 떨고 작은 흐느낌에 가슴이 들썩이기 시작하자 위에 올라탄 녀석이 흠칫 몸을 굳히더니 바로 바닥 위로 검을 떨어뜨려 버렸다. "설마........" 떨리는 손이 얼굴을 감싸온다. 공포에 눈을 뜰 생각도 못하고 떨고만 있다가 녀석의 손이 얼굴에 닿자마자 놀라 몸을 흠칫 굳히고 숨을 멈춰버렸다. "살아......있어......?!!" 잔뜩 잠긴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고....... 떨리는 듯한 녀석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추스리고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눈을 뜨려던 순간...... 얼굴 위로 따뜻한 액체가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 '뭐.....야......?' 놀라 한참동안 꿈쩍도 않고 있다가 눈을 뜨자 주위는 형체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까만 어둠에 싸여있고...... 계속해서 위에서 떨어지던 물방울이 내 눈동자 위로 떨어져 내리자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다. "큭, 꿈이라도....... 꾸는 건가......." '뭐?' "아니면....... .....미쳐버린 건가......" 더 이상..... 생각할 틈도 없이 상체가 일으켜지더니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거세게 안아온다. 맞닿은 뺨에 축축한 물기가 느껴지고...... 귓가에 닿은 녀석의 입술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꿈이 아니라고........ .....말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미치지 않았다고....." 아직도 붉은 피가 베어 나오는 팔에서 통증이 느껴져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 뒤척이자 달래듯 부드럽게 등을 쓸어준다. 절대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는 듯 몸을 강한 팔로 죄어오자 심장이 손으로 쥐어짜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아프기만 한 건....... 이제.....싫다..... 허리춤에 매어둔 주머니를 열어 다시 유이 녀석이 준 가루를 한 움큼 움켜쥐자 갑자기...... 입술에 따뜻한 것이 맞닿아왔다. -97- 한순간 움직임이 멈추고 사고가 정지돼 버렸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공포로 가늘게 떨어대는 몸을 꼬옥 안고 녀석을 거부하는 입술을 조심스럽게 열어간다.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기라도 할 듯 닿기만 해도 부서지는 물건이라도 다루듯...... 조심스럽기만 한 행동이....... 계속해서 얼굴로 떨어져 내리는 따뜻한 물방울이...... 자꾸 아프게 심장을 죄어온다. 입술을 열고 조심스럽게 파고든 뜨거운 혀가 입안을 휘젓자 독한 술 냄새가 풍겨온다. '도대체...... 얼마나 마셔댔길래...... 술 주정이라도.....하는 건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키스가 계속되고...... 녀석의 키스에 반응도 보이지 않고 떨리기만 하는 입술 위로 정신없이 키스를 해대다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오는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 온몸이....... .....굳어버렸다. "사랑............해......."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흔들리는 눈동자로 올려보자 물기로 평소보다 옅어진 심홍색 눈동자가 예전처럼 흔들림 없이 나만을 새겨 넣고 있다. '나한테........... ......또.............. ......뭘 빼앗아 가려는 거야.........' 내 몸도...... 내 이름도...... 내 목숨도....... .....다 내줬다. 내 세계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마음도 망가져 버렸다. '이제 너한테 내줄 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아.....' 녀석의 눈동자에서 겨우 눈을 돌려 붉은 머리칼만 한참동안 바라보다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주먹을 그러쥐고 무겁게 입술을 열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랑 따윈........... 쓰레기 같은 거야.......... 그런 건....... 사랑 따윈 이제........ 믿지 않아..... 니 곁에 있으면 아프기만 해...... 죄책감에 내가 죽어가.... 너 없이도 이젠...... ......행복하니까..... 날 내버려둬....제발..... 다신..... ....울고싶지 않아...." 움직임 없이 굳어있는 녀석을 밀어내고 빛을 잃어버린 붉은 눈동자가 내게 닿아오기 전에 숨을 멈추고 손에 쥐어져있던 가루를 눈앞에 확 뿌려버렸다. 녀석의......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가 크게 뜨여지고...... "다...... .....꿈이야..... 그냥..... 잊어버려...... 다시는...... .......만나지 말자......" 떨리는 손이 얼굴에 닿아오자 눈을 감아버렸다. 한동안 얼굴을 쓸던 손이 멈추고 거세게 몸을 끌어안아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듯 강하게 옭아맨다. '왜 효과가......' 기절은커녕 더욱 강해지는 녀석의 힘에 눈을 번쩍 뜨자 짙은 혈향이 콧속을 확 파고든다. '뭐야......' 시선을 돌리자....... 녀석의 손엔 검이...... ......쥐어져 있었다. 맨손으로 검날을 쥐어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녀석을 밀쳐버리고...... 도망을 쳐야 하는데...... 빨리....... 뿌리쳐야 하는데...... 벗어날 수가...... .....없었다...... 품안에 넣은 것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몸을 꼭 죄어와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녀석의 품에 안겨 거칠게 뛰는 심장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만에 약효가 돌기 시작했는지 한동안 내 몸을 구속하고 있던 팔의 힘이 약해지자마자 녀석을 밀어내고 떨리는 몸으로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빛을 잃어 가는 붉은 눈동자가 아프도록 내게 닿아온다.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날수록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는 녀석을 흔들리는 눈동자로 바라보다 육중한 침실문이 요란하게 열리는 소리에 흠칫 몸을 굳혔다. 곧이어 침실 안으로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고...... '빌어먹을!! 빨리도 왔군.....' "잡아라!! 상처 하나.....내지....말고....." 반사적으로 창 쪽으로 뛰자 절박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온다. 말을 채 끝맺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는 티폰에게 잠시 시선을 보내다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창 밖으로 몸을 날려 한 손으로 로프를 움켜쥐었다. 몸이 거칠게 돌 벽에 부딪치고 다행히 가죽장갑을 껴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자 로프를 놓고 지면 위로 뛰어 내렸다. "흑, 제길.....!!!" 온 몸이 타박상으로 들쑤셔댄다. 피가 새어나오는 팔을 손으로 누르고 황제의 숲으로 내달렸다. 뒤에선 엄청난 소란이 일기 시작하고...... 정신없이 뛰어가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자 어느 샌가 황제의 침실엔 대낮같이 환히 불이 밝혀져 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쓸자 내 것이 아닌...... 아까 어둠 속에서 내게로 떨어져 내렸던 물기가 묻어 나온다. '그렇게 잔인하고..... 그렇게 강했던 녀석이...... 갑자기 왜.......' 입술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쓸어보자 독한 술 냄새가 아직도 남아있는지 후각을 자극한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잊고싶은 거야.......' 상처가 나 피가 베어 나오는 팔을 꽉 움켜쥐었다. '젠장......'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한다. 하얀 속눈썹에 맺혀있다 허무하게 바닥으로 추락해 가는 물방울들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있었다. '왜......' 이렇게 미워하는데...... 다시는 보고싶지 않은데..... 바보 같은 행동만 하는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 녀석의 곁에 있었을 땐 너무 아프고 아파서...... 죽어서라도 벗어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녀석에게 벗어나서도...... 변함없이....... 아픔이...... .....가시지 않는다. 입술을 깨물고 흐느낌을 삼켰다. 이젠 돌이킬 수도 없다. 녀석의 표정에서 절망이란 걸 봤으니까..... 허상을 쫓는 것 마저...... .....힘에 겨운 거다..... 나처럼...... 멀리서 인기척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흠칫 놀라 숲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 바보 같은 짓은...... 두 번 다시 하고싶지 않다. 바보같이 우는 것도...... 바보같이 아픈 것도...... .....싫다...... 그 녀석과는 이제..... ....두 번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아..... 서로 상처만 줄뿐이다. 애초에 녀석의 나라에 오는 게...... 그런 내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도대체 뭘 보고싶어서 이곳까지 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 달 동안 모든 걸 끝내버리려고 했는데..... 이럴 바에야 차라리..... 모르는 척 모두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는 게 나았을 것을...... 차라리..... 내일이라도 키리안 숲으로 돌아가 모르는 척 계속 키르로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다시는..... .....이 녀석을 보지 않는 게.......... 불안 때문인지 심장이 정신없이 두근대자 쫓기듯 황성을 빠져 나와 유이가 기다리고 있는 숲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Rubera(루베라) #98 한참을 달리자 말을 매어둔 곳에 초조한 듯 왔다갔다하는 유이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놓이자 통증이 강해지고 시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날 발견한 유이 녀석이 내게 다가오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키르....너 왜 그래?" 놀라 내게 다가오더니 옷을 적시며 흘러나온 피에 눈을 크게 뜬다. "너.......!!" "별거 아냐.....빨리 돌아가자....추격이....붙었어...." 머리에 매어둔 까만 천을 거칠게 풀어 상처를 단단히 동여매자 신음이 새어나온다. "가자!!" 떨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녀석을 재촉하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내 몸을 부축해 온다. 유이 녀석이 급히 주위를 살피더니 말을 풀어 한 마리는 숲에 놓아주고 나머지 한 마리에 날 먼저 올리더니 바로 뒤에 올라타 내 몸을 꼭 휘어 감고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몸이 흔들리자 신음이 새어나온다. "조금만.....참아......" 허리를 단단히 감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끝도 없을 것 같은 어두운 숲길을 뚫고 돌아가는 도중 몇 번이나 기절을 반복하면서 여관에 도착했을 땐 숨이 거칠어지고 온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정신이 가물가물하다. 말에서 겨우 내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녀석의 품속에서 늘어져버렸다. . . . 눈을 뜬 건 다음날 아침..... 아침이라 하기엔 해가 너무 높다. 내게 들러붙어 피곤한 듯 잠을 자고있는 유이 녀석을 겨우 떼어내고 몸을 약간 일으키자 통증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다친 팔를 보니 하얀 천으로 싸여있고 침대 주위엔 난리가 아니었다. 피가 잔뜩 묻은 시트에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약병, 그리고 피가 굳어 엉망이 되어버린 옷...... 멍하니 어제 입었던 까만 옷을 바라보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겨우 몸을 일으켜 옷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이리저리 뒤져봐도 아무 것도 들어있질 않다. '어떻게....된 거야?!! 어제 분명.....!!! 설마.......떨어뜨린 건......' 표정을 굳힌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너......" "응?" 갑작스런 유이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녀석이 잔뜩 화난 표정으로 마주본다. "그딴 것 때문에........이게 무슨 짓이야?!!! 어제 밤 그 황제란 녀석에게 잡힐 뻔 한 거야?!!" 소리를 질러대는 녀석에게 놀라 눈만 크게 뜨고 바라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어디 있는지.....알아?" "내가....숨겨뒀어....." "어디.....?" "지금 그게 문제야?!!" "왜? 잡히지도 않았고.... ......들키지도 않았을 거야........" 유이가 준 가루도 확실히 뿌렸고...... 아마...... 그 정도로 만취상태였다면 아무리 술고래라 하더라도 나처럼 다음날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딴 건 필요 없어!! 다쳤잖아!! 그 상태로 그 미친 황제한테 잡혔으면......사지가 잘려 죽었을 거야!!" "그럴....지도....." 가라앉아 가는 내 목소리에 녀석이 화를 누그러뜨린다. "어쩌다 그런 거야? 자신 있다고 했잖아!!" 확실히 내가 그때 멍청한 짓만 하지 않았으면 녀석에게 들킬 일도 없었을 거다.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지금 생각해도 벽에 머리를 박고 죽고싶을 정도로 기가 막히다. 그런데..... 그러고 보니 그 자식...... 어떻게 날 알아본 걸까..... 머리카락은 천으로 다 가렸고 어두워서 눈동자 색도 보이지 않았지만....... 형체만 겨우 알아볼 정도의 어둠 속에서...... 날........ 내 속에 꽁꽁 감추어놓았던 녀석을 찾아냈다. '술 때문에.....착각이라도 한 건가......술주정을......' "이제....황제한텐 접근하지마....." 녀석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바이올렛 눈동자를 올려봤다. '이젠 볼 일도 없어......' 마음을 굳히고 녀석에게 말을 건넸다. "우리..... 키리안 숲으로 돌아가자....." "왜 갑자기?!!" "이제 다시는..... 이 나라엔 돌아오지 않을 거야....." "키르.....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별로......." 녀석이 한참동안 말없이 바라만 보다 내 몸을 끌어당겨 침대 안에 밀어 넣는다. "보석은 어제 도망치면서 황제의 숲에 묻어뒀어......돌아가기 전에 찾으러 가자..." "응....." "무리하지 말고 좀 쉬어....상처는 어제 기절했을 때 몇 바늘 꿰맸어....최대한 상처 남지 않도록....." "큭, 황궁에 있는 돌파리 의사보다 훨씬 나은데? 그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뮤즈니안에선 누구나 기본적인 건 다 할 줄 알아....." '그런걸.....기본적인 거라고 하나.....?'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녀석이 평소와 다름없이 빙글거리며 시트 안으로 들어와 내 몸을 꼭 끌어안는다. "비켜!! 숨막히잖아! 춥지도 않은데 왜 들러붙고 지랄야?!!" "말했잖아....좋아한다구....미치도록 좋아서 자꾸 만지고 싶고 안고싶어....." 어깨에 키스를 해대는 녀석에게 지쳐 눈을 감았다. 이 녀석은 티폰과는 너무 다르다. 뭐든지 직설적이고 감정은 모두 드러내 놓는다. 어린애처럼...... "이대로...... 키리안 숲으로 돌아가면 우리 내기는 어떻게 되는 거야?" "니가...... ......이겼어...." "그럼.....?!!" "맘대로 해....." 한동안 조용하다. "후회....... .....하지 않을 자신 있어?" '그따위 것에 후회는.......' 이미 사내에게 여러 번 안긴 몸이다. 상대가 바뀐다고 해서 그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 빌어먹을 세상에선 그런 것만으로 더러운 시선을 던지지도 않고...... 마음과는 달리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건...... 생각을 끊어버리 듯 따뜻한 입술이 목덜미를 간질이며 화인을 새겨나간다. '지금 할 셈이냐? 이 새끼.....그렇게 급했나? 아픈 사람을 상대로 잘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보군......' 조심스럽게 피부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촉감에 눈도 뜨지 않고 나른하게 누워있자 온 몸에 해대는 키스를 멈추고 몸을 겹쳐온다. 한동안 움직임 없이 위에서 날 끌어안고만 있는 녀석이 이상해 눈을 뜨려는 순간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스친다. "그렇게...... 포기한 것처럼 말하지마......" '뭐?!!' 번쩍 눈을 뜨자 이마를 맞댄 채 바이올렛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껍데기만 갖는 건 싫으니까..... 아쉽지만....... 전부 나한테 줄 때까지........ .....기다려 줄게..... 그 정도 가치는 충분히 있으니까...... 킥, 이렇게 예쁘게 살까지 찌워놨는데..... 너무 예뻐서 덜컥 먹기도 아깝잖아......" "웃기지....마....." 녀석이 고개를 숙여오자 스륵 눈을 감았다. 부드럽게 입술을 겹쳐 키스를 해오는 녀석에게 입술을 벌려주자 따뜻한 혀가 입안으로 파고든다. 지금은............ 보답해 줄 수 없는 마음 때문에 이런 녀석이 부담스럽지만...... 진실된 마음을..... ....거부할 수가 없다. 언젠가..... 티폰이란 녀석을 모두 잊게되면....... 이 녀석의 마음도 보답 받을 수 있는 걸까...... 티폰은..... 이제 내가 필요 없을 테지만...... 이 녀석은 이렇게도 내가 필요하다고 말해준다. 예전에..... 아버지와 헤어진 후 어머니가 가끔씩 하던 말이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하물며.....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티폰에게........ 날 망가뜨려 버린 녀석에게......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는 거다. 게다가..... 하류란 녀석은 그 때...... 죽어버렸으니까....... 녀석이 술김에 한....... 사랑한다는 말은...... 누구에게 향한 말인지조차 모르는 그 말은........ 설령 하류에게 향한 말이었다 하더라도..... 이미..... 대상을......... .......잃어버린 거다. Rubera(루베라) #99 그날....... 그렇게 키리안 숲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유이 녀석과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자다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거칠게 문이 부서진 채 열리자 벗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해가 지는지 희미한 빛 사이로 보이는 건 분명..... 크리올라의 병사들...... '어떻게....... 설마...... 들켰어....?!!!' "체포해라!!" 병사들의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가 크게 소리치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지만 유이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잠결에 출발하기 전에 뭐라도 먹어야 한다며 먹을 만한 걸 사온다고 나간 녀석이 희미하게 머릿속을 스쳐간다. '젠장!! 증거도 없으니 발뺌이라도.....' "죄목이 뭐야....?!!" 건방진 말투에 사내가 성가시다는 듯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을 꺼낸다. "어제 밤 자정이 넘은 시간, 황제의 침소에 침입자가 들었다" "나하곤 상관없어!! 젠장, 가까이 오지마!! 벗고있는 거 안 보여?!!" "거짓말 해봤자 소용없어! 황제폐하의 명으로 수도에 있는 숙소는 다 뒤져 이 곳에 머무는 녀석이 상처를 입은 채 그날 새벽에 들어왔다는 주인의 자백을 받아냈다" '지금까지.....날 찾아다닌 건가......지독한......!!' "웃기지마!!! 그딴 것 하나로 사람을 잡아간단 거야?!! 증거도 없는 주제에!!!" "닥쳐라!! 죄가 있는지 없는진 폐하께서 판단하실 일이다!!" "지랄!! 자기네들 목 떨어질 거 같으니까 대충 하나 잡아가는 거 아냐?!!" 악에 받쳐 바락바락 대들자 말이 없다. '씹, 그럼 그렇지........!!!' 역시..... 어제 이 곳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그 집요한 녀석이 이대로 끝낼 리 없었는데..... 녀석이 만취해 있었다고 너무 방심하고 있었다. 이 상처만 아니었어도..... ....어제 다른 곳으로 옮겼을 텐데........ 불행 중 다행이라면 유이 덕분에 지금 증거물이 이곳에 없다는 것 정도...... 꽉 쥔 손아귀에서 식은땀이 베어 나온다. 이젠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 내게 다가서는 병사들에게서 슬쩍 시선을 돌리자 침대맡에 떨어져 있는 옷가지 위에 단검이 보이지만 몸도 잘 움직이지 않을뿐더러 거리도 너무 멀다. '젠장......!!' 도망칠 궁리를 할 틈도 없이 병사들이 침대 주위로 거리를 좁혀오며 위협을 해 결국 그대로 무기를 모두 빼앗기고 옷만 대충 걸친 채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손이 구속당한 채 불안을 숨기지 못하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2개월 전 케레스와 시온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탈출시켜준 황성...... 눈앞이 까맣게 가리워질 정도로 막막해 순간 휘청이자 양쪽에서 병사들이 거칠게 몸을 바로 세운다. 걸음을 빨리 하라고 재촉을 해오지만 떨리기만 하는 다리엔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 곳에서 느끼는 공포와 절망은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것..... '녀석이...... 티폰이...... 날 알아보면....... 또....... 지하감옥에 쳐 넣겠지.......' 유이 녀석이 같이 붙잡히지 않은 게 다행이다. 또..... 나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죽게 된다면....... 진짜로 미쳐버릴 지도 모르니까....... '그 자식....... 잡혀간 걸 알면 난리를 칠 텐데......' 참담한 기분으로 병사들에게 밀려 철창으로 꽉꽉 막힌 마차에 오르자마자 바로 어둠에 잠긴 광대한 정원을 가로질러 황궁으로 향한다. 어둠 속에 보이는 커다란 정원수가 달빛에 비춰 악마와 같은 형상을 나타내고....... 흠칫 놀라 몸을 뒤로 물리자 싸늘한 철창이 등뒤로 느껴진다. 너무도 방대해 위압감마저 풍기는 황궁이 가까워질수록 공포로 물들어 가는 내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몇 시간만에 마차가 멈춰 섰을 땐 긴장으로 온몸에 진이 다 빠져 혼자 걷기도 힘든 상태..... 비틀거리며 마차에서 내려서자 황성에 들어서자마자 이상을 보이는 내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병사들이 다가와 양팔을 붙들어 온다. 그렇게 병사들에게 거의 끌려가다시피 둘러싸여 도착한 곳은 생각하기도 두려웠던 지하감옥의 문턱....... '큭, 역시.......... 젠장, 도망칠 때 이 빌어먹을 감옥에 불이라도 지르는 건데.....' 결국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발을 들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있자 뒤따르던 병사들이 거칠게 안쪽으로 밀어 별 수 없이 축축하고 차가운 지하로 발을 내딛었다. 몇 달이 지났음에도...... 이 곳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그 동안 잊으려고 발버둥쳤던 공포가...... 발끝에서 온 몸으로 기어오르는 것만 같다. 차가운 한기가 피부 속에 파고들고 새카만 어둠이 시야를 가린다. 몸을 떨며 지하감옥 안으로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뒤에 서있던 병사 녀석이 구속돼 있던 손을 풀어주고 내 몸을 밀쳐 빈 감방 안으로 집어넣더니 바로 감옥문을 닫아버렸다. 병사들이 모두 물러가자 지하감옥의 문이 닫히고 주위가 어둠에 묻혀간다. "하아.....여길.....또 어떻게 탈출한다......" 겨우 떨려오는 목소리를 꾹 누르고 공포를 감춘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중얼거리곤 감방 안쪽으로 들어가 벽에 기댄 채 몸을 말고 쭈그려 앉았다. 전에 갇혔던 곳은 가장 깊숙한 곳이었기 때문에 창도 없어 빛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여긴 그나마 손바닥만한 창이라도 있어 희미하게 기울어 가는 달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주위는 적막으로 가득하고...... 들리는 것이라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희미하게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가는 신음소리..... 혼자 있다는 걸 인식한 순간...... 습한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고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훑고 지나간다. 이곳에서 수도 없이 꾸었던 악몽이......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순간 사방에서 섬뜩한 비명소리가 울려온다.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의...... 미친 듯 양손으로 귀를 막고 무릎사이로 머리를 파묻었다. 그때 그 날..... 두 달 전 이곳에서 있었던 끔찍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제어할 수 없이 몸이 떨려오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그 끔찍한 날로 되돌아 간 것만 같다. 무기력한 내 모습으로....... 돌바닥으로 풀썩 쓰러져 힘없이 눈을 감자 뜨거운 액체가 볼을 타고 흐른다. 공포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5분? 아니면...... 5시간? 무거운 발소리가 들리고 저 감옥 문을..... 잔혹하기만 한 그 녀석이 열고 들어와 언제나처럼 차가운 시선을 던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예전과 같이 망가진 인형처럼 멍하니 몸을 떨며 누워있는데 갑자기 삐걱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온다. 병사들이 들어오는 지 처음엔 철그럭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얼마 안가 한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이 들려온다. 점점 가까워지던 발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멈춘 채 계속 이동하지 않자 공포에 눈을 뜨지 않았다. 너무 무서워서..... 붉은 눈동자가 살기를 띄고 날 노려볼 것만 같아서...... 한참동안 움직임이 없던 발소리가 급하게 감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지 요란한 소리가 울려오고.....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더니 바로 앞에서 뚝 멈춰 섰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다. 숨도 쉬지 못하고 몸을 굳혔다. "설마......." 바로 차가운 손이 얼굴에 맞닿아 눈물로 젖어버린 얼굴을 조심스럽게 쓸어본다. "이 아이가...... ............그날 밤 내 침소에 침입한 도둑이 맞는 건가.....?" 섬뜩한 목소리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그게......아직 자백을 받아내진 못했지만 분명 고문을 하면........." "고문을..........한 거냐..................!!" 분노를 실은 녀석의 낮은 목소리가 공포를 더욱 가중시켜간다. "아....아직......" "흑...." 떨리는 손을 겨우 들어올려 귀를 막아보지만 동굴 같은 감옥 벽에 부딪쳐 들려오는 섬뜩한 목소리는 어김없이 귓속에 파고든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거지.....?!!!" "방금 전 까진.........멀쩡했는데......" 바로 당황한 듯 누군가의 변명이 들려오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녀석의 차가운 손을 피해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갑자기 몸이 번쩍 들어올려져 힘없이 품안에서 늘어져 버렸다. "폐하...그 자는 폐하의 침소에 침입한 죄인....." "닥쳐라...." 섬뜩한 목소리가 감옥 안에 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이 자리에 있었던 자들은 모두 죽는다. 지난 밤...... 내 침소에 침입했던 도둑은 오늘 이 감옥 안에서 죽은 거다....." "예.....폐하....." 공포에 떨리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자 날 품에 안은 녀석이 움직이는지 몸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필름이 끊기듯 정신이 오락가락 한다. "키르....!!!" 어디선가 유이가 정신없이 내 이름을 불러대는 것도 같고...... 자꾸만 내 몸을 옭아매는 강한 팔을 떨쳐내려고 단단한 가슴을 밀치며 미약한 저항을 해대다 그대로 녀석의 품안에서 정신을 잃어 버렸다. Rubera(루베라) #100 -티폰- 눈을 뜨니 아직도 캄캄한 새벽....... 대낮같이 환히 밝힌 침실에서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시온과 궁의........ "단순한 도둑이었던 거야?" '도둑?' 이상하게 평소와는 달리 서늘한 녀석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키자 화끈한 통증이 손에서 느껴진다. '뭐지.......?' 하얀 붕대에 감겨있는 손을 내려보니 왠지 모르게 조바심이............ .........든다......... "훔쳐간 물건은 없는 거 같은데? 왜 죽이지 않은 거야?" '훔쳐간......... ........물건.........?' 왠지.......... 굉장히 중요한 걸 도둑 맞은 듯한........... 소중한 걸 잃어버린 듯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어버린 듯한............... 숙취에 지끈거리는 머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려봤다. '뭔가......있었던 것 같은데......' "루비가..........." '루....비......?' 어떻게 알았는지 시온 녀석이 재빨리 내 손에 시선을 꽂는다. "그 녀석의.........것을......도둑맞은 거야?!! 설마......... 어떻게........... 내 사파이어도............" 날카로운 목소리....... 평소와는 다르다. "그 녀석......?"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가넷빛 눈동자에 분노가 인다. "루베라!! 아니.....하류말야!!" "루베라.......? 그 아인 2년 전........" '저 녀석이 어떻게 그 아이의 이름을........' 머리가 다시 지끈거리기 시작해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자 화가 난 목소리가 귓속에 파고든다. "2년 전? 또 무슨.....소리야?!! 술이 덜 깬 거야?!!"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보는 녀석이 이상하지만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온 수도 안을 뒤져라.....여관과 치료소를 모두 뒤져 오늘 새벽 왼팔에 상처를 입고 나타난 녀석을 찾아내라....... 오늘 안에.....잡아들여.....병사들을 모두 풀어라...." . . . 그리고 그날 밤...... 녀석을 찾아냈다는 보고에 감옥으로 향했다. 황제의 침소에 침입한 도둑 따위야 원래대로라면 볼 것도 없이 처형시켜버리는 게 당연하지만 어쩐지......... 마음이 꺼림칙해 처형하기 전에 보지 못한 얼굴이라도 보려고 찾아간 지하감옥 안에서......... 그 아일....... 내 루베라를 닮은 아일 찾아냈다. 머리카락이 눈처럼 하얗지만......... 하얗고 긴 속눈썹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새어나오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설마..........' 볼을 타고 흐르는 물기를 가만히 훔쳐주자 고개를 돌려버리는 녀석을 보니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두려움에 떨며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를 품에 안자 지쳐버렸는지 힘없이 몸이 늘어져 버린다. 까만 머리칼을 한 내 루베라와는 다르지만......... 염색이라도 했다면........ 기다림에 지치기라도 한 건지 어떻게든 합리화를 시켜버리려 하는 내 자신이 우습다. 시끄럽게 토를 다는 병사들의 말을 싸늘하게 막아버리고 침실로 향했다. '그 아이인지.....아닌지는.......확인해 보면 알겠지........'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아일 욕실 시녀에게 맡기고 발코니로 나와 까만 하늘을 올려봤다. 사실....... 확인을 하는 게 망설여진다. 만약 그 아이가 아니라면........ 루베라가 새겨져 있지 않다면........ 또 그 아일 혼자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두렵다....... 그리고...... 루베라가 새겨있다면...... 날 원망하며 바라볼 까만 눈동자가...... 정신을 차리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여전히 아름다운 밤하늘...... 하류의 눈동자를 닮은....... 밤하늘을....... 거의 2년간 밤이 되면...... 습관처럼 하늘을 올려본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를 그 아일 기다리며....... 한동안 가라앉은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보다 침실 안으로 들어서니 침대 위엔 향이 날 정도로 깨끗이 씻겨져 평안하게 잠든 하얀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아름다운 얼굴....... 여자처럼 생긴 건 아니지만 여자보다 섬세하고 스쳐만 봐도 눈길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예쁘다..... 루베라를 새겼던 내 아이도 지금쯤이면 이렇게 아름다운 소년이 되어있을 터...... 쭉 뻗은 다리와 골격은 2년 전 그 아이보다 훨씬 크지만 어딘지 모르게 똑같이 닮아있다. 예쁜 콧날과 키스도 하지 않았는데 약간 부풀어있는 옅은 분홍빛 입술....... 하얗지만 마찬가지로 선이 예쁜 눈썹과 긴 속눈썹 비단처럼 매끄러운 피부...... 확실히....... ......닮았다...... 가만히 키스하고싶은 입술을 손으로 쓸어보다가 입술을 포개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눈동자 색은......... .......까만 색이겠지......?' 가만히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보다 곁에 누워 따뜻한 몸을 품에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확인은......... .........나중에 해도...... ......되겠지....... 하룻밤 정도는 꿈을 꾸어도..... ......좋을 것 같다...... 내 루베라가....... .........다시 내 품에 돌아온 꿈을....... Rubera(루베라) #101 -외전- 눈을 뜨니 이 사내가 있었다. 붉디붉은........... 타는 듯 붉은 머리칼과 루비와도 같이 아름다운 눈동자............ 언제부터 였는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함께였던 게......... 한달 전........... 호숫가에서 본 그날부터였는지......... ......아니면 그 전에도 이렇게 함께였는지........ 뺨에 맞닿은 감촉이 너무 기분 좋아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부비자 언제나처럼 시원한 체향이 콧속을 자극한다. 이름이.......... .........티폰이라 했다. 사실......하르........어쩌구라고 했는데........너무 길어서 내 멋대로 줄이긴 했지만 어떻게 부르든 소리가 되어 나가지 않으니........... ........상관없겠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사내의 품에 안겨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다 손끝에 닿아오는 단단한 근육에 시선을 돌렸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조각가가 깎아놓은 듯 완벽하게 틀이 잡힌 몸.......... 내 몸과 번갈아 바라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뽀송뽀송한 솜털도 가시지 않은 내 몸하곤 차원이 틀리다. 키도 나보다 훨씬 커서, 언젠가는 거의 내 키 만한 검을 휘두르는 것도 본 적이 있다. 그 후 궁금함에 티폰의 검을 한번 들어봤는데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녀석이 날 들어올리면 힘없는 강아지처럼 딸려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2살 차이라고 한 거 같은데......... 나도 두 해만 더 지나면 저렇게 될 수 있는 건가.........' 신기함 반.......부러움 반으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근육을 쓸어보고 있었다. 복부에는 王자까지 새겨져 있다. 손가락으로 가만히 한 획 한 획 그려보다 다시 잠이 오기 시작해 따뜻한 품안으로 파고들자......... '응.........?' 허벅지 안 쪽에 뭔가 단단한 게 닿아온다. '뭐.........' 고개를 숙이려하자 갑자기 턱이 들리더니 따뜻한 게 입술을 덮어온다. 이제는 익숙해진 키스에 가만히 눈을 감자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입안에 사탕을 감춰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빨아대는 건지....... 이것도 오랫동안 하면 숨이 막혀서 밀어낸다는 것을 알고있는 사내가 숨쉴 틈을 약간씩 줘가며 입술을 포개온다. 평소엔 이렇게 입을 맞춰주면 몸이 간질간질 이상하지만 오늘은 그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게 있다. 입술을 내준 채 손을 더듬어 자꾸 허벅지를 찌르는 뜨거운 물체를 살짝 움켜쥐자 이상하게 위에 있던 녀석의 움직임이 딱 굳는다. '응? 뭐야.........?' 별 생각 없이 손에 힘을 주자 입술에서 떨어져 나간 녀석이 내 몸을 꼬옥 끌어안더니 목덜미에 머리를 묻어온다. 목덜미에 닿아오는 뜨거운 입김에 갑자기 얼굴이 확 붉어져 한동안 굳어있다 손에서 자꾸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 양 두근대는 물체가 신경 쓰여 손을 움직여봤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크기였는데............... ...........지금은............ 한 손으로 쥐어지지도 않는다. 의아한 표정으로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는 녀석을 바라보자......... 평소와는 달리 빛이 약간 흐려져 날카로웠던 심홍색 눈동자가 나른하게 풀려있다.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운 눈동자........ 순간 심장이 두근거려 물어보지도, 밀어내지도 못한 채 손안에 들어온 뜨거운 물체를 주물럭거렸다. 따뜻한 것도 그렇고......... 감촉도 부드러워 쉽게 손에서 놓긴 아깝다. '도대체......뭐야.....?' 궁금증만 더해간다. 손으로 이리저리 더듬어봐도 도통 모르겠다. 먹을 건 아닌 거 같고........ 할 수 없이 다른 손까지 뻗어 이리저리 만져보고 주물러보다 목덜미에 따끔한 느낌이 들어 화들짝 놀라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뜨거운 액체가 허벅지 위에 쏘아졌다. '뭐...야? 물풍선 같은 거였어......?' 크기도 줄어드는 것을 보니 맞는 듯.......... 질척한 느낌에 울쌍을 하고 바르작거리자 거친 숨을 내뱉던 녀석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상체를 일으켜 날 내려본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쩐지 복잡한 표정........ 아래를 내려보니 물 풍선 비슷한 것도 없고 허벅지 안쪽엔 하얀 액체가 묻어있다. '서....설마......내가 실례라도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가뜩이나 어린아이 취급이나 해대 불만이었는데 잠자다 지도까지 그린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생각에 고개를 휘젓자 갑자기 몸이 번쩍 들린다. 화들짝 놀라 목에 팔을 휘감자 성큼성큼 걸어서 도달한 곳은 욕실........ 몸에 따뜻한 물을 뿌려주더니 뜨거운 탕 안에 넣어준다. 금새 기분이 좋아져 방금 있었던 일은 홀랑 까먹고 커다란 욕실 한켠에 잔뜩 쌓여있는 꽃잎들을 한 움큼 손에 쥐고 김이 나는 탕 안에 뿌렸다. 붉은 꽃잎이 짙은 향을 뿌리며 떠다니는 것이 신기해 간간히 물을 손으로 찰박거리며 놀고있는데 어느샌가 티폰이 옆에 앉아 내 몸을 끌어당긴다. 물방울이 맺혀있는 붉은 머리칼을 신기한 듯 바라보다 붉은 눈동자에 시선을 옮겼다.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까만 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어쩐지......... 이질적인..............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섬세한 얼굴을 가만히 쓸어보자 붉은 속눈썹이 스륵 감긴다. 확실히......... 아름다운........... 강하고 단단하지만 아직 희미하게 소년 티가 남아있다. 따뜻한 물과 어지러울 정도로 짙은 꽃향기에 슬그머니 잠이 쏟아져 가만히 단단한 가슴에 머리를 기대자 강한 팔로 허리를 둘러 끌어당긴다. 약간 빠르게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기분 좋다. 그렇게 한참을 티폰의 품에 안겨있다 몸이 씻겨져 욕실을 나섰을 땐 거의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침대에 앉혀져 잠옷이 입혀질 때까지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 티폰이 나가려는지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옷을 갖춰 입고 침대 위에서 거의 꿈속에 발을 내디딘 내게 키스를 하고 사라지자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티폰을 찾아 여기저기 넓기만 한 침실을 둘러봐도 해가 기울어서야 들어온다는 걸 알고 있다. 약간 풀이 죽어 침대 위에서 내려서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음식에 손을 댔다. 이렇게 혼자 있으면 외롭고.......쓸쓸하다....... 티폰 외에 이 침실 안에 들어오는 사람이라고는 고개를 들지도 않는 시종들 뿐........ 그것도 자기 할 일만 후다닥 해치우고 사라져버리니.......... 티폰없인 밖엔 나가지도 못하고............ 나가봐야 바로 코앞에 있는 작은 정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하루종일 얌전히 침실 안에서 티폰이 오길 기다려야한다. 눈을 떴을 때부터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으니 밖에 그리 나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의문이 생긴다. 내겐 원래 이렇게 아무도 없었나........하는 것.......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도 없다....... 내가 없어진 걸 알았으면 날 찾으러 올 텐데.......... 아니면 티폰이라는 사내가 내 가족인 걸까......... 아버지나 어머니는 아닐 테고.......... 형................. ........정도.......인가.........? 물어보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으니...........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데 자꾸 창가에서 톡톡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지? 새........라도 앉았나.........' 지금까진 없었던 일이라 호기심이 일어 손에 고기조각을 쥐고 천천히 다가서 하늘거리는 커튼을 젖히자 발코니에 맞닿아있는 커다란 나무에서 자그마한 돌조각이 날아와 창가에 부딪쳐 떨어지고 있었다. '응.........?' 의아한 생각이 들어 창을 열고 발코니로 나가보니 커다란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건 자그마한 새가 아니라 내 또래 나이의 소년............ 다시 돌조각을 던지려다 날 봤는지 손을 멈춘다. "까만.......색?" 한동안 놀란 눈으로 내게 시선을 던지는 녀석을 불만스레 바라보자 악동같은 얼굴에 빙글빙글 미소를 띄운다. "흐~응......그 녀석이 그렇게 자랑을 해대는 형님을 보러왔는데............그 자식........여동생도 있었나? 크리올라에 까만 색 공주님이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여동생? 공주님? 무슨 소리야?' "여긴 분명 그 붉은 황태자님 침실이 맞는데..............왜 여기 있는 거야? 오라버니 방에 놀러 라도 온 거야?"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손에 들린 고기를 뜯어먹으며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 보듯 바라보니 꽤나 예쁜 얼굴.......... 티폰만은 못하지만 햇빛에 은실처럼 반짝이는 머리칼과 옅은 바이올렛 눈동자가 상당히 매력적이다. '누구야? 이 녀석은........?' "이름이 뭐야?" '응?' "이름 말야...............!!" 별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 말하고 싶어도 목소리가 나가지 않으니......... 멀뚱멀뚱 바라만 보자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설마............... ........말못해?" 고개만 끄덕끄덕 했더니 상당히 곤란한 표정........ "미안........." '별로 신경 안 쓰는데...........' "너 여기서 사는 거야?" '응..........' "왕족?" '아니...........' "그럼.......귀족?" '아니............' "시종?" '아닌 거........같은데.......' 가만히 고개를 휘젓자 의아한 얼굴........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은 거야?' "그럼................?" 되묻는 녀석의 얼굴을 빤히 바라만 봤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난.............. ............뭐지.............? "너........설마........여기 갇혀있는 거야?" 어쩐지........심각한 목소리......... '밖에 맘대로 나가지 못하는 거니까.........갇힌 거겠지.......?' 고개를 끄덕이자 대뜸 손을 내밀어 온다. "이리와!! 내가 내보내 줄게! 나랑 같이 가자!!" '나........가? 여기서.........?' 답답하긴 하지만 여기엔................ 그 녀석이........... 뒤로 주춤 물러서자 실망한 표정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낸다. "뭐야........나랑 같이 가기 싫어?" '싫어!!' 미간을 찌푸리자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부담스러울 정도로 능글맞은 웃음을 입에 건다. "좋아!! 결정했다! 너, 나중에 내 신부해!!" '신.....부.......?' 의아한 눈으로 바라만 보자 더욱 짙은 미소를 띄며 날 바라본다. "내 마.누.라!!" 그제야 녀석이 한 말들을 이해했다. '내가...........여자로 보여........?!!!' 충격이다. 티폰이 부러울 정도로 발육부진이긴 하지만 여자같이 생겼다고는 생각지 않았는데......... 순간 열이 확 뻗쳐 손에 들고있던 고기조각을 그대로 빙글거리는 낯짝에 냅따 던져버리고 씩씩 거리며 뒤돌아 섰다. 으득 이가 갈린다. 뒤에선 녀석이 나무에서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비명이 울리고......... "아이야드님........여긴 어떻게!!!" "헉, 들켰잖아!!!!" 녀석의 절규와 뭐라 떠들어대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창을 쾅 닫아버려 소음이 묻혀버렸다. 그렇게 하루종일 분을 삭히며 거울을 노려보다 해가져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리자마자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나갔다. 달리 그 녀석에게 당한 바를 이를 구석도 없으니......... 붉은 사내를 올려보자 내 몸을 번쩍 들어올려 안아준다. '내가 여자처럼 생겼어? 그 자식이..........니가 내 오라버니라고..........' 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듣고 보니 괜실히 억울하다. 목덜미를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하소연을 해봐도 평소처럼 심심해서 투정을 부리는 걸로 생각하는지 달래듯 가만히 등을 쓸어줄 뿐......... .........위로의 한 마디조차 돌아오지 않는다. 아니......... "어디.....아픈 건가......." ....................하고 이마를 짚어주긴 했다. 약이 먹기 싫어 어지러울 정도로 고개를 휘저어 겨우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결국........ 그렇게 골난 얼굴로 식사를 하고 티폰과 잠자리에 들었을 땐 잠도 오지 않아 낮의 일이 죄다 떠오르고 있었다. 내게 가족이 없는 건 약간 서운한 일이긴 해도............ 그래도........ 이렇게 따뜻한 품만 있다면.............. 품속으로 파고들자 꼬옥 끌어안아 준다. 하지만............. 앞으로 2년 후엔 나도........... 티폰처럼........... 이렇게 키도 크고 근육도 생겨 다시 그 팔푼이 자식을 보면 팍팍 밟아버려야지........!! 다시 부러운 근육들을 쓸어보다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비비고 미소를 입에 건 채 눈을 감자 갑자기 위에서 작은 한숨이 울려온다. Rubera(루베라) -102- 서늘한 새벽 공기가 콧속으로 스며들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는 빛이 시야를 간질인다. 어쩐지 움직이지 않는 몸에 부스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사내의 단단한 가슴.... '유이....?' 다시 눈을 감으려다 귓가를 스치는 규칙적인 호흡과 심장박동에 공포로 몸이 굳어버렸다. 그 녀석이 아니다..... 어느새 몸까지 깨끗이 씻겨져 녀석에게 안겨있었다.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강한 팔로 옥죄고 있는 녀석을 공포를 겨우 누르고 올려보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피처럼 붉은 머리칼......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듯 피곤한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익숙하지만........... 이제는 익숙지 않은 따뜻한 체온에 몸이 떨려온다. '설마.....들킨 건가.....?!!' 흔들리는 잿빛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다 고개를 휘저었다. '그럴 리가.....' 머리칼은 몰라도 눈동자와 피부색까지 다르다. 루베라도 새겨져있지 않고 죽은 녀석이 살아 돌아왔다는 황당한 소릴 믿을 녀석도 아니다. 그날 밤 있었던 일만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설령........ 기억하고 있다 하더라도 녀석은 자신의 침실에 침입한 녀석이 하류라는 것만 알지 외모까지 바뀐 건 보지 못했으니........ 왜 지하감옥 안에서 황제의 침실로 옮겨졌는진 모르겠지만 아직 녀석이 눈치 채지 못했다면..........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는 거다. 순간.............. 내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갑자기 팔에 힘을 줘 숨이 막히도록 끌어안는 녀석에게 놀라 흠칫 하다 아직 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곤 다시 긴장을 늦췄다. '빌어먹을.......!! 그런데 왜 이런 꼴로 이 자식한테 안겨있는 거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홀딱 벗은 걸 깨닫고 미간을 찌푸리다 갑자기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에 얼굴을 구겼다. '설마.....또 잠자리상대로라도 쓰려는 건 아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리저리 몸을 훑어보니 다행히 아직 손대진 않았는지 이상한 흔적은 없다. 벗은 피부에 이제는 낯설기만 한 녀석의 피부가 느껴지자 잠시 공포가 스쳐간다. '이미.........다 지난 일이야............' 내겐............ 이 녀석을 두려워할 이유조차 없는 거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지하감옥 안에서 보았던 녀석의 잔혹한 모습이......... 머릿속 한켠에 꾹꾹 눌러놓았던 고통스런 기억이........ 마음속 깊숙이 숨겨놓았던 알 수 없는 감정이.......... 수면 위로 고개를 디밀 듯 자꾸 삐져나오려는 걸 겨우 억누르고 다시 생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젠장!!' 다시는....... 이 녀석을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제 루베라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는데...... '왜 이렇게 엉키는 거야?!! 전생에 이 자식 돈을 떼먹고 도망을 쳤나........... 빌어먹을...............' 어쨌든 빨리....... 유이 녀석을 찾아 이 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조급한 마음에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바르작대던 순간......... 몸을 옭아매던 힘이 풀리고 턱이 들리더니 입술에 뜨거운 것이 맞닿아왔다. '언제......' 놀라 크게 뜬 잿빛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자 무겁게 내리 앉아 붉은 눈동자를 가리고 있는 속눈썹이 시야에 들어온다. 심장이 정신없이 뛰어댄다. 그것이...... 너무나 두렵다...... 입안을 가르고 들어오려는 녀석을 피해 입술을 꽉 다문 채 고개를 돌려버리고 뺨에 뜨거운 입술이 스치자마자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 녀석의 품안에서 겨우 빠져 나왔다. 헐떡이며 붉어진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내자 심홍색 눈동자가 내 입술을 쫓는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자 붉은 눈동자로 집요하게 날 바라보더니 잠시 후 놀란 듯 표정을 굳힌다. "눈동자가......" '이제야 본 건가....?' 한심하게 공포에 떨어대는 몸으로 빌어먹게도 넓기만 한 침대 위에서 천천히 뒷걸음질치자 굳어있던 녀석이 갑자기 내 발목을 움켜쥐고 한번에 끌어당겨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끌려가 녀석의 아래 드러눕는 꼴이 되어버렸다. 목줄기를 물어뜯으려는 육식동물 밑에 깔려 벌벌 떨기만 하는 약한 짐승처럼 꼼짝도 못하고 얼어있자 녀석이 어쩐지 묘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어떻게.........된 거지..........? 분명............."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섬세한 손을 뻗어 하얀 머리칼을 살짝 움켜쥐자 섬뜩한 감각에 고개를 돌려버렸다. 심장이......... 거칠게 뛰어댄다. 약간이라도 틈을 보이면...... 약간이라도 실수를 하면..... 녀석의 루베라였다는게 발각돼 바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할 것 같아 공포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한동안 새하얀 머리칼을 쓸어보더니 갑자기 내 턱을 쥐고 붉은 눈동자를 맞춰온다. 시야에 파고드는 녀석의 붉은 눈동자는......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미치도록 예쁘지만 언제나처럼 알 수 없는 눈빛........ 두 달 전 감옥 안에서 보았던 격한 분노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왠지 뭔가가 빠져나가 버린 듯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 "눈동자 색이........ 왜....... 다른 거냐.......? 얼굴은 분명..........." 평소와 같이 차갑지만 어쩐지 혼란스런 목소리.... 내게서 무엇을 찾으려는 건지 집요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대답이라도 하길 기다리는지 참기 힘든 침묵이 계속된다. '역시........못 알아보는 건가......?!!' 병사들을 시켜 날 찾아냈으니..... 분명......... 그날 밤의 일은 기억하고있는 듯 한데..... 어쩐지......... 이상한.............. "역시....... .....말을 못하는 건가..........." 녀석의 이상한 태도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시야에 파고드는 붉디붉은 빛에 공포에 질린 듯 넋이 나가 한참동안 입이 붙어버린 듯 말을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면...... 그날처럼......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고 선대 황제의 암살을 실토했던 날처럼 말을 흘려보내면......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턱이 잡혀 피해버리고 싶은 붉은 눈동자를 피하지도 못한 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103- "폐하......" 벌써 기침할 시간이라도 됐는지 평소와 마찬가지로 육중한 침실 문 저편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들려와 안도한 것도 잠시...... 한 눈이 팔린 사이 녀석이 시트를 확 걷어내 그나마 겨우 가리고 있던 알몸이 밝은 빛에 환히 드러났다. "물러가라......"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녀석의 밑에서 벗어날 생각도 못한 채 굳어있자 진짜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찾는 듯 벗은 몸을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한다. 지하감옥에서 입은 자잘한 생채기와 녀석이 강제로 범한 흔적 따윈..... 사라진지 오래다.... 루베라도..... 내 몸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녀석의 흔적도 유이 녀석과 함께 새긴 은빛 문장에 가리어져 버렸다. 설령........ 강제로 범해졌을 때 생긴 상처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하더라도........... 미쳐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새겨진 거니 알아볼 리도 없고............... 지금은.............. 녀석의 흔적대신........ 하얗기만 한 피부 위에 남아있는 건...... 그날 밤....... 유이 녀석이 곳곳에 새겨놓은 붉은 자국 뿐....... 분홍빛으로 희미해져 가는 화인은 능글맞은 녀석답게 옆구리나 허리, 허벅지 안쪽에 새겨놓아 자세히 살펴봐야만 눈에 띄었다. 몰래 새겨놓은 듯............ 하지만 확실한 소유의 각인............ 잔뜩 굳어버린 손가락으로 붉은 화인을 쓸어보다 얼음이 박힌 듯 차갑게 입을 연다. "누가 감히......." 그때처럼........ 분노가 가득 담긴 눈동자가 내게 닿아오자.............. 순간.............. 무의식적인 공포에 기가 막히게도 시야가 흐려지더니 볼을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뭐....뭐야......?'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몸의 반응에 당황해 재빨리 손을 들어올려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물기를 훔치려하자 갑작스런 눈물에 놀라 잠시 굳어있던 녀석이 손목을 쥐어 간단히 침대 위에 눌러버리고 눈물을 훔쳐주기라도 할 듯 부드러운 입술을 뺨에 미끄러뜨린다.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소중한 것을 다루듯........ 따뜻한................... 하지만........... 이렇게 녀석의 품안에 있으면..... 예전과는 달리..... 불안하다.... 불안하고...... .....두렵다...... 심장이 아프도록 뛰어댄다. 키스를 하듯 뺨에 가볍게 닿아오던 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에 가볍게 스치더니 그대로 포개오자마자 흠칫 놀라 얼굴을 돌려버렸다. 내 몸을 내리누르는 무게가.......온기가.......낯설고 무섭기만 하다....... "내가....... .....두려운 거냐........ 증오하고 있겠지......... 죽이고 싶을 정도로......" 귓속으로 낮은 목소리가 아프게 파고든다. 녀석이...... ......밉다. 증오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자격이 내겐 없다는 것도 안다. 방법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 당연한 죗값을 받은 거니까...... 지금의 난....... 그런 감정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없이 누워만 있는 날 잠시 꼬옥 끌어안더니 다시 내 위에서 몸을 일으켜 온다. 붉은 화인과 여기저기 타박상으로 멍이 든 하얀 나신을 겨우 분노를 억누르고 바라보다 곧 상처자국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집요하게 훑어본다. 마치 뭔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자의인지 우연인지 익숙하게 성감대를 손으로 짚어오는 녀석에게 흠칫흠칫 몸을 떨며 쾌감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시선을 던지자 움직임을 뚝 멈추고 가라앉은 시선으로 날 바라보더니 어쩐 일인지 조심스런 손길로 내 몸을 일으켜 앉힌다. "이...건........." 잔뜩 긴장한 채 앉아있는데 뒤에서 놀란 듯한 녀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고.... 루베라가 있던 자리에 다시 새겨진 은색 문장을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만지려 하자 놀라 굳어버린 녀석에게서 후다닥 벗어나 옆에 떨어진 시트로 대충 알몸을 감싸고 침대 끝으로 멀찍이 달아나 버렸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벽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은 채 고개를 들어올리자 잔뜩 굳은 표정으로 움직임 없는 녀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루베라라도...........찾는 거였어.....? 쓸데없는.........' 피처럼 붉은 각인은 이미 찾을 수 없을 터..... 루베라에 박아 넣었던 칼자국도 미친 의사놈이 보기만 해선 모르는 게 당연할 정도로 정교하게 은빛 문장으로 가려버렸다. '역시....... 몸은 이 녀석이 씻긴 게 아니었나.......' 루베라가 없어도 그 위에 박아 넣은 칼자국을 보면 들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은빛 문장은커녕 상처조차 보지 못한 듯한 녀석을 보니 확실한 사실......... 왠지............. 이미 사라져버린 루베라라도 찾는 듯한 녀석의 행동에 섬뜩함이 온몸을 타고 오른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는 아직도 날...... ......예전의 날...... 루베라가 새겨져있는 하류를 미친 듯이 찾고 있는 것만 같다. 끔찍하기만 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채...... '왜..... ....날 찾는 거야..... 아직도 내가 갚아야 할 죗값이 남아있는 건가..... 죽어서 갚은 걸로도 모자라?' 겨우 격한 감정을 억누르고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한참만에 고개를 들어올려 날 바라보는 녀석의 붉은 눈동자엔 좀 전과는 다른...... 어딘지 텅 비어보이는 서늘함이 베어있었다. '큭, 역시............. ...........루베라가 없으면........... ..........알아보지 못하는 건가.............' 생판 남을 보는 듯한 시선에 상처받아 흔들리는 잿빛 눈동자를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여버렸다. 차갑게 식은 붉은 시선이 따갑게 내게 닿아온다. "황가의......... ......소유인가....." '뭐.....?!!' 104 - "황가의......... ......소유인가....." '뭐....?!!' 농담 같지 않은 녀석의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들어올리자마자 내게 박히는 싸늘한 표정에 몸이 굳어버렸다. '무슨.......소리야......?!! 황....가......라니.....' 혼란에 빠져 어느 곳에도 시선을 두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내게 싸늘하게 박히는 녀석의 시선이 소름끼칠 정도로 싫다. 저렇게 날............바라보는 녀석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기만 하다.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죽어버릴 것만 같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하자 아플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어 버렸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조금 후, 침실로 들어선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화려한 옷을 갖춰 입고 시녀들이 물러가자마자 다시 내게 시선을 던진다. "노예인가....." '노....예?!!' "내게 와라...." '무슨.......?' "원하는 건 뭐든 손에 쥐어주마......" '이 새끼.....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어쩐지...... .....이상하다..... 날 못 알아 본다기 보단....... 마치...... 날 처음 보는 듯한 녀석의 행동이.......... "대답해......" 꿰뚫는 듯한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대답을 재촉해 온다. 떨리는 잿빛 눈동자로 녀석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또........ 그 소리냐........ 큭, 잠자리상대 꼬실 때 쓰는 말인가....... 니가 주는 건 이제....... 아무 것도 필요 없어.......' 대답이 없자 다시 녀석이 무겁게 입을 연다. "부를 원하면 이 대륙의 모든 부를...... 권력을 원하면 황제의 권력을...... 그것도 부족하다면....... 뭐든 원하는 걸 말해......" '역시....... 아무 것도...... ......필요 없어...... 부라면 내 손으로도 쥘 수 있고..... 권력 따윈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남은 건...... 녀석이 내게 줄 수 있는 건...... 하류란 녀석이 받았던..... ......사랑....? 그딴 건..... 쓰레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내겐....... 필요 없어.....' 심장이 자꾸 울렁거려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어쩐지............ ........쳇바퀴를 돌리는 기분.......... ........과거로 돌아간 듯............... 간단히 받아들였던 예전과는 다르게 싸늘히 고개를 돌려버리자 초조함을 채 감추지 못한 눈동자가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 "큭, 아무 것도......필요 없단 거냐...... 몸에 화인이 새겨진 것을 보니......침실노예였을 테고..... 네 주인을.....사랑이라도 한다는 건가....?!!" '대체.....무슨....소리야?!! 누가 침실노예란 거야?!!!' 갑자기 내게 다가와 손목을 틀어쥐고 내 몸을 확 끌어당기더니 거칠게 시트를 벗겨내 목덜미에 데일 듯 뜨거운 입술을 맞대왔다. 좀 전과는 달리 거침없는 행동에 몸을 흠칫 굳히자 피부를 간질이며 녀석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왜....... 날 두려워하는 거지? 거부해도 소용없어..... 네가 누구든.....누구의 소유든 황제의 침소에 함부로 침입했으니 손이 잘려 처형을 당하거나 운이 좋아도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노예로.....만들어?!! 이 변태새끼 설마 진짜로 날 침실 노예로 쓸 작정인가......?!!' "내 눈에 띈 이상....... 내 아이를 닮은 이상....... 운이 없었다고 생각해....." '닮다니...........누굴....?!! 도대체 무슨 소리야?!! 대체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는 거야?!!' "왜 아까부터 반응이 없지?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냐..... 부정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이렇게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팔에 감겨있는 새하얀 붕대를 손으로 짚어보더니 굳어있는 내 몸을 그대로 쓰러뜨려 부드러운 입술을 겹쳐왔다. 거부할 틈도 없이 뜨거운 혀가 안으로 파고들어 내부를 온통 휘저어대더니 겨우 정신을 차리고 녀석의 입술을 피하기 위해 다시 고개를 돌리자 너무도 조심스러웠던 좀 전과는 달리 다른 사람을 대하듯 집요하게 따라붙어 잡아먹을 듯 입술을 빨아들이고 혀로 자극 해댄다.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친 듯 버둥대자 내 입술에서 떨어져 나가 달래듯 목덜미에 살짝살짝 키스를 하더니 갑자기 내 것을 쥐어왔다. 놀라 비명을 지르려던 걸 겨우 삼키고 본능적인 공포에 몸을 떨자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녀석의 손길에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정신없이 해대는 키스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녀석의 자극에........ 손길에...... 미칠 듯한 공포와 거부감 외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심장을 할퀴는 듯한 고통...... '어째서....... 그 녀석이.... 유이가 할 때는........' 섬세한 손으로 아무리 자극을 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페니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굳어버린 녀석을 보곤 결국 쓴웃음을 흘려냈다. '그렇게.....당해버렸으니........ 다행인....건가.....정신병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같군.......' 이제..... 녀석이 아무리 만져대도 창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이렇게 돼 버리면..... 침실 노예 따위론 쓸 수 없겠군..... 아니..... 욕정만 채우면 될 테니 상관없는 건가.....' 105- "아무 것도......느낄 수 없는 건가........" '덕분에.......' 녀석의 손을 거칠게 밀어내자 순순히 떨어져 나간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벗은 몸에 시트를 덮어 감싸주는 녀석에게 고개를 돌리자 손으로 가만히 새하얀 머리카락을 쓸더니 천천히 입을 연다. "오늘부터...... 이곳에서 지내라..... 밖으론 절대 나가지 말고..... 밖엔 병사들을 세워두겠다. 달아날 생각은 하지마.... 넌 오늘부터 뮤즈니안이 아닌...... 크리올라의..... 황제의 노예다....." "웃기지마!!!! 난....... 난.....노예가 아니야!!" 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녀석의 손을 거칠게 쳐내고 소릴 버럭 지르자 녀석이 놀란 듯 날 바라본다. "말을......할 수 있었던 건가......? 큭, 역시........ 그 아이가..... 내 루베라가 아니었군....." 어쩐지......... .........냉소적인............목소리............ '말을......못해? 루베라? 내 얘긴가? 말을 못한 건 분명 2년......전이라고 했는데.....?!! 설마........' "루베...라.......라니?"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되묻자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날 보더니 생각에 잠긴 듯 흘리듯 말을 잇는다. "2년 전 황제의 숲에서 실종된..........." '하, 정말....... 날............ 다 지워버렸어.....?!!' 과거의 내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다. 분명....... 몇 달 동안 같이 지냈던 난...... ......잊어버린 거다.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혹시...... 유이 녀석이 준 약이 잘못된 건가....?!!' 단순히 기절에, 기억에 혼선을 주는 약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은...... 기가 막히게도 몇 달간의 내 모습만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때........ 그날 밤....... 날 붙잡는 녀석에게...... 모두 꿈이라고...... 다 잊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쓰레기처럼............. "노예가 아니면....... 등에 새겨진 문장은 뭐지?!!!" "등?" 등엔 분명....... 루베라가 아닌 유이 녀석과 도둑질을 시작한 기념으로 새긴...... 기묘하게 생긴 은빛 맹수가.......... 어쨌든 지금은 가만히 있으면 꼼짝없이 또다시 이 녀석의 성노가 되고 말 거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친구 녀석이랑 함께 새긴 거야!! 노예 따위가 아니란 말야!!" 사납게 노려보며 말을 뱉어내자 감히 황제에게 대든 간 큰 녀석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붉은 눈동자를 맞춰온다. "친구? 큭, 그럼.....뮤즈니안의 귀족이었단 말인가?" '뭐? 왜 갑자기 노예에서 귀족이 되는 거야?' 잠시 녀석을 노려보다 씹어 뱉듯 말을 꺼냈다. "난...... 니놈의 침실노예 따윈 되지 않아......." 그렇게 되려고 다시 살아 돌아온 게 아니다........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그러쥐고 녀석을 노려보자 붉은 얼음조각처럼 서늘한 눈동자가 내게 박혀들어 온다. "노예든 귀족이든 니가 누구든 상관없다고 말했을 텐데..... 황제의 침소에 침입한 순간 죽던지.....노예가 되던지 둘 중 하나로 결정된 거야....." '네놈은 이제......... 날.......죽일 자격이 없어........' "그리고....... 결정은 내가 하는 거다......" '웃기지마.......' "왜 또 입을 다무는 거지? 큭, 황제를 상대로 그런 식으로 입을 놀리다니........ 주인이........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군........." '주인? 하, 예전에 날 길들인 건 네놈이야.....!! 빌어먹을......자식!!' 입술에서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깨물자 순간 고개를 숙이더니 입술을 겹쳐온다. 녀석이 내 몸에 손댈 때마다 온몸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오는 공포를 뛰어넘어 분노가 이성을 지배해 간다. 뜨거운 입술이 맞닿자마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바로 거칠게 턱을 잡은 손이 얼굴을 돌려 할 수 없이 녀석의 입술을 받아들이고 증오로 가득한 잿빛 눈동자로 붉은 사내를 노려보자 피하지 않고 날 바라보며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듯 맞닿은 입술에 작은 미소를 걸친다. #106 이를 꽉 다문 채 입술을 열어주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고...... 피하지 않고 날 바라보는 붉은 눈동자 때문에 시야가 붉게 흐려져 오는 것만 같다. 몇 번의 키스로 붉어져 부풀어 오른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부비고 슬쩍슬쩍 핥으며 빨아대다 입술을 가르고 들어서려는 걸 이를 앙다문 채 거부했다. 포기하지 않고 한참동안 입술만 배회하던 녀석이 순간 상처가 나 피가 베어 나오는 곳을 핥더니 이로 꽉 깨물어 반사적으로 작게 비명이 새어나간 순간 입안으로 녀석의 뜨거운 혀가 파고들어 왔다. 턱이 잡혀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입안을 제멋대로 휘저어대는 혀를 깨물지도 못한 채 버둥거리다 녀석의 무게에 눌려 다시 침대 위로 쓰러져 버렸다. 항상 녀석에게서 나던 시원한 향이 입안에서 맴돌고 누구 것인지도 모를 타액이 긴장으로 마른 목구멍으로 넘어오기 시작한다. 숨이 막혀 미친 듯 버둥거리며 꿈쩍도 않는 가슴을 밀쳐내자 한참이 지나서야 녀석이 떨어져 나간다. 한동안 헐떡이다 섬뜩한 느낌에 정신을 차리니 녀석의 몸이 내 위에 겹쳐져 있었다. "비.....비켜!!!" 날카롭게 소릴 지르자 잠시 자신의 아래서 몸을 떨며 노려보는 날 바라보더니 의외로 쉽게 떨어져 나간다. 바로 몸을 일으켜 떨리는 손으로 시트를 끌어당겨 몸에 감고 침대 끝으로 달아나 손등으로 타액에 젖은 입술을 거칠게 문질러 버렸다. "이 개새끼.....내 몸에 손대지마......" 다시 눈가에서 물기가 새어나오자 신경질적으로 물기를 비벼 닦았다. "이제부터 내 것이라고 했을 텐데....." 지독히도 차가운 목소리...... "얌전히 내 곁에 있으면 노예취급은 하지 않겠다....." '웃기지마......' 거부하듯 시선을 돌려버리자 발걸음을 돌려 문 쪽으로 향한다. "잘....생각해....... 거칠게 다루고 싶진 않으니까......." "난 장난감이 아냐!! 니놈 노리개가 아니란 말야!!" 문이 조용히 닫히자마자 미친 듯이 소릴 질렀다. 정신이 확 나가버려 시트가 찢어지도록 움켜쥐고 정신없이 발악을 해댔다. "빌어먹을.....!! 죽어버려!!! 개새끼!!!" 혼자 아무리 난리를 쳐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건 한참이 지난 후.....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바로 시선을 돌린 곳은 무기를 진열해 놓은 한 쪽 벽면...... 눈길을 끄는 건 지나치게 아름다운 곡도 한 쌍...... '왜.....여기 있는 거야?' 분명 한 쌍 모두 황성에 두고 탈출하긴 했지만.............. 붉은 곡도 뿐 아니라 시온이 내게 준 푸른 곡도까지 한 쌍처럼 같이 걸려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다 두 자루를 손에 쥐었다. 전에 쓰던 단검보다 약간 무겁긴 하지만 케레스에게 배울 땐 이걸 사용했으니 약간만 연습하면 무리 없이 사용할 순 있을 것 같다. 흠집하나 없이 날카롭게 날이 서있는 곡도를 잠시 바라보다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쏟아져 들어오는 창으로 발길을 옮겼다. 발코니로 나가 아래를 내려보니 지키고 있어야 할 병사들이 없다. '문 밖에만 세워둔 건가........ 역시...... 싸그리 잊어버렸군......' 몇 달 전 녀석의 루베라로 황성에 있었을 땐 세 번이나 이 창으로 밖에 나간 전적이 있다. 게다가........... '잘난 황제 폐하께서 내가 황성에 침입했던 도둑이란 걸 깜빡하셨나.........? 침입할 수 있다면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지........' 탈출할 궁리를 하고있는데 퍼뜩 떠오른 생각에 참혹하게 얼굴을 구겼다. 몸을 내려보니 홀랑 벗은 알몸...... 운동장만큼 넓은 침실 안엔 옷은커녕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뻔뻔해도 다 벗고 돌아다닐 정도로 담이 쌔진 않다. 한 낮에 유령 쇼도 아니고 하얀 시트를 걸치고 돌아다니면 열 발자국도 못 가 잡힐 건 뻔하고...... '젠장........어쩌지......' 문까지 막아놓고 시종조차 들이지 않아 옷을 내달라고 말도 할 수 없고...... 안절부절 못 하다 결국 탈출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해가 지고 녀석이 돌아오면 옷을 받아 내일 녀석이 없을 때 도망치면....... 생각을 정리하고 침대로 다가가 항상 내가 잠을 잤던 침대 안쪽 베개 밑에 단검을 숨겼다. 거의 두 달 만에야 돌아온 녀석의 침실은....... 변함이 없지만.....어쩐지...... ......삭막하기만 하다. 자꾸만 우울해지는 기분을 가라앉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태양 빛에 따뜻한 물 속으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하얀 대리석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대충 몸을 씻었다. 물기를 털어 내고 욕실을 나서자 역시나 넓기만 한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보석들과 값비싼 물건들만 해도 눈요기 거리론 충분하지만 지금은 그럴 기분도 아니고....... 알몸으로 침실을 왔다갔다하기도 그렇고...... 별 수 없이 침대로 기어 들어가 시트를 머리까지 뒤집어쓴 채 눈만 말똥말똥 뜨고있길 한참......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녀들의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침실 안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지 두런두런 말을 하기 시작한다. "폐하께서 요즘 너무 과하게 술을 드시는 것 같아..... 지난 번 도둑이 들었을 때도 그렇고...... 손엔 검에 베인 상처까지 있으셨는데도 술에 취해 기억도 잘 못하시는 것 같더라구.... 예전 같았으면 그 간 큰 도둑도 단칼에 베어버렸을 텐데......" "뭐, 도둑은 이미 잡아서 처형을 시켜버리셨다잖아?" "응.......바보같이 황성까지 침입하다니........" '뭐야........난 이미 죽은 게 돼 버린 거야? 씹, 두 번이나 죽었군......' 속으로 작게 투덜대고 있는 사이 계속해서 말이 들려온다. "그날 밤엔 미르니안님도 침소에 드신 것 같은데......" "미르니안님? 듣기론 드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오셨다고 하던데....." '큭, 남편 될 녀석하고 찐하게 한판하고 나가더군........' "설마 아직도.....폐하께선 루베라를 잊지 못하고 계신 게 아닐까?" '자기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게 억울했겠지...........' "글쎄.......폐하의 손으로 직접 처형까지 하려고 했잖아......" "하지만....." "폐하의 루베라도 폐하의 손에 직접 죽지 않고 그렇게 돌아가신 게 오히려 잘 된 일이야....." "그럴지도...." '젠장......그 때 그 자식 손에 죽었으면...............이렇게 일이 꼬이지도 않았을 텐데........' "그런데.....그날 밤....도둑이 든 이후로 폐하께서 약간 이상해지신 거 같지 않니.....? 시종들도 폐하께서 미치신 게 아닌가 수근대고 있다구..... 루베라께서 돌아가신지 두 달이 지났는데 까맣게 잊으신 듯 갑자기 뮤즈니안 국경이 아니라 황제의 숲에 다시 병사들을 풀고있데.... 게다가 전처럼 까만 색을 금기 시 하다니..... 황성에 루베라가 계시기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뮤즈니안 국경으로 루베라의 시신을 찾으러 나갔던 병사들도 빈손으로 돌아와 폐하께 보고도 드리지 못하는 모양이야..... 어제도 루베라가 돌아가셨다고 입밖에 냈던 시종 하나가 목이 잘려나갔으니....." "쉿! 조용해!! 그런 소리 입밖에 냈다간 바로 처형당하고 말 거야....." "듣는 사람도 없는 걸 뭐.....루베라가 돌아가시고 황성에서 몇 명이나 처형을 당했는지 아직도 피비린내가 성에 베어버린 것 같다니까..... 참혹하게 감옥으로 내치실 땐 이미 마음이 돌아서신 줄 알았는데......" "어쩌면 후회하고 계셨던 게 아닐까........" "그럴지도......두분.....굉장히 잘 어울리셨는데.....폐하께서도 그렇게 부드러웠던 건 처음이고.... ........그런 분이 선대 황제의 암살범이었다니......아직도 믿을 수 없어..." "글쎄말야........요즘엔.....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다니까......폐하껜 가까이 가기도 무서울 정도야....." "어쩔 수 없지.....뭐, 이제 폐하께서도 황비를 맞으실 테니......차차 나아지시겠지...." "그런데......폐하께서 갑자기 왜 이 방안에 음식을 들이라 하신 걸까?" "글쎄.....설마 방안에......" '이제야 본 거냐...........' 침대 위에 시트를 덮어쓴 채 내가 누워있는 걸 그제야 발견했는지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더니 급하게 침실을 나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한동안 들리던 소음이 사라지자 주위엔 정적만이 가득하다.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미친놈처럼 또 엄한 사람들을 죽여대고 있나보군....... 역시..... 요 몇 달간의 기억이 모두 지워진 건가............ 큭, 정말 간편하군........... 나도......... ........다 잊어버렸으면 이런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다구........... 차라리................. 2년 전처럼 싸그리 지워져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107 한참을 그렇게 누워만 있다 벌떡 일어나 보니 테이블 위엔 음식이 한 가득...... '굶겨 죽일 생각은 없나보군......' 태평하게 음식을 배불리 먹고 시트를 덮어쓴 채 침대 위에 앉아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겨우 기다리던 시녀들이 침실 안으로 조용히 들어서 아까완 달리 고개를 푹 숙인 채 테이블에 놓여진 빈 그릇들을 치우기 시작하자 툭 말을 던졌다. "옷 좀 줘........." 놀란 듯 흠칫 몸을 굳히더니 머리를 들 생각도 못하고 조용히 말해온다. "폐하께서 명하신 건 음식뿐입니다" "씹, 그럼 나보고 계속 이렇게 홀랑 벗고 돌아다니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까지 붉히고 안절부절못하는 꼴이........ "저흰 폐하의 명에만 따를 뿐입니다" '젠장, 옷 하나 가지고 명까지 받아야돼?!!' 얼굴을 구긴 채 궁시렁대자 후다닥 테이블을 치우고 달아나듯 침실을 나가버린다. '빌어먹을.....하루종일 가둬놓을 셈인가....?' 지금까지 녀석의 행동을 보면 지난밤 자신의 침실에 침입한 도둑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하류였다는 건 기억조차 못하고........... '병사들이 말한 대로라면 상처 하나만을 가지고 밤새도록 수도 전체를 뒤져 운 없게도 날 찾아낸 거겠지..... 그리곤 감옥 안에 쳐 박힌 도둑놈을 2년 전 사라진 자기 루베라와 닮았단 이유로 홀랑 들고 와보니 얼굴만 닮은 가짜........ 그래도 닮기라도 했으니 침실노예로 쓴다.........이건가? 큭, 황당한 놈.....변태 짓은 여전하군........ 그나저나........날더러 황가의 소유 어쩌고 한 건 도대체 뭐야? 그리고......아무리 내가 다 잊으라고 했다곤 하지만 그렇게 단박에 잊을 수도 있는 거야? 역시 유이 녀석이 준 약에 이상이 있었던 건가...... 그 자식, 여기서 나가면 반 죽여놓을 줄 알아......' 바득바득 이를 갈다 터무니없는 곳에서 열을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피식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날.......다 잊었다면..... ....오히려 잘된 일 아냐? 왜 내가 그딴 일로 화를 내? 그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돌아다니는 복합정신병동이 돼버렸는데.........' 복잡해지는 생각을 다 지워버리고 벌떡 일어서 침대에 숨겨놓았던 단검을 꺼내들었다. 어차피...... 시간도 남아돌겠다....... 약간 무게가 있는 단검을 몇 번 휘두르자 공기를 가르고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보석까지 박혀있어서 쓰기도 아깝군......씹, 가지고 탈출하면 보석만 빼서 팔아치워 버린다!!' 지난 몇 달간 케레스가 가르쳐준 검술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다.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자기 몸 하나쯤은 지킬 수 있어야 하니...... 새로운 단검이 손에 익을 때까지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다 움직임을 멈춘 건 팔을 너무 무리하게 움직여 티폰의 검에 베인 상처에서 조금씩 피가 새어나오기 시작할 무렵.......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거칠게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숨을 골랐다. 창 밖을 보니 벌써 해가 지기 시작하는 지 붉은 빛이 침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하아........" 벌써 이곳에 잡혀온 지 거의 하루가 돼간다. '유이 녀석......잡히지 않았겠지? 구한답시고 방정떨지 말고 얌전이나 있어주면 고마울 텐데....... 큭, 이미 죽은 걸로 돼있으니......... 포기하고 숲으로 돌아갔을 지도..........' 몸을 일으켜 욕실로 들어가 땀에 베인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나오니 해가 져 침실 안이 약간 어두워져 있다. 녀석이 들어올 시간....... 무거운 마음으로 침대 위에 털썩 드러누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역시 돌아오는 게 아니었는데.......... 멍청하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등뒤로 조용히 침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지척에서 발소리가 멈춰 눈을 감는 순간 뜻밖의 비명소리가 울려와 침대 위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눈에 보이는 건, 기가 막히게도 녀석의 여자...... 황제의 약혼녀가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뭐야?!!!'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 패닉상태에 빠져든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건 티폰과 눈앞에 보이는 이 여자의 정사장면...... '그런.....건가........' 나도 모르게 표정을 일그러뜨리자 뭔가 요란하게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독한 술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시선을 돌리자 바닥에 산산조각이 나 깨져있는 병조각과 푹신한 고급 양탄자를 적시는 호박색 액체........ '술?!!' "너....넌 누구냐!! 감히 황제폐하의 침소에서 뭘 하는 거지?" 아름다운 목소리지만 날카로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답이 없자 예쁜 눈썹을 휘며 눈을 치켜 뜨는 게 나만큼 한 성깔 할 것 같은 표정....... '황비 후보면 표정 관리 좀 해야하는 거 아냐? 축하주까지 마셔가며 그 자식이랑 한판 뜰려고 왔는데 방해꾼이 있어서 틀어졌나? 씹, 불쌍하다고 했던 거 다 취소야......' 이유 없이 기분이 더러워지기 시작한다. 아침에 티폰 녀석에게 받은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판에........... "니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있고 싶어서 여기 있는 줄 알아? 황젠가 나발인가가 억지로 가둬둔 거 아냐?!!!" "서....설마......폐하께서 침실노예라도 들이셨단 말이냐?!!" 분노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날 노려보는 여자를 보곤 열이 확 뻗쳤다. "누가 침실노예란 거야?!! 그 발정난 새끼 단속만 니가 잘 했으면 이런 일 없었을 거 아냐?!! 젠장, 얼굴 이쁜 것들이 성깔도 더럽다더니......." "이.....이 천한 것이!! 당장 죽여버리겠다!! 여봐라!!" "천한 것? 놀구있네!! 씹, 얼굴 예쁘다고 칭찬을 해줘도 저 지랄이야? 원조 개차반이구만!! 그 새끼, 엄청 바가지 긁히고 살겠어....쌤통이다!! 큭, 애처가는 몰라도 공처가는 충분히 되고도 남겠군........." 혼자 궁시렁대고 있는 사이 여자가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릴 질러대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침실 안으로 급히 들어선다. "이 노예녀석의 목을 베어 짓이겨버려라!!" '목을 베면 바로 죽을 텐데 뭣하러 짓이기기까지 해? 큭, 어린 게 서방 못지 않게 잔인하잖아?' 당장이라도 날 죽여버릴 듯한 여자완 달리 병사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선뜻 명에 따르지 않는다. "뭘 하는 것이냐?!!!" 분노에 높아진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아 씹, 귀따갑잖아!!" 손가락으로 귀를 막으며 바락 소릴 지르자 패닉상태에 빠져 나와 여자를 번갈아 보고있던 시종 한 명이 다급하게 말을 잇는다. "미르니안님......폐하께선 침소 안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난....황비가 될 신분이다....." "하지만......" "거역하겠단 거냐!!!" "저 아일 폐하의 명 없이 죽여버리면 모두 목이 떨어져 나갈 겁니다" "감히 나도 거기에 포함된단 말인가!!" 분한 듯 붉은 입술을 깨물고 노려보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과 시종들은 고개만 숙인 채 말이 없다. 얼음처럼 차갑고 잔혹한 녀석이니........ 미쳐버리면....... 약혼녀라도 베어버릴 지도....... 여자도 그걸 아는지 한참동안 죽일 듯 날 노려보다가 날카롭게 소릴 지른다. "당장 이곳에서 나가라....다음에도 내 눈에 띄면 살려두지 않겠다....." '얼씨구, 횡재했군.......' 지금까지완 달리 두말없이 시트를 몸에 감고 일어서 문을 향해 걸어갔다. #108 어찌할 바를 모르고 식은땀을 흘려대는 병사들을 지나쳐 문 밖으로 나섰다. '이 대로 성밖으로 나가서 황제의 숲으로...... .......가만.....옷이 없잖아....?!!'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는지 누군가에게 부딪쳐 몸이 휘청해 넘어지려 하자 강한 팔이 재빨리 허리를 끌어당긴다. 익숙하게 안아오는 폼과 화려하기만 한 옷을 보니 누군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분명 침실 밖으론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씹, 두 발짝밖에 못 나왔잖아?!!!!!!'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에도 얼마 도망치지도 못하고 붙들려버린 데 골이나 쳐다도 보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자 밀착된 허리를 아프게 죄어온다. "흐윽............" 통증에 작게 신음을 흘리고 벗어나려 발버둥쳐보지만 녀석의 엄청난 힘에 어른이 아이를 제압하듯 간단히 막혀버리고.... "누구냐.....이 아일 내보낸 게......" 언제 왔는지 등뒤에선 병사들과 시종들이 바닥에 모두 엎드려 대답도 못한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죽는 게......두렵지 않은가 보군......" 내 허리를 놓치지 않을 듯 꽉 쥔 채 옆에 차고있던 검을 뽑아내자 서늘하게 푸른빛을 뿜어내는 검신이 모습을 드러낸다. 녀석의 품안에 들어왔을 때부터 의지완 상관없이 짜증나도록 공포에 떨어대던 몸이 석상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또......죽일 셈이야?' 엎드려있는 녀석들을 모두 죽일 셈인지 차가운 눈으로 검을 바로 쥐는 녀석을 보곤 생각할 틈도 없이 들어올려진 녀석의 팔을 움켜쥐었다. 뜻밖의 행동에 차갑게 식어버린 붉은 눈동자가 내게 향한다. 몸을 가늘게 떨어대며 녀석의 눈동자가 닿아오자마자 시선을 돌려버린 채 겨우 입을 열었다. "하지.........마........"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자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던 녀석이 어쩐 일인지 한참만에 가만히 검을 거두고............. "폐하......" 넋이 나간 채 떨면서 녀석의 품에 안겨있는데 녀석의 약혼녀가 급히 침실 밖으로 나와 상황도 모른 채 반갑게 녀석을 맞는다. "왜......이곳에서 나오는 거지......누가 들여보낸 거냐....." 이를 갈 듯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오자 녀석에게 다가서던 여자의 발걸음이 그대로 얼어붙는다. "폐....폐하...." "흑........" 당황한 듯 여자가 주춤 물러서자 분노를 억누르듯 내 허리를 휘감은 팔에 더욱 힘을 가해 참지 못하고 작게 비명을 흘렸다. 무의식적으로 고통을 참기 위해 녀석의 옷깃을 움켜쥐고 매달리자 허리를 휘감은 손이 멈칫 하더니 바로 힘이 풀린다. 잠시 날 바라보던 녀석이 다시 시선을 돌려 여자에게 싸늘하게 말을 잇는다. "이 아일 내보낸 게.......그대인가......?" "하지만 폐하, 그 천한 노예가.........." "누가 이 아이가.........노예라고 했지?" "폐.....폐하....!!" "내 소유다....그대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이번엔...... 부친의 얼굴을 봐서 넘어가지만...... 또 다시 이런 일이 생기면....... 내가 직접 베어버리겠다..... 그대의 침실로 돌아가....... 오늘부터 이 곳엔 절대 허락 없이 발을 들이지 마라....." '저 여자의......침실.....? 황성에서......지내고 있었던 건가.....?' 생각을 이을 틈도 없이 녀석이 팔에서 힘을 빼버리는 바람에 다리에서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으려 하자 시트 채로 들어올려 침실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시종들이 깨진 술병과 양탄자를 깨끗이 치우고 조용히 사라지자 결국 겨우 탈출한.......... ......이 아니라....... 얼떨결에 나와버린 침실 안으로 녀석의 품에 안긴 채 다시 끌려들어오고 말았다. 침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구기고 속으로 잔뜩 궁시렁대고 있는 사이 녀석이 침대 위에 시트로 둘둘 말린 내 몸을 털썩 내려놓더니 위험한 기운이 잔뜩 서린 심홍색 눈동자로 날 내려본다. "이 곳에서 벗어날 생각이라면 빨리 버리는 게 좋아........" '씹, 웃기지마!!'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버리자 손으로 바로 턱을 쥐어 시선을 맞춰온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거냐.........!!" '당연 튈 생각이지.......!!' 녀석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거칠게 손을 쳐내고 사납게 노려보며 말을 뱉어냈다. "약혼녀까지 계신 주제에 폐하의 손에 반응도 보이지 않는 절 왜 침실노예로 쓰시려는 겁니까?!!" 비웃음까지 입에 걸치고 꽤나 공손하게 궁금한 걸 묻자 뭐가 꼬였는지 붉은 눈동자에 분노가 일기 시작한다. "씹, 니놈이 아무리 주물럭대도 간지럽지도 않으니까 무표정한 사내새끼 밑에 두고 개처럼 헐떡대고 싶지 않으면 죽이던가 놔주던가 빨랑 선택해!!! 그렇게 사내새끼가 좋으면 나보다 고분고분한 작고 예쁜 노예 녀석 하나 사서 여기에 모셔다 놓으면 될 거 아냐?!!! 얼굴도 잘났으니 좋아라할 녀석들도 많을 텐데 왜 꼭 싫다는 날 붙들고 이 지랄이야?!!! 하, 내가 니놈 루베라를 닮아서 지금 이러는 거야?!!! 그렇게 닮았어? 그 녀석이 나처럼 키도 크고 성깔도 더럽고 말도 잘했나보지?!!" 악에 받쳐 실컷 퍼부어 대고 올려다본 녀석은 표정 없는 얼굴이지만 섬뜩할 정도로 분노를 담고 있다. 상당히 위험한.............. '빌어먹을...........잘못 건드렸나.............' 무의식적으로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켜 뒤로 물러서자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이 내게 박혀든다. 이런 눈을 한 녀석을 본적이 있다. 미쳐버린............ 지하감옥 안에서............ 섬뜩한 붉은 눈동자에 고양이 앞에 쥐처럼 몸이 딱 굳어버렸다. 도망쳐야 하는데........... 도망치지 않으면............. 녀석이 떨리는 손아귀에서 시트를 낚아채 걷어내고 내 위로 체중을 실어 올 때까지 머리는 수도 없이 도망치라고 비명을 질러대지만 몸이...........내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차가운 입술이 닿아오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몸을 떨며 발버둥을 쳐댔다. 순식간에 양팔이 녀석의 손아귀에 쥐어져 구속당하고 녀석의 체중에 눌려 꼼짝도 못하게 되자 머리를 휘저어 녀석의 입술을 피했다. 그리고..................... 순간.............. 살기를 띄고 강하게 목을 내리누르는 힘에............. 반항을 멈춘 채 잿빛 눈동자를 크게 드러내고 녀석을 올려보자 얼음칼처럼 날을 새운 잔혹한 말들이 심장에 들이박힌다. "같은 얼굴로........... 날 거부하지마........ 진짜가 아니면.......... 죽여버릴 지도 모르니.............." 차갑게 식어 떨리는 입술에 물어뜯을 듯 거칠게 키스를 해와도 손끝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녀석이 한 말은 단순히 협박이 아니라 진심이었으니까...... 슬프지만.............. 날 사랑한다는 말보다............. 죽이겠다는 말이 내게는 더 현실적으로 들려오니까............. 그렇게............ 반항도 하지 않고 입안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녀석의 혀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였다. 역시............ 심장이 쓰릴 뿐 아무런 느낌도............반응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차갑게 식어 가는 체온과 정신없이 떨어대는 몸을 제외하면.............. 어차피.............. 날뛰어댈수록............. .......밀어내고 거칠게 저항할수록 녀석이 잔혹해 진다는 것은 알고있는 사실......... 몸에서 힘을 빼고 내 일이 아닌 듯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자 뜨거운 액체가 눈꼬리를 타고 흐른다. 하지만................. 이미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아 보일 리 없을 테니............ ...........괜찮겠지.............. #109 지하감옥 안에서 했던 것처럼 반항을 멈추고 인형처럼 누워만 있자 거칠었던 움직임이 약간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피가 베어 나오는 입술을 조심스럽게 핥고 살짝 빨더니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깊은 키스를 해온다. 얌전히 있던 혀가 녀석에게 붙들려 엉키고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타액이 채 넘기지 못해 밖으로 새어나오자 잠시 입안에서 떨어져 나가 붉게 부풀어 타액에 젖은 입술을 핥고는 다시 각도를 바꿔 입술을 삼켜 간다. 깊은 키스에 숨이 막혀 하얀 가슴을 들썩이며 녀석이 입술을 떼어낼 때마다 겨우 숨을 몰아쉬자 내 손목을 움켜쥐고 있던 팔이 천천히 풀리고 섬세한 손이 몸 여기저기를 더듬어 온다. 그리고.............. 녀석이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 키스를 해대기 시작하자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베개 속에 숨겨 놓았던 붉은 단검을 그러쥐었다. 욕정에 눈이 멀어 방심한 녀석이라면 순간 칼을 박아 넣을 수도 있다......... 그렇게도 증오하던 녀석을............. 아프게 할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이 녀석은....... 손이 떨려온다. 눈가에서 새어나오는 눈물이 빌어먹게도 뜨겁기만 하다. 입술에 피가 나도록 이를 박아 넣고 손에서 힘을 빼 단검을 놔버렸다. '변한 게...........없군.............빌어먹을 상습 강간범새끼............' 포기해 버리니 차라리 속이라도 편하다. 속으로 실컷 욕을 해대다 흠칫 떨려오는 몸의 반응에 무감한 눈으로 내려보니 녀석이 사내새끼 위에서 황천길로 떨어질 뻔한 것도 모른 채 가슴 돌기를 이로 문 채 애새끼처럼 빨아대고 있었다. '씹, 왜 여자도 아닌데 이 지랄야?' 예전 같으면 녀석에게 매달려 신음이라도 흘려댈 터인데 지금은 피식 쓴웃음만 새어나온다. 여기저기 물고 빨아대도 반응도 보이지 않고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 몸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 일이 아닌 듯 멍하니 생각에 잠겨있다 따끔 하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시선을 돌리자 반응은커녕 다른 곳에 시선을 주는 것에 화가 났는지 녀석이 아랫배에 이를 박아 넣고 있었다. 이미 하얀 피부 위엔 붉은 화인이 곳곳에 새겨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씹, 뭐야......재미없으면 니 마누라한테나 가!! 어딜 깨물고 지랄야?!!' 속이 잔뜩 꼬여 궁시렁대도 소용없단 걸 알지만 더러운 성깔이 참아주질 않는다. 성깔같아선 발로 확 걷어차고 싶지만..............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빨리 끝내고 꺼지라는 듯 가만히 누워만 있자 어쩐 일인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내 허리를 끌어안고 복부 위에 머리를 기댄 채 미동도 없다. 숨을 쉴 때마다 복부를 간질이는 붉은 머리칼을 무감정하게 바라보다 자꾸 피부에 와 닿는 녀석의 숨결이 거슬려 몸을 꿈틀거렸다. '뭐야? 재미없어서 포기.........한 건가?' 생각과는 달리 내게서 몸을 일으킨 녀석이 복잡하기만 한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내게 몸을 겹쳐오자 눈을 감아버렸다. 몸을 밀착시켜오자 따뜻한 피부가 맞닿아오지만....... 평소와 같이 따뜻하기만 한데......... 몸은..... 지독한 한기를 느낀다. "..........할려면 빨리 해............ ............피곤하니까.............. 침실노예라도 잠은 재워야 할 거 아냐?!!" 제멋대로 떨리는 몸을 꼬옥 끌어안고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 녀석에게 짜증스럽게 말을 뱉어내자 겨우 녀석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침실노예라는 거냐....?" '왜? 틀린가?' "이제 곧 황비도 맞을 텐데 왜....... 씹, 왜 날 잡아두고 지랄야.....?!!" "황비를 맞은 후에도........ 이곳이 네가 있을 곳이다......" "무슨 개소리야?!! 침실노예가 아니면 불륜상대라는 거야?!!!" 기가 막혀 녀석을 바라......본다기 보단 시선을 비켜 뒤편에 있는 벽을 노려보며 바락바락 악을 써대자 웃기게도 녀석은 혼란스런 표정....... '하, 성노로 쓸 지 불륜상대로 쓸지 고민이라도 되나보지?!!!'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눈을 감아버렸다. 어차피...... .....내일이면........... .....탈출할 테니까...... 성노로 쓰건 불륜상대로 쓰건 실컷 상상이나 해대라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문을 열고 시종들이 들어서는지 작은 발소리가 들려오자 목덜미에서 낮은 목소리가 울린다. "모두 물러가라......" 식사에 욕실 시중이었던 것 같은데........ 배도 고프지 않으니...... '뭐, 상관없어.....' 시종들이 조용히 물러나자 불도 밝히지 않은 침실 안엔 정원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어둠으로 가득하다. 갑자기....... 귓가에 녀석의 입술이 와 닿고........ "하류.........." 순간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자 다시 눈을 번쩍 떠버렸다. #110 "하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댄다. '뭐............야.......? 설마.......... .......기억이..........?!!' 그대로 몸을 굳힌 채 흔들리는 눈동자로 붉은 머리칼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내 허리에 팔을 둘러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 미동도 없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릴 정도로 조용한 침묵이 계속되다 녀석이 한참만에 입을 열어왔다. "머리카락도............... 눈동자도........... 피부색도............ 성격도 다르고......... 몸도....... 2년 전과는 이렇게나 다른데...... 루베라 대신 다른 문장이 새겨있는데...... 왜..... 눈을 뗄 수 없는 거지......? 어째서..... 그 녀석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냐.... 같은 얼굴로 다른 녀석의 것이 되어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가....... ......미쳐버린 건가.....? 녀석을...... 내 루베라를 기다리다가..... 손에 쥘 수 없는 것을 쫓다가...... 그날...... 분명 소유의 각인을...... 루베라를 내 아이에게 새겼었는데....... 왜....... .......가지고 있지 않은 거지? 역시...... 그 아이가 아닌 건가......? 그럼, 지금 내 품안에 있는 것은......도대체...." '왜....자꾸 이러는 거야.......' "또...... 기억을 잃은 건 아니겠지....... 외모까지 바뀌어 날 잊은 건....... 녀석이..... 살아있길 바라는 내 마음이....... 망상을 만들어 낸 건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녀석의 품에서 넋이 나가 움직일 수도 없었다. "왜........ ......날 두려워하는 거냐........" 가늘게 떨리는 어깨에 녀석의 입술이 닿아오자 흠칫 몸을 굳혔다. 거칠게 뛰어대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간다. "정말...... 그 아이가......... ......하류가.....아닌 건가....." '하류.......?' "직접.......... 확인했잖아........" 루베라따윈.......... 이제 내게 남아있지 않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에게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확실히 못을 박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녀석에게..... 휘둘릴 것만 같다....... "네 루베란 2년 전에 사라졌다고 했잖아....... 내가....... ......그렇게 닮은 거야?" "혹시........ 쌍둥이 형제가 있나......?" 공포를 누르고 올려보자 혼란스런 붉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는 녀석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럴......지도...... 내 아버진....... 무절제한 사람이었으니까......" 쌍둥이는 아니지만 배다른 형제가 다른 세계에 있다. 나완 전혀 닮지 않았지만..... "하지만......난...... 그저 닮았을 뿐...... 하류란 이름을 가진 니 루베라가 아니라 키르야.........." "혹시 기억을 또 잃은 건......" '이제 그만..... ....포기해.......' "내 기억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완벽해..... 난........ 한 번도 널 본 적이 없어....."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잠시잠깐 빛을 내던 붉은 눈동자가 무의미하게 빛을 잃어간다. 아름다운 인형의...... 유리알 눈동자처럼......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듯한 녀석의 표정이...... 허상만을 쫓는...... 허상이라도 필사적으로 쫓으려는 녀석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를 꽉 깨물자 건조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큭.....역시....... 내 아이와는......많이....... .....다르군......" '그럴.....지도......' 이제는.....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왔으니까...... 녀석에게 기대기만 하는 내가 아니니까...... 심장이 자꾸 죄어와 녀석의 시선을 피해버리자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그래도......... ......놓아주진 않겠다...... 내....... 루베라를 찾을 때까지......" "대용품으로라도 쓸 작정이냐......" "큭, 그럴지도......." '잔인한 새끼........'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허리를 죄어 몸을 밀착시키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눈가에 입술을 대고 눈물자국을 지워준다. 녀석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리자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온다. 시야에 비치는 붉은 머리카락이............ .........섬뜩하다...... 반사적으로 녀석을 밀치려 버둥거리자 달래듯 등을 쓸며 냄새라도 맡는 듯 숨을 들이킨다. "네게선....... .....어쩐지...... 그리운 향기가 나.......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거다........ 너도........ 내 루베라도.........." #111 "네게선....... .....어쩐지...... 그리운 향기가 나.......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거다........ 너도........ 내 루베라도.........." "나하곤 상관없는 얘기야....." "내가 품에만 안으면........ 몸을 떠는군...... 그렇게........ 두려운 거냐....?" '알면 떨어져..............!!' "원하지 않으면............ ..............취하지 않겠다....." "뭐?!!" 놀란 눈으로 녀석을 올려보자 다시 말을 잇는다. "대신....... 내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해......" 또다시 이렇게........ 원점으로 돌아와 버렸다. 녀석도...... 나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고싶진......... .........않아.....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애초에 하는 게 아니었다...... 대답을 하지 않고 눈을 감아버렸다. "내 곁에 있는 것조차......싫다는 거냐......" "싫어........" 싸늘한 침묵이 감돈다. 녀석을 밀어내자 좀 전과는 달리 쉽게 떨어져나가 바로 녀석에게서 돌아누웠다. 그렇게....... 서늘한 침대 위에서 따뜻한 체온도 없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자꾸 심장이 쿡쿡 쑤셔오지만........ 이게....... 내가 선택한........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에야 겨우 잠이 쏟아져 눈을 감았다. 잠결에 누군가가 가만히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느낌에 뒤척이자 조심스럽게 따뜻한 입술을 포개온다. 어쩐지........ 그리운........ 쏟아지는 졸음에 눈을 뜰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입안으로 들어오는 부드러운 혀를 받아들였다. 흥분시키기 위해서 하는 키스가 아닌........ 애원하듯 매달리는................... 유이가 해줬던 것처럼 부드럽고 나른하지만........ 어쩐지....... .......다른....... 하지만.............. 내게 이런 키스를 해주는 건 이제 그 녀석밖에............. ...............없으니........... "으응.........유이......귀찮아....저리 비켜................" 잔뜩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자 손끝에 닿아오는 녀석의 몸이 흠칫 굳더니 떨어져 나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거의 점심때가 되서야 눈을 뜨자 옆엔 역시 녀석이 없다. 침대 위에서 일어서자 언제 가져다 놨는지 아직도 김이 오르는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고........ 멍한 머리를 긁적이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발코니로 나가니........ '왜......?!!!' 밑엔 병사들이 잔뜩 깔려있었다. "빌어먹을.....!!" 어제...... 기회가 있었을 때 시트라도 뒤집어쓰고 탈출을 했어야 했다. 아무리 후회를 한 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망연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길 한참....... "삐익~" 익숙한 소리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설마........." 분명....... 머리 위에서 은빛을 내며 맴도는 건..... "피이!!!" 아래 서있는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부르자 몇 번 날갯짓을 하더니 발코니에 내려앉는다. "너......아직 키리안 숲에 돌아가지 않은 거야?!!! 지금까지 황제의 숲에 있었던 건가?!!" 깃털을 쓸어주자 만족스러운 듯 삑삑거리며 소리를 낸다. "아직.............짝은 찾지 못한 거 같네........?" 가라앉은 눈으로 피이를 바라보다가 퍼뜩 떠오른 생각에 다시 말을 붙였다. "혹시 유이 녀석 봤어? 유이 말야!! 너랑 색깔 똑같은 팔푼이 녀석!!! 그 자식......다시 키리안 숲으로 돌아간 건가......? 내가.......죽었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내 손으로 키웠다지만 사람 말을 알아들을 턱도 없고............... "살아있다는 것만 알릴 수 있다면............." 내가 살아있다고 녀석이 무슨 수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슬퍼하지 않을 테니.............. 피이 녀석에게 무슨 표시라도 해두면 언젠가 유이 녀석을 만날지도.............. 떠오른 생각에 몸을 살펴봐도 달랑 알몸뿐이고 침실 안을 아무리 둘러봐도 내 물건이라곤 보일 턱이 없다. 할 수 없이 욕실로 들어가 새하얀 타월을 작게 단검으로 베어낸 후 목덜미에 닿아오는 하얀 머리칼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유이 녀석하고 자르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굳이 방법이 없으니.................... 머리카락을 잘라낸 천으로 말아서 피이 녀석의 발목에 감아뒀다. "피이.....유이한테 돌아가!! 나중에.....여기서 나가면 같이 키리안 숲으로 돌아가자!!!" 한참을 떠날 생각을 않고 있던 피이가 겨우 날개를 펴 숲 저편으로 사라지자 침실로 들어와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씹, 그나저나 여길 어떻게 빠져나가? 젠장.....옷도 주지 않고......" 실컷 궁시렁거리다 결국 배가 고파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던 음식을 모두 쓸어 넣고 침대 위에 털썩 드러누워 힘없이 눈을 감았다. 그날 저녁........ 녀석은 해가 져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이유는...... 욕실에 들어가 있을 때 마침 음식을 들이러 들어온 시녀들의 수다로 알 수 있었다. 이 궁 안 어딘가에 있는...... 녀석의 약혼녀 미르니안을 찾아갔다는 소릴....... 처음 봤을 때도 그 여자와 관계를 갖고있는 걸 봤으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제길......2세 만들기 바쁜가 보군......... 설마....... 나 여기 가둬둔 거 잊어버린 거 아냐??!! 쓸모도 없으면서 왜 가둬두고 지랄야? .........난 풀어줘야 할 거 아냐?!!' 요즘 자꾸만 제멋대로 새어나오는 물기를 신경질적으로 닦아내고 베개를 꼭 끌어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러고 보니............. 혼자 자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원래라면 혼자였던 게 당연하지만........... 지금까진 항상 유이 녀석이 곁에 있었는데........ "그 자식.......나 없으면 잠 못 잔다고 했는데........." 훌쩍이며 끌어안은 베개에 얼굴을 비비적거리자 희미하게.................. .............녀석의............... ...............티폰의 체향이 콧속에 스며든다. 결혼식까진 앞으로 3주정도...... 그 전에 이곳에서 도망치지 못하면 더한 꼴도.......... ..........보게될 것 같다. -112- 벌써 이곳에 온 지 나흘 째 되는 밤...... 공포만을 주는 녀석이 곁에 없는데도 잠이 오지 않아 이틀간 밤엔 멀뚱이 누워만 있다 새벽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인지 잠이 오지 않아 시선을 천장에 고정시키고 있길 한참........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도 잠이 올 턱이 없고...... 달빛을 등지고 누워있는데 조용히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뭐야......오늘은 그 여자한테 가지 않았나.......? 귀찮아........ 꺼져버려........' 생각이 이어진 것도 잠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발소리에 문이 아닌 창문이 열린 소리란 걸 깨닫자 섬뜩한 살기가 팽팽하게 몸을 조여온다. '뭐....지?!!' 당황할 틈도 없이 슬그머니 베개 밑에 손을 넣어 단검을 쥐었다. 어느새 침대 위로 올라와 푹신한 매트가 미세하게 흔들리자마자 파공음이 들리더니 날카로운 장검이 그대로 날아와 박힌다. 눈 깜짝할 순간 가늠할 사이도 없이 날아오는 검을 순전히 감으로만 때려 맞춰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단검을 비켜간 검이 베개에 깊숙이 박히자 하얀 깃털이 퍽하고 터져 나와 시야를 가린다. 소름끼치도록 빠른 검날에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하고 검의 울림에 팔에 입은 상처가 저릿해 온다. 미치도록 뛰어대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키고 재빨리 양손으로 단검을 쥔 채 침대 밖으로 빠져 나오자 까만 그림자가 눈에 들어온다. '암살범......인가.....?' "황제가.......아니군........." 새카만 어둠에 겨우 보이는 건 새파랗게 날이 선 장검과 검날보다 섬뜩한 살기를 띄고있는 눈빛....... '역시......황제를......티폰 녀석을 죽이러 온 건가.....? 빌어먹을....!! 스트레스 잔뜩 받았는데 잘 됐어....!!' "황제는 지금 마누라랑 만리장성 쌓느라고 바쁘거든? 큭, 심심했는데.......그 자식은 관두고 나랑 좀 놀아줘야겠어........" 단검을 손아귀에 단단히 쥐고 이를 악문 채 형체만 보이는 상대방을 눈도 꿈쩍하지 않고 노려봤다. 방금 전.....침대 위에서 단칼에 죽이려는 듯 날카롭게 검을 날려온 것만 봐도 보통 실력은 아니다. 그렇게 강하다는 티폰을 죽이러 왔으니 실력도 담력도 엄청난 녀석이겠지.... '씹, 퍼대 자고있었으면 꼼짝없이 그 자식 대신 골로 갈 뻔했잖아!!!!' 손아귀에서 땀이 베어 나온다. 대치상태가 계속되자 참지 못하고 먼저 뛰어든 건 내 쪽....... 선제공격이 최선이다...... 눈앞에서 푸른빛을 흘리는 검날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날카롭게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역시 보통 실력은 아닌 듯 짧은 단검 두 자루로 스피드를 살려 정신없이 공격해 나가는 데도 검 하나로 여유 있게 막아낸다. 밀리는 것은 내 쪽....... 공격은 내가 하고 있지만 방어를 하며 가끔씩 공격해오는 녀석의 검날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몸을 비켜간다. 확신이 들 때까지 몰아붙여 빠르고 정확하게 죽이려는 속셈....... '젠장.....스트레스 풀 상대를 잘못 골랐나.......' 한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녀석에게 조바심이 들 무렵...... 창가까지 몰리자 희미한 달빛이 몸에 닿아온다. 숨이 턱까지 차 헐떡이며 물러서자........... 순간 놀란 듯 흠칫한 녀석의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뭐야? 갑자기......' 갑작스런 녀석의 행동에 의문이 생겨 공격이 무뎌지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강한 손으로 단검을 쥔 양 손목을 낚아채더니 그대로 무게를 실어왔다. 어찌해 볼 틈도 없이 뒤로 넘어가 녀석에게 깔리자마자 힘이 빠져버린 손아귀에서 단검을 빼앗아 바닥에 던져버리고 바로 섬세한 손으로 내 얼굴을 더듬어댄다. 뜻밖의 상황에 기가 막혀 멍하니 누워있다 결국 녀석의 손을 피해 얼굴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말을 내뱉었다. "이 새끼....!! 도대체 무슨 짓이야?!!" 턱을 쥐어 얼굴을 돌려보던 녀석의 손이 흠칫 굳고...... 그제야 겨우 올려보니 희미한 달빛에 스치는 건 분명......... 잿빛.......머리카락?!! "케레...........스?" "그럴........리가........." "케레스..... 역시..... 살아......있었어?!!!!" "설마....진짜..........?!!!!" 놀라 눈을 크게 뜨자 예전처럼 따뜻한 손이 얼굴을 짚어온다. "눈동자 색이.....왜..........." "다행......이야......." 그 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떨어져 내리자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떨리는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 얼굴을 드러낸다. "그때.....분명 심장이.........." "덕분에...... ......살아있었어....." 달빛을 등진 녀석을 올려보자 따뜻한 잿빛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오고....... 손을 뻗어 그새 약간 길어져 목덜미를 살짝 덮고있는 잿빛 머리칼을 쥐어보자 섬세한 손가락으로 눈물을 가만히 훔쳐주더니 희미하게 미소짓는다. "검술이...... .....많이 느셨군요....." "응......" "왜.......이곳으로 돌아오신 겁니까...... 설마.......황제폐하께 돌아오신 건.......?!!" "아니야.....도둑질하러 들어왔다가 붙잡힌 것 뿐이야....." "도둑....질?" "난...... ......이제 하류가 아냐......황제의 루베라도 아니고..... 이젠.....키르야.....키리안 도적단의 도둑......." "키르.........? 그게......... ......당신이 선택하신 길입니까?" "응......돈도 많이 벌고.....재밌어....... 유이 녀석이랑 같이...... 아, 유이는 내 파트넌데 황당한......자식........... ............... ......저기......... 내가 도둑질하는 거............. ........싫어?" 얼굴을 가만히 쓸어보던 손이 멈칫한다. "전.....상관없습니다.....무엇이든......" "그럴 줄......알았어...." 씨익 웃어주곤 다시 말을 건넸다. "근데 너.......왜 황제의 침소에 잠입해서 티폰을 죽이려고........" "또 한번.............소중한 것을 앗아간........... 복수.............입니다........" "응?"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잿빛 눈동자가 가려지는 순간 따뜻한 기운이 입술에 잠시 머물렀다 사라진다. 놀라 눈을 크게 뜨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 '뭐......야......?' "이곳에서......나가실 생각이십니까?" '응....?' "당연하지!!" "그런데 왜 아직도......." "병사들로 다 막아놨잖아!! 창가 아래도 있고......" "창가에 있던 병사들은 모두 기절시켜 놨습니다" '그거 말고도.....옷이......그러고 보니........헉!!' 지금도 여전히 홀랑 벗은 알몸이었다. '젠장, 미친놈처럼 알몸으로 칼 들고 설쳤군....다행히 어두워서 보이진 않았겠지만...... 자.......잠깐.......여긴 창가잖아?!!!!' 달빛에 하얀 알몸이 모조리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내 위에 올라탄 녀석은 아직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듯........ "케....케레스.......비....비켜!!" 당황해 말까지 더듬으며 버둥거리자 의아한 듯 잿빛 눈동자가 날 바라본다. "빨리!!!" 얼굴까지 붉히며 바르작거리자 그제야 벗은 상체에 시선을 주고 움찔하더니 몸이 굳는다. 그리고........ 갑자기 문밖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황성 안에 침입자가 들었다!! 빨리 찾아!!" "들켰어?!!!!" 놀라 케레스를 올려보자 변함없이 표정 없는 얼굴........ "뭐 하는 거야?!! 빨리 도망쳐!!!!" "곁에....... .....남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황제를.....암살하러 왔다는 게 밝혀지면 꼼짝없이 죽는다구!!" 절박하게 말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113- "이 멍청한.......!! 그때.....분명.......지켜준다고 했잖아!! 그런데.......먼저 죽어버린다고?!!! 거짓말을 할 셈이야?!!!" 어수선해지던 문 쪽을 서늘하게 바라보던 잿빛 눈동자가 다시 내게 돌려진다. "하류님......" "키르라고 했잖아!!! 빨리 도망쳐.....명령이야!!!" "하지만......." "티폰 녀석........... 날 기억하지 못해......... 닮은 녀석이라 잡아 가둔 것뿐이라고!!! 난 이곳에 남아있어도 녀석이 죽이지 않을 테지만 넌........ 널 보면 날 기억해 버릴지도 몰라....... 날 또 죽게 할 셈이야?!!!!" "같이......." "나까지 달고 가면 분명 둘 다 잡혀!!! 알고 있잖아!!!" 흔들리는 눈동자가 날 바라본다. '젠장, 고집은!!!' "빨리 가지 않으면 죽어버릴 거야!! 빨리 가!!!!" 단검을 다시 손에 쥐고 내 목에 겨누자 강하게 손목을 쥐어온다. "어디로든 가있어......나중에....... 이곳에서 벗어나면........반드시 찾아 낼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겨우 몸을 일으키는 녀석을 보고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내 몸을 강하게 끌어안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 온다. "기다리고.....있겠습니다........ 늦으면 찾으러 올지 모르니........... 빨리........" "응....." 이마에 살짝 키스하고 창 쪽으로 돌아서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창 쪽으로 사라지자마자 뒤에서 거칠게 문이 열리고.......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오는지 요란한 소리가 들려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녀석이....... 티폰이 붉은 눈동자에 분노를 가득 담고 날 바라보고 있었다. 몸을 흠칫 굳히자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든다. "침입자가 달아났다. 황성 밖을 샅샅이 뒤져 산채로 끌고 와..... 내가 직접 죽여버리겠다. 모두....... 물러가....." 분노한 황제의 목소리에 목이라도 떨어질까 고개를 들지도 못한 채 서있던 병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사라져 가고...... 내게서 시선을 돌린 심홍색 눈동자가 열린 창과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단검을 보더니 더욱 표정을 굳힌다. 녀석이 내게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어지간히도 급히 나왔는지........... 아니면 여자랑 침대 위를 구르고 있었는지......... 옷깃도 제대로 여미지 못하고 탄탄한 가슴이 다 드러나 있는 헝클어진 녀석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지척까지 다가와 바닥에 앉아있던 내게 손을 뻗어오자 놀라 손을 탁 쳐내버렸다. 포기하지 않고 순식간에 다시 손을 뻗어 내 어깨를 쥐고 바닥에 내리눌러 꼼짝없이 녀석의 아래 드러눕자 벗은 몸을 찌푸리며 바라보더니 꼼꼼하게 몸 구석구석을 살펴본 후 다시 내게 눈을 맞춰온다. "상처는........." "없어......" '걱정하는 척...........하지마...... 지금까지 여자랑 구르고 있었던 주제에......' "머리카락이......." "귀찮아서 잘라버렸어........." 지난 번 낮에 잘라버려 약간 짧아진 머리카락을 미간을 찌푸린 채 쓸어보는 녀석에게 툭 말을 던지고 녀석의 손을 피해 고개를 돌려 버렸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차갑게 시선을 피해버리자 표정을 굳힌 채 말을 잇는다. "침입자의 얼굴은.......본 건가.....?" '얼.....굴......?' 잠시 생각하다 좀 전과는 사뭇 다르게 녀석의 눈치를 보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봐.....봤어!! 엄청 못생겼었는데 손도 솥뚜껑만 하고 힘만 무식하게 좋아서 검을 막 휘둘러 대는데 죽을 뻔했다니까!! 키...키는 난쟁이 똥자루만 한 게 내 어깨나 닿았나? 그런 주제에 뭘 쳐 먹었는지 살이 디룩디룩 쪄서는 날 깔아뭉개는데...... 아마 100미터도 40초에 뛸걸? 정원으로 도망가는 거 봤는데 200미터도 못 가 잡힐 거야!! 그러니까 병사 많이 풀 필요도 없어!!" 불안함을 감추려 신나게 떠들어대곤 녀석의 눈치를 보자 지금까지 떠든 보람도 없이 서늘하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만 눈에 박혀 들어온다. '젠장..........' "왜.......소리를 지르지 않은 거지?" "씹, 칼날이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는데 그럴 틈이 어딨어?!!! 빌어먹을.....황제 대타로 죽을 뻔했잖아? 애초에 왜 이 방에 가두고 지랄야?!! 나보고 대신 죽으라는 거야, 뭐야?!!" 왜 녀석에게 이렇게 짜증이 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창 밖에선 도망친 케레스를 찾는지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오고...... "비켜!!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내 몸뚱이 하나쯤은 내가 지킬 수 있어..... 가서 니 마누라나 지켜!!" 녀석의 몸을 밀어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왜....... 날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겁도 없이 자극하는 거냐......." 녀석의 손이 뺨에 닿자마자 흠칫 몸을 떨자 허무하게 쓴웃음을 흘린다. "이틀동안......혼자 무슨 생각을 했지? 이 곳에서....... 내 곁에서 도망칠 궁리만 했나.....?" '씹, 잘도 알고있군.....' "왜....... 항상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거지......" 녀석의 눈동자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항상 붉은 빛을 비켜 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턱을 돌려 내 눈동자를 사로잡는다. 숨쉬는 것도 잊고 피처럼 붉은 눈동자에 시선이 잡혀 몸을 떨고만 있었다. "도대체.......... 내게 숨기고 있는 것이 뭐냐......? 왜 그 아이가........ 내 루베라가 아닌데.......... 날 그런 눈으로 보는 거지........? 분명........ 까만 빛이 아닌데.......... 왜 같은 빛을 내는 거냐........?" 파랗게 질려 떨리는 입술에 녀석의 입술이 닿아오자 정신없이 몸을 버둥거렸다. 녀석의 입술을 피해 미친 듯 고개를 휘젓다 턱이 잡혀 마주친 붉은 빛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녀석이 하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떨리는 입술을 열어 겨우 말을 꺼냈다. "안지.....않는다고 했잖아......" "너도...... 약속을 지킬 생각은 없는 것 같군......" "니 여자한테나 가!!! 내 몸에 손대지마!!!" 날카롭게 소릴 지르고 미친 듯이 발버둥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벗어날 생각하지마......." 루비빛 눈동자와 핏빛 머리칼........ 낮은 목소리에........... 공포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그때처럼...... Rubera(루베라) #114 이상하게 얌전해 진 몸을 내리누르고 뜨거운 입술이 반응도 없이 차갑게 식어버린 입술에 겹쳐지더니 열기를 전해주려는 듯 바로 녀석의 혀가 입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내 혀를 찾아 옭아매 자극하고 입술을 살짝 깨물면서 깊게 키스해 오지만 반응조차 보이지 않고 굳어있자 목덜미에 화인을 새기며 갑자기 내 것을 쥐어온다. 차가운 손의 감촉에 흠칫 놀라 몸을 떨었지만 아무리 자극을 해도 느껴지는 건 쾌감이 아닌 거부감...... 눈을 감아버리자 녀석이 포기한 듯 떨어져 나가 안도한 것도 잠시......... 옷자락이 바닥에 떨어져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건 달빛을 받아 푸른빛을 내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나신....... 빈틈없이 완벽한 몸매가 드러나자마자 하얀 몸이 가볍게 들리더니 그대로 침대 위에 눕혀졌다. "사내를 아는 몸일 텐데........... ......왜 느끼지 못하는 거냐.......? 네게...... 이 문장을 새겼다던 뮤즈니안 녀석에게는........ 신음소릴 들려줬겠지?" '무슨 소릴.......하는 거야.......?!!!' 왠지 불안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옆에 있는 시트를 끌어당겨 몸을 가리려하자 바로 밀치고 몸을 겹쳐온다. "뭐............뭐 하는 거야?!!!!!!" 강한 몸으로 내리누르고 어깨선을 따라 입술을 미끄러뜨리는 통에 놀라 버둥거리다 어깨를 쓸던 손이 등 쪽으로 미끄러져 문장을 만져보더니 상처를 건드린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녀석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해가고........... 시간이 멈춰버린 듯........ .....숨을 멈추고 그대로 굳어있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멈춰버렸던 녀석의 손이 다시 부드럽게 몇 번 상처를 쓸더니 상체를 일으킨 순간........ "내게만..........반응을 보이지 않는 거냐.........? 아니면................... 원래 느끼지 못하는 건가.........?" "무슨 짓이야!! 비켜.....!!" 불길한 느낌에 사납게 소리치며 녀석을 밀어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뭐?!!' 생각할 틈도 없이 어느 샌가 손에 쥐고있는 작은 병 속의 붉은 액체를 입안에 머금더니 바로 입술을 겹쳐왔다. 거부하려고 고개를 돌리려하자 바로 턱을 쥐어 입을 벌리더니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온다. 갑작스런 행동에 대처할 겨를도 없이 데일 듯 뜨거운 녀석의 혀와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로 짙은 향을 뿌리는 액체가 입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향만으로도 정신까지 흐려놓는 액체를 삼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자 강한 몸으로 꼼짝못하게 하얀 나신을 내리누르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극해 온다. 그리고.......... 분명 느낄 수 없었을 텐데......... "헉................." 입술을 살짝 깨문 것만으로도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의 쾌감에 머릿속이 확 비어버렸다. 자극에 놀라 입안에 꽤 많은 양이 흘러 들어온 액체를 모두 삼켜버리자 숨이 가빠지고 녀석의 뜨거운 숨결이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신경이 곤두선다. 좀 전과는 달리 더운 숨이 새어나오는 입술을 놓아주지 않고 이로 자극을 하며 빨아대자 공포를 덮어버린 쾌감에 몸이 흠칫 떨려온다. "너무.....많이 삼켰군...... 역시........ 내게만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반응한다는 거냐....." '무슨.......?!!' "유이라고 했던가........" '어떻게.......?!!!' 온몸을 휘저어대는 열기에 자꾸 흐트러지는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녀석에게 흔들리는 시선을 맞추자 고개를 숙여 살짝 벌어져 가쁜 숨을 몰아쉬는 분홍빛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고 맛을 보듯 혀로 핥고 부드럽게 빨아댄다. "으읍........................."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키스에 몸부림을 쳐대며 고개를 휘저어 겨우 녀석의 입술을 떼어내자 차가운 뺨이 얼굴에 와 닿는다. "잠결에............그 녀석의 이름을...... .......중얼대더군......." 귓가에 속삭이는 녀석의 입김에 이성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하아...............으응........." 뜨거운 혀로 귓불을 핥고 이로 자극을 해대자 잿빛 눈동자에서 빛이 꺼져가기 시작한다.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독히도 부드러운 애무에 쾌락을 요구해 대는 몸이 고통스러워 자신도 모르게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부비자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는다. "다시는............ 내 품에서 다른 자의 이름 따윈 부르지 마라........." 녀석의 품안에서 신음을 흘리며 비비적거리다 갑작스런 말에 투명한 눈물이 가득 담긴 잿빛 눈동자로 녀석을 올려보니 피처럼 붉은 눈동자에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있다. 상처 따윈 입지 않을 만큼 강했던 붉디붉은 눈동자가 날................ 아니..................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대용품인가............'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순간 겨우 움켜쥐고 있던 이성을 놓아버렸다. "하아.......아........"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로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쾌락에 미쳐버린 몸이 괴로워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시트를 그러쥐자 허리 아래로 팔을 넣어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끊임없이 신음이 새어나오는 입술을 덮어온다. 미칠 것만 같다.... 아무리 몸부림 쳐도 열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생각조차 이어지지 않는다. 녀석의 복부에 반쯤 일어선 페니스가 맞닿아 비벼지자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쾌감에 눈앞에 보이는 사내의 단단한 몸을 휘어감았다. ".......으응........." 유혹하듯 자극적인 신음을 흘리자 기다렸다는 듯 뜨거운 혀가 파고든다. 온몸이 타들어 갈 것만 같다. 입안을 탐해 가는 녀석의 혀가......... 입술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내리누른 녀석의 몸이.......... 시원한 향을 뿌리며 열기를 식혀주는 것만 같아 무슨 짓을 하는 지도 모르고 미친 듯이 매달렸다. 아쉬운 듯 녀석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마자 헐떡이며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정신없이 헐떡이면서도 입안이 타들어 갈 것만 같은 갈증에 붉은 사내의 목을 휘감아 끌어당기자 타액에 젖은 입술을 살짝살짝 빨며 가볍게 키스하더니 바로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입술을 찍어누른다. "흑........" 이를 세워 살짝 깨물면서 화인을 새겨나가더니 쇄골에 이를 박아 넣자 허리를 휘며 신음을 흘렸다. 꼼꼼하게 하얗기만 한 피부 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면서 내려와 거친 호흡으로 들썩이는 가슴 위에 키스를 해댄다. 약한 피부를 살짝 깨물어 붉은 자국을 새기다 분홍빛이 나는 돌기를 덥썩 물어와 결국 참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도 붉은 빛을 뿌리는 녀석의 머리칼을 휘어 감고 품으로 강하게 끌어당겼다. 자극에 빠르게 토해내던 호흡이 끊길 듯 불규칙해 지고 이를 세워 돌기를 깨물고 혀로 간지럽히는 느낌에 허리를 비틀자 몸 이곳저곳을 더듬어대며 자극하던 손이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몇 번 쓸다 바로 내 것을 쥐어왔다. "하아.....아앗.........흑......" 아까완 달리 이미 단단히 일어서 녀석의 손아귀에 쥐어진 채 몇 번 부드럽게 피스톤질을 하자마자 바로 하얀 액체를 쏟아내고 힘이 빠져서도 귀두 끝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대고 누르자 다시 아프도록 뻐근하게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미친 듯 반응해대는 몸에 이미 이성은 날아가 버린 지 오래..... 오목하게 들어간 배꼽에 혀를 넣고 굴리다 아랫배로 내려와 키스를 하며 화인을 새겨나가는 녀석의 밑에서 정신없이 신음을 흘려대자 갑자기 녀석이 참기 힘든지 몸을 일으켜 작은 병에 약간 남아있던 붉은 액체를 손에 묻히고 매끄러운 하얀 허벅지를 벌려왔다. 뭘 하려는 지도 모르고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흐린 잿빛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자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하더니 긴 손가락 끝으로 애널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으응........아앗....." 손에 묻힌 액체가 닿아오자마자 타는 듯 열기가 퍼져나가고 화끈거릴 정도로 뜨겁다. 참기 힘든 자극에 녀석의 손에서 벗어나려 바르작거리자 아프도록 단단히 일어선 페니스를 손에 쥐고 부드럽게 피스톤질을 하기 시작한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쾌감에 허리가 들리자마자 애널 위를 배회하던 손가락이 내부로 파고들었다.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다. 가뜩이나 좁은 내부가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조여대기 시작하자 손가락 마디까지 느껴질 정도로 감촉이 전해져 온다. 아무도 침입해 보지 않은 듯 지나치게 좁은 내부를 더듬어대다 녀석이 의아한 듯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거침없이 어느 한 지점을 꾹꾹 눌러대자 허리가 멋대로 휘고 붉어진 입술에선 끊어질 듯 자극적인 신음이 새어나온다. "이것도........ .......우연인가............"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지만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내부를 마찰하며 깊숙한 곳까지 침입해 구석구석 발라지는 액체 때문인지 뱃속에 불덩어리가 들어앉은 듯 뜨거워 재촉하듯 녀석에게 매달리자마자 내부를 메우고 있던 녀석의 손가락이 빠져 나오더니 몸을 달구는 열기보다 더욱 뜨거운 것이 애널에 맞닿아 온다. 내부로는 파고들지 않고 애널 위에 귀두 끝을 비벼대며 정신없이 입술에 키스만 해대는 녀석 때문에 온 몸이 뻐근할 정도로 조바심이 든다. 쾌감이 통증으로 바뀌기 시작하자 결국 참지 못하고 유일하게 열기를 식혀주는 녀석의 시원한 몸에 팔을 둘러 강하게 끌어당겼다. 갑작스런 행동에 목이 마른 듯 내 입술에 매달리던 녀석이 천천히 붉은 속눈썹을 들어올려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다시는..............사랑하는 녀석에게 돌아갈 생각도 못하도록.................... ............더럽혀버리겠다............. 내게서 벗어날 수 없도록................... 널 갖는 게 누군지...............똑똑히 보고 기억해둬........." Rubera(루베라) #115 "다시는..............사랑하는 녀석에게 돌아갈 생각도 못하도록.................... ............더럽혀버리겠다............. 내게서 벗어날 수 없도록................... 널 갖는 게 누군지...............똑똑히 보고 기억해둬........." 바로 턱을 쥐어 초점이 맞지 않는 잿빛 눈동자에 붉은 시선을 박아 넣는다. 쾌락만을 쫓는 몽롱한 정신에 무슨 소릴 들었는지도 모르고 열락에 흐려진 눈동자로 붉디 붉은 눈동자를 올려보자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아랫입술에 살짝 키스하더니 부드럽게 빨아들인 후 뜨거운 혀를 입안 깊숙이 넣어온다. "으응.............."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단단한 몸에 매달리자 열로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아 축여주고 이로 자극하면서 빨아대더니 숨을 쉴 수 있게 입술을 잠시 떼어냈다가 다시 각도를 바꿔 정신없이 키스를 해댄다. 뜨거운 호흡이 입술에 닿아올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댄다. 그렇게 한참을 입술이 얼얼할 정도로 키스를 받다보니 이제는 온몸을 휘저어대는 욕정을 푸는 것보다 숨쉬는 일이 급급해 잠깐씩 입술을 뗄 때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겨우 떨어져 나가 내 허리에 팔을 둘러 몸을 바짝 밀착시켜 올 때까지도 산소부족으로 헐떡이며 숨만 쉬어대다가 단단한 손으로 연한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쥐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들어올렸다. 부드러운 허벅지에 비벼지는 녀석의 단단한 페니스가 애널 위에 맞닿자 지독한 열기에 몸을 떨며 숨을 할딱였다. 한참동안 내부로 밀고 들어오지 않던 녀석이 하얀 엉덩이를 살짝 벌려 민감한 애널 위에 귀두끝을 비벼대자 약기운에 이미 한계까지 다다른 몸이 미친 듯 반응을 해댄다. 기절할 것만 같다. "하악...................흑.............."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강한 자극에 고개를 휘저으며 녀석의 밑에서 벗어나려 하자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아 온다. 녀석에게 벗어나지도 못한 채 탄탄한 목덜미에 뜨거운 숨을 내뱉자 귓가에 거친 호흡소리가 들려온다. "하아.....안아달라고 말해.......네 입으로........." 재촉하듯 귓가에 울리는 낮은 목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자극적이다. "말해..........." "응....아.......흐윽......안아......줘....안아........" 애널 끝에 와 닿는 열기와 지독한 애무에 미쳐버린 정신이 떨리는 입술을 열어 말을 흘려내자마자 자신도 참기 힘들었는지 바로 손에 힘을 줘 하얀 엉덩이를 벌리고 내부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아.......하악............." 귀두 끝만 약간 파고들었을 뿐인데도 손가락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크기와 열기에 꽤 공을 들여 풀어준 애널이 한계까지 벌어졌다. "흑........아...파............"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고통에 고개를 휘젓자 가만히 민감한 허벅지 안쪽을 쓸어대며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사정을 하고 힘이 빠져버린 내 것을 쥐어온다. 체력이 다 소진되어 버린 듯 몸이 늘어져 버렸는데도 녀석이 주는 지독한 자극에는 미치도록 반응을 해댄다. 질리지도 않고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페니스를 자극해대자 헐떡이며 겨우 숨을 내쉬던 입술을 비집고 가늘게 다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지쳐버린 몸이 또다시 쾌락에 반응을 하자 녀석이 민감한 살을 마찰시키며 내부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커다란 열기가 한치의 틈도 없이 내부를 가득 채워간다. 채 반밖에 들어서지 못했는데도 더 이상 내어줄 공간이 없다. "흑.........그만..........." 손톱을 세우고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애원해도 이미 이성을 날려버린 녀석은 본능적인 움직임만으로 비좁은 공간을 벌리고 내부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다. 한계까지 밀어붙이려는 녀석에게 순간 겁을 집어먹고 몸을 뒤로 물려보지만 강하게 허리를 죄어 끌어당기자마자 그대로 뿌리 끝까지 밀려들어왔다. "흐윽..................아............" 내부에서 날뛰어대는 열기를 식혀주기는커녕 더욱 가중시키는 느낌에 몸을 비틀자 한계까지 들어 차 내부를 가득 매운 녀석의 페니스가 꿈틀대기 시작한다. 정신을 못 차리고 하얀 가슴을 들썩이며 거친 숨만 내뱉는 내 안에서 바로 움직이지 않고 땀에 젖은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주더니 단정하게 드러난 이마에 입을 맞추고 떨리는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사그라들지 않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 안에 들어차 꿈틀대는 녀석의 페니스를 죄자 낮은 신음이 울리면서 몸 속에서 빠져나갈 듯 물러나더니 다시 강하게 밀려들어온다. 다시 민감해진 몸에서 열기가 정신없이 타오르자 하얀 팔로 녀석의 목을 휘감았다. 조심조심 부드럽게 시작된 움직임이 열기를 쫓아 약간씩 녀석에 맞춰 허리를 움직이자마자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으응......아.....앗............하아......." 빛이 나던 루비빛 눈동자가 흐려지고 정신없이 키스를 해대며 몸 안으로 파고들 때마다 재촉하듯 신음을 흘렸다. 지금껏 참아왔던 욕정을 하얀 몸에 모두 쏟아 붓기라도 할 듯 온몸을 부서뜨릴 듯 밀고 들어와 기절하기 직전까지 몰아붙여져 쾌락에 몸부림쳤다. 격한 움직임에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귓가에 스치는 사내의 거친 호흡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짙은 신음을 뱉어내고 내부로 밀고 들어올 때마다 느껴지는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한 쾌감에 이성 따윈 모두 날린 채 사내의 정욕을 모두 받아냈다. 그렇게....... 결국 온몸에 진이 다 빠져 힘없이 늘어지자마자 끝도 없을 것 같은 움직임이 멈추고....... 깊숙이 찔러든 내부에 따뜻한 기운을 퍼뜨리더니 몸 안에서 빠져나가지도 않고 내 몸을 거세게 끌어안는다. 눈꼬리에 아슬하게 매달려있던 따뜻한 물기가 의미도 없이 볼을 타고 흐르자 정신없이 입술에 키스를 해대던 녀석이 물기를 발견하곤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보다 섬세한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쳐준다. "울지 마라........... ........제발.........." "흑.............." 부드러운 목소리에 하얀 몸을 바들바들 떨어대며 눈물을 쏟아내자 깨지는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끌어안고는 눈물을 지워낼 듯 감은 눈에 가만히 키스를 해준다. 그렇게 한동안 품안에서 애처롭게 떨어대는 하얀 몸을 끌어안고 달래듯 머리칼과 등을 쓸어주더니 약기운으로 여전히 더운 숨이 흘러나오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온다. 몽롱한 정신과 아직도 가시지 않은 열기에 뜨거운 품안으로 파고들자 다시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날 차지해간다. Rubera(루베라) #116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눈을 뜬 지 한참........ 해가 중천에 걸려있었다. 멍한 머리가 생각하길 거부하고...... .......피곤하기만 하다. 왜 몸이 움직이지 않는 지 모르겠다. 그리고 왜 이 녀석이 아직도 내 몸을 끌어안고 있는 지도....... 벌써 정무인지 뭔지를 보러갈 시간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몸과 머리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고 무거워서 녀석이 피부를 맞대고 붙어있다는 공포에 대한 자각마저 생기지 않는다. 분명 어제 밤....... 케레스를 만났다. 그리고........ 이 녀석이 들어왔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무거운 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상체를 일으키자 현기증이 일고 척추를 따라 통증이........ "흐윽........" 생소한 통증에 작게 신음을 흘리자 언제부터 깨어있었는지 녀석이 손을 뻗어 허리를 휘어감고 다시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가만히 누워있어....... .....움직이기 힘들 테니까......" 귓가에 맞닿은 녀석의 탄탄한 가슴에서 강한 심장소리가 울려오고 통증이 이는 등과 허리를 쓸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몸을 흠칫 굳혔다. 분명...... 어제 밤....... 드문드문 희미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가고...... 온몸에 싸늘한 감각이 퍼져나간다. 녀석을 거부해대던 몸이...... 녀석이 억지로 흘려 넣은 액체를 마시곤 미친 듯이 반응을 해댔다. 약기운에 정신없이 매달렸다. 재촉을 해댔다. 기절할 때까지 몸을 섞고 다시 눈을 떠도 온몸을 휘저어대는 열기에 자는 녀석을 깨워 보채기까지 했다. 약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드문드문 기억나는 것만 해도 세 번...... '무슨........짓을............... .............한 거야........................ ...........도대체.......?!!!!!' 몸은 어느 샌가 깨끗이 씻겨져 있었지만 침대 위엔 짙은 정사의 냄새가 희미하게 코를 찔러온다. 몸을 내줬다고도 할 수 없지만 강제로 당했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 다시 가늘게 떨어대는 몸을 따뜻하게 안아주지만 이미 패닉상태에 빠져 넋이 나간 듯 가만히 녀석의 품에 안겨만 있었다. 말도 없이 한참을 떨고만 있자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키스를 해온다. 무슨 생각인지 지난번과는 달리 꽤나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키스를 하지만 꽉 다물어진 채 반응도 보이지 않는 입술을 몇 번 빨아들이다 바로 떨어져 나갔다. "어젯밤엔 역시........ ......약기운 뿐이었나......." 인형같이 반응이 없는 날 잠시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더니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드러난 단정한 이마에 따뜻한 입술을 맞대온다. "놔줘........" 넋이 나간 듯 누워만 있다 목구멍을 타고 잔뜩 잠긴 목소리가 새어나가자 고개를 들어올려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날......놔줘........ 제발...... 난....... 니 루베라가 아냐....... 니가 찾는 건......... ...........내가 아니잖아........" 눈 꼬리를 타고 뜨거운 물기가 새어나가자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보던 녀석이 손을 들어 물기를 훔쳐준다. "왜 내겐..........눈물만 비치는 거냐...... 그렇게 내 곁엔 있고싶지 않다는 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돌아가고 싶은 거냐........" '사랑하는........사람.......?' 물기 젖은 눈으로 붉은 사내를 올려보자 가만히 얼굴을 쓸어보며 바라만 보다 아플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는다. "어젯밤............널 갖은 건 나야........이전엔 누구의 것이었든 내게 안긴 이상 누구에게도 돌려보낼 순 없다........" '빌어먹을........!!' 녀석의 품안에서 훌쩍이며 힘없는 몸으로 벗어나려 바르락거리자 강한 팔로 허리를 죄고 달래듯 입술에 부드러운 키스를 해댄다. 미약한 저항에도 힘에 부쳐 헐떡이며 가쁜 숨을 몰아쉬다 녀석의 입술이 떨어져나가자마자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 "나.........아파........... 머리도 지끈거리고........몸도 여기저기 쑤셔......... 흑.......궁의 좀............불러 줘.........."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보다 미열이 있는 이마를 짚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궁의를.........불러라......." "예........" 문밖에서 대답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늙은이가 허겁지겁 침실 안으로 들어선다. 약이 잔뜩 들어있는 상자와 허리춤을 대충 훑어보고 다시 붉은 눈동자에 시선을 돌렸다. 아픈 곳을 보여주기는커녕 그때까지 내 몸을 끌어안고 있는 녀석 때문에 궁의 늙은이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침대맡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거칠게 뛰어대는 심장소릴 겨우 무시하고 내게서 시선을 뗄 줄 모르는 녀석의 목을 끌어당겨 살짝 입을 맞췄다. 약간의 자극에도 뜨겁게 반응을 해온다. 입술을 떼자마자 내 허리를 바싹 죄고 다시 잡아먹을 듯 키스를 해오는 녀석에게 약간씩 반응을 해주면서 슬쩍 옆을 바라보니 역시나 늙은이가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침대에서 뒤돌아서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더욱 끌어당기고 슬그머니 녀석의 목에 휘감은 손을 풀어 늙은이에게 손을 뻗었다. 눈 깜빡할 새 손에 낚아챈 것은 허리춤에 차고있던 가죽주머니............. 바로 베개 밑에 밀어 넣고 눈을 감았다. 녀석을 속였다는 생각에 어쩐지 심장 한켠이 따끔거렸지만.......... 날 기억도 하지 못하는 녀석이 자신의 루베라 대신 날 이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녀석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입술이 얼얼할 정도로 한참동안 키스를 해대다 겨우 떨어져나가더니 내 몸을 꼬옥 끌어안고 하얀 가슴 위에 머리를 기대온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에 공포는 마음 깊숙이 꼭꼭 눌러두고 단정치 못하게 붉은 머리칼이 삐죽이 솟아있는 녀석의 머리를 꼬옥 끌어안자 말없이 궁의가 조용히 침실 밖으로 물러난다. "놓아줄 수........없다........." 혼잣말인 듯 중얼대는 녀석의 말을 듣지 못한 척 결 좋은 붉은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볼 뿐이었다. Rubera(루베라) #117 그렇게 한참을 자는 척 누워있다 진짜 잠이 쏟아져 비몽사몽 꿈속에 들어서려 할 때, 녀석이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내게 살짝 키스를 해주고 침실을 나서자 가만히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자꾸만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해 가는 기분을 겨우 부여잡고 힘겹게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갖가지 음식들과 궁의가 두고 간 약........... 눈을 감기 전에 녀석에게 부탁해 두었던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밖에 입고 나갈 옷은 아니지만 여기저기 보석까지 박혀있는 새하얀 잠옷............. 베개 밑에서 꺼낸 가죽주머니를 손에 쥔 채 음식엔 손도 대지 않고 대충 옷을 꿰어 입은 후 바로 창으로 다가가 발코니로 나갔다. 여전히 밑엔 병사들이 지키고 있고.............. 가죽주머니를 열어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는 훙구가루를 한 움큼 움켜쥔 후 바람이 불지 않는 틈을 타 코를 막고 아래로 확 뿌려버렸다. 지키고 있던 병사는 다섯......... 마침 점심 때였기 때문에 몇 명은 교대로 식사를 하러 간 모양......... 역시나 효과는 좋아 가루를 뿌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들이 하나 둘 씩 주저앉자 슬그머니 벽을 타고 지면에 내려섰다. 아직도 삐걱대는 허리에 미간을 찌푸리다 병사들을 바라보니 모두 곯아떨어진 상태....... 주위를 살펴보고 몸을 숨겨가며 마구간으로 향했다. '씹, 저번처럼 나가보지도 못하고 걸리진 않겠지...........' 황성이야 워낙 방대해 모두 보초를 세울 순 없다. 물론 크리올라의 군사력은 막강하지만 시온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황성의 병사들 중 3분의 2는 티폰이 정벌한 다른 나라에 주둔하면서 안정을 꾀하고 있다 들었다. 뛰듯이 걸어 한참만에 도착한 마구간엔 말을 돌보는 시종이 있을 터............ 밤이라면 시종들도 자신의 잠자리로 들어가 몸을 쉴 테지만 지금은 벌건 대낮............ 지난번 마구간 앞에서 티폰 녀석에게 잡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버렸다. 난처한 눈으로 마구간에 발도 들여놓지 못한 채 서있는데 멀리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온다. 급히 몸을 숨기고 소리가 들려온 쪽에 시선을 주자 정찰을 나갔었는지 병사들이 마구간에 들어서고 있었다. '운이............좋은 건가............' 병사들이 말에서 내려 황성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자마자 녀석들이 타고 온 말 중 하나에 바로 올라타 황제의 숲 쪽으로 향했다. 시종이 말을 들여놓으러 나와 말이 한 마리뿐인 걸 알면 들킬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면 말이 도망갔다 여겨 시간을 더 벌 수 있겠지만............. 운이 없어도 말 한 필이 없어졌단 소린 한참이 지나서야 황제의 귀에 들어가겠지....... 방대한 황성을 최단거리로 빠져나가기 위해 숲길을 내달렸다. 이렇게.........반나절만 달리면 쫓아올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밤새도록 녀석을 받아들인 덕에 얼마 달리지도 않아 몸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흐려지는 정신만을 겨우 부여잡고 그렇게 3시간 가량을 미친 듯 내달렸다. 일부러 수도 쪽으론 발도 들여놓지 않고 케레스와 도주했던 황제의 숲을 따라 뮤즈니안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가 도망친 걸 알면.............또 미쳐 날뛰겠지............ 자기 루베라가 아닌 걸 뻔히 알면서 왜...........' 분명 녀석의 눈앞에 진짜 루베라가 새겨있는 하류라는 녀석이 나타났다면............. 녀석은 분명 대용품으로 잡아두었던 나 같은 건 헌짚신 짝처럼 버려버렸을 거다. 물론 그 하류라는 녀석은 내 안에서 이미 죽어버렸으니 평생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난......... .................허상 따윈 되고싶지 않다. '큭, 잡히면 또 죽이려 들겠군..........' 어쩌면............ 녀석의 말대로.......... 난 진짜가 아니니까............. 잡히면......... ............이번에야말로 죽을 지도 모른다. 가짜란 건............... 셀 수도 없이 많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이고..............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거니까........... 날 잡아 죽여버려도 2년 전 날 닮은 녀석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테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계속해서 짜증나도록 떠오른 생각을 멈춰준 건 황제의 숲 길 중앙에 떡 버티고 있는 사내.......... '씹, 뭐야? 저 새낀?!!!!!' 그냥 깔아버리고 가려는 듯 속력을 줄이지 않는 말새끼의 고삐를 겨우 당겨 길을 막고있는 사내의 코앞에서 멈춰 설 수 있었다. "이 새끼, 죽고싶어?!!!" 기분도 바닥을 치고 잔뜩 화가 나 힘겹게 말에서 내리자마자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소리를 바락 지르자 이상할 정도로 단조로운 목소리가 녀석에게서 흘러나온다. "큭, 어제 술집에서 떠들어대던 녀석들이 최근 황성 근처에서 하얀 여우를 봤다고 하더군...... 설마 했는데.....사실일 줄이야.........." "이 개새끼, 그딴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잠깐......하얀.......여우? 난 침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는데........? 그럼 설마 유이 녀석이..............' "그게 언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뒤통수에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말도 채 끝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둘.......이었어........?' "하얀 여우는 둘 일텐데.......왜 하나만 있는 거지? 쳇, 현상금도 반밖에 못 챙기겠군........" 그제야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현상.....금? 헌터...였나......' 생각을 잇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지자 녀석이 다가와 힘없이 늘어진 턱을 치켜올린다. 흐린 시야 속으로 들어오는 건 비열하게 생긴 다갈색 머리칼의 사내........ 한참동안 말없이 내 턱을 우악스럽게 쥐고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다. "생각을.....바꿨어........ 현상금보다.......귀족들 놀이개로 팔아먹으면 훨씬 많이 벌겠군.........." '빌어....먹을.......또.........' 사내의 우악스런 손에 몸이 들리자마자 그대로 의식을 잃고 늘어져 버렸다. . . . "기회가 있을 때..............도망치십시오........" '응?' 이상하게 흐린 시야와 몽롱한 머리로 아무런 생각도 못한 채 차가운 바닥에 누워있다 귓가에 스치는 낮은 목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키니 시커먼 그림자가 눈앞에 서 있었다.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무슨............' 아까부터 코를 찔러대는 역한 냄새에 미간을 찌푸린 채 주위를 둘러보니 축축한 지하............. ...........게다가 와본 적도 없는 감옥............... 붉고 끈적한 액체가 옷은 물론이고 손과 얼굴에도................... 『니가.........황제를 죽인 거냐....... ............그 녀석을 위해?!!!』 귓가에 스치는 섬뜩한 목소리............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표정.............. '티폰...........' 언제나 따뜻하게 안아주고............. ............키스를 해줬는데........... 주체할 수 없이 떨어대며 혼란스런 머릴 감싸쥐자 다시 낯선 목소리가 감옥 안을 울린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십시오...........곧 폐하께서 들이닥치시면.......... .......참혹하게 처형당하실 지도..........." '처.....형.................? 누가..............누굴............. .............티폰이............날.............죽여?' 눈물이 가득 담긴 까만 눈동자를 들어올리자 어둠에 잠겨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감옥 문 저편에 예의 까만 그림자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감옥 문이 열리자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온다. "잔혹하신 분입니다........" '잔혹..........?'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 아니........... 누구도 티폰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기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타인의......... 아니다......... 슈안이란 사내도 분명................. 내게 비슷한 말을.......... 이상하게 안개가 낀 듯 혼란스런 머리를 부여잡고 움직일 생각도 않자 다급한 목소리가 다시 울려온다. "빨리 서두르십시오!! 선대 황제를 암살한 게 당신이란 게 밝혀지면.............." 『니가.........황제를 죽인 거냐....... ............그 녀석을 위해?!!!』 '암살..........................? ...........내가............죽였어..............?' 눈앞에 스치는 참혹한 시체............. 고통스런 표정......... 심장에 붉은.............단검이......... 떨리는 손을 내려보니 섬뜩한 핏자국이 말라붙어 있다. '내가.............' 넋이 나가있는 사이 강한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어대는 하얀 팔목을 쥐고 감옥 문밖으로 나선다. "달아나십시오.......참혹하게 폐하의 손에 처형당하고 싶지 않다면..............." 초조하게 귓속에 파고드는 목소리............. '티폰이...........날.........................죽일 리............없..............' 섬뜩한 비명소리............... 피처럼 붉은 눈동자............. 바닥에 구르는................. ....................슈안의 머리.............. 싸늘한..............표정................. 처음 보는 모습............... 아무렇지도 않게 심장을 찌르고 목을........... ............사람의 머리를 베어냈다. 어느 게 진실인지............. 무엇이 참인지............. .......알 수가 없다. 지금까진 따뜻하게 품안에 안아주고 철없는 응석을 모두 받아주었는데................. 그 날은............. 좋아했던 아름다운 루비빛 눈동자엔 피가 베어 나올 듯 섬뜩한 분노만이 서려있었고 차가운 목소리와 다신 보고싶지 않은 서늘한 표정이............... 무섭다. 두렵기만 하다. 이렇게 어두운 것도........... 역한 피 냄새도............ 차가운 한기도.......... 그래도 가장 두려운 건............ 또다시 그런 표정으로...........그런 목소리로.........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볼 붉은 사내.........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몸을 떨며 뒷걸음질치자 조용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기회가 있을 때.............도망치십시오............" 이후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뒤돌아 뛰자마자 참혹하게 목이 잘리고 몸이 꿰뚫려 죽은 병사들의 시체가 발에 채여 끈적한 핏물이 발바닥에 들러붙는다.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마치..................... ..............지옥과도 같은 참상............... 형체조차 보이지 않는 시체들이 내 발목을 붙들 것만 같아 반은 공포에 미쳐 지하감옥 안을 내달렸다. "다시는...............되돌아오지 마시길..............."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정신없이 내달리며 뒤를 돌아보지만 보이는 건 새카만 어둠 뿐....... 가늘게 빛이 보이기 시작하자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도망쳐야 한다. 도망치지 않으면............. 나도 이 시체들처럼....... 겨우 감옥 밖으로 나서자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하늘을 뒤덮은 무거운 구름이 음산한 비를 뿌리기 시작하자 거친 숨을 내쉬며 심장이 멈춰버릴 정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 . 머리가 지끈거린다. 몸을 약간만 일으켰는데도 뒤통수가 너무 아파 신음이 저절로 새어나갔다. 눈을 떠보니 달리는 마차 안...........? '꿈을..................꾼 건가.........?' 오랜만에...............또 과거를 기억해 낸 것 같다. 아주 짧지만.............두려운............. 그때.............감옥 안에서 누군가 날 내보내줬다. '누구............?' 황성에서 아는 녀석이라곤 티폰과 슈안 뿐이었는데........... 아직도 기억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있는 건가.........? 날.........도와준 것 같은................ 결국 그렇게 황제의 숲으로 달아나 얼마 안가 티폰 녀석에게 붙잡혀 끔찍하게 당해버렸지만........ 어쨌든 당시엔........... 녀석의 참모습을 모르고 있었다. 침실 안에 모셔두고 꽤나 애지중지했던 모양이니........... 잔혹하고 끔찍한 녀석을 봤을 땐 충격이 컸던 것 같다. 게다가............ 그렇게 따르던 녀석한테 강간까지 당하고............ 미치지 않은 건 순전히 기억을 잃은 덕분이었겠지........... '큭, 기억상실 걸릴 만도 하군.......뭐, 지금에 와서 생각나 봤자..........달라질 것도 없지만..............' 생각을 털어 내 듯 머리를 휘젓자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온다. "흑, 젠장....................." 작게 욕설을 내뱉고 정신을 차려보니 빌어먹게도 손과 발이 가죽끈으로 단단히 묶여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지끈거리는 머리 속에 황성을 탈출해 이상한 녀석에게 뒤통수를 맞고 기절한 일이 떠오른다. 말을 모는 앞좌석으로 시선을 돌리니 눈에 들어오는 건 기절하기 전에 잠깐 스쳐 본 두 명의 사내........ '이 빌어먹을 자식들.............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일단 황성에서 멀어지긴 했는지 황제의 숲은 벗어난 듯 했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기절해 있었나 주위엔 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큭, 일어났나 본데?" 말고삐를 쥐지 않은 녀석들 중의 하나가 뒤쪽으로 건너와 기분 나쁜 미소를 입에 걸친다. "소문보다 예쁘잖아?" 우악스럽게 턱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는 녀석을 사납게 노려보자 갑자기 눈에 이채를 띈다. "이봐, 그냥 넘기기엔 너무 아깝지 않아?" "킥, 맘은 알겠는데 손은 대지마......가격이 떨어진단 말야!!" "그래도 이 녀석 옷에 달린 보석까지 떼어냈으니 1000은 거저 번 거 아냐!!" "그래도 안돼!!" "쳇, 도대체 왜 그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있었던 거야? 벌써 다른 귀족 녀석 밑에서 다리 벌려주던 놈 아닐까? 사내자식 주제에 말랑말랑하고 색기까지 흘려대는 게............ 큭, 아직 덜 컸나 뽀송한 게 뽀얗기도 하군" '이 새끼가 돌았나.........무슨 개소리야?' 같잖은 소리에 기가 막혀 죽일 듯 노려봐도 씨알도 먹히지 않는지 오히려 꼬리에 불붙은 망아지 마냥 안절부절못한다. "젠장, 깎인 만큼 내가 덜 받을 테니 우선 맛 좀 봐야겠어!!!" "미친놈!! 큭, 대신 아랜 건들지마...........알아채면 반밖에 못 받는다는 거 알지?" "킥킥, 걱정 마.......입에다만 물려도 갈 것 같은데?" '썩을 놈들이 대체 무슨..............?' 성깔은 일단 접어두고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재갈을 풀고 거친 손으로 분홍빛 입술을 쓸어댄다. "고급 창녀보다 낫군......." '응?' "하, 이 녀석 모르는 모양인데? 킥, 꼬마야.......그렇게 순진한 눈으로 쳐다보면 죄짓는 것 같잖아...." 무슨 속셈인지 몰라 바라만 보고 있자 역겨운 웃음을 입에 걸치고 갑자기 급하게 자신의 허리춤을 풀러댄다. Rubera(루베라) #118 눈앞에 드러난 건 팽팽하게 일어선 사내의 흉물스런 물건............ 경악으로 눈만 크게 뜨자 다시 턱을 우악스럽게 쥐고 말을 잇는다. "큭, 밑엔 물리지 않을 테니까 혀나 잘 놀려............." '혀...........?' 순간 스치는 생각에 잿빛 눈동자에 분노를 담고 입을 열자 잔뜩 잠긴 목소리가 새어나간다. "개새끼, 그딴 짓 하기만 해봐........구실도 못하게 잘라버릴 테니............" 증명이라도 하듯 이를 갈아붙이자 얼굴을 구기고 턱을 쥔 손에 힘을 준다. "큭, 새끼고양이가 아니라 살쾡이라 이건가? 얌전히 있었으면 이런 방법까지 쓰진 않는데 말야........"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회심의 미소까지 띄며 품안을 뒤져 작은 병을 꺼내 보인다. "마침 좋은 약이 있거든? 최음젠데........처녀라도 약간만 마시면 넣어달라고 개처럼 핥아대지....." '또냐..............' 변태같은 티폰 녀석이 몸소 체험시켜준 결과, 말하지 않아도 효과라면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참혹하게 일그러지는 표정을 보곤 녀석이 만족스런 미소를 띄워 보인다. "약을 쓰면 넣지도 못하고 네 것도 풀어줘야 하니까 나도 꽤 귀찮아지거든? 선택해......." '개새끼, 죽여버릴 테다..............!!!!!!!!!' 한참을 분노로 몸을 떨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해. 대신 손 좀 풀어. 뒤로 묶여서 아파 죽겠단 말야. 불편하면 물어버릴지도 몰라..........." "안돼!!" "왜? 좀도둑이 그렇게 무서워? 큭, 그러니까 물건도 그따위로 작지.....!!" 뿌득 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날 후려치려는 지 솥뚜껑 만한 손을 들어올린 채 분노로 부들부들 떨어댄다. "급한 거 아니었어? 물어뜯지 않을 테니까 손이나 풀러!!!" "까불지마......너 따위 애송이가 무서워? 큭, 그 조그만 물건 입에 물고 개처럼 핥아 보라구.....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약을 써서 네 녀석 것도 실컷 주물러 줄 테니.............." 죽일 듯 노려보자 손을 구속하고 있는 가죽끈을 거칠게 풀어 움직일 틈도 없이 바로 앞쪽으로 손목을 묶어버린다. '겁쟁이 새끼............!!' 속으로 욕을 줄창 해대는 사이 벌겋게 일어서 성이 난 물건을 내게 들이민다. 보기만 해도 역겨운 물건을 밀어 넣으려고 투박한 손으로 턱을 강하게 쥐고 억지로 입을 벌려오는 순간 묶인 팔을 휘둘러 자신이 말한 대로 맘에 들지 않으면 내게 쓰려고 손에 쥐고있던 약병을 올려쳐 마차 밖으로 날려버렸다. 흙바닥 위에 떨어져 파삭 소리를 내며 깨어지는 병이 멀어져가자 상체를 약간 일으켜 눈앞에 보이는 녀석의 흥분한 아들놈을 묶인 발로 힘껏 걷어차 버렸다. 참혹한 비명을 쏟아내며 바닥을 구르는 녀석을 뒤로하고 마차 밖으로 구르려던 순간 뒷덜미가 잡혀 몸이 돌려지더니 바로 주먹이 복부에 들이박힌다. "헉..............!!!!" "장난은 여기까지야........" 지금까지 잠자코 말을 몰던 사내가 어느새 뒤로 넘어와 일그러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가뜩이나 지끈거리는 머리에 빈속으로 대처할 틈도 없이 복부에 있는 급소를 맞아버려 숨도 쉬지 못하고 정신이 흐려지자 몸이 거칠게 마차 구석으로 내동댕이쳐진다. "멍청한 녀석........허튼 짓거리 하지마!!" "으윽......저 새끼, 차라리 사창가에 팔아 넘겨버릴........." "닥쳐.......예정대로 귀족가에 넘긴다......이제 소란 피우지마......" "하지만.....손도 못 댔잖아!!" "제 가격 받고싶으면 더 이상 손대지마...... 저 새끼 팔아치우면 발정 날만한 여자들로 잔뜩 살 수 있을 테니........" "젠장.....알았어............" "저 녀석한테 약 좀 써.....가는 동안 날뛰지 않게............" 바지를 대충 추스린 녀석이 힘없이 구석에 늘어진 내게 다가와 약이 묻은 헝겊조각으로 코와 입을 막자마자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땐........... 주위는 온통 까맣기만 하고...... 정신을 차린 건지 기절을 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 없다.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고..........정신도 안개가 낀 듯 흐리기만 하다. "묶어두지 않아도 괜찮을까?" "당분간은 괜찮아.......약을 썼으니 저녁때까지는 갈 테지......." "어디에 넘길 셈이야? 역시......미르헨가가 좋을까?" "아니....거긴 너무 이목이 많아.......곧 국혼을 치를 가문이잖아?" "그럼.......?" "카이도가............거기라면......." "하지만 거긴....!!" "비싼 가격에 선뜻 돈을 내놓을 가문은 이 근처에 딱 두 곳 뿐이야......... 이 녀석이 정신을 차려 난동을 부려봤자 일은 다 치르고 난 뒤일 테고....... 뮤즈니안에서 소문난 도둑이란 건 알지도 못할뿐더러 설령 나중에 가서야 발각돼도 우린 이미 두둑이 챙겨 멀리 도망쳤을 테니.......큭 결과적으로 돈만 챙기면 그만이야....." "킥, 하긴........" 아직도 마차 안인지 덜그럭거리는 규칙적인 소리가 울려오고 뒤통수와 복부에 남아있는 통증은 가실지를 모른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미간을 찌푸리고 몽롱한 정신으로 아무런 사고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누워있길 한참......... 짐짝 다루듯 몸이 내려지자 누군가의 어깨에 들춰진 채 한참을 걸어 푹신한 곳에 던져졌다. "이곳에 노예라면 지나칠 정도로 많다.....필요 없으니 데리고 나가......." 갑자기 딱딱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든다. "큭, 보통 노예가 아닙니다. 침실시중으로 쓰시면............." "필요 없어.......오늘은 1년만에 가주께서 돌아오신다. 경을 치고싶지 않으면 당장 나가라!!" "시니안님의 명성을 듣고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겁니다. 황제 폐하께서 토벌하신 대륙을 관리하시다 이번에 돌아오신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카이도가의 집사님이라면 가주의 노고를 미리 헤아려 잠자리 시중 정도는 준비해 두심이........." "그 정도는 저택 안에도 차고 넘치도록 있어!!! 게다가 필요한 것은 계집이지 사내아이가 아니다!!" "큭, 한번 보시면.........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두건이라도 씌워놓았었는지 까만 것이 들춰지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진다. 지나치게 정갈한 공간........... 몽롱한 시야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딱딱한 표정의 중년 사내....... 날카로운 눈으로 날 훑어본다. "왜 이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는 거지?" "큭, 너무 팔팔해서 약을 조금........썼습니다......" "문제가 있는 물건은 아니겠지?" "보시는 대로 깨끗합니다" "가격은.....?" "역시 맘에 들어하실 줄 알았습니다......." "얼마냐고 물었다........" "금화로 8000....." "터무니없이 비싸군.....보통 노예 가격은 50도 안돼......" "침실노예는 그것 보단 더 비싸죠......." "아무리 비싸도 2000이상은 들어본 적도 없다!!" "그 이하론 팔 수 없습니다" "7000주지......" "8000이 아니면 안됩니다. 그 이하로 부르시면 미르헨가에 넘길 수밖에 없습니다......" 갑자기 옆에서 팔을 잡아당겨 몸이 일으켜 세워지자 테이블 위에 묵직한 가죽 주머니가 둔탁한 소릴 내며 올려진다. "놓고 가라......" "큭, 잘 선택하신 겁니다......" 비열하게 웃음을 흘리며 슬그머니 금화가 들어있는 묵직한 주머니를 들어올리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약에 취해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도 모른 채 몸도 가누지 못하고 앉아있자 중년 사내가 다가와 내 턱을 들어올린다. "제 값은 해야지........오늘밤 가주를 모셔라.....확실히 하지 않으면 노예시장에 팔아치울 테니......" 가벼운 종소리가 울리자 아이보리색 가벼운 옷을 입은 시녀들이 잔뜩 들어선다. "오늘 시니안님의 침실시중을 들 아이다........깨끗이 씻겨 시니안님의 침실에 대기시키고.......... 향을 피워두거라.......!!" . . . "저 아이 등에 새겨진 각인..............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나도!! 그것 같지 않아?!! 뮤즈니안 황가의 문장.............." "뭐? 황가? 그럼 황족이라도 된단 소리니? 말도 안돼!! 그렇게 고귀한 신분이 노예라니....!!" "그렇겠지? 집사님껜 보고 올리지 않아도.........." "그냥 잠자코 있어!! 괜히 쓸데없는 소리했다가 모처럼 만에 시니안님이 돌아오시는데 말썽만 생길라...... 하아.......그나저나 좋겠다. 저 아인...........오늘밤 시니안님의 품에............" "어머,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가주께서 돌아오실 시간이니 빨리 나가자......!!" "쳇......알았어........." "향은 피워뒀지?" "응............" 시끌벅적했던 소란이 가라앉고............... 다시 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시녀들의 손에 몸이 씻겨져 옷도 입혀지지 않은 채 커다랗고 푹신한 침대 안쪽으로 밀어 넣어진 후였다. 지끈거리는 머리와 뻣뻣한 목에 손을 대보려 해도 여전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정신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좀 전보다는 훨씬 나아진 상태......... 힘없는 눈으로 여기저기 살펴봐도 넓다는 것 이외에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까만 어둠에 잠겨있다. '흑......젠장...........도대체 뭘 한 거야.....?!!! 빌어먹을 새끼들....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다 죽여버릴 줄 알아!!'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도 우선은 이곳에서 벗어나야 그놈들을 찾아내 죽이든 살리든 할텐데 가위에 눌린 듯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으니........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뜬눈으로 손가락 끝부터 움직이기 시작해 겨우 약간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무렵....... 밖에서 잠시 소란이 일더니 누군가 침실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버.....벌써?!!!!!' 몸이 굳어 움직이지도 못한 채 눈만 크게 뜨고 있는 사이.......... 침대 앞까지 다가온 까만 그림자가 옷을 벗는 듯 사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바로 시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피부에 와 닿는 단단한 몸에 화들짝 놀라 옆으로 물러나자 그제야 날 발견했는지 상체를 살짝 일으킨다. "침실시중인가.........쓸데없는 짓을........." 관심 없는 듯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다시 몸을 눕히는 사내를 보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우선은 생각했던 것처럼 돼지 변태는 아닌 모양........ 하지만................... 침대 위를 벗어나려 몸을 움직이자마자 손목이 잡혀 그대로 다시 제 위치로 돌아오고 말았다. '뭐......뭐야....갑자기....?!!' 옆에서 뭘 하든 신경 쓰지 않을 것 같던 사내가 자신을 다시 침대로 끌어당기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교육받지 않은 건가.......내일 아침, 내가 나가라고 할 때 까진 이곳에 얌전히 누워있는 게 네 일일텐데......." '무.....무슨 개소릴.....!!' 잡혀있던 손목을 거칠게 뿌리치자 옆에서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하아......침실노예 치곤 꽤나 건방지군........." "이 썩을!! 누가 침실노예야?!!!! 이 빌어먹을 새끼, 또 잡으면 죽여버릴 줄 알아!!!!" 잔뜩 잠긴 목소리로 단단히 못을 박고 몸을 일으키자 다시 손목을 쥐고 끌어당겨 침대 위에 눕히더니 바로 위로 올라타 몸을 내리누른다. "큭, 입이 거칠군. 교육이 부족해........ 10년 동안이나 카이도가에서 일한 집사가.......왜 이런 아일 내 침실에 들여보낸 거지? 감각이 무뎌진 건가......? 게다가............." "흑, 빌어먹을.........!!" 낮에 얻어맞은 뒤통수가 아파 꼼짝도 못하고 신음을 흘리자 단단한 손으로 양 손목을 쥐어 머리위로 내리누르더니 몸을 더듬어오기 시작한다. ".........사내 아이군.........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놔!! 이 변태새끼!!!!!" 가슴을 쓸어대는 손길에 버둥거리며 벗어나려 해봐도 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완력을 당해낼 수가 없다. 티폰이라면 몰라도 왠만한 녀석이 내리누르면 뿌리칠 정도는 됐는데........... 이상하게 평소보다 몸에서 열이 나고 아무리 몸 상태가 최악이라지만...................... 갑자기 목덜미에 부드럽고 물컹한 것이 와 닿자 몸을 흠칫 굳혔다. "감촉도.......감도도.......꽤 좋은데.......?" 민감한 피부를 살짝 혀로 핥자 소름이 끼친다. 사내의 단단한 품에서 벗어나지도 못한 채 입술을 피해 고개를 휘젓자 목덜미에 키스를 해대며 가슴께로 내려와 작은 돌기를 입안에 머금어 혀로 자극을 해댄다. "아...............으응......" 의지완 상관없이 입술을 비집고 한심할 정도로 야한 신음이 흘러나오자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어 버렸다. '뭐...........뭐야?!! 왜?!!!' 어처구니없는 반응............ '욕구불만?!!!' 지난 밤 티폰 녀석에게 밤새도록 안겼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이 새끼가 좋은 건가...........?!!' 얼굴도 보이지 않는 사내자식이 좋을 턱이 없고............. '테크닉?!!!' 유이 녀석보다 못하다. '그........그럼 역시...................' 변태 티폰 녀석 덕분에 드디어 나도 변태의 길에 들어선 건가...........?!!! 내 위에 있던 사내도 싫다고 날뛰던 녀석이 만지자마자 신음을 흘리니 의아한 듯 상체를 들어 어둠에 보일 리 없는 날 바라본다. 그리고.............. "큭, 역시...........향을 피워뒀군................." '향.......?' "최음효과가 있는 향이다......... ......강하진 않지만 넌 꽤나 민감하군................." '최음............향?!!' "저런 거 없이도 충분해............." 귓가에 낮게 속삭이고 뜻밖에 향을 불어 끈 뒤 변태의 길에 들어선 게 아니란 걸 기뻐할 겨를도 없이 다시 내게 몸을 포개온다. 부드러운 입술이 목덜미를 찍어누르기 시작하자 몸에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한심할 정도로 녀석의 자극에 반응해 대는 몸이 짜증스럽기만 하다. 할딱이며 새어나오는 호흡에 차라리 숨을 멈춰버리고만 싶다. 빌어먹을 몸의 반응에 눈물이 비집고 나올 것만 같아 입술을 꽉 깨물고 신음을 삼켰다. 이대로 라면 꼼짝 못하고 얼굴도 모르는 변태새끼한테 깔릴 상황..... 결국 붉은 녀석에게 도망치고 도망쳐 다다른 곳이 이런 변태새끼의 침대 위라니........ 티폰 녀석에겐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몸이었는데 끔찍하게도 이런 녀석한텐 신음을 흘릴 걸 생각하니 미칠 것만 같았다. '젠........장.......!!!!!' 왜 갑자기 그 녀석이 떠오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하필 이런 더러운 상황에........... 그 녀석이.......... 붉은 빛이........눈앞에 어른거리는 듯 해 눈을 꼬옥 감아버리자 허벅지가 넓게 벌려지더니 사내가 자리를 잡는다. "왜 계속 반항하지 않는 거지?" '씹, 할 수 있었으면 벌써.........!!!!!' 꼼짝도 못하게 내리누르고 허벅지 안쪽을 쓸어대며 놀리듯 던지는 말에 몸을 비틀어보지만 역시나 소용없는 짓......... 분노로 이를 갈며 헐떡이다 몸에서 힘을 빼버렸다. "또 무슨 생각이냐?" "맘대로 해" "항복인가?" "웃기지마.....순순히 당하는 것도 지금 뿐이야.......죽여버릴 테다......꼭........." "큭, 앙탈이 심하군......" 허벅지를 쓸어대던 손이 엉덩이 밑으로 들어와 연한 살을 거세게 움켜쥐자 손바닥에 손톱이 박혀들 정도로 주먹을 꽈악 그러쥐었다. '티폰..........................' Rubera(루베라) #119 '........젠장!!! ...........빌어먹을!!!!' 분한 마음에 입술을 베어 물자 장난스럽게 살짝 입맞춤을 하고 부드러운 목덜미에 얼굴을 부벼온다. "하아.......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는군.......재미없어......." '뭐?!!' 놀라 눈을 번쩍 뜨자 갑작스레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내려서더니 몇 개나 되는 창을 열어 아직도 은은한 향내가 나는 침실을 환기시킨다. 뜻밖의 상황에 그 자리에서 굳은 채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있는 사이 사내가 다시 침대 안으로 파고들어 따뜻하게 열이 나는 하얀 몸을 끌어당겨 꼬옥 안아온다. "무...........무슨......?!!" 웃기지도 않는 상황에 잠시 굳어있다 목덜미에 녀석의 규칙적인 호흡이 느껴지자 빠져나가려고 몸을 비틀었다. "이대로 있어........큭, 계속 움직이면 하던 거 계속 해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뭐?!! 무슨 미친.............!!!' 귓가에 스치는 피곤한 목소리에 몸을 굳히자 잠에 취해 나른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진다. "피곤해서 하고싶은 맘도 없다. 체온이나 빌려줘.........너 때문에 창까지 모두 열었으니............." 말을 끝내자마자 그대로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켜온다. '뭐.....뭐야........? 이 새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멈춰주지 않았으면 반항조차 못하고 당했을 건 뻔하고 지금 당장은 이 사내의 힘을 당할 수도 없을뿐더러 티폰만큼 엄청난 힘을 겨우 뿌리치고 알몸으로 도망쳐봤자 빌어먹게도 넓기만 한 이 저택 안일 테니........... '젠장.......!! 뭘 쳐먹고 이렇게 힘이 쌔?!!!' 체온을 빌려달랍시고 산만한 덩치를 한 사내놈이 곰탱이 인형이라도 끌어안은 듯 남의 몸을 옥죄고 잠을 퍼대자는 꼴을 보니 새삼 분노와 짜증이 솟구친다. 피곤하다고 늘어진 녀석의 품안에서 꼼지락거리며 심술을 피우자 작은 한숨이 귓가를 스치더니 팔이 약간 느슨해진다. 낯선 체향이 코끝에 와 닿지만.............. 날 품안에 넣을 정도로 넓은 가슴과 단단한 근육이............ ............티폰과도 비슷하다. "바보 같은 자식............." 작게 중얼거리다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씹, 왜 자꾸 그 자식만 생각하는 거야?!!' 생각을 털어 내 듯 고개를 휘젓고 위를 올려보자 정말로 피곤했는지 얼굴도 보이지 않는 사내가 미동도 없이 고른 숨을 내쉬고........ 슬그머니 팔을 풀려고 몇 번이나 시도해봐도 진짜 잠이 든 건지 아니면 그러는 척 하는 건지 느슨해지기는커녕 더욱 몸을 옭아맨다. '빌어먹을.......또 여기서 탈출해야 하는 건가.........' 작게 투덜거리며 결국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사내의 품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 동이 트기 전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 . . 화들짝 놀라 깨어난 것은 잠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지 희미하게 동이 틀 무렵...... "큭, 역시........아직 눈은 정확하군........." 낮은 목소리에 잠에 취해 몽롱하게 잠긴 잿빛 눈동자를 천천히 드러내자 낯선 사내가 상체를 내게 기울인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닿아오는 긴 잿빛 머리칼을 움켜쥐자 약간 놀란 듯 은회색 눈동자를 가늘게 뜬다. "하얗군..........대륙 북쪽에서 온 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더니 눈처럼 하얀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어본다. 결이 좋은 잿빛 머리칼과 은회색 눈동자.......깎아 만든 듯 곧은 코와 사내답게 선이 뚜렷한 입술선......... 티폰과 같이 단단한 몸...... "맘에......들었다......" 사내에게 정신이 팔려 멍하니 바라만 보다 갑자기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오자 화들짝 놀라 녀석의 가슴을 밀쳐냈다. 화도 내지 못한 채 가볍게 닿은 입술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고 흥미로운 듯 내게 박혀드는 은회색 눈동자에 시선을 던졌다. 분명......... ...........어디서 본듯한........ 잿빛 머리칼과 어쩐지 무감정한 은회색 눈동자를 보고 입을 열어버렸다. "케...레......스?" 확실히 선이 가는 케레스와는 다르지만............어딘지 비슷한............ 내게 뻗어오는 손을 멈추고 기이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사내를 마주보길 한참......... 갑자기 쾅하는 소음과 함께 문이 거칠게 열리고......... 침실 안으로 급하게 들어선 인물은............ "케레스.......?!!!" 뜻밖의 상황에 몸을 벌떡 일으키고 눈을 크게 뜬 채 바라만 보자 잿빛 눈동자에 분노를 담고 내 옆에 누워있는 사내를 노려본다. "이게 무슨 짓이냐......." "그 분께..........손을 댄 겁니까......?" "큭, 오랜만에 보는 형님한테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냐........" '형님.......?!!' "손을.......대셨습니까.....?" "손? 대긴 댔지......." 지극히 간단히 답을 하자 무표정한 얼굴로 분노를 감춘 채 날카로운 검을 빼어든다. "황제폐하의 루베라와 함께 황성을 도망쳐 투신했다 들었는데......겨우 살아 돌아와 혈육에게 검을 들이대다니..... 반역에 패륜까지 저지를 셈인가........" "반역? 큭, 형님께서도 이미 반역을 저지르신 것 같군요........그렇게도 존경하시는 폐하께서 아신다면....... 이 가문은 물론이고 형님의 목숨까지 앗아갈 테니 차라리 지금 제 손에서 끝나는 것이 편할 겁니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네가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고작 노예아이 하나 때문에 왜 폐하께서............." 갑자기 말을 끊더니 놀란 눈으로 날 돌아본다. "설마........폐하의........." 그때까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던 내 몸을 갑자기 끌어당겨 샅샅이 훑어보더니 등에서 시선을 멈춘다. "루베라가......아냐? 이건..............뮤즈니안 황가의 문장.............. 황태자는 은발이었을 텐데......게다가 눈동자 색도......" 사내를 뿌리치고 시트를 몸에 감은 후 돌아서자 케레스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루베라가.......사라......" "무......무슨 소리야?!! 난 루베라가 아냐!!" 어쩐지 저 케레스의 형님이라는 작자에게 들키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케레스의 중얼거림을 막아버리고 버럭 소릴 지르자 기이하게 날 바라보며 입을 연다. "확실히.........폐하의 루베라는 까만 머리칼에 까만 눈동자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만 설마 진짜 그런 색이 있을 리는 없고......... 그럼........넌...............대체 누구지?" "난.......뮤즈니안에서 왔어!!" "뮤즈니안? 역시........왕족인가.......?" '왜 갑자기 또 왕족이 되는 거야?'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시.....시니안님!!!!" 침실 문 밖에서 다급한 소리가 들려와 대화가 끊겨버렸다. 바로 들어서는 인물은 어제 그 빌어먹을 자식들에게서 날 산 딱딱한 얼굴의 집사........ 표정에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것을 보니 꽤나 큰 일인 듯........... "무슨 일인가......" "저.....저택 안으로 황성의 병사들이......!!" "일이............커졌나보군............." 가라앉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사내가 케레스에게 다시 시선을 돌린다. "넌 네 침실로 돌아가 있거라......" 노려보기만 할 뿐 말이 없다. "하아........손은 댔지만 품지는 않았다.....그러니까 빨리 피해있어...... 반역자까지 나온 가문에 널 숨겨줬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씌울 셈이냐?!!" 그러고 보니 저 녀석.............. 나 때문에..........반역자까지 되어버렸다. "케레스............." 풀이 죽은 목소리로 웅얼대자 잠시 날 바라보다 검을 집어넣고 뒤돌아 선다. "그 분을...........부탁드립니다........." 한마디를 남기고 케레스가 물러나자 사내가 바닥에 떨어져있던 옷을 대충 꿰어 입고 날 바라본다. "부탁이라............큭,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군........" 쓴웃음을 지으며 혼자 중얼대던 녀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다시 말을 던져온다. "뮤즈니안에서 왔다면서........어떻게 케레스를 알고있는 거지?" "그........그건..........." 시선을 피하고 변명거리를 찾을 틈도 없이 문밖이 어수선해지기 시작한다. "폐.......폐하........!!" 또다시 쾅하는 소음과 함께 문이 열리자마자 당황한 집사와 저택의 시종들이 바로 바닥에 코를 박고 엎드린다. 침실 안으로 성큼 들어선 사내를 따라 수많은 병사들이 방대한 저택을 메워가고.......... 시야에 들어오는 건 붉은 사내............ '티.....폰........' 도망치기는커녕 터무니없는 일에 휘말려 녀석을 벗어난 지 고작 하루.......... 어제밤............. 그렇게나 보고싶었던 녀석인데.........지금은 고개를 숙인 채 이름만이 입안에서 맴돌 뿐이다. 시선이 따갑도록 느껴진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시트만 몸에 감은 채 침대 위에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흑........... 녀석의 손에 턱이 들리자마자 신음을 흘리며 미간을 찌푸려버렸다. 그때 빌어먹을 자식들한테 기절까지 할 정도로 세게 얻어맞아 뒤통수엔 손도 대기 무서울 만큼 아팠던 것........ 녀석의 손이 흠칫 굳어 떨어져 나가고 붉은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울컥 눈물을 쏟아버렸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오는 것뿐이다......... 맞은 곳이 너무 아파서............ 그래서 그런 거다......... 날 찾아내면 죽일 거라 생각했는데........... 부드러운 손이 얼굴에 닿아오자 눈을 감아버렸다. 내게 뻗은 손으로 잠시 눈물을 쓸어주더니 다시 뒤돌아 선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섬뜩한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올리니 시니안이라 불리던 사내가 난감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어쩐지............ ...........실수를 한 듯한........ 벌거벗은 몸으로 저 사내의 침대 위에서 무슨 큰 일이라도 당한 양 울어버렸으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심상치 않은 녀석의 목소리에 입을 열려던 순간 시니안이 말을 꺼낸다. "어제 밤.........침실 노예로 이 곳에 들어온 저 아이와 밤을 보냈습니다......" '무......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말은 분명 틀리지 않지만........... 융통성 없는 게 집안 가풍이라도 되는 지 너무 요령이 없다. 변명도 하지 않는 녀석을 보고 기가 막혀 바라만 보자 이 곳에서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살벌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든다. "저 아이를.........침실노예로 썼다는 말인가........" "폐.....폐하, 저 아인 어제 낯선 사내 둘이 와서 엄청난 돈을 받고 침실노예로 넘겨 제가......시니안님의 침실에........." 바닥에 엎드려있던 집사가 주인을 지키기 위해 다급히 말을 꺼내자 분노를 억누르고 병사들에게 명을 내린다. "그 녀석들을.......끌고 와....." "예......!!" 잠시 침묵이 흐르고....... 철그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병사들과 함께 들어선 것은.........시체............ 아니............ 숨만 겨우 쉬어대고 있는 꼴을 보니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고문이라도 당한 건지 고깃덩어리라 해도 될 정도로 참혹한 몰골이었다. 하루도 되지 않았음에도 등엔 소름끼칠 정도로 깊은 채찍자국에 살점이 군데군데 뜯겨있었고 지혈이 되지 않아 터진 상처에 붉은 피가 꾸역꾸역 새어나오고 있었다. 내 손에 잡히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 끔찍한 모습을 보니 그러고 싶은 마음마저 싹 달아나 버린다. "그 자들이 맞는가........" "예.....예!! 틀림없습니다......!!!"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몰골을 넋이 나간 듯 바라만 보고 있다 분노한 황제의 목소리에 바로 대답을 해온다. "끌고 가라............." 다시 병사들이 반 시체를 끌고 침실에서 나가자 티폰이 허리춤에 찬 날카로운 검을 뽑아들었다. "검을 쥐어라........" '뭐?' "폐하............" "크리올라 최고의 무가(武家)이니.....내 손으로 직접 죽여주지............" "죄명이...............무엇입니까............?"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을 댄 죄다........" "폐하의 것입니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색이 옅은 잿빛 눈동자로 녀석만을 바라보자 흔들리지 않는 붉은 시선을 내게 박아온다. "내 것이다........." Rubera(루베라) #120~121 "내 것이다........." "큭, 이런..........맘에 들었는데........." '뭐 저런 새끼가.........!!!' 살기를 띈 붉은 눈동자와 바로 잿빛 사내의 목에 겨눠지는 티폰의 검을 보고 급히 입을 열었다. "그.....그게.......아니......." 말을 꺼내자마자 은회색 눈동자의 사내가 벽에 걸려있던 장검을 빼어든다. "직접 죽여주시겠다니.........영광입니다......폐하.............." '미........미친놈...........!!' 여유로운 미소까지 띄는 녀석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패닉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날카로운 검날이 눈앞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케레스의 형님이라더니 소름끼칠 정도로 빠른 검법......... 게다가......... 처음 보는 티폰 녀석의 검술은 그날 밤....... 술과 약에 취해 내게 검을 날리던 녀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했다. 힘과 스피드 어느 것 하나 떨어지지 않는........ 철저히 죽이는 것만이 목적인 듯 군더더기 하나 없는 움직임에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넋이 나가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이 검날이 교차되길 한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실력 차가 조금씩 벌어져가고 있었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잿빛 사내의 검을 간단히 받아내고 찰나의 틈을 파고들어 사내의 목을 거머쥐고 벽에 밀어붙인 후 오른쪽 어깨에 검을 박아 넣자 몸을 관통한 검이 벽에 들이박힌다. 작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는 사내의 붉은 피가 벽을 타고 흐르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심장에 박아 넣으려는 티폰에게 급히 다가가 팔에 매달렸다. "아........아냐!!!" 다짜고짜 끼어 들어 말부터 급히 내뱉자 그린 듯 예쁜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채 날 내려본다. "아무 일도 없었어!! 밤을 보내긴 개뿔!! 미친놈........!!" 시니안이란 녀석이 또 황당하게 허튼 소리를 내뱉지 못하도록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자 자신의 처지를 알기나 하는 건지 꽤나 이 사태를 즐기는 표정............ '저런, 쳐죽일...........!!' 꿈쩍도 않는 티폰 녀석을 초조하게 바라보며 정신없이 말을 쏟아냈다. "아.....아무 일도 없었다니까!! 침대도 고래 등짝만 해선 저 자식은 이쪽 끝에서 피곤하다고 눕자마자 퍼대 자고 난 벽 쪽에서 붙어 잤단 말야!!" 이런 변명을 왜 내가 해야하는 건지........... 꼭 바람난 마누라가 남편에게 매달려 빌어대는 꼴 같은 게...... 한심한 내 모습이 어처구니없지만 저 정신나간 놈이 케레스의 형님이라니까............. 어쩐지 이해를 못한 듯 단검을 거둘 생각도 하지 않는 녀석에게 버럭 소릴 질러 버렸다. "아무 일도 없었단 말야.........!! 씹, 뭐야? 그 표정?!!! 못 믿겠다는 거야?!!!" 물론 여기저기 만져대긴 했지만 우선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하니.............. 소리를 질러대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흑, 빌어먹을.....!! 그 자식들 도대체 얼마나 쌔게 후려친 거야!! 아파 죽겠네........ 젠장, 내가 왜 사내새끼 소맷자락이나 붙들고 변명 따윌 해야돼?!!" 그제야 모든 불평불만을 다 쏟아내며 궁시렁대자 옆에서 작게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폐하.....오해였던 것 같습니다" "오해.......였던 것 같아?!!! 처음부터 니놈이 잘 말했으면.........!!" 눈을 부릅뜨고 쨍알대다 서늘한 티폰 녀석의 눈빛에 흠칫 놀라 가만히 입을 다물고 삐쭉거릴 뿐 감히 대들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여버렸다. 녀석을 속이고 황성에서 도망쳐 말썽이란 말썽은 다 피우고 어처구니없는 곳에서 붙들려버렸으니........ '도대체 왜 밖으로만 나가면 문제가 터지는 거야?!!!!' "달아나면...........죽이겠다고 했다.........." '역시...........' 서늘한 목소리에 입술을 꼭 깨물고 미동도 없이 서있기만 하자 내게서 시선을 돌려 벽에 박혀버린 검에 힘을 줘 한번에 뽑아낸다. 사방으로 피가 튀고......... 시니안이란 녀석이 주저앉자마자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간다. "내일부터 황성을 지켜라........." "예....." "하지만.........상처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내 팔을 잡아당겨 시트 채 들어올리는 녀석의 품에 안겨 별 수 없이 끌려가는데 갑자기 우뚝 발걸음을 멈춘다. "잘 돌아왔다......." "예........" '응...........?' 돌아서지도 않고 말하는 티폰을 올려보자 여전히 차가운 무표정............ 티폰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사내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다. 그렇게 녀석의 품에 안긴 채 저택을 나서자 카이도가에서 내 준 화려한 마차가 눈에 들어온다. 일사분란하게 떠날 채비를 마친 병사들이 고개를 숙인 채 기다리고 있다 황제가 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말에 올라 출발하기 시작했다. 붉은 공단으로 꾸며진 마차 안엔 녀석과 나, 단둘...........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은 지 한참......... 녀석에게 끌려나올 때 모습 그대로 하얀 시트만을 달랑 걸친 채 녀석에게서 최대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있었다. "아직도..............내게서 달아나고 싶은 건가.............."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숙인 채 가만히 앉아있다 겨우 말을 꺼냈다. "난..............다른 사람의 대용품 따윈........되고싶지 않아......" 이번엔............녀석이 말이 없다. 웃기는 일이다........ 질투라도 하는 것 같다. 내 자신에게............ 녀석이 저렇게 기다리면서 목을 매는 하류라는 녀석한테.............. 아직도 녀석에 얽혀있는 감정을 풀어버릴 용기가 내게는 없는 것 같다. 언제나............ 이렇게 녀석과 엉키면 모순 투성이가 되어버린다. 거부하면서도 끝없이 원하고........ 밀어내면서도 끌어안는다.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면서도 항상 떠올리고......... 두려워하면서도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상처 주고 싶을 만큼 증오하면서도 품에 안겨 울고싶을 만큼.............. .............사랑한다. 난........... .........바보다........... 사랑하면........... ...........아프기만 하고............. .........눈물만 흘려야 하는 녀석을................. .........사랑하는 것 같다. 고개를 숙이자 시트가 축축이 젖어간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계속 돌고 돌면.............. 짧은 행복이 끝나고........ 언젠가 녀석이 날................... ............죽이려고 했던 때로 다시.............. .............돌아가는 걸까..............? 이번에도 만신창이가 되어서...............녀석이 없는 곳으로 멀리 떨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날 기억하지 못하니.........내가 선대 황제를 죽였다는 걸 실토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 한다. 다시.............기억하게 되면................. .................또............... ...............죽임을 당해야 하는 건가? 이 녀석을 사랑하는 게 무섭다. 무섭고.............두렵다............. 그래서............ 알고 있으면서도......... 이 녀석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서워서........... .........거부했다. 하지만............... 나 혼자만..................사랑한다면............. 이 녀석은 지금 날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대용품이라도........... 나 혼자만............. 잠시동안만................... 갑자기 몸이 들리더니 따뜻한 품안에 가두어진다. "뭐가 그렇게............슬픈 거냐............." 항상 녀석의 앞에선 울기만 하는 내가 맘에 들지 않는지 손으로 계속해서 새어나오는 눈물을 훔쳐준다. 한참을 훌쩍이다 녀석이 달래듯 따뜻한 입술로 살짝 입을 맞추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의지에 상관없이 공포에 떨려오는 몸 따윈 상관하지 않고 입술을 살짝 벌려주자 뜻밖의 반응에 멈칫하는 듯 하더니 바로 깊은 키스를 해온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혀를 받아들이고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녀석의 목을 끌어안자 푹신한 쿠션이 등뒤로 닿아온다. 거부감은 없지만............ .........여전히 녀석의 손길과 키스엔 아무런 반응도 보여줄 수 없었다. 입술을 미끄러뜨려 작은 돌기를 자극해도 신음하나 흘리지 않고 가만히 녀석의 머리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고 녀석의 손이 흥분하지 않은 페니스를 쥐고 자극을 해도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흥분은커녕 긴장만 해대는 몸을 풀어주려고 녀석의 입술이 페니스 위에 와 닿자 화들짝 놀라 녀석을 끌어올려 입술에 키스를 하고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그냥.......해......."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리자 잠시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녀석이 상체를 일으켜 가만히 시트로 몸을 감싸준다. "왜.....? 역시.........싫어?" 흥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욕정 따위 풀고싶은 생각이 들리 없다.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자 허리를 쥐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혀준다. "왜 갑자기 태도가 변한 거지......? 또 도망칠 생각이냐......." 이 녀석은 날 기억하지 못한다. 며칠 후면 결혼식도 올릴 테고.......... 내 것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도.......따뜻한 입술도......... 결혼해서.......... 황비가 이 녀석의 아이를 낳으면........ 루베라를 닮았다는 이유로 잡아둔 나 같은 건 금방 질려 놓아주겠지.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면 내가............ ...........망가져 버릴 것 같아......... ........그때처럼........... 그러니......... 결혼식을 올리기 전까지만............ 가만히 고개를 휘젓자 분홍빛 입술 위에 가볍게 키스를 해준다. "후회하지마........." 엉덩이 주위를 맴돌던 손이 애널 위에 닿아오자 녀석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작게 끄덕였다. "흑........" 길고 섬세한 손가락이 좁고 메마른 내부로 밀려들어오자 통증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단단한 목에 매달렸다. 손가락 끝으로 느끼는 곳을 살짝 눌러줘도 아픔에 몸이 가늘게 떨릴 뿐 쾌감 같은 건 느낄 수도 없다. 할 수 없이 손가락을 빼낸 녀석이 옷자락을 뒤져 꺼내놓은 건 꽃잎으로 만든 듯 짙은 향을 뿌리는 오일....... 미끌한 손가락이 방금 전보다 수월하게 내부로 들어서 긴장한 애널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늘어갈 때마다 통증에 가늘게 숨을 내뱉으며 녀석의 목을 꼬옥 끌어안자 전부터 허벅지에 와 닿는 녀석의 페니스가 단단히 일어서 형체를 들어낸다. 어느 정도 애널을 풀어주고 참기 힘들었는지 내 몸을 들어올려 엉덩이를 벌리고 귀두 끝을 애널에 맞추자 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내려앉았다. 몸을 가르는 통증에 당장이라도 밀어내고 싶은 걸 꾹꾹 참고 뿌리 끝까지 몸 속에 품었다. 거대한 불기둥이 뱃속에서 요동치는 듯 한 느낌에 한참을 그렇게 움직이지도 못하고 녀석만 꼬옥 끌어안고 있다가 목덜미에 와 닿는 뜨거운 숨결에 몸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 허리를 쥐고 움직임을 도와주던 녀석이 갑자기 내 몸을 다시 눕히고 체위를 바꿔왔다. 땀에 젖은 얼굴과 통증에 가늘게 떨어대는 날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손을 뻗어 뺨을 쓸어준다. 차갑지만 물건 하나 들어본 적 없을 것 같은 섬세한 손............. 통증을 참느라 거칠어진 숨이 가라앉자 내게 고개를 숙여 가만히 입을 맞춰온다. 이렇게............ 언제나 보이는 건.............눈을 뗄 수 없는 건............. .......미치도록 아름다운..........붉은 눈동자........ 고집스럽게 꽉 다물어져 내게만 열리는 예쁜 입술........ 깎아놓은 듯 곧은 코......... 루비가루를 뿌려놓은 듯 붉은 빛을 뿌리는 머리칼......... 손으로 매끈한 얼굴을 가만히 쓸어주자 감았던 붉은 속눈썹을 살짝 들어올려 루비 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사랑해............. .............그러니까................... ...........조금만...................... ........옆에 있게 해줘..................' 차마 꺼내지 못하는 말을 마음속에서 조용히 속삭이자 알아들은 것처럼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준다. -121- 녀석의 움직임이 쾌감보다는 통증을 일으킨다는 것을 아는지 거칠게 밀어붙이고 싶은 본능을 누르고 천천히 어느 한 지점만 끈질기게 마찰해 가며 몸을 밀어 올린다. "......흑..................." 통증에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사내의 매끈한 등에 손톱을 박았다. 긴장한 채 무리하게 받아들여 녀석이 밀고 들어올 때마다 기절할 지경......... 이미 하얗고 매끈한 몸에선 투명한 땀이 베어 나온다. 통증에 가늘게 떨리는 입술 위로 키스를 해주던 녀석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고 몸을 물리려 하자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키고 애널로 녀석의 페니스를 죄었다. 낮은 신음이 위에서 울리고........... 참지 못한 녀석이 내 허리를 움켜쥐고 다시 집요하게 성감대만을 마찰하며 파고든다. "아................하아.............흐윽......." 녀석이 천천히 파고들 때마다 어쩐지 처음과는 다른 기묘한 느낌에 흠칫거리며 허리를 비틀었다. 아프지만 지금까지 느껴지던 통증과는 다른......... 뭔가 조금씩 깨어지는 기분....... "......앗............으응..........." 녀석이 몸을 밀어붙일 때마다 가쁘게 숨을 헐떡이며 좀 전과는 다른 신음을 흘리자 놀란 듯 녀석이 움직임을 멈춘다. 쾌락에 젖은 잿빛 눈동자로 녀석을 올려보며 끌어당기자 다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면서 정신없이 키스를 해댄다. 통증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과 손끝까지 저릿해져 오는 쾌감에 팔을 뻗어 매끈한 등을 끌어안자 더욱 속도를 높여 내부로 파고든다. "흐윽.................아.........티................" 무의식적으로 새어나오려는 말에 실낱같이 남아있던 이성을 겨우 붙들고 입술을 꼬옥 깨물어버렸다. 녀석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내겐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건 녀석의 루베라인 하류..........뿐 이니까............ 녀석을 사랑한다는 걸 겨우 인정했지만......... 다시 녀석의 루베라로............하류로 돌아갈 순 없다. 녀석에게 진 무거운 죄를 짊어질 용기도......... 녀석에게 미움받을 용기도............. 녀석의 손에 다시 죽을 용기도........... 이젠 내게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으니까......... 지금의 난............ ............녀석에게서 잊혀진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지금 이 녀석에게 안겨있는 건............... 하류가............. 녀석의 루베라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녀석은..............날 이용해................ 하류를 안고있을 테니................... .......절대 지금의 내겐 해주지 않을 말이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미치도록 그 말이 듣고싶었다. 사랑한다고............ .........한 마디만 속삭여주면............ ...........이 녀석에게 모두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데............ 절대 나오지 않을 말을 기다린다는 걸 알지만.............. "흑............" 거칠게 움직이다 한계까지 밀고 들어와 몸 안에 뜨거운 기운을 뿌리자 열기로 뜨거워진 사내의 몸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아직도 내부에서 꿈틀대며 빠져나가지 않은 채 허리를 꼭 끌어안고 목덜미에 더운 숨결을 거칠게 내뱉는다. 질퍽한 정사에 후끈한 공기로 가득 찬 마차 안에서 그렇게 서로 끌어안은 채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마차에 난 창은 질 좋은 비단 천에 가리어져 밖에선 안의 광경을 볼 수 없었고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신음소리도 모두 묻혀버렸을 테지만........ 스스로 다리를 벌리고 녀석을 유혹했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르자 창피함에 온몸이 붉어져 몸을 뒤척였다. "으응............." 내 안에서 빠져 나오지도 않고 녀석이 상체를 일으키자 작게 신음소리가 새어나가 더욱 얼굴을 붉혔다. 새삼스럽게 한두 번 몸을 섞은 것도 아닌데 나 자신도 한심한 반응에 빤히 바라만 보는 녀석의 시선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버렸다. 녀석이 손을 뻗어 가만히 뺨을 쓸어주더니 조심스럽게 내부에서 빠져나가 부드러운 천으로 뒤처리까지 해준 후 다시 단정히 옷을 차려입고 하얀 시트로 붉어진 몸을 꼼꼼히 감싸 무릎 위에 앉혀 꼬옥 안아준다. 녀석이 이렇게 날 품은 이유를............. 다정하게 안아주는 이유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렇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거다............... 지독히도 쓰디쓴............. '닮지 않았다면...........거들떠보지도 않았겠지......... 역시............... ............대용품..............인가.............' 따뜻한 품안에서 녀석을 올려보자 붉은 시선은 여전히 내게만 고정되어 있다. 타인에게 드러내는 차가운 시선은 지운 채 예전에 하류에게만 보여줬던 시선을 내게 던진다. '빌어.......먹을.............' 핏빛 눈동자가 내게 닿아오자 고양이 앞에 쥐처럼 다시 몸이 굳은 채 떨리기 시작한다. '역시.............무리...였나.......' 녀석이 눈치채기 전에 눈을 감아버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애증이 뒤섞인 더러운 눈동자로 이 녀석을 바라보고 싶진 않다......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증오와 공포는 가려버렸지만........... 역시 눈앞에 있는 녀석은 그 끔찍한 지하감옥 안에서 참혹한 방법으로 날 망가뜨렸고........ 난...................... 이 녀석을 배신하고 혈육을 죽였다. 한달 간 녀석을 완전히 잊기 위해............. 모든 걸 털어 버리기 위해 크리올라에 왔다. 하지만..........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숨통을 죄어오는 올가미처럼 이 녀석에게 정신없이 끌려들어 간다. 위험한 상황............. 어쩌면............. 방법이 틀렸는지도........... 사랑 따윈 쓰레기라고................... 미친 듯 부정을 해댄 결과가 이거다. 차라리.............. ............이렇게 인정해 버리면............. 몇 일 동안만이라도 이 녀석 곁에서 행복을 느끼면................. 어쩌면............ ...........쉽게 털어 낼 수 있을 지도.................... 쓴웃음이 새어나왔다. 사랑한다고 인정하자마자 뒤돌아 설 생각부터 해야한다는 것이.............. 이것이 두려웠던 건지도................. 갑자기 입가에 와 닿는 따뜻한 숨결과 시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매끈한 피부를 쓸어오는 느낌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큭, 또냐.............' 입술을 열어주자마자 가볍게 빨면서 키스를 해댄다. "눈 떠.............." 어느새 뜨거운 입술을 귓가로 미끄러뜨려 속삭이는 녀석의 말을 거부한 채 단단한 상체를 꼬옥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부볐다. "만약..........." 입술을 열어 말을 꺼내자 민감한 곳을 지분대던 손길을 뚝 멈춘다. "..........니 루베라가 나타나면............난........버릴 거야?" 몸을 굳히더니 가만히 대답 없이 꼬옥 끌어안아 주기만 한다. 터무니없는 질문............ 녀석의 대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저............... 죽고싶을 만큼 아프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는 것뿐이다. 나중에......... 녀석이 이렇게 계속 날 떠올리지 못한 채 결혼식을 올리고............. 돌아오지 않을 녀석의 루베라를 기다릴 동안.............. ..........눈물 따윈 보이지 않고 차갑게 돌아설 수 있도록................... . . . 그렇게 해가 질 무렵 황성에 도착해 마주친 것은 녀석의 약혼녀........... 황제의 얼굴을 보고 기뻐하던 여자가 완전히 녹초가 된 채 녀석의 품에 안겨있는 날 보고 얼굴을 굳혔다. 우습게도 조강지처에게 꼼짝도 못하는 첩처럼 고개를 숙여버렸다. 2주만 있으면 평생 이 녀석을 차지할 수 있으니 남은 2주 동안만이라도 내가 차지해야겠다는 앙큼한 생각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서자마자 욕실로 들어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준다. 마차 안에서 무리하게 관계를 가져서인지 온몸이 삐그덕 댔는데 향이 나는 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다. 나른하게 누워있는 내게 손을 뻗어 자신에게 끌어당기는 녀석을 올려보며 살짝 웃어줬다. 녀석이 진심으로 웃는걸 보진 못했지만................. 나 역시.............. 이 녀석 앞에선 질질 짜기만 했지 이렇게 웃어준 건 먼 옛날 일인 듯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다. 살짝 휜 분홍빛 입술을 신기한 듯 손가락으로 쓸어보며 가만히 내려보더니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고개를 숙여 살짝 입을 맞춘다. "킥, 시체 치우고 싶지 않으면 오늘은 그만해............" 엉덩이를 지분대다 골반을 따라 복부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는 녀석의 손목을 움켜쥔 채 잔뜩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자 겨우 움직임을 멈춘다.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켜오는 녀석의 탄탄한 가슴에 얼굴을 비벼보고 가만히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고른 심장박동이 기분 좋다...... 이렇게............... ............영원히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 . . 한참만에 깨끗이 몸이 씻겨져 녀석과 한 침대에서 꼬옥 부둥켜안고 나른한 오후를 보냈다. 예전엔.............. .........행복이라는 게 뭔지 몰랐다. 아버지랑 어머니와 같이 살았던........ 지금은 까마득해져버린 과거엔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뭐가 사랑이고 뭐가 행복인지.............. 살아가는 데에만 급급했던 내게 그런 것들은 거추장스러울뿐더러 내게선 모두 피해가 버리는 것들이었으니까....... 2주뿐이라도.............. ............그 두 가지를 한꺼번에 쥐어보고 싶다. ...........이 손에............ 이기적인 생각이란 건 알고 있지만........... 평생 한번뿐 일 테니............. 따뜻한 피부에 얼굴을 비비자 하얀 머리칼에 키스를 해준다. 손가락으로 가만히 입술을 쓸어보다 키스를 하려 고개를 숙이는 녀석에게 조용히 눈을 감아주자 따뜻한 기운이 잠시 스쳤다 떨어져 나가고............ "폐하............." 갑작스럽게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평온한 공기가 깨지자 녀석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올린다. "무슨 일이냐......." "그게......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쩐지 평소완 다르게 머뭇거리는 시종에게 더욱 낮은 목소리로 다그치자 더듬거리며 말을 잇는다. "황제의 숲에서 수상한 녀석이 발견되었는데.............. ............까만 머리칼에......................... .............까만 눈동자가.............." '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녀석이 침대 위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자 싸늘한 한기가 몸을 감싸온다. "어디에 두었느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꿈인 듯 초조한 녀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오자 덩달아 내 심장도 시끄럽게 뛰어댄다. "일단 정무실에................." 몸을 일으키는 녀석의 손을 나도 모르게 잡아버렸다. 황당한 일이다. 분명 아닐 거다. 난............. .........여기 있는데............. 녀석의 루베라는 내 안에 있는데.................. 흔들리는 잿빛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자 초조함이 가득 베어 나오는 붉은 눈동자가 내게 맞춰진다. 날............ .............보고있지 않다.......... 말없이............. 차갑게 돌아서는 녀석의 손을 슬그머니 놓아버리고 눈물을 감추기 위해 시트 안으로 숨어버렸다. 심장이 쥐어짜듯 아파 온다. 항상............이렇다........ 녀석과 함께 있으면......... 결국 이렇게 꼴사납게 울게된다. 돌아보지도 않고 녀석이 침실 밖으로 나가버리자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군 채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지리도 꼬이고 꼬인 내 인생이란............ ...........참으로 기가 막힌 상황에 찬물을 끼얹으며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날 나락까지 떨어뜨려 간다. 2주............. 2주면 됐는데........ 그 정도면 만족할 수 있었는데...... 까만 머리칼에 까만 눈동자라니............ 나처럼............. 황당하게 이 세계로 떨어져 내린 녀석인가............... 그렇다면............... 녀석의 루베라가 아닌 걸 알 테니 다시 내게 돌아오겠지.......... 기다리면.............. ...........꼭.................... 서늘한 기운에 시트를 몸에 감고 녀석의 베개를 꼬옥 끌어안은 채 밤새도록 녀석을 기다렸지만.................. 결국................. 기다리던 녀석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Rubera(루베라) #122 다시 녀석을 본 건 다음날 아침.................. 곁엔 작고 까만 녀석이 달라붙어 있었다. 분명................... 까만 눈동자에 까만 머리카락.............. 예전의 나보다 색이 약간 옅긴 하지만 확실히 이 세계에선 볼 수 없었던 색................. 게다가 나보다 한참이나 작은 녀석은 기가 막히게도 몇 년 전 내 모습과 꼭 닮아있었다. 진짜............. .........녀석의 루베라가 살아 돌아온 듯..................... '하, 이건 또 무슨 장난이냐...............?!!' 한참을 멍하니 그 둘을 바라만보다 꼬마 녀석에게 겨우 황당하게 한마디 뱉어냈다. "너도..............갑자기 이 세계로 떨어진 거냐?"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 게다가 말도 없다........... '설마..............벙어리인 것까지 똑같은 건가..............' 내 시선에 티폰의 뒤로 숨어 적의를 담은 까만 눈동자로 날 바라본다. '뭐야? 이 꼬만.............' 성깔같아선 몇 대 쥐어박고 싶은 걸 꾹꾹 눌러 참고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가 내게 닿아오자 예전처럼 시선을 피해버렸다. 밤새도록 녀석을 기다리다 이미 눈물은 다 말라버렸고............ 녀석이 까만 꼬마녀석과 함께 이 침실에 들어섰을 땐 이미 녹아버렸던 심장을 다시 얼려버렸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녀석의 루베라는 분명 과거의 나였을 텐데............... 내가 미쳐버린 건가............? 아니면 저 녀석이 미쳐버린 건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 내가 진짜 저 녀석의................... ....................루베라.............였나............? 확인하고 싶어도 이젠 확인해 볼 수도 없다. 내겐 루베라가 새겨있지 않으니......... '그럼...............난...........................누구지.....................?' ..............혼란스럽다. 나와는 달리 살짝 드러난 저 녀석의 등엔 루베라 비슷한 붉은 각인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칼자국인지 무슨 상처에 의해 흠집이 나있었지만................. 확실히 내 등에 새겨져 있었던 것과 같은............ 어쩌면................ 저 까만 꼬마 녀석이 황제의 루베라인 게 맞고............ ............내가 미쳐버린 것 일 수도............. 아니.............. 내가...........미쳐버린 거다. 확실히 이곳은 알 수 없는 세계........ 내가 살던 곳이 아니니 저 붉은 녀석을 내가 알 턱이 없지....... 그래.........이젠 끝이다................ 넋이 나간 채 앉아있다 시트를 몸에 감고 침대 위에서 일어섰다. 간밤에 잠을 설쳐 부시시해진 흰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쓸고 문 쪽으로 향했다. '빌어먹을..............!!!' 이제.............. ............지쳐버렸다. 이런 광대놀음도................... '될 대로 되라지.........' 저 꼬마가 티폰의 루베라라면.............. 녀석도 그걸 인정한 거라면 더 이상 여기 있을 구실이 내겐 없는 거다. 붉은 시선이 끈질기게도 날 따라붙는다. 그게............ .........기분 나쁘다. 어차피 언젠간 이렇게 뒤돌아서야할 거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게 너무 빨리 찾아온 것 뿐............ 녀석은............ 2주의 시간조차 내게 내주지 않았다. 문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멈춰버린 건 녀석의 손이 내 손목을 단단히 움켜 쥔 순간........ 터져 나오려는 분노를 겨우 누르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 "뭐야? 아직도 볼일이 남았나? 니놈 루베라를 찾았으니 이젠 대용품 따윈 필요 없는 거 아냐?!!" 잔뜩 비꼬아 말을 뱉어내곤 티폰의 뒤에서 날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나조차 혼란스러울 정도로 과거의 나와 같은 얼굴....... "큭, 진짜 까만색인데? 신기해............. 근데 너무 심한 거 아냐? 저런 땅꼬마랑 나랑 설마 닮았다고 생각한 거냐? 웃기지도 않는군...... 차라리 처음부터 루베라 핑계 따윈 대지 말고 솔직히 욕정이나 풀어줄 성노가 필요하다고 말하지 그랬어?" 손목을 움켜쥔 손아귀에 아프도록 힘이 들어가지만...........멈출 수가 없었다. 깊은 곳에 꾹꾹 쳐 박아 두었던 감정이................... 더러운 파편이............... 심장을 자꾸 쿡쿡 찔러대서 죽을 것만 같았다. "큭, 최음제까지 먹고 몸 섞고 나니까 성노라는 것도 꽤 할 만 하더라구" '니가............미워.............' "먹여주고 재워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주고....." '내가..............받았던 만큼 상처 주고 싶을 정도로..................... ............증오해...........' "그래서 당분간 네놈 루베라 자리나 꿰차고 앉으려 했는데 말야......나타나 버렸네......니 진짜 루베라.............." '몇 번이나 날 망가뜨려야.................. ..............만족할 테냐..............!!' "이상하지? 돌아올 리 없는데........니놈 루베라는........................... .........................죽었을 테니.................." "닥쳐라.............." 상처 따윈 입지 않을 것만 같은.............. 루비만큼 단단한 녀석의 눈동자가 분노로 짙어지기 시작하자 웃음이 나왔다.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한 녀석이............ .........미치도록 증오스럽기만 할 뿐............ 브레이크가 나가버린 것처럼 멈춰버릴 것만 같은 심장의 고통을 감추기 위해 잔혹한 말만을 쏟아냈다. "닮았다는 이유만으로............그렇게 내게 집착하고 괴롭혀댔으니............... ..............니놈 루베라도.............................. ..............네가.................. .........죽였을 테지............" 순간 강한 타격음에 고개가 돌아가고 입안이 터졌는지 눈물을 삼키자 목구멍으로 핏물이 넘어왔다. 잠시 귀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충격에 얼얼한 뺨을 떨리는 손으로 감싸쥔 채 눈을 깜빡이자 커다란 물방울이 바닥으로 추락해 간다. '날.................. ...............때렸어............?!!' 녀석의 표정 따윈............... .................보고싶지 않다. 혼자만 북극에 와 있는 것처럼 차갑게 얼어붙어 있을 테니............ "내 루베라는.............죽지 않았다............" 살기 띈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자 옅은 잿빛 눈동자에 여지껏 묻어두었던 모든 더러운 감정을 실어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노려보았다. "큭, 그래...........니놈 옆에 멀쩡히 살아있는 것 같군........."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꽈악 깨물고 있다 강하게 주먹을 말아 쥐고 심호흡 두 번만에 주먹을 날렸다. 감히 미천한 노예가 황제를 향해 주먹을 뻗을 줄 상상도 못했을 테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얼굴이 돌아가자 통쾌함에 지금 이 자리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 상처하나 없이 매끈한 얼굴................ 이런 식으로 맞아본 건 처음일 터......... 게다가 내 주먹은 내가 보장한다. 학교 짱이라는 녀석은 한심하게 나가떨어졌는데 고개만 살짝 돌아간 게 분하긴 하지만..... 충격으로 흔들리는 붉디붉은 눈동자와 붉은 피가 흘러내리는 입술을 보곤 어제 밤과는 확연히 다른 비틀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너 따위 건.............. ...............그 때......................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죽여버리고............... .............내 세상으로 돌아가서............. ...........전부 잊었어야 했는데..............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어야 했는데............." 날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녀석이니 이런 말에 상처 따위 받을 리도 없는데......... 녀석의 심장에 박아 넣으려던 날카로운 말들이 오히려 내게 되돌아와 깊은 상처를 남긴다. "너 따위..................... ....................정말 싫어.............." 눈을 깜빡일 때마다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들이 미워져 바닥 위에 흩어지는 물기를 발로 즈려 밟았다. 아파서............ .......죽을 것만 같다. 이렇게 심장이 아플 바에야........ 차라리............. 그 때.................. 멈춰버린 채 다시 뛰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킥, 이런......죽을 죄를 지었군........ 이젠 지하감옥에 쳐 박혀있다 손이 잘려 처형 받을 일만 남았나?" 더이상............ ........광기에 미쳐버린 붉은 눈동자 따위............... ...........두렵지도 않다. 녀석의 손아귀에 쥐어져 피가 통하지 않아 이젠 저리기까지 하는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하자 갑자기 강하게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흠칫 놀라 팔로 얼굴을 가리고 눈을 꼭 감자 멈칫 하던 녀석이 반사적으로 들어올린 내 팔을 걷어내고 어찌할 틈도 없이 격하게 입술을 부딪쳐온다. 갑작스런 행동에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보자 시야를 덮어오는 붉은 빛 속에 상처받은 잿빛 눈동자가 비추어 진다. 꼴사나운 모습............... 광기에 젖어 알 수 없는 빛을 띈 붉은 눈동자와 그 위에 비춰진 한심한 내 모습이 보기 싫어 눈을 감아버리자 하얀 속눈썹을 비집고 따뜻한 물기가 새어나간다. 이미 허리를 감싸쥐고 몸을 밀착시킨 채로 거친 듯 깊은 키스를 해오는 대도 반항조차 힘겨워 망가진 헝겊 인형처럼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녀석의 품안에 안겨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키스를 받아들였다. 녀석의 입술에서 새어나오는 찝찔한 피맛에 빌어먹게도 자꾸 눈물이 새어나와 미간을 찌푸리자 무슨 생각인지 부드러운 혀로 입안을 더듬어 아까 녀석의 손찌검에 상처가 나 따끔한 곳을 조심스레 쓸어준다. 한참동안 입안에서 물러날 줄 모르는 녀석의 키스에 숨이 막혀 밀어내려 하니 혀로 채 삼키지 못해 입술을 적신 타액을 핥아주고 반쯤 넋이 나가버린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흠칫 몸을 떨자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아 온다. "어째서........................ ............이런 널 죽이지 못하는 걸까..........."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작게 속삭이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 가늘게 떨리는 입술 위에 다시 자신의 입술을 포개고 살짝 빨아들이며 가벼운 키스를 하더니 눈물 자국을 따라 올라와 물기에 젖어 살짝 감긴 하얀 속눈썹 위에 부드러운 입술을 찍어누른다. . "왜...................... 네 눈물엔 이렇게 형편없이 약해지는 거지..........." "흑........"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는 녀석의 힘에 작게 신음을 흘리자 여전히 물기에 젖어있는 뺨에 자신의 얼굴을 부비고 아픈 듯 작게 속삭여온다. "왜........................ 그렇게도 날...................미워하는 거냐....................." Rubera(루베라) #123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침대 위에 앉은 녀석의 품안에 안겨있었다. 반쯤 절망에 미쳐 발작적인 히스테리를 부려대다 잠시 넋이 나갔던 모양............. 움직임도 없이 숨을 죽이고 그렇게 미동도 없는 녀석의 품안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안겨있다 코끝에 스치는 익숙한 체향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벗어나려 바르작대자마자 신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아프게 몸을 옭아맨다. 이해할 수 없는 태도............ 그 정도로 난폭하게 발광을 해댔으면 가짜 따위...........내치기는커녕 자신의 손으로 베어버렸을 녀석인데.........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건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왜 이렇게......... 소중하다는 듯 감싸 안아주는 건지............. 혼란스런 생각 따위 한켠에 밀어두고 녀석에게서 벗어나려 할수록 강해지는 힘에 지쳐 포기할 때쯤.................. "폐하......" 문 저편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울려오고 조용히 문이 열리자마자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시종장이었던 인물이 희끗희끗한 머리를 깊이 숙인 채 침실 안으로 들어선다. "무슨 일이냐......" "뮤즈니안에서...... ........폐하의 결혼식 축하 사절이 도착했습니다....." "결혼식......축하사절.....?" 어쩐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 "너무........... .....이르군...... ......찾으러 온 건가......." 서늘하게 중얼거리자 아무 것도 듣지 못한 듯 시종이 다시 말을 잇는다. "뮤즈니안의 황태자께서 새벽에 도착하시자마자 폐하께 알현을 청하고 계십니다" "역시 황가의........... 그 놈의 소유였나......." 갑자기 내 몸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줘 다시 녀석의 품안에서 벗어나려 헛된 몸부림을 쳐대자 내게 시선을 던지더니 잠시 차가운 침묵을 유지한다. "들여라....." "알현실로......?" "이곳으로 들여라......" "예?!!" 놀란 듯 크게 소리치더니 싸늘한 시선에 감히 되묻지도 못하고 조용히 침실에서 물러난다. 눈을 돌려보니 침대 맡에 까만 녀석이 초조한 듯 티폰과 날 바라보고 있다. 겨우 찾은 자신의 루베라란 녀석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는 녀석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알 수 있는 거라곤............ 멍청한 짓은 여기서 끝내야 한다는 것 뿐............... 인연이 없는 거다. 이 녀석과 난......... 이렇게 꼬이기만 하고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것을 보면........ 지금 끝내지 않으면........... 그간의 더러운 전적으로 봤을 때 진짜 둘 중 하나가 죽을 수도......... 그게............. 이번엔 내가 아니고 이 녀석이 될 수도 있다. "이게 무슨 짓이야.......... 감옥에 쳐 박아 죽일 게 아니라면............. .........놔줘.............." 심장이 쿡쿡 쑤셔오는 걸 무시한 채 싸늘하게 말을 내뱉자 가만히 붉은 시선을 내게 맞춰온다. "그게.............. .............네가 원하는 건가......." "그래............ 네놈 곁엔 일분 일초도 있고싶지 않아............... 죽이던가...................... 놔주던가...................... 좋을 대로 선택해..........." 한참동안 몸을 굳힌 채 움직임 없던 녀석이 부드러운 뺨을 가만히 쓸어대다 고개를 숙여 살짝 입술을 포개온다. 이젠 익숙해져버린 부드러운 촉감에 욕정 따윈 베어있지 않다. 평소완 다르게 입술을 살짝 누르기만 할 뿐 첫 키스처럼 조심스럽지만, 얼어붙어 버린 채 이별만을 생각하는 심장은 저리기만 하다. 심장을 죄어오는 답답함에 살짝 눈을 감아버리자 따뜻한 기운이 떨어져 나가고 작은 한숨이 울리더니 다시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스친다. "그렇게 하면............ 놓아준다면............. 그때처럼.............. 내게 다시 웃어줄 테냐............." 섬세한 손가락이 미소 따윈 잊은 듯 꽉 닫힌 입술을 쓸자 하얗게 뼈가 드러날 정도로 주먹을 그러쥐고 차갑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놓아준다면................. ............어찌할 셈이냐..........." "니 루베라도 이젠 찾았으니............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거야..........." '그래.........키리안 숲으로............'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지쳐버린 목소리로 말을 하자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역시............ 그 녀석의 품인가..........." '뭐?' 알 수 없는 소리에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강한 힘으로 몸을 옥죄어 온다. 숨이 턱 막혀오는 구속감에 녀석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대자 강한 팔로 꼬옥 끌어안고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하듯 귓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여온다. "망가뜨리고 싶지 않으니............. ............이번..............뿐이다............" '무슨...........' 녀석을 올려보려던 순간 곁에 서있던 까만 녀석이 티폰의 옷자락을 살짝 쥔 채 고개를 떨구자 어쩐 일인지 놓지 않을 듯 강하게 옭아매던 팔을 풀어 얌전히 침대 위에 눕혀준다. '역시.........' 시트를 꼭 움켜쥔 채 소리 없이 베개 위에 얼굴을 묻어버리자 뭔가 머리칼에 잠시 스쳤다 떨어져 나간다. "폐하......." 다시 시종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리기 무섭게 요란한 소릴 내며 누군가 침실 안으로 들어서고....... "키르.....!!" '뭐......?!!' 뜻밖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놀라 고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키르!! 괜찮아?!! 어디........다친 덴 없어?" '왜......저 녀석이 여기에?!!' 시야에 들어온 건 반짝이는 은발에 부드러운 바이올렛 눈동자............ '유이...............?!!!' 평소와는 다르게 단정한 모습과 화려한 차림새가 낯설기만 하다. "너......" 내 꼴을 보며 크게 뜬 녀석의 눈을 보니 엄한 상상이라도 하고있는 듯....... 황제의 침실에서 얇은 시트 한 장만 달랑 걸치고 누워있으니..... 틀린 상상도 아닐 테지만.......... 한동안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녀석이 다시 시선을 돌려 어울리지 않게 무섭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자신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티폰을 바라보며 말을 꺼낸다. "그 아인..... 제 것입니다" '무슨...............?!!' 갑자기 내뱉는 말에 놀라 크게 뜬 눈으로 유이 녀석을 바라보자 바이올렛 눈동자엔 짙은 분노가 서려있다. "물러가라....." 싸늘하게 유이를 노려보던 녀석이 무겁게 입을 열자 시종들이 하나 둘 씩 사라지기 시작하고......... "네놈이 뮤즈니안의......." "아이야드 유이혼 뮤즈니안이라 합니다" 유이가 고개를 숙인 채 씹어뱉듯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열거하자 크게 뜬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말한 건 분명 이름...... 처음 듣는 녀석의 풀 네임..... 게다가...... 이름이 두 개..... 성은 나라의 이름..... 티폰과 같은........ 왕족의 이름이었다.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들어올리는 유이 녀석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시트가 흘러내려 드러난 하얀 상체를 바라본다. '무...........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뮤즈니안의...... 왕족.........?!!!' 터무니없는 소리에 혼란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자 안심시켜주려는 듯 미간을 펴고 평소와 다름없이 철이 덜 든 아이처럼 빙글거리며 날 바라본다. '서...........설마.... 저런 팔푼이 자식이.....?!!' 그럴 리가..... 아니겠지....... 저 자식 도대체 어쩌려구 잔혹하다고 소문난 황제 녀석 앞에서 뻥을 치는 거야?!!' 머리가 쿡쿡 쑤시기 시작한다. 녀석이 도둑질만큼이나 능한 건 저렇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능청스런 거짓말...... 황성엔 잠입하기 힘드니 동맹국 왕족이라 속여 여기까지 들어온 거겠지...... 황당한 짓을 벌이는 유이 녀석에게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멀거니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폐하의 루베라께선........진귀한 색을 지니셨다 들었는데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뭐......?' 녀석은 분명 내가 티폰의 루베라였다는 걸 알고있다. 그런데................... 루베라를 입에 올리면서 녀석의 시선은 내가 아닌 티폰에게 붙어있는 자그마한 아이를 향해있었다. 잔뜩 비웃음을 입에 걸친 채.............. '뭐......야........? 역시............. ...........내가 미친 건가................. 도대체 그럼 난...................... .......................누구야...............?!!' 잠시....... 차가운 침묵이 흐르고......... "키르....." 갑작스런 부름에 고개를 들어올려 혼란함이 잔뜩 묻어나는 잿빛 눈동자를 녀석에게 맞추자 잠시 날 바라보던 유이 녀석이 표정을 굳히고 다시 티폰에게 말을 던진다. "제 아이의....... 키르의 등에 새겨진 문장을 보신 것 같군요......." 화가 나 잔뜩 낮아진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미간을 찌푸린 채 붉은 눈동자를 유이 녀석에게 맞춘다. "그 아인 제 것입니다. 돌려주십시오......" 그래.............. 키르............. 그게 내 이름이다. 바보같이 그걸 잊고 녀석의 품에 안겨 허상을 쥐려했다. 어차피....... 난.... 이제...... 녀석의 루베라도 아니니............ 저 녀석이 존재 자체가 의심스런 요 몇 달간의 내 모습을 싸그리 잊었다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 아니...... 어쩌면 더 잘 된 일일 지도...... 마음을 싸늘히 굳히고 유이 녀석을 바라보자 내게 씨익 미소지으며 손을 내민다. "키르....이 쪽으로 와..." '저 새끼가 미쳤나......뭘 믿고 저 지랄이야? 내가 니눔 개새끼냐?!!' 평정을 되찾고 유이 녀석을 노려보다 붉은 녀석과 가까이 있는 것 보단 낫다고 판단해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갑자기 강한 팔이 허리를 휘감아 끌어당겨 단단한 무릎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이 아인........... ..................내 것이다...." '하..............' 기가 막힌다. 그렇게 차갑게 뒤돌아선 주제에............ '이제 와서.................... .................무슨 개소리야.............?!!'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왔는지 유이 녀석이 붉은 황제를 미간을 찌푸린 채 노려본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그 아인 제 것입니다. 어깨에 새겨 넣은 것 또한 제 몸에 새겨진 것과 같은 문장........" "역시.................... ...............네놈이 새겨 넣은 건가................." 살기 띈 목소리완 다르게 갑자기 어깨에 녀석의 따뜻한 입술이 와 닿더니 부드럽게 혀로 상처를 쓸어간다. 섬뜩한 느낌............... 숨도 쉬지 않고 굳어있는 동안 다시 녀석의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온다. "이 아이가 왜 이곳에 잡혀왔는지 모르는 건 아닐 테지.........? 이전엔 누구의 소유였든.................. 황제의 침소에 침입한 이상...................내 것이다. 아무리 뮤즈니안의 황태자라 하더라도 소유를 주장할 순 없을 텐데............" '빌어먹을!! 역시........노예로 잡아둘 셈인가..........씹, 차라리 손을 잘라 죽여........' "큭, 애초에 왜 제 아이가 여기까지 잡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흰 황제폐하의 약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몰래 신분까지 숨기고 크리올라에 온 것인데 이유도 없이 누명을 쓰고 끌려와 노예라니........" '역시 뻔뻔한 놈......' "누명....?" 대담한 녀석의 거짓말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이 티폰이 겨우 걸려있던 시트를 살짝 벗겨 내리자 상처가 난 하얀 팔이 드러난다. "그날 밤.....내 침실에 잠입한 도둑의 팔에 같은 상처를 입혔다...." '잘났다....덕분에 더럽게 아팠지....용케 그건 기억하는 모양이군.....' "크리올라의 황제께선.....현명하시다 들었는데 이렇게 경솔하실 줄이야..... 같은 자리에 상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아일 범인이라 단정하시는 겁니까? 병사들의 말론 없어진 물건이 있다던데 그 아이가 머물던 곳에서 그 물건을 찾으셨습니까? 저 아인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증거도 없이 이런 처분을 내리시는 건 부당합니다!!" '저 자식, 뭘 쳐 먹고 저렇게 말을 잘해?' 싸늘하게 식은 붉은 눈동자가 점점 굳어가기 시작한다. 날 도둑으로 내몰아 노예로 만들기엔 확실히 불리한 상황......... 녀석은 그날 밤, 도둑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하류였다는 걸 들켰지만 싸그리 잊었고 팔의 상처는 용케 알아챘지만 술에 잔뜩 취해있었던 녀석이 어둠 속에서 상처의 정확한 위치와 모양 따위 볼 수 있었을 리 없다. 나에 대한 것을 모두 잊고 억지로 끼워 맞춰진 불완전한 기억으론 능청스런 유이 녀석을 이길 수 없을 테지....... "팔에 난 상처는 그 아이가 폐하의 병사들에게 끌려가기 전날 크리올라에서 입은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면.....' 불안한 시선을 유이에게 던지자 지금까지 부리던 여유를 지우고 약간 화가 난 얼굴로 말을 잇는다. "크리올라엔.....남색을 즐기는 귀족들에게 팔기 위해 소년들을 납치하는 납치범들이 많더군요.... 그 아이의 외모야 폐하께서도 보면 아시겠지만.....노리는 녀석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한눈을 판 사이 납치돼 겨우 끌려가진 않았지만 그때 입은 상처입니다" 황제의 숲에서 이상한 녀석들에게 붙들려 팔릴 뻔한 적이 두 번이나 있다. 한번은 미수였고 또 한번은 실제 팔리기까지 했으니........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 "잠시 아이를 놔두고 볼일을 보러 나간 사이, 아이가 크리올라의 병사들에게 끌려갔더군요..... 혼자 여행하던 모습 그대로 크리올라 황궁에 아이를 찾으러 갔지만 제 말은 믿어주지도 않았고 아이가 죽었다는 말만 해댔습니다. 그래서....... 뮤즈니안 황성에 전갈을 보내 사절단과 함께 오느라 늦었는데...... 황제 폐하의 침실 안에서 그 아일 보게될 줄이야......" 이를 갈 듯 싸늘하게 뱉어내던 녀석이 분노를 누르고 가만히 내게 눈을 맞춰온다. "제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이입니다. 황제의 침실에 잠입해 물건을 훔치지 않아도 가지고 싶은 건 뭐든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가 황성에 잠입해 물건을 훔쳤다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 '거짓말에 도가 텄군.....' "노예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대접을 받을 아이입니다...... 사라진 물건값이라면 제가 몇 배든 보상해 드릴 테니 제 것을 돌려주십시오.... 그 아이도 폐하의 과도한 관심이 견디기 힘든 모양이니......" "내가....... .......이 아일 안았다....... 네게 돌아가기 부끄러울 정도로 더럽혔지......... 그래도....... 내놓으라 할 텐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붉은 녀석이 겨우 무겁게 입을 열어 내뱉은 말에 순간 숨을 멈춰버렸다. Rubera(루베라) #124 -유이- "젠장.........!!!! 역시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그 영감탱이!!! 내 마누라한테 손만 댔어봐!!!!!!!!!!!!" 나무로 된 테이블을 거세게 내리치곤 주위 시선이 몰리는 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이를 갈았다. 벌써 사흘............... 사흘이나 지났다. 녀석이 사라진 지.............. 그날............ 배를 채우고 뮤즈니안으로 돌아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녀석이 좋아하는 음식을 잔뜩 사들고 들어선 여관방은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을 뿐 당연히 침대 위에서 예쁘게 자고 있어야할 녀석이 눈에 띄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어쩐 일인지 달아나 있었고 주위 녀석들에게 물어도 입을 꾹 다물 뿐........... 사흘동안 미친 듯 녀석을 찾아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닌 결과 알아낸 것이라곤 그날 황궁 병사들이 수도를 뒤지고 돌아다녔다는 사실............. '역시 그 황제란 녀석이.............!!!!!!' 바로 크리올라 황성으로 향했지만 들여보내 줄 턱도 없고............... 엄청난 돈을 병사들에게 쥐어주고 황제의 침실에 잠입했던 도둑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으니 죽었다 했다. 숨이 턱 막혀왔다. 미친 황제라면............... 얼굴도 보지 않고 처형시켜버렸을 지도..................... 넋이 나가있는 사이............. "삐익.........!!" 익숙한 소리........... "피이.............?!!!!" 나무 위에 앉아있는 녀석의 발목엔 눈에 확 띌 정도로 하얀 천이 묶여있다. '설마...........!!' 내게는 잘 내려서려 하지 않는 녀석을 겨우 어르고 달래 천을 풀러내니 확 쏟아지는 건......... 눈처럼 하얀............머리칼......?!! '키르..............?' 역시 살아있는 거다. 그런데 왜...........죽었다고.............. 설마............ 황제란 녀석이 알아본 건가.......?!!! 키르가 자신의 루베라였다는 걸?!! 아무래도 불안하다. 역시 오늘밤에라도 황성에.............. "어이, 이봐!!!" 수도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다 돌아서니 빌어먹게 맞지도 않은 정보를 엄청난 가격에 팔아먹은 병사녀석............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니 말을 잇는다. "황제의 숲은 폐쇄됐다!!!!" 폐쇄라니........?!! 황제가 숲을 폐쇄시킨 이유는..............분명 자신의 루베라를 찾기 위해............ 녀석은.............분명 황성 안에 있을 텐데............... 아무리 약을 써서 외양이 변했다지만 그렇게 집착하던 자신의 루베라를 못 알아볼 리............ '설마.............'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에 서둘러 수도로 돌아와 뮤즈니안에 전갈을 보냈다. '아무리 늦어도 이틀이면 도착할 테지............' 그 전에.............. 오늘 밤 우선 황궁에 잠입해 녀석을 데리고 나올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 최후의 수라도 쓰는 수밖에.............. 수도에서 말과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들여 준비를 모두 끝냈을 땐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지난 번 키르가 황성에 잠입했던 경로를 따라 들어가려고 자정이 될 때까지 숲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드디어 자정이 가까워져 정원 한켠으로 숨어 들어가 황성 근처까지 다달았을 때.................. 갑자기............!! "침입자다!!!! 침입자를 잡아라!!!" '뭐........뭐야?!!!! 설마 벌써 들킨 건가?!!!' 당황할 틈도 없이 저 멀리서 병사들이 횃불을 든 채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어떻게 된 일이야? 아직 황성 안에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구!!!!!!!!!' 이름 모를 꽃가지 아래 엎드려 몸을 숨긴 채 동태를 살펴보고 있는데............... "컥..............!!" 갑자기 등위로 묵직한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충격에 숨도 쉬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다 시야에 들어온 새카만 그림자에 순간 몸을 긴장시키고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달빛에 드러난 녀석은 잿빛 일색의 사내........ 한참을 달렸는지 헝클어진 짧은 잿빛 머리칼에 감정조차 담기지 않을 것 같은 눈동자....... '저런 쳐죽일...........!!! 감히 내 몸을 밟아?!!!!!!!!!!!!!' 이를 뿌득 갈아 부치자 생긴 것만큼 무감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황성 안에서 뭘 하는 거지?!!" '뭐야........황성을 지키는 녀석인가.........?' 그런 것치고는 온통 까만 색 옷차림이..............묘하다. "황제폐하를 암살하려 한 녀석이다!!! 생포하라는 폐하의 명이 떨어졌어!! 빨리 찾아!!!!" '설마 이 자식..............' 멀리서 울려오는 고함소리에 바짝 긴장하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곳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냐......." 추궁하듯 되묻는 녀석이 기가 막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고 말을 받았다. "큭, 암살범인 거 같은데............집주인 마냥 말을 하는군......." "대답해라........." 녀석이 허리춤에서 날카로운 검을 빼 올리자 할 수 없이 단검을 빼냈다. "이제부터 황성에 잠입해서 내 마누라를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네놈이 초를 친 것 같군............" 이미 발칵 뒤집힌 황성에 잠입하는 건 무리............ 잿빛 눈썹을 치켜올리고 자신의 복장과 별반 차이가 없는 내 모습을 훑어보더니 눈동자에 살기를 띄기 시작한다. "암살범인가..........." '웃기지도 않는군......암살범은 네놈이겠.......' "헉............." 갑자기 귓가를 스치는 날카로운 소리에 반사적으로 물러서자 날카로운 검날이 눈앞에서 스쳐간다. "이.........미.......미친!!!!" "황성 안엔 못 들어간다............" "뭐?!!" 기가 막힌다. 이 놈이 미쳤는지.......황성 안에 금단지라도 감춰두고 온 것인지 암살범 주제에 가지가지 한다. 분노로 부들부들 떨며 노려보다 단검을 쥐고 녀석처럼 급습을 해버렸다. 검날이 짧은 만큼 녀석에게 가까이 파고들어 목을 노리자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막아낸다. "이 빌어먹을 자식!!!!! 니놈 때문에 마누라 얼굴도 못보고!!!!" 당황조차 드러내지 않는 잿가루같은 눈동자가 성질을 박박 긁어댄다. 같은 잿빛이어도 색도 옅고 반짝반짝하고 예쁘기만 한 키르의 눈동자완 차원이 다르다. 차가운 눈빛에 살기까지 띄니 오한이 들 지경................ 같은 장검이면 간단히 상대해 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잠입이 목표였기 때문에 가벼운 차림을 한답시고 단검도 한 자루 뿐........ 그렇게 섣불리 공격도 못하고 검날을 맞댄 채 한참을 서로 노려보기만 하다 주의가 흐트러진 건 주위에서 병사들의 기척이 들려왔을 무렵.......... 양쪽 모두 살기만을 뿜어대며 물러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굳어있는데 지척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반사적으로 시선을 던지자마자 녀석이 갑자기 복부를 냅따 가격해 왔다. "컥, 이.....................치사한.............!!!!" 무기를 맞댄 상황에서 주먹을 내지르다니.............. 물론 키르가 즐겨 쓰는 방법이긴 하지만 보통 녀석이라면 이런 수는 쓰지 않는다. 게다가 더 미치고 팔딱 뛸 일은 그 뒤에 녀석이 벌인 천인공로 한 짓거리.......... "치사? 내 주인은 융통성이라 하더군.........." 무표정한 얼굴로 내뱉는 녀석의 말에 기가 막혀 바닥에 쓰러져 입까지 벌리고 올려보자 갑자기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불길한 예감........... "침입자를 찾았다!!!!!" '헉............' 녀석이 소리치자마자 요란스런 소리가 주위에서 울려대는 게 병사들이 몰려오는 듯......... 정신을 차렸을 땐 그 빌어먹을 잿빛 녀석은 황성의 지리를 꿰고 있는 듯 간단히 몸을 숨긴 후였고 몇 번이나 포위를 뚫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황성을 벗어나 황제의 숲에 들어섰을 땐 그야말로 녀석에 대한 살의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키르가 지금 저 눈앞의 황성에서 그 황제놈한테 무슨 고초를 겪고 있을 지 생각만 해도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데 방해한 걸로도 모자라............... "헉....헉..........이런 빌어먹을!!!!!! 쳐죽일 새끼!!!!!! 융통서~엉?!!!! 다음에 보면 죽여버릴 테다!!!!!!!!!!" 분노로 가득한 비명이 어둠에 잠긴 숲 속에 울려 퍼진다. Rubera(루베라) #125 "내가....... .......이 아일 안았다....... 네게 돌아가기 부끄러울 정도로 더럽혔지......... 그래도....... 내놓으라 할 텐가........" "....................." '나쁜...........자식!!!' 기가 막힌 말에 한동안 멍하니 넋이 나가있다 퍼뜩 정신을 차려 이를 악물고 사납게 노려보자 바로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미끄러뜨린다. 분명한 도발............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을 비틀자 순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낮은 저음이 귓속으로 파고든다. "제 것에..............손대지 마십시오....." "큭......네놈의 것이라고........?" 가볍게 무시해 버리고 시트 속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그대로 허벅지를 쓸며 올라와 내 것을 감아쥐자 석상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충격으로 하얗게 질려 몸을 떨기 시작하자 유이 녀석도 눈치를 챈 건지 허리에 찬 검을 꽉 움켜쥐고 살기를 내뿜는다. "오지.......마........!!!!" 바로 달려들려는 녀석에게 겨우 입을 열어 말을 꺼내자 수치심을 제외하곤 표정하나 없이 굳어버린 내 얼굴을 보곤 놀라 멈춰 서는 걸 확인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녀석의 손안에 쥐어져 입술을 꽉 깨물자 부드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쾌감을 이끌어내려 공을 들여 귀두 끝을 손가락으로 비비고 자극을 해대도 어제와 같은 반응은커녕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이 미세하게 떨릴 뿐 신음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신이란 게 있다면.................. 한 가지쯤은 날 도와주는구나.........싶었다. 빌어먹을 정신병도 내 기분만은 알아주나 보다. 지금 녀석의 손에 신음을 흘리고 매달려버리면 차라리 혀라도 깨물고 죽고싶었을 테니........... 전혀 반응이 없는 날 보고 표정을 굳히더니 결국 포기했는지 손을 물린다. 이렇게나 필사적인 이유를................. ..............모르겠다. 이렇게나 집착을 보여야할 상대는 내가 아닐텐데............... 연인에게나 하듯 허리근처를 부드럽게 쓸어주고 굳어버린 목덜미와 등에 키스를 해대자 분노조차 담기지 않은 잿빛 눈동자를 드러냈다. 시야에 놀란 듯 굳어버린 채 말이 없는 유이 녀석이 들어오자 쓴웃음을 지어버렸다. 뒤에 있는 녀석이 여전히 아프도록 허리를 강한 팔로 휘감아 꼭 끌어안은 채 잔뜩 열이 오른 유이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온다. "전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군..... 여자를 좋아한다 들었는데...... 왜 이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거지? 이 아일 포기하면 침실노예로 누구든 원하는 만큼 주겠다" 녀석의.... 바이올렛 눈동자가 싸늘한 빛을 내며 티폰을 노려본다. "폐하의 루베라라도....... .......주실 수 있을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뭐?!!!' 경악한 눈으로 유이 녀석을 바라보자 싸늘한 비웃음을 걸친 채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굳어버린 티폰을 노려본다. "폐하께서야말로...... 왜 손길에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아이를 손에 넣으시려는 겁니까...... 폐하의 손에 쥐어봤자............. 황비나 루베라완 달리 천한 침실 노예로 전락하겠지요........ 큭, 그렇게 되면............. 평생............ 예쁜 얼굴엔 눈물만을 비추고 미소 따윈 보지도 못할 것을.................." "닥쳐라.............." 분노한 목소리가 울려오지만 차갑게 말을 잇는다. "제 손에 쥐어지면 보석처럼 빛을 낼 테지만.............. .........폐하의 손에 쥐어지면............... 빛을 잃고 썩어갈 뿐입니다.......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 없으니..... 아일 돌려주십시오....." 살기를 띈 섬뜩한 붉은 눈동자로 유이를 노려보지만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다시 말을 꺼낸다. "그 아인 침실노예 따위가 아닙니다...... 등에 새겨진 황가의 문장도 다른 자가 아이에게 손대지 못하도록 새긴 것 뿐........ 저도 폐하만큼 제 것에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을 싫어하니..... .....돌려주십시오..... 폐하께선 바로 옆에 루베라가 계신데.....왜 제 아이에게 집착을 하시는 겁니까...... 설마.............. 사랑이 식어 제 아이에게 루베라라도 새기고 싶으신 겁니까............." '큭, 교활한 자식..............한방 먹였군............' 꽤나 사랑한답시고 2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자신의 루베라를.........하류란 녀석을 겨우 찾았는데....... 몸 몇 번 섞었다고 노예로밖에 보지 않는 녀석 따위와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을 테지......... 황제씩이나 되는 주제에 둘 다 가지겠다고 땡강을 부릴 수도 없을 테고........... 한참동안 주위에 서늘한 냉기가 감돌고....... 끊어질 듯 팽팽한 긴장감을 먼저 잘라버린 건 티폰..... "그날 밤...... 사라진 물건이....." '응....?' "돈으로 대신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할거지.....?" '거짓말......' 흔하디 흔한 루비와 사파이어였을 뿐이다. 날 기억에서 지워버렸다면....... 그 보석들도 황궁에서 굴러다니는 여느 보석과 다를 바 없을 터...... 왠지....... 미끼를 던지는 듯한......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전혀 동요하지 않는 유이 녀석의 말에 차가운 눈으로 꿰뚫듯 바라보다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큭, 꽤나 당돌하군........ 내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황성에 머물러라....." '뭐?!!' 사형선고 같은 갑작스런 말에 놀라 바라보자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내 결혼식을 축하해주러 왔다고 하지 않았나....? 축하 사절과 함께 왔으면 책임자는 당연히 황태자가 아닌가...." "그건......." "뮤즈니안의 황태자가 결혼식에 직접 참석한다면 전쟁 없이 양국의 동맹이 더욱 견고해 질 테니....." 암묵적인 협박..... 하지만 저 녀석은 진짜 뮤즈니안의 왕족이 아닌데....... 어쩐 일인지 쉽게 거절을 못하고 주먹을 꼭 틀어쥔 유이 녀석이 내게 시선을 돌린다. "돌려주십시오....." 한참동안 내 허리를 강하게 휘어감은 채 풀어줄 생각도 않던 녀석이 귓가에 입술을 대고 내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속삭이기 시작한다. "이번............뿐이다. 놓아주는 건......... 이번만.......... ......기회를 주겠다..... 네가 날 거부하니.......... 차라리 죽겠다고 하니........... 잠시.........놓아주는 것 뿐이야........ 녀석의 말대로 내 손안에 쥐어져........... 썩어가지 않도록............ 하지만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달아날 수 없도록 소중한 날개를 꺾어버리겠다........" 한동안 그렇게 녀석의 품에 굳은 채 안겨있다 초조하게 날 바라보는 유이 녀석의 눈빛을 느끼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귓가에서 속삭이던 녀석이 말과는 달리 놓아줄 생각도 않고 허리를 계속 단단하게 휘감고 있자 미동도 없는 녀석을 보고 갑자기........ 그날 밤이 떠올라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루비를 훔쳐 달아날 때 날 놓아주지 않고 검을 움켜쥐던 녀석이............ 지금은......... 이렇게나 다르지만........... 한참을 그렇게 굳어있다 할 수 없이 그날처럼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거칠게 녀석의 팔을 풀어내고 품에서 벗어난 순간.............. 차가운 손이 내 손을 움켜쥔다. '왜...........?' 놀란 눈으로 돌아보자 강하게 손을 한번 꼬옥 쥐더니 천천히 떨어져 나간다.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소릴 무시하고 녀석에게서 도망치듯 발걸음을 옮겨 유이에게 다가서자 방금 속삭인 것은 꿈인 듯 좀 전과는 사뭇 다르게 평정을 되찾은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온다. "대체...... .....무슨 속셈이냐........." 유이 녀석의 앞에서 긴장이 풀려 휘청이자 재빨리 허리를 감아 품으로 끌어당기고 날카로운 눈으로 시선을 맞받아 친다. "속셈 따윈 없습니다.........제 것을 제가 찾아가는 것일 뿐.............." "그건......두고보면 알겠지........" "두고보아도 소용없으실 겁니다" 싸늘하게 말하고 내 머릿속에 새겨 넣듯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아무리 키르가 폐하의 루베라를 닮았다해도......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 일은 없을 테니......" "만약...... 내 인내심에 바닥이라도 보이게 하면........ 뮤즈니안의 황태자는 물론...... 뮤즈니안까지 소멸시켜버리겠다....." '뭐?!!' 갑자기 유이 녀석의 거짓말에 나라간의 전쟁으로까지 확대되어 가는 사태에 긴장한 채 눈만 크게 뜨고있자 유이 녀석은 눈도 꿈쩍 않고 평소대로 능청스럽게 말을 잇는다. "인내심에 바닥을 보이게 한다 하심은............?"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나와는 달리 유이 녀석은 뭘 믿고 이러는 건지 다시 여유를 부려대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뒤에선 말이 없고...... 살짝 위를 올려보자 유이 녀석이 미쳤는지 잔혹하다 소문난 황제를 상대로 알 수 없는 미소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이 아인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상대가...... 틀린 것 뿐......" '무슨......?' 놀란 눈으로 올려보자 입술을 귓가에 대고 스치듯 속삭여온다. "미안....좀 참아....아무래도 쐐기라도 박아놔야지.....불안해서 못 견디겠으니....." 녀석의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바로 입술을 포개온다. 아랫입술에 살짝살짝 키스를 하더니 강하게 빨아들여 흠칫 몸을 떨자 시트 안으로 손을 뻗어 벗은 몸을 쓸어댄다. 지난번의 일로 대부분의 성감대를 알아냈는지 느끼는 부분만을 자극해대더니 품안에서 하얀 실크로 된 매끄러운 천을 꺼내 시트 속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바로 내 것을 쥐어온다. 눈을 크게 뜨고 녀석을 올려봐도 멈출 생각은 않고 뜨거운 혀로 입술을 벌려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녀석의 진지한 눈빛과 뜨거운 손길에......... 티폰이 손을 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민감한 몸에 확 열이 올라 몸을 비틀자 끊어질 듯 숨만 몰아쉬는 입술에 집요하게 들러붙어 혀를 섞어온다. "하아.....으응................." 신음이 새어나오자마자 들으라는 듯 고의적으로 입술을 떼고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을 부벼대며 손을 움직이기 시작해 녀석을 밀어낼 틈도 없이 실크로 감싸 섬세한 손에 쥐어진 페니스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꾸만 새어나오는 신음을 겨우 삼키고 녀석의 옷깃을 꼭 쥔 채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휘자 허리를 휘감은 팔에 더욱 힘을 줘 몸을 밀착시킨다. "하아.....흑...." 부드럽게 움직이던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자 참지 못하고 녀석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여기서 유이 녀석을 밀어내면 다시 붉은 녀석의 손아귀 안에 떨어지리란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어차피....... 이젠 모두 털어 내야 하니까...... 다시 돌아가지 않을 테니까..... 모든 것을 체념하고 단단한 녀석의 몸에 매달려 신음을 흘렸다. 내 생각을 눈치챈 듯 더욱 짙어지는 자극을 참지 못하고 하얀 목을 뒤로 젖히자 바로 뜨거운 입술을 목덜미에 찍어누르며 올라와 살짝 벌어진 입술을 덮어 정신없이 빨아댄다. "하악.............." 녀석의 능숙한 손길에 헐떡이며 숨넘어가는 신음을 흘리다 힘이 빠져버려 녀석의 품안으로 무너져 내리자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만족스러운 듯 장난스럽게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린다. 이미 시트가 허리까지 흘러내려 하얀 등이 모두 드러나자 상처 위에 새겨진 은빛문장을 손으로 슬쩍 쓸어가며 맛을 보듯 민감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빨아대던 녀석이 갑자기 손을 미끄러뜨려 엉덩이를 쥐어오자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지금까지 보아왔던 바이올렛 눈동자......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예쁜 눈동자 속에 드러난 건 미칠 듯한 정욕............ "......유이.......흑......그만............" 반쯤 이성이 날아가 버린 듯한 녀석의 모습에 놀라 입안에 들어와 있던 녀석의 혀를 겨우 밀어내고 잔뜩 잠긴 목소리로 애원의 말을 흘려내며 매달리자 기어코 눈가에서 물기가 새어나온다.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훌쩍이자 유이 녀석이 흠칫 놀라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 뒤에서 뭔가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고 눈물이 가득 고인 눈동자로 돌아서자 살기를 담아 핏빛으로 짙어진 붉은 눈동자와 섬뜩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손엔 어느샌가 검이 들려 앞에 있던 두터운 테이블이 깨끗이 양분되어 있었고 새파랗게 날이 선 칼날이 유이 녀석의 목에 겨눠져 있었다. 붉은 눈에선 살기가 쏟아져 나오고 분노로 검날이 눈에 띄게 흔들린다. 내게 박혀 들어오는 붉은 눈동자에 흠칫 놀라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자 눈가에 맺혀있던 굵은 눈물방울이 툭 떨어져 볼을 타고 흐르고..... 뒤에 있던 유이 녀석이 다시 시트를 감아 내 몸을 품에 안자 분노를 억누른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무슨 짓이냐......" 낮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지만...... 심장이 서늘해질 정도로 섬뜩하다. "큭, 이런 무례를....." 터무니없는 녀석의 태도에 기가 막혀온다. 오금이 저릴 정도로 노려보는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보이지도 않는지 연신 빙글거리는 녀석의 얼굴을 몇 대 갈겨버리고 싶은 걸 꾹 참느라 수명이 십 년은 줄어버린 듯 하다. 아무리 동맹국의 왕족이라고 뻥을 쳤지만...... 어떻게 속여넘긴 건지 티폰도 별로 의심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 이 녀석이라면..... 미쳐버리면 동맹국의 황태자가 아니라 황제라 해도 물불 가리지 않고 베어 넘길 거다. 유이 녀석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내게만 고정되어있는 붉은 눈동자에 사로잡혀 시선도 돌리지 못하고 서있길 한참.... 목덜미에 따뜻한 액체가 떨어져 내려 돌아보니 검날을 타고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이...............?' 목에 들이댄 검날은 신경도 쓰지 않고 유이 녀석이 손을 뻗어 허리에 찬 검을 뽑아들려 하자 급하게 녀석의 목에 닿아있는 티폰의 검을 움켜쥐었다. 녀석의 검술은 이미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 분명............ 유이가 검을 뽑으면 죽일게 분명하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하얀 손목을 타고 붉은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분노로 짙어졌던 붉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왜..............?' "키르......!!!" 깊이 생각해 볼 틈도 없이 유이 녀석이 놀라 손목을 쥐어온다. "놔!!! 피.......피 나잖아!!!" 지금까지의 박력은 단박에 날려버리고 패닉상태에 빠져 호들갑을 떨어대는 녀석을 기가 막혀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돌리니 붉은 녀석은 뭐가 그렇게 맘에 들지 않는지 검날을 움켜쥔 내 손과 유이 녀석을 한참동안 죽일 듯 노려보다 이를 악물고 검을 거둬 두터운 테이블 위에 박아 넣는다. "물러가라............" 지친 듯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기다렸다는 듯 유이 녀석이 빙글거리며 힘이 빠져버린 내 몸을 번쩍 안아든다. '이 자식!!!! 내려놓지 못해?!!!! 빌어먹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잘 때 목을 졸라버릴 테다!!!!' 그제야 녀석의 품안에서 터무니없는 짓을 당한 것이 분해 이를 으득 갈며 시트 밑으로 단단한 허리를 잡아 비틀자 녀석이 잠시 움찔 하더니 곧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날 보며 능글맞은 웃음을 흘린다. "왜? 아직 부족해? 못 참겠어? 오랜만에 밤.새.도.록 안아줄까?" '이 개.새.끼!!!' 분노에 주먹을 꽉 그러쥐고 부들부들 떨어대자 진짜 죽기로 작정을 했는지 내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하고 입꼬리를 올린 채 티폰에게 말을 던진다.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 죄송합니다, 폐하..... 정무로 바쁘실 테니 앞으로는 번거롭게 마주치는 일없이 결혼식 때에나 뵙겠습니다. 황비 되실 분께는 안부 전해주시길.....루베라께서도 폐하와 즐거운 시간 가지십시오...... 그리고 침실은 하나로 충분합니다. 몸시종은 필요 없으니 침실 안으론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게 명해주십시오.... 그럼, 큭....저흰 급한 일이 있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속사포같이 자신이 할 말만을 쏟아내고 뒤돌아 서자 유이 녀석의 어깨 너머로 티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심장이..... .....쓰려온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눈을 깜빡이자 어느새 녀석이 까만 아이에게 시선을 돌려 냉혹한 얼굴 위에 허탈하게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Rubera(루베라) #126 잠시 후 유이 녀석에게 안겨있는 날보고 흠칫 놀라는 시종장을 따라 안내된 곳은 티폰의 침소와 나란히 붙어있는 화려한 침실.... 전체적으로 유이 녀석의 눈동자와 같은 옅은 바이올렛 색으로 꾸며져 있는 내부는 황제의 침소 못지 않게 화려하고 아름답다. "빌어먹을........황제의 침소 바로 옆이잖아!!!!" 투덜대는 유이 녀석을 올려보다 다시 화려하기만 한 침실로 눈을 돌렸다. '이런 곳이......있었나....?' 케레스와 시온과 함께 탐험을 한답시고 궁내를 헤집고 돌아 다녔을 땐 분명 본 적 없던 곳...... 한참동안 멍하니 화려하기만 한 침실을 바라보고만 있자 유이 녀석이 그제야 날 침대 위에 내려놓는다.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젠장........." 녀석을 올려보니 손목을 쥐고 손바닥에 난 상처를 살펴보고 있다. "아프지 않아?" "응........." 검날을 쥐자마자 티폰 녀석이 검을 살짝 물려 깊지 않은 상처에 출혈만 약간 있을 뿐이다. "근데 뭐 하는 거야?!!!" 바로 손목을 따라 키스를 해대며 손바닥까지 올라와 상처에 혀를 대고 쓸어주는 녀석을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올려보자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까지 다가온다. "큭, 궁의보다 내가 낫다며.........빨리 낫게 해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빨리.........나아?' 물론 이 녀석의 실력이야 뛰어난 걸 알지만 베인 상처를 핥아준다고 빨리 낫는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데............ 갑자기 비릿한 피 맛이 입안에서 느껴지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 샌가 입안으로 들어선 녀석이 입천장을 쓸고 부드러운 혀를 옭아맨다. 바로 손을 들어올려 밀쳐내려는데............. '뭐야?' 녀석이 양 손목을 꼭 움켜쥐고 침대 위에 내리누르고 있었다. '이 자식.................언제?!!!!' 죽일 듯 노려보자 킥킥대며 입술을 떼더니 아쉽다는 듯 몇 번 더 가볍게 입술을 찍어누르곤 떨어져 나간다. "하아........오랜만에 보는데 참아주면 안돼?" "웃기지마!!" 입술에만 시선을 맞추던 녀석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입을 맞춰온다. 장난스럽게 입술을 깨물고 빨아대는 녀석에게서 고개를 휘저으며 피해버리자 손목을 놓아주고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죽었다는 소리 듣고...........미치는 줄 알았어........." "너............." 피곤한 듯 귓가에 속삭이는 녀석 때문에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안겨있자 목덜미에 얼굴을 몇 번 부비적대던 녀석이 상체를 일으켜 품에서 꺼낸 가루약을 손바닥에 꼼꼼히 뿌려주고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려온다. "그 동안......심한 짓 당한 거 아니지?!!" '응........?' 갑자기 녀석이 불안한 듯 중얼대며 몸을 가린 시트를 들춰내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벗은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녀석의 얼굴이 단박에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하얀 피부 위를 빼곡이 채우고 있는 건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확연한 쾌락의 낙인..... 말을 잊고 굳어있는 녀석에게 눈도 맞추지 못하고 시트를 끌어올려 몸을 가렸다. 날 좋아한다고 말해줬던 이 녀석이 무슨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알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한때 나와 몸을 섞었던 녀석이 같은 침대 위에서 다른 여자와 구를 때에도 심장이 깨어져 조각나는 기분이었으니....... 어쩌면 이 녀석도...... "어떻게 된 거야?!! 설마 강제로......" 한참만에 무겁게 입을 연 녀석에게 가만히 고개를 휘저었다. 처음엔 약에 취해 정신이 나갔었다지만............ 두 번짼 스스로 다리를 벌렸다. 그 대가는 결국 어젯밤 혼자 그 녀석을 기다리며 병신같이 흘려댄 눈물로 톡톡히 치른 셈이고........ 입술을 꽈악 깨물자 바로 굵은 물방울이 침대 위로 떨어져 내린다. '빌어먹을..................!!'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삼켰다. 이런 기분 따윈....... .........정말 싫다..... "키르......" 가라앉은 녀석의 목소리가 울려오지만 눈을 뜨지 않았다. 부드러운 손이 얼굴을 쓸어 눈물을 닦아내고 작은 한숨이 귓가에 스친다. "2주야.............. 2주 남았어............. .............황제가 결혼식을 치르면.........약속대로 내가 바로 가질 테니까....... 그때까진.........다 정리해......... 그 황제한테 조금이라도 미련이 남아있으면.........다 털어 버려....... 눈길도 주지마....... 나만 봐......."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눈을 뜨자 투명한 자수정 빛 눈동자가 시야에 박혀들어 온다. "상처는?" '응?' 의아한 얼굴로 녀석을 올려보다 의도를 알아채곤 얼굴을 확 붉힌 채 고개를 휘저었다. 강제로 당한 것도 아니니....... "그럼 됐어.....큭, 나도 그렇게 건전하게 놀진 않았으니 벌받은 셈 치지.........." 지나칠 정도로 하나만을 바라보는 녀석의 눈동자는.............. 빛깔은 다르지만........... 녀석과............ 티폰과 닮아있다. '바보같은...........' 피할 기회를 주 듯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개오는 녀석을 굳이.......거절하지 않았다. 허락을 받아내서인지 평소보다 대담해진 녀석이 신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농염한 키스를 해온다. 촉촉한 혀로 입술을 핥아주고 목뒤로 손을 집어넣어 뒤통수를 끌어당기더니 살짝 벌어진 입술을 비집고 뜨거운 혀를 깊숙이 밀어 넣는다. 거침없이 들어서 입안 곳곳을 쓸어대고 얌전히 있는 혀를 휘감아 숨이 막힐 정도로 빨아들이자 신음마저 삼켜버릴 정도의 열기에 손에 닿는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었다. 민감한 입술을 살짝 깨물어댈 때마다 흠칫거리며 몸을 떨자 한참동안 어린아이와도 같은 집착으로 입술에 달라붙어 핥고 빨아대던 녀석이 허리를 쓸어대던 손을 내려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든다. 입술에 와 닿는 호흡이 거칠고 지분대는 손길이 아무래도 심각하다. 눈을 번쩍 뜨고 녀석의 손목을 틀어쥐자 불만스런 신음소리가 작게 울리더니 겨우 입술이 떨어져 나간다. "하아.....하아......이........이제 그만해.........." "응........" 헐떡이며 말을 내뱉자 간단히 대답을 하고선 목덜미에 들러붙어 자꾸 자극을 해댄다. "유이!!!" 버둥거리며 은빛 머리칼을 움켜쥐고 떼어내자 그제야 움직임을 멈추고 열기가 가라앉지 않은 눈으로 가만히 날 내려본다. "미안.........멈추기가 힘들어서........."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을 올려보다 목에 가늘게 그어진 상처자국을 발견하고 손을 뻗어 쓸어주자 희미하게 미소 짓고 하얀 손을 꽉 쥐어온다. "괜찮아?" "큭, 걱정해 주는 거야? 그 자식, 속 좀 쓰렸겠군........" "응?" "아니.........그냥 뒀어도 내가 해결했을 텐데......맨손으로 검날을 쥐면 어떡해?!!" "해결?!!! 단박에 머리가 날아갔을걸?!! 그 자식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서 그딴 소릴 할 수 있는 거지........ 황제한테 터무니없는 뻥까지 쳐대고....그 녀석이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여? 도대체 그런 뻥은 무슨 생각으로 친 거야?!!" "뻥? 뻥이라니?" "젠장할 자식, 모르는 척 하지마!! 이번엔 운이 좋아 그냥 넘어갔지만 역시 야반도주라도....." 불만과 의문이 뒤섞여 나타나는 녀석의 낯짝을 한참동안 노려보자 다시 입을 열어온다. "안돼....이미 황태자라고 밝혀버렸으니......" "밝히긴 뭘 밝혀?!! 니눔이 황태자야?!!!" 바락 소릴 지르자 멍한 눈으로 한동안 날 바라보더니 웃음을 참는 듯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린다. "킥, 무디기는.....귀여워 죽겠다니까........." "뭐?!!!" "아니, 하여튼 도망치기엔 이미 늦었어.....너도 봤잖아....밖에 병사들 세워놓은 거..... 어차피 우리 내기도 있고....황제가 식을 올릴 때까지 여기서 지낼 수밖에....." "무슨 개소리야?!! 난 싫어!! 내기는 끝났다고 했잖아!! 창밖에 있는 보초들이야 어떻게든 따돌리고.......!! 너도 그 자식이 하는 거 봤잖아!!! 의심하고 있단 말야!! 기억해 낼지도 몰라!" 분명..... 분명 날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지금의 내게 엄청난 집착을 보였었다. 2년 전 사라진 자신의 루베라와 닮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지금은 자신의 루베라를 찾았으니 내게 도망칠 기회를 주는 거겠지만 다시 녀석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여기 계속 있으면 들킬지도 몰라.....아니면......빌어먹을 노예가 되던가.....!!" "이미.........늦었어........ 걱정마......내 옆에만 붙어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어차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려면 귀찮은 것부터 떼어내야....." "무슨 헛소리야?" "흐응, 예쁜 꽃을 키우려면 붉은 벌레부터 잡아야 한단 소리야............" "뭐? 니놈이 무슨 꽃을 키운다고 지랄야?!!" 의심스런 눈초리로 올려보자 가만히 날 바라보더니 능글맞은 미소를 띄운다. "큭, 진귀한 꽃이지........." "씹, 저리 비켜!!" 이리저리 몸을 더듬어대며 목덜미에 키스를 해오는 녀석에게 손을 뻗어 밀어내도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빌어먹을.......애새끼 같은 놈...........' 녀석의 따뜻한 체온이 기분 나쁘지만은 않다. 어제 저녁에 느낀 한기에 비하면........... 녀석을 밀어내길 포기한 채 가만히 누워만 있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다시 말을 이었다. "너......." "응?" 간만에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뺨을 부벼대고 목덜미에 키스를 해대던 녀석이 멈칫하고 내게 눈을 맞춰온다. "그날 밤........ 나한테 준 가루..........뭐야?" "무슨....소리야?" "그 자식이..... 티폰이....... 왜..... 날 기억 못하는 거야.....?" 녀석의 얼굴이 잠시 굳는다. "그게......싫어?" "싫은 게.........아냐!!" 한참동안 바이올렛 눈동자로 날 바라보더니 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말을 잇는다. "나도 놀랐어..... 널 찾으러 황성근처를 맴돌다가 병사들 사이에서 소문을 들었거든........ 니가 분명 잡혔을 텐데......... 황제의 숲을 폐쇄해 버리고 까만 색을 금기시켰다는.......... 설마......진짜 싸그리 잊었을 줄이야..... 그 약은..... 내가 말 한 대로야..... 뿌리면 바로 기절하는 것과 기억에 잠시 혼선을 주는 것밖에 하지 못해.... 저렇게 한 기억만 사라진 건 본 적이 없어..... 룬이 몇 번 실험한 모양인데 약 뿌리기 얼마 전의 기억만 뒤죽박죽 돼서 사라지는 경우는 있었다는데 설마....... 그것도 부작용인가...... 어쨌든 우리한텐 잘 된 일이잖아? 황제가 다시 널 찾을 일도 없을 테고......" "그런....가......" "그런 거야....." '그렇겠지...........' 잠시 가라앉은 눈으로 바닥만 쳐다보다 자꾸 날 괴롭혀대는 생각들을 모두 털어 낸 후 유이 녀석을 바라봤다. "그런데.....왜 아깐 그 꼬마 녀석한테 루베라라고 한 거야? 내가.......그 자식 루베라였다는 거 너도 알고 있었잖아........" "사실............." Rubera(루베라) #127 "사실............." '응?' "그 꼬마녀석.............내가 보낸 거야........." '뭐?!!' 뜻밖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보자 씁쓸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녀석이 널 잊었다는 거...........알고있잖아............... 그 녀석이 찾고있던 건............니가 아니었어..........." '알고.............있어..............' "그래서.............. .........그 녀석이 찾는 걸 안겨주고 넌 내가 빼낸 거야........... 쉽게..........돌려줄 거 같지 않았으니까.............. 그 황제도 좋고...............나도 좋고.................너도.............좋잖아?" "간단.......하군.......어떻게 된 거야? 머리칼하고 눈동자는..........." "이전에.........만약을 위해 너랑 닮은 노예 녀석을 몇 명 봐뒀어...... 사흘동안 그 녀석들 전부 불러내서 룬이 만든 약을 먹여봤더니 몇 명이 까맣게 변하더군...... 너처럼 새카만 색은 나오지 않았지만........... 운이 좋았던 건지 제일 닮은 녀석도 그 중에 포함됐어. 2년이란 공백이 있으니 그 정도면 속이기엔 충분했지. 게다가 그 녀석.......말도 못하고......노예로 사느니 황제의 루베라로 사는 게 훨씬 낫다는 것도 알고있어..... 정체가 탄로 날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얼굴은 그렇게 순진한데 귀족들에게 구를 만큼 굴러서 교활한 녀석이야.......욕심도 많고....... 상황이 급해서 고르지 못하고 데려오긴 했지만.............. 큭, 내가 지금 그만 두라고 해도 물러서지 않을 녀석이지........." "설마.........꽤 어려 보이던데............" "그래 봬도 나이가 스물이야........" "스물? 많이 봐도 열 일곱 정도로밖에 안보이던데?!! 등에 새겨진 루베라는 어떻게 된 거야.......?" "룬에게 새기라고 했어. 빌어먹을 자식이 지난번 갔을 때 네 몸에 새겨져 있던 루베라의 본을 떠뒀더군" "본?" "그래. 루베라는 크리올라의 황제만이 새길 수 있어. 결국 모양을 남기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지. 고서(古書)를 뒤적여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운이 좋았던 거야. 뭐, 완벽하게 하려면 황제가 루베라를 새길 때 사용한다는 도구까지 훔쳤어야 했지만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의심만 살 테고....... 루베라란 게 루펜타가 새겨진 황제가 새긴 게 아니면 의미가 없으니......... 하아.........결국 가짜인 게 탄로 나지 않도록 하루 꼬박 들여 같은 문양을 새기고 상처를 덧낸 거야. 색이 변하는 약은 두 달에 한번씩 먹으면 되는 것이고......... 황제의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 한 들킬 염려는 없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녀석의 루베라가 2년 전에 사라진 것도......벙어리였다는 것도......." "글쎄..........비밀이야........"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내 몸을 꼬옥 끌어안고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 황제라는 녀석한텐 너보다..............그 녀석이 더 잘 어울려....... 아무리 상처 주려 해도 아무런 감정조차 없는 녀석에게 상처 따윈 받지 않을 테니....... 애처로운 눈물 보단 가식적인 웃음만 보며 살게될 거야....." "응?" "그 볼품없는 까만 꼬마 녀석보다 니가 훨씬 더 예쁘다구......황제란 녀석도 그게 샘 나서 그러는 거야....... 큭, 기억을 잃은 건 둘째치고 내가 이렇게 사랑해줘서 이 정도로 예뻐졌는데 알아볼 리가 없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예뻐......살도 예쁘게 쪘고......빌어먹을........몇 일 사이에 좀 빠진 거 아냐?!!" 몸을 더듬어대며 살이 빠진 거 같다고 불만스럽게 투덜대는 녀석의 단순함에 기가 막혀 말도 잊고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아..앗..............뭐 하는 거야?!!!!" 갑자기 허리에 두르고 있던 손을 슬금슬금 아래로 미끄러뜨려 민감한 피부를 더듬어대는 녀석 때문에 나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 얼굴이 붉어져 버럭 소릴 지르자 킥킥대기 시작한다. "큭, 민감하네.........? 하아........아까도 신음 흘리면서 매달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황제 앞에서 쓰러뜨릴 뻔했다니까...... 킥, 기분 좋았어? 한번 더 해줄까?" '이런 빌어먹을!!! 뭐라는 거야?!!!!!!!! 썩을 자식!!' 결국 참지 못하고 복부를 올려 차자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침대가 워낙 넓어 평소같이 굴러 떨어지진 않았지만 옆에서 복부를 움켜쥐고 데굴데굴 구르던 녀석을 다시 발로 차서 떨어뜨리려고 하자 눈을 크게 뜨고 손사래를 친다. "헉, 키...키르!! 미안!! 응? 그만 때려....이제 안 할게!! 피곤하지? 잠이나 자자.....!!" "이....이 미친!!! 내가 애새낀 줄 알아?!! 니놈이랑 이제 안자!! 저리 꺼져!!!" 앙칼지게 소릴 빽 지르고 손에 잡히는 폭신한 베개를 냅따 집어던지자 녀석이 주춤 뒤로 물러선다. "너 없으면 잠 안 온단......." "닥쳐!! 이 좀도둑새끼, 내 옆에 오기만 해봐!! 죽여버릴 줄 알아!!" 갈수록 뻔뻔해 지는 놈에게 잔뜩 성을 내고 몸을 일으켜 욕실인 듯한 곳으로 문을 쾅 닫고 들어와 버렸다. 씩씩거리며 들어선 곳은 역시나 욕실..... 황제의 침실에 있던 욕실 못지 않게 엄청나게 화려하지만 크기가 약간 작을 뿐...... 증기가 올라가는 위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뚫려있어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이왕 들어온 김에 낮 동안 짜증나게 만져진 몸을 씻으려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향기로운 물에 몸을 담그자 피로가 확 풀리고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간다. 머릿속이 맑아지자 잡다한 생각들이 하나 둘씩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렇게 멍하니 앉아있다 마지막에 떠올린 건 어젯밤....... 돌아오지 않는 녀석을 기다리며 일년 치 눈물을 다 흘려버렸다. 겨우.......... 그렇게 힘들게 인정했는데......... 녀석을 사랑한다고.............. 아파도 인정을 했는데............. 다.........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역시나 내게 돌아오는 것은 상처뿐............. 사랑한다는 그 말을 담보로 2주간의 행복을 걸었는데.............. 내게 있어 사랑이나 행복이란 단어 따윈 역시나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멀고도 멀 뿐이다. 녀석에게 돌아갈 생각은 애초에 버려버렸으니 그 까만 녀석이 날 대신한다면 유이 녀석 말대로 나에 대한 기억을 날려버린 티폰 녀석이나, 유이나, 나나........ .........분명 좋은 일일텐데......... 어쩐지 계속해서 가슴을 채우는 건 텅 비어버린 공허함............ 가슴이 답답하게 죄어오고 눈가에서 새어나온 투명한 물방울이 뜨거운 물위에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 '도대체.......왜 이러는 거야.........' 자꾸 약해지기만 하는 내가........... ............싫다....... 녀석의 눈빛 하나......행동 하나에 끌려 다니는 내가.......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주먹을 꼭 쥐고 거칠게 눈가를 비벼 물기를 지워버렸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사랑? 젠장......!! 이제 그딴 건 안 해!!! 나만 손해보는 거 같잖아!!! 빌어먹을!! 같은 사내새끼한테 매달려서는...........!! 꼴사납게 눈물이나 잔뜩 흘려대고..... 그러고 보니 그 자식한텐 성깔도 죽이고 고분고분......!!!' 어쩐지 분하고 억울한 생각에 하얀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이를 갈아대다 한참만에 평정을 되찾고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녀석의 결혼식까지는 꼼짝없이 잡혀있을 것 같고........... 나와는 달리 녀석은 이미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아마도 자신의 루베라와 성깔 나쁜 황비 사이에 끼어 바가지나 긁히면서 지금까지처럼 황제노릇이나 하겠지........... 내가 제자리에 서서 녀석의 옷깃을 붙들어봐야 돌아보지도 않을 거다. 지난밤처럼........... 그러니까.............. 나도 내 길을 열심히 갈 거다. 그 녀석과는 절대 이어져있지 않은 길을..............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하는 것을............. 루베라도 없이 녀석과 얽힌 이유는 결국은 내게 있었다. 멍청하게 자꾸 녀석에게 매달리는 내게.............. '젠장........이젠 피하지도 않고......성깔도 죽이지 않고.......울지도 않아!!' 다른 사람 대하 듯 그렇게 편하게..............너무 가깝지도.........너무 멀지도 않게.......... 그렇게 그 녀석을 대하면 더 이상 얽힐 일도 없겠지. 그리고 2주 후엔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면 되는 거다. 유이 녀석과 함께 키리안 숲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하니 머리 속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 '그러고 보니 그 자식은 크리올라에 그렇게 있기 싫다더니 왜 갑자기 생각을 바꾼 거야?' 갑자기 다시 내기를 시작하려는 유이 녀석이 떠오르자 미간을 찌푸렸다. '어쨌든 그 자식이 황태잔가 동태잔가 아닌 게 뽀록나기 전에 결혼식이 끝나면 좋을 텐데.....' 아침부터 긴장을 해대서인지 눈이 감기기 시작하자 몸을 일으켜 대충 씻고 욕실을 나섰다. 역시나 침대 위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퍼대 자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오고........... "빌어먹을 놈.....저런 놈이 황태자는 개뿔.....좀도둑이 딱이구만....." 투덜거리며 침대 위로 올라가 시트를 끌어올리고 옆에서 괴상한 포즈로 자고 있는 녀석의 몸을 발로 쭈욱 밀어버렸다. "이 새끼, 넌 거기서 자....." 침대가 너무 넓어 긴 다리로도 차마 떨어뜨리지 못하고 녀석을 멀리 밀어버린 후 돌아누웠다. 피곤함에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려던 순간........... 어느새 깼는지 아니면 자는 척 하고있었던 건지 유이 녀석이 바로 다가와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켜온다. 목덜미에 얼굴을 부벼대며 능글맞게 슬금슬금 손을 미끄러뜨리는 녀석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응?" "떨어져...." "큭...진짜 혼자 잘려구?!!" "놔......!!" "그냥 이대로 자자...응? 따뜻하게 해줄께....추운 거 싫어하잖아!!" "이 새끼, 또 맞고 싶어? 저리 꺼져!!!" 녀석의 품을 빠져 나오려 버둥거려도 단단하게 옭아맨 팔은 풀릴 생각도 않는다. "하아....씻으니까 좋은 냄새 나네? 제길, 아깐 그 황제 냄새 났었는데....." "이 새끼가 자꾸......!!" 목덜미에 자꾸 키스를 해대는 녀석에게 버럭 화를 내려하자 무슨 생각인지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난다. "젠장......깜빡했다.......!!" 갑작스런 녀석의 행동에 멍하니 바라만 보자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 옷가지를 뒤져 작은 용기를 꺼낸 후 다시 내 쪽을 바라본다. "뭐.....뭐야?!!" 녀석의 심각한 표정에 당황해 올려보자 바로 시트를 확 들춰내 버린다. "무.....무슨 짓이야?!!!" 한낮이라 적나라하게 보이는 알몸을 가리지도 못한 채 빽 소릴 지르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잠시 내 몸을 훑어보더니 쥐고있던 작은 용기를 열어 손에 뭔가를 찍어내 그대로 내 몸에 발라대며 궁시렁대기 시작한다. "빌어먹을........역시 그때 데리고 나왔어야 했는데......그 잿가루같은 자식이 방해만 하지 않았어도.......!!!!!!" 이 자식이 미쳤나.....하는 표정으로 분한 듯 미간을 찌푸린 채 꿍얼대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다 목덜미에서부터 뭔가 발라대는 곳이 화끈거리기 시작하자 얼굴을 구기고 주먹을 꽉 쥔 채 소릴 꽥질렀다. "뭐 하는 짓이야......." "이거......빨리 없애야 될 거 아냐?!! 젠장......" 이까지 갈아가며 대답을 하는 녀석에게 잠시 분노를 누르고 신경질적으로 뭔가를 발라대는 녀석의 손가락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하얀 피부 위에 눈에 확 띄도록 새겨진 붉은 화인이 눈에 들어온다. 하루사이에 얼마나 난리를 쳐댔는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심하게 정사의 자국이 남아있었다. 목덜미에 서너 개는 기본이고 쇄골, 가슴, 아랫배, 허벅지 안쪽 깊숙한 데부터 차마 말로하기 힘든 곳까지......... 온 몸이 붉어져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욕설을 내뱉으며 목덜미에서 가슴을 지나 아랫배에 약인 듯한 연고를 지나칠 정도로 많이 발라대던 녀석이 더 아래로 내려가려 하자 정신을 번쩍 차리고 손목을 움켜쥐었다. "왜? 계속 이런 꼴로 있을 거야?!!!" "씹, 누가?!!! 이리 내!! 내가 할거야!" 입술을 질끈 깨물고 연고를 낚아채 녀석에게 뒤돌아서 쭈그려 앉은 채 신경질적으로 연고를 여기저기 쳐 발랐다. 뒤돌아 앉자마자 뒤에서 으득하고 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거의 약을 찍어 바르자마자 용기를 낚아채 등판에 도배를 하듯 약을 발라대기 시작한다. "그 색골 영감탱이.......도대체 얼마나 해댄 거야?!!!" "색골은 맞는 거 같은데......영감탱이는 심한 거 아냐?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닥쳐!!!! 지금 편드는 거야?!!!" "씹, 누가 편들었다고 지랄야?!!! 작작 좀 쳐 발라!!!!" 결국 얼굴을 제외한 온 몸에 약을 덕지덕지 바르고 신경질적으로 시트로 알몸을 휘감은 채 침대 위로 털썩 누워버렸다. '젠장......빌어먹을 변태새끼.......' 속으로 내가 아는 쌍욕이란 쌍욕은 다 동원해 티폰 녀석을 욕하고 있는데 어느새 유이 녀석이 날 꼭 끌어안은 채 미동도 없다. '이 씹, 또 뭐야?!!!!' 속이 잔뜩 꼬여 도끼눈을 뜨고 올려보자 은빛 속눈썹이 바이올렛 눈동자를 가리고 있고 귓가엔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이 자식이 또!!!" 잔뜩 골난 눈으로 노려봐도 눕기만 하면 퍼대 자는 녀석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능글맞은 녀석답게 잠버릇은 잊지 않았는지 당연하다는 듯 내 엉덩이에 손을 척하니 올린 채.......... 한참동안 궁시렁거리며 아직도 엉덩이에 머물러있는 녀석의 손을 탁 쳐내고 다시 대상을 바꿔 유이 녀석의 욕을 해대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의심을 가득 품은 눈으로 녀석을 올려봤다. '가만.....이 자식 혹시 자는 척 하는 거 아냐?' 한참동안 녀석을 노려보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잠자는 미친놈 건드렸다 똥물 튈라......' 녀석의 잠버릇은 더럽다. 아주 많이...... 그것도 비몽사몽 할 땐 최악이다. 여잔 줄 알고 가슴이고 엉덩이고 더듬어대면 아주 미친다. 깨울려면 확실히 깨워야지 반쯤 깨워놓으면 순식간에 더러운 체험을 할 수가 있다. 그나마 티폰 녀석은 예민하긴 해도 강아지처럼 얌전하게 잤는데..... 하긴 그것도 일을 치룬 후의 얘기지만...... 그 녀석도 아침에 한다고 설쳐대니 유이 녀석과 다를 바 없군...... 술버릇도 그렇고..... 그러고 보니 이 녀석도 잠버릇뿐만 아니라 술버릇도 만만치 않다. 인사불성으로 마시면 붙들고 늘어져 키스를 해대는데..... 처음 이 녀석과 내기를 했을 때 녀석이 마신 것은 음료수가 아니라 술이었다. 술만 마시면 그 지랄을 해대 아지트에 있는 녀석들도 껴안고 부벼대도 그냥 넘긴 거였다. 두 녀석 다 많이 달라 보이지만....... 미묘하게 닮았다..... 가라앉은 눈으로 나이에 맞지 않게 새근거리며 자고있는 유이 녀석을 올려보다 생각을 털어 내 버렸다. '이 새끼.....평소 행실이 어쨌길래 술만 마시면 그 지랄로 망가져........' 왠지 그 동안 당한 게 분해 자고있는 녀석의 머리를 거세게 쥐어박자 부시시 흐린 눈을 뜬다. "으응.........?" '헉.....' 또 더러운 잠꼬대를 할 새라 흠칫 놀라 그 동안 경험으로 알아낸 대로 녀석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조용히 자는 척을 하자 팔에 힘을 줘 꼭 끌어안더니 잠잠해진다. 다시...... 제것인양 내 엉덩이에 손을 올려놓는 것도 잊지 않고...... 으득....... Rubera(루베라) #128 눈을 뜨자 기가 막히게도 주위가 어둡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힌 건 여전히 죽은 듯 자고 있는 유이 녀석..... 아침부터 한번도 깨지 않고 온 종일 잠을 잔 것...... 그 동안 밤일(?)을 하느라 낮에 잔 적은 많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유이 녀석 때문에 긴장이 너무 풀린 듯 하다. 여긴 엄연히 그 녀석이..... .....티폰이 있는 황궁 안인데...... 바르작거리자 유이 녀석이 은빛 속눈썹을 들어올려 잠이 가득 담긴 바이올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키르......왜.....? 더 자....." '이 빌어먹을 자식!!' 어젯밤........ 난 티폰 녀석을 기다리느라............ '젠장.......'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이 자식이 왜 나보다 더 퍼대 자는 거야?!!!' 다시 눈을 감고 더 자라는 듯 등을 쓸어주는 녀석에게 기가 막혀 가슴을 밀쳐내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자식, 언제까지 잘 거야?!!" 결국은 할 수 없다는 듯 녀석이 눈을 뜨자마자 문밖에서 시종인 듯한 자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아이야드 저하...." "뭐야....?" 잠이 가득한 목소리로 짜증을 내며 싸가지 없이 대답하는 녀석의 머리를 거세게 쥐어박자 머릴 움켜쥐고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날 바라본다. "이 자식 똑바로 못해?!!!" "뭐가? 난 원래 이랬단 말야...." "이 미친놈!! 그게 왕족이 쓰는 말투야? 왕족이라고 뻥까지 쳤으면서 그 따위로 행동하면 하루도 못 버티고 뽀록나잖아!!! 제대로 하지 않음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원래 이랬다니......" "닥쳐!!!" 눈을 부릅뜨고 위협하자 뭐가 그리 불만인지 궁시렁댄다. 안에서 말하는 소린 들릴 턱이 없는 시종이 다시 말을 잇기 시작하고...... "하르바르트 폐하께서 오늘 저녁 황실파티에 두 분을 청하셨습니다...." '뭐?!! 그 자식......파티엔 나가지 않는다고.....' 놀란 눈으로 유이를 바라보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문 저편을 노려본다. "어쩌지?" 이 나라 안에서 황제의 청을 감히 거절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젠장, 기어코....." 한참을 생각하더니 녀석이 날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넌 파티에 나가지마. 나 혼자 나갈 테니까 침실 안에서 꼼짝도 하지 말고 잠이나 더 자. 황제한테는 아프다고 둘러댈 테니까....." "하지만....!!" "걱정마.....이왕 가는 김에 크리올라랑 귀족들 분위기도 좀 살펴보고........ 어쨌든...... 내가 다 알아서 할께........" 녀석이 불안하게 바라보는 날 보더니 걱정 말라는 듯 새하얀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상체를 일으키자마자 시종들이 기척을 내며 잔뜩 들어와 옷가지며 필요한 물품들을 침실에 딸려있던 작은 방 안에 모두 정리해 놓고 조용히 사라졌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유이 녀석이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시종들이 옷을 쌓아둔 곳으로 향한다. "역시.....철저한 인간이군....." 가만히 누워있다 궁시렁거리고 있는 유이 녀석에게 다가가자 작은 방안에 가득 들어찬 화려한 옷가지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키르....파티에 뭐 입고 갈까?" "저거....." 녀석의 말에 색색의 옷들을 쭈욱 훑어보고 은은하게 금빛이 도는 옷을 가리키자 씨익 웃으며 날 바라본다. "헤헹....역시 마누라가 최고라니깐!!" "미친놈...." 녀석에게서 눈을 돌려 한켠에 쌓아둔 옷 중 유색 진주가 박혀있는 아이보리색 잠옷 하나를 손에 들자 뒤에서 유이 녀석이 다가온다. "옷 입으려고? 킥, 이대로도 좋은데...." '이 자식이 뭘 쳐 먹고 자꾸 이 지랄야?' "어딜 쳐다봐?!! 눈 깔아!!" "왜? 매일 보는 건데 부끄러워하긴........" '지랄.....상대를 말아야지.....' 무시해 버리자 잠잠하던 녀석이 손을 뻗어 등에 새겨진 은빛 문장을 쓰다듬는 바람에 흠칫 몸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티폰이 이걸 보고 뭐라고 했던 것 같은...... "도대체 뭘 새긴 거야?" 한동안 침묵을 유지한 채 문장만 쓸어보는 녀석에게 듣기를 포기하려던 순간 작게 중얼거린다. "뮤즈니안 황가의 문장.......뭐, 루베라 만큼 지독하진 않지만 나름대로......내꺼라는 표시....." "뮤즈니안........황가?!!!!" 그러고 보니 녀석이........티폰이.........황가의 소유 어쩌고 한 것 같은............. 녀석을 돌아보자 뒤돌아선 녀석의 탄탄한 등엔 나와 같은 은빛 문장이 새겨져 있다. '황가의.......문장이라니.............설마.........' "너............. ............니놈이 진짜 뮤즈니안의 황태자란 놈이냐?!!" 경악한 시선으로 녀석을 바라보며 소릴 꽥지르자 작게 한숨을 쉬며 날 돌아본다. "하아.......이제야 눈치 챈 거야? 아까도 말했잖아.........아이야드 유이혼 뮤즈니안이라고........" "마......말도 안돼!!! 그거 뻥 아니었어? 너같은 팔푼이 자식이 황태자.....?!!!! 그....그럼.....설마 도둑질 같이 했다는 시온 녀석 친구란 것도........" "큭, 나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서는 녀석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이 썩을 자식, 지금까지 날 속여?!!!" 따악!!!! "윽........." 꽉 쥔 주먹으로 은빛 머리칼 위에 강하게 꿀밤을 먹이자 아픈지 머릴 움켜쥐고 바이올렛 눈동자에 불만을 가득 담은 채 중얼거리며 날 바라본다. "속인 건 아닌데......." "웃기지마!!! 도대체 왜 그런 곳에서 도둑질이나 하고 있었던 거야? 가출 청소년이냐?!!" "가출 청소년? 그게 뭐야?" "씹, 알고 싶은 게 왜 그렇게 많아?!!" 애매한 표정을 짓는 녀석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바락 소릴 지르자 꿀밤 맞은 자리를 쓸어대며 더 이상 묻질 않는다. '이 자식.....키리안 숲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사라진 것도....... .......황궁으로 돌아가려고 그랬던 건가......?' 그러고 보니....... 시온이 내게 줬던 푸른 단검..... 그것도 분명 뮤즈니안 황궁에서 훔친 거라고......... 게다가 날 살리기 위해 먹였다는 약도....... '하, 자기 집도 털은 놈이군......' 어쩐지...... 다방면으로 박식한 녀석을 평범한 도적단의 두목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귀족들을 털 때도 재물에 집착하기보다는 순전히 즐기기 위해서였던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귀족적인 얼굴과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일 한번 해보지 않은 듯 굳은 살 하나 없던 매끈한 손을 보면 한 번쯤 의심했을 만도 한데..... 팔푼이 같은 녀석의 가벼운 행동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던 거다. '감쪽같이 속았군......' "그럼......너......... 결혼식 끝나면........ ..............뮤즈니안 황성으로 돌아가는 거야?" 아프다고 징징대는 녀석을 무시하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잇자 잠시 가라앉은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을 꺼낸다. "키르, 잘 들어....나한텐 니가 크리올라 황제의 루베라가 아닌 것처럼 나도 너한텐 뮤즈니안의 황태자 따위가 아니야..... 그냥 키리안 숲의 도적단 두목 유이라고....넌 내 마누.....아........아니, 파트너고.......바뀐 건 아무 것도 없어....." "그렇게 간단한 게....." "간단해.....평소엔 둔하면서 왜 이렇게 생각을 깊게 하는 거야? 오래 살려면 편하게 생각해...." 별로...... 티폰이나 시온이 왕족이든 황제든 상관없었던 것처럼..... 이 녀석이 황태자든 도둑이든 상관없는 건 마찬가지..... 하지만....... 이 녀석이 도둑질을 하며 계속 키리안 숲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건 확실한 사실...... "지금은 니 파트너일 뿐이야....몇 년 후엔......황성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땐 너도 함께야..... 황성에 들어가면......절대 내보내주지 않을 거야....... 내 곁에만 있어....... 그러니까........ 그때 까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실컷 즐겨둬....... 다시는 볼 수 없을 테니......." "뭐? 싫어!! 내가 왜?!! 난 돈이나 벌면서 숲에서 혼자 살 거야!!" "절대............혼자 두지 않아........" "혼자서도...............잘 할 수 있어......." "내가 싫어............." "상관없어......." "큭, 그럴 줄 알고 지금 이런 내기 하고있는 거잖아....." '제길, 니놈이 이겨도 내가 따라가나 봐라....' "도망칠 생각하지마" '쳇, 이 새낀 눈치만 100단이군........' 속으로 궁시렁대자 녀석이 다시 얼굴을 펴고 빙글대는 낯짝으로 날 바라본다. "파티에 나갈 준비나 해볼까!! 킥, 크리올라엔 예쁜 여자들도 많겠지?!!"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을 바라보다 그때까지 손에 들고만 있던 잠옷을 꿰어 입었다. "누굴 꼬시든 상관없지만 사지가 잘려서 죽고싶지 않으면 황제의 약혼녀는 꼬시지마.... 그 자식.....자기 것에 손대는 거 병적으로 싫어한단 말야...." "뭐야? 황비 후보만 아니면 내가 누굴 꼬시든 상관없단 거야? 꽤 차갑네...." "니놈이 누굴 꼬셔서 구르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술 퍼먹고 와서 귀찮게 하면 창 밖으로 던져버릴 줄 알아!!" "하아....이렇게 예쁜데 성깔은....." "미친놈.....예쁜 거 좋아하시네....눈알 색깔도 괴상하더니 시력도 안 좋은가보군....." "큭, 모르나본데 내 눈은 정확해.......!!" "퍽이나....." 녀석을 바라보자 어느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금빛이 도는 화려한 옷을 걸치고 서있다. '입만 다물면 진짜 왕자님인데 말야.....' 자다 일어난 어린아이처럼 삐죽삐죽 서있는 은발을 잠시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자 다시 내게 다가와 이리저리 날 훑어본다. "딱 맞네........" "씹, 잠옷에도 보석이 박혀있어....!! 나중에 다 쓸어가 버려야지......" "하아...........키르...........니가 집착하는 건 돈하고 보석밖에 없는 거냐......." "그럼, 뭐가 더 필요해?!! 역시 돈이 최고야......다른 건 다 필요 없다니까......." 궁시렁거리며 진주가 박힌 잠옷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녀석이 한참동안 날 바라만 보다 다시 말을 툭 던진다. "그럼......뮤즈니안 황실에 있는 보물 다 줄 테니까 도둑질 때려 치고 뮤즈니안 황궁으로 들어가서 내 침실 안에만 있어!! 어때?" "뭐? 다가 얼만큼인데?" 잿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올려보자 회심의 미소를 몰래 지어 보이곤 바이올렛 눈동자를 맞춰온다. "평생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잔뜩............." "어디에?" "흐음.......이건 비밀이지만.........황궁 지하 보고에........." "지하..............?" "어때? 생각 있어?" "좋아!!!" "정말?"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듯 바라보는 녀석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중에 훔치러 가자!!" "뭐?!!! 키르!!!!!!!! 너 내말 다 들은 거야?!! 또 보석 얘기만 홀랑 들은 거냐?!!!" "뭐.........뭐가?" 멍한 표정으로 되묻자 한숨을 푹푹 쉬어댄다. '왜 저래.........?' 허무한 표정으로 골이 난 듯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다가가 손을 들어올려 헝클어진 은발을 정리해 주자 얌전히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다 미간을 펴고 고개를 숙여 하얀 머리칼에 입술을 묻는다. "하아...........정말..........저녁 식사는? 배고프지 않아?" 그러고 보니 한참을 굶었다. "젠장, 배고파......." "그럼 시종들한테 음식 들이라고 말해 둘게. 난 먹고 들어올 테니까 혼자 먹어. 뭐 먹고싶은 거라도 있어?" "...................................... .....................김치랑 된장찌개...." "응?" "아냐......아무 거나...." '쳇, 죽었다 깨어나도 못 먹겠지....' 녀석이 갑자기 몸을 끌어당겨 품에 꼬옥 안아온다. "식사 거르지마....겨우 살찌워 놨으니까....." "왜? 잡아먹으려고?" 질렸다는 듯 대답하자 킥킥거리며 말을 받는다. "큭, 먹혀 준다면....그나저나 약 먹은 지 얼마나 됐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하는 말에 퍼뜩 떠올라 녀석을 올려봤다. "한달......조금 넘었어...!!" "이런, 아슬아슬 하겠군....여분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그러고 보니 진짜 머리색하고 눈동자 색 본지도 꽤 됐어....." "응....." 나도..... 진짜 내 모습을 잊었을 정도니...... 그 녀석이야............... 기억까지 잃고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한 거겠지. 유이 녀석을 떼어내고 작은 방을 나와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는 커다란 창으로 향했다. 티폰의 침실과 비슷하게 발코니가 있는 창과 없는 창 여러 개가 나 있었는데 티폰의 침실엔 6개의 발코니가 이 침실엔 4개의 발코니가 나 있었다. 게다가..... 발코니 중 하나로 나가보니 거의 티폰의 침실에 나 있는 발코니와 맞붙을 정도로...... ....가깝다. 가라앉은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보길 한참..... 뒤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돌아서니 유이가 다가와 있다. "저녁식사 다 들여놨어....." "벌써...?" "응....빨리 먹어!!" 어쩐지 녀석의 표정이......어둡다. "왜?" 의문을 담은 눈동자로 바라보자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입을 연다. "너한테 나이브를 먹인 녀석, 이 황성 안에 있을 지도........젠장, 그걸 잊고있었다니....." "응?" 의아한 얼굴로 올려보자 한참동안 날 바라보더니 다시 밝게 표정을 바꾸고 말을 잇는다. "아냐.....너 침실 밖으론 혼자서 절대 나가지 마....무기도 가지고 다니고....아무거나 주워먹지 말고........ 하여튼 노리는 녀석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뭐, 생김새도 많이 바뀌고........... 이젠 황제의 루베라도 돌아왔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만에 하나란 게 있으니....." '노리는 녀석? 무슨 소리야? 티폰을 말하는 건가....?'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다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자 하나 둘 씩 모이던 화려한 마차가 많아지기 시작하고 중앙 홀에서 떠들썩한 소음이 들려온다. "너, 늦은 거 아냐?" "주인공은 원래 늦게 가는 거야...." "지랄......" 한참이 지나도 갈 생각을 않고 나만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서자 아이같이 씨익 미소를 짓는다. "뭐야? 진짜 안 갈 거야?" "잊은 게 있어서....." 갑자기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키고 고개를 숙이다 멈칫 한다. 녀석의 속셈을 알아채고 피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멈춰버려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킥킥대며 말을 잇는다. "기다린 거 같네.....?" "누가!!!!" 녀석을 밀쳐버리려 버둥거리자 팔에 더욱 힘을 주고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바이올렛 눈동자를 맞추고 속삭여온다. "니가....해줘....." '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어쩐지 진지한 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리자 귓가에 뜨거운 입술이 맞닿는다. "싫어?" '젠장......' 그러고 보니 녀석에게 키스해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항상.......받기만 하고........... 내가 스스로 한 적은........ ...........없었다............ 정작...........날 아껴주고 소중히 대해주는 건.............. 이 녀석인데.......... 진지한 녀석의 얼굴을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눈감고 고개 숙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맘이 바뀔 새라 얼른 시키는 대로 한다. Rubera(루베라) #129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는 녀석을 한동안 바라만 봤다. 은실처럼 반짝이는 머리칼............ 깨끗하고 하얀 피부에 단정한 얼굴........ 시원하게 뻗은 은빛 눈썹........ 속눈썹에 가려져 있는 부드러운 바이올렛 눈동자...... 곧은 콧날과 재촉하듯 약간 벌어진 입술....... 마음을 정하고 손을 뻗어 얼굴을 끌어당기자 입술에 가벼운 숨결이 닿아 민감한 피부를 자극한다. 눈을 스륵 감고 긴장으로 살짝 떨리는 입술을 약간 벌려 녀석의 입술에 그대로 포갰다. 맞닿아 오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은 기분이 좋지만...... 어쩐지....... 가슴 한켠에선 심장을 바늘로 찌르듯 쿡쿡 쑤셔온다. 티폰 녀석이랑 할 때처럼 미치도록 심장이 뛰어대지도 않고...... 굉장히 편안한 느낌...... 따뜻한 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하지만........... 왠지 반쯤 포기한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왜인지................. 자꾸 신경을 거스르는 생각에 녀석과의 키스에 집중하려 해도 역시 받는 것과 하는 것은 천지 차이인 듯...... 입술만 겹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한참동안 가만히 녀석의 간지러운 호흡만 느끼고 있었다. '어......어쩌지........?' 심각하게 고민만 해대고 있는데 녀석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작게 킥킥대고 있다. '이.....이 새끼, 비웃는 거야?!!!!' 얼굴을 확 붉힌 채 골이 잔뜩 난 표정으로 녀석의 입술을 꽉 깨물고 촉감 좋은 입술을 혀로 슬쩍 핥자 녀석이 몸을 흠칫 굳혀온다. '이....이게 맞는 건가.........' 녀석의 표정을 봐가며 치열을 쓸어보고 입술을 이로 살짝 깨물어 빨아대자 작은 신음이 귓가에 스친다. '맞는 거 같은데.........' 서툴기만 한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는 녀석이 어쩐지 귀여워 슬쩍 웃음이 나왔다. 약간의 자극에 거칠어진 호흡을 들으며 녀석의 입술만 배회하다 결국 길어지기만 하는 키스에 마음이 급해져 녀석의 입술을 열고 혀를 밀어 넣자 참기 힘들었는지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겨 몸을 바짝 밀착시키고 자신이 다시 리드하기 시작한다. '이....이게 아니잖아........이 자식, 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녀석의 갑작스런 움직임에 당황해 탄탄한 몸을 밀어내려 하자 허리와 등을 단단히 옭아매고 녀석의 입안을 얌전히 차지하고 있던 내 혀를 부드럽게 빨아들이고 이로 자극하면서 각도를 바꾸어 진한 키스를 해댄다. 입안에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게 가득 찬 타액을 삼키려 혀를 물리자 바로 아랫입술을 깨물고 빨아대 무의식적으로 작게 신음을 흘리며 녀석에게 매달리니 슬쩍 입꼬리를 올리고 몇 번 더 입술에 가볍게 키스하더니 겨우 떨어져 나간다. "큭, 내가 받은 것 중에서 제일 서툴렀어......" "하아......비......빌어먹을!! 닥쳐!! 신음소리 낸 주제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노려보자 아쉬운 듯 목덜미에 키스를 해댄다. "너도 마찬가지잖아.......킥, 순진하긴...귀까지 빨개졌잖아.....?!!" "누............누가?!! 빨리 떨어져!!!"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 바르작거리자 팔로 꼼짝도 못하게 옭아매고 뺨에 얼굴을 부벼대더니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그래도 지금까지 받은 것 중에서 제일 좋았어...." "우...웃기지마!! 바람둥이 새끼, 빨리 꺼져버려!!" 씩씩대며 녀석을 밀쳐내자 밉살맞게 빙글거리며 떨어져 나간다. "나 올 때까지 자지 말고 기다려...." '지랄....애 새끼 같긴.....' 가만히 날 바라보던 녀석이 갑자기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더니 돌아선다. "갔다올께....큭, 말썽부리지 말고 얌전히 있어" "빌어먹을 자식....." 가만히 미소짓다 녀석이 나간 후 침실 안으로 들어서려던 순간 시야에 언뜻 스치는 붉은 빛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니 녀석이....... 황제의 침소에 난 발코니에서 차갑게 식은 붉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흔들리는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다 심홍색 눈동자에서 시선을 피해버렸다. '씹, 타이밍도 좋군..........' 오늘 아침, 분명 다짐을 했다. 피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대하듯............. 너무 가깝지도..............너무 멀지도 않게............. 마인드컨트롤이라도 하는 양 속으로 중얼대며 고개를 돌리다 자신의 눈동자만큼이나 붉은 피가 베어 나오는 녀석의 손에 시선을 박았다. 하얗게 핏기가 가실 정도로 꽈악 움켜쥐어 그날 밤 검날에 베인 상처에서 피가 베어 나오고 있다. "상처가............" 놀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을 꺼내도......... ........미동도 없이 나만을 바라본다. '젠장.........이럴 땐 어쩌란 거야?' 분명 다른 녀석이 저렇게 다쳐 피가 줄줄 흐른다면.................. '당연히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지............' 침실 안으로 돌아서 들어가면서도 꽉 움켜쥔 주먹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것이 눈에 밟힌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악!!!!!!!!! 왜 자꾸 이러는 거야?!!!!"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소릴 질러대다 결국 유이 녀석의 옷자락을 뒤져 아까 내 상처를 치료할 때 썼던 약과 물 묻힌 천을 손에 들곤 마음씨 고운(?) 내 자신을 탓하며 다시 발코니로 발을 내딛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여전히 미동도 없이 녀석이 서있고........... 한참을 뭉기적거리며 녀석에게 다가가 발코니 사이로 손을 뻗어 녀석의 손을 휙 낚아채 끌어당겼다. 얌전하게 딸려오는 손을 살펴보니 거의 아물어가던 상처가 터져 피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나오고 있다. 그날 밤............ 얼마나 검날을 쌔게 쥐었는지 상처가 꽤나 깊다. '젠장.......손가락까지 잘릴 뻔한 거 아냐?!!!! 그 돌팔이는 도대체 어떻게 치료한 거야?!! 이 미련한 새끼.....!! 다쳤으면 붕대라도 감고있을 것이지.....!!' 지금까지 이렇게 큰 상처를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의 둔한 신경에 욕을 쏟아 부으며 물에 적신 하얀 천으로 상처를 깨끗이 닦아내자 금새 붉게 물이 든다. '왜......... 날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화난 눈으로 노려보는 거야............?' 녀석의 앞에서 유이 녀석이 그 정도로 못을 박아뒀으니 키스는 물론 잠자리에서 끝까지 갔다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텐 데도 이 녀석은 키스 한번 가지고 시베리아의 칼바람보다도 무시무시한 한기를 뿜어대고 있다. 쉽사리 멈추지 않고 피가 베어 나오는 손을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만보다 가만히 고개를 숙여 상처에 입술을 갖다대니 녀석의 손이 살짝 굳는다. 유이 녀석이 이렇게 하면 상처가 더 쉽게 낫는다고 했으니......... ........믿을 만한 소린 진 잘 모르겠지만......... 따뜻한 혀를 내어 상처를 쓸어보자 비릿한 쇠 맛이 입안으로 확 번진다. 피가 어느 정도 멈출 때까지 손바닥 여기저기 생겨있는 상처를 입술과 혀로 조심스럽게 쓸어주고 유이 녀석이 가지고 있던 하얀 가루약을 상처 위에 꼼꼼히 뿌렸다. 붕대가 없어 이리저리 둘러보다 결국은 잠옷에 치렁치렁하게 매달려있는 비단 매듭하나를 끌러 상처를 단단히 싸매자 거의 치료는 끝났고....... 무시무시한 눈빛과 어색한 침묵에 가만히 녀석의 손을 내려놓고 뒤돌아 서려던 순간 그대로 내 몸을 발코니 난간 위로 끌어당겨 입술을 덮어왔다. 거부할 틈도 없이 뜨거운 열기가 입안으로 밀려들어온다. 몸을 빼내려고 버둥거려봐도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체중이 모두 녀석에게 쏠려있어 쉽사리 밀어내지도 못한 채 녀석에게 안겨있었다. 공포에 굳어버린 몸과는 달리............ ........심장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없이 뛰어댄다. 이것이............ 유이 녀석과의 키스와 다른............... 미친 듯 내달려서 아플 정도의 심장박동............. 화가 난 듯 거칠게 입술을 부비고 잡아먹을 듯 하는 키스에 몸을 떨었다.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 녀석을 잡고있던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하자 격하게 입안을 휘저어대던 녀석이 갑자기 멈칫 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어온다. 아무런 생각도 못한 채 패닉상태에 빠져 떨리는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을 내뱉으며 그렇게 안겨만 있자 고개를 숙여 내 눈동자를 바라보며 다시 가만히 입술을 포개온다. 방금 전 격한 키스는 꿈인 듯.......... 부드럽게 입술을 빨아들이고 혀를 감아온다.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은 내 것이 아닌 듯....... 그저 멍한 잿빛 눈동자로 심홍색 눈동자를 바라보기만 하자 각도를 바꿔가며 깊이 탐하던 입술을 떼어내고 품안에서 가늘게 떨어대는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내겐 이제............. ..........반응조차 보여주지 않는군............" 귓가에 닿아오는 낮은 목소리가......... 꿈결인양 희미하게 스쳐온다. "그 녀석을........뮤즈니안의 황태자를...... 정말............사랑하는 건가.......?" '사.......랑........?' 혼란스런 목소리가 귓가에 닿아오자 눈을 감고 차갑게 속삭였다. "난....... ......사랑 같은 건...... .......하지 않아.........." 이 녀석을 사랑해 봤자......... ...........다 소용없는 일................ 이미............. .........내 손에서 벗어나 버렸다. 게다가 내겐................. "그런데 왜........" .........애초에 이 녀석을 사랑할 자격조차................... ...............없다. "넌 그날........ .......날 사랑해서 안은 거였어? 니가.......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었잖아..........." 역시........ 말이...... .....없다. "......소중해....... ...그 녀석은........." '그래.....................지금의................... ..........................너보다..................' 눈을 뜨자 녀석의 뒤편에 까만 꼬마녀석이 보인다. 순진한 얼굴............. 확실히................. 내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과거의 내 모습과 닮아있다. 녀석이 속아버린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날 노려보는 까만 눈동자 속에 세속에 찌들은 더러움을 숨기고 있지 않았다면 나조차 속아버릴 만큼......... '바보 같은 자식.........!! 잘도 속아 넘어 갔군.........' 꼬마 녀석의 눈동자에서 초조함이 베어 나오기 시작하자 날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는 녀석을 거칠게 밀어내고 난간에서 뛰어내려 차갑게 돌아섰다. "니 루베라한테나 돌아가.............나한텐 신경 쓰지 말고..................." 대답도 듣지 않고 침실로 들어와 보니 테이블 위엔 혼자 먹기엔 벅찰 정도로 음식이 잔뜩 쌓여있다. 한참동안 음식들을 바라보며 넓기만 한 침실 한 가운데서 멍하니 서있다 결국 자꾸만 목이 매여오는 걸 무시해 버리고 억지로 음식을 대충 우겨 넣었다. 약간 더운 날씨에 잠옷을 벗어버린 후 침대 안으로 파고들자 열어둔 창을 통해 중앙 홀에서 울려오는 음악소리가 풀벌레 소리와 함께 들려오고 은은한 달빛이 침실 안으로 새어들어 온다. Rubera(루베라) #130 다음날 아침..... 어제 하루종일 잠만 자서인지 평소보다 일찍 눈을 뜨니 역시나 유이 녀석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아이처럼 새근대며 잠을 자고 있었다. '젠장, 숨막히잖아, 이 자식......!!' 꼼지락대며 녀석의 품을 벗어나려 하자 놓아주긴 커녕 더욱 쌔게 끌어안고 잔뜩 잠에 취한 목소리로 중얼댄다. "하아.....키르....벌써 깼어....?" 눈도 뜨지 못하고 웅얼대다 다시 잠에 빠져드는 녀석과는 달리 난 방금 전부터 밖에서 들리는 시끌벅적한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시온님, 이곳엔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나는 예외야.....!!" 쾅하고 거칠게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침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화들짝 놀라 시트를 머리 끝까지 덮어썼다. '뭐.....뭐야?!! 저 자식이 여긴 왜?!!!' "유이!!" '유이?!! 저놈이 이 자식을 왜 찾아?!! 참, 이 자식.......친구라고 했지.....!!' 오랜만에 들어보는 시온의 목소리에 한동안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가까워지는 발자국소리에 놀라 유이를 쿡쿡 찌르자 뒤척이기 시작한다. "키르.....더 자....." 자신을 찾으며 고래고래 소릴 질러대는 시온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지 일어날 생각도 않고 내 머리를 끌어당겨 가슴에 바짝 안아오는 녀석에게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버둥대며 겨우 벗어나자 시온 녀석이 바로 침대 앞까지 다가왔는지 지척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이!! 너 아직도 자는 거야?!! 변한 게 하나도 없군....." '헉.......!! 어....어쩌지?'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어 시트를 꼬옥 움켜쥐고 다시 유이 녀석을 노려봐도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는다. '이 자식이 정말.....!!!!' 시온 녀석의 소란엔 눈도 뜨지 않고 손을 뻗어 내 몸을 끌어당기려고 침대 위를 더듬는 녀석의 복부를 있는 힘껏 걷어차 침대에서 떨어뜨려 버렸다. '이 새끼, 너 찾잖아!!' 우당탕 굴러 떨어지는 소릴 뒤로하고 시트를 뒤집어 쓴 채 뒤돌아 눕자 짧게 비명을 지르며 평소와 같이 불만스럽게 투덜대기 시작한다. "흑, 아파.....키르!! 좀 부드럽게 깨우면 안돼?!! 제길....키스라도 해주면 벌떡 일어날 텐데....폭력적이긴..... 킥.....귀여워죽겠다니까........" '미친놈이 아침부터 또 터질려고.....!!' 시트 속에서 이를 부득부득 갈고있는데 다시 시온 녀석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온다. "뭐야? 혼자 있던 게 아니었어? 이 난봉꾼 자식!! 또 여잘 끌어들인 거냐? 이번엔 또 누구야?" "내 마누라........" "뭐?!!!" '저 자식이 또 무슨 개소릴....!!' "잠자리 상대가 아냐.....그러니까 함부로 대하지마...." 녀석이 다시 침대 위로 올라오더니 내 몸을 꼬옥 끌어안아 온다. "하, 이번엔 진짠가 보네? 얼굴 좀 보자!!" "안돼!!" 맛있는 것을 뺏기지 않으려는 애새끼처럼 내 몸에 착 달라붙는다. "쳇, 치사하긴.....무슨 색이야? "흰색....." "흰색이라.........꽤 특이하잖아? 대륙 북쪽에서 데려온 거야? 그렇게 예뻐?" "당연하지....!!" 단박에 경계를 누그러뜨리고 자랑스럽게 대답하는 녀석의 정신연령이 의심스럽다. "얼만큼?" "지금까지 본 중에서 제일!!" '놀구있네.....' 유치원생 수준의 대화를 듣고있으려니 짜증이 솟구친다. "그것 때문에 침실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한 거냐? 중병이군....." "너도 이제 여기 함부로 들어오지마!! 몇 달 동안 잘 먹지도 않고 침실에만 박혀있었다더니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온 거야...." '먹지도 않고...........침실에만 박혀있어? 왜? 설마......그래서 황제의 약혼식 행렬엔 얼굴도 보이지 않은 거야?' "이 자식.....갈수록 가관이군.....오랜만에 본 친구한테 할 소리냐?!! 그렇게 얼굴 보여주기가 아까워?" "당연하지!! 보면 닳는단 말야!! 도대체 왜 온 건데?" "미친놈.....완전 팔불출 다 됐군......너.....지난번 황제의 침소에 침입한 도둑이 너 아냐?!! 내 물건 돌려줘!! " "무슨 소리야?" "몰라서 물어? 내 사파이어 목걸이도 가져갔잖아! 장난 그만 치고 내놔!! 중요한 거란 말야!!" "사파이어.....?" 잠시 중얼거리던 유이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퍼뜩 말을 잇는다. "잘못 짚었어....내가 아니야.....황제한테 못 들은 거냐?" "듣기는커녕 도둑 잡겠다고 병사들 다 풀어선 온 수도 안을 뒤지더니 그 후론 깜깜 무소식이야..... 물어도 병사들이 입도 벌리지 않고....젠장....!!" "그래? 암튼 난 아냐......결혼식 축하사절로 온 것 뿐이야.....어쩌다 결혼식까지 이 곳에 머물게 됐지만......." '능청스럽긴.....' "결혼식까지.....머물러? 왜? 그딴 건 딱 질색인 주제에?" "몰라.....황제가 결혼 끝날 때까지 축하사절 대표로 머물래....." '잘도 속여넘기는군.....' "하, 황제폐하께서 이곳에 머물라고 청을 넣으셨다? 죽을 때가 되셨나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형님한테 할 소리냐.....' "뭐야....황제의 약혼식 때도 참석하지 않더니.....큭, 꼼짝 못하던 형님한테 반항이라도 하는 거냐....?" "닥쳐!!" "그런데.........황제가 미치다니? 무슨 소리야?" "젠장....도둑이 든 날 밤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지워져 버렸더군...... 그것도.....잊으면 안 되는 녀석에 대한 기억만..... 자신이 의식적으로 지운 건지.....아니면 도둑이 무슨 약이라도 쓴 건지...... 어처구니없게..... 좀 더 괴로워했으면 했는데 결국은....... 어젠 또 루베라랍시고 이상한 녀석까지............ 큭, 어머니처럼...............정말 미치기라도 한 건가....." '뭐........?' "어쨌든 그래서 너한테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겸사겸사 물으러 온 건데......." 어쩐지 어울리지 않게 냉소적인 말을 쏟아내는 녀석이 낯설기만 하다. "안됐지만....그날 밤 일은 나도 몰라....." "빌어먹을........그럼 그 도둑은......잡을 수 없는 건가......" 풀이 죽은 듯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뭐야? 사파이어라면 차고 넘치도록 있잖아!!" "그딴 거랑은 달라.....그나저나 왜 녀석의 보석만.....훔쳐간 거야? 대체....." '씹........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것도 적당히 훔치는 건데.......' "근데, 유이!! 정말 저 여자 안 보여 줄 거야?" '누가 여자야........?!!!!' "응....!!" "왜?!! 나한테 뺏길까봐 겁나? 평생 그렇게 숨겨놓을 생각이냐?!!" "큭, 네놈한텐 안 뺏겨.......내가 뮤즈니안 황제가 되면 보여줄게....." "황비라도 삼을 생각인가 보지?" "공주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뭐?!!!" '이 새끼, 무슨 농담이야?!!' 귓가에 울리는 시온의 놀란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리자 어쩐 일인지 계속해서 침묵이 주위를 감싼다. 한참 후에나 들려온 목소리는 시온의 것...... "정말......진심이야? 하.......네놈이? 놀라 뒤집어지겠군......큭, 진짜 궁금해지는데......? 어떤 여자길래 뮤즈니안 황제도 손들었던 니놈 바람기를 잠재운 건지..... " "신경 꺼....이젠 이 침실로 찾아오지마...차라리 내가 갈 테니까...." "흐응~ 그렇게 소중하단 말이지? 어쩔까.........?" 잠시 말이 없던 시온 녀석이 퍼뜩 말을 꺼낸다. "너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옷이나 입어! 황태자란 녀석이 홀랑 벗고는......" "응? 아...." 그제야 생각난 듯 녀석이 침대에서 일어서는지 침대가 출렁이고...... '저 멍청한 자식!! 이 자식도 데려가!!!!' 유이 녀석의 발걸음소리가 멀어지는 걸 들으며 속으로 절규하자 계속해서 들려오는 건 시온의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 "큭, 단순한 놈.........여전하군....... ........왜 숨는 거야? 설마 또 자는 건가? 왕족이 왔는데 일어나지도 않고.....꽤나 애지중지했나보네...." '왕족?!! 개 풀 뜯는 소리하구 자빠졌네.....젠장, 나불대지 말고 저리 꺼져!!' 속으로만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없는 일...... 녀석이 침대 위로 올라섰는지 침대가 흔들리더니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들려온다. "어디 저 바람둥이 자식 바람기 잡은 대단한 여자 얼굴이나 한번 볼까?" '뭐?!!' 놀라 몸을 흠칫 굳히자마자 시트를 잡아채 확 걷어버려 하얀 알몸이 밝은 아침 햇빛 아래 전부 드러났다. "아......" 놀랐는지 등뒤에서 작게 감탄사가 터져 나오고..... "여자가.....아냐....?" 당황한 듯 바라보더니 기어코 얼굴을 보려는지 벗은 어깨에 녀석의 손이 닿아와 흠칫 떨자마자 손쓸 틈도 없이 몸이 돌려져 녀석과 얼굴이 마주치고 말았다. "너......." 흔들리는 가넷 빛 붉은 눈동자가 바로 쏘아져 들어온다. "설마.............. 이럴......수가............ ........살아..... ........있었어......?!!" 떨리는 손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을 쓸어보더니 따뜻한 손으로 얼굴을 가만히 짚어온다. "눈동자가........"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녀석의 눈동자에서 눈도 떼지 못하고 굳어있자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꽉 안아온다. "죽은 줄..... ....알았어......" 귓가에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숨도 쉬지 못하게 끌어안는 녀석을 밀어내자마자 따뜻한 게 입술에 닿아온다. "우......우왓!!!! 너 뭐......뭐...........읍..........." 당황스런 비명이 입안에 묻혀버리고 생각이 미쳐 닿기도 전에 부드러운 것이 입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이전에 녀석에게 받았던 장난스런 키스가 아닌...... 매달리듯 간절하게 해오는 키스에 밀어내지도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녀석의 팔을 꼬옥 잡고만 있자 어느 샌가 뜨겁고 깊은 키스로 바뀌어버려 입안 구석구석을 휘저어대며 자극 해온다. 영원히 놓아주지 않을 듯 숨이 막히도록 입술을 탐하는 녀석을 겨우 밀어내고 고개를 돌려 헐떡이며 거친 숨을 내뱉자 하얀 목에 뜨거운 입술을 찍어누르며 벗은 허리 밑에 손을 넣어 아프도록 품안에 끌어안아 온다. "아........." 갑작스런 녀석의 행동에 당황해 그대로 목에 간지러운 키스를 받으며 작게 소릴 내자 침실 저편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왔다. "시온!!" 화난 듯 시끄러운 발소리가 울리더니 내 몸을 내리누른 시온 녀석의 몸을 거칠게 떼어내고 허리 밑에 겨우 걸려있던 시트를 끌어올려 하얗게 드러난 나신을 가려준다. "무슨 짓이야?!!!" 내게서 떨어져 나간 시온이 유이 녀석의 말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고 놀란 눈만 크게 뜨고있는 날 멍하니 바라만보다 갑자기 얼굴을 확 붉히고 떠듬대며 입을 열어왔다. "미...미안.........하류야.........놀랐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으로 손을 뻗어 내 얼굴을 만지려던 순간 유이가 손을 탁 쳐내며 소릴 꽥 질러댄다. "손대지마!! 누가 하류라는 거야?!!" 유이 녀석의 말에 흠칫 놀라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녀석이 잠시 후 얼굴을 구긴 채 유이를 노려보며 화통 서너 개는 삶아먹은 목소리로 바락바락 악을 써댄다. "속일 생각하지마!! 황제는 속였을 지 몰라도 나는 어림없어!! 이 자식!! 도대체 하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머리카락하고 눈동자가........... 그 미친 의사놈한테 훔친 약이라도 쓴 거냐?!!" '정확하군.......' 어렸을 때부터 알던 친구라더니 속일 틈도 없이 화가 나 말을 쏟아내는 시온을 보고 한숨을 쉬어버렸다. '티폰은 기억을 잃어서 속일 수 있었다 쳐도 이 녀석까진........ .....무리인가......' "이 바람둥이 새끼!! 니 놈이 왜 하류랑 알몸으로 같은 침대에서 자는 거야?!! 설마...... .....손이라도 댄 건 아니겠지.....?!! 이 새끼!! 죽여버릴 거야!!!" 길길이 날뛰는 시온녀석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온다. "웃기지마!! 이젠 키르라구!! 내꺼란 말야!!" "닥쳐!! 누가 니꺼란 거야?" "그럼 누구껀데? 크리올라의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것인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주위가 차갑게 식기 시작한다. '빌어먹을 애새끼같은 것들이.....끼리끼리 논다더니......' "닥치고 꺼져!!!!" 참지 못하고 바락 소릴 지르자 퍼뜩 정신을 차린 두 쌍의 눈동자가 내게 꽂힌다. '젠장할.....하나만 있어도 시끄러운 놈들이 둘씩이나.....' 신경질적으로 몸에 감긴 시트를 걷어내고 침대 위에서 일어서 옆에 떨어져 있던 잠옷을 꿰어 입자 내게서 떨어질 줄 모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 "이.......이 새끼, 하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하얀 알몸을 보고 얼굴을 붉히던 시온 녀석이 몸 여기저기 새겨진 화인을 보고 단박에 얼굴을 구긴 채 소릴 지르자 유이 녀석이 으득 이를 갈고 발악을 해댄다. "이 빌어먹을!!!! 내가 한 게 아냐!!! 니놈의 그 잘난........" '이것들이 정말......!!' "이 씹, 닥치라고 했잖아!!!!!" 벌컥 화를 내며 뒤 돌아서자마자 시온 녀석이 덥썩 내 몸을 안아온다. "빌어먹을.......도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한 거야?" 시온을 떼어내려 달려드는 유이 녀석을 미간을 찌푸린 채 노려보자 멈칫 해선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못하는 눈으로 바라만 본다. "키리안 숲에서 도둑질......" "도둑질.....?!!!" "유이 녀석이랑......" "뭐??!! 저 자식, 도대체 뭘 가르친 거야?!!!" "왜? 돈도 많이 벌고...... ......재밌었어......." "돈?!! 큭.....여전하군....." 팔에 힘을 줘 숨이 막힐 정도로 안아오자 유이 녀석이 참지 못하고 내 팔을 낚아 채 품안에 넣어온다. "내꺼라고 했잖아!!! 손대지마!" "이 멍청한 자식!! 하류가 누군지 알았으면 얌전히 숲에 박혀있을 것이지 왜 저 녀석을 데리고 크리올라 황성에 찾아온 거야!! 폐하의 기억이 돌아와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날....... 또 죽이려 들 테지........" "하류......." "내가 오자고 했어......황성엔.......내 물건을 찾으러 왔다 붙들린 거 뿐이야..... 2주 후엔....... 티폰이 황비를 맞은 후엔....... ......유이랑 다시 키리안 숲으로 돌아갈 테니까...... 게다가............. .........녀석의 루베라도 돌아왔으니 내겐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루베라라니 너.........................."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흔들리지 않는 잿빛 눈동자를 맞추자 입술을 꽈악 깨물고 유이 녀석에게 시선을 던진다. "이것도...............니놈이 꾸민 짓이냐?" "그래...........맘에 들지 않으면 정신나간 황제한테 이 녀석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나 한 번 말해봐!! 이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나?" 잠시 침묵이 흐르고........... 유이 녀석을 노려보던 시온이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려온다. "역시.....보석은 니가 가져간 거야?" "응......" "이제 아픈 곳은........." "없어......" "그날 밤.......... .......폐하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녀석이 기억을 잃은 날 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사랑한다는 말을 내게 속삭이던 녀석을 뿌리치고........ .....모든 걸....... ........잊으라고 했다. "별로........." "지금은..................... ..............행복해?" 시선을 바닥에 두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없이도.......?" 장난스런 시온 녀석의 말에 고개를 들고 씨익 웃어버렸다. 불만을 가득 담고 시온을 노려보던 유이 녀석이 다시 툭 말을 던진다. "너, 미리 말해두는데 2주 후에 키르랑 한 내기에서 내가 이기면 이 녀석은 온전히 내꺼니까 눈독들이지마......" "내기?!!" "그래!! 한달 동안 황제가 이 녀석을 알아보지 못하면 맘대로 해도 된다고 허락까지 맡았다구!!!" "그게.......정말이야?!!"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시온이 날 바라보자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애초에 이 녀석을 뮤즈니안성으로 보냈을 땐 모두 내게 맡긴 거 아니었어?" "웃기지마!! 루베라를 지우고 보살피란 뜻이었지 니놈한테 준 건 아니었어!!! 게다가 맘대로라니?!!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당연한 걸 왜 물어? 안을 거야....." "이....이 새끼!!!!" 겨우 누르고있던 분노가 폭발한 듯 시온 녀석이 내 팔을 거칠게 낚아 채 끌어당기더니 죽일 듯 유이 녀석을 노려보며 말을 꺼낸다. "이 발정난 새끼.....지금까지 이 녀석이랑 동침한 거냐?!!" "큭, 아직 안아보지도 못했는데 발정이라니 너무한 거 아냐? 그런 소린 2주 후에나 말해야 기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꿈도 꾸지마....가자, 하류....내가 다른 침실 하나 내줄께....." "뭐? 안돼!!! 키르는 혼자 자는 거 무서워한단 말야!!" "누가?!!!" 정신없이 진행되는 녀석들의 대화에 멍하니 서있다 유이 녀석의 말에 열을 내며 소릴 꽥 지르자 내 팔을 잡아당기던 시온 녀석이 잠시 멈칫 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너......" 물론 추운 것도 싫어하고 천둥에 폭우가 내리는 날은 반쯤 미쳐 발광을 해대지만...... "웃기지마!! 누가 무서워한다는 거야?!!" "들었지? 침실이라면 황성 안에 셀 수도 없이 많으니 걱정하지 말고 따로 써....." 반박도 하지 못하고 마냥 서있는 유이 녀석을 뒤로한 채 시온에게 끌려나가는데 갑자기 녀석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선다. "아니지.....왜 하류가 옮겨? 니가 나가!!" 시온이 유이 녀석을 가리키자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녀석이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며 말을 뱉어낸다. "웃기지마!! 키르랑 같이 잘 거야!!" "그래? 그럼 하류는 내 침실에 데려갈 거야!!" "뭐?!!!" "황제폐하의 루베라였을 땐 손도 못 댔는데 잘 됐네. 나도 하류 좀 끌어안고 잠 좀 자보자!! 니 맘대로 해. 니놈이 안 나가면 내가 데리고 나갈 테니까........." "이 자식.....!!" "폐하의 결혼식 때까지 있을 거라면서 네놈 침실 안에 모셔놓고 품고있으면 황성 안에 더러운 소문만 퍼질걸?!!! 가뜩이나 바람둥이라고 나라안에 소문이 자자한 주제에 이 녀석까지 네놈 추문에 끌어들일 생각하지마!!" 시온에게 결국 진 건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어대는 유이 녀석을 한심하단 듯이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고 침대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뭐야? 이 자식들......엄마랑 같이 잘려고 싸우는 애새끼들 같잖아......창피하지도 않나? 시온은 전황비가 일찍 죽었으니 그렇다 쳐도 유이 자식은 한 살이나 더 쳐먹은 게 저 지랄야? 가만...... 그럼 내가 이 자식들 엄마야? 우욱 젠장, 기분 나빠......' 미간을 찌푸린 채 두 녀석을 바라보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던 유이 녀석이 다시 말을 꺼낸다. "저 녀석 내꺼라고 황제 앞에서 공표까지 해놨는데 갑자기 침실 따로 쓰면 의심이나 살껄?" "걱정마! 내가 싸웠다고 전해 줄 테니....." "젠장......!!" 어떻게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는지 비 맞은 강아지 마냥 처량 맞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씹, 이제 다 끝났으면 빨랑 꺼져!! 아침부터 할 일없이 지랄들이야?!!" 불만을 가득 담은 눈으로 바라보며 궁시렁대자 시온이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유이 녀석에게 날카롭게 말을 던진다. "아직 안 끝났어!! 너......하류 등에 새겨놓은 거 뭐야?!!!" "제길, 몰라서 물어? 뮤즈니안 황가 문장이잖아!!" "그 따위 걸 왜 새겼냐고!!" "말했잖아!! 이제 내꺼라고!!" "젠장!! 누구 맘대로?!! 그 미치광이 의사 놈이 새긴 거지?!! 당장 지워버릴 줄......" "그 밑에 뭐가 숨겨져 있는지 잊은 거야?!! 루베라라도 드러나면 다시 황제에게 바칠 셈이냐?!!" "웃기지마!! 다시는....... 황제에게....... ........형님에게 돌려보내지 않아......." '씹, 내가 물건이야? 니꺼 내꺼에 돌려보내고 말고 하게?!!!' 한참동안 티격태격 싸워대는 녀석들에게 지쳐 결국 아침밥도 먹지 못한 채 침대 위로 털썩 드러누워 눈을 감아버렸다. 지겹도록 자던 잠인데도 창을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볕 때문인지 슬금슬금 또다시 잠이 오기 시작한다. "키르, 아침밥도 안 먹고 또 자는 거야?" 한창 시온과 시끄럽게 툭탁거리던 유이 녀석이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더니 손으로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쓸어온다. "으응....저리 비켜.....귀찮아......" 눈도 뜨지 않고 손을 휘젓자 시트를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더니 따뜻한 입술을 맞대온다. "너....!!" 놀란 듯한 시온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키스에 몸이 나른해져 온다. 몽롱한 정신 탓에 반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만 있자 아랫입술을 몇 번 빨며 가벼운 키스만 하다가 떨어져 나간다. "큭, 잘 자......공주님....." 귓가에 조용히 흘러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도 못하고 고른 숨을 내쉬며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Rubera(루베라) #131 잠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점심때가 훌쩍 넘어있었다.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넓기만 한 침실을 여기저기 둘러봐도 잠들기 전까지 곁에서 티격대며 싸우던 녀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커다란 창으로 한낮의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잠옷차림으로 창까지 걸어가 창문을 열고 발코니로 나갔다. 티폰의 침실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어선 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 눈이 부시도록 따가운 햇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색색의 꽃들을 가만히 잠이 덜 깬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데 뒤에서 침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발자국 소리가 지척까지 울려오자 정원에서 눈을 돌려 뒤돌아 봤다. "시온?" "벌써 일어났어?" "유이는?" "그 자식은 1층에 있는 새 침실에 가둬놨어..... 빌어먹을 자식.....애초에 그런 팔푼이 놈한테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뭐, 찾아가기도 전에 만나버렸지만......." '유이 녀석한테 다 들은 건가.......' "정말 이제........ ...........괜찮은 거야?" "응......." 고개를 끄덕이고 가만히 색이 옅은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자 몇 달만에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듯 장난기 짙은 악동의 모습은 던져버리고 따뜻한 눈빛으로 날 내려보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내 뺨을 쓸어본다. "내가........ 마지막에 한 말...... ......기억해?" "..............." '그래.......' "..............." "씹, 몰라!! 그딴 걸 어떻게 기억해?!! 아파서 골로 가기 직전이었는데...." 속마음과는 달리 심술 맞게 툭 던지고 모르는 척 시선을 돌려버리자 햇빛에 반짝여 하얗게 윤이 나는 머리카락을 지분대던 손을 딱 멈추고 가넷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킥, 개차반 성깔은 여전하네.....기억나지 않으면 한번 더 말해줄까?" "필요없.....!!" 갑자기 덥썩 몸을 안아오는 녀석에게 놀라 말을 멈춰버렸다. "하아, 미안.....잠깐만 이렇게 있자....." '시온......' "살아있어서...... .....다행이야......" 귓가를 스치는 붉은 머리카락이 티폰의 것과 닮아있어 스륵 눈을 감아버렸다. 안겨있는 품이..... ....티폰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녀석의 등을 끌어안자 망설임 없이 더욱 팔에 힘을 줘 품으로 끌어당긴다. "큭, 예전엔....... .....손도 못 댔는데....... 전부터 이렇게 한번....... ....안아보고 싶었어....." "같은 사내놈이 왜 안고 싶어?" 툭 내뱉고 삐쭉거리자 킥킥거리며 팔에 힘을 줘 몸을 죄어온다. "아프잖아.........!!" 품안에서 꿈지럭대며 잔뜩 궁시렁대는 나와는 달리 녀석은 기분 좋은 목소리를 귓가에 흘려낸다. "하아.....좋다..... 너....... 못 본 사이에 더 예뻐졌네. 까만 색이 훨씬 더 예쁘긴 하지만..... 지금도 예뻐....." '미친....눈이 썩었군......' "잘생긴 거야............." "큭, 예뻐............" '썩을............사내놈한테 예쁘다는 말이 나와? 이 자식도 유이 녀석이랑 피장파장이잖아. 응? 가만....... 그러고 보니 이 자식........ 조금 마른 거 아냐?' 얼굴도 그렇고 몸도 어쩐지 예전보다 못하다. "흐응~ 유혹하는 거야?" 의식도 못한 사이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의 몸을 더듬어대다 갑자기 귓가에 와 닿는 낮은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손을 멈춰버렸다. "누.........누가!!!!" 무안함에 바락 소릴 지르고 녀석을 끌어안았던 팔을 슬그머니 내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떨어져...." "싫어! 조금만 더.....응?" '이 자식.....!! 그럼 그렇지....' 다시 어리광을 부려대는 녀석을 밀어내자 아쉬운 듯 떨어져 나간다. '씹, 유아기에서 벗어났나 싶더니 이젠 아동기냐?' 조금 전까지의 어른스런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먹을 걸 빼앗긴 애새끼처럼 아쉬움이 역력한 낯짝으로 날 바라본다. "여긴 왜 또 온 거야?" "쳇, 뭐야?!! 그 동안 나 안보고 싶었어?" '애새끼같이 굴긴.........' 대답도 않고 얼굴을 돌려버리자 내 표정을 빤히 바라보더니 기분 나쁜 미소를 짓는다. "뭐.....뭐야?!!" 왠지 기분이 좋아 보이는 녀석에게 뭔가 들킨 것 같아 눈썹을 치켜올리고 노려보자 킥킥대며 말을 던진다. "킥, 아냐......어제 파티에 폐하가 청했는데 아프다고 안 나갔다며?" "응....." "너무 숨어만 있으면 더 의심 살 테니까 되도록 파티엔 유이 녀석이랑 같이 나가..... 니 얼굴 제대로 본 귀족들도 거의 없고 눈동자 색까지 완전히 바뀌었으니......알아보는 사람도 없을 테고...... 일단은 뮤즈니안의 황태자와 크리올라에 방문한 귀족 정도로 되어있어....." '파티.....?' "하지만......." "걱정마.....폐하께선 거의 파티엔 나가시지 않으니까..... 너에 대해선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되도록 접근하지 말고....." "응....."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고개를 숙이자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 화제를 돌린다. "유이 자식은 당분간 얼굴보기 힘들 거야......큭, 크리올라 귀족들도 만나봐야 할 테고.....파티에도 참석해야 하니....." '역시...........바쁜 건가...........' 언뜻 사절단과 함께 와서 처리해야 할 일이 꽤 많다는 소릴 스쳐들었다. 외교문제도 있을 테고......... 이곳 귀족들과도 만나야 한다고 했으니....... "케레스도 역시..............살아있는 거야?" "응..........." "다행이군........" 한결 가벼운 목소리로 시온이 중얼거리듯 하는 말을 흘려들으며 몸을 돌려 정원을 바라보다 언뜻 스치는 생각에 다시 시온에게 시선을 맞췄다. "시온.............." "응?" 가넷빛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려다 다시 꾹 다물어 버렸다. 아까............녀석이 스치듯 했던 말........... 자신과 티폰의 어머니인 전 황비에 대한.......... 알고는 싶지만 이렇게 내가 간단히 물어도 되는 것인지......... "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말하기 곤란한 거야?" 빙글거리는 녀석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 "아니......." "그럼.....질문?" "응..........."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 지 몰라 안절부절 하는 사이 녀석의 손에 가볍게 턱이 들려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막아낼 틈도 없이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개온다. 놀라 피할 생각도 못하고 입술을 열자 입안으로 들어와 혀를 감고 빨아들이다 맛이라도 보듯 구석구석 훑어댄 후 혀를 물리더니 가볍게 입술을 몇 번 찍어누르곤 떨어져 나간다. 녀석의 갑작스런 키스에 말도 못 꺼내고 울컥 해서 올려보자 입술을 슬쩍 말아 올리고 말을 잇는다. "이제 값은 받았으니까 곤란한 질문이어도 대답해 줄게. 뭐야? 빨리 말해봐....." 결국 녀석의 말에 화도 내지 못하고 다시 힘들게 입을 열었다. "저기........아까 한 얘기........전 황비 말야........" "아, 들은 거야?" 의외로 담담한 녀석의 목소리에 얼굴을 들어올리자 약간 어두워진 얼굴로 녀석이 말을 잇는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돌아가셨으니.......나는 물론이고 형님도........얼굴조차 기억 못해....... 그래서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런 표정 지을 거 없어......" "하지만........" "하아.......알고 싶으면 조용히 듣기만 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작게 한숨을 쉰 녀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전대 황제는 루베라가 넷이었어......현 황제에 비하면 엄청난 거지. 게다가 루베라를 새기지 않은 후궁들도 셀 수 없이 많았으니....... 루베라가 많았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고 자신의 뒤를 이을 만한 사내아이를 낳은 여자들에게 새겼던 거 같아. 그 중엔 황비도 포함되어 있었고..... 후궁들도 엄청났으니 사내아이쯤 쉽게 낳아 루베라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거의 하룻밤만 보내고 버려지는 여자들이 태반이었어. 운이 좋아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여자아이일 확률이 더 높았고....... 처음엔 두 여자만이 후계가 될 아들을 낳았어. 선대 황제는 역시 크리올라 황가의 핏줄이라 그런지 소름끼치도록 냉혹한 사람이었다더군. 정치적 능력이 없어 왕권을 튼튼히 할 후계가 필요했기 때문에 황비든 후궁이든 자신의 후계를 낳아줄 도구로만 이용했어. 그리고 결국 황비와 후궁 하나가 같은 해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 중 하나가 형님이고 약간 뒤늦게 후궁이 낳은 아이가...... .................슈안이었어. 처음에 황제는 정실이 낳은 아이든 후궁이 낳은 아이든 얼마간 지켜본 후, 더 뛰어난 아이를 황태자로 삼을 셈이었지. 그런데........... 두 아이를 보자마자 그 생각을 접어버리고 바로 그 중 하나에게 루펜타를 새겨버렸어. 형님에게........... 갈수록 피가 옅어지는 크리올라 황가에서 자신조차 잇지 못했던 붉은 피를 완벽히 이어받았으니까..... 그에 비해서 슈안이란 녀석은 후궁의 외양만을 이어받은 것처럼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하고 태어나 운명이 갈려버린 거야. 결국 현 황제를 선택한 선대 황제의 결정은 탁월했지. 슈안도 뛰어났지만 붉은 황태자는 그걸 훨씬 뛰어넘었으니........ 그 후로 두 명의 여자가 아들을 더 낳았지만 황제의 눈에 차지 않았고 내가 태어난 해에 황비가........... .........어머니가 갑자기 미쳐 목숨을 끊었어. 이유는 소문만 무성하지 지금까지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어. 그 일에 후궁들 여럿이 휘말려 처형을 당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자세한 건 모르겠고........ 이후는 뻔한 이야기지. 황비가 죽어 방패막이가 사라지자마자 황비와 황태자 자리를 넘보던 후궁들에게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어. 그것도 형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 후궁 중 하나를 본을 보여 잔인하게 죽인 이후로는 잦아졌지만 선대 황제가 병상에서 보낸 1년간은 형님에겐 지옥이나 다름없었을 테지..... 특히 슈안 녀석은 드러내 놓고 왕권을 노렸으니......" 충격적인 얘기에 잠시 말을 잊었다. 선대 황제가 병상에서 보낸 그 1년 사이........... ...........녀석의 곁에 있었다. 그리고 슈안이란 녀석과도........... 티폰이 가장 힘겨웠다던 시기에 녀석의 곁에 거의 2년 동안 머물러 있었는데............ ........녀석에 관해 아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거의 잃었지만.............. 기억을 잃기 전에도 확실히 모르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녀석의 품안에서 보호만 받은 채로 아무 것도 알려하지 않았다. 벙어리였기 때문에 물어볼 수도 없었을 테고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말해줄 녀석도 아니지만...... 이 정도였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정신없이 날 안고 죽은 듯 잠이 들어서도 작은 소리에 몸을 굳히고 베개 속으로 손을 뻗어 검을 쥐던 녀석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자신의 명에 불복하면 거침없이 머리를 베어버리고 최소한의 감정조차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내 곁에 있을 때를 제외하면 표정하나 드러나지 않는 냉혹한 얼굴도............. 잔혹한 녀석이라 욕하고 미워했는데............ 태어나자마자 그런 참극 속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더욱 잔인해 질 수밖에 없었던 녀석에게.......... 결국 그런 녀석에게 내가 해 준 거라곤 슈안이란 녀석을 위해 선대 황제를 죽이고 상처에 소금을 뿌리 듯 배신을............. '큭, 죽을 만 하군.........하류란 녀석......... 그때............. 슈안의 목이 떨어졌을 때................ 같이.................. .............죽었어야 했는데........' 손이 떨리고 시야가 흐리다. 역시 나 같은 건 잊어버리는 게 당연하다. 3년 전에도............ 지금도............. 사랑한다는 말 따위............ .........꺼내지 않은 게 다행이다. 내겐............. ...........자격조차 없는 말인 것을............. 하얗게 뼈가 드러나도록 난간을 그러쥐고 뒤돌아서있는 내게 시온이 다시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난 그 이전에 뮤즈니안으로 보내져 자세한 건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아는 건 이것뿐이고 그 이후는 지난번에 이야기해 준 대로야. 왕권을 가로채려던 슈안이 반역에 실패하고 현 황제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 넌 아직 본 적 없을 테지만 황성 동쪽엔 후궁들의 별궁이 있어. 선대 때엔 그 엄청난 별궁도 황제의 루베라와 후궁들로 가득했는데 지금은 텅 비어버렸지. 그 날............ 황제로 등극하자마자 형님이 모두 죽여버렸거든.......... 선대 황제의 루베라도.....후궁들도.......배다른 형제들도............ 이상하게도 냉혹하던 형님이 그날 따라 미쳐 제 정신이 아니었다더군.........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귀족들은 현 황제를 두려워하고 있어......." 그 날......... 녀석도 나도 차마 서로를 죽이지 못하고 상처만 입힌 채 헤어져 버렸다. 난............. 녀석의 품보다는 죽음을 택했지만......... 결국.............. 이곳에서의 기억을 모두 잃은 채 내 세계로 되돌아가 녀석이 없는 곳에서 2년을 보냈다. 무겁게 침묵이 가라앉은 발코니와는 달리 정원에선 밝은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건 분명 티폰과 녀석의 약혼녀....... '산책이라도......나온 건가.....'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 하얀 피부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예쁘다. 물론 더러운 성격은 이미 목도했지만...... 저렇게...... 티폰의 곁에 있으면 그냥 아름다운 소녀........ "미르니안 미르헨.............." 어느샌가 시온이 옆으로 다가와 가만히 정원을 내려보며 말을 잇는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귀족들의 뜻을 받아들여 황제가 선택한 황비 후보지만...... 파혼 전에도 자신의 약혼녀였는데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완전 무관심했어. 그 날부터...... 너에 대한 기억이 지워진 날부터 약간 태도가 달라졌다고 할까..... 저 여자가 황비 후보란 건 용케 기억하고 있었나봐....." '역시...... 나에 대한 것만..... ......기억하지 못하는 거겠지.....' "사랑이 아니라 파혼하기 전처럼 정략결혼이라고 이해한 모양인데........ 전처럼 완전 무관심이 아니라 황비가 될 여자한테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아....." "다행.....이네......" "응?" 그날 밤...... 자신의 정욕만을 채우려는 듯...... 일회용 물품처럼 쓰고 버리듯..... 저 여자를 품에 안는 것을 봤다. 지하감옥에 갇혔을 때의 나처럼...... 선대 황제가 행한 것처럼....... 아무런 감정 없이...... 잔혹하게....... 지금은....... 평소와 다름없이 싸늘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선은 밝게 웃고있는 자신의 약혼녀를 향해있다. 그런 참상을 헤쳐왔으면........ 더 이상 괴로워하지 말고.............. 차라리........ ....이미 죽어버린 하류 따윈 평생 기억하지 못한 채로....... 저렇게 살아가는 게....... 더 나을 지도..... 심장이............... 아니, 속이...... ......쓰린 거다. 티폰에게 떨어질 줄 모르는 시선을 겨우 돌려 시온에게 말을 꺼냈다. "나...... ....배고파......." "응? 참, 아침도 굶었지? 내가 시종들한테 음식 들이라고 말해 둘게..... 큭, 그리고 여기 오래있으면 유이 녀석이 발광하니까 먼저 가 볼게! 그 자식한텐 내 침실로 돌아간다고 둘러대고 잠깐 들른 거니까..... 오늘 저녁에 또 파티 있으니까 유이 녀석이랑 꼭 나와. 기다리고 있을께" "응...." 내 머릴 끌어당겨 이마에 살짝 키스하고 돌아서는 녀석을 바라보다 갑자기 스치는 의문에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슈안이란 녀석의 어머니는? 슈안이 죽은 날......같이 반역죄로 죽은 거야?" "아니.....그 전에 죽은 걸로 아는데.....선대 황제가 죽은 날 형님이 후궁들도 모두 처형시켜 버렸지만 루베라가 새겨진 후궁은 두 명뿐이었어. 슈안의 생모는 황비가 죽은 후에 선대황제에게 루베라가 지워져 처형당했다고......." 어쩌면.............. 슈안이란 녀석도 티폰 못지 않은 지옥을 헤매고 있었을 지도........... 시온이 침실 밖으로 나간 후에도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 다시 정원으로 시선을 돌리니 심홍색 눈동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즐거운 듯 웃고 있는 여자를 지나쳐 루비처럼 붉은 눈동자가 곧바로 내게 박혀들어 온다. 그렇게...... 한참동안 시선이 얽혀 온몸을 옭아맬 듯한 붉은 눈동자를 바라만보다 먼저 뒤돌아 섰다. '뭐야...... 큭, 또 그 여자한텐 눈길주지 말라고?' 잠시 쓴웃음을 짓다 침실 안으로 들어서니 얼마 안 가 지나칠 정도로 많은 음식들이 내 앞에 놓여졌다. 이렇게 혼자 있어 본 것도 오랜만이다. 티폰 녀석이 황제의 침소와 지하감옥에 박아뒀던 것만 아니라면...... 저쪽 세계에선 늘상 있었던 일이었지만....... 어느샌가 티폰과 유이 녀석에게 길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티폰처럼 그 녀석도...... 유이 녀석도 언젠간 도둑을 그만 두고 뮤즈니안의 황제가 되어버리겠지...... 그땐........ 나도 혼자............... 그때를 위해선 이런 기분에도........... .........익숙해져야 할 텐데......... '운도........ ......더럽게 없군....... 하류도........ 키르도........ 함께 있고 싶었던 놈들은 다 황제 나부랭이나 하고 있으니......'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물기 따위 무시해 버리고 밝은 웃음소리가 울려오는 창가를 그렇게 한참동안 바라보고만 서있었다. Rubera(루베라) #132 무거운 기분을 털어 내려 검술 연습도 하고 혼자 빈둥거리며 시간을 때우던 중......... 해가 지기 시작하자 요란한 소릴 내며 유이 녀석이 침실 안으로 들어선다. "키르!! 젠장, 시온 그 자식 때문에 지금까지 귀족들한테 잡혀서....!! 하아....보고싶어 죽는 줄 알았어....." "얼굴본지 얼마나 됐다고 지랄야?!! 떨어져!!" 들어서자마자 내게 달려들어 덥썩 끌어안는 녀석을 투덜거리며 밀쳐내자 질리지도 않고 들러붙는다. "파티에 나가기로 했다며?!! 데리러 온 거야.....쳇, 다른 놈들한테 얼굴 보여주긴 싫지만....... 시온 녀석 말대로 황태자하고 동행해서 한달 내내 방안에만 박혀있으면 이상한 소문만 나돌 테니..... 할 수 없지....가끔씩 같이 나가는 수밖에....." "이상한 소문?" "숨겨둔 내 정부......." "빌어먹을......!!" "자, 옷 갈아입으러 가자!!" 똥 씹은 표정으로 얼굴을 구기고 서있는 날 보고 킥킥대더니 녀석이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아채 옷이 가득한 곳으로 끌어당긴다. "내가 골라줄께!!" 정신없는 녀석의 행동에 멍하니 서있기만 하자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얼굴과 옷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얼른 남빛 옷을 꺼내온다. "이걸로 하자!!" 매끈한 남빛 천에 하얀색 실로 수놓은 화려한 옷...... 희디흰 머리칼 색과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 녀석이 들고 온 옷을 내게 맞춰본다. '신났군.......' "근데......뭐 하는 짓이야?" 내 몸을 끌어안고 팔을 둘러 등뒤에 이어진 잠옷 매듭을 끌러 가는 녀석에게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쏘아붙이자 손은 멈출 생각도 않고 능청스럽게 말을 꺼낸다. "큭, 내가 입혀 줄게.....어차피 귀족들의 옷은 혼자서는 못 입는 거니까......너 이런 거 잘 못하잖아?" "비.....비켜!! 이 새끼, 갑자기 왜 또 지랄야?!!!!" 잠옷 한 장만 달랑 입고있던 차에 매듭이 다 풀려 바닥으로 흘러내리려는 것을 보곤 화들짝 놀라 옷을 끌어올리고 바락 소릴 질러도 능글맞은 웃음만 입에 건 채 침실 쪽으로 뒷걸음질치는 내게 성큼 다가선다. "비......비켜! 내가 할거야!!" "부끄러워하긴!! 맨날 끌어안고 자서 눈감고도 아는데......빨리 이리와!" '저.......때려죽일.....!!' 이를 뿌득 갈고 녀석의 주둥이를 막기 위해 던질만한 걸 찾으려 시선을 돌린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녀석이 달려들어 뿌리칠 틈도 없이 허리를 감아온다. "놔!!!" 녀석을 밀쳐내려고 버둥대는 순간 푹신한 양탄자 위에서 발이 미끄러져 중심을 잃은 채 녀석과 쓰러져 엉덩이와 머리가 그대로 바닥에 쾅하고 부딪쳐 버렸다. 그것도 엉덩이가 먼저 닿는 바람에 바닥에 부딪친 엉덩이는 물론이고 허리까지 징하니 울려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밑에 푹신한 양탄자가 깔려있었다는 정도..... "흑.....이 빌어먹을 새끼........" 날 붙들고 같이 쓰러진 녀석의 밑에 깔려 정신을 못 차리고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때 타이밍 좋게 화려한 문이 무거운 소릴 내며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침묵이 흐르고....... 대충 정신을 추스린 후 아픔에 눈물까지 달고 내 위에서 내려설 생각도 않은 채 문이 있는 쪽만 노려보고 있는 유이 녀석을 밀쳐내려 바르작거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 비켜!! 아프잖아!! 젠장......." 허리가 삐그덕거려 발악을 멈추고 낑낑대자 그제야 유이 녀석이 깜짝 놀라 내게 시선을 던지며 호들갑을 떨어댄다. "헉, 키...키르!! 아....아파? 궁의를 불러라!!!" "이 새끼, 이딴 걸로 무슨 궁의야?!!!" 꽥 소릴 치지만 아픈 것은 아픈 거여서 한참동안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귓가에 차가운 목소리가 파고들 때까지...... "궁의를 들여라......." 심장이 내려앉을 정도로 놀라 바라본 곳엔 티폰과 낯익은 잿빛 사내, 여러 명의 시녀들이 굳은 듯 한 자리에 서있었다. 게다가....... 나와 눈을 마주친 시녀들이 얼굴까지 붉히며 고개를 푹 숙이는 폼이........ 어쩐지........ '서.....설마......' 위를 올려보니 유이 녀석이 내 위에서 몸도 일으키지 않은 채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고 있었고 얇은 잠옷은 반쯤 벗겨진데다........ 허리하고 엉덩이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러댔으니...... '젠장......!!!!' 뿌득.....이가는 소릴 낸 후 유이 녀석을 죽일 듯 노려보자 흠칫 해선 내 시선을 피한다. "비켜......." 창피함에 온 몸이 붉어져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이자 녀석이 아쉬운 듯 내 위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 썩을 새끼!!!!!!! 결국 이 새끼 정부로 소문이란 소문은 다 나게 생겼잖아!!' 당장이라도 녀석을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은 맘에 자꾸 뻗어가려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겨우 붙들어 놓고 신음소릴 참아가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허리를 삔 것 같진 않지만 충격이 컸는지 아직도 엉덩이와 허리가 얼얼하고 보지 않아도 싸늘한 시선이 내게 와 박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한기가 든다. "폐하께서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불청객이라도 온 양 유이 녀석이 말을 뱉어내자 한참동안 침묵이 흐르더니 잿빛 사내가 먼저 입을 열어온다. "조금 전까지 폐하께서 오셨다는 걸 시종이 알렸는데 대답이 없어 실례를 무릅쓰고 침소에 들었습니다" "큭, 무례를 용서하시길......보시는 대로 바쁜 일이 있어....." '뭐? 지가 뭐가 바쁘단 거야? 기껏 옷이나 입혀주겠다고 달려든 주제에!!'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올려봐도 날 보며 역시나......하는 표정으로 씨익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일이 신지............" "폐하의 명에 따라 오늘부터 두 분의 호위를 맡은 시니안이라 합니다" '호위........?!!' "네.....네놈.......그때 그.......잿가루 같은 자식!!!!" 그제야 시니안을 보고 살기를 뿜어내는 유이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이 아주 가관이다. 분노에서 경악, 의혹.......결국엔 혼란스런 표정까지........ '뭐야?' 시니안도 녀석을 보고 의아한 눈길을 보내오자 잠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굳히고 말을 꺼낸다. "폐하께서 신경 써 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호위 따윈 필요 없습니다" 녀석이 날을 세워 말을 뱉어내자 역시나 가볍게 무시해 버리고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뮤즈니안의 황태자에겐 필요 없겠지............ ........하지만...........저 아이에겐 필요한 것 같더군............." '무슨...........?' "몇 일 전 몰래 황궁 밖으로 나가 봉변을 당했다. 수상한 녀석들에게 붙들려 귀족가에 침실 노예로 팔려 다음날 아침 침대 위에서 발견됐지........." "키르!!!!!!!!!!!!!!!" 장난치다 걸린 어린아이처럼 화들짝 놀라 올려보자 유이 녀석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날 내려본다. '저........저 자식이 왜 그때 얘긴 갑자기 꺼내고 지랄야........!!' 얼굴을 구기고 궁시렁대며 시선을 돌리자 시니안이란 사내가 입꼬리를 올린 채 웃음을 참고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저 자식...........!!' "다행히 저희 가문에 팔려 큰일을 당하지 않으셨지만............ ........폐하께서 반나절만 늦게 도착하셨다면 사망자가 두 명으론 끝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나절? 반나절만 더 거기 있었으면 무슨 큰일을 당한다는 거야? 그리고 사망자라니?' 왠지 시니안이란 사내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유이 녀석을 올려보다 흘러내린 잠옷을 대충 몸에 걸친 후 할 수 없이 혼자 몸을 일으켰다. "흑.............젠장.........!!" 역시나 무리였는지 아픈 허리를 쥐고 신음을 흘리며 바닥으로 주저앉으려하자 재빨리 유이 녀석이 다가와 허리에 팔을 감아 몸을 바로 세워준다. 허리에 감긴 녀석의 팔을 불만스럽게 내려보다 결국 바닥으로 꼬꾸라지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해 녀석의 옷자락을 붙들고 몸을 바로 했다. "정신 사납게 왜 여기에 다 몰려와서 지랄들이야? 호위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빨랑 나가.....!! 씹, 니놈도 나가!!!" 옆에서 빙글거리며 자신의 일이 아닌 듯 침실 안으로 들어온 무리들을 바라보는 유이 녀석에게 사납게 소리치자 움찔해선 날 바라본다. "파티는 어떻게 하구?" '파티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니놈 때문에 벌써 정부라고 소문 다 나게 생겼구만!!!' 속으로 열이 팍팍 오르는 걸 간신히 누르고 녀석에게만 들리게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리듯 말을 뱉어냈다. "너, 앞으로 멋대로 이 침실에 찾아오면 죽을 줄 알아......특히 밤에 몰래 기어들어 올 생각이라면 포기해...... 그딴 짓 하면 파트너고 뭐고 다 때려 치고 도망가 버릴 테니까..... 황제가 남으라고 했던 건 뮤즈니안의 황태자지 내가 아냐..... 황제가 뮤즈니안을 삶아먹든 구워먹든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라구....!!" "뭐? 치사하게.....!!" "치사?!!! 진짜 치사한 게 뭔지 보고싶어?!!!" 눈을 부릅뜨고 협박을 해대자 어느 정도 먹힌 건지 풀이 죽은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알았어........그럼, 아침엔 와도 되는 거야?" 안 된다고 빽 소릴 질러버리려다 풀이 잔뜩 죽은 녀석을 보고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어차피 낮엔 이 녀석도 바쁠 테니.........볼 수 있는 건 아침 뿐...... 눈에 띄게 안심을 하는 녀석을 보곤 혀를 차며 아직도 물러나지 않고 커다란 침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무리들을 찌푸린 채 바라보자 티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모두.......물러가라......" 바로 시종들이 물러나고............. 침실 안에 남은 건 나와 유이....... ......그리고 잿빛 사내와 여전히 인간이 아닌 것처럼 아름다운 붉은 녀석........ 미간을 찌푸린 채 내 허리에 감긴 유이 녀석의 손을 바라보다 알 수 없는 붉은 시선을 내게 맞춰온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갑자기 호위는 왜..........?!!' "폐하........" "들여라......" 침묵을 깨고 티폰의 입이 열리자마자 들어서는 인물은 궁의........ 지난번 일 때문인지 약은 모두 시종들이 들고 뒤따른다. 찔리는 구석이 있어 얼굴을 일그러뜨리니 내가 약 먹기가 싫어 그런다고 생각하는 유이 녀석이 킥킥대기 시작하고.... 잠시 말없이 내게 시선을 던지고 차갑게 돌아서는 티폰 녀석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다 유이 녀석의 부축을 받아 침대 위에 엎드렸다. 벗은 허리를 만져보려던 늙은이가 유이 녀석의 호통에 할 수 없다는 듯 약초향이 나는 따뜻한 팩을 허리 위에 얹어주고는 사라지자....... "키르, 많이 아파........?" 유이 녀석이 다가오더니 팩을 던져버리고 벗은 허리에 손을 미끄러뜨린다. "뭐 하는 거야?!!!!" 화를 벌컥 내며 소릴 꽥지르자 말릴 틈도 없이 시트를 허리 아래까지 걷어내고 바로 엉덩이 위에 올라타 자리를 잡는다. "이 새끼, 죽고싶어?!!!!"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꼼지락대며 소리만 바락바락 지르자 티폰이 놔두고 간 시니안이라는 사내가 성큼 다가선다. "끼어 들지마......이건 장식으로 새긴 게 아냐..........." 하얀 등에 새겨진 은빛 문장을 쓸어보더니 손을 미끄러뜨려 척추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밑으로 내려온다. "전 당신의 명엔 따르지 않습니다......." "이 녀석뿐만 아니라 나도 호위 대상에 포함되는 게 아니었나?" "표면상으론........" "큭, 내가 이 녀석한테 해라도 끼칠 것 같은가...........?" "다른 의미로는 충분히.............." "네놈이........황제의 검이라 불리는 시니안 카이도..........." "알아주시니 영광입니다......." "그 색깔.............맘에 안 들어........." "으응...............아.............아파..........." 허리를 부드럽게 주물러주는 유이 녀석의 손길에 이미 긴장을 풀고 눈을 감은 채 나른하게 누워있다 손바닥과 손가락으로 아픈 근육을 눌러오자 이미 관심밖에 나버린 녀석들의 대화를 끊으며 작게 칭얼댔다. "킥, 조금만 참아......." 아픈 곳을 조심스레 풀어주는 손길이 기분 좋아 얌전히 베개 위에 얼굴을 묻고 몸을 내맡겼다. '이 자식.......도둑 때려 치고 이 짓만 해도 떼돈 벌겠군........' 녀석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확실히 통증이 사라지고 시원한 느낌이 든다. 피로가 가시는 느낌........ 한참을 그렇게 주물럭대더니 상체를 숙여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기분 좋아?" "응........" 베개를 끌어안은 채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허리를 꾹꾹 눌러대던 손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드럽게 피부를 쓸어가기 시작한다. '응?' 갑자기 변한 손길에 눈을 번쩍 뜨자마자 몸을 뒤집어 복부에 올라타더니 하얀 피부에 손을 미끄러뜨린다. "다른 데도 기분 좋게 해줄까?" '어라......?' 복부가 녀석의 체중에 눌렸는데도 허리가 아프지 않다. "아..........." 따끔한 느낌에 정신을 차리자 유이 녀석이 옆구리를 쓸어대며 고개를 숙여 쇄골에 이를 박아 넣고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 보이는 것은 잿빛 사내......... 케레스와 마찬가지인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날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어 말을 꺼낸다. "아이야드 저하, 파티에 참석하실 시간입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시선을 박아오는 은회색 눈동자에 놀라 얼굴을 붉힌 채 유이 녀석을 확 밀어버리고 시트를 끌어올려 몸을 가렸다. "뭐.......뭐 하는 거야?!!! 비켜!!!" "젠장, 방해하란 명까지 받았나보지?" "큭, 단순한 감........입니다" 작게 욕설을 내뱉던 유이 녀석이 다시 내게 돌아서 말을 던진다. "가자, 키르.......이제 괜찮지?" "빌어먹을 자식!! 나가!!!!" 머리칼을 지분대는 녀석의 손을 탁 쳐내고 버럭 소릴 지르자 바로 고개를 숙여 쪽 소리가 나도록 입술에 키스를 하더니 후다닥 뒤로 물러난다. 녀석에겐 닿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공기를 가른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노려보자 눈도 꿈쩍 않는 시니안에게 살벌하게 몇 마디 던지고 다시 내게 돌아서 파티장에서 기다린다는 말만 남긴 채 홀랑 침실 밖으로 나선다. 유이 녀석이 사라져 버리자 주위가 조용해지고...... 분을 삭히고 시선을 돌리자 여전히 잿빛 사내가 미동도 없이 서서 날 바라보고 있다. '시니안.............이라고 했던가.......케레스의 형님........' 케레스와 같이 단정한 모습으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사내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케레스한테........황제의 결혼식이 끝나면 보러간다고 말 좀 전해 줘.......황성엔 오지 말라고......" 침묵을 유지하던 사내가 무겁게 입을 열어온다. "폐하께선.........케레스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시더군요........." '뭐......?' 고개를 들어 사내를 바라보자 케레스보다는 약간 옅지만 마찬가지로 부드러운 빛을 띈 은회색 눈동자가 내게 맞춰져 있다. "폐하께서 자신의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런데..........왜........." "못 본 거야? 루베라를 찾았어. 지금 녀석의 침소에 있지.........." "루베라는...........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죽은 녀석이............ ...........가짜였나보지............. 난........모르는 일이야......" 은회색 눈동자에서 시선을 돌리자 잠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전 예전에 루베라를 본 적이 없습니다......케레스가 호위를 맡게 됐다는 것만 알뿐이지...... 그 녀석이.........당신을 지키라 제게 부탁하더군요..... ...........거의 1년 만입니다. 막내가 죽은 후로.......제게 입을 연 게....." Rubera(루베라) #133 "전 예전에 루베라를 본 적이 없습니다......케레스가 호위를 맡게 됐다는 것만 알뿐이지...... 그 녀석이.........당신을 지키라 제게 부탁하더군요..... ...........거의 1년 만입니다. 막내가 죽은 후로.......제게 입을 연 게....." '뭐?' 뜻밖의 말에 다시 사내를 바라보자 어쩐지 씁쓸한 표정........ "예쁘고 쾌활한 아이였습니다. 당신처럼..... 나이는 어렸지만 검에도 상당히 소질이 있어 당시 전쟁에는 관심도 없던 케레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황제폐하를 따라 참전한 전쟁터에 데리고 나간 것이 실수였습니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 자신의 손으로 키우다시피 한 동생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돌아오자 무가(武家)에는 어울리지 않게 부드러웠던 녀석이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무슨 생각이었는지 전쟁이 끝난 후 황성에서 열린 검술 시합에 나가 무패로 우승을 차지해 폐하와 검을 맞댔습니다. 아마.........헛되이 전쟁을 일으킨 황제에게 복수라도 하고싶었겠지요......... 결국........결과는 참패였지만...... 무릎을 꿇고 황제께 충성을 맹세한 후 황성으로 들어가 폐하의 곁을 지켰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 따윈 버린 채............ 그렇게 일년을 보냈는데.............. 다시 본 녀석은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그런 말을....................왜 내게 하는 거야..............?" "제가 목숨을 걸고 충성을 맹세한 사람과 이제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장 소중한 혈육이...... ......당신을 보고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개인적인 관심도 있고..............." "뭐?" 미간을 찌푸린 채 올려보자 흥미로운 시선으로 날 바라본다. "큭, 지난번엔 꽤나 즐거웠습니다....." "무슨 소리야?" "그 두 사람이 그렇게 흥분해 날뛰는 모습은 목숨을 내걸고 봐도 재밌는 광경이더군요......" '미친놈...............' "당신의 정체가 무엇이든............그 두 사람이 부탁을 했으니............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드리겠습니다....." '저 새끼, 내가 누군지 아는 거 아냐?!!' 신경 쓰이는 구석을 강조해가며 고개를 숙이는 녀석을 벌레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다 말을 뱉어냈다. "목숨까지 내걸 정도로 생명에 위협을 받는 것도 아니고 황제가 결혼식 올리면 바로 뮤즈니안으로 돌아갈 테니까 루베라나 지키는 게 어때?!!" "큭, 혹시 질투라도 하시는 건?" "뭐야?!!!!!!!!!!!!!" 몸을 벌떡 일으켜 도끼눈을 뜨고 노려보자 여유롭게 미소까지 걸고 날 바라본다. "그런 걱정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폐하께선 요즘 침소에 드시지 않으시니........" '뭐........? 왜? 설마 또 미르니안인가 미꾸라진가 하는 여자한테............' "정무실에서 밤을 새시더군요........" "누.......누가 물어봤어?!! 쓸데없는 소릴 떠벌리고 지랄야?!!" 찔리는 구석이 있어 꽥 소릴 질러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나하고 니놈의 그 잘난 황제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개소릴...........!!" "근거라면 그 날.........큭..........." 어쩐지............... .............불길한................. "............황제폐하를 황성까지 모셔다드리고 되돌아온 마차가..........." '헉.............!!!!!!!!!!!!!!'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온 몸을 붉히고 반박도 못한 채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 때 마차 안에서 티폰 녀석과 황성에 도착할 때까지............. 벌겋게 익은 얼굴로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어대자 한참만에 능청스런 사내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빨리 서둘지 않으시면 지각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시는 건지..........." 성격 나쁜 자식이 꽤나 즐거운 듯 보기 좋게 입술을 올려 미소를 짓더니 당황한 내 표정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은회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내게 시선을 박아온다. '젠장, 케레스가 백 배, 천 배 낫지.....!!' 이를 으득 갈며 버럭 소릴 질렀다. "지키기 전에 낯짝이나 돌리지 그래?" 의문을 띈 채 날 바라보자 한심하다는 듯 시선을 던지며 말을 꺼냈다. "옷을 입어야 파틴가 뭔가에 나갈 거 아냐!!!" "폐하께서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잠이 들 때까지 지켜보라 명하셨습니다" "빌어먹을!! 그런 뜻이 아니잖아!! 옷 갈아입고 목욕할 때까지 지켜볼 셈이냐?!!! 관음증 아냐?!!" 분노를 터뜨려 봐도 묵묵부답.........시선만이 내게 향해있다. 이 자식........... 지난번 봤을 때도 그렇고........확실히 어딘가 나사하나가 빠져있는 게 분명하다. '하, 정말 미치게 하는군......' 한참을 노려봐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에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홀랑 벗은 알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친놈.....그렇게 쳐다보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지 눈만 버리지.........' 속으로 갖은 욕을 다하며 유이 녀석이 골라놓은 남빛 옷을 집어들어 하나 씩 꿰어 입기 시작했다. '젠장, 이건 또 왜 이렇게 복잡해?!!!'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도통 용도를 알 수 없는 보석 장식과 옷자락을 들곤 유이 녀석을 성급하게 쫓아버린 걸 후회하고 있을 무렵...... 석상 같은 녀석이 발걸음을 옮겨 내게 다가오더니 복잡하기만 옷자락을 하나 둘씩 정리해 마무리를 해준다. 역시 티폰의 검에 꿰뚫린 어깨가 불편한 듯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고......... "그런 팔로 어떻게 지키겠다는 거야?"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카이도가에선 어렸을 때부터 양손으로 검을 쥘 수 있도록 훈련받으니........" '지독하군............' "돌아서십시오......." 어린아이를 다루듯 하는 녀석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하얀 눈썹을 치켜올리고 색이 옅은 잿빛 눈동자로 올려보기만 하자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리고 갑자기 내 몸을 품안으로 확 끌어당겨 꼬옥 안아온다. "무.......무슨......?!!" 뜻밖의 행동에 당황할 틈도 없이 팔을 둘러 등뒤에 사파이어로 된 푸른 보석 장식을 하나씩 채워 올리자 얼굴을 붉히며 얌전히 몸을 맡겼다. '뭐야?' 미간을 찌푸린 채 궁시렁대며 단단한 품안에 안겨있길 한참................. "가시죠.........." "응?" 정신을 차리니 잿빛 사내가 만족한 듯 단정한 옷차림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숙여온다. 어느새 신까지 신겨져 얼떨결이 엄마 손에 붙들린 애새끼마냥 녀석의 커다란 손에 손이 꼬옥 쥐어져 한참을 빌어먹게도 넓은 황성 안을 걸어 도착한 곳은 거대하고 화려한 황성의 중앙 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빛을 뿌리는 샹들리에....... 유색 빛이 감도는 대리석........... 손대기도 아까울 정도로 반짝이는 은제 식기에 본 적 없는 엄청난 요리들.......... 입이 벌어질 정도로 화려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방대한 홀을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완 어울리지 않게 일체의 어수선한 분위기도 없이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게......... 의아함에 시선을 돌리자 붉은 황제가 눈에 들어오고............... 나보다 한발 먼저 들어섰는지 정면에 있는 화려한 옥좌로 다가서는 녀석의 곁엔 밤색 머리칼에 붉은 드레스를 입어 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얼굴이 한층 돋보이는 녀석의 약혼녀와 까만 머리칼 색과 대조되게 새하얀 옷을 갖춰 입은 루베라가 따르고 있었다. '큭, 역시 달아나길 잘 했군.........'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소매가 길고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복잡한 꼬마 녀석의 옷을 보곤 쓴웃음을 지었다. '저 자식.......난 파티 같은 거 한번도 데리고 가준 적도 없으면서.............' 황제가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분위기가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어차피........... ........파티 따윈 관심도 없었고........... 일단은 배가 고파 그때까지 잡혀있던 시니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음식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누군가 손목을 당겨 품으로 끌어당긴다. "뭐야?!!" 벌컥 소릴 지르고 올려보니 붉은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다. "시온?" "응, 왔어?" 녀석이 숨이 막힐 정도로 꼬옥 끌어안자 옆에서 바로 단조로운 목소리가 울려온다. "주위 시선도 생각해 주십시오.........." "뭐야.........시니안? 넌 언제 돌아온 거야?" 하나 둘 씩 시선이 몰리기 시작하자 미간을 찌푸린 채 잿빛 사내를 바라보는 시온 녀석을 밀어내고 툭 말을 던졌다. "씹, 왜 이렇게 복잡해? 밥은 어딨는 거야? 밥이나 먹고 돌아가서 잠이나 잘래......." 이리저리 둘러보다 음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을 발견하곤 발걸음을 옮기려하자 다시 재빨리 손목을 낚아채 몸을 돌려세운다. "하아.............정말...........얼굴 좀 제대로 보여줘......." '사내새끼 얼굴 볼 게 뭐 있다고 자꾸...........' 불만스럽게 올려보자 빙글거리는 낯짝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내가 그렇게 잘 생겼어? 돈 내고 봐...............!!" "큭......" 순간 시니안이란 녀석에게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울려오고............ "키르!!!!!!!!" 유이 녀석이 어디서 삶은 화통이라도 주워먹었는지 커다란 홀이 울릴 정도로 꽥 소릴 지르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귀족들 틈에서 벗어나 내게 달려들어 덥썩 끌어안아 온다. 녀석을 밀어낼 생각도 못하고 웅성거리며 어깨너머로 수많은 시선을 보내고있는 귀족들만 멍하니 바라봤다. "어머, 저분이 뮤즈니안의 황태자님과 동행한 귀족분이신가 봐요!!" "뮤즈니안 사람 치곤 특이한 외모로군......" "아이야드 저하가 끔찍이 아끼신다 들었는데........" "시온님과도 아는 사이신가.........?" "황태자님과 시온님은 친분이 있으시니............" "황제폐하께서 시니안님을 호위로 붙여주셨다는 소문이 있었는데........사실일 줄이야........" "저렇게 친근하게 대하시다니..............설마............" "그럴 리가........황태자님은 뮤즈니안에서도 소문난 바람둥이시라구......" "하지만 오늘 시종들이 침실에서 두 분이서............." "말도 안돼.....단순히 소문이겠지..........." "폐하께서도 보셨다는.................." 갑자기 두런거리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고.............. 입가에 호흡이 느껴져 화들짝 놀라 올려보니 바이올렛 눈동자가 지척에 맞닿아 있다. 입술이 닿으려던 찰나........ 몸이 확 끌어당겨지더니 등에 단단한 몸이 닿아온다. "이......이 자식, 뭐 하는 거야?!! 죽고싶어?!!" 화난 듯한 시온 녀석의 목소리에 잠시 아쉬운 듯 날 바라보던 유이 녀석이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고 시선을 내게 박는다. "그런데 너.............그 옷 혼자 입은 거야?" '뭐?' 녀석이 골라 준 남빛 옷을 바라보니 역시나 혼자 입은 것 치곤 지나치게 완벽하다. '빌어먹을..............' 돌덩이같이 무표정으로 자리만 지키고 있는 시니안을 바라보며 곤란한 표정을 짓는 순간............. "시온님........그 동안 모습을 뵙지 못해.............." '응?' 고개를 돌린 순간 커피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사내가 눈을 크게 뜨고 날 바라본다. '뭐야........이 아저씨였어?' "뭘 그렇게 보는 거지?" 뚫어지게 날 바라보는 시선에 유이 녀석이 기분 나쁘다는 듯 툭 말을 내뱉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내가 내게서 시선을 돌려 더듬대며 말을 잇는다. "아.....아니........제가 아는 분과 많이 닮은 듯 하여..........." "누구야?" 유이 녀석이 시온에게 묻자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입을 연다. "모르는 거냐? 지금까지 대체 뭘 한 거야? 미르헨가의 가주 로키안이야........" "흐응~ 이번 황제의 약혼녀를 낸 가문인가........? 축하해......" "예, 저하............" 녀석의 싸가지 없는 말투에 잠시 얼굴을 굳히던 사내가 다시 내게 시선을 보내온다. "그런데 이 분은............" "이 녀석을 닮았다니...........도대체 누굴 말하는 거야?" "그.........그게........" "잘못 봤겠지. 이 아인 뮤즈니안 태생이다. 크리올라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야......"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해대는 유이 녀석을 기가 막혀 바라보다 한결 부드러운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사내에게 배운 대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려던 순간 다시 유이 녀석이 시온의 품에서 내 팔을 낚아 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다른 놈한테 고개 숙이지마..........." '이 자식............!!' "배고프지? 키르........밥이나 먹자!!" 주위에서 흘끔흘끔 바라보는 통에 머리를 쥐어박을 수도 없고........... 침실 안에만 박혀있으면 이상한 소문이 돌거라 해서 파티장에 나왔더니만.............. 여기저기에서 수근대는 폼이 분명 내일 아침이면 괴상한 소문이란 소문은 모두 퍼질 것 같은 분위기............ 뒤를 돌아보자 시온과 시니안은 화려하게 차려입은 귀족가 아가씨들에게 둘러싸여 난감한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다. '흐응~ 꽤 인기 많잖아?!! 이 자식은 바람둥이라면서 여자는 안 꼬시는 거야?!!'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보기 드문 미녀들이 녀석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내게서 신경만 꺼준다면 설탕물에 개미떼가 몰려들 듯 달려들 것만 같은............. "유이, 나 밥 먹고 바로 올라가서 잘 테니까 찾지마!!!!" "뭐? 너 무슨 소리................." 녀석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기도 전에 잡힌 손을 비틀어 빼내고 바로 음식이 널려있는 거대한 테이블 쪽으로 인파를 해치며 겨우 빠져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녀석이 좋아하는 여자들에게 잔뜩 둘러싸여 빠져 나오지도 못한 채 미간을 찌푸리며 날 바라본다. "키르!!!!!" "큭, 신부감이나 골라!! 내일 아침에 보자!!" 바로 은으로 된 접시를 손에 들고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퍼담아 사람이 보이지 않는 발코니로 나섰다. 오랜만에 황제가 참석해서인지 까만 어둠 때문인지 창마다 하나씩 있는 발코니엔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내가 서있는 곳에도 역시 사람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겨우 숨이 트이고.............. 난간에 은으로 된 접시와 시종에게 받은 붉은 음료가 들은 잔을 올려놓은 채 어둠이 내려앉은 정원을 바라보며 음식들을 입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젠장, 괜히 왔잖아.......!!" 작게 투덜대며 잔뜩 쌓여있던 음식을 부지런히 먹어치워 바닥이 보일 무렵........... 뒤에서 작은 발소리가 울려 돌아보니 붉은 드레스에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다가선다. Rubera(루베라) #134 '뭐야......저 여자였어...........?' 지난 번 앙칼진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역시나 첫 인상대로 곱게 자란 귀족가의 아가씨 같은 모습....... 다시 시선을 정원 쪽으로 돌린 채 포크로 음식을 쿡쿡 찍어 올려 우물우물 씹어대자 뒤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온다. "지난번 뮤즈니안의 귀족인 줄도 모르고 무례를 범해 사과를 드리러 왔습니다........" '뭐? 무례? 무슨? 나보고 침실 노예라고 하고 그 녀석 침실에서 쫓아낸 거?' 갑작스런 말에 뒤를 돌아보니 말과는 달리 경멸을 띈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무슨 생각이야?' 분명 이 여잔 내가 황제의 침소에서 시트만 달랑 감고 누워있는 걸 봤을 뿐 아니라 녹초가 되어 황제의 품에 안겨있는 것까지 봤다. 의아함을 띄고 그제야 들여다본 짙은 밤색 눈동자에 서려있는 건 분명 질투와 분노...................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다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린 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봐, 질투는 내가 아니라 루베라한테 해야지...........' "그딴 거 필요 없어....!! 황제하고 나하곤 아~무런 상관도 관계도 없으니까 안심하고 결혼식 하기 전에 정신수양이라도 쌓아서 그 성질머리나 뜯어고치던지........ 그게 힘들면 표정관리라도 좀 하지 그래? 쯧, 황비 표정이 그렇게 무시무시해서야....... 남편이랑 둘이 공포영화 찍냐? 큭, 완전 호러군..... 나한테 딴지 걸지 말고 남편 꼬시는 루베라한테 손톱이나 박아주지 그래? 응? 그러고 보니.........너도 황비 후보니까 벌써 루베라 새긴 거 아냐? 그럼 루베라가 둘이면 뭐라고 부르는 거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 뺨에 화끈한 통증이 일더니 강한 힘에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고............... 충격으로 입안이 터졌는지 찝질한 피 맛이 혀끝에 감돈다. "감히.................천한 창부 따위가............!!" '하, 역시............' 돌아본 밤색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뻔히 드러나 보인다. 크리올라 황제를 꼬여 침실시중을 들다 루베라가 나타나자마자 쫓겨나 뮤즈니안 황태자에게 붙은 창부쯤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성깔만 사나운 줄 알았더니 힘도 더럽게 쌔군.............' 어깨밖에 오지 않는 여자를 쥐어 팰 수도 없고....... 게다가 이 여자............. 그때 티폰이랑 같이 잤으니 어쩌면............ 뱃속에 녀석의 아이라도 들어있을 지 모른다. 아무리 그 쪽으로 무지해도 녀석이 내게 하던 걸 여자에게 하면 아이를 갖는다는 것쯤은 알고(?)있다. 아니, 이제 알만한 건 다(?) 알고 있다. 뭐............ 정보의 출처가 유이 녀석이었단 게 문제긴 하지만............ 팔푼이 같은 자식이긴 해도 아는 것은 많으니...... 성교육이랍시고 이것저것 배운 바가 있다. 사실 배웠다기 보단 그쪽으로 완전 무지한 날 보고 경악한 녀석이 일방적으로 주입시킨 거지만...... 처음엔 남자도 임신을 할 수 있다는 둥 여자랑 손만 잡고 자도 임신을 시킬 수 있으니 절대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둥 황당한 소릴 지껄여대 의심스런 눈으로 가만히 노려보다 몇 번 밟아주니 아니나다를까 좀 전과는 사뭇 다른 얘길 해댔다. 녀석의 말과 내 조각조각 난 지식을 맞춰보면 결국 남자의 몸에 있는 정자와 여자 몸에 있는 난자가 관계를 맺을 때 합쳐져 아기가 되는 모양........ 여기서 깨달은 엄청난 사실은............. .........정자와 난자는 역시 촌스런 여자 이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티폰 녀석이 내 몸 안에 기껏 들어와 쾌락을 얻고 남겨놓는 것이 내 것과 같이 하얀 아기씨라는 정도..... 내 몸엔 아무리 뿌려대도 애새끼따윈 생기지 않을 테지만............ .........이 여잔 다를 테니............ ...........곧 임신이란 걸 해서 녀석과 닮은 붉은 황태자라도 낳아주겠지. 그렇게 되면......... 애새끼 보는 재미에 나 같은 건 홀랑 잊고 이 여자도 그 자식한테 사랑 받을 지도....... 남자는 원래....... ......자식한테 약한 거니까........ 아니...... ......내 아버지였던 사람은 빼야겠군....... 어쨌든 내 성깔이 아무리 더러워도 임신한(?) 여자를 팰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다. 생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겼는지 분노를 넘어 살기까지 띈 여자가 다시 강하게 손을 날려온다. 이미 여자의 손이 얼마나 매운 줄은 알고 있고............ 혀를 깨물지 않기 위해 이를 꽉 물고 눈을 질끈 감자................. "아앗............" 갑작스런 여자의 비명이 울려온다. '뭐야?' 놀라 눈을 번쩍 뜨고 들어올린 여자의 손을 바라보자 부러뜨릴 듯 강한 손아귀에 쥐어져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무슨 짓이냐............" 낮은 목소리가 울리고............. "폐...........폐하..........." "내가 분명............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직접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했다........." 분노로 붉은 빛이 짙어진 녀석의 시선에 커다랗게 뜬 밤색 눈동자가 공포로 물들어간다. '빌어먹을!! 왜 남이 밥 먹는데 와서 깽판이야?!!!!!' 더 이상 소란이 일었다간 사람들이 눈치를 챌 것만 같아 티폰 뒤에 석상처럼 서있는 시니안을 초조하게 바라봐도 말릴 생각은 전혀 없는 듯............. '젠장, 내가 왜?!!!!!!!' 입안에 맴도는 찝질한 피 맛과 긴장으로 인한 갈증에 난간 위에 올려두었던 음료를 단숨에 들이키고 다시 뒤돌아 섰다. 눈에 보이는 건 진짜 죽이기라도 할 듯 붉은 눈동자에 살기를 띈 채 바들바들 떠는 여자를 노려보는 붉은 녀석............ '도대체 왜 화를 내는 거야?' 의아함을 느낄 틈도 없이 녀석의 손에 붙들려 금새 피멍이 든 여자의 손을 보곤 결국 손을 뻗어 티폰의 팔을 움켜쥐자 내게로 시선을 돌려온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띄어간다. '뭐...........뭐야? 또 왜?!!!!!' 내 얼굴을 훑어보는 녀석의 눈동자에 왠지 모르게 살기가 가득 베어있다. '젠장할!!! 부부싸움 하려면 다른데 가서 하란 말이다!!!!' 울컥해서 노려보자 여자가 새파랗게 질려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손에 힘을 주더니 그대로 내팽개쳐 버리는 녀석을 보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저 미친놈!! 자기 자식새끼 벤(?) 여자를........!!!' 바닥에 쓰러져버린 여자를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다 충격으로 몸을 떨어대며 스스로 일어서는 것을 보고 일단은 멀쩡한 것 같아 빨리 가라는 시선을 보냈다. 분한 듯 노려보던 여자가 파티장 안쪽으로 사라지고............ 움직임 없던 녀석이 갑자기 내게 손을 뻗어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자 녀석의 손이 허공에 멈춰 선다. 굳어버린 표정과 알 수 없는 눈빛............ 그럴 리 없을 텐 데도........... 어쩐지 상처받은 듯한 붉은 눈동자에 다시 내게 닿아오는 녀석의 손을 피할 수가 없었다. 차가운 손이 뺨에 다가오자 내게 박혀오는 붉은 눈동자를 피해 스륵 눈을 감아버렸다. 여자가 사라지자마자 분노와 살기를 순식간에 갈무리해버리는 녀석이 어처구니없을 지경............ '뭐야? 걱정해 주는 척.............' 붉게 부어 올라 욱신거리는 뺨을 부드럽게 쓸어주는 손길에 눈물이 비집고 나올 것만 같다. 울고 싶을 정도로 아픈 걸 보니 꽤나 호되게 얻어맞은 모양............... '젠장.............!!' 작게 쓴웃음을 짓다 녀석을 밀어내고 파티장 쪽으로 돌아섰다. 위험하다...... 자꾸 이 녀석과 마주치면......... '역시.........나오는 게 아니었는데.........!!' 강하게 끌어안는 녀석의 품에 안겨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녀석을 밀쳐내지도 못한 채 곤란한 눈으로 시니안을 바라보자 도와주긴 커녕 깊이 고개를 숙이고 발코니 밖으로 나가 거대한 창을 소리 없이 닫아버린다. '빌어먹을 자식......!!! 이게 지켜주는 거야?!!!!!!' 오히려 사자 우리 안에 가둬버리는 듯한 녀석의 행동을 보곤 이를 빠득 갈자 숨이 막힐 정도로 허리를 죄어온다. '젠장, 죽이려면 곱게 죽일 것이지.......왜 이렇게 힘이 쌔?!!' "흑............" 가뜩이나 안 좋은 허리를 부러뜨릴 작정인지 숨도 못 쉬게 압박을 해오자 작게 신음이 새어나간다. 놀란 듯 녀석의 힘이 풀리자마자 몸이 돌려져 그제야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확실히 잘난 얼굴이라 붉은 색과 흰색이 적절하게 섞여있는 옷을 입은 녀석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피에 미친 악마마저도 유혹할 수 있을 것 같은 붉은 머리칼과 피죤 블러드의 눈동자........ 도둑이라면 한번쯤 훔쳐보고 싶은.................. 아름다운 루비 빛.............. 어느 샌가 뻗어간 손이 녀석의 얼굴을 살짝 쓸어보고 있었다. 날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주제에............... 이 녀석의 눈동자는 항상 날 향해있다. 자신에게 상처만 주는 나를............. 붉은 눈동자에 혼이라도 빼앗긴 듯 시선이 붙들린 채 그렇게 얌전히 녀석의 품에 안겨있었다. 미친 게 분명하다. 벗어나지 않으면........... 이 녀석에게 붙들려 버릴 걸 아는데.......... 어쩐지 몸에서 열이 나고 분홍빛 입술에서 새어나가는 호흡에 단내가 느껴진다. '왜...........?' 우연히 시선이 간 난간 위엔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빈 잔이 놓여있다. '설마................술........이었나............?' 독한 술도 아니었고 고작 한 잔으로 취했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입술에 부드러운 것이 맞닿아오더니 가볍게 빨아들인다. 정신은 알지도 못하는 곳에 날려버린 채 반사적으로 흠칫 몸을 떨자 분홍빛 입술을 벌리고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거부 따윈 생각조차 않고 눈을 감고 녀석을 받아들였다. 거칠게 뛰어대는 심장과 입안을 휘저어대는 지독한 열기에 알지 못하는 사이 팔을 둘러 녀석의 옷자락을 꽈악 움켜쥐자 뜨거운 손이 복잡한 옷자락을 걷어내고 바로 안으로 파고들어 부드러운 피부를 쓸어댄다. 의식도 못한 채 그렇게 열기에 휩쓸려 정신없이 키스를 퍼부어 대는 녀석에게 안겨있길 한참.............. 입술을 떼지도 않고 입안에 난 상처를 쓸어주는 녀석에게 몸을 맡긴 채 가쁜 숨만 내쉬고 있다가 생소한 느낌에 몸이 확 굳어버렸다. 타액에 젖어 더운 숨만 몰아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녀석의 손이 어느 틈엔가 엉덩이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 있었다. 반항도 못한 채 숨을 멈추고 몸을 움칠 떨자 달래듯 목덜미에 부드러운 키스를 해주고 손을 미끄러뜨려 부드러운 굴곡 사이로 파고든다. 녀석의 옷자락을 꽈악 틀어쥔 손에 힘이 들어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동안 정신나간 짓을 하도록 부추긴 술기운이 확 달아나는 느낌.............. 녀석의 손가락이 노골적으로 더듬어대는 느낌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뭔가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만져대는 녀석에게 의아함을 느낄 틈도 없이 뻔뻔하게 더듬어대는 녀석의 손목을 꽈악 움켜쥐어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뭐.....뭐 하는 거야...........?!!" 꼴사납게 잠긴 목소리로 작게 소리친 후 녀석을 밀어내려 바르작거리자 이상할 정도로 간단하게 손을 물린다. 순식간에 당한 일에 패닉상태에 빠져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넋이 나가있는 사이........... 능숙하게 헝클어진 옷자락을 정리해 주고 다시 입술을 포개자마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무....무슨 짓이야? 루베라도 찾았으면서 왜 나한테..............." "그 녀석은 내 루베라가 아니야............." '뭐?!!!!!!' 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녀석을 올려보자 자신도 놀란 듯 붉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린다. 들켰을 리 없다. 지금의 나와는 달리 모습도 2년 전 그대로인대다 루베라까지 있다. 게다가 황제와 연결돼 있다는 루펜타를 속이기 위해 루베라 위에 상처까지 새겨 넣었다. 그때의 나처럼 녀석을 원망해 스스로 루베라를 깨뜨려버린 것처럼........ 그리고 벙어리에다 유이 녀석의 명대로 기억을 모두 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 테니 꼬투리 잡힐 만한 일은 없는 터...... 그런데............ "무......무슨 헛소리야? 머리칼도......눈동자도 까만 건 니 루베라 밖에 없잖아........." 역시 대답이 없다. 겨우 이 녀석도 나도 안정된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데........... 내 길을 가기로 마음을 잡았는데............. 더 이상 녀석에게 상처 따위 주고 싶지 않은데........ 다시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 수는............. 혼란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날 꼬옥 끌어안는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 도망치듯 중앙홀을 빠져나왔다. 헐떡이며 한참을 빌어먹게도 넓기만 한 복도를 내달리는데............... '헉...........' 뭔가에 부딪쳐 중심을 잃는 순간 강한 손아귀로 손목을 쥐어 쓰러지려던 몸을 지탱해 준다. 열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한 채 놀란 눈으로 올려보니 처음 보는 사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올려봐야 할 정도로 큰 키에 탄탄하게 균형 잡힌 몸............ 반짝이는 금발에 금갈색 눈동자........... 날카로운 눈매와 매끈한 얼굴이 귀족의 표본 같은.................. 잠시 그렇게 굳어있다 한동안 날 훑어보던 사내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더니 입을 열어 말을 꺼내려던 순간 정신을 번쩍 차리고 바락 소릴 질렀다. "너, 누.......누구야?!!!! 뭐야!! 이거 놔!!!!" 입을 다물고 기이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사내의 손에서 벗어나려다 마주 보이는 까만 녀석에게 시선이 박혔다. 까만 머리칼에 까만 눈동자................... '저 녀석이 왜...........?!!'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 낯선 사내의 손에 손목이 붙들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걸 알고 까만 녀석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너.........황제의 루베라한테 손대면 손이 잘린다는 것도 모르는 거냐?!!!"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들어올린 순간 부딪쳐온 사내의 눈동자에 숨을 멈춰버렸다. 온화한 듯 하지만 차가운 금갈색........... 농도 짙은 호박과도 같은 눈동자에 한참동안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분명 처음 본 녀석일 텐데............... 왠지............. 거칠게 뛰어대는 심장에 사내에게 붙들린 손목이 저릴 정도로 아프지만 빼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린 것은 까만 녀석이 사내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칠 무렵......... "황제한테 죽고싶지 않으면 손부터 놓는 게 좋을걸?" 노려보며 말을 뱉어내자 빌어먹을 자식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더니 까만 녀석만 놓아준다. '빌어먹을!! 왜 나까지 꼴아보고 지랄야?!!!' 까만 녀석이 화가 난 듯 사내와 날 노려보고 중앙홀로 돌아서는 걸 이를 바득바득 갈며 보는 사이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스쳐온다. "황제폐하의 루베라는 놓아드렸으니 입막음만 하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군요......." "입막음?!!" "당신만 입을 열지 않는다면 제 목이 날아가는 일은 없을 듯 한데..........." "뭐야? 내가 입만 열지 않으면 돈이라도 내놓겠다는 거야?!! 미리 말해두는데 난 입이 아~주 가벼워서 보통 무거운 게 아니면 내일 아침 황궁 전체에 소문이 다 퍼질걸?!!" "큭, 반짝이는 걸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알면 내놓던가 없으면 이 손 놓고 빨랑 꺼져!!" "여지껏 이렇게 눈에 띄는 분을 황성 안에서 보지 못했을 리 없을 텐데..........." "뭐가 눈에 띈다는 거야?" 미간을 찌푸린 채 올려보자 갑자기 호흡이 맞닿을 정도로 다가선다. "입막음이라면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키스라도 할 것처럼 다가서는 녀석에게 한방 날려주려 주먹을 말아 쥐는 순간 마주친 사내의 눈동자에 어처구니없게도 또다시 몸이 굳어버렸다. 역시 어디선가............... 고개를 숙여오는 사내를 멍하니 바라만 보며 넋이 나가있는 사이, 입술에 사내의 호흡이 스치자마자 뒤에서 누군가 강하게 허리를 감아 품안으로 끌어당겨 사내에게서 떼어낸다. "함부로.............손을 대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금갈색 눈동자에서 시선도 떼지 못한 채 굳어있다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올리자 시니안이 굳은 얼굴로 내 손목을 쥐고있던 사내를 마주본다. "그 분은............" "폐하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타국에서 오신 국빈이십니다" 시니안의 말에도 내게서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는 사내의 눈동자에 심장이 정신없이 쿵쾅거려 떨리는 손으로 시니안의 푸른색 옷자락을 쥐고 단단한 품에 파고들자 바로 감정이 묻어나지 않는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무례한 시선은 거두어 주십시오............" "큭, 무례한 시선이라.............." 관찰하듯 훑어보던 시선을 거두고 날카로운 눈동자로 시니안을 스쳐보더니 깊이 고개를 숙여온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보기 드문 미색에 잠시 넋이 나가 터무니없는 짓을..........." '뭐? 미친.......주둥이에 버터를 쳐 발랐나?!! 무슨 개소리야?' 더욱 실례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사내를 울컥한 표정으로 노려보자 입꼬리를 올려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럼, 저흰 이만........." 뭔가 더 할말이 있는 듯한 사내에게서 돌아서는 시니안의 손에 이끌려 별 수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누구야?" 말없이 앞서가는 녀석에게 대뜸 말을 던지자 그제야 내게 은회색 눈동자를 맞춰온다. "스턴이란 자입니다" "스턴? 아는 녀석이야?" "물론........" 무표정한 얼굴을 올려보자 다시 말을 잇는다. "이름 있는 귀족가의 후계자일 뿐만 아니라 작년 황궁 검술시합 결승에서 케레스와 맞붙었다 들었습니다. 결국 케레스에게 패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건 전략의 귀재라 부를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사내라고 하더군요" '스턴이라.............' 모르는 녀석이 확실하다. '그런데 왜...... .......터무니없는 반응을.............' "흥미가 있으신 듯 하군요............" "큭, 첫눈에 반하기라도 했나보지........." 무심코 던진 말에 앞서가던 녀석이 갑자기 멈춰 서더니 뒤돌아 시선을 맞춰온다.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매사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녀석이 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 갑작스런 태도에 의문을 띄고 멍한 표정으로 올려보자 김빠지는 한숨을 쉬어댄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드러내는 자에게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시니 폐하께서.........." "응?" "큭, 황제폐하의 질투는 그야말로 황제급이니 감당할 수 없는 언행은 부디 삼가시길.........." "무슨 소리야?" 하얀 머리칼을 쓸어 올려주더니 다시 발걸음을 돌려 앞서가는 녀석을 올려봐도 입꼬리를 올린 채 말이 없다. Rubera(루베라) #135 그 후 사흘 동안을 침실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티폰을 보면 또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짓을 벌여버릴 것만 같고.............. 가뜩이나 혼란스러워 하는 녀석의 눈에 띄어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기에 파티에도 나가지 않고 침실 안에서만 사흘을 보냈다. "하아......." 도둑질이 아니면 파티 따윈 애초에 관심도 없었지만......... 이렇게 갇혀만 있으려니 좀이 쑤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어두운 침실 안에서 혼자 넓디넓은 침대 위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 거리며 창을 통해 보이는 커다란 달을 바라보다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아무래도............... 그 동안 마음먹었던 일을 오늘 해야겠다. 마음을 정하자마자 바로 실행해 옮겼다. 미리 골라두었던 까만 옷을 꺼내 움직임이 편하도록 단검으로 잘라 입고 귀족들이 목에 두르는 까만 고급 천으로 얼굴을 가렸다. 시종들이 들어와도 들키지 않도록 시트 밑에 베개를 넣어 사람이 자는 것처럼 부풀려 놓고 발코니로 발걸음을 옮겨 아래를 내려보니 역시나 오늘도 화려한 파티가 열려 병사들은 귀족들이 모여드는 중앙홀에 집중되어 있다. 유이 녀석이 날 찾으러 왔던 날부터 병사들을 물려버려 밑엔 지키는 녀석도 없다. '나라를 담보로 잡았으니........ ........도망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겠지.......' 시니안은 아까 잔다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한참을 누워있는 노고를 보여 겨우 돌려보냈고....... 유이 녀석이라면 지난번 해 둔 협박으로 밤엔 찾아오지 않을 테고........ "큭, 혼자 털로 간 걸 알면 유이 녀석......난리를 쳐대겠군......." 크리올라의 귀족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번........... 시녀들의 수근거림으로 황성 근처에 엄청난 귀족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 그 동안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 크리올라의 수도 동쪽 외곽에 있다고 했으니 말을 타고 황제의 숲을 가로지르면 1시간 반 정도....... 준비는 모두 끝났고....... 그대로 벽을 타고 간단히 지면으로 내려서 주위를 둘러본 후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나저나 말은 어디서 구한다........." 정원 한켠에 잔뜩 늘어서 있는 귀족들의 마차를 가만히 바라보다 고개를 휘젓고 황성 내 마구간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마구간지기도 마구간 옆에 딸린 작은 건물에 들어가 몸을 쉴 터....... 조용히 마구간으로 들어서자 말들이 작은 소음을 낸다. 잠시동안 가만히 서서 말들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다 근처에 매어둔 말에 천천히 다가섰다. 그런데 하필.......... 갑작스런 침입자가 맘에 안 드는지 커다랗고 건방진 눈 두 쌍이 날 노려본다. "또 니놈이냐......." 눈앞에 보이는 까만 녀석은 분명 티폰의 싸가지 없는 말새끼........ 전엔 당근까지 내주며 회유를 했건만 지금까지 그걸 기억하고 있을 턱도 없고 날 기억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짐승이라도 까만색과 하얀색의 차이는 확실히 알 수 있을 테니.........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려하자 갑자기 소란을 피려는 듯 요란한 소릴 내며 머릴 흔들어대 화들짝 놀라 녀석의 고삐를 움켜쥐었다. "이 빌어먹을 말 새끼!! 조용히 좀 해!!!!" 소리를 죽여 말을 내뱉고 목이라도 비틀어버릴 듯 노려보자 갑자기 내 머리에 코를 들이대고 몇 번 킁킁대더니 바로 얌전해진다. "뭐.....뭐야? 날.......기억해?" 의심스런 눈으로 눈앞의 짐승을 바라보자 이리저리 뻗은 하얀 머리칼이 맘에 안 든다는 듯 잠시 바라보다 머리를 들이밀어 내게......... '헉.......!!' 놀라 뒤로 물러서자 탁하고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온다. "이......이 새끼가 또!!!!" 눈앞에서 입맛을 다시며 서있는 까만 말새끼를 이를 박박 갈면서 한참동안 노려보다 할 수 없이 뒤돌아 섰다. '씹, 나중에 두고봐..........그 놈의 이빨, 당근도 못 먹게 왕창 다 뽑아버릴 테니......!!!'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 우선......... 다른 말로 발걸음을 옮기려하자 요란하게 투레질을 하며 발굽으로 땅을 찬다. "이 새끼!!!! 어쩌라구!!!!!!! 니놈도 심심해?!! 성깔도 더러운 게 주인한테나 보챌 것이지!!!!" 이 놈도 짐승 주제에 한 성깔 한다. 지 주인이 아니면 태우지 않는 건 애초에 아는 사실이고 혹여라도 다른 녀석이 제 등에 올라타면 떨어뜨려 밟아버릴 뿐만 아니라 매일 보는 마구간지기도 맘에 들지 않으면 사정없이 걷어차는 극악한 놈이다. '썩을 놈...........' 소란을 피워대는 말새끼를 한참동안 노려보다 별 수없이 신경질적으로 녀석의 고삐를 풀러내며 말을 이었다. "이 자식!! 내 머리카락이 말라비틀어진 풀뿌리로 보여?!! 다시 한번 그딴 짓 했다간 타고 나가서 팔아버리는 줄 알아!! 나 떨어뜨리면 식당에 팔아버릴 테다!!! 니놈은 육포로 만들어버리면 딱이야!! 말로 만든 육포가 얼마나 맛난 줄 알아?" 잔뜩 협박을 해대자 조금은 얌전해진 말새끼를 끌고 나와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작은 소란에도 들키진 않았는지 주위는 잠잠하고.......... 조용히 말을 끌고 황제의 숲으로 들어서 황성과 약간의 거리가 생기자 말 등에 올라타 어두운 숲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주인만큼 성격은 괴팍해도 꽤나 혈통 좋은 말인지 크기도, 빠르기도 여느 말과는 사뭇 다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수도 외곽을 따라 도착한 곳은 애초에 목표로 한 어느 귀족의 저택........ 황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듣던 대로 대단한 가문인지 엄청난 규모의 저택을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만 봤다. '오늘 황궁에 파티가 열리니........주인은 외출을 했겠지.....?' 불이 환히 밝혀진 저택을 가만히 바라보다 불만스럽게 날 바라보는 까만 말을 그늘이 져 어두운 구석에 매어두고 저택의 담을 넘었다. 정원만 해도 한참을 걸어야 할 듯..........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 얼굴을 가린 까만 천을 풀어 하얀 머리카락을 가렸다. '시작해.......볼까.......' 정원을 가로질러 저택 가까이 까지 다가가 주위를 살펴보았다. 불이 환히 밝혀져 있긴 하지만 정작 불이 켜져 있는 침실은 거의 없다. 저택을 지키는 시종들이 멀어지자마자 1층 발코니로 올라가 불이 꺼져있는 수많은 창 중 하나를 열어 내부로 발을 내딛은 후 조용히 들어왔던 창을 닫았다. 그런데............. '이런, 젠장.......!!' 들어서자마자 욕설을 내뱉곤 얼굴을 구겼다. 수많은 창 중에 고르고 골라 들어선 곳은 작은 집무실......... 이렇게 커다란 저택의 집무실 치곤 상당히 작지만 중요한 것은 그딴 것이 아니다. 집무실엔 가장 중요한........ ......돈이 없다....... '재수 옴 붙었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둘러보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커다란 고급 책상과 보석이 붙어있지 않은 장식, 그림, 서류들........ 조심히 책상으로 다가가 조용히 서랍을 열어보자 역시나 알아볼 수도 없는 꼬부랑 글씨가 빡빡히 새겨져 있는 서류뭉치....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두 번째 서랍을 열자........ '헉, 이게.......뭐야?' 서랍 안엔 금으로 만든 듯 보이는 엄지손톱 만한 구슬이 잔뜩 들어있다. 크기도 작은 주제에 엄청나게 정교한 문양이 새겨있어 한 눈에 봐도 고가의 물건........ "응? 금으로 만든 것치고는..................너무 가벼운 거 아냐? 가짠가......?" 의아한 생각에 수십 개나 되는 구슬 중 하나 집어들어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복도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울려온다. '서....설마 이쪽으로?!!!' 화들짝 놀라 서랍을 닫아버리고 책상아래 몸을 숨겼다. 문이 열리더니 사람이 들어서는지 발자국 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온다. 다시 문이 닫히고.......... 다행히 불도 밝히지 않은 채 사내 두 명의 대화가 오고간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와 약간 나이가 든 듯한 남자의 목소리....... "어떻게.........이런 일이........!! 요 몇 달간 폐하의 곁에 있던 루베라는 가짜였단 말인가....!!" "그럴 리가......." "그럼, 지금 폐하의 침소에 들어있는 루베라는 뭐냔 말이다.....!!" 쾅 소리와 함께 책상을 내려치자 흠칫 놀라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더욱 낮추고 귀를 귀울였다. "확실히 지난 번 죽은 루베라보다는 지금 폐하의 침소에 있다는 루베라의 외양이 2년 전과는 더 흡사하지만..........." '씹, 다른 새끼들 클 때 난 손가락 빨고 있었는 줄 알아?!!!' "터무니없는 실수를...........!!! 일이 더 꼬여버렸어......... 결혼식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또 파혼이라도 선언하신다면........!!! 차라리 귀족들을 모아 폐하께 루베라는 죽었고........지금 있는 녀석이 가짜라고 고하는 것이..........." "잘못하면 목이 날아갈 겁니다. 스스로도 기억을 잃었다는 자각이 없으시니 오히려 역효과만..........." "그럼, 이렇게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이냐!! 도대체 누가 가짜를!!! 설마 우리 가문을 적대시 하는 자들이 국혼을 방해하려고........!!" "가짜 루베라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을 쓸 수 없으니...........좀 더 지켜보심이............" '결국..................내가 가짜가 되는 건가...........'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폐하께서 최근 들이셨다는 침실노예는 어떻게 되었지........?" '하, 가짜에다가 침실노예.................? 가지가지 듣는군.........'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누이동생의 말로는 루베라 때문에 폐하에게 내쳐져 뮤즈니안 황태자의 정부로 돌아섰다 하더군요......" '빌어먹을!! 누가 정부야?!!' "황태자의 정부라니........? 설마 그 귀족이라던 하얀 아이가........?!!" "그런 듯 합니다........." "역시............닮은 것뿐인가............" "놀랄 만큼 닮긴 했지만.......그뿐입니다" "그렇겠지......." '뭐야?!! 내가 왜 그 자식 정부가 돼?!!! 어떤 자식이 그딴 식으로 떠벌리고 다닌 거야?!!!' 이를 바득바득 갈며 주먹을 꼬옥 쥐고있는 사이 다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때.......일이 잘 됐으면 이렇게 몇 년씩이나 돌아오는 일은 없었을 터인데.......미련한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더 잘 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크리올라가 뮤즈니안을 제외한 대륙을 모두 지배하고 있으니......2년 전 보다도 더........" "그럴지도.......문제는.....루베라와 황제폐하 뿐인가........네 누이를 잘 보살펴라........" "미르니안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영악한 아이입니다" "결국 섣불리 움직여 이렇게 화를 부르지 않았느냐........?!!" '미르니안......?' 유이 녀석의 정부란 말에 화가 나 잔뜩 투덜대다 언뜻 스치는 이름에 책상에 미세하게 뚫린 구멍에 눈을 갖다대자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내 중 한 명의 모습이 겨우 눈에 들어온다. 보이는 건 옅은 갈색의 머리칼과 부드러워 보이는 커피색 눈동자를 지닌 중년의 사내....... '뭐야? 저 아저씨였어? 시집갈 딸 걱정이라도 하나? 씹, 그럼 여기가 저 아저씨네 집이란 말 아냐?!!' 반대편엔 젊은 목소리의 주인인 듯 장신의 남자가 서있지만 작은 구멍 틈으로 얼굴이 보일 턱이 없다. '누이동생이라니............그럼, 저쪽이 미르니안이란 여자의 오빤가?' 아무래도 장소를 잘못 택한 것 같다. 별 도움은 안됐지만 저 아저씨에겐 빚을 진 것 같고......... 게다가 황비 될 여자의 저택을 터는 건.....좀.......... "요즘엔..........미르니안도 침소에 들이시지 않는 것 같더군.........또다시 이대로 틀어지는 건........" "확실히.........진짜 루베라가 돌아오는 바람에............하지만 폐하께서도 파혼을 번복하실 생각이 없으신 듯 하니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대 황제가 미르니안의 몸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그 전에............처리할 문제가........" "그 일이라면 거의.........마무리되고 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기 전에...........확실히 끝내야 한다......." "예..........." '역시........자식새끼 낳으려고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침대에서 구른 건가...........' 저 아저씨의 말을 들어보면 요즘엔 또 뜸해진 모양이다만........ 나와 같은 침대를 썼을 때도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놓아주지 않던 녀석이다. 결혼이라도 해서 자기 마누라에게 내게 했던 반만큼만 해대도 100명은 족히 낳고도 남을 녀석이니......... 한참 우울한 생각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야기를 나누던 사내들은 이미 집무실을 나간 상태........... 책상 아래서 몸을 일으켜 조용히 집무실 창을 열고 밖으로 나온 후 원래대로 창을 잠그고 저택에서 벗어나 정원으로 향했다. '응?'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주위를 살펴보다 불편한 느낌에 손을 내려보니............ 아까 쥐고있던 구슬 하나가 고스란히 놓여져 있다. '뭐야? 들고 있었던 건가......할 수 없지.....이거 하나 없다고 죽진 않을 테니........' 무심코 들고 나와버린 금빛 구슬을 품속에 집어넣고 답답하게 머리를 감싸고있던 까만 천을 풀러낸 후 올 때와 마찬가지로 정원을 가로질러 담을 넘었다. 힘없이 터벅터벅 걸어와 의외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티폰의 말에 올라 황성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아.............결혼........인가..............." 녀석의 일 따윈.............. 이젠........ 나와 전혀 관계없는 일임을 알지만........ 녀석이....... 티폰이 결혼해 다른 여자와 침대 위에서 구르는 것 따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꽉 막혀와 아프게도 날 괴롭혀 댄다. '큭, 상상뿐만이 아니라 실사로도 봐버렸으니........ 바보같이......... 아직도 쓸데없는 미련이 남아있는 건가..............' 자꾸 가라앉아 가는 기분에 말에서 내려 천천히 숲길을 걸었다. 어차피 목표로 했던 저택은 털지도 못하고 계획보다 시간이 남아도니...... 한참을 걸어 반정도 왔다고 생각이 들었을 무렵 눈앞에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한다. '뭐야? 설마 병사들은 아니겠지......?' 가까워지는 그림자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 까만 말을 나무에 매어두고 기척을 죽인 채 가만히 길가에 서있었다. 멀리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정확히 둘........ '이 밤중에 숲엔 왜 들어온 거야?' "이봐, 최근에 황제가 다시 숲을 폐쇄해 버렸다는데.......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거야?" "큭, 겁이라도 먹은 거냐? 이 숲을 가로질러야 빨리 갈 수 있다고 한 건 너잖아!!" "그.....그렇지만 잡히면 바로 처형당하니 섬뜩해서 하는 소리 아냐?!!" "흐흐.....그 녀석 처분하고 돈을 두둑히 챙겼으니 빨리 수도로 내려가 계집들 궁둥이나 두들겨 주자구......" 왠지 기분 나쁜 녀석들.......... 지척에 있는데도 내가 있는 줄 모르는 모양....... 자세히 살펴보니 건장한 사내 둘이었다. '뭐야? 이 자식들.......밤에 숲엔 왜 돌아다니고 지랄야?' "헉!!!" "으아아악!!" 갑자기 두 녀석이 벌렁 뒤로 넘어가며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그냥 가던 길을 가려다 기가 막혀 녀석들을 바라보니 시선이 내게 박혀있다. '얼씨구? 이것들이 또 왜이래? 귀신이라도 봤나?' 주위를 두리번거려봐도 어두운 숲길엔 녀석들과 나, 말새끼 하나 뿐...... "뭐.....뭐야?!! 사....사람이잖아? 어두운데 허연 것이 왔다갔다해서......." '이 씹, 지금 나보고 그 지랄발광을 해댄 거야?' 화가 나 눈썹을 치켜올리고 노려보다 겨우 성깔을 죽이고 다시 말고삐를 풀려고 돌아서는데 꼴에 겁이라도 주려는지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울려온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한 놈이 일어나 날 바라보고 있다. "뭐야?!!" '설마..........이 자식들..............' 불길한 느낌............. Rubera(루베라) #136 "꼬마 너 혼자 이곳에 들어온 거냐?" "미친.....니놈 눈깔엔 내가 꼬마로 보여?!!!" 짜증나는 말에 속이 잔뜩 꼬일 대로 꼬여 거칠게 말을 뱉어내자 기분 나쁘게 입꼬리를 올리고 날 훑어본다. "큭, 꽤나 건방진데? 사람을 그렇게 놀래켜 놓고 그냥 가면 쓰나?" "정신병원에서 방금 탈출했냐? 겁 많은 니놈들이 놀란 거지, 내가 놀래킨 거야?!! 별 것들이 밤에 설치고 지랄야!!" 모처럼 기분 전환이라도 하려고 바깥으로 나왔는데 일만 꼬이고......... 자꾸 신경을 거슬리는 녀석들의 말에 기분이 바닥을 치려한다. 뒤를 돌아서려던 순간 녀석이 말을 꺼내기 전 까진....... "너....돈 벌어볼 생각 없어?" '뭐? 돈?' 흘낏해 다시 녀석들을 바라보니 아직도 바닥에 널부러져 자신의 동료가 뭘 하려는지 지켜만 보던 키 작은 뚱보가 자릴 털고 일어서 이제야 알겠다는 듯 기분 나쁜 미소를 입에 걸친다. "금화 7000......? 아니, 그 이상도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금화 7000? 어떻게?" 엄청난 액수에 꽤나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녀석들이 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한다. "네놈을 돈 많은 귀족한테 팔면 그 정돈 충분히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썩을.........어쩐지........!!' 그제야 녀석들의 말을 이해하고 처음 봤을 때 감이 맞았음을 알았다. '또냐?!!' "빌어먹을 새끼들......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묘기는 곰탱이가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거야!!" 얼굴을 일그러뜨리자 녀석들이 품에서 무기를 꺼내든다.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상처는 입히지 않을 테니 순순히 잡히는 게 어때?" '지랄....무식한 것들.....!!' "꼬마야, 돈 많은 귀족에게 팔리면 뭐든 얻을 수 있을 테니 오히려 좋은 거야" "웃기고 있네!! 변태새끼한테 팔리는 게 좋으면 니놈이 팔려!! 쳇, 너 같은 놈은 팔아봤자 금화 한 개도 못 받겠군......" 품안에서 단검을 꺼내들자 입에 걸쳤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우고 내게 덤벼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한 명씩......이라는 생각에 달려들던 뚱땡이의 검을 단검으로 거둬내고 발로 배를 냅따 걷어차니 저만치 나가떨어져 곰탱이처럼 뒹군다. 그리고...... 꽤나 덩치가 좋은 녀석이 바로 휘둘러 오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주먹을 얼굴에 박아버리니 검을 놓치고 바로 나가떨어지는 게....... '뭐야? 검도 쓰지 않았는데......형편없이 약한 놈들 아냐?' "이.....이 비겁한 녀석!!" "비겁?" '이것들은 왜 무기를 쓰지 않고 팔다리를 날리면 비겁하다고 하는 거야?' 이해를 할 수 없다. 어차피 저쪽 세계에선 칼 들고 설치면 범죄가 되는데....... 검도 꽤나 익숙해졌지만 오히려 발길질과 주먹질에 도가 튼 내게는 이게 더 편하다. 그래서 거의 검을 써도 주먹과 발길질을 섞어 쓰는데 쓰는 족족 나가떨어지는 녀석들의 반응이 이 모양이니....... "남의 몸뚱이 팔아먹고 돈 받아 쳐 먹으려던 놈들이 비겁이란 말이 나와?!!" 쓰러져있던 덩치에게 도끼눈을 뜨고 발로 걷어차 버리자 찍소리도 못하고 입을 다물어 버린다. '젠장, 이것들 때문에 기분 다 잡치고.......' 이를 부득부득 갈며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말을 툭 던졌다. "가진 돈 다 내놔......" "뭐?!!" 멱살을 잡힌 채 목에 칼까지 대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는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작은 눈을 한계까지 벌리고 날 바라본다. "이 씹, 두 번 말 안 해.....어차피 나쁜 짓 해서 번 돈 아냐? 내가 직업이 도둑이걸랑? 귀족들만 털었는데 오늘은 색다르게 범죄자도 털어 봐야겠어......" "도....도둑? 서....설마 니놈.......그 머리색.............하얀 여우??!!!!" "이 개.새.끼!! 그딴 식으로 부르지마!!!" 이를 뿌득 갈며 멱살을 쥐고 흔들다 순간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뒤돌아 다른 쪽 손에 있던 단검을 던져버리자 검을 들고 내게 달려들던 뚱보가 비명을 지르며 어깨를 움켜쥐고 바닥에 나뒹군다. "숨기면 죽을 줄 알아......금화든 은화든 하나 숨기면 한대씩......" 동네 깡패들이나 입에 담는 협박을 내뱉으며 차가운 눈으로 악귀같이 씨익 웃어 보이자 고통스럽게 바닥을 나뒹구는 뚱보를 보곤 미친 듯이 품을 뒤져 제법 큰 주머니 하나를 꺼내 놓는다. "넌 없어?" "도....돈은 그 녀석이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녀석을 흘끔 바라보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다. 주머니를 받아들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뚱보의 어깨에 박힌 단검을 빼내자 피가 확 뿜어져 나온다. 제대로 박아 넣지 않아서인지 상처는 깊지 않지만 출혈이 심하다. "데리고 꺼져......" 단검을 다시 품에 넣고 미간을 찌푸린 채 피가 튄 옷을 바라보자 후다닥 일어서 비틀거리는 뚱보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큭, 강도 다 됐군......이걸로 나온 보람은 있었고.......그나저나 어쩐다........그냥 돌아갈까......시간도 많은데............." 시선이 간 곳은 꽤나 익숙한 숲길.......... 그 때.......... '거기라도 가볼까......' 카메나이 호수........ 갑자기 그 그림같이 아름다웠던 호수가 보고싶었다. '날씨도 좋은 거 같고.......좋아!!'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 말고삐를 잡아끌어 숲 안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밤에 잠긴 숲은 어둡지만 거의 보름달이 되어 가는 달빛으로 생각보다 어둠이 깊진 않다. 그땐........ 티폰과 함께 황성에서 말을 타고 가서 먼길이 아니었지만......... '뭐, 날이 밝기 전에만 돌아가면 되겠지.....' 태평한 생각을 해대며 숲길을 혼자 걸었다. 키리안 숲을 휘젓고 다닌 탓인지 예전처럼 숲에 대한 공포감은 그다지 들진 않지만........ 옆에 누군가 없다는 것이 약간 기분을 가라앉게 한다. 신경 쓰이는 말새끼가 한 마리 있긴 하지만.......... 별로 도움은 될 것 같지 않고......... 풀벌레 소리와 산짐승 돌아다니는 소리가 귓가에 스치고....... 터벅터벅 길을 걸으며 녀석들에게서 강탈한 주머니를 열어보니 생각보다 꽤나 많은 돈이 들어있었다. "금화 50개라.....꽤 많잖아? 그 자식들 또 누군가 팔아먹고 번 돈 아냐?"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다시 빙글거리며 길을 걷기 시작했다. "뭐, 나랑은 상관없지......." "삐익~" "응? 피이?" 머리 위를 올려보니 역시나 녀석이 주위를 맴돌고 있다. "뭐야......유이 녀석이라도 따라온 거냐? 응? 자.....잠깐!! 장갑도 안 꼈단 말야!!!" 갑자기 내려서려는 녀석에게 당황해 주춤 물러서도 멈출 생각을 않는다. 타니안은 주식이 육식이고 간식거리로 커다란 곤충들을 잡아먹기 때문에 발톱이 엄청 날카로워 가죽 장갑이 없으면 팔에 상처를 입기 쉽다. "피.....피이!! 저리가!!!" 손사래를 치며 소릴 질러봐도 내게 날아오는데....... '어라......? 뭐야?' 뭔가 시커먼 게 발톱에 걸려있다. '서......설마.......' 경험으로 봐선......... "오.....오지마!! 저리가!!! 나 먹을 거 찾으러 나온 거 아냐!!! 으.....으아아아아악!!!!!!" 바닥 위로 넘어져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치자 바닥에 툭하고 떨어져 내리는 건 시커먼 왕지네........ 발이 수백 개는 됨직한......... 다행히 지난번처럼 살아있진 않았지만....... 바닥을 기다시피 그곳을 벗어나 정신없이 숲길을 내달렸다. "이 빌어먹을 자식!! 키워준 은혜를 그딴 식으로 갚아?!!!!!!!!!!!!!" 어둠이 가라앉은 숲 속에 분노로 가득 찬 노성이 울리지만 녀석은 다시 밤사냥이라도 나섰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아.....하아......." 정신없이 뛰어와 도착한 곳은 다행히도 애초에 목표로 삼았던 카메나이 호수....... '헉......!!' 혼자 미친 듯 달려와 말새끼를 깜빡했다. 주위를 정신없이 돌아보자 익숙한 듯 투명한 호숫물에 머릴 박고 물을 마시고 있는 까만 짐승이 눈에 들어온다. '하아............티폰 녀석이랑 자주 와봤을 테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호수를 바라봤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달빛을 머금은 호수는 한참이나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답다. 갑자기 요정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조용히 호숫가에 다가가 풀밭 위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고 보니...........전설이 있다고 했다. 이 호수엔............. 연인이 몸을 함께 씻으면 행복해 진다던가......... "쳇, 거짓말쟁이....." 심술이 나 호숫물에 돌멩이를 던져버리자 작은 파랑이 인다. 지금의 날 보면............. ...........정말 터무니없는 거짓임에 틀림이 없다. "순 사이비 호수잖아............" 그렇게 멍하니 중얼대며 아름다운 호수를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 건 찝찝한 느낌 때문........ 내려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옷과 몸엔 뚱보녀석의 피가 튀어있고 피이 녀석 덕분에 흑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을 뿐 아니라 여기까지 도망치다시피 뛰어와 땀이 흐르고 있다. "하아.......젠장............" 결국 크게 한숨을 내쉬고 옷을 훌훌 벗어 던지다 뭔가 옷자락에서 바닥 위로 툭 떨어지는 소리에 고개를 숙여보니 아까 귀족가에서 무심코 들고 나온 구슬........ '뭐야?' 반짝이는 구슬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 결국 돈이 들어있는 가죽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옷을 전부 벗어버린 후 비교적 깨끗한 까만 망토는 푹신한 풀밭 위에 깔아두고 나머지는 호숫물에 집어넣어 핏물과 흙먼지를 씻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충 옷을 빨아 탈탈 털어 물기를 빼낸 후 근처에 있는 나뭇가지 위에 걸어두고 허리까지 닿는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몸을 씻어냈다. 약간 미적지근한 날씨 탓에 차지 않은 물은 기분을 한결 가볍게 해준다. 초저녁에 황성을 나와 지금은 자정이 다 된 시간......... 여기까지 오는 길에도 여러 가지 일이 생겨 꽤나 시간을 소비했다. '씻고 바로 돌아갈까.........' 생각을 굴리다 나뭇가지 위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보고 마를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을 정한 후 물 밖으로 나섰다. 새벽이 되면 기온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 전에만 돌아가면 될 듯.......... 물 밖으로 나와 망토로 몸을 감고 풀밭에 가만히 누워 맑은 밤하늘을 올려봤다. 티폰 녀석과 처음 이곳에 같이 왔을 때도 어쩐지 낯이 익었지만......... '전에도 온 적이 있는 건가........' 귓가에 스치는 물결소리와 풀벌레소리에 스륵 눈을 감았다. . . . 눈을 떴을 땐............ ............아무 것도 없었다. 강가에서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니 방대한 숲만이 눈에 들어오고.......... '여기가........어디........?'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있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무섭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보다....... ......혼자 있다는 게 더욱........ 몸을 일으켜 숲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미 해가 져 주위는 어둠에 묻혀버렸고....... 두려움에 떨며 한참을 걸어도 보이는 것은 커다란 나무 뿐........ "또........실패한 건가......." 갑자기 들려오는 섬뜩한 목소리에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춰 섰다. 보이는 건 새카만 그림자 둘....... 어둠에 묻혀 형체만이 겨우 시야에 들어온다. "슈안님......섣불리 행동하는 것보다 역시 때를 기다리는 것이......." "황제가 병상에 누웠다!! 이제......시간이 없어.....무슨 수를 쓰더라도 성공시키지 못하면........ 나는 물론이고 그대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다......." 잠시동안 침묵이 흐르고........ 목소리를 낮춰 얼마간의 말이 더 오고가다 까만 형체 하나가 자리를 벗어나자 나머지 하나가 미동도 없이 굳어버린 내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누....구......?' 달빛에 드러나는 까만 형체의 주인공은 올려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큰 사내........ 반짝이는 금발과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누구냐!!" 날카로운 소리에 번쩍 정신을 차리자 섬뜩한 검을 뽑아들고 내 쪽으로 다가서지만 순간적인 공포에 몸이 굳어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지척까지 다가선 사내가 살기를 띄고 날 바라보자 놀라 크게 뜬 눈으로 사내를 올려봤다. 그리고........ "이럴......수가.........." 날카로운 검이 바닥에 떨어져 적막이 가득 들어찬 숲 속에 작은 소음을 일으킨다. 멍하니 바닥에 떨어져 내린 검을 내려보자 겨드랑이 사이에 강한 손이 파고들더니 몸이 번쩍 들린다. 사내에게 터무니없이 가볍게 들려 눈 높이가 같아지자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가 내게 박혀 들어온다. "요정이라도........떨어진 건가......이런 밤중에 아이 혼자 왜 이 숲 속을 헤매고 다니는 거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탐색하듯 날 바라본다. "옷차림도........이상하고............ 게다가............. 어떻게 머리칼 색과 눈동자 색이.......까만 거냐........." '까....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눈앞에 보이는 사내의 금발을 한 움큼 손에 쥐었다. 금을 녹여만든 듯 아름다운 빛깔을 내고있지만........... 차가운 감촉에 흠칫 놀라 손을 떼자 기묘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넌.......누구지? 방금 전.......이곳에서 한 말을 들었느냐......" 겁을 주려는 듯 살기를 띈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떨었다. '무슨.......?' 의아한 눈으로 말이 없는 사내를 바라보다 공포를 꾹꾹 눌러 삼킨 채 입술을 열어 말을 꺼냈다. "여기가.........어디야?" 왠지 모를 위화감........ 물어도 한참을 말이 없다. 탐색하는 듯한 눈초리......... "벙어리였나......." '응?' "뭐......상관없겠지.......큭, 뜻밖에.....진귀한 걸 손에 넣었군......." 만족한 듯 입술에 미소를 걸고 까만 눈동자에 시선을 맞춘 채 한참을 바라보기만 하더니 갑자기 겨드랑이에 껴 넣어 몸을 들어올리고 있던 손을 빼내 허리에 휘감아 자신의 몸에 단단히 밀착시키곤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차가운 입술을 찍어누른다. '뭐.....하는 거야?' 의아한 눈으로 반항도 않고 바라만 보자 차가운 손이 불쑥 옷 속으로 들어와 부드러운 피부를 쓸어댄다. '.........흑........' 조사라도 하듯 몸 여기저기를 더듬던 손이 가슴 쪽으로 올라와 돌기를 꾹 누르자 화들짝 놀라 그때부터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셔츠에 아슬하게 달려있던 단추가 풀리자 하얀 피부가 달빛에 드러나고....... 바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미끄러뜨리더니 돌기를 꽉 깨물곤 짐승이 어미젖을 빨 듯 입술로 조여 빨아댄다. '아..........'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가슴에 와 닿는 사내의 혀가 기분 나쁠 정도로 느껴져 단단한 어깨를 꽉 쥐고 몸을 비틀자 이를 세워 잘근잘근 깨물어댄다. '뭐....하는 거야........' 손끝이 저릿해 질 정도로 생소한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팔을 둘러 사내의 머리를 끌어안자 만족스런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내의 머릴 가슴에서 떼어내자 생각보다 간단히 떨어져 나간 것에 안도한 것도 잠시....... 맛이라도 보듯 목덜미에 키스를 하고 혀를 대보던 사내가 고개를 들어 입술로 접근해 오자 반사적으로 얼굴을 돌려버렸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묘한 호흡이 귓가를 때린다. 왠지............. .....위험하다....... 알 수 없는 위기감에 자꾸 내 입술을 쫓아 다가오려고 정신이 팔린 사내의 무릎을 냅따 걷어차 버렸다. "윽......." 있는 힘껏 걷어 찬 보람이 있었는지 녀석의 손이 떨어져 나가 바닥에 발이 닿자마자 정신없이 숲 속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날 따라오는 소리에 더욱 속도를 높여 일부러 새카만 어둠만을 틈타 숲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서길 한참....... 헐떡이는 숨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뛰다가 뭔가 푹신한 것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순간 숨이 막힐 정도로 짙은 가루가 온 몸을 덮어씌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사내가 헤쳐놓아 엉망이 된 셔츠를 여미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누군가 쫓아오는 것 같진 않지만........ 자꾸만 심장을 뛰게 하는 불안이 날 따라붙는다. 서둘지 않으면 이 숲을 덮고 있는 어둠에 먹혀버릴 것만 같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건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기억에 없다. 무섭다........... 그리고........... ..........미치도록 두렵다. 순간...... 물소리가 귓가에 울려 이상하게 움직이지 않는 몸을 겨우 이끌고 수풀을 헤쳐 어둠 속에서 빠져 나오자 눈에 보이는 건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호수....... 그리고........ 그것보다 더 아름다운......... ......붉은 사내........ 물방울이 떨어지는 붉은 머리칼이......... 놀라 크게 뜬 루비빛 눈동자가....... ........두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달빛에 반사돼 푸르게 반짝이는 나신에 정신이 팔려 한참동안 굳어있다 자꾸 흐려지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별빛을 머금은 호수로 다가섰다. 미동도 없이 붉은 눈동자가 내게 들이박힌다. 손엔 아까 만난 사내와 같이 날카로운 검이 쥐어져 있지만......... 묘하게 방금 전과 같은 공포심은 들지 않는다. 비틀비틀 다가가 호숫물에 손을 담그는 순간 몸에서 힘이 전부 빠져나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 정신만이 희미하게 남은 상태...... 참방거리는 물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단단한 손이 내게 닿아온다. 눈을 뜨고 싶어도 눈꺼풀을 들어올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다. 의식만을 남겨둔 채 몸은 잠이 들어 버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순간........ 피부에 서늘한 감이 들더니 옷이 모두 벗겨져 내리고....... 차가운 물이 몸에 닿자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몸에 닿아오는 손길이 부드럽다. 숲을 헤매다 지저분해진 몸을 씻어주려는 듯 물기 뭍은 손으로 이곳저곳 쓸어대다 머리카락에 와 닿자 갑자기 멈칫 하더니 한참동안 움직임이 없다. 그리고....... 입술에 간지러운 숨결을 느낀 순간 뭔가 따뜻한 것이 닿아왔다. 부드럽고.......촉감 좋은....... 물기 젖은 입술을 벌리고 입안으로 뜨거운 것이 밀려들어온다.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 듯....... 약간 거칠지만 목이 마른 듯 입술을 빨아대고 입안 구석구석을 훑어댄다. 사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심장이 뛰어대는 지도......... 한참만에 입술에 머물던 열기가 빠져나가자 왠지 서늘한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떨면서 사내의 몸에 들러붙었다. 내 몸을 꼭 끌어안고 물 밖으로 나가는지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따뜻한 것이 몸을 감싸온다. 누군 지도 모를 사내의 품이 따뜻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된다.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게 없지만........ 이렇게 품안에 있으면 불안하지 않다. 어딘가로 옮겨지는 지 몸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등뒤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과 강한 심장소리에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눈을 뜨자 낯선 장소........ 광장공포증을 유발시킬 정도로 탁 트인 넓은 공간에 본 적도 없는 화려한 가구와 장식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게다가 지금 누워있는 곳은 식은땀이 날 정도로 호사스럽고 넓은 침대........... 깃털처럼 가볍고 포근한 시트에 덮여 눕기만 해도 잠이 올 것만 같은 매트 위에서 옷은 홀랑 벗겨진 채 마찬가지로 나신인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었다. 몸에 닿아오는 따뜻한 피부와 시원한 체향이 낯설기만 하다. 서로 엉켜 감겨있는 다리와 벗은 허리를 부드럽게 지분대는 손길에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 얼굴을 붉힌 채 한참동안 그렇게 굳어있다 답답함에 몸을 옭아매고 있는 단단한 팔에서 벗어나려 바르작거리자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더욱 강하게 끌어당긴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지난밤에 보았던 사내...... 내게 박히는 붉은 눈동자가...... .....지독히도 아름답다. 석류알처럼 붉고 투명한............. 예쁜 눈동자에 차마 시선을 돌릴 생각도 못하고 저항을 멈춘 채 빤히 바라만 보자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로 이것저것 묻지만 전부 모르는 것 투성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고개를 저어대자 내게서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한 사내가 어쩐지 안심한 표정을 지은 듯도 하다. 겨우 기억해 낸 것이라고는 하류라는 이상한 이름 달랑 하나 뿐........... 그것마저도 입술만 우물거릴 뿐 소리가 되어 나가진 않는다. 놀란 것도 잠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사내를 올려보자 따뜻한 품안으로 가만히 끌어당겨 안아준다. 내게서 떨어질 줄 모르던 붉은 눈동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스륵 눈을 감아버렸다. 지난밤과 같이....... ......따뜻한 온기가 입술을 통해 온 몸에 전해져 온다........ Rubera(루베라) #137 "으응.........." 작게 칭얼대며 따뜻한 품에 얼굴을 부볐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자꾸 빠져나가려는 녀석이 맘에 들지 않아 꼬옥 끌어안자 겨우 날 떼어내려던 움직임을 멈춘다. "추워.........." 잔뜩 잠에 취한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고 가늘게 떨면서 품속으로 파고들자 허리를 끌어당겨 따뜻한 몸에 밀착시키고 손으로 등을 가만히 쓸어준다. 뒤척이던 움직임을 멈춘 채 그제야 안심하고 고른 숨을 내쉬었다. 약간 벌어진 입술 위로 자꾸 뭔가가 부딪쳐 오지만 따뜻한 느낌에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 . . 눈을 번쩍 떴다. 평소와 다름없이 화려하기만 한 침실........ 빛이 새어들어 오는 창을 멍하니 바라만 보다 화들짝 놀라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어......어떻게 된 거야....!!!' 분명 그때........ 호숫가에서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눈을 떠보니...... 내가 머물던 침실......?!!!! '이게 무슨........' 게다가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은 녀석을 처음 봤을 때의 내 모습........ 녀석의........ 슈안이란 녀석의 얼굴을 떠올려 버렸다. 금빛 머리칼에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를 한........ 티폰보다 먼저 그 녀석을 만났다.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해서 도망치긴 했지만....... '슈안........이라고 했던가..........씹, 변태 새끼.......' 아직도 녀석이 만져대던 감각이 몸에 남아있는 듯 해 오솔오솔 몸을 떨며 미간을 찌푸린 채 욕을 해대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얼굴을 붉혔다. 어쩐지 낯이 익었던 그 호수는 티폰을 처음 만났던 곳...... 그때....... 키스를....... 첫 키스를 했다. 티폰과........ 엉겁결에 슈안이란 놈과 할 뻔했지만........ 의식도 희미해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지만......... 처음인데도.........뭘 하는 건지도 모르고 있었음에도 따뜻한 온기와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에 슈안이란 녀석의 품안에서 도망친 것과는 달리 거부 따윈 생각조차 할 수...........없었다. 입술이 화끈거려 손으로 가만히 만져보니 어쩐 일인지 약간 부어 있다. '왜.......?' 미간을 찌푸린 채 혀로 입술을 핥아보니 어쩐지 익숙한 향이 베어 나오는 듯도 하지만....... '뭐......지? 그나저나 왜 여기 누워있는 거야?!!!'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멍한 머리를 흔들어보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옆자릴 짚어보니 분명 온기가 남아있다.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떠오르는 건 하나도 없고....... 새벽을 거두고 볕이 따뜻해지기 시작하자 얼른 시트로 몸을 말고 주위를 둘러봤다. "시니안?!!" 평소와 같이 날이 밝자마자 침실 한켠에 서있는 잿빛 사내를 발견하고 버럭 소릴 지르자 내게 시선을 맞춰온다. "방금 전까지 내 옆에 누가............아니, 내....내가 왜 여기.........있는 거야........?!!" 패닉상태에 빠져 횡설수설 떠들어대자 잘생긴 얼굴에 의아한 빛을 띄고 날 바라본다. "무슨 말씀이신지............" '뭐.........뭐야........분명...........' 옆자리엔 아직도 이렇게 온기가 남아있고 누군가 방금 전까지 잠을 잔 흔적이 분명 있는데......... 잿빛 녀석을 바라봐도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 '뭐지? 꿈이라도 꾼 건가......? 분명 어제 밤, 밖에 나갔었는데..............' 꿈으로 치부해 버리기엔.........너무 현실감 있었던.................... '내 돈!!!'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자 다행히 테이블 위에 지난밤 멍청한 녀석들에게 빼앗은 주머니가 고스란히 올려져 있다. '잠깐, 그럼 꿈이 아니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의아한 눈으로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내게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시니안을 바라보다 시트 안에 머리를 집어넣고 알몸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하고 옆자리를 이리저리 둘러봐도 이미 사라진 온기를 제외하면 녀석의 흔적은커녕 붉은 머리카락 하나 남아있질 않다. '어떻게.........된 거야? 분명...........' "아이야드 저하 드십니다......." '뭐?!!!!' "나........잔다고 해!!" 갑자기 밖에서 울려오는 시종의 목소리에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재빨리 시니안에게 말을 던지고 시트 속으로 파고들었다. "기침 전이십니다......" "열어..............." 예상대로 시니안의 말은 무시한 채 유이 녀석의 명에 따라 결국 문이 열린다. '씹, 잠도 많은 자식이 왜 꼬박꼬박 오고 지랄야?!! 가만.......내가 왜 자는 척을 해? 죄진 것도 없는데?' 생각해 봤자 이미 눈뜰 타이밍을 놓쳐 소심하게 자는 척을 하고 있었지만.............. "키르!!! 아직도 자는 거야?!! 응? 추운 것도 싫어하면서 창까지 열어놓고 자면 어떡해?!!" 자는 척 눈을 꼬옥 감고있는데 녀석이 다가와 시트 채 내 몸을 끌어당겨 안아온다. "혼자 자니까 무섭지 않았어?" '이 자식이 누굴 겁쟁이로 아나......!!' 입술에 키스라도 하려는지 녀석의 호흡이 입가에 부딪치자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듯한 입술이 화끈거린다. 입술은 포기했는지 뺨에서 귓가로 입술을 미끄러뜨리다 귓불을 살짝 깨무는 느낌에 눈을 번쩍 떴다. "이 자식!! 뭐 하는 짓이야?!!!"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 얼굴을 붉히고 귓가를 문지르며 빽 소릴 지르자 능글맞게 웃으며 날 바라본다. "큭, 잠은 이렇게 깨우는 거야!! 발로 차는 게 아니고......" "웃기지마!!!" "옷도 다 벗고 잔 거야? 춥지 않았어?" 걱정하는 척 하면서 어김없이 시트 안으로 녀석의 손이 슬금슬금 들어와 벗은 허벅지를 쓸어댄다. "이.....이 자식이...........!!!!!" 녀석의 손을 쳐내고 소리를 버럭 지르려던 찰라 침실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잔뜩 열 받은 표정이 역력한 시온이 들어선다. "이 자식,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어떻게 그따위 소문이 돌아?!!!" 앞 뒤 가리지 않고 유이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흔드는데....... '소문? 무슨.....?' "무슨 소리야?" "궁 안에 하류 니가......." "키르야......" "그래, 어쨌든 이 자식 정부로 소문이 쫙 퍼졌단 말야!!!" '빌어먹을......!!' 어젯밤 미르헨가의 저택에서 수근대는 소릴 들어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다시 들으니 분하다...... "이......이 새끼!!! 니놈 때문이잖아!!!!" 시온에게 멱살이 잡혀있는 유이 녀석의 복부를 있는 힘껏 걷어차 버리자 꽤나 아팠는지 헉 하고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죽여!!! 아예 죽여버려!!! 이 바람둥이 새끼, 도대체 하.....아니 키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당사자보다 더 열을 내며 유이 녀석의 멱살을 쥐고 정신없이 흔들어 대는 시온을 보니........ '저 자식 티폰 동생이 아니라 유이 녀석 동생 아냐.........?' 더 이상 화내봤자 머리만 아프다는 것을 깨닫고 미간만 찌푸린 채 녀석들을 바라보자 갑자기 시온이 날 보고 뭔가 발견한 듯 유이 녀석을 바닥에 팽개치고 내게 다가온다. '응?'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올려보자 심각한 표정으로 하얀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댄다. "손대지마!!!" 바닥을 구르며 낑낑대던 유이 녀석이 벌컥 화를 내며 일어서자 시온이 대꾸도 않고 날 바라보는데 왠지........... "이거........뭐야?" "응?" 녀석의 시선이 가있는 손을 보자 어젯밤 호숫가에서 묻어온 듯한 나뭇잎과 풀잎이 올려져 있었다. '헉........' 놀라 하얀 머리칼을 쓸어보니 군데군데 마른 풀잎이 떨어져 내리고........ "키르......." 유이 녀석까지 심각한 눈으로 다가와 날 바라본다. '젠장........' 어젯밤 나갔다 온 덕에 돈도 벌고 어느 정도 스트레스도 풀려 가끔씩 밤에 나갔다 올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녀석들에게 들켜버리면.......... 이리저리 변명거릴 생각하며 눈을 굴리다 시선이 창가에서 딱 멈췄다. "하...하하......어젯밤에 발코니에서 깜박 졸았는데..........바람이라도 불어서 날아와 붙었나 보네......" 궁색한 변명에 녀석들의 얼굴에 의심이 가득하고......... "시니안!!! 어젯밤에 잘 지킨 거야?!!" 시온 녀석의 말에 놀란 눈으로 시니안을 바라보자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말을 잇는다. "어젯밤엔 제가 지켜드리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전했고..........모시고 달아나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잠에 드셨습니다" '씹, 잠만 퍼대 잤다고 하면 되지 무슨 말이 저렇게 많아?!!!' 미간을 찌푸린 채 의심을 거두지 않은 표정으로 시니안을 바라보던 녀석들이 추궁이라도 하려는 듯한 표정으로 날 돌아보자 미리 선수를 쳐버렸다. "뭐....뭐야?!!! 못 믿겠단 거야?!!"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화를 내며 버럭 소릴 지르자 당황한 듯한 녀석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의....의심하는 게 아니라......" '순진한 것들..........' "웃기지마!!! 그럼 왜 표정이 그따위야?!!!" 양심은 엿장수에게 모두 팔아먹어 버리고 억울하다는 듯 펄쩍 뛰며 오버를 하자 단박에 의심을 날려버린다. "하아.....미안.....화내지마...." 땡깡 부리는 애새끼를 달래듯 유이 녀석이 침대 위에서 시트를 두르고 앉아있는 내 몸을 꼬옥 끌어안자 엿장수에게 다 팔아먹진 않았는지 남아있던 양심이 쿡쿡 쑤셔와 멀찌감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돈주머니만 바라봤다. 어쨌든 지금 속여넘기지 못하면 밤나들이는 영원히 종친 거니까....... 그렇게........ 다행히 나갔다 온 것을 녀석들에게 들키지 않고 함께 아침식사를 한 후 아쉬워하는 녀석들을 일이나 하러 가라고 내보내자 침실엔 다시 시니안과 달랑 둘만 남게 되었다. '하아.......겨우 들키지 않긴 했는데......... 도대체 어제 밤에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몽유병이라도 걸려 여기까지 제 발로 걸어왔을 리는 만무하고......... 티폰 녀석이 밤새 같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럼.....그 녀석도 어제 그 호수에 갔었나.......왜? 젠장, 설마 그 자식도 밤에 나돌아다니는 취미가 있는 건가......... 황제의 숲은 녀석이 폐쇄를 풀지 않았다고 했는데.......또 숲에 들어갔다고 처형이라도 시키려는 건 아니겠지.....?!! 서....설마....그럴 생각이었다면 어젯밤 이 침실이 아니라 바로 지하감옥 안에 쳐 넣었을 텐데...... 왜.............아무 말도 없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다.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저 시니안이란 녀석은 어쩐지 뭔가 알고있는 듯도 한데 입은 열 생각도 하지 않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오기 시작하자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욕실로 향했다. 어제....... 그 호숫가에서 세상 모르고 퍼대 잔 덕에 머리카락엔 나뭇잎이 여기저기 붙어있었고 몸에선 희미하게 흙 냄새가 스친다. 따뜻하게 김이 올라오는 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았다. 결혼식까진 앞으로 일주일 남짓.......... 걱정하는 것처럼 녀석이 갑자기 날 기억해 내거나 그럴 조짐은 보이진 않지만........ 아무래도 자꾸 녀석과 부딪치는 게 불안하다. 어젯밤에도......... 퍼뜩 스치는 생각에 눈을 번쩍 뜨고 하얀 알몸을 멍하니 바라봤다. 분명........... 황제가 들어가는 걸 금한 숲인데다가......... 사람들이 지나는 길도 아니고 호숫가였기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해........ 옷이 마를 때까지 기다린답시고 알몸으로 누워있었다. 결국 풀벌레 소리와 달빛에 기분이 좋아져 어처구니없게도 잠이 들었지만....... 지난번처럼 땀이라도 씻어내려 녀석이 호숫가에 온 거라면 황당하게 벌거벗은 채 호숫가에서 퍼질러 자고 있는 자신을 봤다는 이야기.......? 게다가 침실에서 눈을 떴을 땐 어제 입고 나갔던 까만 옷은커녕 자고있던 그대로 옮겨진 듯........ '헉.......' 아무리 자각이 없다지만 호수에서 황성까지 옮겨져 몸까지 섞은 사내와 알몸으로 한 침대에서 잤는데도 줄창 꿈이나 꾸고 있었다니....... ........욕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시선을 돌리니 하얀 몸엔 녀석이 전에 새겨놓았던 붉은 화인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유이 녀석의 약 덕분인지 희미하게 옅어져 원래 색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하아......' 기가 차 한숨만 나올 뿐이다. 확실히 녀석에게 느끼는 공포는 어느 정도 극복을 한 건지 녀석에게 안겨 잠이 들었다고 생각해도 전과 같은 공포는 희미해져있다. 그리고 어젯밤........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인........ 과거의 기억......... 3년 전, 이 세계로 떨어져 숲을 헤매고 있던 날 녀석이 황성으로 데리고 온 게 확실하다. '그 자식......그렇게 데리고 와서 멋대로 길들인 건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녀석은 내 손으로 뭔가 하는 꼴을 못 봤으니......... 어쩐지 이상하게........ .........이곳에 왔을 때 모든 것이 묘하게 익숙했다. 심지어는 같은 사내가 알몸으로 홀랑 벗은 날 끌어안고 잠을 자도......... 유이 녀석과 잘 때도 녀석이 입고자든 벗고자든 이상하게 만지작대지만 않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니........ 잠옷이 없다고 결국은 거의 벗고 잤지만........ '역시........길들은 건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익숙해져 이렇게까지 얽매여 있다는 게......... 구속의 주술 없이도 구속되어 있다는 게......... 쭈그려 앉은 채로 루베라가 새겨져 있던 등을 쓸어봐도 손끝에 와 닿는 건 길게 그어진 상처 뿐........... 그땐............ 죽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아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루베라 따위....... 단검으로 도려내 버리고............ 증오스럽기만 한 녀석에게 뛰어대는 심장 따위......... 몇 번이나 검을 박아 죽여버리려 했다. 그런데 결국......... 증오만큼 날 잠식해 들어간 건 기가 막히게도.............. '젠장...........' 상처에서 손을 떼고 자꾸 떠오르는 우울한 생각을 날려보내기라도 할 듯 머리를 휘저었다. 모두 끝난 일이다. 지긋지긋하게 질기기만 한 애증 따위 이제 몇 일만 있으면 잘라낼 수 있을 테니........... 어느샌가 꽉 쥐어진 주먹을 풀고 눈을 감은 채 머리를 식히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씹, 그러고 보니 그 슈안이란 변태새끼........15살 짜릴 상대로.......자기 가슴에도 오지 않는 애새끼를.......' 그때 당시엔 단순히 겁을 먹고 도망친 거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자식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뻔히 아는 사실....... '배다른 형제라더니......변태같은........그 자식한테 그때 잡혀갔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 소름이 돋는다. 잘 생각해 보면 티폰 녀석도 슈안이란 녀석 못지 않지만........ .........그런 생각 따윈 지구 저 편으로 날려버린 지 오래........ '가만............내가........그런 새끼를 사랑했다고?!!!' 확실히 금발에 차가운 푸른 색 눈동자는 아름답긴 했지만......... 첫 만남부터 펼쳐진 그 변태행각은......... ........갑자기 다시 우울해지기 시작한다. '서....설마......뭔가 잘못된 거야.......' 아무리 상황이 척척 들어맞는다곤 하지만.......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죄 없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젠장, 설마 사랑한답시고 멍청하게 그 슈안이란 자식하고도 그 짓거릴 한 건 아니겠지?!!!!'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한참동안 몸을 굳히고 있다 물 속에서 몸을 일으켜 향이 나는 천으로 평소보다 오랫동안 몸을 박박 씻어내고 욕실 밖으로 나섰다. Rubera(루베라) #138 그렇게 녀석의 결혼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서자 카운트다운이라도 하듯 황궁에선 화려한 파티가 계속되고 있었다. 녀석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이젠 일주일........... 오늘은 크리올라에 내놓라 하는 귀족들이 모두 모이는 꽤나 중요한 파티랍시고 초저녁부터 유이 녀석과 시온은 물론 시니안 마저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창가에서 붉게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다 얼핏 고개를 돌린 순간 눈에 들어오는 건 티폰의 침실에 나있는 발코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까만 녀석...........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녀석은 잘 알지도 못하는 내게 어쩐지 적의를 품고있는 듯한 눈빛을 던진다.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게 나라는 것을 마치 알고있는 듯............ 유이 녀석이 말했을 리는 없고......... 어쩌면 자신의 손아귀에 쥐었어야 할 티폰이 내게 신경 쓰는 게 맘에 들지 않는 건지도....... '역시 눈엣가시.............인가............' 쓴웃음을 던지자 무안하게 돌아서 침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뭐야? 사교성 없는 녀석..............' 작게 투덜대곤 몸을 일으켜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황성근처를 조심스럽게 둘러본 후 벽을 타고 지면에 내려섰다. 오늘 목표는 레테의 강............. 어차피 일주일 후면 다신 돌아오지 못할 테니............ 예전부터 목표로 잡았던 그 강에 한번 가봐야겠다. 어쨌든 그 강을 통해서 이 세상으로 떨어져 왔다면.............. 한번쯤 봐두는 게 좋은 지도............ 벌써부터 대낮같이 환하게 밝혀진 중앙홀을 돌아보며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젠장, 결혼식 두 번만 하면 난리 나겠군........' 돌아서는 순간............ "우.......우왁!!!!!!!!!!!!" 갑자기 팔목을 잡아오는 느낌에 죽을 만큼 놀라 비명을 내지르자 커다란 손이 입을 막아온다. 크게 뜬 눈으로 올려보자 낯이 익은 사내........... '스턴?' 반짝이는 금발과 금갈색 눈동자가 묘하게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사내였다. 한동안 굳어있다 발버둥치며 고개를 휘저어 입을 막고있던 손을 떼어내고 놓지 않는 손목을 불만스럽게 노려보며 툭 말을 던졌다. "뭐야? 왜 또 붙들고 지랄야?" "큭, 꽤나 재밌는 취미를 가지고 계신 듯 하군요......." "취미?"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2층에 있는 내 침소와 날 번갈아 바라본다. '젠장........본 건가?' "며칠동안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셔서 걱정을 했습니다" '개뿔, 걱정은...........' "오늘 파티는 어쩌시고 이런 차림으로............" '남의 사.............!!!!' 사내는 쳐다도 보지 않고 딴청을 피우자 손을 뻗어 턱을 살짝 쥐더니 시선을 맞춰온다. '빌어먹을!!!!!' "지........지금 갈려구했어!!!"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툭 말을 내뱉자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내려본다. "뭔가 숨기시는 듯 하군요............." "누........누가!!!!!" 뜨끔해서 버럭 소릴 지르자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미소를 짓는데............. 순간 거칠게 뛰어대는 심장에 화들짝 놀라 사내의 손을 그대로 뿌리쳐버렸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치자 의아한 눈으로 사내가 날 바라본다. "무슨..........." "응?" 그제야 괴상한 행동을 해버린 걸 깨닫고 얼굴을 붉힌 채 더듬어대기 시작했다. "하하.....그.......그게.....너무 꽉 쥐니까 아프잖아!!!" 실제로 하얀 피부에 붉게 자국이 나있다. "아, 죄송합니다......." 그제야 살짝 굳은 표정을 풀고 사과를 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민다. "그럼, 제가 파티장까지 모실 테니..........." 갈수록 태산이다. 이 꼴로 파티장에 들어가 시니안이랑 시온, 유이 녀석과 마주치면 몰래 빠져 나왔다고 불같이 화를 낼 건 자명하고 남은 일주일 내내 침소 안에만 쳐 박아둘 지도............. 난감한 시선으로 사내가 뻗어온 손을 바라보자 살짝 소매가 올라가 보이는 손목엔.................. 사내와는 어울리지 않을 섬뜩할 정도로 굵은 상처가 옷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키르님?" "응?" 화들짝 놀라 상처에서 시선을 떼고 사내를 올려보며 모른 척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저.........저기.......먼저 가!! 난 약속이 있걸랑?" "약속...........?" "으......응!! 저기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정원을 슬쩍 가리키자 살짝 표정이 굳는다. "황태자님이신가 보군요............" '씹, 내가 왜 그 자식이랑 정원에서 만나?!!!!' 아무래도 이 녀석도 내가 황태자랑 그렇고 그런 관계라는 소문을 들은 듯 하다. '젠장............!!' 유이 녀석이랑 만난다고 말하면 발각될 확률이 크다. 파티장에서 이 사내가 유이랑 만나기라도 하면 곤란할 테니........... "여자야.........!!" "예?"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마!!" 놀란 듯 날 바라보는 사내에게서 돌아서려는 순간 저 멀리서 시종들을 잔뜩 뒤에 달고 중앙홀로 향하는 티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헉.............!!' 앞 뒤 생각도 않고 정원으로 뛰어들자 뒤쫓아오려던 사내가 멀리서 황제가 다가서는 것을 눈치채고 깊게 고개를 숙인다. "젠장, 저 자식 때문에 들킬 뻔했잖아!!!!" 겨우 사내를 따돌리고 궁시렁거리며 발걸음을 옮겨 광대한 정원으로 들어섰다. 이렇게 정원을 겉돌아 황제의 숲으로 들어서면 들킬 염려도 없을 테고........ 병사들도 밤엔 귀족들의 밀회장소인 이곳에 웬만하면 발을 들여놓진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몸을 숙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아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어차피 내일 아침까지 날 찾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렇게 허리를 숙인 채 한참을 걸어 외진 정원 한켠에 도달해 숲이 보이기 시작하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뜻밖의 광경.......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셋이 정원 한 구석에 처량 맞게 쭈그려 앉아 회의라도 하는지 두런거리고 있다. '뭐야? 정원지기라도 되나?' 확실히 황성 내에선 볼 수 없는 차림........ 귀족들과는 거리가 먼 평민의 옷차림이었다. "정말......할 생각이야?" "이 겁쟁이 녀석, 또 그 소리야?!! 보수는 확실히 쥐어주기로 했어....!! 금화 5000이면 평생을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라고!!" "하....하지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하기 싫으면 넌 빠져......!! 괜히 일이나 망치지 말고!" "누...누가 안 한데?!!" "그럼, 닥치고 잘 듣기나 해......실패하는 날엔 시체도 보전 못하고 황천길로 갈 테니 이거 하나씩 받아......." "이게 뭐야?" "도망칠 수 없으면 입에 털어 넣어......" '뭐야? 저 녀석들은.............' 금화 5000에는 관심이 가지만 어쩐지 끼면 말썽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 게다가 지금은 무기도 들고 오지 않았으니........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벗어나려는데............ "헉.......저.......저건 또 뭐야?!!" '응?' 녀석들 중 한 명이 날 가리키며 귀신이라도 본 듯 벌렁 뒤로 자빠져 있다. '뭐야? 저 새낀............' 녀석들의 우두머리인 듯 이것저것 설명하던 녀석이 놀라 날 바라보고............. 바로 새하얀 머리칼에 시선을 주더니 내게 다가선다. 역시 까만 색과는 다른 의미로 엄청 눈에 띄는 빌어먹을 머리칼 색 때문에 손해보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눈썹이고 속눈썹이고 모두 하얘 가뜩이나 빛에 약한 옅은 눈동자에 빛을 반사시켜 도움은커녕 방해만 되고 눈처럼 하얀 머리칼 또한 이 세계에선 대륙 북부에만 있는 색으로 꽤나 눈에 띄는 모양이니...... 이곳 녀석들은 뮤즈니안 귀족과 지금은 티폰이 망가뜨려 버린 대륙 북쪽에 있던 나라 사람의 혼혈쯤으로 멋대로 생각해 대지만........ "귀족가 도련님께서 이런 외진 곳엔 무슨 일이십니까?"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을 이어나가다 퍼뜩 들리는 사내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 말을 던졌다. "방금 가려고 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이나 계속해............" 돌아서자마자 어깨를 강하게 쥐어온다. "죄송하지만...........저희 일을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뭐?!!' 어쩐지 불길한.............. 몸을 돌려세울 틈도 없이 목에..........뭔가 따끔한 것이......... '뭐.....야?' 이상한 느낌에 뒤로 주춤 물러서 목을 짚어보자 어깨를 쥐고있던 녀석이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큭, 운이 좋았어......죽을 일은 없겠군........" "무슨 소리야?" "이 멍청한 녀석......우리가 노리던 귀족이 이 녀석이다!! 아까 말하지 않았나!! 머리칼이 하얗다고......!! 게다가......." 우악스런 손길로 하얀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비열해 보이는 미소를 띄운다. "황제도 정신 못 차리는 미형이라더니 확실하군.......금화 5000을 거저 벌었어..........." "여기서 해결할 거야?" "황성 안에서 죽이면 곤란해.......숲으로 끌고 가서 조용히 처리한 후 시체는 강에 버리라고 했으니...... 우선 약한 독을 썼으니까 한동안 움직이지 못할 거다.........빨리 옮겨!!" "자.....잠깐!!! 이........이 녀석, 왜 이러는 거야?!! 약한 독이 아니라 맹독이라도 쓴 거 아냐?!!!" 이미 사내들의 대화 따윈 들려오지도 않았다. 바닥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던 몸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려온다. "흐윽..............으아아아아아악.............!!" 섬뜩한 비명에 내게 손을 뻗으려던 녀석들이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선다. 온몸을 칼로 쑤셔대는 듯한 통증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흙바닥에 쓰러져 손가락에서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바닥을 움켜쥐며 몸부림을 쳐댔다. 사지가 뒤틀리는 고통에 혀를 깨물었는지 비릿한 핏덩어리가 입 밖으로 울컥 쏟아져 나온다. "빌어먹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빨리 숲으로 옮겨!!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멱살이 쥐어져 상체가 들리는 순간 섬뜩한 빛이 시야를 스치고......... 뭔가 뜨거운 것이 얼굴로 확 튀어 시야가 붉게 물들자 처참한 비명이 숲을 울리며 퍼져나간다. 내 몸을 지탱하고 있던 녀석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다시 힘없이 흙바닥 위로 몸이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빛을 잃은 잿빛 눈동자 앞에 떨어지는 것은 분명 사람의 손.......... 잘려진 채.........손가락에 경련이 일고 있었다. 양손이 잘려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던 사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누군가의 검이 그대로 녀석의 목에 쑤셔 박힌다. 꺽꺽대는 소리와 함께 피거품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고......... 검을 뽑자마자 목에서 분수처럼 붉은 피가 터져 나온다. 눈앞에서 보이는 처참한 광경에도 경련을 일으키며 목을 쥐어뜯었다. 너무 아파서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동공이 풀려버린 잿빛 눈동자에선 의식도 못한 눈물이 끊임없이 새어나온다. 시커먼 죽음의 그림자가 생명을 갉아먹는 듯 아프게 뛰어대던 심장박동이 잦아져 간다. '티............폰.................' 입을 열어보지만 날카로운 비명만이 귓가에 울려온다. 끊어질 것만 같이 가는 숨을 내뱉으며 몸을 말고 떨어대자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하고............. 떨리는 손으로 몸을 들어올려 품에 넣자마자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손에 닿아오는 옷자락을 쥐어뜯었다. "이게............대체..........." 넋이 나간 듯한 목소리가 귀에 익지만 입안에 가득 찬 핏덩어리가 자꾸 목구멍 안으로 넘어와 숨쉬는 것조차 괴롭다. 이미 감각조차 없는 입을 벌리더니 급하게 부드러운 천을 쑤셔 박는다. 의식이 흐려져 간다. 사내가 뛰는 건지 몸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누군가에게 정신없이 질러대는 소리에 귀가 멍멍할 지경...........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다 의식을 잃고는 새카만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 . . "황제가 될 거다........큭, 그 후에.........심장 없는 황태자가 집착하는 널 포상으로 받으면 지난 수년간의 굴욕은 간단히 잊혀질 테지..........." '무슨........?' 시리도록 푸른 눈을 가진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분명............ 평소와는 달리 낮에 열리는 문을 보고 기뻐하며 달려나갔지만............... 문밖을 지키던 사내들의 만류에도 안으로 들어선 것은 티폰의 동생이라는 사내......... 처음 티폰의 뒤에 숨어 사내를 봤을 땐 어쩐지 낯익은 얼굴에 갸웃했지만......... 겨우 떠올린 기억 속에서 1년 전 숲에서 본 사내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그때.........눈앞에서 어이없게 놓쳐버리고 계속 찾아 헤맸는데............이런 곳에서.......... 황태자의 침소에서 보게될 줄이야........" '날..............찾아? 왜?' 넋이 나가있는 사이 강한 손으로 양어깨를 그러쥐더니 푸른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황태자가 가진 건............모두 빼앗아 손에 넣겠다........지위도.......나라도........ ...........너도 마찬가지야........." 시리도록 푸른데................. ........그 안에 들어있는 건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탐욕.............. 섬뜩한 느낌에 사내에게서 빠져나가려 버둥거리자 바로 침대 위로 쓰러뜨리더니 양 손목을 구속하고 몸을 덮쳐 누른다. '놔!!!!!!!!!!!' 미친 듯 버둥거려 보지만 힘을 당할 수가 없다. 온몸을 훑어 내리는 시선이 섬뜩할 정도로 한기를 몰고 온다. 힘에 부쳐 헐떡이며 사내를 올려보자 차가운 푸른 눈동자 속에 밤하늘처럼 까만 눈동자를 담고 있다. "큭, 역시.........그 잔인한 놈이 숨겨둘 만도 하군......확실히 이 세계에선 볼 수 없는 빛깔이다. 매혹적이야..............한 눈에 반할 만큼............." 영혼까지 덮쳐버릴 듯 강렬한 시선에 숨이 막힐 지경........ 속삭이듯 낮은 소릴 내며 천천히 벌어지는 입술을 잠시 넋이 나간 듯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까만데 지나치게 깨끗해.......더럽히고 싶을 정도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손 하나로 간단히 양팔을 제압하곤 다른 손으로 까만 머리칼을 쓸어대며 얼굴에 뜨거운 입술을 찍어누른다. "꿈인 줄 알았다......그때.......눈앞에서 놓치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녀석은 이제 곧 무너질 테니........내게 와라............ 난............... ............아무도 믿지 않아. 큭, 모친의 복수? 그딴 걸 위해서가 아니다. 날 위해서다............. 황제가 되면 친 혈육 따위 모두 죽여버릴 테다" 광기로 가득한 눈동자가 섬뜩하기만 하다. 두려움에 몸을 굳히자 푸른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하지만 너만은................... ............스스로 허락한다면 황제가 된 후에도 곁에 두겠다" 유혹하듯 귓가에 속삭이는 사내의 말엔 귀도 귀울이지 않고 목에 찍어누르는 뜨거운 입술에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고개를 휘저어도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끈적하게 붙어선 떨어지지도 않는다. "큭, 황제만큼이나 침실상대를 갈아치우던 놈이 어쩐지 1년씩이나 잠잠하다 했더니....... 이런 만찬을 침소 안에 숨겨두고 있었군. 다른 것들 따윈 눈에도 차지 않을 정도로 달콤했나 보지? 지난 일년간..................... 악마 같은 놈 밑에서 얼마나 신음을 흘려댄 거냐......." 뜨거운 입술이, 혀가 민감한 피부에 스칠 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역한 열기가 온몸을 타고 오른다. "이대로............황태자의 침소에서 범해버리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무리 황태자라 해도 왕족에게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을 테니............ 더럽혀진 네........예쁜 목을 베어버릴 지도........." 손가락으로 가만히 목을 쓸어대자 등에선 식은땀이 흐른다. "큭, 아니면......... ............그 잔혹한 황태자라면 무표정으로 둘 다 죽여버릴 수도 있겠군" '누가...........잔혹하다는 거야.........?!!' 심장이 지끈 아파 왔다. 1년이 넘게 함께였다. 너무 부드럽고 포근해서 침실 안에만 갇혀있는 게 답답하고 낮 동안 혼자 남겨지는 게 쓸쓸해도 꾹꾹 참을 수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가족이었고.............. 가족보다도 더...................... .................소중하다. 그런데 정작............티폰의 가족이라는 이 사내는................... 사내의 밑에 깔려 헛되이 몸부림 친 덕에 선이 예쁜 분홍빛 입술에선 연신 헐떡이는 숨이 새어나오고 분한 마음에 눈물이 흘러나올 듯한 까만 눈동자로 사내를 노려보자 만족스러운 듯 입 꼬리를 올린 채 고개를 숙여 살짝 벌어진 입술을 삼켜간다. 갑작스런 행위에 놀라 크게 뜬 눈으로 올려봐도 시야에 들어오는 건 금가루를 녹여놓은 듯 반짝이는 속눈썹 뿐......... 처음엔 부드러웠던 행위가 사내를 거부하며 혀로 밀어내고 이를 꾹 다물자 잡아먹을 듯 거칠어진다. 티폰에게 매일 받기는 하지만............ .............확연히 다르다. 좀더.................. .........소중히 대해줬는데........... 소름끼치도록 강한 집착을 보이는 사내에게 벗어나려 몸을 비틀고 고개를 휘저어봐도 단단한 몸에 눌려 꼼짝도 할 수 없다. 정신없이 빨아대는 입술이 화끈거릴 정도로 아프다. 통증에 턱에서 힘이 빠지자마자 입안으로 파고들어 배려 없이 휘저어댄다. 강한 손이 옷 속으로 파고들어 연한 피부를 쓸어대자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단단한 손을 가슴 쪽으로 미끄러뜨려 거칠게 쓸어대더니 작은 돌기를 손가락으로 비틀고 눌러댄다. 놀라 몸을 움찔 떨어대면서 반항도......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정신없이 입안을 헤집어대는 사내의 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거칠기만 한 사내의 행위에도 자꾸 티폰이 떠올라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병이라도 든 것인지 자꾸 심장이 쿡쿡 쑤셔온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눈을 깜빡인 순간................. 눈앞에 붉은 사내가 서있었다. 예쁘기만 했던 붉은 눈동자에 맹수같이 흉포한 살기를 담고.............. 바로 내 위에 있던 사내를 떼어내더니 어느 샌가 손에 쥔 단도를 칼자루까지 어깨 깊숙이 박아 넣는다. 섬뜩한 비명이 울리고............ 금빛 사내를 문밖까지 끌어내자마자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처참한 비명이 계속해서 귓가에 스친다. 침대 위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굳은 채 누워 있다가 떨리는 몸을 일으켜 문밖으로 나가자 자신의 눈동자만큼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장검을 들고 서있다. 한번도 본 적 없는 모습.......... 불안함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옷깃을 쥐자 놀란 듯 날 내려본다. 익숙지 않은 비린내가 코끝에 스쳐 시선을 돌리려던 찰라 옷자락으로 눈을 가려 품으로 끌어당긴다. "또다시 내 것에 손대면 죽이겠다......." 낮고 섬뜩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자마자 티폰의 손에 이끌려 다시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심각한 표정............ '화난........거야.................?' 차분히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올려보자 한참만에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내게 고개를 숙여온다. 처음엔 이상한 기분에 숨이 막히다고 밀어내고 낑낑대며 땡깡을 부려댔지만 지금은 완전히 익숙해져버려 눈을 살짝 감고 입술을 열어주자 바로 따뜻한 입술을 포개온다. 슈안이란 녀석이 거칠게 부벼댔던 입술을 부드럽게 빨아주고 이로 눌러가면서 자극을 해대다 뜨거운 혀를 살짝 밀어 넣는다. 시원한 향이 입안에 가득 차고............ 아찔한 느낌에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자 부드럽게 혀를 움직여간다. 정신없이 뛰어대는 심장소리를 티폰에게 들킬까봐 조마조마해 하면서도 장난스럽게 입안에 들어온 혀를 살짝 쓸어주자 뜨거운 숨결이 피부에 와 닿는다. '응.......?' 이상한 느낌에 눈을 번쩍 뜨자 붉기만 한 예쁜 속눈썹이 눈에 들어온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떨어져 나갔을 텐데........ 숨을 쉴 수 있도록 혀를 물리고 입술을 빨아대며 조심스럽게 애무를 해준다. 의아함에 눈만 말똥말똥 뜨고 바라보고 있는 사이 깊은 키스 때문에 살짝 부푼 입술에 가볍게 몇 번 입을 맞추더니 몸을 번쩍 들어올려 침대 위에 눕혀 준다. 아무래도............... ...............진짜............ ...............이상하다. Rubera(루베라) #139 침대 위에 얌전히 누워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티폰을 바라보다 시선을 창으로 돌렸다. 아직 해도 지지 않은 대낮인데 벌써 자라는 건 아닐 테고........ 밥도 안 먹었는데............. 다시 의아한 눈으로 티폰을 올려보자 슈안에게 헤쳐져 평소와는 달리 단정치 못한 옷을 섬뜩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곧이어 상처하나 없이 섬세한 손을 내게 뻗어 몇 겹이나 입은 복잡한 옷자락을 하나 둘씩 벗겨 내리기 시작한다. 항상 목욕도 같이 하고 잠도 같이 잤지만......... 이렇게 밝은 곳에서 드러내놓고 벗겨진 적은 없었기에 화들짝 놀라 잠시 버둥거리다 멈추지 않는 손과 붉은 시선을 느끼곤 얌전히 몸을 내맡겼다. 내겐 절대 해를 끼치진 않을 테니........ 복잡하기만 한 옷이 모두 벗겨지고 지난 1년간 제대로 볕을 보지 못해 하얗디하얀 알몸이 전부 드러나자 열기를 띈 노골적인 시선이 몸 구석구석에 와 닿는다. 티폰의 몸에 비하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아 매끈하고 하얀 피부가 아니면 볼 것도 없다. 그런데 왜 저렇게 뚫어지게 보는 것인지.......... 평소보다 약간 빠르게 뛰는 심장과 부끄러움에 금새 몸이 확 붉어져 시트로 얼른 가려버렸다. 붉은 눈동자에 잠시잠깐 아쉬움이 스치더니 바로 화려한 옷자락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진짜............벌써 자려는 건가.......?' 티폰의 옷자락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내릴 때마다 머릿속에도 의문이 차곡차곡 쌓여만 간다. 그리고............ 생각을 날려버린 것은 눈앞에 드러난 아름다운 나신.......... 지난 일년간 선이 더욱 굵어져 완전한 사내가 되어버렸다. 내가 따라잡을 틈도 주지 않고......... 부러운 눈으로 선이 완벽한 몸매를 바라보자 무슨 생각인지 내게 다가오더니 시트를 걷어내고 단단한 몸을 겹쳐온다. 이상한 느낌......... 익숙한데도 뭔가.............다르다. 평소와는 다르게 내 위에 겹쳐진 티폰의 몸이 뜨겁다. 아픈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나 붉은 머리칼에 가려진 반듯한 이마에 손을 대보자 숨이 막히도록 몸을 죄어온다. 확실히............ 어딘가 아픈 게 분명하다. 나도 조금이라도 열이 나면 티폰에게 어리광을 부려대며 꼬옥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으니...... 그럼........... 매일 나가던 곳도 가지 않고 하루종일 곁에 있어줬는데.......... 생각을 이어갈 틈도 없이 내 허리를 꼭 끌어안고 목덜미와 어깨 위에 간지럽게 키스를 해대던 사내가 갑자기 돌기를 물어와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자 이로 살짝살짝 깨물면서 까끌한 혀로 쓸고 가볍게 빨아댄다. 갑작스런 행동에 의문을 띈 채 작게 꼼지락대면서도 얌전히 몸을 맡기자 집요하게 가슴 위에 솟은 작은 돌기를 물고 희롱해 댄다. 기묘한 느낌........ 이상하게 물고 빨아대는 건 가슴뿐인데 몸 전체가 간질간질 한 게 뭔가가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것 같은......... 게다가 불편할 정도로 하체가 뻐근해지고 피가 몰리는 기분........ 생소한 자극에 호흡이 묘하게 흐트러지더니 몸에서 갑자기 열이 나고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뭔가............. 해서는 안될 것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 어쩐지 쫓기듯 다급한 마음에 가슴 위에서 사내를 떼어내려 성급하게 손을 뻗어 붉은 머리칼을 쥐고 버둥거리며 도리질을 치다 그대로 입술이 먹혀버렸다. 그제야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스륵 감자 부드럽게 혀를 옭아맨다. 겁이 날 정도로 빠르게 뛰어대는 심장과 나락까지 떨어져 내리는 듯한 아찔한 자극에 생각조차 이어가지 못하고 뜨거운 입술이 피부에 스칠 때마다..............섬세한 손이 민감한 부분을 더듬어댈 때마다 알 수 없는 열에 들떠 숨을 할딱거리며 하얀 몸을 움찔거리다 순간 정신이 날아가 버릴 정도로 강한 충격에 놀라 눈을 번쩍 뜨니 내 것이 티폰의 입안에 삼켜지고 있었다. '무슨...........?!!' 잡아 삼킬 것만 같은 기세에 공포로 굳어있다 몸을 타고 오르는 생소한 감각에 화들짝 놀라 본능적으로 벗어나려 몸을 비틀자 하얀 허벅지를 단단히 쥐고 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느껴지는 건............. ............죽을 만큼의 쾌락......... 너무 뜨거워서 미칠 것만 같다. 붉은 입술로 조여댈 때마다 온몸에 내달리는 지독한 감각에 숨이 끊어질 듯 호흡을 겨우 이어나가며 소리 없는 신음을 흘렸다. 이미 반항 따윈 생각도 못한 채 입술과 혀를 움직일 때마다 더운 숨을 내뱉으며 몸을 떨자 이상하게 페니스가 크기도 커진 채 단단하게 일어서 살짝 입술이 스치기만 해도 머릿속이 텅 빌 정도로 강한 자극을 남긴다. 상처라도 날까봐 부드럽게 입술로 조여 입안으로 몇 번 피스톤질을 하고 귀두 끝을 빨아대자 기절할 것만 같은 강한 쾌감과 함께 몸 속에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이상하게 바로 힘이 빠져 몸이 늘어져 버린다. 난감한 기분....... 도대체 뭘 한 건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페니스 위에 와 닿는 뜨거운 입술과 나른한 몸에 울상을 한 채 빨리 안아서 재워줬으면 하고 티폰을 바라보니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붉게 상기된 뺨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짙은 향이 나는 액체를 애널 안쪽으로 흘려 넣는다. 또다시 이상한 행동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놀라 몸을 흠칫 떨자 안심시켜 주려는 듯 부드럽게 키스를 해준다. 입술에 와 닿는 익숙하고 부드러운 촉감에 안심한 것도 잠시......... 단단한 손가락이 애널 위를 배회하다 침입을 시도해오자 충격에 까만 눈이 크게 뜨였다. 내 눈으로 본 적도, 씻을 때를 제외하곤 손으로 만져본 적도 없는 곳을 거침없이 더듬어대며 비좁은 입구 안으로 들어서려 한다. 말도 안 되는.............불가능한 일.............. ..............일 텐데.................... 미끌한 오일과 함께 긴 손가락이 약간의 통증을 몰고 좁디좁은 내부로 침입해 들어와 뭔가를 찾는 것처럼 안쪽을 더듬어대자 완전히 패닉상태에 빠져버렸다. 티폰의 터무니없는 행동과 몸 안쪽을 더듬어대는 생소한 감각에 놀라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부비적대며 그만 두라고 소리 없는 말을 흘려도 평소엔 잘만 알아듣던 무언의 행동을 알아채지 못한 것인지........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것인지 움직임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괴상한 행동을 멈추지 못한 채 이상하기만 한 느낌에 불안한 듯 티폰을 꼭 붙들고 붉은 눈동자를 올려보자 내 표정을 살펴가며 좀더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는다. 불편함에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작게 투정을 부려도 더 깊숙이 들어와 버린 손가락을 움직여가며 말없이 가만히 이마에 입술을 찍어누른다. 그렇게 내부를 적셔대며 향이 짙은 오일을 잔뜩 발라놓곤 여기저기 더듬어대길 한참........... 어느 한 지점을 손끝으로 마찰시키며 밀어 올리자 몸이 제멋대로 흠칫 떨리고 흐느끼는 듯 가는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다. 멋대로 반응을 보이는 몸에 놀랄 새도 없이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오더니 한 부분만을 계속해서 밀어붙이며 거침없이 피스톤질을 해댄다. 참을 수 없는 느낌에 고개를 휘저으며 하지 말라고 손을 밀어내도 소용없다. 통증과 함께 슬금슬금 기어오르는 기묘한 감각에 성감대를 긁어댈 때마다 숨을 들이키며 피스톤질을 해대는 손가락을 강하게 죄자 바로 허벅지 안쪽에 뜨거운 물체가 닿아 비벼진다. 부드러웠던 물체가 금새 딱딱해져 연한 허벅지가 마찰로 따끔해 질 무렵......... 몸 안에서 손가락이 모두 빠져나가고 격한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할딱거리며 흐린 눈으로 사내를 올려보자 자극으로 가늘게 떨어대는 몸을 꼬옥 끌어안아 준다. "내 것이 되라....." '응?' 갑자기 귓가에 울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려 꼼지락거리자 숨이 막히도록 몸을 죄어온다. "너에게 내 루베라를 새겨주겠다. 허락한다면..... 평생 내 루베라를 받은 사람은 너 뿐일 거다....." 잔뜩 잠겨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초조한 목소리에 어쩐지 심장이 정신없이 뛰어댄다. '루베라............?' 알 수 없는 단어.............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말 투성이............ 하지만.............. 어쩐지.............. ..........중요한 말을 들은 듯한............ 몸에 열이 잔뜩 올라 당황스러울 정도로 티폰의 몸이 의식되기 시작한다. 올려보니 지독히도 예쁜 눈동자에 초조함을 감추고 허락의 말이 떨어지길 기다린다.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평생............. 이런 눈으로만 바라봐 준다면................. 스륵 눈을 감자 강하게 품에 끌어안고 정신없이 입술을 삼켜가며 격한 키스를 하더니 애널에 뭔가 뜨거운 게 맞닿아 왔다. 또 손가락이라 생각한 것도 잠시............. 뭔가 부드럽고 단단한 물체가 애널을 문질러대며 자극을 하자 알 수 없는 열기에 들떠 더운 숨을 내뱉으며 사내의 몸에 매달렸다. 간지러운 느낌에 조바심이 들어 따뜻한 품안에서 보채듯 꼼지락대다 손가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크기와 지독한 통증에 눈을 번쩍 뜨고 내려보자 사내의 일부가 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상하게 아까 내 것처럼 평소보다도 훨씬 커져 분명 들어갈 턱이 없을 텐 데도............. 아니,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다. 크기도 크기려니와 저런 게 몸 속에 들어오면 당장 죽어버릴 게............. ...............분명................... ...............한데............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눈만 크게 뜬 채 넋이 나가 바라만 보고 있는 사이 지독한 열기를 몰고 커다란 페니스가 천천히 내부로 파고든다. 속살을 억지로 벌려대며 밀고 들어오자 참기 힘든 고통에 불규칙한 호흡을 내뱉으며 사내의 매끈한 등에 손톱을 박았다. 받아들이기 불가능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커져버린 물건을 가뜩이나 좁디좁은 곳에 밀어 넣으려는 사내가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당장이라도 밀쳐내고 싶을 정도로 아팠지만 소중한 물건이 깨지기라도 할까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티폰 때문에 내색조차 못하고 불에 데일 듯 뜨거운 페니스를 겨우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화끈거릴 정도의 열기를 품고 내부로 밀고 들어오던 움직임이 멈추자 뱃속에 뭔가 가득 찬 느낌...... 소중하다 여긴 사내가...............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뭉클한 기분....... 처음 느껴보는 기이한 감정을 지속할 틈도 없이 찾아드는 통증에 눈물을 글썽이며 까만 눈동자로 올려보자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스러운 듯 내게 붉은 시선을 박아오는 사내의 얼굴이 넋이 나갈 정도로 예쁘다. 시선도 돌리지 못하고 그렇게 바라만 보자 고개를 숙여 살짝 벌어져 떨리는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고 현기증이 일 정도로 깊은 키스를 해온다. 한참만에 입술을 떼어내고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오는 티폰도 힘이 드는 건지.......아니면 나처럼 아픈 건지 귓가에 거칠게 숨을 뱉어낼 때마다 내부에 들어찬 페니스가 요동을 치는 것만 같다. 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프다. '이제........끝난 거야?' 이렇게 아픈데 왜 말도 안돼는 것을 몸 안에 넣어온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빨리 나가줬으면......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연결된 채 단단한 가슴에 붉어진 얼굴을 묻고 몸 안에서 페니스가 꿈틀거릴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떨자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상체를 일으켜 양 팔 사이에 날 가두더니 시선을 맞춘 채 몸밖으로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안도감과 허전함을 느낄 새도 없이.......... 한참만에 귀두 끝만 남기고 모두 빠져나간 페니스가 갑자기 성감대를 긁어대며 다시 강하게 밀고 들어온다. 나갈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갑작스런 움직임에 당황해 몸을 빼내려고 버둥거리자 달래듯 입술에 몇 번 키스를 하고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허리를 단단히 쥐고 겁이 날 정도로 깊숙이 몸을 묻어온다. 숨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강한 자극에 몸을 비틀자 정신을 되돌릴 틈도 없이 다시 물러나 몸을 꿰뚫어 버릴 듯 강하게 찔러 올린다. 통증인 아닌.............. 왠지 발끝까지 저릿한 느낌에 온 몸에서 열이 올라 힘겹게 더운 숨을 내뱉으며 쾌락에 젖은 까만 눈으로 사내를 올려보자 정신없이 입술에 키스를 해대며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몇 번의 움직임으로 심장은 멈춰버릴 듯 정신없이 뛰어대고 거친 호흡이 끊어질 듯 새어나간다. 느끼는 곳만을 집요하게 찔러대며 몸을 밀어붙일 때마다 이성마저 날아가 버릴 지독한 쾌감에 하얀 팔로 단단한 등을 휘어 감았다. 내부로 강하게 파고드는 페니스를 본능적으로 죄어대며 쾌락을 쫓아 허리를 움직이자 귓가에 울리는 낮은 신음소리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달아오른다. 처음 느껴보는 통증과 쾌감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아 미친 듯 사내에게 매달려 소리도 없는 신음을 정신없이 흘려대길 한참....... 참기 힘든 쾌감에 바들바들 떨리던 손에서 힘이 빠져 그대로 침대 위로 무너져 내리자 바로 허리에 팔을 감아 열에 달은 몸을 밀착시킨다. 이미 무리하게 사내를 받아들여 녹초가 되어 늘어진 몸을 붙들고 그렇게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던 사내가 한계까지 몸을 밀어 올려 누구도 허락한 적 없는 처녀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그대로 쓰러져 온다. 만족한 듯 얼굴 곳곳에 입술을 계속해서 찍어누르더니 내부에서 빠져나가지도 않고 지쳐 늘어진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아직도 뭔가 부족한 듯 내부를 찔러대는 페니스가 불편하긴 하지만 따뜻한 느낌에 그대로 잠이 들려던 순간........ 갑자기 심술이라도 난 것처럼 아직도 내 안에 들어와 있던 페니스를 슬쩍 밀어 올린다. 화들짝 놀라 단단한 몸에 꼭 들러붙어 잠도 자지 못하게 괴롭혀대는 사내를 졸음이 가득 담긴 까만 눈으로 불만스레 올려보자 바로 뜨거운 입술을 포개온다. 가볍게 입술을 빨아대더니 입안으로 들어서 혀를 섞어오자 별 수 없이 사내의 목에 팔을 두르고 눈을 감았다. 역시 오늘 해주는 키스는 평소와 다르다. 지금 해주는 키스에 비하면 전에 했던 건 왠지 중간에서 멈춰버린 듯한 느낌..... 좀더 격하고...........끈적하다. 입안에 가득 찬 타액을 삼키고 가빠지는 숨에 작게 꼼지락거리며 투정을 부리자 이로 잘근잘근 깨물고 빨아대던 내 혀를 겨우 놓아주고도 아쉬운 듯 입술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결국 입술이 얼얼할 정도로 빨아대며 가벼운 키스를 해대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놓아주고 가쁜 숨을 내쉬는 내게 뭔가 조용히 속삭여온다. 갑작스런 물음에 잠시 이해를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자 바로 허리를 감아 하체를 밀착시켜 온다. 깊이 파고들어 성감대를 찔러오는 느낌에 할딱이며 다시 단단한 몸에 매달리자 내 몸을 꼬옥 끌어안고 대답을 재촉하듯 까만 머리칼 위에 가벼운 키스를 떨어뜨린다. 얼굴을 붉힌 채 한참을 품안에서 꼼지락거리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약간 크기는 준 것 같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 안을 채우고 있던 페니스가 다시 내부를 압박하며 단단해지기 시작한다. 경악할 새도 없이 이미 충분히 젖어있는 몸 안에서 다시 수월하게 움직여대는 티폰 덕에 몇 번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격한 행위를 반복하다 보기보다 튼튼한 몸으로 난생 처음 기절이란 것을 하고 말았다. . . . 다시 눈을 뜬 건 티폰에게 안겨 욕실에서 씻겨질 무렵....... 눈을 뜨자마자 움직이지도 않는 몸과 민망한 부위의 통증에 눈에 눈물까지 달아가며 티폰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고 징징거려봐도 등을 가만히 쓸어가며 달랠 뿐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다. 어리광도 통하지 않는 데다 갑자기 엉덩이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자 또 하려고 그러나 덜컥 겁을 먹고 목덜미에 매달려 숨을 죽였다. 생각과는 달리 자신이 내부에 뿌려놓은 묽은 액체를 모두 긁어내고 손가락을 빼더니 번쩍 안아 올려 뜨거운 탕 안에 넣어주자 사내를 받아들인 부분이 화끈거리기 시작한다. 아까............. .........좋았냐는 티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죽을 만큼 해 버렸다. 시선을 내려보니 유난히도 약한 피부를 얼마나 빨아댔나 하얀 몸 구석구석 붉은 자국으로 가득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 괜한 짓을 했다는 억울한 생각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다. 평소와 같이 티폰이 탕 안에 들어와 내 몸을 끌어당기자 심술이 있는 대로 다 나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둥대다 괜히 물만 먹었다. 앉아있기도 불편한 걸 알았는지 몸을 들어올려 허벅지에 앉혀주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다. 까만 눈에 원망을 가득 담고 올려봐도 역시나 무심한 표정......... 아깐............. 내 안에 들어왔을 땐 꽤나 예쁜 표정이었는데........... 시선을 내린 곳에 보이는 것은 아까 지독히도 날 괴롭혀댄 티폰의 물건......... 흠칫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서자 영문도 모르는 사내가 허리를 당겨 바싹 끌어안아 온다. 예전엔 모양도 좋고 신기하기도 해서 가끔씩 만져보긴 했지만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그것도 거의 못했는데............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건 줄 알았다면 손도 대지 않았을 거다. 물론 아픈 것도 처음하고 끝만 그렇다 쳐도........... 나보다 훨씬 큰 주제에............ 아프다고 울고 매달리면 더 심하게 해댔다. 생각할수록 억울함이 쌓여가 소리도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궁시렁대길 한참............. 불편한 느낌에 티폰의 목덜미에 머리를 기대고 팔을 둘러 단단한 몸을 끌어안자 어깨 위로 깃털 같은 키스를 떨어뜨린다. 금새 기분이 좋아져 눈을 감고 매끈한 등을 쓸어보는데............ '응?' 평소와 다르게 왠지............ 눈을 번쩍 뜨고 시선을 내려보니 상처하나 없이 깨끗했던 탄탄한 등위에 긁힌 듯 여기저기 사선으로 붉게 부어 올라 있었다. '왜.......?' 피는 나지 않지만 꽤나 따끔거릴 것 같은 상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쓸어대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어냈다. 아까........... 티폰에게 안겼을 때 통증과 쾌감에 정신없이 매달려 손톱을 박고 할퀴어댄 기억이........... '헉...........' 이유도 모르고 몸이 확 붉어져 티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자 갑자기 턱이 들리더니 따뜻한 입술이 맞닿아온다.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대고 맞닿은 입술이 뜨거운 열기를 전해오자 아까 했던 걸 또 하자고 할까 덜컥 겁이나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버렸다. 효과가 있었던 건지 가볍게 몇 번 키스를 해주고 몸을 깨끗이 씻어주더니 번쩍 들어올려 푹신한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나른한 기분에 이제는 자는 척이 아니라 진짜 잠이 오려는데 티폰이 내게 다가오는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비몽사몽간에 엉덩이가 아파 엎드려 누운 채 잠이 들려는 찰라 왼쪽 등판이 따끔거린다. '뭐야.........' 실컷 아프게 해놓곤 등까지 찔러대는 게 원망스러워 밀어내고 싶어도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몸은 도통 움직일 생각도 않고........ 하얀 피부를 찔러댈 때마다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리자 키스를 해가며 멈추지 않고 뭔가를 새겨간다. 한참만에 따끔거리는 통증이 사라지고 티폰의 움직임이 멈추자 등에 화끈한 감각이 심장을 죄어온다. 뭔가를 구속하듯........... 답답한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자 화끈거리는 어깨에 가만히 입술을 찍어누른다. 맞닿은 입술이 미소짓듯 가만히 휘어지더니 몸을 돌려 꼬옥 끌어안아 주자 편안한 느낌에 미간을 펴고 미소를 걸친 채 포근한 품에 파고들어 잠이 들었다. Rubera(루베라) #140 '티폰...............' 어쩐지.................. 긴 꿈을 꾼 듯한 느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설마.....당신이 독이라도 먹인 거 아냐?!!!" "유이!!" "벌써 사흘째야!! 눈도 못 뜨고 고열에..........." '시끄러..............' "그 미친 의사놈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도착하기만 하면 목을 비틀어버릴 테다!!!!" 귓가에 자꾸 울려오는 유이 녀석의 목소리에 겨우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뜨려해도 천근같이 무거운 눈꺼풀은 쉬이 열리지 않는다. '왜 아침부터 발광을 하고 지랄야.........' 이 정도로 흥분한 녀석의 목소리는 지난번 티폰의 침실에서 봤을 때를 제외하곤 들어본 적이 없는 터라 몸을 일으키려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치명적이지 않은 독이라 하지 않았느냐..........." '티폰?!! 왜 여기에........' 불같이 화를 내는 유이 녀석과는 달리 너무 차분하고 냉정해 한기마저 드는 티폰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분명 이 정도로 치명적인 독은..........." 벌벌 떨면서 말하는 것이 분명한 궁의 늙은이의 목소리......... "웃기지마!!!! 이 녀석한테 독은 다 치명적이야.....! 궁의라는 녀석이 이따위니.......!!" "그게.....무슨 소리야?"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유이 녀석이 말을 내뱉자 시온이 놀라 목소리를 높인다. "빌어먹을........." 잠시 침묵이 흐르고........ "이 녀석......전에 한 번 목숨이 깎일 정도로 약에 중독 된 적이 있어서 독성분에 면역력이 떨어져....... 1년 정도 지나야 나을 수 있는데...........몇 달도 안돼서 이런........... 다른 사람한텐 가벼운 증상이라도 이 녀석한텐 죽을 수도 있단 말야!!! 젠장!!! 역시 이곳에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중독? 누가? 이 새끼 왜 또 뻥은 치고 지랄야?!!' 눈도 잘 떠지지 않고 무거운 분위기도 견디기 힘들다. 겨우 힘없이 떨리는 손을 뻗어 손끝에 닿아오는 옷깃을 쥐자 급히 내 손을 잡아온다. "키르!!! 정신이 들어?" 유이 녀석이었는지 머리가 울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온다. '씹....조용히 좀 해........' "물.....좀..........." 미간을 잔뜩 구기고 메마른 목구멍에서 목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아 입술만 달싹이자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바로 상체를 일으켜 바싹 마른 입술에 물기를 축여준다. "흐윽..............컥............" 물이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혀를 칼로 베어내 듯이 아파 와 물을 다 쏟아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자 티폰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에서 뭔가 요란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성질머리하곤.........' "좀 마셔봐....응?" 통증에 물 컵을 입에 댈 생각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자 끈질기게 물을 조금씩 입안에 흘려 넣는다. 비릿한 피 맛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물을 겨우 삼키고 그대로 늘어져 버렸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몸에 미열이 남아있어 나른하기만 하다. 침대 위로 풀썩 쓰러져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희미한 빛이 시야 속으로 파고든다. 주위엔 어둠이 깔려있고........ 한밤중인지 달빛과 침실 안을 밝혀놓은 은은한 빛만이 눈에 들어온다. 또다시 쏟아지는 잠에 몸을 일으키려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따뜻한 손이 이마를 짚어오고......... "다행이야......이제.....괜찮아........." 피곤함에 눈을 감자 유이 녀석의 조용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좀더 자.........." 녀석의 손이 떨어져나가자마자 누군가 힘없는 몸을 가만히 끌어안는다. "이제.............아프지 마.........제발........." '시온...........' 울먹이는 목소리에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뺨을 몇 번 부비적거리고 몸을 일으켜 방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심각한 목소리로 유이 녀석에게 말을 던진다. "너......잠깐 나랑 얘기 좀 해........." "그 전에........이 녀석한테 올리는 음식.....시종들한테 시식부터 시켜......여럿한테.........." '무슨.........소리야?' 갑자기....... .....차가운 손이 뺨에 닿아온다. 나른한 열을 식혀주듯...........시원한.......... '티.....폰......?' 기분이 좋아 얼굴을 부비자 잠시 머리칼을 쓸어주더니 아쉽게 떨어져 나간다. "허락하지.........시식은 물론이고..........식재료를 들여올 때도, 만들 때도 감시를 붙여라......." 싸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고......... 모두 침실에서 물러났는지 곁에서 들려오던 이야기 소리가 사라지자 또다시 까마득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덜컥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지만 나른하게 퍼져버린 몸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창이 열리고.......... 흐릿한 시야 속으로 까만 그림자가 내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뭐야.....설마 또 암살범은 아니겠지....?' 언제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시니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 허리에 찬 장검을 뽑아든다. 바짝 긴장한 채 까만 그림자에 흐린 눈동자를 겨우 고정시키고 있는데 달빛에 반짝이는 건 익숙한 은발........... '하아.....이 자식..........' "저하께서 이 밤중에 여긴 무슨 일이십니까......" "쳇, 아직도 있었던 건가? 방해할 생각이라면 집어쳐!! 애초에 이 녀석은 나하고 한 침대를 썼으니........! 얌전히 물러선 것도...........말하길 좋아하는 귀족녀석들이 이 녀석한테 듣기 싫은 말을 떠들어 댈까봐 어쩔 수 없이 혼자 둔 것 뿐이야......" "아직 몸도 안 좋으십니다........" "내가 아픈 녀석 덮치기라도 한다는 거야, 뭐야?!!" '이 자식들이 왜 여기 와서 지랄야?!!!' 짜증을 부리며 시트를 걷어내고 노려보자 할 수 없다는 듯 시니안이 조용히 물러서 제자리로 돌아가고............. 유이 녀석이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성큼 다가와 시트를 들어올리더니 바로 침대 안으로 파고든다. "깬 거야.....?" 힘없이 눈을 뜨고 노려보기만 하자 몸을 품안으로 당겨 가만히 끌어안는다. "하아.....오늘밤만 봐주면 안돼? 그럼 얌전히 잠만 자고 갈께........걱정돼서 그래......응? 키르......" '씹, 맘대로 해............' 포기하고 눈을 감자 귓가에 조용조용 말을 흘려낸다. "정말.........말썽만 부리고.......걱정 좀 그만 시켜.........도대체 왜 그런 곳에 갔던 거야? 그 황제라는 녀석이 시체가 다 된 널 끌어안고 미친놈처럼 날뛰어대 난장판이 아니었다구.......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녀석들은 또 누구고?!!" '그 녀석들...........?' 분명................. ............날 노린 것처럼 말을 했다. 눈을 뜨고 유이 녀석을 올려보자 창백해진 이마에 가만히 따뜻한 입술을 맞대온다. "셋 다 죽었어......한 녀석은 형체도 몰라보게 토막이 나서 죽어있었고....... 나머지는 병사들한테 붙들렸을 때 독약을 먹고 바로 죽어버리더군........ 아무래도 불안해........... 설마 같은 녀석들인가........... 몰래 시온이 나이브의 출처를 알아보러 간다고 항구도시로 가긴 했는데........... 몇 일이 걸릴지........." '응?'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유이 녀석을 바라보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열이 오른 몸을 가만히 쓸어주던 녀석이 고개를 숙여 부드러운 바이올렛 눈동자로 시선을 맞추고 가볍게 입술을 포개온다. 입안이 엉망이어서 차마 키스는 하지 못하고 몇 번 입술을 찍어누르더니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휘젓자 킥킥대며 떨어져 나간다. "이젠 안 아파? 내일이면 룬 녀석도 황성에 도착할 거야.......치료받고 나아지면........키리안 숲으로 돌아가자........" '돌아........가..........?' 그날........그렇게 기절하고 사흘이 흘렀다고 말했다. 그 사흘동안................. ...........꿈을 꿨다. ..........행복했던 과거의 꿈을........... 역시........ 내가 사랑했던 건 슈안 따위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내가 황제를 죽인 거야......... 그 녀석을 사랑했는데...........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헝클어진 과거가 하나씩 풀어져 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기억에 없고 주변만 맴도는 느낌..... 하지만 결국............ 녀석을 사랑했다지만.............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미...........과거와는 이렇게나 멀어져 버렸고........... 녀석은 날 잊었고.............. 난...............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내일이 지나고 또 사흘이 지나면........... 녀석의............... ...........결혼식................. 더디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지금은 너무도 빨리 흘러가 버린다. . . . "황제 폐하 드십니다......." '뭐?!!!!!' 갑작스레 문밖에서 시종의 목소리가 울려와 눈을 번쩍 뜨니 여전히 내 엉덩이에 손을 척 올리고 잠을 자고있는 유이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유이.....!!" 안절부절못하며 힘없는 손으로 유이 녀석을 밀어내자 눈도 뜨지 않고 웅얼대기 시작한다. "키르...............아프니까 좀 더 자........" "이 새끼, 빨리 일어나!!!!" "왜...........? 너, 설마 또 아픈 거야?!!" 어쩐 일인지 녀석이 벌떡 몸을 일으키자마자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침실 안으로 들어선 붉은 사내가 단단한 상체를 드러낸 채 침대 위에 앉아있는 유이를 발견하곤 싸늘하게 시선을 굳힌다. "폐하.......이곳엔 또 무슨 일로 드셨습니까...... 분명........시종은 물론이고 누구도 이 침실 안엔 들이지 말라 청한 걸로 기억하는데....... 물론 폐하도 말입니다........" 표정을 지운 유이 녀석에게로 붉은 눈동자가 꽂히더니 천천히 차가운 미소를 띄고 섬뜩한 목소리로 말을 받는다. "침실을 따로 쓴다고 들었는데......." "큭, 보시다시피 어젯밤 화해를 한 덕에........" '화해?' "이 크리올라 내에서 내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그게 부족하다면........그대의 나라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지......" "그렇게 쉽게는...........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를 갈 듯 뱉어내자 소름끼칠 정도의 살기를 붉은 눈동자에 담고 노려본다. "뮤즈니안의 황태자는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고 들었다....." "폐하께 비하면 미천하지만 사람 하나 지킬 정도는 충분합니다........" "하지만.....그대가 지켜야 할 건 사람 하나가 아닐 텐데........" "아직은...........폐하와 같은 황제가 아니라......황태자일 뿐입니다......" 한참동안 마음을 짓누를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침실 안에 가득 내려앉는다. 그리고....... 참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침묵을 깬 건 티폰....... "저 아이와 할 말이 있다......." '뭐?!!' "이 아인.......제것입니다. 그렇게 멋대로......." 흔들림 없는 붉은 눈동자가........ .......예전과 같이........ .......내게만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변함없이 혼란함이 가득 묻어나는 눈동자........ 아직은.......... .........안전하다....... 한참동안 몸이 굳어있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잠깐.........나가있어......" "키르!!!!" 유이 녀석이 날카롭게 소릴 지른다. "잠깐이면 돼........걱정하지마......" 애써 굳은 표정을 풀고 살짝 웃어주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티폰을 노려보더니 갑자기 내 머릴 끌어당겨 입술을 포개온다. 반대편에서 변함없이 차가운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이 시야에 들어오자 눈을 감아버렸다. 자꾸.......귀찮게 뛰어대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간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혀 주려는 듯 부드럽게 시작한 키스가 길어지기 시작하자 녀석의 팔을 꼬옥 잡아 행동을 멈춰버렸다. 힘겹게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가만히 눈을 뜨자 바이올렛 눈동자를 내게 맞추더니 입술이 닿을락 말락 한 거리에서 내게만 들린 정도로 작게 속삭여온다. "내기.........잊지 않았지? 아직........끝나지 않았어........" 고개를 끄덕이자 평소와 같이 빙글거리더니 가볍게 입술에 다시 한 번 키스를 하고 돌아선다. "이번 한 번 뿐입니다......폐하......." 살벌하게 쏘아붙이고 대충 옷을 추려 입은 유이가 침실 밖으로 나가자 미동도 없이 녀석의 붉은 시선이 내게만 박혀 든다. '무슨 일이야......설마 이제야 황제의 숲에 들어간 일로 추궁이라도 하러 온 건가........' 지루할 정도로 긴 탐색전에 지쳐가기 시작할 무렵......... 녀석이........ ........내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가까워질수록........ 식어있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댄다. 지척에서 멈춰선 녀석이 내게 손을 뻗어오자 흠칫 몸을 굳혔다. 의도하지 않은 반응에 당황한 눈으로 녀석을 올려보자 녀석에게선 보고싶지 않은 표정............. 허공에 멈춰버린 손에 가슴이 답답하게 죄어와 나도 모르게 가만히 녀석의 옷깃을 틀어쥐자 다시 손을 뻗어 열이 있는 지 확인이라도 하듯 부드럽게 이마를 쓸어준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어떻게 된 거냐........." 차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입꼬리를 살짝 들어올린 시니안이 고개를 깊이 숙인 채 말을 받는다. "큭, 폐하께서 걱정하신 일은............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왠지 즐거운 표정............. .........역시 이상한 녀석............ "아무도........들이지 말라고 명했을 텐데........." "그 분이 허락한 것까지 막을 권한이.......제게는 없습니다........ 게다가........... 원하시는 건 뭐든 들어주라 명하지 않으셨습니까......... 그 분이 원하신 일입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미간을 찌푸린 채 두 군신을 바라봐도 친절하게 설명해 줄 턱이 없다. 잠시 시니안을 노려보던 티폰이 다시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 자들이.............누구의 사주를 받았는지 알아봤느냐......." "신원을 알 수 있을 만한 단서가 발견되지 않아 애를 먹고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밝혀내..........." "예........." 왠지 심각한 분위기......... '뭐야......? 나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한 거 아냐?' 불만스럽게 올려보자 가만히 머리칼을 쓸어대며 날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어온다. "정말................. ........내 곁에 있을 생각은 없는 건가........" '또.......... ..........그 얘기야........? 곧 결혼할 놈이............ 첩부터 들일 생각을 하는군.......' 가라앉은 표정으로 마음을 잡지 못하는 녀석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니 곁에 남으면..............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고 했지........?" "원하는 게.........뭐지?" '예전에 조금이라도 날 사랑했다면............... 니가 잘난 황제 폐하라도..............들어줄 수..............없는 게 하나 있지...............' "날 붙들고 싶으면............" Rubera(루베라) #141 "날 붙들고 싶으면............ ..............루베라를 새겨..............." 놀란 듯 붉은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자 입술을 꼬옥 깨문 채 시선을 돌려버렸다. 2년 전에 나하고 약속을 했으니................ ............다른 사람한텐 새기지 않겠다고.................. .........자신의 루베라는 하류뿐이라고.............. '큭, 쓸데없는 기억이............이럴 땐 도움이 되는군........' "왜? 할 수 없는 거야? 이 황성에서 니 루베라하고 황비 사이에 끼어 침실시중이나 드는 노예가 되느니.......... 차라리 유이 녀석을 따라가는 게 백 배는 나아......... 나도 머리가 있으니...............그 정도는 알고 있다구............." 맘에도 없는 소리........... 사실은............. ".................." 대답이 없는 녀석에게 피곤한 듯 눈을 감아버리자 예상치도 못하게 갑자기 따뜻한 입술이 닿아온다. 눈을 번쩍 뜨자 섬세한 이목구미가 시야에 들어오고............ 조심스럽게 살짝 입술을 누르고 가벼운 키스를 해오는 녀석을 보고 자꾸 최근에 기억난 과거의 일이 떠올라 얼굴을 확 붉힌 채 단단한 가슴을 힘없는 손으로 살짝 밀어내자 귓가에 작게 속삭여온다. "황성 밖으론........... ........이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마라........" '뭐............?!!' 놀란 눈으로 올려보자 가늘게 떨리는 입술 위에 다시 가볍게 키스를 하더니 몸을 일으켜 씁쓸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왜........네게 집착을 하는 거지........ 정말........ 단순히 내 루베라를 닮았기 때문인가.............." '갑자기............무슨............' 시선을 돌려버리자 한참 후에야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간다. 한동안 멍하니 그렇게 누워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입안은 아직도 따끔대고 사흘동안 굶어 현기증이 인다. 손아귀가 쓰려 아래를 내려보니 손바닥엔 손톱이 박혀들어 갔는지 여기저기 딱지가 앉아있고 목도 따끔거리는 걸 보니 상처가 난 모양......... '하아........생난리를 쳤나보군........' "그 자들에게............뭔가 들은 바는 없었습니까?" "응?" 고개를 들어보니 저편에서 시니안이 상처를 훑어보는 내게 무거운 분위기로 말을 건넨다. "들은.....거?"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보다 생각나는 대로 말을 꺼냈다. "뭔가......하면 금화 5000을 받는다고......씹, 그러고 보니 그 뭔가가 날 죽이는 거였어!!! 독침인가를 목에 찔러놓곤 숲으로 끌고 가서 죽인 다음 강에 던져버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금화........5000? 사주한 자는............." "몰라..............." 심각한 분위기의 시니안을 잠시 바라보다 겨우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젠장.........' "그 몸으로 또 어딜 가시려는 겁니까........?!!" 시니안이 다가와 몸을 번쩍 들어올리더니 또다시 침대 안으로 밀어 넣으려해 눕지 않으려고 녀석의 목에 팔을 두르고 매달렸다. "욕실에 내려 줘......!!" 사흘 전 흙먼지에서 구른 채 그대로 옮겨졌는지 여기저기 흙가루가 묻어있고 땀과 피에 몰골이 말이 아니다. '유이 녀석..........잘도 내 옆에서 잤군.........' 잠시 벗은 몸을 살펴보던 녀석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욕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큭, 세 분이서 서로 손대지 말라고 으르렁 대셨으니......." "응?" "욕실시녀를 들이겠습니다......" "시......싫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냥 바닥에 내려 줘......." "죄송합니다........제 불찰로..........." 갑자기 가라앉은 목소리에 시선을 올려 녀석을 바라보자 능글맞았던 녀석이 꽤나 풀이 죽어있다. '하아? 왠일이래.......오래 살고 볼일이군............' "내가 멋대로 빠져나가서 돌아다니다 재수 없게 일이 터진 건데 뭐가 불찰이야? 젠장.......이제 나가지도 못하게 생겼군......... 씹, 또 지킨답시고 24시간 붙어 다니면서 애새끼 다루듯 할 생각이라면 때려 쳐.........!! 그리고.............. 케레스한텐 말하지마........." "예..........."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주더니 날 내려놓고 밖으로 나서는 녀석을 보곤 더운물로 몸을 씻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발광을 했는데도 상처는 입안과 손바닥, 목...........바닥을 구를 때 생긴 듯한 작은 생채기 정도....... 혼자 낑낑대며 몸을 깨끗하게 씻어내고 힘이 다 빠져 난감하게 멀기만 한 문을 바라보고 있을 쯤......... 시니안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더니 당황할 새도 없이 부드러운 타월로 물기를 대충 닦아주고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힘이 빠져버린 몸을 번쩍 들어올려 얌전히 침대 위에 놓아준다. 같은 사내끼리라곤 해도 창피한 건 창피한 거라 얼굴을 붉힌 채 어느 샌가 깨끗하게 갈려있는 시트를 끌어당겨 몸을 재빨리 가리자 하얀 머리칼을 흩트리며 피식 웃더니 눈앞에 뭔가를 내려놓는다. "드십시오.........." '응?' 시야에 들어오는 건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죽............ 아직도 쓰린 혀에 미간을 찌푸리다 등가죽에 붙은 배를 보곤 스푼을 들어올렸다. 약간 미지근한 죽을 퍼 올려 입안에 넣었을 땐 혀가 갈라지는 것처럼 아팠는데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처음처럼 끔찍한 통증은 느껴지지 않는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아 세 그릇이나 해치우고 몸을 침대에 눕히자마자 소란스런 소리와 함께 침실문이 벌컥 열리면서 낯익은 남빛 머리칼이 눈에 들어온다. "젠장, 빌어먹을 좀도둑 새끼......여기까지 불러들인 주제에 날 죽이려들어?!!! 급하게 오느라 놓고 올 수도 있는 거지!!!!!" "룬........?!!"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자 목을 쓸어대며 욕설을 내뱉던 녀석이 내게 시선을 돌려온다. "뭐야, 꼬마...........잘 지냈냐? 꼴을 보니.........영 아니군............" 자문자답을 하며 불만스런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 녀석의 목엔 퍼렇게 손가락자국이 나있었다. 게다가............ 내가 잘라준 변태 단발이 아니다. 훨씬 짧아진 머리칼을 보니 빛을 보지 못한 창백한 피부만 아니면 확실히 잘난 사내의 얼굴............ "독약 마시고 사흘이나 누워있었다며? 자살할 생각이면 그렇게 힘들게 죽지 말고 나한테 오라니까.......!! 내가 생각해 둔 실험이 있는데 말야......실험 대상이 없어서......." 눈을 빛내며 다가오는 녀석에게 흠칫 놀라 꽥 소릴 질러버렸다. "누...........누가 독을 마셔?!!! 자살?!! 미친놈이 또 무슨 개소리야?!!" 펄쩍 뛰며 침대 저편으로 멀찌감치 달아나자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날 바라본다. '저.........저 미친놈.....도대체 무슨 실험.........?!!' "뭐야? 빨리 이리와!! 해부 안 할 테니까........좀도둑 자식이 너 진찰해 보라고 했단 말야....." '해부할 생각이었냐?!!!! #$@%&##$%$!!!!!!' 울컥해서 노려보자 가볍게 무시해 버리고 침대 맡에 앉아 가만히 날 바라본다. '젠장.............' 할 수 없이 녀석에게 비척비척 다가가자 누우라는 듯 침대 위를 탁탁 쳐 생각 없이 털썩 몸을 눕히자마자 시트를 확 걷어낸다. "헉......." 하얗게 드러나는 알몸에 놀라 눈을 크게 뜨자마자 퍼렇게 멍이 든 룬 녀석의 목에 날카로운 검이 겨눠진다.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섬뜩하게 눈을 빛내며 시니안이 말을 꺼내자마자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시트를 빼앗아 다시 몸에 둘둘 말고 이를 바득바득 갈아붙이며 룬을 노려보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말을 던진다. "보면 몰라? 진찰하잖아!! 독에 당했었다며?" "독은 이미 중화가 됐고 상처는 외상뿐입니다........" "아, 그래? 젠장.....다 해결됐으면 도대체 왜 날 부른 거야?!!" "함부로 하는 행동은 삼가해 주십시오......." "쳇, 뭔가 모르나본데...........내가 숲 밖으로 나가면 진찰 한 번 받아보려고 내 앞에서 홀랑 벗는 귀족가 아가씨들이 줄을 서!!" '썩을.......그걸 자랑이라고 하고 자빠졌냐? 실력만 좋으면 뭐해?!! 쯧, 미친 발광이 태반인걸...........' "뭐, 그래도 너만큼 몸이 예쁜 녀석은 못 봤어.......역시 표본으로........이리와!!" "시......싫어!!! 저리 꺼져!!!" 장난 아닌 눈빛에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악을 써대며 시니안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뒤로 숨어버리자 눈을 빛내며 음흉한 미소를 입에 거는 게............. '벼.......변태새끼!!!!!' 저 새낀 분명 오리지날이다. "황제폐하 앞에서도 그런 말씀을 올릴 수 있으면 상관은 하지 않겠습니다........" "헉, 뭐......뭐?!!! 서....설마 이를 생각은 아니겠지? 난 빨리 죽는 것도 싫지만 말많은 녀석은 정말 싫어.......!!" '어라? 이 미친 변태놈도 무서워하는 게 있긴 있나보네........?' 눈에 띄게 당황하는 녀석을 의아하게 바라보자 입꼬리를 슬쩍 끌어올린 시니안이 다시 말을 잇는다. "그러고 보니..................폐하께서 열 셋 되시던 해..........." "컥......." '응? 뭐야?' 시선도 돌리지 못하고 땀만 삐질삐질 흘리는 녀석을 신기한 듯 바라보자 시니안이 다시 말을 꺼낸다. "그때가...........황태자님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뮤즈니안에서 사절단이 도착했을 때군요......." '티폰의.........생일?' 흥미 있는 표정으로 시니안을 바라보자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황태자님을 납치하려했던 파렴치한이 있었습니다........ 오히려 된통 당하고 달아났지만..........." "뭐? 납치? 왜? 돈이라도 벌려고 했나?" "크리올라 황가의 순수한 붉은 혈통을 연구해 봐야한다며 횡설수설했던 것 같은데........" "순수한........붉은 혈통.......?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죽지 않고 용케 달아났네? 그 녀석이라면 그 나이에도 충분히 죽이고도 남았을 텐데........." "큭, 아마.........아직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찾아내면 찢어 죽이겠다고 노성을 지르셨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룬 녀석이 내 턱을 쥐고 휙휙 돌려가며 꽥 소릴 지른다. "너.......키....키르라고 했던가? 어디 아픈 데는 없는 거지?" 품을 마구 뒤적이더니 약인 듯 보이는 연고를 가득 꺼내놓고는 입 안쪽과 손바닥 위에 잔뜩 발라댄다. "역시 외상뿐이네? 혀는 말을 할 수 있는 거 보니 혈관만 약간 다쳤던 거 같고........ 독 때문에 심장에 무리가 갔을 지도......아니, 혈색을 보니 괜찮은 거 같아. 이........이 녀석 이제 괜찮으니까 난 숲으로 돌아가도 되는 거겠지?" "폐하께서 명을 내리실 때까지 황성에 머무십시오......시종에게 말해 머물 곳을 준비해 드릴 테니..........." "아악!!! 젠장!!! 야, 키르...........너 여기 황제하고 친해? 응? 응?" '뭐.........뭔 소리야?' 무슨 은밀한 얘기라도 하는 양 속삭여 오는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여댄다. "너도 내 약으로 목숨 건졌으니까 나중에 나 죽게 생기면 좀 도와줘......... 빌어먹을!! 해부 당할 뻔했다고!!! 아니, 토막내려 했을 거야.......!! 젠장!! 예쁘게 생긴 꼬마녀석이 그렇게 무시무시할 줄 누가 알았겠어?!!! 어쩐지 눈빛이 고약하더라니!!! 7년이나 지났으니 완전 괴물이 됐겠지? 찢어져서 죽긴 싫다구!! 끄아아아아아아아악!!" [창작연재] Rubera(루베라) #142 그날 이후.......... 꼼짝없이 황성 안에 갇혀버렸다. 발코니로 나서도 밑에 병사들이 잔뜩 깔려있고 문밖으로 나서도 시종들과 병사들이 왕창 따라붙는다. 황제의 결혼식이 코앞이라지만......... 유이 녀석도 어쩐지 지나치게 뮤즈니안으로 돌아가려는 걸 서두르는 통에 얼굴도 보기 힘들고 예전엔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주제에 시온 녀석은 뭐가 그리 바쁜지 정신을 차린 날 밤 이후 만나보지도 못했다. 대신 오후엔 룬이 진찰이랍시고 침실에 찾아오지만..........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미친 발광만 해대는 게.............. 지금도 진찰은커녕 침대 맞은편에 앉아 비 맞은 땡중마냥 뭔지 모를 소리만 떠들어댄다. 황성에서 내준 침실에 괴상한 약이나 잔뜩 쌓아놓고 시녀들이 청소도 하지 못하게 지랄을 해댄다던데......... 미친놈이야 원래 그렇다 치고........... 그런 일보다 지금의 내게는 좀 더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 나하곤 별 상관도 없는 일이지만........... 확실히 그래야 하지만........ '빌어먹을.........' 내일은 드디어 녀석의 결혼식............ 지금까지 떠들썩했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많이 가라앉아 있긴 하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발코니에 나가 찌푸린 눈으로 병사들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올려본 하늘은 어쩐지.............. ...............심각한................... '씹, 저러다 비라도 퍼붓는 거 아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커먼 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하늘에선 번개인 듯 푸른빛이 번쩍이기도 한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초조함........ 이런 날씨는 언제나와 같이 내게는 거의 독이다. '젠장, 어쩌지?!!' 이제 밤엔 유이 녀석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는 시니안 앞에서 또 그 발광을 해대면................... "룬, 수면제 같은 거 없어? 강력한 걸로............" "응? 수면제? 강력한 게 있긴 하지.........너무 강력해서 평생 깨어날 수 없다는 게 탈이긴 해도.....하나 줄까?" '썩을.........저 놈한테 물어본 내가 미친놈이지................' 속으로 궁시렁거리며 약장사처럼 중얼중얼 떠들어대는 룬에게 시선을 돌려 재빨리 침실 주위를 둘러봤다. '빌어먹을.........없잖아?!!!!!' 찾던 것이 눈에 보이지 않자 신경질적으로 문으로 다가섰다. 시니안은 지난 번 녀석들의 배후를 밝힌다고 동분서주하는 모양......... 내 호위까지 맡아 한 밤중에도 내 침소를 지키는데 방금 전 황제에게 불려나가 한참 후에나 돌아올 것 같다. "키르!! 어디 가는 거야?!!!" "너도 따라와.........내가 맛있는 거 줄게" "맛있는 거.............?" 잠시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 하더니 냉큼 따라붙는다. 예전에.............. ............만일을 위해 생각해 둔 것이 있었는데...................... 문을 열어 복도에 나서자마자 머리를 깊숙이 숙인 시종들과 병사들이 따라붙는다. '젠장......!! 도망가는 게 아니란 말이다!!!!' 지난번 피운 말썽으로 내가 침실 밖으로만 나서면 황제에게 목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인간들을 잔뜩 몰고 도착한 곳은 2층 끝에 자리잡고있는 커다란 저장고........... 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자극하는 강한 술 냄새가 풍겨온다. 이전에 시온과 케레스와 함께 둘러본 적이 있다. 술 저장고는 성 지하에 있지만 종류별로 한 병씩 꺼내 이곳에 보관하는 걸 알고 있다. 훙구가루는 지속력이 떨어진다. 반면 술이라면................ 필름이 끈기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고 잠을 퍼대 자면 옆에서 곰이 꽹과리를 쳐대며 재주를 넘어도 깨지 않을 테니...... 육중한 문을 밀고 희미한 빛만 새어들어 오는 어두운 저장고 안으로 성큼 발을 내딛어 시종들이 따라들어 오기 전에 냉큼 문을 닫아버리자 다행히 문을 열고 들어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뭐, 애초에 이곳엔 창 같은 건 나있지 않으니 빠져나갈 구멍도 없고..........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알콜향에 취기가 도는 것 같아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룬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너, 술 마실 줄 알지? 먹고싶은 거 아무거나 골라잡아............" '내건 아니지만 내가 쏜다..........' "흐응~ 정말? 마셔도 되는 거야? 마셔도 되는 거지? 설마 나중에 처형당하는 거 아냐?" 내가 마시지 말라고 때려도 마실 것 같은 낯짝을 해 가지곤 잘도 지껄여댄다. "몰라!!! 우선 쳐 먹기나 해........!!" "큭, 역시 맘에 들어.........." 녀석이 술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건 유이 녀석에게 들어 알고 있다. 심사숙고 해가며 좋은 술을 고르는 룬과는 달리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과일주는 제쳐두고 호박색 액체가 가득한 병을 여니 지독한 알콜향이 코를 찌른다. '이 정도는 되야...............' 생각할 것도 없이 벌컥벌컥 마셔댔다. 이곳으로 오는 도중 창 밖으로 보였던, 금방이라도 빗물을 쏟아낼 것만 같은 시커먼 하늘이 자꾸 떠올라 쫓기듯 급한 맘으로 숨도 쉬지 않고 호박색 액체를 들이키자 목구멍이 화끈거릴 정도로 독한 술이 넘어온다. 확실히......... 내겐 술고래가 될 재능이 있는 게 틀림없다. 이렇게 독한 술도 잘만 넘어가는 것을 보니........ "크............" 술병을 내려놓자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시야에 들어온 사물들이 기이하게 일그러져 보인다. "아항? 멀쩡하잖아~ 하아.....기분 조오타!!" 혀 꼬인 소릴 내며 옆을 보니 미친놈도 나 못지 않은 커다란 병을 들곤 병나발을 불고 있다. "이 자식............천천히 좀 쳐 마셔......!!" 숨도 쉬지 않는 녀석의 뒤통수를 한 대 갈기자 술 좋아하는 놈 치곤 의외로 술에 약한 녀석이었는지 몽롱하게 풀린 눈으로 입안에 가득 들어있는 붉은 액체를 뿜어낸다. "풉......어떤 새끼야?!! 감히 이 몸을 쳐?!!! 엥? 너 누구야~~!! 누구세요? 골격이 예쁘십니다. 한번 만져봐도......." "아악!!! 어딜 만져!! 이 미친놈, 주접 그만 부리고 쳐 먹기나 해!!" 달라붙는 녀석에게 몇 번 발길질을 해 떨어뜨리자 궁시렁대며 옆으로 픽 쓰러지더니 움직임이 없다. "응? 뭐야? 벌써 자는 거냐?!!!" 킥킥대며 쓰러진 녀석을 발로 쿡쿡 찔러대다 다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연달아 마실수록 기분이 붕 뜨고 이런저런 걱정 따윈 모두 날아가 버린다. "하항~ 진작에 마시는 건데.............." 정신없이 병나발을 불어대길 한참......... 커다란 술병이 금새 비어버린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술병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설레설레 젖고 몸을 일으켰다. "어라..........." 몸이 비틀거리는 건지 바닥이 움직이는 건지............ 술병을 끌어안은 채 옆에 누워 거리적거리는 녀석을 발로 차 멀찌감치 굴려버리고 비틀대며 발걸음을 옮겼다. 자꾸 흔들리는 문을 겨우 열어 젖히고 밖으로 나서자 그 때까지 밖에 서있던 녀석들이 안절부절못하고 휘청거리며 복도를 걸어가는 내 뒤를 따른다. "하아? 여기가 어디야...........? 우리 집이 이렇게 넓었나?" 두서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거대한 문 앞에 도착하자 문을 지키고 서있던 병사들이 어쩔 줄 모르고 앞을 막아선다. "우~아!! 시니안!!" 끝도 보이지 않는 복도 저 편을 바라보며 소리치자 서둘러 시종들과 병사들이 고개를 숙인다. 간단히 속여넘긴 후 막을 틈도 없이 손을 뻗어 육중한 문을 낑낑거리며 열고 침실 안으로 성큼 들어서 쫓아 들어오지 못하게 냉큼 문을 닫아버렸다. "하아........비는 오지도 않잖아........." 투덜거리며 겨우 비틀비틀 침대로 다가가 픽 쓰러지자........... '응........? 뭐야?' 밑에 뭔가 깔려 꿈틀댄다. 의아함에 상체를 살짝 일으켜 내려보자 자꾸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들어오는 것은 까만 머리칼에 까만 눈동자.......... "앙? 뭐야........황제폐하의 루베라............신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잔뜩 꼬인 혀로 말을 건네자 굳은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큭, 눈 찢어질라.......난 어렸을 때 더 귀여웠단 말이야!!" 살기까지 내비치는 녀석의 눈을 이리저리 치켜올리며 지분대다 술기운에도 퍼뜩 스치는 생각에 얼른 손을 물렸다. "아!! 위대하신 황제폐하의 고귀한 루베라한테 더러운 손을 대면.......... 응.............목이 댕강 날아가는데.............. 큭, 미친놈한테 내가 만졌다고 이르지마, 꼬맹아........." 킥킥대며 몸을 일으키려하자 까만 눈동자에 이채가 스치더니 그대로 내 몸을 끌어당겨 다시 녀석의 위로 픽 쓰러져 버렸다. 그대로 엎어져서 비몽사몽 꿈속을 정신없이 헤매는 사이 밑에 있는 녀석의 능숙한 손놀림에 앞섶이 다 헤쳐지고......... 하의 속에 들어와 내 것을 움켜쥐는 가는 손에 작게 투정을 부리자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으응........아.........뭐 하는...........거야........" 갑작스런 자극에 눈도 뜨지 못하고 할딱이며 붉어진 얼굴을 부드러운 목덜미에 비비자 바로 자신의 다리를 내 허리에 감아 몸을 밀착시켜온다. 술 때문인지 약간 빨라진 호흡을 신경 쓸 틈도 없이 반쯤 일어서 녀석의 손에 쥐어진 페니스의 귀두 끝에 움찔거리는 입구가 닿아온다. 그리고.............. "무슨 소란이냐............." 문밖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겁에 질린 병사들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온다. "뮤즈니안에서 오신 손님께오서............."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하아..........흑............아............아파............." 술기운에 취해 알 수 없는 열기에 헐떡이며 가늘게 신음을 흘리는 사이 녀석이 아직 동정도 떼지 못한 내 페니스를 손에 쥐고 급하게 뻑뻑한 입구에 쑤셔 넣으려하자 통증에 확 밀쳐버리고 녀석의 복부 위에 올라앉았다. 열기가 가시지 않아 거친 숨을 몰아쉬자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붉은 사내가 흔들리는 시야 속으로 뛰어들어온다. "하아.......시끄러............잠도 못 자게........."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까만 녀석의 하얀 몸 위로 풀썩 쓰러지자 누군가 다가오는 지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지나치게 조용한 침실 안을 울려온다. '응?' 얼굴에 자꾸 묻어나는 축축한 액체에 미간을 찌푸리자 밑에서 작게 소리 없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오고............ 누군가의 거친 손길에 뒷덜미가 잡힌 채 녀석의 몸 위에서 확 끌어당겨져 흐린 잿빛눈동자로 올려보자 혼란함이 가득 묻어나는 붉은 눈동자가 분노를 띈 채 침대 위에서 훌쩍이는 까만 녀석과 술에 떡이 돼 비실비실 웃고있는 날 번갈아 바라본다. "도대체............무슨 짓을 한 거냐........." 살기 띈 목소리............ "시니안~~" 이미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붉은 사내는 관심 밖........... 녀석에게 뒷덜미가 잡힌 채 맞은 편에 보이는 잿빛 사내에게 손을 휘젓자 흔들리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숙인다. 뒷덜미를 쥔 사내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마자 이를 갈 듯 섬뜩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끌고 가..........지하감옥에 쳐 넣어라............" "폐하............." 놀란 듯 잿빛 사내가 고개를 들어올려 붉은 사내를 바라보지만 술에 잔뜩 취해 헝클어진 머리 속엔 하나의 섬뜩한 단어만이 박혀들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지하.................감옥.............?" 불분명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대다 갑자기 온몸에 파고드는 한기와 비명소리에 정신없이 떨어대며 귀를 막아버렸다. "시............싫어.............." 축축하고 차가운 바닥 위에 널부러져 죽기만을 기다리는 처참한 몰골이............... 끔찍한 고통이............ 망막에 박혀버린 듯, 머릿속에 각인 되어 버린 듯 선명해 미쳐버릴 것만 같은데......... 공포에 질려 비명 따윈 입 밖으로 내지를 수조차 없다. 갑작스런 반응에 놀란 듯 내게 들이박히는 붉은 눈동자를 보곤 울컥 눈물을 쏟아버렸다. "흑...........싫어......가기 싫어........" 화려한 옷자락을 부여잡고 훌쩍이며 매달리자 사내의 몸이 흠칫 굳어간다. "죽인다고 해놓고......죽이지도 않고.....흑.......매일 가둬두고..........이상한 것만 먹이고............. 흑.......차라리 그냥 죽였으면 미워하지 않을려고 했는데.....너 따위 건 정말 싫어!! 비켜!! 이 나쁜 새끼....! 죽어버려!!" 감정조절조차 되지 않아 울며 매달리다가 눈앞에 있는 붉은 녀석을 밀쳐내며 증오가 가득 들어박힌 잿빛 눈동자로 발작하듯 악을 써대자 잔뜩 굳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을 내뱉는다. "당장 끌고 나가............" Rubera(루베라) #143 "당장 끌고 나가............" "예..........." 황제의 분노한 목소리에 할 수 없다는 듯 시니안이 다가와 붉은 녀석의 손에서 날 빼내려하자 갑자기 내 몸을 끌어당겨 으스러질 정도로 꽈악 끌어안고 차갑게 말을 잇는다. "이 아이가 아니다..........." 내게 뻗어오던 손을 멈칫하더니 작게 입술을 말아 올리고 까만 녀석에게 돌아선다. "끌고 가라............." "예........" 재빨리 병사들이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앉아있던 녀석을 끌어내 사라지자 무거운 침묵만이 넓기만 한 침실 안을 가득 메우고.......... 한참동안 패닉상태에 빠져 따뜻한 품에 안겨서 가늘게 떨며 훌쩍거리다 자꾸 답답하게 몸을 죄어오는 녀석이 불편해 겨우 밀쳐내고 품을 빠져 나왔다. 어지러운 시야에 들어오는 건 기이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붉은 사내............ 지금까지의 일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앞섶이 다 풀어 헤쳐져 겨우 걸치고만 있던 옷이 귀찮아 사내 앞에서 모두 벗어버리자 당황한 듯 살짝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가 그대로 하얀 나신에 들이박힌다. ".....비켜..................." 작게 웅얼대며 미동도 없이 내게 시선을 박고 앉아있는 사내를 밀어내고 푹신한 침대 안쪽으로 파고들려 하자 허리를 끌어당겨 단단한 허벅지 위에 앉히고 빠져나가지도 못하게 꼬옥 끌어안는다. "......졸려................." 별 수 없이 자꾸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올리지 못한 채 사내에게 몸을 기대 자리를 잡고 기분 좋은 향이 나는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자 술기운에 뜨거워진 몸을 가만히 쓸어준다. "취한....건가............"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더니 차가운 손으로 눈가에 매달린 물기를 훔쳐준다. 부드러운 손길에 다시 부시시 눈을 뜨자 정면에 보이는 붉은 사내는................. 어쩐지 낯이 익은................... "누구............?" 손을 뻗어 지나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을 쓸어보자 바로 커다란 손이 내 손을 덮어온다. 사내에게 잡힌 손을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다 다른 손을 들어올려 붉은 눈썹과 곧은 콧날을 쓰다듬고 선이 예쁜 입술에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만지작거리자 손목을 움켜쥐고 길고 하얀 손가락에 키스를 해온다. "킥, 간지럽잖아~~" 킥킥대며 바르작거리자 그대로 푹신한 침대가 등뒤에 닿아오더니 술기운에 열이 오른 몸을 식혀주듯 시원한 체온이 몸을 덮어온다. 열기에 젖은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추고 손에 키스를 하던 녀석이 고개를 숙여오자 나도 모르게 스륵 눈을 감았다. 뜨거운 것이 입술에 닿자마자 시원한 향과 함께 부드러운 혀가 입안으로 밀려들어온다. 기분 좋은............. 팔로 사내의 목을 감아 끌어당기고 부드러운 입술을 빨아들이자 귓가에 스치는 호흡이 살짝 거칠어진다. "으응..............." 각도를 바꿔가며 깊은 키스를 해오는 통에 숨도 쉬지 못하고 작게 비음을 흘리며 고개를 휘젓자 아쉬운 듯 떨어져나가 타액에 젖은 입술을 부드럽게 핥아준다. "왜...........널 택한 걸까............." 갑자기 귓가에 속삭이는 알 수 없는 말에 색이 옅은 잿빛 눈동자를 드러내자 눈가에 가벼운 키스를 해주고 열이 오른 몸을 품에 꼬옥 끌어안는다. "그 녀석이 가짜라는 것쯤.............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황성 안에...........이상한 소문이 돌더군....... 몇 달 전........2년만에 돌아온 내 루베라를............. 까만 눈동자에 까만 머리칼을 가진 내 아이를...........이 손으로 잔인하게 죽였다고........ 네 말대로.............내가 죽였다고......... 그래서.......... 큭, 그 말이 사실일까 두려워 진짜 대용품이 필요했는지도..........."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아프도록 강하게 끌어안는 녀석이 어쩐지 안타까워 팔을 둘러 따뜻한 몸을 꼬옥 끌어안자 흠칫 몸을 굳힌 녀석이 얼마 후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온다. "널...........대용품으로 쓰고 싶지 않았다. 녀석에게서 빼앗고 싶을 정도로 손에 쥐고 싶었지만............. .............망가뜨릴 것만 같아 놓아준 거야. 2년 전............... 내 루베라처럼............." 얼굴 곳곳에 새털같이 가벼운 키스를 해대는 녀석의 품안에서 간지럽다고 꼼지락대며 얼굴을 휘젓자 사내가 입술을 살짝 비틀어 미소를 띄운다. "확실히.............뭔가가 있어............. 내게..............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소중한 거냐............." 타는 듯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추고 대답을 재촉해 오지만 사내의 초조한 마음 따위 알 턱이 없다. 기분 좋은 자극에 헤실거리며 바라보기만 하자 입술을 살짝 찍어누르며 가벼운 키스를 해준다. "그건..............차차 확인해 보면 알겠지........... 다시 내게 돌아온 건 네 자신이다.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어............... 눈물을 비춰도............. 이젠 놓아주지 않을 테니.............."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는 몽롱한 머리에 채 와 닿지도 않고.......... 내 위에서 상체를 일으킨 사내의 옷자락이 하나 둘씩 침대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으응........." 다시 벗은 몸을 겹치고 뜨거운 손으로 내 것을 쥐어오자 작게 투정을 부리며 몸을 뒤틀었다. "아파......." 꼬마 녀석이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붉게 자국이 난 페니스를 쓸어대던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칭얼대는 말에 그제야 내 것을 내려보곤 살기 띈 눈으로 작게 욕설을 내뱉는다. 바로 부드러워진 손길이 반쯤 일어선 페니스를 조심스럽게 휘감아 귀두 끝을 자극해 오자 더운 숨을 내쉬며 사내의 목에 팔을 둘러 목덜미에 얼굴을 부볐다. 몸 여기저기에 키스를 해대며 손을 움직이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참을 수 없는 쾌감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아.........으응................" 쇄골에 키스를 해대며 이를 박아 넣던 사내가 밑으로 내려와 살짝 일어선 돌기를 깨물고 빨아대자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자지러지는 신음을 입밖에 내고 몸을 비틀었다. 민감한 반응에 집요할 정도로 가슴에 달라붙어 까끌한 혀로 쓸어대고 잘근잘근 깨물어댄다. "아...........앗.........으응............" 손끝이 떨려올 정도로 강한 쾌감에 숨을 겨우 할딱이며 붉은 머리칼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떼어내려 해도 고집스럽게 페니스를 쥐고 있는 손을 움직여가며 작은 저항조차 허락지 않는다. 자극에 사내의 손안에서 페니스가 한계까지 커지자 돌기를 이로 깨물고 천천히 피스톤질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귀두 끝을 비벼대 참기 힘든 쾌감에 정신이 나갈 지경......... 헐떡이며 숨을 내뱉을 때마다 아찔할 정도로 지독한 술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으응.................아..............하악................." 쾌락에 몸부림을 쳐대며 몸을 비틀어도 어느샌가 귀두 끝을 막아버리고 빠르게 피스톤질을 해대는 사내의 손 때문에 사정도 하지 못하고 끔찍한 쾌락과 통증을 오가고 있었다. 심술궂은 자극에 기절할 것만 같아 의식도 못한 사이 흥분한 사내의 몸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하얀 가슴에 매달려 어린아이처럼 정신없이 돌기를 빨아대는 사내에게 겨우 떨리는 손을 뻗어 끌어당기자 욕정으로 짙어진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추고 흐느끼듯 신음을 흘려대는 입술을 격하게 삼켜 빨아댄다. 정신없이 입술을 부벼대며 귀두 끝을 막은 채로 통증이 일 정도로 피스톤질을 해대는 사내의 몸에 손을 뻗어 애무하듯 부드럽게 쓸어주자 겨우 페니스를 쥔 손을 놓아줘 그대로 사내의 손에 유색 액체를 내보내고 말았다. 죽을 것 같은 쾌락과 나른함이 동시에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사내의 뜨거운 입술이 떨어져나가자마자 가쁘게 숨을 내뱉으며 몸을 늘어뜨린 채 눈을 감자 허벅지 안쪽에 데일 듯 뜨겁고 단단한 물체가 닿아오더니 그대로 허벅지가 쥐어져 다리가 벌어진다. 술과 피곤에 절어 그대로 잠이 들려는 순간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짙은 향이 콧속으로 파고들더니 미끌거리는 손가락이 애널 안쪽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흑............."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내부에 들어선 손가락이 익숙하게 민감한 성감대를 긁어대자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쾌감이 온몸을 휘저어댄다. "하아...........아.........으응.......뭐.....하는 거야.........." 사정 후 힘이 빠져 늘어져버린 몸이 다시 쾌락에 깨어나기 시작하자 이리저리 내벽을 풀어주던 손가락이 두 개로 늘어나 피스톤질을 하듯 성감대를 문질러대고 페니스를 휘감아 귀두 끝에 뜨거운 입술을 비벼댄다. "하악.........아...........그만..........." 끊어질 듯 숨을 내쉬며 몸을 비틀어도 몸 안에 들어와 자극을 해대는 손가락은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성감대를 긁어대며 밀어 올릴 때마다 하얀 몸을 움찔거리며 손가락을 조여대자 참지 못하겠는지 바로 손을 물리고 부드러운 엉덩이를 강하게 쥐어 벌린 채 애널 안쪽에 커다란 귀두 끝을 들이민다. "흑........아파.........으응...........하지마............"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에 머리를 휘젓고 사내의 단단한 가슴을 밀어대면서 아프다고 징징대자 뭐가 그리 우스운 지 눈앞의 사내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달래듯 입술에 키스를 해줄 뿐 기어코 물러날 생각은 없는 듯 뜨거운 내부로 천천히 밀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벽에 뭘 발라댄 건지 저항 없이 내부로 파고들지만 터무니없이 커다란 물건이 몸을 벌리고 들어오는 통증은 줄어들 줄 모른다. 땡깡을 부리며 빼라고 말을 해도 씨도 먹히지 않고 결국 훌쩍이며 바들바들 떨어대는 몸을 붙들고 뿌리 끝까지 들어와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씨근덕거리며 잿빛 눈동자에 원망을 가득 담고 붉은 사내를 노려보자 희디흰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려주더니 물기에 잔뜩 젖은 속눈썹에 가만히 키스를 해준다. 화를 낼 기운도 없다. 피곤함에 눈을 감아도 몸 안에 들어찬 열기 때문에 잠도 오지 않는다. 내부를 가득 메우는 뜨거운 물체가 움직이려는 듯 자꾸 내벽을 쿡쿡 찔러대는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몸 안에 들어온 페니스를 죄어대자 순간 이성을 날려버린 사내의 거친 숨결이 귓가에 스친다. "으응......아....앗...........아파.................움직이지.....마........흐윽.............." 몸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에 녀석의 움직임을 멈춰보려고 팔을 뻗어 단단한 등을 휘감아 보지만 역부족인 듯...... 부드럽게 움직이며 조바심 날 정도로 한 지점을 마찰해 대자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아찔한 감각이 생각을 마비시켜 버린다. 내부로 파고들 때마다 자극적인 신음을 흘리며 녀석의 움직임을 쫓아 허리를 휘자 바로 손으로 허리를 쥐고 내부 깊숙한 곳까지 침범해 들어온다. 아프다고 칭얼대던 입술이 벌어지며 움직임을 재촉하듯 신음소리가 새어나오자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내의 입술이 쾌락에 몸부림치는 하얀 몸 위에 정신없이 부벼진다. "하아.........으응............하악...................." 몸이 밀릴 정도로 거칠게 파고드는 사내의 움직임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 섞인 신음을 내지르자 바로 입술을 막아 빨아댄다. 사내의 움직임이 빨라져가자 손도 대지 않은 페니스가 아프도록 부풀어 녀석이 손을 대 몇 번 움직여주자 바로 사정을 해 버렸다. "흑......아............"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내는 쾌감에 입술을 열어보지만 목구멍을 비집고 새어나가는 건 미치도록 야한 신음소리 뿐........ 이미 두 번의 사정으로 지칠 대로 지쳐 움직일 기력도 없는데 한계까지 찔러대며 내부로 파고드는 사내는 욕정으로 짙어진 심홍색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움직임을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고 끊임없이 입술에 키스만을 해댄다. 참기 힘든 쾌감에 기절하기 직전까지 몰려 힘없이 침대 위에 늘어져 몸이 밀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내 몸을 끌어당겨 상체를 일으킨 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힌다. "으응.........아......" 더욱 깊이 들어와 버린 녀석의 페니스가 내부를 자극하자 무의식적으로 녀석의 목을 끌어안고 애널로 녀석의 것을 조여댔다. 뱃속에 가득 찬 듯 한 이물감에 녀석에게서 몸을 일으키려하자 바로 허리를 쥐고 제자리에 내려 앉힌다. "흐윽............아파..............."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깊이 들어와 내부를 찔러대는 사내의 페니스 때문에 아프다고 훌쩍이며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부벼봐도 오히려 더 자극을 한 건지 허리를 쥐고 자신을 밀어 올린다. "하앗.......아.......으응............" 사내의 움직임에 다시 통증이 사라지고 척추를 따라 생각을 마비시켜버릴 정도의 쾌감이 내달리자 지쳐 헐떡이며 숨을 내뱉던 입술에서 다시 자극적인 교성이 새어나간다. 모르는 사이 사내의 움직임에 맞춰 단단한 목에 하얀 팔을 휘감고 허리를 움직이다 사내가 낮게 신음을 울리면서 내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뱃속에 따뜻한 기운을 뿌리자마자 그대로 단단한 품안에 무너져 버렸다. 끊어질 듯 더운 숨을 내뱉으며 그렇게 사내의 가슴 위에 얼굴을 맞댄 채 가만히 안겨있자 내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그대로 침대 위에 털썩 누워 자신의 위에 올려진 내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코끝을 스치는 체향이 기분 좋다. 머리에 맞닿은 가슴에서 강한 심장 소리가 울려오자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몸이 붕 뜬것처럼 어질어질 하다. 머리칼을 가만가만 쓸어주는 손길에 미소를 입에 걸었다. 이 사내가......... .........누군지.............. .............떠올랐다. "티폰...................." 가만히 속삭이자 멈칫 굳어버리는 손길도 깨닫지 못한 채 그대로 잠의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 . . 자꾸 얼굴을 간지럽히는 느낌에 투정을 부리며 깨어났다. 눈을 뜨자 시야는 여전히 빙글거리고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까만 어둠이 주위를 덮고 있다. "으응........뭐야........" "어떻게........잊을 수가...........바로 곁에 있었는데............" 떨리는 목소리에 올려보자 심홍색 눈동자가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붉은 색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어쩐지 익숙지 않은................... ...........까만 눈동자..................... "왜........." 단잠을 방해한 투명한 물방울을 막아보려 손을 뻗었다. 아름다운 얼굴을 쓸어보자 축축한 물기가 손가락에 묻어 난다. "날.........원망하고 있겠지.......?" 어쩐지..................대답을 할 수가 없다.............. 부정의 말을........... ........꺼낼 수가 없어............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을 막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내일이면 또 내 품에서.........벗어나려 하겠지......? 왜......손에 잡히지 않는 거냐........" '누군데....................그런 표정으로 날...........보는 거야.............' "그래도.......절대 놓아주지 않을 테니........... 내게서 또 달아나고 싶다면....... 날........ ...........죽여........... 그러면......... .......놓아주겠다..........." "누구야............?!!" 웅얼대며 몸을 일으키려하자 뭔가 뜨거운 것이 내부에서 꿈틀대기 시작한다. "아........" 민감한 몸이 자극에 흠칫 떨자 부드러운 입술이 귓가에 닿아온다. "하류............" "내 이름......어떻게?" 뜨거운 것이 자꾸 몸 속에서 커져 가는 것 같아 불편함에 꼼지락거리며 말을 잇자 내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흑, 비켜...........아프잖아!! 갈 거야!! 이거 놔!!" 빠져나가려 버둥대자 더욱 강하게 끌어안고 굳은 목소리로 속삭여온다. "어딜 가겠단 거냐?!! 네가 있을 곳은 여기야........" "여.....기........?" "그래............" "아.............으응........." 크기를 늘려가며 내부를 찔러오던 뜨거운 물체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참을 수 없는 느낌에 심장이 정신없이 뛰어댄다. 이성이 단박에 날아가 버릴 만큼 강한 쾌락에 몸부림치며 사내에게 매달리자 가만히 목덜미에 키스를 하면서 어깨에 새겨진 은빛 문장에 차가운 손을 대본다. "그 뮤즈니안 녀석에게 도대체 몇 번이나 안긴 거냐........."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고 강하게 밀고 들어오면서 목덜미에 이를 박아 붉은 자국을 남긴다. ".......아.......하아............으응..............." "감히 날 속이고.......내 것에.......손을 대.....? 죽여.......버리겠다........갈기갈기 찢어서........" 섬뜩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확인이라도 하듯 조심스럽게 몸 구석구석을 더듬어대더니 갑자기 사내의 손이 엉덩이 밑으로 들어와 연한 살을 강하게 움켜쥐자마자 난폭하게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하악.........아...........흑..............." 가뜩이나 혹사당한 성감대를 찔러대며 강하게 파고드는 행위에 견디기 힘든 쾌감이 통증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네 몸에........루베라에게 손댈 수 있는 자는 나 뿐이야......... 태어나기 전에도.............죽은 후에도.............내 것이다. 다시 한번 다른 자에게 몸을 허락하면................!!" 격하게 귓가에 스치는 목소리와 갑작스레 거칠어진 행동에 사내의 품에서 벗어나려 바르작거리며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비명 같은 신음을 쏟아냈다. "하악............아...............그만........" 몸을 꿰뚫을 듯 깊숙이 자신을 묻어오는 사내에게 떨리는 입술로 애원을 해보지만 화가 난 것처럼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고 도달하지 못한 곳까지 침범해 들어오려는 듯 소름끼치도록 느껴지는 한 지점만을 찔러대며 깊숙이 몸 안으로 파고든다. ".........아파............흑........" 정신을 잃을 만큼 강한 쾌락과 통증에 몸부림치며 훌쩍이자 정신없이 몰아붙이던 사내의 몸이 순간 흠칫 굳어진다. 품안에서 바들바들 떨어대며 흐느끼자 안쓰러운 듯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입술로 훔쳐주고 좀 전과는 다르게 부드럽게 몸을 밀어 올린다.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곳곳에 키스를 떨어뜨리고 달래듯 쓸어주는 손길에 서럽게 흐느끼던 입술에서 작게 할딱이는 숨이 새어나오자 그대로 입술을 덮어온다. 신음까지 삼켜버리는 진한 키스와 성감대를 긁어대며 부드럽게 움직이는 피스톤질에 미친 듯 사내의 몸에 매달려 절정에 올랐다. "........하아..............티.......폰........으응................" 사내의 입술이 떨어져나가자마자 단단한 몸을 꼬옥 끌어안고 헐떡이며 웅얼대자 귓가에 자극적인 목소리가 스쳐온다. "그렇게..............내 이름만 불러......." 미쳐버릴 정도로 참기 힘든 자극에 시트를 찢어지도록 움켜쥐고 몸을 휘자 내 몸을 강하게 쥐고 한계까지 밀어붙인 후 뜨거운 기운을 몸 속에 뿌린다. 진이 다 빠져 힘겹게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숨을 막아버리고 다시 녀석의 따뜻한 입술이 겹쳐온다. 숨이 막혀 겨우 팔을 둘러 사내의 등을 끌어안자 목이 마른 듯 입술을 탐하던 사내가 아쉬운 듯 입술을 떼더니 내 몸을 꼬옥 끌어안고 귓가에 낮은 목소리를 흘려 넣는다. "사랑해............ 원망해도............거부해도 상관없다............ 날 사랑하지 않아도........... 그러니........... 곁에만 있어.......... 미치지 않도록............" 땅속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만 같이 몸이 피곤하다. 술기운과 두 번의 정사로 이미 녹초가 되어버려 힘없이 눈을 감자 가만히 입술에 키스를 하던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연다. "시니안을 들여라............" 곧이어 조용히 문이 열리고 지척에서 인기척이 들려오자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뮤즈니안의 황태자를..........감옥에 가둬라........" "폐하, 그 분은.............." "키르.............!!" 녀석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의 이름이 귓속을 파고든다. 몸을 움찔 떨며 힘겹게 눈을 뜨려하자 등을 가만가만 쓸어주며 좀더 자라는 듯 나른하게 입술에 키스를 해준다. "결국........들킨 건가.............."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역시.........가짜는 네놈이 보낸 거였군........ 이제.......발뺌할 수도 없을 테지........" 분노를 담고있지만 낮고 조용한 목소리에 다시 단단한 품안에서 고른 숨을 내쉬자 까만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큭, 원래 색으로........돌아와 버렸군........빌어먹을 의사새끼........약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감옥에 가두어라.......내 루베라에게 손을 댔으니.......죽여버려도 뮤즈니안에선 할 말이 없겠지.........." "품안에서 꼭 훔쳐낼 테니................. 그때까지 고이 모셔둬............ 그리고........... 경고 하나 하겠는데............ 당신이 그 아일 약으로 죽인 게 아니라면 등뒤를 조심해...... 누가 칼을 박아올 지 모르니......... 당신이 죽어버리면 나야 좋지만........ 그 아이한테 또 손대면 골치 아파지거든......... 미친 의사 놈도 이제 살리는 약이 없으니......." "무슨...........헛소리냐............" "하........아직도 모르고 있었나?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셨군........소중한 건 지키지도 못한 주제에 자신의 것이라고?!! 그 녀석......... ............독살 당한 거야......" 내 몸을 꼬옥 끌어안고 있던 녀석이 벌떡 일어나 앉자 따뜻한 체온이 빠져나가 버린다. "나이브란 마약이었어..........머릴 잘 굴려서 범인을 찾아봐.........." 문이 닫히자 다시 주위가 조용해지기 시작하고................... 따뜻하게 몸을 안아주던 체온이 떨어져나가자 추위에 몸을 뒤척이며 작게 칭얼댔다. 미간을 찌푸린 얼굴 위로 차가운 손이 닿아온다. "그럴........수가............" 따뜻했던 몸이 식기 시작하자 가늘게 몸이 떨려온다. 그제야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대던 손이 멈칫 하더니 시트로 몸을 감싸 따뜻한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다................... ...........죽여버리겠다............" 이를 갈 듯 잔혹한 목소리가 귓가에 스치고..................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에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으며 강한 심장고동이 울리는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부비적거리자 부드러운 입술을 이마에 찍어누르고 허리에 팔을 둘러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는다. Rubera(루베라) #144 누군가........ .........자꾸 얼굴을 쓸어보고 머리칼을 지분대는 느낌에 한동안 뒤척이다 잠에서 깨어났다. '이 자식.........또 숨어들어 왔나.............' 평소답지 않게 나보다 먼저 일어난 녀석을 의아해 하면서도 피곤함에 자꾸 눈이 감기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상하게 보통 때보다 더 무거운 몸 때문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만 하자 가만히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부드럽게 등을 쓸어준다. 품안이 따뜻하고 포근해서 기분이 좋긴 하지만............ 어쩐지...........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속이 쿡쿡 쑤시는 게.............. 몸 상태가 아무래도 심각한 것 같아 겨우 수마를 몰아내고 부시시 눈을 뜨자 사내의 단단한 가슴이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시야에 비치는 건 왠지 낯익은 까만 각인......... 멍한 머리로 사내의 가슴 위에 새겨진 까만 각인을 가만히 손가락으로 쓸어보다 서서히 잠에 취해있던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하자 여기저기 몸을 더듬어대는 손길이 느껴진다. 평소 유이 녀석의 장난스런 손길이 아니다. 뭔가 확인이라도 하듯 자잘한 생채기 자국을 쓸어보고 손을 들어올려 조물락거리더니 손바닥에 난 상처 위에 입술을 부비고 어깨 위에 새겨진 은빛 문장과 상처를 한참동안 만지작거리다 결국은 커다란 손으로 하얀 엉덩이를 덮어온다. 달라진 것이라도 찾아내려는 듯 꼼꼼히 쓸어대고 주물럭거리는 손길에 멍한 정신으로 이렇다할 저항 없이 몸을 맡긴 채 누워있다 녀석의 손이 잠결에도 얼굴이 붉어질 만큼 노골적으로 부드러운 굴곡을 오가자 그제야 수면 아래 잠겨있던 의식이 빠르게 수면 밖으로 끌어당겨진다. "으응.............." 연한 살점을 쥐어올 때마다 척추를 타고 오르는 통증과 미묘한 감각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사내의 손을 겨우 밀어내고 푹신한 침대를 짚어 어쩐지 평소보다 무거운 상체를 힘겹게 일으키는 순간 그대로 다시 눈앞에 있는 사내의 품안으로 무너져버렸다. '.....뭐야............?!!'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어나 앉기도 힘들 정도로 허리에 통증이 오고............. 걱정스러운 듯 아픈 허리를 가만히 쓸어주는 손길에 순간 고개를 번쩍 들어올리자 날 바라보고 있는 건 부드러운 바이올렛 눈동자가 아닌.............. 피처럼 붉은 심홍색 눈동자............... '어떻게 된 거야.........?!!' 급히 주위를 둘러보니 분명 녀석의 침실............ "왜.............내가 여기.............." 놓지 않을 듯 꼬옥 끌어안고 있는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 버둥대자 팔에 힘을 줘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을 옭아맨다. "뭐.........뭐 하는 거야? 니 루베라는............." "죽일 거다...........가짜 따윈 필요 없어..............." "뭐?!!" 터무니없이 잘못 들은 내용을 확인하려 시선을 들어봐도 내게 눈도 떼지 않고 바라보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너.......오늘 결혼식이잖아.............나.......유이랑 돌아가야............." "사흘 전에............파혼했다................" '이번에도..............잘못 들은 건가........?' 떨리는 눈동자로 몸을 굳히고 한참동안 바라만 보자 말없이 공포에 차갑게 식은 입술을 따뜻하게 덮어온다. 불규칙한 호흡만을 내쉬며 인형처럼 반응이 없는 몸에 생명이라도 불어넣을 듯 깊게 키스를 해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입술을 부드럽게 빨아대자 흠칫 굳어버리는 몸을 꼬옥 끌어안고 살짝 벌어진 입안으로 들어와 조심스럽게 혀를 옭아맨다. 입술을 통해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와 거친 호흡에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타액을 삼켜가며 그렇게 저항조차 못한 채 사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참동안 입안에 머물더니 겨우 떨어져나가 뺨을 스치고 귀불을 덥썩 물어오자 육식동물에게 잡혀버린 작은 짐승처럼 숨을 죽였다. 뜨거운 숨을 불어넣으며 촉촉한 혀가 귓속으로 파고들어 가늘게 몸을 떨어대는 순간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스쳐온다. "또.........날 속일 셈이냐............ 내 루베라는........... .................너 뿐이야........." '뭐?!!!' 갑작스런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샌가 시선을 맞추고 내게만 고정되어 있는 붉은 눈동자는.............. 어쩐지 예전과는 달리........... 혼란스러움을 털어 내고 흔들림 없는.................... '설마..............' 녀석의 눈동자에 비치는 내 모습은................. '어떻게...............' 칠흑같이 까만 머리칼에 놀란 듯 새까만 눈동자를 크게 뜨고 있다. '들켰.........어? 날...........기억해 낸 건가...........' 아무래도......... 어제 밤..................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버린 것 같다. 심각해지는 날씨에 술을 마시고 잠이 들려고 했었는데............... 그 이후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게다가.............. 허리에 느껴지는 건 분명 녀석에게 안겼을 때 느끼던 통증.............. '이 미친...............도대체 무슨 일을 벌인 거야.........' 분노에 앞서 기가 막힌다. 이런 내게........... ...........지쳐버렸다. 거부하려 해도............ .........정신만 나가버리면 미친 듯 녀석의 품에 안기고......... 보지 않으려 해도........... 시선은 녀석만을 쫓는다. ............미쳐버린 게 분명하다. "유이는............?" 떨리는 입술로 말을 흘려보내자 순간 붉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굳더니 무겁게 입을 열어온다. "감옥에........." 도망치지 않으면......... 벗어나지 않으면............ ...........또........... 쫓기듯 시선을 벽에 걸린 단검에 박았다. 지난번.............. 케레스가 침실에 잠입했을 때 사용하고 잊고있었던 붉은 곡도가 한 눈에 쏘아져 들어온다.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과 슬금슬금 기어 나오려는 공포를 겨우 누르고 영원히 놓지 않을 것처럼 날 옭아맨 녀석의 가슴을 밀쳐버렸다. 다시 내게 손을 뻗을 틈도 주지 않고 녀석의 가슴을 짚어 단단한 복부에 올라앉자 시트를 감은 허벅지를 타고 지난 밤 녀석과의 정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묽은 액체가 흘러내린다. 부정할 수 없는 흔적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 바로 머리가 끌어당겨지더니 따뜻한 입술이 겹쳐진다. 정신없이 입술을 빨아대는 사내를 거부하지 않고............... 공포로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벌려주자 조급하게 입안으로 파고들어 혀를 감아온다. "응................" 아직 낫지 않은 혀가 아파 와 작게 신음이 새어나가자 순식간에 움직임이 부드러워진다. 능숙하게 입안을 자극하며 휘저어대는 감각에 가뜩이나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가 아찔해져 오고..... 목구멍까지 들어오려는지 곳곳을 쓸어대며 뜨거운 혀를 깊숙이 미끄러뜨리는 녀석 때문에 숨이 막혀온다. 입술을 떼고 뒤로 물러나도 목이 마른 사람처럼 따라붙는 녀석을 겨우 밀어내고 숨을 헐떡이자 불만스러운 듯 다시 내 머리를 끌어내려 타액에 젖은 입술을 빨아대면서 가볍게 키스를 해댄다. "사랑해........."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이미......... 돌이킬 수도 없이 여기까지 와 버렸다. '왜 이제야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너도.........나도........그런 말 따윈........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알 텐데.......' 눈물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은 까만 눈동자를 감춘 채 떨리는 손으로 단단한 가슴을 밀어내며 고개를 휘젓자 강하게 어깨를 쥐어온다.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늦어버렸고............. ..............그때와 변한 건 아무 것도 없다. 결국.............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쳇바퀴 돌 듯 반복되겠지. 이 녀석을 받아들이기엔 짐이................. ............너무 무겁다............... 질식해 버릴 만큼................. "사랑해............." 인형처럼 반응이 없는 내게 또다시 닿지 않는 말을 속삭이며 부드럽게 뺨을 쓸어오지만 차마 시선도 맞추지 못한 채 입술을 꼬옥 깨물고 눈물을 삼켰다. 녀석이 간절히 전해오는 고백 따위......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죄책감만을 불러일으키는 이 녀석의 사랑한다는 말은............... 아직도 이렇게 심장을 찔러대며 날 아프게 하니까............ '너무............늦어버렸어............... ............니가 사랑했던 녀석은 이미 죽었으니.........' 이를 악물고 녀석에게서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내려섰다. 다리가 떨리고 허리가 나가버린 것처럼 아프다. 뜻밖의 행동에 녀석이 붙잡을 틈도 없이 벽 쪽으로 다가가 붉은 곡도를 꺼내들자 놀란 듯 벗은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무슨 짓이냐............." 방금 전 조용히 속삭였던 말은 꿈인 듯 차갑게 식어버린 목소리가 귓속에 파고든다. "가까이 오지마............" 지금은 녀석을 상대할 힘조차 남아있질 않다. 결국........ ........담보로 내 놓은 건 내 목숨............. 방금 전까지 사랑한다 속삭였다해도 녀석이 얼마나 잔혹한지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다. 어차피 두 번이나 날 죽이려 했던 놈이니 내가 죽던 살던 신경 쓰지 않는다면 바로 지옥으로 직행하겠지만............ 스치기만 해도 살이 패일 것 같은 날카로운 검날을 내 목에 겨누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분노로 이글거리는 녀석의 붉은 눈동자를 노려봤다. "움직이지........마............" 말을 끝내기도 전에 녀석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뒤로 주춤 물러섰다. '역시.............. ............죽던 말던 상관없다는 건가..............' 처음부터................. ...........죽을 생각 따윈 없었지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손에 힘을 주자 따끔한 느낌과 함께 붉은 핏방울이 목을 타고 흐른다. 전적까지 있으니 거짓으로 보진 않을 터............... "죽고싶을 정도로.............. ..............내 곁에서 벗어나고 싶은 거냐............." '뭐?' 갑작스런 말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내게 박혀들어 오는 피처럼 붉은 눈동자엔 혼란스러울 만큼 강한 감정들로 가득 들어차 있다. 뇌를 마비시키고 몸이 굳어버릴 정도로 공포스러운 빛............ 분명......... 그 때..........보았던 눈동자........... 지하감옥 안에서............. 미쳐버린 광기로 내 심장을 산산이 부수고 망가뜨려 놓은 짙은 분노와 절망............ 녀석에게선................. 다신 보고싶지 않았던 표정........................ 떨리는 손으로 주먹을 꽈악 틀어쥐더니 다시 들어올린 녀석의 얼굴엔..................... ..............섬뜩할 만큼 잔혹함이 베어있다. "죽여버리겠다..........." Rubera(루베라) #145 "죽여버리겠다..........." '또...........' 공포에 다시 주춤 뒤로 물러서자 섬뜩한 분노를 가득 담은 음성이 저주처럼 귓가를 스친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날 거부하면.............. 네가 사랑하는 자를 죽이겠다" '사랑.......하는 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분노와 절망으로 뒤섞인 붉은 눈동자로 향했다. "사지를 자르고.........가슴을 갈라.........심장을 꺼내 부숴 버리겠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피 한 방울까지 짜내........뼈 하나 하나까지 발라...........짐승들에게 던져버릴 테다" 살기와 광기로 뒤덮인 붉은 눈빛은 한치의 거짓도 내비치지 않는다. '누굴.........말하는 거야........' 혼란스런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보자 이를 갈 듯 익숙지 않은 이름을 뱉어낸다. "뮤즈니안의 아이야드 황태자가 참혹하게 죽는 꼴이 보고싶으면........... ......죽어도 좋아......." '유.......이?!!!' "내 루베라에게 손대고도...........살아남을 거라 생각했나.......? 내 눈앞에서 죽는다면 당장 그 녀석을 끌고 와 네 시체 앞에서 그대로 죽여주겠다......." '하지...마......제발............' 손이........ ........덜덜 떨려왔다. 검날이 움직이면서 하얀 목엔 실같이 가는 생채기가 늘어난다. 붉은 눈동자에 초조함이 서리는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미친 듯 말을 이었다. "그.....그 녀석은 아무 상관없어........... 날.......안지도 않았고......... 날.....살려줬어......... 새 이름도 줬고......... 갈 곳도 없었는데........ 미칠 뻔했는데........ 그 녀석이............." 빛을 잃어버린 까만 눈동자에서 눈물이 후두득 떨어져 내렸다. 떨리던 손에서 기어코 검이 떨어져 내리자 바로 단단한 팔로 끌어안아 오지만 반항조차 하지 못한다. "죽이지마......제발....... ........하라는 대로 다 할께..........." "울지마............" "죽이지마............" 따뜻한 품안에서 가늘게 떨어대며 흐느끼자 심장이 아플 정도로 강하게 몸을 죄어온다. "흑, 죽이지마..........." 눈물을 멈출 생각도 못한 채 힘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자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녀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여온다. 겨우 원하던 대답을 듣고 나서야 힘이 빠져 녀석의 품안에서 몸이 늘어져 버렸다. "궁의를 불러라!!!!" 가슴을 찌를 정도로 날카로운 소리를 끝으로 그대로 희미해져 가는 의식을 잡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 . . "찾았느냐........" "폐하의 루베라께서 사라지신 날............모습을 감춰버렸습니다...... 그 중 몇 명은 수도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됐다는 보고가..........." "한 명이라도 찾아라.......무슨 수를 써서라도......온 나라안을 뒤져........현상금을 걸어라......." "예......" "나이브란 마약은.........?" "예상대로 기억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너무 많은 양을 복용하면 심장에 해를 끼쳐 죽을 수도......." "판매상은 찾았나......." "시온님이 찾아 나선 듯 하지만 아직 연락이..........." "멍청한 짓을........해 버렸군....... 아직...........잔당들이 남아있었어............." 섬뜩한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자 부드럽게 머리칼을 쓸어 올려준다. "지하감옥 안에 갇혀있는 녀석이...........루베라다......." "무슨........?!!" "그 녀석을 미끼로 쓰겠다......이 아이에 관한 일이 절대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시종들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귀족들에겐 루베라가 2년 전 일로 황제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갇힌 거라 전해......... 뮤즈니안의 황태자와 사절단........그리고 이 아인 결혼식이 취소돼 떠난 걸로 처리해라......." "예............" "물러가........" 조용히 문이 닫히고...... 강하게 몸을 죄어오는 느낌에 무겁게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차분하게 가라앉은 심홍색 눈동자........ "유이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하자 까만 머리카락을 쓸던 손을 잠시 멈칫 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어온다. "약속만 지킨다면............ ...........죽이지 않겠다........" '약속..............? 이 녀석을 거부하지 않는 거.........? 시키는 대로.........뭐든 하겠다고 한 거........? 왜........전처럼 지하감옥에 가두지 않는 거야? 왜........날 죽이지 않는 거지......?' 혼란스런 눈으로 올려보자 가만히 날 바라보다 고개를 숙여온다. 눈을 감자 뜨거운 입술이 닿아오는 느낌에 흠칫 몸을 떨었다. 그렇게............... 반항도 하지 못하고 키스를 받았다. 두려움에 몸이 떨려와도 가만히 입술을 열어주자 바로 미끄러져 들어와 목이 마른 듯 입안을 헤집어댄다. 정신없이 해대는 키스에 숨이 막혀 녀석의 팔을 꼬옥 움켜쥐자 입술을 약간 떼더니 빨갛게 부푼 입술을 살짝 깨물고 부족한 듯 핥고 빨아댄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몸에 산소부족으로 눈앞이 빙글빙글 돌고 초점이 잡히지 않는다. 꼼짝도 못하고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자 목덜미로 내려와 화끈거릴 정도로 키스를 해가며 화인을 새겨나가지만 내 몸이 아닌 듯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얀 피부 위에 입을 맞추고 진하게 애무를 해도 간지럽기만 할 뿐 흥분은커녕........ 쾌감도........ 불쾌감마저도........... .........없다. 호흡이 돌아와 헐떡이던 숨소리가 잦아들자 멍하니 눈만 뜨고 있었다. 몸 이곳저곳 애무를 해도 여러 번 몸을 섞어서인지 처음처럼 공포에 미칠 것같이 격한 감정은 희석되어 버렸지만 멀쩡한 정신으론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 공포는 느껴지지 않지만 몸은 여전히 녀석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쓰러진 지 한나절은 됐는지 커다란 창을 통해 붉은 노을을 흩뿌리며 해가 기울어가고 있다. 부드럽게 몸을 애무해가던 입술과 손길이 멈추는 순간, 갑자기 다리가 벌어지는 느낌에 놀라 숨을 멈추자 애널 위를 더듬어대던 손가락 하나가 끔찍한 통증을 몰고 내부로 파고든다. "흐윽............" 쾌락은커녕 통증만을 느끼는 몸을 붙들고 행위를 하려는 사내가 원망스럽고 반항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가 수치스러워 바들바들 떨어가며 훌쩍이기 시작하자 당황한 듯 눈물을 쓸어주고 달래듯 부드러운 키스 떨어뜨린다. "조금만 참아......." 안쓰러운 듯 속삭이는 소리에 뭔가 이상함을 느껴 눈을 반짝 뜨자 내벽을 쓸어가던 손가락으로 뭔가를 발라대는 건지 화끈거리던 통증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한다. 금새 손을 빼내더니 아픈 허리 밑으로 약향이 나는 따뜻한 팩을 넣어주자 터무니없이 오해를 해 버린대 귀까지 붉어져 눈물을 뚝 그쳐버렸다. 아직도 내가 어린애인 줄로만 아는 녀석은 내가 아파서 울어버린 줄 알고 답지 않게 표정을 굳히고 안색을 살핀다. 그렇게 잔혹한 주제에......... 그렇게 미워하고 밀어냈는데......... 내가 눈물만 비춰도 나보다 더 아픈 표정을 짓는다. 약향이 스며들면서 아픈 허리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느낌에 서서히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가 밀려오기 시작한다. 눈물과 떨림이 잦아들자 가만히 눈가를 쓸어주더니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입술을 포개와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키스를 퍼붓고 돌아서는 녀석의 화려한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벌써 일주일이다...... "유이 좀 만나게 해줘........" "그 자는.......신경 쓰지마......." 녀석의 말에 힘없이 옷자락을 놓아버리자 다시 돌아서 차가운 손으로 미열이 나는 이마를 부드럽게 쓸어 올려준다. 일주일동안 약속대로 녀석이 하는 대로 얌전히 있었다. 탈주계획도 세우지 않았고, 시종들에게 시식시킨 밥도 얌전히 먹었고, 이 녀석이 키스하고, 씻겨주고, 밤에 끌어안고 자도 고분고분 따랐다. 낮엔 식사시간을 제외하곤 거의 혼자 멍하니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밤엔 녀석의 품안에서 떨어대다가 거의 새벽이 되서야 지쳐 잠이 들었다. 지난번 일로 녀석에게 느꼈던 공포가 되살아났는지 시선조차 마주치는 것이 힘겹기만 했는데 녀석은 자신의 품안에만 들어가도 떨어대는 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일주일 내내 지나칠 정도의 접촉을 해왔다. 결국은 우습게도............ 녀석의 품안에서 떨고있는 동안 지쳐 잠이 들 때까지 지독히도 느리고 부드러운 애무만을 해댄 탓에 이젠 몸도 지칠 대로 지쳤는지 전처럼 녀석에게 점점 익숙해져버린 상태............ 녀석이 흥분해서 거칠게 덤벼들지만 않으면 몸이 갑자기 굳어버리는 일도 없고 어젯밤엔 녀석이 키스하고 몸을 만져대자 나른한 기분에 잠이 들어버렸을 정도...... 문제는 공포가 옅어졌어도 녀석의 손길에 반응도 보이지 않는 몸이지만....... 녀석도 접촉만을 시도할 뿐 전처럼 날 안지는 않았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다 민감한 피부에 와 닿는 녀석의 손길에 놀라 정신을 차리고 올려보자 이마를 쓸어주던 손이 어느새 밑으로 내려와 색이 옅은 분홍빛 입술을 가만히 쓸어보고 있다. "온전히 있는 지 눈으로 확인해야 약속을 지키든 말든 할 거 아냐..........?!!!" 힘없이 말을 꺼내고 시선을 돌려버리자 서늘한 침묵이 계속된다. 이 녀석은 내가 유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는지 그 녀석 얘기만 꺼내도 바로 표정이 굳어버린다. 결국 오늘도 참지 못하고 얘기를 꺼냈는데........ 역시.............. 안 되는 건가............. 눈을 감아버리자 침묵을 지키던 녀석이 상체를 숙여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 온다. "키스해 줘..............그 녀석에게 했던 것처럼........ 그럼............잠시만이라도 보게 해주마.............." 갑작스런 말에 눈을 뜨고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녀석을 올려보자 아름다운 심홍색 눈동자가 내게 고정되어 있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표정............ 마치......... 질투라도 하는 듯한............. '그럴.....리가.........' 잠시 바라만보다 녀석의 목에 팔을 두르자 침대에 앉아 내게 몸을 기울인다. 눈을 스륵 감고 녀석의 목을 끌어당겨 입술을 살짝 맞댔다. 지나치게 달콤한............... ..............그렇기 때문에 너무..........위험한 거다......... 정신없이 뛰어대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슬쩍 맛을 보듯 아랫입술을 빨았다. 너무 부드러워.......녹아버릴 것만 같아 안타깝게 녀석의 입술에 매달리다 기다리듯 살짝 벌어져있는 뜨거운 입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따뜻한 느낌............ 하지만............ 결국 유이 녀석에게 했던 키스와 별반 다르지 않게 경험의 한계를 느끼며 얌전히 있는 녀석의 혀를 몇 번 쓸어보다 입술을 떼려던 순간 바로 따라붙어 내 혀를 휘감고 이로 자극하면서 농도 짙은 키스를 해온다. 어느틈엔가 시트를 걷어내고 하얀 나신에 자신의 체중을 모두 실어온 상태........ 입술이 화끈거릴 정도로 키스를 하다 한참 후에야 하얀 목덜미로 내려와 데일 듯 뜨거운 입술을 찍어누른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쇄골을 깨물고 가슴 위에 자리잡은 작은 돌기를 덥썩 물어올 때까지 반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까끌한 혀에 쓸려 살짝 일어선 돌기를 어린아이처럼 빨아대며 섬세한 손을 미끄러뜨려 허리를 쓸고 여기저기 성감대를 더듬어 자극을 해와도 허벅지 안쪽 연한 살을 쓸다 페니스에 손이 스쳐 흠칫 놀란 것을 제외하면 인형이라고 할만큼 반응이 없다. 가슴에 지나치게 집착을 해대며 한참이나 깨물고 빨아보던 녀석이 매끈한 복부로 입술을 미끄러뜨려 따끔하게 화인을 새기다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복부 위에 머리를 기대온다. 약간 거친 듯 뜨거운 호흡이 아랫배를 간질이자 어쩐지............. .............묘한 기분......... 얼굴을 붉힌 채 하얀 복부 위에 퍼져있는 붉은 머리칼을 한참동안 내려봤다. .............미동도 없다. '자는.......건가.........' 경계가 풀리자 몇 번이나 망설이다 손을 뻗어 가만히 붉은 머리카락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쓸어보았다. 붉은 핏물이 묻어 나올 것처럼.......뜨거울 것처럼 붉지만........부드럽고.........기분 좋은....... "아........!!" 손을 거두려던 순간 단단한 손아귀가 손목을 잡아와 화들짝 놀라 작게 비명을 질렀다. 녀석의.........지독히도 아름다운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유혹하듯........... 매혹적인.............. 천천히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오목하게 패인 배꼽에 혀를 대보고 입술을 미끄러뜨려 아랫배에 입을 맞추자 얌전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시트로 다시 몸을 감싸주는 느낌에 눈을 뜨자 숨이 막힐 정도로 거세게 안아온다. "어떻게 하면........다시 예전처럼........손에 넣을 수 있는 거냐......... 왜.........날 보지 않는 거지......." "내가......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잖아....... 이미......한 번 죽어서 죗값도 치뤘으니 놔줘............" 끔찍한 과거 따위........... ...........다신 반복하고 싶지 않다. "죗값 따위.........받고싶었던 게 아니야......" "나한테 그런 말해도 소용없어......... 난............ 이제 니 루베라가 아니야........." "내 루베라는............. ...........너 뿐이다.............." "이미 죽었어.................. ........니 루베라는............." "아직............죽지 않았어......." 귓가에 떨리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너무도 위태해 보여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것만 같다. 붙잡지 않으면.............. 이대로 어디론가 추락해 버릴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단단한 등을 감싸안자 신음이 새어나올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아 온다.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 벗어나고 싶으면 날 죽여................" '죽.............여......?' 몇 번이나 시도했다. 이 붉은 녀석을 죽이려고.............. 이 녀석의 품안에서 벗어나려고............. .........몇 번이나 검을 쥐었다. 그런데............... 결국은 죽이지 못했다. 내가 상처입고................. .............목숨이 끊어져도............... ...........이 녀석은 죽일 수 없었다. 결국............. 난 이 녀석을............... "날 죽이면..............놓아주겠다............"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입술을 꽈악 깨물고 고개를 들어올리려는 녀석의 머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나쁜 자식.................빌어먹을 새끼.............." 분한 듯 한참을 그렇게 속삭이자 가만히 내게서 몸을 일으켜 포근한 시트를 턱까지 끌어올려 주더니 살짝 입술을 덮어온다. 몇 번이나 아쉬운 듯 떨어지지 않고 입술을 빨아대다 겨우 떨어져나가 조용히 말을 꺼낸다. "황태자는 저녁때 만날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 자와 달아날 생각이라면 일치감치 포기해........... 그 녀석과 사라져버리면............. 뮤즈니안을........... .........그 녀석의 나라를 철저히 망가뜨려 버릴 테니......." '지독한 자식............' 물기가 베어 나올 듯한 눈을 꼬옥 감아버리자 한참동안 곁에서 뺨을 쓸어주더니 뒤돌아 조용히 침실을 나선다. Rubera(루베라) #146 "키르!!!" 생각보다 멀쩡한 녀석을 보고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녀석이 갇힌 곳은 생각과는 달리 지하감옥이 아닌 지상감옥......... 빙글거리는 낯짝을 보니 지금까지 걱정해준 게 억울할 지경....... "왜 지금에야 온 거야? 보고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장난스럽게 말을 하며 내 얼굴로 손을 뻗어오는 녀석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침실밖에 나온 것도 오늘이 처음이야........" "왜?!! 그 자식이........협박이라도 한 거야?" '그 자식? 이젠 막 나가는군..........' 자신의 처지도 잊은 듯 날뛰어대는 녀석이 기가 막혀 가만히 올려보자 갑자기 씁쓸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내기는.........내가 진 건가............" 내기 따위............. 처음부터 핑계였는 지도 모른다. 녀석의 곁에 돌아오기 위한.............. 티폰이 기억만 잃지 않았다면 한 달은커녕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잡혀버렸을 터......... 멍청한 내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놈의 술 주정..........귀엽다고 그냥 두는 게 아니었는데.........큭, 처음으로 져버렸어........" "유이..........." "바람둥이주제에..................짝사랑이 너무 길었나 보군.............." "응?" "..........처음 봤을 땐........크리올라의 까만 공주님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가출까지 하고 시온 녀석에게 동생을 내놓으라고 난동을 부렸는데............. 그 녀석............전혀 모르고 있더군. 다시 볼 용기도 내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호기심인 줄 알았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땐............진짜 빠져버렸어............그때 그 감정이 그대로 남아있을 줄이야....... 하아.........여잔 줄 알고있었는데........게다가 황제가 죽고 못사는 루베라라니......... 그 때.......그대로 데리고 도망쳤다면.............날 사랑하게 됐을까?" "무슨...........?" "내가 바람둥이가 된 것도 다 니 탓이야........까만 공주님.......... ...........사랑해......................"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며 아쉬운 듯 사랑을 고백하는 녀석의 바이올렛 눈동자를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그저 가만히 뺨을 쓰다듬는 녀석의 손을 꼬옥 쥐어줄 뿐......... 만약................. 티폰을 만나기 전에 이 녀석을 만났다면............ ............분명 사랑했을 녀석............. 그 정도로 소중했다 말하면............. 더 큰 상처를 주는 거겠지......... '나도.............. .............사랑해...........' 이 녀석한텐 꼭 해주고 싶었던 말.......... 그리고............ "미안.............." 꼭 해야할 말............. 시선도 맞추지 못한 채 작게 속삭이자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쾌활하게 말을 잇는다. "뭐가 미안하단 거야?!! 큭,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있었어. 다른 놈 생각하는 녀석 억지로 붙들어봤자 소용없다는 거 아니까............ 질 줄 뻔히 알면서도 내기는 했다만........... 역시............. ............아직도 갖고싶어......" 갑작스런 말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작게 속삭여온다. "포기한 게 아냐....... 뭐, 지금 당장은 내기에서 졌으니 약속대로 친구지만............... .........또 나중이란 게 있을 테니............ 그래도........... 내가 졌어도 그 녀석한텐 돌아가지 않을 거잖아?" 키리안 숲으로 돌아가자..........."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 버리면..............이 녀석의 나라는................. 녀석이 돌아갈 곳은 사라져버리고 말 거다. 게다가 난................ 가만히 고개를 휘젓자 미간을 찌푸린 채 바이올렛 눈동자를 내게 박아온다. "왜?!! 설마.............그 녀석 곁에..........있고싶어?" '그 녀석..............곁에.........?'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힘이 들지만............... .........벗어나는 건 더욱 힘이 든다. 자신을 죽이라 했다. 죽이면............... ............놓아주겠다고............... 그런 녀석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유이 녀석의 나라를 망가뜨린단 말보다................. ...........자신을 죽이라는 말이 더 두려웠다.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내렸다. "키르........!!" 갑작스런 눈물에 당황한 녀석이 손등으로 물기를 훔쳐주지만 끊임없이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을 막지 못하고 결국 움직임을 멈춰버린다. "흑, 곁에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어.......... 돌아가지 않는 게 아니라.........흑..............돌아갈 수 없는 거야............ 미움받고싶지 않아서.............. .........도망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심각한 목소리로 어깨를 꽈악 쥐어오는 손길에 결국 무겁게 가슴을 짓누르며 날 괴롭혀대는 것들을 녀석에게 전부 쏟아냈다. "2년 전에.................내가............ ..................티폰의 아버지를...............선대 황제를.................. ..........죽였어............" 티폰을 사랑했다. 불완전한 기억이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사랑한 건 슈안이 아닌 티폰이었다. 하지만........... 누굴 사랑했든 눈에 보이는 결과는 결국 하나 뿐............ "그래서 2년 전에 갑자기............. ............하지만 왜 그런................." 충격으로 굳어있던 녀석이 겨우 말을 꺼내자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휘저었다. "몰라.......기억이 나질 않아........기억에.......없어............" 머릴 움켜쥐고 오열하자 녀석이 퍼뜩 말을 꺼낸다. "설마............기억이 잘못 된 건...............그 약...........!!" "내가.................... .................죽였어..........." 녀석의 말을 끊어버리고 나조차 놀랄 만큼 확실히 단정지어 버렸다. 이 사실만은................. ..............아무도 부정해 주지 않는다. 나조차 부정하지 않는 사실 따위............ ............다른 사람이 부정해 줄 리 없는 거다. 결국........... ...........내가 죽인 거다. "그 사랑................." 조용히 침묵을 유지하던 녀석의 갑작스런 말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가라앉은 바이올렛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눈물에 흠뻑 젖어버린 얼굴을 가만히 쓸어준다. "...........그만두면 안 돼?" 시선을 떨구자 다시 턱을 들어 시선을 맞춰온다. "상처만 받고.............. 아프기만 하고.............. 눈물만 흘리잖아.......!!" 상처만 받고........ 아프기만 하고........ 눈물만 흘린다. 그래도............... .........그만큼 사랑해........... 나도 이 녀석처럼............. ........포기하고 싶지 않다. 사실은........... 미치도록 그 녀석이 갖고싶다. 이런 내 이기심에.......... 또다시 끔찍한 결말이 나더라도........... "같이 돌아가자............" 안타까운 듯 속삭이는 녀석에게 다시 똑바로 시선을 맞추고 말을 꺼냈다. "나도............. ...........아직 포기한 게 아니야........" "큭, 역시............. 그래야 내가 사랑하는 키르지........" 실망을 감추고 장난스레 말하는 녀석이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너라도 니 나라에 돌려보내 달라고 말해볼 테니까........" "필요 없어.......포기하지 않았다고 했잖아!!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단호하게 말하고 반박할 틈도 없이 창살 틈으로 손을 뻗어 머리를 끌어당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피하지도 못하고 입술이 닿으려던 순간............ 강한 팔이 손목을 낚아채 몸을 끌어당겼다. 등에 닿아오는 단단한 몸에 놀라 고개를 들어올리자 눈물로 범벅이 되어버린 얼굴을 훑어보더니 붉은 눈동자에 살기를 쏟아낸다. '언제...........?' 분명 얼굴까지 가리고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여기까지 왔지만 이 녀석과 같이 오진 않았다. "일부러 훼방을 놓으러 오셨군............" 날 품안에 넣은 티폰에게 잔뜩 불만스런 시선을 던지고 비아냥거리며 말을 내뱉는다. "내 것에 손대지 말라고 했을 텐데............" 섬뜩한 목소리에 몸을 떨자 날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줘 품에 가둔다. "어쩌나.......? 울려버린 데다 벌써 만지기까지 했는데.......?" 능글맞은 자식이 죽으려고 작정을 한 건지 내 얼굴을 쓸어보던 손까지 들이민다 "잘라주지........" 놀랄 틈도 없이 서늘하게 뱉어내고 검을 빼내는 녀석을 보고 앞 뒤 생각도 않고 허리를 끌어안았다. "죽이지 않는다고 했잖아!!" "하, 날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도대체 뭘 요구한 거냐.......... 크리올라의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곁에 있어달라고 애걸이라도 한 건가?" "유이!!" "큭, 안됐군......너무 소중해서 날개를 부러뜨릴 수도 없고........... 옭아맬 끈이 없으면.............허무하게 품속에서 날아가 버리다니........." 말이 끝나자마자 소름끼칠 정도로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불꽃이 튀더니 두터운 쇠로 만든 창살이 티폰이 휘두른 검에 의해 움푹 패여 졌다. 녀석의 품안에서 공포에 몸이 굳어 숨을 죽이길 한참................. 귓가에 부드러운 입술이 맞닿아 스치듯 가볍게 키스를 하더니 섬뜩한 목소리가 감옥 안을 울리며 새어나간다. "지금 옭아맨 끈 따윈 깨끗하게 잘라내고.................... ..........더 확실한 끈으로 옭아맬 방법이 있지.............." "무슨.................?!!" 유이 녀석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우고 얼굴을 굳히자 옷안으로 파고든 손이 허리를 쓸어대고 살짝 말려 올라간 입술이 하얀 목덜미를 타고 왼쪽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설마...................... ........또 새기겠다는 거냐..............." "가장............확실한 방법일 테니.............." "그 녀석이..............허락할 리 없어.........!!" "큭, 글쎄.......네가 불러들인 룬이란 녀석...............꽤 재미있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더군......" "이 비열한........!! 무슨 짓을 할 생각이냐?!!!!"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무슨 짓이든.............네놈이 했던 것처럼..........." "무슨 헛소리야...........?!!" "왜 이 아이가 약에 중독 돼 있었다는 사실을 숨겼지?" "당연히 네놈 손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 "그게 답이다.........."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는 녀석들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티폰의 품에 안겨 옷안으로 파고들어 자꾸 허리를 지분대는 녀석의 손을 빼내려고 버둥거리자 따끔하게 목덜미를 물어와 저항을 멈춰버렸다. "내 것이다.......눈길을 주면 눈을 파내고...........손을 대면 팔을 잘라버리겠다....... 그리고............ 이 아이의 마음을 얻었다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주겠다........" 피가 베어 나올 듯 살기를 띈 붉은 눈동자와 섬뜩한 미소에 녀석이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주먹을 꽈악 틀어쥐자 바로 내 허리를 끌어당겨 출구 쪽으로 돌아선다. "아악!! 이 변태 영감탱이!!!! 설마 최음제라도 쓸 생각이냐?!! 키르!!! 도망쳐!! 안되면 차라리 그 새끼 깔아버려!! 키르!!!!" 이상하게 흥분해 날뛰는 유이 녀석의 목소리가 닿아오기도 전에 등뒤로 육중한 철문이 닫혀버린다. 녀석의 손에 이끌려 다시 침실로 돌아와 욕실로 들어서자마자 말없이 눈물자국을 지워주고 몸 이곳 저곳에 키스를 해대며 이상할 정도로 세심하게 몸을 씻어준다. 그리고................. 깨끗이 씻겨져 함께 욕실 밖으로 나섰을 땐 입을 벌린 채 제자리에 한참을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시녀들이 소리 없이 들어와 새하얀 색으로 갈아놓던 침대 시트가............. 보기에도 포근하고 눕기만 해도 잠이 올 듯 하지만............. 색깔은 평소와는 다른 화려한 붉은 색.............. 고급 원목으로 만들어 먼지하나 없이 깨끗한 테이블 위엔 금색 빛이 나는 액체가 가득 담긴 술병과 자그마한 술잔 둘.... 약간 어둡지만 달빛만큼이나 은은한 조명.............. 평소 호박을 태우던 향은 사라지고 어쩐지 달콤한 향이 뿜어져 나오는 작은 향로가 침대 맡에 놓여있다. '이게.........무슨 미친 짓이야.........?!!' 눈만 크게 뜬 채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녀석이 내 손을 끌어당겨 침대 위에 앉히자마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시트 아래로 들어가 몸을 가렸다. 무슨 생각인지 녀석이 뒤돌아서 열려진 창을 모두 닫고 은으로 세공된 잔에 금색 액체를 몇 번 따라보며 뭔가 확인을 하더니 한참 만에야 술잔을 쥐고 내게 다가선다. 묘한 분위기로 바뀌어버린 침실과 녀석의 이상한 행동에 바짝 긴장한 채 앉아 바라만 보는데 술잔 하나를 내게 쥐어주더니 바로 내 몸을 끌어당겨 자신의 허벅지 위에 마주보도록 앉히고 천천히 입을 열어온다. "마셔라......" '뭐?' 미간을 찌푸린 채 금색 액체를 바라보니 냄새만 맡아봐도 분명 술.............. 지난번 침침해지는 날씨를 보고 지레 겁을 먹어 발광을 피해보겠다고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리고............ ...........결과는 끔찍했다. 아직도 그 때 일이 거의 떠오르지 않고 가물가물 하지만............. 얼마나 녀석을 붙들고 발광을 해댔는지 다음날 아침 허리가 나가버린 것처럼 아팠고 탈출하겠답시고 칼부림을 하다 기절해 침대에서 반나절동안 끙끙 앓았다. 미치지 않고서야 마시고싶은 맘이 들 턱이 없다. 미간을 구긴 채 술잔만 바라보고 있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녀석의 표정이 묘하다. '서........설마 술 먹이고 하려는 건 아니겠지.........?' 술만 마시면 개 같은 술 주정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지 녀석이 안겠다고 달려들어도 공포 따윈 다 날려버리고 얌전히 깔릴 게 분명하다. 게다가 이 자식 사흘동안 못 먹는 감 찔러나 본다는 심산이었는지 안지는 않고 잠이 들 때까지 지독한 애무만으로 끝냈으니....... ............쌓였을 지도............. 녀석의 허벅지 위에 불편하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다 주춤 물러서려고 하자 바로 허리를 움켜쥔다. "왜 마시지 않는 거지.........?" 부드러운 목소리에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를 뿌득 갈아붙였다. 확실히..........알면서 능청을 부리는 게 분명하다. 술잔을 녀석의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누르고 고개를 돌려버리자 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잔을 비우곤 내 술잔을 뺏어들어 한입에 털어 넣는다. '뭐야, 포기한 건가?' 안심한 것도 잠시............ 갑자기 포근한 붉은 시트 위에 몸이 눕혀지더니 녀석이 내 위로 몸을 겹쳐 바로 입술을 포개왔다. 갑작스런 키스에 생각지도 못한 액체가 목구멍 안으로 흘러들어 오자 거부할 틈도 없이 반사적으로 꿀꺽 삼켜버리고 눈을 크게 뜬 채 목이 마른 듯 진하게 키스를 해대는 녀석을 올려봤다.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난 녀석처럼 입술을 탐해간다. 뺨에 닿아오는 더운 숨결에............. 화끈할 정도로 뜨거운 녀석의 체온에.............. 안타까운 손길에............... 빠져나갈 수 없는 열기에 사로잡혀 밀어낼 생각도 못한 채 녀석의 품안에서 지독히도 끈적한 키스를 받았다. 겨우 입술이 떨어져 나가고.............. 유혹하듯 매혹적인 붉은 눈동자에 시선이 잡혀있길 한참............. 타액에 젖어 반짝이는 입술을 비집고 헐떡이는 숨소리가 새어나올 때마다 지독한 술내음이 후각을 자극한다. '이 정도로 취할 턱이 없잖........................?!!' 분명 목구멍으로 넘어온 건 저렇게 작은 잔으로 달랑 한 잔..................... 그런데............ '어떻게...............된.............거야.........' 침대 맡으로 시선을 돌리자 평소엔 본적 없는 향로에서 짙은 향이 뿜어져 나와 헐떡이며 숨을 몰아쉴 때마다 콧속으로 파고든다. 창까지 모두 닫아버려 빌어먹게도 넓은 침실 안엔 알 수 없는 향으로 가득하고........... 분명 술기운이 아닌데.......... 시야도 휘청이지 않고 또렷한데...............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지고 정신은 몽롱해지는 것에 반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을 정도로 몸은 나른하다. "무슨 짓을..........."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잔뜩 낮아져 색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가자 만족한 듯 헐떡이는 입술에 살짝살짝 키스를 해준다. '설마.............최음향이라도 피운 건가?!!!' 생각을 이어나갈 틈도 없이 장난치듯 귓불을 물고 빨더니 뜨거운 혀를 귓속에 밀어 넣는다. "하아......이 자식, 하지마!! 간지럽단 말야...........씹, 왜 더럽게 귀에다 혀를 집어넣고 지랄야?!! 흑......치사한 자식.........또 약이나 쓰고........!! 으응..........." 벌써 약기운이 도는지 쓸데없는 말까지 지껄이며 고개를 휘젓자 날 꼬옥 끌어안고 킥킥대던 녀석이 곧 상체를 일으켜 다시 잔에다 술을 따른다. "술에 취하면..................2년 전처럼 귀여운 짓만 하더군........ 큭, 지금도 충분히 그렇지만........" 술을 머금고 다시 내게 다가와 입을 맞추더니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내 입안으로 흘려 넣는데도 멍하니 누워 술을 넘기면서 붉은 녀석을 바라만 보았다.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너 총 맞았냐? 귀여워? 누가?!!" 이 녀석도 취한 게 분명하다. 하루에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라곤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녀석인데............ 입에 빗장이 풀려버린 것처럼 터무니없는 소릴 지껄여대는 게 이상하다. "총? 가끔씩 이상한 말을 하는군..........." 답지 않게 시온처럼 의아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녀석을 보곤 의문 따윈 날려버린 채 반쯤 취기로 신나게 킥킥대며 웃어 재끼자 다시 입술을 포개고 웃느라 들썩이는 몸을 꼬옥 끌어안더니 독한 술을 입안으로 넘겨준다. 그렇게 입술을 집요하게 빨아대다 이를 세워 살짝 깨물자마자 흠칫 몸을 떨었다. "큭, 효과가 있군..........강한 최음향이다..........." 귓가에 작게 속삭이며 더운 숨을 살짝 불어넣고 뜨거운 혀로 귀를 핥아대자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으응..........." "술도.............가장 독한 거야........." 몇 번이나 키스를 해대며 술을 넘겨와 헐떡이며 속수무책으로 받아 마시길 한참........... 처음 한 잔을 제외하곤 전혀 마시지 않은 녀석과는 달리 난 이미 술과 약기운에 취해 녀석이 자극을 해댈 때마다 가쁜 숨을 내뱉으며 신음소릴 흘려내고 있었다. "........하아..........뭐 하는 거야.........흐윽.......아........하지마........." 꼼지락거리며 작게 칭얼대자 자신의 밑에서 달아오른 하얀 몸이 마음에 드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분홍빛 가슴 돌기를 물어온다. 이로 살짝 깨물고 빨아대자 열이 오른 몸을 비틀며 하얀 팔을 들어올려 녀석의 머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아......흐윽.........." 정신없이 애무를 해대던 녀석이 갑자기 손을 미끄러뜨려 내 것을 쥐더니 녀석의 자극에 이미 반쯤 일어서 있는 페니스를 확인이라도 하듯 더듬어보고 다시 위로 올라와 얼굴을 맞대온다. "역시..........." "응......?" 더운 숨을 몰아쉬며 열기에 흐려진 까만 눈동자로 녀석을 올려보자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하고 쾌락을 원하듯 잔뜩 달아오른 뜨거운 나신을 꼬옥 끌어안는다. 말과는 달리...........독한 술은 아닌 모양............ 지난번엔 이성을 잃고 녀석에게 안길 정도였지만 지금은 생각을 이어갈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녀석을 밀어낼 수 없는 것은 역시................... ..............최음향이 강하기 때문인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미동도 없는 녀석에게 가만히 안겨있다 취기에도 붉은 머리칼이 너무 예뻐 보여 참지 못하고 손으로 가만히 쓸어보고 만지작거리자 흠칫 몸을 굳힌 녀석이 낮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온다. "한마디만.....................해줘............." "응........?" 붉은 머리칼을 지분대던 손을 멈추자 심장이 죄어올 정도로 강하게 끌어안는다. "거짓이어도 좋고.............. 평생 한 번 뿐이어도 좋다........... 사랑한다고............ .........한마디만 해줘.............." '뭐?' 흔들리는 눈동자로 녀석을 바라봐도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표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Rubera(루베라) #147 향로에서 새어나오는 달콤한 향이 자꾸 정신을 흐려놓는 것만 같다. 다시 취기가 도는지 심장이 미친 듯 뛰어댄다. '사.......랑.............?' 그러고 보니.............. 녀석에겐.................한 번도 말해준 적이 없다. 아니, 말 할 수가 없었다. 깨달은 후엔............. ...........이미 늦어버렸으니까........ 자격조차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난......술과 약에.........취했으니까............ 녀석도 그걸 알고 있으니까.......... 덧없이 잊혀져버릴 말임을 알지만............ 그래도............. 한 번 뿐이라면.......... 포기하려는 듯 몸을 일으키려는 녀석을 꼬옥 끌어안자 움직임을 멈추고 숨을 죽인다.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릴 정도로 크게 들려온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 오랫동안 가슴을 짓눌러오던 말이 소리가 되지 못한 채 입가에 맴돌기만 한다. 그렇게 한참동안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녀석을 꼭 끌어안고 있다가 겨우 입술을 벌려 말을 내보냈다. "사랑......해........" 떨리는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자 한동안 미동 없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올려 따뜻한 입술을 포개온다. 욕정 따윈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키스를 받으며 붉은 속눈썹에 아슬하게 매달린 투명한 물방울을 조심스레 손가락으로 쓸어준 후 가만히 눈을 감았다. 확실히 진짜 강한 최음향을 쓴 건지 사심 없는 부드러운 키스에도 몸이 달아오른다. 입술이 잠시 떨어질 때마다 가쁘게 숨을 내뱉으며 녀석의 목에 팔을 두르자 붉은 눈동자에 열기를 띄고 깊은 키스를 해온다. "하아.........티폰.............." 약기운에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 건지 녀석의 귓가에 유혹하듯 작게 속삭이고 뜨거워진 몸을 살짝 비틀자 낮은 신음이 위에서 흘러나온다. "흑..............." 이미 반쯤 일어서 녀석의 복부에 비벼지는 페니스 때문에 열기를 감당 못하고 더운 숨을 내뱉으며 헐떡이자 갑자기 손을 뻗어 내 것을 쥐고 낯뜨거울 정도로 만져댄다. "으응...........아..................하아........" 손으로 그려낼 듯 미세한 선 하나도 놓치지 않고 페니스를 더듬어대는 손길에 밀어내지도 못하고 창피함에 얼굴이 확 붉어져 손가락으로 민감한 부분을 비벼댈 때마다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어대자 밑으로 내려간 녀석이 내 것을 살짝 쥐고 귀두 끝에 뜨거운 입술을 찍어누르며 자극하기 시작한다. 열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 때문에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다. 향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향이 코끝을 스친다. '그러고 보니..............' 열기에 잠긴 까만 눈동자를 향로에 돌리는 순간 녀석의 자극에 한계까지 커진 페니스가 뜨거운 입안으로 삼켜졌다. 숨도 쉬지 못할 충격에 붉은 시트를 찢어지도록 그러쥐자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천천히 혀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흐윽............하지.....마.........." 이성마저 날려버릴 만큼 강한 쾌감에 까만 눈동자에 눈물까지 달고 애원도 해보고 떨리는 손으로 녀석을 밀어도 보지만 오히려 더욱 노골적인 자극만이 돌아올 뿐이다. "흑......아............그만............앗............." 뜨거운 입술로 귀두 끝에 키스를 해대며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훌쩍이며 애원을 뱉어대던 입술을 비집고 자극적인 신음이 터져 나온다. 어딜 어떻게 자극하면 수치심을 버리고 매달리는지............. 울먹임이 신음으로 바뀌는지............ 스스로 다리를 벌리는지......... 녀석은 마치 제 몸인 것처럼 나보다도 더 내 몸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이미 오래 전에 길들어버린 몸은 배신감이 들 정도로 너무도 간단하게 녀석이 주는 쾌락을 받아들여 허무할 만큼 쉽사리 이성을 무너뜨려 버린다. 흐린 시야 사이로 욕정으로 짙어진 붉은 눈동자가 음탕한 몸에 노골적인 시선을 박아오자 유혹하듯 눈을 감고 신음을 흘렸다. 재촉하듯 손의 움직임이 빨라지다 어느 순간 딱 멈추더니 다시 고개를 숙인 녀석이 귀두 끝을 혀로 자극하고 입안에 넣어 입술로 조여대자 결국 참지 못한 채 녀석의 입안에 사정을 하고 그대로 몸을 늘어뜨렸다. "아.........으응........" 아직 채 줄지도 않은 민감한 페니스를 입안에 넣고 뒤처리까지 해주는 녀석이 민망해 몸을 뒤로 물려 뜨거운 입안에서 빠져 나오자 의도하지 않은 신음이 제멋대로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다. 귀까지 빨갛게 물들인 채 내 몸을 끌어당겨 품안에 가두는 녀석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작게 할딱이며 안겨있었다. 아직도 향이 다 타지 않았는지 달콤한 향이 코끝을 자극해 온다. 평소보다 뜨거운 녀석의 몸은 기분이 좋지만........... 나른하게 퍼져버린 나완 달리 흥분할 대로 흥분한 녀석의 몸이.........거친 호흡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녀석의 페니스가 고스란해 내게 느껴지고 있었다. 단단한 몸을 꼬옥 끌어안고 매끈한 등을 장난하듯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주자 기분이 좋은 듯 나른한 신음이 귓가에 울려온다. 최음향이 내게만 영향을 줄 턱이 없다. 사실 녀석이 나보다 더 흥분한 듯 보여 내가 최초로 꺼낸 사랑한다는 말이 제대로 녀석에게 전해 졌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 내일이면 잊혀질 말이지만........... 술과 약기운에 취해 생각도 나지 않는다고.........헛소리를 한 거라고............아니,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고............ 그렇게 말해버릴 테지만.............. 그래도............. 오늘밤이 지나기 전 까진 잊지 않을 테니까........... 손을 움직여 루비가루를 뿌려놓은 듯 붉게 반짝이는 머리칼과 꽉 조인 근육을 애무하듯 부드럽게 쓸어주자 길이 잘 든 짐승처럼 얌전하게 몸을 맡겨온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탄탄한 가슴에 새겨진.............. 까만 루펜타........ 루베라를 지배하는 황제의 각인......... 이미 지독할 정도로 강했던 구속의 힘은 끊어져 버렸지만............. 가만히 귀를 대보면 강한 심장박동이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녀석에게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를 참지 못하고 평소보다 빠른 심장소리가 울리는 가슴에 얼굴을 살짝 부비자 목덜미에 뜨거운 숨을 내뱉던 녀석이 고개를 들어올려 가만히 입술에 키스를 해온다. 얌전히 부드러운 키스를 받아들이다 녀석의 입술이 떨어져나가자마자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안아 줘........." 허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뜨거운 몸을 일으켜 예쁘기만 한 붉은 눈동자에 열기를 띄고 날 바라본다. 잔혹하지만...........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녀석은............... 접근하면 물어뜯어 갈기갈기 찢어놓을 정도로 위험하고 흉포한 짐승과도 같지만 내게만은.............. ............유일하게 만지는 것을 허락한다. 손을 들어올려 매끈한 얼굴에 가만히 손을 대자 바로 내 손을 쥐고 키스를 해댄다. 나른한 느낌에 얌전한 고양이처럼 녀석의 품안에 안겨 부드러운 애무를 받아들이다 몽롱한 정신과 변덕스런 기분에 사내를 밀어내고 그 위에 다시 자신의 몸을 겹쳤다. 열기가 가시지 않은 듯 내 밑에 깔려 불만스레 날 올려보는 사내를 무시하고 우연인 듯 매끄러운 목에 입술을 맞대자 녀석의 몸이 살짝 굳는 게 시트 한 장 없이 맞닿은 피부로 확연히 느껴진다. 확실히........... 내겐 민감하게 반응을 해댄다. 얼음장처럼 차갑고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녀석이 품에 안기면 평소엔 어림도 없는 틈이 생긴다. 움직임 없는 녀석의 목덜미에 입술을 살며시 비비고 손을 미끄러뜨려 따뜻한 맨 가슴을 쓸어 올리자 긴장으로 굳어진 탄탄한 근육이 손끝에 만져진다. 강한 팔이 허리를 죄어오자 하얗고 매끈한 팔로 사내의 목을 휘감았다. 술기운에 열이 달은 나신이 밀착돼 오자 얼음조각 같던 사내의 붉은 눈동자에도 희미한 불길이 인다. 수치심 따윈 없었다. 적어도 이 녀석 앞에선............... 게다가 최음향까지 들이마셨으니............... 이미 눈앞에 있는 녀석의 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붉은 사내에겐 수도 없이 몸을 열었다. 이 녀석의 몸도 그것만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지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착실히 반응을 보여온다. 한치 틈도 없이 꼭 들어맞는 녀석의 몸을 끌어안고 옭아매다 상체를 살짝 일으키니 달빛에 시선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몸체가 눈앞에 드러난다. 여자만큼 하얗고 매끈해 덜 자란 소년 특유의 중성적인 느낌마저 드는 자신의 몸과는 사뭇 다른 확실한 수컷의 몸..... 지금까지의 유혹적인 몸짓은 싸그리 잊어버리고 멍하니 바라만 보다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름다움과 완벽만을 철저히 추구한 듯 꽉 조인 근육을 따라 손가락을 미끄러뜨리자 긴장으로 굳어진 근육이 손아래서 꿈틀거리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기분 좋은 체향이 실려오는 부드러운 피부 위로 깃털처럼 가벼운 키스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아랫배에 입술을 부비기도 하다가 다시 위로 올라와 뿌리치는 일없이 얌전히 서툴기만 한 애무를 말없이 받아들이는 녀석에게 체중을 실었다. "하아...........티폰.............." 녀석에게 배운 대로 귓불을 살짝 깨물어대며 황제에게 몸이 달은 요부처럼 재촉하듯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도 어쩐 일인지 미동도 없다. 참지 못하고 선이 고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지금까지 그렇다할 반응도 보여주지 않던 녀석의 몸이 움칠 떨려오자 아랫입술을 촉촉한 혀로 살짝 쓸어보고 그대로 입안으로 들어섰다. 대담한 행동과는 다르게 이후엔 어떻게 해야하는 지 완전 백지상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망설이는 사이 허벅지에 와 닿는 녀석의 페니스가 다시 단단하게 형체를 드러내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자 까만 눈동자를 크게 드러내고 숨을 들이켰다. 무심코 맞부딪친 녀석의 붉은 눈동자는 언제부터인가 반쯤 이성이 날아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명백한 욕구를 드러낸 채 시선을 옭아맨다. 놀라 입술을 물릴 틈도 없이 뒤통수가 붙들려 간단히 주도권을 넘겨주자 지체 없이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왔다. 숨이 턱 막힐 정도의 열기에 반항도 못한 채 입술이 빨리고 입안 곳곳이 범해지다 잡아먹을 것처럼 달려드는 녀석에게 덜컥 겁을 집어먹을 무렵 단단한 손아귀가 엉덩이의 부드러운 살점을 꽈악 움켜쥔다. 놀라 헉하고 숨을 들이키다 엉덩이를 틀어쥔 녀석의 손 하나가 애널 위를 음란하게 쓸어대자 발정 난 고양이마냥 벗은 허벅지로 흥분한 녀석을 비벼 올렸다.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녀석의 입술이 겨우 떨어져나가 숨을 할딱이는 사이 잠깐 현기증이 일더니 어느새 다시 녀석의 아래 깔려 익숙한 체중에 눌려있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그대로 다리가 벌어지더니 오일인 듯 미끈거리는 액체를 애널 안으로 흘려 넣자마자 녀석이 바로 흥분한 자신을 묻어왔다. 한번의 사정과 짙은 향 덕분에 나른해진 몸이 풀릴 대로 풀려있었지만 받아들이기도 겁이 날 만큼 커다란 녀석의 페니스가 좁디좁은 애널을 벌리고 준비도 되지 않은 내부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섣불리 녀석을 유혹해 흥분시킨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온몸이 떨리고 신음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힘에 겨워 하얀 가슴을 들썩이며 가늘게 숨을 내뱉자 시간을 끌수록 통증만 가중시킨다는 것을 알았는지 연신 거친 숨만 내뱉던 녀석이 연결된 채로 상체를 일으켜온다. "........하악.........으응........." 조그만 움직임에도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자 녀석도 참기 힘든지 바로 엉덩이를 쥐고 단번에 자신을 밀어 넣었다. 통증에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잔뜩 긴장한 몸으로 녀석을 조여대자 흥분한 녀석이 조급하게 밀어 넣은 페니스가 크기를 늘려가며 내장을 압박해 간다. 의식도 못한 눈물을 흘려보내며 작게 흐느끼자 달래듯 입술과 창백해진 얼굴 곳곳에 키스를 퍼붓고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증에 움직이지 말라고 울며 매달리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누르고 팔을 뻗어 단단한 목을 휘감자 녀석도 거칠게 움직이고 심은 욕구를 눌러가며 귀두 끝으로 한 지점만 마찰해가며 부드럽게 내부로 파고든다. 지독히도 부드럽고 느린 피스톤질에 발끝까지 저릿할 정도로 조바심이 들기 시작하더니 녀석이 파고들 때마다 통증을 타고 조금씩 쾌감이 퍼져나간다. "으응..........하아................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성감대를 자극하는 느낌에 점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하고 붉은 입술을 비집고 자극적인 신음이 새어나가자마자 겨우 잡고 있던 이성을 놓아버린 듯 움직임이 거칠어진다. 내부를 채워 가는 미칠 듯한 열기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다. 내장까지 휘저어 놓을 듯 깊숙이 자신을 묻어오던 녀석이 쾌락에 다시 고개를 들어버린 내 것을 쥐고 피스톤질을 하기 시작한다. 엄지손가락으로 귀두 끝을 비벼 자극을 해대며 피스톤질을 할 때마다 허리를 휘며 반사적으로 녀석을 죄어대자 미치도록 자극적인 신음이 귓가에 울려온다. 정신 없이 밀어붙이는 녀석의 거친 움직임에 이미 녹초가 돼버려 몸을 가눌 기운조차 없다. 강하게 파고들 때마다 쾌락에 몸부림치며 붉은 입술이 벌어지지만 신음조차 새어나오지 않고 빛이 나던 까만 눈동자는 매혹적인 붉은 빛에 붙들려 몽롱하게 흐려져 있다. 시트를 찢어져라 그러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녀석이 성감대를 긁어대며 깊숙이 파고들어 결국 참지 못하고 사정을 하려던 순간 손가락으로 귀두 끝을 막더니 바로 힘없이 침대 위에 늘어진 몸을 안아 올려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힌다. "으응............." 녀석의 페니스가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 성감대를 찔러대자 힘없이 신음을 흘리며 녀석의 품안에 무너져 내렸다. 녀석의 손에 쥐어져 사정이 막혀버렸음에도 탈진해 버려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기댄 채 할딱이며 더운 숨만 뱉어내자 단단한 팔로 허리를 휘감아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을 밀착시켜 온다. 아직도 사정을 하지 않고 흥분한 채 몸 안에 들어와 있는 녀석의 페니스가 움직이려는 듯 자꾸 뱃속을 쿡쿡 찔러댈 때마다 하얀 몸을 움찔거리며 반사적으로 죄어대자 거친 숨결이 목덜미를 간질인다. 피곤하다........ ........기절할 것만 같다. 내일이면 꼼짝없이 침대 위에만 누워있어야 할 것 같아 눈앞이 깜깜해져 왔다. 녀석의 손에 쥐어져 사정도 하지 못해 아직도 민감하게 반응을 해대는 몸 때문에 눈을 감지도 못한다. 손을 들어올려 내 것을 쥐고 있는 녀석의 손을 밀어낼 힘도 없고 지쳐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아 인형처럼 녀석의 품안에서 가쁜 숨만 몰아쉬다 작게 훌쩍이며 탄탄한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고 말없이 사정을 해보자 의외로 흠칫 놀라 손을 놓아주곤 내 안에 따뜻한 기운을 뿌린다. 달래듯 지쳐 힘이 빠져버린 몸을 꼭 끌어안아 주더니 가만히 등을 쓸어 줘 조용히 눈을 감자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사랑해............" Rubera(루베라) #148 그렇게 초저녁부터 날 안은 녀석은 내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들 때마다 키스를 하고 성감대를 자극해 잠을 깨운 후 질리지도 않고 같은 행위를 반복해갔다. 지쳐 반항할 힘도 없었고 순전히 자신이 피워놓은 거지만 최음향 때문에 자꾸 들러붙는 녀석을 피곤하다고 내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다 받아줄 수밖에 없었지만........ 자정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내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녀석을 보자니 죽을 맛이었다. 처음 한 번은 노골적인 유혹에 답지 않게 흥분해 기절할 정도로 거칠게 안았지만 이후엔 깨지기라도 할 것처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뤄 정신이 나가버릴 듯한 쾌감보다는 기분이 좋을 정도로만 움직였다. "아.......으응............" 여러 번의 사정으로 이미 움직임이 쉬워진 내부에서 부드럽게 밀고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 나른한 신음을 흘리며 품안으로 파고들자 단단한 귀두 끝으로 성감대를 자극하며 깊숙이 밀어 올리더니 내 몸을 꼬옥 끌어안고 사정을 한다. 더운 숨을 몰아쉬며 힘없이 고개를 돌려 향로를 보니 다행히 향을 다 태운 지 꽤나 시간이 지난 모양........... 침실 안에 가득했던 달콤한 향이 모두 사라진 걸 확인하곤 몸을 빼내려 꿈틀대자 녀석이 움직이지 못하게 강한 팔로 꼬옥 죄어댄다. "졸려.........그만해.............." 기절하고 싶을 만큼 졸음이 쏟아져 녀석의 품안에서 꾸벅이며 칭얼대자 입술을 살짝 빨아대며 가볍게 키스를 하던 녀석이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더니 허리를 바짝 끌어당겨 안으로 깊이 파고든다. "으응........." 자극에 바르작대며 신음을 흘리자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고 홍조 띈 뺨을 가만히 쓸어준다. "색골.................." "큭............" 얼굴이 확 달아오를 정도로 낯뜨거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녀석에게 잠과 술에 취해 할딱이며 작게 웅얼대곤 눈을 감자 바로 입술을 포개온다. 아직도 술기운에 열이 올라 몸이 따뜻하고 기분이 몽롱하다. 이렇게 녀석이 몸 안에 들어와 키스를 해대고 바라보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걸 보니 취해도 단단히 취한 모양....... 나갈 생각도 않고 입술만 빨아대던 녀석이 겨우 떨어져나가자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툭 던져버렸다. "난 아프단 말야............빨리 나가......최음향도 다 없어졌잖아!!" 피곤에 파김치가 돼버린 나와는 달리 만족스런 표정의 녀석을 보곤 잔뜩 골이나 잠긴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최음향?" "그래!!" "그것 때문에 아무 말 없이 날 받아준 거냐........?" "당연한 걸 묻고 지랄야? 피곤해.........우웅........빨리 비켜........" 술기운에 정확치 못한 발음으로 웅얼대며 미소가 짙어지는 녀석의 표정은 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아버렸다. "으응...............아.............뭐.........하앗..........뭐......하는 거야?!!!!" 녀석이 빠져나간답시고 크기가 줄어도 내부를 빡빡하게 메우고 있는 페니스를 움직이며 성감대를 자극해대자 의식도 못한 교성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간다. 당황스런 목소리로 버럭 소릴 지르고 까만 눈동자로 화가 난 듯 노려보자 내게서 몸을 빼낸 녀석이 날 끌어당겨 번쩍 들어올리더니 귓가에 작게 속삭여온다. "큭, 아프기만 한 건 아닌 것 같군............." "뭐.........뭐?!!!!" 눈을 크게 뜨고 바락 소릴 지르자 들은 척도 않고 날 안은 채 몸을 일으키더니 욕실로 들어선다. 이미 지쳐버린 몸으로 반항도 못한 채 욕실로 옮겨져 여전히 녀석의 품에 안긴 상태......... 두 발로 걸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녀석의 목에 매달리자 매끈한 대리석 바닥에 앉아 날 허벅지 위에 앉히더니 그대로 손가락 하나를 애널 안쪽으로 미끄러뜨린다. "흑.............." 얼마나 해댔는지 녀석을 받아들인 곳이 화끈거려 작게 신음을 흘리자 다른 손으로 허리를 가만히 쓸어주면서 내부에서 이리저리 손가락을 움직여댄다. 내부 깊숙이 뿌려진 유색 액체를 모두 긁어낼 때까지 녀석의 목에 팔을 둘러 꼬옥 끌어 앉고 있다가 손가락이 빠져나가려는 기미를 보여 긴장을 푸는 순간 가뜩이나 지독하게 혹사당한 성감대를 손가락으로 긁어대기 시작했다. "흐윽............무슨...........아앗.........." 힘겹게 신음소릴 흘려내며 녀석에게서 빠져 나오려고 버둥거리자마자 바로 엉덩이가 쥐어져 어느 샌가 흥분한 녀석의 페니스 위에 그대로 앉혀졌다. "하악..................아..............이...........나쁜............!!" 힘이 빠져버린 손으로 주먹을 꼬옥 그러쥐고 단단한 등을 두들겨도 놓아 줄 생각도 않고 허릴 움켜쥐더니 반도 채 들어오지 못한 자신의 페니스를 내부로 밀어 올려 민감해진 내벽을 귀두 끝으로 긁어대며 뿌리까지 파고든다. 머리 속에 새하얗게 비워지는 충격에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녀석의 손에 허리가 붙들려 억지로 움직여지기 시작했다. 쾌락에 익숙해져 버린 몸이 자극에 멋대로 반응을 보이며 녀석을 죄어대자 낮은 신음이 귓가에 스치고 움직임이 격해진다. "흑.........하악...........그만...........아........" 힘이 소진돼 늘어진 몸을 붙들고 좁은 내부를 한계까지 벌려가며 밀고 들어올 때마다 익숙한 통증과 함께 견딜 수 없는 쾌감이 타고 올라 단단한 품안에서 빠져나가지도 못한 채 어쩔 줄 몰라하며 울음 섞인 신음을 쏟아내자 수증기로 뿌옇게 흐려진 넓디넓은 욕실이 순식간에 쾌락에 젖은 신음소리와 열기로 가득 채워진다. 멋대로 반응해대는 몸과 억지로 느껴지는 쾌감에 기절이라도 하고 싶지만 화난 것처럼 집요하게도 괴롭혀대는 움직임이 그것마저도 허락 치 않는다. 그렇게 녀석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신음을 흘리며 훌쩍인 지 한참이 지나서야 녀석이 절정에 달해 내 허리를 끌어내려 몸 안 깊숙이 들어오자마자 화가 잔뜩 나 단단한 목덜미를 꽉 깨물어 버렸다. 결국............. 벌레가 물어뜯은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아 분노만 가중시켜버렸지만.......... 내 안에 욕정을 쏟아놓고 몸을 빼낸 녀석이 다시 손가락을 넣어오려고 해 이를 바득바득 갈고 노발대발하며 발버둥을 치다 결국 지쳐 가쁜 숨만 헐떡이는 사이 녀석의 손가락이 뒤처리를 모두 해주고 얌전히 빠져나갔다. 화도 내지 못하고 완전 녹초가 돼버려 녀석의 품에서 눈물을 떨구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가만히 눈가를 훔쳐주며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여온다. "함부로 이런 걸 몸에 새긴 벌이다.............." 매끈한 등을 쓸어대며 상처 위에 키스를 하던 녀석이 그대로 날 안은 채 뜨거운 물 안에 들어서자 약간이나마 아픈 몸이 풀리는 느낌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단단한 품안에 파고들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더운물에 들어와서 그런지 어쩐지 머릿속이 더욱 뜨거워지는 것만 같다. 물기에 젖어 반짝이는 까만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려주는 손길에 잠이 가득 든 눈으로 가만히 올려보자 언제 놓아두었는지 본 적 없는 작은 병에 손을 뻗어 안에 들어있던 붉은 액체를 작은 잔에 따라 입에 머금곤 바로 입술을 포개온다. 좋은 향기에 달착지근한 맛............ 확실히 술이 분명한 것 같지만 꽤나 맛도 좋고 피로가 확 풀릴 정도로 기분이 나른해진다. 달콤한 향에 갈증이 느껴져 한참동안 녀석의 입술에 들러붙어 혀를 밀어 넣고 감질나게 흘려 넣는 붉은 액체의 맛을 보다 입술에 와 닿는 숨결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하자 화들짝 놀라 겨우 뜨거운 입술에서 떨어져 나왔다. 달콤한 향과 맛에 느끼진 못했지만 농도가 짙은 술이었는지 기분 좋은 취기가 가시질 않는다. 자꾸만 수면을 요구해 대는 머리가 무겁기만 하다. 민감해진 피부를 간질이는 뜨거운 물도........몸을 꼭 끌어 안아주는 따뜻한 체온도 맘에 들지만 잠도 자지 못하게 자꾸 입술 위에 내려않는 녀석의 키스는 귀찮기만 하다. 늘어진 몸으로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짙은 향이 베인 입술을 피하다 갑자기 떨어져 나간 녀석에게 안심한 것도 잠시........... 비몽사몽 녀석의 품안에서 졸고있는 사이 여러 번의 자극 탓에 하얀 가슴 위에 살짝 일어선 돌기를 덥썩 물어와 작게 투정 섞인 신음을 흘리며 흐린 눈을 반짝 뜨자 녀석은 가슴에 얼굴을 박은 채 붉은 머리칼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젓도 나오지 않는 가슴에 집요하게 들러붙어 빨아대는 녀석 때문에 아랫배가 자꾸 근질거리면서 기분이 이상해져 얼른 붉은 머리칼 안에 손을 집어넣어 겨우 떼어내자 하얀 목에 이를 박아 깨물어댄다. "아파......" 작은 칭얼거림에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을 끌어안는 녀석의 품안에서 바르작거리다 가슴 위에 자리잡은 분홍빛 색이 옅었던 돌기가 쓰릴 정도로 붉어진 것을 보곤 울컥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릴 질러 버렸다. "뭐야!! 잡아먹을 셈이야?!! 이 나쁜........!! 너도 그 슈안이란 놈이랑 똑같잖아!! 아까도 싫다는데 자꾸 해대고.............!!" 취기에 혼란스런 머리로 무슨 말을 하고있는 지도 깨닫지 못한 채 꼬인 혀로 말을 뱉어내자 타오를 듯 뜨겁던 붉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린다. 사내의 변화는 눈치도 채지 못한 채 온몸을 지분대던 움직임이 멈춘 것에만 만족하며 다시 스륵 눈을 감자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이 귓가에 스친다. "루베라를 새기기 전에......... .........3년 전에......... 슈안이.......널...... ............가졌나?" 흐린 정신에 귓가에 웅웅대는 소리를 겨우 알아듣고 눈도 뜨지 않은 채 피곤한 목소리로 웅얼대기 시작했다. "슈안...........? 그게 누구.......? 아.......!! 그 변태 새끼? 큭, 널 보기 전에........그 자식........ ...........만난 적 있어............." 몸을 흠칫 굳히는 녀석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때.........여기 처음 떨어졌을 때........눈뜨자마자 숲을 헤매다 그 녀석을 만났는데 처음 보는 새끼가 날 붙들고 이상한 짓을 해서......" "이상한...........짓.......?!!" "응...........여기저기 핥고 빨아대고.........생긴 건 눈 돌아가게 생겼는데 완전 상 변태...... 씹, 그때 그 자식한테 붙들려서............" 갑자기 몸을 굳힌 채 싸늘한 침묵을 이어가는 게 이상해 눈을 반짝 뜨고 흐려진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자 살기로 짙어진 붉디붉은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래서............" "응? 뭐야? 쪼잔하게 화난 거야? 그 자식도 잘나긴 했지만 니가 훨씬 잘생겼으니까 괜히 열내지마..........." 핀트가 사정없이 빗나간 말을 지껄여대며 녀석이 다시 술잔에 술을 따르자마자 냉큼 낚아 채 뺏어 마시고 재촉하듯 자꾸 눈을 맞춰오는 녀석에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자식이 자꾸 주둥이를 부빌려고 해서 발로 확 걷어차 버리고 냅따 튀었지....... 씹, 그때 거시기를 걷어차 버리는 건데........내 다리가 조금만 더 짧았어도 그 자식 아마 구실 못했을걸?" 킥킥대며 눈앞의 붉은 녀석을 바라보자 묘한 표정.............. "아쉽군........" "킥, 그렇지? 내 몸에 이런 짓 하게 해주는 것도 너 밖에 없단 말이야~ 난 변태 아냐.........." 확실히 취기가 도는 건지 약간 붕 뜬 기분으로 중얼대며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자 키스만 하기로 작정을 한 건지 바로 고개를 숙여 술내음이 나는 입술을 삼켜간다. 아찔한 기분.............. 녀석에게서 빼앗은 술잔이 손에서 미끄러져 내리자 아쉬운 듯 입술을 떼더니 바로 받아들어 남아있던 액체를 모두 입안에 털어 넣고 다시 단내 나는 술을 입안에 머금은 채 머리를 끌어당겨 입술을 포개온다.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붉은 머리칼이 시야를 어지럽히고............ 입안으로 흘러들어 오는 액체를 모두 받아 마시자 정신 없이 혀를 감아온다. "으응........." 깊은 키스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자 겨우 떨어져 나가 몇 번 더 가볍게 키스를 해대더니 다시 입을 열어온다. "계속해........." 낮게 울려오는 목소리에 멍한 표정으로 숨을 할딱이며 화끈거리는 입술을 혀로 핥아내자 열기로 타들어 갈 것만 같은 붉은 시선이 단내가 새어나오는 입술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그래서 그대로 도망치다 호수에서......................" 몸이 물 속에 가라앉는 것처럼 나른하고 자꾸만 눈이 감긴다. 피곤에 말을 잇지 못하고 그대로 스륵 눈을 감자 슬금슬금 잠이 오려는 찰라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슈안은 거부하고..............내겐 허락한 이유가........뭐지?" "............따뜻해서 좋아.........." 작게 웅얼거리고 품안에 파고들자 갑자기 강한 손가락이 머리칼 속으로 파고들더니 격하게 입술을 부딪쳐온다. 놀라 눈을 뜰 사이도 없이 입안을 헤집어대는 뜨거운 혀에 데일 것만 같아 탄탄한 몸을 밀어내려 하자 매끈한 팔을 허리에 둘러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을 밀착시켜온다. 거칠어지는 숨결과 엉덩이를 쥐어오는 손길에 좀 전에 당한 일이 생각나 덜컥 겁을 먹고 맘대로 몸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사내의 입술이 떨어져나가자마자 엉덩이에 맞닿아있는 부드러운 페니스에서 흠칫 뒤로 물러나자 보람도 없이 간단히 허리를 끌어당겨 다시 몸을 밀착시키고 하얀 가슴에 입술을 부벼댄다. . "아........싫어!! 하지마.........틈만 있으면........ ........그런 짓이나.................. ...................하고............" 호기 좋게 말을 꺼내 놓고는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을 더욱 붉히며 붉은 눈동자에서 시선을 피한 채 웅얼대자 귓가에 닿은 입술이 얄미울 정도로 능청맞게 속삭여온다. "그런 짓............?!! 큭, 무엇을 말하는 거지?" "이.............이..............!!" 몸을 꼭 끌어안은 채 뒤로 두른 손으로 엉덩이를 쥐고 녀석의 페니스 위에 슬쩍 비벼대는 통에 놀라 까만 눈을 화등잔 만하게 뜨자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고 살짝 벌어진 입술 위에 가볍게 키스를 해온다. 기분 좋은 표정과는 달리 붉은 눈동자 안에 왠지 씁쓸함이 담겨있어 밀어내지도 못한 채 움직임을 멈추자 조용한 음성이 귓가에 울려온다. "이렇게 만지지 않으면............. .........안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것 같으니......... 그 때처럼............갑자기 사라져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확인하는 것뿐이다. 확실히 내 품안에 있는 지를................. 내 것인 지를............." '바보 같은............' 조용조용 사랑한다고 몇 번이나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이 기분 좋아 그렇게 한참을 품에 안겨있다 규칙적인 심장소리에 스륵 눈을 감고 고른 숨을 내뱉기 시작해 녀석이 몸을 깨끗이 씻어준 후 침대에 눕혀줬을 땐 이미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비몽사몽으로 붉은 시트 위에 하얀 나신을 누인 채 춥다고 작게 칭얼대자 익숙한 몸이 다시 내 위에 체중을 실어온다. "싫어...............이제 그만해..............." 따뜻한 체온에 밀어내진 못하고 작게 투정을 부리다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려 잠이 가득한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자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주더니 조용히 속삭여온다. "사랑해............." "............... .........응..........." 술기운이었는지 평소완 다르게 작게 대답을 해준 후 눈을 감자 잠시 후 왠지 모르게 심장이 따끔거리기 시작한다. "...............아파............" 피곤에 눈 뜰 엄두도 내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녀석의 품안에서 꼼지락거리자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조금만 참아..............." 달래듯 키스를 해주며 사랑한다고 조용히 속삭여주는 목소리에 겨우 잠에 빠져들었다. Rubera(루베라) #149 "미끼는............아직 물지 않은 건가..........." "예.......아직......." "루베라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스러운 거겠지..........." "주변이 가라앉으면.............조만간 손을 써올 겁니다........" "으응........" 차가운 아침 공기에 작게 칭얼대며 잠에 취해 따뜻한 품으로 파고들자 아침부터 귓가에서 웅웅대던 소리가 멈추더니 뭔가가 몸을 감싸 답답할 정도로 죄어온다. "큭, 루베라께서 많이 피곤하신 듯 하군요..............." "쓸데없는 소리..........." "어쩔 수 없을 만큼 소중해도............손아귀에 너무 꽉 쥐시면 부서지기 마련입니다..... 같은 실수를........반복하지 마시길............" "알고........있어..........." 따뜻한 것이 입술을 가만히 덮어온다. 따뜻한 기운에 얌전히 있다 살짝 빨아대며 자극하기 시작하자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휘저어 겨우 말캉한 물체를 떨어뜨렸다. "싫어.............그만해........." 의미불명의 말을 중얼대며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리자 등을 가만히 쓸어줄 뿐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다. "물러가라........." "예............" 다시 주위에 침묵이 가라앉자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안는다. 입술을 배회하는 부드러운 촉감에 잠에 취해 몽롱하게 잠긴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자 보이는 건 빛에 반사돼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붉은 머리칼............. '꿈...................?' 손을 뻗어 결 좋은 머리칼을 쓸어보자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드러난다. 꿈속에서도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예쁘다..............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목덜미에 키스를 하며 쇄골을 따라 내려가 멈춘 곳은 왼쪽 가슴............ 시선을 내리니 분명........................ .................심장이 뛰고 있을 왼쪽 가슴 위엔 눈에 익은 붉은 각인이 새겨져있다. '루베...........라?!!!' 확실히 꿈인 게 분명하다. 루베라는.............. 붉은 각인은............. 내 손으로 지워버렸으니...................... "아........." 심장 위에 뜨거운 숨결이 부딪치고 곧이어 부드러운 촉감의 물체가 자극을 해대자 잠결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심장에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에 잠 속에 빠져있던 의식이 서서히 깨어나려 하자 아쉬운 듯 입술을 떼고 팔을 둘러 가만히 하얀 몸을 끌어안는다. "좀더 자............ ..............다시 눈을 떴을 땐................... ........몸도 마음도.............. .........전부........................ .............내 것이다.............." 부드럽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따뜻한 체온에 다시 의식이 까만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간다. . . . 부드러운 손길이 몸을 더듬어댄다. "으응.................이 새끼.............또..............." 등을 가만히 쓸어대던 손이 허리를 지나 엉덩이로 내려와 부드러운 굴곡을 타고 손을 미끄러뜨리자 잠에 취해 잔뜩 잠긴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팔을 겨우 뒤로 넘겨 엉덩이를 쓸어대는 손을 탁 쳐내버리자 이젠 아예 노골적으로 들러붙어 연한 살을 커다란 손으로 떡 주무르듯 주물럭대기 시작한다. "이 새끼, 죽고싶어?!!!!!!!!!!!!!!!!!!"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릴 버럭 지르며 발을 날렸는데..................... "흑.................." 침대에서 굴러 떨어지는 소리는커녕 허리와 엉덩이가 아파 와 제대로 다리도 뻗어보지 못하고 종아리가 억센 손아귀에 잡혀버리고 말았다. 허리를 움켜쥐고 신음을 흘리고 있는 사이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스친다. "큭, 그 동안 잠버릇이 나빠졌군............." "니놈이야 말로 손버릇이 나빠진 게.........................."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붉은 빛에 놀라 말도 잇지 못한 채 눈을 크게 뜨자 얌전히 다리를 놓아주더니 엉덩이를 끌어당겨 몸을 바짝 밀착시켜온다. "고양이처럼............. ...........얌전하게 잤던 걸로 기억하는데..........." 입술이 닿을 듯 가까이에서 속삭이더니 바로 입술을 포개 깊은 키스를 해온다. '어떻게 된 거야..............?!!' 눈을 뜨자마자 키스를 해대는 녀석과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부드러운 입술이 떨어져나가자마자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는 사이 화끈한 감각이 심장을 죄어와 패닉상태로 녀석이 입술을 묻고있는 가슴을 내려보자 피처럼 붉은 각인이............... ............새겨져 있다. '뭐...........뭐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자 척추를 따라 퍼지는 통증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다시 녀석의 품안에 털썩 쓰러져 버렸다. "이젠...........온전히 내 것이다..........." '심장에.................... ..............꿈이..............아니었어?!!' 놓치지 않을 듯 꼬옥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여오는 녀석의 품안에서 미동도 없이 굳어있다 겨우 말을 꺼냈다. "어떻게.............?!!" 떨리는 목소리에 차분하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가 내게 맞춰진다. "지난밤에 새겼다" 지난밤............ 술에 취했던 것치곤 지나치게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내게 말한 걸 잊은 건 아니겠지................" '말한...........것.........?' 부드럽게 속삭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자 가슴 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붉은 각인을 가만히 쓸어보더니 가볍게 입술에 키스를 해온다. '사랑한다고.............' ...........말해버렸다. 녀석에게..............사랑한다고............. "그건.................술에 취해서.................!!!" "진심이 아니었다고...........말할 셈이냐..........." 깊은 눈동자에 부정도........긍정의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시선을 피해버리자 따뜻한 품안으로 끌어당겨 꼬옥 안아준다. "몸을 허락한 것은.........약기운이었을 테지............" 녀석의 표정을.........볼 수가 없다. "당연하............." "큭, 또 거짓을 고할 셈이라면............포기해............" '무슨.............?!!!' "최음향에........날 받아들였다고 말할 테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매혹 적인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추고 입술이 맞닿을 듯 가까워 말을 내뱉을 때마다 키스를 해올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스스로 안아달라고 말한 것도.........최음향 때문인가............." "그........래............!!"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을 겨우 움켜쥐고 떨리는 입술을 열어갔다. 여기서........... 녀석을 사랑한다고 말해버린들............. .......소용없는 짓일 뿐............. 지워버리고픈 과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심장 위에 새겨진 루베라 따위 그때처럼 다시 지워버리고............ .........벗어나면 되는 거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혀 녀석을 벗어날 수 없었던......포기할 수 없었던 마음 따위 정신 없이 부정해대고 있었다. "무엇이............널 그렇게 몰아가는 거냐......." "무슨.........?" 내 생각을 꿰뚫기라도 한 듯 무겁게 내뱉는 말에 놀라 얼굴을 들어올리자 붉은 시선을 부딪쳐온다. "2년 전........선대 황제의 암살사건 때문인가........?" 흠칫 몸을 굳히자 강하게 몸을 죄어온다. "상관없어........... ..........병들고 능력 없던 황제 따위............ 그 이상 버텼다면 내 손으로 죽였을 거다........" 냉혹한 말에 눈을 감아버리자 까만 머리칼에 입술을 묻는다. "슈안은............" "그 놈을 사랑했다고 말할 셈이냐........" 사랑하지 않았다. 완전치 못한 기억 속에서도 항상 슈안이란 녀석에게선 티폰과는 달리 거부감을 떨쳐낼 수 없었으니......... "넌 그 놈을 사랑하지 않았어......... 날 배신하지도 않았고............. 선대 황제를 죽이지도 않았다............" 터무니없는 말일 텐 데도............. 헛된 바램일 텐 데도........... "흑........."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내렸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말을 들은 것처럼 심장을 아프도록 찔러와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빌어먹게도 이기적인 마음에........ 사실이 아닐 지라도 이 사내만은 날 믿어주길 바랬었나 보다. 바보같이............. 지금까지 쭉 원망하며.........이런 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흑.........그런 말 따위.............." 따뜻한 품안에서 오열하며 눈물을 멈추지 않자 말없이 가만히 품에 안아준다. 부드럽게 쓸어주는 손길에 참아왔던 눈물이 모두 쏟아져 나올 것처럼 흐느낌이 멈추지 않았다. "모두.................찾아내서 죽여버리겠다" 순간 이를 갈 듯 섬뜩한 목소리에 흠칫 놀라 눈물 젖은 얼굴을 들어올리자 환청이라도 들은 것인지 부드러운 손길로 얼굴을 쓸어 눈물을 훔쳐준다. "네게 약을 먹여 죄를 뒤집어씌우고 독살까지 했으니 찾아내면..............그냥 죽이진 않겠다" '무슨 소릴..............하는 거야?' "약........이라니?" 놀란 눈으로 올려보자 섬뜩한 살기를 채 감추지 못하고 씁쓸한 눈빛으로 날 내려본다. "누군가........네게 약을 썼다. 환각을 보여주는 마약을....... 지하감옥에 있었을 때와...... 아마도.............. 2년 전 선대 황제가 암살 당한 날에도.............." 충격에 눈물조차 멈춘 채 붉은 눈동자를 올려봤다. '무슨.................거짓말을 하는 거야?' "왜................. .........네가 죽였다고 그렇게 단정해 버리는 거냐..........." "왜...........라니......... 너도 그땐..............내가 죽였다고............ 아니............. .........슈안이............." 혼란스런 머리를 움켜쥐자 갑자기 텅 비어버린 머리 속으로 그 동안 꾹꾹 박아왔던 의문들이 하나 둘 씩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2년 전.......... 선대 황제를 죽였을 때............ ........희미하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위화감......... 다른 기억들이 비교적 선명하게 돌아오는데 반해 2년 전 그 날 밤의 기억만이 안개가 낀 듯 희미하다. 아무리 기억해 내려 애써봐도 뒤죽박죽........... 사람의 얼굴마저도 혼란스럽고 손상된 필름처럼 드문드문 기억이 끊기기까지 한다. 게다가 지하감옥에 갇혔을 땐 확실히.............. ............이상을 보였었다. 단순히 정신적인 충격에 강제로 몸이 범해져 그럴 거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혼자 남겨질 때마다 끊임없이 귓가에 파고드는 비명소리와 끔찍한 환각 때문에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그때......... 감옥 안에 있을 때........... ............매일 이상한 음료를 줬어......... 윗사람이 꼬박꼬박 먹이라고 했다고.............. 그래서............ 니가 시킨 건 줄 알고........." "음식을 나르던 시종을 매수해 약을 타고 네가 죽은 후 매수한 녀석의 가족까지 모두 죽여버렸더군........." "그럴........수가..............." "비슷하게 선대 황제가 죽은 후에도 시종 몇 명이 실종되거나 황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충격적인 말에 한참을 굳어있다 갑자기 스치는 생각에 다시 입을 열었다. "2년 전에도.............. 지하감옥에 갇혔을 때.............. 누군가 도와줬어........ 죽기 전에 도망가라고 감옥 안에서 꺼내줬는데............" "얼굴은?!!! 얼굴은 본 거냐?!!" 강하게 어깨를 쥐어오는 손길에 넋이 나간 듯 고개를 휘저었다. "도와준 게 아냐. 그 날, 널.........범인으로 몰기 위해 일부러 도망시킨 거다" 갑자기 드러난 사실에 말도 잊고 혼란스런 표정을 지어 보이자 품안에 끌어당겨 귓가에 가만히 속삭여온다. "넌 선대 황제를 죽이지 않았다. 약 때문에 비틀린 기억일 뿐이야.......... 황제를 죽인 건........슈안이었을 테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가슴 한켠을 짓누르는 불안이......... "다른 생각은 하지마........" 갑작스런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자 예쁜 눈동자로 붉은 시선을 맞춘 채 가만히 얼굴을 쓸어준다. "2년 전에도............ 3달 전에도............ ...............널 지키지 못했다. 모두............ .........내 잘못이야............" 자책하듯 괴로움이 묻어나는 녀석의 목소리는............... 분한 듯 내 몸을 꼭 끌어안은 채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오는 녀석은.............. 역시나...............어울리지 않는 모습........... 몇 번이나 망설이다 팔을 둘러 단단한 등을 쓸어주자 숨이 막힐 정도로 강하게 품안에 가둔다. "이번엔.........내가 꼭 지켜주겠다. 상처받지 않도록........... 눈물 따위 비추지 않도록......... 그러니............" "지켜주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젠.........충분히 강해........" "..................." .............맘에도 없는 소리........... "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달아나 버리면 상처 따위 받지 않을 테고............" "......................." ...............이젠 달아날 용기조차 없다. "눈물도.............. .............오늘이 마지막이야............" "...................." ...........내가 흘리는 눈물도 다 너 때문이니까........... "루베라 따위.............. ...........지난번처럼 지워버리면.............." "심장 위에 새겨진 루베라는 심장을 도려내지 않는 한 지울 수 없어......." 내 몸을 꼬옥 끌어안은 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기만 하던 녀석이 갑자기 말을 꺼내 올려보자 다시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심장 위에 새기면............... ..............생사조차도 함께 한다. 2년 전엔......... 언제 죽을 지 모를 목숨이었기 때문에............ 내가 죽어도 너만은 살아남길 바랬기 때문에............ ..............심장에 새기지 않았다.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었는데..............." "혼자 남겨지는 게........... ...........더 싫어............" 뺨을 타고 다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자 부드러운 입술을 눈가에 찍어누른다. "이젠............... .............빠져나갈 구멍 따윈 만들어주지 않을 테니까............... 날 사랑하니까 내 곁에 있어............" 단정하듯 말하는 녀석의 말에 어쩐지 억울한 생각이 들어 울컥 말을 뱉어버렸다. "난............아직 사랑한다고 말 안 했어!! 어젠 약발에............술기운에............" "큭, 이제 그만 포기해......" "뭘 믿고 그렇게 자신만만한 거야?" "어제 밤 날 받아들인 건.............네 진심이었어. 날 사랑한다고 말한 것도............" '뭐?!!!' 갑작스런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놀라 까만 눈을 크게 뜬 채 녀석을 올려보니 꿰뚫어 볼 듯 흔들리지 않는 붉은 눈동자가 시야에 박혀들어 온다. "무.......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그건 니 생각이고............." 자신감이 가득 차다 못해 넘치는 듯 보이는 녀석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내며 말끝을 흐리자 흘려내 듯 툭 말을 내뱉는다. "어제 밤 침소 안에 피워둔 건 최음향이 아니었다" "......................................... ......................................... ........................................." '빌어먹을...................' Rubera(루베라) #150 으득........ '썩을...............' 빌어먹을 룬 자식이 기어코 생의 집착을 버리지 못해 티폰 녀석한테 붙은 거다. "말을 많이 한다더군............술을 마신 것처럼 긴장도 풀어주고............ 큭, 궁의를 갈아치워야겠어..................." 결국 발정 난 고양이처럼 밤새도록 녀석의 밑에서 신음을 흘려댄 건 약간의 취기와 터무니없이 경계심을 풀어버린 약향 때문이었단 소리........ 게다가......... 최음향도 없이 약간의 술기운으로도 녀석의 손길에 반응해 버렸다. 녀석의 품안에서 애새끼처럼 실컷 울어댄 좀 전과는 달리 지금은 창피함에 온몸이 붉어져 목덜미에 집요하게 들러붙어 키스를 해대는 녀석에게 얌전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으응......." 의도가 명백한 애무에 작게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피하자 여기저기 더듬어대던 녀석의 손이 슬금슬금 아래로 미끄러져 간다. "하아.........으응...................하지마...........아프단 말야........." 밤새도록 지독히도 괴롭혀댄 덕에 이 이상 했다간 까무러치는 걸로도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녀석을 밀어내려 품안에서 꼼지락거려 봐야 매몰차게 뿌리치지도 못하고 작은 앙탈이 되어버려 이미 흥분해버린 녀석을 상대하기엔 역부족........... 게다가...............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가질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겨우 손에 넣었는데........... .............뿌리칠 수 있을 턱이 없다. "하아.......아......................" 커다란 손으로 페니스를 감아쥐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내의 목에 팔을 두르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귓가에 와 닿는 숨결이 뜨겁다. 자극조차 하지 않은 녀석의 페니스가 금새 단단해져 연한 허벅지에 비벼지자 신음을 흘리며 몸을 더욱 밀착시켰다. 맞닿은 가슴을 통해 함께 뛰는 심장에.........내가 흥분할수록 귓가에 와 닿는 녀석의 거친 호흡에........... ...........기억나 버렸다. 루베라를 황제만이 만질 수 있는 이유........... 갑자기 떠올라버린 생각에 얼굴을 붉힌 채 녀석을 꼬옥 끌어안자 움직임이 격해진다. "하악...........으응............티폰............" 강한 쾌감에 헐떡이며 녀석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페니스를 강하게 쥐어오는 느낌에 그대로 사정을 하고 늘어지자 내 몸을 꼬옥 끌어안아 온다. 처음부터 몸 안에 들어올 생각은 없었는지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거칠게 숨을 내뱉는 녀석의 물건은 여전히 사정도 하지 않은 채 허벅지에 맞닿아있다. 뜨거운 느낌............. 붉은 머리칼에 살짝 얼굴을 부벼보다 슬그머니 손을 뻗어 녀석의 페니스를 감아쥐자 흠칫 몸이 굳는다. 옛날에도 몇 번 만져본 거 같긴 한데 도통 기억이 없다. '빌어먹을!! 이렇게 크니까 그렇게 아프지.........!!' 왠지 억울함에 속으로 꿍얼대며 모양 좋은 페니스를 더듬어보다 손으로 살짝 감아쥐고 녀석이 해주던 대로 천천히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내 몸을 꼬옥 끌어안고 입술을 포개온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얼굴이 예쁘기만 하다. 거칠어지는 호흡에 부드럽게 피스톤질을 해주자 진하게 혀를 섞어오던 녀석이 떨어져나가 목덜미에 깃털 같은 키스를 떨어뜨린다. 헐떡이는 숨소리에 절정을 알아채고 귀두부분을 조물락대자 그대로 내 허벅지와 손에 뜨거운 액체가 떨어져 내린다. 녀석의 머리를 꼬옥 끌어안고 솜털같이 부드러운 붉은 머리칼에 입술을 묻자 팔을 둘러 허리를 강하게 안아 온다. 역시........... 루펜타는 루베라를 느껴도 루베라는 루펜타를 느낄 수 없는 모양........ 불행 중 다행이다.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는 녀석에 맞춰 같이 흥분해 대면 그야말로 내 사인이 복상사가 될 터이니........ 하얀 가슴에 머리를 기댄 채 간지럽게 루베라를 지분대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단단한 몸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항상............... 이렇게 행복하면 불안하다. 언제 깨어져버릴 지 무섭고............... ................두렵다. "이제..................." 낮게 속삭이는 티폰의 목소리에 내려보자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아무 데도 가지 마라.......... .......내가 없는 곳에서 웃지 말고............. .......내가 없는 곳에서 눈물 흘리지 말고............. .......내가 없는 곳에서 숨도 쉬지마..........." "큭, 뭐야? 니가 없는 곳에선 죽으란 소리잖아?!!" 녀석의 말에 기가 막혀 웃어대면서도 가슴 한 자락이 쿡쿡 쑤셔왔다. "내가 있는 곳에서만........살라는 소리다......"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 인생에서 내 뜻대로 되는 일 따윈............ ............아무것도........없었다. "만약.............. .........또 내가 없어지면................ 그때처럼............ ...........기다려 줄 거야?" 흠칫 몸을 굳힌 녀석이 상체를 벌떡 일으켜 시선을 맞춰온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불안한 목소리에 쓴웃음을 지은 채 손을 뻗어 녀석의 뺨을 쓸어주자 살짝 표정을 누그러뜨린다. "만약이라고 했잖아........" "또 사라진다면................ 이번엔............ ............기다리지 않아............" "응?" 뜻밖의 말에 올려보자 화가 난 듯 말을 내뱉는다. "기다리지 않을 테니.......... .......사라지려거든 다신 돌아오지 마라........" 심술 맞은 대답에 킥킥대며 말을 이었다. "흐응~ 말은 그렇게 하고 나 없으면 매일 우는 거 아냐?" 화난 듯 노려보던 녀석이 귀가 멍멍할 정도로 버럭 소릴 질러온다. "절대 놓아주지 않을 테니 달아날 생각은 꿈도 꾸지마...........!!!" "큭, 결국은 그럴 거면서 튕기긴..... 도망 안가....... 멀리 떨어져도.........그 때처럼 다시 돌아올 테니까........... 1년이 걸려도.........2년이 걸려도........10년.......100년이 걸려도......... 죽어도.........너한테 다시 돌아올 테니까........... 그러니까......... ........불안해하지마............"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은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우울한 생각 따위 고개를 휘저어 털어 버리고 어젯밤부터 쭉 맘에 걸리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내기 시작했다. "저기................ .........유이 녀석.............풀어주면 안돼?" 그렇게 일주일도 넘게 잠자코 갇혀있을 녀석이 아닌데............ 자력으로 탈출하는 게 쉽지 않은 모양........ 벌써부터 몸을 굳힌 녀석이 미동도 없이 입을 열지 않는다. 역시........ 만나기만 하면 그렇게 살기를 뿜어댔는데 쉽게 풀어줄 리............. '가만........' 퍼뜩 스치는 생각에 어렸을 적에나 이 녀석에게 써먹던 속이 쏠리는 애교를 부려대기 시작했다. "티폰.........." 부드러운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부비 하다가 귓가에 작게 이름을 속삭여주자 돌아오는 시선이라곤.............. '썩을...........'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 어렸을 땐 이 짓만 해도 해달라는 건 다 해줬던 거 같은데........... 내가 도대체 뭘 어쨌다고 이 녀석이 이런 반응을........... '씹..........' 그러고 보니 두 번인가..............유혹해서 속여넘긴 기억이......... '젠장........' 자괴감에 빠져 잠시 주춤 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늘어뜨리자 눈빛이 조금이나마 누그러진다. "유이 좀 풀어 줘........응? 말썽도 안 피우고 말도 잘 듣고 얌전히 있을 테니까........." 표정을 굳히고 허리를 꽉 죄어대는 게 아까와 반응이 다르지 않다. "안돼........." '빌어먹을!! 고집불통!! 똥 고집!! 말썽도 실컷 피우고 말도 안 듣고 얌전히 있지도 않을 테다!!!' 속으로 굳게 다짐을 해가며 궁시렁대다 다시 입을 열려하자 몸을 번쩍 들어올려 욕실로 향한다. 차갑게 굳어버린 얼굴에 다시 말도 꺼내지 못하고 녀석의 손에 몸이 씻겨져 어느샌가 깨끗하게 갈아놓은 푹신한 시트 속에 파묻히자 조용조용한 시종의 목소리와 함께 시니안이 몇 명의 시녀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선다. 평소와 같이 푸른색의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고 고개를 숙인 시녀들이 녀석에게 옷시중을 들고 물러나자 시니안에게 돌아서 말을 던진다. "끌고 왔느냐?" "그 전에 제 발로 찾아왔습니다" 왠지 평소와는 달리 무거운 목소리...... "들여라..........." "예, 폐하........." 침대 위에 누워 정체불명의 말들을 들어가며 멀뚱멀뚱 바라만 보자 폭신한 시트를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고 젖은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준다.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케레스??!!!!!!!!" 들어서는 잿빛 인물에 놀라 몸을 벌떡 일으키려하자 가슴을 살짝 내리눌러 꼼짝도 못하고 다시 침대 위로 쓰러져 버렸다. '저 바보, 멍청이!!! 왜 여기까지 온 거야?!!!' 침대 위에서 티폰의 손에 눌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불안한 눈으로 케레스를 바라보자 잿빛 시선을 내게 던져 온다. 잠시 내 몸을 구속하고 있는 티폰을 스쳐보더니 검을 빼들려는지 허리춤으로 천천히 손을 옮긴다. 발검은 찰라......... 말릴 틈도 없이 지독히도 느리게 보였던 움직임과는 달리 눈 깜박할 새 검집에서 섬뜩한 빛을 뿜어대는 검이 반정도 빠져 나왔을 때 케레스의 목 뒤로 날카로운 검 끝이 겨눠졌다. "더 이상 카이도가를 더럽히지 마라............" 시니안에게선 들어본 적 없는 차가운 목소리......... 마치 다른 사람과 같은 녀석을 보며 티폰의 옷자락을 꽈악 움켜쥐자 서늘하게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반역의 죄는.......무겁다" "그 분을..............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네 놈이야말로 어찌할 셈인가?" "과거와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밖에........" "또다시 내 명을 어기고 반역을 저지르겠단 말이냐?!!!" "케레스!!!" 목에 겨눈 검 따윈 생각도 않고 마저 검을 빼내는 녀석을 보고 놀라 소리치자 낮게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이번엔 다릅니다. 또 다시 눈앞에서 죽게두진 않을 테니........." 살기가 가득한 침소 안에 침묵이 내려앉자 불안에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죽이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데........... 공포로 굳어버린 입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초조한 마음에 가늘게 떨리는 손에서 식은땀이 날 지경........... 순간 뺨에 와 닿는 따뜻한 손길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올려보자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개온다. 익숙한 느낌에 입술을 열어주자 바로 안으로 들어와 부드럽게 혀를 옭아매고 가볍게 빨아들인다. 조심스런 키스에 불안으로 제멋대로 떨어대던 몸이 가라앉아 갈 무렵........... 예전처럼 저항 없이 티폰을 받아들이는 날 보고 케레스가 놀란 시선을 박아와도 쉽게 떨어지지 않고 아쉬운 듯 몇 번이나 가벼운 키스를 해대던 녀석이 천천히 입술을 떼고 다시 무겁게 입을 열어온다. "카이도가는 대대로 크리올라의 황제를 지켜왔다. 하지만........... 유일하게 넌 황제에게 세 번이나 검을 겨눴지...... 주인의 목을 물어뜯는 개는 필요 없다. 반역을 저질러 카이도가를 버렸으니 네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던 사명을............ ...........버려라........." 갑작스런 말에 케레스의 굳은 눈이 티폰에게로 향하자 시트를 살짝 걷어 붉은 각인이 새겨진 하얀 가슴을 드러낸다. "심장 위에 새긴 루베라의 의미는 알고 있겠지? 황제와 생을 같이한다. 날 죽이면............. ..........이 아이도 죽어........" 충격에 검을 떨어뜨리고 내게 시선을 맞춰오는 잿빛 눈동자를 초조하게 바라보자 차갑게 가라앉은 티폰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려온다. "그러니 또 다시.............. ..........눈앞에서 죽게두지 마라......." '뭐?!!' 놀라 올려보니 가만히 까만 머리칼을 쓸어준다 "오늘부터 루베라의 곁을 지켜라........." 말을 끝내고 바로 시트를 다시 덮어버리자 심장 위에 새겨진 루베라를 보고 굳어있던 케레스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한참만에 마음을 굳힌 듯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온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폐하......." "한가지 더............ .........알아둘 것이 있다" 무거운 목소리에 참기 힘든 침묵이 가라앉아 녀석에게 시선을 맞추자 붉은 눈동자가 살짝 짙어진다. "이 아일............ ...............노리는 자들이 있다" 몸을 굳힌 잿빛 사내가 놀란 듯 고개를 들어올리자마자 차가운 한기를 실어 다시 말을 내뱉는다. "지금 황제의 침소 안엔 아무도 없다. 내 루베라는 기억을 잃은 황제의 분노를 사 지하감옥 안에 갇혀 있지. 몇 달 전처럼 2년 전 선대 황제의 암살에 관한 일로........... 미끼를 물때까지............ 지정된 시종들을 제외하곤 누구도 침소 안에 들이지 말고 다른 자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절대 밖에 내보내지마. 음식은 꼭 시식을 시키고............큭, 루베라께서 심심하시다고 창 밖으로 드나들면 바로 내게 알려라. 심심할 틈도 없이 피곤해서 하루종일 잠만 자게 만들어 놓을 테니..........." 날 바라보며 협박을 하듯 내뱉는 말에 으득 이를 갈자 내게서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말을 잇는다. "나머지는 시니안에게 듣고...........그만 물러나라" "예............." 두 녀석이 조용히 물러나자 여전히 허리에 힘도 들어가지 않아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 몸을 멋대로 끌어당겨 품에 안아온다. 앉아있는 게 불편해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다 팔을 뻗어 티폰의 목에 두르고 가슴에 머리를 기대자 허리를 가만히 쓸어준다. 케레스를........ ........죽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녀석이 많이 물러나 준거다. 하지만......... 축 늘어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파.................." 뻥은 절대 아니다. 허리는 물론, 엉덩이도 아프고 다리도 후들후들 떨린다. "궁의를 불러라..........." "예, 폐하..........." 역시나 바라던 명이 티폰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얼마 되지 않아 들어서는 인물은............ '저 자식.............!!!' 작게 이를 갈며 노려본 인물은 미친 의사 놈.......... 확실히 크리올라 황성의 궁의 자리를 꿰어찬 게 틀림없다. 불러놓고도 아픈 곳을 보여주긴 커녕 꼬옥 끌어안고 놓아줄 생각을 않자 눈치 빠른 놈이 금새 알아채고 음흉한 시선을 내게 던지다 티폰의 살기에 흠칫 놀라 재빨리 약장사 마냥 이것저것 꺼내놓는다. 동그란 알약 하나와 지난번 허리를 다쳤을 때 궁의 늙은이가 얹어줬던 팩 하나, 그리고 하얀 액체가 들은 작은 용기....... 이것저것 간단히 설명하고 물러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차피 확인만 할 생각이었으니........... 티폰이 유이 녀석을 풀어주지 않으면 내가 도와주는 수밖에......... 이 곳에선 한 발짝도 내보내주지 않을 것 같고 케레스나 시니안에게 부탁해봐야 융통성 없는 녀석들이 도와주지 않을 건 뻔하고......... 마지막으로 생각해 낸 건 바로 저 녀석........ 어쨌든 유이 녀석이랑 아는 사이니 잘 구슬려서........... "우왓...............!!" 어느 틈엔가 엉덩이 사이로 들어온 녀석의 손에 놀라 펄쩍 뛰며 비명을 내지르자 움직임을 멈춘다. "뭐.........뭐 하는 거야?!!!" 얼굴을 확 붉힌 채 화가 나 녀석의 손을 낚아채자 룬 녀석이 두고 간 작은 알약이 손에 놓여있다. '머........먹는 게 아니었나...........?!!!' 아무래도 바르는 약인 모양........... "내......내가 할거야!!" 약을 뺏으려 손을 뻗자마자 허리를 끌어당겨 꼼짝도 못하게 구속하고는 고집스럽게 손가락으로 애널을 더듬어댄다. "아파..........." 역시 손도 대자마자 쓰린 느낌에 흠칫 몸을 떨자 한번에 알약을 내부로 밀어 넣는다. 손가락 하나 만으로도 통증에 바들바들 떨어대자 내부에서 녹기 시작하는 알약을 재빨리 내벽 구석구석에 발라대고 바로 손가락을 빼더니 얌전히 침대 위에 눕혀준다. 통증에 미간을 찌푸린 채 사내를 올려보자 침대에 앉아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하곤 몸을 뒤집어 눕히더니 작은 용기에 들어있던 끈적한 액체를 허리 위에 뿌린 후 마사지를 해준다. 화끈한 느낌에 작게 신음을 흘리자 부드러운 손길이 등허리를 오간다. 유이 녀석이 해줬을 때만큼 기분 좋은 느낌에 스륵 눈을 감자 지난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Rubera(루베라) #151 반짝 눈을 뜨니 엎드린 채 시트에 폭 싸여있었다. "티폰........?" 꼼지락거리며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붉은 사내는 보이지 않고 항상 있던 곳에 잿빛 사내가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서있다. "케레스......" 변함 없이 따뜻한 잿빛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다시 입을 열었다. "궁의 좀 불러 줘......." 역시 티폰이 없을 때 빨리 부탁해 놓지 않으면........ 어느샌가 침대 맡으로 다가와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케레스를 올려보자 이마를 짚어보려는 듯 손을 뻗어오다 멈칫해 버린다. '다시.........루베라로 돌아와 버린 건가............' 새장 안에 갇혀버린 느낌......... 확실히............. 화려하게 금으로 지어져 입구도 만들어 놓지 않은 새장 안에 갇혀버린 것 같다. 어느샌가 티폰이 입혀놓았는지 입고있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새하얗고 화려한 옷을 입고있었다. 소매도 길어 자기 손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옷........... '젠장.............' "궁의를 들여라......." 한창 우울한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케레스가 낮게 명을 내리자 시종들이 밖에서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불려 들어온 룬 녀석은 티폰이 없는 침소를 둘러보더니 한결 가벼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역시나 티폰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 "케레스, 옆 침실에서 내 물건 좀 가져다줘. 가죽주머니.........테이블 위에 올려놨는데......." 경계를 늦추지 않고 룬을 바라보던 케레스에게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걱정하지마. 저 녀석, 아는 놈이야........" 재촉하듯 바라보자 할 수 없다는 듯 뒤돌아서 침소를 나선다. "어디가 또 아픈 거냐? 절륜하신 황제폐하께서 또 하디?" "미친소리 집어치고 유이 녀석 좀 도와줘........지금 감옥 안에 있어" "도둑놈이 있어야 할 곳에 있구만........" "이 자식!!!!" "나도 그 놈한테 당한 게 많아서 맨입으론 안되겠는데? 금화 100개만 내........." "이 미친!!!!!" 날강도 같은 놈이 따로 없다. "황제폐하께서 밤새도록 괴롭힐 만큼 사랑하는 루베라께서 그런 푼돈을 가지고......." "더 지껄이면 황제에게 그렇게 사랑 받는 루베라께서 전에 네놈한테 당한 일을 모두 이를 거 같은데........." 뿌득 이를 갈며 내뱉자 재빨리 입을 닫아버리는 얍쌉한 녀석을 한동안 죽일 듯 노려보다 다시 말을 꺼냈다. "금화 30............." "80........." '이 자식이 정말!!!!!!!!!' "40............." "60, 그 이하로는 안돼!!" "이익........!!" 부탁하는 처지니 쥐어 팰 수도 없고....... "그럼 색소 바꾸는 약도 하나 내놔" "응? 그거 키리안 숲에 다 놔두고 왔는데........" "만들어!!!!" 바락 소릴 지르고 주먹을 부들부들 떨어대자 뒤로 바로 물러서 미친놈처럼 웃어 재낀다. "큭......크하하하하하.........그 성깔로 어떻게 그 지경이 될 정도로 황제한테 깔렸냐...... 중간에 발로 걷어찬 거 아냐? 아님, 폐하께서도 꽤나 재주가 좋으신가 보네?" "으아아악!! 이 새끼, 죽여버릴 거야!!!!!" 참지 못하고 씩씩대며 베개를 집어던지려는 순간 케레스가 안으로 들어선다. '헉........' 화들짝 놀라 얌전히 베개를 놓아두고 자리에 눕자 룬 녀석도 재빨리 고개를 숙인 채 진료라도 보는 양 심각한 표정으로 분노로 부들부들 떨어대는 내 안색을 살핀다. "케........케레스......그거 이리 줘....." 의아한 듯 나와 룬을 번갈아 바라보는 케레스의 눈치를 살피며 돈주머니를 받아 쥐고 차마 움직이지 않는 손을 겨우 뻗어 룬에게 내밀었다. "이........이거, 지난번에 빌린 거........금화 50개랑 금구슬 하나......" 피 같은 돈이 그대로 룬 녀석에게 넘어가자 정말 안 아프던 몸이 아프고 눈물이 나올 것 만 같다. "음.........다른 곳엔 문제가 없는데..........." 우울한 표정에 케레스가 걱정스러운 듯 룬 녀석을 바라보자 꼴에 궁의가 됐다고 진단이라도 내리려나보다. "지나치게 관계를 가지셔서 피로가 누적되고 기운이 빠져 우울증을 동반한..........." '저 개새끼............!!' "역시 며칠 폐하와의 동침을 삼가던가 후궁을 들이심이..........." "아악!!!! 나가!!! 이 새끼, 죽여버릴 거야!!! 주둥이를 꿰매버릴 테다!!!" 발작적으로 발광을 해대자 침실 밖으로 후다닥 달아나 버린다. 한참동안 씨근덕거리며 분을 삭이다 결국엔 제풀에 지쳐 쓰러져버리자 케레스가 미리 말을 해두었던 건지 시종들이 조용히 들어서 테이블 위에 음식들을 잔뜩 올려놓고 사라진다. 역시 내 생각 해주는 건 케레스 뿐이다. 나쁜 새끼들......... 이놈이나 저놈이나 볶아먹을까 삶아먹을까 쿡쿡 찔러대면서 성깔만 더 더럽게 만들고...... 고마움을 가득 담아 올려보자 치렁치렁한 소매까지 움직이기 편하게 매듭지어준다. 티폰이든 룬이든 상대하느라 체력과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 음식을 집어들어 허겁지겁 입안에 우겨 넣고 씹어대자 눈앞에 물잔을 내려놓는다. "천천히 드십시오......." "응? 응..........." 느물대는 시니안보다 백 배 천 배 낫다. "케레스, 이제 아무 데도 가지마........"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는 케레스에게 한번 씨익 웃어주고 다시 음식에 손을 뻗어 배를 채운 뒤 침대 위로 털썩 드러눕자 잠시 후에 다시 시종들이 들어 빈 그릇들을 모두 들고 사라진다. 거의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나 지금은 해가 기울어 갈 무렵........... 하지만 해가 지려면.........티폰이 오려면 한참은 더 있어야 할 듯 하다. 가만히 눈을 감자 질리지도 않고 슬금슬금 잠이 오기 시작한다. 침대 위에 몸을 반만 걸친 채 잠 속에 빠져들려는 순간 몸이 살짝 들리더니 편안히 눕혀져 부드러운 시트가 덮여진다. 비몽사몽간에 머리칼 위로 부드러운 손길이 스쳐 가는 순간 조용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다시 몸이 번쩍 들려 따뜻한 품안에 가두어진다. 겨우 부스스 눈을 뜨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붉은 빛............ "티폰...........?" 품안으로 파고들자 입술 위로 살짝 키스를 해주고 귓가에 가만히 속삭여온다. "아픈 곳은.........?" 다시 눈을 감고 가만히 고개를 휘젓자 답답하게 죄어오던 옷자락을 풀어 벗은 몸 위로 여기저기 키스를 해대더니 한결 가벼운 잠옷으로 갈아 입혀 침대 위에 뉘여 준다. . . . 눈을 뜨자 주위가 어둠에 잠겨있다. 지나칠 정도로 격하게 안아오는 티폰 때문에 또 기절을 한 모양....... 그 날 이후로........... 티폰이 루베라란 붉은 각인을 새겨준 이후로 팽팽하게 조여있던 이성이 끈긴 것처럼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내 안에 들어와 기절할 때까지 나오지 않았고 그 이후엔 이렇게 죽은 듯 잠이 들기가 일쑤였다. 그 덕에 그렇게 예민했던 사내가 이렇게 방심한 표정으로 잠이 든 모습도 보여주고....... 붉은 머리칼을 살짝 쓸어 올리자 조각같이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난다. 이 붉은 각인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뭔가가 변한 느낌........ 반복되는 일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밤마다 예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사내에게 매번 속아 몸을 순순히 내주는 것말고도...... 뭔가가 변해버렸다. 이렇게 바라만 보고있어도 뛰어대는 심장이라던가, 곁에만 있어도 행복해지는 기분도......... 가만히 바라만보다 살짝 고개를 숙여 사내와 입술이 닿으려던 순간......... 희미하지만 평소엔 들릴 리 없는 소리.......... 의아함에 시선을 돌려보니 침소 문이 열렸는지 밖에서 새어들어 오는 가느다란 빛이 길게 이어져있다. 어지럽게 보이는 것은 사람의 그림자........ 티폰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니 곤히 자고 있다. 피곤한 듯 눈도 뜨지 않는 사내를 깨우지 않기 위해 허리에 단단히 감겨있는 팔을 슬그머니 풀어 침대 위에 곱게 놓아두고 겨우 슬금슬금 기어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자 허리와 엉덩이에 화끈한 통증이 내달린다. 눈물을 글썽대며 티폰과 살짝 열린 문을 번갈아 보다 문이 있는 곳으로 불편한 걸음을 옮겼다. 가느다란 빛이지만 침대를 가로지르고 있어 자칫하면 티폰을 깨울 것만 같아 겨우 커다란 문까지 다가가 문을 닫으려는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에 흠칫 몸을 굳혔다. 작은 소음이 일던 좀 전과는 달리 평소와 마찬가지로 쥐 죽은 듯 고요하지만.......... 발치에 뭔가 따뜻한 게 기어올라오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바라보니 끈적한 붉은 액체가 맨발을 적시며 흘러들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황태자의 장난감인가............." 섬뜩한 광경에 넋이 나가있다 갑작스런 목소리에 시선을 돌릴 틈도 없이 강한 손아귀에 입이 틀어 막혀 문밖으로 끌어내 지자마자 그대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하아......하아........."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떨다 눈을 번쩍 뜨자 악몽의 연속인 듯, 익숙한 침소 안엔 까만 어둠이 내려앉아 있다. 섬뜩한 느낌......... 바들바들 떨어대는 몸에 날 꼬옥 끌어안고 잠을 자던 티폰이 뒤척이기 시작하자 조용히 숨을 죽였다. 눈을 뜨면 안개처럼 희미해져 버리는 악몽........ 내가 행복한 순간마다 악귀처럼 따라붙어 영혼을 조금씩 좀먹어가며 불안을 뱉어놓는다. 기분 나쁠 정도로 뛰어대는 심장과 겉잡을 수 없이 떨려오는 몸에 혹여 티폰이 잠에서 깨기라도 할까 불안해 몸을 조이고 있는 단단한 팔을 슬그머니 풀어내고 조심스럽게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새카만 어둠 속을 밝혀주는 빛이라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 티폰이 발라준 약과 허리를 주물러 마사지를 해준 게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듯 아팠던 곳은 깨끗이 나아있었다. 떨리는 발걸음으로 꿈속에서와는 달리 굳게 닫혀있는 문으로 다가섰다. 이 끔찍한 불안을 죽이려면........아무래도 확인하지 않으면........... 악몽일 뿐이라고.........확인하지 않으면....... 주체할 수 없이 떨어대는 손을 겨우 뻗어 육중한 문을 힘겹게 살짝 열자........ 꿈속에서와 같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꿈속에서와 같이................. 손에 힘을 약간 실어 문을 더 열려는 순간 손목을 쥐어오는 단단한 손아귀에 심장이 멈춰버릴 듯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이 돌처럼 확 굳어버렸다. 공포에 고개도 들지 못하고 의식도 못한 사이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자 갑자기 따뜻한 손이 뺨을 쓸어준다. "무슨..........." 낯익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올려보자......... "케레스.......?" 놀란 듯 잿빛 눈동자를 맞춰온다. 침소 밖을 지키고있는 병사들과 함께 계속 이곳에 있었던 모양.........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물기를 닦아주자 놀라 가늘게 떨리는 몸을 겨우 추스리고 입을 열었다. "아무 것도 아냐......갑자기........놀래서..........." "들어가서 주무십시오......밤이 늦었습니다..... 침소 밖은 위험할 지 모르니 절대 나오시면 안됩니다" "응......"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까만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더니 이마에 살짝 키스를 해주고 놀랄 틈도 없이 침소 안으로 밀어 넣어 문을 닫아버린다. 다시 까만 어둠 속...........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다. 확실히........... 다시 발걸음을 옮겨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가에 서서 아름다운 밤하늘을 올려보자 슬그머니 허리에 단단한 팔이 감긴다. 익숙한 체온......... 기분 좋은 체향....... 스륵 눈을 감자 목덜미에 부드러운 입술을 떨어뜨린다. "사랑해......." 귓가에 작게 속삭여오는 소리가 가슴 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있던 불안을 몰아낸다. Rubera(루베라) #152 "그래서?" "밖에서 소란이 일더라도............니가 황제 좀 붙들어둬......." 다음 날......... 티폰이 평소보다 훨씬 늦게 침소를 나서며 케레스 앞에서 낯뜨거울 정도로 진한 키스를 하고 사라진 후 한참을 침대 위에서 뒹굴 거리다 미열이 있다는 핑계로 룬 녀석을 불러들였다. 다행히 지금은 케레스도 티폰에게 잠시 불려가 침소 안엔 룬과 나, 둘 뿐........... "넌? 키리안 숲에 돌아가지 않을 거야?" "왜? 여기 있으면 궁의에 연구비, 연구재료까지 모두 대주겠다는데? 게.....게다가 달아났다 다시 잡히면 찢어 죽이겠다고.............. 하.....하하............어.........어쨌든 난 여기가 더 좋아!!" '미친..........좋은 게 아니라 단순히 죽는 게 무서운 거잖아?!!'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몸을 떠는 남빛 녀석을 기가 막혀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 한대?" "오늘 저녁쯤.............일부러 지금까지 안 나가고 감옥에서 버티고 있었던 모양이야....." "왜?" "시온한테 무슨 연락이 오기로 되어있었다는데........... 뭐,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답답한지 마침 나가려던 모양이더군......." "시온? 그 녀석..............." 시니안이 약의 출처를 알아보러 항구도시로 갔다고 했다. '유이 녀석한테 연락하기로 한 건가.......? 근데......연락이 없다니.........?!!' "도둑놈이 시온 찾으면 너 꼭 데리러 오겠다고 전해달라고 하던데? " "허튼 짓 말고 시온이나 잘 찾아보라고 해!! 그 자식, 싸돌아다니다 인신매매 된 거 아냐?!!!"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손안에 작은 알약을 하나 쥐어준다. "자, 급하게 만들어서 효과는 보증 못해" "웃기지마!! 효과 없으면 돈 다 물려!!" "금화 60이라고 했는데 금화 50 밖에 못 받았잖아!" "금구슬도 줬잖아!!!" 가뜩이나 내 손에서 돈이 나가 속상한 판에 울컥해선 소릴 지르자 킥킥거리며 말을 잇는다. "그 금구슬, 금화 열 개 값도 못해.....정교하긴 하지만 가벼운 게.......속이 빈 거잖아? 금화 다섯 개 값이야......" 용케도 알아챈다. "그것도 훔친 거냐?" "당연한 걸 묻고 지랄야?" "흐응~ 어디서? 크리올라에서?" "그래.......금화는 범죄자 놈들한테서 강탈한 거고, 금구슬은................... .................황성 동쪽 외곽에 있는 귀족가에서......." "큭, 너도 한물 갔군....강탈에, 귀족가에서 달랑 구슬하나 훔쳤단 말야?" "남의 사..........." 입술을 삐쭉거리자 갑자기 음흉한 미소를 입에 걸더니 딴엔 은밀하게 속삭여온다. "킥, 어쨌든 도둑놈 죽는 꼴 보고싶지 않으면 오늘 저녁 소란이 일면 황제나 확실히 잡아둬......." "잡아두다니, 어떻게?!!" "네 재량 껏 해봐........." "무슨............" 평소와 다르게 별 발광 없이 바로 뒤돌아 나가버리는 녀석을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바로 케레스가 침소 안으로 들어선다. 창 밖을 보니 해가 질 무렵....... 붉은 빛이 창을 통해 침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티폰은?" "곧 드실 겁니다........." 역시 평소보다 이르다. 어제도 해가 지기 훨씬 전에 들어왔는데........... 요즘엔 임신한 마누라 대하듯 노심초사하는 게 꽤나 걱정이 되는 모양............ 간밤의 일을 생각하며 작게 미소를 띄운 채 욕실로 들어섰다. 황성 안은 평소와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낮엔 티폰이 귀족들과 정무를 보고 밤엔 화려한 파티가 열리고....... 범인을 쉽게 덫으로 끌어넣기 위해 긴장된 분위기는 금물........ 케레스가 내 호위를 맡은 대신 시니안은 범인을 잡는 일에만 매달리는 모양...... 요즘엔 얼굴보기도 힘들다. 향이 나는 탕 안으로 들어가 몸을 담그고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까만 머리카락을 지분대다 룬이 쥐어준 알약을 그대로 집어 삼켰다. 약을 먹고 다시 색이 변한 걸 알면 길길이 날뛸 텐데......... "'하아........" 티폰의 말을 어기고 침소 밖으로 나갈 생각은 없지만........ 만일을 위해 약간의 보험을 들어두는 것뿐이다. 루베라가 지하감옥 안에 갇혀있다고는 하지만 만약 일이 틀어져 발각이라도 당하거나 내가 누군가의 눈에 띄면 빌어먹을 까만색 때문에 단박에 내 정체가 드러나 일이 골치 아파질 테니까....... 아직........ .......키르의 모습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것 같다. 지난번 독에 당해 죽을 뻔했을 때도 내가 루베라였기 때문에 죽이려했던 게 아닌 듯 했으.......니.......?!! '잠깐!! 그러고 보니..............!!'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난 루베라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왜 날 죽이려들어?' 분명........ 하류가 아닌........키르를 죽이려 했다. 키르가 원한 살 일이래 봤자 뮤즈니안에서 도둑질을 한 일밖에 없다. 그런 일로 크리올라까지 쫓아와 죽이려 들만큼 미친놈은 없을 테고 이 황성에선 내가 그 도둑이란 것을 아는 녀석도 없을 터........... 그렇게 많은 돈을 걸고 청부했으면 분명 귀족......... 이곳 귀족에게 키르에 대해 알려진 거라곤 유이 녀석의 정부라는 소문 뿐......... '설마...........바람둥이 새끼한테 원한 품은 여자가 청부한 거 아냐?!!' 하지만............ 유이와는 상관이 없다. 왜냐면.............. 그 때.................. 그 녀석들이............... '뭐지......?!!' 뭔가 놓치는 기분......... 잡힐 듯도............한데......... "젠장........" 복잡한 머리를 이리저리 휘젓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움직임을 딱 멈춰버렸다. "하.......!!" 분명 황제도 정신 못 차릴 만큼의 어쩌구 개소리를 해댔다. 내가 황제를 꼬여 배알이 틀린 인물은 둘.............. 가짜 녀석과.............. ...............미르니안 미르헨............ 가짜 녀석은 벙어리인데다 노예신분이었기 때문에 그만한 돈이 있을 턱이 없다. 그러면................. '그 여자..............!!!!!!!!' 황제 암살과는 별개의 문제지만 분명 그 미르니안이란 여자가 그 때 날 죽이려한 게 틀림없다. 게다가 그 여자.......어쩐지 마음에 걸려 케레스에게 알아보니 파혼 당한 직후 요양을 위해 미르헨가의 가주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그 커피색 아저씨와 잠시 먼 곳에 있는 별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했다. '결국 튄 거잖아!!!!!' "이 미꾸라지 같은!!!!! 헉...!!" "미꾸라지?" 바락 소릴 지르고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뒤에서 허리를 감아 끌어당긴다. "티.........티폰? 어......언제 왔어?" 갑자기 뒤에서 끌어안아 밀착해 오는 녀석의 벗은 몸에 당황해 더듬대며 얼굴을 붉히자.......... "어......어딜 만져?!!!!" 놀라 꽥 소릴 지르며 내 것을 조물락대는 녀석의 뻔뻔한 손을 치우려 손을 뻗자 그대로 감싸 쥐어버려 내가 내 것을 쥐어버린 꼴............ 보들보들한 느낌에 귀까지 빨갛게 익어 손을 떼려 버둥대도 감싸쥔 손을 풀지 않는다. "하아.......이 자식.......!! 손.....흐윽...........치워!!!" 귀두 끝을 멋대로 비벼대는 녀석의 손가락 때문에 신음을 흘리며 헐떡이자 손안에 쥐어진 페니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귓가에 속삭이는 미친 소리................. "큭, 귀엽군..........." '귀.......귀여.....?!! 이...........이 변태새끼!!!!!!!!!!!!!!' "니놈이 큰 거야!!! 난 표준이란 말야!!!" 정말 여물지도 않은 귀여운 애새끼 물건이라도 만지듯 조물락대는 손길에 김이 날 것처럼 시뻘개 진 얼굴로 울컥해 바락 소릴 지르자 킥킥대며 목덜미에 입술을 찍어누른다. 확실히 난 표준이다. 이 놈이 무식하게 큰 거다. 유이 녀석도........ 유이도........... 그 자식도............. "................." 아악!!!! 어쨌든 난 표준이 확실하다. 표준보다 더 크면 컸지 작은 게 아니다. 저쪽 세계에서 목욕탕에 가서 확실히 확인한 사실이다. 게다가 앞으로 더 클 거란 말이다!! "하아...........흑............" 분노해 생각이 콩밭에 가있는 동안 이 자식이 남의 물건을 쥐고 실컷 키워놨다. 내 몸이긴 하지만 평소엔 손도 대지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 자식놈을 쥐고있으려니 죽을 맛........... 손을 물리려해도 내 페니스와 손을 한꺼번에 감싸쥔 녀석의 손이 풀릴 생각을 않는다. 게다가 내가 흥분하자마자 크기를 늘려가던 녀석의 페니스도 커질 대로 커져 엉덩이 사이로 들어와 애널 위를 비벼댄다. "하아........아..........." 다리에서 힘이 풀리자마자 허리를 감은 손에 힘을 실어 몸을 지탱해 준다. 천천히 움직여 가는 손길에 가쁜 숨을 내쉬며 녀석의 손에서 달아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리자 엉덩이 사이에 자리잡은 녀석의 페니스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좁은 애널 위를 찔러댄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릴 정도의 쾌감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댄다. "으응........하아..............아앗..........." 목덜미에 따끔하게 이가 들이박히고 부드러웠던 움직임이 격해지기 시작하자 기절할 것만 같이 정신이 흐릿해져온다. 민감한 피부에 닿아오는 뜨거운 숨결과 뒤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열기에 나른한 신음을 흘리며 가쁘게 헐떡이다 아플 정도로 페니스를 꽈악 움켜쥐고 귀두 끝을 비벼대며 강하게 피스톤질을 해대자 그대로 내 손과 녀석의 손안에 유색 액체를 떨어뜨렸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물에 젖은 몸을 바로 돌려세워 으스러질 정도로 끌어안아 오는 녀석을 쾌락에 젖어든 까만 눈동자로 올려보자 바로 입술을 덮어 급하게 빨아댄다. 아직도 줄어들 생각을 않고 아랫배를 찔러오는 녀석의 페니스에 아프도록 입술을 깨물고 입안을 휘저어대는 녀석을 겨우 떼어내고 단단한 등을 꼬옥 끌어안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다 시원한 체향이 베어 나오는 목덜미에 입술을 부비고 단단한 쇄골에 이를 박아 빨아들이자 흠칫 몸을 굳힌다. 뻣뻣하게 굳은 녀석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고 허리에 팔을 두른 채 까맣게 새겨진 루펜타 위에 뜨거운 입술을 계속해서 찍어누르자 답답할 정도로 옥죄던 녀석의 팔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 품안에 갇혀있던 몸이 자유를 되찾아간다. 조각가가 깎아놓은 듯 섬세한 가슴과 복부에 정성껏 키스를 하고 녀석이 하던 대로 붉은 자국을 새기며 내려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단단하게 일어선 페니스를 손에 감아쥐자 거친 숨이 귓가에 스친다. 흥분할 대로 흥분한 녀석을 손에 쥐고 한참을 망설이다 귀두 끝에 입술을 갖다대자 단단한 몸이 흠칫 굳어온다.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녀석이 까만 머리칼을 감아쥐고 떼어내려 하자 눈을 꼬옥 감고 뜨거운 페니스를 입안으로 삼켜갔다. 채 반도 들어오지 못한 페니스가 목구멍 안쪽을 찔러대자 역한 기운에 별 수 없이 뒤로 약간 물러 귀두 만을 서툴게 혀로 자극하면서 손으로 천천히 피스톤질을 해주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낮고 유혹적인 신음이 울려온다. 좀처럼 사정하지 않는 녀석 때문에 이를 살짝 세워 민감한 피부를 긁어대고 귀두 끝을 강하게 빨아주자 갑자기 얌전하던 녀석이 뒤통수를 확 끌어당겨 목구멍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온다. 입안을 가득 채우고 숨도 쉬지 못할 만큼 깊이 자신을 밀어 넣는 녀석 때문에 놀라 버둥거리다 거친 숨소리에 얌전히 몸을 맡겨버렸다. 보통 때라면 상상도 못할 행동이지만 상대가 이 녀석이라면............ ..........이렇게나 사랑하니까........ 너무 사랑해서 미칠 것만 같으니까........ 식도까지 넘어 들어오려는 듯 목구멍을 찔러대며 거칠게 움직여대는 녀석 때문에 턱이 빠질 것처럼 아프고 목구멍이 쓰려 의식도 못한 눈물이 눈꼬리를 타고 흐르지만 사랑하는 녀석의 쾌락에 젖은 신음 하나로 끝까지 버텨냈다. 기절할 정도로 토기를 억누른 채 산소부족으로 의식이 흐릿해져 갈 무렵............ 목구멍 깊숙이 뜨거운 액체가 뿌려져 식도를 타고 넘어가자마자 겨우 입안을 가득 메우고있던 페니스가 빠져나간다.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몸이 무너져 내리자 바로 겨드랑이 사이로 강한 손이 파고들어 축 늘어진 몸을 가볍게 들어올리더니 다시 단단한 품안에 빈틈없이 가두어버린다. 채 삼키지 못한 유색 액체가 가쁘게 헐떡이며 숨을 토해내는 분홍빛 입술을 타고 흐르자 가만히 손가락으로 쓸어 닦아내더니 그대로 입술을 겹쳐온다. 농밀하게 감겨오는 혀에 스륵 눈을 감는 순간.......... "폐하.........!!" 갑자기 울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와 벌컥 열리는 욕실문에 흠칫 놀라 몸을 굳히자 바로 녀석이 입술을 떼어내고 날 끌어안은 채로 뒤돌아 하얀 몸을 가려준다. "무슨 짓이냐........" 섬뜩한 목소리에 바로 고개를 숙여오는 인물은 시니안........... 다른 자였다면 바로 목이 떨어져 나갔을 만큼 밀회를 방해받은 데 불쾌감을 드러내는 황제의 반응에도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듯한 녀석을 보고 직감적으로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오늘 낮에 룬이 지껄인 소리....... '빌어먹을!!!! 벌써...........?!!' 원래대로라면 티폰이 오기 전에 몸을 씻고 침대에 누워있다 소란이 일 때쯤 아프다고 땡깡이라도 부려볼 속셈이었는데.... 녀석의 품안에서 안절부절못하다 티폰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시니안이 입을 열려는 것을 보고 급한 맘에 눈 딱 감고 미친 척 티폰의 몸에 매달려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아..............티폰......................" 그런데........... '젠장!! 썩을!!!!!' 녀석이 얼마나 목구멍을 들쑤셔댔나 잔뜩 쉬어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가 새어나간다. 발정 난 암고양이처럼 보채듯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벼대자 당황한 듯 녀석이 허리를 꼬옥 죄어온다. "으응...................." 바짝 밀착 된 채 앙탈을 부리듯 작게 몸을 비틀며 까만 눈으로 흘끔 올려보자 홀린 듯 더운 숨을 내뱉는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응? 뭐야?!! 그렇게 좋았어?' 살짝 미소를 흘리며 붉은 혀로 입술을 축이자 선홍색 눈동자가 정욕으로 들끓기 시작한다. 고개를 숙여오는 사내를 보고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눈을 감는 순간......... "폐하........" '저 자식..............!!' 낯뜨거운 광경에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쉽게 나갈 것 같지 않던 시니안의 부름에 티폰의 시선이 돌려지자 작게 이를 갈아대다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해 티폰의 귓가에 더운 숨을 내뱉으며 미친 소리를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하아.............해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대며 맞은 편에 보이는 시니안을 죽일 듯 노려보자 뭔가 눈치를 챘는지 꽤나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저런 쳐죽일........!!!!!!' 티폰이 뒤돌아있다고 아예 고개까지 들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녀석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노려보다 다시 일어서 아랫배를 찔러오는 녀석의 단단한 페니스와 엉덩이를 꽉 쥐어오는 손길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성질 급한 녀석이 엉덩이 사이로 손을 미끄러뜨려 애널 위를 자극하기 시작하자............ "으응........저 새끼가 보잖아......." 엉덩이를 지분대는 녀석의 손을 살짝 밀어내고 아랫배를 찔러대는 단단한 페니스를 복부로 슬쩍 누르며 칭얼대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티폰의 명이 귓가에 울려온다. "물러가라......." '큭........역시.........' 내게는 귀여울 정도로 무르다. 엉덩이를 주물러대며 정신 없이 목덜미에 키스를 퍼붓는 녀석에게 칭찬이라도 하듯 붉은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단단한 품안에 파고들어 포옥 안기자 귓가에 울려오는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쓸데없이 승리감에 도취돼 티폰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잿빛 사내에게 빙글거리며 약을 올려도 무안할 정도로 표정 없이 바라만 보더니 돌아서자마자 숨죽여 웃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한마디 던진 후 조용히 물러난다. "큭, 폐하........진귀한 물건은 손에 꼬옥 쥐시지 않으면 다른 자에게 빼앗기는 법입니다. 게다가 손안에 쥐고 계신다 하더라도 자주 확인해보시지 않으면 갑자기 사라져 없어진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뭐? 무슨 개소리야?!!!' 녀석의 말에 갑자기 몸을 굳힌 티폰을 의아함이 가득 담긴 까만 눈으로 올려보는 순간........ "우왁!!!!!!!!!" 갑자기 매끈한 욕실바닥에 엎어지자마자 뒤에 체중이 실려온다. "티........티폰!! 아앗........" 금새 오일이 발라져 미끈한 손가락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성감대를 긁어대며 내부를 넓혀간다. "침대에서 해!! 응? 아.......흑.........티폰!! 침대에서 하자!!" 우선 벗어나 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다. 성감대를 밀어 올리며 피스톤질을 해대는 손길에 헐떡이며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죄어대자 바로 손을 빼내고 귀두 끝을 들이민다. '헉...........' 이 자식, 반쯤 미친 게 틀림없다. 뒤에서 들어오는 건 쥐약이다. "아............" 하지 말라고 말해야 하는데........ 공포에 입이 굳어버려 바들바들 떨어대기만 하자 허리가 들리더니 데일 듯 뜨거운 게 몸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아..........흑.................." 몸을 꿰뚫고 들어오는 느낌에 떨리는 입술을 질끈 깨물자 지독한 통증을 몰고 뿌리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몸 안을 가득 채우는 사내의 페니스와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에 숨을 멈추고 정신 없이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 '안........돼...............!!' "흐윽..................." 이 녀석 앞에서 또 발광을 해버리면.............. ...........상처 입히고 말 거다. 자꾸 까맣게 흐려지는 시야와 비명을 쏟아낼 것만 같은 공포에 강하게 도리질을 치자 갑자기 부드러운 음성이 귓가에 스친다. "하아.......떨지마..........." 이미 이성이 날아가 버린 줄 알았던 녀석의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번쩍 뜨자 거칠게 뛰어대는 심장 위로 루베라를 부드럽게 쓸어준다. "떨지마..........." 떨리는 목소리와 하얀 등위로 떨어져 내리는 키스에 죄책감이 베어있어 심장을 아프게 찔러댄다. 이 녀석이 무서운 게 아니다. 녀석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두려운 것뿐이다. 날 사랑하는.........녀석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사랑해............" '알아..............' ".........너뿐이다.......내겐........" '응...........' "그러니.........거부하지마..........." 거절당할까 두려워하면서도 아프게 속삭여오는 소리에 눈을 감고 가만히 몸을 맡기자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부벼대며 천천히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아..............흑..................." 불안이나 공포 따위............개나 줘버리라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 속에 갇혀 이 녀석까지 같은 걸 느끼게 하고싶진 않다. 병신같이 떨어대기만 하면 그렇게나 가지고 싶었던 녀석을 가질 수 없다. 겨우 쥐고있는 자락을 놓쳐버리고 말 거다. 이성을 죽이고 쾌락을 쫓는 본능에 몸을 맡기자 불안으로 뛰어대던 심장이 녀석의 심장과 같은 박동으로 뛰기 시작한다. 녀석도 그걸 느꼈는지 바로 손으로 반쯤 일어선 내 페니스를 감아 쓸어대며 매끈한 등에 붉은 화인을 새겨간다. "하아...........아............티폰...........으응..............." 성감대를 긁어대며 깊숙이 밀어 올릴 때마다 헐떡이며 반사적으로 녀석의 페니스를 강하게 죄자 움직임이 격해지기 시작한다. 내 것을 감아쥐고 빠르게 피스톤질을 해대는 바람에 바들바들 떨리던 다리에서 힘이 빠져나가 몸이 무너져 내리려하자 바로 다른 손으로 허리를 감아 하얀 허벅지를 벌리더니 한계까지 밀고 들어온다.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녀석의 손안에 유색 액체를 떨구자 열기에 땀이 베어 나오는 매끈한 등위로 뜨거운 입술을 정신 없이 부벼대며 강하게 피스톤질을 계속해댄다. "하악............흐윽............그만...........아...........아앗........티폰........." 견디기 힘든 쾌감에 고개를 휘저으며 애원의 말을 쏟아내도 이미 이성이 날아가 버린 녀석에겐 들릴 턱이 없는지 통증이 느껴질 만큼 깊게 찔러 들어오는 행위만을 반복해 댄다. 신음을 내지를 기운도 없어 겨우 헐떡이며 성감대를 찔러 올릴 때마다 본능적으로 녀석의 페니스를 강하게 죄어대길 한참........ 깊이 들어올 때마다 휘어지며 땀이 베어 나오는 매끈한 등위로 깃털 같은 키스를 떨어뜨리던 녀석이 맘에 들지 않는 듯 등에 새겨진 은빛 문장을 이로 꽉 깨물어 흠칫 몸을 굳히자 허리를 확 끌어당겨 한계까지 몸을 밀어 넣고 뜨거운 욕정을 쏟아낸다. 그대로 몸이 늘어져 입술을 벌리고 부드러운 혀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의식을 놓아버렸다. Rubera(루베라) #153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에 만족스레 미소를 걸고 뒤척이다 잠결에 엉덩이를 지분대는 녀석에 놀라 번쩍 눈을 뜨니 까만 루펜타가 새겨진 단단한 가슴이 시야에 들어온다. 텅 비어버린 머리에 잠시 멍하니 누워만 있다 답답함에 작게 꼼지락거리자 누가 뺏어가기라도 할까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을 죄어온다. 질리지도 않는지 자면서도 찰싹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언제 못된 버릇이 들었는지 유이 녀석 마냥 엉덩이를 지분대다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들어 자리를 잡는 녀석의 손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따뜻한 가슴에 가만히 머리를 기댔다. 아직도 약간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칼을 보니 욕실에서 그렇게 정신을 잃고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 '유이 녀석........잘 도망쳤겠지........' 얼굴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게............마지막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분명......... 깊이 잠이 든 게 아니었는지 자꾸 뒤척이는 녀석을 가만히 쓸어주자 살짝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칼에 입술을 묻는다. 머리에 닿아오는 고른 숨결에 다시 눈을 감는 순간........... 갑자기 녀석이 몸을 흠칫 굳히더니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곤 놀라 올려보자 분노로 잔뜩 낮아진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손을 뻗어 머리칼을 쓸어보는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짙어져있다. "색이............" 하얗게 떨어져 내리는 머리칼이 시야에 스치자 그제야 숨을 죽였다. '벌써.........?!!!' 말할 기회가 없었다. 까만 색에 유난히 집착을 해대는 녀석이니 엄청 화를 낼 지도............. "그.........그게..........." 서둘러 말을 꺼내놓으려던 찰라.............. "또.........그 놈한테 돌아갈 생각이냐........." '뭐?' 뜻밖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본 핏빛 눈동자 속에 비치는 건 채 억누르지 못한 분노와................ .............질투............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그 머릿속에 박아둘 테냐!!!! 넌 내 루베라야......내 것이다!! 자꾸 그 자에게 눈을 돌리면 울며 매달려도......... 날 원망하게 되더라도........... 그 놈을.........죽여버리겠다" "...........!!" 몇 달을 함께 했다. 날 다시 살게 해 줬고 이 녀석만큼이나 날 사랑해 줬지만........ ...........보답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헤어지는데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살기 짙은 목소리로 섬뜩한 말만 쏟아내는 녀석이 원망스러 입술을 꽈악 깨문 채 노려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바락 소릴 질러버렸다. "무슨 개소리야!!! 그 자식은 날 살렸어!!! 니놈이 날 사랑한다면 원수가 아니라 은인이란 말이다!!!!!!!" "그건 그 자의 눈빛이 다른 자와 같았을 때 뿐이야. 널 보는 눈빛이 나와 같다면 누구든 눈알을 파내 후회할 만큼 처참하게 죽여버리겠다" 정신나간 소유욕에 미친 광기마저 내비치며 저주같이 끔찍스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녀석이 기가 막혀 멍하니 바라만보다 결국 화를 누르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소릴 질러댔다. "웃기지마! 이 백정 같은 새끼!!! 그렇게 항상 사람을 개미 눌러 죽이듯.....!! 그 자식이 없었으면 나도 지금 네놈 곁에 없었어!!! 벌써 썩어서............ " "닥쳐!!!!!" 분노에 격하게 파고드는 목소리와 아프게 어깨를 쥐어오는 손길에 흠칫 놀라 입을 다물고 시트를 꼬옥 움켜쥐자 시트 채로 거칠게 끌어당겨 품안에 가둔다. 큰일이다. 녀석이 날뛰어댈 때마다 이렇게 떨어대면............. 구명줄처럼 꼬옥 쥐고있던 시트가 갑자기 확 들춰져 놀란 눈을 크게 뜬 채 올려보자 분노로 짙어진 핏빛 눈동자가 그대로 쏘아져 들어온다. '젠장..........' 유이 녀석 살리려다 내가 죽게 생겼다. 이 자식 미치면 어떤 줄 뻔히 알면서 이놈의 개 같은 성깔에 빌어먹을 주둥아리 때문에......... 눈을 꽉 감아버리자 거칠게 입술을 부벼온다. 숨도 쉬지 못하게 입술을 틀어막고 거칠게 혀를 감아오는 녀석을 밀어내지 않고 품으로 꼬옥 끌어안았다. 이 녀석은........... .........집착하던 까만 색이 사라진 것보다 내가 키르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 더 화가 나는 거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두려워하던 그 때로 돌아갈까봐.............. ............무서운 거다. 사랑한다고 말해 줬는데도............. 그 땐 내가 자길 사랑한다고 그렇게나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주제에........... 다시 유이 녀석에게 돌아갈까 두려운가 보다. '바보자식...........애새끼처럼 질투는.........' 심술이라도 부리듯 입술을 깨물어대는 녀석을 얌전히 받아들여 달래주자 거칠던 키스가 부드러워진다. 결국은............ ........이렇게 소중한 주제에............ 제대로 화도 못내는 주제에............ 손에 쥔 걸 놓지 않으려고 털을 곤두세운다. 아까 살기까지 내비치며 화를 내던 일은 홀랑 잊은 듯 목이 마른 것처럼 입술에만 매달려 핥고 빨아대던 녀석이 한참만에 떨어져나가자 겨우 숨을 고르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티폰............" 지독한 소유욕을 내비치며 확인이라도 하듯 루베라 위에 키스를 해대는 녀석의 머리를 살짝 끌어안고 핏물이 베어 나올 듯한 붉은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주자 기분이 좋은 듯 움직임을 멈추고 가슴에 머리를 기대온다. "사랑해............." 내가 온전한 정신으로 한 첫 번째 고백에 녀석은 몸을 굳힌 채 반응이 없다. "사랑한다고......" 심장 가까이 머리를 기대고 있던 녀석을 꼬옥 끌어안고 계속해서 작게 속삭였다. "들리지?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 너 뿐이야....... 만약......... 유이 녀석한테도 내 심장이 이렇게 뛰어댔으면...... ........너한텐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 바보 같은 게............. .........자꾸 너한테만 뛰니까........... 3년 전부터............ 처음 널 봤을 때부터............ .........니가 아니면 안 된다니까........ .........니가 아니면 차라리 멈춰버릴 테니까........ 그러니까............ .......불안해하지마........." 허리를 꽈악 끌어안은 채 여전히 반응이 없다. 가슴 위로 떨어져 내리는 축축한 물기에 짓궂게 말을 이었다. "흐응~ 뭐야?!! 사랑한다고 매달리니까 이젠 싫어?!! 나쁜 자식, 지금까지 너 땜에 고생만 실컷 했으니까 죽을 때까지 책임져!! 밥 많이 먹는다고.....애새끼 못 낳는다고 구박하기만 해봐!! 실컷 밟아줄 테니까! 사실 너같이 포악하고 무뚝뚝하고 고집불통에 변태색골 따위를 어떤 미친놈이 데려가?!! 잘난 낯짝이랑 황제란 것만 빼면 평생 혼자 늙어 죽었을걸?!!" 미르니안이 티폰의 옆에 선 것만으로도 얼마나 주위로부터 질시를 받았는지 알고 있다. 황궁 안에서 일하는 시녀들은 물론 파티에서도 질투에 못 이겨 수근대는 소리와 따가운 시선이 향하는 걸 보았으니........ 물론 엄청난 가문에 감히 정면으로 도전하지 못하고 사그러들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좋다고 이곳에 있는 귀족가 아가씨들은 이런 얼음인형 같은 녀석에게 목을 맨다. 하지만 뭐...........내가 말한 건 여자가 아니라 사내놈이니 뻥을 치는 건 아니다. 사실 이 놈을 데려갈 미친놈이 나말고 있을 턱이 없다. 되려 죽지 않는 게 천행일 테니........... '씹, 그러고 보니 난 한번 죽었군.........' "내가 성깔이 좋으니까 너랑 같이 있어주는 거지.........알고나 있는 거야?!!" 슬쩍 내려보니 반응 없던 녀석이 자는 건 아니었는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뭐.........뭐야, 지금..........그걸 믿는 거야?' 경악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 이것도 꽤나 귀엽다. 역시 돌연변이 형제는 아닌 모양인지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시온과 닮아있다. 하긴.......내가 아는 한 지금까지 녀석이 광기와도 비슷한 소유욕을 드러내며 필사로 붙잡아 둔 것도 나 하나 뿐이었고 미쳤거나 목숨이 여러 개가 아니라면 이 냉혹하고 잔인한 녀석 곁에 있고싶다고 해서 간단히 접근할 수 있는 간 큰 여자도 없었을 터........ 미르니안도 티폰을 좋아했을 진 몰라도 귀족들의 지지였지 스스로 녀석의 곁에 설 수 있었던 게 아니다. 결국 녀석의 곁에서 버틴 건 나 하나 뿐............. 내 성깔이 좋다는 둥 정신나간 소릴 운운하는 건 좀 찔리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나 녀석에게 고분고분한 것은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게다가 어렸을 적 길이 들어선 지 이 녀석에게 성깔을 부리지 못하는 건 거의 본능에 가깝기 때문에 더욱 미칠 노릇이다. "나니까 참았지 다른 놈이었으면 벌써 옛날에 도망갔어!! 그러니까 앞으로 나한테 잘못하면............" "도망가겠단 거냐?!!!" 갑자기 이를 갈 듯 살벌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방금 전까지 기죽어 있던 녀석은 온데간데없다. 아까 이 하류님께서 기껏 한 고백에 이 녀석이 떨구던 건 눈물이 아니라 퍼대 자면서 흘린 침인가...... 의심스런 눈길로 바라보니 역시나 눈물자국은커녕 침흘린 자국도 발견할 수 없다. 오로지 내가 도망을 칠 것인지 말 것인 지에만 관심 있는 놈처럼 추궁하듯 노려보는 눈길에 울컥 화가 나 빽 소릴 질러버렸다. "아악!!!! 이 나쁜 새끼!!! 이제 다시는 말 안 해!!! 내가 미쳤지!!! 이런 놈이 뭐가 좋.....읍..........." 바로 말을 막아버리고 입술을 포개오는 녀석을 떼어내려 바르작거리고 도리질을 치다 부드럽게 몸을 쓸어주는 손길과 진한 키스에 저항을 멈추고 신음을 흘리며 녀석에게 매달리는 내 자신에게 욕설을 퍼부을 수밖에...... . . . "아이야드 저하께서 탈옥하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침소에 들은 시니안의 보고에 잔뜩 굳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티폰의 품안에서 불안을 감추지 못한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추격대를 보내시겠습니까?" 시니안의 물음에 무거운 침묵만이 침소 안을 메운다. 어제............ 욕실에서 내 낯뜨거운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진탕 뒹구는 동안 유이 녀석이 달아난 것을 오늘 아침에야 안 녀석은 미친 듯한 분노도 터트리지 않은 채 굳은 얼굴로 침묵을 유지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폭풍전야처럼 더욱 불안한................. 언제 터질지 모를 폭발에 아까부터 긴장으로 간질거리는 발가락도 꼼지락거리지 못하고 머리끝까지 시트에 덮인 채 녀석의 품에 안겨 섣불리 고개도 들 수 없는 상황......... 빌어먹을 발가락은 왜 긴장만 하면 이렇게 가려운 건지........ 욱씬거리는 엉덩이에 미간을 찌푸려가면서 간지러움에 식은땀까지 흘려댈 무렵....... "놓아줘라............." '응?' 뜻밖의 반응에 간지러움도 잊고 숨을 죽이자 낮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이번 한 번 뿐이다. 다시 돌아오면............" 섬뜩하게 이어지는 말은 귀기울여 듣지도 않고 놓아주겠다는 말에 긴장을 모두 풀어버린 채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녀석의 품안에서 꼼지락거리기 시작하자 말을 멈추고 시트를 거둬준다.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칼에 시니안이 놀라 바라보다 투정부리는 애새끼 마냥 불만스레 하얀 머리칼을 쓸어대는 티폰을 보곤 바람 빠지는 소릴 냈다가 살벌한 시선에 쫓겨 침소에서 조용히 물러난다. "언제 변하는 거지?" "두 달 후에........."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칼 속에서 까만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찾아낼 심산인지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며 지분대자 나른한 기분에 슬금슬금 잠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뭐가 그리 신기한지 하얀 눈썹도 쓸어 보고 속눈썹도 살짝 만져보던 녀석이 슬그머니 시트 안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매끈한 알몸을 쓸어온다. 몸을 오가는 부드러운 손길에 작게 미소를 걸다 입가에 와 닿는 따뜻한 숨결에 반짝 눈을 뜨자 어느샌가 입술이 맞닿을 듯 가깝다. 그대로 입술을 포개 부드럽게 혀를 감아오는 느낌에 미약한 저항을 해대다 곧 달콤한 키스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사내에게 매달려 정신 없이 혀를 섞었다. 숨이 막힐 만큼 진한 키스를 해대던 녀석이 한참만에 떨어져나가자 아쉬움에 작은 한숨이 새어나간다. 낯뜨거운 반응이 맘에 드는지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고 가볍게 입술을 찍어누르더니 너무도 자연스레 손을 미끄러뜨려 내 것을 쥐려하자 얼른 녀석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아침엔 하지 말라고 했잖아........" 얼굴을 붉힌 채 시선을 피하자 그제야 움직임을 멈춘다. 어젠 쓸데없는 오기에 시니안 앞에서 낯뜨거운 유혹을 해댔지만 수증기 때문에 시야도 흐렸고 이렇게 환한 대낮도 아니었다. 몇 번이나 몸을 섞어도.....알몸으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서로 몸을 씻어준다고 해도 아침부터 벗은 몸을 모두 드러내고 녀석과 몸을 섞을 만큼 얼굴이 두껍진 않다. 게다가 한번 허락하기 시작하면 아침마다 달려들 테니....... 가뜩이나 요즘은 밥 먹다가 눈만 마주쳐도 바로 침대로 끌려가 까무러치기 직전까지 놓아주지 않을 뿐 아니라 약 먹고 낫기가 무섭게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아 하루의 반 이상을 침대 위에서 보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대로 몸을 일으켜 시트 채로 날 안아오는 녀석을 가만히 올려보다 입밖에 내지 못했던 의문을 겨우 불만스레 꺼내놓았다. "원래 이렇게 자주 하는 거야? 도대체 하루에 몇 번을 해대는 거야?!!" 쾌락을 얻기보단 사랑하니까......옆에 있으니 자꾸 만지고 싶어한다는 건 안다. 하지만 횟수 따위 알 턱이 없다. 그건 유이 녀석한테서조차 배우지 못했으니........ 원래 이렇게 눈만 마주치면 침대 위를 구르고 밤을 홀딱 샐 때까지 시달리는 건지.......... 아니면 이 닦고 밥 먹는 것처럼 하루에 세 번? 하루에 한 번인가........? 아니, 일주일에 한번? 어쩌면 한 달에 한번일 지도.......... "큭..........."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날 가만히 내려보던 녀석이 먹은 것도 없이 사래라도 걸렸는지 큭큭대며 몸을 떨더니 잠시후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황성 동쪽엔 별궁이 있다" '앙? 무슨 뚱딴지같은..........'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자 계속 말을 이어간다. "황제의 루베라와 후궁들이 머무는 곳이지.......황비를 제외하곤 황성 안에 머물 수 있는 루베라와 후궁은 드물어" "뭐?!!" 하지만 난.......... 루베라를 새기기 전인 3년 전에도......루베라를 새긴 2년 전에도 쭉 황궁 안에 있었다. 티폰의 침소에 거의 갇혀있긴 했지만....... "황비도.........황제의 침소 안엔 함부로 들 수 없다. 황비를 맞으면 침소는 따로 마련되지. 황제의 침소 바로 옆에........." '황제의 침소.........옆?'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번쩍 들어올리자 잠시 쓴웃음을 짓는다. "그래.....네가 지난 한달 간 지내왔던 침소가 황비를 맞을 침소였다" 어쩐지....... 시온과 케레스와 함께 탐험을 한답시고 황성 안을 헤집고 다녔을 땐 본 적 없던 화려한 침소였다. 새로 꾸민 듯한 바이올렛 일색의 아름다웠던 침실........ 그곳이 미르니안이 황비가 된 후 지낼 예정이었던 황비의 침소..... '그런데 왜 나한테...........' "선대 황제는 별궁이 가득 찰 정도로 후궁이 많았지...... 하지만 난..........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 황비도.........들이지 않아........ 루베라도 너 하나 뿐이다. 너만 있으면 다른 것들은 필요 없어...... 그러니 내가 포기한 황비와 후궁을 대신할 의무가 네게도 있는 거야......" "의........의무? 아무리 그래도 난 애 못 낳아!!" 곤란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자 장난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큭, 황제에게 몸을 여는 의무 말이다........" "뭐?!!" 경악한 시선으로 올려보자 얄미울 정도로 진지한 표정....... 적어도 아이를 낳으라는 터무니없는 억지는 아니니 감히 반박도 하지 못 하고 어쩐지 스물스물 타고 오르는 불길한 느낌을 애써 꾹꾹 누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그러니까 그게 하루에 얼마나........" "내가 원하는 만큼............" Rubera(루베라) #154 "그.....그러니까 그게 하루에 얼마나........" "내가 원하는 만큼............" "누.........누굴 죽이려고.........!!!!" 울컥해서 올려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혼잣말처럼 툭 말을 던진다. "후궁을 들이면 네가 더 편해지겠지만........." "시........싫어!!" 생각해 볼 틈도 없이 튀어나간 말에 녀석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간다. "그럼 역시 네가 모두 감당할 수밖에........" 침대에 눕혀지자마자 심각한 분위기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자 바로 허리를 낚아채 품안으로 끌어당기더니 바르작거리는 몸에 체중을 실어온다. "결국............... ..............이렇게 예쁜 몸도 날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니.........." "헉!!!!!" 갑자기 시트를 확 걷어내는 통에 하얀 나신이 아침 햇살에 전부 드러난다. 확실히 예쁜 몸.......... 몇 일간 호의호식한 덕인지 빛을 반사할 정도로 하얀 몸에 적당히 살이 붙어 부드러운 굴곡과 함께 날렵한 선이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이룬다. 재료를 알 수 없는 고급 입욕제 탓인지, 타고난 것인지 밤마다 시달렸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손이 갈 만큼 잡티하나 없이 투명한 피부 위에 입술을 부비며 만족한 듯 매끈한 몸을 꼼꼼히 훑어보더니 입술을 열어 낮은 목소리를 내보낸다. "들여라..........." "예, 폐하........" 벗은 몸을 오가는 손길에 꼼지락대며 작게 할딱이다 갑작스런 말에 시선을 맞추자 고개를 숙여 부드럽게 입술을 빨더니 작게 속삭여온다. "예물이다........" "응?" "원래대로라면 루베라를 새긴 후 관례대로 귀족들 앞에서 예식을 치르게 돼있지" "예식?" "그래.........2년 전엔 황제가 아닌 황태자 신분으로 새겼기 때문에 미루어두었고........ 지금은 널 노리는 자들이 있어 귀족들 앞에 내보이는 건 위험하니...... 2년 동안 주인을 기다려온 예물을 미리 주마........" 말을 마치자마자 시종들이 고개를 숙인 채 침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녀석의 품안으로 파고들자 바짝 끌어당겨 하얀 몸을 가려준다. 꽤나 무거운 듯 힘겹게 뭔가를 침대 맡 테이블 위에 놓아두고 돌아서는 시종들의 기척에 한창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흑.........." 허벅지 안쪽으로 파고들어 연한 살을 쓸어대는 손길에 무의식적으로 신음을 흘리고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올려보자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큭, 예물은 루베라와 첫 밤을 보내면서 건네는 거다......." '뭐?!!!!!' "바.....밤이라니?!! 지금은 아침이란 말야!!!!! 게다가 처.....첫날밤은 개뿔......... 그.......그딴 건 벌써 2년 전에.........." 예물이란 건 엄청 값나가는 걸 테니 받고싶긴 하지만 아침부터 시달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눈을 굴려봐도 벌거벗은 몸으로 녀석의 품안에 갇힌 채 빌어먹게도 넓은 침대를 벗어나기란 여의치 않다. "티......티폰.....저......정무 보러 안 가? 우.......우왁!!!! 저....저리 비켜!!! 뭐 하는 거야?!!! 이 변태자식!!! 어딜 만져!!!!! 아악!!!! 뭘 바르는 거야?!!!!" "진주가루다........." '헉, 아까워............가 아니잖아!!!!!' 남의 몸을 멋대로 뒤집어놓고 은빛 가루가 반짝이는 향유를 하얀 피부 위에 잔뜩 발라댄다. 마사지하듯 부드럽게 쓸어대는 손길과 머릿속이 확 맑아질 만큼 기분 좋은 향기에 버둥거림을 멈추자 녀석도 기분이 좋은 지 나른한 목소리를 귓가에 흘려낸다. "원래는 황제에게 보이기 전 이렇게 시종들이 몸시중을 들지만......." 목과 어깨를 조근조근 주물러 긴장을 풀어주고 매끈한 등과 팔다리에도 꼼꼼히 손을 미끄러뜨려 은빛 액체를 바르더니 부드러운 엉덩이를 주물러대며 모르는 사이 민감한 성감대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네 몸에 함부로 손을 대면 아무리 몸시종이라 해도 죽이고 싶어질 테니............" 바로 몸이 돌려져 더운 숨을 몰아쉬며 몽롱한 눈으로 올려보자 가슴과 복부에 향유를 발라 가볍게 쓸어주고 마찬가지로 매끈한 다리에도 부드러운 손길이 오간다. 나른하다....... 구석구석 몸을 오가는 손길에 꼼짝도 하기 싫을 만큼 기분이 좋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스륵 눈을 감자 바로 입술을 포개 혀를 감아온다. 그렇게 농도 짙은 키스를 받으며 넋을 놓고있는 사이........ '흐윽..............' 갑자기 길다란 손가락 하나가 약간의 통증과 함께 내부로 미끄러져 들어오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눈을 번쩍 떴다. 태평하게 마사지나 받고 딥키스에 늘어져있을 때가 아닌데.......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벗어나려 하지만 쾌락에 눈을 뜨기 시작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기분 좋은 향과 몸 안으로 스며든 향유에 노곤하게 풀린 몸에서 어쩐지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게다가........ "하아...........으응............아.............." 뭔가 평소와 다르다. 손가락이 내벽에 미끌한 오일을 발라대며 움직일 때마다 가는 모래로 긁어대는 듯 뭔가 까끌한 이물감과 함께 기절할 것만 같은 쾌감이 타고 오른다. "흑..............무슨................아............하악......." 성감대를 찔러대며 밀어 올리자 참기 힘든 느낌에 까무러칠 것만 같다. 어느샌가 숫자를 늘린 손가락이 집요하게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길이 잘든 몸이 쾌락을 쫓아 멋대로 반응을 해대기 시작한다. 성감대를 긁어대며 깊이 밀어 넣을 때마다 손도 대지 않은 페니스가 단단하게 일어서고 헐떡이는 신음이 귓가를 때린다. 새하얀 시트를 찢어버릴 듯 움켜쥐고 진주가루가 섞인 향유가 발라져 몽롱한 빛을 뿌리는 나신을 유혹하듯 꿈틀거리며 깊이 파고들어 피스톤질 해댈 때마다 손가락을 강하게 죄자 갑자기 내부에서 손가락이 모두 빠져나가 버린다. "하악...............으응.............." 아침엔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도 다짐을 하고선 이미 달아오른 몸을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멈춰져 만족하지 못한 몸에 작게 투정을 부리자 사내가 숨죽여 웃으며 벗어날 틈도 없이 허벅지를 쥐어 벌리고 이미 단단하게 일어선 페니스를 좁은 애널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한다. 평소 녀석이 들어올 때마다 느껴지던 통증마저 희미해질 만큼 강한 쾌감에 이성을 날려버린 채 미친 듯 사내의 몸에 매달리자 단번에 뿌리까지 파고든다. "하아...............흑............" 깊이 들어와 움직임이 없음에도 뭔가가 내벽을 자꾸 긁어대는 느낌에 도리질을 치며 재촉하듯 페니스를 죄어대도 거친 숨만 토해낼 뿐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머릿속을 휘저어대는 쾌감과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초조함에 팔을 둘러 사내를 꼬옥 끌어안고 시원한 향이 베어 나오는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며 한치 틈도 없이 맞물린 하체를 슬쩍 비벼대자 참기 힘든 지 낮은 신음이 귓가에 울려온다. "하아........큭.........조금만 참아......." "으응..................." 상체를 움직이는 녀석 때문에 내부에 들어찬 페니스가 꿈틀대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기다리란 말에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짓자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침대 맡으로 손을 뻗어 뭔가를 집어내더니 바로 양 손목에 채운다. 묵직한 느낌에 시선을 돌리려하자 바로 목에 하나 더 채워지고 이어서 발목에도 같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붉은 루비를 중심으로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힌 정교한 금장식에 넋이 나가있는 사이 손가락마다 색색의 반지를 끼우고 작은 루비조각이 짤랑거리는 머리장식에 이곳저곳 알 수 없는 장식들로 잔뜩 휘감아놓는다. 몸에 진주가루가 섞인 오일을 발라댄 것만으로도 모자라 얼굴과 머리칼에도 금가루를 잔뜩 발라 마치 보석으로 만든 인형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 "흐윽.........." 몸에 바르고 마사지를 해주던 향유를 손에 잔뜩 묻히고 갑자기 반쯤 일어선 내 것을 쥐어오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었다. 바로 입술을 포개고 빨아대면서 사심이 없는 것처럼 마사지라도 하듯 페니스를 쓸어대더니 어느샌가 입술에서 떨어져 귓가에 더운 숨을 불어넣으며 귓불을 깨물어댄다. 혀를 굴리고 이로 잘근잘근 깨물어대는 느낌에 헐떡이며 바르작거리자 사내의 입술이 떨어져나가자마자 따끔한 느낌이 귓불을 파고든다. "아파........" 작게 신음을 흘리며 꿈틀대자 몸 안에 가득 들어찬 페니스가 성감대를 찔러댄다. 쾌감에 몸을 떨어댈 때마다 몸에 잔뜩 휘감아진 금장식과 보석조각들이 부딪치며 유혹적인 소리를 만들어낸다. "으응..........." 사내에게 길들어진 몸이 쾌감을 끌어내려 멋대로 사내의 페니스를 조여대자 귓가에 거친 숨이 부딪쳐온다. "아침에 해도 되는 건가..........?" 그러고 보니......... 헐떡이며 놀라 시선을 돌리니 향유가 발라져 유색 빛을 띄는 하얀 나신이 녀석의 조각 같은 단단한 몸체와 한치 틈도 없이 결합돼 원래부터 하나인 듯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온몸이 붉어져 사내를 받아들인 채 쾌락에 반응해대는 몸을 가리려 시트로 손을 뻗는 순간....... "아..............흑.........." 생각할 겨를도 없이 페니스를 슬쩍 밀어 올리는 녀석 때문에 시트를 그러쥐고 도리질을 치자 내벽을 긁어대며 단번에 내부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뱃속을 태워버릴 듯한 열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리자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추락해버린 듯한 기분............ 아직까지 열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몸이 고통스러 짓궂은 행동만 하는 녀석을 원망스런 눈으로 노려보자 얼굴 곳곳에 키스를 해대며 다시 거대한 페니스를 좁은 내부로 강하게 밀어 넣는다. 숨도 쉬지 못할 쾌감에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지르며 사내의 몸을 꼬옥 끌어안자 바로 입술을 막아 신음을 삼켜버리고 잡아먹을 듯 연한 살점을 빨아대더니 잔뜩 낮아진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온다. "대답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사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만족한 듯 작게 미소를 띄우더니 바로 하얀 엉덩이를 쥐어 벌리고 귀두 끝까지 물러나 뿌리까지 깊숙이 밀어 올린다. 통증 따위 느끼지 못하는 걸 알고 있는 듯 처음부터 격하게 움직여대는 바람에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깊이 밀어 올릴 때마다 정신 없이 바르작거리며 단단한 몸에 달라붙자 갑자기 손을 뻗어 아프도록 부풀어오른 페니스를 감싸쥐고 빠르게 피스톤질을 해댄다. 향유로 흠뻑 젖어 미끌거리는 손으로 귀두를 비벼대고 아프도록 쥐어오는 손길에 허리를 활처럼 휘고 녀석의 페니스를 강하게 죄자 눈앞이 새하얗게 변할 만큼 강한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오른다. 평소보다 이르게 녀석의 손에 유색 액체를 떨어뜨리자마자 정신 없이 몸 안 깊숙이 파고드는 녀석을 뒤로하고 그대로 늘어져버렸다. . . . 눈을 뜨자 여전히 밝은 빛이 시야로 파고든다. "티폰........?" 내려보니 몸 안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부드럽고 새하얀 천으로 몸을 깨끗이 닦아주고 있었다. 이미 녹초가 되어 널부러진 몸에 작게 한숨이 나온다. 내가 하는 유혹엔 이 얼음인형 같은 녀석도 우스울 정도로 간단히 녹아버리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 모양......... 온몸에 새겨진 붉은 화인과 움직일 때마다 통증과 함께 밖으로 새어나오는 유색 액체를 보니 그렇게 기절하고도 몇 번이나 해댄 게 분명하다. 내 몸을 꼼꼼히 닦아주고 자신의 몸도 깨끗이 닦은 후 가만히 바라만 보고있는 내게 다가와 입술을 찍어누르며 부드럽게 키스하더니 홀린 듯 보석인형처럼 향유에 반짝이는 하얀 동체에 손을 미끄러뜨려 구석구석 쓸어댄다. 아침부터 그렇게 낯뜨거울 정도로 끈적하게 구르고도 부족한지 미련이 잔뜩 남은 듯한 손길에 심술이 나 시트를 확 끌어올려 몸을 가려버렸다. 역시나 엄청난 눈요기를 빼앗긴 듯 불만 가득한 표정에 붉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바라보는 녀석이 기가 막혀 꽥 소릴 질러버렸다. "다른 놈 앞에선 손목만 보여도 미쳐 날뛰는 주제에 니놈 앞에선 홀랑 벗고 있으란 게 말이 돼?!!!!" "어차피 내 몸이다!!" "우....웃기지마!! 내 몸이야!!" 시트를 걷어내려는 녀석을 보고 놀라 필사적으로 시트를 움켜쥐고 매달리는 순간 다행히 시종의 목소리와 함께 조용히 문이 열린다. 티폰의 옷시중을 드는 시녀들........ 역시나 타인이 들어서자마자 홀랑 벗기려는 시도를 간단히 포기하는 녀석을 보고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재빨리 침대 끝으로 도망가 시트를 둘둘 말고 바라보자 푸른 옷을 입은 시녀들이 다가와 녀석에게 꽤나 잘 어울리는 붉은 옷으로 아름다운 몸체를 가려준다. 입는 순서도 기억 못 할 만큼 복잡한 옷에 혀를 내두르는 사이 시녀들이 소리 없이 물러나자마자 뒤돌아서 날 찾는 듯 넓은 침대를 이리저리 훑어보다 눈이 딱 마주치자마자........... "이리와......." 키우던 똥강아지를 부르듯 손을 내밀며 재촉을 하자 울컥해서 노려봐도 묵묵부답, 붉은 시선만을 내게 맞춰온다. 뚫어버릴 듯 눈도 꿈쩍 않고 바라보는 시선에 이리저리 눈을 피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차마 입 밖으론 내지 못할 갖은 욕을 속으로 다 해가며 비척비척 다가가자 속이 꼬일 정도로 간단히 시트 채 내 몸을 번쩍 들어올려 품에 가둔다. 당연한 듯 시트 속으로 파고들어 벗은 몸을 지분대는 손길에 작게 궁시렁 대면서도 어린아이처럼 사내를 꼬옥 끌어안고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자 달아나기라도 할까 숨이 막히도록 몸을 죄어온다. "무거워........" 아무리 좋아한다지만 묵직한 느낌과 움직일 때마다 짤랑거리는 금장식에 잠시 미간을 찌푸리자 귓가에 조용조용한 음성이 파고든다. "지금은 예물만 건넸지만.............반역자들을 도려내면........가장 화려한 예식을 치러주마...... 크리올라의 황제를..........날 가진 루베라가 누구인지 대륙 전체에 알릴 만큼.........." '그런 건..........' "필요 없................" 안쓰러운 눈빛에 삐죽거리며 말을 뱉어내는 순간 바로 부드럽게 입술을 포개 혀를 감아오는 녀석을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Rubera(루베라) #155~156 -155- "시온은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거야?" "예........" "하아..........." 벌써 2주가 넘었다. 게다가 시온을 찾아보겠다고 유이 녀석이 탈옥한 후로 나흘......... 애초에 기억을 잃은 티폰이 날 알아볼 새라 몰래 처리할 요량이었는지 시온이 약의 출처를 알아보러 떠난 것은 유이 녀석만이 알고 있었지만 결국 티폰이 기억을 되찾아 뒤늦게 알아채고 추적했을 땐 이미 행방이 묘연한 상태........ 유이 녀석도 소식이 없고......... '설마..........진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뭔가.......... ........틀어지고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걱정스레 바라보는 케레스를 뒤로하고 밝은 빛이 들어오고 있는 창가로 다가섰다. 지하감옥 안에 미끼까지 준비하고 덫을 쳐 두었지만 그동안 그렇다할 성과도 보이지 않았다. 꽤나 신중한 녀석이었는지............ 아니, 거의 2년 간이나 숨죽이고 기회를 엿본 것으로 보아 상당히 신중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분명......... 쉽사리 꼬리를 드러내지 않을 심산......... 사실상 감옥에 갇힌 루베라가 선대 황제 암살사건의 진상을 모두 실토했다면 진작에 티폰이 황성을 뒤엎어 2년 전과 같은 끔찍한 살육을 저지르고도 남았을 터.......... 어떠한 처분도 받지 않고 단순히 지하감옥 안에 방치되어있는 루베라와 침묵을 지키고있는 황제의 행동에 굳이 움직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건지도........... 루베라가 기억을 잃었다 생각해 안심하고 있다면 3달 전처럼 무턱대고 손을 써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아니......... 신중한 녀석이니 후환을 없애기 위해 황제 암살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루베라를 분명 죽이려 들 거다. 그 때를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장기전이 될 수도...........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응?' 푸른 하늘을 맴돌고 있는 익숙한 은빛에 거대한 창을 벌컥 열고 발코니로 나가자...... "삐익~" "피이!!!!!!" 팔을 내밀자 몇 번 날갯짓을 하더니 바로 내려앉는다. 두텁고 소매가 긴 옷이 이럴 땐 유용한 모양...... 팔 위에 내려앉은 은빛 새는 그동안 꽤나 자라 한 팔로 지탱할 수 없을 만큼 무게가 나간다. 하얀 머리칼을 부리로 쪼아대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녀석을 빙글대며 바라보고 있는데..... "타니안은 사람을 따르지 않는 걸로 아는데............." "응?" 고개를 올려보니 케레스가 다가와 의아한 눈빛으로 피이를 바라본다. "이건..........." "아, 케레스!! 그거!!!!" 어느 틈에 피이의 발목에 매어있던 작은 종이를 풀어 펴보는 케레스에게 손을 뻗어보지만 이미 늦은 모양...... 분명 유이가 보낸 듯 한데.......... "뭐.......뭐라고 써있어? 케레스.......응? 시온은 찾았데?" 어차피 이 세계의 꼬부랑 글씨는 읽지 못한다. 케레스에게 매달려 옷자락을 잡아당기자 종이에 쓰여있는 글을 보고 점점 표정이 굳어지더니 불만스레 삑삑대는 피이를 쫓아내고 허리를 끌어당겨 침소로 들여놓자마자 바로 창을 닫아버린다. "뭐야?!!! 케레스!!!" 골이 잔뜩 난 표정으로 올려보자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뱉는다. "나흘 후에 찾으러 오겠다고...............도대체 누가 이런 글을..........!!" '역시 유이 녀석이...........' "하항.........피이!! 너무 늦어버렸네........" "뭐?!!!!" 뜻밖의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어느샌가 테라스를 통해 창을 열고 침소 안으로 들어선 녀석은....... "유이!!!!!" "키르!!! 아악!!! 네.......네놈!!!!!!!" 빙글거리며 날 바라보던 녀석이 갑자기 기괴한 비명을 질러대며 살기를 띈 채 검을 뽑아드는 케레스 노려본다. "암살범인가?" "미친놈......또 그 소리냐?!! 그건 네놈이겠지!! 저 새끼가 왜 여기 있는 거야?!! 키르한테서 떨어져!!!!!!" 허리춤에서 장검을 빼드는 유이 녀석을 보고 케레스가 표정을 굳힌 채 날 등뒤로 숨긴다. 안에서 소란이 일면 밖에서 병사들이 쏟아져 들어올 터......... 티폰이라도 들이닥치면............ "케........케레스!! 저 자식 암살범 아냐!! 내 파트너야!! 응? 저번에 말했지? 저 녀석이 그 때 나 살린 놈이야......." 검을 쥔 케레스의 손을 움켜쥐고 옷자락을 끌어당기며 다급하게 말하자 곤란한 듯 날 내려본다. "하지만, 저 자는........." "아악!!! 뭐야?!!! 키르!! 저 자식, 아는 놈이야? 그 손 치워!!!!" 케레스의 말을 끊고 화가 난 듯 버럭 소릴 지르는 유이 녀석에게 시선을 돌려 말을 꺼냈다. "이 자식, 조용히 좀 해!!! 내 호위란 말야!!!" "뭐? 니 호위는 시니안이란.............." "원래는 케레스였어. 시니안 동생....." "동생? 어쩐지 재수 없게 닮았다 했더니............그럼, 저 미친놈 주인이란 게 키르 너였단 말야?!!!!" 꽥지르는 소리에 흠칫 놀라 바라보자 왠지 뭔가 상당히 분한 듯 이를 뿌득 갈며 케레스를 노려본다. "쓸데없는 걸 붙여뒀군........." 작게 중얼대며 이를 갈던 녀석이 갑자기 얼굴을 펴고 빙글대며 성큼 다가선다. "보고싶어서 왔어, 키르.....이리 좀 나와봐" "유이......" 발걸음을 옮기려하자 케레스가 바로 앞을 막아선다. 경계를 늦추지 않는 케레스가 내 앞을 가로막고 비켜서지 않자 녀석이 잠시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다 다시 내게 손을 뻗어온다. "그 동안 잘 지냈지? 어디 아픈 덴 없었어? 머리칼이.......또 약 먹은 거야?" "응........" "그 빌어먹을 돌팔이 자식!! 내가 약 내놓으라 할 땐 없다고 발광을 해대더니........." 다시 살벌한 표정으로 이를 갈아대며 욕설을 내뱉는 녀석에게 흠칫해 뒤로 물러서자 가면이라도 쓴 것 마냥 금새 표정을 바꾸고 빙글대며 내게 시선을 던진다. 어쩐지 평소완 다른 녀석이 수상해 케레스의 옷자락을 꼬옥 쥐고 바라보니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내게 손을 내밀어온다. "하아.......맛있는 거 줄게. 이리 좀 나와봐. 응?" 애새끼 꾀듯 하는 녀석을 울컥해서 노려보자 한술 더 떠 능글맞은 미소까지 씨익 지어 보이는 게........... 갑자기 내가 어렸을 적 모르는 아저씨가 먹을 걸로 꾀어도 절대 따라가지 말라고 한 어머니 말씀이 떠오른다. 이제 생각해 보니 저런 녀석을 말했던 듯........... 능글거리는 낯짝에 주먹을 박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 참고 툭 말을 던졌다. "시온은? 시온은 찾은 거야?" "그게 말야........그 자식.........." "응?" "하아...........찾아보긴 했는데.........." "뭐야?!! 확실히 좀 말해!!!!" 녀석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과 자꾸 잦아드는 목소리가 답답해 말릴 틈도 없이 케레스 뒤에서 나와 녀석에게 다가서는 순간............. 빙글거리던 녀석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내 손목을 확 낚아채 자신의 품안에 가두고 눈 깜짝할 새 허리춤에 매어둔 주머니를 던져 검 끝을 찔러 넣자 퍽하고 터진 주머니에서 하얀 가루가 통째로 쏟아져 케레스에게 부어진다. "케레스!!!! 무........무슨 짓이야?!!!!" 시야를 가린대다 내가 꼼짝도 못하고 유이 녀석의 품안에 들어가는 바람에 공격할 기회도 잡지 못한 케레스가 알 수 없는 가루를 들이켰는지 그대로 무너져 내리자 유이 녀석이 킥킥대며 장난스레 툭 말을 내뱉는다. "킥, 이건 내 융통성이다!! 이걸로 빛은 갚았으니 다음에 볼 땐 복수하기 없기다!! 큭, 뭐...볼 일도 없겠지만........" "유이!!!!!!" "하아........죽이진 않았으니까 날뛰지마. 시간 없으니까 빨리 대답해! 나랑 가자............." "무슨........."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부벼대는 녀석에 흠칫 놀라 버둥거리며 밀어내도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바......바보자식!!! 티폰이........!! 아...........하지마..........!!" 초조함에 도리질을 치며 입술을 피하자 귓불을 꽉 깨물고 부드러운 혀를 귓속에 밀어 넣어 민감함 부분을 자극해댄다. 멋대로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신음에 얼굴을 붉히고 벌컥 화를 내려던 순간 녀석이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 온다. "대답해......."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싫어.........' 이젠 떨어지고 싶지 않다. 녀석의 곁이 아니면............. 가만히 고개를 휘젓자 아프도록 몸을 죄어온다. "하아...........미안........." '무슨............?!!'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자마자 하얀 천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아 놀라 바르작거린 것도 잠시.......... 그대로 힘없이 늘어지자마자 몸이 번쩍 들리더니 어딘가로 이동하는지 늘어진 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정신을 잃는 순간............ 분노한 사내의 비명 같은 절규가 귓가에 울리는 듯 해 무의식중에 몸을 움칠 떨자 구속하듯 몸을 강하게 죄어 품안에 끌어안는다. . . . "으응..............."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바르작대자 따뜻한 손으로 벗은 등을 가만히 쓸어준다. '티폰............?' 몽롱한 정신에 의심 없이 단단한 가슴에 파고들어 뺨을 부비자 잠을 자던 사내가 간지러운 듯 몸을 뒤척인다. 부시시 눈을 뜨자 왠지 모를 위화감....... 품에 안기면 언제나 눈에 들어오던......... .........까만 각인이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화려한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자 벗은 몸이 그대로 눈앞에 드러난다. "이.........이 새끼.........!!!!" 기가 막힌 상황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아침에 티폰이 침소를 나서기 전 꼼꼼하게 입혀주었던 복잡한 옷은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홀랑 벗겨져 마찬가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유이 녀석의 품안에 안겨있었던 것........ 태평하게 잠을 퍼대자던 녀석이 뭔가 허전한지 침대 위를 더듬어대다 이를 바득바득 갈아대며 노려보던 내 허리를 강하게 끌어당겨 품안에 넣는다. "이익.........!!!" 분노에 부들부들 떨어대다 냅따 발을 날리자 자고있던 녀석답지 않게 가볍게 발목을 움켜쥐고 엉덩이를 끌어당겨 몸을 바짝 밀착시키더니 잠에 취한 목소리로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하아.....키르....너 없어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어. 잠깐만 얌전히 있으면 안 돼?!!" 피곤한 목소리에 잠시 멈칫하다 엉덩이를 쓸어대며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는 녀석을 보곤 다시 붙들리지 않은 나머지 발을 그대로 날려버리자 이번엔 제대로 복부에 들이박힌다. 헉하고 숨 들이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녀석의 품을 빠져나와 시트로 몸을 가렸다. 예전과는 다르다. 유이를 좋아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건 티폰이다.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을 해대는 불안정한 정신으로 밤에 따뜻하단 핑계를 대가며 유이 녀석의 체온을 빌려 잠이 들던 때와는 다른 거다. 게다가 지금은 루베라까지............. 알몸으로 비벼댔으니 분명 티폰이 알아챘을 텐데 미쳐 발광을 해댈 녀석을 생각하니 까마득하다. 재빨리 주위를 돌아보니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긴 하지만 황성만큼 화려한 침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옷은커녕 비슷한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젠장.........!!!' 시트를 두른 채 침대에서 내려서 커다란 문으로 향하자 갑자기 뒤에서 덥썩 몸을 끌어안는다. "유이!!!!!!" 벌컥 화를 내도 소용없다. 버둥거리는 몸을 간단히 제압하고 귓불을 깨물어대 고개를 휘젓자 하얀 대리석 바닥 위에 붉은 보석이 떨어져 내린다. "아!!!!!" 핏방울 모양의 작은 루비.......... 티폰이 한쪽 귀만 뚫어 박아 넣어준.........예물 중에 유일하게 몸에 지니고 있던 보석이었다. 벗은 등에 정신 없이 키스를 해대며 시트 안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부드럽게 페니스를 감아쥐는 손길에 바닥에 떨어진 붉은 보석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굳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친구라고 했잖아........" "............미안.........." '왜 자꾸 미안하단 말만 하는 거야?!!!!' 녀석답지 않은 모습에 미간을 찌푸리며 밀어내려 하자 급하게 시트를 벗겨내더니 페니스를 감아쥔 손을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한다. "흐윽...........아........무슨 짓........?!!! 하지마......!!" 그제야 도리질을 치며 발버둥을 쳐대도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으로 강하게 몸을 옭아매고 부드럽게 피스톤질을 해댄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흥분한 몸이 녀석이 주는 쾌락에 반응을 하자 어느샌가 단단하게 일어선 녀석의 페니스가 연한 엉덩이 사이로 들어와 거칠게 비벼진다. 녀석의 부드러운 손놀림에 흐느끼듯 신음을 흘리며 아플 정도로 허리를 옥죄고 있는 녀석의 팔을 바들바들 떨려 힘도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움켜쥐고 밀어내도 풀릴 생각을 않는다. "흑............." 하얀 목덜미에 키스를 해대며 부드러운 피부에 이를 박아 넣던 녀석이 아프도록 부푼 페니스를 감아쥔 채 빠르게 쓸어 올리자 귀두 끝에 맺힌 유색 액체가 바닥으로 점점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도 계속해서 엉덩이에 비벼지던 녀석의 단단한 페니스가 침입을 거부하는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서려는 듯 애널 위를 찔러대자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온다. "흑, 싫어..........하지마..........하지마............" 녀석이 아님에도 멋대로 반응해대는 몸 따위........... 마음은 죽어 가는데.......쾌락에 즐거워하는 몸 따위........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머리를 휘저으며 버둥거리다 바들바들 몸을 떨어대며 앵무새처럼 중얼대자 흠칫 굳어버린 녀석이 아프도록 몸을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여온다. "하아......미안.......키르.........안지 않을게. 니가 느낀 게 아니야. 내가 멋대로 만져서 억지로.....다 내 잘못이니까............울지마........." 어느샌가 바닥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눈물에 몸을 굳힌 녀석이 움직임을 멈추자 허벅지를 타고 하얀 액체가 흘러내린다. 녀석의 팔에서 힘이 빠지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아 바닥 위에 떨어진 붉은 보석을 쥐고 훌쩍이는 사이, 시트로 몸을 감싸 가만히 품에 안아준다. 주체할 수 없이 몸을 떨어대며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다 몸에 와 닿는 녀석의 손길에 흠칫 놀라 몸부림을 쳐대는 순간 상처받은 녀석의 바이올렛 눈동자가 시야에 쏘아져 들어왔다. "이제................... ............울리는 건 나인 거냐........" 아프도록 심장으로 파고드는 목소리에 눈물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이렇게나 이 녀석을 좋아했나 보다. 이런 표정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을 보면......... 다시 뻗어온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얌전히 품에 안기자 가늘게 떨리는 몸을 꼬옥 끌어안고 눈에 띄게 안심하는 녀석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내 몸을 억지로 가지려고 한 녀석인데도.............뿌리칠 수가 없다. 한참을 망설이다 녀석의 손을 가만히 잡아주자 귓가에 부드럽게 키스를 해주곤 조용히 속삭여온다. "난..................아직 모르겠어....... ..........어디까지 널 사랑할 수 있을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아........ 그러니............. 내 사랑도 끝난 게 아냐........... 끝을 보지 못했으니까............ 아직은............아냐........ .........그러니까................. 싫다는 말은...........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마........." -156- "난..................아직 모르겠어....... ..........어디까지 널 사랑할 수 있을지...........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아........ 그러니............. 내 사랑도 끝난 게 아냐........... 끝을 보지 못했으니까............ 아직은 아냐........ .........그러니까................. 싫다는 말은.........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마........." "유이..........." 널........사랑하지 않는 게 아냐....... 그 녀석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억지로라도 갖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큭, 그럼 날............원망하겠지?" 평소완 달리 잔뜩 풀이 죽은 녀석에 왠지 화가 치밀어 바락 소릴 질러 버렸다. "미친놈!!! 당연하지!! 빌어먹을!!! 어딜 함부로 만지고 지랄야?!!! 이 새끼 발정기 아냐?!!!" 실컷 참았던 분을 터트리자 잠시 굳어있던 녀석이 킥킥대며 말을 잇는다. "킥, 그래도 미친 황제놈에 비하면 점잖은 거 아냐? 이것 봐.........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영역표시 하난 화려하게 해뒀군..." 심장 위에 새겨진 루베라를 가만히 쓸어보다 티폰이 하얀 목덜미 위에 확 띄도록 남겨놓은 붉은 화인을 이로 꽉 깨물어 자신의 흔적을 덧씌운다. "이 새끼, 무슨 짓이야?!!!" 따악!!!!!!!!! "흑!!" 꽥 소리치며 녀석의 머리통을 거세게 쥐어박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불만스레 입을 놀린다. "왜 나만?!!!! 그 영감탱이는 더한 것도 했잖아!!!" 티폰에 뒤지지 않을 만큼 어린아이 같은 질투를 내비치는 녀석을 기가 막혀 바라보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말을 던졌다. "애새끼 같긴........그 자식이 너랑 같아?!! 넌 그 자식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어!!" 확실히............... 이렇게 부드러운 녀석은 상대를 죽이고 자신도 무너질 만큼 격하고 광기로 가득한 사랑 따위..........할 수 없을 테니....... "큭, 그럴지도...................." "뭐?!!" 뜻밖에 순순히 인정하는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하얀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 올려준다. "난................ 사랑 받지 못하는 것보다 미움받는 게............... ..............더 무서워. 그 황제란 놈은............ 미움받아가면서도 널 손에 넣었는데.......... 빌어먹을..........!! 아직도 내가........모자란 거겠지..........." 잔뜩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녀석을 참지 못하고 팔꿈치를 강하게 명치에 박아 넣었다. "헉.........!!" "뭐가 모자라단 거야?!! 이 바보 같은 새끼!! 그럼 앞으로 더 분발해서 그 자식 따라 나한테 미움이라도 받겠단 거냐?!! 미리 말해두는데 그딴 거 받아주는 것도 이번 한번 뿐이야. 그 자식이든 너든 앞으로 멋대로 날 휘둘러대면 다신 안 봐!! 네놈도 다시 한번 이딴 짓 하면 친구고 뭐고 끝이야!!!!" 소릴 지르며 분통을 터트리다 벌떡 일어나 아직도 복부를 부여잡은 채 몸을 말고 바닥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녀석에게 잔뜩 발길질을 해대자 그제야 몇 대 맞고 정신을 차렸는지 째지는 비명을 울리며 싹싹 빌어대기 시작한다. "아악!! 키르 잘못했어!! 응?" "빌어먹을........닥쳐!!" "컥, 너무해!! 때린 데 또 때리구......흑......내 말 좀 들어봐!!" 매맞는 마누라 마냥 매달리는 녀석을 한참동안 시근덕대며 밟아대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발길질을 멈추고 툭 말을 던졌다. "시온은 찾은 거야?!!" 그제야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올린 녀석이 상황파악도 못하고 다시 빙글대며 말을 잇는다. "킥, 원래 그거 땜에 납치한 건데..........." "이 새끼, 뭘 잘했다고 실실 쪼개고 지랄야?!!!" "악!!! 때........때리면 말 안 해!!!" 이를 뿌득 갈다 들어올린 발을 내려놓고 노려보자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말을 잇는다. "납치됐어.........." "무슨.......소리야.......?!!" 그제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낸다. "그 자식.....항구도시까진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납치된 것 같아....." "누가?!!!!" "그걸 알면 진작에 찾았지.....도둑집단의 정보로도 납치된 것만 겨우 알아냈어. 돈을 요구한 것 같지도 않으니 재물을 노린 것도 아니고 크리올라 내에서 미치광이 황제의 혈육을 노예로 살만큼 정신나간 귀족놈도 없을 테니........ 역시 지난번 널 노리던 녀석하고 같은 놈들이..........!!" "아냐............ 지난번 날 죽이려고 했던 건 내가 루베라인 지도 몰랐어. 키르를 죽이려고 한 거야......" "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유이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미르니안 미르헨........." "미르헨.........이라니?!!! 황제의 약혼녀였던........?!!" "응........." "빌어먹을!!!!! 황제놈한테 말은 한 거야?" "아직....." "왜?!!!!!" "씹, 그 잔인한 자식이 그걸 알면 그냥 죽이지 않을 텐데........... 게다가 그 자식하고 몸까지 섞은 여자를.......임신이라도 했으면......." "이 바보 같은!!! 니가 왜 그런 걸 걱정해?!!! 넌 죽을 뻔했단 말야!!!! 그리고 임신?!!!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줄 알아?!!" "니놈이 한 번만 자도 시킬 수 있다며?!!!" 꽥 소릴 지르니 눈에 띄게 당황한다. "그.........그건..........악!!! 너........그 놈이 그 여자랑 몸 섞은 줄 어떻게 알아?!!! 본 거야?!!" 고개를 끄덕이니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하!!! 그런 가벼운 새낀 여우같은 계집한테나 줘버려!!!!!" "가벼워? 니놈이 그런 말 할 처지냐?" "이익!!!!!! 지금 그 새끼 편 드는 거야?!! 넌 분하지도 않아?!!! 왜 그 자식한테만 그렇게 순해?!!! 너도 바람 좀 피워!!! 바람 좀 피워라!! 응?" "아악!!! 이 새끼, 어딜 만져!! 떨어.......으읍.............." 갑자기 달려들어 입술을 부벼대며 혀를 밀어 넣는 녀석의 품안에서 버둥대다 입안을 휘저어대는 녀석의 혀를 콱 깨물고 복부를 걷어차 버리자 겨우 떨어져나간다. 분하지 않을 리가 없다. 지금도 그 때 일만 생각하면........... 내가 사랑하는 녀석이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알몸으로 구르는 것 따위........ "그냥 단순히 감옥에 쳐 넣는 거라면 나도 백 번은 말하고도 남았어!!!" 입술을 꼬옥 깨물고 내뱉는 말에 침묵하던 녀석이 한참 후에야 작게 이를 갈며 말을 꺼낸다. "젠장!!! 그 여자........파혼 당하고 바로 별장으로 요양 갔다더니 도망친 거였군............!!!" "아마도........." 다시 생각에 잠긴 듯한 녀석에게 중얼대자 갑자기 퍼뜩 고개를 들어올리고 내게 시선을 맞춰온다. "좋아!! 우선 단서가 없으니 미르헨가부터 조사한다............." "조사라니?!!" 갑작스런 말에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보자 능글맞게 씨익 웃으며 툭 말을 던진다. "오늘은 늦었으니 우선 미르헨가의 건물 내부도부터 손에 넣고 내일 밤 잠입해서 조사 겸 터는 거지!!" "뭐?!!! 내일이라니?!! 지금도 티폰 녀석, 날 찾느라............" "시온 자식......빨리 찾아내지 못하면 영영 못 볼지도 몰라.......벌써 2주라구....... 만약 그 녀석 납치한 게 널 노리는 녀석들과 동일범이라면 일석이조잖아?!! 침소 안에 갇혀서 답답하게 기다릴 건지 나랑 직접 찾아볼 건지.......빨리 선택해......" 선택할 필요도 없이 갇혀있는 것보다 직접 찾아 나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자꾸 눈에 밟히는 붉은 녀석 때문에.......... "키르......시간 없어!! 내일 밤에 나가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돼!" '빌어먹을!!' "대신 시온 찾으면 바로 황성으로 돌아갈 거야...." "하아......알았어....." 하지만........ 미르헨가는 이 녀석 몰래 전에 털어 본 적이 있다. 이상한 점이라고는............ 아니, 그 때는 서둘러 나오는 데만 바빴으니....... "근데........여기가 어디야?" 잠시 생각을 접고 화려한 내부를 다시 둘러보며 유이 녀석에게 묻자 킥킥대며 말을 잇는다. "크리올라 황성........." "뭐?!!!! 무슨 헛소릴........." "별궁이야......." "별궁? 후궁들이 거처한다는..........?!!" "그래. 현 황제가 등극하고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니까.....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야.. 큭, 여기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헛손질만 하고 있을걸?!!" "그런........병사들은?!!" "하아?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군. 너 도대체 어디 출신이야?!! 설마 너............" "으......응?" 뜨끔해서 바라보자 눈을 가늘게 뜨고 긴장한 얼굴을 훑어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온다. "머리카락도 그렇고 눈동자도 그렇고......예쁘긴 한데 완전 희귀종인 게....... 게다가 처음 봤을 때도.........아니, 지금도 18살이나 됐다면서 그쪽으론 백치 마냥 순진하질 않나........ 너.......태어나자마자 황제놈한테 찍혀서 그 놈 침소 안에만 갇혀있었던 거 아냐?!!" '하?!! 희귀종? 예......예뻐? 백치? 이 새끼가!!!!!' "씹........그래!! 희귀종이라서 그 자식이 나 데려다 키웠다!!! 보태준 거 있어?!!!!" 의아한 눈으로 쓸데없는 소릴 지껄여대는 녀석에게 눈을 부라리며 바락 소릴 지르자 그제야 흠칫한 녀석이 제대로 된 말을 쏟아낸다. "여긴 비어있어" "비어?" "그래........지난번에도 말한 적 있지? 크리올라의 군사력은 대륙 최강이야.... 하지만 지금은 광대한 황성조차 지키지 못할 만큼 턱없이 모자라지. 황제의 주력군은 지금 황제가 정벌한 세 개 나라에서 안정을 꾀하고 있어. 현 황제 산하에 있는 괴물 같은 세 녀석들을 필두로............. 시니안이란 녀석도 그 중 하나였는데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거고...... 결국 쓸데없는 곳에 병사들을 낭비할 여력이 없는 거야. 널 노리는 녀석들도 꽤나 미꾸라지 같지만 꼬리도 잡지 못하고 고전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그 덕에 내가 널 빼올 수도 있었지만.......... 큭, 어쨌든 지금은 널 노리는 녀석들이 눈치 챌까봐 함부로 병사들도 풀지 못하고 이만 갈고 있을걸......." 확실히....... 엄청난 규모의 황궁을 모두 지킬만한 병력이 아니다. 수도 안에 있는 병사들을 모두 끌어 모으면 충분하겠지만 황성보다는 수도를 지키는 모양인지 실제 황성 안에 있는 병사들의 수는 부족한 듯 하니........ 뭐, 부족하다해도 엄청난 숫자긴 하지만 어쨌든 심심할 때마다 빠져나갈 정도는 됐다. 요즘엔 티폰이 침소에 들 때까지 케레스가 하루종일 붙어있어 놀러나가는 건 상상도 못 했지만...... "당분간 여기는 안전해......황성 쪽으로만 가지 않으면........" "그래서? 미르헨가 건물 구조도란 건 어떻게 구할 건데?" "큭, 그런 건 간단해. 뮤즈니안이든 크리올라든 도둑들은 꽤나 연계되어있으니 같은 도둑 녀석들에게 사면 돼........ 미르헨가라면 꽤나 이름 있는 가문이니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해가 지면 마을로 내려가서 필요한 거 전부 구해올 테니까.........넌 여기서 잠이나 자고 있어" "혼자 있으라구?!!"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자 곤란한 듯 말을 잇는다. "지금쯤 발칵 뒤집고 있을 텐데......둘이 같이 다니면 위험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어디선가 자신의 옷을 꺼내 대충 추려 입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만보다 불만스레 툭 말을 던졌다. "내 옷 내놔!!" "옷? 니가 입고있던 게 사람이 입을 옷이냐?!! 젠장, 복잡해서 벗기는 데도 한참이나 걸렸........." "씹, 누가 벗기래?!!!! 어쨌어?!!" 아무리 복잡해도 티폰 녀석은 벗기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버.......버렸는데........" "뭐?!! 이.....이 좀도둑 새끼, 미친 거 아냐?!!!! 그게 얼마짜린데?!!!" 단추가 모두 보석으로 되어있었고 여기저기 금줄로 장식해 놓은 붉은 색 옷이었다. 보석과 금장식만 모두 떼고 팔아도 엄청난 가격에 팔아먹을 수 있는 옷인데 이 정신나간 놈이 홀랑 갖다 버린 미친 짓을 손수 하셨단다. "하아.......대륙을 다 가진 녀석이 고작 옷 한 벌을 가지고.......내가 더 편한 옷으로 사올게......" '뭘 다 가져? 누가? 무슨 개소리야?!!' 잔뜩 골난 표정으로 노려보자 작게 한숨을 내쉬다 갑자기 내 몸을 번쩍 들어올려 다시 침대 위에 뉘여 준다. "알았어!! 내일 훔치는 거 다 너 줄게!!" "다?" 대번 얼굴을 되묻자 맘이 바뀔 새라 바로 대답을 해온다. "그래........" "먹을 것도 사와" "큭, 알았어........." 키스라도 하려는 지 고개를 숙여오는 녀석에게 시선을 피해버리자 멈칫 하더니 이마 위에 입술을 살짝 찍어누르고 뒤돌아 선다. 포기를 모르는 녀석..... 하나밖에 볼 줄 모르는 녀석이 안쓰럽기만 하다. 착잡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다 조용히 문이 닫히자마자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켜 몸을 두른 시트를 걷어냈다. '젠장.........' 체액으로 더럽혀진 하얀 몸이 시야에 들어오자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미쳐 날뛸 티폰 녀석 달랠 걸 생각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빌어먹을 루베라 때문에 케레스가 손목만 살짝 쥐어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밤새도록 괴롭혀댔는데............ 유이 녀석이 눈에 띄면 이젠 정말 죽이려 들 게 틀림없다. '호........혼자 했다고 할까............' 아무리 짐승같이 감이 좋은 녀석이라 해도 누가 했는지 알게 뭐냐......... 눈으로 본 것도 아니고 느끼기만 했을 테니 내 손으로 했다고 우기면 그만이지. 쬐끔 찔리긴 하지만.............. 아니, 좀 많이............ "아악!! 젠장, 미르니안이랑 구른 거 용서해 줄 테니까......" 빌어먹게도 사랑하나 보다. 이런 순간에도 바람 핀 마누라 마냥 그 자식 생각만 해대는 꼴이라니....... "하아..........시온 찾으면 바로 갈 테니까..........빨리 찾아서 갈 테니까.....도망간 거 아니니까.........조금만 기다려........"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리다 몸을 일으켜 욕실인 듯 보이는 곳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오랫동안 쓰지 않은 모양인지 더운물은 있을 턱이 없고 커다란 욕조 안에 차가운 물이 가득 고여있는 게 전부다. 그나마 깨끗한 물인 게 다행........ 약간 춥긴 하지만 찝찝한 기분에 욕조로 다가가 몸을 씻기 시작했다. 하얀 천 위에 옆에 놓여있던 분홍빛 가루를 묻혀 거품을 낸 후 구석구석 깨끗이 몸을 씻고 찬물로 헹구니 몸이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한다. 추운 건 질색이다. 욕실을 나가 주위를 둘러봐도 몸을 가릴 수 있을 만한 천은커녕 덮고 잘 시트도 마땅치 않다.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도 밝히지 못하고 이미 어두워진 실내를 더듬어 침실마다 돌아다니며 시트를 모았다. 다섯 장이나 찾아냈지만 얇기만 해서 추운 건 마찬가지...... 하얀 시트로 몸을 꽁꽁 감싼 채 넓은 침대 안쪽으로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몸 속으로 파고드는 한기에 따뜻했던 티폰의 품이 자꾸 떠올라 바들바들 떨며 한참을 뒤척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Rubera(루베라) #157 '하아........이 자식.........'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은발에 어리둥절해 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빼내려 뒤척여봐도 허리에 단단히 감긴 녀석의 팔은 도통 풀릴 생각을 않는다. 꽤나 피곤한 듯 잠에서 깰 기미도 보이지 않고..... 녀석과 딱 붙은 채 시트에 칭칭 감겨있어 빠져나가는 것도 수월치 않다. 따뜻하긴 하지만.......... 귓가에 들려오는 심장소리와 따뜻한 기운에 가만히 얼굴을 부벼보다 살짝 고개를 들어올리니 여전히 꿈나라에 가있는 듯 미동도 없다. 확실히.......... 잘난 놈은 잠잘 때도 이쁘다. 티폰보다야 못하지만........... 시트 안에서 겨우 손을 빼내 햇빛에 반짝이는 은발을 살짝 쓸어주자 잠시 뒤척이더니 허리를 끌어당겨 숨이 막힐 정도로 몸을 밀착해 온다. 순간........녀석의 다리와 엉켜있던 허벅지에 녀석의 물건이 와 닿자 화들짝 놀라 버둥거리며 단단한 가슴을 밀어내자 예상치 못한 신음이 울리며 몸을 구속해오던 팔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왜.......?!!' 통증을 참는 듯 미간을 찌푸리다 다시 잠에 빠져드는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다 시야를 돌린 순간........ "너............!!!" 여기저기 검상(劍傷)인 듯 보이는 상처에서 피가 베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녀석을 흔들어 깨우자 겨우 바이올렛 눈동자를 드러내며 웅얼댄다. "키르..............왜...........조금만 더 자자............" "웃기지마!!!!" 차마 발로 걷어차진 못하고 낑낑대며 겨우 녀석의 품을 빠져나와 시트를 확 걷어내자 걱정한 만큼 심한 상처는 아닌 모양.......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툭 말을 던졌다. "어떻게 된 거야?" 젠장.............. 빌어먹을 무신경......... 어젠 이런 상처, 눈치채지도 못했었다. "어제 너 데려오다가.......병사들한테.......뭐,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 그러고 보니 황제의 침소에 나있는 발코니 아래 병사들이 꽤나 많이.......... "그 놈들을 전부 상대했단 말야?!!!!" 이 자식이 진지하게 싸우는 건 본 적이 없다. 도둑이라면 싸우기보단 도망치는 게 우선이었으니........... 확실히 활이라면 잘 쓴다. 내가 10발 중 8발을 맞추면 녀석은 10발 모두 맞출 만큼......... 장검 쓰는 법도 가르쳐준다고 한 걸로 봐선 그쪽 방면으로도 꽤나 뛰어난 건지도....... "약으로 거의 재워버렸는데 떨거지 놈들이 들러붙어서........" '씹, 그럼 그렇지............' 침대에서 내려서 바닥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유이 녀석의 옷자락을 뒤지자 작은 용기들이 잔뜩 떨어져 내린다. "어떤 거야?" "왼쪽 두 번째, 파란색..........." "붕대는?" "어제 사왔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녀석이 어제 밤 마을로 내려가 사온 듯한 꾸러미가 잔뜩 쌓여있다. 안에 들어있던 옷을 대충 꿰어 입고 녀석에게 다가가 상처에 약을 바른 후 붕대를 감았다. 옆구리를 제외하곤 녀석의 말대로 모두 스친 상처 뿐............. 단단히 붕대를 감고 물러서려 하자 갑자기 손목을 움켜쥐고 품안으로 끌어당겨 안아 온다. "나랑............내기 하나 하자......." 녀석의 품을 벗어나려 바르작대다 귓가에 속삭이는 말에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무슨.........?" "황태자로 있는 동안엔..........항상 곁에 있을께. 니가.........크리올라 황성에서 황제놈하고 있고싶다면 황성에 눌러 앉던지......... 키리안 숲의 도적단을 황제의 숲으로 옮겨놓던지....... 하아......어쨌든 항상 곁에 있을 테니까 그 놈이 또 막 되먹은 짓을 하든.....질리든......벗어나고 싶으면 나한테 와...... 대신...........다시 내 손에 떨어지면 강제로 몸부터 차지하고 가둬두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전쟁을 벌여서라도 놓지 않을 테니까........." 지금까지처럼.........눈물만 보이면 안절부절못하며 무르게 물러서던 녀석의 눈동자가 아니다. 어쩌면.......더 골치 아픈 일이 되어버린 지도.......... "그게 무슨 내기야?!! 완전 협박이잖아!!!" 무거워진 마음을 가슴 한켠에 꾹꾹 밀어 넣고 툴툴대며 말을 뱉어내자 뭔가 크게 선심이라도 쓰는 듯 말을 잇는다. "킥, 그럼 내가 황제가 되기 전까지 그 자식 옆에서 행복하면............ 음.............내가 포기하도록 노력해 볼게"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해 본다고?!!' 왠지 속는 느낌......... 이겨도 져도 좋을 것 같지도 않고........이기는 게 뭐고 지는 게 뭔지도 알 수 없는 내기........ 망설이는 빛이 역력하자 킥킥대며 염장을 지른다. "왜? 그 자식 옆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아? 나중에 후회할 거 같지? 응? 키르! 그냥 나랑 확 자버리고 그런 미친 자식 뻥 차버려! 포악한 놈이 매일 아프게만 하는 거 아냐? 내가 부드럽게 해 줄 테니까........속궁합 좀 보자. 응?" 어느 틈에 목덜미에 들러붙어 키스를 해대며 옷안으로 슬금슬금 손을 미끄러뜨려 허리를 쓸어댄다. "소..........속궁합? 그게 뭐야?" 버둥대며 녀석의 손을 밀어내다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니 저절로 욕이 튀어나올 만큼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큭, 속궁합 몰라? 흐응~알려줄까?" 표정을 보니 별로 알고싶지 않다. "그게 말이지............겉으로만 봐도 좋을 것 같지만........니 안에 들어가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우.........웃기지마!!!! 비켜!!!!!!" 이 새끼가 정말 며칠 사이에 발정을 했나보다. 터무니없는 말에 빽 소릴 지르며 머리통을 쥐어박자 그제야 궁시렁대며 아픈 머리를 감싸쥐고 아쉬운 듯 떨어져 나간다. "그럼 나랑 내기하기다?" 후회 따위 할 턱이 없다. 지금도 그 녀석 얼굴만 봐도 행복해 죽을 지경인데....... 몇 년이 지났다고 금새 돌아설 거였다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다. "맘대로 해..........대신 잊도록 노력한다가 아니라 잊어!!" 성깔 건드리는 녀석의 말에 오기가 발동해 툭 말을 던지자 음흉하게 입꼬릴 말아 올린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아는 거고........큭,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사람 마음은 간사한 거야. 돌아갈 곳이 있다면 아니라고 부정해 봤자 힘들 땐 도망치고 싶어지거든. 그 황제놈도 그걸 아니까 날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거라구" "누가 어리다고 지랄야?!!! 나이도 같은 주제에!!! 미친 소리 작작하고 언제 털 거야?" 녀석을 밀어내고 일어서자 그제야 빙글거리던 낯짝이 점차 진지해 진다. "해 지면 바로............필요한 것도 다 샀고 말도 구해놨으니......" "건물 구조도라는 건?" "킥, 당연히 구했지!!" 벌떡 일어나더니 대충 옷을 꿰어 입고 품속에서 작은 종이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편다. "용도가 의심 가는 곳만 표시해 뒀어. 지하는 내가 살펴볼 테니까 넌 지상에서 내가 표시해 둔 곳만 살펴봐....... 지하는 복잡하지 않으니 구조도는 니가 챙기고..........." 이리저리 복잡한 구조도에 붉게 표시된 칸들을 유심히 훑어보고 종이를 접어 품안에 넣자 다시 말을 잇는다. "다 살펴보면 바로 저택 밖으로 나와. 너무 욕심부리지 말고....." "응......." 대충 계획을 세우고 유이 녀석이 사온 과일과 빵으로 대충 배를 채운 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해가 져 노을이 질 무렵........ 말을 타고 황성을 돌아 수도로 향했다. "유이!!" "응?" "지난번 황성에서 내가 훔친 루비랑 사파이어.......어디에 묻었어?"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 녀석이 황제의 숲에 묻었다 했는데.......... 앞서가는 유이 녀석에게 큰 소리로 묻자 갑자기 킥킥대며 말을 잇는다. "큭, 그거 벌써 파냈어....." "어딨는데?!!!" "흐응...........글쎄.........." "뭐가 글쎄야?!!! 빨랑 내놔!! 그거 내꺼란 말야!!!" 벌컥 화를 내자 약올리듯 말을 꺼내 염장을 지른다. "킥, 어쩌지? 지금은 뮤즈니안 황성에 있는데.....중요한 거야? 그럼 황성까지 와서 가져가! 내 침소에 놔두고 왔는데..........." "내놔!!!!!!!!!!!!!" "하항~난 줄 생각 없으니까 가지고 싶음 훔치러 오던가........" '저 때려죽일 새끼.........!!!!' 이를 바득바득 갈며 노려보는 줄도 모르는지 쾌활하게 말을 잇는다. "근데......시온 녀석이 준 보석은 그렇게 애지중지 하면서 내가 준 진주는 어떻게 한 거야?" '진주........?' 그러고 보니............티폰과 몰래 축제구경을 나갔다 녀석을 만나 훔친 진주를 받았다. 그런데............ "그........그게..........." '썩을.........!!' 티폰 녀석이 갈아버려 내 몸에 다 쳐발랐다고 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 날...... 예물을 준답시고 시녀들이 해준다는 마사지까지 손수 해가며 발라준 향유에 섞여있던 진주가루는 나중에 알고 보니 유이 녀석에게서 받은 왕진주의 처참한 잔해였다. 금가루와 진주가루가 아까워 이틀동안 몸도 씻지 않고 버티고 있다 짐승 같은 녀석에게 기절할 만큼 당하고 눈을 떠보니 깨끗이 씻겨져 있었던 것.......... 으득........ 그 때........녀석에게 골을 내며 땡깡을 부리다 결국 가벼운 키스로 시작된 애무에 넘어가 녀석의 품안에서 이런 짓 저런 짓 다 당하고 밤새도록 훌쩍이며 신음을 흘렸다. 얼굴을 붉힌 채 작게 이를 갈며 대답을 재촉해오는 유이 녀석에게 변명도 하지 못하고 진땀만 흘리다 결국 사파이어와 루비도 내놓으라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미르헨가에 도착해 버렸다. 어두운 숲 한켠에 말을 매어두고 정원을 가로질러 거대한 건물에 다다르자 수십 개나 되는 창 중 내부에 불이 꺼진 하나를 골라잡아 간단히 잠금 장치를 풀고 안으로 들어섰다. "키르, 일 다 끝내면 시간 끌지 말고 바로 말 매어둔 곳으로 오기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를 끌어당겨 이마에 입술을 찍어누르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조심해..........." "응........." 유이 녀석이 거대한 문을 열고 주위를 살피다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는 복도로 나가자마자 재빨리 품안에 넣어둔 구조도를 꺼내들고 밝은 달빛을 의지해 다시 한번 훑어보기 시작했다. 거대하긴 하지만 높이는 3층......... 1층부터 시작해 ㄷ자 모양으로 휘어진 건물의 측면 계단을 이용해 3층까지 조사해 나가면............ 마음을 정하자 유이 녀석이 나간 문을 열고 나서 구조도에 체크된 곳을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1층과 2층은 표시된 곳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용도도 침실과 집무실 정도........ 의심 가는 구석도 없고 크기에 비해 꽤나 소박하게 꾸며져 있다. 문제는 3층....... 역시 누군가를 구금해 뒀다면 달아날 수 없도록 지하나 높은 층에........ 대충 1, 2층을 훑어보고 생각보다 쉽게 3층까지 올라올 수 있었다. 주인이 저택을 비워서인지 시종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고 내부가 전체적으로 어두워 숨는 것도 수월하다. '역시........잘못 짚은 건가...........' 이곳저곳 둘러보고 뒤져봐도 그렇다할 단서는커녕.......... '응?' 철컥 철컥........... 다른 곳과는 달리 문이 잠겨있다. 게다가 커다란 문에 새겨있는 문양도 엄청 화려한 게.............. '설마..........가보라도 숨겨둔 건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허리춤에 차고있던 도구들을 하나씩 꺼내 열쇠구멍에 집어넣어 비틀어대길 한참...... '빙고....!!' 커다란 문이 열리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재빨리 문을 닫고 주위를 둘러봤다. 확실히........ 지금까지 본 중 최고로 화려한 방........ 화려한 자줏빛 일색으로 꾸며진 침실은 고급스럽고 아기자기한 모양이 귀부인들이나 사용했음직한 느낌......... "미르니안이란 여자가 쓰던 침실........인가........?" 하지만......... 그렇게 보기엔 오랫동안 청소 한번 하지 않은 듯, 누구도 손대지 않은 듯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아 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내부와 몸을 단장하는 거대한 거울 앞에 놓여있는 장신구, 침실에 딸려있는 커다란 공간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화려한 드레스들을 보니 미르헨가의 안주인이 사용한 듯............. 분명............. 미르헨가의 안주인은 미르니안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고 들었다. '젠장, 죽은 사람이 쓰던 침실인가........' 그 커피색 아저씨가 꽤나 사랑했는지 침실에 있는 물건들도 주인이 쓰던 그대로............ 아니, 한 번도 쓰지 않은 듯 깨끗이 보관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화려한 장식들과 보석함이 눈에 들어오지만 왠지 모르게 꺼림직한 느낌에 쉽사리 손도 대지 못하고 이리저리 둘러보다 시선이 간 곳은 침대 옆, 넓은 벽면......... 짙은 와인색 공단이 늘어져 있는 게 뭔가를 가려놓은 듯........... '뭐지........?' 가까이 다가가 공단 커튼과 연결된 두터운 끈을 잡아당기니............. '헉...........!!' 벽 한 면을 장식하는 거대한 초상화였다. 아름다운 여인.......... 하지만........ 실타래처럼 늘어진 금빛 머리칼과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에 몸이 굳어버렸다. 이건........ '슈안..........?!!' 너무나도 닮은 얼굴에 모르는 사이 바닥 위로 털썩 쓰러져 처음 보는 여인이 그려진 초상화에서 흔들리는 눈동자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침실이 미르헨가의 안주인이 쓰던 침소라면 이 초상화 속의 인물일 리가 없다. 미르헨가의 안주인은 미르니안과 꼭 빼 닮은 밤색 눈동자의 아름다운 귀부인이었다 들었는데 그림 속의 여인은 푸른 눈동자..... 게다가 미르니안과 이 그림 속의 여자는 아름답다는 것만 제외하면 닮은 구석이 없다. '우연.........인가.......?' 그냥......장식으로.......아름다운 여인의 초상을 걸어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얼굴은 분명.............. 한참동안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침소 밖 복도를 오고가는 요란한 소리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얼른 원래대로 초상화를 공단으로 가린 후 문으로 다가가 바깥의 동태를 살폈다. 이제야 심장이 정신 없이 뛰어댄다. 남은 곳은 이 침소 바로 옆에 위치한 용도를 알 수 없는 공간 뿐.............. 분명 지금까지 둘러본 공간처럼 분명 침실로 사용되고 있을 테지만.......... 복도가 잠잠해진 듯 하자 재빨리 침소 안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문을 잠가두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분명 누군가 드나든 듯......... 조심스레 문을 열자 다행히 잠기진 않은 모양......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발을 내딛자 방금 들어갔다 나온 침소 못지 않게 화려하다. 그런데......... '젠장.......!!' 은은한 조명에 어두운 실내를 둘러보다 침대 위에 누군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곤 재빨리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미동도 없이 누워만 있는 것을 보니 들키진 않은 모양........ '자는 건가..........' 자꾸 코끝을 간질이는 달콤한 향기에 미간을 찌푸리다 시선이 간 곳은 침대 옆에 놓여진 테이블 위........ 향이 태워지고 있는데 아무래도 불길한......... '아악.......!!' 머리가 띵해지고 열이 오르는 게 수 차례의 경험으로 보아 분명 최음향이 분명하다. 재빨리 코를 막고 여기저기 둘러보다 얼른 창을 조용히 열고 어두운 발코니로 발을 내딛었다. '비.....빌어먹을!!! 변태새끼 침실이었나.........' 다시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는 내부를 살펴보니 침대 위엔 발가벗겨진 채 엎드려 누워있는 하얀 나신이 눈에 들어온다. 매끈하고 하얀 뒷모습이 흡사 아름다운 소녀 같기도 하지만 분명 사내자식....... 게다가 머리카락도 눈처럼 새하얗다. 머리칼 색이 같아선 지 어쩐지 동질감이 느껴져 작게 미간을 찌푸리자 거대한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누군가 침실 안으로 들어선다. 탄탄하게 틀이 잘 잡힌 장신에 화려한 금발........금갈색 눈동자.......... '스턴?!!!!' Rubera(루베라) #158 '스턴?!!!!' 경악할만한 사실에 무심코 소릴 지르려던 입을 틀어막고 커다랗게 뜬눈으로 아무리 바라봐도 분명 황성 안에서 만난 그 능글맞은 자식............ "저 새끼, 벼.........변태였어?!!!!' 아..........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저 놈이 왜 여기에........?!!' 화려한 옷자락을 하나씩 벗어 내리자 사내다운 탄탄한 몸이 눈앞에 드러난다. '헉........' 사내의 알몸에 얼른 시선을 돌렸다가 한참만에 다시 슬그머니 들여다본 침소 안엔 역시 예상대로 낯뜨거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최음향에 절어 쾌락에 몸부림치던 하얀 몸뚱이가 사내의 거친 피스톤질에 정신 없이 흔들린다. 질척한 소음과 열락에 빠진 신음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 '젠장.....왜 하필.......!!' 귀를 틀어막고 빨리 일이 끝나길 기다려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비명과 같은 신음소리는 끊일 생각을 않는다. '변태새끼.........' 최음향에 눈까지 가려놓고 하얀 몸뚱이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잘도 해댄다. 이래서 인간은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되는 모양.............. 저렇게 단정하고 금욕적인 낯짝을 해 가지고선 갖은 변태 짓을 다 해대는 걸 보니...... 하얀 허벅지를 멍이 들도록 틀어쥐고 한계까지 벌려 거대한 페니스를 뿌리까지 쑤셔 박는 녀석의 짐승같이 거친 행위에 허벅지를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려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미친 듯 사내의 단단한 몸에 들러붙어 정신 없이 신음을 흘려대며 쾌락을 쫓는다. 강하게 밀어붙일 때마다 활처럼 휘어지며 가학심을 부추기는 하얀 몸뚱아리에 육식동물 마냥 퍼렇게 멍이 들 정도로 이를 박아 넣고 붉은 응혈이 질만큼 게걸스럽게 빨아댄다. 한눈에 봐도 육욕만을 채우기 위한 행위.......... 거칠지만 소중하게 다뤄주는 티폰과는 확연히 다르다. 내 나이 또래에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몸뚱아릴 붙들고 제 욕심만 채우는 녀석을 노려보면서도 주먹을 꽈악 말아 쥐고 입술을 질끈 깨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절정에 오른 변태 스턴 자식이 밑에 깔린 하얀 녀석의 눈을 가린 까만 천을 확 걷어내자 잔뜩 흐려진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드러난다. 17살 가량으로 꽤나 예쁘장한 얼굴....... '젠장, 빌어먹을 변태 놈........' 마지막까지 이성을 놓지 않던 녀석이 예쁘장한 얼굴을 보고 더욱 흥분해 날뛸 거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차갑게 표정이 굳어 가는 것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큭, 그 자와 같은 꼬락서니라니......... 역시........ 피는 속일 수 없나보군......... 그렇게 혐오하던 짓거릴 그대로 하고 있으니....... 하지만......... 난 다르다........" 녀석이 미간을 확 구긴 채 음산한 목소리로 뭔가 알 수 없는 소릴 중얼대더니 바로 하얀 녀석의 몸 안에서 거칠게 빠져나와 시종을 불러 뭐라 명을 내린 후 그대로 돌아서 욕실인 듯한 곳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얀 시트를 붉게 물들인 채 아직도 욕구를 채우지 못한 듯 몸을 침대 위에 비비적대던 하얀 아이를 시종들이 거칠게 끌어낸 후 더럽혀진 시트를 갈아놓고 물러나자 침소 안엔 다시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좋지 못한 광경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앉아있다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창을 열고 다시 침소 안으로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짙은 혈향과 정사의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역한 기운에 흠칫 몸을 떨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소리 없이 창을 닫았다. 시종들이 나가기 전 불을 모두 꺼버려 희미한 달빛만이 침소 안을 은은하게 밝혀준다. 잠시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멈춰있다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겨 여기저기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게 마지막으로 조사했어야할 장소....... 용도는 보시다시피 변태 행위를 서슴없이 해대는 침실........ 알아낸 것이라곤........ 녀석이 스턴 미르헨일 거란 사실....... 지난번 이곳에 잠입했을 때 미르니안에게 오라비가 하나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아냈다. 시종들의 태도로 보아 분명 스턴이란 자식이 미르헨가의 후계자.......... 하지만 시온이 사라진 것과는 하등 관계없는 사실일 뿐........ '결국........헛걸음을 한 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침소를 빠져나가려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 욕실에서 들려오던 규칙적인 물소리가 뚝 멈추더니 녀석이 나오려는 듯 문고리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한다. '헉...............' 도망칠 길이 없다. 문도 너무 멀고 창으로 다가가면 달빛에 바로 발각돼 버릴 터............ 순간 굳어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옆에 있던 침대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젠장.........왜 하필......!!!' 욕실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트를 뒤집어쓰고 퍼뜩 스치는 생각에 까만 옷을 벗어 침대 구석에 밀어 넣은 후 들키지 않게 엎드려 베개 위에 얼굴을 묻고 숨을 죽였다. 운이 좋다면 날 발견해도 어둠에 자신이 능욕한 하얀 녀석인 줄 알고 쫓아내겠지....... 더욱 운이 좋다면 변태자식이 이 침소에서 머물지 않고 나갈 지도.......그럼, 날 발견하지 못할 테고.......... 하지만 운이 나쁘면 속이지도 못하고 정체가 발각될 지도........ 게다가 더욱 운이 나쁘면 녀석이 날 그 하얀 녀석으로 착각해 이 침소에서 벌어진 변태행각을 다시 행할지도 모른다. 끔찍한 생각에 한구석에 몰아넣은 옷을 더듬어 단검을 그러쥐고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에 안심한 것도 잠시......... 다시 침대 곁으로 다가서는 소리에 놀란 심장이 정신 없이 뛰어댄다. "왜 아직도 여기 있는 거지..........?"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흠칫 몸을 굳히자 차가운 손이 시트 안으로 파고든다. '빌어먹을.....!!!' 벗은 허리를 부드럽게 쓸어대며 엉덩이 쪽으로 미끄러지는 손길에 뒤척이는 척 하면서 녀석의 손을 피하자 귓불을 깨물어대며 작게 속삭여온다. "분명.......끌어내라고 했는데......깨끗하게 닦아냈군. 시종들이 실수를 했나............ 약기운도 아직 가시지 않았을 텐데.....벌써 자는 건가........" "으응............" 의아한 듯 벗은 몸을 쓸어대는 손길에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별수 없이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비틀자 바로 입술을 포개온다. 아무래도 최악의 상황............ 녀석이 만져댈 때마다 아까 눈앞에 벌어진 짐승 같은 행위가 떠올라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 소름이 끼쳐온다. 입안으로 들어와 혀를 끌어당겨 빨아대는 녀석을 참지 못하고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는 순간 바로 입술을 떼더니 의외로 간단히 떨어져 나간다. "큭, 눈동자만 맘에 들었다면 좀더 가지고 놀아도 좋았을 텐데......... 일이 귀찮게 됐어............... 미르니안, 그 멍청한 것이 간교한 꾀만 부리지 않았어도....... 역시 제 어미를 닮아 아둔한 것인지.......아비를 닮아 비열한 것인지........ 크리올라 황가의 씨를 잉태했더라면 좀더 쉽게 끝낼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없는 말에 숨을 죽이자 몸을 일으킨 녀석이 작게 말을 던지곤 뒤돌아 선다. "쉬어라........단잠을 잘 수 있는 것도 오늘뿐일 테니........내일이면 노예상이 널 데리러 올 거다" 한치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뱉은 후 그대로 침소 밖으로 나서는 녀석을 보곤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개자식.....실컷 가지고 놀다 질리니까 노예상에게 팔아치우시겠다?!!" 왜 밖에만 나서면 빌어먹을 인신매매범 놈들이 들러붙는지 알만하다. '저런 변태새끼들이 드글대니까.........' 뿌득 이를 갈아붙이다 서둘러 다시 옷을 꿰어 입고 기분 나쁜 침대 위에서 벗어났다. 다시 시간을 지체하면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게다가..........어쩐지 꺼림칙한 기분.......... 스턴 녀석이 지껄여댄 말도 그렇고.......... 확실히 뭔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조급한 맘에 바로 침소 문을 열고 나와 계단을 통해 1층까지 막힘 없이 내려온 후 건물 밖으로 무사히 나섰다. 어둠에 잠긴 숲의 한켠...... "키르!!! 왜 이렇게 늦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정신 없이 왔다갔다하던 녀석이 날 보고 바락 소릴 지르자 그제야 맘이 놓여 긴장이 풀려온다. "빨리 돌아가자.........." 피곤한 얼굴로 말에 오르니 그제야 녀석도 말없이 뒤를 따른다. "무슨 일 있었어?" "별로.........넌? 지하에서 뭐라도 찾아냈어?" "전혀..........쓰지 않은 지 오래된 거 같았어. 역시 잘못 짚은 건가........" 아니.............분명 뭔가 있다. 분명.............. "미르헨가의 후계자............본 적 있어?" "후계자? 후계자라면......황실파티에서 몇 번 본 적이.........." "스턴 미르헨............맞지?" "그걸 니가 어떻게..........?!!" '역시...........' "갑자기 그 딴 영감탱이는 왜?!!" "영감.........탱이? 나이가 몇인데?"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보자 툭 말을 던진다. "황제랑 나이가 같다고 했으니......올해 스무 살..........." 미친놈...... 자기보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영감탱이고 어리면 다 애새끼다. 황태자라더니 확실히 자기중심적인 건지........ 낯선 사내에 대해 묻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날 바라보는 녀석에게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척하니 내밀었다. "뭐.........뭐야?" "내놔........." "응?" "오늘 훔친 거 다 준다고 했잖아!!" "그........그게.......지하라서 아무 것도 없던데........" 죽일 듯 노려보자 흠칫하더니 금새 다시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빙글거리며 손짓을 해온다. "잠깐 이리 와봐.......대신 다른 거 줄 테니까..........?" "다른 거? 뭔데?" 의아함에 천천히 말을 몰아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서자 말릴 틈도 없이 허리를 끌어당겨 자신의 말 등위로 옮겨 앉힌다. 얼결에 녀석의 앞에 앉아 마주보는 상황......... 분노를 터트릴 겨를도 없이 내가 타던 말을 놓아주고 바로 허리를 휘감더니 내게 체중을 실어온다. "악!!! 이.......이 새끼, 무슨 짓이야?!!! 움직이지마!!!" 아슬하게 말 등에 앉아있는 상태에서 몸이 뒤로 기울자 별수 없이 버둥거리며 유이 녀석의 목에 답싹 매달려 비명을 질러댔다. "킥, 얌전하게 있지 않으면 말이 놀라 떨어뜨릴 지도 몰라.........." "개새끼, 니놈이나 떨어져!!!!" 이제 떨어지든 말든 상관도 않고 마구 버둥대며 녀석의 목을 휘감았던 팔을 풀어 단단한 가슴을 밀어내자 허리를 감은 팔에 더욱 힘을 줘 몸을 바짝 밀착시켜온다. "큭, 귀여운 주제에 성깔은..........." 강하게 옭아매고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을 찍어대는 녀석의 품안에서 도리질을 치며 벗어나려 바르작대자 갑자기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쥐고 바짝 끌어당겨 하체를 밀착시키더니 부드럽게 주물러대기 시작한다. "하아............이 새끼 또!!!!!! 으읍..................." 바로 입술이 막혀 부드러운 혀가 입안으로 들어오자 급작스런 상황에 뇌가 생각하길 포기했는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간다. 그렇게 입술을 내준 채 여자라면 한눈에 반할 만큼 잘생긴 이목구비에 잠시 시선을 두자 녀석이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며 각도를 바꿔 깊이 혀를 섞어올 때마다 밤에도 빛을 뿌리는 은빛 머리칼이 은실같이 살랑거려 얼굴을 간질여온다. 데일 것처럼 뜨거운 입술이 잠시 떨어졌다 다시 붙기를 반복하는 동안 멍하니 헐떡이며 숨을 내쉬다 녀석의 뒤로 보이는 뽀얀 달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 날처럼 밝은 보름달............ 까만 융단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 아름다운 밤하늘........... 붉은............ 핏방울 보다 붉은 사내....... 그리고 첫 키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각과 정신 없이 뛰어대는 심장에 영혼까지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살짝 눈을 감고 가만히 목을 끌어안자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부드럽고 깊은 키스를 해온다. 숨이 막힐 정도로 들러붙는 사내의 입술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살짝 고개를 돌려 떼어내자 아쉬운 듯 입술에 흐르는 타액을 핥아내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댄다. '티폰............' 작게 할딱이며 따뜻한 품에 포옥 안겨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부비다 붉은 사내와는 다른 달콤한 체향에 눈을 번쩍 떴다. '바보 같은............!!' 녀석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녀석이...... 서늘한 느낌에 내려보니 어느샌가 앞섶이 모두 헤쳐져 뽀얀 피부가 달빛에 전부 드러나 있다. "유.........유이!!!!" 어느 틈엔가 하얀 가슴에 머리를 묻고 분홍빛이 도는 돌기 위에 키스를 해대는 녀석에 당황해 얼른 은빛 머리칼을 쥐고 멀찍이 떼어내자 잔뜩 미련이 남는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채 바이올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하아.......뭐야? 모처럼 할 맘이 생긴 거 아니었어? 기분 좋게 해줄 테니까 가만히만 있어.......응?" 부드러운 피부를 쓸어대다 살짝 일어선 돌기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고 비벼대며 유혹하듯 귓가에 속삭여온다. 보름달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더니.............. 정신나간 짓을............. 묘한 분위기에 휩쓸려 버렸다. '빌어먹을.............!!!' 이 정도면 중증이다. 아무리 보고싶다고 이 녀석과 그 자식을 착각하다니...... "키르........." 확실히 바람둥이 자식이 맞는지 넋을 빼놓는 테크닉으로 잘도 유혹해 댄다. "웃기지마............!!" 빽 소리쳐 단박에 잘라내고 속살을 지분대던 손을 쳐내자 작게 한숨을 내쉬다 갑자기 눈을 빛내며 장난스레 대꾸를 해온다. "큭, 벌써 늦었어............." 바로 몸을 부둥켜안고 여기저기 주물러대며 킥킥거린다. "루베라 만지면 황제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사실이야? 응? 그럼 그 자식, 지금쯤 미쳐 날뛰고 있겠군........ 킥, 기분 꽤나 더러울 텐데......내 나라 때려부수는 거 아냐?!! 밴댕이 같은 새끼가 쫓아내면 나한테 와!! 응? 알았지? 아~ 기분 좋다. 왜 이렇게 이쁜 거야?!!!" "아악!!! 이 개새끼!!! 어딜 만져!! 떨어져!! 놔!!!!!"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며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녀석의 손과 입술을 피해 발광을 해대다 버둥거리던 발에 말의 옆구리가 채여 말이 뛰어오르자 몸이 위태롭게 녀석에게로 기운다. "으악!!!!!! 키르, 날뛰지마!!!! 떨어진단 말야!!!!!! 이제 안 할게!! 응?!!!" 다급한 녀석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내려보자 흥분한 말이 뛰어올라 지면이 까마득하게 보인다. "헉!!! 빠........빨리 어떻게 좀 해봐!!!!" 떨어지면 바로 목이 부러질 높이에 겁에 질려 녀석의 옷깃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소리치자 바로 고삐를 끌어당겨 날뛰어대는 말을 진정시킨다.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투레질을 하며 앞발을 들어올리는 말에 짧은 비명을 지르며 유이 녀석의 몸에 철썩 들러붙어 공포에 몸을 떨다 흥분한 말이 겨우 잠잠해질 무렵........... 헐떡이며 숨을 고르는 사이 눈 깜빡할 새 황천으로 날아갈 뻔한 의식이 천천히 돌아오기 시작한다. 주..........죽을 뻔했다. 분노로 손이 부들부들 떨려온다. 그런데 모든 사건의 원흉인 이 썩을 놈은.......... "진작 이렇게 했으면 좋았잖아~~" 자신에게 답싹 안긴 채 굳어버린 몸을 끌어안고 기분 좋은 듯 이리저리 쓸어대며 분노를 가중시킨다. "응? 왜 이렇게 떨어? 아직도 무서워?" "이.........이 새끼........죽여버릴 거야!!!! 죽어!!!!!" 앙칼지게 소릴 지르며 목을 조르려 손을 뻗자 용케 알아채고 말의 옆구리를 발로 차 빠르게 말을 몰아간다. "아악!!! 세.........세워!!!!! 떨어진단 말야!!!!!!" 울먹이며 필사적으로 녀석의 몸에 들러붙어 소릴 질러대도 오히려 기분 좋은 듯 킥킥대며 더욱 빨리 말을 몰아가는 미친 녀석 탓에 별궁에 도착했을 무렵엔 거의 반쯤 기절해 빌어먹을 자식의 품안에 힘없이 늘어져 말에서 내려지자마자 속에 있던 것을 모두 게워내고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Rubera(루베라) #159 "키르........" 풀죽은 강아지 마냥 그렇게 쳐다봐도 소용없다. '나쁜 자식..........' "나가!!!!!!!!" 그렇게 쓰러지고 하루를 꼬박 앓았다. 눈을 뜨자마자 눈물 콧물 흘려가며 빌어대는 녀석에게 냅따 발길질을 날리곤 침실을 따로 썼다. 어차피 이 별궁에 침실이란 건 넘치도록 남아도니까........ 결국 밤마다 썩을 자식이 저런 꼬락서닐 하곤 찾아와 귀찮게 굴어대지만......... 베개를 내던지며 발작을 해대자 흠칫 놀라 지난밤처럼 축 늘어져 제 침실로 되돌아간다. 꼴이 안 돼 보이긴 하지만....... .......오늘은 꼭 돌아가 봐야겠다. 녀석에게로.......... 유이에게 납치돼 이곳에 온 지 벌써 나흘........ 녀석에게 미르헨가의 동태를 살펴보게 할 뿐 그렇다할 단서도 잡지 못하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오늘 아침........ 시간을 때우려는 듯 별궁 근처를 서성이던 병사 녀석들에게 터무니없는 소릴 듣고 말았다. 황제가 앓아 누워 정무도 보지 못하고 침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티폰.............' 역시........ 혼자 놔두고 오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시온이 걱정된다지만 그렇게 말도 없이......... 도대체 어디가 아픈 건지....... 설마 많이 아픈 건............ 심장이 쿡쿡 쑤셔온다. 따뜻한 품도 부드러운 입술도 못 견디도록 보고싶다. 오늘 밤............ 잠깐만........얼굴만 보고와도......... 살짝 키스만 해주고.........조금만 안아주고 다시 몰래 빠져나오면......... 침대 위에서 벌떡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별로 높지 않은 2층 침실............. 밧줄도 쓰지 않고 간단히 벽을 타고 내려와 희미하게 불빛이 반짝이는 황성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꽤나 먼 거리지만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달려 한참만에 도달한 곳은 황성의 정원 한켠......... 오늘은 파티도 열리지 않는 지 평소보다 잠잠한 황성으로 조심스레 다가가 어두운 그늘에 몸을 숨겼다. 가끔씩 지나치는 병사들과 시종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며 황제의 침소 바로 아래까지 접근해 겨우 숨을 고르다 살짝 올려보니 벌써 잠이 들었는지 침소 안에선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는다. 안도의 숨을 작게 내쉬며 거친 벽을 힘겹게 타고 올라가 발코니에 내려서 거대한 창을 슬그머니 열고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차갑고 섬뜩한 느낌이 목에 닿아와 흠칫 몸을 굳혔다. "누군데 감히 황제 폐하의 침소에 멋대로 기어들어 오는 건가.........." 당장이라도 목을 베어버릴 듯한 살기에 숨을 죽이다 낯익은 목소리에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입을 열었다. "나도 쫓아낼 셈이야?" 놀라 크게 뜬 은회색 눈동자를 바라보며 씨익 웃어주자 바로 검을 거두고 어깨를 쥐어온다. "도대체 그 동안............!!!" "그건 나중에 말할 테니까.............티폰은?" 시니안이 이곳에 있으니 분명 침소 안에 있을 텐데 아직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녀석이 걱정돼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다 누군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침대에 시선이 딱 멈춰버렸다. "서.............설마...........진짜 아픈 건............" 흔들리는 눈으로 시니안에게 시선을 돌려도 심각한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꾹 다물 뿐 말이 없다. "많이..............아픈 거야?" 무겁게 가라앉는 침묵에 갑자기 밀려오는 불안과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가늘게 몸을 떨어대며 천천히 침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녀석의 얼굴이 몇 일 전보다 수척해져 보여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만 같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붉은 머리칼을 쓸어줘도 전처럼 예쁜 눈동자로 올려보지도 않고 미동도 없이 눈만 꼬옥 감고 깨어날 생각을 않는다. "시.........시니안..........왜............깨어나지 않는 거야?!!" 울먹이며 잿빛 사내를 바라보는 순간............... 큭큭대는 녀석의 웃음소리에 뭔가 잘못된 걸 깨닫고 울컥해서 노려보자 조용히 고개를 숙이더니 얄미울 정도로 침착하게 말을 꺼낸다. "루베라께서 뮤즈니안의 황태자와 사랑의 도피를 하신 후로 식사는 물론 잠도 주무시지 않고 신경증까지 보이시어........ 큭..........약을 써 강제로 수면에 드시게 해 버렸는데............" 결국 아픈 게 아니라 퍼대 자고 있다는 소리다. 게다가............ "누가 사랑의 도피를 해?!!!!!" 뿌득 이를 갈고 죽일 듯 노려보자 갑자기 코앞까지 다가와 손목을 확 끌어당겨 품에 안아온다. "뭐 하는 거야?!!!" 단단한 몸에 안겨 버둥거리다 얼굴을 확 붉힌 채 화가 잔뜩 난 눈으로 노려보자 피할 틈도 없이 앙 다물린 입술에 가볍게 자신의 입술에 찍어누르곤 바로 떨어져 나간다. 얼결에 날아간 주먹을 가볍게 막아내는 녀석을 보고 분노를 터트릴 새도 없이 슬그머니 티폰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즐거운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큭, 계속 저런 상태시니.........." 갑작스런 말에 고개를 돌리자 자면서도 뭐가 그리 맘에 들지 않는지 잔뜩 미간을 구긴 채 몸을 뒤척이는 티폰이 시야에 들어온다. "강한 수면제를 썼으니 내일 아침까진 눈을 뜨지 못하실 겁니다. 해명은 내일 들을 테니............." 달아나지 말라는 말을 꺼내려는 듯 내게 시선을 돌리다 화도 내지 않고 정신 없이 티폰만 바라보는 날 보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침소 밖으로 물러난다. 어쨌든 아픈 게 아니라니 다행이다. 게다가 이렇게 약에 취해 얌전히 잠만 자고 있으니......... 원래대로라면 잠깐 얼굴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불같은 성미를 받아낼 걱정도 없고 몰래 빠져나갈 궁리도 필요 없으니 내일 새벽까지 있어도 좋을 듯 하다. 어차피 내일 돌아가면 마지막으로 미르헨가에 한번 더 잠입해 살펴보고 특별한 점이 없으면 다시 이 녀석 곁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으니........ 어쨌든 지금은............ 조심스레 다가가 뺨을 쓸어주고 살짝 입을 맞추자 슬그머니 미간이 풀리는 것을 보고 입가에 작게 미소를 건 채 그렇게 한참을 바라만 보다 옷을 벗고 바로 녀석의 품안에 파고들었다. 역시나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규칙적인 심장박동이 울려오는 단단한 가슴에 뺨을 부비자 저절로 잠이 올 것만 같이 기분이 편안해 진다. 잠결에도 허리를 끌어당겨 몸을 꼬옥 안아오는 녀석의 품안에서 그렇게 조용히 잠이 들었다. . . . "으응............." 아까부터 계속 단잠을 방해하며 이리저리 몸을 굴려대는 느낌에 잠투정을 부리며 미간을 찌푸리자 발칙한 손길이 잠잠해진 것도 잠시......... 갑자기 다리가 벌어지더니 민망한 곳을 확인이라도 하듯 만져대기 시작해 놀라 겨우 눈을 뜨자 희미한 불빛이 시야를 찌른다. "티폰? 아........으응..........아파........" 잠에서 깨기도 전에 내부로 파고드는 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져 작게 신음을 흘리며 칭얼대도 긴 손가락을 깊숙이 밀어 넣고 뭔가 조사라도 하듯 주름 하나까지 세세하게 쓸어대며 더듬어간다. 불편한 느낌에 잠시 뒤척이며 투정을 부리다 피곤함에 다시 눈을 감는 순간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한 것인지 강하게 조여대는 내부에서 조심스레 손가락을 빼내더니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네게 손댄 자가 누구냐........뮤즈니안의 황태자인가............" 살기 짙은 목소리도 알아듣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아가며 사내의 따뜻한 품으로 파고들자 잠시 화가 누그러진 듯 부드럽게 몸을 쓸어보다 목덜미 부근에서 흠칫 손을 멈춘다. "대답해..........." "흑........아파.........." 전보다 격해진 목소리와 강하게 어깨를 쥐어오는 손길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반짝 눈을 뜨자 피처럼 붉은 눈동자가 시야에 쏘아져 들어온다. '...........티.......폰?'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새카만 어둠이 가라앉아 있는 밤중....... '어떻게.....?!! 벌써 깨어난 거야?' "손댄 자가 누구냐..........." 심각한 표정과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상했던 일.......... 하지만 너무 이르다. 갑작스런 상황에 지금까지 생각해 둔 변명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야차같은 얼굴을 말똥말똥 바라보기만 하자 잔혹한 빛이 녀석의 얼굴에 스친다. "뮤즈니안을 없애버리겠다. 눈에 보이는 대로 베어 넘기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도록 밟아 망가뜨려 주지........ 큭, 뮤즈니안 황가의 핏줄을 모두 잡아들여 씨를 말려버리면........." "내........내가 했어........"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역시나 씨도 먹히지 않는다. "내가........내 손으로.........." 온몸을 붉힌 채 시선을 피하자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미치고 펄쩍 뛸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뱉는다. "증명해 봐.........." "시.........싫어!!" 때려 죽여도 싫다. 다분히 반항적인 눈빛으로 하얀 눈썹을 치켜올리고 노려보자 화난 듯 꾹 다물어져 있던 녀석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한다. "시니안을 들여라......." "예........" 갑작스런 명에 놀라 불안한 듯 초조하게 잿빛 눈동자로 올려보자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내게 박아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시니안이 침소 안으로 들어 잠에서 깬 티폰을 잠시 놀란 듯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자 바로 말을 잇는다. "흩어져 있는 주력군을 수도로 불러들여라. 뮤즈니안을 정벌한다." '이.........이 미친놈!! 차라리 날 때려 죽여!!!' "예, 폐하......" '뭐가 예야?!!!!' 평소와 달리 미친놈을 말릴 생각도 않고 지체 없이 대답하는 시니안을 황망히 바라보다 입술을 꽈악 깨물고 고개를 떨궜다. "......할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작게 말을 했는데도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시니안에게 손짓을 해 침실 밖으로 물리고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려온다. '젠장..........' 역시 보고싶다고 섣불리 돌아오는 게 아니었다. 빌어먹을 유이 새끼 때문에 되도 않는 거짓말 따위를 해가지고선........ 게다가....... 이 자식은 내가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보다는 누가 얼마나 내 몸에 손을 댔는지가 더 중요한가 보다. 수치심에 벌겋게 달아올라 부들부들 떨어대며 겨우 손을 뻗어 부드러운 페니스를 감아쥐자 갑자기 몸을 가리고 있던 시트를 확 끌어당겨 걷어버린다. '이 나쁜..........!!' 하얀 몸을 모두 드러낸 채 원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노려봐도 꿈쩍도 않는 녀석에 오기가 치밀어 올라 입술을 꽈악 깨물고 눈앞에 보이는 물건에만 집중했다. '이깟 것쯤..........!!' 따가운 시선에 귀까지 붉어져 한참을 꼼지락대다 일어설 기미도 보이지 않는 보들보들한 페니스를 서툰 손놀림으로 무작정 조물락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것이 잔뜩 긴장한 탓인지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눈에 띄게 당황해 무심결에 녀석을 바라봐도 표정하나 드러내지 않고 거짓말을 추궁하듯 집요한 시선만을 보내온다. 젠장, 미치겠다. 평소엔 저 자식이 손만 대도 발딱발딱 잘도 일어선 주제에............. 정작 필요할 땐 주인놈도 몰라본다. '이익.........!!' 분노해 손에 힘을 주고 자식놈의 목을 졸라봐도 되려 아프기만 하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화가 잔뜩 난 듯 으르렁거리는 녀석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자 미간을 찌푸린 채 빨갛게 손자국이 난 페니스를 바라보고 있다. '씹.........' 화만 더 돋군 거 같다. 처음부터 거짓말 따위 하는 게 아니었는데............. 저놈은 내가 내 몸에 손대지 않는다는 걸 안다. "미안........." 잔뜩 풀이 죽어 밑도 끝도 없이 사과의 말을 내뱉고 시선을 떨어뜨리자 대꾸도 없다. 화가 많이 난 모양............. "아프다고 해서.............보고싶어서 왔는데.............." 이어지는 침묵에 축 늘어져 힘없이 말을 하자 갑자기 아프게 손목을 쥐어온다. 덜컥 겁이 나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놀란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니 다행히 화를 누그러뜨리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긴다. 얌전히 녀석의 단단한 허벅지에 앉아 목에 팔을 두르고 답싹 안기자 손을 뻗어 아픈 페니스를 가만히 쥐어온다. 역시나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살짝 쓸어주는 손길에도 조금씩 고개를 드는 페니스에 얼굴이 확 달아올라 단단한 목덜미에 붉어진 얼굴을 묻자 갑자기 몸이 푹신한 침대 위로 눕혀진다. 의아함을 느낄 틈도 없이 익숙한 체중이 몸 위로 실리더니 바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온다. 따뜻한 체온과 부드러운 손길에 잠시 넋을 놓고 있다 입술을 살짝 깨물어오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입술을 벌려주자 시원한 향과 함께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밀려들어온다. 잠깐 얼굴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결국은 이렇게 붙들려 버렸다. 어쩌면 내일 새벽 몰래 빠져나가려던 계획마저 틀어져 버린 지도............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몸을 맞대고 있는 것조차 기분이 좋아 내일 벌어질 일 따윈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생각 뿐.......... "아..........으응................" 커다란 손이 몸 구석구석을 더듬어대다 다시 페니스를 감아쥐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단단한 몸에 매달렸다. 더운 숨을 뱉어내는 입술을 빨아대며 천천히 손을 움직여가자 심장을 정신 없이 뛰게 하는 열기에 호흡이 멈춰버릴 것만 같다. 기분 좋은 신음을 흘리며 사내의 목을 꼬옥 끌어안자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하더니 절정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순간, 갑자기 상체를 일으켜 내 것을 그대로 입안에 삼켜버린다. "아..............흐윽.............." 민감한 귀두를 빨아대는 느낌에 정신이 나갈 만큼 강한 쾌감이 온몸을 타고 올라 목을 꺾고 얼굴이 확 달아오를 정도로 음탕한 신음을 쏟아내자 사내가 더욱 흥분한 듯 더운 숨을 몰아쉬며 귀두 끝을 혀로 쓸어댄다. 지독한 쾌감에 이성 따윈 날려버린 채 시트를 그러쥐고 헐떡이며 몸을 비틀자 갑자기 엉덩이를 강하게 움켜쥐고 입술로 조여대며 뿌리까지 삼켜버린다. 뜨겁고 축축한 느낌에 덫에 걸린 짐승처럼 빠져나오려 바르작거리자 바로 피스톤질을 시작한다. 귀두 끝에 뜨거운 점막이 비벼지고 단단한 치아가 민감한 피부를 긁어댈 때마다 자지러지는 신음을 터뜨리며 몸을 활처럼 휘자 사내의 호흡이 귓가에 울릴 만큼 거칠어진다. "하악............아............티폰........." 아플 정도로 빠른 피스톤질에 높은 신음소릴 내지르다 강하게 죄어대는 느낌에 숨을 멈추는 순간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품으로 끌어당겨 입술을 포개와 얌전히 입을 벌려주자 비릿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굶주린 듯 입술을 빨아대며 침대 밖으로 손을 뻗어 작은 병을 쥐더니 뚜껑을 열어 짙은 향이 나는 액체를 손가락에 바르곤 바로 애널 위를 비벼댄다. 급하게 내부로 파고드는 손가락에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오는 신음을 그대로 삼켜버리고 성감대를 밀어 올릴 때마다 꺾이는 하얀 목에 이를 박아 넣는다. 유이 녀석이 남겨놓은 흔적을 아프게 깨물어대다 통증에 작게 신음이 흘러나가자 강하게 빨아들여 새롭게 붉은 자국을 덧씌운다. 숨쉴 틈도 주지 않고 탐해오는 사내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숫자를 늘려 내부를 파고들며 피스톤질을 해대는 손가락에 사내의 품안에서 힘겹게 할딱이며 몸을 떨자 그것도 부족한지 고개를 숙여 하얀 가슴 위에 살짝 일어선 돌기를 핥고 빨아댄다.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르작대다 내부를 메우던 손가락들이 빠져나가자마자 몸을 꿰뚫는 느낌에 단단한 사내의 등에 손톱을 박았다. 아플 만큼 빠르게 뛰어대는 심장이 갑자기 멈춰버릴 것만 같다. 숨쉬는 것조차 괴롭다. 거친 움직임에 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쾌락에 정신 없이 반응해대는 몸과는 달리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에 날뛰어대는 사내를 막지 못하고 단단한 품안에서 작게 흐느끼고 있었다. 평소라면 금방 알아채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정신이 나가버린 것처럼 따뜻한 내부에 자신을 밀어 넣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겨운 사내의 일부가 몸 안을 드나들 때마다 쾌락을 쫓아 멋대로 죄어대는 몸 때문에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할딱이며 신음을 흘리다 눈을 꼬옥 감아버리자 눈꼬리를 타고 투명한 물기가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위도.......육욕을 채우기 위한 행위도 아니다. 언젠가 녀석이 말한 것처럼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다. 자신의 품안에 있는지..........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닌지.......... 녀석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절대 묻지 않는다. 3년 전 그렇게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고.......... 몇 달 전 다시 나타났을 때도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허상을 쥔 것처럼.......내게 뭔가 들어버리면 환상이 깨어져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금기라도 되는 양....... ...........두려워했다. 제어를 잃은 듯 거칠게 움직여대는 사내를 차마 밀어내지도 못하고 아플 만큼 깊이 파고드는 페니스에 울음 섞인 신음을 쏟아내며 바르작대다 결국 사내의 단단한 품안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왕창 쏟아버렸다. 떨리는 손을 겨우 뻗어 사내의 등을 감싸안고 목덜미에 부드러운 입술을 부비자 격하던 움직임이 흠칫 멈춘다. "티폰.............티폰...................흑..........." 물기 젖은 뺨을 단단한 가슴에 부비고 서럽게 훌쩍이며 사내를 부르자 그제야 놀라 붉은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다행히 정신을 차린 건지 눈앞에 보이는 상황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뜨인 눈에 루비조각 같은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능욕을 당한 것처럼 새하얀 목덜미 위엔 붉다 못해 시퍼런 멍이 들만큼 선명한 잇자국이 새겨져버렸고 매끈한 가슴 위에 떨어진 꽃잎 같던 분홍빛 돌기는 아플 만큼 붉게 물들어 있다. 거친 키스에 입술도 따끔거리고 뺨을 적신 눈물에 심하게 헝클어진 하얀 머리칼이 달라붙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그나마 이성을 잃은 사내를 받아들인 곳은 용케 상처가 나진 않았지만 난폭한 움직임에 잔뜩 긴장해 아직도 뜨거운 열기를 내보내지 못하고 내부를 찔러오는 페니스를 아프도록 죄어대고 있었다. 이대로 까무러쳐 버리는 게 더 편할 것 같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다.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힘겹게 헐떡이는 숨만을 내뱉으며 놀라 뺨을 쓸어대는 사내의 손길에도 인형처럼 반응 없이 누워만 있었다. 끊임없이 눈물이 새어나와 흐릿하던 잿빛 눈동자가 가려지는 순간, 필사적으로 어깨를 쥐어흔드는 손길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다시 눈을 뜨자 참혹하게 일그러진 사내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을 감아버리면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주체할 수 없이 떨어대는 손으로 뺨에 흐른 물기를 닦아내고 결 좋은 머리칼을 쓸어 올려준다. 자책하듯 괴로운 표정이 보기 싫어 핏기가 가신 하얀 손을 겨우 들어올려 사내의 뺨을 가만히 쓸어주자 자신의 손으로 꼬옥 감싸쥐어 키스를 하고 고개를 숙여 조심스레 입을 맞춘다. 말없는 사죄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긴장으로 굳어진 단단한 등을 살짝 쓸어주고 차마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혀를 부드럽게 감아 가벼운 키스를 해줬다. 그래도 불안한지 널부러진 몸에 조심스레 손을 뻗어 일으키더니 품안에 꼬옥 끌어안는다. 맞닿은 가슴에 와 닿는 심장이 거칠게 뛰어대며 불안을 전해와 사내의 목에 팔을 둘러 몸을 바짝 밀착시키자 아직도 줄어들지 않은 채 내부를 찔러대던 페니스가 더 깊이 들어와 거친 맥박이 그대로 느껴진다. 뜨거운 열기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본능적으로 사내를 죄어댔다. 중간에 그만 두는 것이 힘에 겨워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힘없이 늘어진 하얀 몸이 걱정스러운 듯 그대로 빠져나가려 하자 사내의 몸을 꼬옥 끌어안고 귓가에 더운 숨을 불어넣으며 작게 속삭였다. "하아..................그냥 해..........."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한 몸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움직이자 사내의 낮은 신음이 귓가를 간질여온다. "하악............아............으응.........." 척추를 타고 오르는 쾌감에 좀 전과는 사뭇 다른 신음을 흘리며 서툴게 사내의 위에서 맞물린 하체를 음탕하게 비벼대자 참지 못한 녀석이 결국 부드러운 엉덩이를 꽈악 움켜쥐고 움직임을 돕는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키스를 해대며 입술을 더듬어 혀를 밀어 넣자 기다린 듯 핥고 빨아대며 진한 키스를 해준다. 고작 나흘동안 많이도 쌓였는지 좀 전에 그렇게 거칠게 해대고도 쉽사리 놓아주지 않고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몸 안을 드나든다. "아............흐윽...........티폰...........하악...................." 절정에 자지러지는 신음을 쏟아내고 침대 위로 무너지자 부드럽게 죄어대는 내벽을 강하게 찔러대며 한참이나 더 밀어 올리더니 그대로 태워버릴 듯 뜨거운 열기를 내 안에 토해 낸다. 거친 숨을 내쉬며 바로 품에 안기는 사내를 꼬옥 끌어안아 주자 아프도록 허리를 죄어온다. 피곤하다........... 지쳐버렸어.......... 그래서.......마음이 약해지는 건가........? 그래서 이만큼 심장이 아파 오는 거야........? 이 녀석과 함께 있으면....이 녀석이 사랑해 주면......아프게 심장을 찔러오는 통증도 씻은 듯 사라져 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함께 있어도.............이렇게 사랑해도.............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불완전한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고 가슴 한켠에 죄책감과 두려움을 품고있는 나도........... 죄책감 따위 알지도 못하던 주제에 과거 내게 저지른 잔혹한 행위에 대한 대가로 내가 떠날까, 미워할까 항상 노심초사하며 괴로운 표정을 짓는 녀석도........... .........견디기 힘들다. 이렇게 힘들어 할 거라면............ 차라리.......... "티폰..........." 조용히 말을 꺼내자 하얀 가슴에 키스를 퍼부어 대던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시선을 맞춰온다. "우리............ ............잠시만............. ...........떨어져 있자...................." 서로 상처 따위 입히지 않을 만큼 어른이 될 때까지만.......... 딱 그만큼만............ 잠깐이라도 보지 못하면 심장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고 매일 눈물만 흘리게 되더라도 잠시만........... 순식간에 굳어버리는 붉은 눈동자를 차마 마주보지 못하고 시선을 피해버리자 아프도록 턱을 움켜쥐고 다시 시선을 맞춰온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상처받은 짐승처럼 으르렁대는 녀석의 모습 따윈 보고싶지 않아 시선을 떨군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헤어지자는 게 아니라.....잠깐이면 되니까........." "잠깐?" 절망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숨쉬는 것조차 괴롭다. "네겐 잠깐의 시간도 내겐 억겁과도 같은데........" 떨리는 눈동자에서 금새 눈물이 떨어져 내릴 것만 같아........... 눈앞에서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아 장난이었다고.......농담이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빌어먹을 입술이 열릴 생각을 않는다. "도대체 내가.......... 내가 이번엔 무엇을 내놓으면 곁에 있어줄 테냐...........?" "티폰............" 광기를 사그러뜨릴 만큼의 절망이 안타까워 떨리는 입술에 맴도는 말조차 소리가 되어 나가지 않는다. "이젠 내놓을 것도 없는데..........가진 게 없는데......... 왜 자꾸 빠져나갈 생각만 하는 거지.......? 루베라를 지우고 다시 그 녀석에게 돌아가고 싶은 거냐........? 못 견디게 그 녀석이 좋다면 곁에 놓아줄 테니 내 곁에서 달아날 생각 따윈 하지마......."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죽이겠다고 했었다. 그 녀석을 사랑하게 되면 그 녀석을 죽이겠다고....... 그런데 이젠.............. 자신의 곁에만 있으면 그 녀석을 내게 붙잡아 둔단다. 다른 녀석을 사랑해도 좋으니 곁에만 있어 달란다. 이 녀석을 이렇게까지 몰아가는 내 자신이 죽이고 싶도록 밉다. 정작 이렇게 잔인하게 상처를 입히는 건 자신인 주제에............. 이 녀석은 이렇게 필사적인데 난 멍청할 정도로 안일한 마음으로 이 녀석을 사랑한다고 지껄여댔다. 유이 녀석의 말처럼............ 간사한 마음이 약간만 힘들어도 도망칠 준비를 하고있었나 보다. 이 녀석은 자신의 목숨까지 내 손에 쥐어주었는데............ 난.............. '젠장, 빌어먹을, 멍청한 새끼!!!!' "악!!! 미안.......잘못했어!! 응? 티폰.....뻥이야!! 잊어버려!! 화났으면 몇 대 패도 돼!! 응? 나 때리면 너도 아픈가? 어쨌든 내가 갈 데가 어딨다고!! 집도 절도 없이 몸만 딸랑 있는데..........나 가출한 거 아냐!! 싫다고 했는데 유이 자식이 약 써서 억지로 끌고 간........" 말을 막아버리고 입술을 포개오는 녀석을 놀란 눈으로 말똥이 바라보다 입술을 살짝 깨물어오는 느낌에 바로 입을 벌려주고 슬쩍 눈을 감자 부드럽게 혀를 감아 숨이 막힐 만큼 진한 키스를 해온다. 같이 뛰는 심장소리가....... 강하게 몸을 옭아매는 힘이......... 따뜻하고 단단한 품이............. .............못 견디도록 좋다. 그런 주제에...........잠시 떨어져 있자니.......... '바보 같은 자식...........' 속으로 자신에게 욕을 퍼부어 대며 결 좋은 붉은 머리칼을 손으로 휘감아 끌어당기고 단단한 몸을 꼬옥 끌어 안아주자, 이 놈........ ...........또 흥분했다. 내부에서 다시 단단해 지는 녀석의 페니스에 작게 할딱이며 신음을 흘리자 허리를 바짝 끌어당겨 처음부터 한 몸인 것 마냥 한치 틈도 없이 자신을 깊이 밀어 넣는다. 산소부족으로 시야가 빙글거릴 때까지 입술을 놓아주지 않고 낯뜨거운 키스를 해대다 겨우 떨어져 나가자 녀석의 품에 파고들어 작게 숨을 몰아쉬며 조용히 말을 던졌다. "진짜 유이 녀석, 곁에 붙여줄 생각이었어?" "......................." .........말이 없다. "응?" 녀석의 품에 안겨 대답을 재촉하다 귓가에 울리는 강한 심장소리에 기분이 좋아져 단단한 가슴에 뺨을 부벼대자 아직도 내 안에 자리잡고있던 녀석의 페니스가 불편할 정도로 크기를 늘려간다. "그래........." "정말?" 갑작스런 대답에 놀라 사내를 올려보자 욕정으로 짙어진 선홍색 눈동자가 붉어진 입술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 한참을 기다려도 말없는 녀석에게 듣기를 포기하고 까만 루펜타를 만지작대다 단단한 가슴 위에 살짝 일어선 돌기가 신기한 듯 손가락으로 지분거리자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개더니 부드러운 혀를 당겨 빨아댄다. ".........으응..............." 다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녀석의 품안에서 바르작거리며 할딱이자 귓가에 입술을 미끄러뜨려 이미 쾌락에 빠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귓속에 조용히 말을 흘려 넣는다. "네가 정 원한다면........그 놈을..........황태자를 곁에 붙여줄 생각이었다. 네 몸에 손댈 수 없도록 사지를 잘라버리고..........사내구실 못하게 한 후에..........." Rubera(루베라) #160 -티폰- 부드럽게 밀어 올릴 때마다 하얀 목이 꺾이고 살짝 벌어진 붉은 입술을 비집고 미치도록 예쁜 신음이 흘러나온다. 쉬이 멈추지 않는 행위에 힘이 드는지 헐떡이며 가쁜 숨을 내뱉는 입술을 탐해가자 하얀 팔이 목에 감겨온다. 정신 없이 혀를 섞다 슬쩍 성감대를 긁어대며 밀어 올리자 화들짝 놀라 내 몸에 들러붙더니 곧 얼굴을 붉히곤 품안에서 투정을 부려댄다. 감히 황제에게 빨리 나가라며 떼를 쓰는 게 괘씸해 따뜻한 몸 안에서 끝까지 빠져나가자 눈에 띄게 안심하며 눈을 감는 아이를 보곤 한참이나 이어진 행위로 부드러워진 내부로 단번에 진입해 깊이 찔러 올렸다. 온몸을 둘러싼 한기를 단번에 녹일 만큼 따뜻한 느낌에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아 주자 갑작스런 침입에 놀라 바르작대며 강하게 죄어온다. 저절로 신음이 새어나올 만큼 강한 쾌감에 바로 욕정을 쏟아내고 싶은 욕구를 겨우 누르고 한계까지 밀어 올리자 타고난 요부처럼 내부에 받아들인 페니스를 죄어대며 쾌락을 끌어낸다. 화가 났는지 눈을 부릅뜨고 씨근덕거려도 몸에서 느껴지는 쾌감은 어쩔 수 없는지 약간만 움직여도 신음을 흘리며 노려보다 갑자기 빽 소리를 질러댄다. "씹, 이..........이......변태새끼, 나가!!!!!!! 비켜!!!!! 흑..........움직이지......마..... 하아........이.......나쁜.......하악......새끼.........아......하지마.........으응........." 알 수 없는(?) 소릴 질러대다 부드럽게 몸을 움직여가자 달콤한 신음을 쏟아낸다. 분한 듯 울먹이는 소리를 간간히 뱉어내던 입술을 그대로 막아버리자 구명줄이라도 되듯 몸에 꼭 달라붙어 깊이 밀어 올릴 때마다 흠칫흠칫 떨어대며 품안에 파고든다. 쾌감을 느끼는 것조차 힘이 드는 듯 내 몸을 꼬옥 붙들고 미약한 신음을 흘려대는 아이의 페니스를 가만히 감아쥐자 그제야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날 바라본다. 약간 색이 옅은 잿빛 눈동자........ 빛깔은 다르지만 여전히 예쁘기만 하다. 손안에서 금새 단단해지는 페니스에 붉어진 얼굴을 품안에 묻는다. 천천히 손을 움직여주자 가슴에 맞닿은 아이의 입술에서 더운 숨이 새어나온다. 귀두 끝을 비벼대며 자극을 하자 한참 후에야 유색 액체가 조금씩 맺히기 시작한다. 빠르게 피스톤질을 해주자 이미 몇 번의 사정으로 욕정을 내보내는 것도 힘에 겨운 듯 도리질을 치며 품안에서 쇄골뼈를 깨물어대다 절정에 귀두 끝을 손가락으로 막고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괴로운 듯 바르작대며 정신 없이 자극적인 신음을 쏟아낸다. 나흘만에 다시 내 품으로 돌아왔다. 눈을 뜨자마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내 품안에서 잠이 든 하류를 발견하곤 지금까지 이 아이를 기다려온 2년이란 세월이 얼마나 까마득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광기에 미쳐있던 지난 2년만큼 지옥 같은 나흘을 보냈다. 내 루베라를.......... 내 소중한 것을 자꾸 탐하는 그 놈을 용서할 수 없었다. 죽이고 싶었다. 다시는 내 손안에서 훔쳐 가는 일이 없도록........ 뮤즈니안을 망가뜨리고......... 뮤즈니안의 황제를..........황비를.........황태자를.............왕녀를............모두 목매달아 버리고싶었다. 내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살의에 몸을 떨며 머릿속으로 참혹한 전쟁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불편한 듯 뒤척이는 하얀 몸을 품안에 꼬옥 안아주자 기분이 좋은 듯 뺨을 부벼오는 아이를 보고 굳어버린 입가에 미소가 머문 것도 잠시............ 하얀 목덜미에 찍혀있는 붉은 자국을 보곤 기어코 분노를 터뜨려 버렸다. 잠이 든 아이를 흔들어 깨워 물으니 대답이 없다. 뮤즈니안의 황태자를 죽이겠다 협박 아닌 협박을 해대자 겨우 내뱉은 말은 기가 막힌 거짓말..........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제 손으로 했다고 거짓을 말하는 아이를 보곤 머릿속으로 황태자 놈의 사지를 잘라내고 몸뚱이를 몇 번이나 토막내고 있었다. 이 아인 쾌락을 위해서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않는다. 손을 댄다 해도 이 아이가 제 몸을 만졌을 때 내가 느끼는 것은 쾌감이다. 하지만 이 아일 타인이 만졌을 때 내가 느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불쾌감........... 그걸 모르니 이런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거다. 지금도........... 저렇게 서툰 손놀림에도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드러내는 건 내 자신......... 내 손에 길들어버린 몸이 서툰 손길에 반응하지 않자 자신의 처지도 잊고 어쩔 줄 몰라하며 날 바라본다. 기가 막힐 정도의 순진함에 그대로 쓰러뜨려 바로 따뜻한 몸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걸 겨우 눌러 참았다. 2년이나 흘렀음에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갓 태어난 새끼 새처럼 나만 바라보던 그때완 달리 이젠 그 눈동자에 다른 자를 담을 줄도 알기에 불안을 지울 수가 없는 거다. 스쳐보는 눈빛에도.........말 한마디에도 아이에게 미쳐버린 심장이 정신 없이 반응을 해온다. 미안하다 고개를 숙이면 심장이 쿡쿡 찌르듯 아파 오고 보고싶어 돌아왔다 말하면 숨이 찰 만큼 심장이 뛰어댄다. 그리고............. 내 품안에서 상처받아 흐느끼는 얼굴에 심장이 멎어버렸고 잠시 헤어져 있자는 말에 날카로운 통증이 가슴에 스친다. 지독한 소유욕과 광기에 아직도 상처입고 눈물을 보이는 아이가 안쓰럽지만 절대 놓아줄 수 없다. 과거와 같이 놓아버리면............. 이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품안에 꼬옥 가둬둘 수밖에 없는 거다. "하악............티폰.................아.............흐윽..........아파.........." 귀두 끝을 막은 채 부드럽게 피스톤질을 해주자 아이가 느끼는 통증과 쾌감이 그대로 몸을 타고 오른다. 빠져나가려 바르작대면서도 만족하지 못한 듯 내 것을 정신 없이 죄어대는 아이의 따뜻한 몸을 드나들며 손안에서 아프도록 부풀어오른 페니스의 귀두 끝을 손가락으로 슬쩍 비벼대자 참기 힘든 듯 내게 매달려 목덜미에 얼굴을 부벼대더니 그대로 추욱 늘어져 힘없이 몸이 밀리기 시작한다. 더 이상하면 또 울려버릴 것 같다. 벌써부터 몸을 떨어대며 품안에 얼굴을 묻고있는 아이를 꼬옥 끌어안고 하얀 머리칼에 키스를 해주며 깊이 파고들어 사정한 후 페니스를 감아쥐고 있던 손을 풀어주자 흠칫 몸을 굳힌 채 등에 손톱을 박더니 바로 유색 액체를 몸밖으로 내보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할 만큼 강한 쾌감에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그대로 아이의 몸 위로 쓰러져버렸다. 이렇게 이성을 잃을 만큼 쾌락을 느끼는 것도 이 아이의 몸 안에 들어갔을 때뿐이고 내게는 없는 따뜻함을 느끼는 것도 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뿐이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만족스런 기분으로 하얀 목덜미에 키스를 하고 허리를 꼬옥 끌어안아 주자 아직도 포기 못한 것인지 품안에서 낑낑대며 빨리 나가라고 떼를 쓴다. 바르작대는 몸을 꼬옥 끌어안고 성감대를 슬쩍 밀어 올리며 더 할 뜻을 내비치자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문다. 어지간히도 힘들었던지 축 늘어진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불편한 듯 자꾸 꼼지락대자 몸을 살짝 틀어 자세를 역전시켰다. 내 위에 올려놓고 매끈한 나신을 부드럽게 쓸어주자 그제야 안심한 듯 긴장을 풀고 까만 루펜타가 새겨진 가슴 위에 머리를 기댄 채 붉은 머리칼을 지분대기 시작한다. 창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어스름한 새벽빛에 하얀 나신이 시야에 전부 드러나자 갑자기 스치는 생각에 아이의 몸을 오가며 부드럽게 쓸어주던 손을 딱 멈춰버렸다. 2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미완으로 남아있는 아이의 하얀 몸은 미치도록 예쁘기만 하다. 내가 없는 곳에서도 이렇게 예쁘게 자란 게 화가 날 만큼 빛이 난다. 매끈한 선과 하얀 피부, 약간 마른 듯 하지만 적당히 잡힌 근육......... 여인들도 충분히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몸이지만 사내들도 미치게 만드는 몸이다. 그 때문에 잠시라도 아이에게서 눈을 돌리면 금새 버러지 같은 것들이 들러붙어 품안에 가두어두는 것인데 기가 막히게도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빌어먹을 황태자놈이 가르쳤는지 어디서 못된 버릇을 들여 창 밖으로 빠져나가 멋대로 나돌아다니니 속이 탈수밖에.......... 2년 전만 해도 곁에서 곱게 자라면 18살이 되었을 무렵엔 아이에게 어울릴 만큼 예쁜 처녀를 뽑아 동정을 떼어줄 생각이었다. 사내로 태어나 평생 황제의 루베라로 살아야 하는 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알고 있었기에 마음에 드는 처녀라도 있다면 몇 명 뽑아 작은 궁이라도 만들어 가끔씩 들여줄 셈이었지만 지금에 와선 어이없을 만큼 미친 소리......... 함부로 내돌릴 만큼 가벼운 존재도 아닐뿐더러 하룻밤을 보낸 여자라 해도 눈에 보인다면 미쳐 죽여버릴 게 분명하다. 게다가............ 이렇게 몸이 민감해서야 여색을 알아버리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게 뻔하고......... 나중에 품에 안은 여자와 사랑에 빠져버리기라도 한다면...... "큭........." 터무니없이 이어지는 생각에 비소를 터트리자 품안에서 아직도 붉은 머리칼이 신기한 듯 지분대던 아이가 의아한 눈으로 날 올려본다. 피곤함에도 잠잘 시기를 놓쳐버려 잠이 오지 않는 듯 꼼지락대는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자 작게 하품을 하더니 스륵 눈을 감는다. 이렇게 품안에 있으면 만지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사랑스럽다. 밤새 침대를 굴러 부스스해진 머리칼도 쓸어보고 달콤한 향내가 나는 부드러운 목덜미에 입술도 부벼보다 오목하게 들어간 허리를 지나 아직도 내 것을 품고있는 엉덩이를 만지작대자 작게 신음을 흘린다. 졸린 눈을 반짝 뜨고 화가 난 듯 하얀 눈썹을 치켜올린 채 앙칼지게 노려보는 게 우스워 노골적으로 부드러운 살점을 주물러대자 작게 이를 갈며 손에 쥐고있던 붉은 머리칼을 확 끌어당긴다. 말없이 노려보니 이리저리 눈을 피하며 딴전을 피우다 갑자기 뭔가 분한 듯 울컥 해서는 벌떡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얌전히 재우려는 생각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몸 안에서 다시 크기를 늘려 가는 페니스에 놀라 몸을 빼고 달아나는 아이를 붙들어 밑에 내리누르고 고개를 숙여 살짝 벌어진 분홍빛 입술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어대며 따뜻한 입안으로 들어서 집요하게 애무를 시작하자 한참이 지나서야 하얀 속눈썹이 스륵 내리 감긴다. 연한 허벅지를 손으로 쓸어가며 살짝 벌리는 것도 모른 채 진한 키스에 빠져있는 아이의 안에 몸을 천천히 밀어 넣자 놀란 듯 눈이 크게 뜨인다. 아직도 내부가 젖어있지만 지금까지 안에 들어가 있던 보람도 없이 금새 좁아져 제 모양도 채 갖추지 못한 페니스를 아프도록 죄어온다.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듯 바둥거리며 벗어나려 해보지만 헐떡이며 숨을 내뱉는 입술에 키스를 해가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입술을 비집고 자극적인 신음이 터져 나온다. 부드럽게 움직여줘도 힘이 드는 듯 머리를 가로 저으며 투정을 부리는 아이의 얼굴에 가벼운 키스를 떨어뜨리며 성감대를 밀어 올리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매달려 온다. "하악.......아........으응.............." 품안에서 헐떡이며 꼼지락대는 게 미치도록 사랑스럽다. 아이의 안에 몸을 깊이 묻고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내벽에 감싸여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자 이상하게 잠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아............티폰................." 움직임이 멈추자 몸이 달아 보채는 아이의 목소리가 멀어져간다. 그대로 아이의 품안에 무너져 눈을 감자 화들짝 놀라 몸을 굳힌다.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보는 아이를 달래줘야 하는데........... 겁에 질려 몸을 떠는 아이를 안심시켜줘야 하는데............ 따뜻한 아이의 품안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잠을 막을 수가 없다. 아무래도 아까 시니안이 멋대로 물에 타 넣은 약기운이 다시 도는 모양.......... 카이도가의 녀석들은 매번 이렇게 고집불통이다. 게다가 대를 내려갈수록 그 피가 진해지는 건지....... 깨어나기만 하면 쓸데없는 약을 만들어대는 궁의놈을 당장 지하감옥에 쳐넣어야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의 몸을 품에 안은 채 의식이 멀어져 갔다. . . . "내놔............" 겁도 없이 제 발로 찾아온 것도 모자라 감히 내 앞에서 내 루베라를 내놓으라 지껄여대는 애송이 녀석을 살기를 띈 채 노려보고 있었다. 죽이고 싶다................... 죽여버리고 싶다.............. 가장 참혹하고 고통스럽게.............. 처음 봤을 때부터 온통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살의를 겨우 억누르고 있는 건 내 아이 때문...... 저 놈을 죽여버리면 분명 눈물을 내비치며 슬퍼할 게 분명하다. 날 사랑한다 해도 내 곁에서 버티지 못하고 떠나버릴 테지........... "키르!!!!!! 이 자식, 어디다 감춘 거야............?!!!" 하지만............ 지금처럼 아이가 곁에 없을 때 몰래 죽여버리면..........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갈갈이 찢어 짐승들에게 던져버리면........... "폐하........." 살기 띈 눈빛에 내 생각을 읽은 것인지 시니안이 재빨리 광기로 흐려진 의식을 현실로 끌어당긴다. 할 수 없이 병사들에게 붙들려 쨍알쨍알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햇병아리의 모가지를 비틀어대는 망상은 한켠에 접어두고 차갑게 말을 꺼냈다. "케레스를 황성에 불러들여라........" 닷새동안 황제의 침소에 몰래 침입한 범인을 잡는다는 핑계로 황태자와 하류를 찾기 위해 수도로 수색대와 케레스를 내려보냈다. 결국은 교활하게 코앞에 있었던 건지 하류가 사라지자마자 이렇게 제 발로 내 앞에 나타났지만....... 찾아봤자 죽이지도 못하는 황태자놈 따윈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내 루베라................ 분명.......... 지난 밤........아니,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내 품에 있었던 아이가 또다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처음엔 다시 녀석에게 돌아간 줄 알고 미친 듯 분노했지만 제 발로 찾아온 황태자놈을 보면 그것도 아니고, 꿈인가 했지만 품안의 온기와 아직도 남아있는 침대 위의 흔적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준다. "이........이 영감탱이가 도대체 키르한테 무슨 짓을................!!" 정사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 침대를 가만히 쓸어 보자 분한 듯 이를 갈며 노려보는 황태자놈의 행태에 잠시 상황을 잊고 비웃음을 던져주었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을........ 감히 내 루베라에게 손을 대려했다. 백 번을 죽여도 부족하지만 그럴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다. 간혹............ 다음에 아이를 안을 땐 이 녀석의 앞에서 안는 것도 좋을 테지......... 물론 하류의 알몸을 보여주진 않겠지만......... 나와 같은 눈을 하고 있으니 아이가 내 밑에서 쾌락에 몸부림칠수록 지옥으로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살기마저 띈 바이올렛 눈동자를 만족스레 바라보다 갑자기 녀석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을 보곤 표정을 굳혔다. "큭, 지금은 참을 수밖에..........그 녀석과 내기를 했다. 이번엔 이길 생각이지........ 시간은 충분해......내가 뮤즈니안의 황제가 되기 전까진........내 품안에 떨어질 테니 그때까지 만이야. 강하지만 쉽게 깨지는 녀석이다. 어차피 상처만 주는 네놈 곁에선 오래 버티지 못해.......... 그러니 폐하께선.......약혼녀와 혼전에 초야까지 치루셨으니 빨리 황비를 맞아 후계에나 신경 쓰시길............"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큭, 이런 실수를........아직 듣지 못하신 듯 하군요........ 그 녀석.....이 침실 안에서.........바로 그 침대 위에서.........황제 폐하가 약혼녀와 밤을 보내시는 걸 직접 보았다고...." '그럴........리가............' 아직도 아이의 체향이 남아있는 하얀 시트를 강하게 그러쥐자 비웃듯 말을 던진다. "그게 아마............그 아이가 이곳에 잠입해 폐하가 휘두른 검에 상처를 입고 달아났던 날로 기억하는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버렸다. 모르는 사이에도 끊임없이 상처만을 준다. 이렇게나 소중한데............ 사랑만을 줘도 부족한데............. 곁에 두면 언젠가 깨어져 부서질 것만 같아............ ...........두렵다. 하지만............... "찾아라.............." ...........절대 놓아줄 수 없다. 갑작스런 말에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황태자놈에게 시선을 돌려 침묵을 지키고 있던 시니안에게 말을 던졌다.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아니, 이번엔 내가 직접..........." "폐하..........!!!"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갑자기 손이..........몸이 떨려온다. 누군가 내 것에 손을 대고 있다. 끔찍한 불쾌감............그리고 아이가 느낄 불안과.........공포........ 도대체 무슨 일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하류............티폰이 잠든 몇 시간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이걸로 다시 잠적합니다. 그럼, 전 이만...........꾸벅 (__)........ Rubera(루베라) #161 새벽 공기가 차기도 하다. 투명한 이슬을 머금은 색색의 꽃들이 예쁜............... "............................ ....................... ............ ....." 아악!!! 이게 아니다!! 오늘 새벽!!!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따뜻한 녀석의 품안에 있었다. 그런데......... 그게............. 지난밤 그 녀석이 나흘동안 못한 복수를 한 것인지 죽을 만큼 실컷 해대고 그대로 픽 쓰러지는 게............ 나......난 그 놈이 복상사란 걸 한 줄 알고.......... "............................ ......................... ................ ........." 크악!!! 이것도 아냐..........!! 그 자식, 알고 보니 약기운이 그제야 다시 몰린 건지 죽은 것처럼 잠이 들었다. 게다가 한창 하던 도중.......... 그것도 내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빌어먹을 변태자식......!!' 그 변태 황제놈이 바짝 붙어 뒤척일 때마다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민망한 신음만 흘려댔다. 결국 새벽이 될 때까지.......그래봐야 1시간도 안되지만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다가 자꾸 유이 녀석이 눈에 밟혀서....... 어젯밤에 몰래 빠져나온 것도 모르고 아직도 내가 화난 줄 알고 코가 석자나 빠져있을 텐데........ 그래서 다시 황성으로 돌아간다고 말이라도 하고 오려고 겨우 티폰 녀석의 품에서 빠져나와 또 탈출을 감행한 거다. 뭐, 탈출이라고 해봐야 금방 말만하고 올 테니 티폰이 깨어나기 전에 다시 돌아갈 수 있을 테지만.........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런데........ 왜 저렇게 수상쩍은 것들이 내 눈앞에서, 이 새벽, 황궁 정원 안에서 알짱대는 건지......... 게다가 굉장히 신경 쓰이는 커다란 자루까지 들춰 매고 은밀히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굉장히 커다란 자루를 들고........... 커다란 자루를............... '가만.......저 자식들.........설마 황궁 보고라도 턴 거 아냐?!!' 그런 거라면 확실히 문제가 있다. 내 것은 내 것이고 티폰 것도 내 것이니.......... 분명 저 것도 내 것이란 소리.......... 뿌득........ 감히 내 물건을 훔치다니 간도 크구나........ 크리올라 황궁은 아직 나도 털어 본 적이 없단 말이다!! 반쯤은 호기심에........나머지 반은 분노에 기척을 죽여 조용히 따라가고는 있지만 자꾸 외진 곳으로 빠지는 것이 점점 불안해질 무렵........ '뭐.............뭐야....................?!!' 갑자기 시야에 들어오는 뜻밖의 인물에 놀라 재빨리 몸을 숨기고 숨을 죽였다. '저............저 새낀........!!' 분명 그 변태자식이다. '스턴.............' 수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런 곳에서 이렇게 보게될 줄이야....... "들키진 않았겠지?" "예! 요 며칠 간 병사들의 반 이상이 황제의 명으로 황성 밖으로 빠져나가 손쉽게 빼낼 수........... " "무슨 소리냐......" "나흘 전, 황제의 침소에 몰래 침입자가 든 모양인데 그 자를 찾는 듯 합니다. 카이도가의 차남이 병사들을 이끌고 수도 안을 뒤지느라 혈안이 되어있다는 소문이......" '케레스가...........날 찾는 건가........'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이상할 정도의 침묵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보는데.......... "도둑고양이를 달고 왔군..........." "우악!!!!!!" 바로 코앞에서 낯짝을 들이밀고 있는 스턴 자식과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녀석들에 놀라 뒤로 벌렁 자빠지며 비명을 지르자 살벌한 놈들이 바로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고 내게 다가서기 시작한다. "이건..............." 갑자기 내 턱을 쥐고 당황한 얼굴을 즐거운 듯 살펴보던 스턴놈이 뒤로 손짓하자 무기를 빼들고 다가오던 녀석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뒤로 물러선다. "뮤즈니안의 황태자와 고국으로 돌아갔다 들었는데...............크리올라 황성의 정원엔 무슨 볼일로............" 입가에 그려진 미소와는 달리 날카로운 눈빛으로 표정을 살피는 녀석에 식은땀이 등줄기로 타고 내리는 걸 무시하고 썩을 유이놈이 말하던 백치 같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아무것도 모르는 듯 말을 꺼냈다. "치.........친구 좀 만나려고 숨어들어 왔는데 빌어먹을 정원이 너무 넓어서 한참 헤매다........... 그러다 너랑 저 떡대들이 보여서..........방금 나가서 길 좀 물어보려고 했는데........." "친구?" "으.......응........" "친구라면 혹시............" 이 자식도 소문을 들었다면 알고 있을 터......... "시온.........!!" 역시나 사람은 머리가 좋고 봐야한다. 이 놈이 시온의 실종과 관련이 있다면 뭔가 나오겠지...... "뮤즈니안의 황태자께선...........?" "그 자식 잘 때 몰래 도망쳐 나와서 나 혼잔데?" '그러니 맘놓고 미끼를 물어라, 빌어먹을 변태 놈아........' "............도망쳤다?" 의심하는 듯한 눈빛에 뜨끔해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씨익 웃어버리자 다행히 추궁할 생각은 없는지 다시 말을 잇는다. "시온님은 지금 황성에 계시지 않습니다........." "응? 왜?"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손을 내밀어온다. '뭐야?' 미간을 찌푸린 채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무례가 아니라면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역시 알고있는 거였어?!! 당연히 무례가 아니지! 빌어먹을 새끼, 딱 걸렸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겉으로는 강아지 마냥 녀석의 손을 덥석 잡는 순간 섬뜩한 감각에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아버렸다. 역시나 왠지 꺼려지는 느낌....... 지난번에도 이런 일이................... "무슨...........?" "응? 아.......아냐......." 의아한 눈으로 내려보는 사내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스스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그대로 정원을 벗어나 황제의 숲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곳은 커다란 마차가 세워져있는 숲길.......... 사내들이 마차 안에 황성에서 훔쳐온 자루를 싣고 말에 오르자마자 스턴 놈이 애새끼 다루듯 내 몸을 멋대로 들어올려 마차 안에 앉히곤 자신도 들어와 맞은 편에 앉는다. 천천히 마차가 출발하기 시작하자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게 꽉꽉 막아놓은 기이한 마차 안을 미간을 찌푸린 채 이리저리 살펴보다 사내들이 실어놓은 커다란 자루에서 시선을 딱 멈췄다. "그거.......뭐야? 비싼 거야?" 호기심을 가득 담고 바라보자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리고 자루에 흘끔 시선을 던지더니 다시 날 바라본다. "나라 하나를 살만큼 비싸지만............제겐 모래 한 톨의 가치도 없는 물건입니다" '씹, 뭐냐고 물어봤지, 누가 스무고개 하자고 했어?!!' 더 이상 할말이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어버리는 녀석을 슬그머니 노려보다 다시 툭 말을 던졌다. "그럼 나 줘!" "큭, 제가 이걸 드리면...........당신은 제게 뭘 내놓으시겠습니까?" "앙?" '지금 이 새끼가 나한테 뭘 내놓으라 한 거야?!!' 이 놈도 꽤나 강적이다. 감히 내 주머니를 노리다니............ 눈썹을 치켜올리고 노려보다 짐짓 관심 없는 척 자루에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어차피............나중에 내가 또 훔쳐내면 그만일 테니........... "저것 좀 걷어!!! 답답하잖아!!" 창이 막혀있으니 도통 어디로 가는 지 알 수가 없다. 짐작대로라면 미르헨가로 갈 테지만........ 두터운 천을 걷어내려 몸을 일으키자마자......... "우왁!!!! 뭐...........뭐야?!!" 이 놈이 미쳤나 갑자기 내 손목을 확 끌어당겨 녀석의 품안으로 쓰러져버렸다. 그리고............... 기억 속에 남아있는 체향........... 순간................ 그 날 밤............ 녀석의 침실 안에서 벌어졌던 변태행각이 떠올라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게다가 섬뜩한 느낌.......... 끔찍한 소리............ 『네가..............죽인........거다..........』 "아........아냐!!!!! 놔!!!!!!!!!!!!!!!!!!!!!!!!!!" 속삭이듯 귓가에 스쳐오는 목소리에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무의식적으로 품안에 유일하게 숨겨뒀던 단검을 꺼내 휘두르자 바로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어 제압하고 단검을 빼앗아버린다. "이런..........여기서 소란을 피우시면............곤란합니다.........."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과민한 행동에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크게 뜨고 사내를 바라보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여유롭게 내게서 빼앗은 단검을 품에 넣고 뭔가 조그만 물체를 꺼내든다. 분명................ 금빛 구슬........ 본 적이 있다.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금구슬은 지난 번 미르헨가에 혼자 잠입해 얼결에 가지고 나온 구슬과 같은 것............... 작은 구슬을 손가락으로 기이하게 비틀자 두 개로 분리되더니 안에서 작은 알약이 빠져나온다. 금으로 된 구슬 치고 속이 빈 듯 가벼운 게 이상하긴 했지만 조그만 용기로 쓰이고 있었을 줄이야....... 작은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는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자 갑자기 머리를 확 끌어당겨 입술을 겹쳐온다. 놀랄 틈도 없이 입안으로 들어온 혀가 작은 알약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자 순식간에 타액과 함께 그대로 넘어가 버렸다. 속수무책으로 삼켜버린 알약을 켁켁대며 뱉어내려해도 이미 넘어가 버린 지 오래인데다 입술을 빨아대며 입안을 유린해 가는 사내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공포에 날카롭게 날이 선 신경과는 달리 몸은 자꾸만 나른하게 퍼져간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독은 아닌 모양........ 혀를 감아 빨아대는 사내를 밀어내야 하는데 멍한 머리와 무기력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축 늘어진 채 얌전히 녀석의 품안에 안겨 지독히도 긴 키스를 받다 숨이 막혀 의식이 희미해질 무렵, 미약하게 바둥대며 고개를 가로젓자 겨우 입술을 떼어내 숨통을 트여주더니 미련이 남는 듯 다시 고개를 숙여 타액에 젖은 입술을 핥고 빨아대며 가벼운 키스를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저항도 못하고 무방비 하게 사내의 품에 안겨 헐떡이는 숨만 내뱉자 천천히 귓가로 내려와 귓불을 깨물어대며 조용히 속삭여온다. "큭, 고귀하신 분께서 그렇게 위험한 물건을 들고 다니시다니........혹시 또 지니고 계신 건...." "흑............" 옷안으로 파고든 손이 뭔가를 찾는 척 뽀얀 속살을 여기저기 더듬어댄다. 가슴 돌기를 손가락으로 비벼대며 희롱할 때마다 움찔거리는 몸이 맘에 드는 듯 한참을 지분대더니 천천히 손을 아래로 미끄러뜨려 부드러운 페니스를 멋대로 움켜쥔다. 신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얀 목이 뒤로 꺾이자 바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개더니 벌어진 입술을 빨아대며 축축한 혀를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몸서리칠 정도로 싫은 느낌에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입안을 휘저어대는 녀석의 혀를 물어뜯으려 떨리는 턱에 힘을 줘도 살짝 깨무는 정도밖에 되지 않고 벗어나려 몸부림쳐도 바르작대는 수준밖에 되지 않아 오히려 더 흥분만 시킬 뿐이다. 게다가............ 약기운 때문인지 반응도 보이지 않는 페니스를 손에 쥐고 멋대로 만져대던 녀석이 장난이라도 치듯 손톱을 세워 귀두 끝을 비벼대자 기어코 흐려진 잿빛 눈동자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 '개자식...............' 위험한 줄은 알고있었지만 이런 취급을 받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약까지 사용해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사내아이를 잔인하게 유린하던 놈이었던 걸 잠시 잊고있었던 게 실수였다. 변태놈의 품에서 울어버린 게 죽고싶을 만큼 수치스러 몸을 바들바들 떨어가며 겨우 눈물을 삼키고 있는데 거의 도착적으로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부벼대던 움직임이 순간 멈추고 엄한 곳을 쥐고있던 손이 거두어진다. 의아함에 살기를 거두지 않은 눈빛으로 사납게 노려보자 자신이 헤쳐놓은 옷자락을 얌전히 여며준 후 부드럽게 뺨을 쓸어대며 말을 꺼낸다. "큭, 걱정하지 마라. 함부로 손대진 않을 테니......." 뜻밖의 상황에 의심을 감추지 않고 아플 만큼 유린당한 입술을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거칠게 닦아내자 그게 또 맘에 들지 않는 듯 가볍게 하얀 팔목을 움켜쥐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 온다. "하지만............네게 욕심이 난다는 것은 말해두지..........." 미친놈이 지랄도 수준급이다. 웃기지도 않는 변태놈의 말에 자꾸 멋대로 감겨오는 눈에 힘을 주고 죽일 듯 노려봐도 녀석에게는 오히려 앙탈로 밖에 보이지 않는 듯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긴 손가락으로 붉어진 입술과 물기가 남아있는 눈가를 쓸어대는데 여념이 없다. '개 같은 변태새끼, 몸만 제대로 움직이면 목을 졸라 죽여버릴 테다........' 칼을 갈아대는 속내를 알 턱없는 녀석이 축 늘어진 몸을 멋대로 끌어안아 온다. 이놈의 개 같은 팔자는 변태새끼들이 눈 까뒤집고 달려들 팔자가 아니면 몸에 변태새끼들이 들러붙는 끈끈이라도 붙어있는 게 틀림없다. 이런 미친놈이 척척 들러붙는 것을 보면............. 이를 까득 갈아대며 욕을 줄창 해대다 결국 약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미친놈의 품에 젖먹이처럼 얌전히 안겨 설핏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생각과는 달리 미르헨가가 아닌 처음 보는 거대한 저택....... 겨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피곤에 절은 것처럼 비몽사몽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몸뚱아리를 번쩍 안아 올리더니 음산한 기운이 풍겨나는 건물 안으로 들어서 빛도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 구석에 있는 육중한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작게 삐걱대는 거대한 문을 열쇠로 열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시 무겁게 내려앉는 의식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주위를 둘러볼 기운도 없다. 겨우 숨만 내쉬며 반수면 상태로 접어들 무렵......... 푹신한 침대가 등뒤에 닿아오더니 약간 두터운 시트가 목까지 끌어올려진다. 편안한 느낌에 고른 숨을 내쉬며 시트 안으로 파고드는 순간 차갑고 말캉한 물체가 귓가를 부드럽게 비벼대며 따뜻한 숨을 불어넣는다. "잠시만 내 곁에 있어줘야겠다.......... 내 흥미가 식을 때까지만....... 큭, 금방이면 되겠지......... 난.............어리석은 그 자완 다르니............" 부드러운 애무와 작게 속삭여오는 목소리에 흠칫 몸을 떨며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 . . 몸에.........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공중에 붕 뜬 기분.........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있고 생각조차 하기 귀찮아 진다.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은 것도 같고.......토기가 치밀 정도로 나쁜 거 같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엉망으로 헝클어져 있다. 게다가............... 숨이 막힐 듯 무거운 공기......... 괴로운 듯 가늘게 새어나오는 신음소리....... 속삭이듯 알 수 없는 말을 흘려내는 악마의.................목소리........... 기이하게 휘어져 보이는 시야 속으로 늙어 주름진 손이 고통에 부들부들 떨어댄다. 꺼져 가는 생명을 바라보며 희열에 찬 금갈빛 눈동자........ 강하게 숨통을 조여댈수록 격하게 경련이 일더니.........그대로............마른 장작 같은 손이 힘없이 떨구어졌다. 반응 없는 시체에 질려버린 듯 그대로 돌아선 사내는 악마처럼 흉측하긴 커녕 성화에 그려진 천사만큼이나 아름답다. 본적 없던...........갈빛이 섞여든 금색 눈동자와 어디선가 본적 있는 금빛 머리칼......... "벌써 깨어난 건가........" 아름다운 얼굴과는 달리 차가운 목소리와 냉혹한 표정......... 몸을 일으켜 달아나려 해도 어쩐 일인지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고 방금 전보다 더욱 일그러져 보이는 시야에 두려움과 공포가 앞선다. 불안으로 아플 만큼 뛰어대는 심장 때문에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버릴 것만 같다. 아무 말도 없이 힘없이 늘어져있는 몸뚱아리를 내려보던 사내가 갑자기 거칠게 몸을 끌어올려 벽에 밀어붙인 채 시선을 맞춰온다. "이런......약을 너무 많이 썼나......" 윙윙대는 소리에 몸도 가누지 못하고 눈을 감자 바로 뺨을 올려붙여 정신을 붙들어놓는다. "위험한 걸 가지고 있더군............." 눈앞에 들이미는 붉은 단검에 초점조차 흐려진 시선을 맞추자 소리 없이 단검을 검집에서 빼내 섬뜩한 검날 끝을 까만 눈동자 앞에 들이민다. "예쁘군........그 대단한 황태자와 슈안이 좋아할 만 해.............처음 보는 빛깔이다. 오늘을 기념해서 도려내 보관해 둘까?" 잔혹한 말에 몸이 주체할 수 없이 떨리고 까만 눈동자에선 커다란 눈물방울이 소리 없이 떨어져 내린다. "이런.......큭, 울려버렸군........... 슈안하고 황태자에겐 통했을 텐데....... ..............그런데 어쩌지? 난 눈물 따위 흘려대면서 떨어대는 약한 동물 따위............. ................질색이다" 섬뜩한 목소리완 다르게 부드럽게 뺨을 쓸어 눈물을 닦아내더니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널 어쩌면 좋을까............" 진짜 고민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참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불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을 잇는다. "그래............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다. 어차피 슈안이 실패하도록 손을 써 놓았으니........." 정말 재미있는 일이라도 벌이 듯 킥킥대며 내 몸을 끌고 나무토막 같은 시체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는 침대로 다가선다. ***음.....역시 범인은.............마지막 부분은 151편 잠깐 나왔던 과거의 기억과 연결되는 부분.......... 사건의 전말은 다음 편에........... Rubera(루베라) #162 고통에 죽어간 끔찍한 표정......... 분명 죽었을 텐데.........눈을 커다랗게 뜨고 원망하며 날 노려보고 있다. 입으로는 저주의 말을 쏟아내며 퍼렇게 변해 가는 손을 들어올려 날 붙들고 망자의 세계로 끌고 들어갈 것만 같아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정신 없이 몸부림을 쳐대자 손에 뭔가가 단단히 쥐어진다. "네가 죽인 거다............" 머릿속을 울려대는 악마의 속삭임에 반쯤 넋이 나가 어느샌가 손에 쥐어진 붉은 단검을 바라보는 순간........ 날카로운 검날이 눈앞에 누워있던 늙은 시신의 심장에 정확히 들이박힌다. "큭, 네가 죽였어......." 심장이 터져 버린 것처럼 아직 식지 않은 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내가..............아냐.......!!' 내 손을 움켜쥐고 있는 사내의 손을 미친 듯 뿌리치고 비틀대며 뒤로 물러서자 하얀 손에서 붉은 핏물이 끊임없이 떨어져 내린다. 새하얀 옷이 온통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보고 정신 없이 떨어대자 즐거운 듯 눈앞에서 킥킥대던 사내가 피에 젖어 부들부들 떨리는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어 자신의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킥, 왜 이렇게 약한 것에 집착을 하는 거지? 도대체 무엇이 잔혹하고 끔찍한 괴물을 길들이고 몇 년 동안 갈아대던 복수의 칼도 무뎌지게 만든 거냐?!! ..........내게도................... ...............그 이유를 보여봐라............" '내가..............죽인 게............아냐.................!!' 반쯤 미쳐 발광을 해대는 몸을 내리누르고 거칠게 입술을 부딪쳐온다. 입안에 감도는 짙은 혈향에 끔찍한 토기가 밀려와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다. 자꾸 시야에 흩뿌려지는 붉고 끈적한 액체가 몸에 온통 들러붙어 숨통을 조여온다. 터질 것처럼 뛰어대던 심장도 지쳐 가는지 점점 박동이 느려지기 시작하고 그와 함께 주변의 모든 것들도 시간이 멈춰버린 듯 변화가 없다. 아무 것도 느낄 수 없고 아무 것도 떠올릴 수 없다.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멍한 눈으로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천장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리니 피에 새빨갛게 물든 옷을 찢듯이 헤치고 탐욕스레 하얀 피부를 핥아대는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좀 전부터 이상하게 열이 오르던 몸을 핥고 빨아대자 붉은 입술을 비집고 묘한 호흡이 새어나간다. 헐떡이며 몸을 비틀자마자 하얀 허벅지를 벌려 반쯤 일어선 페니스를 덥썩 물어오는 사내의 금빛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휘감은 채 매끈한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아플 만큼 강하게 빨아대며 혀를 놀리는 사내 밑에서 겨우 붙들고 있던 실낱같은 이성마저 잃고 흐느끼듯 신음을 흘리기 시작하자 맘에 드는 듯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올리고 장난치듯 입술로 조여가며 빠른 피스톤질을 해댄다. 기분 나쁠 만큼 뜨겁고 질척한 점막에 비벼지는 느낌에 신음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것처럼 고개를 가로 젖다 지나치게 민감해져버린 몸이 지독한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바로 열기를 내보내자 그대로 망가진 헝겊인형처럼 축 늘어져 버렸다.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자 빛을 잃어 초점이 맞지 않는 까만 눈동자에서 투명한 물기가 붉어진 뺨을 적시고 흘러내린다. 어느샌가 턱을 쥐고 얼굴을 마주쳐오는 사내를 멍하니 바라보자 입술을 맞대고 잔혹한 미소를 띄워 보인다. "큭, 몸은 마음에 드는군. 처녀보다 민감하고, 구르고 구른 창부보다 음탕해.......... 이렇게 어린데...........그 냉혹한 황태자께서 참지 못하고 벌써 길을 들인 건가............." 머릿속까지 익혀버릴 듯한 열기를 참지 못하고 더운 숨을 내뱉자 잠시 맛을 보듯 붉어진 입술을 혀로 핥아보더니 바로 굶주린 듯 말캉한 살점을 빨아대며 내게만 들릴 만큼 작게 속삭여온다. "슈안도...........황태자도............모두 지옥에 떨어뜨려라..... 그러고도 살아남는다면...................... ............내 손으로 죽여주마........." 내부로 침입해 들어오려는 듯 차가운 손가락이 애널 위를 비벼댄다. 열기가 식지 않아 제멋대로 쾌락을 요구해대는 몸을 움찔 떨며 사내의 몸에 매달려 언제부턴가 맞은 편에 서서 시리도록 푸른 눈동자로 살기를 쏟아내는 사내에게 시선을 맞추자 그게 신호라도 되는 양 허리춤에서 천천히 장검을 빼어들고 다가서기 시작한다. 열락에 빠진 몸뚱이를 탐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던 사내가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에 몸을 피하는 순간 날카로운 검날이 사내의 심장에서 빚나가 단단한 팔목에 흉측한 상처를 남기고 붉은 피를 흩뿌린다. 작게 신음을 흘리며 표정을 굳힌 금갈색 눈동자의 사내가 검을 쥐고 서있는 사내를 돌아보곤 입술을 비틀어 여유로운 미소를 띄운다. "늦었습니다. 형님............아니, 황제폐하........." 비아냥거리는 말에 잠시 피로 범벅이 된 침대에 차가운 시선을 던지더니 다시 바닥 위에 누워 괴로운 듯 헐떡이며 몸을 비트는 하얀 나신을 바라본다. "도대체.............무슨 짓을 한 거냐...........!!" "내리신 명대로 황제를 처단했습니다. 큭, 주인 잃은 장난감이 멋대로 돌아다니길래 주워서 약을 조금 썼더니 꽤 쓸모가 있더군요. 황가의 가보를 황제의 심장에 찔러 넣을 줄도 알고.......귀엽게 안길 줄도 알고......." 작게 이를 갈며 노려보던 푸른 눈동자의 사내가 다시 무겁게 입을 열어온다. "저 아이가 황제를 죽였다는 건가............." "그게 형님께도 이로운 것이 아닙니까..........." "누가 네놈의 형님이란 거냐........!!!!!" 격한 음성에도 표정하나 바꾸지 않던 사내가 섬뜩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조롱하듯 조용히 속삭여온다. "한 뱃속에서 한 날, 시간만 달리해 태어나지 않으셨습니까...... 큭, 크리올라 황가의 피는 손톱만큼도 받지 않았는데.....우스운 일이지 않습니까? 눈동자 색 때문에 쌍둥이 중 한 명은 크리올라의 왕족이고............. ........다른 한 명은 미르헨가의 사생아라............" "닥쳐라..............!!!!!!!" "장난감은 형님이 그리도 갖고싶어 하셨으니 황제가 된 기념으로 드리겠습니다. 금기된 과육은 죽음보다 달콤해서......독이 있는 걸 알면서도 맛볼 수밖에 없을 테니..........."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쾌락에 떨어대는 하얀 나신을 핥듯이 훑어보다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듯 바로 돌아 선다. "큭, 어쨌든 뒤처리는 아버님이 하기로 되어있으니 전 이만............" 붉은 피가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팔목을 움켜쥐고 침실 밖으로 나서는 금갈색 눈동자의 사내를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다 조용히 살기 짙은 말을 뱉어낸다. "내일이면 네놈도............내 손으로 죽여버리겠다. 미르헨가도.........가주도........철저히 망가뜨려 주지..........." 저주같이 섬뜩한 악마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질척한 피가 길게 이어져있는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다 어느샌가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바들바들 떨어가며 침대 위에 누워있는 참혹한 시체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내가......죽였어.....?' 시야에 들어오는 건 분명 붉은 단검......... 내 것............. 소중한.............. 미친 듯 떨어대는 손을 들어올려 붉은 루비가 박힌 단검을 뽑아내자 아직도 나올 피가 남아있었던지 분수처럼 피가 뿜어진다. 뒤에서 다가오는 그림자에 화들짝 놀라 단검을 품에 넣고 돌아서자 바다처럼 푸른 눈동자가 날 바라보고 있다. '누...구?' 분명..........알고 있는데........ 기억이.................. "이젠........내 것이다..........." 얼굴을 쓸어대는 손에 의아한 눈을 들어 사내를 올려보자 푸른 눈동자가 잠깐 흔들리더니 잡아먹을 듯 급하게 입술을 덮어 빨아들인다. . . . "흐윽......................"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온몸을 떨어대며 뒤척이다 시끄러운 소음에 번쩍 눈을 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저 빌어먹을 창부를 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지?!!!" '...............미르니안?' 앙칼진 목소리는 분명 미르니안 미르헨............. "큭, 창부라...........황제에게 버림받은 쓸모 없는 창녀주제에.........우습군.........킥......." "다.........닥쳐!!! 당장 죽여버리지 않으면 아버님에게 모두 고해버리겠어!!!" "이런, 내게 그딴 협박이 통할 거라 생각했다면 사과를 해야겠군. 쓸모 없는 창녀가 아니라 아둔해서 제 목이 날아갈 줄도 모르고 지껄여대는 버러지 같은 계집이었어........!!" "스턴................!!!! 네놈이......!!! 기껏 사생아 주제에 미르헨가의 후계자라고........" 짜악!!!!!!! "아악.............!!" 강한 손찌검에 미르니안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자 바로 가는 목을 한 손에 거머쥐고 강하게 숨통을 조인다. "컥..........!!" 앙칼진 목소리가 끊기고 새파래진 얼굴로 괴로운 듯 발버둥을 쳐대도 아랑곳 않더니 지금까지의 분노는 모두 잊은 듯 여유 있는 표정으로 섬뜩한 목소리를 귓가에 흘려 넣는다. "아둔한 것......벌써 잊었느냐? 미르헨가 가주의 사랑을 받은 건 나와 슈안을 낳은 내 어미였지,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기 위해 들인.....이름만 미르헨가의 안주인인 네 어미가 아니었단 말이다......!!" 냉혹한 눈으로 흑빛으로 변해 가는 미르니안의 얼굴을 한참동안 노려보더니 힘없는 몸뚱이를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린다. "흐윽.......콜록 콜록..........컥............" 몸을 떨어대며 바닥에서 일어서지 못하던 여자가 힘겹게 숨을 들이키며 잔기침을 해대다 시뻘건 피를 쏟아놓자 다시 조롱하듯 말을 뱉어낸다. "이런.........큭, 제 에미처럼 더러운 병이라도 걸린 것이냐?" "웃기지마!!!!!!!!!!!" 날카롭게 소릴 지르더니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세운다. "가........감히 내게 손찌검을...........네놈의 핏줄은 모두 미쳤어!!!! 미쳤다구!!! 네 어미도...........슈안도...........너도 미쳤어!!!!" "큭, 그걸 지금에야 알았다니..........아둔한 게 도를 지나쳤군.....그러니 황제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과도한 욕심에 눈이 멀어 황제의 술에 나이브를 타지만 않았어도......... 질투에 미쳐 저 아이를 죽이려 하지만 않았어도.......... 이름 뿐이라 해도 이미 황비가 되었을 것을......... 네 어민 아둔하긴 해도 교활하진 않아 미르헨가의 안주인 자리를 지킨 채 죽을 수 있었지만.............. ............넌 아둔하고 교활한 덕에 쫓겨난 것이다" "닥쳐!!!! 아직 늦지 않았어!! 루베라를 끌어냈으니..........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숨통을 끊어버리면............. ..........황제도 크리올라도 모두 내 차지야!!" "아둔하고 교활한데다 욕심도 지나쳐.....큭, 역시 같은 피가 흐르긴 한가보군.....기회를 주는 것도 이번 한 번 뿐이다. 꺼져라! 다신 이곳에 발을 들여놓지마. 지난번처럼 내 명을 어기고 내 장난감에 손을 대면 황비가 되기도 전에 내가 숨통을 끊어주지.........." 녀석의 잔혹한 말에 가뜩이나 창백하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해 가슴을 움켜쥐고 쌕쌕거리며 거친 숨만 내쉬다 독기를 품은 밤색 눈동자로 노려보며 섬뜩하게 말을 뱉어낸다. "네놈이...........네 핏줄처럼 몰락하는 꼴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주마.............." "큭, 좋으실 대로............황비마마.........." 걱정이 될 만큼 여자가 비틀거리며 쾅하고 요란하게 침실 문을 닫고 사라지자 지금껏 꿈속에서 들었던 섬뜩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황비가 되어도.......황제와 함께 암살 당해 금새 죽게될 테지만............. 제 어미와 같은 병에 걸렸다면.........손을 쓸 필요도 없을 것 같군...........큭..............." 저 녀석이었다........ 모든 일의 원흉...... 주체할 수 없이 떨어대는 몸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린다. '어떻게.............잊을 수가............' 소름끼치는 뒷모습에 턱을 덜덜 떨어대다 천천히 내게 돌아서는 사내를 보곤 바로 눈을 감아버렸다. 저 놈은.........아직 내가 티폰의 루베라인지 모른다. 키르인 줄로만 안다. 여기서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한다면 분명 저 정신나간 녀석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 거다. 게다가............... 시온이 사라진 것도 분명 저 놈의 짓일 터........... "아픈 건가............" 이마를 짚어보다 땀에 젖은 하얀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느낌에 미친 듯 심장을 뛰게 하는 공포와 녀석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살기를 겨우 억누르고 천천히 잿빛 눈동자를 드러냈다. 2년 전.......그렇게도 광기에 미쳐있던 잔혹한 사내는 어디로 갔는지....... 방금 전까지 자신의 누이에게 폭언을 쏟아 부으며 살기를 내비치던 광인은 온데간데없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가벼운 미소를 띄운 금빛의 아름다운 사내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시온은?" 사내의 금갈색 눈동자에서 시선을 돌려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주위를 살펴보며 말을 던졌다. 어두컴컴한 실내는 두터운 커튼에 가려 한낮임에도 빛도 제대로 새어들어 오지 않아 바로 앞에 있는 사물조차 분간하기 힘들다. "이곳에 있으니 안심해.......나중에 보게 해주마........" 존대하던 말을 낮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는 사내의 금갈색 눈동자를 올려보자 다정하게 시선을 맞춰온다. '거짓말...............' 모두 거짓말에 위선으로 채워진 가면일 뿐이다. 시온이 진짜 이곳에 있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게 해 줄 생각은 없는 거다. "여기가..........어디야?" "당분간 네가 지낼 곳이다" '날..........붙들어둘 셈인가.........' 말없이 사내를 바라보자 평소처럼 펄쩍 뛰며 화를 내지 않는 게 의아한 듯 다시 입을 열어온다. "왜 말이 없지?" 어차피.......... 시온을 찾을 때까지 나갈 생각 따윈 없다. 이런 미친놈한테 붙들려있으면 언제 죽을지 모를 테니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아니............ 어쩌면 벌써......... '그럴 리가...............' 불길한 생각을 털어 버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도망친 거라서 갈 데도..........없어........." 이렇게 고이 모셔둔 걸 보면 당분간 이 변태 새끼도 내게 손댈 생각은 없는 듯 하니 얌전히 있는 척 하며 기회를 엿보다 시온을 찾아보는 게 좋을 듯 하다. 게다가 이 빌어먹을 새끼가 티폰까지 죽이려고 계략을 짜는 것 같으니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편이........... "그렇군........." 의외로 간단히 수긍하는 녀석에게 작게 안도하며 슬그머니 눈치를 보다 툭 말을 던졌다. "아까 그 여자.........여기 못 오게 해............." 자다가 칼맞아 죽고싶진 않다. 방금 엿들은 바에 의하면 그 미꾸라지 같은 게 그 날 밤.......내가 보석을 되찾으려 황제의 침소에 잠입한 밤, 술에 그 나이브란 마약을 타서 티폰의 기억을 홀랑 날려버린 모양......... '빌어먹을 자식.........그렇게 술을 들이붓더니......!!' 자신 때문에 엉망으로 취해있던 녀석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리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표정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티폰의 침실로 술을 가지고 직접 들어온 적도 있다. 그 때 마주쳐 날 쫓아내려다 티폰한테 되려 쫓겨났는데.......... 만약 그 술을 녀석이 또 마셨었다면......... ..........가뜩이나 반쯤 미쳐있는 놈이 기억은 물론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을 지도 의문이다. '젠장..........!!'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단순히 내가 뿌린 약의 부작용인 줄로만 알고있었는데........... "왜? 그 여자가 무서운 건가?" "지랄.........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해?!!!!!!!"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는 도중 들려오는 녀석의 말에 바락 소릴 지르자 킥킥대며 하얀 머리칼을 쓸어댄다. "큭, 역시 맘에 들어........." 확실히 변태 싸이코놈이 틀림없다. 전에 이 새끼 침실에서 본 변태행위도 그렇고, 지랄같이 성깔을 부리면 더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수시로 바뀌는 저 가면 같은 낯짝도 그렇다. '개새끼, 치워!!!' 금새 기분이 나빠져 머리칼을 쓸어대는 녀석의 손을 탁 쳐내자 미간을 찌푸리며 바라만보다 갑자기 뒤통수를 끌어당겨 입술을 부벼온다. "으읍................." '이 변태새끼가...........!!!' 퍼억............!! 이를 악물고 주먹을 뻗어 그대로 녀석의 턱을 날려버렸다. 떨어져 나가긴 했지만 누워서 날린 주먹에 힘이 실리지 않아 거의 타격을 주지 못한 모양...... "사납군.........." 갈빛으로 짙어진 눈동자를 사납게 노려보자 녀석이 깨물어대다 떨어져 나갈 때 이에 긁혀 피가 흐르는 입술을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쓸어 핏방울을 닦아낸다. 상처가 난 입술을 쓸어대는 녀석의 손가락에 눈에 띄게 기분 나쁜 표정으로 미간을 구기자 갈빛 눈동자가 싸늘하게 굳어가기 시작한다. "함부로 물어뜯는 개는 때려서 길들일 수밖에..........." '뭐..........?' 갑작스런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보자 섬뜩한 표정.............. 짜악------------!! 강하게 뺨을 후려치자 얼굴에 불이 난 것처럼 화끈거리고 입안이 터졌는지 찝질한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온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반대쪽 뺨을 한 대 더 얻어맞고 다시 날아오는 녀석의 손에 반항할 생각도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아버리자 피가 흐르는 입술에 물컹한 게 맞닿아 온다. 입술에 난 상처를 이로 깨물고 혀로 헤집어대는 바람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입을 열자 축축한 혀가 거침없이 안으로 파고든다. 녀석의 혀를 깨물어 버리려하자 어떻게 알아챈 건지 턱이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고 난폭하게 입안을 유린해 간다. 몸부림칠수록 강해지는 구속에 분노로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다. '이 미친 새끼...........!!' 미친놈이 분명하다. 하지만.......... 미친놈이라면 항상 다루고 있다. 이 변태새끼보다 몇 배나 더 내게 미친 녀석을.........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살기를 겨우 구석에 쳐박아두고 입안을 휘저어대는 혀를 끌어들여 감아가며 사내의 목에 팔을 두르고 매달리자 역시나 만족한 듯 움직임이 부드러워진다. 집요하게 들러붙어 입술을 핥아대고 혀를 감아오는 녀석의 혀를 그대로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과 분노를 겨우 억눌렀다. 그리고.......... "하아............하아................." 한참만에 떨어져나간 녀석을 헐떡이며 사납게 노려보자 타액에 젖은 입술을 지분대며 가만히 속삭여온다. "큭, 머리는 나쁘지 않구나............" '개새끼............시온만 찾아내면 혀를 뽑아버릴 테다..........' 티폰 녀석과 살면서 착한 나도 많이 잔인해 졌나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웃을 수도 있으니......... ***사건의 전말이.........자주는 아니더라도 주말에는 꼭 올려드리겠습니다. 그럼, 꾸벅................ Rubera(루베라) #163 결국 내가 기억해낸 기억의 조각들과 스턴이란 녀석의 행동, 여지껏 있었던 일들, 몰래 들은 바를 모두 합쳐 추론해보면... 슈안과 스턴은 한 배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 나이는 올해 스무 살, 티폰과 같고......... 그 둘의 어머니는 지난번 미르헨가에 잠입했을 때 3층에 있던 화려한 침실의 주인인 듯 하다. 그곳에 걸려있던 초상화 속의 아름다운 여인....... 슈안과 같은 금발에 푸른색 눈동자를 한......... 미르헨가의 현 가주 로키안이 사랑했던 여자........ 게다가 동시에 선대 황제의 루베라............ 슈안과 스턴은 크리올라 황가의 핏줄이 아니라 했다. 그렇다면............. 그 둘의 부친은 선대 황제가 아닌 미르헨가의 현 가주 로키안........... 슈안이 황제의 핏줄로서 왕족으로 자란 걸로 봐선 선대 황제는 이 사실을 몰랐던 것이 틀림없다. 분명............ 태어나자마자 모친의 외모를 빼다 박은 슈안은 선대 황제의 눈을 속여 황성에서, 그에 비해 부친의 외모를 이어받은 스턴은 미르헨가에서 자랐음이 틀림없다. 그 때문에 미르헨가의 가주였던 로키안은 겉으론 티폰의 편에 선 척 하면서 뒤로는 자신의 아들인 슈안을 밀어주고 있었을 테지....... 그리고 2년 전........... 스턴이 결정적인 순간 슈안을 배신했다. 이건 아마 로키안도 모르고 있을 터............ 한마디로........... '완전 콩가루 집안이군........' 그런 놈들의 싸움에 죄 없는 내가 휘말려 몽땅 죄를 뒤집어쓰고 지하감옥에 갇혀 티폰 자식한테 죽을 뻔하고, 팔자에도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마약에 절어 죽어보기도 하고........... 막 되먹은 고래새끼들 싸움에 불쌍한 새우등이 터진 격.........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멈춰있을 수만은 없다. 똑같은 일을 두 번 당할 수는 없는 노릇............ '그 개같은 변태자식..........' 날 이곳에 데리고 온 지 이틀이 되어 가는데도 첫날을 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 자식 낯짝 따위 보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서 티폰에게 무슨 짓이라도 벌일지 불안해 죽을 지경....... 어쩐지 미르니안이 황비가 될 때까지 기다릴 속셈인 듯 하지만........... 내가 있는 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테지...............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창으로 다가가 두터운 커튼을 거둬내자 역시나 눈에 보이는 건 두터운 창살....... 그 자식.......... 날 이곳에 가둬버렸다. 창마다 두꺼운 쇠로 만든 창살이 달려있을 뿐만 아니라 출입문은 안에서도 열쇠가 있어야 나갈 수 있고 밖에서도 열쇠가 있어야 들어올 수 있다. 게다가 문이 닫히면 저절로 잠기는 방식.........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문을 열 수 있는 도구도 별궁에 모두 두고 온 상태........ 도구가 있다 해도 명백히 감금이 목적인 침실의 문을 간단히 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처음엔 하인이 들어오거나 밥이라도 들이면 때려눕히고 시온을 찾아볼 셈이었는데 하인이 들어오긴 커녕 식사도 문에 나있는 자그마한 틈으로 밀어 넣어줬다. 완전히 침실을 가장한 감옥......... 기가 막혀 1시간동안 발광을 해대도 누구 하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면 할말 다 한 거다. 창 밖으로 보면 사병인 듯 보이는 병사들이 저택 주위를 빼곡이 둘러싸고 있을 정도로 수가 많지만 그에 비해 저택 안에서 일하고 있는 하인들의 수는 극히 적은 수인 것 같았다. 하긴...........뒤가 구린 일을 하려면 그럴 수밖에............. 어쨌든 최우선 과제는 이곳에서 벗어나 시온을 찾는 일............. 이틀동안 내가 짜낸 계획이라곤 스턴 놈을 기다렸다 어떻게든 열쇠를 빼내는 것.........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 자식이 무슨 이유든 이 침실로 들어오면 적당히 기분을 맞춰주다 나갈 때쯤......... 그래..........문을 열기 전에 빼내면 녀석이 나가려고 열쇠를 찾는 순간 들킬 테니 나가려고 열쇠로 문을 연 후 가까이 다가가 주머니든 어디든 들어가 있을 열쇠를 빼내는 거다. 재수가 없어 들키면 다시 갇혀 앞으론 빠져나갈 기회도 잡지 못할 테지만, 운이 좋다면 이 저택을 다 뒤져 시온을 찾아낼 때까지 들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시온을 찾아낸 이후........ '저렇게 외부 경계가 삼엄해서야.................'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지만 아무래도 출구도 없는 변태 호랑이 굴에 들어와 버린 것만 같다. 벌써 해가 저물어갈 무렵......... "하아.............." 일만 잔뜩 저질러 놓고 이런 곳에 갇혀버렸다. 말없이 몰래 빠져나온 덕에 유이 녀석.......... 많이 걱정하고 있을 텐데........... 그리고......... 티폰................... 또 도망친 줄 알고 있으면 어쩌지.......... 다시는.........상처 입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번 일만 끝나면 계속 곁에만 붙어있을 테니까.................' 그래........이번 일만 끝나면.........망아지 마냥 천방지축 나돌아다니지 않고 그놈 옆에만 꼭 달라붙어 있을 거다. 굳게 결심을 하곤 침대에 누워 푹신한 베개를 끌어안고 뒹굴 거리다 하인이 작게 노크소리를 내고 밀어 넣은 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 평소처럼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섰다. '젠장.........!! 왜 이렇게 어두워?!!!' 싸이코놈이 성격도 지랄 같더니 저택 전체가 귀신이라도 나올 것처럼 어둠침침하다. 침실은 두터운 커튼이 빛을 모두 차단하기 때문에 낮에도 어두운 거지만 욕실 안엔 까마득히 높은 곳에 정사각형 모양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있는 것을 제외하면 도통 조명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이 없다. 그딴 구멍도 낮엔 그나마 빛이 새어 들어오지만 밤엔 수증기가 나가는 통로의 역할뿐이어서 달빛이 희미하게 비춰 들어오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시커먼 어둠에 잠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게 투덜대며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까지 가만히 한 자리에 서있다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었다. 그래도 어두운 것만 제외하면 조용하고 꽤나 마음에 드는 욕실............ 어디에서 이렇게 더운물이 넘쳐나는 건지 황궁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물이 가득 들어차 있는 탕 안에 몸을 담그자 기분 좋은 향과 함께 천천히 피로가 풀리기 시작한다. 아까부터 녀석에게 맞은 뺨이 따끔거려 살짝 만져보니 약간 부어있다. "썅.........개자식............" 티폰이 알면 잔인하게 죽여버릴 게 분명하다. 게다가 맘에 들지 않으면 쉽게도 죽이지 않으니........ 지난번에도 키르로 녀석의 곁에 있다 도망쳤을 때, 날 카이도가에 팔아먹은 그 두 녀석이 내가 하류였다는 게 밝혀진 후 차마 입에 담기도 무서울 만큼 끔찍하게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병사들의 얘기를 우연히 들은 거지만 내가 보지 못한 곳에서 거의 인간을 해체하다시피 한 녀석의 참혹한 행위에 토기가 밀려와 입을 틀어막고 그 자리를 벗어나야 했다. 그 날 밤.......... 침대에 누워 어김없이 날 끌어안고 키스를 퍼붓는 녀석에게서 짙은 혈향이 베어 나오는 듯 해 무의식적으로 바르작거리며 입술을 피하자 말없이 품에 꼬옥 끌어안아 줬다. 지독히도 녀석에게 빠져버린 건지 그런 무의식적인 행동에도 죄책감이 들어 좋아하는 품안에서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참 후................. 사나운 늑대 주제에 날 꼬옥 끌어안고 순한 강아지 마냥 잠을 자는 녀석이 너무 예뻐 보여 한참을 망설인 끝에 자는 녀석에게 도둑 키스를 하다 들켜 죽을 만큼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 그땐............. 단단한 품안에 붉어진 얼굴을 숨기고 어둠을 틈타 몇 번이나 녀석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줬는데......... 귓가에 들려오는 심장소리가 내 것 만큼이나 빠르게 뛰어대서................ 그게 너무 행복해서............ 그렇게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했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비치는 녀석의 잔혹성 따윈............. 다신 드러내지 못하게 따뜻하게 품에 안아 덮어버리려 했는데............. 이번엔.................. ...........막을 수 없을 듯 하다. 아니............막고싶지 않다.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작은 틈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을 올려보다 우연히 시선이 간 곳에 보이는 보랏빛 꽃잎을 아무 생각 없이 움켜쥐어 물 위로 뿌리자 진한 향을 내며 떠다닌다. 지금까지 어두워서 발견하지 못한 모양.......... 황성 안에서도 자주 쓰지만 거의 붉은 색이나 노란 색이 많았는데............. 따뜻한 물과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향기에 기분이 좋아져 살짝 미소를 걸고 눈을 감자마자 갑자기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나른하게 몸을 늘인 채 고른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 . . 작은 소음에 잠에 취해있던 의식이 살짝 돌아왔다. 곧이어 점차 가까워지는 발소리........ 아직도 더운 김을 뿜어내는 따뜻한 물 속에서 비몽사몽 잠에 취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사이.......... 뒤로 접근해 온 누군가가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축 늘어진 몸을 가볍게 물 밖으로 끄집어내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큭, 이런..........수면 효과가 있는 꽃잎이다. 불면증 때문에 놓아둔 건데.........." "으응................." 하얀 목덜미에 붙어있던 보랏빛 꽃잎을 떼어내며 입술을 겹쳐오는 사내의 혀를 얌전히 받아들인 채 작게 신음을 흘리다 힘겹게 들어올린 눈꺼풀 사이로 선홍색 눈동자가 아닌 금갈색 눈동자가 비쳐 들어오자 화들짝 놀라 입안을 제멋대로 휘저어대던 뜨거운 혀를 밀어내며 고개를 휘저어 겨우 사내의 입술을 떼어냈다. 헐떡이는 숨을 내뱉으며 어질어질 한 머리에 몸을 바로 세우려 버둥거려 보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사내의 품에 거의 체중이 실려 안겨있는 상태......... 자꾸만 입술에 닿아오는 사내의 호흡에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 피하자 귓가로 입술을 미끄러뜨려 조용히 속삭여온다. "가르쳐준 걸 벌써 잊은 건가........." 섬뜩한 목소리........... 몸이 확 굳은 채 심장이 정신 없이 뛰어대자 그 때처럼 턱을 강하게 쥐고 입술을 포개온다. '빌어먹을!! 또.........!!!' 분노로 새하얗게 핏기가 가실 만큼 강하게 주먹을 틀어쥐고 몸을 떨다 결국 참지 못하고 거칠게 사내를 밀어내며 꽥 소리를 질러댔다. "웃기지마!! 이 개새끼, 누가 네놈 장난감인 줄 알아?!!" 타액이 묻은 입술을 거칠게 손등으로 부벼 닦고 죽일 듯 노려보자 갑자기 성큼 다가서 다시 거리를 좁혀온다. "건방지군.........." 섬뜩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바로 코앞까지 다가선 녀석에 흠칫 놀라 비틀대며 뒤로 주춤 물러서자 갑자기 커다란 타월로 젖은 몸을 감싸 번쩍 들어올린다. "놔!!!!!!!!!" 갑작스런 상황에 정신 없이 버둥거리며 앙칼지게 소리치다 스륵 미끄러진 타월 사이로 붉은 각인이 드러나자 화들짝 놀라 타월을 끌어올리고 반항을 멈춘 채 사내를 올려봤다. 다행히 보지 못한 모양.......... 심장이 튀어나올 만큼 놀라 하얀 타월을 꼭 쥔 채 얌전히 안겨있자 갑자기 잠잠해 진 것이 이상했는지 녀석이 의아한 눈으로 내려본다. "뭐......뭘 봐............?!!" 부끄러운 척 얼굴을 붉히고 타월을 꼬옥 움켜쥐자 변태놈 기분을 잘 맞춘 것인지 큭큭 거리며 웃어댄다. 뜻밖의 기회..................... 속으론 바득바득 이를 갈아대면서도 한 손은 사내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나머지 손으론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심스레 녀석의 몸을 더듬었다. '열쇠만 찾으면............'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끝에 뭔가 단단한 게 걸리는 순간 하필 몸이 푹신한 침대 위로 눕혀진다. '젠장, 조금만 더............!!' 몸을 일으키려던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숙여 물기 젖은 입술을 핥아대며 다시 입술을 겹쳐오자 별 수 없이 스륵 눈을 감고 녀석의 입술을 받아들인 채 겨우 다른 손을 뻗어 손끝에 걸리던 열쇠를 빼내 시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샌가 변태놈이 타월 자락을 거둬내 맨살을 만져대고 있다. 놀라 필사적으로 타월을 움켜쥔 채 루베라를 가리고, 녀석의 손이 허벅지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오자마자 냅다 발로 녀석의 복부를 걷어차 버렸다. 이번엔 타격이 꽤나 컸는지 잠시 주춤하는 녀석을 보곤 얼른 시트를 끌어 몸을 가리고 지난번처럼 갑자기 날아올 폭력에 대비해 성의 없이 변명까지 툭 던져주었다. "아, 미안.........발이 저려서............."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없는 녀석을 보곤 미쳐 날뛰면 내 목을 비틀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트를 몸에 감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자 갑자기 발목을 덥썩 쥐어온다.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니 생각과는 달리 얼굴을 들어올린 녀석은 웃음을 참는 듯 기괴한 표정.......... "큭......큭큭.......역시.......귀족가 도련님은 아닌 듯 하군........" "무........무슨 소리야?" 뜨끔해서 시선을 돌리자 발목을 부드럽게 쓸어대며 말을 잇는다. "황족만 상대하는 고급창부인가........?" "누..........누가?!!!!" 울컥해서 붙들린 발을 내질러 녀석의 손을 떨궈내자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운다. "하긴..........그런 것치곤 기가 너무 쌔.........큭, 뮤즈니안의 황태자는 몰라도 크리올라의 황제에게 이런 식으로 했다면 벌써 목이 떨어졌겠지............" '목이...........떨어져?' 코방귀도 나오지 않는다. 유이 녀석이야 내 발길질에 맞으면 귀찮을 만큼 들러붙어 아프다고 징징거리지만 티폰은....... 내가 발길질을 할 이유도 없지만 가끔 잠꼬대로 발을 날려 불시의 공격을 받아도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대신......... 잠을 깨운 보복으로 잠을 재우지 않긴 했지만............ "왜 황제가 널 탐냈는지 알 수가 없군......... 몸도 얼굴도 드물게 최상품이니 아무리 냉혹한 황제라 해도 열흘은 품었을 테지만........." 어쩐지 거슬리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자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린다. "큭, 취향이 다르다는 거다" "취향?" "황제는.........살쾡이보단 어미 잃은 새끼고양이를 더 좋아하지.........." '새끼.............고양이............?' 티폰의 취향이란 말에 솔깃해서 바라보자 미친놈이 헛소리다. '그 놈이...........고양이를 좋아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황성 안에선 고양이는커녕 애완 동물 비슷한 것도 보지 못했다. 물론 엄청나게 넓은 정원에는 듣도 보도 못한 작은 동물들이 수도 없이 많긴 했지만 황제가 키울 만큼 눈에 띄는 고양이는............ "3년 전.........고작 하나 뿐이었던 루베라가 그랬으니................." 혼잣말을 하듯 중얼대는 녀석의 말을 듣지 못하고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녀석이 통통한 입술을 슬쩍 쓸어보더니 고개를 숙여온다. 입술을 포개고 혀로 맛을 보듯 핥아오는 느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리자 그대로 입술을 미끄러뜨려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사흘 후에 다시 오마" '켁......이제 네놈한텐 볼일 없으니까 빨랑 꺼져버려!!' 불퉁한 표정으로 돌아눕자 귀 뒤로 머리칼을 넘겨주며 말을 잇는다. "큭, 일이 끝나면 지루하게 놔두진 않을 테니 당분간은 심심해도 말썽은 피우지 마라" '놀구있네, 개새끼............말썽?!!! 내가 말썽을 피우지 않으면 하류가 아니다.........' 이를 까득 갈아붙이며 황실 파티가 어쩌구하는 녀석의 말은 싸그리 무시해 버리고 손에 든 열쇠를 꼬옥 움켜쥔 채 머리끝까지 두터운 시트를 덮어쓴 후 눈을 감아버리자 한참 뒤에야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다. 그런데 순간.............. '아악!!!!!! 이 바보! 멍청이!!!!' 문을 열려면 이 열쇠가 또 필요하다. 저 자식이 문을 열고 나서 훔쳤어야 하는 거였는데 잠에서 덜 깨 비몽사몽 하다 그걸 홀랑 까먹고 있었던 것............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어떻게...........?!!' 녀석이 열쇠로 문을 열고 이미 밖으로 나간 상태............ 후다닥 침대에서 벗어나 훔친 열쇠를 맞춰보니........ '비..........빌어먹을.......!!!' 열쇠구멍과 터무니없을 정도로 맞지 않는다. 그 새끼한테 주둥이까지 내줘가며 빼낸 열쇠가................ "이............이런 개 같은......!!!!!" 혼자 바락바락 성깔을 부려대며 냅다 열쇠를 바닥에 집어던지곤 한참을 씩씩대다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또 사흘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이곳에 갇혀있어야 될 처지............ 땅이 꺼져라 한숨만 내쉬다 다시 시트 속으로 기어 들어가 베개를 꼬옥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어차피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잠이나 퍼대 자는 수밖에......... 녀석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다른 수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 . . 그렇게............. 아무런 방도도 찾지 못한 채 허무하게 하루가 지나고 또다시 하루가 지나갔다. 하인들이 밀어 넣은 저녁밥을 먹고.............. 넓은 침실 안을 안절부절하며 왔다갔다하고......... 두터운 커튼을 열어제친 채 달을 보며 한숨을 쉬어대고....... 그러다 결국은........ '이 빌어먹을 자식!!! 변태새끼!!! 미친 싸이코 놈!!!!!!!!!! 아악!!!!!!!' 욕이란 욕은 모두 쏟아내고 손에 집히는 건 닥치는 대로 집어 던지며 발광을 해대다..... 퍽-------!! "으악.......!! 불이야!!!!" 무심코 벽으로 집어던진 낡은 램프 하나가 퍽 소리를 내며 깨지는가 싶더니 불길이 확 일었다. 아무리 난동을 부려도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건 스턴놈 뿐이다. 게다가 지금은 그 놈조차 없다. 불이 나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타죽을 상황........ 내 언젠간 이 지랄 같은 성격 탓에 죽을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더럽게 변태놈 침실에서 타죽을 줄이야..........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시트를 들고 후다닥 욕실로 튀어 들어가 물을 흠뻑 적셔 불이 붙은 곳으로 던져 넣고 한참동안이나 불과의 사투를 벌인 끝에 화재진압에 성공할 수 있었다. "헉..........헉............." 역시 하늘이 평소에 쌓아둔 나의 선행(?)을 간과하지 않은 모양........ 얼굴과 손이 새카맣게 그을려 멍하니 회색 연기가 올라가는 화재의 진원지를 바라보다 기가 막혀 입을 떠억 벌리고 한참을 앉아있었다. 정말 울고싶다........ 불길이 치솟은 곳은 그냥 돌벽이 아닌 벽난로....... 연기가 작은 구멍을 통해 밖으로 새어나가고 있다. 망연히 거지꼴로 그 모양을 바라보다 퍼뜩 떠오른 생각에 벽난로로 가뜩이나 새카매진 얼굴을 들이밀었다. "우엑.....!! 켁켁............큭.............." 역시..........연기는 빠져나갈 수 있어도 사람이 빠져나갈 구멍이 아니다. 눈물까지 짜가며 켁켁대다 순간 시야에 들어오는 기이한 광경에 눈을 번쩍 떴다. '뭐..............뭐지.........?' 연기가 올라가는 모양이 이상할 정도로 수상쩍다. 어디선가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흩날리는 게........... '설마................!! 바보같이.........왜 그걸 생각 못했지?!!!!' 비밀통로라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 귀족가엔 가보나 중요한 물건을 숨겨둘 때, 혹은 전쟁시를 대비해 비밀통로 한 두 개쯤 만들어 두는 경우도 있었다. 유이 녀석은 그걸 귀신같이 잘도 찾아냈는데........... 대부분 가주의 침실에 있는 침대 밑이나 카펫 아래, 커다란 그림의 뒤나 벽난로에도 꽤 있었다. 여긴 그 스턴놈의 침실인 듯 하니 만약 이게 정말 비밀 통로라면............ 생각만으로도 신이 나 이곳저곳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확실히 수상한 벽난로........ 매끈한 돌로 만든 바닥에도 기이한 문양을 따라 홈이 패여 있고 벽난로 둘레엔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여유가 있어 희미하게 바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건가...............?' 벽난로 왼쪽 측면에 교묘하게 장식을 위장한 손잡이 같은 금장식을 붙들고 있는 힘껏 밀고 당겨봐도 도통 열릴 생각을 않는다. "이 빌어먹을 게 왜 안 열리는 거야?!!" 발로 벽을 걷어차며 짜증을 부리다 우연히 벽난로 윗편에 놓여져 있는 물건에 시선이 고정됐다. 팔뚝만한 금빛 여인의 상............ 진짜 황금 같진 않지만.............. 화재의 위험을 알리는 것인지 반라의 모습을 한 채 물동이를 지고있는 여인의 상을 변태가 된 찝찝한 기분으로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물동이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순간....... 철컥.......... "뭐야............?!!" 미간을 찌푸린 채 눈앞에 드러난 열쇠구멍을 들여다보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분명 스턴 녀석에게서 훔친 열쇠............ 열쇠구멍의 크기가 어제 본 그 열쇠와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제........젠장, 어디다 집어 던졌지? 이럴 줄 알았으면 성질 좀 죽이는 건데..........." 뒤늦은 후회를 해가며 이리저리 헤집어대다............ "찾았다..........!!!!" 빙글대며 침실 한 구석에서 찾아낸 작은 열쇠를 손에 쥐고 다시 물동이를 지고있는 여인네에게 다가가 열쇠를 꽂아 넣자 정확히 구멍에 들어맞는다. "이.........이제 된 건가...........?" 주책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에 피식 웃어가며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벽난로 밑에 장치돼 있었던 듯 동그란 모양의 돌과 바닥의 홈이 맞물리더니 천천히 시커먼 공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람 하나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벌어졌을 무렵............ "좋아, 탐험이다!!!" 씨익 웃으며 어두운 내부로 한 발짝씩 내딛어갔다. Rubera(루베라) #164 빛 한줄기 들지 않는 어둡고 좁은 통로로 들어선 지 반시간......... 벽을 더듬어대며 걸어서 시간이 배로 든 것 같다. 평소 걸음이었다면 벌써 어딘가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통로에서 무작정 앞으로만 나아가다 중간에 갈림길이라도 있다면 길을 잃고 미아가 돼 시체로 전락할 수도 있는 노릇이니 시간이 배로 들더라도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길은 일직선............. 게다가 아깐 바늘구멍같이 보이던 희미한 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인가.............?' 주위가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자 걸음을 빨리 해 뛰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멀리서 보이던 빛에 도달했을 무렵......... 생각보다 흐린 빛에 흠칫 발을 멈추곤 어두운 벽 한켠에 몸을 숨겼다. 밖으로 통하는 길이 아니다. 다른 공간............... 혹시라도 이 저택 안의 누군가에게 모습을 들킬까 조심하며 앞으로 다가가자 뜻밖에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규모의 감옥......... 게다가..........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티폰보다 색이 옅은 적발............ "시..........시온..............!!" 뜻밖의 광경에 앞뒤 생각 않고 달려가 쇠로 만든 굵은 창살에 매달리자 뒤돌아 앉아있던 녀석이 흠칫 놀라 돌아본다. 다행히 아직까진 무사했던 모양.........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녀석을 바라보자 갑자기 얼굴을 구긴 채 버럭 소릴 지른다. "이 빌어먹을 자식!!!! 이번엔 또 무슨 장난을 치는 거냐!!!!!!!!!!" 날 알아보긴커녕 내 모습에 놀람과 분노를 드러내며 뒷걸음질치는 녀석을 의아하게 바라보다 무심코 얼굴을 비벼댄 손등이 새카맣게 변하는 걸보곤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까 화재진압 한답시고 생난리를 쳐댄 덕에 꼴이 말이 아니다. 입고 있던 스턴놈의 헐렁한 옷으로 새카만 잿가루를 문질러 닦자............ "하......하류?!!!! 그럴 리가!! 니가 어떻게 여기............." "이 자식!!!!!" 따악----!! "으윽.................!!"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만 보다 천천히 내게 다가와 창살 틈으로 손을 내밀어 남의 얼굴을 멋대로 만져대는 녀석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쥐어박았다. "흐윽........왜 또?!!" "이 애새끼!! 몇 살인데 납치를 당하고 지랄야?!!!! 니놈 땜에 고생만 실컷 했잖아!!!!" "너......너도 납치 당한 적............." "닥쳐!!!!!!!!!!" "악!!!" 녀석에게 지금껏 고생한 분풀이를 있는 대로 해대고 굳게 잠겨있는 감옥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워낙 튼튼해서 열쇠가 아니면 엄청 단단한 도끼와 티폰 만큼의 힘이라도 있어야 망가뜨릴 수 있을 듯.......... "하아.......소용없어. 어떻게든 열어보려고 했는데 장인을 불러 직접 만든 건지........열쇠가 아니면 먹히질 않아.........." 역시.......... 열쇠가 아니면 때려부수는 수밖에 없다. "열쇠는 로키안하고 스턴놈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분통을 터트리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상황은 알고있는 거야?" "알아............빌어먹을!!! 3대째 크리올라 황가에 충성해온 미르헨가가 배신을........." "스턴이..........슈안의 쌍둥이였다는 것도.............?" "그래..........2년 전 반역을 일으켜 선대 황제를 죽이고 네게 약을 써 죄를 덮어씌운 것도....... 게다가..........아직도 포기하지 않았어.......그 자식...............!!" "무슨.........?" "황제가 될 속셈이야........" "뭐?!!" "다시 차근차근 계획을 짜서......그래.........겉으론 루베라에 흥미를 잃은 듯한 황제에게 다시 미르니안을 내세울 셈인 것 같더군. 아무래도 황제인 이상 후계가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고 귀족들의 의견을 모으겠지. 미르헨가가 있는 한 황비 후보는 언제나 미르니안일 테고............ 미르니안을 황비로 올린 후 황제와 황비를 모두 죽이고 그 후에 날 죽이면........ ..............후계가 없는 황가의 왕권은 누가 차지할까?" "설마.........." "현재 크리올라 황가의 대는 나와 폐하 뿐이야. 황제가 살아생전 후대로 미리 지목해 둔 인물이 없다면 저절로 왕위는 황비의 혈육 쪽으로 넘어가게 되어있지......... 완전히 미친 거야......슈안을 배신하고 전쟁터에서 미쳐 날뛰던 황제가 무너지길 지금껏 기다려왔던 거다. 무너지긴커녕 더욱 단단해져 가는 황제와 다시 나타난 루베라를 보곤 이를 드러낸 거지........... 게다가............ 선대 황비가..............어머니가 미쳐 목숨을 끊은 것도.............." 하얗게 질릴 만큼 주먹을 꽈악 그러쥐고 입술을 깨무는 녀석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버렸다. "그런............" "18년 전 어머니에게 너를 죽인 약과 같은 약을 써서 미쳐 자살하게 만든 것도..........미르헨가의 가주 로키안이었어" "도대체............왜 그렇게까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로키안의 말로는 선대 황제가......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강제로 빼앗아 루베라를 새겼다더군.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당시 꽤나 크리올라에서 권력 있던 가문의 외동딸이었던 그 여자를 이용할 목적으로............ 로키안의 아이를 베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루베라를 새겨버렸지. 그리고.......현 황제와.......슈안과 스턴이 태어난 날.........복수를 위해 여자를 쏙 빼 닮은 슈안은 남겨두고 자신을 닮은 스턴은 황성 밖으로 몰래 빼돌렸어. 하지만 선대 황제는 황태자로 슈안을 선택하지 않고 형님을 선택한 거야...... 선대 황제의 결정을 돌려놓으려 기회만 엿보다 2년 후 황비를 죽였지만,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약을 쓴 것이 들켜버리고 말았지. 그것도 선대 황제에게만............ 로키안에게 죄가 돌아갈까 두려워하던 슈안의 어미가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다더군....." 지독하다............ 죽고 죽이는 복수극.............. 사랑 때문에.........권력 때문에 미쳐 날뛰어대는 끔찍한 지옥도........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건진 모르겠지만 나갈 수 있으면 너라도 빨리 달아나!! 폐하께 돌아가서 사실을 알려......." "이미.........늦었어. 벌써 스턴놈 침실에 갇혀버렸어. 여기도 비밀통로 찾아서 겨우 들어온 거란 말야......." "스턴? 그놈이랑 같이 있었던 거야?!!!!!" 놀라 어깨를 꽈악 쥐어오는 녀석을 올려보며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마. 그 자식.........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있으니까........." "그런데 왜 널 잡아 가둬?!!!!!!" "몰라!!! 그딴 것보다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야" "틀렸어........그 자식, 몰래 사병까지 잔뜩 키워 사방에 깔아놓은 거 봤을 거 아냐.........?" "그럼,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거야?!!!!" 체념한 듯한 녀석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락 소릴 지르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내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아니.........하아............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제 명에 못 죽지......." "무슨............" 의아한 눈으로 녀석을 올려보자마자 갑자기 품안으로 끌어당겨 입술을 포개더니 부드럽게 입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혀를 감아오는 느낌에 도리질을 쳐 녀석의 입술을 떨어뜨리자 포기하지 않고 다시 입술을 찍어누르며 가볍게 키스를 해댄다. "하........하지마!!!! 티폰이............" 녀석의 입술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다급하게 말을 내뱉자 갑자기 움직임을 딱 멈춘다. "갑자기 형님이 왜? 설마.........." "기억이..........돌아왔어........." "너.............다시.........돌아간 거야?!!!"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왠지 씁쓸한 표정......... 한참을 말이 없더니 다시 작게 속삭여온다. "사랑하는 사람한테..............간 거야?" "응........." "이제...........행복해?" "그래.........." 복잡한 표정으로 한동안 날 바라보던 녀석이 작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럼.........됐어........." 몸을 꼬옥 끌어안아 오는 녀석을 밀어내지 못하고 얌전히 안겨있자 다시 어깨를 쥐고 시선을 맞춰온다. "루베라도........다시 받았어?" "응......." "어디에?" 왼쪽 가슴을 가리키자 놀란 듯 옷자락을 헤쳐 하얀 피부 위에 새겨진 붉은 각인을 확인한다. "큭, 대단해...... 유이 녀석, 배 좀 아팠겠군. 역시........ 황제 폐하는...........형님은 이길 수가 없겠어. 이렇게 잡기 힘든데...........두 번이나 손에 넣다니......." '시온.............' 뺨을 쓸어오는 녀석의 손을 잠시 쥐었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올렸다. "어쨌든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야........." "응............"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쓸만한 연장이나 다른 출구를 찾아보려 시온 녀석을 뒤로한 채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하아..........?!!" 뜻밖의 광경에 기가 막혀 멍하니 서있었다. "뭐............뭐야? 네놈은 나보다 나이도 많은 주제에 왜 납치 당해서 이런 곳에 쳐 박혀 있는 거냐?" 놀란 듯 날 바라보고 있는 까만 꼬마놈에게 툭 말을 던지자 분한 듯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본다. "헹, 갇혀있는 주제에 노려보면 어쩌려구? 응?" 성질 나쁘게 약올려대며 이마를 손가락으로 쌔게 튕겨주자 꽤나 아팠는지 작은 손으로 이마를 움켜쥐곤 뒤로 주춤 물러서서 작게 이를 갈며 노려보는 게........... "하.........." 웃기지도 않는다. 저런 낯짝으로 노려봐 봤자 무섭기는커녕 귀엽기만 하다. 16살 무렵의 나와 같은 얼굴........... 이 녀석을 보면 스턴놈이 왜 날 못 알아보고 있는지 알만하다. 이런 낯짝으로 제 놈 밑에서 벌벌 떨어대며 눈물만 흘려대던 꼬마 녀석이 2년 만에 팔다리 쭉쭉 늘어나고, 말도 하고, 개 같은 성깔까지 가지고 다시 나타날 줄 누가 알았겠어...... 2년 전엔 그렇게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당했지만................ 이번엔 이용할 수 있는 건 뭐든 이용해 복수해 버릴 테다. 내가 당한 만큼의 10배, 100배 되값아 줄 테니 각오해........ 그리고........ 티폰에게 손이라도 댄다면............. 죄책감이든 뭐든 밟아버리고 그 새끼 목은 내가 따버리고 말 테다. 작게 이를 갈다 다시 꼬마 녀석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녀석이 여기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일이 꼬인 듯......... 스턴 녀석을 따라 이곳에 온 날 본 커다란 자루 속엔 저 놈이 들어있었나 보다. 유이 녀석에게 납치된 후 티폰 자식이 반쯤 미쳐 날 찾아대는 동안 경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빼낸 모양......... '빌어먹을............!!' 티폰이 날 찾아주길 기다리는 건 포기해야 할 듯 하다. 단서도 하나 없이 몰래 빠져나왔고 미끼로 썼던 이 꼬마녀석까지 사라졌으니............ "야, 꼬마!! 저기 있는 멍청한 놈 꺼내줄 때 너도 같이 꺼내줄 테니까 당분간 내 흉내 좀 내고 있어.........." 의심스런 눈초리........ "속고만 살았냐?!!!" 벌컥 소릴 지르자................. "그래......." '씹, 그렇게 간단히 말해 버리면 할 말 없다............' .................가 아니라............... "너...............너, 언제부터 말 할 수 있게 된 거야?!!!!!" 놀라 꽥 소리치자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바라보다 비아냥대며 다시 말을 꺼낸다. "킥, 언제부터? 태어날 때부터였다면?" "하.............." 괴상한 놈............ "근데 왜 지금까지 얌전빼고 있었는데?" "너.........멍청한 줄은 알고 있었는데 정말 바보 아냐?" "뭐?!!! 이 땅콩 만한 게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야?!!!!!!!!!" 주둥이를 열기 시작하니 얄미운 말만 줄줄 쏟아낸다. 머리통을 쥐어박으려 창살 틈으로 날린 주먹이 허공을 가르자 건방지게 픽 코웃음을 친다. "얼씨구, 그렇게 웃을 줄도 알아? 볼 때마다 노려보기만 해서 가자미 사촌인가 했더니........." 녀석의 처음 보는 모습에 화내는 것도 잊고 툭 말을 던지자 다시 표정이 싸늘히 굳어간다. '뭐.........뭐야?!! 내가 뭘 잘못 했다구?!!'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큭, 하긴........황제폐하의 사랑을 받는 고귀한 루베라께서 천한 창부의 일을 어찌 알겠어..........?!! 노예는......... 나같은 침실노예 따윈 귀족들에게 다리만 벌려주면 되는 거야...... 쓸데없이 말을 지껄일 필요가 없으니 벙어리인 척 하는 게 훨씬 편하지........." 이 녀석........... 그런 소릴 하면서도 정작 표정은...................... 말도 꺼내지 못하고 멍하니 녀석을 바라만 보다 미간을 구긴 채 벌컥 소릴 질러버렸다. "웃기지마............!!! 벙어리가 아니잖아!!!! 그렇게 싫으면 입다물고 있지 말고 비명이라도 질러.................!! 그게............ 훨씬 나으니까............" 그래............ 2년 전의 나처럼............지하감옥 안에 갇혀있던 나처럼........ 입도 열지 않고 방관만 한 채 주저앉아 버리면.............. 결국 주위에 상처만 입힌 채 내 자신만 소리 없이 죽어갈 뿐.............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고.............아무 것도 끝나지 않는다. "바보는 내가 아니라.................너야.........." "킥, 처음 봤을 때랑......많이 달라졌네? 모두 손에 쥐고 있으면서 죽을 것 같은 표정이더니........ 그래도.............아직 멍청한 건 여전해............ 나한테.............그런 멍청한 소릴 해준 것도 네가 처음이야........."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누가 멍청하단 거야?!!!!!!" 눈을 부라리며 발광을 해대자 싸가지 없는 녀석이 코방귀를 뀌더니 툭 말을 던진다. "그래서........어떻게 여기서 빼내주겠단 거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대화에 화도 내지 못하고 맥이 풀려 작게 한숨을 내쉬다 녀석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그러니까 잠시만 입다물고 있어 줘........." "내가 널 뭘 믿고?" "저런 건방진....!! 젠장, 하류 니가 왜 그런 놈한테 부탁을 해?!!!! 너 이 자식 입다물고 있지 않으면 당장 처형시켜.....!!" "믿든 안 믿든 그건 니 사정이고............어쩔 거야?" 꼬마놈과 얘기하는 게 못마땅한지 한참이나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시온 녀석이 결국 참지 못하고 소릴 질러대는 것도 무시한 채 까만 녀석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되묻자 시온 녀석의 발악에 잠시 미간을 찌푸리던 녀석이 지루한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시선을 맞춰온다. "좋아.....대신 당분간만이야. 너무 시간 끌면 모조리 불어버릴 테니까........." "알았어. 하지만 섣불리 입은 열지 않는 게 좋아. 스턴이란 놈.....니가 모두 불어도 놔주기는커녕 죽일 테니까........" "걱정하는 척 하지마. 그건 내가 판단해......." "큭, 그래. 그런데..........땅콩, 니 이름........뭐냐?" 별 것 아닌 물음이 뭐가 그리 놀라운지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다 시선을 느끼곤 얼른 미간을 찌푸린 채 얄밉게 말을 툭 던진다. "알 필요 없어........" "흐응~ 그럼 계속 땅콩이라고 불러도 돼지?" 울컥해서 노려보다 한참만에 고개를 숙이고 작게 중얼거린다. "응? 뭐라고? 된장? 두부? 역시 땅콩인가........?" "누가?!!! 리오라고 했잖아!!!" "좋아!! 리오.........당분간만 부탁할게......." 까만 머리를 쓸어주자 놀란 듯 멍하니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인다. "널 믿는 게 아냐........크리올라의 붉은 황제가..........무서운 것 뿐이야........" "큭, 어쨌든...........내일 스턴놈이 돌아올 테니까........어떻게 해서든 열쇠를 빼내올게. 그때까지만 기다려......" "너나 조심해........" 시온 녀석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팔목을 확 끌어당겨 까만 녀석에게서 떨어뜨리며 말을 뱉는다. "위험한 짓은 절대 하지마. 들킬 거 같으면 무슨 짓을 써서라도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쳐. 네가 죽으면............... ..........따라 죽는 건 폐하뿐만이 아냐........" "무슨 소리야?"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여오는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돌아보자 잠시 한숨을 내쉬며 뺨을 부벼대다가 허리를 놓아준다. "무리하지 말란 소리야......." "응...........열쇠만 손에 넣으면 바로 돌아올 테니까...........걱정하지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움에 손을 놓지 못하는 녀석이 안쓰러워 한참을 그렇게 서있다 겨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다시 어두운 비밀통로로 들어섰다. Rubera(루베라) #165 평소와 다름없이 붉게 노을이 질 즈음 침소에 들자 의례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문이 열리기도 전에 뛰어나왔는데..............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한참을 둘러봐야 할 만큼 넓은 침소 안을 주욱 훑어보다 침대 위에 작게 솟아있는 물체를 보곤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가 화려한 시트를 걷어내자 작은 몸을 둥글게 만 채 커다란 베개를 껴안고 잠이 들어 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꽤나 더운 날씨에 땀까지 흘려가며 미간을 찌푸리는 아이를 안아 올리자 품안에서 축 늘어진 채 바르작대다 고른 숨을 내쉰다. 지난밤에도 재우지 않아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어 꽤나 피곤한 모양............ 답답할 만큼 온몸을 감싸고 있던 화려한 옷을 벗겨내자 하얀 나신 위엔 지독한 소유욕을 드러내 듯 붉은 화인이 빼곡이 새겨져있다. 기분 좋은 체온과 규칙적인 심장박동에 살짝 미소를 띄우며 그대로 부드러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따뜻한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알몸이 되자 땀이 식어 서늘한 기운이 들었던지 작게 칭얼대며 옷깃을 꼬옥 움켜쥐고 품안으로 파고드는 아이에게 바로 얇은 시트를 끌어 하얀 몸을 감싸주고 손에 걸리는 부드러운 피부를 쓸어주자 부시시 눈을 뜨기 시작한다. 아직도 잠에서 깨지 않은 듯 몽롱하게 잠겨있는 까만 눈동자가 못 견딜 만큼 예뻐 보여 살짝 벌어진 입술에 입을 맞추자 얌전히 입술을 열고 입안으로 들어온 혀를 젖먹이처럼 빨아들이며 다시 피곤한 듯 스륵 눈을 감는다. "큭, 이렇게나 피곤하면...........어제 한 약속은 취소하고 일찍 잠이나 잘 수밖에............"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며 귓불을 살짝 깨물자 간지러운 듯 목을 움츠리더니 푹신한 침대 위에 눕혀 시트를 걷어내고 하얀 나신 위에 몸을 포개자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어느샌가 알몸이 되어버린 몸에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매끈한 피부를 쓸어대며 천천히 손을 미끄러뜨려 아이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움켜쥐고 고개를 숙여 가슴에 돋아있는 작은 돌기에 입술을 찍어누르자 금새 헐떡이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오늘밤.................잠깐 바람이라도 쐬러 함께 나가기로 약속을 한 것 같은데..........." 넌지시 말을 던지자 붉은 머리칼을 감아쥔 채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다 정신 없이 고개를 끄덕여댄다. 침소 안에만 갇혀 하루종일 발코니에 쭈그려 앉아 있는 게 안쓰러워 위험한 줄 알면서도 잠깐이라도 밖에 내보내주고 싶어 어젯밤 말을 꺼냈는데 꽤나 나가고 싶었던지 생각보다 열렬한 반응을 보여준다. "피곤한 것 같으니 그냥 이대로 잠을 자는 게.............." 언제 졸았냐는 듯 까만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아이에게 조용히 속삭이자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겨우 웃음을 참아가며 탐스러운 입술을 살짝 깨물어주자 골이 났는지 이를 앙 다물고 고개를 저어대다 엉덩이를 만져대던 손을 허벅지 안쪽으로 미끄러뜨려 성감대를 쓸어주자 화들짝 놀라 답싹 품에 안겨온다. "키스를 해주면........... ...........다시 생각해 볼 수도............"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은 눈에 놀리는 것을 그만두고 빠져버릴 만큼 새까만 눈동자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작게 속삭이자 한참을 놀란 듯 바라보더니 머뭇거리며 하얀 팔을 뻗어 목에 감아온다. 가만히 고개를 숙여주자 따뜻한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져 나간다. 너무 빨리 떨어져 나간 입술에 불만스레 미간을 찌푸리며 재촉하듯 통통한 입술을 혀로 슬쩍 핥아주자 뺨을 붉게 물들인 채 안절부절못하더니 다시 조심스레 말캉한 살점을 입술에 맞대 온다. 입안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망설이듯 입술을 간질이는 아이의 혀를 감아 목이 마른 듯 탐하기 시작했다. 달콤한 향이 베어 나올 것만 같은 입술을 가볍게 빨아대며 이로 깨물어주자 흠칫 몸을 떨며 매달려 온다. 따뜻하고 부드럽기만 한 입술에 심장이 멋대로 뛰어대 쉽사리 멈추지 못하고 할딱이며 더운 숨을 내뱉는 입술 위로 몇 번이나 짧은 키스를 계속하다 슬그머니 손을 뻗어 아이의 페니스를 감아쥐자 화들짝 놀라 손목을 쥐어온다. 화가 난 듯 노려보며 씨근덕대는 숨소리에 실소를 터뜨리며 작은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이 이상 하면 멈출 수 없을 테니............. 바로 시종들을 불러 의복을 들인 후 하류에게 입히고 까만 망토로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가려 버렸다. 답답할 텐 데도 마냥 좋은지 입가에서 예쁜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아이에게 신을 신기고 그대로 안아 올리자 얌전히 목에 팔을 감은 채 품에 안겨온다. 육중한 문을 열고 침실 밖으로 나서자 시종들과 병사들이 놀란 눈으로 품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다 싸늘한 눈길에 숨을 들이키며 깊이 고개를 숙여온다. "아무도 따르지 마라............" "예........" 그대로 어둠에 잠긴 복도를 지나 인적이 드문 곳만을 골라 황성 밖으로 나오자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넓은 정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화사한 꽃이 만발해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짙은 향이 뿜어져 나오는 화원에 들어서 아이를 땅 위에 내려놓자 꽃 한 송이도 신기한지 하얀 손을 꼬옥 쥐고 화원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이곳저곳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다. 느린 걸음으로 마구간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뛰어나와 흙바닥에 머리를 박는 마구간지기에게 가장 순한 말을 내 오라 명하자 얼마 되지 않아 눈처럼 하얀 말을 눈앞에 대령한다. 바로 말 위에 올라 신기한 듯 하얀 갈기를 쓸어보는 아이를 끌어올려 앞에 앉히고 천천히 말을 몰자 불안한 듯 버둥대며 고삐를 쥔 팔에 매달려 온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겁에 질린 듯 몸을 떠는 아이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하얀 목덜미에 입술을 미끄러뜨리자 맹수에게 목줄기가 물린 짐승 마냥 흠칫 몸을 굳힌 채 숨을 죽인다. "큭, 걱정하지 마라. 떨어뜨리진 않을 테니............." 따뜻한 몸을 단단히 끌어안고 부드럽게 귓가를 애무해 주자 살짝 몸을 떨며 긴장이 풀린 듯 가만히 몸을 기대온다. 그렇게 어두운 숲길을 여유 있게 지나 도착한 곳은 꽤나 눈에 익은 장소.......... 달빛을 반사하는 수면에 넋을 잃은 듯 품안에 안겨 미동도 없다. 역시 장소를 잘 선택한 모양............. 바로 말에서 내려 하류를 땅 위에 내려놓자 별빛을 모두 가두어놓은 듯 은은한 빛이 출렁이는 호숫가로 천천히 다가선다. 근처에 말을 매어둔 후 아이에게 다가가 답답한 망토를 벗겨주자 땀에 젖은 하얀 얼굴이 드러난다. 시선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얼굴............. 빛을 보지 못해 잡티하나 없이 뽀얀 피부와 대조되게 달빛을 반사해 푸른빛을 띌 만큼 새까만 머리카락이 목덜미까지 떨어져 내린다. 순한 성격과는 어울리지 않게 살짝 치켜 올라간 눈썹과 오똑한 콧날........... 밤하늘같이 까만 눈동자와 삼켜버리고 싶을 만큼 탐스러운 분홍빛 입술.......... 최근 들어 지독히도 색기가 흐른다. 주위를 감싼 어둠과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까만 머리칼 속에 손을 집어넣어 끌어당긴 후 살짝 벌어진 분홍빛 입술에 입을 맞추자 익숙한 듯 살짝 눈을 감고 입술을 벌려준다. 기분 좋은 감촉에 말캉한 살점을 깨물어대며 농도 짙은 키스를 시작하자 살짝 거칠어진 숨결이 입가에 닿아온다. 몇 번이나 각도를 바꿔가며 부드러운 입술을 탐해가다 한참 후에야 겨우 입술을 떼어내고 간단하게 입힌 옷가지를 하나씩 벗겨 내리기 시작했다. 매듭이 풀릴 때마다 드러나는 하얀 동체에 가볍게 키스를 해대자 당황한 듯 잠시 바르작거리더니 부드러운 애무에 거부하지 않고 살짝 품에 안겨온다. 당장이라도 아이의 따뜻한 몸 속에 들어가고 싶어 날뛰어대는 욕정을 겨우 누르고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은 부드러운 몸을 품안에 꼬옥 끌어안은 채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은 답답한 침소 안에만 가두어 두지만..........때가 되면.......내가 황제가 되면......... 차고 넘칠 만큼 커다란 자유를 네게 주마........이 대륙에서 나를 제외하고 감히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만큼의 자유를......... 하지만 그때까진.......... 다시 이곳에 데리고 올 수 없을지 모르니 오늘밤은 실컷 즐겨둬..............."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일 텐 데도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이던 아이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품에 매달려오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귓가에 속삭였다. "오늘뿐이다..........1년 후가 될지.........2년 후가 될지.........." 물론.........그렇게나 가둬둘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지난 번 아이에게 손을 대려했던 이후로 슈안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으니............ 올해 안에 황제가 죽지 않으면............ ..............직접 손을 쓸 수밖에.......... 한참을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오는 느낌에 살짝 몸을 놓아주자 머뭇거리며 호숫가로 다가가 땀에 젖은 몸을 천천히 담그기 시작한다. 허리까지 차 오른 물이 신기한 듯 손으로 몇 번 첨벙이다 곧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며 물장난을 쳐댄다. 가끔씩 수면 위로 떠오르는 은빛 물고기들을 잡으려 손을 뻗어보기도 하고............... 이끼가 낀 돌을 밟고 미끄러져 허리정도 밖에 닿지 않는 물 속에서 허우적대다 켁켁 대며 일어나기도 하고................ 물 속에 갑자기 뛰어든 개구리에 놀라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기도 하면서.......... ............행복하게 웃고있었다. 인적 드문 호수에 이는 작은 소란에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자리에 앉아 다시 아이를 돌아보자 숨이 막힐 만큼 예쁜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뽀얀 허벅지 안쪽에서 찰랑이는 투명한 물에도 질투가 날 지경.............. 보는 것만으로도 욕정이 일 만큼 탐스러운 엉덩이와 매끈한 허리선........ 붉은 루베라가 새겨진 미성숙한 등과 길고 하얀 목덜미............ ................그렇게 미동도 없이.............하얀 보름달을 올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다운 호수와........................ 내가 사랑하는................... ..............진귀한 빛을 지닌 아이............ 그림같이 예쁘고.................. ................몽환적인............... 순간.................. 환상을 보는 것처럼 금방이라도 이그러져 희미하게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버렸다. 숨이 멎을 만큼 놀라 저도 모르게 정신 없이 아이에게 다가섰다.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손을 뻗으면 금새라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모습에 급하게 떨리는 손을 뻗어 어깨를 움켜쥐고 돌려세우자마자 품안에 끌어안았다. ..............사라질 리가 없다. 이렇게 손에 잡히는데............. 이렇게 품안에 있는데............ 불안하게 뛰는 심장소리에 쫓기 듯 물기 젖은 입술을 더듬어 몇 번이나 키스를 하고 확인이라도 하듯 물 속에 잠긴 하얀 몸을 더듬다 결국 물밖에 나오자마자 아이를 갖았다. 진한 키스와 성감대를 더듬어대는 손길에 반쯤 일어선 뽀얀 페니스를 그대로 입안에 삼키자 쾌락에 몸을 떨며 활처럼 몸을 휜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빠져나가려 바르작대는 몸을 내리누르고 까끌한 혀로 귀두 끝을 자극하며 이로 슬쩍 긁어내리자 금새라도 멎어버릴 듯 헐떡이는 숨소리를 흘리며 꼼지락거리다 지독히도 집요한 피스톤질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평소보다 빠르게 사정을 한 후 몸을 늘어뜨린다. 따뜻한 온기를 확인하듯 몸 구석구석에 입술을 찍어누르며 올라와 헐떡이며 더운 숨을 뱉어내는 붉은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해주고 눈을 맞추자 부끄러운 듯 뺨을 붉히고 시선을 피한다. 루베라를 새긴 이후 매일 밤 품에 안아도 이런 행위가 익숙해지지 않는 듯 매번 같은 반응........ 결국............ 이런 모습에 밤마다 참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의 몸을 열어버린다. 까만 머리칼에 입술을 미끄러뜨리며 허락을 구하듯 욕정을 내보내지 못해 단단하게 일어선 중심을 연한 허벅지에 부비자 온몸을 새빨갛게 물들이더니 살짝 다리를 벌리고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온다. 그대로 부드러운 엉덩이를 더듬어 벌리고 몸을 적신 물기를 이용해 따뜻한 내부로 단단해진 귀두 끝을 천천히 밀어 넣자 통증에 놀란 듯 불규칙한 숨을 내뱉으며 손톱을 세운다. 미량의 최음제가 섞여있던 향유로 그동안 통증을 줄여줬다는 걸 까맣게 잊고있었다. 그대로 들어가 버리면 상처를 낼 것 같아 아플 만큼 죄어대는 내부에서 천천히 빠져나와 조심스레 하얀 몸을 뒤집고 허리를 들어올리자 익숙지 않은 자세에 놀란 듯 품안에서 바르작댄다. 바로 고개를 숙여 붉게 새겨진 루베라 위에 입술을 떨어뜨리고 허리를 감아 고정시킨 후 뜨거운 내부에 천천히 흥분한 몸을 밀어 넣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질 만큼 강하게 죄어대며 쾌감을 끌어낸다. 흐느끼듯 신음을 흘리며 그대로 무너져 내리려는 몸을 단단히 품에 안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대로 풀어주지도 않은 내부를 억지로 벌려대며 드나들자 부드러운 움직임에도 통증이 이는 지 바닥에 푹신하게 깔려있는 초록빛 풀잎을 하얀 손가락으로 감아쥐고 그만 두라 고개를 저어 댄다. 소리 없는 애원에 되려 하얀 허벅지를 움켜쥐어 더 넓게 벌리고 익숙하게 아이가 느끼는 곳을 찔러 올리자 흠칫 몸을 떨어대며 뜨거운 숨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녹아버릴 만큼 따뜻하고 기분 좋은 느낌에 낮게 신음을 흘리며 처녀만큼 민감하게 반응해대는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고 평소보다 깊숙이 밀고 들어가자 힘에 겨운 듯 헐떡이다 내게 맞춰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간다.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곧은 등줄기에 붉은 화인을 새겨가며 이를 박아 넣자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점이 강하게 페니스를 죄어온다. 심장이 멈춰버릴 만큼 강한 쾌감에 겨우 쥐고있던 이성을 간단히 놓아버리고 격하게 피스톤질을 해대며 하얀 몸에 짐승 같이 욕정을 풀었다. 만족하지 못한 듯 뜨겁게 죄어대는 내부와 손에 감기는 부드러운 피부에 미쳐 그렇게 몇 번이나 아이의 안에 정욕을 쏟아내고 어느 정도 움직임이 쉬워질 무렵....... 뜨거운 내부에서 갑자기 빠져나와 다시 아이를 돌려 눕히자 팔을 뻗어 목을 휘감고 재촉하듯 목덜미에 뺨을 부벼온다. 열기가 식지 않아 붉게 달아오른 아이의 몸을 들어올려 허벅지 위에 앉히고 꼬옥 끌어안자 팔딱이며 빠르게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괴로운 듯 헐떡이며 꼼지락대는 움직임에 하얀 엉덩이를 움켜쥐고 다시 단단하게 일어선 페니스 위에 내리 앉히자 강하게 죄어대며 매달려온다. 깊숙이 파고든 페니스에 통증이 이는지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 늘씬한 허리를 끌어당겨 맞물린 하체를 비벼대며 다시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더운 숨을 내뱉으며 몸을 떨어대다 단단한 등에 손톱을 세워 가는 생채기를 남긴다.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피스톤질에 또다시 일어서 복부를 찔러오는 아이의 페니스를 살짝 감아쥐고 부드럽게 움직여주자 금새 손안에 유색액체를 쏟아낸다. 아이가 느낄 지독한 쾌감에 숨을 멈추고 따뜻한 몸 속에 바로 욕정을 내보내자마자 그대로 품안에 무너져 내렸다. 지친 듯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미동도 없이 가쁜 숨만 내쉬는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자 열이 식은 몸에 한기가 드는지 작게 몸을 떨기 시작한다. 바로 까만 망토를 끌어당겨 아이의 몸을 꼼꼼히 감싸 품에 안고 정사의 열기로 온기가 남아있는 풀밭 위로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색색거리며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숨소리에 내려보니 만족한 듯 기분 좋은 얼굴로 잠이 들어 있다. 아직도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 올리고 고른 숨을 내쉬는 입술에 살짝 키스를 하자 소리 없이 칭얼대며 품안에 파고든다. 분명................ ...............환상 따위가 아니다.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지는 일 따위............있을 리가 없다. 이렇게 숨을 쉬니까............. 이렇게나 부드럽고 따뜻하니까............ 이렇게 강하게 심장이 뛰어대니까........... 그러니까................ 불안해할 필요는................없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한 밤이 지나고 다시 눈을 떴을 땐..................... 곁에....................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나가 버린 과거의............ .................꿈이었기에.............. . . . 하얀 대리석 바닥 위를 온통 피로 물들이며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살점들이 여기저기 튀어있었다. 그토록 잔인하게 사람을 죽였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심한 시선으로 거의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있는 핏물을 바라보다 온몸에 뒤집어쓴 핏방울보다 더 붉은 눈동자를 들어올려 심장을 얼려버릴 만큼 섬뜩한 광경에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굳어버린 무리들에게 조용히 말을 꺼냈다. "오늘부터다............. 오늘부터 황성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취를 감추거나 조금이라도 수상한 일을 꾸미는 낌새가 보이는 가문은............ ............참혹하게 몰살시켜 버리겠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솔은 물론 가축이나 풀뿌리 하나 남기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모조리............ 2년 전 반역과 연루된 자들이 잡힐 때까지............ 감히 내 것에 손을 댄 자의 숨통을 끊어놓을 때까지다.........." 온몸에 핏물을 뒤집어 쓴 채 뒤돌아서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중앙홀을 벗어나자 무거운 발소리를 내며 시니안이 뒤따른다. "폐하.........오히려........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인 수를 쓸 수밖에 없을 만큼................... ...................불길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오늘 갑자기 꾼........... 행복했지만 그만큼 불안했던 과거의 꿈.......... 빨리 찾아내지 않으면............ ..............영원히 잃어버릴 것만 같은................. "이.............이 멍청한 자식!!!!! 그걸 왜 지금 말하는 거야?!!!!!!" "아악!!! 나도 방금 알아낸 거란 말야!!!!!" 갑자기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불길한 생각은 한켠에 밀어두고 끝도 보이지 않는 긴 복도의 어둑한 한 구석으로 차가운 시선을 돌리자 어둠 속에서도 화려하게 빛이 나는 은발의 사내와 키가 큰 남빛 일색의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미간을 찌푸린 채 멈춰 서자 뒤따르던 시니안도 고개를 들어 의아한 눈으로 두 사내를 바라본다. "이 구슬............어디서 난 거야?!!!! 왜 여기에 나이브가 들어있어?!!!! 네놈이 설마!!!!! 이 자식, 키르 어디로 빼돌린 거야!!!!! 말해!!!!!!!!!!!!" "컥.........!! 미........미친놈........내가 빼돌렸으면 내 입으로 구슬에 나이브가 들어있었다고 말할 거 같아?!!!! 허억............!! 수...........숨막혀!!!!"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뜻밖의 말에 참지 못하고 섬뜩하게 말을 뱉어내자 두 사내가 놀란 듯 시선을 던져온다. "헉!!!! 폐.............폐하...............으........으악!!! 피.............피가!!!! 저..........전 모르는 일입니다. 구슬도........키르가........아니, 루베라께서 황태자놈을 도와달라고 제게 준 건데............" "구슬..........?" "예.......!! 그......금으로 만든 구슬인데 테이블에서 굴러 바닥에 떨어질 때 깨지더니 하얀 가루가......." 진짜 겁을 먹은 건지 의심이 날 만큼 과장되게 떨어대며 횡설수설 지껄여대던 궁의 녀석이 손을 펴 보이자 금으로 된 작은 파편과 그 안에서 쏟아진 듯 보이는 하얀 가루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건...............?!!!" "루베라께서 중독이 되셨던 마약입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런 것을 왜 그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거지?!!" "그............그게............" 황태자에게 흘끔흘끔 시선을 보내며 우물쭈물 말을 얼버무리는 녀석을 노려보다 아직도 피가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검을 빼내려 손을 뻗자 다시 겁에 질려 말을 쏟아낸다. "후.........훔쳤다고...........허억!!!! 거.......거짓말이 아닙니다. 폐하!!! 황태자놈이 폐하의 고귀하신 루베라께 감히 손을 댄 것도 모자라 도둑질까지 가르친 천인공로 할 짓거릴............. 컥..........이 도둑놈!! 허억!! 놔!!!!" '천한 도둑질을............가르쳐?!!!!!!!' 충격에 말을 잃고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녀석을.........감옥에 쳐 넣지 않았다. 하류의 행방에 조금이라도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 그리 했는데.............. 감히............... 당장이라도 죽일 듯 황태자놈을 노려보자 궁의 녀석의 목을 졸라대다 살기를 느끼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돌아본다. "애초에 그렇게 천방지축 나돌아다니는 건 네놈 탓이잖아!!! 도대체 어떻게 키운 거야?!! 공주님처럼 가둬두기만 하니까 쓸데없는 호기심에............. 순진해 터져서 더러운 것들이 손을 대도 무슨 짓을 당하는 지도 모르고.........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않는 주제에 돈으로 꼬시면 홀랑 넘어가고............ 나한텐 잔뜩 성깔만 부리고 발길질만 해대면서 네놈 앞에선 고분고분 귀여운 짓만..................." "닥쳐라..............." 끝없이 궁시렁대는 녀석의 입을 막아버리자 작게 이를 갈며 노려본다. 곁에 둘 수 있었던 것도 겨우 2년 남짓............. 좀더 사랑해 주고............좀더 품안에서 지켜주고 싶었는데............. 그랬는데................... 놓치지 않으려 꼬옥 움켜쥐면 항상 모래를 쥔 것처럼 모르는 사이 조금씩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그렇기에............ 밤엔 품안에서 잠든 것을 보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고, 낮엔 품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이제 다시는.................... ...............잃고 싶지 않다. 2년 전처럼..................또다시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미쳐버릴 테니................ 심장을 찔러오는 통증에 차분히 가라앉은 눈으로 되물었다. "그 구슬의 출처가.....................어디냐................" 겨우 황태자의 손에서 벗어나 잔기침을 해대던 남빛 사내가 심각한 목소리에 기억을 더듬듯 잠시 눈을 굴리더니 바로 입을 열어온다. "분명..........황성 동쪽 외곽에 있는 귀족가라고.............." '황성 동쪽 외곽의...............귀족가..............?' 시니안을 돌아보자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말을 꺼내온다. "귀족가라면..............미르헨가를 포함해 네 개 가문이 있습니다" "미르헨?" "예.........." '미르헨가라면..................' 순간 밤색 눈동자에 짙은 갈빛 머리칼을 가진 여자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두 번이나 황비가 될 뻔한 여자.......... 그런데............ 두 번이나 파혼을 당해 버렸다. '설마..............' 내 침소에서 그 아일 쫓아내려 하고 감히 손찌검까지 해댄 여자를 떠올리다 차갑게 말을 뱉어냈다. "귀족들을 모두 돌려보내라. 네 개 가문의 귀족들은 모두 뒤를 밟고 미르헨가엔 케레스를 붙여............." "예........!!" "하아........소용없어......" 바로 돌아서려는 시니안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던 황태자놈이 다시 말을 꺼내온다. "키르랑 미르헨가에 잠입한 적이 있었는데.............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어............ 그 녀석..........사라지기 전에도 나한테 스턴이란 녀석 뒷조사를 계속 시켰는데..........수상한 점이라곤............" "스턴? 그 아이가 그 자를 어떻게 아는 거지?!!" 분노와 질투를 감추지 못하고 낮게 으르렁거리자 마찬가지로 잔뜩 미간을 구긴 채 궁시렁대는 황태자 녀석을 흥미로운 듯 바라보던 시니안이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툭 말을 던져온다. "루베라께서 그때..............첫눈에 반했을 지도 모르신다고..............." "....................!!!!!!!" "뭐?!!!!! 처........첫눈에 반했다고?!!!!!!! 아악!!! 키르!!!!!!" "커억!!!! 이 미친놈이 왜 또 내 목을..............!!!!" "큭, 그럼 전 이만............." 시니안이 명을 실행하려 돌아서자마자 발광을 해대는 황태자놈과 목이 졸려 꽥꽥대며 돼지 멱따는 소릴 해대는 궁의 녀석의 틈에서 한참을 얼어붙어 있었다. Rubera(루베라) #166 썰렁한 새벽공기에 몸을 둥글게 말고 바들바들 떨어대다 결국 부시시 눈을 뜨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티.....폰................." 아직 잠이 덜 깨 잔뜩 잠긴 목소리로 한참동안 침대 위에 앉아 어미를 찾는 병아리 마냥 붉은 사내를 찾아도 평소처럼 따뜻하게 품안에 안아주지 않는다. 멍한 머리에 이리저리 뻗어있는 머리칼을 긁적이며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난장판이 되어있는 침실....... 벽난로 안엔 불에 그을린 시트가 쳐박혀있고 바닥엔 어젯밤 홧김에 던져버린 물건들이 부서진 채 여기저기 널려있다. 황성의 거대하고 화려한 침실과는 달리 사방이 막혀있는 음침한 공간에 미간을 찌푸리다 겨우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시온이 갇혀있는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고 침실로 돌아온 후 피곤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침실을 치울 기운도 남아있지 않아 대충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것......... 어쨌든 침실은 지금이라도 치우면 된다는 생각에 비틀거리며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던 순간................ 갑자기 문밖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들려온다.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아침을 가져다 주기엔 너무 이른 시간............ 그렇다면............. '설마................' 철컥............ 믿고싶지 않은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문고리에 열쇠를 끼워 넣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심장이 멈춰버릴 만큼 놀라 몸이 확 굳어버렸다. 분명 오늘이 사흘 째....... 하지만 이렇게 새벽부터 녀석이 돌아올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불안으로 정신 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굳어있는 동안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잔뜩 성이 난 듯한 녀석이 성큼 침실 안으로 들어선다. "이 도둑고양이 같으니......!! 도대체...............무슨 짓을 벌인..............!!" 난장판이 되어버린 침실에 거칠게 말을 내뱉다말고 싸늘하게 굳은 금갈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불길한 느낌........... 심상치 않은 표정에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빠르게 다가와 강하게 손목을 움켜쥐고 버둥거리는 몸을 거칠게 침대 위로 내리누른다. "무..........무슨 짓이야?!!!!!!!!! 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쳐대도 넋이 나간 듯 하얀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이럴 수가.................. ..............색이...................... .................변했어......?!!" '뭐................?!!!!!' 갑작스런 말에 눈을 크게 뜨자 까만 머리칼이 눈앞에 스친다. '벌....써............?!!'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위기감에 미친 듯 녀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자 작게 욕설을 내뱉더니 쇳덩이 같은 주먹을 그대로 복부에 쑤셔 박는다. "헉...................!!" 내장이 뒤틀리는 통증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몸을 말자 꼼짝도 할 수 없게 체중으로 내리누르고 부서뜨릴 듯 양 손목을 모아 쥔 채 머리위로 고정시킨다. 예상치 못한 폭력에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괴로운 듯 헐떡이며 막혀있던 숨을 터뜨리자 턱을 쥐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지금까지 꼭꼭 감추어두었던 광기를 단번에 드러내며 잔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녀석이 갑자기 입고있던 얇은 셔츠를 거칠게 움켜쥐고 찢듯이 벗겨내자 공포에 몸이 굳어버렸다. 어딘가 깊숙이 박혀있다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공포스런 기억에 숨도 내쉬지 못하고 몸을 떨기 시작하자 하얗게 드러난 상체를 더듬어 붉은 각인 위에서 손을 멈추더니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큭, 황제가...............그리도 집착했던 이유가.............이거였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며 축축한 혀를 귓속에 밀어 넣자 소름끼치는 감촉이 온몸에 타고 오른다. 더운 숨을 불어넣으며 혀로 핥아대는 느낌에 귀를 잡아 뜯고싶은 충동이 일어 손을 움직이려 해도 부서뜨릴 듯 강하게 손목을 움켜쥐고 놓아줄 생각을 않는다. "흐윽.........." 바르작대며 고개를 휘젓자 맘에 들지 않는 듯 잇자국이 날만큼 귓불을 강하게 깨물어대다 다시 살기 짙은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감쪽같이 속았군..........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쓴 거냐.......... 분명.............벙어리였을 텐데............ 게다가............ 겨우 두 해만에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감옥에 가둬둔 녀석은 역시........가짜였나...........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바로 목이 떨어질 판에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뻔했어.........." 실소를 흘리며 섬뜩한 기운을 쏟아내던 녀석이 반항도 하지 못하고 떨어대기만 하는 몸을 간단히 내리누른 채 다리사이에 허벅지를 밀어 넣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올려보자 바로 고개를 숙여 작게 솟은 가슴 돌기를 덥썩 물어온다. "흐윽.............하.........지마..........." 단단한 이로 깨물어대는 느낌에 겨우 정신을 추스리고 미친 듯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 하자 허벅지로 민감한 곳을 압박하고 비벼댄다. 쾌감은커녕 소름끼치는 느낌에 정신 없이 사내의 머리를 밀어내며 발버둥을 쳐대자 다시 상체를 일으켜 커다란 손을 들어올리더니 사정없이 뺨을 갈기기 시작했다. 막아낼 틈도 없이 쏟아지는 폭력에 입술이 다 터져 나가고 하얗던 뺨이 온통 붉게 물들어 힘없이 축 늘어지자마자 겨우 걸치고만 있던 옷을 모조리 벗겨내고 하얀 나신 위에 자신의 몸을 겹쳐온다. "큭, 즐거운 유희는 느긋이 하려고 아껴두었는데..........일이 틀어져 버렸군....... 꽤나 맘에 들었었는데................ 황제가 길을 들인 새끼고양이였다니.............." 계속해서 피가 새어나오는 입술을 핥아대며 상처를 헤집어대는 바람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자 그대로 입술을 포개 혀를 감아온다. 끔찍한 혈향에 토기가 일어 사내의 밑에서 벗어나려 미친 듯 버둥대자 턱을 부서뜨릴 듯 강하게 움켜쥐고 굶주린 짐승처럼 연한 살점을 물고 빨아댄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만족할 만큼 유린하고 급하게 입고있던 화려한 옷을 모두 벗어 던지더니 바로 맨몸을 비벼온다. "흐윽.................아....................................아아아악!!!!!!!!!!!!!!" 민감한 피부에 닿아오는 사내의 감촉에 곧 죽을 것처럼 헐떡이며 경기를 일으키자 다시 강하게 뺨을 올려붙여 정신을 붙들어 놓고 잔인하게 귓가에 속삭여온다. "황제가.............널 찾더군......." "하악........................" 갑자기 들려온 말에 흐려진 의식을 겨우 부여잡고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눈동자로 올려보자 하얗게 드러난 나신이 꽤나 만족스러운 듯 탐욕스레 쓸어대다 그대로 손을 미끄러뜨려 민감한 중심을 쥐어온다. "고양이를 찾느라 꽤나 초조했던지 어젯밤 열린 파티에서..........공식석상에서........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해왔다. 확실히...........미친 게 분명해............ 모두 몰살시켜 버린다 하더군. 갑자기 모습을 감추거나 의심 가는 가문부터 하나씩........." "아.......학....................." "그 자리에서 본보기로 2년 전 반역에 연루됐지만 증거가 없어 처형하지 못하고 지하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귀족 하나를 끌어내 참혹하게 죽여버렸다. 큭,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려 겁쟁이 귀족 녀석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발고하며 발버둥치는 게 꽤나 볼만했지.... 그 때문에 오늘부터 매일 황실 파티에 얼굴을 내보여야할 판이다. 그렇게 애타게 찾고있는 고양이가 이렇게 내 밑에서 더럽혀지고 있는 것을 안다면.........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얀 목덜미를 깨물어대며 발정 난 짐승처럼 단단하게 일어선 페니스를 엉덩이 사이에 밀어 넣은 채 부벼대던 녀석이 붉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 흥분한 듯 거친 숨을 내뱉으며 급하게 매끈한 허벅지를 쥐어 벌린다. 시야가 새카맣게 가려지고 짙은 혈향이 역겨울 만큼 머릿속을 휘저어댄다. 2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 사내의 손에 쥐어진 페니스가 억지로 절정에 달해 조금씩 유색 액체가 새어나오기 시작하자 아플 만큼 빠르게 피스톤질을 해댄다. "하아.............아.....................흐윽..............." 멍하게 풀린 눈으로 힘겹게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젓자 참기 힘든 듯 바로 손을 뻗어 부드러운 엉덩이를 터트릴 듯 강하게 움켜쥐고 흥분할 대로 흥분해 한계까지 부풀어오른 페니스를 벌어진 굴곡에 그대로 밀어 넣는다. "하악.....................그.........만........................" 데일 만큼 뜨겁고 단단한 살점이 애널 위로 비벼지는 느낌에 사내를 거부하며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대자 페니스를 감아쥐고 있던 손을 다시 움직여간다. "아................학................." "역시..........크리올라의 황제도 뮤즈니안의 황태자도 홀릴 만한 몸뚱이다. 킥, 그러고 보니 2년 전 슈안도...............널 손에 넣으려 안달했지. 결국 황제도 되지 못하고 목숨도 잃었지만........... 이 몸뚱이 위에서 죽었으니 한은 없는 건가..........큭큭.............." 죽고싶을 만큼 수치스런 기분에도 아플 만큼 부풀어 오른 페니스를 거친 손길로 빠르게 훑어 올릴 때마다 끔찍한 쾌감이 온 몸을 타고 오른다. 하얀 몸뚱이가 조그마한 쾌락에도 자극적인 움직임으로 사내를 유혹해대자 배신감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 뚫고 들어가기 불가능할 정도로 좁디좁은 입구를 귀두 끝으로 찔러대며 억지로 벌려오는 느낌에 순간................... 정신이 나간 듯 흐려졌던 까만 눈동자에서 분노와 살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죽어...............버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겨우 뻗어 침대 맡에 놓여있던 테이블 위를 더듬어대다 손끝에 걸려오는 단단한 물체를 발정 난 짐승처럼 하체를 비벼대며 범해오려던 녀석의 머리에 강하게 내질러버렸다. 퍽----------!!! "헉................!!!!!"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짧게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오는 녀석을 거칠게 밀쳐내자 힘없이 침대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하아.............흑........................." 둥글게 몸을 말고 정신을 놓아버린 듯 헐떡이며 가쁘게 숨만 토해내다 참고 있던 눈물을 모두 쏟아내 버렸다. "흐윽............티폰..........." 이렇게나 보고싶은데................. 당장이라도 심장이 깨어져 죽어버릴 것만 같은데.......... 죽을 것처럼 아프게 불러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심장을 죄어오는 통증에 어느샌가 뺨을 다 적셔버린 물기를 거칠게 비벼 닦고 주체할 수 없이 떨려오는 몸을 겨우 추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저앉아 버리면 그렇게나 보고싶은 녀석마저.............볼 수 없게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분명...........나보다 더 아파하고 있을 텐데............ 분노에 미쳐있을 텐데............. 안심시켜주지 않으면................ 달래주지 않으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얀 침대보를 끌어 대충 몸을 가리고 위태로울 만큼 비틀대며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침대 밑에 힘없이 쓰러져 있는 녀석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미동도 없다. "개새끼!!!!!!!!!!!!!!!!!" 퍼억----------!!!! 벌거벗은 사내의 옆구리에 강하게 발길질을 날리곤 한참동안 분노로 거친 숨을 내쉬며 공포와 살기가 뒤섞인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다 바닥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던 녀석의 옷가지를 뒤져 열쇠를 찾아 문으로 향했다. 무자비한 폭력에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질질 끌어가며 겨우 육중한 문에 다다라 열쇠를 끼워 넣는 순간................. 쾅--------------!!!! "크윽.......!!!" 강하게 몸을 벽으로 밀어붙여 그대로 목을 비틀어버릴 듯 숨통을 조여온다. 커다랗게 뜬 까만 눈동자 속에 비치는 건 눈이 부실만큼 반짝이는 금발............... 상처하나 없이 깨끗했던 이마가 살짝 찢어져 붉은 피가 계속해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독한 살기............... ...................죽이려는 거다. 피가 통하지 않아 빨갛다 못해 흑빛으로 변한 얼굴을 보며 잔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사내를 보곤 죽음의 공포에 거의 정신이나가 끔찍할 만큼 단단한 팔을 미친 듯 할퀴어대기 시작했다. 풀리기는커녕 점점 강해지기만 하는 아귀힘에 결국 미약한 저항조차 멈추고 시체처럼 늘어져 버리자 귓가에 비틀린 입술을 대고 조용히 속삭여온다. "아직이다................. 아직은 죽이지 않으마............ 2년 전...............나와 한 약속을 모두 지킬 때까지만.................. 그 후엔................." 갑자기 트이는 숨통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죽을 것처럼 마른기침을 토해내다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하아...........크윽........................" 꿈속에서조차 공포가 되어버리는 사내의 낮은 신음과 질척한 소음에 정신 없이 몸을 떨어대며 경기를 일으키자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칼을 쓸어주고 식은땀이 맺힌 이마에 따뜻한 입술을 맞대온다. 꿈이 아닌 듯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정사의 소음에 공포를 겨우 누르고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끔찍한 통증이 내달린다. "흐윽..............." 작게 신음을 흘리며 손끝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자 새끼를 보호하듯 따뜻한 품안에 단단히 가두어둔다. '티폰...........' 흐릿한 시야에 스치는 붉은 머리칼에 무방비하게 사내의 품안으로 파고들어 울컥 눈물을 쏟아내자 부드럽게 등을 쓸어 달래준다. 그런데.................. 여전히 귓가에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괴로운 듯 헐떡이는 거친 호흡......... 분명................... 등뒤에서................. 사내의 품안에서 고개를 돌리려하자 바로 뒤통수를 당겨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보지마.............." 귓가에 스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올리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시온............?!!!' 까만 눈동자를 크게 뜨고 올려보자 고개를 숙여 부드러운 입술로 뺨을 적신 물기를 훔쳐준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심장을 쥐어짜는 불안을 녹여줄 만큼 부드럽게 입술을 떨어뜨려 눈을 감기고 힘없이 늘어진 몸을 아플 만큼 강하게 끌어안는다. 잠시 후 절정에 짐승 같은 신음을 흘려대던 사내가 헐떡이는 숨을 내뱉으며 잠잠해지자 가늘게 몸을 떨어대며 단단한 품안으로 파고들어 숨을 죽였다. "큭, 가짜도 꽤나 쓸만하군.......... 바로 죽여버리려 했는데............ 아무래도.......고양이가 할퀸 상처를 되 갚아 줄 때까지.....보류해둬야겠지..........?" "네놈이...................감히.................. .................이 녀석한테 손을 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온의 섬뜩한 목소리에 흠칫 몸을 굳히자 작게 이를 갈며 분노를 누르더니 다시 조용히 말을 꺼낸다. "그냥 죽이지 않겠다. 폐하께서 네놈 시체라도 남기시면....................잘게 다져서 씹어버릴 테니............" "큭............황족께오서 고귀하신 입으로 그렇게 험한 말을 뱉으시다니................" "닥쳐!!!!! 죽여버리고 말 테다!!!! 이 더러운 자식!!!!!" "답답하셔도 조금만 참으시면 편히 해드리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그때까지만 폐하의 고양이를 맡겨둘 테니 쓸데없이 말썽을 피우지 않도록 돌봐주십시오. 꽤나 호기심이 많아 스스로 위험에 뛰어드는 일이 잦으니.................." '개자식..........................!!!!!' 분을 참지 못해 부들부들 떨어대는 시온의 품안에서 벗어나 조롱하듯 입꼬리를 비튼 채 감옥 저편에서 시선을 던져오는 녀석을 죽일 듯 노려보자 꽤나 유쾌한 듯 킥킥대며 뒤돌아 선다. "큭, 아직 팔팔하군............ 더 놀아주고 싶다만 오늘밤에도 폐하께서 여실 처형식에......아니, 파티에 참석해야 할 테니 좀 쉬어두는 게 좋겠지? 그래도............ 저녁 때 한번 더 들리마............" 쾅하고 닫혀버리는 철문을 한참동안 살기를 띈 채 노려보다 맞은편에 보이는 끔찍한 광경에 피가 베어 나올 만큼 강하게 주먹을 그러쥔 채 분노로 몸을 떨었다. 2년 전..................나와 같은 모습으로 잔인하게 유린당한 채 널부러져 있는 건............. "리오.................." 심하게 목이 졸려 성대가 상했는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가자 뒤에서 시온이 강하게 끌어안아 온다. 모두 내 탓이다. 모든 일을 너무 안일하고 쉽게 생각했던 내 잘못.................. 저 녀석도 내 대신...................... "미안.........................." 단단한 쇠창살을 쥐고 죄책감에 아프게 속삭이자 그제까지 몸을 말고 뒤돌아 누워있던 녀석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온다. "멍청한 소리 좀 작작해..............잊은 모양인데.........이게 내 일이야.......... 빌어먹을.....!! 미친 자식..............!! 진작에 알아봤다니까!!!!!!!" 하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을 대충 옷가지로 닦아내며 욕설을 내뱉던 녀석이 다시 내게 시선을 맞춰온다. "이번 걸로 황성에서 진 빚은 갚았으니까.................그 입으로 지껄여댄 말이나 지켜!!! 젠장, 이런 곳에서 미친놈한테 죽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으니까!!"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소중한 걸 또다시 잃고싶진 않다. 이렇게 보호받기만 한 채 내 손으로 지키지 못하면............ "알았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밤하늘처럼 새카맣기만 했던 눈동자에 순간 섬뜩한 빛이 스쳐간다. ***룬.....급히 만들어 약효는 보장못한다더니 기어이 일이 터졌습니다. 하류......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다음 편은 일요일에............. 감상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 Rubera(루베라) #167 "더러운 새끼......내 손으로 죽여버릴 테다..........!!!" 낮지만 격한 음성에 흠칫 몸을 굳히고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리자 분노로 짙어진 가넷빛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새벽부터 정신나간 녀석에게 시달린 탓에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피곤을 참지 못하고 부드럽게 쓸어주는 손길에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것............ 열이 오르는 지 바짝 말라 갈라진 입술을 비집고 더운 숨이 새어나간다. 어쩐지 서늘한 느낌에 힘없이 시선을 내려보자 여기저기 파랗고 붉은 멍이 들어버린 하얀 나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무..............무슨 짓이야?!!!!!!!!" 바르작대며 날카롭게 소릴 지르자 아슬하게 하체에 걸려있던 붉은 망토로 몸을 감싸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놔!!!!!!!!!!!!" 목덜미에 닿아오는 숨결에 바들바들 떨어가며 몸부림을 쳐대자 아플 만큼 강하게 끌어안는다. "이제 괜찮아.....................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할 테니까............." "흐윽................아아아아악!!!! 만지지마!!!!!!!!!!" "제발..........." 미친 듯 발작을 해대며 발버둥을 치자 괴로운 듯 작게 속삭이며 뺨을 부벼온다. "울지마.............." 눈앞에 하늘거리는 붉은 머리칼에 순간 발광을 멈추고 숨을 죽이자 따뜻한 손으로 물기를 훔쳐주고 그대로 입술을 포개온다. "으응................" 따끔거리는 입술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신음을 흘리자 부드러운 혀로 상처를 핥아대며 짧은 키스를 멈추지 않는다. 안타까운 듯 떨어졌다 붙기를 반복하는 녀석의 입술을 피해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바르작대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늘어진 몸을 품안에 꼬옥 끌어안는다. "흥.........한심하군. 그렇게 갖고 싶으면 안으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지금 그 녀석.........제정신도 아닌 거 같은데...... 뭐..............나중에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그 정신나간 황제의 손에 죽기야 하겠지만......... 아니.........마지막 남은 혈육이니 운이 좋으면 살수도 있는 거잖아?" "웃기지마.........무례한 자식!!!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대는 거냐.............." "큭,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미천한 소인의 머리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니............ 황제폐하의 루베라를 품고싶은 게 아니셨습니까?" 비아냥대는 목소리에 작게 이를 갈던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닥쳐!!!! 이 녀석은.............노예가 아니다!! 게다가 단순히 품었다해서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면............. ...............울며 거부해도 몇 번이라도..........." "마음을..................얻어?" "사랑하니까...............뺏을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멍청하게 멈출 수 없으니까.........." "사랑? 큭..........스턴이란 놈처럼 추악한 본능과 육욕을 착각한 것뿐이겠지. 그딴 게...................진짜......................있을 리 없잖아............" "있어......................." 조심스레 뺨을 쓸어오는 느낌에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자 부드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깼어?" '누구..........?' 잠시 멍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다 붉은 머리칼과 부드러운 눈빛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어린아이처럼 사내의 목에 팔을 감아 따뜻한 품안으로 파고들자 놀란 듯 내려본다. 온통 헝클어져버린 머리가 끔찍할 만큼 지끈거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붉은 빛이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따뜻할 뿐이다. 붉은 사내가 어쩐지 어색하게 허리에 팔을 감아 꼬옥 끌어안자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단단한 목덜미에 뺨을 부볐다. "아파................" "아...........미안.............." 작은 투정에 흠칫 놀라 팔에서 힘을 풀더니 갑자기 복잡한 표정으로 불안한 듯 조용히 속삭여온다. "너 설마 그 놈한테............무슨 짓 당한 거...............아니지?" "응?"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붉은 눈동자가 괴로움에 살짝 흔들린다. 계속되는 침묵에 맘에 드는 붉은 머리칼을 지분대며 눈을 감는 순간, 따뜻한 손이 조심스레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와 부드러운 굴곡 사이로 파고든다. 가늘고 단단한 것이 뭔가 확인이라도 하듯 애널 위를 더듬어대는 느낌에 반짝 눈을 뜨자 머리카락만큼이나 붉게 물든 사내의 뺨이 시야에 들어온다. "목소리............." "으..........응?" 화들짝 놀라 손을 떼더니 이상할 만큼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으로 다시 내려본다. "..........이상해............" "아................!!" 그제야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린 녀석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붉은 망토를 살짝 걷어내자 하얀 목이 무자비하게 졸려 퍼렇다못해 시커멓게 멍이 들어있다. "빌어먹을.........!!!!" 험악하게 욕설을 내뱉는 사내의 품안에서 바르작대며 몸을 일으키려하자 손으로 가만히 내리누른다. "좀 더 자...........응? 아직도 아프잖아.......젠장!! 열도 있고............" 어질어질한 머리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사내의 품안에 안겨 눈을 감자 잠이 들 때쯤 부드러운 키스가 계속해서 입술 위로 떨어져 내린다. . . . "흑................" 작게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움켜쥔 채 눈을 뜨자 붉은 눈동자로 걱정스러운 듯 내려보며 연신 땀에 젖은 까만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린다. "시......온............?" "너.............. ...............정신이 든 거야?" "응?" "아니, 다행......이야................." 어쩐지 실망을 감추지 않고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말을 뱉는다. "얼마나............지난 거야?" 주위를 둘러봐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감옥 안에선 밤인지 낮인지조차 구분해 낼 수가 없다. "한참 됐어......." "그 자식은? 아직 안 왔지?" "그 새낀 또 왜?!!!!!" 버럭 소릴 질러대는 녀석의 품안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시야가 핑 돈다. "하아.......젠장............여기서 나갈 거야...............오늘!!!!" "뭐?!!! 무슨..........?!!" 티폰이 아무 단서도 없이 자력으로 이곳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쪽에서 탈출할 가능성도 거의 제로............. 주위를 둘러보니 지난 번 살펴본 것과 다를 바 없이 작은 규모의 감옥엔 출구가 둘.......... 하나는 스턴놈의 침실과 연결된 비밀통로........... 다른 하난 육중한 철문으로 막혀 어디로 이어지는 지도 알 수 없는 지하통로........... 게다가 이곳은 미르헨 본가도 아닌..................남의 이목을 피해 숨겨놓은 저택............ '뭔가 방법이......................' 철컥.......... 순간 갑자기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놀란 듯 굳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시온에게서 고개를 돌려 감옥 안으로 들어서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시선을 박았다. '미르니안.................' 뜻밖의 손님............. 어쩌면..........일이 더 쉽게 풀릴 수도............. 평소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입은 소녀가 음침한 감옥 안을 기분 나쁜 듯 둘러보다 내게 시선을 딱 멈추고 놀란 듯 밤색 눈동자를 크게 드러낸다. "어.......어떻게.....?!!! 분명 흰빛이었는데.................그럴 리가!!!!!! 너 같은 창부가.........폐하의 루베라였을 리가 없어!!!!!!" 절망적인 목소리로 앙칼지게 소릴 지르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노려본다. "창부?!!! 무슨 무엄한 소릴 지껄여대는 거냐......현 황제폐하의 하나뿐인 루베라다!! 너 따위가 감히.........반역자주제에........." 시온의 말에 주먹을 꼬옥 쥔 채 분노로 몸을 떨던 여자가 섬뜩하게 붉은 입술을 말아 올리고 광기를 쏟아낸다. "네 탓이야.................. 네놈 때문에 내가 두 번이나 수치를 당했다. 식도 올리지 않고 창녀처럼 황제에게 몸을 던졌는데............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날 버렸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황비의 자리엔 앉을 수 없을 터........... 황제가............티폰이 내게 약속을 했다. 내가 있는 한 황비도 후궁도 들이지 않겠다고............. 천천히 미르니안에게 다가가 피할 겨를도 없이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멱살을 움켜쥐고 얼굴을 들이밀자 크게 드러난 밤색 눈동자가 살짝 떨려온다. "넌.............황비가 되지 못해........." "뭐?!!!" "티폰이..........황제가 사랑하는 건 나야........." 잔인하게 말을 뱉어내자 붉디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거칠게 멱살을 움켜쥔 손을 쳐내고 뒤로 성큼 물러선다. "닥쳐!!! 출신도 모를 미천한 놈이 어리석기 짝이 없군........사랑? 하, 그딴 걸 정말 믿고있는 건 아니겠지? 황제의 침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잘난 척 떠들어대는 것도 지금 뿐이야. 헛된 기대를 품어봤자 같은 사내의 몸뚱이 따위........곧 질려버리고 말 거다. 손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았던 물건에 변덕스런 집착을 보이시는 것 뿐이야. 그걸 깨닫게 되는 날이........널 버리는 날이 될 거다. 얼음처럼 차가운 분이시니............황성 밖으로 내치시겠지. 운이 좋으면 뮤즈니안의 황태자나 시온님에게 물건처럼 하사를 할 지도 모르고......."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말에 상처를 입고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항상 생각하며 불안에 떨었던 일......... 만약.............. 진짜로 그런 날이 온다면............ 엉망으로 망가져 심장이 멈추고 숨이 끊어질 게............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내꺼야............." 그래............... 지금은 내 거다. 나만 바라보고.................. 내게만..................... ...................사랑한다고 속삭여준다.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으니.................. 상처 따위 입히려 해도............. "소용없어............" 다시 고개를 들어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자 혼란스런 듯 노려보며 날카롭게 소릴 지른다. "난...........난 황비가 될 거다!!!! 어머니처럼 비참하게 살다 죽을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어!!!!!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를 네놈에게 내 자리를 빼앗길 것 같아?!!!!!" 잔뜩 가라앉은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황비가 돼도.................죽을 거야" "무..........무슨 소릴 지껄이는................" "스턴이 그러더군............" "그........그럴 리가................" "2년 전 슈안이 죽은 것도 그 녀석이 모두 꾸민 짓이야........" "거짓말!!!!!!! 그런 거짓말에 속아넘어갈 것 같아?!!!!!!!!" "모두 죽일 셈이다. 그러니.........모두 잃기 전에............다 포기해.........." "웃기지마!!!!!" 뒷걸음질치며 미친 듯 고개를 휘젓는 여자가 오히려 가련해 보여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결국은..................이용만 당하다 죽을 뿐이다. "절대로 빼앗기지 않아!!!!! 이번에야말로........오늘밤...........무슨 짓을 해서라도......." 쾅------------!!! 또다시 무거운 철문이 요란한 소릴 내며 열리더니 황실 파티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예복을 차려입은 사내가 성큼 들어선다. '스턴...............' "예까지 확인까지 하러 온 건가?" 무심한 눈으로 미르니안에게 시선을 던지더니 아름다운 차림새에 만족한 듯 다시 부드럽게 말을 꺼낸다. "큭, 어차피...........황제는 자신의 루베라를 찾지 못할 테니 넌 황비 될 준비나 하거라.......... 이번 일이 가라앉으면 멍청한 귀족 녀석들도 황제의 절대권력을 분산시키려 황비를 들이라 성화를 부리겠지........ 그때까지 황제의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된다. 간단한 일이지.........." "비..........비켜..........!!!" 부드러운 손길로 밤색 머리칼을 어루만지자 흠칫 몸을 굳히던 여자가 거칠게 녀석의 손을 쳐내고 감옥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큭, 비열한 자식.................." 꽤나 바쁜 듯 그대로 뒤돌아나가려는 녀석에게 비웃듯 말을 던지자 천천히 뒤돌아 금갈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다시 기운을 차렸나보군............" "더러운 새끼............." "닥쳐라..............!!" "너 따위가 교활한 머릴 굴려봤자 황제는 될 수 없어............. 티폰이..............네깟 놈한테 호락호락 당할 거 같아?!!!!!" 단단한 창살을 부여잡고 살기 짙은 눈으로 폭언을 쏟아내자 순식간에 녀석의 눈빛이 싸늘히 식어간다. "역시.............황제가 버릇을 잘못 들였군............" 섬뜩한 미소를 입에 걸고 물러날 틈도 없이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까만 머리칼을 감아쥐더니 입술이 맞닿을 만큼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다. "2년 전보다.................탐이나.............." "개자식............" 작게 이를 갈며 살기 띈 눈동자로 노려보자 넋이 나간 듯 까만 눈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온다. 섬뜩한 눈빛과는 다른 부드러운 감촉에 피하지 않고 입술을 벌려주자 기다린 듯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파고든다. 이 자식과 키스를 하면서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티폰의 키스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뛰어대는 심장박동도........... 유이의 키스처럼 마음을 내주고픈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 심지어는 시온이나 케레스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키스도, 시니안처럼 미워할 수 없어 미소가 비집고 새어나올 만한 키스도 아니다. 느껴지는 건 무의식 속에 꼭꼭 숨겨놓은 과거의 공포와 소름끼치는 살의....... 입안을 멋대로 유린해대는 녀석의 혀를 거부하듯 살짝 깨물어대자 더욱 흥분해 질척한 소음을 내며 모양 좋은 입술을 거칠게 빨아들인다. "하...........류................."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듯 굳어있던 시온이 겨우 입을 여는 순간 녀석의 입술이 거칠게 떨어져 나가더니 바로 왼쪽 손목을 강하게 거머쥔다. "큭, 재미있는 손재주를 가지고 있군............" "흑.........." "말썽쟁이 고양이가 다시 손을 쓸 줄 알았지..........." "크윽!!!!!!!!!!!!" 강한 힘에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와 작게 신음을 흘리며 손을 펴자 쥐고있던 열쇠가 바닥 위로 떨어져 내린다. "두 번이나 당할 만큼 어리석진 않다............" "헉..................." "무슨 짓이냐!!!!!!!!!!!!!!!" 순간 목에 뭔가 깊숙이 찔러 넣는 느낌에 놀라 작게 신음을 흘리자 시온이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달려들어 스턴이 쥐고 있던 손목을 빼내 힘없이 늘어지는 몸을 품안에 가둔다. "루펜타는............루베라를 느낀다더군...........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큭, 귀여운 누이동생이 벌이는 일을 약간은 도울 수 있을 테니............." "도대체 무슨 짓을.................!!!!" 분노를 터뜨리는 시온의 품안에서 바들바들 떨려오는 손을 들어올려 목을 더듬자 만지기만 해도 쉽게 휘어질 만큼 가는 바늘이 깊이 박혀있다. "직접 혈액을 타고 몸으로 퍼져나가니 효과도 알약보다 월등해 시간 내로 손을 쓰지 않으면.........죽게 될 겁니다. 그건 저도 바라는 일이 아니니 시온님이 알아서 손을 써주실 걸로 믿고, 저는 이만............" "스턴!!!!!!!!!!!!!!!!!!!" 바로 뒤돌아 감옥을 나가버리는 녀석을 미친 듯 불러대던 시온이 옷깃을 붙들어오는 손길에 급히 시선을 돌려온다. "하아...........됐어..............손을 써뒀으니까...........금방 나갈 수 있어.............걱정 마.........." "무슨 소리야?!!! 아픈 덴?!!! 아픈 덴 없는 거야?!!!!" "흐윽...............하지마.............." 이리저리 몸을 더듬어 오는 손길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흠칫 몸을 굳히자 녀석이 눈을 크게 뜨고 내려본다. "서...............설마................" "나쁜 자식!!!! 늙은 귀족놈들이 어린 노예들과 즐길 때 쓰는 약이야!!" "뭐?!!!!!!!!" 리오의 말에 경악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괜찮으니까...........하아..........떨어져................" 목에 박힌 가는 침을 뽑아내고 거의 기다시피 감옥 구석으로 물러나 몸을 말은 채 눈을 감아버리자 손을 뻗어오던 녀석이 흠칫 놀라 반대편으로 물러난다. . . . "멍청한 자식!!!!!!!!!!!!"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흐려진 시선을 돌리자 왠지 화가 난 듯 무서운 얼굴로 소리쳐 온다. "참으면 죽어!! 벌써 한 시간이나...........더 이상 못 버틸 거야!! 약기운이 너무 지독해서 늙은이한테 당하는 도중에 심장이 멈춰 죽는 녀석도 봤다구!!!!" 몸을 온통 태워버릴 듯한 열기에 뇌까지 녹아 내리는지 생각조차 이어나갈 수가 없다. "흐윽...............하아.................오지......마!!!!" 막을 틈도 없이 멋대로 새어나가는 신음에 놀란 듯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시온을 보곤 작게 소리치자 괴로운 듯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린다. 큰일이다. 손을 써두긴 했지만........티폰이 눈치채지 못했다면............ "하악.............." 손도 대지 않은 페니스가 멋대로 반응을 해대자 정신이 나가버릴 듯한 통증과 쾌감이 온몸을 들쑤셔댄다. 밖으로 터져 나가지 못하는 열기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아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몸부림을 쳐대자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그딴 사랑 때문에............저렇게 그냥 죽일 셈이야?!!!!!" "빌어먹을.............!!!!" "난 상관없는 일이지만 더 참으면 저 녀석............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 잠시 잠깐의 소음이 사라지자 누군가 다가와 몸을 싸고있던 망토를 확 걷어낸다. "하..............윽.................아..........................하지......마................." 부드러운 손길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품안으로 끌어당기자 맨몸에 스치는 옷깃의 감촉에도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강한 쾌감이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본능적으로 거부의 말을 내뱉으며 도리질을 치자 붉게 열꽃이 핀 몸을 쓸어가던 손을 흠칫 멈추더니 다시 얌전히 망토 위에 뉘여 준다. "미안............" "으응................." 몸을 눌러오는 익숙지 않은 체중에 헐떡이며 신음을 흘리자 바로 입술을 덮어온다. 녹여버릴 듯 부드러운 입맞춤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간다. 흐려진 시야에 파고드는 붉은 머리칼에 간단히 입술을 벌려주고 입안을 쓸어대는 혀를 당겨 살짝 빨아주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바로 손을 뻗어 매끈한 몸을 더듬어온다. 귀한 예술품이라도 만지듯 지나칠 만큼 부드러운 손길이 성감대를 쓸어댈 때마다 움찔대며 자극적인 신음을 쏟아내자 사내의 거친 호흡이 귓가에 울려온다. "하아.........빨리.................." 목덜미에 입술을 비벼대는 사내의 붉은 머리칼을 움켜쥐고 재촉하듯 투정을 부리며 스스로 다리를 벌리자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미끄러뜨리며 조용히 속삭여온다. "이렇게 차지해 버리면............형님에게도 유이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질 텐데............." "흐윽........................." 귓가에 불어넣는 뜨거운 숨결에도 민감한 몸이 미친 듯 반응해댄다. 귓불을 물고 잘근잘근 깨물어대는 느낌에 참지 못하고 허리를 활처럼 휘자 바로 뜨거운 손을 허리 아래로 미끄러뜨려 부드러운 엉덩이를 살짝 쥐어온다. 꼬리뼈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대며 연한 살점을 애무해 가는 손길에 사내의 목에 팔을 두르고 습관처럼 목덜미에 뺨을 부비자 조심스레 손을 뻗어 민감한 중심을 손으로 감아온다. "하악............" 손에 쥐어진 것만으로도 작살 맞은 물고기 마냥 바들바들 떨어대며 욕정을 내보내자마자 다시 아프도록 부풀어오른다. "아..........흐윽............안아 줘................티폰............." 힘에 겨운 듯 작게 속삭이며 열에 달뜬 몸을 사내에게 비벼대자 흠칫 몸을 굳히더니 목덜미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흔들리는 시선을 내게 맞춰온다. 투명한 가넷빛 눈동자............. 순간................ 본능을 자극하는 위화감........... 분명 그렇게나 좋아하던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가 맞는데.......... 내가 사랑하는 녀석이 분명............... ".............??!!!!!!!!!!!!!"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겨우 들어올려 하얀 얼굴을 조심스레 쓸어보고 붉은 머리칼을 감아쥐자 핏물이 떨어질 만큼 붉디붉은 머리칼이...................아니다..................?!! 약간 색이 옅은 머리칼과 정욕으로 짙어진 붉은 눈동자를 정신 없이 바라만 보자 가만히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온다. '아니.........야...................' "흐읍......................" 까만 눈을 크게 뜨고 미친 듯 고개를 휘저어 사내의 입술을 떼어내자마자 날카롭게 소릴 질러댔다. "흐윽...............비켜!!!!!!!! 손대지마!!!!!!!!!!! 아............흑.............아아아아악!!!!!!!!!!!!!!!" 발작을 해대며 몸부림을 치자 놀라 몸을 일으켜오는 녀석의 밑에서 겨우 빠져나와 바닥에 깔려있던 망토로 몸을 가리고 구석으로 달아나 버렸다. "하..........류............." "가까이 오지마!!!!!!!!!! 오지마!!!!!!!!!!!!" 상처 입은 짐승처럼 구석에 몸을 말고 정신 없이 떨어대며 미친 듯 소릴 질러대자 움직임을 멈추고 초조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차가운 돌 벽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흠칫흠칫 떨려온다. 몸 속에 있는 피가 모두 역류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미쳐버린 몸뚱이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초조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사내가 누군지........... 내가 왜 여기 있는 건지............. 여기가 어딘지............. 도대체 누굴..............기다리고 있는 건지.............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에도 온몸을 휘저어대는 열기와 끝을 향해 멈출 만큼 정신 없이 뛰어대는 심장소리에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다음은 티폰편.......과연 하류가 뭘 했을 지.........그럼 다음 주에....... Rubera(루베라) #168 -티폰- ***화이트데이 보너스.........라고 하기엔 좀.....어쨌든 한편 더 올립니다. 당분간은 아마 계속 티폰 시점일 듯.......... "폐..............폐하!!!!!!" 아직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새벽녘.......... 황제의 침소에서 갑자기 일기 시작한 소란에 공포에 질린 시종들이 바닥에 머릴 박은 채 부들부들 떨어대고 있었다. 이미 주위는 태풍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것처럼 아수라장................ 발광을 멈추고 갑자기 잠잠해진 황제와 숨이 막힐 만큼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에 침소 안에 있던 시종들과 병사들은 감히 머리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떨고만 있었다. "폐하......." 황성 전체가 벌벌 떨어댈 만큼 섬뜩한 황제의 분노에 급히 침소 안으로 들어선 시니안마저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놀란 듯 말을 잊은 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전쟁 중에도..............이렇게 미쳐있던 황제는 본 적이 없다. 성한 물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침소 안은 그야말로 참상............ 침소 안에 가득 날아다니는 부드러운 새의 깃털에 미간을 찌푸린 채 황제가 앉아있는 침대로 시선을 돌리자 검으로 난도질을 한 것인지 커다란 베개와 매트가 터져 하얀 깃털이 꾸역꾸역 새어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역겨울 만큼 지독한 혈향................ 시선을 내려보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닥 위에 깔린 하얀 융단을 붉게 물들이며 이미 형체조차 남지 않은 살점과 핏덩어리가 흩뿌려진 채 갈기갈기 찢어진 천 조각만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시체가 황성의 시종이었음을 알려준다. "폐하............" 불러도 반응이 없다. 섬뜩할 만큼 짙은 선홍색 눈동자가 광기에 흐려져 초점조차 맞질 않는다. 핏물을 잔뜩 뒤집어쓴 황제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무방비 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묘하게 시선을 잡아끌어 한참을 선 채로 굳어있다 바로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입을 열었다. "궁의를 불러라........." "예.........!!" 명에 따라 바닥에 엎드려 떨고만 있던 시종장이 나이도 잊은 채 서둘러 비틀대며 뛰어나가자 남아있던 시종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끔찍한 시신을 침실 밖으로 옮기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바로 시녀들이 피로 목욕을 한 듯한 황제의 몸을 조심스레 닦아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힌 후 조용히 물러나자 잠시 후 거대한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남빛사내가 급하게 침소 안으로 들어선다. . . . 뭔가 허전한 느낌에 습관처럼 침대 위를 더듬어봐도 원하는 걸 찾을 수 없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날이 저물기 시작하는 지 붉은 빛이 거대한 창을 통해 침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폐하.........."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은회색 눈동자를 한 사내가 걱정스런 낯빛으로 내려보고 있다. '도대체 무슨.............' 몸을 일으켜 어쩐지 휑한 침소를 둘러보다 눈을 뜨자마자 숨가쁘게 뛰어대는 심장에 급하게 침대 위를 살펴보자 당연히 품안에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스치는 생각에 섬뜩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순간 육중한 문이 열리고 눈에 익은 잿빛 일색의 사내가 침소 안에 들어와 깊이 고개를 숙여온다. "어제 파티가 끝난 이후 폐하의 명에 따라 미르헨가의 가솔들을 미행했지만......수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어젯밤 바로 미르헨가로 돌아가 오늘 황실 파티에 참석할 때까지..............미르헨가를 나선 자는 아무도............" "몸시종을 불러라............"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주먹을 틀어쥔 채 살기를 뿜어대다 섬뜩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색 옷을 정갈하게 갖춰 입은 시녀들이 침소 안으로 들어서 익숙하게 자신들의 일을 시작한다. "폐하, 루베라께 무슨................." 목석 같던 사내가 드물게 감정을 내비치며 잿빛 눈동자로 불안한 시선을 보내온다. 분명........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제멋대로 떨려오는 손을 노려보며 불길한 기운을 떨쳐내려 애를 써도 새벽부터 미쳐버릴 만큼 괴롭혀대던 불쾌감과 불안을 몰아낼 수가 없다. 이유 없이 뛰어대는 심장과 지나칠 만큼 날카로워진 신경에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눈이 부실만큼 붉고 화려한 옷으로 단단한 몸을 가리고 값비싼 보석으로 마무리를 짓던 시종들을 물린 채 초조한 낯빛으로 시니안에게 말을 던졌다. "오늘 파티에 불참한 가문은..............?" "바르한가와 아이시드가가 아직......................." "정시까지 도착하지 않으면............저택을 샅샅이 수색한 후 몰살시켜 버려..........." "..............예.........." 내 자신만큼이나 불안을 감추지 못하던 케레스가 별 수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나자 천천히 침소 밖으로 나서 귀족들이 모여있을 중앙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새하얀 대리석이 깔린 황성 중앙 계단을 통해 중앙홀로 내려서자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하게 얼어붙어 간다. 공포에 몸을 떨어대며 깊숙이 고개를 숙인 귀족들을 지나 평소와 다름없이 화려한 옥좌에 몸을 기대자 뒤따르던 시니안이 조용히 곁을 지켜 선다. '버러지 같은 것들...........' 작은 광장만큼이나 규모가 큰 중앙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귀족들에게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조소를 보내다 피처럼 붉은 액체가 가득 채워진 투명한 크리스털 잔을 집어 올려 입술을 축이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무겁게 침묵에 잠겨있던 공간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다가서는 발걸음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꽤나 눈에 익은 사내가 평소와 다름없이 가장먼저 눈앞까지 다가와 깊숙이 고개를 숙여온다. "폐하, 몸은 어떠하신 지................." '몸..............?' 새벽의 일로 황성 안에 황제의 광증이 다시 도졌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붉은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지독히도 건조한 표정으로 내려보자 당황한 듯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려는 듯 몸을 일으켜 세운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황제 폐하............" "미르헨가의 후계자는...............?" 뜻밖의 물음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보다 섬뜩하게 들이박히는 붉은 눈동자에 그제야 자신의 무례를 깨닫곤 급하게 머리를 숙인 채 입을 열어온다. "미르니안과..........누이동생과 함께........." 미르헨가를 더 중히 여겨 항상 곁에 두었던 선대 황제완 달리 현 황제는 전쟁을 일으키자마자 크리올라에서 유일하게 미르헨가와 견줄 수 있을 만큼의 명문가였던 카이도가에게 손을 뻗었다. 현 황제가 등극한 이후 수많은 귀족가가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눈물나는 노력을 했지만 기가 막히게도 황제가 선택한 건 카이도가를 제외하면 그렇다할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이름 모를 가문들 뿐............ 처음엔 그 기준조차 알 수 없었던 황제의 안목에 거세게 반발했던 명문가의 귀족들조차 거의 2년 만에 대륙 전체를 삼켜버린 대규모 전장에서 파죽지세로 승리만을 이끌었던 황제의 측근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미르헨가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유능한 인재로 소문이 나있음에도 어쩐 일인지 황제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이 바로 스턴 미르헨......... 매번 황비 후보로 거론되었던 미르니안 미르헨보다도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미르헨가의 후계자였다. 그런데 지금..........황제가 무슨 이유에선지 스턴에게 관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스턴이라 했던가..............." "예, 폐하............." 갑작스런 물음에 상념에서 벗어난 로키안이 굳은 표정을 감추며 급히 답을 하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훑어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소문엔..........머리가 비상한 사내라 하더군........" "과찬일 뿐입니다" "그건...................큭............!!" 갑자기 심장이 죄어대며 울렁거리는 느낌에 잔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자 투명한 잔이 그대로 바스라지며 붉은 액체를 쏟아낸다. "폐하!!!!!!!" 역시...........뭔가가 이상하다. 알 수 없는 열기에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휘젓다 여전히 불안한 듯 시선을 보내오는 로키안에게 힘겹게 말을 던졌다. "직접 확인해 보겠다. 내게 보내............" "................예....................." 의도를 알아채고 숨을 들이키던 사내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년의 사내를 노려보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손을 적신 붉은 액체와 유리조각을 털어 내곤 아무 말도 없이 굳은 표정으로 로키안을 주시하고있던 시니안에게 조용히 말을 던졌다. "감시해라............지금부터 내가 허락할 때까지 중앙홀에서 아무도 내보내지마" "예............" 자꾸만 몸을 타고 오르는 열기에 불쾌감을 참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시니안을 뒤로한 채 어둠에 잠긴 발코니로 발걸음을 옮기자 누군가 뒤에서 조용히 따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발코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끈적하게 들러붙는 열기를 몰아내는 사이................ 거대한 유리문이 소리 없이 닫히더니 가벼운 발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뒤돌아서는 순간................ 허리에 감겨오는 하얗고 가는 팔에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보자 예상과는 달리 스턴이란 사내가 아닌 낯이 익은 소녀....... 풍성한 밤빛 머리칼에 유색으로 빛이 나는 하얀 피부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다.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달콤한 향에 평소완 달리 쉽사리 밀어내지도 못하고 몸을 굳히자 부드러운 몸을 바짝 밀착시켜온다. 명백한 유혹의 몸짓............ "하아............." 제멋대로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호흡을 추스릴 틈도 없이 물컹한 가슴이 단단한 복부에 부벼지자 억눌린 신음이 꼬옥 다물려있던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다. "폐하........" 가슴이 깊게 파인 붉은 옷을 차려입고 천박하다싶을 만큼 몸을 부딪쳐오던 여자가 작게 속삭이며 하얀 팔을 뻗어 뱀처럼 목을 휘감은 채 그대로 붉은 입술을 포개온다. 아찔한 느낌에 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이 무너져 내리려는 순간..................... "헉...................폐........폐하...............!!" 가늘고 하얀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비틀어버릴 듯 힘을 가하자 새파랗게 질려 곧 죽을 것처럼 바들바들 떨어대기 시작한다. "죽여버리겠다............" "흐윽.................왜............" "감히 내 것에....................." "우욱..............컥.........................." 광기를 감추지 못하고 섬뜩한 눈으로 살기를 쏟아내자마자 미친 듯 버둥거리며 헛된 몸부림을 쳐대다 갑자기 시뻘건 핏덩어리를 울컥 쏟아낸다. 헐떡이며 늘어져버리는 여자를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다 겨우 이성을 부여잡고 힘을 늦추자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어대기 시작한다. "내 루베라를.........하류를...................어떻게 한 거냐............"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자 공포에 질린 눈으로 올려본다. "무.........무슨 말씀..........아악.................!!!!!!!!!!" 바로 의장용 단검을 뽑아 하얀 손등에 그대로 박아 넣자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쳐댄다. "말해............" "흐으....................아아아아아아악!!!!!!!!!!!" 자제심을 잃고 짐승 같은 포악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날이 서지 않은 칼날로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손을 꿰뚫고 비틀어대자 경련을 일으키며 미친 듯 질러대던 비명소리가 천천히 잦아든다. 정신을 잃으려는 순간............... 사정없이 뺨을 올려붙이고 여자의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장식하고 있던 수많은 보석 중,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루비 하나를 뽑아들었다. "내가......................내 아이에게 예물로 준 것이다" "그................그럴 리가.................흐윽...............!!" 자신의 옷에 박혀있다 황제의 손에 들어간 핏방울 같이 붉은 루비조각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다 갑자기 손을 꿰뚫고 나간 단검을 뽑아내 뭉툭한 검 끝을 뽀얀 가슴위로 살짝 쑤셔 넣자 지독한 통증에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아낸다. "입을 열지 않으면.......이대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 보여주지. 큭, 아니.........그럼 쉽게 죽을 테니...........온 몸에 대못을 박아 광장에 매달아버릴까...........?" "하아.............제발...............흑................" "내 루베라를.............어디에 감췄지.............?" "스...........스턴이................흐윽..............미르헨가 지하통로로 이어진 숨겨진 별장에...............아악!!!!!!!!!!" 그대로 여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리고 뒤돌아 서자마자 중앙홀과 발코니를 차단하고 있던 거대한 유리문이 열리고 작은 소란에 놀란 듯 시니안이 급히 발코니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폐하..................이게 도대체...............!!" 피투성이가 된 채 실신해버린 여자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신음처럼 말을 내뱉다 지독할 만큼 섬뜩한 살기를 겨우 누르고 있는 붉은 황제의 모습에 입을 다물어 버린다. "로키안과 스턴 미르헨을 잡아들여라. 미르헨가로 간다" "설마................미르헨가가......................" "모두 미르헨가로 끌고 와............. 거짓을 고했다면 그만큼..............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닥에 널부러진 여자를 바라보는 시니안을 뒤로한 채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바로 뒤를 따른다. ***감상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이번엔 진짜 다음 주에...... Rubera(루베라) #169 -티폰-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있었다. 쥐새끼 같은 것들이 타인의 이목을 피해 자신의 저택 아래 굴을 파 드나든 곳은 변두리에 감춰진 음산한 저택........... 어둠 속에 교묘히 숨겨진 지하터널을 지나 육중한 철문에 막혀있던 작은 감옥이 드러나자 제일 처음 눈에 박혀들어 오는 건 감옥 구석에 몸을 말고 죽은 듯 늘어져 있는 나신.......... 하얗던 피부가 붉다 못해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새어나오는 신음과 끊어질 듯 가는 호흡이 아니면 시체로 착각할 만한 모습.......... "폐하......................!! 형님!!!!! 그 녀석 좀..............제발..........내가 손대면.........죽을 것처럼 발작을 해대서......... 흐윽...................어떻게 좀 해줘..................." 정신이 나간 듯 흐느끼며 두서 없이 중얼대는 시온의 목소리에 겨우 분노와 살기를 누르곤 서둘러 대검을 뽑아 감옥문을 망가뜨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서 붉은 망토에 싸인 아이를 품에 안아들었다. 빠져나가려 힘겹게 바르작 대지만 밀어낼 힘도 없는지 그대로 늘어져 헐떡이며 가쁜 숨만 뱉어낸다. "궁의를 불러라!!!!!!!!!!!" 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저택으로 올라와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처음 눈에 띄는 침실로 급하게 들어서 침대 위에 아이의 몸을 눕히자마자 영문도 모르고 밤중에 황성에서 끌려나온 남빛 사내가 바로 침실로 들어서 아이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하아................흑................." 사내의 손이 닿을 때마다 작게 신음을 흘리며 뒤척이는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하류의 몸을 확 낚아채 품에 가두자 기분 나쁜 미소를 입에 걸친 채 터무니없는 소릴 뱉어낸다. "제가 고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당장 고쳐내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리겠다!!!!" 감히 실컷 만져대고도 고칠 수 없다는 말에 분노를 터뜨리며 검을 손에 쥐자 겁을 상실했는지 다시 말을 바꾼다. "직접 고치라 하시면 그리 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폐하께서 잠시 자릴 피해주셔야겠습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당장 고쳐..............!!!!" 살기를 쏟아내자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기괴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최음제에 중독되신 듯 한데..........폐하께서 관음증이 있으신 줄은................" "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자 금새 뒤로 달아나 침실 문 앞에 선다. "지독한 걸 쓴 모양이니 너무 거칠게 다루시면 갑자기 심장이 멎을 수도 있습니다. 큭, 그럼 저는 이만...................." "감히............" 분노를 터트릴 틈도 없이 작게 훌쩍이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급히 시선을 돌리자 얇은 시트를 움켜쥐고 괴로운 듯 몸을 뒤척이며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아프게 뛰어대는 심장소리에 바로 입술을 포개고 달래듯 부드럽게 눈물을 훔쳐주자 말갛게 젖은 눈동자를 드러낸다. 점점 약해지는 숨소리가 안타까워 금새 입술을 놓아주고 약기운을 풀어주려 단단해진 페니스를 살짝 감아쥐는 순간....... 갑자기 흠칫 몸을 굳히더니 정신 없이 바들바들 떨어대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놀라 미친 듯 휘저어대던 손목을 움켜쥐고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내려보자 공포에 질려 까만 눈동자에 초점조차 맞지 않는다. "하아.........비.........켜............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미친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불안에 날뛰어대다 혀를 깨물려는 듯 입을 꽉 다물어버린다. 급하게 턱을 움켜쥐는 순간................. "흐윽..................손..........대지마..........하지.........흐으...................아아아아악!!!!!!!" 심장을 찢어버릴 만큼 날카로운 비명소리................ 결국................. .................망가뜨려 버렸다. 내 소중한 걸............... 곧 죽을 것처럼 발작을 해대는 모습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다 이성을 잃고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 대검을 손에 쥐었다. 지금 죽여버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모두 난도질을 하지 않으면....................!!!! "하아.................흑..................티.....폰.................." 섬뜩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에서 작게 울먹이는 소리가 귓가에 스쳐온다. 놀라 돌아서자마자 언제 발작을 멈췄는지 하얀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꼬옥 움켜쥔 채 까만 눈동자로 올려보고 있었다. "...................아파.................." 붉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말에 그대로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숨죽인 채 바라보자 더운 숨을 내쉬며 의아한 듯 잔뜩 흐려진 까만 눈동자로 가만히 올려본다. 허공을 헤매지 않고 곧게 시선을 맞춰오는 눈동자에............안아달라 손을 뻗어오는 모습에............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뜨겁게 열이 오른 몸을 끌어당겨 품에 안고 입술을 포개자 젖먹이처럼 붉은 머리칼을 손에 꼬옥 움켜쥐고 서툴게 반응을 하며 매달려 온다. 덥다고 헐떡이며 칭얼대는 입술을 집어삼킬 듯 핥고 빨아대다 그대로 손을 뻗어 민감한 중심을 부드럽게 쓸어 자극을 해주자 괴로운 듯 헐떡이며 바르작대더니 바로 손안에 유색 액체를 떨어뜨린다. 한번의 사정으로도 힘에 겨운 듯 축 늘어져버리는 몸을 그대로 침대 위에 눕히고 천천히 젖은 손가락을 애널 안에 밀어 넣자 손가락 하나도 겨우 받아들일 만큼 강하게 죄어온다.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밀어 올리며 성감대를 자극하자 지쳐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본능적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몸을 부벼온다. "하악..........아.........학.........으응......................" 쾌감에 떨어대는 부드러운 몸을 꼬옥 끌어안고 살짝 벌어져 자극적인 신음을 흘려내는 입술을 굶주린 듯 빨아대며 손가락을 깊숙이 밀어 넣자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하고 보들한 페니스가 다시 손안에 가득 차 오른다. 천천히 엄지손가락으로 귀두 끝을 비벼대며 빠르게 피스톤질을 시작하는 순간, 멈춰버릴 것처럼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궁의 놈의 말이 떠올라 흠칫 손을 멈추고 입술을 떼어내자 만족하지 못한 듯 작게 신음을 흘리며 뜨거운 입술을 단단한 목덜미에 부벼온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목덜미에 와 닿는 입술의 감촉에 이성이 날아갈 지경............... "하아..........티폰.........."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자 의아한 듯 까만 눈동자를 드러낸다. 쾌락에 젖어 넋이 나갈 만큼 예쁜 눈으로 한참을 올려보다 결국 약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며 보채는 모습에 기어코 정신이 나가버렸다. 급하게 옷을 벗고 바로 뜨거운 나신에 몸을 포개자 맨몸에 닿아오는 온기가 기분 좋은 듯 나른한 신음을 흘리며 단단한 몸에 매달려온다. 바로 내부를 넓혀가던 손가락을 빼내고 하얀 허벅지를 쥐어 벌리자마자 흥분한 페니스를 좁은 애널 안에 뿌리까지 밀어 넣었다. 지독한 쾌감에 숨쉬는 것조차 잊고 바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정신 없이 바르작대며 비명 같은 신음을 터뜨린다. 거친 행위에도 최음제 탓에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지 재촉하듯 맞물린 하체를 비벼대며 유혹을 해온다. "하아...............학...................으응..........아..............." 금새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신음소리에 절정을 알아채고 성감대를 긁어대며 깊숙이 밀어 올리자 흠칫 몸을 굳히더니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사정을 하고 그대로 늘어져 버린다. 힘없이 흔들리면서도 강하게 죄어오는 내부에 이성을 잃고 거칠게 탐해갔다. 쉽사리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피스톤질에 이젠 신음조차 흘릴 기운도 없는지 느끼는 곳을 귀두 끝으로 찔러대도 헐떡이며 살짝 입술이 벌어질 뿐 반응이 없다. 바로 고개를 숙여 연신 더운 숨이 새어나오는 말캉한 살점을 맛이라도 보듯 슬쩍 핥아보고 부드럽게 빨아들이자 멍한 눈으로 핏방울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만히 올려보더니 바들바들 떨리는 하얀 팔을 뻗어 목에 감고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매달려온다. 밤하늘만큼이나 깊고 까만 눈동자도............ 푸른빛이 도는 결 좋은 머리칼도................ 살짝 부풀어 삼켜버리고 싶은 입술도.................. 숨이 막힐 만큼 예쁜 몸도............... 입술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피부와 코끝에 스치는 달콤한 체향도............... ...................못 견딜 만큼 좋다. 따뜻한 몸 안에 정신 없이 페니스를 밀어 넣다 아이가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다시 사정을 하자마자 그대로 손을 미끄러뜨려 내 것을 품고있는 하얀 엉덩이를 꽈악 움켜쥐고 그대로 깊숙이 밀어 넣은 채 욕정을 쏟아냈다. 푹신한 침대 위로 늘어져버리는 하얀 몸에 바로 손을 뻗어 꼭 끌어안자 한결 고른 숨이 귓가에 스친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입을 맞추며 내려보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었던 몸도 본래의 색을 되찾아 괴로운 듯 울먹이던 표정도 지운 채 갓 태어난 아기처럼 정신 없이 잠에 빠져있다. 겨우 되찾은 아이의 몸에서 쉽사리 떨어지지 못하고 통통한 입술을 굶주린 듯 빨아대며 부드러운 몸을 쓸어대다 따뜻한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 순간................. "...............!!!!!!!" 하얗던 목덜미가......................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충격에 숨을 죽인 채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것이 확실한 자국을 떨리는 손으로 살짝 쓸어보자 괴로운 듯 몸을 비틀며 가늘게 떨어대기 시작한다. 다시 발작이라도 일으킬까 놀라 급히 품에 안아 달래주자 까맣고 긴 속눈썹을 비집고 투명한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린다. 숨어버리기라도 할 듯 품안에 파고들어 한참을 훌쩍이더니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드는 모습을 섬뜩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하얀 몸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뺨은 살짝 부어있고 입술도 물어뜯긴 듯 작게 생채기가 나 있다. 허벅지 안쪽에도 우악스레 잡아 벌린 듯 까맣게 멍이 든 손자국이 남아있고 목은.............확실히 죽이려 손을 댄 게 틀림없다. 몸 여기저기에 새겨진 멍 자국을 살기 띈 눈으로 바라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대검에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의 열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차갑게 피가 식어간다. '더러운 쥐새끼들................' 여기까지 끌고 오길 잘 했다. 바로 죽여버릴 수 있을 테니............... 아니, 금새 죽이는 건 재미가 없을 터................. 잔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까맣게 잠긴 채 지독하리 만치 무거운 정적에 싸여있다. 코끝에 스치는 짙은 혈향과 방금 전까지 들려오던 날카로운 쇳소리가 멈춘 걸로 봐선 시니안과 케레스가 저택 근처에 배치되어있던 사병들을 모두 처리한 모양............. 실제로 창을 통해 보이는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건 황성의 병사들......... 저택을 모두 점거했으니 여기까지 끌고 온 그것들도 이 저택 어딘가에 구금되어 있을 터.......... 죽지 않을 만큼만.................. 그래...........오늘은 내 것을 찾았으니 가볍게............. 입술을 탐한 혀를 잘라내고 이 몸에 손댄 손은...........잘라내면 피가 많이 흘러 죽을 수도 있으니 손가락부터.......... 목은..........아쉽지만 자르면 죽을 테니 끓는 물로 식도를 태워버릴까............. 아니, 그 전에......................... 내 것을 보고 발정한 물건부터 도려내야겠군................ 그리고 나머지는................. .................평생동안 받아내면 되는 거다.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치료도 병행할 테니 쉽게 죽진 않겠지.......... 섬뜩한 생각과는 달리 품안에 안겨있는 부드러운 몸을 조심스레 침대 위에 눕히고 따뜻한 내부에 들어가 있던 페니스를 빼내려하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강하게 죄어댄다. 아직도 약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작게 할딱이며 놓아주지 않는다. "으응..............하아.............티폰..............." 반수면 상태에서도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몸을 비벼오는 아이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곤혹스레 번갈아 보다 결국 하얀 몸을 끌어당겨 품안에 꼬옥 안았다. 쥐새끼들 때문에 소중한 걸 혼자 둘 순 없으니.............내일 처리해도 늦진 않겠지......... 그대로 자세를 역전시켜 커다란 베개에 몸을 기대자 내 것을 품은 채 위에 앉혀진 아이가 꼼지락거리며 맞물린 하체를 비벼온다. 격하지 않은 움직임에도 빠르게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기분에 좋아져 천천히 흔들리는 늘씬한 허리를 쓸어보고 하얀 가슴에 살짝 솟은 분홍빛 돌기를 손가락으로 지분대자 쾌감과 잠에 흠뻑 취한 눈동자가 내게 맞춰진다. 그대로 허리를 움켜쥐고 서툰 움직임에도 금새 단단해져버린 페니스를 깊이 밀어 올리자 흠칫 몸을 굳힌 채 강하게 죄어댄다. "하아................으응.................." 격하게 안아주던 좀 전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으로 천천히 성감대를 비벼대며 애를 태우자 몸이 달은 듯 복부 위에 손톱을 세우고 재촉해온다. 새끼 고양이 같은 모습에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다 쾌락에 몸부림치는 몸을 가볍게 들어올려 뜨겁게 죄어대는 내부에서 단번에 빠져나와 버렸다. '멋대로 내 품안에서 벗어나 몸을 상하게 한 벌이다..............' 평소라면 만족하지 못한 상태라도 분노를 터뜨리며 돌아누워 되려 애를 태우겠지만 지금은 최음제의 영향이 가장 큰 건 하류 자신이다. 분명 얼굴을 붉힌 채 죽일 듯 노려보다 부드럽게 입을 맞춰주면 별 수 없이 매달려 오겠지................. 이번엔 황성 안에서만 얌전히 지내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받아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갑작스런 변덕과 심술 맞은 행동에 앙칼지게 반항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까만 눈동자에서 소리 없이 커다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린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에 놀라, 벌이고 약속이고 싸그리 잊은 채 하얀 몸을 품에 가두고 물기를 쓸어 주자 어린아이처럼 젖은 뺨을 가슴에 부벼대며 원망하 듯 눈물만 쏟아낸다. 확실히 뭔가...................다르다. 마치...................... '설마......................?!!' Rubera(루베라) #170 -티폰- 확실히 뭔가...................다르다. 마치...................... '설마......................?!!' 살짝 떨리는 어깨를 움켜쥐고 눈물에 흠뻑 젖어버린 얼굴을 들여다보자 불안한 듯 버둥대며 떨어지지 않으려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려온다. 2년 전과......................... ...................같은 모습...................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 말도 잊은 채 굳어있다 한없이 품안에 파고드는 하얀 나신을 꼬옥 안아주자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스륵 눈을 감는다. 분명............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다. 크게 충격을 받아서............ 많이 힘들어서............ 잠깐 숨어있는 것뿐이다. 몇 번이나 상처받았어도............. 죽을 만큼 힘들었어도............ 다시 돌아왔으니까.............. "으응............." 가만히 턱을 들어올려 입을 맞추자 방금 전 일로 골이 난 듯 고개를 휘저어 입술을 떼어내고 품안에 얼굴을 묻는다. 이리저리 고집스레 입술을 피하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게 우선이라는 듯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우스워 귓가에 살짝 입술을 찍어누르고 혀로 핥아내자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듯 작게 신음을 흘리며 더운 숨을 뱉어낸다. "사랑해..............." 마음을 담아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에 귀까지 새빨갛게 붉어져 고개도 들지 못한다. "흐윽.........으응................." 결국 예쁜 모습에 되려 참지 못하고 아직 젖어있는 내부로 다시 밀고 들어가 천천히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갑작스런 침입에 놀란 듯 강하게 죄어대며 자극적인 신음을 뱉어낸다. 고개를 숙여 허락하듯 살짝 벌어진 입술에 입을 맞추려는 순간................. "키르..............!!!!!!!!" "황제폐하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 함부로 드실 수................" "웃기지마!!!!!!!!" 낯익은 목소리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소란이 일기 시작하는 문 쪽을 노려봤다. 귀찮은 건 황성에 두고 왔는데...........금새 따라붙은 모양.............. "하아..........티폰.............." 밖에서 자신을 찾아대는 황태자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보채오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보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곤 급히 시트를 끌어 하얀 나신을 모두 가린 후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들여라..............." "폐...........폐하..........." 당황한 듯한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천천히 침실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젠장!!! 날 속여?!!! 키르!!! 그 녀석...........어디에 숨긴 거야?!!!" 역시나.................. 요란하게 성질을 피워대며 안으로 들어서는 황태자를 보곤 겁을 먹은 듯 흠칫 몸을 굳힌 채 바짝 매달려오는 것을 보니 녀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발소리에 맞닿은 가슴을 통해 불안한 듯 팔딱팔딱 뛰어대는 심장박동이 느껴지자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갰다.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어대며 얌전히 있는 혀를 감아 빨아들이자 입가에 와 닿는 숨결에 다시 열기가 실리기 시작한다. 바로 코앞에서 살기를 띄고 노려보는 황태자놈을 비웃듯 농도 짙은 키스를 해가며 천천히 시트 안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반쯤 일어선 페니스를 감아쥐자 본능적으로 허리를 움직여 내부에 받아들인 페니스를 강하게 죄어댄다. "하악.................." 탐스러운 입술을 맘껏 빨아대다 천천히 귀두 끝을 비벼대며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약기운을 없애주려 몇 번이나 안은 탓에 잔뜩 민감해져 금새 미치도록 색스런 신음을 터뜨린다. 지독한 쾌감에 겨우 이성을 붙들어 놓고 아이가 사정을 시작하는 순간 재빨리 귀두 끝을 손가락으로 막아버렸다. "아.............하아.................흐윽.........." 쾌락에 몸부림치는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고 그제야 맞은 편에 굳은 채 서있는 사내에게 열기를 감춘 싸늘한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께서 이 밤에 내게 무슨 볼일이지?" "네놈...................."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죽일 것처럼 주먹을 꽈악 그러쥐더니 흔들리는 눈동자로 하류를 바라본다. "큭, 설마............내 루베라에게 볼일이 있었던 건가..............." 신음소리조차 들려주는 것이 아까워 가슴에 바짝 끌어당기자 꽤나 분한 듯 이를 갈아대며 노려본다. "키르!!!!!!!!!!!!!!!!!!"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돌아보기는커녕 흠칫 놀라 품안에 더욱 깊이 파고들자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더니 분노를 누르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뱉는다. "도대체...................그 녀석한테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불쾌하군.........이 아인 내 루베라다. 이미 내 것이야.............타국의 황태자 따위가 감히 신경 쓸 일이 아닐 텐데........." "웃기지마! 아무리 황제라 해도 그 녀석을 구속할 권리 따윈 없을 텐데............!! 결정은 그 녀석이.........키르가 하는 거야!" "그렇다면.........이미 결정은 한 듯 하군............" 어린아이처럼 품안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 하류를 꼬옥 끌어안고 비웃듯 말을 잇자 하얗게 질릴 만큼 주먹을 꽉 말아 쥔다. "내 목숨까지 쥐고있는 아이다. 함부로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포기해.........." "누가......................!!!" 바이올렛 눈동자가 분노와 질투로 짙은 빛을 띄기 시작하자 잔혹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은빛 사내를 노려보다 하류의 턱을 살짝 들어올려 쾌감에 잔뜩 흐려진 까만 눈동자를 사로잡았다. "전부 내 것이다. 몸도 마음도........네놈이 차지할 자린 한 조각도 없어!! 포기할 수 없다면............ 그리도 갖고 싶다면 차라리.................. .............죽어라............ 네겐 머리카락 한 올도 내어줄 수 없으니..................." "닥쳐!!!!!!!!!!!" "큭, 죽어서 시체가 된다해도 네놈 손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어!! 고귀하게 태어나서............가장 천하게 죽고 싶지 않다면 내 것에 손대지 마라..........." 광기를 드러내며 살기를 쏟아내자 오히려 분노를 갈무리하고 어느샌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노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온다.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어" "그렇다면...............시작한 걸 후회하게 해주지............" "하아..........으응..................." 그대로 고개를 숙여 붉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사정을 막은 채 부드럽게 감싸쥐고 있던 페니스를 살짝 쓸어주자 욕정을 내보내지 못해 고통스러운지 헐떡이며 교성을 터뜨린다. "하악................아....................아파..........흑..........." "하아.........움직여........." 귓속에 더운 숨을 불어넣으며 달래듯 조용히 속삭여도 미간을 찌푸린 채 어린아이처럼 훌쩍이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도리질을 친다. 미치도록 사랑스런 모습에 참지 못하고 하얀 얼굴에 정신 없이 키스를 퍼부어대며 늘씬한 허리를 감아쥔 채 맞물린 곳을 슬쩍 비벼 올리자 단단한 귀두로 성감대를 찔러오는 느낌에 흠칫 떨어대며 가쁜 숨을 내쉬더니 결국 쾌락을 쫓아 단단한 목에 팔을 감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학.................아...............으응.........................." 서툰 움직임에도 뜨겁고 강하게 죄어대는 내부에 생각을 마비시켜 버릴 만큼 강한 쾌감이 온몸을 타고 오른다. 하얀 어깨너머로 보이는 은빛 사내의 눈동자가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며 쾌락을 얻어내는 아이의 몸에 정욕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걸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다 더운 숨을 내뱉으며 입가를 더듬어 오는 아이의 입술에 그대로 이성을 무너뜨린 채 하얀 몸을 침대 위로 밀어붙였다. "하.............흐윽................티폰...............아................" 검붉게 멍이 든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고 굶주리듯 빨아대다 부드럽게 조여오는 내부를 강하게 밀어 올리며 격하게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활처럼 몸을 휘고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지르더니 쭉 뻗은 다리로 허리를 감아온다.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유혹하듯 신음을 흘려내는 입술에 농도 짙은 키스를 해가며 사정이 막힌 채 손에 쥐어져 녹아버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페니스의 귀두 끝을 살짝 비벼대자 날카로운 교성을 터트리며 단단한 등에 손톱을 박아 넣는다. "으응..................아....................그만.................하악.................." 격한 움직임으로 통증이 느껴질 만큼 깊숙이 찔러대는 행위에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이며 도리질을 치다 절정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순간 페니스를 쥐고있던 손에서 힘을 풀고 아이의 따뜻한 몸 안에 욕정을 쏟아내자 힘겹게 숨을 터뜨리며 그대로 손안에 유색 액체를 떨어뜨린 후 축 늘어져 버린다. 기절한 듯 미동도 없는 아이의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고 아직도 흠칫거리며 죄어대는 내부에서 나른하게 후희를 즐기다 찌를 듯 날카로운 시선에 그제야 살짝 드러난 아이의 몸을 시트로 가리곤 질투로 반쯤 미쳐버린 사내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제 포기할 생각이 드셨나......................" 한껏 조소를 띄워 던지는 말에 참혹하게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색색거리며 고른 숨을 내쉬는 붉은 입술에 살짝 입술을 찍어누르고 작은 움직임에도 뒤척이며 신음을 흘리는 아이의 몸 안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시트 째 안아 올렸다. "밤이 깊었으니 이만 물러나라......................" 바로 돌아서 욕실로 들어서려던 순간 분노로 잔뜩 낮아진 목소리가 귓가에 스쳐온다. "내기............아직 끝나지 않았어.......... 앞으로 1년이다.............난 네놈 따위 절대 믿지 않아! 그 녀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네놈의 사랑 따위.............. 분명 다시 상처입고 내게 돌아오겠지................. 그때가 되면 절대 빼앗기는 일 없을 테니 지금은 멋대로 해............" 거칠게 닫히는 문을 미간을 찌푸린 채 노려보다 그대로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섰다. 지독하게도 질긴 벌레가 붙어버린 모양.......... 뮤즈니안의 철없는 애송이 황태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맹수의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 품안에서 꿈틀대는 느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몸에서 정사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낸 후 따뜻한 물 속에 담가주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편안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떼자마자 갑자기 화들짝 놀라 피곤으로 잔뜩 흐려진 까만 눈동자를 크게 들어내며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아......................티......폰.....................흐윽..................." 갑작스런 반응에 놀라 굳어있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에 바로 팔을 뻗어 품에 가두자 목덜미를 타고 따뜻한 액체가 점점이 떨어져 내린다. 바들바들 떨어대는 게 안쓰러워 부드럽게 등을 쓸어 달래고 그대로 품에 안은 채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가 떨어지지 않으려 버둥대는 아이의 몸을 겨우 허벅지 위에 앉힌 후 마주보자 그새 예쁜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더니 기어이 품안으로 파고든다. 하얀 목에 선명히 남아있는 시퍼런 멍자국과 지독히도 험한 꼴을 당한 듯 불안정한 모습에 다시 솟구쳐 오르는 살기를 겨우 누르고 조심스레 하얀 뺨을 적신 눈물을 쓸어주자 아직도 멈추지 않고 커다란 눈물이 툭툭 떨어져 내리는 새카만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울지 마라...........못난 얼굴은 보기 싫으니.........." 짓궂게 말을 꺼내자 놀란 듯 입까지 벌리고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효과 좋게 눈물도 뚝 그친걸 보곤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런 얼굴로 여태껏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한번이라도 거울을 본적이 있다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은 믿을 리가 없을 텐 데도 순진하게 그대로 믿어버린 모양.............. 이 아인........지금까지 하룻밤을 위해 외양만을 보고 품어온 수많은 여자들보다도, 고귀하게 자란 지체 높은 귀족가의 여인들보다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 생김새만큼이나 매혹적인 건 밤의 한 자락을 옮겨놓은 듯한 진귀한 빛깔............. 가끔 이렇게 짙은 빛을 지니고 태어나는 자도 있지만 이 아이처럼 순수한 빛깔은 본적이 없다. 게다가.................. 눈동자 뿐 아니라 머리카락마저도 모두 까만 것은................ ..............전무하다. 그렇다고 피부까지 까만 것도 아니다. 이것마저도 묘한 빛깔.............. 언뜻 보면 귀하게 자란 귀족가의 처녀만큼이나 뽀얗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르다. 우유에 꿀을 타 넣은 것처럼 달콤한 빛을 띈다. 그대로 매끈한 허리를 끌어당겨 목덜미에 얼굴을 묻자 그제야 안심한 듯 긴장을 풀고 눈을 감는다. 쭉 뻗은 등허리를 가만히 쓸어보고 부드러운 엉덩이를 살짝 움켜쥐자 약기운이 떨어져 이제야 통증이 이는 지 작게 신음을 흘리며 흠칫 몸을 굳힌다. 그대로 손가락을 굴곡 안으로 미끄러뜨려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 애널을 더듬어보니 무리하게 내 것을 받아들여 살짝 부어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게 거칠게 안는 게 아니었는데....................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따뜻한 몸을 꼬옥 끌어안고 조심스레 손가락을 애널 안으로 밀어 넣자 갑작스런 침입에 잔뜩 긴장해 손가락을 죄어댄다. "아...........티폰............흑................" 바로 고개를 숙여 통증을 호소하는 입술을 빨아대며 키스를 해주자 천천히 손가락을 조여대던 내부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으응.....................아...................." 내부 깊숙이 뿌려놓은 사정액을 긁어내며 통증을 줄여주려 성감대를 슬쩍 밀어 올리자 헐떡이며 달콤한 신음을 쏟아낸다. 입가에 닿아오는 따뜻한 숨결과 유혹하듯 손가락을 죄어오는 느낌에 일을 끝내자마자 급히 손가락을 빼내고 금새 분홍빛으로 물들어버린 아이의 몸을 안아 올렸다. 다시 자제력을 잃어버리면 상처를 낼 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아픈 몸을 상하게 하고싶지 않아 겨우 이성을 부여잡고 열기를 내리눌렀다. 따뜻한 몸을 소중히 끌어안고 물기를 닦아낸 후 다시 침실로 나와 조심스레 침대에 뉘여 주자 꽤나 피곤한 듯 꾸벅꾸벅 졸아가면서도 손을 꼬옥 쥔 채 놓아주지 않는다. 그대로 곁에 누워 따뜻한 몸을 품에 안자 기분 좋은 온기와 달콤한 체향에 지난 며칠 간의 불면증이 무색할 만큼 금새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분위기............감상, 추천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은 역시 다음 주말에.......... Rubera(루베라) #166 썰렁한 새벽공기에 몸을 둥글게 말고 바들바들 떨어대다 결국 부시시 눈을 뜨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티.....폰................." 아직 잠이 덜 깨 잔뜩 잠긴 목소리로 한참동안 침대 위에 앉아 어미를 찾는 병아리 마냥 붉은 사내를 찾아도 평소처럼 따뜻하게 품안에 안아주지 않는다. 멍한 머리에 이리저리 뻗어있는 머리칼을 긁적이며 시선을 돌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난장판이 되어있는 침실....... 벽난로 안엔 불에 그을린 시트가 쳐박혀있고 바닥엔 어젯밤 홧김에 던져버린 물건들이 부서진 채 여기저기 널려있다. 황성의 거대하고 화려한 침실과는 달리 사방이 막혀있는 음침한 공간에 미간을 찌푸리다 겨우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리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밤늦게까지 시온이 갇혀있는 감옥에서 시간을 보내고 침실로 돌아온 후 피곤에 난장판이 되어버린 침실을 치울 기운도 남아있지 않아 대충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 것......... 어쨌든 침실은 지금이라도 치우면 된다는 생각에 비틀거리며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던 순간................ 갑자기 문밖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들려온다.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아침을 가져다 주기엔 너무 이른 시간............ 그렇다면............. '설마................' 철컥............ 믿고싶지 않은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 문고리에 열쇠를 끼워 넣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심장이 멈춰버릴 만큼 놀라 몸이 확 굳어버렸다. 분명 오늘이 사흘 째....... 하지만 이렇게 새벽부터 녀석이 돌아올 거란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불안으로 정신 없이 뛰어대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굳어있는 동안 천천히 문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잔뜩 성이 난 듯한 녀석이 성큼 침실 안으로 들어선다. "이 도둑고양이 같으니......!! 도대체...............무슨 짓을 벌인..............!!" 난장판이 되어버린 침실에 거칠게 말을 내뱉다말고 싸늘하게 굳은 금갈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불길한 느낌........... 심상치 않은 표정에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벗어나려는 순간 빠르게 다가와 강하게 손목을 움켜쥐고 버둥거리는 몸을 거칠게 침대 위로 내리누른다. "무..........무슨 짓이야?!!!!!!!!! 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쳐대도 넋이 나간 듯 하얀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이럴 수가.................. ..............색이...................... .................변했어......?!!" '뭐................?!!!!!' 갑작스런 말에 눈을 크게 뜨자 까만 머리칼이 눈앞에 스친다. '벌....써............?!!'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위기감에 미친 듯 녀석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자 작게 욕설을 내뱉더니 쇳덩이 같은 주먹을 그대로 복부에 쑤셔 박는다. "헉...................!!" 내장이 뒤틀리는 통증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몸을 말자 꼼짝도 할 수 없게 체중으로 내리누르고 부서뜨릴 듯 양 손목을 모아 쥔 채 머리위로 고정시킨다. 예상치 못한 폭력에 벗어날 생각도 못하고 괴로운 듯 헐떡이며 막혀있던 숨을 터뜨리자 턱을 쥐고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을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지금까지 꼭꼭 감추어두었던 광기를 단번에 드러내며 잔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녀석이 갑자기 입고있던 얇은 셔츠를 거칠게 움켜쥐고 찢듯이 벗겨내자 공포에 몸이 굳어버렸다. 어딘가 깊숙이 박혀있다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공포스런 기억에 숨도 내쉬지 못하고 몸을 떨기 시작하자 하얗게 드러난 상체를 더듬어 붉은 각인 위에서 손을 멈추더니 잔혹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큭, 황제가...............그리도 집착했던 이유가.............이거였나?"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며 축축한 혀를 귓속에 밀어 넣자 소름끼치는 감촉이 온몸에 타고 오른다. 더운 숨을 불어넣으며 혀로 핥아대는 느낌에 귀를 잡아 뜯고싶은 충동이 일어 손을 움직이려 해도 부서뜨릴 듯 강하게 손목을 움켜쥐고 놓아줄 생각을 않는다. "흐윽.........." 바르작대며 고개를 휘젓자 맘에 들지 않는 듯 잇자국이 날만큼 귓불을 강하게 깨물어대다 다시 살기 짙은 목소리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감쪽같이 속았군.......... 도대체 무슨 마법을 쓴 거냐.......... 분명.............벙어리였을 텐데............ 게다가............ 겨우 두 해만에 이렇게 변해버리다니............... 감옥에 가둬둔 녀석은 역시........가짜였나...........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바로 목이 떨어질 판에 엄청난 실수를 저지를 뻔했어.........." 실소를 흘리며 섬뜩한 기운을 쏟아내던 녀석이 반항도 하지 못하고 떨어대기만 하는 몸을 간단히 내리누른 채 다리사이에 허벅지를 밀어 넣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올려보자 바로 고개를 숙여 작게 솟은 가슴 돌기를 덥썩 물어온다. "흐윽.............하.........지마..........." 단단한 이로 깨물어대는 느낌에 겨우 정신을 추스리고 미친 듯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 하자 허벅지로 민감한 곳을 압박하고 비벼댄다. 쾌감은커녕 소름끼치는 느낌에 정신 없이 사내의 머리를 밀어내며 발버둥을 쳐대자 다시 상체를 일으켜 커다란 손을 들어올리더니 사정없이 뺨을 갈기기 시작했다. 막아낼 틈도 없이 쏟아지는 폭력에 입술이 다 터져 나가고 하얗던 뺨이 온통 붉게 물들어 힘없이 축 늘어지자마자 겨우 걸치고만 있던 옷을 모조리 벗겨내고 하얀 나신 위에 자신의 몸을 겹쳐온다. "큭, 즐거운 유희는 느긋이 하려고 아껴두었는데..........일이 틀어져 버렸군....... 꽤나 맘에 들었었는데................ 황제가 길을 들인 새끼고양이였다니.............." 계속해서 피가 새어나오는 입술을 핥아대며 상처를 헤집어대는 바람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자 그대로 입술을 포개 혀를 감아온다. 끔찍한 혈향에 토기가 일어 사내의 밑에서 벗어나려 미친 듯 버둥대자 턱을 부서뜨릴 듯 강하게 움켜쥐고 굶주린 짐승처럼 연한 살점을 물고 빨아댄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을 만족할 만큼 유린하고 급하게 입고있던 화려한 옷을 모두 벗어 던지더니 바로 맨몸을 비벼온다. "흐윽.................아....................................아아아악!!!!!!!!!!!!!!" 민감한 피부에 닿아오는 사내의 감촉에 곧 죽을 것처럼 헐떡이며 경기를 일으키자 다시 강하게 뺨을 올려붙여 정신을 붙들어 놓고 잔인하게 귓가에 속삭여온다. "황제가.............널 찾더군......." "하악........................" 갑자기 들려온 말에 흐려진 의식을 겨우 부여잡고 눈물이 가득 고여있는 눈동자로 올려보자 하얗게 드러난 나신이 꽤나 만족스러운 듯 탐욕스레 쓸어대다 그대로 손을 미끄러뜨려 민감한 중심을 쥐어온다. "고양이를 찾느라 꽤나 초조했던지 어젯밤 열린 파티에서..........공식석상에서........귀족들에게 선전포고를 해왔다. 확실히...........미친 게 분명해............ 모두 몰살시켜 버린다 하더군. 갑자기 모습을 감추거나 의심 가는 가문부터 하나씩........." "아.......학....................." "그 자리에서 본보기로 2년 전 반역에 연루됐지만 증거가 없어 처형하지 못하고 지하감옥에 가두어 두었던 귀족 하나를 끌어내 참혹하게 죽여버렸다. 큭,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려 겁쟁이 귀족 녀석들이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발고하며 발버둥치는 게 꽤나 볼만했지.... 그 때문에 오늘부터 매일 황실 파티에 얼굴을 내보여야할 판이다. 그렇게 애타게 찾고있는 고양이가 이렇게 내 밑에서 더럽혀지고 있는 것을 안다면.........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얀 목덜미를 깨물어대며 발정 난 짐승처럼 단단하게 일어선 페니스를 엉덩이 사이에 밀어 넣은 채 부벼대던 녀석이 붉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 흥분한 듯 거친 숨을 내뱉으며 급하게 매끈한 허벅지를 쥐어 벌린다. 시야가 새카맣게 가려지고 짙은 혈향이 역겨울 만큼 머릿속을 휘저어댄다. 2년 전과 다를 바 없는 상황.......... 사내의 손에 쥐어진 페니스가 억지로 절정에 달해 조금씩 유색 액체가 새어나오기 시작하자 아플 만큼 빠르게 피스톤질을 해댄다. "하아.............아.....................흐윽..............." 멍하게 풀린 눈으로 힘겹게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가로젓자 참기 힘든 듯 바로 손을 뻗어 부드러운 엉덩이를 터트릴 듯 강하게 움켜쥐고 흥분할 대로 흥분해 한계까지 부풀어오른 페니스를 벌어진 굴곡에 그대로 밀어 넣는다. "하악.....................그.........만........................" 데일 만큼 뜨겁고 단단한 살점이 애널 위로 비벼지는 느낌에 사내를 거부하며 벗어나려 발버둥을 쳐대자 페니스를 감아쥐고 있던 손을 다시 움직여간다. "아................학................." "역시..........크리올라의 황제도 뮤즈니안의 황태자도 홀릴 만한 몸뚱이다. 킥, 그러고 보니 2년 전 슈안도...............널 손에 넣으려 안달했지. 결국 황제도 되지 못하고 목숨도 잃었지만........... 이 몸뚱이 위에서 죽었으니 한은 없는 건가..........큭큭.............." 죽고싶을 만큼 수치스런 기분에도 아플 만큼 부풀어 오른 페니스를 거친 손길로 빠르게 훑어 올릴 때마다 끔찍한 쾌감이 온 몸을 타고 오른다. 하얀 몸뚱이가 조그마한 쾌락에도 자극적인 움직임으로 사내를 유혹해대자 배신감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 뚫고 들어가기 불가능할 정도로 좁디좁은 입구를 귀두 끝으로 찔러대며 억지로 벌려오는 느낌에 순간................... 정신이 나간 듯 흐려졌던 까만 눈동자에서 분노와 살기가 들끓기 시작했다. '죽어...............버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겨우 뻗어 침대 맡에 놓여있던 테이블 위를 더듬어대다 손끝에 걸려오는 단단한 물체를 발정 난 짐승처럼 하체를 비벼대며 범해오려던 녀석의 머리에 강하게 내질러버렸다. 퍽----------!!! "헉................!!!!!"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짧게 신음을 흘리며 쓰러져오는 녀석을 거칠게 밀쳐내자 힘없이 침대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하아.............흑........................." 둥글게 몸을 말고 정신을 놓아버린 듯 헐떡이며 가쁘게 숨만 토해내다 참고 있던 눈물을 모두 쏟아내 버렸다. "흐윽............티폰..........." 이렇게나 보고싶은데................. 당장이라도 심장이 깨어져 죽어버릴 것만 같은데.......... 죽을 것처럼 아프게 불러봐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심장을 죄어오는 통증에 어느샌가 뺨을 다 적셔버린 물기를 거칠게 비벼 닦고 주체할 수 없이 떨려오는 몸을 겨우 추스르기 시작했다. 여기서 주저앉아 버리면 그렇게나 보고싶은 녀석마저.............볼 수 없게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 분명...........나보다 더 아파하고 있을 텐데............ 분노에 미쳐있을 텐데............. 안심시켜주지 않으면................ 달래주지 않으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얀 침대보를 끌어 대충 몸을 가리고 위태로울 만큼 비틀대며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침대 밑에 힘없이 쓰러져 있는 녀석은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미동도 없다. "개새끼!!!!!!!!!!!!!!!!!" 퍼억----------!!!! 벌거벗은 사내의 옆구리에 강하게 발길질을 날리곤 한참동안 분노로 거친 숨을 내쉬며 공포와 살기가 뒤섞인 눈으로 사내를 노려보다 바닥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던 녀석의 옷가지를 뒤져 열쇠를 찾아 문으로 향했다. 무자비한 폭력에 말을 듣지 않는 몸을 질질 끌어가며 겨우 육중한 문에 다다라 열쇠를 끼워 넣는 순간................. 쾅--------------!!!! "크윽.......!!!" 강하게 몸을 벽으로 밀어붙여 그대로 목을 비틀어버릴 듯 숨통을 조여온다. 커다랗게 뜬 까만 눈동자 속에 비치는 건 눈이 부실만큼 반짝이는 금발............... 상처하나 없이 깨끗했던 이마가 살짝 찢어져 붉은 피가 계속해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지독한 살기............... ...................죽이려는 거다. 피가 통하지 않아 빨갛다 못해 흑빛으로 변한 얼굴을 보며 잔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사내를 보곤 죽음의 공포에 거의 정신이나가 끔찍할 만큼 단단한 팔을 미친 듯 할퀴어대기 시작했다. 풀리기는커녕 점점 강해지기만 하는 아귀힘에 결국 미약한 저항조차 멈추고 시체처럼 늘어져 버리자 귓가에 비틀린 입술을 대고 조용히 속삭여온다. "아직이다................. 아직은 죽이지 않으마............ 2년 전...............나와 한 약속을 모두 지킬 때까지만.................. 그 후엔................." 갑자기 트이는 숨통에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고 죽을 것처럼 마른기침을 토해내다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하아...........크윽........................" 꿈속에서조차 공포가 되어버리는 사내의 낮은 신음과 질척한 소음에 정신 없이 몸을 떨어대며 경기를 일으키자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칼을 쓸어주고 식은땀이 맺힌 이마에 따뜻한 입술을 맞대온다. 꿈이 아닌 듯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오는 정사의 소음에 공포를 겨우 누르고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끔찍한 통증이 내달린다. "흐윽..............." 작게 신음을 흘리며 손끝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자 새끼를 보호하듯 따뜻한 품안에 단단히 가두어둔다. '티폰...........' 흐릿한 시야에 스치는 붉은 머리칼에 무방비하게 사내의 품안으로 파고들어 울컥 눈물을 쏟아내자 부드럽게 등을 쓸어 달래준다. 그런데.................. 여전히 귓가에 들려오는 신음소리와 괴로운 듯 헐떡이는 거친 호흡......... 분명................... 등뒤에서................. 사내의 품안에서 고개를 돌리려하자 바로 뒤통수를 당겨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보지마.............." 귓가에 스치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어올리자 시야에 들어오는 건..................... '시온............?!!!' 까만 눈동자를 크게 뜨고 올려보자 고개를 숙여 부드러운 입술로 뺨을 적신 물기를 훔쳐준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심장을 쥐어짜는 불안을 녹여줄 만큼 부드럽게 입술을 떨어뜨려 눈을 감기고 힘없이 늘어진 몸을 아플 만큼 강하게 끌어안는다. 잠시 후 절정에 짐승 같은 신음을 흘려대던 사내가 헐떡이는 숨을 내뱉으며 잠잠해지자 가늘게 몸을 떨어대며 단단한 품안으로 파고들어 숨을 죽였다. "큭, 가짜도 꽤나 쓸만하군.......... 바로 죽여버리려 했는데............ 아무래도.......고양이가 할퀸 상처를 되 갚아 줄 때까지.....보류해둬야겠지..........?" "네놈이...................감히.................. .................이 녀석한테 손을 대??!!!!!!!!!!!!"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시온의 섬뜩한 목소리에 흠칫 몸을 굳히자 작게 이를 갈며 분노를 누르더니 다시 조용히 말을 꺼낸다. "그냥 죽이지 않겠다. 폐하께서 네놈 시체라도 남기시면....................잘게 다져서 씹어버릴 테니............" "큭............황족께오서 고귀하신 입으로 그렇게 험한 말을 뱉으시다니................" "닥쳐!!!!! 죽여버리고 말 테다!!!! 이 더러운 자식!!!!!" "답답하셔도 조금만 참으시면 편히 해드리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그때까지만 폐하의 고양이를 맡겨둘 테니 쓸데없이 말썽을 피우지 않도록 돌봐주십시오. 꽤나 호기심이 많아 스스로 위험에 뛰어드는 일이 잦으니.................." '개자식..........................!!!!!' 분을 참지 못해 부들부들 떨어대는 시온의 품안에서 벗어나 조롱하듯 입꼬리를 비튼 채 감옥 저편에서 시선을 던져오는 녀석을 죽일 듯 노려보자 꽤나 유쾌한 듯 킥킥대며 뒤돌아 선다. "큭, 아직 팔팔하군............ 더 놀아주고 싶다만 오늘밤에도 폐하께서 여실 처형식에......아니, 파티에 참석해야 할 테니 좀 쉬어두는 게 좋겠지? 그래도............ 저녁 때 한번 더 들리마............" 쾅하고 닫혀버리는 철문을 한참동안 살기를 띈 채 노려보다 맞은편에 보이는 끔찍한 광경에 피가 베어 나올 만큼 강하게 주먹을 그러쥔 채 분노로 몸을 떨었다. 2년 전..................나와 같은 모습으로 잔인하게 유린당한 채 널부러져 있는 건............. "리오.................." 심하게 목이 졸려 성대가 상했는지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가자 뒤에서 시온이 강하게 끌어안아 온다. 모두 내 탓이다. 모든 일을 너무 안일하고 쉽게 생각했던 내 잘못.................. 저 녀석도 내 대신...................... "미안.........................." 단단한 쇠창살을 쥐고 죄책감에 아프게 속삭이자 그제까지 몸을 말고 뒤돌아 누워있던 녀석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온다. "멍청한 소리 좀 작작해..............잊은 모양인데.........이게 내 일이야.......... 빌어먹을.....!! 미친 자식..............!! 진작에 알아봤다니까!!!!!!!" 하얀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핏물을 대충 옷가지로 닦아내며 욕설을 내뱉던 녀석이 다시 내게 시선을 맞춰온다. "이번 걸로 황성에서 진 빚은 갚았으니까.................그 입으로 지껄여댄 말이나 지켜!!! 젠장, 이런 곳에서 미친놈한테 죽고 싶은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으니까!!" 과거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소중한 걸 또다시 잃고싶진 않다. 이렇게 보호받기만 한 채 내 손으로 지키지 못하면............ "알았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밤하늘처럼 새카맣기만 했던 눈동자에 순간 섬뜩한 빛이 스쳐간다. ***룬.....급히 만들어 약효는 보장못한다더니 기어이 일이 터졌습니다. 하류......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다음 편은 일요일에............. 감상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 Rubera(루베라) #167 "더러운 새끼......내 손으로 죽여버릴 테다..........!!!" 낮지만 격한 음성에 흠칫 몸을 굳히고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올리자 분노로 짙어진 가넷빛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새벽부터 정신나간 녀석에게 시달린 탓에 온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피곤을 참지 못하고 부드럽게 쓸어주는 손길에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것............ 열이 오르는 지 바짝 말라 갈라진 입술을 비집고 더운 숨이 새어나간다. 어쩐지 서늘한 느낌에 힘없이 시선을 내려보자 여기저기 파랗고 붉은 멍이 들어버린 하얀 나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무..............무슨 짓이야?!!!!!!!!" 바르작대며 날카롭게 소릴 지르자 아슬하게 하체에 걸려있던 붉은 망토로 몸을 감싸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놔!!!!!!!!!!!!" 목덜미에 닿아오는 숨결에 바들바들 떨어가며 몸부림을 쳐대자 아플 만큼 강하게 끌어안는다. "이제 괜찮아.....................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할 테니까............." "흐윽................아아아아악!!!! 만지지마!!!!!!!!!!" "제발..........." 미친 듯 발작을 해대며 발버둥을 치자 괴로운 듯 작게 속삭이며 뺨을 부벼온다. "울지마.............." 눈앞에 하늘거리는 붉은 머리칼에 순간 발광을 멈추고 숨을 죽이자 따뜻한 손으로 물기를 훔쳐주고 그대로 입술을 포개온다. "으응................" 따끔거리는 입술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신음을 흘리자 부드러운 혀로 상처를 핥아대며 짧은 키스를 멈추지 않는다. 안타까운 듯 떨어졌다 붙기를 반복하는 녀석의 입술을 피해 힘없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바르작대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늘어진 몸을 품안에 꼬옥 끌어안는다. "흥.........한심하군. 그렇게 갖고 싶으면 안으면 되는 거 아냐? 어차피 지금 그 녀석.........제정신도 아닌 거 같은데...... 뭐..............나중에 여기서 살아 나간다면 그 정신나간 황제의 손에 죽기야 하겠지만......... 아니.........마지막 남은 혈육이니 운이 좋으면 살수도 있는 거잖아?" "웃기지마.........무례한 자식!!!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대는 거냐.............." "큭,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미천한 소인의 머리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니............ 황제폐하의 루베라를 품고싶은 게 아니셨습니까?" 비아냥대는 목소리에 작게 이를 갈던 녀석이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 "닥쳐!!!! 이 녀석은.............노예가 아니다!! 게다가 단순히 품었다해서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면............. ...............울며 거부해도 몇 번이라도..........." "마음을..................얻어?" "사랑하니까...............뺏을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멍청하게 멈출 수 없으니까.........." "사랑? 큭..........스턴이란 놈처럼 추악한 본능과 육욕을 착각한 것뿐이겠지. 그딴 게...................진짜......................있을 리 없잖아............" "있어......................." 조심스레 뺨을 쓸어오는 느낌에 까만 눈동자를 드러내자 부드럽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깼어?" '누구..........?' 잠시 멍한 눈으로 사내를 바라보다 붉은 머리칼과 부드러운 눈빛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어린아이처럼 사내의 목에 팔을 감아 따뜻한 품안으로 파고들자 놀란 듯 내려본다. 온통 헝클어져버린 머리가 끔찍할 만큼 지끈거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붉은 빛이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따뜻할 뿐이다. 붉은 사내가 어쩐지 어색하게 허리에 팔을 감아 꼬옥 끌어안자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단단한 목덜미에 뺨을 부볐다. "아파................" "아...........미안.............." 작은 투정에 흠칫 놀라 팔에서 힘을 풀더니 갑자기 복잡한 표정으로 불안한 듯 조용히 속삭여온다. "너 설마 그 놈한테............무슨 짓 당한 거...............아니지?" "응?"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붉은 눈동자가 괴로움에 살짝 흔들린다. 계속되는 침묵에 맘에 드는 붉은 머리칼을 지분대며 눈을 감는 순간, 따뜻한 손이 조심스레 엉덩이로 미끄러져 내려와 부드러운 굴곡 사이로 파고든다. 가늘고 단단한 것이 뭔가 확인이라도 하듯 애널 위를 더듬어대는 느낌에 반짝 눈을 뜨자 머리카락만큼이나 붉게 물든 사내의 뺨이 시야에 들어온다. "목소리............." "으..........응?" 화들짝 놀라 손을 떼더니 이상할 만큼 눈에 띄게 안심한 표정으로 다시 내려본다. "..........이상해............" "아................!!" 그제야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린 녀석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붉은 망토를 살짝 걷어내자 하얀 목이 무자비하게 졸려 퍼렇다못해 시커멓게 멍이 들어있다. "빌어먹을.........!!!!" 험악하게 욕설을 내뱉는 사내의 품안에서 바르작대며 몸을 일으키려하자 손으로 가만히 내리누른다. "좀 더 자...........응? 아직도 아프잖아.......젠장!! 열도 있고............" 어질어질한 머리에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사내의 품안에 안겨 눈을 감자 잠이 들 때쯤 부드러운 키스가 계속해서 입술 위로 떨어져 내린다. . . . "흑................" 작게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움켜쥔 채 눈을 뜨자 붉은 눈동자로 걱정스러운 듯 내려보며 연신 땀에 젖은 까만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린다. "시......온............?" "너.............. ...............정신이 든 거야?" "응?" "아니, 다행......이야................." 어쩐지 실망을 감추지 않고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말을 뱉는다. "얼마나............지난 거야?" 주위를 둘러봐도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감옥 안에선 밤인지 낮인지조차 구분해 낼 수가 없다. "한참 됐어......." "그 자식은? 아직 안 왔지?" "그 새낀 또 왜?!!!!!" 버럭 소릴 질러대는 녀석의 품안에서 겨우 몸을 일으키자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시야가 핑 돈다. "하아.......젠장............여기서 나갈 거야...............오늘!!!!" "뭐?!!! 무슨..........?!!" 티폰이 아무 단서도 없이 자력으로 이곳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쪽에서 탈출할 가능성도 거의 제로............. 주위를 둘러보니 지난 번 살펴본 것과 다를 바 없이 작은 규모의 감옥엔 출구가 둘.......... 하나는 스턴놈의 침실과 연결된 비밀통로........... 다른 하난 육중한 철문으로 막혀 어디로 이어지는 지도 알 수 없는 지하통로........... 게다가 이곳은 미르헨 본가도 아닌..................남의 이목을 피해 숨겨놓은 저택............ '뭔가 방법이......................' 철컥.......... 순간 갑자기 육중한 철문이 열리자 놀란 듯 굳은 눈으로 날 바라보는 시온에게서 고개를 돌려 감옥 안으로 들어서는 아름다운 여자에게 시선을 박았다. '미르니안.................' 뜻밖의 손님............. 어쩌면..........일이 더 쉽게 풀릴 수도............. 평소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옷을 입은 소녀가 음침한 감옥 안을 기분 나쁜 듯 둘러보다 내게 시선을 딱 멈추고 놀란 듯 밤색 눈동자를 크게 드러낸다. "어.......어떻게.....?!!! 분명 흰빛이었는데.................그럴 리가!!!!!! 너 같은 창부가.........폐하의 루베라였을 리가 없어!!!!!!" 절망적인 목소리로 앙칼지게 소릴 지르더니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노려본다. "창부?!!! 무슨 무엄한 소릴 지껄여대는 거냐......현 황제폐하의 하나뿐인 루베라다!! 너 따위가 감히.........반역자주제에........." 시온의 말에 주먹을 꼬옥 쥔 채 분노로 몸을 떨던 여자가 섬뜩하게 붉은 입술을 말아 올리고 광기를 쏟아낸다. "네 탓이야.................. 네놈 때문에 내가 두 번이나 수치를 당했다. 식도 올리지 않고 창녀처럼 황제에게 몸을 던졌는데............뒤도 돌아보지 않고 날.........날 버렸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황비의 자리엔 앉을 수 없을 터........... 황제가............티폰이 내게 약속을 했다. 내가 있는 한 황비도 후궁도 들이지 않겠다고............. 천천히 미르니안에게 다가가 피할 겨를도 없이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멱살을 움켜쥐고 얼굴을 들이밀자 크게 드러난 밤색 눈동자가 살짝 떨려온다. "넌.............황비가 되지 못해........." "뭐?!!!" "티폰이..........황제가 사랑하는 건 나야........." 잔인하게 말을 뱉어내자 붉디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거칠게 멱살을 움켜쥔 손을 쳐내고 뒤로 성큼 물러선다. "닥쳐!!! 출신도 모를 미천한 놈이 어리석기 짝이 없군........사랑? 하, 그딴 걸 정말 믿고있는 건 아니겠지? 황제의 침소를 차지하고 있다고 잘난 척 떠들어대는 것도 지금 뿐이야. 헛된 기대를 품어봤자 같은 사내의 몸뚱이 따위........곧 질려버리고 말 거다. 손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았던 물건에 변덕스런 집착을 보이시는 것 뿐이야. 그걸 깨닫게 되는 날이........널 버리는 날이 될 거다. 얼음처럼 차가운 분이시니............황성 밖으로 내치시겠지. 운이 좋으면 뮤즈니안의 황태자나 시온님에게 물건처럼 하사를 할 지도 모르고......."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말에 상처를 입고 고개를 떨구어버렸다. 항상 생각하며 불안에 떨었던 일......... 만약.............. 진짜로 그런 날이 온다면............ 엉망으로 망가져 심장이 멈추고 숨이 끊어질 게............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내꺼야............." 그래............... 지금은 내 거다. 나만 바라보고.................. 내게만..................... ...................사랑한다고 속삭여준다.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으니.................. 상처 따위 입히려 해도............. "소용없어............" 다시 고개를 들어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바라보자 혼란스런 듯 노려보며 날카롭게 소릴 지른다. "난...........난 황비가 될 거다!!!! 어머니처럼 비참하게 살다 죽을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어!!!!! 어디서 굴러온 지도 모를 네놈에게 내 자리를 빼앗길 것 같아?!!!!!" 잔뜩 가라앉은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황비가 돼도.................죽을 거야" "무..........무슨 소릴 지껄이는................" "스턴이 그러더군............" "그........그럴 리가................" "2년 전 슈안이 죽은 것도 그 녀석이 모두 꾸민 짓이야........" "거짓말!!!!!!! 그런 거짓말에 속아넘어갈 것 같아?!!!!!!!!" "모두 죽일 셈이다. 그러니.........모두 잃기 전에............다 포기해.........." "웃기지마!!!!!" 뒷걸음질치며 미친 듯 고개를 휘젓는 여자가 오히려 가련해 보여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결국은..................이용만 당하다 죽을 뿐이다. "절대로 빼앗기지 않아!!!!! 이번에야말로........오늘밤...........무슨 짓을 해서라도......." 쾅------------!!! 또다시 무거운 철문이 요란한 소릴 내며 열리더니 황실 파티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예복을 차려입은 사내가 성큼 들어선다. '스턴...............' "예까지 확인까지 하러 온 건가?" 무심한 눈으로 미르니안에게 시선을 던지더니 아름다운 차림새에 만족한 듯 다시 부드럽게 말을 꺼낸다. "큭, 어차피...........황제는 자신의 루베라를 찾지 못할 테니 넌 황비 될 준비나 하거라.......... 이번 일이 가라앉으면 멍청한 귀족 녀석들도 황제의 절대권력을 분산시키려 황비를 들이라 성화를 부리겠지........ 그때까지 황제의 눈 밖에만 나지 않으면 된다. 간단한 일이지.........." "비..........비켜..........!!!" 부드러운 손길로 밤색 머리칼을 어루만지자 흠칫 몸을 굳히던 여자가 거칠게 녀석의 손을 쳐내고 감옥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큭, 비열한 자식.................." 꽤나 바쁜 듯 그대로 뒤돌아나가려는 녀석에게 비웃듯 말을 던지자 천천히 뒤돌아 금갈빛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다시 기운을 차렸나보군............" "더러운 새끼............." "닥쳐라..............!!" "너 따위가 교활한 머릴 굴려봤자 황제는 될 수 없어............. 티폰이..............네깟 놈한테 호락호락 당할 거 같아?!!!!!" 단단한 창살을 부여잡고 살기 짙은 눈으로 폭언을 쏟아내자 순식간에 녀석의 눈빛이 싸늘히 식어간다. "역시.............황제가 버릇을 잘못 들였군............" 섬뜩한 미소를 입에 걸고 물러날 틈도 없이 철창 사이로 손을 뻗어 까만 머리칼을 감아쥐더니 입술이 맞닿을 만큼 가까이 얼굴을 들이민다. "2년 전보다.................탐이나.............." "개자식............" 작게 이를 갈며 살기 띈 눈동자로 노려보자 넋이 나간 듯 까만 눈을 바라보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온다. 섬뜩한 눈빛과는 다른 부드러운 감촉에 피하지 않고 입술을 벌려주자 기다린 듯 뜨거운 혀가 입안으로 파고든다. 이 자식과 키스를 하면서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는.......... 티폰의 키스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뛰어대는 심장박동도........... 유이의 키스처럼 마음을 내주고픈 안타까움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 심지어는 시온이나 케레스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키스도, 시니안처럼 미워할 수 없어 미소가 비집고 새어나올 만한 키스도 아니다. 느껴지는 건 무의식 속에 꼭꼭 숨겨놓은 과거의 공포와 소름끼치는 살의....... 입안을 멋대로 유린해대는 녀석의 혀를 거부하듯 살짝 깨물어대자 더욱 흥분해 질척한 소음을 내며 모양 좋은 입술을 거칠게 빨아들인다. "하...........류................." 갑작스런 상황에 놀란 듯 굳어있던 시온이 겨우 입을 여는 순간 녀석의 입술이 거칠게 떨어져 나가더니 바로 왼쪽 손목을 강하게 거머쥔다. "큭, 재미있는 손재주를 가지고 있군............" "흑.........." "말썽쟁이 고양이가 다시 손을 쓸 줄 알았지..........." "크윽!!!!!!!!!!!!" 강한 힘에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통증이 밀려와 작게 신음을 흘리며 손을 펴자 쥐고있던 열쇠가 바닥 위로 떨어져 내린다. "두 번이나 당할 만큼 어리석진 않다............" "헉..................." "무슨 짓이냐!!!!!!!!!!!!!!!" 순간 목에 뭔가 깊숙이 찔러 넣는 느낌에 놀라 작게 신음을 흘리자 시온이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달려들어 스턴이 쥐고 있던 손목을 빼내 힘없이 늘어지는 몸을 품안에 가둔다. "루펜타는............루베라를 느낀다더군...........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큭, 귀여운 누이동생이 벌이는 일을 약간은 도울 수 있을 테니............." "도대체 무슨 짓을.................!!!!" 분노를 터뜨리는 시온의 품안에서 바들바들 떨려오는 손을 들어올려 목을 더듬자 만지기만 해도 쉽게 휘어질 만큼 가는 바늘이 깊이 박혀있다. "직접 혈액을 타고 몸으로 퍼져나가니 효과도 알약보다 월등해 시간 내로 손을 쓰지 않으면.........죽게 될 겁니다. 그건 저도 바라는 일이 아니니 시온님이 알아서 손을 써주실 걸로 믿고, 저는 이만............" "스턴!!!!!!!!!!!!!!!!!!!" 바로 뒤돌아 감옥을 나가버리는 녀석을 미친 듯 불러대던 시온이 옷깃을 붙들어오는 손길에 급히 시선을 돌려온다. "하아...........됐어..............손을 써뒀으니까...........금방 나갈 수 있어.............걱정 마.........." "무슨 소리야?!!! 아픈 덴?!!! 아픈 덴 없는 거야?!!!!" "흐윽...............하지마.............." 이리저리 몸을 더듬어 오는 손길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흠칫 몸을 굳히자 녀석이 눈을 크게 뜨고 내려본다. "서...............설마................" "나쁜 자식!!!! 늙은 귀족놈들이 어린 노예들과 즐길 때 쓰는 약이야!!" "뭐?!!!!!!!!" 리오의 말에 경악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괜찮으니까...........하아..........떨어져................" 목에 박힌 가는 침을 뽑아내고 거의 기다시피 감옥 구석으로 물러나 몸을 말은 채 눈을 감아버리자 손을 뻗어오던 녀석이 흠칫 놀라 반대편으로 물러난다. . . . "멍청한 자식!!!!!!!!!!!!"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흐려진 시선을 돌리자 왠지 화가 난 듯 무서운 얼굴로 소리쳐 온다. "참으면 죽어!! 벌써 한 시간이나...........더 이상 못 버틸 거야!! 약기운이 너무 지독해서 늙은이한테 당하는 도중에 심장이 멈춰 죽는 녀석도 봤다구!!!!" 몸을 온통 태워버릴 듯한 열기에 뇌까지 녹아 내리는지 생각조차 이어나갈 수가 없다. "흐윽...............하아.................오지......마!!!!" 막을 틈도 없이 멋대로 새어나가는 신음에 놀란 듯 굳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시온을 보곤 작게 소리치자 괴로운 듯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린다. 큰일이다. 손을 써두긴 했지만........티폰이 눈치채지 못했다면............ "하악.............." 손도 대지 않은 페니스가 멋대로 반응을 해대자 정신이 나가버릴 듯한 통증과 쾌감이 온몸을 들쑤셔댄다. 밖으로 터져 나가지 못하는 열기에 미쳐 버릴 것만 같아 고개를 가로 저으며 몸부림을 쳐대자 날카로운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그딴 사랑 때문에............저렇게 그냥 죽일 셈이야?!!!!!" "빌어먹을.............!!!!" "난 상관없는 일이지만 더 참으면 저 녀석............손도 쓰지 못하고 죽어.........!!" 잠시 잠깐의 소음이 사라지자 누군가 다가와 몸을 싸고있던 망토를 확 걷어낸다. "하..............윽.................아..........................하지......마................." 부드러운 손길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품안으로 끌어당기자 맨몸에 스치는 옷깃의 감촉에도 정신이 나가버릴 만큼 강한 쾌감이 구석구석 퍼져나간다. 본능적으로 거부의 말을 내뱉으며 도리질을 치자 붉게 열꽃이 핀 몸을 쓸어가던 손을 흠칫 멈추더니 다시 얌전히 망토 위에 뉘여 준다. "미안............" "으응................." 몸을 눌러오는 익숙지 않은 체중에 헐떡이며 신음을 흘리자 바로 입술을 덮어온다. 녹여버릴 듯 부드러운 입맞춤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간다. 흐려진 시야에 파고드는 붉은 머리칼에 간단히 입술을 벌려주고 입안을 쓸어대는 혀를 당겨 살짝 빨아주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바로 손을 뻗어 매끈한 몸을 더듬어온다. 귀한 예술품이라도 만지듯 지나칠 만큼 부드러운 손길이 성감대를 쓸어댈 때마다 움찔대며 자극적인 신음을 쏟아내자 사내의 거친 호흡이 귓가에 울려온다. "하아.........빨리.................." 목덜미에 입술을 비벼대는 사내의 붉은 머리칼을 움켜쥐고 재촉하듯 투정을 부리며 스스로 다리를 벌리자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미끄러뜨리며 조용히 속삭여온다. "이렇게 차지해 버리면............형님에게도 유이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아질 텐데............." "흐윽........................." 귓가에 불어넣는 뜨거운 숨결에도 민감한 몸이 미친 듯 반응해댄다. 귓불을 물고 잘근잘근 깨물어대는 느낌에 참지 못하고 허리를 활처럼 휘자 바로 뜨거운 손을 허리 아래로 미끄러뜨려 부드러운 엉덩이를 살짝 쥐어온다. 꼬리뼈를 엄지손가락으로 눌러대며 연한 살점을 애무해 가는 손길에 사내의 목에 팔을 두르고 습관처럼 목덜미에 뺨을 부비자 조심스레 손을 뻗어 민감한 중심을 손으로 감아온다. "하악............" 손에 쥐어진 것만으로도 작살 맞은 물고기 마냥 바들바들 떨어대며 욕정을 내보내자마자 다시 아프도록 부풀어오른다. "아..........흐윽............안아 줘................티폰............." 힘에 겨운 듯 작게 속삭이며 열에 달뜬 몸을 사내에게 비벼대자 흠칫 몸을 굳히더니 목덜미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흔들리는 시선을 내게 맞춰온다. 투명한 가넷빛 눈동자............. 순간................ 본능을 자극하는 위화감........... 분명 그렇게나 좋아하던 붉은 머리칼에 붉은 눈동자가 맞는데.......... 내가 사랑하는 녀석이 분명............... ".............??!!!!!!!!!!!!!"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겨우 들어올려 하얀 얼굴을 조심스레 쓸어보고 붉은 머리칼을 감아쥐자 핏물이 떨어질 만큼 붉디붉은 머리칼이...................아니다..................?!! 약간 색이 옅은 머리칼과 정욕으로 짙어진 붉은 눈동자를 정신 없이 바라만 보자 가만히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온다. '아니.........야...................' "흐읍......................" 까만 눈을 크게 뜨고 미친 듯 고개를 휘저어 사내의 입술을 떼어내자마자 날카롭게 소릴 질러댔다. "흐윽...............비켜!!!!!!!! 손대지마!!!!!!!!!!! 아............흑.............아아아아악!!!!!!!!!!!!!!!" 발작을 해대며 몸부림을 치자 놀라 몸을 일으켜오는 녀석의 밑에서 겨우 빠져나와 바닥에 깔려있던 망토로 몸을 가리고 구석으로 달아나 버렸다. "하..........류............." "가까이 오지마!!!!!!!!!! 오지마!!!!!!!!!!!!" 상처 입은 짐승처럼 구석에 몸을 말고 정신 없이 떨어대며 미친 듯 소릴 질러대자 움직임을 멈추고 초조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차가운 돌 벽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흠칫흠칫 떨려온다. 몸 속에 있는 피가 모두 역류해 터져 버릴 것만 같다. 미쳐버린 몸뚱이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초조한 눈으로 날 바라보는 사내가 누군지........... 내가 왜 여기 있는 건지............. 여기가 어딘지............. 도대체 누굴..............기다리고 있는 건지.............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에도 온몸을 휘저어대는 열기와 끝을 향해 멈출 만큼 정신 없이 뛰어대는 심장소리에 거의.......... ..............미쳐가고 있었다. ***다음은 티폰편.......과연 하류가 뭘 했을 지.........그럼 다음 주에....... Rubera(루베라) #168 -티폰- ***화이트데이 보너스.........라고 하기엔 좀.....어쨌든 한편 더 올립니다. 당분간은 아마 계속 티폰 시점일 듯.......... "폐..............폐하!!!!!!" 아직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새벽녘.......... 황제의 침소에서 갑자기 일기 시작한 소란에 공포에 질린 시종들이 바닥에 머릴 박은 채 부들부들 떨어대고 있었다. 이미 주위는 태풍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것처럼 아수라장................ 발광을 멈추고 갑자기 잠잠해진 황제와 숨이 막힐 만큼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에 침소 안에 있던 시종들과 병사들은 감히 머리를 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몸을 떨고만 있었다. "폐하......." 황성 전체가 벌벌 떨어댈 만큼 섬뜩한 황제의 분노에 급히 침소 안으로 들어선 시니안마저 시야에 들어오는 광경에 놀란 듯 말을 잊은 채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전쟁 중에도..............이렇게 미쳐있던 황제는 본 적이 없다. 성한 물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침소 안은 그야말로 참상............ 침소 안에 가득 날아다니는 부드러운 새의 깃털에 미간을 찌푸린 채 황제가 앉아있는 침대로 시선을 돌리자 검으로 난도질을 한 것인지 커다란 베개와 매트가 터져 하얀 깃털이 꾸역꾸역 새어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역겨울 만큼 지독한 혈향................ 시선을 내려보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닥 위에 깔린 하얀 융단을 붉게 물들이며 이미 형체조차 남지 않은 살점과 핏덩어리가 흩뿌려진 채 갈기갈기 찢어진 천 조각만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시체가 황성의 시종이었음을 알려준다. "폐하............" 불러도 반응이 없다. 섬뜩할 만큼 짙은 선홍색 눈동자가 광기에 흐려져 초점조차 맞질 않는다. 핏물을 잔뜩 뒤집어쓴 황제의 모습은 익숙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무방비 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묘하게 시선을 잡아끌어 한참을 선 채로 굳어있다 바로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입을 열었다. "궁의를 불러라........." "예.........!!" 명에 따라 바닥에 엎드려 떨고만 있던 시종장이 나이도 잊은 채 서둘러 비틀대며 뛰어나가자 남아있던 시종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끔찍한 시신을 침실 밖으로 옮기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바로 시녀들이 피로 목욕을 한 듯한 황제의 몸을 조심스레 닦아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힌 후 조용히 물러나자 잠시 후 거대한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남빛사내가 급하게 침소 안으로 들어선다. . . . 뭔가 허전한 느낌에 습관처럼 침대 위를 더듬어봐도 원하는 걸 찾을 수 없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겨우 눈꺼풀을 들어올리자 날이 저물기 시작하는 지 붉은 빛이 거대한 창을 통해 침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폐하.........."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은회색 눈동자를 한 사내가 걱정스런 낯빛으로 내려보고 있다. '도대체 무슨.............' 몸을 일으켜 어쩐지 휑한 침소를 둘러보다 눈을 뜨자마자 숨가쁘게 뛰어대는 심장에 급하게 침대 위를 살펴보자 당연히 품안에 있어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스치는 생각에 섬뜩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순간 육중한 문이 열리고 눈에 익은 잿빛 일색의 사내가 침소 안에 들어와 깊이 고개를 숙여온다. "어제 파티가 끝난 이후 폐하의 명에 따라 미르헨가의 가솔들을 미행했지만......수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어젯밤 바로 미르헨가로 돌아가 오늘 황실 파티에 참석할 때까지..............미르헨가를 나선 자는 아무도............" "몸시종을 불러라............" 피가 베어 나올 정도로 주먹을 틀어쥔 채 살기를 뿜어대다 섬뜩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얼마 지나지 않아 푸른색 옷을 정갈하게 갖춰 입은 시녀들이 침소 안으로 들어서 익숙하게 자신들의 일을 시작한다. "폐하, 루베라께 무슨................." 목석 같던 사내가 드물게 감정을 내비치며 잿빛 눈동자로 불안한 시선을 보내온다. 분명........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제멋대로 떨려오는 손을 노려보며 불길한 기운을 떨쳐내려 애를 써도 새벽부터 미쳐버릴 만큼 괴롭혀대던 불쾌감과 불안을 몰아낼 수가 없다. 이유 없이 뛰어대는 심장과 지나칠 만큼 날카로워진 신경에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고 눈이 부실만큼 붉고 화려한 옷으로 단단한 몸을 가리고 값비싼 보석으로 마무리를 짓던 시종들을 물린 채 초조한 낯빛으로 시니안에게 말을 던졌다. "오늘 파티에 불참한 가문은..............?" "바르한가와 아이시드가가 아직......................." "정시까지 도착하지 않으면............저택을 샅샅이 수색한 후 몰살시켜 버려..........." "..............예.........." 내 자신만큼이나 불안을 감추지 못하던 케레스가 별 수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나자 천천히 침소 밖으로 나서 귀족들이 모여있을 중앙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새하얀 대리석이 깔린 황성 중앙 계단을 통해 중앙홀로 내려서자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싸늘하게 얼어붙어 간다. 공포에 몸을 떨어대며 깊숙이 고개를 숙인 귀족들을 지나 평소와 다름없이 화려한 옥좌에 몸을 기대자 뒤따르던 시니안이 조용히 곁을 지켜 선다. '버러지 같은 것들...........' 작은 광장만큼이나 규모가 큰 중앙홀을 가득 메우고 있는 귀족들에게 입술을 비틀어 올리며 조소를 보내다 피처럼 붉은 액체가 가득 채워진 투명한 크리스털 잔을 집어 올려 입술을 축이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무겁게 침묵에 잠겨있던 공간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조심스레 다가서는 발걸음 소리에 시선을 돌려보니 꽤나 눈에 익은 사내가 평소와 다름없이 가장먼저 눈앞까지 다가와 깊숙이 고개를 숙여온다. "폐하, 몸은 어떠하신 지................." '몸..............?' 새벽의 일로 황성 안에 황제의 광증이 다시 도졌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걸 까마득히 모르고 붉은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지독히도 건조한 표정으로 내려보자 당황한 듯 다시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려는 듯 몸을 일으켜 세운다.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황제 폐하............" "미르헨가의 후계자는...............?" 뜻밖의 물음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보다 섬뜩하게 들이박히는 붉은 눈동자에 그제야 자신의 무례를 깨닫곤 급하게 머리를 숙인 채 입을 열어온다. "미르니안과..........누이동생과 함께........." 미르헨가를 더 중히 여겨 항상 곁에 두었던 선대 황제완 달리 현 황제는 전쟁을 일으키자마자 크리올라에서 유일하게 미르헨가와 견줄 수 있을 만큼의 명문가였던 카이도가에게 손을 뻗었다. 현 황제가 등극한 이후 수많은 귀족가가 황제의 눈에 들기 위해 눈물나는 노력을 했지만 기가 막히게도 황제가 선택한 건 카이도가를 제외하면 그렇다할 주목조차 받지 못했던 이름 모를 가문들 뿐............ 처음엔 그 기준조차 알 수 없었던 황제의 안목에 거세게 반발했던 명문가의 귀족들조차 거의 2년 만에 대륙 전체를 삼켜버린 대규모 전장에서 파죽지세로 승리만을 이끌었던 황제의 측근들에게 조용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 미르헨가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유능한 인재로 소문이 나있음에도 어쩐 일인지 황제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이 바로 스턴 미르헨......... 매번 황비 후보로 거론되었던 미르니안 미르헨보다도 주목받지 못했던 것이 미르헨가의 후계자였다. 그런데 지금..........황제가 무슨 이유에선지 스턴에게 관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스턴이라 했던가..............." "예, 폐하............." 갑작스런 물음에 상념에서 벗어난 로키안이 굳은 표정을 감추며 급히 답을 하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훑어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소문엔..........머리가 비상한 사내라 하더군........" "과찬일 뿐입니다" "그건...................큭............!!" 갑자기 심장이 죄어대며 울렁거리는 느낌에 잔을 쥔 손아귀에 힘을 주자 투명한 잔이 그대로 바스라지며 붉은 액체를 쏟아낸다. "폐하!!!!!!!" 역시...........뭔가가 이상하다. 알 수 없는 열기에 거칠게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휘젓다 여전히 불안한 듯 시선을 보내오는 로키안에게 힘겹게 말을 던졌다. "직접 확인해 보겠다. 내게 보내............" "................예....................." 의도를 알아채고 숨을 들이키던 사내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 물러나자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년의 사내를 노려보다 그대로 몸을 일으켜 손을 적신 붉은 액체와 유리조각을 털어 내곤 아무 말도 없이 굳은 표정으로 로키안을 주시하고있던 시니안에게 조용히 말을 던졌다. "감시해라............지금부터 내가 허락할 때까지 중앙홀에서 아무도 내보내지마" "예............" 자꾸만 몸을 타고 오르는 열기에 불쾌감을 참지 못하고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시니안을 뒤로한 채 어둠에 잠긴 발코니로 발걸음을 옮기자 누군가 뒤에서 조용히 따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발코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끈적하게 들러붙는 열기를 몰아내는 사이................ 거대한 유리문이 소리 없이 닫히더니 가벼운 발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뒤돌아서는 순간................ 허리에 감겨오는 하얗고 가는 팔에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보자 예상과는 달리 스턴이란 사내가 아닌 낯이 익은 소녀....... 풍성한 밤빛 머리칼에 유색으로 빛이 나는 하얀 피부가 눈이 부실만큼 아름답다.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달콤한 향에 평소완 달리 쉽사리 밀어내지도 못하고 몸을 굳히자 부드러운 몸을 바짝 밀착시켜온다. 명백한 유혹의 몸짓............ "하아............." 제멋대로 거칠어지기 시작하는 호흡을 추스릴 틈도 없이 물컹한 가슴이 단단한 복부에 부벼지자 억눌린 신음이 꼬옥 다물려있던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온다. "폐하........" 가슴이 깊게 파인 붉은 옷을 차려입고 천박하다싶을 만큼 몸을 부딪쳐오던 여자가 작게 속삭이며 하얀 팔을 뻗어 뱀처럼 목을 휘감은 채 그대로 붉은 입술을 포개온다. 아찔한 느낌에 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이 무너져 내리려는 순간..................... "헉...................폐........폐하...............!!" 가늘고 하얀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비틀어버릴 듯 힘을 가하자 새파랗게 질려 곧 죽을 것처럼 바들바들 떨어대기 시작한다. "죽여버리겠다............" "흐윽.................왜............" "감히 내 것에....................." "우욱..............컥.........................." 광기를 감추지 못하고 섬뜩한 눈으로 살기를 쏟아내자마자 미친 듯 버둥거리며 헛된 몸부림을 쳐대다 갑자기 시뻘건 핏덩어리를 울컥 쏟아낸다. 헐떡이며 늘어져버리는 여자를 싸늘한 눈빛으로 노려보다 겨우 이성을 부여잡고 힘을 늦추자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어대기 시작한다. "내 루베라를.........하류를...................어떻게 한 거냐............" 분노를 억누르지 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자 공포에 질린 눈으로 올려본다. "무.........무슨 말씀..........아악.................!!!!!!!!!!" 바로 의장용 단검을 뽑아 하얀 손등에 그대로 박아 넣자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쳐댄다. "말해............" "흐으....................아아아아아아악!!!!!!!!!!!" 자제심을 잃고 짐승 같은 포악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날이 서지 않은 칼날로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손을 꿰뚫고 비틀어대자 경련을 일으키며 미친 듯 질러대던 비명소리가 천천히 잦아든다. 정신을 잃으려는 순간............... 사정없이 뺨을 올려붙이고 여자의 화려한 붉은 드레스를 장식하고 있던 수많은 보석 중,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루비 하나를 뽑아들었다. "내가......................내 아이에게 예물로 준 것이다" "그................그럴 리가.................흐윽...............!!" 자신의 옷에 박혀있다 황제의 손에 들어간 핏방울 같이 붉은 루비조각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다 갑자기 손을 꿰뚫고 나간 단검을 뽑아내 뭉툭한 검 끝을 뽀얀 가슴위로 살짝 쑤셔 넣자 지독한 통증에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눈물을 쏟아낸다. "입을 열지 않으면.......이대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 보여주지. 큭, 아니.........그럼 쉽게 죽을 테니...........온 몸에 대못을 박아 광장에 매달아버릴까...........?" "하아.............제발...............흑................" "내 루베라를.............어디에 감췄지.............?" "스...........스턴이................흐윽..............미르헨가 지하통로로 이어진 숨겨진 별장에...............아악!!!!!!!!!!" 그대로 여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리고 뒤돌아 서자마자 중앙홀과 발코니를 차단하고 있던 거대한 유리문이 열리고 작은 소란에 놀란 듯 시니안이 급히 발코니 밖으로 발을 내딛는다. "폐하..................이게 도대체...............!!" 피투성이가 된 채 실신해버린 여자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신음처럼 말을 내뱉다 지독할 만큼 섬뜩한 살기를 겨우 누르고 있는 붉은 황제의 모습에 입을 다물어 버린다. "로키안과 스턴 미르헨을 잡아들여라. 미르헨가로 간다" "설마................미르헨가가......................" "모두 미르헨가로 끌고 와............. 거짓을 고했다면 그만큼..............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닥에 널부러진 여자를 바라보는 시니안을 뒤로한 채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바로 뒤를 따른다. ***감상주신 분들 감사드려요. 이번엔 진짜 다음 주에...... Rubera(루베라) #169 -티폰-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있었다. 쥐새끼 같은 것들이 타인의 이목을 피해 자신의 저택 아래 굴을 파 드나든 곳은 변두리에 감춰진 음산한 저택........... 어둠 속에 교묘히 숨겨진 지하터널을 지나 육중한 철문에 막혀있던 작은 감옥이 드러나자 제일 처음 눈에 박혀들어 오는 건 감옥 구석에 몸을 말고 죽은 듯 늘어져 있는 나신.......... 하얗던 피부가 붉다 못해 까맣게 변해가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새어나오는 신음과 끊어질 듯 가는 호흡이 아니면 시체로 착각할 만한 모습.......... "폐하......................!! 형님!!!!! 그 녀석 좀..............제발..........내가 손대면.........죽을 것처럼 발작을 해대서......... 흐윽...................어떻게 좀 해줘..................." 정신이 나간 듯 흐느끼며 두서 없이 중얼대는 시온의 목소리에 겨우 분노와 살기를 누르곤 서둘러 대검을 뽑아 감옥문을 망가뜨리자마자 안으로 들어서 붉은 망토에 싸인 아이를 품에 안아들었다. 빠져나가려 힘겹게 바르작 대지만 밀어낼 힘도 없는지 그대로 늘어져 헐떡이며 가쁜 숨만 뱉어낸다. "궁의를 불러라!!!!!!!!!!!" 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저택으로 올라와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처음 눈에 띄는 침실로 급하게 들어서 침대 위에 아이의 몸을 눕히자마자 영문도 모르고 밤중에 황성에서 끌려나온 남빛 사내가 바로 침실로 들어서 아이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한다. "하아................흑................." 사내의 손이 닿을 때마다 작게 신음을 흘리며 뒤척이는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하류의 몸을 확 낚아채 품에 가두자 기분 나쁜 미소를 입에 걸친 채 터무니없는 소릴 뱉어낸다. "제가 고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당장 고쳐내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리겠다!!!!" 감히 실컷 만져대고도 고칠 수 없다는 말에 분노를 터뜨리며 검을 손에 쥐자 겁을 상실했는지 다시 말을 바꾼다. "직접 고치라 하시면 그리 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폐하께서 잠시 자릴 피해주셔야겠습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당장 고쳐..............!!!!" 살기를 쏟아내자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며 기괴한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최음제에 중독되신 듯 한데..........폐하께서 관음증이 있으신 줄은................" "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자 금새 뒤로 달아나 침실 문 앞에 선다. "지독한 걸 쓴 모양이니 너무 거칠게 다루시면 갑자기 심장이 멎을 수도 있습니다. 큭, 그럼 저는 이만...................." "감히............" 분노를 터트릴 틈도 없이 작게 훌쩍이는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급히 시선을 돌리자 얇은 시트를 움켜쥐고 괴로운 듯 몸을 뒤척이며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고 있었다. 아프게 뛰어대는 심장소리에 바로 입술을 포개고 달래듯 부드럽게 눈물을 훔쳐주자 말갛게 젖은 눈동자를 드러낸다. 점점 약해지는 숨소리가 안타까워 금새 입술을 놓아주고 약기운을 풀어주려 단단해진 페니스를 살짝 감아쥐는 순간....... 갑자기 흠칫 몸을 굳히더니 정신 없이 바들바들 떨어대며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놀라 미친 듯 휘저어대던 손목을 움켜쥐고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내려보자 공포에 질려 까만 눈동자에 초점조차 맞지 않는다. "하아.........비.........켜............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미친 듯 고개를 가로 저으며 불안에 날뛰어대다 혀를 깨물려는 듯 입을 꽉 다물어버린다. 급하게 턱을 움켜쥐는 순간................. "흐윽..................손..........대지마..........하지.........흐으...................아아아아악!!!!!!!" 심장을 찢어버릴 만큼 날카로운 비명소리................ 결국................. .................망가뜨려 버렸다. 내 소중한 걸............... 곧 죽을 것처럼 발작을 해대는 모습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다 이성을 잃고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 대검을 손에 쥐었다. 지금 죽여버리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모두 난도질을 하지 않으면....................!!!! "하아.................흑..................티.....폰.................." 섬뜩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뒤에서 작게 울먹이는 소리가 귓가에 스쳐온다. 놀라 돌아서자마자 언제 발작을 멈췄는지 하얀 손가락으로 옷자락을 꼬옥 움켜쥔 채 까만 눈동자로 올려보고 있었다. "...................아파.................." 붉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말에 그대로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숨죽인 채 바라보자 더운 숨을 내쉬며 의아한 듯 잔뜩 흐려진 까만 눈동자로 가만히 올려본다. 허공을 헤매지 않고 곧게 시선을 맞춰오는 눈동자에............안아달라 손을 뻗어오는 모습에............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뜨겁게 열이 오른 몸을 끌어당겨 품에 안고 입술을 포개자 젖먹이처럼 붉은 머리칼을 손에 꼬옥 움켜쥐고 서툴게 반응을 하며 매달려 온다. 덥다고 헐떡이며 칭얼대는 입술을 집어삼킬 듯 핥고 빨아대다 그대로 손을 뻗어 민감한 중심을 부드럽게 쓸어 자극을 해주자 괴로운 듯 헐떡이며 바르작대더니 바로 손안에 유색 액체를 떨어뜨린다. 한번의 사정으로도 힘에 겨운 듯 축 늘어져버리는 몸을 그대로 침대 위에 눕히고 천천히 젖은 손가락을 애널 안에 밀어 넣자 손가락 하나도 겨우 받아들일 만큼 강하게 죄어온다. 상처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밀어 올리며 성감대를 자극하자 지쳐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상태임에도 본능적으로 허리를 움직이며 몸을 부벼온다. "하악..........아.........학.........으응......................" 쾌감에 떨어대는 부드러운 몸을 꼬옥 끌어안고 살짝 벌어져 자극적인 신음을 흘려내는 입술을 굶주린 듯 빨아대며 손가락을 깊숙이 밀어 넣자 기분 좋을 만큼 따뜻하고 보들한 페니스가 다시 손안에 가득 차 오른다. 천천히 엄지손가락으로 귀두 끝을 비벼대며 빠르게 피스톤질을 시작하는 순간, 멈춰버릴 것처럼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궁의 놈의 말이 떠올라 흠칫 손을 멈추고 입술을 떼어내자 만족하지 못한 듯 작게 신음을 흘리며 뜨거운 입술을 단단한 목덜미에 부벼온다. 헐떡이는 숨소리와 목덜미에 와 닿는 입술의 감촉에 이성이 날아갈 지경............... "하아..........티폰.........." 갑작스레 움직임을 멈추자 의아한 듯 까만 눈동자를 드러낸다. 쾌락에 젖어 넋이 나갈 만큼 예쁜 눈으로 한참을 올려보다 결국 약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며 보채는 모습에 기어코 정신이 나가버렸다. 급하게 옷을 벗고 바로 뜨거운 나신에 몸을 포개자 맨몸에 닿아오는 온기가 기분 좋은 듯 나른한 신음을 흘리며 단단한 몸에 매달려온다. 바로 내부를 넓혀가던 손가락을 빼내고 하얀 허벅지를 쥐어 벌리자마자 흥분한 페니스를 좁은 애널 안에 뿌리까지 밀어 넣었다. 지독한 쾌감에 숨쉬는 것조차 잊고 바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정신 없이 바르작대며 비명 같은 신음을 터뜨린다. 거친 행위에도 최음제 탓에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지 재촉하듯 맞물린 하체를 비벼대며 유혹을 해온다. "하아...............학...................으응..........아..............." 금새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는 신음소리에 절정을 알아채고 성감대를 긁어대며 깊숙이 밀어 올리자 흠칫 몸을 굳히더니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사정을 하고 그대로 늘어져 버린다. 힘없이 흔들리면서도 강하게 죄어오는 내부에 이성을 잃고 거칠게 탐해갔다. 쉽사리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피스톤질에 이젠 신음조차 흘릴 기운도 없는지 느끼는 곳을 귀두 끝으로 찔러대도 헐떡이며 살짝 입술이 벌어질 뿐 반응이 없다. 바로 고개를 숙여 연신 더운 숨이 새어나오는 말캉한 살점을 맛이라도 보듯 슬쩍 핥아보고 부드럽게 빨아들이자 멍한 눈으로 핏방울처럼 붉은 눈동자를 가만히 올려보더니 바들바들 떨리는 하얀 팔을 뻗어 목에 감고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매달려온다. 밤하늘만큼이나 깊고 까만 눈동자도............ 푸른빛이 도는 결 좋은 머리칼도................ 살짝 부풀어 삼켜버리고 싶은 입술도.................. 숨이 막힐 만큼 예쁜 몸도............... 입술에 닿아오는 부드러운 피부와 코끝에 스치는 달콤한 체향도............... ...................못 견딜 만큼 좋다. 따뜻한 몸 안에 정신 없이 페니스를 밀어 넣다 아이가 작게 신음을 흘리며 다시 사정을 하자마자 그대로 손을 미끄러뜨려 내 것을 품고있는 하얀 엉덩이를 꽈악 움켜쥐고 그대로 깊숙이 밀어 넣은 채 욕정을 쏟아냈다. 푹신한 침대 위로 늘어져버리는 하얀 몸에 바로 손을 뻗어 꼭 끌어안자 한결 고른 숨이 귓가에 스친다. 살짝 벌어진 입술에 입을 맞추며 내려보니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붉었던 몸도 본래의 색을 되찾아 괴로운 듯 울먹이던 표정도 지운 채 갓 태어난 아기처럼 정신 없이 잠에 빠져있다. 겨우 되찾은 아이의 몸에서 쉽사리 떨어지지 못하고 통통한 입술을 굶주린 듯 빨아대며 부드러운 몸을 쓸어대다 따뜻한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 순간................. "...............!!!!!!!" 하얗던 목덜미가......................시커멓게 멍이 들어 있었다. 충격에 숨을 죽인 채 누군가에게 목이 졸린 것이 확실한 자국을 떨리는 손으로 살짝 쓸어보자 괴로운 듯 몸을 비틀며 가늘게 떨어대기 시작한다. 다시 발작이라도 일으킬까 놀라 급히 품에 안아 달래주자 까맣고 긴 속눈썹을 비집고 투명한 물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린다. 숨어버리기라도 할 듯 품안에 파고들어 한참을 훌쩍이더니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드는 모습을 섬뜩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하얀 몸을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뺨은 살짝 부어있고 입술도 물어뜯긴 듯 작게 생채기가 나 있다. 허벅지 안쪽에도 우악스레 잡아 벌린 듯 까맣게 멍이 든 손자국이 남아있고 목은.............확실히 죽이려 손을 댄 게 틀림없다. 몸 여기저기에 새겨진 멍 자국을 살기 띈 눈으로 바라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대검에 시선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의 열기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차갑게 피가 식어간다. '더러운 쥐새끼들................' 여기까지 끌고 오길 잘 했다. 바로 죽여버릴 수 있을 테니............... 아니, 금새 죽이는 건 재미가 없을 터................. 잔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다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까맣게 잠긴 채 지독하리 만치 무거운 정적에 싸여있다. 코끝에 스치는 짙은 혈향과 방금 전까지 들려오던 날카로운 쇳소리가 멈춘 걸로 봐선 시니안과 케레스가 저택 근처에 배치되어있던 사병들을 모두 처리한 모양............. 실제로 창을 통해 보이는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건 황성의 병사들......... 저택을 모두 점거했으니 여기까지 끌고 온 그것들도 이 저택 어딘가에 구금되어 있을 터.......... 죽지 않을 만큼만.................. 그래...........오늘은 내 것을 찾았으니 가볍게............. 입술을 탐한 혀를 잘라내고 이 몸에 손댄 손은...........잘라내면 피가 많이 흘러 죽을 수도 있으니 손가락부터.......... 목은..........아쉽지만 자르면 죽을 테니 끓는 물로 식도를 태워버릴까............. 아니, 그 전에......................... 내 것을 보고 발정한 물건부터 도려내야겠군................ 그리고 나머지는................. .................평생동안 받아내면 되는 거다.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치료도 병행할 테니 쉽게 죽진 않겠지.......... 섬뜩한 생각과는 달리 품안에 안겨있는 부드러운 몸을 조심스레 침대 위에 눕히고 따뜻한 내부에 들어가 있던 페니스를 빼내려하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강하게 죄어댄다. 아직도 약기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작게 할딱이며 놓아주지 않는다. "으응..............하아.............티폰..............." 반수면 상태에서도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몸을 비벼오는 아이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곤혹스레 번갈아 보다 결국 하얀 몸을 끌어당겨 품안에 꼬옥 안았다. 쥐새끼들 때문에 소중한 걸 혼자 둘 순 없으니.............내일 처리해도 늦진 않겠지......... 그대로 자세를 역전시켜 커다란 베개에 몸을 기대자 내 것을 품은 채 위에 앉혀진 아이가 꼼지락거리며 맞물린 하체를 비벼온다. 격하지 않은 움직임에도 빠르게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기분에 좋아져 천천히 흔들리는 늘씬한 허리를 쓸어보고 하얀 가슴에 살짝 솟은 분홍빛 돌기를 손가락으로 지분대자 쾌감과 잠에 흠뻑 취한 눈동자가 내게 맞춰진다. 그대로 허리를 움켜쥐고 서툰 움직임에도 금새 단단해져버린 페니스를 깊이 밀어 올리자 흠칫 몸을 굳힌 채 강하게 죄어댄다. "하아................으응.................." 격하게 안아주던 좀 전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으로 천천히 성감대를 비벼대며 애를 태우자 몸이 달은 듯 복부 위에 손톱을 세우고 재촉해온다. 새끼 고양이 같은 모습에 슬그머니 입꼬리를 말아 올리다 쾌락에 몸부림치는 몸을 가볍게 들어올려 뜨겁게 죄어대는 내부에서 단번에 빠져나와 버렸다. '멋대로 내 품안에서 벗어나 몸을 상하게 한 벌이다..............' 평소라면 만족하지 못한 상태라도 분노를 터뜨리며 돌아누워 되려 애를 태우겠지만 지금은 최음제의 영향이 가장 큰 건 하류 자신이다. 분명 얼굴을 붉힌 채 죽일 듯 노려보다 부드럽게 입을 맞춰주면 별 수 없이 매달려 오겠지................. 이번엔 황성 안에서만 얌전히 지내겠다는 다짐을 단단히 받아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것도 잠시.............. 갑작스런 변덕과 심술 맞은 행동에 앙칼지게 반항할 거란 예상과는 달리 까만 눈동자에서 소리 없이 커다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린다. 평소와는 다른 행동에 놀라, 벌이고 약속이고 싸그리 잊은 채 하얀 몸을 품에 가두고 물기를 쓸어 주자 어린아이처럼 젖은 뺨을 가슴에 부벼대며 원망하 듯 눈물만 쏟아낸다. 확실히 뭔가...................다르다. 마치...................... '설마......................?!!' Rubera(루베라) #170 -티폰- 확실히 뭔가...................다르다. 마치...................... '설마......................?!!' 살짝 떨리는 어깨를 움켜쥐고 눈물에 흠뻑 젖어버린 얼굴을 들여다보자 불안한 듯 버둥대며 떨어지지 않으려 목에 팔을 감고 매달려온다. 2년 전과......................... ...................같은 모습...................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 말도 잊은 채 굳어있다 한없이 품안에 파고드는 하얀 나신을 꼬옥 안아주자 그제야 안심이 되는 듯 스륵 눈을 감는다. 분명............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다. 크게 충격을 받아서............ 많이 힘들어서............ 잠깐 숨어있는 것뿐이다. 몇 번이나 상처받았어도............. 죽을 만큼 힘들었어도............ 다시 돌아왔으니까.............. "으응............." 가만히 턱을 들어올려 입을 맞추자 방금 전 일로 골이 난 듯 고개를 휘저어 입술을 떼어내고 품안에 얼굴을 묻는다. 이리저리 고집스레 입술을 피하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게 우선이라는 듯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게 우스워 귓가에 살짝 입술을 찍어누르고 혀로 핥아내자 아직도 열기가 가시지 않은 듯 작게 신음을 흘리며 더운 숨을 뱉어낸다. "사랑해..............." 마음을 담아 부드럽게 속삭이는 말에 귀까지 새빨갛게 붉어져 고개도 들지 못한다. "흐윽.........으응................." 결국 예쁜 모습에 되려 참지 못하고 아직 젖어있는 내부로 다시 밀고 들어가 천천히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갑작스런 침입에 놀란 듯 강하게 죄어대며 자극적인 신음을 뱉어낸다. 고개를 숙여 허락하듯 살짝 벌어진 입술에 입을 맞추려는 순간................. "키르..............!!!!!!!!" "황제폐하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 함부로 드실 수................" "웃기지마!!!!!!!!" 낯익은 목소리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소란이 일기 시작하는 문 쪽을 노려봤다. 귀찮은 건 황성에 두고 왔는데...........금새 따라붙은 모양.............. "하아..........티폰.............." 밖에서 자신을 찾아대는 황태자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 보채오는 아이를 가만히 내려보다 퍼뜩 스치는 생각에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리곤 급히 시트를 끌어 하얀 나신을 모두 가린 후 잔뜩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들여라..............." "폐...........폐하..........." 당황한 듯한 병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 천천히 침실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젠장!!! 날 속여?!!! 키르!!! 그 녀석...........어디에 숨긴 거야?!!!" 역시나.................. 요란하게 성질을 피워대며 안으로 들어서는 황태자를 보곤 겁을 먹은 듯 흠칫 몸을 굳힌 채 바짝 매달려오는 것을 보니 녀석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양..............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발소리에 맞닿은 가슴을 통해 불안한 듯 팔딱팔딱 뛰어대는 심장박동이 느껴지자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입술을 포갰다. 부드러운 입술을 깨물어대며 얌전히 있는 혀를 감아 빨아들이자 입가에 와 닿는 숨결에 다시 열기가 실리기 시작한다. 바로 코앞에서 살기를 띄고 노려보는 황태자놈을 비웃듯 농도 짙은 키스를 해가며 천천히 시트 안으로 손을 미끄러뜨려 반쯤 일어선 페니스를 감아쥐자 본능적으로 허리를 움직여 내부에 받아들인 페니스를 강하게 죄어댄다. "하악.................." 탐스러운 입술을 맘껏 빨아대다 천천히 귀두 끝을 비벼대며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약기운을 없애주려 몇 번이나 안은 탓에 잔뜩 민감해져 금새 미치도록 색스런 신음을 터뜨린다. 지독한 쾌감에 겨우 이성을 붙들어 놓고 아이가 사정을 시작하는 순간 재빨리 귀두 끝을 손가락으로 막아버렸다. "아.............하아.................흐윽.........." 쾌락에 몸부림치는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고 그제야 맞은 편에 굳은 채 서있는 사내에게 열기를 감춘 싸늘한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황태자께서 이 밤에 내게 무슨 볼일이지?" "네놈...................."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죽일 것처럼 주먹을 꽈악 그러쥐더니 흔들리는 눈동자로 하류를 바라본다. "큭, 설마............내 루베라에게 볼일이 있었던 건가..............." 신음소리조차 들려주는 것이 아까워 가슴에 바짝 끌어당기자 꽤나 분한 듯 이를 갈아대며 노려본다. "키르!!!!!!!!!!!!!!!!!!" 비명과도 같은 외침에 돌아보기는커녕 흠칫 놀라 품안에 더욱 깊이 파고들자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더니 분노를 누르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뱉는다. "도대체...................그 녀석한테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불쾌하군.........이 아인 내 루베라다. 이미 내 것이야.............타국의 황태자 따위가 감히 신경 쓸 일이 아닐 텐데........." "웃기지마! 아무리 황제라 해도 그 녀석을 구속할 권리 따윈 없을 텐데............!! 결정은 그 녀석이.........키르가 하는 거야!" "그렇다면.........이미 결정은 한 듯 하군............" 어린아이처럼 품안에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 하류를 꼬옥 끌어안고 비웃듯 말을 잇자 하얗게 질릴 만큼 주먹을 꽉 말아 쥔다. "내 목숨까지 쥐고있는 아이다. 함부로 넘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지........ ..........포기해.........." "누가......................!!!" 바이올렛 눈동자가 분노와 질투로 짙은 빛을 띄기 시작하자 잔혹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은빛 사내를 노려보다 하류의 턱을 살짝 들어올려 쾌감에 잔뜩 흐려진 까만 눈동자를 사로잡았다. "전부 내 것이다. 몸도 마음도........네놈이 차지할 자린 한 조각도 없어!! 포기할 수 없다면............ 그리도 갖고 싶다면 차라리.................. .............죽어라............ 네겐 머리카락 한 올도 내어줄 수 없으니..................." "닥쳐!!!!!!!!!!!" "큭, 죽어서 시체가 된다해도 네놈 손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없어!! 고귀하게 태어나서............가장 천하게 죽고 싶지 않다면 내 것에 손대지 마라..........." 광기를 드러내며 살기를 쏟아내자 오히려 분노를 갈무리하고 어느샌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노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온다.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어" "그렇다면...............시작한 걸 후회하게 해주지............" "하아..........으응..................." 그대로 고개를 숙여 붉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사정을 막은 채 부드럽게 감싸쥐고 있던 페니스를 살짝 쓸어주자 욕정을 내보내지 못해 고통스러운지 헐떡이며 교성을 터뜨린다. "하악................아....................아파..........흑..........." "하아.........움직여........." 귓속에 더운 숨을 불어넣으며 달래듯 조용히 속삭여도 미간을 찌푸린 채 어린아이처럼 훌쩍이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도리질을 친다. 미치도록 사랑스런 모습에 참지 못하고 하얀 얼굴에 정신 없이 키스를 퍼부어대며 늘씬한 허리를 감아쥔 채 맞물린 곳을 슬쩍 비벼 올리자 단단한 귀두로 성감대를 찔러오는 느낌에 흠칫 떨어대며 가쁜 숨을 내쉬더니 결국 쾌락을 쫓아 단단한 목에 팔을 감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학.................아...............으응.........................." 서툰 움직임에도 뜨겁고 강하게 죄어대는 내부에 생각을 마비시켜 버릴 만큼 강한 쾌감이 온몸을 타고 오른다. 하얀 어깨너머로 보이는 은빛 사내의 눈동자가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며 쾌락을 얻어내는 아이의 몸에 정욕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걸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다 더운 숨을 내뱉으며 입가를 더듬어 오는 아이의 입술에 그대로 이성을 무너뜨린 채 하얀 몸을 침대 위로 밀어붙였다. "하.............흐윽................티폰...............아................" 검붉게 멍이 든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고 굶주리듯 빨아대다 부드럽게 조여오는 내부를 강하게 밀어 올리며 격하게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활처럼 몸을 휘고 비명 같은 신음을 내지르더니 쭉 뻗은 다리로 허리를 감아온다. 깊숙이 파고들 때마다 유혹하듯 신음을 흘려내는 입술에 농도 짙은 키스를 해가며 사정이 막힌 채 손에 쥐어져 녹아버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페니스의 귀두 끝을 살짝 비벼대자 날카로운 교성을 터트리며 단단한 등에 손톱을 박아 넣는다. "으응..................아....................그만.................하악.................." 격한 움직임으로 통증이 느껴질 만큼 깊숙이 찔러대는 행위에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이며 도리질을 치다 절정에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순간 페니스를 쥐고있던 손에서 힘을 풀고 아이의 따뜻한 몸 안에 욕정을 쏟아내자 힘겹게 숨을 터뜨리며 그대로 손안에 유색 액체를 떨어뜨린 후 축 늘어져 버린다. 기절한 듯 미동도 없는 아이의 하얀 몸을 꼬옥 끌어안고 아직도 흠칫거리며 죄어대는 내부에서 나른하게 후희를 즐기다 찌를 듯 날카로운 시선에 그제야 살짝 드러난 아이의 몸을 시트로 가리곤 질투로 반쯤 미쳐버린 사내에게 시선을 던졌다. "이제 포기할 생각이 드셨나......................" 한껏 조소를 띄워 던지는 말에 참혹하게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색색거리며 고른 숨을 내쉬는 붉은 입술에 살짝 입술을 찍어누르고 작은 움직임에도 뒤척이며 신음을 흘리는 아이의 몸 안에서 빠져나와 그대로 시트 째 안아 올렸다. "밤이 깊었으니 이만 물러나라......................" 바로 돌아서 욕실로 들어서려던 순간 분노로 잔뜩 낮아진 목소리가 귓가에 스쳐온다. "내기............아직 끝나지 않았어.......... 앞으로 1년이다.............난 네놈 따위 절대 믿지 않아! 그 녀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네놈의 사랑 따위.............. 분명 다시 상처입고 내게 돌아오겠지................. 그때가 되면 절대 빼앗기는 일 없을 테니 지금은 멋대로 해............" 거칠게 닫히는 문을 미간을 찌푸린 채 노려보다 그대로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섰다. 지독하게도 질긴 벌레가 붙어버린 모양.......... 뮤즈니안의 철없는 애송이 황태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맹수의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 품안에서 꿈틀대는 느낌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몸에서 정사의 흔적을 깨끗이 지워낸 후 따뜻한 물 속에 담가주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편안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떼자마자 갑자기 화들짝 놀라 피곤으로 잔뜩 흐려진 까만 눈동자를 크게 들어내며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아......................티......폰.....................흐윽..................." 갑작스런 반응에 놀라 굳어있다 작게 흐느끼는 소리에 바로 팔을 뻗어 품에 가두자 목덜미를 타고 따뜻한 액체가 점점이 떨어져 내린다. 바들바들 떨어대는 게 안쓰러워 부드럽게 등을 쓸어 달래고 그대로 품에 안은 채 따뜻한 물 속에 들어가 떨어지지 않으려 버둥대는 아이의 몸을 겨우 허벅지 위에 앉힌 후 마주보자 그새 예쁜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어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있음에도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더니 기어이 품안으로 파고든다. 하얀 목에 선명히 남아있는 시퍼런 멍자국과 지독히도 험한 꼴을 당한 듯 불안정한 모습에 다시 솟구쳐 오르는 살기를 겨우 누르고 조심스레 하얀 뺨을 적신 눈물을 쓸어주자 아직도 멈추지 않고 커다란 눈물이 툭툭 떨어져 내리는 새카만 눈동자를 내게 맞춰온다. "울지 마라...........못난 얼굴은 보기 싫으니.........." 짓궂게 말을 꺼내자 놀란 듯 입까지 벌리고 멍한 눈으로 바라본다. 효과 좋게 눈물도 뚝 그친걸 보곤 실소를 금치 못했다. 이런 얼굴로 여태껏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한번이라도 거울을 본적이 있다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은 믿을 리가 없을 텐 데도 순진하게 그대로 믿어버린 모양.............. 이 아인........지금까지 하룻밤을 위해 외양만을 보고 품어온 수많은 여자들보다도, 고귀하게 자란 지체 높은 귀족가의 여인들보다도 아름답다. 그리고 그 생김새만큼이나 매혹적인 건 밤의 한 자락을 옮겨놓은 듯한 진귀한 빛깔............. 가끔 이렇게 짙은 빛을 지니고 태어나는 자도 있지만 이 아이처럼 순수한 빛깔은 본적이 없다. 게다가.................. 눈동자 뿐 아니라 머리카락마저도 모두 까만 것은................ ..............전무하다. 그렇다고 피부까지 까만 것도 아니다. 이것마저도 묘한 빛깔.............. 언뜻 보면 귀하게 자란 귀족가의 처녀만큼이나 뽀얗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르다. 우유에 꿀을 타 넣은 것처럼 달콤한 빛을 띈다. 그대로 매끈한 허리를 끌어당겨 목덜미에 얼굴을 묻자 그제야 안심한 듯 긴장을 풀고 눈을 감는다. 쭉 뻗은 등허리를 가만히 쓸어보고 부드러운 엉덩이를 살짝 움켜쥐자 약기운이 떨어져 이제야 통증이 이는 지 작게 신음을 흘리며 흠칫 몸을 굳힌다. 그대로 손가락을 굴곡 안으로 미끄러뜨려 아직도 열기가 남아있는 애널을 더듬어보니 무리하게 내 것을 받아들여 살짝 부어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게 거칠게 안는 게 아니었는데....................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따뜻한 몸을 꼬옥 끌어안고 조심스레 손가락을 애널 안으로 밀어 넣자 갑작스런 침입에 잔뜩 긴장해 손가락을 죄어댄다. "아...........티폰............흑................" 바로 고개를 숙여 통증을 호소하는 입술을 빨아대며 키스를 해주자 천천히 손가락을 조여대던 내부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한다. "으응.....................아...................." 내부 깊숙이 뿌려놓은 사정액을 긁어내며 통증을 줄여주려 성감대를 슬쩍 밀어 올리자 헐떡이며 달콤한 신음을 쏟아낸다. 입가에 닿아오는 따뜻한 숨결과 유혹하듯 손가락을 죄어오는 느낌에 일을 끝내자마자 급히 손가락을 빼내고 금새 분홍빛으로 물들어버린 아이의 몸을 안아 올렸다. 다시 자제력을 잃어버리면 상처를 낼 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아픈 몸을 상하게 하고싶지 않아 겨우 이성을 부여잡고 열기를 내리눌렀다. 따뜻한 몸을 소중히 끌어안고 물기를 닦아낸 후 다시 침실로 나와 조심스레 침대에 뉘여 주자 꽤나 피곤한 듯 꾸벅꾸벅 졸아가면서도 손을 꼬옥 쥔 채 놓아주지 않는다. 그대로 곁에 누워 따뜻한 몸을 품에 안자 기분 좋은 온기와 달콤한 체향에 지난 며칠 간의 불면증이 무색할 만큼 금새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오랜만에 평화로운 분위기............감상, 추천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은 역시 다음 주말에.......... Rubera(루베라) #171 ***헉, 요번 주는 한 편만....그래도 분량이 많으니 용서를.......생활이 바쁘다 보니...정말 죄송 ㅠㅅㅜ "으응..............." 목덜미를 간질이는 따뜻한 숨결에 작게 칭얼대며 부스스 눈을 뜨자 주위가 온통 어둠에 잠겨있다. 잠이 덜 깨 멍한 눈으로 두터운 커튼 사이로 새어들어 오는 희미한 달빛을 바라보다 답답할 만큼 온몸을 옭아매고 있는 타인의 체온에 짜증이 솟구쳐 미간을 찌푸린 채 발을 내지르려던 순간, 시야에 스쳐오는 붉은 빛에 흠칫 놀라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티폰.............?' 놀란 눈으로 깊이 잠이 든 붉은 사내를 정신 없이 바라보다 익숙한 체향과 따스한 온기에 슬그머니 발을 내려놓고 단단한 품안에 부비적대며 파고들었다. 뭔가............지독한 악몽을 꾼 것도 같은데............. 귓가에 울려오는 규칙적인 심장박동에 다시 잠이 쏟아지기 시작해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귀찮기만 하다. 좋아하는 붉은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다 단단한 목덜미에 입술을 묻자 잠결인 듯 뒤척이며 허리를 꼬옥 끌어안아 준다. 왠지.............. ............행복한 기분..................... 따뜻한 가슴에 만족할 만큼 뺨을 부비대다 답답한 느낌에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밤 기운이 꽤나 서늘한데도 내게만 시트를 돌돌 말아 어미 새 마냥 품고 있다. 이상하게 침소 안이 평소보다 어둡고 춥기만 한데................ 희미한 달빛을 반사해 푸른빛이 도는 사내의 나신을 걱정스레 바라보다 조심스레 더듬어보니 역시나 차갑게 식어있다. '바보같이.............!!' 겨우 사내의 품안에서 꼼지락대며 몸에 감긴 시트를 빼내 함께 덮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알몸을 바짝 밀착시킨 후 따뜻한 손바닥으로 등허리를 쓸어주자 청동조각처럼 차디찼던 몸에서 금새 열이 오르기 시작한다. 그제야 쏟아지는 잠을 막지 못하고 따뜻해진 사내의 품안에 포옥 안긴 채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다 그대로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갑자기 커다란 손이 엉덩이를 살짝 쥐어온다. "아......응.............." 비몽사몽간에 민망한 신음을 터뜨리며 버둥거리다 엉덩이를 멋대로 주물러대는 뻔뻔한 손과 바짝 밀착된 하체에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붉어진 얼굴을 들어올리자 언제 잠에서 깬 건지 부드러운 눈빛으로 내려보던 사내의 눈동자가 짙어져 열기를 띄기 시작한다. "..............아.................!!" 갑자기 흥분해 달려드는 녀석의 품에서 벗어나려 바르작대자 결국 참지 못하고 격하게 입술을 부딪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잡아먹을 듯 부드러운 살점을 핥고 빨아대더니 거침없이 입안으로 들어와 혀를 감아온다. 데일 듯 뜨거운 느낌에 고개를 휘저어 굶주린 듯 입술을 빨아대던 사내를 떼어내자 움직이지 못하게 턱을 움켜쥐고 다시 조심스레 입을 맞춘다. 따뜻한 느낌............ 맨몸에 닿아오는 사내의 감촉이...........체향이 못 견딜 만큼 좋다. "하아.............." 몇 번이나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하며 열기를 전해오는 입술에 저항을 멈추고 헐떡이며 더운 숨을 내뱉기 시작하자 턱을 쥐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 익숙하게 성감대를 더듬어온다. "으응...........아........................." 잡아먹을 듯한 키스와 노골적인 손길에 교성을 터뜨리며 허리를 들어올리는 순간, 그대로 손을 뻗어 하얀 엉덩이를 움켜쥔다. "하악.................아............으응.............................." 커다란 손으로 부드러운 엉덩이를 주물러대다 그대로 굴곡 안에 손가락을 밀어 넣어 애널을 더듬어오는 느낌에 불규칙한 숨을 내쉬며 다리를 벌려주자 확인이라도 하듯 몇 번 쓸어보더니 다시 손을 미끄러뜨려 허벅지 안쪽을 부드럽게 애무해 간다. 쉽사리 끝나지 않는 키스와 숨막히는 열기에 밀어내지도 못하고 작게 신음을 흘리며 근육으로 짜여진 단단한 몸에 매달리자 격하게 탐해가던 입술을 놓아주고 아쉬운 듯 입가에 흐른 타액을 핥아가며 통통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댄다. 평소보다 민감해진 몸에 의심을 품을 틈도 없이 미친 듯 혀를 섞고 입술을 부벼대다 화끈한 감각에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내 위로 올라와 뻐근할 만큼 단단해진 내 것에 뜨겁게 일어선 자신을 비벼대고 있다. "하윽..............!!" 기분 좋은 열기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쾌감에 헐떡이며 도리질을 치자 사내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어온다. "...........하아.............흑............티폰....................." 발정 난 고양이처럼 잔뜩 몸이 달아 내부로 들어오지 않고 애를 태우는 사내의 밑에서 바르작대며 보채다 결국 참지 못하고 그대로 욕정을 내보냈다. 손도 대지 않았는데...................... 빌어먹을 것이 멋대로 혼자 도달해 버렸다. 잔뜩 당황한 얼굴로 내 것을 내려보다 귓가에 스치는 더운 숨결과 만족하지 못한 듯 허벅지 안쪽을 찔러오는 느낌에 귀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숨을 죽이자 늘씬한 몸을 꼬옥 끌어안고 목덜미에 키스를 해대던 사내가 큭큭대며 몸을 들썩이기 시작한다. "아직 약기운이 남아있었나.............?" 귓가를 할짝이며 알 수 없는 말을 속삭이더니 그대로 손을 뻗어 내 것을 쥐어 온다. "으응...................." 녀석에게 쥐어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귓속에 말캉한 혀가 파고들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떨어대며 신음을 삼키자 아직 크기도 줄지 않아 한 손에 가득 차는 페니스를 애새끼 물건 다루듯 조물거리며 하얀 사정액을 전부 빼낸다. 힘없이 늘어지자마자 막을 틈도 없이 볼 것도 없는 판판한 가슴에 들러붙어 분홍빛이 나는 돌기에 집착을 보이며 빨아대자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이 다시 일어설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하악...............흑................하지.........아앗.............." 이를 세워 깨물어대는 느낌에 헐떡이며 고개를 휘젓다 겨우 손을 뻗어 붉은 머리칼을 감아쥐고 떼어내려 몸부림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큭.............." 이 자식................아직까지 웃고 있다. "으득............." 창피함에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작은 돌기를 혀로 핥아대며 붉게 응혈이 질만큼 빨아댈 때마다 흠칫흠칫 몸을 떨어대다 한참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 웃음에 울컥 화가나 바락 소릴 질러 버렸다. "뭐.............뭐가 웃겨?!!!! 이 나쁜 변태새끼!!! 그렇게 주물러 대니까............. 빌어먹을!!! 흑.......아프잖아!! 비켜!!!!! 나 안 해!!" 앙칼진 목소리로 꽥 소리치고 내 것을 주물러대던 손을 거칠게 밀어내자마자 웃음까지 뚝 그치고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본다. "왜?!!! 그렇게 하고 싶으면 혼자서해!!! 난 다 끝났으니까!!!!" 잔뜩 골이나 사납게 노려보다 시트를 확 끌어당겨 머리까지 덮어쓰고 눈을 감아버리자 한참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는 듯 하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켜 내게서 떨어져 나간다. '뭐야?!!!' 평소와 다른 행동에 번쩍 눈을 뜨고 시트를 걷어내자 침대 밖으로 벗어나려는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놀란 눈으로 멍하니 바라만 보다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뭔가............이상하다. 불안해............ "아............." 뒤돌아선 녀석에게 박혀있던 눈에서 멋대로 물기가 터져 나오자 당황해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였다. '왜.................?!!!' 심장이............ ....................아프다.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 아니...........곁에 없는 것이............ ..........무서워.........?!!! 따뜻한 체온이 떨어져나가자마자 이해할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몸을 떨어대다 젖은 뺨을 쓸어오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놀란 듯 아프게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뭐..................야.............?!!! 내가.........왜................' 그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붉게 손자국이 남을 만큼 녀석의 손목을 꽉 틀어쥐고 있다. 먼저 거절한 주제에............ 바보같이............. 입술을 꼬옥 깨물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손을 슬그머니 놓아준 후 하얀 베개를 품에 꼬옥 끌어안고 멀찍이 물러나 등을 돌려 눕자마자 강한 팔로 허리를 감아 끌어당긴다. "자........잘 거야......." 내가 들어도 한심할 만큼 작게 웅얼대며 끌려가지 않으려 버둥대자 잠시 한숨을 내쉬더니 가볍게 몸을 돌려 와락 품에 안는다. 품안에 들어가자마자 감히 밀어낼 생각도 못하고 얌전히 안겨 안도하는 자신에게 기가 막혀 얼굴을 붉히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젖은 눈가를 따뜻한 입술로 찍어누르며 부드러운 손길로 등을 쓸어준다. "내.........내가 애새낀 줄 알아?!!!!!!"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는 행위에 울컥해 꽥 소리쳐도 웃음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온다. "반만..............돌아왔군.............." '뭐............?'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질투라도 하는 것 마냥 구명줄처럼 꼬옥 끌어안고 있던 베개를 빼앗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입술을 더듬어 부드럽게 빨아댄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성깔만 부리고................... 그대로 다시 침대 위에 눕히고 다리를 벌려오는 느낌에 귀까지 빨개져선 시선을 피해버리자 귓불을 할짝이던 녀석이 더운 숨을 내뱉으며 조용히 속삭여온다. "큭, 이제 앙탈은 다 부린 건가..........?" "누..........누가!!!!" 부정해 봤자................. 방금 전까지 이놈 밑에서 발정 난 고양이처럼 앙앙거리고, 화내고, 울고.............. 앙탈도 이 정도면 수준급.............. 제대로 된 반박도 하지 못하고 씨근덕대며 얼굴을 붉히자 바로 달려들어 작게 솟은 가슴돌기를 덥썩 물어온다. "아............으응.....................깨물지마.............." 헐떡이며 투정을 부려도 집요하게 물고 빨아대더니 결국 내 것이 다시 부풀기 시작하자 겨우 입술을 떼어낸다. "아.........학....................아파...........!!" 어지간히도 급했던지 바로 엉덩이를 움켜쥐고 좁은 애널 안으로 거대한 귀두 끝을 밀어 넣자마자 시트를 쥐어짜며 날카롭게 비명을 질러버렸다. 애초에 저런 게 들어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이상하게 평소보다 훨씬 아프다. 그러고 보니 허리도................. "흐윽.................." 하얗게 질려 버둥대자 별 수 없이 조심스레 몸 안에서 빠져나오더니 바로 침대 맡을 더듬어 언제 가져다 놓은 건지 욕실에서 쓰이던 둥근 모양의 향유를 찾아내 애널 안으로 깊숙이 밀어 넣는다. "하아.....................이상해................" 이물질이 침입해 들어오는 느낌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칭얼대는 사이 금새 뜨거운 체온에 짙은 향을 내며 녹아들기 시작한 향유가 내벽을 적시기 시작한다. "아..............응...................." 그제야 미끌해진 내부에서 천천히 피스톤질을 시작하는 손가락을 강하게 죄며 헐떡이자 자극에 유색 액체를 떨구는 페니스를 살짝 감아쥐곤 손가락으로 귀두 끝을 비벼댄다. "아...............학...............으응.................." 참을 수 없는 느낌에 붉은 머리칼에 입술을 묻고 매끈한 등에 손톱을 세우자 바로 손가락을 빼내고 뜨거운 내부에 자신을 묻어온다. 천천히 밀고 들어오는 느낌에 숨을 들이키며 몸을 비틀자 하얀 허벅지를 단단히 움켜쥐곤 한계까지 밀어 올린다. "하윽..............." 깊숙이 들어와 성감대를 찔러대는 바람에 금새 두 번째 사정을 하고 축 늘어지자 열이 오른 몸을 꼬옥 끌어안고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몇 번이나 들어도 가슴 뛰는 말에 붉어진 얼굴을 가슴에 묻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눈빛과 보기 드문 미소를 띄우며 입술을 포개온다. 셀 수 없이 날 가지고도................ 아직 부족한 듯 어린아이처럼 욕심을 부리는 사내가 미치도록 사랑스럽기만 하다. 난................. 역시............. 이 녀석이 못 견딜 만큼 좋다. 이젠 조금이라도..........잠시라도 떨어져 있으면 심장이 깨어져버릴 만큼............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큼................. ..................아프다. 끝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목이 마르고 뒷모습만 봐도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심장만이 살아있는 것처럼..........금새라도 멈춰버릴 만큼 격하게 뛰어댈 뿐이다. 분명................ ..............미쳐버린 게 틀림없다. 이런 게................ ...........사랑이었나 보다. 이렇게.............. 눈물이 날 만큼 슬프고............. 죽을 만큼 아프고............. 미칠 듯 기쁘고............... 숨이 막힐 만큼 행복한 것이................... "나도...................... .................좋아해............. ................사랑해..............." 작게 속삭이며 하얀 팔을 뻗어 사내의 목을 감아 끌어당기자 낮은 신음을 울리며 부드럽게 내부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 . . 서늘한 새벽 기운에 뒤척이며 눈을 뜨자 주위가 온통 어둠에 잠겨있다. 여전히 음침한 저택 안....................... 흠칫 몸을 굳히고 주위를 둘러보니 두터운 커튼에 가려진 창을 통해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 분명............... ...............지난밤엔 그렇게도 행복했는데............... '다..................... ..............꿈이었어.................?!!!!' 악몽의 연장인 듯 사방이 틀어 막힌 낯선 침실에 덩그러니 남겨져 공포에 몸을 떨다 겨우 손을 뻗어 하얀 시트를 몸에 두르고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흐윽................" 끔찍한 통증에 머릿속에 새하얗게 비워진다. 바닥에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거의 기다시피 문 앞까지 다가가 의외로 쉽게 열리는 문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열어제치자 본적 없는 사내들이 문을 지키고 서있다. '빌어먹을..........................!!!!!!!'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겨우 몸을 지탱하던 다리에서 힘이 빠져 앞으로 꼬꾸라지려던 찰라 강한 팔이 허리를 감아 품안에 가둔다. "아.........흑................젠장!!! 이거 놔........!!!" 놀라 발버둥치며 벗어나려는 순간 시야에 스치는 건 눈에 익은 잿빛 머리칼............... '설마............?!!' 따뜻한 품안에서 퍼뜩 고개를 들어올리자 걱정을 가득 담은 잿빛 눈동자가 조심스레 내려보고 있었다. '케레.........스?!!' 꿈일까 두려워 눈도 깜박이지 않고 잿빛 사내를 올려보자 작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떨리는 몸을 꼬옥 끌어 안아준다. "지켜드리겠다 했는데............. 정말...............왜 이렇게 멋대로....................." 화가 난 듯 질책하는 목소리............ 하지만 그 이상으로 따뜻한 온기............. '꿈이...................아냐?!!!!' "어떻게................." 침실 앞을 지키고 있었던지 문을 열자마자 보였던 낯선 사내들이 당황한 낯빛으로 금새 바닥에 엎드리는 것을 보곤 다시 케레스를 올려보며 말을 꺼내자 잔뜩 잠긴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다 굳은 표정으로 시퍼렇게 멍이 든 목덜미를 바라본다. 부드러운 손길에도 섬뜩한 감각이 스쳐 흠칫 목을 움츠리자 무표정한 얼굴이 보기 드물게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도대체.............." "헉...................!!" 갑자기 뒤에서 허리를 휙 낚아채는 바람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다시 침실 안으로 끌려들어 가 버렸다. 요란하게 문이 쾅 닫히더니 화가 난 듯 쿵쾅대며 걸어가는 사내에게 길 잃은 새끼 고양이 마냥 달랑 들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겨우 빠져나온 침대 위로 던져졌다. 어질어질한 머리와 허리를 타고 오르는 통증에 끙끙대다 서늘한 기운에 번쩍 눈을 뜨니 어느샌가 붉은 사내가 몸을 내리누르고 있다. '티......폰.............?!!' 욕실에서 급히 나온 건지 물기도 닦지 않고 하얀 타월 하나로 하체만 겨우 가린 채 무시무시한 얼굴로 쏘아보고 있는 사내를 넋이 나가 한참동안 바라만 봤다. 분명...... 꿈 따위가............아니다. 불안으로 뛰어대던 심장이 다른 의미로 고동치기 시작한다. 다행히.............조그만 단서만으로 찾아낸 모양.............. 어제 저녁.......... 감옥 안에 찾아온 미르니안의 옷에 티폰이 피어싱을 해줬던 붉은 보석을 몰래 달아두었다. 마침 붉은 드레스였고 화려한 보석 장식이 많아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루비를 티폰이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2년 간이나 내게 주려고 보관했다했으니 어쩌면 알아볼 지도 모른다고......... .............위험한 도박을 했다. 그 후에 바로 스턴놈이 오고............... 목이 따끔하더니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던 것도 같은데.............. "대체 이런 몰골로 또 어딜 갈 셈이었지?!! 잠시만 눈을 떼면..............!!!" 미간을 찌푸린 채 하얗게 지워진 기억을 더듬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버럭 소릴 질러온다. "옆에 없어서......... .................다 꿈인 줄 알았어............." 격하게 으르렁대는 말에 작게 변명을 하며 조심스레 손을 뻗어 물방울이 떨어져 내리는 얼굴을 가만히 쓸어주자 금새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을 멈춘다. 무슨 일인지 새벽부터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몸이 차다. 안쓰러운 마음에 바로 몸에 둘둘 말려있던 시트를 걷어 따뜻하게 열이 오른 품안으로 사내를 끌어당기자 흠뻑 젖어있는 몸이 신경 쓰이는 듯 잠시 미간을 찌푸리다 허리를 꼬옥 끌어안고 목덜미에 뺨을 부비자 얌전히 품에 안겨온다. "이제..............아무데도 안가..............." 귓가에 속삭이며 물기에 젖어 핏방울이 맺혀있는 착각이 들만큼 붉은 머리칼을 손으로 감아쥐고 차가운 입술을 더듬어 살짝 입을 맞추자 아프도록 강하게 끌어안고 정신 없이 부드러운 입술을 맞부딪쳐온다. 하얀 나신을 모두 드러낸 채 민감한 곳을 더듬어대는 녀석의 밑에 깔려 신음하다 갑자기 번쩍 들어올려져 단단한 허벅지에 앉혀지자 현기증이 일어 사내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통째로 잡아먹을 작정인지 이곳저곳 깨물어대며 얼굴이 붉어질 만큼 집요하게 엉덩이를 주물러 애무를 한다. "하아..........으응..............." 작게 신음을 흘리며 그새 따뜻해진 몸을 꼬옥 끌어안자 민망한 자국들이 잔뜩 시야에 들어온다. "항, 계속하면 등짝이 걸레가 될 것 같은데........?!!" 간밤에 얼마나 괴롭혀댔는지 매끈했던 등에 고양이가 할퀸 듯 작은 생채기가 빼곡이 남아있다. 킥킥대며 붉게 자국이 남은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곤 맛도 없는 목덜미를 빨아대는 사내를 떼어내자 어미 젓을 빼앗긴 젖먹이 마냥 잔뜩 불만스런 표정을 지어 보인다. "나 배고파...........나머지는 집에 가서하자.............." 이마를 맞대고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시선을 맞추자 아플 만큼 꼬옥 끌어안고 그대로 다시 입술을 겹쳐 녹아 내릴 듯 부드러운 키스를 해온다. 기분 좋은 애정표현에 밀어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얌전히 입을 열어주자 한참동안 능숙하게 입술을 빨아가며 입안을 휘저어댄다. 물에 젖어 더욱 짙어진 핏빛 머리칼과 살짝 감긴 속눈썹이 예쁘기도 하다. 심장이 주책 맞게 뛰어댈 만큼 지독히도 잘난 얼굴에 넋을 놓고있다 등에 닿아오는 푹신한 감촉에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침대에 고이 눕혀져 있다. "자.........잠깐.....!! 티폰............!!" 목덜미를 따라 입술을 미끄러뜨리는 녀석을 보고 그제야 꼼지락대며 따뜻한 품안에서 빠져나가려는 순간......... "폐하...........!!!" '시니안?!!!!' 갑자기 침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휙 돌리자 어느새 뜨거운 입술로 아랫배를 더듬어대던 녀석이 불만스레 상체를 일으켜 침실 문을 노려본다. "물러가라............" '미친..............' 살기 띈 목소리에 기가 막혀 녀석을 노려보다 후다닥 시트를 끌어 알몸을 가리자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내려보더니 심술 맞게 다시 시트를 확 걷어내고 바로 몸을 겹쳐온다. "하..............윽......................비..........비켜!!!! 이.........이 새끼가..........흑..........발정이 났나........!! 아앗........." "큭, 색기를 흘려가며 내뱉을 소리는 아닐 텐데............." "하악............무슨...........개소리야?!!" 색기는커녕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발버둥을 쳐대 꼴이 말이 아니다. 어느샌가 다리를 벌리고 하체를 겹쳐오는 느낌에 헐떡이며 고개를 휘젓자 하얀 시트 위에 퍼진 새카만 머리칼이 이리저리 흔들려 시야를 어지럽힌다. 화가 난 듯 치켜 올라간 눈썹과 앙칼지게 노려보는 까만 눈동자를 만족스레 내려보던 사내가 간밤에 수도 없이 맛을 봐 붉게 부푼 입술이 더운 숨을 토해내며 유혹하듯 신음을 흘리자 결국 참지 못하고 바로 고개를 숙여 부드러운 살점을 삼켜간다. 덫에 걸린 짐승처럼 바르작대며 몸부림치다 집요한 애무에 금새 녹아내려 사내의 허리에 다리를 감는 순간.............. "폐하.........시급한 일입니다!!!" 들어본 적 없는 시니안의 초조한 목소리에 둘 다 움직임을 딱 멈춰버렸다. "무슨 일이냐............." "오늘 새벽에 반역자들이 도주를.................." '뭐.................?!!' 그제야 잔뜩 굳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녀석이 공포가 서린 눈으로 숨죽인 채 누워있는 내게 손을 뻗어 강하게 품에 안는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끔찍한 놈을............. Rubera(루베라) #172 "무슨 일이냐............." "오늘 새벽에 반역자들이 도주를.................." '뭐.................?!!' 그제야 잔뜩 굳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녀석이 공포가 서린 눈으로 숨죽인 채 누워있는 내게 손을 뻗어 강하게 품에 안는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끔찍한 놈을............. "폐하..............." 재촉하는 소리에 하얀 몸을 품안에 꼬옥 끌어안고 아쉬운 듯 몇 번이나 입술을 찍어누르더니 그대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내게서 떨어져 나간다. "아..............." 금새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며 몸을 떨기 시작하자 안심시켜 주려는 듯 반듯한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까만 머리칼을 쓸어준다. "다 끝나면................같이 돌아가자............." "응.........."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에 천천히 떨어져나가는 손을 차마 붙들지도 못한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급하게 침대 밑에 떨어져 있던 옷가지를 시종들의 도움 없이 정갈하게 차려입더니 커다란 대검을 쥐고 침실 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 뒷모습에............. 점점 멀어지는 녀석에................ 심장이 서서히 타들어 간다. 겨우 다시 만났는데............ 이렇게 보내면 다신 보지 못할 것만 같아서................ "티폰................" ............중증이다. 사내가 멀어지는 것을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다 결국 참지 못해 아픈 것도 잊고 몸을 벌떡 일으켜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흐윽............." 좀 전과 다르지 않게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온몸의 뼈가 엇나간 듯 쑤셔대는 느낌에 몸을 일으킬 생각도 못하고 작게 흐느끼며 바르작거리자 놀란 듯 성큼 다가와 바로 힘없이 늘어진 몸을 끌어당겨 품에 안는다. 귀찮은 내색도 없이 다시 번쩍 안아들어 침대 위에 올려놓으려 하자 필사적으로 목에 매달려 불안하게 떨려나오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나도 데려가!! 응? 나도 갈 거야!! 놓고 가면 다신 못 찾는 곳에 숨어버릴 테니까 알아서해............!!" 으름장을 놓으며 고집을 피우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따뜻한 몸을 꼬옥 끌어안는다. "케레스를 두고 갈 테니 얌전히 쉬고있어............" "싫어!!! 곁에 있어달라고 사정할 땐 언제고.............매일 혼자 두면서.............나쁜 놈.........." 이제...........혼자 남겨지는 건 지긋지긋하다. 이미 익숙해져 버렸다지만 버림받은 아픔이 무뎌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와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는 자식을 견디지 못해 죽어버린 어머니도......... 혼자 힘겹게 살아가는 자식을 보면서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던 아버지도............ 근거 없는 소문에 자신을 냉대해 온 주위 사람들마저도............ 혼자 남겨진 날.................. ....................돌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차가운 얼굴로 마음을 닫고 그렇게 돈에 집착하며 악바리처럼 살아왔다. 이렇게나 약한 주제에............... 강한 척 남을 속이면서................ 실은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바보같이........................ "혼자.................두지마...................." 서러운 마음에 울먹이며 품안에 파고들자 곧 가볍게 턱이 들리더니 부드러운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져 나간다. "정말.......................아직 어리군...................." 조용히 속삭이는 말에 까만 눈동자로 가만히 올려보다 조심스레 붉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감아쥐고 천천히 끌어내려 입술을 포개자 핏빛 눈동자가 살짝 열기를 띄기 시작한다. 먼저 키스해 주는 건 꽤나 드문 일이라 거부할 수 없다는 건 이미 알고있다. 재촉하듯 입술을 밀착해오는 느낌에 겨우 웃음을 참아가며 촉촉한 혀로 부드러운 살점을 핥아주자 만족하지 못한 듯 낮게 신음을 울리며 커다란 손으로 슬그머니 엉덩이를 움켜쥔다. "으응................아파................"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며 칭얼대자 바로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와 혀를 감아온다. 금새 통증을 쾌감으로 바꿔버리는 키스에 할딱이며 매끈한 다리로 사내의 허리를 감아 끌어당기자 망설임 없이 하얀 나신 위에 자신의 체중을 싣고 붉어진 입술을 정신 없이 탐하기 시작한다. "하아..................." 멈추지 않는 키스에 숨이 막혀 꼼지락대며 고개를 휘젓자 뜨거운 입술로 민감한 귀를 더듬어 부드럽게 애무해 간다. "아.....응...................." 말캉한 혀가 귓속을 파고드는 느낌에 교성을 터뜨리는 순간................ "폐하!!!!!!" "흑..............!!" 갑작스런 음성에 놀라 신음을 삼키자 귓불을 깨물어대며 할짝이던 녀석도 정신을 차린 듯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움직임을 멈춘다. "시니.....안................?!!" 상황도 잊은 채 또 일을 벌일 뻔했다. 당혹스런 눈으로 사내를 올려보자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잔뜩 미련이 남은 손길로 하얀 허벅지를 쓸어대다 결국 아쉬운 듯 짧게 입을 맞추고 불만스레 말을 뱉어낸다. "먼저 추격해라. 바로 뒤쫓을 테니............" "예.........." 문 밖에서 명을 기다리던 시니안이 바로 물러나자 녀석의 허리에 감겨있던 다리를 슬그머니 풀고 삐죽이며 말을 던졌다. "어린애한테 이런 짓 하면 범죄 아냐.........?!!" 아직 어리다는 녀석의 말이 분해 유혹을 했지만 지금은 침대 위를 구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녀석도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겨우 열기를 식히고 내게서 몸을 일으키며 태연하게 말을 뱉어온다. "확실히........................ 아직 솜털도 못 벗은 어린애치곤 지나치게 색기가 짙어 탈이군............" "뭐............뭐가 솜털이야??!!!! 좀 적은 거 뿐이잖아!!! 그 빨간 눈깔은 장식이야?!!" 환히 드러난 알몸을 구석구석 훑어보며 지껄여대는 말에 화를 참지 못하고 꽥 소리치자 다시 짓궂은 눈빛으로 터무니없는 말을 쏟아낸다. "큭, 그러고 보니................ 감도는 좋은데 앙탈도 심하고........... 밤마다 품에 안아 재워주지 않으면 뒤척이기만 하고............ 씻어주지 않으면 미끌미끌한 채로 그냥 나와버리고.......... 옷도 아직 스스로 못 입어 앞뒤도 구분 못하고................. 품에 안겨선 옷에 붙어있는 보석만 만지작거리고.......... 입을 맞추면 호흡도 나눌지 몰라 헐떡이고............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왠지 둔하고........... 어리광쟁이에 외로움도 잘 타고........... 역시.................. 키우기엔 약간 까다롭군............." "우..........웃기지마!!! 감도?!! 그게 뭐야? 밤마다 뒤척이는 건 네놈이 숨도 못 쉬게 들러붙어서 그런 거고........... 욕실에선 짐승같이 자꾸 덤벼드니까 대충 씻고 뛰쳐나와서 그런 거고.......... 오..........옷은...........씹....그 딴 나풀나풀한 옷에 앞뒤가 어딨어?!!!!!! 그리고 갑자기 보석 얘기가 왜 나와?!!!!! 쪼잔한 놈!!! 지금까지 그딴 걸로 삐져 있었냐?!!! 게다가 누가 누굴 키운다는 거야?!!!!!!!! 이 새끼가 벌써부터 망령이라도 난 거 아냐?!!! 아무리 돈이 많아도 벽에 똥칠하는 날이 나 도망가는 날인 줄..................." "도망?" 시근덕대며 꽥꽥거리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자신도 놀랄만한 순발력으로 재빨리 말을 얼버무리기 시작했다. "응? 아..........아니............돈만 많으면 도망 안 간다구...........빠..........빨리 시니안 쫓아가야 하는 거 아냐?" 말을 돌리며 몸을 일으키려하자 음산한 목소리가 귓속에 파고든다. "도망치다 잡히면............일주일간 벌거벗겨 침대 위에 묶어둘 테다................" '헉, 벼..........변태새끼...............' 녀석이 내뱉은 말에 입도 뻥긋 못하고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다 슬그머니 시트를 당겨 몸을 가리자 한참을 노려보던 녀석이 갑자기 손을 뻗어 겨우 덮은 시트를 확 걷어내더니 바로 내 몸을 번쩍 안아 올려 침실 한켠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뭐...........뭐야? 설마 도망갈까봐 홀랑 벗겨서 데리고 나가려는 건 아니............겠지?' 터무니없는 생각에 죄지은 사람 마냥 두근두근 대며 눈치를 보자 조용한 음성이 귓가에 스쳐온다. "뭐든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에도 말썽을 일으키면 침소 안에만 가두어둘 테니 내 곁에만 꼭 붙어있어..............." "내............내가 무슨 말썽을 피웠다고.................!!!!!" 사고뭉치 애새끼 취급에 발끈해 바락 소릴 지르다 조용히 노려보는 눈빛에 감히 대들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며 궁시렁대는 동안 녀석의 품에 안겨 도달한 곳은 침대에서 몇 발짝 떨어져 있지도 않은 작은 공간...... 평범하지만 한 눈에 봐도 고급임에 틀림없을 옷가지들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벌거벗긴 채 데리고 나갈 생각은 아닌 모양............... 몰래 안도의 숨을 내쉬며 옷가지를 바라보자 내 몸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고 꽤나 기분 나쁜 표정으로 옷들을 뒤적이더니 그 중에서도 가장 단순한 모양의 천조각을 집어들어 머리서부터 덮어씌운다. 입혀주는 대로 얌전히 꿰어 입자 내 세계에선 여자들이나 입을 법한 새하얀 원피스...... 이곳에선 잠옷으로 입기도 하지만 사내놈이 변태 마냥 치마를 입는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다. 다행히 화려한 장식은커녕 무늬하나 없어 황성에서 입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하긴 하지만........... "이런 건 싫단 말야................." 항상 이 녀석과 몸을 섞고 죽은 듯 잠이 들었다 깨어나 보면 모르는 사이 깨끗이 씻겨져 잠옷이랍시고 원피스 모양에 숨이 막힐 만큼 화려한 옷이 입혀져 있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에 익숙해 질 만도 하지만 아무리 치마 같지 않게 밋밋하다 해도 멀쩡한 정신으로 원피스 잠옷 따위 입을 턱이 없다. 그런 걸 입고 자느니 차라리 다 벗고 자는 쪽을 택하지만 시종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아침엔 어김없이 입혀져 있는 게 보통이다. 미간을 찌푸리며 환자복 같은 잠옷을 불만스레 내려보는 사이 검은 망토로 몸을 감싸더니 머리 위로 두건을 깊숙이 덮어씌운다. "뭐.........뭐야?!!!"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아 허우적대다 시야를 가리고있는 검은 천을 확 들어올리자 그게 맘에 들지 않는 듯 잔뜩 미간을 찌푸린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가리고있어..........." "우왁!!!!!" 다시 두건을 덮어씌우곤 바로 몸을 안아드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목에 매달리자 그대로 침실 밖으로 나가 어두운 복도로 발을 내딛는다. "어찌 된 거냐........분명 잘 감시하라 했을 텐데............." 지금까지완 다르게 녀석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자 침실을 나오자마자 뒤따르던 병사들 틈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평범한 저택이 아니었습니다. 요새처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지만, 곳곳에 숨겨진 비밀통로가 뚫려있어 구조를 알고있는 자가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건............" "교활한 것들..............." '케레스.............?' 분노한 사내의 목소리는 뒤로한 채 단단한 어깨 너머로 보이는 잿빛 사내를 슬그머니 올려보자 온화한 눈빛으로 내게 시선을 맞춰온다. "풉..........................!!" 씨익 웃는 순간 어떻게 눈치 챈 건지 질투쟁이 녀석이 갑자기 뒤통수를 확 끌어당겨 내 얼굴을 자신의 가슴위로 박아버리는 바람에 바람 빠지는 소릴 내며 버둥거리자 화가 난 듯 낮게 으르렁대며 협박을 해온다. "혼자 이곳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싶은 거냐............" '쳇............나쁜 변태 새끼.............밴댕이 소갈딱지 같으니라구...........' 속으론 갖은 욕을 다 하면서도 겉으론 얌전히 품에 안겨 고개를 휘젓자 그제야 미간을 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서둘러 도착한 곳은 저택 구석에 위치한 작은 객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붉은 황제를 보자마자 사색이 되어 바닥에 엎드리자 굳게 닫힌 문을 거칠게 밀어젖히고 안으로 성큼 들어선다. 갑자기 코끝을 스치는 혈향에 흠칫 몸을 굳히자 우뚝 멈춰선 녀석이 날 바닥에 내려놓곤 무겁게 입을 열어온다. "이게..........대체 어찌된 일이냐..............." '무슨....................?'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녀석의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고 뒤돌아보자 저택 안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둑한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다른 곳보다 더 음침하다. 창도 없는 완벽한 밀실................ 게다가................ 처참하게 숨이 끊어진 시체............ ***감상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Rubera(루베라) #173 "이게..........대체 어찌된 일이냐..............." '무슨....................?' 심상치 않은 목소리에 녀석의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고 뒤돌아보자 저택 안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어둑한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아니..................... 다른 곳보다 더 음침하다. 창도 없는 완벽한 밀실................ 게다가................ 처참하게 숨이 끊어진 시체............ "헉...............!!" 숨쉬는 것도 잊은 채 싸늘하게 식은 시체를 놀라 바라보자 커다란 손이 눈을 가려 품안으로 끌어당긴다. "병사들이 오늘 새벽, 황성으로 이송하려고 안에 들어섰을 땐.........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촛대에 심장이 꿰뚫려 죽어있는 건 분명.............. 선대 황제에게 사랑하는 여인을 빼앗기고 지금껏 복수의 칼날을 갈아왔던 로키안................... 자살일 리가 없다. '스턴....................이 지독한 놈................' "18년 전 죗값을.............뒤늦게 받았군. 그것도 자신의 혈육에게........" "18년...........전?!!! 다 알고 있었던 거야?" 놀라 녀석을 올려보자 씁쓸한 눈빛으로 마주보며 말을 꺼내온다. "지난 밤 네가 잠들었을 때................시온이 잠깐 침소에 들었다............" '그런가.................' 기억조차 못하는 자신의 모친이 허무하게 죽임을 당한 것도.............. 스턴과 슈안의 일도.............. 2년 전 황제의 암살도 모두............... 꽤나 충격적인 사실이었을 텐데.............. 역시나............강한 녀석................ 오히려 내가 더 안쓰러운 듯 뺨을 쓸어오는 느낌에 녀석을 꼬옥 끌어안자 케레스가 다시 무감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스턴과 미르니안 미르헨은 테이블 밑에 감춰져있던 비밀통로를 이용해 수도 쪽으로 향한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바닥이 뻥 뚫려있다. "시온하고.....................리오는?" 퍼뜩 떠오른 생각에 티폰을 올려보자 케레스가 대신 말을 받는다. "시온님은 소식을 듣자마자 추격대를 따라가셨고................리오라 하심은.........?" "감옥에 있던 그 녀석!! 나랑 비슷한................" "일단 다른 침소에 가둬두긴 했지만..............처분은 폐하께서................." "풀어 줘!!!" 티폰을 돌아보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차갑게 입을 열어온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놓아주기로............약속했단 말야............." "순진하게 또 무슨 짓에 속아넘어간 거냐. 미천한 것이 감히.............!!!" "그게 아냐!!! 도대체 어쩔 셈이야...............?!!" "......................" "죽일.................거야?!!!" "................" "말도 안 돼..................." 충격에 가늘게 몸을 떨기 시작하자 달아나기라도 할까 하얀 손목을 아프도록 강하게 움켜쥔다. "황태자놈의 숨통을 끊어놓지 못한 것도 충분히 후회하고 있으니........." "그 녀석이 날 살렸다면..............그래도 유이 녀석처럼 내칠 거야?" 차갑게 가라앉은 붉은 눈동자를 마주 노려보며 말을 뱉어내자 굳은 표정으로 날 내려본다. "무슨 소리냐............" "그 녀석.............내 대신..................." 말을 잇지 못한 채 입술을 꽈악 깨물자 가만히 손을 뻗어 하얀 목에 생긴 검붉은 멍 자국을 조심스레 쓸어온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다시 말을 꺼내려 녀석을 올려본 순간 조용한 음성이 귓가에 스쳐온다. "풀어줘라.............." '뭐?!!!' "대신..............그 얼굴로 귀족들에게 몸을 팔지 않도록 오늘부터 노예신분에서 해방시키고 평생 먹고살 만큼 금화를 쥐어 줘............" 잘해야 몸 성히 놓아주는 것이 고작 이라 생각했는데.............. 뜻밖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보자 가만히 내 손을 쥐고 비밀통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역시................단순한 폭군은 아닌 모양..................... "근데 유이 녀석은 왜 그렇게 대하는 거야?" 슬그머니 미소지으며 혼잣말처럼 중얼대자 눈에 띄게 싫은 내색을 하며 손을 아프도록 꽈악 움켜쥔다. "그 놈은 다신 볼 생각하지마................" "싫어!!! 그 자식이 나한테 진 빚이 얼만데!!!!" 내기에 걸었던 빚이 수두룩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키리안 숲에 있을 때 미리미리 받아두는 건데............... "그러고 보니.............뮤즈니안의 황태자께선 어제 밤늦게 고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유이............?!!! 그 자식도 여기 있었어?!!!' 신경질적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티폰에게 끌려가며 케레스를 돌아보자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하류님께 전하라 전언을 남기셨다했는데................" "뭐라고?!!" "소중한 걸 되찾고 싶으면 직접 훔치러 오라고...................." '소중...........한 것.............?!!' ".....................아?!!!!!" 내 루비하고 사파이어.................그 자식이 멋대로 가져가 뮤즈니안 황성에 있는 자신의 침소에 놓아두었다 했다. '빌어먹을 자식!!!!' "그리고..............지난번에 한 약속도 빠른 시일 안에 지키겠다고................" "약속................?" '내기 건............인가..............' 그 자식.............. 크리올라 황성에 눌러 앉던지......... 키리안 숲의 도적단을 황제의 숲으로 옮겨놓아서라도 항상 곁에 있겠다고 했다. 황제가 되기 전까지............... '하아............일 났군............' 그 놈.............보통 고집이 아니니 제 입으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하려할 테고......... 게다가 티폰이 그걸 알면 황제의 숲에 불을 질러버릴 지도............... "타국의 황태자가 한 말을............귀담아 들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응?' 잿빛 사내를 바라보자 왠지 티폰과 비슷한 표정으로 입을 꾸욱 다물어 버린다. '뭐야?!!' "왁!!!!!!!" 의아한 눈으로 두 녀석을 바라보다 손목을 확 끌어당기는 바람에 짧게 비명을 지르며 앞서가던 티폰의 허리에 매달리자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뭐야?!!! 이 자식!!!!!!!' "아프잖아!!!!!" 이를 뿌득 갈며 잡힌 손목을 빼내려 손을 비틀자 그제야 우뚝 멈춰 서더니 말없이 핏빛 눈동자로 가만히 노려본다. '또 뭐가 꼬인 거야?!!!!!' 사납게 눈을 치켜 뜨고 확 성깔을 부리려다 무시무시한 눈빛에 조용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파............." 조그맣게 웅얼대자 그제야 손목을 쥐고있던 힘을 늦추는가싶더니.............. "뭐.............흡...................." 갑자기 허리를 감아 끌어당기는 바람에 놀라 고개를 들어올리자 바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춰온다. "으응.................!!!" 고개를 휘저어 녀석의 입술을 떼어내자마자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릴 질러 버렸다. "미.........미친놈!!! 하아............뭐...........뭐 하는 거야?!!!! 비켜................!!!" "헉....................!!" 잔뜩 악을 써대며 발버둥친 보람도 없이 주변에서 울려오는 경악성에도 아랑곳 않고 녀석이 다시 고집스레 입을 맞춰오자 별수 없이 얌전히 사내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젠장!!!!!!!!!' 애초에 세계가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고집불통 집착덩어리 황제녀석은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불타오른다는 것을 깜박 잊고있었던 게 실수였다. "하아..............." 이미 녀석이 주는 쾌감에 익숙해질 만큼 익숙해졌음에도 뜨겁고 습한 입술이 각도를 바꿔 겹쳐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사내를 유혹하듯 헐떡이는 숨소리를 내뱉으며 달콤한 키스에 정신 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으응............" 잔뜩 독점욕을 드러내는 사내의 붉은 눈동자에 얼굴을 붉히며 신음을 흘리는 순간 따뜻한 혀가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와 부드럽게 민감한 점막을 쓸어온다. 정신 없이 뛰어대는 심장박동과 끈적하게 들러붙는 시선에 녀석을 올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눈을 피하자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서있는 병사들과 표정 하나 없이 날 바라보는 잿빛 사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무표정한 케레스완 달리 고개를 푹 숙인 사내들은 집채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새파랗게 질려 식은땀까지 흘려대고 있었다. 병사들도 나름대로 난감함에 그대로 맨바닥에 머릴 박고 그나마 편히 죽고싶은 심정............ 황제의 살기 띈 눈빛에 감히 얼굴조차 올려볼 수 없었던 소년은 분명 저 잔혹한 황제가 애지중지 한다는 소문의 루베라가 틀림없을 터............. 온통 까만 망토로 덮어놓은 걸로도 모자라 두건까지 깊숙이 눌러 씌웠지만 언뜻언뜻 보이는 하얀 얼굴과 황홀할 만큼 새카만 머리칼은 넋을 잃고 훔쳐보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지 못할 만큼 짙은 빛깔의 눈동자............ 지금까지 본적 없는 진귀한 색이다. 이건............소문으로 듣던 것 이상................ 아니.........고귀한 황제께서 손수 저 아이의 몸시중까지 들고 있다 떠들어대는 시녀들의 터무니없는 수다 마저도 이젠 믿을 수 있을 지경.............. 하지만..................... 아무리 현 황제의 하나뿐인 루베라라고 해도 감히 황제를 거절하고 욕설까지 해대는 것을 보곤 그야말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버렸다. 황제가 분노하면 주변에 있는 자신들까지도 무사치 못할 것은 물론이요, 가벼운 언동에 저 예쁜 목이 달아날까 저도 모르게 조마조마해진 까닭이다. 정작 자신은 그런 주변의 생각 따윈 꿈에도 모르는 듯 하지만................ "또..............어딜 보고있는 거냐..........." "아.......응...............아파...............흑.....................하........하지마!!" 잠시 병사들에게 눈길을 준 것 가지고 화가 난 듯 으르렁대더니 타인의 시선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금새 망토 안에 손을 넣어 얇은 천 하나로 가려진 엉덩이를 부드럽게 애무해가며 달짝지근한 키스를 해온다. 전보다 훨씬 심해진 집착이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쉽사리 밀어내지도 못하고 민망함에 눈을 굴리다 우연히 시체가 기대있던 벽 쪽에 시선이 박히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그대로 굳어버렸다. 뭔가.................. ................이상하다. 왠지 부자연스런 광경.................... 사내가 갑자기 굳어버린 내게서 입술을 떼어내고 걱정스레 내려보는 것도 모른 채 한쪽 벽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그림에서 한참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속았어........................." "무슨..............." 핏자국이 여기저기 튀어있는 벽면을 가리키자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녀석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한다. 시체가 쓰러져 있는 벽 한 면엔 그렇게도 핏방울이 흩뿌려져 있는데................... 그 위에 걸려있는 그림은 이상할 만큼 깨끗하다. "시니안을................다시 불러들여............." "예............." 심상치 않은 티폰의 명에 그나마 남아있던 병사들마저 당황한 표정으로 시니안이 들어섰을 비밀통로로 사라지자마자 바로 시체가 쓰러져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벽에 걸린 그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평범한 풍경을 그려놓았지만 액자의 가장자리를 잡아당기자................ 탈칵............... 역시............ 다른 비밀통로를 가리고 있던 눈속임.................. 그림에 피가 튀지 않은 이유는 비밀통로를 가리고 있던 액자가 바깥쪽으로 열린 채 로키안이 살해당했기 때문................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액자의 뒷면엔 역시나 핏자국이 잔뜩 묻어있다. "어떻게 할거야?" 시니안을 기다리면 녀석을 영영 놓쳐버릴 지도 모른다. 지금 저택 안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케레스와 추격에는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시종들 뿐............ 하지만................. 추격이라 해도 도망친 건 귀하게 자란 귀족가의 소녀 하나와 뱀같이 교활한 녀석 하나............. 지옥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냥 시커멓게 뚫려있는 비밀통로를 섬뜩하게 노려보는 사내를 올려보자 지체 없이 통로 안쪽으로 발을 내딛는다. 눈빛을 보니 녀석을 잡으면 고이 죽이진 않을 모양............. 작게 한숨을 내쉬며 티폰을 따라 어두운 통로 안으로 들어서자 차갑고 습한 기운이 온몸에 파고든다. 소름끼치는 느낌.................. 이런 건................... ..............질색이다. 한심하게.............. ..............아직도 그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티폰............" 덜컥 겁이나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어대는 손을 뻗어 어둠 속을 휘젓자 따뜻한 기운이 바로 양손을 꼬옥 쥐어온다. 그런데................... '응?' 오른손을 움켜쥔 건 티폰이 분명한데.................. 왼손은.................... '케레스?' 보이지도 않는 어둠 속을 올려보는 순간 갑자기 오른쪽으로 휙 끌어당겨져 케레스의 손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정말............. 이런 어둠 속에서도 귀신같이 알아챈다. 간밤엔.............. 눈동자만 마주쳐도 사랑한다고 몇 번이나 말해줬는데............... '아직도 불안한 거야? 아님 믿지 못하는 거야..................' 불만스레 올려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불퉁하게 입을 열었다. "무서워서 그런 거 아냐.........그냥 추워서............." 따뜻한 온기에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아 얼굴을 붉히며 변명하듯 중얼대자 부드러운 입술이 뺨을 더듬어 온다. "떨지 말고..................바짝 붙어있어............." 왠지.............잔뜩 가라앉은 목소리............... 어쩌면............. 녀석도 아직 그때의 죄책감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괴로운 표정을 감추고 있을 지도............. "괜찮아..................." 앞서가는 녀석에게 바짝 붙어 허리를 슬그머니 끌어안고 혼잣말처럼 조그맣게 속삭이자 놀란 듯 흠칫 몸을 굳히더니 잠시 후 가만히 팔을 둘러 어깨를 감싸안아 준다. '난............괜찮으니까........................' 이번 일만 끝나면................. ..............끔찍했던 기억들은 모두 잊고 행복했던 과거처럼 다시 함께 살아가는 거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항상 곁에 있을 사랑하는 녀석에게 진하게 키스를 해주고............. 맘껏 어리광도 부리고............ 식사도 같이 하고.............. 아직 가보지 못한 정원 탐험도 다시 해 보고............. 서로 몸도 씻어주고............... 도둑 키스도 하고............ 밤엔 사랑을 나누고................ 가끔씩은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 하루종일 하는 일 없이 녀석과 침대 위를 굴러도 좋고............ 축제 때면 녀석을 졸라 몰래 밖에도 나가보고.......... 그렇게.................... Rubera(루베라) #174 어두운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역시나 황제의 숲............. 저택이 감춰진 곳이 황제의 숲 근처였기 때문에 아무리 땅을 파 비밀통로를 만들었다 해도 이 정도 길이면 숲에 맞닿을 수밖에 없다. 이상한 점은............... 크리올라의 수도로 뚫려있다는 비밀통로를 미끼로 쓰고 황제의 숲으로 숨어든 이유............. 도망치려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 섞여들어 가는 편이 더..................... "다른 나라로.............도망칠 셈인가..............." '뭐?!!!' 녀석의 갑작스런 말에 멍한 표정으로 올려보자 살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살짝 떨리는 붉은 눈동자로 숲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황제의 숲을 따라 가면 뮤즈니안의 국경............. 자신을 잡으려 혈안이 되어있을 크리올라보단 타국인 뮤즈니안에서 다른 나라로 숨어드는 편이...........훨씬 간단하다. '그 자식.................' 쫓기고 있음에도 용의주도한 점에는 변함이 없다. 잡히는 순간 목숨이 날아가 버릴 텐 데도.............냉정함을 잃지 않고 머리를 굴려 계산을 하고 있다. 미끼로 던져놓은 비밀통로............... 도주로는 수도가 아닌 황제의 숲.................. 게다가.............. 자신의 부친은 그리도 간단히 살해한 주제에..............도주에 오히려 방해가 될 미르니안은............왜...............?!! 모든 게 의문 투성이다. 오히려 이쪽이 덫으로 걸어들어 가는 듯한 착각이 일 만큼 불안하다. 거의 뛰듯이 걷고있는 티폰을 따라 숲길을 가로지르는 동안에도 제어를 벗어나 정신 없이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숨이 찰 지경...... 티폰과 꼬옥 맞잡은 손에도 식은땀이 차기 시작한다. "헉..........!!" 갑자기 이마에 와 닿는 차가운 손에 놀라 퍼뜩 정신을 차렸을 땐 어느틈엔가 녀석이 멈춰서 걱정스런 눈으로 날 내려보고 있었다. "아픈 건가...................." 뺨을 쓸어주는 손길에 불안을 감추고 고개를 휘젓자 그대로 손을 뻗어 허릴 감아온다. 사실...............스스로 걸어다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아프다. 고집을 피우긴 했지만 고작 이곳까지 걸어오는 데만도 잔뜩 열이 올라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 따뜻한 품에 안겨 까만 눈동자로 올려본 하늘은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무거운 구름으로 뒤덮여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은 하늘에서 눈을 돌려 다시 루비처럼 예쁜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자 길고 모양 좋은 손가락으로 연신 더운 숨이 새어나가는 입술을 가만히 쓸어온다. 시원한 느낌.................. 열을 식혀주는 손길에 자신도 모르게 뜨겁고 건조해진 입술을 차가운 피부에 부비며 스륵 눈을 감자 잠시 후 화끈한 감각이 입안을 채운다. 축축한 혀로 바짝 마른 입술을 적셔가며 몸을 더듬어오는 느낌에 힘없이 눈을 뜨자 잔뜩 열이 오른 몸을 눈치챘는지 화가 난 듯 미간을 찌푸린 사내가 시야에 들어온다. 애초부터 속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녀석에게 밤새 시달리면 다음날엔 일어나지도 못했으니................ 그나마 황성 안에선 안기 전에 그 달콤한 향이 나던 향유를 사용했기 때문에 잔뜩 흥분한 녀석이 내 안에 들어와 거칠게 움직여도 통증은 없었고, 안고 난 후에도 따뜻한 물에 담가 씻어주고, 마사지해주고, 궁의가 들어 약초로 찜질까지 해준 덕에 그대로 포근한 침대 위에서 한숨 자면 깨끗이 나아있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간밤엔 그리 다뤘으니 몸 상태가 최악이라 해도 당연한 결과............ 온몸을 갉아먹는 열기로 뇌가 익어버렸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입술을 떼어내는 느낌에 가물가물한 정신을 겨우 부여잡고 하얀 손가락으로 미간을 쓸어주자 귓가에 조용히 속삭여온다. "무리하지 말고 돌아가서 쉬고있어.......바로 돌아갈 테니..............." "싫어....................." 달래듯 뺨에 키스를 하며 속삭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화려한 옷자락을 꼬옥 움켜쥔 채 고개를 휘젓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케레스에게 말을 던진다. "데리고 돌아가 궁의에게 보여라. 내가 돌아갈 때까지 배불리 먹이고 재워둬........." 품에서 억지로 떼어내 케레스에게 넘기려하자 사내의 목을 꼬옥 끌어안고 다급하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픈 거 아냐. 응? 그냥 좀 더워서.............." "혼자 두지 말고.............잠이 들 때까지 곁에서 지켜............" "예..........." 기어코 돌려보내려는 모습에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귓가에 작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 자식..........안 잡을 거야? 지금 놓치면 나중에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변태 같은 자식이 내내 홀딱 벗겨놓고 침대 위에서 얼마나 주물러대던지.............. 반항하니까 신나게 두들겨 패고 더러운 걸 억지로 집어넣으려 해서 마침 손에 잡히는 걸로 머릴 갈겨버렸지. 뭐............바로 일어나서 목을 졸라대는 통에 시체가 될 뻔했지만................... 언제 또 나타나서 납치란 걸 하면 그땐 진짜 실컷 당하고 시체가 될지 몰라. 지금 당장이라도 저택으로 돌아가다 그렇게 될 수도 있고............." 겨우 통증을 참아가며 반쯤 과장되게 말을 뱉어내자 뜨거울 것처럼 붉었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싸늘히 식어간다. '너무................심했나...........?' 아무래도.............잔뜩 독이 오른 벌집을 들쑤셔 놓은 기분................... 소름끼치는 살기에 숨을 죽이자 섬뜩한 눈동자로 시선을 맞추며 조용히 속삭여 온다. "큭, 그 놈을 잡으면............더러운 물건은 네 손으로 자르게 해주마............" '피............필요 없어!!!!!!' 무시무시한 눈빛에 차마 본심은 말로 뱉지 못하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자 힘들이지 않고 내 몸을 번쩍 안아든 채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이런 속도로 가다간..........그대로 놓쳐버릴 지도 모른다. 쫓는 자는 여유가 있지만 쫓기는 자는 목숨이 걸려있으니.......... 그걸 잘 알면서도 고집을 피우는 이유는............. 어쩌면............. 마주치는 게 두려워 차라리 영영 보이지 않는 곳으로 달아나 버렸으면..........하는 게 본심일 지도................ "발견하면 둘 다 죽이지 말고 모두 생포해라. 상처를 내도 좋으니 숨통은 붙여둬................." "예..................!!" '뭐?' 갑작스런 말에 생각을 멈추고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보이는 건 숲의 갈림길......... 그리고................. 잿빛 사내가 언제나처럼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갈라지는 거야..............?'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떨어져 내리는 빗물에 목덜미까지 흘러내리는 잿빛 머리칼이 천천히 젖어든다. "케레스................" 그러고 보니................. 이 사내에겐 엄청난 빚을 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 대가를 당당히 요구했던 유이와는 달리, 내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항상 곁에 있어주었다. 보답 따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애정을 받아왔다. 버림받아 죽어 가는 날 살리려 목숨을 걸었고...................... 죽어 가는 순간에도..............날 위해 눈물을 흘려줬다. 이렇게 무표정한 얼굴이지만...............누구보다도 따뜻한 눈빛으로 날 지켜봐 줬다. "고마워............................." 지금까지 해주지 못한 말................... 우울한 날씨에 잠시 감상적인 기분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지만 꼭 전해주어야 할 마음............ 왠지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에 울먹이며 손을 뻗어 잘생긴 얼굴을 살짝 쓸어주자 하얀 손을 조심스레 움켜쥔다. 부드러운 입술이 손가락에 살짝 스치는 순간 갑자기 티폰이 심술궂게 몸을 돌려 발걸음을 옮기는 바람에 아쉽게 케레스가 멀어져 가는 걸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도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바로 뒤돌아 선다. "케레스도............시니안도............시온도............유이도..............모두................ ..................만나서 다행이야. 항상...............혼자였는데............ 이곳에선............... 과분할 만큼................너무 많은 걸 받았어. 다시 되돌려 줄 수도 없는데................." 따뜻한 품에 안겨 단단한 어깨 너머로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다 한참 후에야 부드러운 목덜미에 뺨을 부비며 사내의 얼굴을 슬쩍 올려보자 화가 난 듯 표정이 잔뜩 굳어있다. "큭, 설마................질투하는 거야?" 말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녀석에게 툭 말을 던지자 반박할 생각도 않고 붉은 눈썹을 치켜올린 채 날 내려본다. '하긴...........이 정도면 많이 참아준 건가............' 다른 자들이었다면 내 앞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 목이 날라 갔겠지만 케레스는............... 내가 막무가내로 우긴 덕에 어느 정도 용인이 되고 있었다. 뭐..........시니안과 시온은 눈치껏 알아서 하는 녀석들이니 말로 하면 입만 아픈 케이스고........... 유이 녀석은 자기 나라의 법도 지키지 않는 마이 페이스................. '그러고 보니 전부 이상한 녀석들뿐이군............. 어쨌든...........이 녀석도 어느 정도 유해진 건가............' 녀석의 목을 꼬옥 끌어안고 좋아하는 머리칼을 지분대자 뜻밖에 조용히 입을 열어온다. "케레스를 죽이지 않고 다시 불러들인 건 널 지키기 위해서다. 한번 상처를 입어 본 맹수가 더 사나운 법이니................. 정을 주고받으라고 살려둔 게 아냐................" "응................ 그래도............ 니가 제일 좋아............." 따뜻한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붉어진 얼굴을 묻자 그제야 온화한 눈빛으로 조용히 내려보며 말을 잇는다. "녀석들의 양친은 젊은 나이에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카이도가엔 어린 3형제만 남겨졌지. 가문을 잇기 위해 어려서부터 기사 수업을 받느라 집안엔 눈 돌릴 틈도 없었던 시니안을 대신해 케레스가 거의 10년 간 어린 막내를 키우다시피 했다. 어릴 적부터 유명한 녀석들이었지. 내 귀에도 들어올 만큼 황성 안에 소문이 자자했다. 장남은 무(武)로............차남은 문(文)으로............삼남은 미색(美色)으로............. 특히 삼남은 카이도가의 돌연변이라 불릴 만큼 차분치 못하고 천방지축이라 들었다. 피는 제대로 이어받아 검술은 뛰어났지만 그보다 뛰어난 미색 덕에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점점 빛을 잃어갔지. 그 때문인지 어린 나이에 충동적으로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결국............케레스가 그리도 아끼던 혈육은 전장에서 날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다. 굳이 목숨을 버려가면서 날 지키지 않았더라도 가벼운 상처로 끝났을 것을............ 카이도가의 혈통은 하나같이 융통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으니..........." ...................처음 들었다. 녀석이 묘하게 그 형제들에게 약한 이유....................... 융통성이 없다 투덜대지만............사실은 믿고있었던 거다.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곁을 지킬 것을................. "카이도가의 막내란 녀석............시니안이............나랑 많이 닮았다고 하던데............." "큭, 확실히............과거의 네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만..........지금의 너라면............닮았을 지도............." "무슨 뜻이야?!!!" 짓궂은 눈빛을 노려보자 입가에 미소를 띄운 채 말을 던진다. "차분치 못하고 천방지축에 덤으로 사고뭉치란 소리다.............." "이.......!!!!!" "그래도............ 너만한 미색은 아니더군............" "뭐?!!!!" '무..........무슨 미친 소리야?!!! 미색? 예쁘단 소리야?' 다른 녀석이 그딴 소릴 하면 주먹부터 나가는데 왜 이 녀석이 말하면 얼굴부터 붉히는 건지......... 주책없이 두근두근 대는 심장소리에 기가 막혀 화내는 것도 잊은 채 툭 말을 꺼냈다. "내가............예뻐?" "큭, 그래........... 벗겨놓으면 더.............." "벗겨? 뭘?" 진지한 눈빛에 의아한 듯 올려보자 웃음기 뭍은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온다. "내게 안기고 피곤해 잠이 들었을 때 깨끗이 씻겨 붉은 시트 위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눕혀놓으면 미칠 만큼................." "...................."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말도 잊은 채 바보처럼 입까지 떡 벌리고 바라보자 그대로 고개를 숙여 벌어진 입술에 쪽하고 키스를 하더니 다시 두건을 덮어 씌워 빗물을 가려준다. 한참을 그대로 굳어있다 큭큭대는 웃음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자식...............상당히 성격이 안 좋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에도 펑펑 울 때까지 놀린 적도 있다. 으득............... '젠장.........빌어먹을 변태자식, 자고있을 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귀까지 붉어져 얼굴도 들지 못하고 궁시렁대다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에 숨을 죽인 채 미소를 띄웠다. 그리도 갖고싶었던 녀석의 심장은 이미 내 것이 되어버려 이렇게................... 가슴 위에 가만히 귀를 갖다 대고 눈을 감으면............. 내 것과 같은 속도로 뛰어대는 심장박동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사실........................" 금새 쏴하고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조그맣게 말을 꺼내자 온화한 시선으로 날 내려본다. "..............생각만 해도 숨이 찰 만큼..............심장이 두근거려. 바보같이................말 한마디에도 눈물이 나고.......... 표정 하나에도 미친 것처럼 웃을 수 있어. 어떨 땐 시선만 부딪쳐도 백치 마냥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고............ 가끔씩..................... 언젠가 버려질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차라리................."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화난 듯 노려보는 눈빛에 생각을 멈추고 킥킥대며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큭, 농담이야!! 농담!! 그딴 생각 안 해!!!" 비가 내려서.................... ...................다행이다. "이런 기분이............... ..................평생 가는 걸까? 행복이란 것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거겠지?" 지금까지도..................그래왔으니................. 이번엔.................언제 끝이 나는 거지...........? "행복? 그딴 것에도 기한이 있다면...........평생으로 해두면 돼.............. 자꾸 쓸데없는 생각으로 혼자 울어대면 탑에 유폐시켜버릴 테니 계속해 봐............" "탑...............?"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뜨끔해서 젖은 눈으로 올려보니 내겐 시선조차 주지 않고 툭 말을 뱉어낸다. "황성 북쪽에 있는 탑....................." "헉....................." 시온이............유령이 나오는 탑이라고 했다. 거기서 죄인들이 잔뜩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하...........하하...........서.........설마..............누..........누가 울었다고..............." "....................." "가.........가두기만 해봐!!!! 밤마다 문이 닳도록 드나들 주제에...........!!" 꽥 소릴 쳐도 반응이 없다. "응?" 갑자기 멈춰서는 녀석을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으로 섬뜩한 살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큭,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폐하................." 귓가에 파고드는 끔찍한 목소리.............. 크게 뜬눈으로 위태한 다리가 걸려있는 절벽 끝으로 시선을 돌리자 금갈빛 짐승의 눈동자가 시야에 파고든다. "이런, 루베라까지 모시고 올 줄이야.............." 흠칫 놀라 티폰의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자 잔혹하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더러운 눈.............파내기 전에 치워라................" 평소처럼 미친 듯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차갑게 가라앉은 녀석은 공포에 심장이 얼어붙어 버릴 만큼 두렵기만 하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상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 같은 살기에 숨을 죽인 채 몸을 떨자 빗물로 질척해진 땅 위에 날 내려놓고 천천히 검을 뽑아든다. "물러나 있어............" "티폰............" 불안한 눈으로 올려보자 차가운 손등으로 하얗게 질린 뺨을 쓸어온다. "잠시면 돼................." 겨우 살기를 억누른 목소리에 더 이상 매달리지 못하고 옆으로 물러서다 충격적인 광경에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빌어먹을 자식의 뒤에........................ 차가운 바닥 위에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건 분명.................... "미르니안....................?!!!!" 핏기 하나 없는 몰골로 차가운 비를 맞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몸을 들썩이며 새빨간 핏덩어리를 토해내지 않았다면 주검으로 착각할 만한 모습.............. "도대체 무슨 짓을...................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큭, 어차피 죽어 가는 쓰레기 따윌 손댈 만큼 여유가 있는 게 아냐......... 하지만................ 그대로 그곳에 두고 오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고있으니.........뭐, 인질로서의 가치도 없는 것 같고........ 이곳에서 황제와 죽어주는 게 최선이군" "개새끼!!!!!!!! 네 여동생이잖아!!! 네 아버지였고........네 형이었잖아!!!!!!!" "정말.............아무것도 모르는군. 슈안은......미르헨가를 이용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일가를 몰살시킬 작정이었지. 황태자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해도 자신의 출생이 밝혀져 황가의 정통성에 의심받게 된다면 시온이나 다른 왕자들에게 반역을 일으킬 빌미가 주어질 테니까.......... 아무리 쌍둥이 형제라 해도 내가 살기 위해 죽인 것뿐이다. 그게 죄가 되는가?" 확실히..............슈안은 아무도 믿지 않았다. 자신의 혈육마저도............. 미르헨가를 티폰 만큼이나........................증오했다. 황제가 되면..................모두 죽여버리겠다고................ "게다가.............미르헨가의 가주 로키안은 권력욕에 자신의 여자를........... 내 모친을 희생시킨 최저의 쓰레기였지.........." "무슨 소릴.........하는 거야. 로키안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복수를.........." "역시........아직 어리군. 사랑? 그런 게 존재한다 해도..........쉽게 변색되어 버리는 거다" "그런 게..............." "부정하고 싶은가? 로키안도.............사랑이란 것 때문에 복수를 시작했지만 결국 탐욕에 눈이 멀어 자멸한 거다. 굳이 손을 쓸 필요도 없었지. 내 모친이 자신의 죄를 뒤집어쓰고 선대 황제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도 의심을 받을까 손 하나 까딱 않고 지켜보기만 했던 사내가 반역죄로 붙들려 자신의 목이 달아나게 생기니 정신이 나가버리더군. 귀찮을 만큼 더럽고 추악한 모습이 보기 싫어 깨끗이 죽여준 것 뿐이야. 어차피 그곳에 버리고 왔다면 저 잔혹한 황제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을 테니........" 어느샌가 날카로운 검을 빼들고 광기로 뒤덮인 시선을 내게 보내오는 녀석을 피해 성큼 뒤로 물러서자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작게 속삭여온다. "네 눈............... 큭, 죽이는 게 아까울 만큼...............꽤나 마음에 들었었지. 무가치한 것에 목숨을 내놓을 눈이다. 더러운 사내를 위해 목숨을 버렸던 내 어미처럼................." '무가치한................것.....................?!!' 붉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콰쾅!!!!!!!!!!! "헉.................!!!!!!" 고막을 찢어버릴 듯 한 천둥소리에 그대로 흙탕물 위에 털썩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흐윽................" 제어를 벗어나 미친 듯 떨어대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귓가에 부딪치는 빗소리와 번쩍이는 빛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와 뺨을 타고 흐른다. 사정없이 귀를 틀어막아도 날카롭게 파고들어 날............... ......................미치게 한다. 대지를 갈라놓을 것처럼 커다란 천둥소리에................... 붉은 사내가 넋이 나간 듯 검을 떨어뜨리고 바라보는 것도 모른 채 가슴이 들썩일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작을 해댔다. 멈춰버릴 것처럼 뛰어대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려온다. 섬뜩한 목소리와 끔찍한 비명.............. 공포에 도망치려 발버둥치자 그대로 흙탕물 위에 내리누르고 거칠게 밀고 들어온다. 흉폭한 움직임에 숨도 쉬지 못하고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흙바닥을 긁어대자 하얀 손가락이 찢어져 붉은 피가 베어 나온다. 고통을 참기 위해 씹어댄 입술이 다 헤어져 비릿한 핏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다. "아.......아.......난............흐윽.......죽이지 않았어......................내가 아니야.......................... 아파...................흐윽...........죽이지마..................." 어깨를 쥐어오는 손길에 곧 죽을 것처럼 떨어대며 머리를 휘젓자 강하게 품에 안는다. 두근............... 내 것과 다름없이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박동................ 아픈 울림에 숨을 죽이고 붉은 머리칼을 적시며 핏방울처럼 떨어져 내리는 빗물을 멍하니 바라보다 떨리는 입술로 작게 속삭였다. "티폰..............." 따뜻한 체온과..............익숙한 체향........... "흑..............미안.................... 미안해................."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고 소리 없이 흐느끼자 가늘게 떨어대는 몸을 꼬옥 끌어안고 말없이 달래준다. "흐윽................" 도대체.................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해야............... 얼마나 상처를 입혀야....................... 얼마만큼의 세월이 지나야.................... ......................잊혀지는 걸까................ 끔찍했던 과거는..................... "미안.......................흑................" "울지마............." 망가진 인형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눈물을 쏟아내자 차가운 손으로 젖은 뺨을 쓸어준다. "큭, 그리도 소중할 수밖에.............. 구속의 주술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다시 울려오는 섬뜩한 음성에 흠칫 몸을 굳히자 어느샌가 코앞까지 다가선 사내가 천천히 검을 들어올린다. "그렇다면....................." 티폰이 재빨리 바닥 위에 떨어져 있던 대검을 집어들어 막으려던 순간................... "심장에 새긴 루베라가 황제의 루펜타와 이어져 있다는 말도 사실이겠군................" '뭐?!!!!!' 날카로운 검날이 괘도를 바꿔 내 심장을 찔러들어 온다. ***하류, 티폰.....위태위태 합니다. 다음편이 마지막이 될 듯 하군요. 아직 다 쓰진 않았지만...... 잘 하면 이번주에 완결 올리구 주말에 외전 1편이 가능할 지도...... 아, 외전은............꽤 깁니다. ㅡㅅㅡ;; Rubera(루베라) -175- 完 붉디붉은 피가 쉼 없이 터져 나와 빗물에 씻겨 내려가고 있었다. "티..........폰....................." "하아........................" 왼손을 꿰뚫고 나온 검을 꽈악 움켜쥐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바로 가슴 위에서 검 끝이 멈춰 선다. "더 이상 움직이면 머릴 날려버리겠다" 내 심장에 겨눠진 검을 맨손으로 막고 스턴의 목에 검날을 들이댄 채 씹어뱉자 기분 나쁜 미소를 띄며 입을 열어온다. "큭, 그 전에 소중한 루베라의 심장을 꿰뚫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대치상태.................. "티폰...................." 날카로운 검에 관통 당해 핏줄기가 끊임없이 새어나오는 티폰의 손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자 차갑게 얼어붙어 있던 붉은 눈동자에도 초조한 기색이 스쳐간다. '도대체............무슨 속셈이야.............?!!!!!' 도망치지 않고 이곳에서 티폰을 기다렸다. 목숨을 포기한 거라면 지금 당장 내 심장에 검을 박아 넣는 것이 최고의 복수가 될 텐 데도 자신의 목에 겨눠진 티폰의 검 때문에 더 이상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티폰은 녀석이 내게 겨눈 검을 치울 때까지 꼼짝도 못할 상황................. 그리고 그건 녀석도 마찬가지................ 어떻게든...................... ..................주의를 끌지 않으면........................ "왜............... ..................티폰을 죽이려는 거야?!!! 다 끝났다는 거 알고있잖아!!!" 떨리는 손으로 티폰의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고 금갈빛 눈동자를 노려보며 말을 던지자 비웃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다. "다 끝나? 큭, 우습군.......날 너무 얕잡아본 거 아닌가............ 다음 수쯤은 얼마든지 생각해 뒀다" "다음......수.........?!!!"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무너뜨린 나라가 셋이다. 지금은 각 나라에 자신의 심복과 크리올라의 병사들을 분산시켜 안정을 꾀하고 있지. 시니안이 맡았던 페이란은 멍청한 폭군과 탐욕스런 귀족들이 지배하고 있어 전쟁으로 크리올라의 수중에 들어오기 전에도 폭동이 끊이지 않았던 나라였다. 여기 계신 황제폐하께서 손수 페이란 황제의 목을 베었을 땐 자국의 백성들마저도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하니 그 뒤처리를 맡았던 시니안이 생각보다 빨리 귀환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알데바란은............... 예전부터 전쟁을 모르던 평화로운 곳인 데다가 악귀 같은 놈이 맡았으니 곧 빠른 시일 안에 정리가 될 테고........... 문제는 테라................. 한참 왕권다툼이 일었을 때 무너뜨려 꽤나 애를 먹고 있지. 전장에서 숨통을 끊어놓지 못하고 놓쳐버린 정통 후계자를 필두로 반란이 일고 있다더군. 테라에서 유일하게 그들을 견제하던 세력도 황제께서 모두 몰살시켜버린 덕에 오히려 날개를 달아준 꼴이 됐다" '무슨.........소릴 하는 거야?' 알 수 없는 말에 티폰을 올려보자 눈에 띄게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 섬뜩한 눈으로 스턴을 노려본다. "네놈..............설마........................" "큭, 크리올라의 황제를 죽이는 대가로 테라의 황태자와 손을 잡았다면..........." '뭐?!!!!!!!!!' 경악한 얼굴로 올려보자 꽤나 유쾌한 듯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잇는다. "아무리 빼어난 수족이 있다 해도 머리를 잃게되면 혼란에 빠지겠지. 시온님으로서는 주인 잃은 맹수 세 마리를 다루기엔 역시 역부족일 테고, 시기 적절하게 군사력이 분산된 크리올라도 얼마 버티지 못할 터............. 그 자는 자신의 나라를 되찾고............. 난............ 썩은 귀족들을 회유해 슈안이..........로키안이 그리도 가지고 싶어했던 크리올라의 왕좌를 손에 넣으면 되는 거다" "웃기지마!!!!!!!!!!!" 그건..............티폰이 지금껏 목숨을 내걸고 지켜왔던 거다. 더럽게 뒤에서 칼을 겨누고 웅크리고 있다 가로챌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네놈 따위한테 죽게 할 것 같아?!!!!!" 사납게 노려보며 악을 쓰자 싸늘하게 표정을 굳히며 말을 뱉어낸다. "2년 전............선대 황제의 시체 앞에서 네게 했던 말이 있지" '2년.................전...............?' 『슈안도...........황태자도............모두 지옥에 떨어뜨려라..... 그러고도 살아남는다면...................... ............내 손으로 죽여주마.........』 "이제............그 말을...............지킬 차례다..........." 녀석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자마자 티폰의 손에서 붉은 핏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큭............" 까만 망토를 뚫고 살갗으로 파고들기 시작하는 검 끝을 막으려 더욱 세게 움켜쥐자 날카로운 검날이 티폰의 손가락에 깊숙이 박혀든다. "티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손을 꼬옥 쥐어줬던 따뜻한 손이............ 날 지키려 검에 꿰뚫려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고통스런 표정이................. 떨리는 손끝이.................. ..................심장을 아프게 찔러온다. 아무 것도 못하고 보호만 받는 자신이............. ............죽을 만큼.................싫다. "이 더러운 자식....................................!!!!!! 네놈이나............................... ...........................지옥에 떨어져 버려!!!!!!!!!!!" 퍼억-------!!! "큭!!! 이 살쾡이 같은................!!!!!!!!!"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녀석의 복부에 발을 내지르자 잠시 비틀대더니 바로 티폰의 손에 박혀있던 검을 빼내고 다시 내게 달려든다. "피해있어!!!!!!!!" 재빨리 내 몸을 한 쪽으로 밀치며 스턴을 막아선 티폰의 말에 겨우 몸을 일으켜 사정권에서 벗어나자마자 차디찬 바닥 위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하아..........하아............" 쉴새없이 쏟아지는 빗물에 몸이 식어 하얗게 질린 채 부들부들 떨어대고 있었다. 아까부터 지끈대던 머리가 이제는 깨질 것처럼 아프다. 굵은 빗줄기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정경 속에서도 현란하게 붉은 빛을 뿜어대는 사내를 돌아보자 금새 살기를 터트리며 광폭하게 검을 휘두르고 있다. 괴물 같은 녀석의 검술은 이미 본 적이 있지만................ 간발의 차로 그걸 다 막아내는 스턴의 검술은................. '도대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티폰도 검을 고쳐 잡고 격하게 끓어오른 기운을 순식간에 싸늘히 얼려버린다. "네놈...............황궁 검술 시합에서 일부러 케레스에게 패한 거였나?!!" '뭐?!!!!' "큭, 그 자는 복수에 눈이 멀어 간단히 속일 수 있었지만 폐하의 눈은 속일 수 없을 듯 하여 스스로 패배를 인정한 것뿐입니다. 눈에 띄어 좋을 것은 없으니..................." '그런..............' 일부러 졌다는 것은.............케레스보다 검술 실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단 소리............. 확실히............. 티폰을 상대로 저렇게 까지 버틴 인물은 시니안 외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채앵-------!!!! "크윽...........!!!" 역시 시니안 만큼은 아니다. 공격 위주로 움직이는 티폰에 비해 방어 위주로 검을 쓰는 스턴의 모습만 봐도 다친 왼손만 아니었다면 벌써 결판이 났을 게임.............. 움직일 때마다 티폰의 손에서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에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돕고는 싶지만 지금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그저 이렇게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해 검을 부딪치는 사내들에게서 시선을 돌리자 흙바닥에 시체처럼 축 늘어져있는 소녀가 시야에 들어온다. 결국엔 더러운 탐욕의 희생양이었을 뿐인데............... 그 대가는 너무나도 엄청났다. 아름다웠던 얼굴엔 병색만이 가득하고 탐스럽던 피부는 푸른 핏줄이 드러날 만큼 창백하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모습.............. 서둘러 다가가 차갑게 식은 뺨을 쓸어봐도 반응이 없다. 계속해서 입가에 흐르는 핏줄기를 보고 여린 몸을 안아 상체를 일으켜 주자 붉은 핏덩어리를 울컥 쏟아내곤 괴로운 듯 콜록이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괘............괜찮아? 어디...............아픈 거야?" 몸 여기저기 외상이 있긴 하지만 피를 토할 만큼 심한 건 아니다. 지난 번 저택에서 스턴과 다퉜을 때도 상당히 상태가 안 좋아 보였는데................ 빛을 잃어버린 밤색 눈동자가 잠시 허공을 헤매더니 검날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쇳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이채를 띄기 시작한다. "스..............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의 죽어가던 몸 어디에서 그런 기운이 나왔는지 앙칼지게 치뜬 눈에서 광기를 쏟아내며 손 쓸 틈도 없이 뛰쳐나가 겨우 티폰의 검을 막아내고 있던 스턴의 몸에 매달렸다. "네놈이...............네놈이 감히...................!!!!!!" "헉...............!!!" 원한에 찬 절규와 함께 짧은 신음성이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달려든 미르니안 탓에 채 피하지 못한 티폰의 검날이 스턴의 옆구리에 스쳐 새빨간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크윽.............이 독한 것!!!!!!!!! 역시 숨통을 끊어놓았어야 할 것을...........!!!!!!" "아악!!!!!!!!!!!!!!" 빗물에 젖은 머리채를 휘어잡고 거칠게 밀쳐내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이더니 그대로 절벽 끝으로 밀려난다. "위험.............."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손을 뻗어 절벽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는 미르니안의 손목을 움켜쥐자마자..................... 콰광--------!!!!!!! 굉음과 함께 빗물에 약해진 지반이 절벽 아래로 무너져 내리며 몸이 중심을 잃기 시작한다. "헉...............!!!!!!" 그대로 추락하는 순간.................. "크윽.........!!!!!" "티폰.......................!!!"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손으로 내 손을 움켜쥐고 있었다. "흐윽..........." 팔이 그대로 빠져버릴 것만 같다. 다른 손으로 겨우 붙들고 있는 미르니안은 이미 기절을 해버렸는지 미동도 없다. 너덜해진 녀석의 손이 검붉은 피를 쏟아내면서도 꽈악 움켜쥐고 있음에도 빗물과 핏물에 젖어 천천히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젠......장.............!!!!!! 하아............흑.....................!!!!!" 눈도 뜰 수 없을 만큼 쏟아져 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아프게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가 비친 순간 병신같이 울컥 눈물을 쏟아버렸다. 강철만큼이나 차갑고 단단했던 녀석은 이렇게......................... 항상 나 때문에 끊임없이 상처받고............... 항상 나 때문에 저렇게 아픈 표정을 짓고................ 항상 나 때문에 보인 적 없던 눈물을 비친다. 바보 같은 나 때문에.............. "질질 짜는 거.....................하나도 안 어울려............" 덜덜 떨리는 입술로 울며 웃으며 말을 하자 고통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내게 시선을 맞춰온다. 그렇게나 좋아했던................아름다운 빛깔인데.............. 지금은 왜 이렇게 아프기만 한 건지..................... "내가................전에 한 말 있지? 기억............나?" 이대로 있다간 모두...............죽게 될 거다. "멀리 떨어져도.........그 때처럼 다시 돌아올 테니까..........." 루베라 따위................새기는 게 아니었어.............. "1년이 걸려도......... 2년이 걸려도........ 10년.......100년이 걸려도......... 죽어도.........너한테 다시 돌아올 테니까..........."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게 이 녀석의 죽는 모습이란 걸 알았다면........... ...................절대 새기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까......................... .................지금은...................... .................놔줘...................." 잘 하면.................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폭우에 유량이 많아져 물살이 거세긴 하지만 맨바닥에 떨어져 즉사하는 것보다 살 확률이 더 높다. 그것도 절벽에 부딪치지 않고 무사히 물 위로 떨어졌을 때의 얘기지만................... 어쩌면............ 2년 전처럼 상처하나 없이 내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르고................ "기다리지 않는다고..................... .................분명 말했을 텐데..........!!!!" 갑자기 울려온 차가운 목소리에 차마 상처받은 얼굴을 보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래...........큭, 그랬지..........." 그래도............... ................살아만 있다면....................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거절당해도 견딜 수 있다. 이번엔 내가 먼저 다가서면 될 테니.............. "하아...........큭,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이 둘 다 지옥으로 떨어져 버리면 간단한 것을..................." "스턴........!!!!!!!!!!!" 지독하게 끈질긴 녀석이 뒤에서 검을 쥐고 비틀대며 티폰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놔!!!!!!!!!!!!" 뒤에서 자신에게 검을 겨누는 것도 모르는 지 미동도 없다. "티폰.....................!!!!!!!!!!!!!!!" '이 빌어먹을 고집불통!!!!!!!!!' "네놈 따위한테........................죽을 거 같아?!!!!!!!!!!!!!!!!!!" 광기에 젖어있는 금갈빛 눈동자를 노려보며 티폰에게 잡혀있던 손을 비틀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정신이 나간 듯 미동도 없던 녀석이 검을 쥐고있던 손을 내게 뻗어오려 한다. "바보 같은 자식!!!!!!! 나까지.....................죽일 셈이야?!!!!!!!! 빨리 놔!!!!!!!!!!!!!!!!" 티폰의 머리 위에서 검을 치켜드는 스턴을 보고 미친 듯 발악을 해대며 발버둥치자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던 따스한 체온이 빗물에 서서히 미끄러져 간다. "지금 같이 죽어도.............함께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네놈은 분명 지옥에 떨어질 테지만 난.............. 큭, 지금까지 지옥에 떨어질 만큼 못된 짓을 한 기억이 없다구.............. 그러니까................ 그때까지만....................기다려............. 지옥에 떨어질 만큼 못된 짓을 할 때까지만................." 그대로 추락해 가자 상처 입은 사내의 끔찍한 절규가 숲을 울리며 아프게 귓속을 파고든다. '티폰..................' 빌어먹을 눈물 때문에............. 마지막일 지도 모를 녀석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빗물에 씻겨 흩어지기 무섭게 다시 차 오르는 물기에...................... 차라리................... ................눈을 감아버렸다. 높이 치켜올려진 날카로운 검날이 그대로 붉은 사내에게 내리꽂히자 끔찍한 통증이 심장을 꿰뚫고 지나간다. "미안..................... ..............................사랑해...................." ***드디어 루베라 완결...........입니다. 외전 뒤에 2부가 있지만 1년 뒤에......라고 말하면 짱돌이 날아올까요? BGM은 GLAY의 逢궋궫궋氣持궭 입니다..... Rubera(루베라) -외전1- "하아..........하아.........." 가쁘게 숨을 내쉴 때마다 선이 예쁜 분홍빛 입술을 비집고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간다. 내둥 겨울 날씨답지 않게 선선하더니 12월에 들어 뼛속까지 얼려버릴 듯한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가파른 오르막길 거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 낡고 허름한 집으로 성큼성큼 뛰어오르는 발걸음이 멈춘 건 길가에 서있는 커다란 덩치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빌어먹을.............망나니 새끼.....!! 저 새낀 학교도 때려 쳤나..........?!!" 분명 새벽에 나설 땐 보이지 않았던 귀찮은 녀석을 잠시 노려보다 얇은 옷 사이로 파고드는 추위에 별 수 없이 몸을 움츠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귀찮은 것도 질색이지만 추운 건 죽을 만큼 싫다. 허름하지만 찬바람은 막아 줄 집구석에 들어가 빨리 따뜻한 밥이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이미 꽝꽝 얼어버려 감각도 없는 손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고 거의 빙판이 되어버린 오르막을 조심조심 올라서고 있는데............... '씹, 개새끼........하루도 거르지 않는 구나..........' 표정을 왕창 구기고 어느새 내 팔을 움켜쥐고 있는 녀석의 커다란 손을 노려보자 꼴에 또 화가 났는지 목소리를 잔뜩 깔고 싸가지 없이 말을 툭 내뱉는다. "새벽부터 어딜 싸돌아다녀?!!!!" '얼씨구..............' 이 새끼 완전 찰거머리 스토커다. 내가 지놈 마누라도 아닌데 왜 사사건건............. 장신인 녀석을 올려보는 것도 짜증이 치밀어 단정히 매어진 녀석의 교복 타이만 뚫어지도록 노려보다 거칠게 손을 쳐냈다. "빌어먹을................!!" 한 살이라도 더 쳐먹은 내가 참아야지........ "서.하.류!!!" "썅, 개새끼!!! 누가 그 이름 부르라고 했어?!!!! 죽고싶어?!!!" 어디서 뒷조사를 해서 성까지 알아낸 건지 멋대로 불러대는 이름에 제어를 잃고 뒤돌아 섰던 몸을 돌려 주름 하나 없는 셔츠의 멱살을 감아쥐자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재수 없게 내려본다. "어.디. 갔다 왔는지 물었어............" "하!! 이 개새꺄!! 보면 몰라? 밥벌이 갔다왔다. 나 니놈처럼 한가한 새끼 아니거든? 애새끼랑 놀아줄 시간 없으니까 또 병원신세 지고싶지 않으면 귀찮게 하지말고 빨랑 학교로 가서 빈 머리나 채우던가 엄마한테 가서 젖이나 더 쳐 먹어!!!" 몇 주전 두들겨 패서 금이 간 갈빗대를 쿡쿡 찌르며 협박을 해대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인지 미간만 구겨댈 뿐 씨알도 먹히지 않고 되려 아프도록 손목을 쥐어온다. "그딴 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 않으면............?!! 니 새끼가 나 평생 먹여 살릴 거냐?!!!!" "그래........" "하..........." 이 새끼 또라이 맞다. '생긴 건 멀쩡한 새끼가...........' 아니, 멀쩡한 것 이상이다. 확실히 잘난 얼굴........ 올려봐야 할 정도의 장신에 무슨 운동이라도 하는지 탄탄한 몸은 보통 사람도 주춤 물러설 정도의 위압감이 느껴진다. 살짝 찢어져 날카로운 눈매와 약간 갈빛이 도는 눈동자, 사내답게 시원하게 뻗은 콧날과 거만하게 치켜 올라간 입꼬리.... 부잣집 자식놈답게 내가 이전에 다녔던 고등학교 교복까지 제 놈 체형에 맞춰 입고 카탈로그에서 방금 빠져나온 모델 마냥 눈앞에 서있는 빌어먹을 자식은 내가 사는 허름한 동네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자 동네에서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망나니 새끼였다. 몇 달 전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동네 어귀에서 병신같이 다구리당하는 멍청한 자식만 도와주지 않았어도 이런 또라이 놈에게 시달릴 이유 따윈 없었던 것을............ 애초에 지랄 같은 성격으로 돈도 생기지 않는 일에 자꾸 휘말려 들어가는 게 문제다. 1년 전만 해도 얼굴만 얼핏 아는 땅콩 새끼 하나 구하려다 계곡 물에 빠져 죽을 뻔도 했다. 기가 막히게도 머리통이 깨진 채 정신을 차렸을 땐 기억상실이라도 걸렸던 것인지 나도 모르는 새 거의 1년이란 세월이 지나 있었지만.......... 뭐............ 어렸을 적에도 변태 새끼한테 납치 당해 2년 동안 행방불명도 됐었는데............ 이번엔 모르는 병원에서 1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있다 돈도 안내고 깨어나지도 않으니 귀찮아서 버린 거겠지..........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과거처럼 쓸데없는 일에 정신력을 낭비하고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간 1년의 세월 빼고.............내가 잃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처음부터 잃을 것 따위............내겐 없었으니.......... 아비라는 작자도 내가 그렇게 사라진 후 그대로 짐을 싸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고 들었다. 씁쓸하게 미소를 짓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샌가 습관처럼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있다. 게다가 생각이 콩밭에 가있는 사이 싸가지없는 스토커 자식이 단단한 팔을 둘러 차갑게 식은 몸뚱일 끌어안고 여기까지 뛰어오느라 제멋대로 헝클어진 까만 머리칼 속에 입술을 묻어온다. 평소대로라면 매몰차게 밀어내고 한방 날렸을 테지만............. 뼛속까지 시린 추운 날씨에..........오랜만에 맛보는 타인의 온기란 건, 기가 막히게도 쉽사리 밀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보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자 하얀 입김이 모양 좋은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간다. 처음엔 막무가내로 남의 생활에 밀고 들어오는 녀석이 맘에 들지 않아 죽도록 두들기고 친절하게 구급차까지 불러줬다. 그 날 밤 처음 붙었을 땐 꽤나 날카로운 주먹을 날리던 녀석이 얌전히 두들겨 맞기만 하는 게 이상했지만 정신나간 새끼가 머리를 잘못 맞았나 갑자기 달려들어 입술을 물어뜯는 통에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갈비뼈에 금이 가 병원에 입원할 정도까지 손을 봐줬다. 그 후, 얼마간 보이지 않아 안심한 것도 잠시........ 치사한 놈이 치료비라도 받아먹을 속셈인지 병원에서 방금 퇴원한 몰골로 다시 눈앞에 나타나더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지랄이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사람 여럿 죽일 눈깔로 노려보기만 하니............ 물론 치료비를 내 놓으라 해도 지금 아르바이트 비로 쏟아 붓고있는 병원비 만으로도 빠듯해 내놓을 돈 따위 내겐 한푼도 없다. 예전에 대학 가려고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둔 돈도 병원비로 홀랑 까먹어 버렸고........... 그러니............ 배 째라......새꺄........... 부잣집 망나니 아들놈 주제에 내 주머니까지 넘보는 새끼가 짜증날 뿐이다. "썅, 벼룩님의 간을 빼 쳐먹어라.........." 미간을 찌푸린 채 욕설을 내뱉자 미친놈이 어지간히도 추웠는지 남의 몸뚱일 숨이 막힐 만큼 강하게 끌어안고 아예 쥐어짜려 한다. '컥, 이 미친 새끼........추우면 방구석에나 틀어박혀 있을 일이지 왜 밖에 나와서 이 지랄야?!!' 숨이 막혀 녀석을 밀어내려는 순간 넓은 어깨 너머로 저 멀리 교복을 입고 정신 없이 뛰어가는 애새끼들이 눈에 들어온다. 벌써 새벽이 한창 지난 아침............ "야, 싸가지...........학교 안가냐?" "..................." 말이 없다. "또라이 너, 빽으로 그 학교 들어간 거 아니면 빨랑 학교나 가! 니 놈이 그 학교 1년 학비가 얼만 지나 알아?!!" "..................." "나 이래봬도 니놈 학교 선배다. 훈육 좀 받아볼래?" 선배가 맞긴 하다. 2학년에 올라간지 얼마 되지 않아 실종되고 1년 후엔 그대로 자퇴해 버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 끝내고 대학갈 준비는 하고 있지만............. "훈육?" 그제야 솔깃한지 미친놈이 시선을 맞춰온다. "그래.......이번엔 어딜 부러뜨려 줄............." 갑자기 입술에 닿아오는 생소한 느낌에 놀라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올려보자 뭔가 뜨겁고 축축한 것이 벌어진 입술 안으로 밀려들어온다. '뭐...........?!!' 저항할 틈도 없이 혀를 감아오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 혀를 뒤로 물리자 집요하게 따라붙어 부드러운 살점을 빨아댄다. 지난번처럼 미친놈 마냥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도 아니다. 똑같은 행위지만 어쩐지 다른 느낌.................... 차갑게 얼어붙은 입술을 핥아대며 잠깐씩 떨어져 나갈 때마다 하얀 입김이 시야를 가려온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행위에 몸이 굳어있다 시간이 갈수록 뭔가 빼앗아 갈 듯 격해지기 시작하자 녀석을 밀어내려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손에 닿은 녀석의 가슴에서 왠지 모르게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박동이 느껴진다. 순간 심장병이라도 있나 덜컥 겁이 나긴 했지만 녀석이 아픈 것 따윈 내가 알 바 아니다. 정신 없이 버둥대며 녀석의 가슴을 밀쳐버리자 순간 휘청 하더니 시야에 뿌옇게 흐려진 하늘이 들어온다. 빙판에 발이 미끄러진 모양............ '젠장................' 어딘가 깨지면 이 빌어먹을 새끼한테 치료비를 왕창 청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질끈 눈을 감은 순간......... 『사랑해............』 두근................... '뭐..............?' 『.........너뿐이다.......내겐........』 '누............구...........?' 『그러니.........거부하지마...........』 '무슨 소릴..............' 갑자기 시야가 확 붉어지는 찰라 몸에 가벼운 충격이 느껴진다. 차갑고 딱딱한 빙판 대신 왠지 단단한 쿠션 같은.............. 번쩍 눈을 뜨자............. '빌어먹을..................' 녀석이 내 밑에 깔려있다. '이 새끼.............도대체 뭐야? 뭘............한 거야?!!!' 혼란스런 눈으로 밑에 깔린 녀석을 바라보자 놀란 듯 표정을 굳힌다. "너.......... ............왜...........?" "응?" 눈가를 쓸어주는 녀석의 손이 물기에 젖어있다. '무슨.................?!!'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보니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계속해서 뺨을 타고 흐른다. "다친 거야?!!!" 흠칫 놀랄 만큼 커다란 목소리에 시선을 내리자 커다란 눈물방울이 툭 떨어져 녀석의 뺨을 적셔간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제멋대로 떨어져 내리는 눈물에 재빨리 눈가를 훔치고 붙잡을 새도 없이 녀석의 위에서 일어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다. 이런 행동............ 이해할 수 없는 육신의 반응에 머리가 따라가질 못한다. 심장을 죄어오는 통증에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질 듯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잠가버렸다. "하아...........하아............." "서하류!!!!!!! 문 열어!!! 열어!!!!!!!!!!!!" 등뒤로 문을 부셔버릴 듯 두들겨대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거칠게 숨을 내쉬며 멍하니 앉아만 있다 한참 후에야 겨우 바들바들 떨어대는 몸을 추슬러 욕실로 들어섰다. 입김이 나올 만큼 추운 날씨에도 땀과 눈물에 흠뻑 젖어버린 얼굴이 거울 저편에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보기 싫은 표정....... 샤워기를 틀자마자 차디찬 물이 온몸으로 쏟아져 내린다. 차가운 건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이런 달동네 꼭대기에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올 리도 없고 가끔씩 이렇게 머리가 지끈거릴 때면 차라리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차가운 물을 확 뒤집어쓰는 게 약이다. 서서히 몸이 풀리고 정신이 들기 시작하자 물에 젖어 무거워진 옷가지를 욕실 바닥 위에 벗어버리고 물방울이 튀어 부옇게 흐려진 거울을 손으로 가만히 쓸어 닦았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눈에 익지만..............어딘가 이질적인 모습............ 하얀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물에 흠뻑 젖은 머리칼은 밤하늘만큼이나 짙어 까만 먹물이 떨어져 내릴 것 같은 착각이 인다. 아직도 물기가 베어있는 눈동자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박은 곳은 왼쪽 가슴 위에 새겨진 붉디붉은 각인...... 겁이 날 만큼 강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붉은 문양에 차마 손도 대지 못하고 거울 위로 가만히 쓸어보니 욱신거리며 익숙한 통증이 심장을 죄어온다. 분명.............. 1년 전만 해도 등뒤에 있던 각인이 어느샌가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 위로 옮겨져 있었다.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건 원래 붉은 각인이 새겨있던 등 쪽엔 달갑지 않은 상처와 또 다른 문양이 남아있었던 것............ 상처는 절벽에서 떨어질 때 생긴 듯 하지만 모르는 사이 몸에 남은 흠집은 볼 때마다 어쩐지 좋지 않은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치료는 제대로 한 모양인지 심하게 상흔이 남진 않았지만 처음 봤을 땐 상처를 가리듯 정교하게 새겨진 문신 때문에 상처가 있는 지도 몰랐다. 무슨 색소를 쓴 건지 은빛 나는 맹수의 문양.............. 의사마저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한 문신이 들이박힌 곳은 분명 붉은 각인이 새겨있던 자리였다. 이상한 건.......... 1년 전만 해도 도려내고 싶을 만큼 끔찍스러웠던 붉은 각인이................. 본 적 없는 은빛 문양이.............. 우습게도 날 지켜주는 듯한 느낌과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을 함께 내어준다는 것........ 시야에 들어오면 이렇게 병에 걸린 것처럼 심장이 욱신거리고 머리가 지끈대지만 보지 않으면.........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만큼 괴롭고.............. ...............아프다. "큭, 설마............이 나이에.............심장병이라도 생긴 건가............." 자조적으로 웃어보지만 이놈의 거울이 실성을 한 것인지 거울 저 편에 보이는 녀석은 아파서 곧 죽을 놈처럼 눈물만 뚝뚝 흘려대고 있다. 그 꼴이 또 보기 싫어 거울 위로 물을 확 뿌려버리고 대충 얼굴과 몸을 씻은 뒤 욕실 밖으로 나섰다. 방금 전만 해도 문을 때려부술 것처럼 난동을 부리던 망나니새낀 지쳐 나가 떨어졌는지 비좁은 단칸방 안엔 적막만이 가득 내려앉아 있다. 시간을 보니 다음 아르바이트까진 아직 여유가 있다. 아침밥을 먹자니 입맛은 뚝 떨어져 버렸고 작은 창으로 보이는 하늘은 어느샌가 무거운 잿빛 구름을 품고 있어 몸이 축축 늘어지는 게................ 잠시만 눈을 붙이자는 생각에 대충 헐렁한 티와 바지를 꿰어 입고 두꺼운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 . . 『사랑해...........』 '응.............' 『이제....... ...........아무 데도 가지 마라..........』 '아무 데도.......... ..........가지 않아........................' 『.......내가 없는 곳에서 웃지 말고............. .......내가 없는 곳에서 눈물 흘리지 말고............. .......내가 없는 곳에서 숨도 쉬지마...........』 '니가 없는 곳에선................. ............죽을 거 같아..........' 『내가 있는 곳에서만........살라는 소리다......』 '왜.......................... ...............곁에 없는 거야...............?!!' 『날 사랑하니까 내 곁에 있어...........』 '나...........기다려 주는 거야?' 『또 사라진다면................ 이번엔............ ............기다리지 않아............』 '이 나쁜 새끼!!!!! 말했잖아!!!! 1년이 걸려도.........2년이 걸려도........10년.......100년이 걸려도......... 죽어도.........너한테 다시 돌아간다고.........!!!' 『기다리지 않을 테니.......... .......사라지려거든 다신 돌아오지 마라........』 "흑.............나쁜 놈.........재수 없는 변태새끼.........." 서럽게 오열하며 악을 써대다 흠칫 놀라 눈을 뜨자 뜨거운 물기가 뺨을 타고 흐른다. ***다음 편은 다음 주에...............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 Rubera(루베라) -외전2- '빌어먹을...............' 또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꾼 모양............... 눈물로 부옇게 흐려진 시야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다 손등으로 대충 물기를 비벼 닦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 샌가 주위가 어두워져 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무렵.......... 잠깐 눈만 붙인다는 게 중간에 깨지도 않고 퍼대 잤나보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임에도 멍한 머리로는 거기까지 생각을 이어갈 여유조차 없다. 비가 오는지 굵은 빗방울이 창을 때린다. 예전엔................... 비가 올 때마다 악몽이 두려워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비 맞은 쥐새끼 마냥 떨어댔는데........ 거의 2년 동안이나 악귀같이 따라붙어 날 괴롭혀대던 악몽이 하루아침에.......... 아니, 나도 모르는 1년 새에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처음엔 기뻐했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어쩐 일인지 마음 한켠으로 씁쓸함을 느끼게 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게 되어버렸다. 악몽을 꾸면 뭔가 떠오를 것만 같았던 1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완전히 백지가 되어버린 듯 하니까........... 가끔씩 이렇게 꾸어대는 꿈도 전처럼 끔찍한 악몽은 아니지만.......... 깨어나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슬퍼져 이렇게 궁상맞게 울어대는 거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삐걱대는 오래된 창을 멍하니 바라보다 익숙지 않은 체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야 시야에 들어오는 건 요 몇 달 간 익숙해져버린 망나니놈의 잘난 얼굴........... 이 미친놈은 애정결핍이라도 걸린 것인지 또 남의 몸뚱일 끌어안고 넉살좋게 내 집에서 잠을 퍼자고 지랄이다. 어떻게 집안에 들어온 건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씹..............' 문이 망가져 있다.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아직도 잠에서 깨지 않아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녀석을 밀쳐내려 해도 산만한 덩치는 꿈적도 하지 않는다. 같은 사내놈이 끌어안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인데.......... 우습게도............ 이렇게 따뜻하게 안아주면 올가미에 걸린 짐승 마냥 꼼짝도 할 수 없다. 미친 듯 화를 내기보단 품안에서 울고싶을 만큼 속이 쓰리다. 이 녀석의 품이 아닌..................좀더 따뜻하고 단단한................... '하, 미친............' 애정결핍이란 건 내가 걸린 모양이다. 터무니없는 생각에 거세게 머릴 휘젓곤 아직도 잠에 빠져있는 망나니 녀석을 거칠게 밀쳐버렸다. 아직은............... .........무너지고 싶은 생각 따위 없다. 내게도............ ............지켜야 할 게 생겼으니.......... 겨우 잠에서 깬 녀석이 갈빛 눈동자를 살짝 드러내자 바락 소릴 질러 버렸다. "썅,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저 문 고쳐놓고 빨랑 꺼져! 젠장, 아르바이트........또 잘리게 생겼잖아!!" 말도 없이 일하러 나가지 않았으니........ 한 곳은 잘만 말하면 넘어가겠지만 나머지 한 곳은 사장이 깐깐해 잘릴 거 같다. "이 곰탱이같은 새끼!! 문까지 때려부수고 들어왔으면 빨리 깨워야 할 거 아냐?!! 왜 옆에서 쳐 자고 지랄야?!!!" 괜실히 짜증을 내며 구석에 박혀있던 점퍼를 들어올려 몸에 걸치자 그때까지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던 녀석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강하게 손목을 쥐어온다. "또 어딜 가?!!!!!" 갑자기 버럭 질러대는 소리에 놀라 바라보니 뭐가 또 꼬였는지 죽일 듯 노려본다. 웃기는 놈............도통 속을 알 수가 없다. 싫어하면서도 이 놈의 똥고집을 미워할 수 없으니............ "마누라 보러..........." 녀석의 손을 털어 내며 툭 말을 던지자 눈에 띄게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동생이라며.........?!!!" "큭, 예뻐서 마누라 삼을 생각인데?" 자다 일어나 삐친 머리로 제 딴엔 살벌하게 노려보는 꼴이 우스워 킥킥대다 우산을 들고 뒤돌아 집밖으로 나서자 작게 이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바로 따라붙는다. . . . 버스를 타기 위해 한참을 걸었다. 추위가 아직 사그러들지 않았는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차가운 한기가 몸 속에 스며든다. "하아..............." 추위 따윈.........지독히 싫어하면서도 익숙했는데 언제부터인지 낯설기만 하다. 이렇게 혼자 걷고있을 때조차 당연히 느껴져야 할 온기가 사라져 버린 것처럼........... 무언가 이 손안에 있던 것을............빼앗겨 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애초부터.............누군가에게 빼앗길 만한 것 따윈..........쥐고있지도 않았던 주제에............ 지금까지..........빈손으로 살아왔던 주제에........................... 빨갛게 얼어있는 손을 잠시 들여다보다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게..............있을 리가 없잖아..............' 몸을 작게 움츠리고 빗물에 흠뻑 젖어버린 거리 위를 혼자 힘없이 걸어갔다. 앙상하게 잎을 떨어뜨린 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거리를 그렇게 지날 무렵.......... 우르릉............... "헉................!!" 갑자기 낮게 울려오는 천둥소리에 흠칫 몸을 굳히는 순간.......... 『키........ㄹ................』 "아.............?" 귓가에 스치는 바람소리에 모르는 사이 우산을 떨어뜨리고 한참을 뒤돌아보고 있었다. 누군가..................... 날....................... 부른 듯한.................. '누구.......................?' "뭐야?!!!" 다시 나를 현실로 끌어내는 목소리....... 아직까지 뒤쫓아오고 있었는지 차가운 비에 흠뻑 젖은 몰골로 내가 떨어뜨린 우산을 집어든다. '잘못...........들은 건가............' "하아.........." 어두운 거리 한켠에서 차마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녀석을 올려봤다. "왜 자꾸 따라다니는 건데? 미리 말해두지만 치료비 줄 돈 없으니까 귀찮게 해도 소용없어" "치료비?"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내려보는 녀석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찌르자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지금까지 실컷 괴롭혀놓고 오리발은............' "그것 땜에 지금까지 늘어붙은 거 아냐?!! 부잣집 자식놈이라더니 쩨쩨하긴..... 오늘도 아르바이트 잘리고...........미란이 병원비 대기도 빠듯해. 자꾸 짜증나게 들러붙지 말고 몸 대줄 테니까 패고싶은 만큼 패고 꺼져" 가뜩이나 기분도 지랄같은데 몇 대 얻어터지는 것도 꽤나 괜찮을 듯 하다. 미동 없이 서있는 녀석을 재촉하듯 올려보는 순간 거칠게 멱살을 움켜쥐더니 어두운 골목 구석으로 밀어붙인다. '빌어먹을 자식!!!! 맘대로 패라고 했다고 바로 이 지랄야? 썅, 일 못하게 어디 부러지기라도 해봐!!!!' 퍼억----------!!!!! 다가올 충격에 대비해 눈을 꼬옥 감아버리자 둔탁한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엄청난 소리에 반사적으로 눈을 번쩍 뜨자 내게서 빗겨간 녀석의 주먹이 허름한 시멘트벽에 박혀있었다. "돈? 그딴 것 때문에 내가 사내새끼 뒤나 졸졸 쫓아다니는 걸로 보여?!!" 시멘트벽에 무식하게 내질러 망가져 버린 녀석의 주먹에 섣불리 대꾸도 못하고 살기마저 내비치는 녀석의 갈빛 눈동자를 말뚱이 바라보기만 하자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여온다. "돈이 그렇게 중요해?" 당연한 소릴 지껄인다. 지금의 내겐...............절실하게 필요한 것.............. 고개를 끄덕이자 이미 대답을 알고있었던 듯 기분 나쁘게 킥킥대기 시작한다. "큭, 그럼............나한테 널 팔아.............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무슨..........?"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 호흡이 느껴질 만큼 얼굴을 바싹 들이댄다. "니 몸..............나한테 팔라고.........." "..............." '몸을....................팔아?' "............" "............" '왜? 어디에 쓸려고? 이 자식 꼰대가 무슨 조직 보스라더니........설마 장기매매라도 하는 건가?' 순간 미란이의 담당의가 수술이 필요할지 모르니 비용을 미리 준비해 두라 했던 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그것만해도 몇 천............ 지금처럼 일해선 쥐어볼 수조차 없을 만큼 터무니없이 큰 액수다. "얼마나...............줄 건데?" 까만 눈으로 올려보며 말을 꺼내자 매섭게 치켜 뜬 녀석의 눈동자엔 지금껏 타인에게 지겹도록 받아온 경멸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뭐야................ 결국..................... 네놈도 마찬가지잖아........................' 아직도 상처받을 자리가 남아있기라도 한 건지 멋대로 지끈거리는 심장에 미간을 찌푸리자 화가 난 듯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바로 귓속을 파고든다. "원하는 만큼 준다고 했잖아.........." "좋아.........그럼, 두 개 짜리 만 가져가........각막이든, 신장이든.......아, 간도 조금이면 상관없는 건가............." "도대체.........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분노를 넘어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녀석의 표정에 슬그머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지랄야? 이 새끼, 지금 나 놀리는 거 아냐?!!' 말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해 혼란스런 눈으로 올려보자 왠지 모르게 안심한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쥐고있던 멱살을 풀고 혼잣말을 하듯 중얼댄다. "젠장,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누가?!!!!!!" 발끈해서 노려봐도 방금 전까지 심장을 찔러대던 경멸의 빛은 온데간데없이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너..........재작년에 우리학교 수석으로 들어왔다며?" "뭐?" 엉뚱한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맞추자 갑자기 품안에서 작은 종이와 펜을 꺼내더니 뭔가를 휘갈겨 쓴다. "아르바이트 잘렸으면 우리 집에 와서 일해......." "무슨?" "내 과외......" 뜻밖의 말에 놀라 바라보자 손에 하얀 종이를 쥐어준다. "주소야. 한 달에 200. 시간 나는 대로 와서 가르쳐" "뭐?!!!" 터무니없는 액수에 의심스런 눈빛을 보내자 시건방진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린다. "왜? 부족해?" "미친........." 눈빛을 보니 거짓부렁은 아닌 듯 하다. "돈은 성적 오를 때마다 올려줄 테니까............" "몇 등이나 하는데?" "바닥이다. 꼴등............." '미친놈이 머리도 나쁜 주제에 매일 학교도 안가고 잘난 척을 했단 말야?!!!!!' "오늘부터야..........병원 들렀다 바로 와............"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서 어두운 거리로 사라지는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다 손에 쥐어진 하얀 종이를 내려보니 망나니 녀석의 집 주소가 적혀있다. 역시나 내가 사는 곳과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부자동네......... 한참동안 종이를 쥐고 고민하다 결국 품안에 대충 우겨 넣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뭐야? 처음부터 공부를 가르쳐달라고 할 것이지 뭘 팔라고 지랄야?" 투덜대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고 커다란 병원 근처에서 내려 익숙한 병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벌써.........자는 거야?' 실망한 표정으로 침상으로 다가가니 동화 속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 아름다운 소녀가 고른 숨을 내쉬며 잠에 빠져있었다. 어두운 곳에서 보면 까만 색과 흡사하지만 진한 고동색 머리칼과 우윳빛 하얀 피부..... 지금은 꼬옥 감겨있지만 마찬가지로 짙은 눈동자는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답다. 안쓰러운 듯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쓸어보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한참동안 하얀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1년 간의 실종으로 잃은 건 없었지만............얻은 건 하나 있었다. 작은 손을 꼬옥 쥐고 슬그머니 미소를 띄우다 자꾸 병실을 들락거리는 의사와 간호사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 놈의 병원은 어찌된 게 매번 이렇게 요란스럽다. 별로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데 자꾸 들락대니.......... 게다가 흘끔흘끔 곁눈질까지 해가며............ "쯧........" 하긴 미란이가 예쁘긴 엄청 예쁘지......... 외모를 보면 외국인인데...........혼혈인 것도 같고........... '가만............저 자식들, 나 없을 때 애한테 수작 거는 거 아냐?!!' 갑자기 스치는 생각에 옆에 있던 침상의 환자 근처를 하릴없이 맴도는 젊은 레지 녀석들을 사납게 노려보자 흠칫 해선 얼굴까지 붉히며 물러나는 꼬락서닐 보고있는데............. "오빠.............." "응? 깼어?" "일은 벌써 끝난 거야?" "응............." 차마 잘렸을 거란 말은 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다 어제보다 창백한 안색에 걱정스레 손을 이마에 갖다대자 피곤한 듯 눈꺼풀을 스륵 내리 감는다. 의사조차도 병명을 알지 못한다. 처음엔 폐가 약하다고 했다가 다음엔 급성 폐렴, 그 다음엔 폐암, 마지막엔 폐에 문제가 있는 듯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가끔씩 숨쉬는 것마저 힘에 겨운 듯 헐떡이다 피를 토하기도 하고............거의 하루종일 잠에 빠져있기가 일쑤다. 마치 온실 안에서 자라던 꽃이 거친 들판에 옮겨져 서서히 죽어 가는 것처럼............. 처음 눈을 떴을 땐 의사들도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실어증에 음식조차 거부해 볼품 없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그 땐 날 미친 듯 거부했는데..........저러다 갑자기 죽는 게 아닐까 할 만큼 섬뜩한 분노를 퍼부었는데........... 약해지는 몸만큼이나 정신도 약해졌는지 몇 달 전부터 겨우 마음을 열기 시작해 지금은 이렇게 오누이처럼 지내고 있다.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창백한 뺨을 쓸어보다 우연히 병실 문밖을 스쳐 가는 사람을 보곤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 버렸다. 두근........... '뭐......지..........?' 이유 없이 뛰어대는 심장에 당황한 것도 잠시............ 결국 초조함을 참지 못하고 정신이 나간 사람 마냥 급하게 병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시선을 확 잡아 끌만큼 붉게 염색한 머리칼과 귀에 빼곡이 박아 넣은 피어싱........... 어린 주제에 겉멋만 들은 생양아치가 분명한데.............. 왜..........?!! 생전 처음 본 녀석일 뿐인데.............? 시선도 떼지 못하고 말없이 멀어져 가는 붉은 빛을 바라보기만 하다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작게 고개를 내젓곤 다시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짙은 고동색 눈동자가 내게 박혀들어 온다. 왠지 아프게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묻어있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게다가 최근 들어 저런 눈으로 날 바라보는 일이 잦아져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다시 자리에 앉자 손을 뻗어 뺨을 쓸어온다. "미안........... 미안해............ 내가 붙잡아 둬서...........아프게 해서............ 그래도.......사랑이라는 거 당신이 처음 알려줬으니까.......... 그렇게나 미워했는데..........이렇게나 사랑하게 만들어 버렸으니까.......... 그러니까............ 끝까지 곁에 있어 줘........ 그 후엔...........보내줄 테니까............. 놓아줄 테니까............. 내가 죽은 후엔..........당신이 사랑하는 사람한테 돌아가도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잠시만.............." "무슨............." 알 수 없는 말에 소리 없이 눈물을 떨구는 하얀 얼굴을 불안하게 바라보자 눈물로 흠뻑 젖어버린 얼굴을 가릴 만큼 환하게 웃어 보인다. "내가 죽어도............울어 줄 거야?" "주............죽긴 누가 죽는다는 거야?!!!" 갑작스런 말에 섬뜩한 불안은 마음 한켠에 밀어두고 벌컥 화를 내버렸다. 사실은 두렵다. 다시................... 혼자 남겨지는 것이............ 다시.................. 소중한 것을 잃는 것이.............. 어머니가 죽은 이후..........쭉 혼자 버텨왔는데................ 혼자서도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왜.............이제 와서................... 내 소중한 것이 되어 놓고도 다시 사라지려고 하는 건지................... 왜 곁에 있어주지 않는 건지.......... 왜 다 날 버리고 떠나버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 표정.........짓지마" 부드럽게 뺨을 쓸어주는 손길에............... 따뜻한 품안에 얼굴을 묻었다. "죽는다는 말...............하지마............ ...........혼자 두지마..........." 이제 혼자선..........버틸 수도 없는데....... 살고싶지 않은데.........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돼버린 거야............ "미란아..................." 작은 품에서 눈물을 삼켜가며 하얀 환자복을 떨리는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마음놓고 울 수도 없다. 약한 모습 따위..........보여주고 싶지 않다. 아직은..............무너질 수 없다. 아직은............. "왜 그렇게나................당신을 사랑했는지, 지키려했는지...............이제야 알 거 같아........ 이만큼이나 강하면서.........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들어올리자 채 숨기지 못한 눈물을 가는 손가락으로 쓸어준다. "나.......피곤해.........내일도 와줄 거지?" 눈을 감고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에 뺨에 와 닿은 작은 손을 가만히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다시 올께..........잘 자..............." 귓가에 조용히 속삭이고 핏기 없는 입술에 가만히 입을 맞추자 놀란 듯 눈을 뜨더니 곧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다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응................" ***미르니안.......살아있었습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올려드릴 께요. 4월 중에 끝내야 하는데.........하아......멀군요. 어쨌든 감상주신 분들 감사해요 *^^* Rubera(루베라) -외전3- 다시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 누군가 뒤에서 강하게 팔을 낚아채 끌어당긴다. "어느 쪽으로 가는 거야?" 낯익은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망나니자식이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날 내려보고 있었다. '뭐.........뭐야?!!!' 팔을 움켜쥐고 막무가내로 끌어당기는 통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다 퍼뜩 아까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쳇, 마중 나온 건가? 애새끼도 아닌데...........길이라도 잃을까봐?' 과외 건은 새카맣게 잊고있었던 건 생각지도 않고 불만스레 녀석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한참을 끌려가다 참지 못하고 꽥 소릴 질러 버렸다. "이것 좀 놓고 가!!!!! 개새끼처럼 왜 끌고 가고 지랄야?!!!" ".............." 동네가 떠나가라 소릴 질렀는데도 싸가지 없는 놈이 돌아보긴커녕 제 갈길 가기에만 바쁘다. "야!!! 이 미친 개망나니.........." "입 다물어..........." "이익..........!!!!!!!!" 툭 던지는 말에 이성이 투둑 끊어지자마자 미친놈 마냥 날뛰어대기 시작했다. "아파!!!! 아프단 말야!!!!! 놔!!! 이 막 되먹은 새끼가............아..............?!! 우악!!!!!!!!" 발광을 하며 질질 끌려가다 기어이 발치에 튀어나와 있던 돌부리에 걸려 바닥 위로 나동그라져 버렸다. "아.......흑............" 녀석에게 팔이 잡힌 채 넘어져 피가 날 만큼 다친 곳은 없지만 아무래도 발목이 심상치 않다. "아.........아파!!!!!!!!!" 당황한 듯한 녀석이 얼른 다가와 몸을 일으켜 세우자마자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녀석의 옷깃을 쥐고 매달려버렸다. 빌어먹을 새끼가 기어이 갈비뼈에 대한 보복으로 발목을 부러뜨렸나보다. 통증에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아픈 발목을 움켜쥐자 급히 다가와 손을 뻗어온다. "이 나쁜 새끼..........흑...........손대지마!!!!" "젠장.....!! 가만히 좀 있어!!!!" 되려 화를 내며 거칠게 소리치는 녀석을 씨근덕대며 눈물까지 달고 노려보자 양심은 있는 건지 금새 누그러진 표정으로 시선을 피한다. '이 미친 깡패새끼가 잘한 것도 없는 주제에 왜 소릴 지르고 지랄야?!!! 씹, 부러지기만 했어봐. 이번엔 걸어다니지도 못하게 다리를 확 꺾어버릴 테니...........' 죽일 듯 노려보며 이를 갈아대는 동안 가로등 아래서 다친 발목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녀석이 뒤돌아 대뜸 넓은 등을 내민다. "썅, 또 뭐야?!!!" 잔뜩 골이나 꽥 소리치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어린아이 달래듯 말을 꺼낸다. "칭얼대지 말고.........발목 삔 거니까 업혀........." "우.........웃기지마!! 칭얼대?!!! 이 미친놈이 누가 애새낀 줄.........." "그럼...........그냥 놓고 갈까?!!!" "뭐?!!!!!" 뜨끔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나 부자동네인지 인적도 드물고 가끔씩 지나다니는 고급 차들이 전부다. '비...........빌어먹을..............!!' 여기서 땡깡을 부려봤자 싸가지 없는 놈이 길거리에 내팽개쳐두고 제 갈 길을 갈 것이 분명할 테고........ 가뜩이나 춥기까지 하니.............. 성깔 같아선 몇 대 두들겨주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한참을 망설이며 그때까지 말없이 등돌리고 앉아있는 녀석을 노려보다 결국 별 수 없이 비척비척 다가가 등에 업히자 힘들지 않게 몸을 일으켜 세운다. "씨발, 왜 이렇게 가벼워?!!" "썅, 누가 가벼워?!!!" 미친놈이 곰탱이같은 지놈 힘은 생각지도 않고 괜히 신경질이다. 뒤통수를 확 갈겨버리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누르고 대신 보복으로 녀석의 등 짝에 맘껏 몸을 늘어뜨려 버렸다. 슬그머니 팔을 둘러 목을 조르고 심술궂게 다리를 휘저어봐도 목석 같은 놈이 도통 반응이 없다. 되려 규칙적인 발소리와 의외로 따뜻한 녀석의 등에 슬금슬금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감정기복이 심한 날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피곤이 더하다. 낮 동안 내리던 비에 더러운 공기가 가라앉아 맑아진 밤하늘엔 하얀 보름달이 떠있었다. 어느샌가 넓은 등에 기대 꾸벅꾸벅 조는 사이, 꽤나 번화한 도심가에선 들릴 리 없는 풀벌레 소리가 귓가에 스치는 듯 하다. "유...........ㅇ................" 비몽사몽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중얼대며 버릇처럼 녀석의 목덜미에 뺨을 부벼대자 흠칫 발걸음을 멈춘다. 달빛 때문인지 까만 머리칼에 빛이 반사돼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예쁜 은빛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저도 모르는 사이 손을 뻗어 부드러운 머리칼을 만지작대다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 . . 따뜻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의 체온........... 사라질세라 품안으로 파고들어 꼬옥 끌어안자 잠시 뒤척이더니 단단한 팔로 허리를 감아 따뜻한 품으로 끌어당긴다. 따끈한 가슴에 뺨을 부비며 다시 잠에 빠져들려던 순간 이상한 생각에 부시시 눈을 뜨자 건강한 갈빛을 띈 사내의 벗은 상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게다가 본적 없는 넓은 침실............ 내가 지내던 단칸방 네 개는 합쳐놓은 듯한 크기의 침실을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다 한겨울에도 땀이 날 만큼 뜨끈뜨끈한 바닥에 미간을 찌푸리며 내려보니 애늙은이 같은 돌침대...... 온도 조절을 어떻게 해둔 건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울 지경이고 옷은 또 언제 갈아 입혔는지 녀석의 것인 듯 내게는 약간 큰 잠옷이 입혀져 있었다. 팔을 들어올려 손등을 살짝 가리는 소매를 생각 없이 바라보는 동안 파자마만 달랑 입은 채 상체를 드러낸 녀석이 잠결에 뒤척이며 반쯤 말려 올라간 잠옷을 헤치고 맨 허리를 쓸어온다. "............." 그 꼴을 멍하니 내려보고만 있다 귓가에 울려오는 타인의 낯선 심장박동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된 거야..............?' 잠시 혼란스런 눈으로 아직도 잠에 빠져있는 망나니 녀석을 바라보다 지난밤 일을 떠올렸다. 그렇게 녀석의 등에 업혀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모양.............. 꽤나 피곤했던 건지 낮에 그렇게 자고도 다시 잠들어 지금까지 깨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이 자식.............. 발목이 다쳤다고 제 방에서 재워준 것까진 좋은데................... '씹, 왜 이렇게 들러붙고 지랄야?' 녀석의 품안에 파고들어 잠이 든 건 생각도 않고 허리를 감고있는 단단한 팔을 홱 밀쳐버리자 더러운 성질에 자면서도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뒤척인다.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꽤나 깊은 잠을 자는 녀석인지 웬만해선 깨지도 않는다. 겨우 낑낑대며 몸을 일으키자 발목엔 하얀 붕대가 단단히 감겨있다. 슬쩍 움직여보니 어젯밤보다 통증도 덜하고............ '이 자식이 감아준 건가..............' 생각보다 괜찮은 녀석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잘생긴 얼굴을 빤히 내려보았다. 힘들지도 않은지 잔뜩 찌푸려진 미간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주자 갑자기 번쩍 눈을 뜨는데.......... "헉.............!!" 화들짝 놀라 손을 물리자 잠시 혼란스런 눈빛으로 뚫어질 듯 바라본다. 녀석의 반응에 되려 당황해 이리저리 시선을 피하다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커다란 창을 보곤 스치는 생각에 서둘러 침대 밖으로 나가려 몸을 일으키다 아픈 발목에 그대로 꼬꾸라져 녀석의 위로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새벽 신문배달......... 돈보다는 좋아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것마저 잘리면......... '빌어먹을.............!!!' 어제부터 엉망진창이다. 자꾸 틀어지기만 하는 일상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한참이나 늦은 지금에 가봐야 절뚝거리는 다리로 어찌해 볼 도리도 없을 테고............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키려다 손에 닿아오는 근육에 의아한 눈으로 내려보자 녀석이 밑에 깔려있다. 게다가.............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린 채 보기 드물게 시선까지 피하는 꼴이 어쩐지 수상한.............. '응?' 순간............ 방금 전까진 느껴지지 않았던 단단한 물체가 허벅지에 닿아와 의아함에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숙이려 하자 바로 뒷덜미를 끌어내려 입술을 포개온다. 또다............. 이해할 수 없는 행위......... 이런 건.............. 사랑하는 여자랑 하는 게 아니었던가......? 의미 없는 행위에 두들겨 패고 밀어내던 지난번과는 달리 말똥말똥 눈을 뜨고 빤히 바라만 보자 커다란 손으로 눈을 가리고 부드러운 혀를 입술 사이에 밀어 넣는다. 어젯밤.........내가 미란이에게 처음 했던 입맞춤과는 확실히 뭔가 다르다. 왠지 좀더 끈적하고.........집요한............ "으응............." 생소한 느낌에 덫에 걸린 토끼 마냥 꼼지락대며 고개를 휘젓자 바둥대는 몸을 꼬옥 끌어안고 습한 혀로 입안 구석구석을 더듬어온다. 분명................... 익숙지 않은 행위................... 그런데도 왠지............ ...................낯설지가 않다. 입술로 전해주는 뜨거운 열기도............ 소중한 듯 조심스레 보듬어주는 손길도......... 평소보다 약간 빠른 심장의 두근거림도.............. '왜..............?!!' 순간 스치는 터무니없는 호기심에 녀석을 떼어내려 버둥대며 도리질 치던 움직임을 멈추고 얌전히 몸을 맡기자 굶주린 듯 입술을 깨물고 빨아대던 녀석이 갑자기 헐렁한 파자마 안으로 손을 불쑥 밀어 넣어 마른 몸에 유일하게 살집이 있는 엉덩이를 슬그머니 움켜쥔다. 이상한 기분에 흠칫 놀라 당황한 시선으로 녀석을 바라봐도 집요하게 엉덩이를 주물러대며 숨이 막혀 헐떡일 때까지 입술을 놓아주지 않고 빨아대더니 어느 순간 몸을 굴려 내 위로 올라타 급하게 내가 입고있던 잠옷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 내리기 시작한다. 원래부터 녀석의 것이었으니 벗겨서 가져간다 해도 불만은 없지만......... '다...............끝난 거야..........?' 멍하니 타액에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조금씩 드러나는 뽀얀 몸을 바라보고 있는데 생각과는 달리 벗겨진 잠옷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시 내게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입술을 묻어온다. "아............." 데일 듯 뜨거운 입술에 목을 움츠리자 혀를 내어 부드러운 피부를 맛이라도 보듯 할짝이며 만족스런 신음을 토해낸다. '뭐.............하는 거야?' 불안한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그렇다할 저항도 하지 않고 바라만 보다 하얀 가슴 위에 작게 솟은 돌기를 까끌한 혀로 쓸어오는 순간 화들짝 놀라 몸을 비틀며 교성을 터뜨려 버렸다. "하........흑.............." 덥썩 물어오는 느낌에 그제야 이성을 잃고 흥분한 녀석의 머리를 밀어내도 고집스레 들러붙어 분홍빛 나는 돌기 위에 키스를 해댄다. 집요하게 깨물어대며 혀로 희롱하는 느낌에 힘도 쓰지 못하고 헐떡이며 도리질을 치자 미약한 저항이 더욱 가학심을 부추긴 것인지 입술로 강하게 조여 빨아댄다. "하...........하지마.................아.............싫..........흐윽...........하지마!!!!!!!" 생소한 자극과 평소보다 빨라진 심장박동에 덜컥 겁이나 버둥거리며 비명같이 날카로운 거부의 말을 내뱉자 흠칫 몸을 굳힌 녀석이 겨우 입술을 떨어뜨리고 상체를 일으켜 온다. 녀석의 갑작스런 행위에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크게 뜬 눈으로 올려보자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날 내려본다. 겨우 이성을 잡고있는 듯 불안하게 흔들리는 갈빛 눈동자 속에 숨어있는 건 소름끼칠 만큼 위험한 열기............. 잡아먹을 듯한 눈빛에 본능적으로 녀석의 밑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다 움직이지 않는 몸에 퍼뜩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샌가 녀석이 양 손목을 움켜쥐고 침대 위에 내리 누른 상태....... "놔...............!!!!!!!!!!!" 맞닿은 하체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감촉에 이유도 모르고 미친 듯 버둥거리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비명 같은 소릴 내지르자 아플 만큼 강하게 손목을 쥐어온다. "여자였으면................이대로 범해 가졌을 텐데...........빌어먹을!!! 하필 왜...............!!" "무슨....................?" 알 수 없는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자 고개를 숙여 귓가에 뜨거운 입술을 비벼온다. "내가 왜 끝까지 널 밟지 않고 놔뒀다고 생각해? 하, 그깟 돈 때문에?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돈을 썼으면 너 하나쯤은............엉망으로 밟아버릴 수도 있었어. 좋은 머리로 그것도 생각 못한 거냐.......?"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 따위.................내가 알 턱이 없다. 아니..............알고싶지 않아.............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여오는 녀석에게서 얼굴을 돌려버리자 작게 한숨을 쉬며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몸으로 날 꼬옥 끌어 안아온다. 쉽사리 녀석을 밀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기가 막힐 만큼 한심하다. 이렇게 따뜻한 사람의 체온이............. 포근하게 안아주는 단단한 품이..........눈물이 날 만큼 그립다. 금새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와 심장을 죄어오는 통증에 입술을 질끈 깨물고 눈을 감아버리자 따뜻했던 체온이 바로 떨어져 나간다. "젠장.........!! 미쳤군...........같은 사내놈한테 이게 무슨........." 갑자기 구속했던 손목을 풀고 작게 욕설을 내뱉은 녀석이 몸을 일으켜 욕실인 듯한 곳으로 들어가 버리자 결국 참지 못하고 이유도 모르는 눈물을 쏟아버렸다. 바보가 되어버린 것 같다. 꼴사납게 울어대기만 하는 게.......... 이렇게 아픈 것을 보니 죽을병에라도 걸렸나보다. 예전엔 이런 눈물 따위...........심장을 찔러대는 통증 따위 알지 못했는데........... 힘들어서 그런 것뿐이다. 그저 힘들어서............... 혼자 두 발로 서 있는 게.............아프고 힘겨운 것뿐이다. 하얀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이나 흐느끼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울며 웃었다. 미친놈이 따로 없다. 이게 무슨 꼬락서닌지............. 욕실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다 침대 밖으로 비척비척 기어 나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옷을 대충 주워 입고는 절뚝거리며 침실 밖으로 나섰다. 어젯밤엔 혼자 서기도 힘들었는데 오늘은 어떻게든 걸을 순 있을 듯 하다. 막상 침실 밖으로 나서보니 내부계단으로 연결된 2층............ 난간을 짚고 조심스레 아래층으로 내려서자 엄청나게 넓은 집안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 두리번거리다 매끈한 대리석 바닥 위를 한참동안 걸어 현관문에 다가섰다. 빌어먹을 망나니자식 부모란 게 엄청난 부자는 부자였던 모양............ 생각과 달리 간단히 열리는 문에 안심한 것도 잠시................ 입이 벌어질 만큼 넓은 정원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썅, 이게 무슨 돈지랄이야............" 이를 빠득 갈아붙이며 저 멀리 손톱 만하게 보이는 커다란 대문에 욕설을 퍼붓다 별수 없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차가운 아침공기에 입술을 비집고 하얀 입김이 새어나간다. 걸을수록 심해지는 발목의 통증에 살짝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대문 가까이에 도착했을 무렵............. "아?!!! 우악..........!!!!!!!!!!!!" 누군가 뒤에서 갑자기 허리를 낚아채는 순간 시야가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다. "버둥거리면 땅에 쳐 박을 줄 알아.........." 짧게 비명을 지르며 물에 빠진 사람처럼 한동안 허우적거리다 무식하게 힘만 좋은 새끼가 한쪽 어깨에 내 몸을 짐짝처럼 들쳐 매고 화가 난 듯 살벌하게 말을 뱉자마자 단단한 몸에 답싹 매달려버렸다. 재수가 없으면 이 높이에서 떨어져도 목뼈가 부러진다. 지금까지 내가 절뚝거리며 힘겹게 걸어온 길을 성큼성큼 걸어 금새 되돌아가는 녀석을 보고 으득 이를 갈아붙이자 가소롭다는 듯 코방귀까지 뀌어댄다. 겁이 날 만큼 아슬하게 계단을 걸어 올라가 침대 위에 내동댕이쳐지자마자 죽일 듯 녀석을 노려보았다. "무슨 짓이야?!!!!" 귀청이 떨어져 나갈 만큼 꽥 소릴 질러대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시선을 맞춰온다. 이제 보니 물기도 닦지 않고 뛰쳐나온 건지 흠뻑 젖은 몰골에 바지만 대충 꿰어 입고 하얀 셔츠는 팔에 겨우 걸려있다. "아직 과외 시작도 안 했어............" 어처구니없는 꼬락서닐 하고 내뱉는 말에 기가 막혀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이 새끼가 전교에서 꼴등을 한다더니 꼴통이 맞긴한가 보다. "그딴 거 안 해!!! 집에 갈 거야!!"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보다 빽 소리치며 몸을 일으키자마자 우악스럽게 어깨를 움켜쥐고 다시 침대 위로 밀어붙인다. "무슨 짓이야?!!!!!" "입다물어........" "이...........이 개자식!!!! 비켜!!!!!!!!!!" 화를 참지 못하고 악을 써대다 녀석의 복부를 걷어차는 순간.......... "아악...........!!!!" 무심코 내지른 다리에 다친 발목이 다시 어긋났는지 식은땀이 날만큼 섬뜩한 통증이 등줄기를 훑고 지나간다. "젠장, 사납기는..............." 아픈 발목을 움켜쥔 채 숨도 내쉬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자 나직이 혀를 차던 녀석이 그대로 몸을 일으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침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쉬이 줄어들지 않는 통증에 결국 혼자 남겨지자마자 왁하고 참았던 눈물을 모두 터뜨려 버렸다. "흑................나쁜 새끼.............." 반쯤 보복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을 녀석의 베개에 비벼대며 한참을 훌쩍이다 겨우 욱신거리는 발목의 통증을 참아가며 숨을 죽인 채 눈물만 떨구어대고 있었다. '제길.....................' 어차피 이렇게 울어봤자............ 아파해 봤자.............. 내게 신경 써줄 사람 따위............ 이젠.................. 남아있지도 않은 것을............... 식은땀이 베어 나오는 손으로 제어를 잃고 새어나오는 물기를 거칠게 비벼 닦아도 짜증이 치밀 만큼 멈추지 않는 눈물에 질끈 눈을 감아버린 순간.................. 『울지 마라........... ..............못난 얼굴은 보기 싫으니..........』 "누가 못났다는 거야?!!!!!" 갑자기 귓가에 스쳐오는 소리에 벌컥 화를 내며 꽥 소릴 질러버렸다. 그런데............... "하................" 눈을 번쩍 뜨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넓은 침실 안에 달랑 남겨진 건 자신 뿐.............. 최근............계속 이 모양이다. 자면서도 퍼질러 울고, 묘한 기시감에 멍하니 길거리에 서있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이명에 무의식적인 반응을 보인다. "한심하게.........큭, 완전히 미친놈이 따로 없군........하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 킥킥대며 몸을 일으키려다 찌를 듯한 통증에 다시 침대 위로 널브러져 버렸다. "젠장, 그 빌어먹을 자식...........!!!!!!!!!" 실컷 휘둘러대곤 냉정한 언동으로 바로 돌아서 버린 녀석에 분한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올라 거칠게 욕설을 내뱉으며 축축해진 베개를 냅다 집어 던지자 언제 돌아왔는지 다시 침실 안으로 들어선 녀석의 발치에 맞고 힘없이 바닥위로 떨어져 내린다. "완전 어린애로군....................." 잔뜩 젖어버린 베개를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며 멋대로 지껄여대는 말에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을 뚝 그치고 사납게 노려보자 한숨을 푹 내쉬며 천천히 다가서더니 대뜸 손을 뻗어 차가운 얼음주머니를 아픈 발목에 갖다 댄다. 이 자식.......... 버려 두고 나가버린 게 아니라 저걸 가지러 갔던 모양.............. 거절할 생각도 못하고 녀석이 하는 양을 얌전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부드러운 손놀림으로 발목에 감아놓은 붕대를 풀어 한쪽에 밀어놓곤 빨갛게 부어오른 부위에 들고있던 얼음주머니를 조심스레 내려놓더니 무뚝뚝하게 툭 말을 뱉어낸다. "조금만 참아............" 차가운 냉기에 찌를 듯한 통증이 무디어지자마자 한결 편한 숨을 내쉬며 축 늘어져버렸다. 누그러진 표정으로 차디찬 얼음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붉어진 눈가를 슬그머니 쓸어온다.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녀석을 노려보며 손을 휙 피해버리자 바로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시선을 맞춰온다. "정말...........왜 이렇게 고집이 쌔?" 녀석과는 말도 섞고싶지 않아 입술을 꼬옥 깨문 채 입을 닫아버리자 금새 화가 난 듯 표정을 굳히더니 기어이 비아냥대며 속을 뒤집어 놓는다. "얌전히 있으니 훨씬 낫군......... 쯧, 여럿 홀릴 낯짝으로 그렇게 날뛰어대서야........ 어떤 멍청인지 나중에 데리고 살려면 고생 꽤나 하겠어............" "이익, 닥쳐!!!!!! 네놈이 무슨 상관이야?!!!" 1초도 견디지 못하고 바락 소릴 지르며 성깔을 드러내자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댄다. "그 멍청이가................. 내가 될 거 같으니 하는 소리지..............." "뭐?" 미간을 찌푸리며 올려보자 한참을 조용히 바라만 보더니 모르는 척 다친 발목에 시선을 던지며 말을 꺼낸다. "다른 놈들 뼈는 웃으면서 잘도 부러뜨리더니......... 울만큼 아픈 거면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 "누........누가 울었다고...............!!!" "눈물자국이나 지우고 말하시지" "웃기지마!! 누굴 애새끼 취급하고 지랄야?!! 내가 밥을 먹어도 네놈보다 천 그릇은 더 먹었어!!!" "밥? 큭, 계집애처럼 말라 비틀어져선.......그런 소리가 잘도 나오는군. 키만 컸지 완전 발육부진인 주제에..............." "누가 발육부진이야?!!!! 네놈이 무식하게 큰 거잖아!!" 분통을 터트리며 주먹을 말아 쥐자 재빨리 양 손목을 움켜쥐고 침대 위로 내리누른다. "또 병원신세 지는 건 사절이야" "놔!!!! 이 재수 없는 자식!!!!!!!!" 녀석에게 붙들린 손을 빼내려 버둥거리는 동안 미간을 찌푸린 채 말려 올라간 셔츠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상체에 시선을 박아온다. "유아기냐? 굵은 털 하나 없잖아" "그딴 게................" 터무니없는 지적에 울컥해 금방이라도 발작을 일으킬 것처럼 부들부들 떨어대다 겨우 목구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집어 삼켰다. 이 자식.......... 도발해서 미쳐 날뛰는 꼴을 볼 심산이다. 약을 올려대는 꼬락서니가 꼭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악동의 형상과 흡사한 것을 보니........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속으로는 실컷 비웃어대고 있을 테지........... 다친 발목으로 아까처럼 발광을 해봤자 손해 보는 건 이 빌어먹을 자식이 아닌 내가 될 게 뻔하고......... 분하지만.................. 지금은 여기서 나갈 때까지 꾹꾹 참고 있을 수밖에............ 하지만 발목이 낫기만 하면 어두운 골목길에서 빵봉지라도 뒤집어쓰고 속이 풀릴 때까지 두들겨 패줄 테다. "뭘 기분 나쁘게 웃는 거야?!!" 삐딱하게 말을 내뱉는 녀석을 이를 빠득 갈아붙이며 노려보다 쳇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실컷 가지고 놀아라!! 나중에 반병신이 된 꼬락서니를 꼭 봐줄 테니............. 되먹지 못한 애새끼 재롱쯤이야 한 살이나 더 먹은 어른이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 줘야지.....' 속으로 복수의 칼날을 갈아대며 무시해 버리자 나만큼이나 성깔 나쁜 녀석이 비웃음이 가득 담긴 낯짝으로 기어코 앙갚음을 해온다. "사내놈이 젖비린내 나게 뽀얗기는............" "아악...............!!!!!!!!!! 이 개새끼, 죽여버릴 거야!!!!!!!!!!!!!" 툭 던져오는 말에 초인적인 인내심 따위 금새 홀랑 날려버리고 분통을 터트리며 발광을 해대자 갑자기 고개를 숙여 덥썩 입술을 삼켜버린다. "흡.............." 고개를 휘저으며 떼어내려 발버둥쳐도 집요하게 들러붙어 화끈거릴 만큼 입술을 부벼댄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의도를 알 수 없는 행위지만 어쩐지 조바심이 날 만큼 열이 오르고 끈적끈적한 게........... 기분이............... .............나쁘다. 아니............이상한 쪽인가..............? 처음엔................. 어처구니없는 호기심에 입술을 부벼오는 녀석을 밀어내지 않았다. 숨막히는 열기에 왠지.............뭔가 떠오를 것만 같아서......... .........무방비 하게 몸을 맡겨버렸다. 벗은 몸을 만져댈 때마다 내가 아닌 것처럼 달뜬 신음을 흘리며 숨쉬는 것마저 힘에 겨워 헐떡이다 이상한 느낌에 뒤늦은 저항을 하자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미친놈 마냥 달려들긴 했지만 녀석이 망설이지 않았다면........ 계속 하려던 걸 했다면......... 망각이라는 뿌연 안개 속에 숨어 이렇게 초조할 만큼 머릿속을 헤집고 심장을 찔러대는 존재의 정체를............... 벗겨낼 수 있었을까............ 대체................ ............뭘 기억해 내고 싶은 건지.......... 잃어버린 과거 따위................. ...........되찾고 싶을 만큼 좋을 일도 없었을 텐데............ "딴 생각하지마........." '응?!!' 갑작스런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올려보자 벌어진 입술을 축축한 혀로 핥아가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여온다. "나랑 할 땐 딴 생각 말라고.............."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뭘 해?!!' 입술을 배회하던 녀석의 혀가 멋대로 입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내 머릿속만큼이나 잔뜩 흐트러져있는 침대 위에서 멍하니 거친 호흡소리만 듣고 있었다. 어릴 적에도 녀석에겐 줄곧 심술만 부렸다. 1년 일찍 들어간 덕에 같은 학년이었던 학교에서도 내가 아닌 다른 녀석이 말이라도 걸라치면 피가 터질 때까지 주먹질을 해댔고 같잖은 것들이 관심이라도 끌어볼 요량으로 강아지 마냥 순하기만 한 것을 괴롭히는 게 눈에 띄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학교가 발칵 뒤집힐 만큼 소동을 일으켰다. 불행히도 녀석에 대한 집요한 집착의 경계대상은 딱히 사내녀석들에만 한정된 것도 아니어서 고 예쁘장한 입술에서 설핏 어떤 계집아이 머리카락이 곱다라는 소리만 나와도 가차없이 그 머리채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는 망나니 짓 역시 서슴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요, 덤으로 그런 일을 벌인 후엔 어김없이 문제의 원흉(?)이었던 녀석에게 거의 화풀이에 가까운 보복을 해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내로라 하는 부잣집 외아들로 태어나 거의 고용인의 손에 떠받들어져 키워진 덕에 꽤나 비틀린 성격으로 맘에 들면 무조건 손에 움켜쥐고 눈에 거슬리면 무엇이든 망가뜨려 버리는.............. 그야말로 병아리 같던 녀석에겐 솔개 같은 존재였을 텐 데도.......... 커다랗고 까맣기만 했던 눈동자 속엔 다른 코흘리개들에게 보이는 두려움과 혐오 따위.......... ...........한 조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제멋대로 자란 흉포한 짐승에 면역이 전혀 없는 갓 태어난 새끼 새 같은 모습이............ 아무것도 모르던 철부지의 눈에도...................... ....................지독히 예뻐 보였다. 자다 일어난 것처럼 부스스한 머리칼도............. 나른해 보이는 새카만 눈동자도............... 벚꽃 같은 입술도............. 유난히 뽀얀 피부도........... 하얀 손으로 내 옷자락을 꼬옥 움켜쥐고 졸졸 쫓아다니던 녀석이 통통한 입술로 옹알거리며 순진한 눈으로 올려볼 때면 매번 이유도 없이 바락바락 화를 내며 얼굴을 붉히다 되려 꿀밤을 먹여 울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 . . "썅, 개새끼!!! 한방 거리도 안 되는 게 어딜 기어오르고 지랄야? 지랄이?!!" 생선을 빼앗긴 고양이 마냥 날뛰어대는 생물은 고약한 눈매만큼이나 성깔이 더러웠다. "헉!! 피!!! 피난다!! 아악!!!! 옷에 묻었잖아!!" 보통은................... ................옷보단 상처를 신경 쓰지 않나? "세탁기도 없는데.....얼음물로 빨래하려면 또 나만 죽어나는 거 알아?!! 앙? 이 새끼, 죽은 척 하면 내가 봐줄 줄 알아?!!" 신음하나 없이 무자비한 폭력을 고스란히 견뎌 가며 죽은 척 할 수 있을 턱이 없다. 이미 기절한 놈을 붙들고 쉴새없이 발길질을 퍼부어 대던 흉포한 생물이 뭔가 생각난 듯 휙 돌아서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바닥에 널부러진 녀석들에게 다구리를 당하던 뺀질이 녀석이 헉하며 뒷걸음질친다. 교활한 녀석은 저 악랄하고 포악한 생물이 자신을 구하러 나타난 영웅이 아니라는 것쯤 단박에 간파한 모양으로 현명하게도.........겉치레뿐인 감사의 인사보다는 언제든 뒤돌아 달아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약골새끼.........도망치면 죽을 줄 알아" 진실로밖에 들리지 않는 흉악한 협박에 사시나무 떨 듯 떨어대던 다리에서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지만 않았다면 태어난 이래 가장 빠른 속력으로 이곳에서 달아났을 터였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잔뜩 겁먹은 녀석에게 다가서더니 고양이가 다 잡은 쥐새끼를 가지고 놀 듯 움칠움칠 떨어대는 몸을 발로 툭툭 쳐대며 뱉어낸 외계어란............. "세탁비 내놔............" 분명................. ................7년만이었다. . . . "미친놈.............." 모양 좋은 입술을 비집고 한숨과도 같은 욕설이 튀어나왔다. 지난 몇 주간을 돌아본다면 정말 자신에게 딱 들어맞을............아니, 그나마도 과분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있는 지조차 알 수 없었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든 괴이한 생물에................. .............그야말로 정신이 나가있었던 거다. 병아리 털처럼 하늘거리는 까만 머리칼에, 밤하늘을 담아놓은 새까만 눈동자에, 그대로 삼켜버리고 싶을 만큼 탐스런 입술에, 꿀처럼 달콤한 피부에, 눈물이 날 만큼 그리운 체취에 미쳐 먹음직한 사냥감의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뒤를 캐고, 정신나간 스토커 마냥 주변을 맴돌았다. 원인도, 처방도 알 수 없었다. 치명적인 열병에 걸려버린 것만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언뜻 스쳐지나갔을 뿐이다. 그 때........................ 녀석을 다시 발견해 버린 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하아.................." 작게 한숨을 토해내며 아기처럼 잠이 든 하얀 얼굴을 조용히 굽어보고 있었다. 자면서도 숨을 죽인 채 눈물을 떨구는 모습이 못내 안쓰러워 부지런히 젖은 뺨을 쓸어주다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물기에 결국 참지 못하고 와락 품에 안아버렸다. 갑작스런 행위에 놀라 잠에서 깨어날 만도 하건만 어지간히도 피곤했던지 품안에서 축 늘어진 채 미동도 없다. 빌어먹을 신문배달 따위 당장 그만 두게 만들어 버리겠다며 사납게 이를 갈아붙이다 품안에서 바들바들 떨어대는 몸에 놀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억지로 문을 부수고 발을 들여놓은 집구석은 겉보기만큼이나 허술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어 난방은커녕 더운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모양으로 방금 몸을 씻고 나온 듯 축축하게 젖어있는 몸뚱이는 얼음장같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도롱이처럼 말고있는 두터운 이불도 소용이 없는지 맞닿은 피부에 한기가 스미기 시작하자 별수 없이 눅눅한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몸서리쳐지도록 차디찬 몸에 손을 뻗었다. 늘씬한 허리를 휘감아 끌어당기자 익숙하게 품안으로 파고들어 몸에 착 감겨든다. 평소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 새끼 고양이처럼 품안에서 비비적대는 느낌에 흠칫 몸을 굳힌 채 내려보니 어느새 눈물까지 멈추고 고른 숨을 내쉬며 잠에 빠져있었다. 접근하지 말라며 털을 곤두 세웠지만 아무래도 이 녀석.............. 그동안 많이................. ................외로웠나 보다. 그때처럼............. 부모에게 실컷 어리광이나 부리며 곱게 자라고 있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병신같이................. ................버림받았던 거다. 나처럼............. 씁쓸한 눈으로 한참을 바라만 보다 젖먹이 마냥 살짝 벌어진 입술에 슬며시 입을 맞추자 금새 미간을 찌푸리더니 품안에 얼굴을 폭 묻어버린다. 나에 관한 건.................. 새카맣게 잊어버린 주제에............... 잠결에도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내비치는 녀석에 오기가 치밀어 눈도 뜨지 못하고 투정을 부리는 걸 겨우 달래 몇 번이나 욕심껏 입술을 찍어누르고 혀를 섞었다. 새끼 고양이 같은 게 사납기만 해선 처음으로 한 난폭한 키스의 대가로는 갈비뼈를 두 대나 내줬고, 진지하게 한 두 번째 키스엔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는 바람에 빌어먹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버렸다. 결국......... 얌전히 있어주는 건 이렇게 잠이 들었을 때 뿐........... 키스 한번 하기도 이만큼 힘이 드니 나중에 몸이라도 섞을라치면 목숨을 내놓고 덤벼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쉽사리 감당 못할 성깔로 봐선 충분히 실현가능 한 일이 분명하니 욕구불만으로 미쳐버리기 전에 이렇게 고분 할 동안 도둑괭이처럼 몰래 손을 댈 수밖에.......... 말랑한 입술에 들러붙어 부드러운 살점을 맘껏 빨아대다 허술한 옷가지를 헤치고 토실한 엉덩이를 조몰락대자 잠결에도 느끼는지 미간을 곱게 찌푸린 채 옅은 교성을 흘려낸다. 삼켜진 입술에서 간간이 새어나오는 달콤한 신음과 아플 만큼 하반신을 죄어오는 열기에 당장이라도 환장하게 좋은 몸뚱이 안으로 파고들어 개처럼 흔들어대고 싶은 걸 필사적으로 참아가며 통째로 집어 삼켜도 성에 차지 않을 입술에서 겨우 떨어져 나왔다. 조심하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하는 자신을 억누르지 못하고 혹에라도 짐승같이 욕정을 풀어버린다면......... 끔찍이도 소중한 걸 멍청하게 제 손으로 망가뜨려 버릴 수도 있다. 여자였다면...................... 달아나지 못하게 까짓 애새끼쯤 셋이든 넷이든 만들어버리면 그만일 테지만, 이건 넋이 나갈 만큼 매혹적이라 해도 어딜 봐도 같은 사내자식이 분명하니 최악의 경우........... 개새끼한테 한번 물렸다 치고 돌아서 버리면 모든 게 끝장이다. 음란하게 더듬어대던 손길이 멈추자마자 강아지처럼 꼼지락대며 한없이 품안에 파고드는 걸 놓을 생각도 못하고 아기비누 향이 나는 뽀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필사적으로 열기를 식혔다. 확실히.................. ............미쳐버린 거다. 돌아도 한참을 돌았다. 품안에서 꼼지락대는 요상한 생물이.............. 못 견디도록 사랑스러운 걸 보면................ . . . "썅,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저 문 고쳐놓고 빨랑 꺼져!" 기분 좋은 체온이 품안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뜨자 바로 귓속에 욕설이 쏟아져 들어온다. 얌전히 품에 안겨 잠을 자던 새끼고양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앙칼지게 눈을 치뜨고 잔뜩 발톱을 세운 녀석이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다. "이 곰탱이같은 새끼!! 문까지 때려부수고 들어왔으면 빨리 깨워야 할 거 아냐?!! 왜 옆에서 쳐 자고 지랄야?!!!" 앙탈도 제법 귀엽다. 깨물어버리고 싶을 만큼 탐스런 입술을 멍하니 바라만보다 허름한 점퍼를 몸에 걸치는 녀석을 보곤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또 어딜 가?!!!!" 재빨리 하얀 손목을 틀어쥐고 노려보자 놀란 듯 잠시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툭 말을 뱉어낸다. "마누라 보러........" '개소리.............!!' "동생이라며.........?!!!" 녀석이 동생 따위 없다는 거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다. 제 몸 하나도 추스르지 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굴러먹은 지 모를 계집을 주워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제 살 깎아가며 번 푼돈으로 곧 죽을 계집의 병원 비를 틀어막고 있는 것도......... 제가 죽어 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목숨이라도 걸린 일인 양 필사적인 녀석을 볼 때면 분통이 터져 항상 화만 내게 되는 것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삭히고 노려보자 남의 속도 모르는 게 장난스레 킥킥대며 말을 던진다. "큭, 예뻐서 마누라 삼을 생각인데?" 웃기는 소리.......... '.........누구 맘대로............?!!' 녀석은 내 거다. 순전히 반 강제였지만.......... 저 바보녀석은 새카맣게 잊은 듯 하지만......... ............7년 전............... 헤어질 때 단단히 약속을 받아뒀다. 그런 주제에............. 사고의 후유증이랍시고 나에 대한 건 홀랑 까먹은 것도 모자라 생판 남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볼 때면 녀석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짤짤 흔들어서라도 어딘가 꼭꼭 숨어있을 과거의 기억이 튀어나오게 하고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가 없다. ..............죽은 줄로만 알았다. 외교다, 사업이다 하는 양친을 따라 억지로 영국으로 끌려간 게 11살 되었을 무렵......... 당시에 내 부모란 것은 한 달에 한번 코빼기도 보기 힘들만큼 남보다 못한 존재에 불과했다. 학교에서 크게 사고를 쳐도 전화 한 통화로 혹은 고용인들 손에 돈을 들려보내 무마시키는 게 고작이었고, 어쩌다 한번 낯짝을 볼 수 있는 것도 가족들이 참석해야 하는 사업상의 파티가 있을 때 뿐으로 그런 날은 흡사 제비새끼 마냥 옷을 차려 입곤 구역질나는 늙은이들 앞에 품평을 보이거나 잘난 척만 할 줄 아는 재수 없는 자식놈들과 억지로 어울려야만 하는 수고가 뒤따랐다. 그런 상태로 억지로 영국까지 끌려왔을 땐 그야말로 부모란 것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으니 한국에서처럼 얌전히 학교에 짱 박혀 머저리같이 공부나 파고있을 까닭이 없었다. 채 1년도 되지 않아 포악했던 본래 성정을 드러내며 망나니짓이란 망나니짓은 모두 하고 다니며 브레이크가 나간 자동차처럼 폭주에 폭주를 거듭했다. 술과 계집질은 가벼운 유흥이었고 약에 손을 댄 것은 물론이요, 말 뼈다귀 같은 귀족놈들이 눈에 거슬리면 죽기 직전까지 손을 썼다. 개중엔 병신이 되어버린 것들도 꽤나 있어 뒤처리에 든 비용 또한 어마어마했고, 유능하다 소문난 변호사들마저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꼬리를 감출 정도였으니 그저 허울뿐이었던 부모란 작자들이 작금에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남보다 못한 인간들이 해대는 훈계 따위 귓속에 들어올 턱도 없었고, 18살 만 되면 다시 보게될 일도 없을 타인이었다. 후계자랍시고 하나 있는 애물단지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다 결국 생각해 낸 것이 한국 행........... 그나마 얌전히 지냈던 어린 시절을 기억해 낸 모양이지만 엄연한............. .................추방이었다. 딱히 어렸을 적 그리도 맘에 들었던 고양이 녀석을 떠올려 되돌아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도착하자마자 제일 처음 발길이 닿아버린 녀석이 살던 작은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싸구려 빌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마지못해 들어간 학교에서 어렵지 않게 귀에 들어온 소문이란 내가 없는 사이 병신같이 죽어버린 한심한 놈의 무용담...... 어릴 적의 기억 따윈 이미 희미해져 있음에도 심장이 쓰린 이유 따위........... 알지 못했는데......... 그 날............... ..............다시 보란 듯이 내 눈앞에 나타난 날................... ............확실히 깨달아 버렸다. 철컥............ "...........?!!!" 한참을 생각에 빠져있다 갑작스런 소음에 정신을 차려보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밖으로 뛰어나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빌어먹을................!!' 매정한 녀석에게 작게 이를 갈아붙이며 서둘러 뒤를 따라 나서자 그새 어둑해지기 시작한 거리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 축축하게 젖어 음산한 기운마저 뿌리고 있었다. 시린 한기에 앞서가는 녀석의 어깨가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한다. 어릴 적부터 추운 건 지독히도 싫어했는데........... 지독한 외로움과 이유 모를 슬픔에 그리도 자신의 심장을 쥐어뜯으며 품안에서 흐느끼던 사랑스런 생물은 눈을 뜨자마자 차가운 벽을 두른 채 멀찌감치 떨어져 일체의 접근도 허락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도.................... 얇은 점퍼 하나만을 달랑 걸친 채 힘없이 걸어가는 꼬락서니가 자꾸만 눈에 밟혀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차가운 비를 맞아가며 뒤를 쫓고 있었다. . . . 언제 걸음을 멈춘 것인지............ ...........알지 못했다.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빗속에서 갑자기 돌아선 녀석이.................. 울고있는 것만 같아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석상처럼 굳어있는 녀석에게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뭐야?!!!" 무방비 하게 서있는 녀석을 차마 품안에 끌어안지도 못하고 멋대로 뻗어나간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우산을 주워들며 맘에도 없이 퉁명스레 말을 던지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을 내게 맞춰온다. 처음엔.............. 이런 당돌하기만 한 태도와 넋을 빼놓는 외양에 동명이인인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지독히도 예쁜 까만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7년 전, 마냥 어리기만 했던 녀석과 눈앞의 녀석을 겹쳐보는 일 따위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밤하늘처럼 새카만 눈동자에 자신의 얼굴이 한가득 비쳐드는 것을 정신 없이 바라보다 귓가에 파고드는 싸늘한 음성에 미친 듯 뛰어대던 심장이 차갑게 식어 바닥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왜 자꾸 따라다니는 건데? 미리 말해두지만 치료비 줄 돈 없으니까 귀찮게 해도 소용없어" '무슨......................소릴 하는 거야............' "치료비?" 믿을 수 없는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되묻자 가차없이 잔혹한 말을 쏟아낸다. "그것 땜에 지금까지 늘어붙은 거 아냐?!! 부잣집 자식놈이라더니 쩨쩨하긴..... 오늘도 아르바이트 잘리고...........미란이 병원비 대기도 빠듯해. 자꾸 짜증나게 들러붙지 말고 몸 대줄 테니까 패고싶은 만큼 패고 꺼져" '꺼.............져? 하, 실컷 패고............꺼지라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에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고 어둑한 골목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이 잔인한 새끼........ 나에 대한 건............. 기억도 못하는 주제에...................!!!' 기어코 포악한 성정을 억누르지 못한 채 거칠게 주먹을 내지르자 둔탁한 소음과 함께 화끈한 통증이 타고 오른다. '빌어먹을..........!!!!!!!!!' 때릴 수 있을 턱이 없다. 이런 녀석에게조차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빠져버린 자신이 기가 막힐 따름이다. 엉망으로 두들겨 패고 뒤돌아 서면................. 돌아보지 않으면.................. ...............편해질 것을................ "돈이............... .................그렇게 중요해?" 하루에 겨우 다섯시간 자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해대는 녀석이다. 질문을 하는 것조차 우스운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을 싸늘하게 내려보고 있었다. '돈이 아니라............ .............그년이............. 그 빌어먹을 것이 소중한 거겠지............' 터져 나가지 못한 채 안에서 곪아 썩어 가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이 단단한 녀석에게 상처를 내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다. 그래서.................. 돈에 몸을 팔라고............. 홧김에 던진 한마디에 자존심 강한 녀석이 미쳐 날뛸 줄 알았다. 그 여자의 존재를 알고 분을 참지 못해 억지로 입술을 훔쳤던 그때처럼 주먹을 휘두르고, 욕설을 내뱉고, 사정없이 갈빗대를 부서트릴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병신 같은 놈이..........몸을 팔겠단다. 그딴 계집년 때문에......무슨 짓을 당할 줄도 모르고.............!!!! 그깟 종이 쪼가리 한줌에................. 감히 상처 입힐까, 미움받을까 두려워 손도 대지 못했던 몸을 이렇게 간단히.......... "얼마나...............줄 건데?" 팽팽하게 당겨진 분노를 필사적으로 억누른 채 살기 띈 눈으로 노려보자 가증스러울 만큼 순진해 뵈는 까만 눈동자로 잔인하게 시위를 끊어버린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돈이 필요했다면................ ................쉽사리 다리를 벌릴만한 눈이요, 결심이었다. "원하는 만큼 준다고 했잖아.........." 그 여자.............. .....................죽여버릴 거다. 고개를 떨구며 시선을 피하는 녀석에게 싸늘하게 대꾸하곤 속으로 섬뜩한 칼날을 갈아대고 있었다. 내가 가져야 할 것을...... 내가 누려야 할 것을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 빼앗겨버린 듯한 느낌에 미칠 듯이 화가나 뭐든 때려부수지 않으면........망가뜨리지 않으면...........그대로 돌아버릴 것만 같아서 녀석의 멱살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는 순간 잔뜩 풀죽은 목소리가 귓가에 스쳐온다. "좋아.........그럼, 두 개 짜리 만 가져가........" '뭐..............?' "각막이든, 신장이든.......아, 간도 조금이면 상관없는 건가............." '뭐라는 거야...........?!!!' 어처구니없는 말에 바보가 된 것처럼 한참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몸을 팔라 했더니 각막에 신장이라니....................... 아니, 그것보다............... ..................나한테 장기를 팔아서 어쩌려고?!!!!! "도대체.........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까만 눈동자로 빤히 올려보는 시선에.................. 통째로 집어삼켜도 성에 차지 않을 만큼 귀여운 녀석을 부둥켜안고 찐한 키스라도 퍼붓고 싶은 본심을 겨우 숨긴 채 벽력같이 고함을 내지르자 놀란 듯 움칠 몸을 떨며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슬그머니 입을 다물어버린다. 순진한 낯짝을 하곤 묘하게 색기를 흘려대는 통에 어릴 적부터 이런 쪽으론 완전 숙맥이란 걸 잠시 잊고있었다. 그런 쪽엔 관심도 없었을 어릴 적엔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이 모양이 되려면 도대체 어딜 어떻게 건드려야 하는 건지........... 아니, 한창때의 성욕은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 온건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젠장,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이 정도면 순진한 걸 넘어서 백치나 다름없다. "누가?!!!!!!"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참아가며 비아냥거리자 금새 눈을 치켜 뜨곤 바락바락 대든다. 딴엔 화가 났는지 시근덕대며 노려보는 걸 무시해 버리곤 하얀 종이에 집 주소를 적어 녀석의 손에 쥐어준 뒤 거의 떠넘기다시피 과외를 맡기고 그대로 돌아섰다. . . . 그렇게 녀석을 그 여자에게 보내곤 줄곧 버스 정류장에서 망부석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늘어가는 초조감을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다 몇 번째일지 모를 버스에서 내린 녀석의 손을 다짜고짜 낚아채 바로 집으로 향했다. 자꾸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버둥대는 녀석을 억지로 끌고 가다 기어코 사단이 나 버렸다. 발목을 삔 채 바닥에 주저앉아 앙탈을 부리는 걸 겨우 달래(?) 등에 업고, 텅 빈 집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세상 모르고 잠이 들어버린 녀석을 조심스레 침대 위에 뉘였다. 귀국 후 거의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어 썰렁해진 집안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보일러를 켜고 다시 침실로 돌아와 보니 그새 두터운 이불 속에 폭 파묻혀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써 본적도 없는 돌침대의 전원을 켜놓고 가만히 이불을 들춰보니 천생 혼자는 잘 수 없는 체질인지, 품안이 비면 잠을 못 자는 버릇을 들였는지 폭신한 베개를 끌어안은 채 태아처럼 몸을 말고 있다. 예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만보다 잠에서 깨기라도 할까 조심조심 이불을 덮어주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한심하게 수음 따위 하고싶지 않아 찬물로 머리를 식히다 잠결에라도 새끼고양이가 투정을 부리며 밀어낼까 따뜻한 물로 꽤 오랫동안 몸을 데운 뒤 욕실을 나섰다. 물기를 닦아내고 옷장을 열어보니 얼마 전에 대충 던져놓고 나간 여행가방 속에 멋대로 쑤셔 박혀있던 옷가지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쓸데없이 넓기만 한 집구석을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어 예전에 집안 일을 도맡아 했던 가정부를 다시 불러들였던 걸 그제야 기억해 냈다. 한눈에 봐도 인자한 인상이었던 중년 여자는 그동안 꽤나 늙어있었지만 성실한 건 전혀 변하지 않은 모양으로 주인도 없는 집안은 먼지하나 없이 깨끗했고 여행가방 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던 옷은 물론 모르는 사이 영국에서 붙여온 옷들까지 말끔하게 세탁돼 다림질이 되어있었다. 전화 상으로 사나흘에 한번 꼴로 들르라고는 일러뒀지만 처음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얼굴 한번 마주치지 못했다. 어차피 저 귀여운 생물을 내 집안에 들여앉히면 착실히 집안에 붙어 신세를 져야할 테니 얼굴이라도 한번 내비쳐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해가며 부드러운 면 소재의 파자마만 달랑 걸친 채 평소보다 포근해 보이는 침대 안으로 파고들어 따뜻해진 몸을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결국 과외 따윈............녀석의 시간을 사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녀석이 그리도 필요로 하는 돈으론 미칠 만큼 갖고싶은 몸도 마음도 살 순 없지만, 지금으로선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물론.............. 언제까지고 그것만으론 만족할 순 없을 테지만.............. 부드러운 머리칼에 뺨을 부비고, 반듯한 이마에 살짝 입술을 찍어누르고, 오뚝한 콧날을 더듬어 내려와 그대로 입술을 포갰다. 통통한 입술을 가르고 들어가 말랑한 혀를 살짝 간질이자 금새 칭얼대며 멋대로 입안에 침입해 들어온 이물질을 밀어낸다. 짜증이 날 만큼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입술 위로 스치듯 닿아온 녀석의 혀를 빨아대며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었다. 탐스러운 입술에 달라붙어 한참동안 연한 살점을 잘근잘근 깨물고, 핥고, 탐욕스레 빨아들이다 까맣게 드러난 눈동자에 흠칫 놀라 촉촉하게 젖은 입술에서 떨어져 나와 가만히 내려보니 다행히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잔뜩 흐려진 눈동자가 시야에 들어온다. "빌어먹을 자식...........빨리 기억해 내. 그 때.......... ...............약속했잖아.............." 귓가에 작게 속삭이며 가볍게 입을 맞추자 귀찮은 듯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박정한 녀석을 원망스런 눈으로 노려보다 죽고 못사는 애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꼬옥 끌어안고 있는 베개를 심술 맞게 빼앗아 버리자 한동안 꼼지락대더니 슬금슬금 품안으로 파고든다. 만족스레 베개 대신 녀석의 품안을 차지하곤 한참을 뒤척이다 얄팍한 이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하얀 속살을 더듬어가며 부드러운 애무를 거듭하고 있었다. 얇은 점퍼를 벗겨내고 티셔츠를 끌어올려 자극에 살짝 일어선 가슴돌기를 지분거리다 뽀얀 목덜미를 부비대던 입술로 연한 살을 살짝 빨아들이는 순간 묘한 신음이 귓속에 파고든다. 복부에 닿아오는 생소한 느낌에 놀라 귀신이라도 본 표정으로 잠이 든 얼굴을 한참동안 내려보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어느 샌가 반쯤 일어선 페니스를 감아쥐자 강아지 마냥 꼬물대며 더운 숨을 뱉어낸다. '설마?!!!' ...........................몽정이었다. 잠결이지만.................그렇게 빨고 주물러 대도 귀찮은 내색만 보일 뿐 꼼짝도 않던 녀석인데................ '이 자식...................!!!' 꿈속에서 어떤 계집이 다리라도 벌려주는지 금새 흥분해버린 녀석에 울컥 화가나 거칠게 흔들어 깨우려다 쾌락으로 물든 얼굴로 보채듯 젖은 신음을 흘리자 별 수 없이 벌어진 입술을 그대로 틀어막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젠장..............!!’ 이렇게 무의식 중에라도 성욕을 드러내는 걸 보면 완전히 숙맥은 아닌 모양................... 게다가................... 같은 사내가 봐도 훌륭한 물건을 보면 역시나 아이 셋을 낳았다고 해서 붙잡을 수 있는 여자도 아니다. "하아..............." "............................ ................. ........."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읽었던 우스꽝스런 전래동화에선 여자가 아이 셋을 낳으면 자기가 살던 곳(?)으로 달아나지 못한다고 했다. 순진한 게 그때 이유를 물었던 것도 같은데............ 분명 실컷 비웃어대며 해준 대답이란 게............. 애새끼를 셋이나 낳으면 여자가 뚱뚱해져서 날아다니는 옷(?)이 찢어져버릴 거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 ................. ........." 바보같이 10살이나 먹어선 그런 것도 모르다니............. 귀여운 놈............. ".......................... ................... ..........." 그래도............ 이 녀석이 낳아준다면 다 병아리새끼처럼 귀여울 텐데.............. 뭐.................... .................새끼 고양이가 병아리를 낳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아니................. 사내놈이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긴가.......... "으응.................아..............흑...........티................포............ㄴ................" 터무니없는 생각에 비소를 흘리다 절정에 오른 듯 매달려오는 녀석을 조심스레 쓸어 올리며 민감한 귀두 끝을 자극하자 바로 손안에 쾌락을 쏟아놓는다. 어지간히도 달콤한 꿈을 꾸는지 뒤처리를 하고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 입힌 후에도 끝끝내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녀석의 무심함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품안에 쏙 들어오는 마른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 . . 이름을 부르면 화를 낸다. 거기에 성까지 붙여 이름을 부르면 거친 욕설과 함께 주먹이 날아든다. 황소보다 고집이 쌘 데다 엄청난 성깔에 돈이면 환장을 한다. 따뜻한 볕 아래서 늘어지게 잠이나 자면 딱 맞을 영락없는 고양이 주제에 새벽이면 새가 둥지를 틀만한 머리를 한 채 신문배달을 한다. 묘하게 체온이 높아 밤에 안고 자면 금새 잠이 오고, 잠을 잘 때 곁에 있어주면 새끼 새같이 품안에 파고든다. 부드럽게 키스해 주면 얼굴을 붉힌 채 말을 더듬지만, 거칠게 다루면 발길질을 해댄다. 의외로 외로움쟁이에............... .....................어리광쟁이다. 주인 잃은 고양이라면 이대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만이다. * .................알고 싶었다. 이 녀석 너머로................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건지............... 불길할 만큼 가쁘게 뛰어대는 심장박동에 나쁜 장난을 쳐버린 어린아이처럼 묘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입안에서 제멋대로 꿈틀대는 이물감과 열기에 허덕이며 속수무책으로 끈적한 신음만을 쏟아 내고 있었다. . . . 뜨겁고 질척한 타르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비와도 같았다. 아름답지만 바스러질 것처럼 약한 날개는..............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리고있는 함정을 벗어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잠겨있었다. "하아..............." 무방비 하게 벌어진 입술을 굶주린 듯 빨아대던 녀석이 사타구니 사이를 애무하던 손으로 다리를 벌리고 체중을 실어왔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허벅지 안쪽에 비벼지는 열기와 단단함에 놀라 순간 달아나려 버둥대자 먹잇감을 움켜쥔 짐승처럼 거친 숨을 내뱉으며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는다. "흑......!!!!!!" 화끈한 통증에 작게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리자 뽀얀 피부를 빨아대며 붉은 울혈을 새겨 넣던 녀석이 흠칫 몸을 굳힌 채 나지막한 욕설을 신음처럼 토해낸다. "하아.............젠장!! 잠깐이면 돼...... 그래.............흣............ 조금만.......... ............안에는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말과는 달리 부드러운 엉덩이를 주물러대며 굴곡사이를 오가던 손이 슬그머니 앞쪽으로 넘어와 엄한 곳을 만져대고 있었다. "흑..........아파.............." 하반신이 저릿한 느낌에 헐떡이며 호소를 하자 정신 없이 키스를 퍼부어 대던 입술 끝이 슬며시 말려 올라간다. "큭, 아픈 게 아냐.............. 자면서 하는 것보단 이 쪽이 더 나을 거다" "아...........하악............하지.......흡............" 통증과도 닮은 끔찍한 쾌감에 몸부림을 쳐대며 거부의 말을 토해내자 그대로 입술을 틀어막고 용광로같이 뜨거운 혀를 목구멍 깊숙이 찔러 넣는다. 이상하리 만치 뻐근한 통증이 일던 페니스가 뜨겁고 단단한 살점에 짓눌린 채 가차없이 비벼지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충격에 저항 따윈 생각도 못하고 자지러졌다. "큭...............흐읏.................!!!" 짐승처럼 헐떡이는 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얇은 파자마 아래로 살짝 일어선 가슴돌기를 물어뜯으며 맞닿은 하체를 비벼 올리자 비명 같은 신음을 쏟아내며 몸을 떨었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 헐떡이며 내달리자 천국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하아.............학...................아앗..............." 까무러칠 것 같은 느낌에 몇 번이나 숨이 멎었다. 금새라도 도달할 것만 같았던 그곳은 어느샌가 저만치 달아나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대로 지옥 밑바닥까지 곤두박질 쳐질 것만 같아서 단단한 몸에 필사적으로 매달리자 하체에 꼭 달라붙어 피스톤질을 해대던 녀석의 움직임이 더욱 집요하고 난폭해지기 시작한다. "흑............아앗............그........만...................하악..............." 분명......... 익숙한 열기와 익숙한 쾌락이었다. 정에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드는 녀석도............ 왠지..................... '낯설지............ ..........않아.................?' 질척한 쾌락에 빠져 허우적대던 의식을 비집고 섬광처럼 스쳐간 깨달음에 마약 중독자처럼 벌벌 떨어대는 손을 겨우 뻗어 핏방울이 베어 나올 만큼 붉디붉은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올리고 있었다. 『사랑해............』 '사......랑..............?' 『.........너뿐이다.......내겐........』 '누구................?!!!' 들썩이는 가슴에 얼굴을 묻고 애정을 구하는 사내가 못내 안쓰러 품안에 꼬옥 끌어안았다. 미치도록 그리운 얼굴인데...........보고싶은 얼굴인데.............. 망가진 기억을 아무리 헤집어대며 기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다. 조각난 기억 속에 떠도는 이름이 소리가 되어 터져 나오지 못하고 자꾸만 입가에서 맴돌기만 하는 게 안타깝고 속이 상해.............. ...............조금................... ...................울었다. "...하아...........하류..........흑..........." "으응.............."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지독한 쾌감에 채 억누르지 못한 교성이 입술을 비집고 터져 나오자 위에서 정신 없이 움직여대던 녀석이 축 쳐진 몸을 빈틈없이 끌어안고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어 댄다. 어질어질한 기분에 눈을 감아버리자 몸이 붕 뜨는 느낌과 함께 아랫배가 축축이 젖어들고 있었다. "하아...........입 좀.........벌려봐........." 더운 숨을 뱉어내며 허락을 구하는 말에 멍한 정신으로 먹이를 기다리던 제비새끼 마냥 입술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뜨겁고 축축한 혀가 입안으로 파고들어 민감한 점막을 헤집어댄다. "흣......................" 허벅지 안쪽을 애무하던 손이 갑자기 아픈 페니스를 슬쩍 움켜쥐는 바람에 흠칫거리며 몸서리를 치자 숨죽인 웃음이 귓가를 스쳐온다. "큭, 아직 깨끗하네..........여자한테 넣어본 적도 없는 거냐?" "..............?!!!" 그제야 뜨거운 것에 사정없이 쓸려 화끈거리는 것을 내려보니 뽀얀 몸체는 이미 길다란 손가락에 감긴 채 분홍빛이 도는 귀두 끝만 살짝 시야에 비친다. "아.........!! 흑................" 제지할 틈도 없이 조몰락대며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채 내보내지 못한 유색 액체가 점점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절정의 여운에서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느릿한 피스톤질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며 꿈틀거리자 포식한 사자처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장난스레 벌어진 입가를 혀로 핥아가며 슬쩍슬쩍 입술을 훔친다. "흐윽................아앗.........." 헐떡이며 밀어내도 끈질기게 들러붙어 괴롭혀대던 손은 마지막까지 내보내고 축 늘어진 후에야 겨우 떨어져 나갔다. "그 낯짝을 하고선 용케 순진하게도 놀았군........." 잔뜩 속을 긁어대는 말투도 평소처럼 밉지만은 않다. "이러니 어린애라 할 밖에............" 달래듯 등허리를 쓸어주는 손길도 눈물이 날 만큼 부드러워 가만히 허리를 감아 끌어당겨도 얌전히 품에 안겼다. "자는 거야? 왜 이렇게 얌전해? 얼굴 좀 보여줘.............." 푸른빛이 돌만큼 새카만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올리며 시선을 맞춰오던 녀석이 잔뜩 젖어 엉망이 되어버린 얼굴에 치명상을 입은 들짐승처럼 참담하게 표정을 구겼다. "왜.........그래? 어디.............아픈 거야? 기분............나빴어?" 걱정스런 목소리가 좀처럼 반응 없는 모습에 점차 격한 울림을 띄우기 시작한다. 방금 전까지의 온화한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평소처럼 싸늘한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겨우 찾아냈는데............... 금새라도 내치고 달아나 버릴 것만 같아 고개를 휘저으며 품안으로만 파고들려 하자 신음이 새어나올 만큼 강하게 어깨를 틀어쥐고 무서운 눈으로 내려본다. "그럼?!!!! 어제부터 대체 왜 그래!! 어디가 아파서 자꾸 눈물만 짜는 건데?!!! 뭐가 잘못된 건데?!!! 빌어먹을!!!!!! 왜 자꾸 이래?" 벽력같은 고함소리에 잔뜩 풀이 죽어 움츠러들자 순간 애지중지하던 도자기가 깨지기라도 한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며 기이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젠장...............!!!!!" "........................... ..................... ................너야?" 한참 후에야 겨우 화를 누그러뜨린 듯 시선을 맞춰오는 녀석에게 울음 섞인 목소리로 작게 속삭이자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숨을 죽인다. "........................ ................너였어?" 내가 기다리던 게.............. 자꾸 아프게 하던 게............. "............................ ..................... ..............." "대답해..............흐윽..........대답..........." 끝내 참지 못하고 숨죽여 흐느끼자 잠깐 동안의 침묵을 깨고 거칠게 품안으로 끌어당겨 새카만 머리칼에 뺨을 부벼온다. "그래............ ................나야...................."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흔들림 없는 답변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 . . "하지마!!!!!!" "왜?"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분통을 터뜨리며 사납게 소리쳐도 당연한 듯 뻔뻔한 물음만 되돌아온다. 격한 행위로 인한 흥분과 히스테리 같은 발작을 겨우 가라앉히고 정신을 차려보니 계속 이 모양이다. 힘이 빠져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진 몸을 바짝 끌어안은 채 도둑놈처럼 커다란 손으로 가슴이든, 옆구리든, 엉덩이든, 페니스든 제 장난감인 양 멋대로 주물러대고 있었다. "썅, 비켜!!!!!!!!!!!!" 퍼억----------!!!! 결국 파렴치한 추행을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어대다 다리에 얼추 힘이 돌아오자마자 낙지처럼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도 않는 녀석을 냅다 걷어차 버렸다. 쾅!!!!! 꽤나 요란한 소릴 내며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 녀석이 죽일 것처럼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따 눈깔질이야?!! 이 재수 없는 새끼!!!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미친놈처럼 악을 써대며 발광을 해도 속이 풀리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오기라도 하면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줄 작정으로 주먹을 꼬옥 움켜쥐고 있었지만 벌컥 화를 내며 달려들 줄 알았던 녀석은 웬일인지 집어삼킬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꼼짝도 하지 않는다. 끈적하게 들러붙는 시선과 서늘한 느낌에 그제야 흠칫 놀라 내려보니 파자마 상의는 달랑 단추 두 개로 겨우 걸쳐져 있고 하의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뽀얀 하체가 환히 드러나 있었다. 경악에 찬 표정으로 숨을 들이키며 굳어버리자 그게 또 맘에 들지 않는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시선을 보내온다. "뭐.............뭘 한 거야?!!!!!!!!!!" "몰라서 물어?!!!!!!!" 되려 화를 내는 녀석에 놀라 잔뜩 붉어진 입술을 벌린 채 멍한 눈으로 바라보자 이내 복잡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퉁명스레 말을 던진다. "페팅.............삽입까지는 봐줬지만 다음엔.......... .................섹스를 할거야" "뭐...........?" 그게 뭐야? 하는 표정으로 올려보자, "모르면 그때 가서 배워............!!!" 헝클어진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퉁명스런 대답만 남겨놓은 채 신경질적으로 돌아선다. "야!!!!!!!!!" "젠장, 쨍알대지 말고 이거나 먹어............." 다시 돌아선 녀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툭 내뱉는 말에 모처럼 욕을 줄창 쏟아내려던 입을 얌전히 다물고 코앞에 들이밀어진 샌드위치와 우유를 뚫어지도록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 밥을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일은 사그리 잊은 채 사양할 생각도 않고 고급 음식점에서나 나올법한 모양의 샌드위치를 집어 덥썩 입에 물자 그제야 미간을 펴고 턱을 괸 채 빤히 바라본다. "맛있어?" 허기를 채우느라 대답할 생각도 않고 고개만 주억거리자 코웃음을 치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는다. 사실 빵보다 밥이 더 좋긴 하지만 이건........가끔씩 편의점에서 먹는 샌드위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맛이 좋다. "넌?" 자꾸 쳐다만 보는 녀석이 먹던걸 다시 빼앗아갈까 손에 꼬옥 움켜쥐고 불퉁하게 말을 던지자 기가 막힌 듯 한동안 말이 없더니 한참 후에야 겨우 밉살맞게 입을 열어온다. "안 뺏어 먹을 테니 천천히 씹지 그래?" '켁, 그걸 어떻게 믿어?!!!' 열심히 샌드위치 조각을 입 속에 우겨 넣으며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자 가뜩이나 험악한 인상을 종이짝처럼 구기더니 음산한 목소리로 으르렁댄다. "아침은 원래 안 먹어............." '아침...........?' 아침은커녕 벌써 점심때가 다 되어간다. 게다가 아침도 먹지 않고 저 덩치를 유지하고 있다니........... '이상한 놈.............' 궁시렁대며 입술에 우유잔을 갖다대자 붉어진 입술에 바로 노골적인 시선이 박혀들어 온다. '젠장.............저 새끼!!' 아까부터...............저런 반응이다. 배고픈 젖먹이가 어미젖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속으로 투덜대며 모르는 척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키곤 잔을 내려놓자 기어코 손을 뻗어 입술에 묻어있는 하얀 액체를 살짝 쓸어 닦아낸다. "뭐.............뭐 하는 거야?!!!!!" 삼켜버릴 것처럼 핥고 빨아댄 입술이 지금까지도 불에 데인 것처럼 화끈거려 녀석이 손을 대자마자 화들짝 놀라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거칠게 손을 쳐내자 화가 난 듯 한동안 눈을 치켜 뜨고 노려보더니 붉어진 얼굴에 금새 표정을 풀고 피식 웃음을 흘린다. "큭, 순진하긴............" "우............웃기지마!!!" "얼굴은 왜 빨개지는 건데?" '젠장..........!!!' 조금............ 마음이 편해진 것뿐이다. 초조감이 옅어진 것뿐이다. 새삼 사라졌던 기억이 되돌아온 것도 아니고, 눈앞의 녀석이 내게 어떤 의미인 지도 알지 못한다. 기억해내지 못해 안달을 하던 존재가 눈앞에 나타났다고 해서 달라진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찾았잖아.............. 이렇게 눈앞에 있잖아........... 그러니까 이젠................. .................아프지 마................... 제발................' 그렇게 주문을 외듯 되뇌이며 심장을 움켜쥐자 아프도록 뛰어대던 것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지고 있었다. 뭔가............... 내 안에서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 * "이름이.................뭐야?" "................" 암갈색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가만히 말을 던지자 부기가 가라앉은 발목을 조심스레 살펴보던 녀석이 그제야 시선을 맞춰온다. 실종되었을 동안의 기억과 지난 일년간의 기억만이 사라진 게 아니란 것쯤은............. ..............이미 알고있던 사실이다. 단지...............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필요한 것도 아닐뿐더러 되찾을 중요성조차 깨닫지 못한 까닭에 굳이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을 뿐......... "나..........알고 있는 거지? 그래서 계속................" "................." 하지만................. 이렇게나 답답한 것을 보면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나보다. "그런 건............ ...............스스로 기억해 내.........." 고집을 피우며 퉁명스레 말을 던지지만 난폭하던 성정과 냉정한 언동은 거짓말처럼 사라져있었다. 애매한 대답에 골이 난 표정으로 시선을 떨구자 매끈한 허벅지를 쓸어 올리며 달래듯 말을 던져온다. "배는 불러?" 하루종일 굶고 그딴 빵 한 조각에 배부를 턱이 없다. 시간을 보니 미란이를 보러 병원에 가기엔 아직 이르고, 아르바이트는 무단결석에 이런 발목으로 가봤자....... 슬슬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아직 욱신거리는 발목을 몇 번 움직여보곤 비틀대며 몸을 일으키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손목을 움켜쥐곤 막무가내로 욕실 안에 밀어 넣는다. "씻고 나와...........점심 사줄 테니............." "뭐?!!!" 눈앞에서 쾅 닫혀버리는 욕실 문을 황당하게 바라보다 다시 벌컥 문을 열어제치자 대충 걸치고있던 파자마를 훌훌 벗어 던지며 옷을 갈아입고 있던 녀석이 흘끗 돌아본다. "왜? 씻어 줘?!!!" "헉...........!!" 놀라 문을 닫아버리고 안절부절못하며 욕실 안을 서성이다 우연히 눈이 간 거울 저편엔 한심할 만큼 초조한 낯빛에 후줄근한 몰골을 한 녀석이 멍하니 넋을 놓고 서있다. "하, 볼만하군..............." 어제 저녁 그렇게 비를 맞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로 저 녀석에게 끌려와 빌어먹게도 뜨거운 돌침대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잠을 잤으니......... 그제야 찜찜한 느낌에 별 수 없이 옷을 벗고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서 몸을 씻기 시작했다. 겨울 내내 얼음장같은 물로만 씻어왔는데 ................ '큭, 호강하는군................' 피곤이 가실 만큼 따뜻한 물에 금새 기분이 좋아져 멋대로 욕실에 밀어 넣어준 녀석이 오히려 고마울 지경............... 평소보다 오랫동안 몸을 씻고 보송한 타월로 물기를 닦아내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짜증 섞인 목소리가 욕실 안을 울려온다. "계집애도 아닌데 왜 이렇게 꼼지락...................." '빌어먹을 자식........!!!' 불만스런 표정으로 돌아보자 놀란 듯 말을 삼킨 채 훤히 드러난 나신을 핥듯이 훑어보던 녀석이 신음 같은 욕설을 내뱉으며 하얀 손목을 덥석 움켜쥐고 욕실 밖으로 끌어낸다. "무슨.............?!!" 의아한 표정으로 올려보자마자 강하게 허리를 틀어쥐고 잡아먹을 것처럼 입술을 부벼대기 시작한다. "흐읍.................!!!!" 갑작스런 행위에 놀라 정신 없이 발버둥을 쳐댔다. 고개를 휘저어 집요하게 입술에 들러붙는 녀석을 겨우 떼어내자 귓가에 더운 숨을 내뱉으며 조용히 속삭여온다. "하아..........나랑 같이 살자................. 그때.........헤어지기 전에 약속했잖아...... 18살 만 되면......몇 일만 있으면........ 영감탱이 재산........다 내 앞으로 떨어지게 돼 있으니까........ 그깟 후계자 자리 꿰어차지 않아도 돈이라면 평생 쓰고 넘치도록 있어" "뭐..........?!!!" 알 수 없는 소리에 저항을 멈추고 올려보자 발가벗은 몸을 품안에 꼬옥 끌어안고 숨이 막히도록 죄어온다. "도대체............무슨 속셈이야?!!!" 돈 때문도 아니고, 병원신세를 지게 한 앙갚음도 아니다. 아무리 기억에 없다지만 혈연관계일 리도 없고, 어릴 적 친분 때문이라면 이렇게 격한 감정 따윈 더더욱................ 혼란스런 눈으로 녀석을 올려보자 씁쓸한 눈빛을 한 채 이마를 맞대온다. "그딴 거...............나도 몰라................" 다시 부드럽게 입술을 포개더니 밀어내기도 전에 떨어져 나간다. "왜...................... ............상관도 없는 녀석이 아등바등 힘들게 살아가는 게 안쓰러운 거지............? 왜 눈동자만 봐도 숨이 멎을 것 같고............. 왜 눈물을 보이면 이렇게 심장이 쓰린 거냐..........? 왜 아프면 품에 넣어 지켜주고 싶은 건지............ 왜 같은 사내놈을 안고싶어 발정을 하는지......... 내가 대체 왜 이러는 지........................ ...........네가 말해봐............" '무슨.................소리야?' “...................” 갑작스런 말에 한동안 녀석을 멍하니 올려보다 금새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툭 말을 던져냈다. "동정 따윈 필요 없어........." "동정? 하, 둔한 자식............" 차갑게 잘라 말하자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터뜨리더니 촉촉하게 젖은 목덜미에 뺨을 부벼온다. "정말.............사내자식이................ ...............귀여워 죽겠군" "미친 새끼, 개소리 작작하고 저리 비켜!!!!" 앙칼지게 욕을 퍼부어도 뽀얀 목덜미에 코를 박은 채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같은 걸로 씻었는데 왜 아기 냄새가 나는 거야?" "썅, 코가 썩은 거 아냐?!!! 헉, 이 개자식!!! 어........어딜 만지고 지랄야!!!!!" 사타구니 사이를 더듬어오는 손길에 놀라 새된 비명을 지르며 버둥대자 짓궂은 미소를 띄운 채 밉살맞게 입을 열어온다. "아까...........큭, 여자였으면 임신했을 걸" "뭐......................?!!!!!!" 터무니없는 말에 저항도 잊은 채 경악한 눈으로 올려보자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악동 마냥 눈을 빛내며 말을 잇는다. "밤에 한 침대에서 같이 잔 거 기억 안나?" "우............웃기지마!!! 그딴 걸론 임신 안 해!!!!!!!" 불안으로 쿵쿵 뛰어대는 심장소릴 녀석에게 들킬까 두려워, 되려 큰 소리를 쳐대며 슬그머니 눈치를 보자 잔뜩 김빠진 표정으로 속을 긁어댄다. "어릴 적엔 잘도 그딴 소리 지껄인 주제에.............." "내.......내가 언제?!!!!!" "뭐야? 단순한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치매냐?" "이 개자식...........!!!!!!!!!" "밤에 같이 잔 건 둘째치고 아침엔................ 큭, 그냥 손만 잡은 것도 아니고 할 건 다 했잖아........? 그것도 기억 안나?" 감당 못할 쾌감과 죄책감밖에 남지 않는 행위에 나쁜 짓이란 것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걸로 임신이라니?!!!!!!!! 무방비 하게 무책임한 일을 저질러버린 자신이 기가 막혀 말도 잊은 채 돌처럼 굳어있자 제 자식이라도 들어 있는 것처럼 복부를 쓸어 올리며 조용히 귓가에 속삭여온다. "....................책임져야하는 건가?" "아악!!!!!!!!!!!!!!!" 이런 미친놈한테 발목잡혀 인생 망가뜨리고(?) 싶은 생각 따윈 추호도 없다. 토끼 같은(?) 마누라는 이미 정해놨으니 나중에 병이 호전된 후 작은 집이라도 얻어 여우같은 새끼들(?)만 낳으면 고달픈 인생도 약간이나마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개소리 집어쳐!!!!! 남자는 임신 안 해!!!!!!!!" 거칠게 녀석의 손을 내치고 후다닥 이불을 끌어 몸을 둘둘 만 채 건달한테 겁탈 당한 숫처녀 마냥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노려보자 심술이 가득한 낯짝으로 놀려댄다. "많이 컸네? 그딴 건 또 누가 알려준 거야? 어디서 주워들은 거냐?" 반박도 하지 못하고 분한 마음에 죄 없는 입술만 깨물어대자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웃음기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뒤돌아선 녀석이 옷장 안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던 옷가지들을 눈앞에 던져주며 다시 말을 꺼낸다. "그거나 입어" "내 옷 내놔!!!" "버렸어........." "뭐?!!! 이 미친놈, 왜 멋대로........!!!!" "얼음물로 빨래하기 귀찮잖아?" "옷값 드는 것보다 나아!!!!!!!!" "옷값 주면 될 거 아냐!!" "..............." 궁시렁대며 토끼털처럼 하얀 스웨터와 아이보리 색 팬츠를 꿰어 입자 만족스러운 듯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손목을 덥석 쥐어온다. "가자!" "가긴 어딜 가?!!! 집에 갈 거야!!" 울컥 화를 내며 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하자 침실 밖을 나서던 녀석이 무심하게 말을 던진다. "어차피 너.......아르바이트도 다 잘렸잖아. 오늘은 과외하기도 다 틀린 것 같고 어차피 나도 하루종일 혼자 있어야 하니까........." "혼자...............?" 그러고 보니.........이렇게 넓은 집안에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너............혼자 사는 거야?" "그래........" "부모님은?" "달랑 하나뿐인 자식 내팽개쳐 두고 둘 다 외국에............ 뭐, 자식보다는 일이 더 먼저인 사람들이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하지만 딱딱하게 굳은 표정과 싸늘한 말투엔 채 숨기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애새끼같이..............배부른 투정하지마........." 불퉁하게 말을 던지자 화가 난 듯 손목을 꽈악 움켜쥐고 거칠게 끌어당긴다. "투정? 큭..........넌? 설마.............아버지가 밉지 않은 거냐?" "이젠............ ...............미워하지 않아" 진심이다. 어머니와 날 버린 남자 따위............... .............불과 1년 전만 해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는데............ 지금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지난 1년 간.................. ...............증오마저도 잊혀진 기억과 함께 망각의 강에 던져버린 것이 분명하다. "너..................." 갑자기 멈춰서 표정을 살피던 녀석이 무겁게 입을 열어온다. "지독하네......... 미워한다는 것보다 더 무서워. 역시............. .............섣불리 손대지 않은 게 다행이군.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중에 내가 싫어지면................ ................정말 보는 것도 끔찍할 만큼 싫어지면.............. 차라리 미워해라. 그렇게 완전히 지워버리지 말고..............." 잔뜩 가라앉은 눈동자를 말없이 올려보자 그대로 손목을 끌어 집밖으로 나선다. "추워?" 문을 열자마자 얼굴로 확 끼쳐드는 한기와 평소보다 얇게 입은 옷차림 탓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자 가만히 어깨를 끌어당겨 안아준다. 그런데............... '응.........?' 뼛속까지 파고들 추위를 단단히 각오하고 있던 게 무색할 만큼 전혀 춥지가 않다. "안 추워..........." 고개를 가로 저으며 녀석의 품안에서 빠져나오려던 순간 인상 좋아 보이는 중년 사내가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성큼 다가서는 게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나가시게요, 도련님? 항상 타시던 걸로....................." "아니, 승용차로 갈 거야. 예전에 자주 가던 음식점.........기억하지?" "물론이죠" "추우니까 빨리 준비해" "예........." "가자..........." 꾸벅 인사까지 하며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사내를 놀란 눈으로 바라만 보고 서있자 어깨를 잡아끌며 재촉을 해온다. "너희 집에서 사채라도 빌려 쓴 거야?" "그런 쪽으로밖에 생각 못하는 거냐? 예전부터 집안에서 부리던 사람이야" "부리던........사람? 조폭?"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소문엔............" "다 헛소문이야.........."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는 녀석을 불만스레 올려보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꺼내온다. "다른 사람한텐 신경 쓰지마......... 내가 누군지 알고싶은 거 아냐?" "알려주지도 않는 주제에..........." "빨리 기억해 내면 되잖아"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진작에........." ".................알려줄까?" 귀찮은 듯 성의 없이 던져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올려보자 음모 가득한 표정으로 귓가에 속삭여온다. "18살 되면 목욕도 같이하고, 잠도 같이 자고, 나랑 함께 살기로 약속까지 했잖아" ".........................." '뭐야? 우리 집구석도 이 자식 집에서 사채 가져다 쓴 건가?' "......................" 별로 알고싶지 않다. "기억 안나..........." "젠장, 누가 이렇게 만들어버린 거야?" 툴툴대는 녀석에게 이끌려 대문 밖을 나서자 매끈하게 빠진 검은색 차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에 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던 고급 레스토랑의 뚱땡이 사장이 친자식처럼 애지중지하던 벤츠와 같은 모양새........... "빨리 타지 뭐해?" "우왁!!!!!" 다짜고짜 차안으로 밀어 넣는 녀석 탓에 꼴사납게 시트 위로 처박히자 반대편 좌석에 마주앉아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찬다. "왜? 그렇게 자고 또 잠이 와? 불편하면 이리 와! 재워줄 테니.........." 자신의 무릎 위를 툭툭 치며 이죽이는 녀석에게 까득 이를 갈아붙이는 사이 매끈한 차체가 고급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있었다. *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볼 테냐? 이 늙은이의 기억에도 가물가물 할 정도로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지. 대륙을 온통 피로 물들여 버린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의 검 하나로 비옥했던 토지가 성별이나 노소를 가릴 수 없는 시체로 뒤덮였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천년왕국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었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사내를 지옥의 무저갱에서 뛰쳐나온 베이아터의 왕이라고 수군댔다. 확실히........그런 별을 지니고 있던 사내였다. 지옥의 화염처럼 붉은 머리칼에 피처럼 진한 눈동자를 한번이라도 마주한 사람이라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지. 게다가 그 소문의 출처가 내 스승이었으니 신빙성이 배가되었음은 말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고..........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 당시엔 네 심장에 박혀있는 것과 같은 고대 마법과 환상이라 치부되던 갖가지 종족들이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었지. 그 중에서도 사내가 가장 성가시게 여긴 건 공간을 다룰 줄 아는 고대종이었단다. 종족의 몇몇 혈기 있는 젊은이들이 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사내의 앞에 나타나 암살을 시도했으니 말이야. 처음엔 사내도 몰래 공간을 넘어 자신의 목에 검을 들이대는 젊은이들을 참혹하게 죽여 본보기로 삼았지만 한낱 날파리라 생각했던 존재들이 하나둘씩 늘어가자 검 끝을 종족 전체에 돌렸지. 곧 소멸할 종족의 왕은 근심에 싸였다. 그에겐 대륙에서 제일 아름다운 왕비가, 사흘만 있으면 왕의 아이를 낳게 될 왕비가 있었지. 다른 왕국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진다면........... 고귀하게 태어났어야 할 자신의 아이 또한 빛도 보지 못한 채 죽게될 테니.......... 전쟁을 하루 앞두고 성안 유일의 점성술사가 별을 읽었다. 왕비의 뱃속에 있는 아이를 사내에게 바치라 왕에게 고했지. 왕비의 뱃속에 있는 아이야말로 피에 미친 명계 왕의 유일한 반려라는 것을 점성술사만이 알고 있었거든...... 한동안은 잠시 퇴락해 갈 지라도 영원한 번영이 약속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저주와도 같은 상황이 어쩌면............천재일우의 기회였는지도 모를 일이지. 하지만 이성을 잃고 분노한 왕은 점성술사의 가족을 모두 죽이고 그를 영원히 추방해 버렸다. 그리고 결국............종족 모두 사내의 손에 참혹하게 소멸돼 버렸지. 아이를 잉태하고 있던 왕비만을 남긴 채........... 죽어가던 왕비는 공간을 비틀어 뱃속의 아이를 끄집어냈다. 광기에 찬 사내조차도 순간 자신의 유일한 반려를 알아보고 숨을 죽였지. 하지만 겁에 질린 왕비는 자신의 아이가 사내의 손에 닿기도 전에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전이시켜 버렸다. 대륙의 눈을 홀리던 고귀한 혈통의 마지막 생존자였지. 이후의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한단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이미 죽어버렸으니........ 어떠냐? 재미있었느냐? 응? 뒷 얘기가 궁금하다고? 쯧쯧.......때때로 호기심은 자신의 명을 재촉하는 법이지. 이후의 일은 왕궁에서 쫓겨나 이계를 헤매고 있는 점성술사만이 알고있단다. 흠..........하지만 내 특별히 네게만 살짝 이야기 해 주마. 광기에 사로잡힌 사내의 손에서 겨우 벗어난 왕비는 바로 자신의 아이를 뒤따라갔지만, 결국 비틀린 공간 안에서 자신의 아이를 찾아 헤매다 숨이 끊어져 버렸지. 눈앞에서 자신의 반분을 어이없이 잃어버린 사내는 자신이 세운 왕국에 고대 주술을 남긴 후 돌연 사라져 버렸다. 자신의 왕국, 어쩌면 사람들의 말처럼 명계의 베이아터로 되돌아가 때를 기다리기로 한 게지. 존재조차 알 수 없었던 자신의 반려가 다시 나타날 때를.......... 마지막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는 어느 알 수 없는 곳의 자궁 안에 자리를 잡아 무사히 세상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왕비의 마지막 바램대로 평탄한 삶을 살고 있었지. 하지만 과거의 일을 잊지 않고 있던 점성술사는 행복했던 아이에게 약간 장난을 쳤단다. 아이의 부친에게..............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살짝 귀띔을 해 준 게지. 큭큭, 어떠냐? 아가야............ 왜 네 아비가 너희 모자를 버렸는지 이제야 이유를 알겠느냐? * 여전히 피곤한지 차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녀석을 슬그머니 끌어당겨 품에 안자 어느새 잠에서 깨었는지 흑요석처럼 까만 눈동자로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도착하면 깨워줄 테니까..........” 결 좋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부드럽게 귓가에 속삭이자 말 잘 듣는 고양이 마냥 다시 스륵 눈을 감는다. 자신의 품안에서 실컷 울어댄 이후 경계를 풀어버린 녀석이 못 견디도록 귀여워 한동안 마른 몸을 꼬옥 끌어안고 주인에게 애정을 구하는 개새끼 마냥 하얀 목덜미에 뺨을 부비다 고른 숨소리가 들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벌어진 입술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였다. 급하게 하얀 스웨터 안으로 파고들어 매끈한 피부를 더듬어대는 자신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품안에서 얌전히 잠이 들어버린 무방비한 모습에 파렴치한 행위를 멈출 생각 따위 쉬이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내 것이 될 테니까....... 아니, 원래부터 망가진 내 심장의 반분이었으니까....... 손끝에 걸리는 유두를 지분대며 토끼털 같은 스웨터를 말아 올리자 분칠을 해놓은 것 마냥 하얀 복부가 드러난다. 발정 난 짐승처럼 참지 못하고 뽀얀 가슴에 달려들어 작은 돌기를 빨아대자 달콤한 체향이 비웃듯 종잇장 같은 이성을 간단히 마비시켜 버렸다. 골반에 겨우 걸려있던 바지를 벗겨내 손에 잡히는 부드러운 녀석을 움켜쥐고 주물러대자 품안에 있던 몸이 작게 오그라든다. 팔딱팔딱 심장이 뛰는 가슴에 미친 듯이 뺨을 부비고 입술을 눌러대다 순간 뼛속까지 태워버릴 듯 뜨거운 열기가 뇌리를 스치자 화들짝 놀라 정신이 들었다. “뭐.........뭐야.....................?” 믿을 수 없는 감각에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자 자신의 타액이 묻어 발갛게 일어선 유두도, 멋대로 주물러대 살짝 성이 난 치부도 내놓은 모양으로 태평스레 잠에 빠져있는 녀석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신의 애무가 꽤나 귀찮았는지 곱게 미간을 찌푸린 채 뒤척이는 녀석을 한참동안 넋이 나간 듯 바라만 보다 반쯤 벗겨진 스웨터를 살짝 밀어 올리자 섬뜩할 만큼 붉은 핏자국이 시야에 박혀들었다. “이게 무슨..............젠장...........!!” 아무리 문질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에 나직이 욕설을 내뱉으며 자세히 들여다보자 정교한 문양이 지옥의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어떤 쥐새끼가...........!!!” 이 따위 걸 순진한 녀석이 직접 새겼을 리 없다. 대담하게 심장 위에 새겨진 각인이 마치 소유를 주장하는 것 같아 짜증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설마...........?!!!’ 갑자기 스치는 생각에 품안에서 고이 자고 있는 녀석을 까만 가죽 시트에 올려놓고 깨지 않도록 조심스런 손놀림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살피다 녀석의 몸을 뒤집자마자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은빛 짐승에 놀라 저도 모르게 데인 듯 부드러운 피부에서 손을 떼 버렸다. “이건 또 뭐야............?!!!” 경고하듯 서늘하고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는 문양을 한참동안 노려보다 엎드린 자세가 불편한지 꿈틀대는 녀석의 몸을 냉큼 품에 안아들었다. "빌어먹을.........!!” 기분 나쁜 문신 따위 병원에 데려가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이유 모를 패배감에 치를 떨며 분을 삼키다 피로에 절은 파리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차는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심장을 할퀴고 지나갔다. “병신, 왜 이렇게까지.........!!!” 녀석이 필사적으로 살리려 아등바등 애를 쓰는 얼굴도 모르는 대상이............ 그 빌어먹을 여자가............... 겨우 품안에 가둔 소중한 녀석을 지옥으로 함께 끌어가려는 사신인 것 마냥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 사랑.......?!!!” 버림받은 녀석이 외로워서 매달리는 것뿐이다. 혼자 남겨지는 게 무섭고 두려워서......... 터져 나오는 감정을 제어 못하고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부어도 멍하니 바라만 보던 녀석이 사랑 따위.................. ................알 턱이 없지........ “다 죽어 가는 시체 따위에 빼앗길 거 같아?!!” 그딴 건 다 잊어버릴 만큼 최고급 인생을 살게 해 줄 테다. 허름한 옷 따위 모두 벗겨내고 고생 따위 모르도록............... 냉골 같은 집구석에 틀어박혀 혼자 외로움에 울지 않도록............ 그렇게 품에 안아주고, 평생 자신의 곁을 지킬 사람이 누구인지 철저히 각인시켜주면 그만이다. . . . “귀국하셨다는 소식은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오시기 전에 미리 연락이라도 주셨다면 준비를 해놓았을 텐 데요..... 회장님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잘 찾아주시지 않아 서운 했답니다” 영감탱이가 살아생전 자주 드나들던 고급 요정에 들어서자마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중년 여인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운 채 나무라 듯 말을 붙여온다. “그런데 이렇게 친구 분과 함께 오시다니.............. 꽤나 드문 일이라 깜짝 놀랐지 뭡니까............ 실례가 아니라면................어느 댁 자제분이신지 알 수 있을 까요?" 냉랭하기만 한 반응에도 무시할 수 없는 연륜을 드러내며 말을 이어가던 여자가 하얀 토끼털을 뒤집어 쓴 새끼고양이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며 조심스레 호기심을 내비치고 있었다. "보시는 것처럼 워낙 무뚝뚝한 도련님인 지라 친우 분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좀처럼 많지 않답니다” "..........응?"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멍한 녀석을 품안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으르렁댔다. “가게가 망했나 보지? 주인이 한가한 걸 보면.............” “어머, 그럴 리가요.......일손이 부족할 정돈데.......... 급여만 보고 일을 하겠다는 아이들은 많지만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워낙 까다로우셔서 함부로 사람을 들일 수도 없고........“ “쓸데없이 냄새나는 뒷거래에 관여하지만 않으면 좀 더 일이 쉬워질 텐데?” “훗, 역시.........알고 계셨군요. 꽤나 어릴 적에 드나드셨는데........” "쳇.........." 모를 리가 없다. 영감탱이에게 억지로 끌려와 보고들은 게 있으니......... 겉으로 보기엔 그저 음식 맛 좋은 고급 요정에 불과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난다 긴다 하는 정재계 인사들이 청탁을 넣고 로비를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런 은밀한 장소를 제공하는 곳이다 보니 사람을 고르는 것도 신중할 수밖에.......... 직원하나를 채용하는 데만 해도 지배인은 물론 전속 교육관과 모범적인 선배들이 참석한 면접을 수도 없이 치르고, 면접을 통과한 직후 시작되는 교육과 실습에서 만족할 만한 점수를 받지 못하면 두말없이 내보낸다는 소문이 있다. 이렇게 걸러진 인물들은 여느 모델이나 연예인 뺨치는 외모에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이 태반일 뿐 아니라, 권력과 부에 대한 유혹이 끊이질 않으니 급여 또한 엄청나다고 들었다. “아르바이트...........구하는 거야?” ‘뭐...........?’ 한창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얌전히 품안에 있던 녀석이 돈이란 말에 잠이 달아났는지 까맣고 매혹적인 눈동자로 여주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심............있으신 건가요?” “응.........” 녀석의 말에 잠시 놀란 듯 발걸음을 멈추고 새삼 품평을 하듯 꼼꼼히 훑어보기 시작하는 여주인을 잔뜩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바보...............’ 외모는 어딜 보나 차고 넘치는 만점이지만 이런 성깔로는 시도 때도 없이 상을 뒤엎을 게 분명하니 눈썰미 하나로 먹고사는 마녀가 쉽사리 써줄 턱이 없다. “쯧.............” 새끼고양이면 새끼고양이답게 주인 곁에서 호의호식하며 귀여움이나 받으면 그만인 것을......... “도련님 정도라면.........오히려 제 쪽에서 부탁하고 싶은 걸요” ‘뭐?!!!!!!!’ "그럼........." ‘젠장..........!!!!!’ “꿈도 꾸지 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성을 내 버렸다. ‘이 바보 같은 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말썽만 일으킬 낯짝으로 요정 안을 휘젓고 다니면 이곳에 자주 드나드는 뚱보새끼와 변태 늙은이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질 나쁜 것들이 돈밖에 모르는 순진한 걸 구슬려 호텔까지 끌어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울 테고, 이후엔 약이라도 써서 손에 넣으면..................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를 치며 싸늘한 표정으로 여주인을 노려보자, 못 보던 사이 겁을 상실했는지 입가에 살풋 미소까지 띄운 채 시선을 맞춰온다. “그딴 짓거리 하면 내일 아침엔 거지로 만들어 버릴 테니 알아서해” 다분히 진심이 담겨있는 협박과 살기 어린 시선에 오금이 저릴 법도 하건만, 역시 보통은 아닌 모양으로 한참을 탐색하듯 자신과 품안의 녀석을 번갈아 보더니 장난스레 눈을 빛내며 입을 열어온다. “한창 바쁠 때라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는데...........제가 너무 주제넘은 소릴 드린 것 같군요” “뭐? 왜 갑자기?!!!” 아플 만큼 강하게 움켜쥔 손아귀 안에서 빠져나가려 꼼지락대는 녀석의 손을 단단히 그러쥐자 제 딴엔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날아가 버린 것이 불만인 듯 까만 눈동자에 원망을 가득 담은 채 자신을 노려본다. “이제부턴 그딴 거 하지 마!” 고생만 실컷 하다 과로사 따위로 눈앞에서 나자빠지는 꼬락서닐 보려고 곁에 붙어있는 게 아니다. “썅, 네놈이 무슨 상관이야?!!!” “닥쳐!!!” 성난 표정으로 바짝 마른 손목을 꽈악 움켜쥐자 사납던 눈빛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빌어먹을.........!!‘ 순하기만 하던 것이 도대체 어디서 저런 표정을 배운 건지............ 단박에 얼음벽을 둘러친 녀석이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로 올려보는 순간, 눈치 빠른 여주인이 끼어들어 나긋하게 말을 건네 왔다. “나름대로 걱정해 주신 거랍니다” “뭐?” "이곳에서 험한 일이라도 당할까 노심초사하시는 게지요. 저리 보여도 꽤나 다정한 구석이........"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여우같은 여자의 말을 가로막으려 버럭 소릴 지르자 흠칫 놀란 녀석이 크게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본다. “훗, 정말 어릴 적 그대로군요. 그렇게 고집만 피우시고 솔직해지지 않으면 진심을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딴 건.............상관없어.........." "흐음......그런가요? 자, 어쨌든 싸움이라면 나중에 하시고 배가 고프면 신경이 예민해지기 마련이니 어서 이쪽으로............” 앞서가던 여자가 커다란 장지문을 열어 길을 틔우자 잘 꾸며진 한국식 정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정말...............예쁜 분이시군요.............” 웃음기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꺼내오는 여주인을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다 고집쟁이 녀석에게 시선을 돌리자 바짝 약이 오른 표정으로 커다란 손아귀에 갇힌 손목을 빼내느라 여념이 없다. “잘 어울리세요............... 마음에 두신 분이라면 좀 더 부드럽게 다루시는 게 좋을 겁니다” “부드럽게...........?” 익숙지 않은 말을 곱씹으며 하얀 자갈이 깔려있는 길을 따라 다다른 곳은 요정 안쪽에 위치한 작은 별채............ 여전히 붙들린 손목을 비틀어대며 가망 없는 탈출을 시도해 오는 녀석을 끌어당겨 별채 안으로 들어서자 외양만큼이나 고풍스런 내부가 시야에 들어온다. * “그럼........음식은 바로 올리겠습니다” 머리를 살짝 숙이고 물러서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익숙한 듯 벌써 자리를 잡고 앉은 녀석에게 불퉁하게 말을 던졌다. “밥 한 끼 먹으려고 어디까지 온 거야?” "왜? 한식 좋아하잖아" 이 자식............ 매번 이런 식이다. 뭐든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난.............아무 것도 기억 못하는데...............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데.......... “웃기지마.........!! 씹어 삼킬 수만 있으면 다 먹어!!” “내 앞에서 거짓말 할 생각 마” "도대체............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변하지만 않았다면........전부.............." 더욱 기가 막힌 건.................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대방에의 무지로 인한 초조감조차도 깨끗이 잊고 혼자가 아닌..........누군가 어딘가에서 지켜봐 주고 있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편으론 묘하게 안심해 버리는 자신이다. “그래도............못 본 사이에 많이 변해 버렸군. 어릴 적엔........조금만 괴롭혀도 징징거리며 울어버렸는데............“ “누가?!!!!!!” 울컥해서 노려보자 보기 드물게 부드러운 미소를 띠더니 짓궂게 말을 꺼낸다. “큭, 그때만 해도 그 빌어먹을 남자 품안에서 널 빼내려고 얼마나 이를 갈아댔던지...... 그 남자..........묘하게 감이 좋아서............. 그렇게 간단히 버릴 거였으면.........진작 넘기는 게 좋았잖아?” “누구..........?” 수수께끼 같은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자 경멸이 섞여든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네 아버지란 작자 말야............ 너...........어머니보다 아버지 품을 더 좋아했잖아” 이것도 모르는 이야기.............. 아니............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 말없이 시선을 떨어뜨리자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는다. 어색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 토끼털처럼 포근한 스웨터 자락을 손에 쥔 채 꼬물락 거리는 사이 조용히 장지문을 열고 들어선 종업원들이 따끈하게 김이 오르는 요리들을 끊임없이 들여놓기 시작했다. “먹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려진 음식들을 놀란 눈으로 바라만 보자, 반지르르하게 윤이 나는 쌀밥 위로 노릇하게 구워진 조기 살점을 가지런히 올려 입가에 대어준다. 한동안 구경도 못해본 음식냄새에 등가죽에 달라붙어 잠잠하던 뱃속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의식도 못하는 사이 덥썩 집어삼킨 쌀밥은 찰기가 있어 씹을수록 고소한 단맛이 베어 나왔다. 어느 샌가 손에 쥐어진 숟가락으로 다시 밥을 뜨자마자 배와 계란 노른자로 버무린 육회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갈치구이가, 봄에나 구경할 수 있는 싱싱한 나물무침이, 짭짤하게 감칠맛 도는 게장이 차례로 올라왔다. “천천히 먹어............” 급하게 쑤셔 넣은 음식에 목이 메이자 우물우물 씹어대는 입술 위로 따뜻한 보리차가 디밀어졌다. 꿀꺽꿀꺽 들이키고 숨을 돌리는 순간, 이미 반 이상 내용물이 사라져버린 밥공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눈앞의 녀석은 지난밤부터 음식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침에 내온 샌드위치도 자신이 다 먹어버렸고.............. “...................” 숟가락 가득 밥을 뜨자마자 어김없이 올려지는 먹음직한 찬을 빤히 바라만 보다 부지런히 생선살을 발라내고 있는 녀석을 향해 불쑥 손을 내밀었다. “먹어...........” 크게 인심이라도 쓰는 냥 툭 말을 던지며 밥숟가락을 입가에 대주자 어지간히도 무뚝뚝했던 녀석이 꽤나 놀란 듯 가늘게 뜬눈으로 시선을 맞춰온다. “하, 이런...........큭, 꽤 예쁜 짓도 할 줄 알잖아..............?!!” 날카로운 눈이 보기 좋게 호선을 그리며 휘어지고 있었다. “쳐.......처먹기 싫음 관둬!!!” 싱글벙글하는 녀석의 낯짝에 배알이 꼴려 손을 걷어 들이려 하자 재빨리 손목을 쥐어온다. “아아, 먹고 싶어 미칠 지경이지...............” 바로 입술을 겹쳐오는 녀석에 잠잠하던 심장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왜............피하지 않는 거야?’ 의문을 드러낼 새도 없이 커다란 손이 스웨터 안으로 들어와 지분대는 느낌에 고개를 들어 녀석을 올려보자 빈틈을 노리며 입술을 할짝이던 혀가 바로 입안으로 파고든다. 맛이라도 보는 것처럼 입안을 휘저어대는 바람에 문득 아침에 당했던 부끄러운 행위가 떠올라 얼굴을 붉히며 슬금슬금 기어 다니는 녀석의 손을 꽉 움켜쥐자마자 쿡 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왔다. “정말.........귀여운 처녀처럼 구는군............” 큭큭거리며 들썩이는 어깨에 미간을 찌푸리는 순간, 집요하게 달라붙어 빨아대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간단히 떨어져나간다. “손대지..........말라고 했잖아................” “사랑한다면..........?” 아쉬운 듯 입가에 자신의 입술을 찍어 누르던 녀석이 자그맣게 속삭여왔다. “마.........말도 안 되는 소리 지껄일...........” “관심도 없는 사내새끼 쫓아다니는 취미 따윈 없어. 사실은...........알고 있잖아........... 나랑 같이 살자.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줄게" 『내게 안겨라....원하는 건 뭐든 줄 테니......』 "이젠 혼자 울지 않게...........내가 쭉 지켜줄 테니까..........” 『전에도.....내 것이었어.....내..............』 ‘무슨 소릴...........하는 거야.............’ 귓가를 움켜쥐며 혼란스런 눈으로 올려보자 본 적 없이 진지한 눈빛이.............자신과 닮은 까만 눈동자가 가만히 내려 보고 있었다. “뭐든 해주겠다니........돈이 썩어나나 보지?” 왠지 모를 느낌에 급히 시선을 피한 채 퉁명스레 말을 내뱉었다. “역시, 그 영감탱이도 기억 못하는 건가? 그렇게 예뻐했는데......... 너도 어릴 적 몇 번 봤잖아? 그 늙은이............ 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 할 만큼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놓고도 맘껏 써보지 못하고 저승길로 떨어져 버렸지. 우습게도 죽은 후에 유언장을 확인해 보니 친자식에겐 동전 한 푼 물려주지 않고 전부 망나니 손자 놈에게 물려줬더군...... 열여덟 살 생일에 모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너 하나 먹여 살릴 돈은 차고 넘칠 만큼 있으니 걱정 마...........“ “누가 네놈한테 먹여 살려 달라고 했어?!!!!” 울컥해서 소릴 지르자 못들은 척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손목을 잡아끈다. “다 먹었지? 나가자.........” “가긴 어딜 가?!! 병원에..........가야 돼.........” 말을 꺼내자마자 쏟아지는 무시무시한 눈빛에 상스러운 욕설은 조용히 입안으로 삼켜졌다. “어딜 간다고..........?” 다시 서늘해진 표정과 이를 갈 듯 새어나오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미란이가 기다린단 말야!!! 네놈 때문에 지금까지............!!” 불만이 가득 담긴 눈으로 노려보며 참았던 화를 터트리려는 순간, 작게 한숨을 쉰 녀석이 달래듯 말을 꺼내왔다. “알았어...........데려다 줄 테니까 빨리 일어서...........” 왠지 아쉬운 눈빛이 역력한 여주인을 뒤로한 채 요정에서 나오자마자 차를 찾는 듯 찌푸린 눈으로 주위를 살피던 녀석이 잠시 기다리란 말과 함께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젠장, 도대체 어디까지 끌고 온 거야?!!” 툴툴대며 돌담이 길게 늘어선 벽에 쭈그려 앉는 순간............. “으악...........!!!” 시커먼 물체에 놀라 뒤로 벌렁 자빠진 것도 모자라 근처에 서서 통화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비명을 눈치 채지 못한 녀석에게 꼴사납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달아나는 와중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노려보자 까맣게 때가 낀 거적때기가 부스럭대나 싶더니 하얗게 샌 머리칼이 불쑥 튀어나온다. “썅, 노........놀랐잖아!!!” 뜻밖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며 원망 섞인 눈으로 욕설을 내뱉자 눈곱이 잔뜩 낀 눈을 끔벅이며 시선을 보내온다. “아아, 이게 누구신가...........” “뭐? 누군데 아는 척이야? 영감탱이가 미쳤나?” 행색과는 달리 맑은 눈동자를 가진 노인을 아무리 훑어봐도 기억에 없는 인물이다. “어허, 이것 참..........새파랗게 젊은 놈이 늙은이보다 먼저 노망이 나셨나보군............” “누..........누가 노망이야?!! 이 할아방구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거 아냐??” “호오, 그때 분명..........죽을상이었는데 이상하군........ 역시............그 자의 명(命)을 나누어 받은 건가?“ ”이 늙은이, 말 돌리지마!!!!!” 분통을 터트리며 악을 써대도 눈 하나 깜박 않는다. “또 잊은 건가? 그대의 반려를.............” “뭐..........?” 갑자기 두근거리며 존재를 알려오는 심장박동에 놀라 크게 뜬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자 묘한 시선으로 자신을 살피더니 곧 뭔가를 발견한 듯 이마 한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짚어왔다. “황비가 왕자님께 저주를 걸었나보군. 공간의 틈새를 지날 때마다 모든 것을 잊도록............인가?” “무슨 소릴...............” “큭, 고귀한 왕자님이 그 자와 얽혀 지옥의 신부가 되는 걸 막아보려 했던 게지...........” “누굴..........말하는 거야............” “베이아터의 왕을 아는가? 죽은 영혼과 아홉 개의 지옥을 다스리는 왕이지. 천신(天神) 마저 죽일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손에 쥐고 있지만 영혼과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아 잔혹하면서도 공명하다. 게다가..........진정으로 무서운 것은 그 자가 지니고 있는 세 자루의 검이지. 첫 번째 검은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지상을 전부 피로 물들여버릴 만큼 강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충성스럽다더군. 끝도 없는 9층 지옥의 진정한 패검(覇劍)이지. 두 번째 검은 첫 번째 검만큼이나 강하고 아름답지만 지옥의 왕조차도 함부로 빼들지 않는 검이다. 왕의 손에 쥐어있지만 지옥의 쇠사슬만큼이나 고집이 쌔서 누구도 충성을 얻어내지 못했지. 지옥의 주인마저도 베어버리는 역검(逆劍)이다. 마지막 세 번째 검은 공기보다 가볍고 빠르며 빼어나게 수려하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작은 핏방울조차 허용하지 않는 검신에 반해 몇몇 군주들마저 감히 왕에게 요구할 만큼 아름다운 미검(美劍)이다. 지옥의 왕을 일컬어 무지한 지상에서는 무시무시한 괴물이라고들 하지만.......... 실상 그 자의 아름다운 얼굴은 한번 스쳐보기만 해도 그 자리에서 심장이 굳어 죽어버린다고 하더군. 그래서............여덟 군주조차도 왕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그게..........그대의 지옥의 부군이다” 사이비 종교 같은 말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커다란 손이 머리에 터억 내려앉아 까만 머리칼을 이리저리 흩트려 놓는다. “그런데 주저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쓸데없이 키가 큰 녀석을 멀뚱히 올려보자 불쾌한 눈으로 초라한 행색의 노인을 잠시 노려보더니 여전히 일어설 생각도 않고 있던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다. “가자.......” 어느새 저 멀리 새워져 있는 새카만 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녀석의 손에 이끌려 가며 뒤를 돌아보자 다시 태평하게 자리에 누운 노인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대고 있었다. “쯧쯧, 그 사내........이곳에 있던 자네가 죽지만 않았다면 연분이 되었을 테지만......” “죽긴 누가 죽어?!!” “조심하게. 지옥으로 끌려가는 일이 없도록....... 게다가............한번 틀어지기 시작한 운명이란 건 꽤나 잔인하니 말일세........... 늘어난 만큼..............자네의 명을 갉아먹으려 들게야” ‘웃기지마!! 이제.........그 따위 것에 휘둘리지 않아!!’ 알 수 없는 울분을 목구멍너머로 삼키며 주먹을 움켜쥐자 갑자기 앞서가던 녀석이 멈춰 서서 얼음이 잔뜩 박힌 목소리로 싸늘하게 말을 뱉어냈다. “망할 늙은이, 재수 없게 허튼 소리 지껄이지 마....... 이 녀석은 내 옆에서 평생을 편히 살다 늙은이보다 늦게 죽을 테니.........” 어디선지 모르게 성큼 다가선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려는 듯 엄청난 힘으로 손목을 틀어쥐는 녀석의 아귀힘에.............. 묘하게............. ............고장 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 ‘뭐야, 이 여자............완전 불여우잖아!!“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으득 이를 갈아 부치자 보란 듯이 순진한 녀석에게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근데 오빠, 저 사람.........누구야?” 녀석과 병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가시를 세운 채 시선을 던지던 여자가 그제야 눈치 챘다는 듯 가증스럽게 입을 놀린다. “응?” 병원으로 들어선 이래 박정하게 뒤도 안 돌아보던 녀석을 싸늘하게 노려보자 미묘한 눈빛으로 쳐다만 볼 뿐 말이 없다. 기어코 성질머리를 누르지 못하고 여자에게 붙들린 녀석을 품안으로 확 끌어당기자 그새 화가 났는지 하얀 목덜미를 발그스름하게 붉힌 채 빠져나가려 버둥댄다. “동생은 아직 모르나봐?” 포근한 몸을 뒤에서 꼬옥 끌어안은 채 붉게 잇자국이 남아있는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대자 병마가 의심스러울 만큼 살기 띈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본다. “어젯밤에도 내 침대에서 재웠는데...........” 입가에 비웃음을 매단 채 말을 던지자마자 부들부들 떨어대는 꼴을 보아하니 몇 마디만 더 내뱉으면 따로 손쓸 필요도 없이 저승으로 보내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피곤하지 않아? 이런데서 시간낭비 하지 말고 그만 가자........” “지랄.............” 자신을 건 치열한 공방 따윈 영 관심이 없는 듯 벚꽃 물을 들인 것처럼 예쁘장한 입술을 비죽이며 가망 없는 탈출에만 매달린다. 핏기 없는 입술을 씹어대며 노려보는 여자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품안에서 꼼지락대며 빠져나가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귀여운 생물이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었다. "악!!! 이 새끼.......떨어져!!!" "하, 밤에는 착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던 녀석이 유난스럽긴..........." "누.........누가!!!" 그대로 여자가 있는 침대 위에 눕혀 범해버리고 싶은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 지 갓 태어난 고양이새끼 마냥 부들부들 떨어대며 노려본다. “개자식..........죽인다.........!!” “큭, 오늘 아침만 같으면, 그것도 어렵지 않을 거 같은데?” "뭐......?" “.................”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똥말똥 바라만 보다 한참 후에야 화악 얼굴을 붉히는 순진한 녀석의 귓가에 조근조근 속삭여줬다. “나는 죽을 만큼 좋았는데............” “이.......이.....미친 변태새끼..........!!!” 귀까지 빨개져 말을 더듬는 녀석 골려주는 재미에 푹 빠져있던 것도 잠시............ “오빠............” "으.........응? 갑작스런 여자의 부름에 자동인형처럼 고개가 돌아가는 녀석을 보고 부드럽게 휘어졌던 입가가 서서히 굳어들었다. “아? 미.......미안.....시끄러웠지? 이 망할 자식이 멋대로 쫓아와선............" “나 목말라...........” 표독스런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북빙한설 마저 녹여버릴 듯 한 미소가 창백한 얼굴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 아니......주스라도 사와야겠다” 공주님을 떠받들 듯 안절부절못하던 녀석이 여자의 의도를 알아채고 느슨해진 자신의 품안에서 벗어나 굽실굽실 탐스럽게 퍼져있는 고동 빛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린다. “다행이다. 오늘은 기운 차려서......밥은 먹었지?” “응..........” 섣불리 끼어 들 수 없는 분위기에 이를 꽈악 깨문 채 노려보자 하얗고 가느다란 팔로 녀석을 끌어당겨 사랑한다고.............조용히 속삭여 준다. “응........” 자신은 한 번도 본 적 없는............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띠운 녀석이 여자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금세 서늘해진 눈으로 자신을 마주보고 섰다. “너...........미란이한테 손대면 가만 안 둬!!” ‘하, 멍청한 자식.......!!‘ 분하지만 자신은...........둔탱이같은 녀석이 아니면 아무 소용없는 것을............. “왜? 또 두들겨 패서 병원에 쑤셔 박을 생각인가보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가라앉히며 잔뜩 가시 박힌 목소리로 말을 뱉어내자, 냉정하게 말한 주제에........... 오히려 자신이 상처받은 듯 흔들리는 눈동자로 말없이 올려본다. ‘병신 같은 새끼.......!!!’ 평소처럼 욕설조차 내뱉지 못하는 녀석에..........질투로 미쳐버린 자신에 화가나 비수처럼 날카로운 독설을 녀석의 심장에 쑤셔 박았다. “어차피 기억도 못하는 주제에............남보다 못한 녀석이 병신이 되던, 죽어 나자빠지던 상관........” “금방.........돌아올게...............” 주먹을 꼬옥 움켜쥔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는 녀석을 바라보며 제멋대로 지껄여댄 세 치 혓바닥을 잘라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왜 이렇게 자신은 삐뚤어져 버린 것인지............... 왜 꼬옥 끌어안고 달래줘야 할 땐 사납게 밀쳐내며 심술을 부리는 것인지............. “분명..........또 혼자 울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아름다운 여자가 살기 띈 눈초리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었다. “이제 속이 시원해?!!!” “닥쳐!!!!” 굳이 지껄여대지 않아도 그런 것쯤...........알고 있다. 보기만큼 단단한 녀석이 아니라는 건........... “역시.........감히 네놈 따위가 넘볼만한 사람이 아니야.......” “그건........네 쪽도 마찬가지 일 텐데...........” 저 여자............ 상처를 줄 게 분명하다. 그 녀석을 아프게 할 거다. “끝까지 곁을 지켜주지도 못할 주제에............. 더러운 욕심으로 옭아매 숨통이나 조이지 말고 놓아줘...........” “놓아 줄 거야. 원래..............있어야 할 곳으로..........” 아프도록 꾸욱 깨문 입술에 설핏 핏기가 비쳤다. “기왕이면 죽기 전에 실행하는 게 어때?” 잔인하게 몰아붙이자 겨우 붙들고 있던 이성이 끊어졌는지 발작적으로 외쳐대기 시작했다. “내가 놓아준다고 해서 네까짓 것 따위에 넘어갈 거 같아? 어차피 루베라는 루펜타에 묶여있어. 내가 붙들어도 돌아가게 되어있단 말야!! 함부로 손을 대다니..........그분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뭐...........?” 보기 흉하게 상처가 남은 손등을 움켜쥐고 미친 듯 떨어대는 여자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자 갑자기 하얀 시트 위로 검붉은 핏덩이를 울컥 토해낸다. “너.........!!!” 여자가 누워있는 침대 곁으로 다가서려 하자, 지독하게 자조적인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하아, 그 냉혹하던 황제가 유일하게 사랑한 사람이야. 지금 당장 손 떼지 않으면........... 당신.........후회하게 될 거야” “황제..........?” 황제라니.......... 죽기 직전의 발악인지, 분노에 정신이 나가버렸는지 이상한 소릴 지껄여대고 있다. 어린 나이에 엄청난 재산을 움켜쥐고 있는 서문가의 그 인간 같지도 않은 놈과 자신을 몇몇 대중매체에서는 웃기지도 않게 황태자라 떠들어대지만 오만하게 황제라 칭해지는 인물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야..........” 황제는커녕 황제 할애비가 나타나 제 것이라 우겨대도 내어줄 생각 따윈 손톱만큼도 없다. “네가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결국은 놓아줄 수밖에 없을 거야. 나처럼............. 이렇게 사랑하게 되지만 않았어도 끝까지 곁에 붙들어두었을 텐데..............” 처연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 희미하게 느껴져 대꾸도 없이 조용히 바라만 보자 입가에 묻은 핏기를 새하얀 손등으로 닦아내며 말을 꺼낸다. “이곳에선 사람이 죽으면 불에 태워 재로 뿌린다고 하더군” “그만해..........”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뒤에 이어질 여자의 말이 마녀의 저주와도 같이 언젠가 자신을 옭아매 버릴 것만 같아 이 자리에서 당장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죽으면...............” 자신의 생각을 눈치 챈 여자가 채 뒤돌아 설 여유도 없이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날 처음 만났던 곳에 뿌려달라고 전해 줘..........” “그런 걸.........왜 내게 말하는 거야?!!!!” “나 때문에 우는 건.........더 이상 보고 싶지 않거든..........” “웃기지마.......너 때문에 우는 일은 앞으로 절대 없을 테니..........” 구질구질한 여자의 유언 따윌 들으려고 여기까지 발걸음을 한 게 아니다. 녀석이 돌아와 저 꼴을 보기 전에 데리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서는 순간, 녀석이 한 손 가득 주스를 사들고 병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미란아............” “오빠...........” “너......얼굴이..........왜? 또 어디 아픈 거야?” “미안...........나 갑자기 피곤해저서..............” 붉게 젖어든 시트를 감추며 녀석에게 뻗어 가는 손길이 끔찍스러울 만큼 다정해서....... 금세라도 내 것을 빼앗아갈 것만 같아서.......... 얼른 녀석의 손목을 틀어쥔 채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만 가자.........” “웃기지마!! 가려면 너나 가!!” 반항하는 몸을 품안에 꼬옥 끌어안았다. 어서 이 음습한 곳을...........죽음으로 가득 찬 망자들의 영역을 벗어나야만 했다. “서하류!!!” “닥쳐!!!!” 새카맣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지옥의 구덩이로 빠져들 것만 같은 초조감에 입안이 바짝 타들어 갔다. “오빠, 오늘은 그만 돌아가.........” 뜻밖에 구원을 던져준 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지독한 적개심과 살기를 내비치던 여자............. “싫어.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 거야.......” “무슨 소리야?!! 잘 곳도 없는데!! 괜히 다른 사람 불편하게 만들지 말고 얌전히 따라와!!” 갑자기 어린아이처럼 고집을 부리는 녀석을 끌어당기며 마음에도 없이 타인에 대한 걱정을 늘어놓자, 그제야 얼른 돌아가라는 듯 시선을 보내오는 여자를 걱정스런 눈으로 살피며 순순히 딸려온다. “잘 자, 미란아.......내일 다시 올 테니까.........” “이제........쉬고 싶어............” 사신에 사로잡힌 가느다란 목소리가 희고 두터운 문에 완전히 차단되자마자, 에우리디케의 손을 움켜쥔 오르페우스마냥 뒤도 돌아보지 않는 조급한 걸음으로 무덤 같은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거 놔!!!” 겨우 숨이 트이자마자 날카롭게 소릴 지르며 자신을 내치는 녀석을 품안에 꼬옥 끌어안았다. “미안...............” “놔!!!!!” “미안해..........” “이..........!!!” “미안.........미안..............” 조심스레 속삭이는 말에 저항이 잦아들고 있었다. 다듬지 않아 제멋대로 자라있는 까만 머리칼에 뺨을 부비며 커다란 손으로 달래듯 부드럽게 등허리를 쓸어주자 얌전히 품에 안긴 채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는다.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차안에 녀석을 밀어 넣고 자신도 얼른 몸을 실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집으로..........” 녀석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얼른 말을 꺼낸 후 눈을 감아버리자 따가운 시선이 얼굴위로 쏟아졌다. “.................” “.................” 왠지 모르게 조용한 녀석이 궁금해 슬며시 눈을 뜨자............ “큭...........” 작지도 않은 녀석이 어린아이처럼 입을 잔뜩 내민 채 창밖만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슬그머니 허리를 휘감아 품안으로 끌어당기자 잔뜩 화가 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본다. 울컥 소리를 지를 줄 알았던 녀석이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는지 입을 꾸욱 다문 채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팔랑거리며 나대는 것도 못 견딜 만큼 예쁘지만........... “역시..........가끔은 이렇게 얌전한 것도 귀엽잖아?” 반항기가 가득 담긴 녀석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 걸 감상하다 그대로 고개를 숙여 부드러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첫 키스의 뼈저린 경험을 기억하고 있기에 비정상으로 강한 녀석의 손목을 움켜쥐어 제압하고 따뜻한 입안에 혀를 밀어 넣자 뒤척이던 움직임도 잠잠해 진다. 그렇게 반항하지 않는 녀석을 붙들고 전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상냥한 입맞춤을 몇 번이나 계속했다. “사랑해............” 숨이 찬 듯 헐떡이는 녀석의 귓가에 키스를 퍼부어 대며 작게 속삭여 봐도 기다리는 대답은 끝내 들려오지 않는다. 벌어진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려는 순간 작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심장이 멎어버린 것처럼 숨을 죽였다. “난...........사랑하지 않아............” “뭐..........?” “사랑하지..........않아............” “다시..........말해봐..........” 묘하게 시선을 피하는 녀석의 턱을 움켜쥐고 눈을 맞추자 죄책감이 가득한 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올려보고 있었다. “미란이만 곁에 있어주면................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 “웃기지마!!!!” ‘미란이, 미란이, 미란이!!!!!! 그 여자가 죽으면 대체 어쩔 셈인데!! 따라 죽기라도 할 작정인가???’ 불덩어리 마냥 시뻘겋게 달아오른 분노를 목구멍으로 삼켜가며 녀석을 노려보다 운전석으로 이어진 차단막을 내려 싸늘하게 말을 뱉었다. “클럽으로 차 돌려요..........” “예?!!! 예!! 도련님..........” “.....................” 급하게 차를 돌리는 바람에 구석으로 밀려난 녀석이 시근덕대며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 “뭐야? 어차피 일찍 들어가 봤자 빈 방구석에서 혼자 청승이나 떨고 있을 거 아냐??” “.....................” “왜 또 말이 없어???” “......................” “입 내밀어도 소용없어........” “.......................” “굶기진 않을 테니까 얌전히 굴어..........“ “.................................. ............................ .....................아아아악!!!!!!!!!!!!!!! 죽어버려!!!! 이 개자식!!!!” “컥...........!!” * 시골에서 갓 상경한 시골뜨기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녀석을 끌고 룸 안으로 들어선 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고급스런 테이블 위로 갖가지 양주와 안주들이 가득 채워졌다. “설마 마실 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누가!!!!!” “큭.............” 마실 줄 모르는 게 당연하다. 난잡하게 놀아난 자신과 달리 이 녀석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류 학교에 처박혀 일등만 하던 녀석이니............ 그런 것을 뻔히 알면서 도발하듯 자존심 강한 녀석을 긁어대자 일부러 얼음도 넣지 않고 반쯤 채워놓은 잔을 벌컥 들이킨다. 말릴 틈도 없이 호박색 액체가 녀석의 입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쯧..........” 작게 혀를 차다 목이 타는 듯 한동안 얼굴을 찌푸리던 녀석이 안주 쪽으로 손을 뻗어 오길래 빨간 딸기를 집어 건넸다. 다시 잔을 채워주자마자 오기로 단숨에 들이킨 녀석의 눈이 슬그머니 풀려가고 있었다. 아무런 빛도 투과시키지 못하는 까만 눈동자와 약간 붉어진 눈시울......... 숱이 많은 속눈썹과 다듬어 놓은 것처럼 단정한 눈썹........... 완벽하게 뻗어있는 콧날과 맵시 있는 입술........... 평소엔 색이 옅던 그것이 붉게 달아올라 색기를 흘려대고 있었다. 독한 술내음이 새어나오는 녀석의 입술에 홀려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작은 노크소리와 함께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들이 룸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어머, 벌써 시작하신 거예요??” 애교 있는 목소리에 찌푸린 눈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의 속옷이나 다름없는 차림새를 한 여자 둘이 문 앞에 서있었다. “부른 적 없을 텐데...........” “지배인님께서.........” “꺼져...........” 솟구쳐 오르는 짜증을 겨우 억누른 채 다시 녀석에게 고개를 숙이려다 까만 눈동자에 서려있는 호기심에 입 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잠깐.............” 여자를 모르는 것이다. 이 순진한 녀석은............. 그러니 외양만 그럴싸한 그딴 계집에게 붙들려 사랑 운운하는 것일 테지.......... 다시 불러 세우자 화사하게 미소 짓는 여자들을 다시 꼼꼼하게 훑어 내렸다. 모델 같은 몸매를 자랑하는 늘씬한 미인은 자신을 평가하는 시선이 익숙한 듯 도도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데 나머지 하나는........... “호호, 얘가 들어온 지 얼마 안돼서..........” 거의 치부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짧은 스커트를 내리누르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 “앉아............” 잔을 들어 올리며 눈짓을 하자 경험 많아 보이는 눈치 빠른 여자가 쪼르르 다가와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반대편으로 흘끗 시선을 던지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다며 얼굴을 붉히던 계집이 어느 샌가 녀석에게 들러붙어 은근히 젖가슴을 부벼대는 꼴에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래도 순진한 줄 알고 녀석에게 붙여준 여잔 상대의 취향에 맞춰 가면을 바꿔 쓸 줄 아는................... 이 바닥에서 닳고 닳은 불여우인 모양이었다. . . . 여자가 눈웃음을 흘리며 입가에 대주는 술을 홀짝홀짝 받아 마시던 녀석이 결국 한계에 달했는지 벌거벗은 여자의 뒷구멍을 쑤시고 있던 자신에게 초점 없는 시선을 보내왔다. “아.......아학.........처......천천히....좀...........하악............” 내내 녀석에게 박혀있던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페니스를 깊이 쑤셔 박자 자지러지는 신음을 흘리며 매달려온다. 역시 몇 번 대 준 적이 있는 모양인지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꼴에 구역질이 치밀 지경이었다. “졸려.........” 혀 꼬인 녀석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양 지갑에서 은백색 카드를 꺼내 테이블 위로 던지자 썩은 고기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여자들의 시선이 한곳에 들이박혔다. “돈이라면 원하는 만큼 줄 테니..............” “아응..............” 일부러 녀석에게 보여주기 위해 들쑤시던 여자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자 음탕한 입술에서 아쉬운 한숨이 터져 나온다. “그 녀석을 가져...........” 소파에 기대자마자 자신의 페니스에 달라붙어 익숙하게 빨아대는 여자의 머리채를 움켜쥔 채 시선을 보내자 순진한 척 자신의 눈치만 살피면서 녀석의 술잔만 채워주던 여자가 붉은 혀로 입술을 축이며 눈을 빛냈다. “딱 한 번뿐이다. 그 이상 손댔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릴 테니.......” 살기 띈 협박에 흠칫 몸을 굳힌 것도 잠시............ “훗, 그쪽이야말로 나중에 딴소리 말고 돈이나 확실히 계산해 줘요.........” 맹랑하게 말을 던진 후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서슴없이 옷을 벗은 여자가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녀석의 몸에 올라타 새하얀 스웨터를 끌어올리자 눈에 익은, 부드러운 밀빛 피부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흐응~ 질투 나잖아.........” 색이 옅은 유두에 붉게 물들인 손톱을 세우자 술에 취해 칭얼대던 녀석이 작게 신음을 흘렸다. "민감하네?“ “입술은 건드리지 마...........” 바로 입술을 맞대려는 여자에게 낮게 경고하자 킥킥거리며 천박하게 입을 놀린다. “까다로운 관음증 도련님, 시작하기 전에 또 주문하실 건?” “자국 남기면 죽을 줄 알아!!” “그건 어렵지 않지만.......이것도 손대지 말라고 하면 곤란해요.........” 그새 녀석의 성기를 꺼내 만지작대던 여자가 갑자기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얼굴만큼이나 예쁘잖아?!!!” 퍽---- “꺄악..................!!!!” “...................” 참지 못하고 손에 잡히는 술병을 벽에 던져버리자 빨리 끝내는 게 현명하다 생각했는지 바로 녀석의 것을 입에 물고 빨아대기 시작한다. “으응...........” 뒤척이며 더운 숨을 내뱉던 녀석이 반짝 눈을 떴다. “뭐야.........?!! 무거어...........아...........흑...........” 잔뜩 혀 꼬인 소리를 내며 여자를 떨쳐내려는 듯 버둥대던 녀석이 순간 묘한 신음을 내질렀다. “아........응........” 거머리같이 녀석의 성기에 들러붙은 여자의 입술이 강하게 빨아들일 때마다 헐떡이며 오그라드는 녀석을 초조한 눈으로 바라보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하게 풀린 눈동자가 도움을 구하듯 자신을 향해 있었다. 탐욕스런 거미에게 붙들려 몸체를 물어뜯긴 나비처럼 축 늘어진 녀석의 위로 올라탄 여자가 삽입을 시도하려는 순간............ “젠장..............!!!” 쾌락에 반응하는 몸과는 달리 기운 없이 흔들리는 녀석의 눈빛에 심장이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만둬..............” 이미 한계치까지 열이 오른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끓어올랐다. “떨어져!!!!!!!!!!!!!!!” “아악!!!!!!!!!” 녀석에게 내려앉으려는 여자의 가는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쥔 채 깨진 병이 어지럽게 흩어진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버렸다. 날카로운 비명이 귓가에 울리자 자신에게 들러붙던 여자도 겁에 질린 듯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당장 데리고 나가............" 살기 띈 눈으로 벌거벗은 몸을 움츠린 채 신음하는 여자를 가리키자 서둘러 옷을 끼어 입은 여자가 부랴부랴 바닥에 널브러진 동료를 추슬러 밖으로 끌고 나갔다. “썅!!!!!” 쾅----------!!! 화를 참지 못하고 테이블을 걷어차자 녀석이 비웠음직한 양주병들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깨어져나갔다. “하아 하아...........” 분이 풀리지 않아 한참을 씩씩대다 여전히 몸도 가누지 못하고 끙끙대는 녀석에게 다가가 꼼지락대는 몸을 품에 안았다. “빌어먹을!!!!!!” 병신같이 너무 쉽게만 생각했다. 녀석의 몸에 타인이 손을 대는 것조차 참을 수 없을 만큼 분통이 터지는데.......... 고작 죽어 가는 여자 하나 때문에.............. 소중한 녀석을 닳고 닳은 계집에게 던져줄 뻔했다. “젠장!!!!” ‘여자고 뭐고 이 몸에 손끝하나 들이대면 다 죽여 버릴 테다!!!‘ 다짐에 다짐을 하며 축 늘어진 녀석에게 하얀 스웨터를 꿰어 입히고 매끈한 허벅지에 걸려있는 면바지를 끌어올리려는 순간, 여자가 난잡하게 빨아대 잔뜩 부풀어 오른 녀석의 페니스가 눈에 들어왔다. 이런 상태로는 아무래도 불편할 게 뻔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초점 없는 눈으로 말없이 자신을 빤히 올려보기만 하는 녀석을 조심스레 움켜쥔 채 손을 움직이자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더운 숨을 내뱉으며 허리를 비틀어댄다. “기분 좋아?“ “응..................” “큭...........” 이 귀여운 녀석은 술이 들어가면 솔직해지는 술버릇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나올 거 같아.........” “조금만 더 참아봐......” “흑, 아파..............” 성자마저 타락시켜버릴 만한 표정에 홀려 어떻게든 사정을 늦춰보려고 귀두 끝을 막아버리자 어린아이처럼 훌쩍이며 통증을 호소해 온다. “정말 미치게 하는군.............” 정사도중 상대의 몸 안에 페니스를 밀어 넣고 애를 태우는 변태행위가 십분 이해될 만큼 귀여운 몸부림이었다. 녀석의 것을 죄고 있던 힘을 늦추고 흠뻑 젖은 눈시울에 입술을 찍어 누르며 달래자 예쁜 눈동자로 시선을 맞춰온다. “티폰..........” “응..........?” 조개처럼 꾸욱 다물어진 입술이 다시 벌어지길 초조하게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밤하늘 같이 새까만 눈동자를 내려 보며 재촉하듯 손을 놀리자 숨 가쁘게 헐떡이던 녀석이 유색 액체를 쏟아내며 굳어들었다. 기운을 모두 소진해 버린 듯 축 늘어져버리는 녀석에게 몇 번이나 입을 맞추고 뒤처리를 끝낸 후 그대로 등에 들쳐 업었다. “어지러워...........내려 줘.................” 불편한 듯 한동안 꼼지락대며 칭얼대던 녀석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체념한 듯 두 팔을 목에 감아온다. “어디 가는 거야?” “집에...............” “집?” “그래.........” “우리 집 이쪽 아니야........” “피곤하면 자.........” “................” 열이 오른 뺨을 목덜미에 부비대며 칭얼거리는 녀석을 달래 겨우 잠잠해진 것도 잠시............ “니가.........맞는 거지?” “...................” 그새 잠든 줄 알았던 녀석에게서 또다시 심판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놓아 줄 거야. 원래..............있어야 할 곳으로..........』 ‘웃기지마!!!!’ “니가.......맞아.........?” 말없이 발걸음을 멈추자 울음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 ............................ .................그래...........” 필요하다면 언제든 거짓을 내뱉을 각오가 되어있다. 원한다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말해줄 작정이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서라도 품안에 가둬둘 것이다. . . . “하아................” 혀 꼬인 발음으로 싫다고 꿍얼대는 녀석의 몸을 깨끗이 씻겨 침대에 눕히자마자 어린아이처럼 곯아떨어져 버리는 녀석을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정말..........손이 많이 가는 녀석..........” 날렵하게 뻗은 콧날을 손에 쥐고 흔들자 잠결에도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휘젓는다. “큭, 이렇게 술주정뱅이인 줄 알았으면...........” 이리저리 벗은 몸을 지분대는 자신이 귀찮은 듯 돌아눕는 녀석을 품안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사내 녀석의 몸 따위 자신처럼 징그럽고 흉포하기만 할 뿐인데도 이 녀석은 어느 뱃속에서 태어난 건지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하얗고 야들야들한 피부와 따뜻한 냄새가 나는 목덜미는 말할 것도 없고 색이 옅은 유두와 모양 좋은 성기까지도 속속들이 예쁜 녀석이다. 쭉 뻗은 다리는 모델보다도 매끈하고 유일하게 살집이 잡힌 엉덩이도 보들보들해서 손이 떨어지질 않는다. 낮에 그렇게 쓸어 넣고도 시침을 떼며 쏙 들어가 있는 복부를 쓸어주자 뒤척이며 엉덩이를 바짝 밀착시켜 온다. 어느 샌가 슬그머니 일어나 있던 자신의 페니스가 녀석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하, 이번만 봐주는 거야” 다행히도..........술에 떡이 된 녀석에게 짐승처럼 달려들지 않을 만큼의 이성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 밤새도록 자신의 눈앞에서 어른대는 바람에 한숨도 자지 못하게 만들었던 괘씸한 녀석의 엉덩이를 꽈악 깨물었다가 잠결에 눈을 뜬 녀석에게 가차 없이 발길질을 당해버렸다. “먹을 수 있는 것 좀 만들어봐” “지랄...........” 아픈 뺨을 쓸어 올리며 불퉁하게 말을 던지자, 아직도 분이 덜 풀린 듯 작게 욕설을 내뱉는다. “혼자 살았으니 나보다 솜씨는 나을 거 아냐? 배 안고파?“ 자신이 던져준 파자마 속으로 잇자국이 난 뽀얀 엉덩이가 사라지는 걸 아쉽게 바라보며 말을 던지자마자 주인을 배신한 녀석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썅..............!!” “주방에 라면쯤은 있을 거야” 평소 집안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으니 찬이 있을 턱이 없다. 가정부는 내일이나 올 테고.......... 음식점에서 시키기엔 너무 이른 시각.............. 확실히 배는 고픈지 툴툴대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녀석을 따라 주방으로 들어서자 라면을 끓이겠다고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제 있었던 일.........진짜 기억 안나?” 필름이 끊겨버렸는지 아침에 눈을 뜬 녀석은 다행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씨, 모른다니까 짜증나게 왜 똑같은 말만 지껄이고 지랄야?!!!” “아니, 뭐.........혹시나 해서...........” “왜? 설마 지금 내 거지같은 몸 상태랑 관련이 있는 건 아니겠지?!!!“ 눈을 뜨자마자 속쓰림과 두통을 호소하던 녀석이 손안에 있던 쇠젖가락을 비정상적인 악력으로 엿가락처럼 구겨버렸다. “................................. ............................ .................... ............설마...........” “처먹어!!” 식탁에 터억 놓여 진 냄비에 시선을 돌리자마자 다시 원상복귀 시켜놓은 젓가락을 들고 사흘 굶은 아귀처럼 라면을 입안에 쓸어 넣는다. “천천히 좀 먹어. 금방 맛있는 거 잔뜩 시켜줄 테니까..........” 단단히 미쳐버렸는지 대답도 없이 냄비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녀석조차도 환장하게 예뻐 보인다. 이리저리 뻗쳐있는 녀석의 까만 머리칼을 잠시 쓸어 올리다 어쩐지 퉁퉁 불어있는 라면이 아무래도 미심쩍어 입안에 밀어 넣는 순간................ "우웁..........풋............!! 뭐야? 이거..........?!!!!“ 라면이란 거.............아무리 어렸을 적 이후로 먹어본 적이 없다 해도 맛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이........이런 걸 매일 먹고 산 거야? 혀에 감각이 남아 있는 거냐? 도대체 뭘 넣은 거야?!!!" "응? 아마 이구마............" 거의 반쯤 씹어 삼킨 라면을 경악한 눈으로 노려보다 냄비를 확 빼앗아 들었다. "먹지 마!!!!!!!!!!!!!!!!!!!!!!!!!!!!!" 이딴 걸 먹었다간 식중독에 걸리고 말 거다. “이 치사한 새끼!!! 내놔!!! 내가 끓인 거란 말야!!!” 녀석의 발악에도 굴하지 않고 욕지기가 나오는 냄비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쑤셔 박아버리자, 고장 난 로봇처럼 움직임을 멈춘 채 이미 쓰레기가 되어버린 라면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이.......이 새끼...........!!!” “하아, 이제 주방엔 얼씬도 하지 마!!!” 이 녀석............... 땡깡도, 싸움질도, 술주정도 일류인 주제에 요리는 꽝인 모양이다. “네놈이 말 안 해도 다시는 안 들어가!!!!” “그런 꼴로 어딜 가려고?!!!” 파자마 하나만 달랑 걸친 채 쿵쾅쿵쾅 현관으로 걸어 나가는 녀석에게 짓궂게 말을 던지자 갑자기 우뚝 멈춰서더니 성큼 다가와 멱살을 틀어쥐고 꽤액 소리를 질러댄다. “이 자식, 내 옷!!! 내 옷 내놔!!!!” “옷은 왜?” “밥............. ............이 아니라.................... ...............지.........집에 갈 거야!” ‘밥 때문이냐? 한 끼 굶기면 집나갈 녀석이군...........‘ 기가 막혀 코웃음을 치자 귀까지 붉힌 채 어미닭을 찾는 병아리마냥 빽빽댄다. “빨리 내놔!!!! 내 옷!!!” “안 돼! 여기서 나랑 같이 살기로 했잖아” “이 미..........미친놈!!! 누가?!!!” “그럼? 잠까지 같이 잤는데 이제야 발뺌하겠다고?” “뭐..........?” “기억 안 나? 간밤에...........” 헐렁한 파자마 안으로 파고들어 동그란 엉덩이를 움켜쥐자 흠칫 몸을 굳힌다. “기분 좋다고 매달렸잖아..........” 맞닿은 가슴에서 팔딱팔딱 뛰어대는 귀여운 심장소리에 슬그머니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랑 같이 잤으니까 미란이고 뭐고 여자랑은 결혼 못해!” “우........웃기지마!!!!” “왜? 누구처럼 무책임한 사람이 되고 싶어?” 욕심에 눈이 멀어 양심은 저 멀리 내던진 채 녀석의 약점을 찍어 누르자 다리에서 힘이 빠진 듯 간단히 자신의 품안에 떨어진다. “잘 생각해! 그 여자랑은 계속 사이좋은 오누이로 지낼 수 있지만................. .................나랑은 더 이상 친구 못해..........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서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다. 평생...........“ “평생......돌아오지 않아.........?” 왠지 충격을 받은 듯 넋이 나가 중얼대는 녀석의 몸을 품안에 꼬옥 끌어안았다. “그래...........그러니 선택해.............” 이제는 패를 던질 때다. 녀석을 움켜쥘 패를.......... 속수무책으로 죽어 가는 여자가 녀석을 망가뜨려 놓기 전에............... 골몰히 생각에 잠겨든 듯 얌전해 진 녀석을 안아들고 침실로 되돌아가 푹신한 침대 위에 내려놓자 그제야 난감한 시선으로 자신을 올려본다. “7년 전 일은 둘째 치고, 첫날밤도 기억 못하면 어쩌자는 거야?” “흡...................” 버둥거리는 몸을 내리누르고 무방비 하게 벌어진 입술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응..........” 부드러운 입술을 만족할 만큼 빨아댄 후 조심스레 입을 맞춰가며 하얗게 드러난 가슴을 쓸어 올리자 작게 신음을 흘리며 꿈틀거린다. “하아.........무슨 짓이야?!!!” “기억 못하면 다시 해야지..............” 자극에 금세 솟아오른 돌기를 손가락으로 비벼대며 부드럽게 애무를 하다 겨우 걸려있던 파자마를 벗겨 녀석을 움켜쥐려는 순간....... “하.......하지 마!!!!” “응?” 품안에 갇혀버린 생물을 내려 보니 자신의 손을 꽈악 그러쥔 채 긴장에 잔뜩 굳어있었다. “왜? 잡아먹을까 겁나?” 금세라도 순결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숫처녀처럼 움츠러드는 모습이 귀여워 짓궂게 말을 던지자 까만 눈동자를 크게 드러낸 채 자신을 바라본다. “말했잖아. 복습이라고.........이미 끝난 일이야” “거짓말............” 작게 속삭이는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려하자 서리 맞은 낙엽처럼 몸을 떨며 눈을 꼬옥 감아버리는 녀석을 보고 작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젠장..........!!!’ 이런 건...........자신이 원하는 울림 따위가 아니다. 녀석의 심장 위에 새겨진 피처럼 붉은 각인 아래로 불안하게 뛰어대는 심장박동이 손끝에 그대로 전해져 왔다. “떨지 마.........억지로 할 생각은 없으니까...............”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며 녀석의 위에서 몸을 일으키자 바로 시트를 끌어 하얗게 드러난 알몸을 가린다. “사흘이야.............” “응............?” “사흘만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하니 누워만 있는 녀석을 일으켜 진지하게 눈을 맞춘 뒤 다시 차분히 입을 열었다. “사흘 후엔 짐 정리해서 이곳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흔들리는 눈으로 말없이 시선을 피해버리는 녀석의 턱을 움켜쥐고 시선을 맞췄다. “사흘 후에도 돌아오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끌고 올 테니까...........” 달아날 기회 따윌 주는 게 아니라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시간을 주는 거다. “그러니까.............빨리 돌아와..........” 말없이 자신을 바라만 보는 녀석을 품에 꼬옥 끌어안자 머뭇거리며 망설이던 손이 가만히 옷깃을 부여잡아왔다. “약속해...........” 간절한 속삭임에 한참동안 움직임 없던 작은 머리가 조심스레 끄덕인다. * 허름한 운동화를 구겨 신은 녀석이 저 문으로 걸어 나간 지가 벌써 나흘.............. 하루 종일 들이붓다시피 마신 술병들이 테이블 위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썅, 서하류!!!!!!!!!!!!” 벌컥벌컥 들이키던 술병을 대리석 바닥 위로 내동댕이치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진한 빛깔의 알콜이 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따위 것.........아무리 쏟아 부어도 금세라도 미칠 것 같은 정신과 억누를 수 없는 분노는 또렷해져만 간다. 약속한 날짜보다 하루를 더 기다렸다. 주인을 기다리는 멍청한 똥개마냥 열심히 집을 지켰다. 그런데........... 쾅------------!!!!!! 거칠게 현관문을 걷어차고 비틀거리며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녀석의 집으로 이어진 초라한 골목길을 정신없이 내달리면서도 겨우 손에 움켜쥔 사냥감을 놓아준 멍청한 자신에게 사납게 이를 갈아 부쳤다. “그 여자하고 도망이라도 쳤다간 사지를 병신으로 만들어 버릴 테다!!” 다시는 달아날 수 없게 연약한 날개를 이 손으로 잡아 뜯어버릴 작정이다. “하아 하아.........” 얼마 전에 보았던 폐가 같은 문짝을 미친놈마냥 노려보다 피가 베일 정도로 움켜쥔 주먹으로 삐걱거리는 문을 사정없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서하류!!! 나와!!!!!!!!!!!” 쾅------------!!!! 쾅------------------!!!! “당장 나와!!!!!!!!!!!!!!” 쾅---------!!! 쓸모없는 문짝이 거친 발길질에 떨어져나가며 힘없이 내부를 드러내는 순간, 초라한 행색의 중년 여자가 한 손에 빗자루를 들고 뛰쳐나왔다. “가......강도여?!!! 여기서 뭐하는 짓이여?!! 아고~ 도대체 이게 무신 냄새여? 대낮부터 술 쳐마셨으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잘 것이지 이게 무신 행패여?!!!” “어디로 갔어........” 당장이라도 사람 하나 잡을 것 같은 살벌한 눈빛에 기가 죽어 뒷걸음질 치던 여자가 갑작스런 물음에 반짝 눈을 빛내며 가볍게 입을 놀렸다. “하이고~그 잘 상긴 학상을 찾아왔는감? 글씨 이게 무신 변곤지. 이틀 전에 우리 집으로 전화가 한통 왔더란 말이여. 아, 이 학상 집엔 전화가 없드랑게. 그런디 그 전화 받고 나간 지가 엊그젠디 아직도 돌아오지 않더란 말여. 듣기로는......그게 말이여 몰래 들었다는 게 아니니 오해는 말어. 아무튼 병원에서 누가 콱 죽어버렸다는 거 같던디.......이상하제? 그 학상은 가까운 피붙이도 없다고 들었는디 말여. 그런디......어이쿠~ 이놈이 사람 잡네. 동네사람덜!! 퍼뜩 경찰 좀 불러주소. 어이구 허리야~~” 신나게 쫑알대는 여자를 밀치고 왔던 길을 정신없이 내달렸다. 대로변에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도중에도 백치마냥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놓아주겠다고 했잖아!! 그 녀석.............놓아주겠다고!!!!!’ 강박증환자처럼 중얼대며 전에 와본 적이 있는 병실 문을 거칠게 열어 재끼자 티끌하나 없이 깨끗이 정리되어있는 침상이 눈에 들어온다. “무슨................” 다른 환자들을 돌보던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에 있던 여자..............” “아, 혹시 아는 분이세요? 보호자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아직까지 시신 수습도 하지 못하고.......” “어디야?!!!!!!” “네?” “그 녀석.............!!!!” “바로 옆 병실에...............” 쾅-------!!! 이성을 잃고 뛰어 들어간 병실 안엔 지난 나흘 간 그렇게도 기다리던 녀석이 창백해진 얼굴로 단정히 누워있었다. “하루나.......늦었어...........” 떨리는 손으로 뺨을 쓸어 봐도 미동조차 없다. “도대체 병원 안에서 이게 무슨 짓입니까?!!!” 갑작스런 호통에 뒤돌아보니 소란에 놀라 뛰어 들어온 의사와 간호사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자신을 노려보고 서 있다. “어떻게 된 거야..............” 언제 난동을 부렸냐는 듯 착 가라앉은 냉랭한 목소리가 병실에 울리자 먼저 정신을 차린 노의사가 아랫사람을 부리는 듯한 하대에 미간을 찌푸리며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몸에는 이상이 없는데..............충격 때문인지 의식이 아직..........” “퇴원수속 시켜.........” “무슨 터무니없는 소릴.........!!!” 하얀 팔에 아프게 꽂혀있는 닝겔바늘을 모두 뽑아내고 분통이 터질 만큼 가벼워진 몸을 안아 올리자 고지식한 노의사가 참지 못한 듯 자신의 앞을 막아선다. “비켜........” “그렇게 제멋대로...........!!“ “불만 있으면 내 변호사한테나 말해” 짜증스런 속마음을 드러내며 명함을 던져주자 잠시 의심스런 눈빛으로 작은 종잇조각을 주워들더니 이내 새파래진 낯빛으로 물러선다. “저, 시신 처리는..............” 잔뜩 곤란함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병실 밖으로 나가려는 발길을 다시 붙잡아 세웠다. 『이곳에선 사람이 죽으면 불에 태워 재로 뿌린다고 하더군』 ‘여우같은 년..........’ 『내가 죽으면............... .............날 처음 만났던 곳에 뿌려달라고 전해 줘..........』 그날...........알고 있었던 거다. 이렇게 뒈져버릴 걸............ “화장시켜.........” 이를 갈 듯 내뱉고 차갑게 뒤돌아섰다. . . . 그대로 병원에서 옮겨온 이후 녀석은 심하게 앓았다. 더 이상 열이 오르면 의식이 돌아온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주치의의 말에 낯짝도 알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와 협박을 반복하며 밤새도록 곁을 지켰다. 겨우 열이 떨어진 이틀 후에도 인형같이 누워있는 몸뚱이가 살아있다는 유일한 증거는 가끔씩 몸을 떨며 흐느낄 때 새어나오는 눈물뿐이었다. “도대체 어디가 아픈 거야..........” 의식도 없이 탈수가 걱정될 만큼 울어대는 녀석을 품에 안아 달래 봐도 전처럼 그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새 바짝 말라버린 몸뚱이를 꼬옥 끌어안은 채 토닥이다 며칠간의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잠에 빠져버렸다. . . . 서늘한 한기에 설핏 깨어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어느새 날이 저물었는지 불길한 어둠이 주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또다시 덮쳐오는 수마에 의식이 희미해진 것도 잠시........... 비어있는 옆자리를 보고 심장이 터질 만큼 놀라 다급히 침대 밖으로 뛰쳐나오자 달빛을 머금은 창가에 흐릿한 그림자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못 박혀 있었다. “너....................” 이질 적인 모습에 무심코 손을 내밀자 창백한 입술이 서서히 벌어지며 건조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돌아가야 돼.............” “뭐...........?” “너무......늦어버렸어” “무슨...............?!!” “그 녀석, 화 많이 났을 거야. 어쩌면........용서해 주지 않을 지도 몰라” 매혹적인 입술에 본 적 없이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큭,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달래주지 않으면 두고두고 심통을 부릴 거라구” “무슨 소리야?!!!! 이 밤에 가긴 어딜 간다는 거야?!!!” “내 걸.........되찾으러 갈 거야” “닥쳐!!!!!” 정신 나간 소리에 분통을 터트리며 멱살을 휘어잡자 익숙하지만.......섬뜩할 만큼 아름다운 이목구미가 시야를 사로잡았다. “너..........누구야............?” “니가 모르는........나야................ 정이율.........오랜만이다. 7년 만인가........?” 『네가 진짜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결국은 놓아줄 수밖에 없을 거야. 나처럼.............』 불길한 이명에 주먹을 꽈악 움켜쥐자 무심하게 자신의 이름을 내뱉은 입술에서 아찔할 만큼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부탁이 있어..........” 죽어있던 까만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도 생기 있게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 ‘으응.........’ 자꾸 잠을 깨우려 입술에 부벼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투정을 부리며 꿈틀거리자 입가에 고집스레 들러붙던 말캉한 살점이 짓궂게 불쑥 입안으로 침입해 들어온다. 따뜻한 느낌........... 익숙한 체향도, 안겨있는 단단한 품도 끔찍이 좋아하던 그것이 분명하다. 그제야 잔뜩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펴고 입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젖먹이처럼 빨아들이자 달래듯 허리를 쓸어주던 손이 천천히 더듬어 내려와 부드러운 애무를 거듭한다. 금새 화끈한 열기가 뽀얀 허벅지 안쪽으로 부벼지는 느낌에 비몽사몽간에 다리를 열어주자 기다렸다는 듯 단단하게 굳어든 사내가 축축하게 젖어있던 내부로 단숨에 밀고 들어왔다. “....................!!!” 소리 없이 쾌락에 젖은 신음을 내지르며 허덕이자 벌어진 입술을 틀어막고 불처럼 뜨거운 살점을 목구멍 안쪽까지 깊숙이 박아 넣는다. 기절할 것 같은 쾌감에 보드라운 시트를 한 움큼 틀어쥐고 격하게 몸 안으로 드나들기 시작하는 사내를 강하게 죄어대자 넋이 나갈 만큼 매혹적인 신음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하아...........“ 눈을 뜨고 싶은데.................. 얼굴을 보고 싶은데.............. 밤새도록 노역을 한 것 마냥 피곤에 절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안타까운 마음에 힘겹게 팔을 뻗어 표범처럼 날렵한 사내의 허리를 꼬옥 끌어안자 무방비하게 벌어진 입술로 달콤한 키스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아..........응.................“ 꿀 속에 빠진 나비처럼 한참을 끈적한 열락에 빠져 허우적대다 겨우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몸 속 깊숙이 찔러대며 쾌락을 주던 사내가 허무하리만치 간단히 몸 밖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하늘 끝까지 올라갔다 내동댕이쳐진 기분에 더운 숨을 몰아쉬며 소리 없는 불만을 토해내자 강한 손아귀가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더니 축 늘어진 몸을 시트 채 번쩍 들어 올려 단단한 무릎 위로 끌어올린다. 못 견디게 좋아하는 굳건한 사내의 몸에 꼬옥 달라붙어 뺨을 부비적대자 으스러뜨릴 것처럼 강하게 끌어안아 준다. ‘좋아해..............’ ................좋아한다. 상상할 수조차 없을 만큼........... 안온한 기운에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사내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은 채 수마에 빠져들려는 순간, 데일 듯이 뜨거워진 불기둥이 다시 내부로 삼켜지기 시작했다. “흑..............” 익숙하게 몸을 열고 침입해 들어오는 열기에 놀라 버둥대자 달아나려는 몸을 자신의 품안으로 바짝 끌어당기며 짓궂게 속삭여온다. “...............아직...................... ................다 갖지 못했어..............” 체중이 실려 한계까지 파고든 사내가 작은 몸속에서 요동을 치고 있었다.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통증과 쾌락을 참지 못하고 매끈한 살갗에 손톱을 세우자 다시 깊숙이 자신을 밀어 넣는다. 기어코 처녀지로 침입해 들어오는 충격에 강인한 손아귀에 갇힌 늘씬한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며 빈틈없던 결합이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하악.....................“ 하룻밤사이에 길이 들었는지 몸 안에서 거칠게 맥박 치는 사내의 감촉만으로도 금세 아랫도리가 뻐근하게 일어나 통증을 호소한다. 사내의 손에 허리가 살짝 들리자 쐐기처럼 몸 안에 박혀있던 거대한 몸체가 민감한 내벽을 긁어대며 천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싫어..........’ 다시 떨어져나가려는 사내의 목을 하얀 팔로 꼬옥 끌어안고 보채자 귀두 끝까지 빠져나갔던 페니스가 매끄럽게 뿌리 끝까지 삼켜졌다. “.............!!” 심장까지 찔러 들어올 것만 같은 기세에 시야가 새하얗게 변해갔다. 단박에 척추를 타고 뇌 속 깊이 박혀드는 쾌감에 겨우 현실로 끌어올려진 의식마저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던 어둠 속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하아, 움직여...............”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것처럼 입술을 빨아대던 사내가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유혹하듯 귓가에 속삭여왔다. 숨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속에서 미친 듯 뛰어대는 심장마저 녹여버릴 듯한 목소리에 넋을 놓고 있다 재촉하듯 엉덩이를 지분대는 손길에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으응..................아................” 간밤에 배운 대로 단단하게 근육이 잡힌 어깨 위에 팔을 두르고 미숙하게 몸을 움직이자 몸 속 깊숙이 박혀있던 흉기가 정확히 성감대를 찔러왔다. “아학.............” 아찔한 자극에 비명 같은 신음을 쏟아내며 작은 짐승처럼 사내의 품속으로 파고들자 서툴기만 한 행위를 참지 못한 사내가 결국 연결돼 있던 하얀 몸을 그대로 품에 안은 채 푹신한 침대 위로 밀어붙였다. 그대로 뒤집혀진 몸 위로 따뜻한 체온이 바짝 밀착해 왔다. 엎드린 채 어린 강아지 마냥 끙끙대며 포근한 시트에 뺨을 부비자 뽀얀 피부에 피처럼 붉게 새겨진 문양 위로 웃음기 뭍은 입맞춤이 떨어져 내렸다. “하아.........아...............” 사내가 허리를 끌어안은 채 다시 깊숙이 삽입을 해오자 쾌감에 젖어있던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으응..................” 조심스레 몸 안팎으로 드나드는 움직임에 헐떡이며 뜨거운 숨결을 뱉어내던 입술에서 유혹하듯 음란한 신음이 터져 나오자마자 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듯 흥분한 맹수처럼 빠르게 몰아치는 사내에 맞물린 채 정신없이 비벼지고 꿰뚫렸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거친 피스톤질에 굶주린 들짐승에게 쫓겨 미친 듯 질주하는 토끼처럼 헐떡이며 몸부림치다 몸 안 깊숙이 박혀든 사내가 하얀 몸을 쥐어 짤 듯 끌어안고 온몸 구석구석 따뜻한 기운을 퍼뜨리자마자 그대로 힘없이 늘어져 버렸다. ‘하아 하아.....................’ 기진맥진한 몸으로 푹신한 침대 위로 무너지자마자 사정 후에도 쉽사리 수그러들지 않고 몸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사내가 만족한 신음을 흘리며 조심스레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응............” 삽입만큼이나 익숙지 않은 쾌감에 본능적으로 뜨겁게 조여 대며 할딱이자 억눌린 신음소리와 함께 숨죽인 웃음이 귓가에 스쳐온다. “큭, 의외로................. 소질이 있을 지도............” ‘졸려..........’ 탐스러운 입술을 굶주린 듯 빨아대는 사내를 겨우 떼어내고 배부른 새끼 고양이 마냥 작게 하품을 하며 품안으로 파고들자 내 것 만큼이나 가쁘게 뛰어대는 심장박동이 귓가를 때린다. 피곤에 눈도 뜨지 못하고 꿈속을 헤매는 사이................ 뽀얀 목덜미에 몇 번이나 입술을 찍어 누르며 벗은 몸을 지분대던 손길이 아쉬운 듯 떨어져 나가는 느낌에 붉어진 입술로 소리 없이 칭얼대며 미간을 찌푸리자 원하던 사내 대신 푹신한 물체가 품안에 들어온다. “좀 더 자라.............” 까마귀 깃처럼 새까만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올리며 귓가에 주문같이 속삭이는 목소리에 까무룩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어머, 이 머리칼 좀 봐!! 진짜 까만색이잖아?!!!“ ”눈동자도 같은 색이라던데 사실일까? 눈 좀 떠보세요, 잠꾸러기 왕자님!!“ 잠결에 낯선 목소리가 호들갑스럽게 울려오고 있었다. 깨기 싫은 단잠이 못내 아쉬워 꾸물꾸물 포근한 시트 안으로 파고들며 칭얼대자 바로 작은 한숨소리가 귓가에 스쳐온다. "하아........정말 소문이상이잖아. 황태자님께서 꼭꼭 숨겨놓으셨다더니 무리도 아니야..... 몸시중까지 물리시고 직접 이 아이의 시중까지 드신다던데............" “설마............그렇게 차가우신 분인데!! 황궁에서 아기 때부터 황태자님을 지켜보신 시녀장께서도 그분의 웃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했잖니........?!!” “두 눈으로 직접 본 아이도 있다니깐!! 침소에 드시면 바닥에 발을 내딛는 것도 안타까워 품안에서 떼어놓질 않으신데!! 그러니 앙큼한 계집애들이 시중 들 생각은 않고 이 아일 한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어 안달이 났지!!!" "킥, 확실히.........이 정도라면 나라도 그리 했을 거다. 잠든 모습도 어찌 이리 예쁘니?!! 온실에서 배양된 장미 같아.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 한번..........만져보면 안될까?" “경을 칠 소리!! 지난번에도 시종 하나가 죽어나간 걸 몰라서 하는 소리니?!! 게다가 어제도............슈안님이 황족만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났을 거라구!! 분명 루베라 되실 분이 틀림없어!! 이 침소만 해도 1년 전엔 전혀 쓰지 않으셨잖아? 침실 노예도 모두 물리시고, 이 아이가 있는 이곳 외에 다른 이의 침소로 드시는 것도 보지 못했어!!” “그러고 보니.........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상대도, 고귀한 귀족가의 처녀도 이곳을 차지하지 못하고 사흘을 넘기지 못했다던데, 1년이라니................ 잠자리가 꽤나 만족스러우신 건가?? 덜 자란 사내아이가 처녀만큼이나 감도는 좋다고 하던데.............” "어머, 무슨 망측한 소릴..........!! 아직 이렇게나 어리신데.......설마 밤시중까지 든단 말야?!!“ “흥, 순진한 척 하긴......황성 안에 이 아이보다 어린 침실노예가 널렸단 건 네가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렇긴 하지만............지난번 시중들었던 뮤즈니안의 황태자님보다............아니, 시온님보다 어려 보이는데......." “의외로 외양이 어려 보이는 걸지도 모르잖아? 게다가 성 밖 귀족들도 유흥거리로 10살도 안된 아이들을 길들여 성노로 쓰고 있다구!!” “어머, 우리 황태자님과 그런 하급 귀족나부랭이 따위를 비교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게다가 이 아이도 성노 따위가 아니라구........!!! 어떤 성노가 감히 황태자님의 침소에서 이렇게 태평히 잠이 들 수 있겠니?” "흥, 알고 있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이야 어쨌든 이런 미색으로 여태껏 누군가에게 사랑 받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아, 그러고 보니.........미색이라면 최근에 어느 나란가의 왕자님도 떠들썩하잖아? 태양처럼 이글이글하는 오렌지 빛 머리칼에 황금안이라지??“ “흥, 계집애가 밝히기는........!! 그 왕자님은 지금 시온님보다 어리다구!! 그보다는 지난번 황성에 머무신 뮤즈니안의 황태자께서도 소문만큼 대단했잖아? 반짝반짝 은실 같은 머리칼에 제비꽃 같은 자색(紫色) 눈동자라니.......... 하아........앞으로 3, 4년이면 굉장히 멋진 사내가 될 텐데..........!!“ “쳇, 어느 세월에?!! 그렇게 예쁜 눈동자에 철없는 장난기만 가득하니 대륙 제일의 골칫덩이로 통하지! 악동 마냥 시녀들 치마나 들추는 덜 자란 왕자님 따윈 관심 없어!! 그에 비하면 우리 황태자님은 얼마나 의젓하신 지........... 대륙에서도 인정하는 제일 혈통에 외양이든, 검술이든, 황제로서의 자질이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니............ 하아, 눈동자라도 한번 마주볼 수만 있다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드릴 텐데..........“ “꿈도 야무지긴........눈앞에 루베라 후보를 두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이렇게 예쁜 머리칼에 소문대로의 눈동자라면 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자랄걸!! 차기 황제의 루베라가 될 거라 소문이 자자했던 그 아이리스님도 이제 더 이상 찾지 않으시는데 네까짓 것쯤이야...........“ ‘아이........리스................?’ “뭐야?!!!!! 이 못된 것이 정말 매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그게...............누구.............?’ “흥,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뭘 그리 흥분하고 난리니? 킥, 그나마 아이리스님은 황태자님의 첫 밤이라도 차지했는데, 새카맣게 얼굴조차 모르는 넌 어쩌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게 정말!!!!” “.....................” 낯선 이름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짜증과 갈수록 심해지는 고성(高聲)을 참지 못하고 천근같이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자 흐릿한 시야 속으로 단정한 물빛 드레스에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소녀들이 비쳐든다. * ‘아이리스.....................’ 낯선 이름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짜증과 갈수록 심해지는 고성(高聲)을 참지 못하고 천근같이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자 흐릿한 시야 속으로 단정한 물빛 드레스에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소녀들이 비쳐든다. 그런데................. 항상 어린 시녀들을 이끌고 소리도 없이 침소에 들어 청소만 하고 물러나던 무뚝뚝한 시녀장이 오늘은 웬일인지 보이질 않는다. "앗, 깨어났어!!! 깨어났어!!!!" “정말?!!! 눈동자는?? 정말 소문대로야? 저리 좀 비켜봐!!!!” “마.......말도 안 돼!! 진짜............까만색이잖아!!!” “그럴..........리가!!!” ‘응.............?’ “.............................. ..................... ..............” “........................... ..................... ................” “하아, 이 정도면..........백 번이 아니라 천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황태자님이 네게 눈 돌일 일은 없을 거 같은데............?” “................... .............입 다물어!!” 눈을 뜬 순간부터 숨까지 죽인 채 자신을 바라보는 소녀들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키려다 무리하게 사내를 받아들인 민망한 부위의 통증에 신음을 삼키며 다시 제자리로 풀썩 쓰러져 버렸다. “어머, 어디 아프신 건가요?? 궁의라도............” 언제부턴가 품안에 꼬옥 끌어안고 있던 베개 위로 하얀 얼굴을 묻은 채 끙끙대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요란스레 말을 꺼내온다. ‘궁..........의..............?’ 궁의라면 가끔 아플 때 약을 주는 노인이다. 그 사람이 침소에 들면 보고 싶은 사내도 바로 볼 수 있겠지만.......... ‘싫어...........’ 아픈 부위가 부위인 만큼 사내에게도 보이기 부끄러운 엉덩이를 내밀어야 한다. 절대................ 약을 먹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냐........... 아픈 내색을 겨우 감추고 팔랑개비 마냥 고개를 휘젓자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걱정스레 바라만 보던 소녀들이 안심한 듯 크게 숨을 내뱉더니 금세 꽃같이 환한 미소를 터트리며 침대 곁으로 다가선다. “기침하셨으면..........욕실시중이라도 들어드릴까요?” ‘응?’ “씻겨드리겠습니다” “.................!!!!” 갑작스런 말에 경악한 표정으로 올려보자 부담스러울 만큼 눈을 빛내며 재촉해 온다. ‘무............무슨...........?!!!’ 굳이 들춰보지 않아도 시트 밑으론 아무 것도 걸친 게 없다. 몸이라면 지난밤 자신을 안은 사내가 향이 날 만큼 깨끗이 씻겨줬지만.................. “...................” 오늘 새벽 또 몸을 지분대는 바람에........ “..................!!” 얼굴에 불이 날 만큼 낯 뜨거웠던 정사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크게 숨을 들이키며 벌떡 일어나 앉자마자 몸 안에 고여 있던 사내의 체액이 허벅지 안쪽으로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그제야 얼굴을 화악 붉힌 채 몸에 두르고 있던 시트를 구명줄인 양 꽈악 움켜쥐자 어울리지 않게 음모 가득한 눈빛을 교환하더니 슬금슬금 곁으로 다가서며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여온다. “그렇게 게으름 피우시면 황태자님께서 싫어하신 답니다” ‘싫어............해?’ 왠지 모르게 지끈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비 맞은 새끼 고양이 마냥 몸을 떨자 회심의 미소를 입에 건 소녀들이 강아지풀 미끼를 눈앞에 던져왔다. “그 분께서 좋아하시는 향으로 씻어 단장을 해드릴 테니 어서 이쪽으로................” “............” 막무가내로 뻗어오는 손길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 순간............... “이게 무슨 짓들이냐!!!!!!” “.......!!!” 엄한 인상의 노파가 청천벽력 같은 호통을 내지르며 거대한 문 안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당장 물러서지 못할까!!!!" “시..........시녀장님.............!!” 분노한 음성에 금세 발그스레한 얼굴을 흙빛으로 물들인 소녀들이 죄지은 양 고개를 숙인 채 멀찌감치 뒤로 물러섰다. “기어코 화를 자초하는 구나!! 아이 곁엔 얼씬도 하지 말라 그리도 일렀거늘.........!!!” “그.........그런 것이...............” “주제도 모르는 것이 아이를 희롱하다 황태자의 눈에 띄어 사지가 찢긴 것을 몰라서 하는 짓거리들이냐!!!“ “가........감히 희롱이라니.........가당치도 않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시중을 들어드리려고........” “닥쳐라!!!! 정녕 목이 떨어지고 싶은 게로구나! 지난번 처벌받은 것이 황태자 앞에서 꺼낸 변명도 그것인 줄 모르고.............!!” 한동안 하얗게 질린 얼굴들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잔뜩 긴장한 채 시트에 파묻혀 있던 내게 시선을 돌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조근조근 말을 건네 온다. “철없는 것들이 크나큰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를..........” ‘용............서................?’ 약간 당황했을 뿐.........용서를 빌만큼 나쁜 짓을 당한 것도 아니고, 지금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니 그저 쉬고 싶을 따름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후 포근한 침대 위로 다시 몸을 눕히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소녀들과는 달리 걱정스런 표정을 한 시녀장이 천천히 안색을 살피며 다가선다. "혹시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아파...............‘ ..............아프다. 화끈거릴 만큼 삼켜진 입술도, 무리하게 움직인 허리도,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어깨도, 밤새도록 거칠게 빨리고 비벼진 페니스도, 몇 번이고 사내의 것을 받아들인 애널도............ 지난 밤....................... 지금껏 참았던 무언가가 터져 버린 듯 광기마저 내비치며 달려드는 사내를 품고 짐승처럼 헐떡이며 쾌락에 몸부림을 쳐댔다. 처음 느껴보는 그것에 미쳐.................정신이 나갔던 게 분명하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입을 맞추고 서로 알몸을 부벼대다 잠이 든 적은 많지만 그런 식의 결합은................. ..................시도는커녕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꽤나 아프고 부끄러운 행위임엔 틀림없지만 뭔가 소중한 걸 준 것 같아 몇 번이나 잠을 깨워 몸 안으로 파고드는 사내를 거절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다면 아무리 재촉해도 새벽엔 하지 않겠다고 떼를 써볼 걸 그랬다. 떠올리기도 낯부끄러운 통증에 푹신한 베개위로 붉어진 얼굴을 부비적대며 눈을 감는 순간................. “이........이럴 수가.....!!!!!!” 놀란 듯 숨죽인 신음성이 귓가에 파고들었다. ‘응..........?’ 엎드려 누운 채 고개를 들어 올리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얗게 드러난 자신의 어깨에 시선을 박고 서있는 시녀장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게 도대체...........” ‘왜..............?’ 의아한 눈으로 올려보자마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넓죽 엎드려 바닥에 머리를 박는다. “........................!!!!” “주.........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미천한 것이 감히 알아보지 못하고.................” ‘무슨............?’ 용서라면 이미 해줬다. 그런데 갑자기 죽을죄라니........... 내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도 아니고, 흉악한 살인마도 아닌데.............. 저리 떨어대며 시선도 맞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나................. .............기분이 좋질 않다. 영문도 모른 채 시녀장을 따라 바닥에 엎드린 소녀들을 당혹한 눈으로 내려 보다 입술을 꼬옥 깨문 채 시선을 떨궜다. ‘또................’ 가끔.......... ..............이런 일이 있다. 평소엔 녹아내릴 것처럼 따뜻하고 온화하던 사내가................. 사내의 예쁘던 눈동자가.............어느 순간, 섬뜩하게 변하는 걸 알고 있다. 그럴 때면 주변에 있던 시종들이 미친 듯이 몸을 떨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목숨을 구걸하는데, 이상하게도 다음날이면 항상 보던 얼굴이 보이지 않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수군대는 시종들의 말속에는 누군가 목이 잘렸다든지, 눈알이 도려내진 채 성 밖으로 내쳐졌다든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섬뜩하고 잔혹한 말들뿐이어서 낮 동안 공포로 몸을 떨다가 해가 지면 절대적으로 안전한 사내의 품안으로 한없이 파고들어서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수일이 지나자 평소 시중을 들어주겠다며 나서는 시종은커녕, 항상 고개를 숙인 채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가뜩이나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곳을 청소한 후엔 도망치듯 침소 밖으로 사라진 게 전부였다. 그러니 지금도................. 사내가 이곳에 없긴 하지만...................... 평소보다 정도가 지나치긴 하지만.................... 당연한 반응을 보이는 것뿐이니 새삼스레 상처받는 바보짓 따위......... ..........하지 않을 거다. 바닥에 엎드린 시녀장과 어린 시녀들을 쓰디쓴 표정으로 내려 보다 꾸물꾸물 시트 안으로 파고들어 자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해가 질 때까지 저리 엎드려 있을 게 뻔하고......... 사내의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엔 이리저리 주워들은 말처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죄 없는 시녀장과 소녀들이 벌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때 가서야 말 못하는 자신이 아무리 하소연을 해봤자 소용없는 일........ 한참을 그렇게 숨죽이고 있자 눈치 빠른 시녀장이 투명할 정도로 하얀 천개를 끌어내려 시야를 가린 후 머뭇거리는 소녀들을 소리 없이 재촉해 서둘러 침소 밖으로 물러난다. “...................”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닫히자마자 한동안 거대한 침소 안에 내려앉아 있던 무거운 침묵이 작은 흐느낌 소리로 간단히 깨어져 버렸다. “흑.............” 혼자 남겨졌다 해서..........외톨이가 되어버렸다 해서 원망 따윌 하는 게 아니다.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혼자였는데 원망이라니................ 가당치도 않은.........상상도 못할 일이다. 꿈조차 꾸어본 적이 없다. 원망은커녕, 하루 종일 얼굴만 바라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좋아하는데............. 그런데................ 축축이 젖어드는 베개를 꼬옥 끌어안고 한참을 훌쩍이다 갑자기 들려오는 무거운 발소리에 눈물을 뚝 그친 채 숨을 죽였다. 청소를 하는 시녀들이라면 진즉에 물러났고, 기다리는 사내가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험악하게 생긴 병사들이 철통같이 문 앞을 지키고 서있으니 이곳에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인물이야 시종장이나 궁의 뿐........... 하지만............ 그들조차도 자신을 알리지 않은 채 저렇게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들어서지는 못한다. 의아한 생각에 푹 파묻혀 있던 시트를 살짝 들어 올려 주변을 살피지만 눈앞에 차 오른 눈물과 시야를 가린 천개가 그새 침소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인물을 부옇게 흐려놓고 있었다. ‘누...........구.................?’ 침대로 다가서는 성급한 발소리에 어제 갑자기 침소로 침입해 들어온 금빛 사내를 떠올리곤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는 순간, 거칠게 밀어 올려진 천개 사이로 시커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갑자기 내용이 변해 당황하신 분들!!! 하류가 잃어버렸던 기억의 일부이자 2부의 포석입니다. 시점은 하류가 첫밤을 보낸 다음 날.......